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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민정음과 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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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은 인도에서 왔다 1.문자는 종교를 따라서 흐른다 한글은 인도에서 왔다. 인도에서 중국으로 불교가 전파되면서 운서가 만들어졌고 그 운서를 모방하여 훈민정음이 만들어 졌다. 인도의 범어가 중국을 거쳐 조선에 도달하여 훈민정음이라는 꽃을 피운 것이다. 범어를 한자로 표기하면서 직음법(直音法), 반절(反切)법이 생겨났다. 송대(宋代)의 송경문필기(宋景文筆記)에 "절운의 방법은 서역에서 나왔다. 한인(漢人)들이 글자를 가르칠 때 다만 어떤 자처럼 읽으라고 말할뿐, 반절을 사용하지 않았다(切韻之學出于西域,漢人訓字,止日讀如某字,未用反切)"라고 밝히고 있다. 반절(反切)은 한자음을 성(聲)과 운(韻)으로 나누고, 성(聲)에 해당하는 한자와 운(韻)에 해당하는 한자를 조합하여 특정 한자음을 기록하는 것이다. 예를들어 한자 東의 반절표기..
御製康熙字典序[강희자전서문]---번역 安東書院은 漢文과 中國語[簡體,繁體字]를 飜譯하고, 古典을 講讀하는 곳입니다. [Translator Chinese Classics & Mandarin into Korean] 電話; 011-9572-7220. 054-821-7222 張 昇 鎬 *[解題] 中國의 字典. 淸 康熙帝(1654.5.4~1722.12.20.北京.帝位1661~1722)의 勅令에 따라 張玉書 陳廷敬 等 30餘 名의 學者가 5年 이상에 걸쳐서 編纂된 책으로 康熙55년 (1716)에 完成 되었다. 明 梅膺祚의 字彙. 張自烈의 正字通 등에서 그 構成方式을 따왔지만 內容은 더욱 充實하다. 十二支의 순에 따라 12卷으로 나누어져 있다. 214의 部首가 劃順으로 配列되어 있고 各 部首에 配列된 文字 역시 劃順으로 配列되어 있다. 各 文字마다 反切..
칠음략(七音略) 第一  정초(鄭樵)의 통지(通志) 송대사학은 ‘통(通)’을 구하는 데 특징이 있어 북송중기에 사마광의 《자치통감(資治痛鑑)》이 나왔고, 남송 초에 정초가 《통지》를 지어 더욱 뚜렷해졌다. 두 책은 시간적으로 80년의 차이가 있으나 하나는 편년사로서, 또 하나는 기전사로 고금을 통관하는 사서였다. 다시말하면 송대에 일어난 통사의 바람이 정초의 《통지》에 와서 극치를 이룬 것이다. 그리고 정초는 본래 서명을 ‘통사(通史)’라고 하였다가 뒤에 《통지》로 정하였다. 1.정초의 사학 1)일생 정초(1104~1162)는 자가 어중(漁仲)으로 복건 흥화(興化, 현재 복건 보전(莆田)의 한 하층 관리의 집에서 태어났다. 가정의 영향을 받아 어려서 독서를 좋아하였다. 자라서는 실학(實學)을 숭상하여 과거에 응시하지 않고 학문연..
정광교수의 [동아시아 여러 문자와 한글]에 나타난 誤字 정광교수의 [동아시아 여러 문자와 한글]에 나타난 誤字 134p. 천축의 승려 축불념이 한한 보살영락본업菩薩瓔珞 (하권)에는 옛 불도에서 배워야 하는 십이부경十二部經의 하 나로 비가라나毘伽羅를 들었다.3) 주석 3) 불자여, 광혜신인(光慧信忍)하여 옛 부처님의 도(道)를 수습하나니, 이른바 십이부경(十二部經)이니라. 수다라(修多羅)ㆍ기야(祇夜)ㆍ비가라나(毘伽羅那)ㆍ가타(伽陀)ㆍ우다나(憂陀那)ㆍ니다나(尼陀那)ㆍ아바다나(阿波陀那)ㆍ이제목다가(伊帝目多伽)ㆍ사타가(闍陀伽)ㆍ비불략(毘佛略)ㆍ아부타달마(阿浮陀達摩)ㆍ우바제사(憂波提舍) 등 이러한 법으로써 중생을 제도하고 신통 변화의 광명이 빛나므로 명지(明地)라 이름 하느니라. 佛子!光慧信忍修習古佛道,所謂十二部經:修多羅、祇夜、毘伽羅那、伽陁、憂陁那、尼陁那、阿波陁那、伊..
