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장에 만장일치의 원칙이 없다
여럿이 모여사는 공동체는 서로 설득하고 타협하고 양보하며 살아야 한다. 사안에 따라서 어떤 문제는 쉽게 만장일치로 결정되기도 하고 어떤 문제는 다수결로 처리할 수 밖에 없기도 하다. 예를들어 백장선원에서는 마지막 법담탁마 시간에 청규를 수정하는 시간이있다. 그때 단어를 수정하거나 새로운 문장을 첨가할 때는 대부분 쉽게 만장일치로 합의가 이루어진다. 대중들이 원하는 사항 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방부갈마를 할 때는 다르다. 방부신청자가 10명인데 3명만이 방부가 가능한 상황이면 10명에 대하여 투표를 해서 표를 많이 받은 순서대로 3명이 입방하게 된다. 이렇게 다수결로 방부를 결정하는 것에 대하여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승가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문제는 다음과 같이 크게 4가지(四爭事)로 정리된다. 첫째, 분쟁으로 인한 대중공사(論爭事) 둘째, 고발로 인한 대중공사(非難事) 셋째, 범죄로 인한 대중공사(罪爭事) 넷째, 절차로 인한 대중공사(行爭事)이다. 이것을 지금의 대한불교조계종과 비교해보면, 분쟁으로 인한 대중공사(論爭事)는 수시로 종헌종법을 만드는 중앙종회와 유사시에 열리는 승려대회에 해당하고, 고발로 인한 대중공사(非難事)와 범죄로 인한 대중공사(罪爭事)는 승려를 조사하여 기소하는 호법부와 승려의 죄를 판결하는 호계원이 하는 일에 해당하고, 절차로 인한 대중공사(行爭事)는 총무원, 교육원,포교원이 하는 일에 해당한다.
이러한 대중공사는 '여법'과 '화합'이라는 조건을 충족시켜야 한다. 여법(如法)이란 대중공사의 절차적 정당성을 말한다. 그 여법(如法)한 절차란 한번 고지(告知)하는 단백갈마와, 한번 고지(告知)하고 한번 의견을 묻는 백이갈마(白二磨), 한번 고지(告知)하고 세 번 의견을 묻는 백사갈마(白四磨)를 상황에 따라 알맞게 적용하는 것이다. '화합'은 싸우지 않고 사이좋게 잘 지내는 것을 의미하는게 아니라 대중공사에 전원참석한 것을 말한다. 승려들이 '여법'과 '화합'을 제대로 이해하고 못하고있다. 포살갈마를 예를들어 여법과 화합을 설명해보자.포살에는 다음과 같은 4종류의 포살이있다.
①원칙(절차)을 따르지 않는(adhammena,非法) 불완전한 모임(vagga,非和合)의 포살
②원칙을 따르지 않는(adhammena,非法) 완전한 모임(samagga,和合)의 포살
③원칙을 따르는(dhammena,如法) 불완전한 모임(vagga,非和合)의 포살
④원칙을 따르는(dhammena,如法) 완전한 모임(samagga,和合)의 포살
부처님은 ④번처럼 원칙을 따르고(dhammena,如法) 완전한 모임(samagga,和合)의 포살만을 인정하시고 나머지는 포살의 효력이 없다고 설명하셨다. 율장에서 사용하는 담마(dhama)와 사막가(samaggaṃ)는 특별한 의미가 있다. 한문번역은 담마(dhama)를 ‘여법(如法)’이라고, 사막가(samaggaṃ)를 '화합(和合)'이라고했다. ‘여법(如法)’은 절차의 정당성을 말하고 '화합(和合)'은 전원참석을 뜻한다. 포살을 할적에 전원참석(samagga)하여 법사가 대중에게 청정하느냐고 묻고 대중은 침묵으로 자신의 의견을 표현한다. 비구위방가(전재성역 997p)에서 화합승가(samaggo saṅgho)는 같은 거주처( samānasaṃvāsako)와 같은 결계(samānasīma) 안에서 사는 것을 뜻한다. 이렇게 같은 결계에 사는 수행자 전원참석하고, 전원에게 질문하여 침묵으로 동의하는 모습을 보고 승가의 대중공사는 만장일치로 결정되어야 한다고 오해하기도 한다. 지금도 대부분 스님들은 승가의 대중공사는 만장일치로 처리하는 것이 전통으로 알고 있다. 2016년 7월 20일에 신문에 기고한 ‘직선제, 과연 율장의 이념에 부합하는가?’라는 기고문에서 동국대 이자랑교수는다음과 같이 말한다.
