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귀의 한글화 문제점
인도에서 전해진 경전을 중국에서 번역하면서 의역을 하지 않은 단어들이 있다. 열반,반야,삼매,선,불타,달마,승가,보살,바라밀, 탑과 같은 단어들이다. 이런 단어들은 각각 깊고 넓은 의미를 포함하고 있어서 의역을 하면 본래의 의미가 훼손되거나 파괴되기 때문에 음사하는 방법을 택하였다. 그 대표적인 단어가 승가(Saṅgha)이다. 승가는 본래 '모임','집단'이라는 뜻으로 사용되던 말이다. 부처님은 물론 육사외도의 수장들도 상기(saṅghī) 가니(gaṇī)라고 불렸는데 '무리의 지도자'라는 뜻이다. 부처님은 경장과 율장에서 일반적인 의미와 다르게 승가(Saṅgha)라는 단어를 사용하였다. 부처님은 4인승가, 5인승가, 10인승가, 20인승가, 20인 이상의 승가, 이렇게 5종류의 승가만 인정하였는데 승가는 포살과 자자 그리고 대중갈마로 운영되는 공동체로서 평등성, 화합성, 청정성, 공유성의 의미가 포함되게 되었다. 승려 2~3인의 모임은 별중(gaṇa)이라고 불렀다. 승가를 의역을 하지 않고 음사하는 전통은 지금도 예불문에 그대로 남아있다.
시방삼세 제망찰해 상주일체 불타야중(至心歸命禮 十方三世 帝網刹海 常住一切 佛陀耶衆)
시방삼세 제망찰해 상주일체 달마야중(至心歸命禮 十方三世 帝網刹海 常住一切 達磨耶衆)
시방삼세 제망찰해 상주일체 승가야중(至心歸命禮 十方三世 帝網刹海 常住一切 僧伽耶衆)
그런데 음사된 승가도 시간이 흐름에 따라 변화되었다. 붓다를 불타(佛陀)라고 음사하고나서 타(陀)가 생략되어 불(佛)로 단축되었듯이 승가(僧伽)도 가(伽)가 탈락되어 승(僧)이 되었다. '승가'를 승(僧)으로 단축하면서 공동체(僧団)의 의미가 승려,스님,중,염불승,화주승이라는 개인을 의미하는 단어로 변질되었다. 이런 이유로 '승가=스님', '승가=스님들'이라는 오해가 생겨났고 '귀의승'을 '거룩한 스님들께 귀의합니다'라고 번역하게 되었다. 현재의 천수경등에는 음사된 불타, 달마,승가와 단축된 불(佛),법(法),승(僧)이 혼용되어 사용되고 있다. 한편 '상가'는 衆. 和合衆, 和合僧등으로 의역 되기도 하였다. 승가를 화합하는 모임(和合衆), 화합하는 승가(和合僧)라고 번역한 것은 정기적인 포살과 자자 그리고 대중공사로 화합을 유지하는 단체임을 설명하기 위한 노력이다. 출가자와 재가자가 한 자리에서 보살계를 받는 대승불교가 시작되자 승가에 재가자가 포함된다는 '보살승가'가 나타났다. 대승불교를 표방하는 대한불교조계종은 종헌 제8조에 ‘본종은 승려(비구, 비구니)와 신도(우바새, 우바이)로서 구성한다’고 천명하고 있고, 제9조에는 '승려는 구족계와 보살계를 수지해야한다'라고 규정하였다. 이러한 규정들 때문에 우리종단의 불자들은 승가에 재가자가 포함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하기도한다. 승단과 종단(교단)을 구분하지 못한 까닭이다.
초기경전 번역자들에게도 책임이 있다. 각묵스님은 “승가로 음역한 상가(Saṅgha)는 같은 목적을 가지고 함께 모인 집단을 뜻하며 불교에서는 좁게는 비구 비구니의 승단, 넓게는 비구비구니, 청신사청신녀의 사부대중의 모임을 뜻한다.”고 주장하고 있다.(디가니까야 1권(2007년) p.80주석)
전재성거사는 “재가자를 포함시킬 때 승가라는 말 대신에 사부대중이라는 말을 쓴다. 그러나 승가안에 재가자가 포함되지 않는다고 명시적으로 규정할 수는 없다. 사방승가 안에는 재가자도 당연히 포함되어야 할 것이다.”라고 설명하고 있다.(디가니까야1권 해제 41p)
출가자와 재가자가 서로 의지해 있고 재가자가 승가를 외호하고 있다는 사실과 '재가자가 승가에 포함된다'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사방승가'도 '현전승가'의 집합일 뿐이므로 '사방승가'에 재가자가 포함된다는 주장도 타당하지 않다. 이렇게 초기경전을 번역하고 있는 사람들조차 승가에 재가자가 포함된다고 설명하여 혼란을 부채질하고있다.