석보상절 (釋譜詳節)/19권 석보상절 (釋譜詳節) 1446년 세종의 정실인 소헌왕후가 사망하자 수양대군은 크게 충격을 받고 어머니의 명복을 빌기 위하여 중국 양나라(梁)의 승우(僧祐)가 지은 석가보(釋迦譜)와 당나라(唐)의 도선(道宣)이 지은 석가씨보(釋迦氏譜) 등에 나오는 석가모니의 일대기와 설법들을 참조하여 모은 후 분류, 편철하여 처음 석보를 제작, 어머니의 제단에 올렸다. 이를 본 세종이 수양대군에게 석보를 완성하라는 명을 내리자, 신미, 김수온 등과 함께 기존 석보에 증수석가보(增修釋迦譜), 아미타경(阿彌陀經), 무량수경(無量壽經), 지장경(地藏經), 법화경(法華經) 등의 내용을 추가하고 원문들을 한글로 언해한 것이 지금 전해지는 석보상절이다. 이후 세종이 석보상절을 읽어본 후 찬가로 월인천강지곡을 지었고, 수양대군이 세조..
언문(한글) 문헌 목록 한글 옛 문헌 목록 연도를 기준으로 순서대로 기재합니다. 1392년 이성계 국호를 조선이라 함 1393년 한양(한성)으로 천도 1394년 1403 주자소를 설치해 금속활자를 대량 주조.중간본 '향약구급방鄕藥救急方 고려어 약 이름을 차자 借표기 15세기 1418년 세종 즉위 1420년 세종 집현전集賢殿을 설립 1420년 송희경宋希璟회례사回禮使로 일본 파견, 후일 노송당일본행 老松堂日行錄 저술 세종 19년(1437) 세자 문종에게 대리청정 제안. 세종 24년(1442) 세자 문종에게 대리청정을 하며 정무를 직접 처리하게 함. 이후 약 7년 8개월 동안 대리청정. 세종 25년(1443) 12월-세종이 훈민정음 28자를 친제왕, 실제로는 언문 27자였음 세종 26년(1444) 2월 16일(丙申)-운회의 번역을 ..
훈몽자회 (訓蒙字會) 훈몽자회 (訓蒙字會) 훈몽자회 언어·문자 문헌 조선전기 학자 최세진이 어린이들의 한자 학습을 위하여 1527년에 간행한 교재. 한자교학서. 1527년(중종 22)에 간행된 이래 여러 차례 중간되었다. 편저자는 그 당시 한자학습에 사용된 ≪천자문≫과 ≪유합 類合≫의 내용이 경험세계와 직결되어 있지 않음을 비판하고, 새·짐승·풀·나무의 이름과 같은 실자(實字)를 위주로 교육할 것을 주장하여 이 책을 편찬하였다. 상·중·하 3권으로 되어 있는데, 각 권에 1,120자씩 총 3,360자가 수록되어 있다. 한자의 배열은 상권에 천문(天文) 이하 16문, 중권에 인류(人類) 이하 16문으로 주로 전실자(全實字)를 수록하였고, 하권에는 잡어(雜語)라 하여 반실반허자(半實半虛字)를 수록하였다. 한자의 수에 있어서 ≪천..