“율장에 의하면, 승가의 지도자는 갈마(羯磨)라 불리는 승가 고유의 회의를 통해 결정해야 한다. 지도자 선출만이 아니다. 아주 사소한 일부터 분쟁 조정과 같은 중대사에 이르기까지 승가의 모든 사안은 반드시 갈마를 거쳐야 한다. 갈마에서 가장 대표적인 것은 ‘전원 출석’과 ‘만장일치’이다. 현전승가의 구성원이 모두 한 자리에 모여 전원 동의로 결론을 내야 한다. 이 두 가지 원칙은 승려들의 분쟁을 다루는 쟁사갈마든 일반적인 사안을 다루는 비쟁사갈마든 구별 없이 적용된다.”
“전원출석과 만장일치라는 갈마의 원칙에는 이처럼 화합과 여법이라는 승가 운영의 기본 이념이 담겨 있다. 다수의 의견에 절대적 가치를 두는 직선제는 여법이라는 기준과도, 화합이라는 가치와도 거리가 멀다. 민주주의와 갈마는 서로 지향하는 바가 다르다. 민주주의는 평등에 가치를 두지만, 갈마는 여법과 화합에 가치를 둔다. 불교 역시 평등을 중시하기는 하지만, 그것은 승가의 일원이 된 이상, 출가 전의 계급 여하나 성별 등과 무관하게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 수행할 수 있고 또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는 의미에서의 평등이지, 누구의 의견이든 다 N분의 1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의미에서의 평등은 아니다.”
2016년 종단에서 총무원장 직선제가 화두가 되어있을 때 이자랑은 위와같은 글을 기고하여 승려 82%가 지지하는 직선제를 좌절시켰다. 율장을 공부하지 않은 사람들은 이런 학자의 주장을 율장의 가르침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부처님은 만장일치로서 대중공사를 결정하라고 말하지 않았다. 율장에 만장일치라는 단어조차 없다. 만장일치라고 오해되는 사막가(samaggaṃ)라는 단어는 '전원참석'이라는 뜻이고 ‘화합’이라고 번역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부처님은 "이 문제는 반드시 만장일치로 처리하라"고 말한 적이 없다. 부처님은 '만장일치'를 주장하지 않았다. 전원참석(samagga,和合)과 절차의 정당성(dhammena,如法)만을 중요시했다. 대중공사의 다수결은 직선제와 완전히 같은 것이다. 승가의 대중공사는 만장일치나 다수결 같은 의사결정의 방식보다 전원참석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전원참석을 강조하고, 그것을 화합이라고 말하는 것에서 우리는 승가안에서 승려들은 절대 평등한 존재임을 알 수 있다. 특정 승려가 지위가 높다거나 나이가 많다고 해서 특별한 대접을 하지 말라는 것이 전원참석을 화합이라고 말하는 의미다. 승려는 존재 그 자체로 평등하게 존중 받아야 한다.
사마가마 경(M104)에 의하면 승가에서 법과 율에 대하여 이견이 생겨서 승가가 분열하게 되었을 때 다음과 같은 방법으로 대중공사를 해야 한다고 설명한다.