승가와 승보의 의미도 혼란스럽다. 전재성거사는 “승보에는 비구비구니승가가 모두 포함되는 것이 아니라 예류향에서부터 열반에 도달한 아라한 까지의 사쌍팔배의 참사람을 의미한다.”며 승가에 귀의하는 것이 아니라 승보에 귀의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전재성거사의 주장과는 다르게 초기경전에서 “저는 세존께 귀의하옵고, 법과 비구승가에 귀의합니다.(bhikkhusaṅghañca)"라는 문장이 수없이 나타나고 있다. 들숨날숨에 대한 마음챙김 경(M118)에는 '승가의 범위'를 '예류자, 일래자,불환자,아라한'을 포함하여 '자애를 닦는 범부 비구,들숨날숨을 닦는 범부 비구들'을 포함하여 설명하고 있다. 귀의 대상인 승가는 과위를 얻은 성스러운 승가(聖僧伽)만이 해당된다는 논리도 억지임을 알 수 있다.
이제 '승가=스님들'이라고 번역하면 안되는 구체적인 이유를 알아보자.
첫째, 스님은 비구(bhikkhu)나 비구니(bhikkhuni)를 번역한 단어이다. 복수 '스님들'은 비구들(bhikkhū), 비구니들(bhikkhunī)을 번역한 것이다. 스님이나 스님들은 상가(saṅgha)의 번역어가 될 수 없다.
둘째, ‘스님들’은 2인 이상의 스님들을 의미하는데 승가는 최소한 4인 이상이어야 한다. 2~3인의 스님들 모임은 자자 포살 등 여법한 갈마를 할 수 없기에 승가라고 부르지 않고 왁가(vagga)라고 부른다.
셋째, 승가를 ‘스님들’로 해석한다면 ‘스님들’이 병들고 죽으면 승가가 없어지게 될 것이다. 부처님은 스님 개인에게 보시했을 경우 그 비구가 계율을 잘 지키지 않고 비난받을 짓을 하게 되면 보시한 것을 후회하게 된다고 말하며 승가에 보시하도록 권하고 있다. “개인에게 보시했을 경우 혹은 몇몇 스님들에게 보시했을 경우 그 비구들이 계율을 잘 지키지 않고 비난받을 짓을 하게 되면 보시한 것을 후회하고 스님들을 원망하게 된다. 스님에게 보시하지 말고 승가에 보시하십시오.”(A6:59)
넷째, 스님들께 보시하는 것과 승가에 보시하는 것은 공덕에 있어서 큰 차이를 보인다. 『웰라마 경』(A9:20)에서 대상에 따라 공덕이 달라짐을 설명하면서 ‘승가’에 보시하는 것이 아라한이나 부처님께 보시하는 것보다 공덕이 크다고 설명하고 있다. 열명의 사다함, 백명의 아나함, 천명의 아라한도 승가는 아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백명의 아라한에게 보시하는 것보다, 부처님께 보시하는 것보다 ‘승가’에 보시하는 것이 공덕이 더 크다”고 부처님이 말씀하신 것이다. 승가는 언제나 사방승가, 현전승가, 비구승가, 비구니승가등 공동체성을 의미하는 용어로 사용되었다.