나는 나의 안내자이다-브라흐미 (브라흐미) 𑀅𑀢𑀸 𑀳𑀺 𑀅𑀢𑀦𑁄 𑀦𑀸𑀣𑁄 𑀅𑀢𑀸 𑀳𑀺 𑀅𑀢𑀦𑁄 𑀕𑀢𑀺 (법구경 380) (로만) atta hi attano natho atta hi attano gati (한글) 나는 나의 의지처이고 나는 나의 안내자이다. (영어) Self is the protector of self, self is the refuge of the self 𑀫𑀦𑁄 𑀧𑀼𑀩𑀀𑀕𑀫𑀸 𑀤𑀀𑀫𑀸 (법구경 1) Manopubbaṅgammā dhammā 모든 일은 마음이 근본이다. Mind precedes thoughts 𑀦 𑀳𑀺 𑀯𑁂𑀭𑁂𑀦 𑀯𑁂𑀭𑀸𑀦𑀺 (법구경5) Na hi verena verāni 결코 원한으로 원한은 풀리지 않는다 For not by hatred do hatreds 𑀳𑀺𑀤𑀩𑀼𑀥𑁂𑀚𑀸𑀢 𑀲𑀓𑁆𑀬𑀫𑀼𑀦𑀺𑀢𑀺 hi..
여기에서 사꺄무니 부처님이 태어났다-다포설명 “여기에서 사꺄무니 부처님이 태어났다” 부처님이 태어나신 현재 네팔의 룸비니에는 아소까왕(B.C.273년~232년)이 세운 석주(石柱)가 있다. 그 석주에는 브라흐미 글자로 다음과 같은 글이 새겨져 있다. “왕위에 오른지 20년에 신들의 사랑을 받는 '삐야다시' 왕은 이 곳에 와서 참배하였다. 여기에서 사꺄무니 부처님이 태어났다. 나는 이곳에 돌담을 쌓고 석주를 세웠다. 여기에서 세존께서 태어났기에 룸비니 마을에는 생산의 1/8만 내도록 하였다.” “신들의 사랑을 받는(Devānaṃpiyena) 삐야다시(Piyadasina)”는 아소까왕(Asoka)의 다른 이름이다. 마우리야 왕조의 제 3대인 아소까는 즉위 8년후 42세에 불교로 개종하였다. 처음 몇 년은 신심이 없이 지내다가 즉위 10년부터 보드가야를..
빠알리어와 훈민정음의 유사점 1.부처님 당시에 사용한 문자는 ? 부처님의 가르침은 라자가하에서 있었던 1차결집을 통해 암송으로 전해졌다. 암송으로 전해진 탓에 부처님 시대에는 문자가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부처님이 열반하시고 부처님의 사리를 모신 사리탑이 곳곳에 만들어진다. 그중에 하나인 석가족이 만든 부처님의 사리탑을 1898년 영국인 펩페(Peppe)가 발굴해보니 고따마 붓다의 사리함이 발견되었다. 그 사리함에는 "석가족의 형제 자매 친척들이 부처님의 사리를 모셨다"라는 내용이 브라흐미문자로 새겨져 있었다. 그 브라흐미 문자는 지금의 인도인들이 사용하는 데와나가리 문자와 모양은 다르지만 발음체계가 같다. 불멸후 200년후에 마우리야 왕조를 통일한 아소까대왕은 바위와 석주등에 브라흐미문자를 사용하여 칙령을 새겨 ..
사성통해(四聲通解- 1517년) 조선전기 학자 최세진이 『홍무정운역훈』의 음계를 보충하고, 『사성통고』를 보완하기 위하여 1517년에 편찬한 운서. 이 책은 『홍무정운역훈(洪武正韻譯訓)』(1455)의 음계를 보충하고, 자해(字解)가 없는 신숙주(申叔舟)의 『사성통고』를 보완하기 위해 편찬되었다. 편찬/발간 경위 최세진의 서문에는, 먼저 『홍무정운역훈』의 수록자를 대폭 보충한 『속첨홍무정운(續添洪武正韻)』을 짓고, 이것을 『사성통고』 형식으로 개편하여 『사성통해』를 지었는데, 그가 따로 지은 『노박집람(老朴輯覽)』도 참고하면서 4년간에 걸쳐 원고를 일곱 번 고쳤다고 되어 있다.수록된 한자의 배열은 『홍무정운』보다 4운(韻)이 많은 80운을 기준으로 하고, 각 운에 속하는 한자는 『사성통고』와 마찬가지로 먼저 자모(字母)순으로 분류하고, ..
