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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장선원

자애경(2022년 5월 27일 백장암선원 대중 윤문)

자애경(Mettā sutta)이 설해지게 된 배경

어느 때 오백 명의 비구들이 부처님으로부터 정진 수행에 관한 설명을 듣고 수행 주제를 받아 적합한 장소를 찾다가 넓고 깊은 숲에 도착했다. 이 숲에는 신들이 나무에 머물러 살고 있었는데, 비구들이 이 숲을 수행 장소로 정하자 나무에 있던 신들은 불만이 많았다. 왜냐하면 비구들이 자기들 아래에 있는 것은 옳지 않아서 자기들도 땅에 내려와서 살아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신들은 이 비구들이 머지않아 곧 떠나려니 생각하며 마음을 달랬다.

그러나 비구들은 숲을 떠나지 않고 계속 그곳에 머물렀고, 그렇게 보름이 지났다. 신들은 비구들이 여름 안거를 이곳에서 보내려는 것은 아닌가 걱정이 되었다. 만일 그런 생각이라면 그들은 별 수 없이 우기 동안 흙바닥에서 지내야만 했으므로 걱정이 안 될 수가 없었다. 신들은 더 이상 참지 못하여 비구들을 이곳에서 쫓아내리라고 마음먹었다. 그래서 그들은 밤마다 흉칙한 모습으로 나타나 비구들을 놀라게 했다. 예를 들면 머리는 있으나 몸이 없다든지, 몸은 있어도 머리는 없는 모습 따위로 나타났던 것이다. 그들은 이상한 소리를 질러 대어 주위를 매우 으스스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비구들은 처음에는 당황했지만 곧 수행력으로써 이를 극복하기로 했다. 그들은 현상 관찰의 힘으로 귀신들에 대한 불안ㆍ공포ㆍ놀람 따위를 이겨 보려 했던 것이다. 그렇지만 실패하게 되어 결국 부처님을 찾아 뵙고 이 같은 어려움을 사뢰었다. 부처님은 비구들이 겪은 일을 자세하게 들으시더니, 그것은 비구들이 알맞은 무기를 갖지 못했지 때문이며, 알맞는 무기를 가지고 가면 괜찮으리라고 말했다. 그 무기란 자비의 마음으로써 자비는 모든 두려움을 이기는 힘이 된다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부처님은 비구들을 위하여 자비경을 설법해 주었다.

비구들은 부처님으로부터 자비경을 배워 숲 어귀에 들어서면서부터 경을 외기 시작했다. 경을 들은 신들은 비구들에게 더 이상 적대감을 갖지 않게 되었고, 비구들을 환영해 주었다. 그 이후부터는 숲속에 신들의 장난이 사라졌다. 그래서 비구들은 편안한 마음으로 서른두 가지 몸의 각 부분에서 진행되는 과정을 분석 관찰하는 수행에 전념하여 마침내 진리를 깨달을 수 있었다그때 부처님께서는 사왓티의 제따와나 승원에 계시면서 비구들의 수행이 어떻게 되어가고 있는지 살펴보시고, 그들에게 광명을 보내시어 마치 부처님께서 그들 앞에 계신 모습을 나투시어 이렇게 말했다.

육신이 마치 질그릇 같음을 알고

마음을 잘 다스려 튼튼한 성곽처럼 만든다.

지혜의 칼로 마라를 정복한뒤 그 마음을 보호할 뿐

더 이상 집착하지 않는다.”

 

Kumbhūpamaṁ kāyamimaṁ viditvā,nagarūpamaṁ cittamidaṁ ṭhapetvā,

yodhetha Māraṁ paññāvudhena,jitañca rakkhe, anivesano siyā.

 

 

 

자애경(백장암 대중 윤문)

 

수행의 길에 능숙하여

적정의 경지를 이루려는 이는

유능하고 정직하고 진솔하며

온순하고 부드럽고 겸손해야 합니다.

 

만족할 줄 알고 남이 공양하기 쉬우며

분주하지 않고 생활이 간소하며

감각기관이 고요하고 안정되고

거만하거나 탐착하지 않아서

 

현명한 이들이 나무랄 일은

그 어떤 것도 하지 않습니다.

모든 존재들이 안락하고 평화롭고 행복하기를...

 

살아 있는 생명이면 그 어떤 것이든

움직이거나 움직이지 않거나

길거나 크거나 중간이거나, 짧거나 미세하거나 거칠거나

 

보이거나 보이지 않거나, 가깝거나 멀거나

이미 태어난 것이거나, 앞으로 태어날 것이거나

모든 존재들이 행복하기를...

 

서로 속이지 않고 얕보지도 말지니,

어느 곳 누구든지

분노 때문이든 증오 때문이든

남의 고통을 바라지 않기를...

 

마치 어머니가 하나밖에 없는 자식을

목숨으로 보호하듯

모든 생명을 향해 한량없는 자애를 키워 가기를...

 

온 세상에 대해

위로, 아래로, 옆으로

장애 없이, 원한 없이, 적의 없이

무량한 자애를 닦기를...

 

서 있을 때나 걸을 때나

앉아서나 누워서나 깨어 있는 한

자애의 마음을 잊지 않는 것,

이것이 거룩한 삶입니다.

 

삿된 견해에 빠지지 않고

계행과 바른 견해를 갖추어

감각적 욕망을 제거하면

다시는 윤회의 모태에 들지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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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모든 존재들의 행복을 바라는 이유는 무엇인가?

2.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들은 누구인가? 

3.불자들은 정말 윤회의 끝을 원하는가? 

 

비구들이여, 아무리 적은 양의 똥일지라도 그것은 악취를 풍긴다. 나는 아무리 짧은 기간일지라도 존재[, bhava]로 태어나는 것을 칭송하지 않나니, 하다못해 손가락을 튀기는 기간만큼이라도 존재로 태어나는 것을 칭송하지 않는다.” (A:1:18:13)

 

왓차여, 그런데 만일 그대에게 묻기를 그대 앞에 불이 꺼졌는데, 꺼진 그 불은 꺼진 후에 어떤 방향으로 갔는가? 동쪽인가? 서쪽인가? 북쪽인가? 남쪽인가?라고 한다면 그대는 어떻게 설명하겠는가?

고따마 존자시여, 그 말씀을 적당하지가 않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참으로 불은 마른 풀과 나뭇가지라는 연료를 조건으로 타올랐고, 그 연료를 다 써버리고 더 이상 다른 연료를 공급하지 못하면 연료가 없어서 꺼졌다고 합니다.

왓차여, 참으로 그와 같다. 사람은 물질로써 여래를 묘사하면서 묘사를 시도하지만 여래는 그 물질을 제거했고, 그 뿌리를 잘랐고, 윗부분이 잘린 야자수처럼 만들었고, 멸절시켜, 미래에 다시는 일어나지 않게끔 하였다. 왓차여, 여래는 물질이라는 이름에서 해탈하여 심오하고 측량할 수 없고 깊이를 헤아릴 수 없나니 마치 망망대해와도 같다. 그에게는 태어난다.라는 말이 적용될 수 없고, 태어나지 않는다.라는 말도 적용될 수 없고, 태어나기도 하고 태어나지 않기도 한다.라는 말도 적용될 수 없고, 태어나는 것도 아니고 태어나지 않는 것도 아니다.라는 말도 적용될 수 없다.

왓차곳따 불 경(M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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