“장자여, 견해를 구족한 한 사람을 공양한다면, 이것은 그것보다 더 큰 결실이 있다. 장자여, 견해를 구족한 백 명의 사람들을 공양하는 것보다 한 사람의 일래자를 공양한다면, 이것이 그것보다 더 큰 결실이 있다. 장자여, 백 명의 일래자를 공양하는 것보다 한 사람의 불환자를 (…) 백 명의 불환자를 공양하는 것보다 한 사람의 아라한을 (…) 백 명의 아라한을 공양하는 것보다 한 사람의 벽지불을 (…) 백 명의 벽지불을 공양하는 것보다 부처님을 상수로 하는 비구승가를 공양한다면 (…) 사방승가를 위하여 승원을 짓는다면 (…) 이것이 그것보다 더 큰 결실이 있다.”(A9:20)
다섯째, 부처님은 불멸 후 미래세에 계행이 청정치 못하고 삿된 법을 가진 가짜 수행자들이 나타날 것이라고 예언하시며 설사 그들에게 보시하더라도 승가라는 이름으로 보시하면 공덕이 헤아릴 수 없다고 말씀하신다.
“아난다여, 미래세에 계행이 청정치 못하고 삿된 법을 가졌으며 노란 가사를 목에 두른 일족들이 있을 것이다. 사람들은 승가를 위해 그 계행이 청정치 못한 자들에게 보시를 베풀 것이다. 아난다여, 그렇더라도 승가를 위한 보시는 그 공덕이 헤아릴 수 없고 잴 수 없다고 나는 말한다. 아난다여, 개인에게 하는 보시가 승가에게 하는 보시보다 그 과보가 더 크다고 나는 절대 말하지 않는다.”(M142)
여섯째, 부처님은 마지막 유언으로 ‘승가’에 대해서 의심이 있으면 물으라고 하신다. 만일 승가가 ‘스님들’이라면 부처님은 “스님들에 대해서 의심이 있으면 물어라”고 말한 격이 되는데 이러한 물음은 적절치 않다. 부처님이 승가에 대해서 물으라고 한 것은 그동안 부처님이 제정한 승가의 운영방법 즉, 포살, 자자, 수계갈마, 징계 갈마, 탁발하는 법, 객스님의 권리와 의무, 은사스님을 모시는 법 등에 대해서 의심나는 것이 있으면 물으라는 것이다. 승가는 승가운영에 대한 모든 규칙을 포함하고 있다.
“비구들이여,어느 한 비구라도 부처나 법이나 ‘승가’나 도나 도 닦음에 대해서 의심이 있거나 혼란이 있으면 지금 물어라. 비구들이여,그대들은 ‘우리의 스승은 면전에 계셨다. 그러나 우리는 세존의 면전에서 제대로 여쭈어보지 못했다’라고 나중에 자책하는 자가 되지 말라”(D16)
일곱째, 승가에 보시된 사찰과 임야등은 공유재산으로서 시간과 공간을 넘어서 수행자들에게 공유된다. 어느 날 왕사성에 사는 재가자는 스님들이 밤새도록 수행하다가 아침에 이슬을 맞으며 나무 밑이나 동굴에서 깨어나는 모습을 보았다. 그는 스님들이 이슬을 맞지 않고 안전하게 수행할 수 있도록 60개의 꾸띠를 지어 스님들께 보시하려고 했다. 막상 그 꾸띠를 스님들에게 보시하려고 했을 때 부처님은 “그 60개의 꾸띠는 현재와 미래의 사방승가(四方僧伽)에 보시하십시오”라고 말했다. 부처님의 이 말씀 이후로 현재까지 모든 승원과 수행처소들은 사방승가에 보시되었다. 이러한 전통은 국경을 초월하여 모든 사찰과 승원에서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수행자들이 주인으로 살 수 있는 근거가 된다. 승가에 보시하면 공유물이 되지만 스님이나 스님들에게 보시하면 사유물이 된다.
여덟째, 승가는 정법(正法)과 비법(非法)에 대한 논쟁이 생겼을 때 그것을 판가름할 수 있는 유일한 단체이다. 부처님은 승가에서 일어날수 있는 법과 비법, 율과 비율에 대해 발생한 분쟁을 승가전체가 참석하여 다수결(yebhuyyasikā)로 해결하도록 칠멸쟁법(Satta adhikaraṇasamathā)을 제정해 놓았다. 천명이 참석한 제 3차 결집에서 승가는 아소까왕의 도움을 받아서 정법과 비법에 대한 기준을 정하여 6만명의 외도들을 힌옷을 입혀서 쫓아냈다.