훈민정음의 창제원리를 말하다(기고한 글) 훈민정음의 창제원리 조선왕조실록(1443년 12월 30일)에 "이달에 임금이 친히 언문 28자를 지었는데, 그 글자가 옛 전자(篆字)를 모방하고, 초성(初聲)·중성(中聲)·종성(終聲)으로 나누어 합한 연후에야 글자를 이루었다. 무릇 문자(文字)에 관한 것과 이어(俚語)에 관한 것을 모두 쓸 수 있고, 글자는 비록 간단하고 요약하지마는 전환(轉換)하는 것이 무궁하니, 이것을 훈민정음(訓民正音)이라고 일렀다."라는 명백한 기록이 남아있어서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훈민정음은 세종의 독자적인 창작으로 알고있다. 그러나 많은 언어학자들은 세종이 아무리 천재라도 홀로 훈민정음을 창작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라고 말한다. 세종을 모셨던 신하 성삼문은 직해동자습(直解童子習)에서 "우리 세종과 문종께서 이점을 염려하시여 ..
운도(韻圖) 운도(韻圖) 『광운』 등 운서(韻書)에 실현되지 않은 오음청탁(五音淸濁)·개합(開合)·등운(等韻) 등 성운(聲韻)의 상호관계를 체계적으로 정리하여 제시한 도표를 지칭하는 용어. 내용 따라서, 운도는 운서의 반절(反切)과 더불어 한자음을 심사할 수 있는 근거자료가 된다. 운도 작성에 관련되는 학문을 등운학(等韻學)이라고 하는데, 등운학에서는 중국 한자음의 성모(聲母)를 조음위치(調音位置)에 따라 나누어 36자모(字母)로 표시하게 하고, 운모(韻母)의 주모음(主母音)을 개구도(開口度)의 광·협에 따라 1·2·3·4등위로 나눈다. 그 다음 자모를 좌우, 즉 횡(橫)으로 병렬시키고, 운모를 상하, 즉 종(縱)으로 배열하되, 먼저 평(平)·상(上)·거(去)·입(入)의 순에 따라 4단으로 나누고, 다시 같은 성조(..
七音略 第一 七音略 第一 通志 三十六 七音序 天地之大其用在坎離人之為霊其用在耳目人与禽獣視聴一也聖人制律所以導耳之聡制字所以 拡目之明耳目根於心聡明発於外上智下愚自此分矣雖曰皇頡制字令倫制律歴代相承未聞其書 漢人課籀隷始為字書以通曰字之学江左競風騒始為韻書以通声音之学 然漢儒識文字而不識子母則失制字之旨江左之儒識四声而不識七音則失立韻之源独体為文合体為字漢儒知以説文解字而不知文有子母生字為母従母為子子母不分所以失制字之旨四声為経七音為緯江左之儒知縦有平上去入為四声而不知衡有宮商角徴羽半徴半商為七音縦成経衡成緯経緯不交所以失立韻之源 七音之韻起自西域流入諸夏梵僧欲以其教伝之天下故為此書雖重百訳之遠一字不通之処而音義可伝華僧従而定之以三十六為之母重軽清濁不失其倫天地万物之音備於此矣雖鶴唳風声鶏鳴狗犬雷霆驚天蚊虻過耳皆可訳也況於人言乎 그런데 한유들은 글짜는 인식하게 되엿지만, 자모가 글짜를 ..
