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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성지순례기

새로운 불교가 시작 되는 인도의 낙뿌르(Nagpur)

 

 

새로운 인도 불교가 시작 된 낙뿌르

 

네팔 룸비니의 한국사찰 대성석가사에서 머무르고 있을 때 인도인 불자들이 성지순례를 왔다. 한번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찾아왔는데 그때마다 나는 그들에게 다가가서 어니서 왔느냐고 물었다. 그들은 마하라슈뜨라(Maharashtra) 주의 낙뿌르(Nagpur)에서 왔다고 말했다. 낙뿌르에 얼마나 많은 불자들이 있길래 성지순례오는 불자들이 모두 낙뿌르 사람들인가? 라는 생각을 했다. 그들은 성지순례 다니며 사먹는 밥 값을 아끼려고 밥솥과 가스등을 가지고 다니며 밥을 해먹었다. 이 낙뿌르 불자들은 19561014암베드까르 박사와 함께 힌두교에서 불교로 개종한 오십만 명의 불자들과 그 후손들이다. 성지순례를 온 불자들의 전언에 따르면 낙뿌르에는 절도 많고 스님들도 많다고 한다. 그 들은 서로서로 인사할 때 자이 빔(빔라오 암베드까르는 승리하였다)’이라는 인사를 하였다. 그 때 나는 언젠가는 낙뿌르에 가서 불자들을 만나 보겠다는 생각을 하였가. 이번 순례에서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 꼴까따(Kolkata)로 입국하는 비행기표를 구했다. 인디언 박물관을 관람하고 부바네스와르에 와서 우다야기리,라뜨나기리, 랄리따기리를 순례하였다. 그리고 아소까 바위칙령이 있는 다울리 언덕에 올라서 아소까왕의 마지막 전쟁이었던 깔링가전투가 벌어진 다와강을 바라보며 그 당시 참혹한 전쟁을 상상하였다. 부바네스와르에서 기차로 13시간 걸려서 낙뿌르에 도착하였다. 낙뿌르는 500명만명의 인구가 살고 있는 활기찬 도시였다. 낙뿌르에서 숙소를 잡고 가장 유명한 딕샤부미(Dikshabhumi)에 갔다. 딕샤부미는 불교에 입문한(Diksha) 장소(bhumi)라는 뜻으로 산치대탑처럼 거대한 반구형으로 만들어졌다. 동서남북으로 들어갈 수 있는 문이 있는데 안으로 들어가면 부처님의 사리가 모셔져있다. 매년 1014일이 되면 수 만명이 모여서 기념식을 한다. 대탑 앞에는 개종하기전에 암베드까르가 서약한 22가지의 서약이 힌디어와 영어로 새겨져있다.

 

나는 브라흐마, 비슈누, 마하데바의 신을 인정하지 않고 예배하지 않는다.

나는 라마신, 크리슈나의 신을 인정하지 않고 예배하지 않는다.

나는 가우리, 가나파티, 그 외 힌두교의 여러 남신, 여신을 인정하지 않고 예배하지 않는다.

'신은 어떤 화신으로 나타난다'라는 힌두 전통을 믿지 않는다.

'붓다가 비슈누의 화신'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이 전승은 오류이다.

나는 조상에 대한 제사를 행하지 않는다.

나는 불교에 반하는 어떠한 말과 행위도 하지 않는다.

나는 어떤 의식도 브라만의 손을 빌리지 않는다.

나는 모든 인간, 전 인류는 평등하다는 주장을 인정한다.

나는 차별을 거부하고, 평등 사회를 이룩하기 위하여 노력한다.

나는 8정도를 준수한다.

나는 10파라미타를 준수한다.

나는 일체 중생에 대한 연민의 마음으로 불살생을 준수한다.

나는 도둑질을 하지 않는다.

나는 헛된 말을 하지 않는다.

나는 음란한 행동을 범하지 않는다.

나는 술을 마시지 않는다.

나는 불교의 지혜, 지계, 삼매에 따라 생활하고자 노력한다.

나는 인간을 불평등하게 취급하는 힌두교를 버리고 불교를 받아들인다.

불교는 참된 종교라는 것이 나의 신념이다.

어제까지의 나를 버리고 나는 이제 다시 태어났음을 인정한다.

나는 부처의 가르침을 따르고 지키고, 행동한다는 것을 신성하게 맹세한다.”

