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곡사 안내판 유감
며칠전 공주 마곡사에 들렸다. 마곡천 계곡 물 위에 띄어진 연꽃이 유유히 떠다니고 있었다. 대웅전으로 향하는 다리에는 연등이 빼곡하게 달려있고 도량곳곳에 연등이 걸려있어 참으로 아름답고 고풍스러웠다. 마곡사 옆에는 종단에서 운영하는 연수원이 있다. 이런저런 주제에따라 연수를 받으러 온 스님들의 단골 산책코스가 연수원에서 마곡사까지 걷는 길이다. 그만큼 본사급 사찰중에서도 스님들이 자주 들리는 사찰이 마곡사인 것이다. 마곡사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선정되었는데 우리나라에 천년고찰은 많지만 유네스코에 선정된 산사는 일곱개 뿐이다. 양산 통도사, 영주 부석사, 안동 봉정사, 보은 법주사, 순천 선암사, 해남 대흥사 그리고 공주 마곡사다. 유네스코에서는 사찰 창건 이후 현재까지의 사찰의 모습이 지속성을 유지하고 있느냐를 기준으로 일곱 개 사찰을 선정하였다.
대웅전에 참배하고 한참동안 멋지게 생긴 소나무옆에 앉아서 도량의 고요를 만끽하였다. 그런데 도량이 예전과 달라진게 보였다. 마당 한쪽에 커다란 바위에 새긴 불(佛)자가 보였다. 대웅전 옆에는 옥으로 만든 관세음보살상이 설치되어 있다. 입구쪽에는 상선약수(上善若水)라는 글씨가 새겨진 커다란 돌 수각이 설치되어 있다. 예전에 없었던 것들이다. 상선약수(上善若水)라는 글씨 아래에는 수각을 보시한 사람의 이름이 직함과 함께 새겨져 있다. 감로수(甘露水)등의 불가의 용어를 놔두고 굳이 도덕경(道德經)에 나오는 상선약수(上善若水)를 새긴것도 이해가 인되고, 수 많은 사람이 방문하는 사찰의 수각에 보시자의 직함과 이름을 새겼다는 것도 상식적이지 않다. 이름을 새기더라도 눈에 띄지 않게 뒷면에 작은 글씨로 새겼다면 좋았을 것이다. '백범김구선생 은거 기념식수'를 설명하는 나무 안내판은 글자의 색이 빛바래서 보이지 않는 글자가 여러개 있다. 각래관세관 유여몽중사(却來觀世間 猶如夢中事)라는 주련의 문장도 해석을 해 놓으면 더욱 좋았을 것이다.
최근에 설치된 것으로 보이는 관세음 보살상은 상체와 하체의 비례가 1:1로 되어있어 수준급의 조각은 아니다. 이 보살상의 안내문에는 2015년 4월에 허공에 관세음보살 형상의 구름이 생겨난 것을 보고 관세음보살의 화현한 것이라고 여겨서 보살상을 조성했다고 적혀있다. 구름이야 천만가지로 변화하여 이런 저런 형상으로 나타날수 있는 것인데 구름이 관세음보살의 형상과 비슷하다고 관세음보살상을 세워놓다니 어이가 없다. 부처님 가르침 어디에 구름 형상을 보고 불보살상을 세우라고 한적이 있던가? 관세음보살상 안내판에도 보살상을 세우자고 제안한 사람의 직업과 이름, 보살상을 기증한 사람의 이름을 새겨 놓았다. 구름 모양을 보고 관세음보살의 화현이라고 생각하는 불자가 있다면 그런 허망한 형상에 집착하지 말라고 스님들이 가르쳐야 하건만 이렇게 관세음보살상을 세워 놓은 것이다. 보살상 안내문에 보이는 태화도장(道場) 백화도장(道場)이라는 표현은 태화도량, 백화도량으로 바로 잡아야한다. 불교에서는 미타도량(彌陀道場), 관음도량(觀音道場)처럼 도장(道場)을 도량(道場)으로 발음하고 의미 또한 다르기 때문이다. 안내문 말미에 "천추 만세에 만인이 우러러 예경하고 복연을 중승케 할지니라"라고 끝맺고 있는데 '복연' '중승'등과 같은 단어도 쉽게 풀어써야한다.