아홉째, 승가는 부처님 사후에 새로운 계목을 제정하거나 폐기할 수 있는 유일한 단체이다. 부처님이 살아계신 당시에는 부처님만이 계율을 제정하셨다. 그런데 부처님이 열반하시고 각기 다른 환경에서 살아가는 승가는 주위 환경에 맞는 새로운 계율이 필요하게 되었다. 오직 승가에게 새로운 규칙을 정하고 사소한 규칙은 없앨 수 있는 권한이 주어졌다. 이것은 불멸 후 227개였던 빠알리율이 사분율에서는 250개가 된 것으로도 알 수 있다. 사분율에는 불상과 탑에 관련된 새로운 규칙이 20여 개나 더 나타나고 있다.
열번째, 승가는 불법이 유지되도록 수계를 주어 출가자를 만들어내는 유일한 단체이다. 출가를 원하는 사람이 있을 지라도 승가에서 선출된 계단위원회에서 수계를 하지 않으면 비구,비구니가 될 수 없다. 수행 공동체이자 전법 공동체인 승가에서 비구,비구니를 배출하지 않으면,그러한 출가자들에게 승가의 운영에 대한 것을 교육시키지 않으면, 세상에는 승가가 유지되기 어렵다.
열한번째, 부처님이 반열반하시고 석달후에 스님 5백명이 라자가하에 모여 제1차 결집을 하였고, 100년후에는 열가지 계율문제에 대해 칠백명이 웨살리에서 제2차 결집을 하였다. 이러한 기록이 논장이나 주석서에 기록하여 전하지 않고 율장 소품에 넣어 전승하고 있는 것은 승가의 결정이 곧 부처님의 결정과 다름 없다는 인식에서 비롯된다. 승가는 부처님의 입멸후에 부처님의 권한을 대행하는 권위를 갖는다.
열두번째, 우리 선배 스님들은 삼귀의를 ‘귀의불양족존(歸依佛兩足尊) 귀의법이욕존(歸依法離欲尊) 귀의승중중존(歸依僧衆中尊)’으로 번역하였다. ‘지혜와 실천을 갖추신 존귀한 부처님께 귀의한다’, ‘탐욕을 떠난 존귀한 가르침에 귀의한다’, ‘일체의 대중(衆) 가운데서 존귀한 공동체에 귀의한다’라고 해석한 것이다. 승가를 스님들로 번역하는 것은 공동체성을 상실하게 만들고 승가의 구성원으로서 마땅히 가져야할 권리와 의무를 잊게 만든다.
지금까지 설명한대로 '승가'에는 단순한 모임,공동체라는 번역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종합적인 의미가 있다. 마치 자동체 부품이 모여 있다고 자동차가 아니듯이 '스님들'이 모여 있다고 승가가 아니다. 자동차 부품이 각 부품에 맞게 조립되고 기름이 채워져야 차가 굴러가듯이 승가는 전원이 참석하여 포살,자자, 갈마를 하고 보시물을 평등하게 나누며, 평등한 참종권, 발언권이 주어져야 승가라 불리게된다. 승가에서 화합의 의미도 일반적인 화합과 다르다. 사이좋게 지내는 것이 화합이나니라 구성원 전원이 참석하는 것을 화합(samagga)이라고 한다. 전원이 모이지 않으면 비화합(vagga)이다.어떤 수행자가 병 들어 참석하지 못하면 자신의 권리를 위임해야한다. 한 사람이라도 참석하지 않으면 비화합이라는 말은 승가 구성원은 그 사람의 지위나 용모나 능력에 따라 차별받지 않으며, 존재하는 그 자체로 평등하게 존중받는 존재라는 의미다. 대중공의로 운영되는 승가이기에 승려는 평등한 발언권(發言權), 동등한 참종권(투표권)을 가진다. 공양물을 평등하게 나누어 가져야하며, 어느 사찰에서나 머물수 있어야 한다. 승가 구성원 하나 하나가 주인이다. 이렇게 평등한 권리와 의무가 있기에 승가의 구성원은 주인정신과 공심(公心)을 가지고 살 수 있다. 승가는 대중공의로 운영된다는 말에 승려의 노후복지 ,종단의 민주적인 운영, 리더에 대한 직선제가 이미 포함되어 있다.