성호사설 제16권 > 인사문 > 언문 우리나라의 언문 글자는 세종 28년인 즉 병인년에 처음 지었는데, 온갖 소리를 글자로 형용하지 못할 것이 없었다. 사람들은 이를, “창힐(倉頡)과 태사(太史) 주(籒) 이후로 처음 있는 일이라.” 하였다. 我東諺字剏扵世宗朝丙寅凡有音者莫不有字人稱倉籕以来未始有也 원 세조(元世祖) 때에 파스파(巴思八)가 불씨(佛氏)의 유교(遺敎)를 얻어 몽고(蒙古)의 글자를 지었는데, 평ㆍ상ㆍ거ㆍ입(平上去入)의 네 가지 음운(音韻)으로써 순(唇)ㆍ설(舌)ㆍ후(喉)ㆍ치(齒)ㆍ아(牙)ㆍ반순(半唇)ㆍ반치(半齒) 등 칠음(七音)의 모자(母字)로 나누어 무릇 소리가 있는 것은 하나도 빠뜨림이 없었다. 元世祖時巴思八者得佛氏遺敎制蒙古字平上去入四聲之韻分唇舌喉齒牙半唇半齒七音之母字苟有其音者一無所遺 무릇 중국의 글자는 형상을 주장하므로 사람들이..
신숙주와 운서(韻書) 신숙주와 운서(韻書) 강신항 성균관대 명예교수 1. 한자음(漢字音)과 운서 신숙주(1417~1475)는 세종 시대(1419~1450)에, 운서 관련사업에서중추적인 구실을 했다. 그러면 신숙주가 어떠한 학문적 배경 아래에서 이러한사업에 종사할 수 있었는지 그 배경을 살펴보고자 한다. 중국 대륙에 사는 여러 민족 가운데, 한족(漢族)이 쓰는 말을 한어(漢語)라 하고, 이 한어를 기록한 한자의 음을 한자음 또는 자음(字音)이라고한다.그런데 한어의 어음은 20세기에 들어와 본격적으로 표음 문자인 로마자(音文字)로 기록될 때까지 한자의 음으로만 기록되어 왔으므로, 한어의어음사를 흔히 한어의 자음사라고 한다. 중국 대륙에서 이러한 한어의 자음 표시는 예로부터 여러 가지방법으로실시되어 왔다. 그 대표적인 것이 반절..
세종은 훈민정음을 어떻게 만들었을까?(B형) 세종은 훈민정음을 어떻게 만들었을까? 1.중국의 운서와 훈민정음 중국에서 범어를 받아들이기 전까지 중국에는 운서가 없었다. 당나라 지광은 ’실담자기(794)‘에서 범어의 자음을 소개하며 7음을 자신들의 상황에 맞게 아음,치음,설음,후음,순음(牙音·歯音·舌音·喉音·唇音)의 순서로 소개하고 있다. '광운(1008)'에서는 7음의 순서를 바꾸어 우리에게 익숙한 아음(牙音) 치음(歯音) 설음(舌音) 후음(喉音) 순음(唇音)로 소개하고 있다. 물론 범어의 자음이 36개 이듯이 광운에서 나타나는 자음의 수는 36개이다. '홍무정운(1375)'에서는 `아설순치후반설반치의 7음은 같은데 자음은 31개로 줄었다. 훈민정음(1443)에서는 홍무정운을 본받아 `아설순치후반설반치'의 7음순서로 초성 17자를 만든다. 홍무정운..
자음에서 순음(脣音)과 후음(喉音)의 오행 분별 자음에서 순음(脣音)과 후음(喉音)의 오행 분별 김만태 문학박사/서라벌대학교 풍수명리과 전임교수·학과장 이 글은 한글 자음의 오행·오성 분류에서 현재 혼란이 있는 순음(脣音, ㅁㅂㅍ)과 후음(喉音, ㅇㅎ)의 분별에 관한 본격적인 학술 고찰입니다. 2012년 8월 서울대학교 철학사상연구소에서 발행한 한국연구재단 등재 학술지『철학사상』제45호에 게재된 김만태 교수님의 논문「훈민정음의 제자원리와 역학사상 : 음양오행론과 삼재론을 중심으로」에서 발췌한 내용입니다. 이 글의 저작권은 서울대학교 철학사상연구소와 김만태 교수님에게 있으므로 본 내용을 인용하거나 게재하실 때는 반드시 출처를 명확하게 밝혀 주시기 바랍니다. 『훈민정음』에서는 초성 17자를 아음·설음·순음·치음·후음 및 반설음·반치음으로 분류한다. 초성을..
