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2월 8일날에 이어 2월 15일에도 백장암독송집에 실려 있는 보시의 분석 경(M142)을 공부합니다. 지난번에 공부한 웰라마 경(A9:20)과 마찬가지로 보시에 대한 이해를 깊게 할 수 있는 경입니다. 개인에 보시 vs 승가에 보시를 공부하고 계행이 청정치 못한 스님들에게 승가의 이름으로 보시하면 그 과보가 한량없다는 점도 공부하고 어떻게 보시가 청정해지고 과보를 불러오는가도 공부합니다.
<백장암독송집> 이 필요하신분들은 백장암 종무소(063-636-3598)에 연락하셔요.
다같이 부처님께 예경하고 삼귀의를 하겠습니다.
나모 따사 바가와또 아라하또 삼마 삼붓다사(Namo tassa bhagavato arahato sammāsambuddhassa)
나모 따사 바가와또 아라하또 삼마 삼붓다사(Namo tassa bhagavato arahato sammāsambuddhassa)
나모 따사 바가와또 아라하또 삼마 삼붓다사(Namo tassa bhagavato arahato sammāsambuddhassa)
붓당 사라남 가차미 (Buddham Saranam Gacchami) 부처님께 귀의합니다. (3번)
담망 사라남 가차미 (Dhammam Saranam Gacchami) 가르침에 귀의합니다. (3번)
상강 사라남 가차미 (Sangham Saranam Gacchami) 승가에 귀의합니다. (3번)
보시의 분석 경(M142)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때 세존께서는 삭까에서 까삘리왓투의 니그로다 원림에 머무셨다.
2. 그때 마하빠자빠띠 고따미가 한 벌의 새 옷(dussayugaṁ)을 가지고 세존을 뵈러 갔다. 가서는 세존께 절을 올리고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아서 마하빠자빠띠 고따미는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이 한 벌의 새 옷은 세존을 위해 제가 손수 물레질하여 짠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제게 연민을 일으키시어 이것을 받아주십시오.
이렇게 말씀드리자 세존께서는 마하빠자빠띠 고따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고따미여, 승가에 보시하십시오. 승가에 보시하면 나에게도 공양하는 것이 되고 승가에도 공양하는 것이 될 것입니다.
두 번째로 마하빠자빠띠 고따미는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이 한 벌의 새 옷은 세존을 위해 제가 손수 물레질하여 짠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제게 연민을 일으키시어 이것을 받아주십시오.
이렇게 말씀드리자 세존께서는 두 번째에도 마하빠자빠띠 고따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고따미여, 승가에 보시하십시오. 승가에 보시하면 나에게도 공양하는 것이 되고 승가에도 공양하는 것이 될 것입니다.
세 번째로 마하빠자빠띠 고따미는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이 한 벌의 새 옷은 세존을 위해 손수 물레질하여 짠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제게 연민을 일으키시어 이것을 받아주십시오.
이렇게 말씀드리자 세존께서는 세 번째에도 마하빠자빠띠 고따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고따미여, 승가에 보시하십시오. 승가에 보시하면 나에게도 공양하는 것이 되고 승가에도 공양하는 것이 될 것입니다.
3. 이렇게 말씀하시자 아난다 존자는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마하빠자빠띠 고따미가 가져온 한 벌의 새 옷을 받아주십시오. 세존이시여, 마하빠자빠띠 고따미는 이모로서, 유모로서, 양모로서, 수유자로서 세존께 많은 도움을 주었습니다. 세존을 낳아주신 친어머니가 돌아가시자 자신의 젖을 먹였습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도 마하빠자빠띠 고따미에게 많은 도움을 주셨습니다.
세존이시여, 세존 덕에 마하빠자빠띠 고따미는 부처님께 귀의하고 법에 귀의하고 승가에 귀의했습니다.
세존이시여, 세존 덕에 마하빠자빠띠 고따미는 생명을 죽이는 것을 삼갔고 주지 않은 것을 가지는 것을 삼갔고 삿된 음행을 삼갔고 거짓말하는 것을 삼갔고 방일하는 근본이 되는 술 등을 마시는 것을 삼갔습니다.
