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에 사는 어느 스님께
어제 어느 스님과 전화통화에서 “승가를 잘 가꾸는 것이 개인 수행보다 더 중요하다”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올 해 제가 들은 말 중에서 가장 기쁜 말입니다. 승가는 공동체입니다. 공동체의 중요성을 말하는 것은 공심(公心)으로 살아간다는 말입니다. 공심으로 살아가는 자는 개인의 고통, 갈등을 쉽게 놓아 버립니다. 사심(私心)과 공심(公心)의 차이는 마치 어릴적에 땅 따먹기 놀이에서 많은 땅을 딴 기쁨과 어른이 되어서 실제로 수천평의 땅을 샀을 때의 기쁨을 비교할 수 있겠습니다.
스님 말씀처럼 승가공동체를 잘 가꾸어 놓으면 앞으로 생겨날 출가자는 물론 불자,비불자들에게도 엄청난 혜택을 주게 됩니다. 승가 안에서 합리적으로 대중의 뜻을 모으고, 평등하게 분배받고, 존재 자체로 존중받는 승가가 된다면, 그 속에서 생겨나는 여유와 행복감을 사찰을 찾는 이들에게 되돌려 줄 수 있습니다.부처님의 가르침을 이야기하는 기쁨, 가르침을 따라 수행하는 기쁨, 봉사하는 기쁨이 수행자들의 기쁨이 됩니다.
승려들이 출가자로서의 순수한 기쁨을 느끼지 못하고 노후 걱정 때문에 고민하고, 특정인에게 잘 보이려 하다가 우리 종단에 개인이 종단을 좌지우지하는 자승스님 같은 이가 나타났습니다. 지금 승가는 해야 할 말을 하지 못한다는 침울(沈鬱), 어차피 여기도 사람 사는 곳이다라는 순응(順應), 때때로 나는 비겁하다는 자책(自責), 나라도 살아야 한다는 욕망(慾望) 때문에 모두가 정신병을 앓고 있습니다. 사심(私心)은 조건에 따라 발생하고, 조건에 따라 소멸한다는 연기법에 위배됩니다. 나를 위한다고 사는 것이 나를 해(害)하는 일이됩니다.
수행자가 공심(公心)이 아닌 사심(私心)으로 살아가는 자신을 발견하면 나는 왜 출가했는가라는 근본적인 회의가 찾아옵니다. 승가라는 공유 공동체가 세속인들처럼 이익 공동체가 되면 평소에는 친하게 지내다가도 이익의 앞에서는 돌변합니다. 사심(私心)으로 화합(和合)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수행자 개인이 욕심이 많아서, 각자가 화합하기 싫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침팬지 사회에서 침팬지의 규칙을 따라 살 듯, 현 종단의 제도가 그렇게 만듭니다. 한마디로 장로(長老)나 신참(新參)이나 승가의 의미를 모르는 무지의 과보입니다.
“나이를 먹어서 그런지 요즈음에는 후배들에게 건강한 승가를 물려주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라는 생각이든다”라는 스님의 말씀에 저는 감동입니다. 승가를 건강하게 하는 일은 가능하기 때문에 하는게 아닙니다. 상구보리(上求菩提) 하화중생(下化衆生)을 위해서는 마땅히 해야만 하는 일입니다.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을 저는 진정한 보살(菩薩)이라고 부릅니다. 공심을 갖고 사는 사람이라면 정치인도 보살이요, 공무원도 보살이요, 예술가도 보살입니다, 이제 공동체의 중요성을 아셨으니 뚜벅뚜벅 걸어가는 일만 남았습니다.
공심으로 살아 개인의 번뇌가 줄어드니 이것이 수행이요, 건강한 승가 공동체가 주변 사회에 물심양면으로 영향을 끼치게 되니 애국(愛國)이요, 애민(愛民)입니다. 공심(公心)으로 사는 사람에게 왜 도반(道伴)과 친구가 없겠습니까? 말년에 친구가 많으니 이것이 그 사람의 노후복지(老後福祉)입니다. 공심(公心)에서 생겨나는 기쁨은 집착의 찌꺼기가 붙지 않는 참다운 기쁨입니다. 저는 공심(公心)은 공감(共感)이요, 연민(憐愍)이요, 자비(慈悲)와 지혜(知慧)의 다른 이름이라고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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