암베드까르는 이 22가지 서약을 외치고 그는 "나와 함께 불교로 귀의할 사람은 일어서시오"라고 말하자 그 곳에 모인 평민, 불가촉천민 사람들이 모두 일어나서 암베드카르의 서약을 반복하였다. 그리고 나서 미얀마에서 모셔온 스님으로부터 삼귀의와 오계를 받음으로서 불자가 되었다. 인도인들은 암베드까르를 '바바사헤브(아버지와 같은 스승)'이라고 부르며 존경하고 있다. 그대 개종한 불자들중에서는 인권운동가, 대통령, 하원의장, 대학총장등 사회 지도자들이 등장하였고 불자들이 정당을 만들어 불자정당도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지금 낙뿌르의 주지사도 불자라고한다.

 

인도를 여행하다보면 인도인들은 내 승복을 보고도 종교가 무엇이냐고 묻는다. 가사가 아닌 회색 승복을 그들은 알아보지 못하는 것이다. 나는 Buddhist라고 대답하면 곧 불교와 힌두교는 같은 것이라고 대답한다. 같지 않다고 말하면 부처님의 부모도 힌두 가정에서 태어났고 싯다르타 부처님도 힌두 가정에서 자랐다고 말한다. 그런데 인도의 불자들에게 불교와 힌두교가 같은 것이냐고 물으면 절대 그렇치 않다고 대답한다. 그것은 그들이 개종식 때 붓다가 비슈누의 화신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이 전승은 오류이다.”라는 것을 암송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암베드까르는 나는 흰두교인으로 태어났지만 힌두교인으로 죽지 않는다고 말했다. 딕샤부미를 찾는 인도 여성들 중에는 힌옷을 입고 오는 이들이 있다. 이 힌옷은 불자들이 자신이 우바시까 임을 나타내는 의복인데 힌옷의 사리에 세로로 청색의 띠를 두른 것처럼 색을 넣어 스리랑카 우바시까들과 구분이 되고 있다.

 

 

낙뿌르에서 가장 먼저 언급하고 싶은 사찰은 나로까 센터(Nagaloka Centre)이다. 이름에서 엿보이듯이 나로까 센터는 부처님과 암베드카르 박사의 가르침을 통해 다른 사람들이 힘을 얻도록 가르치는 나가르주나 훈련원(Nagarjuna Training Institute)을 운영하고 있다. 최소 연령 18세이상이면 지원할 수 있는데 8개월간의 훈련을 받으며 숙식(宿食)에 드는 모든 비용은 무료이다. 현재 150명의 기숙 학생이 공부하고 있지만 최대 300명으로 늘릴 계획이다. 불교가 역사가 17년이나 되는 우리나라에서도 하지 못하는 참신한 불사(佛事)이다. 나로까센타에는 대만의 유명 예술가가 조각한 36피트 높이의 불상이 모셔져있다. 입상이지만 한 자리에 서있는 불상이 아니라 걷는 불상이다.

 

 

 

낙뿌르에 용궁사(Dragon Palace)도 특이한 형태의 사찰이다. 이 사찰은 일본인 노리꼬 오가와(Noriko Ogava)보살님이 시주하여 지은 것으로 이 층으로 지어진 사찰앞에 분수가 있는등 낙뿌르 주민들에게는 훌륭한 놀이 공원 역활을 하고 있다. 제가 방문했을 때 초등학생들이 견학을 와서 잔디밭에서 수건 돌리기 놀이를 하고 있었다. 스님은 상주하지 않고 매일 일본식으로 예불을 하고 있다. 주위에는 산치 수투파 모형의 건물도 있는데 그곳에는 암베드까르의 동상이 모셔져있다.

 

 

붓다 부미 위하라(Buddha Bhumi vihara)에는 사미스님들이 20여명 머물고 있다. 쁘라갸조띠(Pragyajyoti) 스님은 방문객을 친절하게 맞이하며 누구든 사찰에 머물고 갈수 있다고 안내한다. 사미승들은 북인도의 아쌈,미조람등에서 온 분들이라 우리나라 사람과 닯은 얼굴이다. 그 쪽에서 온 사미들은 어릴적부터 불자가정에서 자라서 다른 곳에서 온 사미들보다 더 잘 적용한다고 한다. 법당에서 참배를 하고나자 마당에서 신나게 크리켓을 하던 사미승이 다가와서 주지실로 안내한다. 주지스님은 반갑게 맞이하며 차와 과일을 내어 주셨다. 당신도 매년 인도 성지순례를 하는데 룸비니에 가게되면 한국사찰 대성석가사에서 머물게 된다고 말하며 얼마든지 쉬었다 가라고 말한다. 사찰의 마당은 정원처럼 잘 가꾸어져 있고 커다란 좌불상이 도로 쪽을 바라보고 있어서 누구든지 사찰이 있음을 알게된다. 앞으로 이곳에서 인도불교를 이끌어 갈 수 있는 신심있는 스님들이 많이 나올 수 있을 것 같다.