세존이시여, 세존 덕에 마하빠자빠띠 고따미는 부처님께 완전한 믿음을 구족했고 법에 완전한 믿음을 구족했고 승가에 완전한 믿음을 구족했고 성자들이 좋아하는 계율에 완전한 믿음을 구족했습니다.
세존이시여, 세존 덕에 마하빠자빠띠 고따미는 괴로움에 대해 의심이 없고 괴로움의 일어남에 대해 의심이 없고, 괴로움의 소멸에 대해 의심이 없고 괴로움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닦음에 대해 의심이 없습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도 역시 마하빠자빠띠 고따미에게 많은 도움을 주셨습니다.
4. 그러하다, 아난다여. 참으로 그러하다, 아난다여. 그러나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의 영향을 받아 부처님께 귀의하고 법에 귀의하고 승가에 귀의했다면, 그 인연을 맺어준 사람에게 인사하고 자리에서 일어나서 맞고 합장하고 예의 바르게 처신하며 의복, 음식, 거처, 병구완하는 약품을 제공는 것만으로는 그 큰 은혜를 갚지 못합니다고 나는 말합니다.
imassānanda, puggalassa iminā puggalena na suppatikāraṁ vadāmi,
아난다여,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의 영향을 받아 생명을 죽이는 것을 삼갔고 주지 않은 것을 가지는 것을 삼갔고 삿된 음행을 삼갔고 거짓말하는 것을 삼갔고 방일하는 근본이 되는 술 등을 마시는 것을 삼갔다면, 그 인연을 맺어준 사람에게 인사하고 자리에서 일어나서 맞고 합장하고 예의 바르게 처신하며 의복, 음식, 거처, 병구완하는 약품을 제공는 것만으로는 그 큰 은혜를 갚지 못합니다고 나는 말합니다.
아난다여,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의 영향을 받아 부처님께 완전한 믿음을 구족했고, 법에 완전한 믿음을 구족했고, 승가에 완전한 믿음을 구족했고, 성자들이 좋아하는 계율에 완전한 믿음을 구족했다면, 그 인연을 맺어준 사람에게 인사하고 자리에서 일어나서 맞고 합장하고 예의 바르게 처신하며 의복, 음식, 거처, 병구완하는 약품을 제공는 것만으로는 그 큰 은혜를 갚지 못합니다고 나는 말합니다.
아난다여,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의 영향을 받아 괴로움에 대해 의심이 없고 괴로움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닦음에 대해 의심이 없다면, 그 인연을 맺어준 사람에게 인사하고 자리에서 일어나서 맞고 합장하고 예의 바르게 처신하며 의복, 음식, 거처, 병구완하는 약품을 제공는 것만으로는 그 큰 은혜를 갚지 못합니다고 나는 말합니다.
5.아난다여, 그런데 열네 가지 개인을 위한 보시가 있습니다. 여래․아라한․정등각자께 보시하는 것이 첫 번째 개인을 위한 보시입니다.
벽지불에게 보시하는 것이 두 번째 개인을 위한 보시입니다.
여래의 제자인 아라한에게 보시하는 것이 세 번째 개인을 위한 보시입니다.
아라한과의 실형을 닦는 자에게 보시하는 것이 네 번째 개인을 위한 보시입니다.
불환자게 보시하는 것이 다섯 번째 개인을 위한 보시입니다.
불환과의 실현을 닦는 자에게 보시하는 것이 여섯 번째 개인을 위한 보시입니다.
일래자에게 보시하는 것이 일곱 번째 개인을 위한 보시입니다.
일래과의 실현을 닦는 자에게 보시하는 것이 여덟 번째 개인을 위한 보시입니다.
예류자에게 보시하는 것이 아홉 번째 개인을 위한 보시입니다.
예류과의 실현을 닦는 자에게 보시하는 것이 열 번째 개인을 위한 보시입니다.
감각적 욕망에 대해 탐욕을 여윈 이교도에게 보시하는 것이 열두 번째 개인을 위한 보시입니다.
행실이 바른 범부에게 보시하는 것이 열두 번째 개인을 위한 보시입니다.
행실이 나쁜 범부에게 보시하는 것이 열세 번째 개인을 위한 보시입니다.
축생에게 보시하는 것이 열네 번째 개인을 위한 보시입니다.
6.아난다여, 이 가운데서 축생에게 보시하면 백 배의 보답이 기대됩니다.