운서 (韻書) 목록 -위키백과 운서 운서 운서 (韻書)- 한자의 운을 중심으로 분류하여 일정한 순서로 배열한 자전(字典). 운서는 중국 사람들이 편찬한 것이 대부분이지만, 우리나라 사람이 편찬한 것도 상당수에 이른다. 운서를 편찬할 때에는 우선 모든 한자들을 사성별(四聲別)로 나누고, 같은 성조(聲調)를 가진 한자들은 다시 운(韻)이 같은 한자들끼리 모은 다음, 운이 같은 한자들은 성모(聲母)가 같은 한자들끼리 모아서 사성별 · 운별 · 성모별로 한자들을 배열한다. 이 중에서 주로 운을 중심으로 분류하였으므로 운서라고 한다. 중국운서 가운데 주요한 것은 『절운(切韻)』(601) · * 실담자기(760~830?) 지광스님 『광운(廣韻)』(1008) · 『예부운략(禮部韻略)』(1037) · 『임자신간예부운략(壬子新刊禮部韻略)』(1252)..
성삼문 직해동자습 번역 [6] 我世宗,文宗慨念於此. 旣作訓民正音. 天下之聲. 始無不可盡矣. 우리 세종과 문종께서 이점을 염려하시여 훈민정음을 창제하시니, 천하의 모든 소리를 비로소 다 표기하지 못할 것이 없게 되었다. 성삼문 직해동자습 번역 ≪직해동자습(直解童子習)≫ 서문(성삼문)의 의미 단위 대조 번역_김슬옹 *출처: 成謹甫先生集卷之三(한국고전번역원) [1] 我東邦在海外. 言語與中國異. 因譯乃通. 우리나라가 중국 바다 바깥에 있으므로 말이 중국말과는 달라서 역관이 있어야 통했다. [2] 自我祖宗. 事大至誠. 置承文院掌吏文. 司譯院掌譯語. 專其業而久其任. 其爲慮也蓋無不周. 우리 조상 때부터 중국을 지성으로 섬기었고 승문원을 두어 한문 외교 문서를 맡게 하고, 사역원을 두어 통역을 맡게 하는 한편, 맡은 일에 온힘을 쏟게 하시어..
《동국정운》신숙주 서문 *해제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한자음을 우리 음으로 표기, 국어연구 자료로서 과 쌍벽을 이룰 정도로 높이 평가받는 책 [편찬경위] 이 책은 세종의 언어정책의 일환으로 당시 혼란상태에 있었던 우리나라 의 한자음을 바로잡아 통일된 표준음을 정하려는 목적으로 편찬·간행되 었다. 1447년(세종 29) 편찬이 완성되었고, 이듬해인 1448년 10월에 간 행되었다. 은 중국의 운서인
홍무정운역훈(洪武正韻譯訓) -신숙주 서문 홍무정운역훈(洪武正韻譯訓1455년) 서(序) 聲韻之學最爲難精 음운학(音韻學)은 가장 어렵고 세밀하다고 말한다. * 聲韻(성운) : 음운(音韻). 한자(漢字)의 음(音)과 운(韻). 언어(言語)의 외형(外形)을 구성(構成)하는 음(音)과 운(韻)의 배합(配合). 고저(高低). 억양(抑揚) 등(等)에서 나는 모든 목소리 蓋四方風土不同而氣亦從之 聲生於氣者也 모두 사방(四方)의 풍토가 같지 않고 기(氣)가 역시 따라가니, 소리는 기(氣)에서 나오는 것이다. 故所謂四聲七韻 隨方宜異 그러므로 이른 바 사성(四聲)과 칠운(七韻)은 지방에 따라 당연히 다르다. 自沈約著譜 雜以南音有識病之 而歷代未有釐正之者 심약(沈約)이 운보(韻譜)를 저술하면서부터 남방(南方)의 소리가 섞여 식자들을 괴롭혔으나 아직 바로잡아 고친 자가 ..
