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디샤(Vidisha)의 불교
아소까가 웃자인(Ujjain)의 총독으로 왔을 때 시찰을 나갔다가 200km 떨어진 비디샤(Vidisha)의 쩨띠야기리 에서 아름다운 처녀를 만나게된다. 그녀는 비데샤에사는 상인의 딸인 비디샤데위(Vidisha Devi)이다. 아소까는 데위와 결혼하고 둘 사이에 마힌다(Mahinda)라는 아들과 상가미따(Sanghamita)라는 딸을 낳게된다. 나중에 이들은 출가하였는데 전법을 위하여 스리랑카로 파견되었다. 아소까의 아버지 빈두사라왕이 죽음에 임박하자 아소까는 빠딸리뿟따로 달려가 왕위를 계승하지만 왕비의 자리에 올라야하는 데위는 끝까지 비디샤에 남았다. 아소까는 형제들사이에 권력 다툼을 하느라 왕이 된지 4년후에야 즉위식을 하였는데 즉위식 후에 아산디미따(Asandhimita)라는 귀족의 딸과 결혼하였다. 깔링가 전쟁후에 아소까는 독실한 불자가 되었다. 성지순례를 하며 팔만사천 수투파와 석주를 세웠고 바위에 칙령도 새겼다. 오늘날 바위 칙령이 발견되는 지역을 연결하여보니 마우리야 왕조가 얼마나 번성했는가를 알 수 있다. 마힌다는 스리랑카로 출발하기 전에 비디샤(Vidisa)의 체띠야기리(산치대탑이 있는 곳)에 있는 어머니를 방문하여 그곳의 사찰에(vihara)머물렀다. 이곳이 아소까의 첫 번째 아내와 아들과 딸의 유년시절 추억이 깃든 곳이기에 아소까는 이곳에 수투파를 세우고 석주를 세우게 된다. 산치탑을 특별히 산치 대탑이라고 부르는 것은 산치탑이 어느 탑보다도 크고 보존이 잘 되어 있가 때문이다. 산치 스투파(Sanchi Stupa)는 사르나트의 아소까 석주 상부에 있던 사 사자상과 함께 인도 지폐(200루피)에 들어가 있는 중요문화재이다. 최초로 건립될 당시에는 벽돌로 이루어진 오늘날의 절반 정도의 크기였는데 숭가왕조와 굽타왕조때 확장되어 오늘날의 돌로된 탑이되었다.
그런데 산치 대탑 주위에는 많은 수투파들이 존재한다. 산치 대탑에서 남쪽으로 10km 지점에 삿다라 탑(Satdhara stupa), 손나리 탑(Sonari stupa)이 있고 동쪽으로 11km 지점에 보즈뿌르 탑(Bhojpur stupa)이 있으며 18km 떨어진 곳에 안데르 탑(Andher stupa)이 있다. 삿다라 탑은 바로 옆에 하라리(Halari)이 흐르는 언덕에 자리잡고 있어서 수행자들이 살기에 좋았을 것이다. 산치대탑을 중심으로 주위에 이렇게 탑과 승원이 많이 발견되는 것은 이 곳이 불교의 중심지였음을 말하고 있다. 특히 산치탑2번 과 삿다라 탑(Satdhara stupa)에서는 사리뿟따와 목갈라나 존자의 사리가 나왔다. 이 사리들은 영국의 박불관에 모셔져있다가 인도측의 요구에 의해서 인도로 반화되었고 여러나라를 돌며 전시되다가 지금은 세곳으로 나뉘어져 모셔지고 있다. 하나는 미얀마의 카바 아예 파고다(Kaba Aye Pagoda), 하나는 스리랑카 콜롬보의 마하보디 협회, 하나는 유물 중 일부가 안치되어 있는 콜롬보의 마하보디 협회. 인도에서 할당받은 사리는 산치대탑근처에 세워진 체티야기리 사찰(Chethiyagiri Vihara)에 모셔져있다. 그런데 체티야기리 사찰(Chethiyagiri Vihara)은 스리랑카 마하보시협회에서 세운 사찰이고 지금도 스리랑카스님들에 의해서 운영되고있다. 불교가 사라진 인도에서 부처님 사리를 가져왔어도 다시 스리랑카스님들에게 맡길수 밖에 없는 상황을 보여주고있다.