행실이 나쁜 범부에게 보시를 하면 천 배의 보답이 기대됩니다.
행실이 바른 범부에게 보시를 하면 십만 배의 보답이 기대됩니다.
감각적 욕망에 대해 탐욕을 여윈 이교도들에게 보시하면 천억 배의 보답이 기대됩니다.
예류과의 실현을 닦는 자에게 보시 하면 헤아릴 수 없고 잴 수 없는 보답이 기대됩니다. 하물며 예류자에게 보시를 하면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일래과의 실현을 닦는 자에게 보시하면 헤아릴 수 없고 잴 수 없는 보답이 기대됩니다. 하물며 일래자에게 보시를 하면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불환과의 실현을 닦는 자에게 보시하면 헤아릴 수 없고 잴 수 없는 보답이 기대됩니다. 하물며 불환자에게 보시를 하면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아라한과의 실현을 닦는 자에게 보시하면 헤아릴 수 없고 잴 수 없는 보답이 기대됩니다. 하물며 아라한에게 보시를 하면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하물며 벽지불에게 보시를 하면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하물며 여래․아라한․정등각자에게 보시를 하면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7.아난다여, 그런데 일곱 가지 승가를 위한 보시가 있습니다.
부처님을 상수로 하는 비구와 비구니 두 승가에 보시하는 것이 첫 번째 승가를 위한 보시입니다.
여래가 완전한 열반에 들고 나서 비구와 비구니 두 승가에 보시하는 것이 두 번째 승가를 위한 보시입니다.
비구 승가에 보시하는 것이 세 번째 승가를 위한 보시입니다.
비구니 승가에 보시하는 것이 네 번째 승가를 위한 보시입니다.
승가에서 이 정도의 비구와 비구니들을 제게 정해주십시오.라고 말하고 보시하는 것이 다섯 번째 승가를 위한 보시입니다.
승가에서 이 정도의 비구들을 제게 정해주십시오.라고 말하고 보시하는 것이 여섯 번째 승가를 위한 보시입니다.
승가에서 이 정도의 비구니들을 제게 정해주십시오.라고 말하고 보시하는 것이 일곱 번째 승가를 위한 보시입니다.
8.아난다여, 미래세에 계행이 청정치 못하고 삿된 법을 가졌으며 노란 가사를 목에 두른 일족들이 있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승가를 위해 그 계행이 청정치 못한 자들에게 보시를 베풀 것입니다.
아난다여. 그렇더라고 승가를 위한 보시는 그 공덕이 헤아릴 수 없고 잴 수 없다고 나는 말합니다.
아난다여, 개인에게 하는 보시가 승가에 하는 보시보다 그 과보가 더 크다고 나는 절대 말하지 않는다.
9.아난다여, 네 가지 보시의 청정이 있습니다. 무엇이 넷인가? 아난다여, 보시하는 자는 청정하지만, 보시받는 자는 청정치 못한 보시가 있습니다. 아난다여, 보시받는 자는 청정하지만 보시하는 자는 청정치 못한 보시가 있습니다. 아난다여, 보시하는 자도 보시받는 자도 청정하지 못한 보시가 있습니다. 아난다여, 보시하는 자도 보시받는 자도 청정한 보시가 있습니다.
10.아난다여, 그러면 어떤 것이 보시하는 자는 청정하지만, 보시받는 자는 청정치 못한 보시인가? 아난다여, 여기 보시하는 자는 계행이 청정하고 좋은 성품을 가졌지만, 보시받는 자는 계행이 청정치 못하고 나쁜 성품을 가졌다. 아난다여, 이것이 보시하는 자는 청정하지만, 보시받는 자는 청정치 못한 보시입니다.
11.아난다여, 그러면 어떤 것이 보시받는 자는 청정하지만 보시하는 자는 청정치 못한 보시인가? 아난다여, 여기 보시하는 자는 계행이 청정치 못하고 나쁜 성품을 가졌지만, 보시받는 자는 계행이 청정하고 좋은 성품을 가졌다. 아난다여, 이것이 보시받는 자는 청정하지만 보시하는 자는 청정치 못한 보시입니다.