"아난다여, 여기 비구들이 '이것이 법이고(dhammo), 이것은 법이 아니다(adhammo). 이것은 율이고(vinayo) 이것은 율이 아니다(avinayo).'라고 분쟁을 일으킨다. 아난다여, 그 비구들은 모두 화합하여(samaggehi) 모여야 한다. 함께 모여서 법도(dhammanetti)를 만들어야 한다. 법도를 만들고 나서 그에 따라서 공사를 가라앉혀야 한다. 아난다여, 이렇게 직접 대면하여 수습해야 한다. 이와 같이 직접 대면하여 수습함으로써 여기 어떤 대중공사들은 가라앉게 된다. 아난다여, 만일 그 비구들이 그 대중공사를 그 처소에서 가라앉히지 못하면 그 비구들은 많은 비구들이 머무는 그런 처소로 가야 한다. 거기서 모두를 화합하여 모여야 한다. 함께 모여서 법도를 만들어야 한다. 법도를 만들고 나서 그에 따라서 공사를 가라앉혀야 한다. 아난다여, 이렇게 다수결에 따른다. 이와 같이 다수결에 따라 여기 어떤 대중공사들은 가라앉게 된다."
여기서 '화합하여(samaggehi) 모여야 한다'는 뜻은 '전원참석 하여야 한다'는 의미다. 주의 깊게 보아야 할 것은 법과 율에 대한 이견으로 승가 분열이 예상되는 때도 부처님은 '다수결'로 결정해야 한다고 말한다는 점이다. 부처님은 승단이 쪼개질지도 모르는 중대한 상황에서도 만장일치를 말하지 않는다. 나는 다수결의 결정방법이 승가의 원칙이었기에 이천칠백년간 승가가가 유지되어왔다고본다. 현재 조계종의 종헌종법도 율장의 다수결 원칙을 따르고 있다. 원로회의에서 종정을 추대할 때도 “재적 과반수의 찬성으로 종정을 추대한다”라고 되어있고, 호계원회의에서도 “재적 과반수의 출석과 출석 위원 과반수의 찬성으로 의결한다”라고 되어있다. 비구니회도 이미 다수결로 결정되는 직선제로 회장을 선출하고 있고, 본사주지 선거, 중앙종회의원 선거도 직선제로 하고 있다. 총무원장 후보가 2인 이상이면 만장일치는 불가능하다. 이 때는 자연스럽게 다수결로 선출해야한다. 요즘은 스마트폰으로 전자투표를 할 수도 있고 포살하는 날 본사별로 본사별로 투표를 하면 몇 시간안에 투표를 끝낼 수 있다. 소임자를 선출하는 총무원장 선거는 절차로 인한 대중공사(行爭事)에 해당하기 때문에 누가 당선되어도 승가가 분열되지 않는다. 상황이 이러함에도 이자랑은 조계종 총무원장 선거는 만장일치로 선출해야 한다는 해괴한 주장을 하고있는 것이다.
절차의 정당성이 여법(如法)이고 전원참석이 화합(和合)이다. 여법의 내용으로 알려진 칠멸쟁법(七滅諍法)에서도 부처님은 만장일치를 말하지 않는다. 다수결로 문제를 해결하라고 하였다. 만장일치가 된다면 좋은 일이나 만장일치가 공동체의 원칙이 되어서는 안된다. 만장일치가 승가의 절대적인 원칙인 것처럼 말하는 것은 자신의 무지를 드러내는 것이며 승가를 분란으로 몰아가는 짓이다. 만약 부처님이 만장일치로 결정해야 한다고 말했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부처님의 승가는 2700년동안 전승되지 못했을 것이다. 불교역사에 나타났던 제1차 결집, 제2차 결집,제3차 결집등도 성공적으로 이루어지지 못했을 것이다. 지금의 종헌종법이 탄생하는 계기가 되었던 1994년 승려대회도 인정하기 어렵게 될 것이다. 이자랑은 승려 82%가 지지하는 직선제의 희망을 무너뜨리고 반드시 만장일치로 지도자를 선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한 주장은 승가의 화합을 파괴하는 중대한 범죄이다.지금이라도 자신의 무지를 되돌아보고 죄를 참회하는게 좋을 것이다.()
[참고자료]
http://www.beopbo.com/news/articleView.html?idxno=93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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