훈민정음과 브라흐미글자 유사성 훈민정음혜례본에서 설명하는 자음(초성)순서로 보면 ㄱ ㄲ ㅋ ㆁ, ㄷ ㄸ ㅌㄴ, ㅂ ㅃㅍ ㅁ, ㅈ ㅉ ㅊ ㅅ ㅆ , ㆆ ㅎ ㅎㅎ ㅇ, ㄹ ㅿ 라는 순서로 설명됩니다. 아래는 그 순서와 발음입니다. ㄱ。牙音。如君字初彂聲 ㄲ 並書。如虯字初彂聲 ㅋ。牙音。如快字初彂聲 ㆁ。牙音。如業字初彂聲 ㄷ。舌音。如斗字初彂聲 ㄸ 並書。如?字初彂聲 ㅌ。舌音。如呑字初彂聲 ㄴ。舌音。如那字初彂聲 ㅂ。脣音。如彆字初彂聲 ㅃ 並書。如步字初彂聲 ㅍ。脣音。如漂字初彂聲 ㅁ。脣音。如彌字初彂聲 ㅈ。齒音。如卽字初彂聲 ㅉ 並書。如慈字初彂聲 ㅊ。齒音。如侵字初彂聲 ㅅ。齒音。如戌字初彂聲 ㅆ 並書。如邪字初彂聲 ㆆ。喉音。如挹字初彂聲 ㅎ。喉音。如虗字初彂聲 ㅎㅎ 並書。如洪字初彂聲 ㅇ。喉音。如欲字初彂聲 ㄹ。半舌音。如閭字初彂聲 ㅿ。半齒音。如穰字初彂聲 이런 자음의 순서..
훈민정음 해례본 번역문 訓民正音[편집] 번역원문 나라말이 중국과 달라, 한문・한자와 서로 통하지 아니하므로, 어리석은 백성들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있어도, 끝내 제 뜻을 펴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내가 이를 불쌍히 여겨, 새로 스물 여덟 글자를 만드니, 사람마다 하여금 쉽게 익혀, 날마다 씀에 편하게 하고자 할 따름이다. ㄱ은 어금닛소리이니, 君(군) 자의 처음 발하는 소리와 같다. 나란히 쓰면 虯(뀌) 자의 처음 발하는 소리와 같다. ㅋ은 어금닛소리이니, 快(쾌) 자의 처음 발하는 소리와 같다. ㆁ은 어금닛소리이니, 業(업) 자의 처음 발하는 소리와 같다. ㄷ은 혓소리이니, 斗(두) 자의 처음 발하는 소리와 같다. 나란히 쓰면 ?(땀) 자의 처음 발하는 소리와 같다. ㅌ은 혓소리이니, 呑(탄) 자의 처음 발하는 소리와 같다...
한글 오백주년 기념우표 서기 1946년 10월 09일 제조. 인쇄소 : 경화인쇄소 (대한민국 우표) 발행량 : 50만장 가격(금액) 50전 훈민정음28자와 자음과 모음이 다르다.
세종은 훈민정음을 어떻게 만들었을까?(비공개) 황극경세서 찬도지요 2권 하5 https://m.cafe.daum.net/52074184/Sfsy/8 https://blog.daum.net/kjs4311/8521822 한국어와 중국어의 음이 달라진이유 https://m.blog.naver.com/pkschina505/220947426212 https://m.blog.naver.com/PostView.naver?isHttpsRedirect=true&blogId=joonghyuckk&logNo=110184732994 4.4.1 훈민정음의 청/탁 (‘淸濁’) 개념에 대한 현행 학계의 견해 비판 현행 한글에서는 훈민정음의 유성음 표기법인 '각자병서(各字竝書)'를 조선 시대 내내 써오던 무성 ... blog.naver.com 범어 자음 홍무정운 반절 훈민정음 ..