12.아난다여, 그러면 어떤 것이 보시하는 자도 보시받는 자도 청정치 못한 보시인가? 아난다여, 여기 보시하는 자도 계행이 청정치 못하고 나쁜 성품을 가졌고 보시받는 자도 계행이 청정치 못하고 나쁜 성품을 가졌다. 아난다여, 이것이 보시하는 자도 보시받는 자도 청정치 못한 보시입니다.
13.아난다여, 그러면 어떤 것이 보시하는 자도 보시받는 자도 청정한 보시인가? 아난다여, 여기 보시하는 자도 계행이 청정하고 좋은 성품을 가졌고 받는 자도 계행이 청정하고 좋은 성품을 가졌다. 아난다여, 이것이 보시하는 자도 보시받는 자도 청정한 보시입니다. 아난다여, 이러한 네 가지 보시의 청정이 있습니다.
14.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선서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고 스승께서는 더 나아가 이렇게 말씀하셨다.
계행이 청정한 자가 계행이 청정치 못한 자들에게
행위의 결실이 크다는 것을 확신하면서
법답게 얻은 것을 아주 깨끗한 마음으로 보시할 때
그러면 보시는 보시하는 자에 의해 청정해진다.
Sā dakkhiṇā dāyakato visujjhati.
계행이 청정하지 못한 자가 계행이 청정한 자들에게
행위의 결실이 크다는 것을 확신하지 못하고
법답지 않게 얻은 것 깨끗하지 못한 마음으로 보시할 때
그러한 보시는 받는 자에 의해서 청정해진다.
Sā dakkhiṇā paṭiggāhakato visujjhati.
계행이 청정치 못한 자가 계행이 청정치 못한 자들에게
행위의 결실이 크다는 것을 확신하지 못하고
법답지 않게 얻은 것 깨끗하지 못한 마음으로 보시할 때
그러한 보시는 풍성한 과보를 가져오지 않는다고 나는 말합니다.
그러한 보시는 어느 쪽에 의해서도 청정해지지 않는다. (이 번역은 PTS본을 따른 것으로 문맥상 6차 결집본이 타당하다. )
Na taṁ dānaṁ vipulapphalanti brūmi.
계행이 청정한 자가 계행이 청정한 자들에게
행위의 결실이 크다는 것을 확신하면서
법답게 얻은 것을 아주 깨끗한 마음으로 보시할 때
그러한 보시는 풍성한 과보를 가져온다고 나는 말합니다.
Taṁ ve dānaṁ vipulapphalanti brūmi.
탐욕을 끊은 자가 탐욕을 끊은 자들에게
행위의 결실이 크다는 것을 확신하면서
법답게 얻은 것을 아주 깨끗한 마음으로 보시할 때
그러한 보시는 세속적인 보시 가운데 으뜸이라고 나는 말합니다.
Taṁ ve dānaṁ āmisadānānamaggan”ti.
논점: 보시의 분석 경(M142)은 맛지마니까야에 속해있는 경이므로 내용이 길고 논점이 많습니다. 그래서 2월 8일, 2월 15일 2회에 걸쳐서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이 경을 공부하면 보시뿐 만이 아니라 승가에 대한 이해가 깊어 질 것입니다.
논점 1. 마하빠자빠띠 고따미는 싯타르타의 양모였고, 최초의 비구니였다. 마하빠자빠띠 고따미에 대해서 이야기 해보자.
"고따미여, 승가에 보시하십시오. 승가에 보시하면 나에게도 공양하는 것이 되고 승가에도 공양하는 것이 될 것입니다." 이렇게 3번 요청한 이유는?
...까삘라왓투와 마하빠자빠띠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부처님이 깨닫고 5년후에 숫도나다왕이 죽자 부처님은 고향에 2번째로 방문합니다. 왕비 고따미는 왕이 죽자 고따미는 출가를 간청하게 됩니다. 이경은 출가를 간청하기 이전인 부처님이 첫번째 방문하셨을때 발생한 이야기입니다. 비구니승단이 성도후 5년에 만들어졌다는 것은 많은 것을 시사합니다. 첫번째 방문(성도후 1년)에서 부처님은 승가에 대한 다양한 종류와 공덕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부처님은 미래를 예견하여 계행이 청정치 못한 비구가 속한 승가일지라도 '승가의 이름'으로 보시하는 것이 개인에 대한 보시(부처님, 아라한등)보다 공덕이 더 크다고 말씁하십니다.