산치대탑의 담장과 복도는 바르후뜨(Bharhut)의 스타일과 매우 유사하며 보드가야의 대탑 담장과도 유사하다. 그당시 난간에 대한 형식이 통일되었음을 보여준다. 아소까 석주와 수투파 난간등 유적에서 브라흐미문자가 많이 발견되었다. 아소까 석주는 사르나트 녹야원의 석주처럼 네마리의 사자가 상부에 설치되었고 그 사자상은 현재 박물관에 전시되고 있다. 석주에 쓰여진 내용은 "승가 를 분열시키는 비구나 비구니는 흰 옷을 입혀서 승가에서 쪽겨내야한다"는 것이다. 사르나트와 꼬삼비에서도 이와같은 승가의 분열을 염려하는 내용이 발견되었다. 이러한 내용이 네 마리의 사자와 연관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대탑의 담장을 구성하는 돌조각에도 많은 많은 브라흐미글자가 발견되었다. 주로 보시자의 이름을 열거한 것인데 재가신자의 이름은 물론 비구 비구니의 이름도 다수 등장한다. 예나 지금이나 무주상보시는 어려운 일이었나보다. 역설적이게도 그렇게 이름을 남기려고 돌에 이름을 새겨 넣은 것이 오늘날 중요한 유물이 되었으니 유주상보시의 공덕도 대단하다고 볼 수있다. 부조에 나타나는 다양하고 무질서한 부조의 그림들과 다양한 기증자의 이름들은 산치대탑이 왕의 시주에 의해서 일사불란하게 지어진 것이 아니라 다양한 지역에서 온 기증자들이 각자가 선호하는 장면을 그리고 조각했음을 보여준다. 이것은 수투파에 특정 에피소드가 무작위로 반복되는 이유일 것이다.
부조의 그림들은 부처님이 상징으로 나타나는등 매우 단순하게 처리되고 있는데 이를테면 부처님이 우루웰라까사빠를 찾아가서 여러가지 시험을 당할때 부처님이 물위를 걷는 장면은 간단하게 길다란 경행대로 표현되었다. 이 장면은 부처님이 석가족을 찾아가 그들의 아만을 꺽어주기 위해 쌍신변의 기적을 보이는 장면에도 나타난다. 이 장면은 아버지 정반왕과 석가족들 앞에서 허공을 걷는 장면이다. 라마가마의 사리를 꺼내려다가 실패하는 아소까, 마라에게 시험당하는 부처님, 꾸시나가라에서 일어난 사리쟁탈전, 아내가 보리수를 죽이자 슬퍼하는 아소까, 자신의 목숨을 바쳐 다른 원숭이를 피난시키는 원숭이 왕이야기,사왓띠에서 외도를 굴복시키기 위해 부처님이 망고나무위에 천명의 부처님을 출현시킨 천불화현의 기적, 기원정사 짓는 이야기,빔비사라왕이 대나무숲으로 부처님을 마중오는 장면, 원숭이가 꿀을 봉헌하는 이야기, 도리천에서 하강하시는 부처님등....
대탑 남쪽 문에는 기원전 1세기경의 브라흐미 비문중에는 글자도 보이는데 이것은 사따까르니(Satakarni)라는 왕의 이름에서 시대를 파악할수 있다. 남문에는 웨디사(Vedisa)의 상아 조각가들이 만들었다는 브라흐미문자 기록이 있어 누가 만든 것인지 확인할 수 있다. 브라흐미 문자를 톤해서 예전에 비디샤의 이름이 웨디사(Vedisa)라는 것을 알 수있다. 또한 부조에는 부처님의 삶과 전생이야기, 빔비사라왕, 빠세나디왕, 아소까왕이 시대를 초월하여 나타나고 있는데 부처님 만은 발자국,법륜,보리수,사리탑등으로 상징되어 나타나고 있다.
비디샤에서 서쪽으로 6km떨어진 곳에는 힌두교 유적인 우다야 기리가 있다. 인도정부는 우다야기리를 힌두교 유적과 자이나교 유적으로 설명하고 있지만 우다야기리 언덕 정상에는 아소까 석주 몸통과 마우리야 스타일의 사자상, 불상의 광배 조각등이 남아있다. 이 것을 보면 우다야기리는 예전에 불교 수투파와 승원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비디샤 시내 한가운데에는 로항기 언덕(산)이 있다. 이곳 정상에도 아소까 석주의 상부가 남아있다. 아소까 석주 옆에는 커다란 우물도 있다. 지금은 힌두교 사원이 이지만 이곳도 예전에 불교승원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아소까 석주를 평지에 설치하는 것도 힘든 일인데 이렇게 우다야기리와 로항기기리 산 꼭대기에 석주를 만들었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다. 비디샤에서 가까운 곳인 산치, 우다야기리, 로항기기리에서 아소까 석주가 발견된 것은 룸비니와 까삘라왓투 주변 에서 여러개의 석주가 발견된 것과 같이 특별한 일이다.이러한 불교성지를 인도정부에서 소개하지 않고 있으니 안타깝다.
수투파 2에는 브라흐미 문자와는 다른 카로스티(Kharoshthi)문자로 석공의 이름이 새겨져있는데 이는 북서쪽 간다라 지역 출신의 외국인 노동자들이 난간 제작에 함께 했다는 것을 암시한다. 특히 기원전 150년경에 건립된 헬리오도루스 석주(Heliodorus Pillar)에도 기원전 1세기경의 브라흐미글자가 새겨져있다. 그리스의 대사인 헬리오도루스가 석주를 세우고 있는것으로 보아 그당시 나라간의 상업교류가 번성했음을 알수 있다. 비디샤에서 북쪽으로 6km지점은 예전의 웨디사라고 추정되는 곳인데 이곳에서 수투파에 담장으로 사용되었을 난간과 생명의 나무라고 불리는 돌 조각상이 발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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