브라흐미 글자 읽기 𑀅𑀢𑀸 𑀳𑀺 𑀅𑀢𑀦𑀻 𑀦𑀸𑀣𑀻 𑀅𑀢𑀸 𑀳𑀺 𑀅𑀢𑀦𑀻 𑀕𑀢𑀺 attā hi attano nātho attā hi attano gati 자기야말로 자신의 주인이고 자기야말로 자신의 의지할 곳이다(법정) 자신이 자신의 의지처이고 자신이 자신의 안내자이다.(전재성)
한글 창제와 신미스님 / 정광 http://www.budreview.com/news/articleView.html?idxno=2148 [열린논단] 한글 창제와 신미스님 / 정광 - 불교평론 1. 들어가기2. 아시아 여러 문자와 한글3. 한글의 명칭과 새 문자의 頒布4. 중국 聲韻學으로 본 한글5. 信眉大師와 고대인도의 聲明記論6. 結語 1. 들어가기1.0 한글에 대하여 우리 민족은 특별한 감 www.budreview.com [열린논단] 한글 창제와 신미스님 / 정광 기자명 정광 입력 2019.10.18 09:20 댓글 0 바로가기 복사하기 본문 글씨 줄이기 본문 글씨 키우기 SNS 기사보내기 페이스북(으)로 기사보내기 트위터(으)로 기사보내기 카카오스토리(으)로 기사보내기 URL복사(으)로 기사보내기 이메일(으)로 기사보내기 다른 공..
석보상절 제6, 9, 13, 19, 23, 24권 자료 제공: 허재영(건국대학교 박사과정, 건국대 및 협성대학 강사) 내 용: 석보상절 제6, 9, 13, 19, 23, 24권 제공 장소: 한말연구학회 홈페이지 kkucc.konkuk.ac.kr/~hanmal ◉ 世尊이 象頭山애 가샤 龍과 鬼神과 위ᄒᆞ야 說法ᄒᆞ더시다.(석보 6:1) ◉ 龍鬼 위ᄒᆞ야 說法ᄒᆞ샤미 부텻 나히 셜흔 둘히러시니 穆王 여슷 찻ᄒᆡ 乙酉ㅣ라.(석보 6:1) ◉ 부톄 目連이 ᄃᆞ려 니ᄅᆞ샤ᄃᆡ 네 迦毗羅國에 가아 아바니ᇝ긔와 아ᄌᆞ마니ᇝ긔와 아자바님내ᄭᅴ 다 安否ᄒᆞᅀᆞᆸ고 ᄯᅩ 耶輸陁羅ᄅᆞᆯ 달애야 恩愛ᄅᆞᆯ 그쳐 羅睺羅ᄅᆞᆯ 노하 보내야 샤ᇰ재 ᄃᆞ외에ᄒᆞ라.(석보 6:1) ◉ 아ᄌᆞ마니ᄆᆞᆫ 大愛道ᄅᆞᆯ 니르시니 大愛道ㅣ 摩耶夫人ㅅ 兄니미시니 야ᇰᄌᆡ 摩耶夫人만 몯ᄒ..
석보상절 권6 현대어 해석 세존께서 상두산(象頭山)에 가셔서 용과 귀신을 위하여 설법하시었다.〔용귀(龍鬼)를 위하여 설법하심이 부처님 나이 서른 둘이시더니 목왕(穆王) 육년 을유(乙酉 996 B.C)이다.〕 부처님이 목련(目連)이더러 이르시되, 「너는 가비라국(迦毗羅國)에 가 아버님과 아주머님께〔아주머님은 대애도(大愛道)를 이르시니, 대애도는 마야부인 형님이시니, 얼굴 생긴 모양이 마야부인만 못하시므로 둘째 부인이 되신 것이다.〕숙부님께 다 안부하고 또 야수타라(耶輸陁羅)를 달래서 은애(恩愛)를 그치게 하여 라후라를 놓아 보내어 상재가 되게 하라. 라후라가 득도해서 돌아가야 어미를 제도하여 열반 얻음을 나와 같이 할 것이다.」 목련이 그 말 듣고 곧 입정(入定)하여 폈던 팔을 굽힐 사이에〔빠른 것을 이르는 말이다.〕가비라국에 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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