2.아래 문장에 대한 이해는?
세존이시여, 세존 덕에 마하빠자빠띠 고따미는 부처님께 완전한 믿음을 구족했고(aveccappasādena samannāgatā) 법에 완전한 믿음을 구족했고 승가에 완전한 믿음을 구족했고 성자들이 좋아하는 계율에 완전한 믿음을 구족했습니다.
Bhagavantaṁ, bhante, āgamma mahāpajāpati gotamī buddhe aveccappasādena samannāgatā, dhamme aveccappasādena samannāgatā, saṅghe aveccappasādena samannāgatā ariyakantehi sīlehi samannāgatā
"세존이시여, 세존 덕에 마하빠자빠띠 고따미는 괴로움에 대해 의심이 없고(dukkhe nikkaṅkhā) 괴로움의 일어남에 대해 의심이 없고, 괴로움의 소멸에 대해 의심이 없고 괴로움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닦음에 대해 의심이 없습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도 역시 마하빠자빠띠 고따미에게 많은 도움을 주셨습니다."
Bhagavantaṁ, bhante, āgamma mahāpajāpati gotamī dukkhe nikkaṅkhā, dukkhasamudaye nikkaṅkhā, dukkhanirodhe nikkaṅkhā, dukkhanirodhagāminiyā paṭipadāya nikkaṅkhā.
... 완전한 믿음을 구족했고(aveccappasādena samannāgatā) , 괴로움에 대해 의심이 없고(dukkhe nikkaṅkhā)라는 문장은 고따미가 일찌기 예류과를 얻었음을 나타내고 있다. 붓다가 처음 까삘라왓투를 방문하였을때 고따미는 예류과를 얻은 것으로 보인다. 부처님이 숫도다나의 목숨이 위중하다는 소식을 듣고 두번째 방문했을 때 고따미는 출가를 세번 간청하지만 거절당한다. 그때 까삘라왓투에는 석가족과 꼴리야 족이 로히니 물싸움을 할 때 부처님이 물싸움을 중재한 댓가로 출가한 500명의 청년들때문에 생겨난 500명의 과부가 살고 있었다. 고따미는 이 오백명의 여인들과 삭발하고 가사를 입고 까삘라왓투에서 웨살리까지 약 300km를 맨발로 걸어갔다. 그때도 부처님은 3번 거절하였고 아난다의 간청에 의해서 8가지 조건을 제사면서 비구니 출가를 혀락한다. 예류과를 얻은 마하빠자빠띠 고따미가 끝까지 출가를 포기하지 않고 찾아 올 것이라는 것을 부처님은 알고 있었다고 본다.
3.아래문장에서 의미를 이해하기 쉬운 번역은 ?
가.그러하다, 아난다여. 참으로 그러하다, 아난다여. 그러나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의 영향을 받아 부처님께 귀의하고 법에 귀의하고 승가에 귀의했다면, 그 처음 사람이 나중 사람에게 인사하고 자리에서 일어나서 맞고 합장하고 예의 바르게 처신하며 의복, 음식, 거처, 병구완하는 약품을 제공하여 보답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라고 나는 말한다.(각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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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그러하다, 아난다여. 참으로 그러하다, 아난다여. 그러나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의 영향을 받아 부처님께 귀의하고 법에 귀의하고 승가에 귀의했다면, 그 인연을 맺어준 사람에게 인사하고 자리에서 일어나서 맞고 합장하고 예의 바르게 처신하며 의복, 음식, 거처, 병구완하는 약품을 제공는 것만으로는 그 큰 은혜를 갚지 못합니다고 나는 말합니다.(백장암)
다. 아난다여, 어떤 사람이 누군가를 인연으로 부처님께 귀의하였고 가르침에 귀의하였고 참모임에 귀의하였다면, 그 사람이 그 누군가에 대하여 인사하거나 일어서 맞이하거나 합장을 하거나 친절을 보이거나 의복, 음식, 깔개, 필수약품을 보시하여 그 은혜를 갚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라고 나는 말한다.(전재성)
“Evametaṁ, ānanda. Yaṁ hānanda, puggalo puggalaṁ āgamma buddhaṁ saraṇaṁ gato hoti, dhammaṁ saraṇaṁ gato hoti, saṅghaṁ saraṇaṁ gato hoti, imassānanda, puggalassa iminā puggalena na suppatikāraṁ vadāmi, yadidaṁ— abhivādanapaccuṭṭhānaañjalikammasāmīcikammacīvarapiṇḍapātasenāsanagilānappaccayabhesajjaparikkhārānuppadānena.