 

 

사리뿟따 붓다 위하라(Sariputta Buddha Vihara)는 나뿌르 남쪽에 있는 이 층의 사찰이다. 인도인이지만 미얀마에서 오랫동안 수행한 난다 말라(nanda malla)이 머물고 있다. 인터넷에서 떠도는 부처님 생애 100장면을 통해서 불교를 가르치고 있고 12연기와 위빠사나를 체계적으로 지도하고 있다. 암베드까르 불교가 가진 부분을 비판하기도 하였는데 그만큼 종교가 정치적이기 보다는 수행의 모습으로 돌아와야 한다고 말한다. 당신과 같은 의견을 가진 인도 스님들이 없어서 홀로 지낸다고 말하면서 인도불자들의 교육을 강조했다. 이 분은 내용적으로는 테라와다 구참스님으로 보일 정도로 정통교학과 수행을 강조한다. 이 사찰에서 만난 불자 부부의 초청을 받아 공양을 받기도했다.

 

깔빠따루 붓다 위하라(Kalpataru Buddha Vihar)는 인도인 스님들이 십여명 머물고 있다. 삐야다시 보디(Piyadasi Bodhi)dl 주지로 있다. 활발한 성격의 삐야다시 스님이 사찰안내를 하는데 자기방에서 나와서 인사를 하는 인도 스님들의 표정이 정겹다. 스님들이 거의 영어를 할 줄 모르기에 눈 인사만을 하고 사진을 찍었다. 법당은 꾸시나가라의 열반당의 모습인데 이층으로 지어져 있고 마당에는 딕샤부미에서 보았던 암베드까르 22개 서약이 돌에 새겨져있다. 불상은 태국에서 기증 받은 것이고 그밖에 미얀마, 스리랑카, 대만등에서 기증 받은 불상을 모시고 있다. 붓다 부미 위하라(Buddha Bhumi vihara) 쁘라갸조띠(Pragyajyoti)스님과는 같은 은사스님을 둔 사형제하고한다.

 

 

인도라 붓다 위하라(Idora Buddha Vihara)는 일본인 수라이 사사이(Surai Sasai)이 스님이 만든 사찰이다. 올해 89살인 사사이 스님은 인도에서 40여년동안 포교를 해왔기에 모르는 인도 불자들 사이에는 널리 알려진 스님이다. 인도라 사찰을 건립하기 전에 낙뿌르 북쪽 산속에 보디사뜨와 나가르준 마하위하라(Bodhisattva Nagarjun Mahavihar)를 세워서 생활하다가 이곳 시내로 내려와 포교를 하고 있다. 3층에 머무르는 스님은 의자에 앉아서 방문객을 맞았다. 빼짝 마른 얼굴에 조직의 보스같은 인상을 하고 인사를 받았다. 인도에서 산 연륜이 묻어나는 얼굴이다. 일본어와 힌디어를 할줄 알고 영어는 아직도 못하지만 제자를 부르는 목소리가 쩌렁쩌렁울린다.

 

 

수가뜨 나가르 가우땀 붓다 위하라(Sugat Nagar Gautam Buddha Vihara)는 불자들만으로 운영되는 사찰이다. 이 사찰은 암베드까르를 따르는 불자들로 넓은 마당에는 운동기구가 설치되어 있어 평소에는 마을 사람들의 운동장소로 사용되고 있다. 그 곳을 관리하고 있는 남자신도는 친절하게 사찰을 안내해주며 법회도 설명해준다. 스님이 없는 사찰이지만 어느곳보다 잘 운영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나뿌르에 거주하는 스님들께 불교현황을 물어보니 낙뿌르에 사찰은 400여개가 있고 스님들은 1000여명이 있으며 불자인구는 50~60%라고 대답하였다. 낙뿌르 북쪽지역에는 80%가 불자이고 남쪽 지역은 20%가 불자라고 한다. 내가 낙뿌르의 사찰들을 순례하고 싶다고 하자 스님들이 추천해준 사찰은 거의 비슷했다.위에 소개한 사찰 말고도 여러군데를 순례했는데 정말 열악한 수준의 환경을 하고 있는 사찰이 많았다. 평소에는 문을 걸어 잠구고 혼자서 생활하는 사찰도 있고, 사찰이라고 할 수 없고 일반 가정집 정도의 사찰도 여러 곳 있었다.특이한 것은 불자들은 집을 지을 때 법륜, 보리수,만자등으로 자신이 불자임을 드러내는 집을 짓는다는 사실이다. 낙뿌르에서는 그 만큼 불자가 많고 불자인 것이 이상하지 않은 환경이기에 그런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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