백범 김구가 붓으로 쓴 불(佛)자를 새긴 비석도 마당에서 정면으로 보이지 않는 곳에 설치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대웅전 앞에는 석탑이외에 다른 구조물이 설치 되는 것은 사찰의 전통양식으로 맞지 않다. 마곡사 도량 안내판중에서 가장 오자가 많은 안내판은 사천왕상을 소개하는 안내판이다. 안내판의 내용은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의 설명을 그 대로 복사한 것이다. 사전에서 옮겨왔더라도 어려운 단어는 쉬운 단어로 교체하고 해석을 붙여야 할것인데 그대로 베껴와서 무성의하게 느껴진다. 동쪽을 수호하는 지국천왕의 안내판을 보자.
"동쪽을 수호하는 지국천왕(持國天王) 그는 안민(安民)의 신으로서 수미산 동쪽 중턱의 황금타(黃金垂)에 있는 천궁에서 살고 있다. 16선신(善神)의 하나이기도 한 지국천왕은 선한 자에게 상을 내리고 악한 자에게 벌을 주어 항상 인간 고루 보살피며 국토를 수호 하겠다는 서원을 세웠다고 한다. 얼굴은 푸른빛을 띠고 있으며, 왼손에는 칼을 쥐었고 오른손은 허리를 잡고 있거나 또는 보석을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있는 형상을 취하고 있 그는 휘하에 팔부신중 하나로서 술과 고기를 먹지 않고 향기만 맡는 음악의 신 건달바(乾達婆)를 거느리고 있다."
갑자기 튀어나온 16선신(善神)은 무엇인지 모르겠다. 황금타(黃金埵) ,팔부신중의 단어는 일반인들이 이해하기 어려우니 설명이 필요하다. 탐방객의 수준을 배려하지 않은 무성의한 안내판이다.
"서쪽을 수호하는 광목천왕(廣目天王) 그의 몸은 여러 가지 색으로 장식되어 있고 입을 크게 벌린 형상을 함으로써 웅변으로 온갖 나쁜 이야기를 물리친다고 한다. 또 눈을 크게 부릅뜸으로써 그 위엄으로 나쁜 것들을 몰아낸다고 하여 악안·광목이라고 하는 것이다. 광목천왕의 근본 서원은 죄인에게 벌을 내려 매우 심한 고통을 느끼게 하는 가운데 도심(道心)을 일으키도록 하는 것이다. 그의 모습은 붉은 관을 쓰고 갑옷을 입었으며, 오른손은 팔꿈치를 세워 끝이 셋으로 갈라진 삼차극(三又戟)을 들고 있고, 왼손에는 보탐을 받들어 쥐 있다. 그의 권속으로는 용(龍)과 비사사(毘舍閣)등이 있다."
서쪽을 수호하는 광목천왕의 설명은 더욱 심각하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는 분명히 ‘갑옷’과 ‘보탑’이라고 나타나고 있음에도 안내판에는 '보탑'을 '보탐'이라고 쓰고,'갑옷'을 '갑온'이라고 잘못 쓰고 있다. 악안, 광목이라는 단어는 한문도 곁들이지 않았다. 삼차극(三又戟), 비사사(毘舍閣)는 한문과 같이 나오지만 삼차극은 한문이 어렵고 비사사는 음사한 단어라서 한문을 보여져도 그 뜻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북쪽을 수호하는 다문천왕(多聞天王) 그는 항상 부처님의 도량을 지키면서 부처님의 설법을 듣는다 하여 다문이라고 한다. 그가 맡은 역할은 암흑계의 사물을 관리하는 것인데 한때 불법에 귀의하여 광명신(光明神)이 되었으나, 본래 자신의 원을 지킨다 하여 금비라신(金毘羅神)이라고 칭하기도 한다. 다문천왕은 왼손에 늘 비파를 들고 있다. 그는 수미산의 북쪽 수정타(水精埵)에 살며, 그의 권속으로 야차와 나찰을 거느리고 있다."