4.'열네가지 개인'을 위한 보시와 '일곱가지 승가'를 위한 보시 중에서 승가에 보시하는 공덕이 가장 큰 이유를 열거해보자. 승가에 보시, 승가의 공덕이 가장 수승하다는 설명이 승가 이기주의라고 비판하는 이들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부처님 당시 스님들은 가르침을 암송하여 후배들에게 전달하였기에 승가는 법의 담지자였고 가르침을 전달하는 전승자였다. 또한 세상에서 불법이 사라지지 않도록 출가자를 배출하는 출가자 생산 공장, 부처님법을 알려주어 인간의 고통을 치료하는 병원, 불자가 되기 위해서 알아야하는 필수적인 귀의처, 가장 큰 공덕을 짓게하는 복전, 승가를 염하면 공포가 사라지는 효과를 내는 보호처, 포살을 통하여 스스로 자정능력을 발휘하는 모임, 현전승가 전체가 모여 결정하는 것을 화합이라고 규정하는 가장 민주적인 모임, 법과 비법을 판단하고 계율과 비계율을 판단할 수 있는 권리와 의무를 가진 모임, 부처님 사후에 부처님의 권위를 대신할 수 있는 유일한 단체이다. 이렇게 승가의 역활이 대단하고 중요하기에 승가에 보시하는 것은 그 어떤 보시공덕보다 크다고 부처님은 설명하신다. 부처님께 보시하는 것은 개인에게 보시하는 것으로 설명하면서 "아난다여, 개인에게 하는 보시가 승가에 하는 보시보다 그 과보가 더 크다고 나는 절대 말하지 않는다."라고 단언하신다. 보시의 분석 경(M142)은 승가를 '스님들'이라고 번역하는 종단 현실에서 우리 불자가 되새겨 보아야 할 중요한 경이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서 사찰의 전각이 국가의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자 문화유산과 자연유산을 관리하고 보호하는 역활도 맡게 되었다. 요즘 승가(종단)는 사찰의 재산,문화재 관리에 신경을 쓰다보니 법의 담지자, 전승자, 부처님의 대행자라는 역활을 소홀히 하게 되었고 승려들도 공찰의 사유화, 승려간의 부익부빈익빈이라는 괴이한 현황이 나타나고 말았다. 뜻있는 불자들이 종단개혁운동을 하는 것은 단지 승가의 역활을 회복하자는 것이다. 그럴려면 먼저 승가의 의미와 역활을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것은 삼귀의를 제대로 되돌려 놓은 것에서부타 시작한다.
5. 부처님은 '7가지 승가'를 설명하고 아래처럼 다시 하나의 승가를 설명한다. 그렇다면 '8가지 승가'를 설명한 것이 아닌가?
"아난다여, 미래세에 계행이 청정치 못하고(dussīlā) 삿된 법(pāpadhammā )을 가졌으며 노란 가사를 목에 두른 일족들이 있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승가를 위해(saṅghaṁ uddissa) 그 계행이 청정치 못한 자들에게 보시를 베풀 것입니다. 아난다여. 그렇더라고 승가를 위한 보시는 그 공덕이 헤아릴 수 없고 잴 수 없다고 나는 말합니다."
... 승가를 위해(saṅghaṁ uddissa) 라는 문장은 승가의 이름으로(in the name of the Saṅgha)라고 번역하는 것이 더 적절하다. 개인에게 보시하면 보시 받는 사람만 사용할수 있고 사유재산이 되지만 승가에 보시하면 공유물이 되어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어느 출가자나 사용할 수 있게 된다. 보시자가 "승가에 보시합니다"라고 말하고 보시할때 스님이나 승가의 일을 하는 사람이 받을 것이다. 승가에 보시한데도 승가가 나와서 보시받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승가의 이름으로 보시하는 것이 중요하다. 청정치 못한 자들에게 승가의 이름으로 보시를 하면 그공덕이 헤아릴수 없다는 부처님의 말씀에서 다시 '승가'가 어떤 의미인지 확인 할 수 있다.