부처님은 “자신이 참된 자신의 주인일 뿐, 실로 다른 그 누가 나의 주인이 될 수 있겠는가?(DhP 160)”라고 가르쳤고 임제스님은 “이르는 곳마다 주인이 되어 살라(隨處作主)”고 가르쳤다.인류사에서 신이나 교조에 대한 복종을 가르치지 않고 '스스로 주인이 되라'고 가르치는 종교는 불교가 유일하다. 부처님은 사상적으로 주인이 되라 가르쳤고 제도적으로도 승가라는 단체를 만들어 주인으로 살게했다. 승가의 의미를 알지 못하기에 조계종은 '스님들께' 귀의하고있다. '승가=스님들’이라고 인식하고 있으니 재가자들이 특정 승려를 비판하면 삼보비방,승가모독이라는 엉뚱한 반응을 보인다. ‘스님들께 귀의한다’는 한글 삼귀의를 10년이 자나도록 바꾸지 않는것은 종단의 모든 사부대중이 승가의 의미를 모르고 있다는 증거다. 스님들께 귀의하라는 것은 자연스럽게 스님들을 권위적이게 만들어 재가자들의 비판을 용납하지 않게 만든다. 대중공의로 운영되는 종단, 주인으로 사는 승려들이 많아지면 우리사회도 건강해지고 밝아진다. 승가회복은 행복한 사회, 민주적인 사회에 크게 이바지 한다.
-끝-
승가(僧伽)라는 단어가 가진 10가지 뜻 :
승가(僧伽)라는 단어가 가진 10가지 뜻은 10가지 뜻만 있다는 것이 아닙니다. 20가지도 될 수 있습니다.다만 기억하기 쉽고 전달하기 편하게 10가지로 정리한 것입니다. 승려들이 승가의 의미와 역활을 아는 것이 급선무입니다.승가의 의미를 모르기에 주인으로 살 지 못하고 구조적인 문제를 개인의 문제로 돌리고, 공심을 갖지 못하고 패배주의에 젖어 삽니다.
1.화합(和合): 화합승가는 구성원의 평등(平等),공의(公議),청정(淸淨),공유(公有)등의 뜻이있다.
2.평등(平等): 승가 구성원은 각자의 나이, 능력, 지위와 관계없이 평등하다.
3.공의(公議): 승려 전체에게 의견을 물어서 만장일치 또는 다수결로 결정한다.
4.청정(淸淨): 포살과 자자와 갈마로 자정기능을 유지한다.
5.공유(公有): 승려는 전국의 사찰에 숙박할 권리가 있다.승가는 지역과 국가를 초월한다.
6.복전(福田): 승가는 부처님보다 더 수승한 공덕(功德)의 밭이다. 불전함,시주함을 복전함(福田函)으로 바꾸는 운동부터.
7.귀의처(歸依處): 승가는 세가지 귀의처 중에 하나이고, 승가만이 출가자를 배출한다.
8.수행공동체(修行共同體):부처님의 깨달음을 이어가고 승가만이 새로운 계율을 제정,폐기 할 수 있다.
9.전법공동체(傳法共同體):승가의 전승은 불법의 전승이고 승가는 유일하게 정사(正邪)를 판결할 권리가있다.
10. 주인(主人): 인류사에 남아있는 가장 오래된 승가공동체에서 구성원은 주체적이고 자유로운 인간으로 살아간다.
*승가를 설명할때 사용하면 좋은 비유 2가지
1. 조립된 자동차와 조립되지 않은 자동차 부품의 비유
2. '나는 한국을 사랑한다'와 '나는 한국인을 사랑한다'는 문장의 차이 비교.
[관련된 글]
*승가란 무엇인가 16장 : https://whoami555.tistory.com/13743371
*승가에 대한 7가지 질문과 답변: https://whoami555.tistory.com/13743058
*부처님은 '만장일치'를 주장하지 않았다: https://whoami555.tistory.com/13743380
*보시함, 불전함, 복전함, 시주함, 희사함,공덕함: https://whoami555.tistory.com/13743419
*삼귀의 한글화 문제점: https://whoami555.tistory.com/13742831
'종단개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승복을 입은 단멸론자 (1) | 2023.07.22 |
---|---|
죽은 부처님은 잘도 알아 보면서... (0) | 2023.06.26 |
[기고] 승가에 대한 7가지 질문과 답변 (0) | 2023.06.10 |
마곡사 안내판 유감 (0) | 2023.05.12 |
승려(僧侶)라는 이상한 단어 (0) | 2023.05.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