북쪽을 수호하는 다문천왕의 설명도 어렵다. '암흑계의 사물을 관리하는 것'이 무엇을 하는 것인지, 광명신(光明神), 금비라신(金毘羅神),수정타(水精埵), 야차, 나찰등의 설명이 없어서 사람들을 갸우뚱하게 만들고 있다.이 안내문을 만든 사람은 이 뜻을 알고 썼는지 모르겠다.
"남방을 수호하는 증장천왕(增長天王) 그는 자신의 위덕을 증가하여 만물이 태어날 수 있는 덕을 베풀겠다는 서원을 세웠다고 한다. 구반다 등 무수한 귀신을 거느린 증장천왕은 온몸이 적육색이며 노한 눈 을 특징으로 삼고 있다. 그의 모습은 대게 갑온으로 무장하고 오른손은 용을 잡아 가슴 바로 아래에 대고 있고 왼손에는 용의 여의주를 쥐고 있는 경우가 많다."
남쪽을 수호하는 증장천왕의 설명에서 '만물이 태어날 수 있는 덕을 베풀겠다'는 것이 무엇인지 설명이 없고 위덕, 구반다, 적육색등의 단어에 대한 설명도 없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는 '증장천왕은 수미산 남쪽의 유리타(瑠璃埵)에 살고 있다'고 설명하지만 어쩐일인지 이 문장만은 옮겨오지 않았다. 어느 부분은 인용하고 어느 부분은 빼는 기준은 무엇일까?
백번양보해서 어려운 단어를 설명하지 않고 어려운 안내판을 만들 수 있다고 치자. 그런데 '보탑'을 '보탐', '갑옷'을 '갑온'이라고 잘못 쓴 안내판을 걸어둔 것은 이해하기 힘들다. 안내판을 설치할 때 주지스님등 마곡사스님들이 한 번도 감수하지 않았다는 말인가? 오자가 발견되는 안내판, 어려운 단어가 빽빽한 안내판은 제 6교구 본사의 위상에도 걸맞지 않고,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지정된 사찰에도 걸맞지 않다. 마곡사를 방문하는 탐방객이 단순히 돈을 내고 들어오는 관람객이 아니라 그들에게 불법을 전해야만 하는 예비불자들이라고 생각했다면 이러한 안내판을 만들 수 있었을까? 출가자가 급격히 감소하고 불자들이 감소하는 현 상황을 절실하게 인식하고 있다면, 부처님의 가르침이 세상사람들에게 이익과 행복을 준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면 어떻게 저런 안내판을 설치할 수 있는가?
최근 포교원도 각 계층 포교 최일선에서 활동하는 사부대중 500여명이 모여 “부처님 법 전합시다”라는 행사를 열었다. 그 전에는 전 총무원장 자승스님도 '성불합시다'라는 인사 대신에 '전법합시다'라고 인사하자고 말했다. 얼굴이 화끈 거리더라도 지나가는 사람에게 '전법하자'고 말했다.그런데 그렇게 말한다고 해서 그들이 불자가 되는가? 그런 행사를 연다고 부처님 법이 전해지는가? 그것보다는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의 잘못된 점을 전수조사하여 바로잡는 작업을 종단이 해야 한다. 나아가 초기경전 한글 번역본 판권을 사서 인터넷에 올리고, 청소년도 이해하는 불교성전을 제대로 만들어야한다.
불교는 믿음의 종교가 아니기에 '불교 믿으세요', '부처님 믿으세요'라고 말할 수 없다. 불교는 이해의 종교이기에 '이것이 부처님 가르침입니다'. '부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라고 설명해야 하는 종교이다. 불교를 이해시키는 첫 걸음은 사찰의 안내판을 잘 만들어 방문객들에게 불교를 알려주고 불법과 인연을 심어주는 것이다. 사찰 안내판을 이렇게 무성의하게 만들어 놓고 어떻게 '성불합시다'라는 인사 대신에 '전법합시다'라고 인사하자는 말을 할 수 있나? 정감있고 자세한 안내판은 백명의 포교사 보다도 훨씬 많은 일을 한다. 우리 조계종은 ‘사찰 안내판 공모전’이라도 개최하여 멋진 안내판을 만드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이제라도 마곡사 스님들과 총무원 스님들의 각성을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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