* uddissa ger (+acc). in the name of; on account of; for the sake of.
6. '보시의 분석경'과 '웰라마경'과 '42장경' 비교하며 보시의 공덕과 승가의 의미에 대해서 이야기 해보자.
... 웰라마 경(A9:20)은 일반인 -예류자-일래자-불환자-아라한-벽지불-부처님-승가-삼귀의 -오계-자비관-무상관의 순서로 공덕의 크기를 설명하고 있다. 보시의 분석 경(M142)은 축생-나쁜범부-좋은 범부-욕망을 여윈 이교도-예류향-예류과-일래향-일래과-불환향-불환과-아라한향-아라한과-벽지불-붓다(14가지 개인에 대한 보시) + 7가지(8가지) 승가에 대한 순서로 공덕의 크기를 설명하고 있다. 보시의 측면에서는 웰라마경보다 보시에대한 분석경이 더 자세하게(22가지)설명하고 있고 수행측면에서는 웰라마경에서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고 보시의 분석경에서는 설명하지 않고 있다.
사십이장경은 보시의 측면과 수행의 측면을 혼동하여(잘못 번역하여) 부처님 위에 무심도인을 상정하는 큰 잘못을 저지르고있다. 이러한 잘못은 선불교에서 부처님보다 뛰어난 존재들 즉, 무심도인이나 진기조사 같은 존재들이 등장하는 여지를 제공하였다. 현재 종정을 지낸 진제스님이 법문에서나 해운정사 사이트에서 이런 주장을 하고있다. 지금 잘못된 것을 바로 잡아야 할 것이다.
사십이장경 11장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되, “범상한 사람 백을 공양하는 것이 착한 사람 하나를 공양하는 것만 같지 못하고, 착한 사람 천을 공양하는 것이 다섯 가지 계행 지키는 사람 하나를 공양하는 것만 같지 못하고, 다섯 가지 계행을 지키는 사람 만(萬)을 공양하는 것이 수다원 한 사람을 공양하는 것만 같지 못하고, 수다원 백만 사람을 공양하는 것이 사다함 한 사람을 공양하는 것만 같지 못하고, 사다함 천만 사람을 공양하는 것이 아나함 한 사람을 공양하는 것만 같지 못하고, 아나함 일억만 사람을 공양하는 것이 아라한 한 사람을 공양하는 것만 같지 못하고, 아라한 십억 사람을 공양하는 것이 벽지불 한 분을 공양하는 것만 같지 못하고, 벽지불 백억 분을 공양하는 것이 부처님 한 분을 공양하는 것만 같지 못하고, 부처님 천억 분을 공양하는 것이 생사 고락의 모든 차별법을 초월하여 닦을 것도 없고 얻을 것도 없는 자를 공양하는 것만 같지 못하나니라.”
佛言 飯惡人百 不如飯一善人 飯善人千 不如飯一持五戒者 飯五戒者萬 不如飯一須陀洹 飯百萬須陀洹不如飯一斯陀含
飯千萬斯陀含 不如飯一阿那含 飯一億阿那含 不如飯一阿羅漢 飯 十億阿羅漢 不如飯一辟 支佛 飯百億辟支佛 不如飯一三世諸佛 飯千億三世諸佛 不如飯一無念無住無修無證之者
7. 보시의 청정은 이떻게 이루어 지는가? 삼륜청정(三輪淸淨)은 보시에 대한 가르침이 아니다.
지난번(2월15일) 토론때 보시가 청정해 지는 '두가지 경우'와 '삼륜청정'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예를들어 법정스님이 김영환(길상화)보살로부터 보시받은 서울 길상사 경우를 이야기했다. 율장을 배우지 않는 한국불교에서 보시를 배울 때 보시하는 자와 받은 자, 그리고 보시한 물건이 모두 청정해야 한다는 '삼륜청정'의 가르침은 널리 알려져 있다. 그것은 출가자가 처음 배우는 초발심자경문에서 삼륜청정(三輪淸淨) 을 말하고있기 때문이다.
"모름지기 밥을 받는 것이 다만 몸이 마름을 치료하여 도업을 이루기 위함인 줄을 알아야 하며, 모름지기 반야심경을 염하되 삼륜(주는이와 받는이와 주고 받는 물건)이 청정함을 관하여 道用(도용)을 어기지 말지니라."(須防護雜念하며 須知受食이 但療形枯하야 爲成道業하며 須念般若心經호대 觀三輪淸淨하야 不違道用이어다)
그러나 삼륜청정(三輪淸淨) 은 보시에 대한 가르침이 아니다. 삼륜청정에서의 청정은 계행의 청정이 아니다. 반야심경의 공사상에 의해서 삼륜(주는이와 받는이와 주고 받는 물건)이 청정함을 관(觀)하라는 가르침이다. 이 때의 청정을 〈대반야경〉에서는 “보시했다는 생각, 보시받았다는 생각, 그리고 보시의 결과에 대하여 집착하지 않는 것, 이것이 보살이 행하는 보시이다”라고 설하고 있다. 또한 〈화엄경(58권)〉에서도 “삼륜이 청정한 보시는, 베푼 자와 받은 자, 그리고 보시한 물건을 모두 허공과 같은 것(空)이라고 바르게 관찰해야 한다(三輪헌淨施, 於施者, 受者, 及以施物, 正念觀察 如虛空故)”라고 설명한다. 이러한 '삼륜청정'의 가르침에서는 아래와 같은 '보시에 의한 청정'이 들어설 자리가 없다.
"계행이 청정하지 못한 자가 계행이 청정한 자들에게
행위의 결실이 크다는 것을 확신하지 못하고
법답지 않게 얻은 것 깨끗하지 못한 마음으로 보시할 때
그러한 보시는 받는 자에 의해서 청정해진다."
한국불교는 삼륜청정을 말하기 전에 '보시의 분석경'에서처럼 '4가지 보시'와 '2가지 청정'을 가르쳐야한다. 보시분석경에서 청정은 계행이 기준인데 어떻게 '보시하는 물건의 청정'을 논할 수 있다는 말인가? 계행이 청정한 사람이 얻은 물건이니까 보시하는 물건도 청정하다라는 의미라면 '이륜청정'만을 이야기해도 충분하다. 부처님은 '이륜청정'을 설명했지만 보시하는 사람이나 보시받는 사람중에서 어느 한쪽이라도 청정하면 보시가 청정해진다는 '일륜청정'도 가르쳤다. 삼륜의 청정(공성)만을 가르치는 것은 보시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수행의 관점이다. 보시할 때 '삼륜청정'의 방법만을 가르친다면 여러종류의 보시중에서 하나의 보시만을 가르치는 꼴이며 보시를 관념적인 것으로 만드는 것이다. 재가자의 삶이 경쟁적이고 치열하여 일상에서나 사업장에서 완벽한 계행의 청정을 유지하며 살아가는게 어렵다. 이제는 '보시의 분석 경(M142)' 에서 가르치는 것처럼 ' 보시가 청정해 지는 2가지 경우' 즉, 이륜청정, 일륜청정의 보시를 가르쳐야한다. 이렇게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가르침을 놔두고 무집착의 삼륜청정만을 가르치는 것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반쪽만 가르치는 것이고 보시의 활성화를 막는 짓이다.
"계행이 청정한 자가 계행이 청정치 못한 자들에게
행위의 결실이 크다는 것을 확신하면서
법답게 얻은 것을 아주 깨끗한 마음으로 보시할 때
그러면 보시는 보시하는 자에 의해 청정해진다."(Sā dakkhiṇā dāyakato visujjhati)
"계행이 청정하지 못한 자가 계행이 청정한 자들에게
행위의 결실이 크다는 것을 확신하지 못하고
법답지 않게 얻은 것 깨끗하지 못한 마음으로 보시할 때
그러한 보시는 보시 받는 자에 의해서 청정해진다."(Sā dakkhiṇā paṭiggāhakato visujjhati)
논점 8. 모든 종단이 다 승단인가? 승가를 판단하는 기준은 무엇인가?
승가는 같은 율장(상좌부율,사분율, 오분율등)을 가지고 포살을 해야 하는데 포살본이 다르면 같은 승가라고 할 수 없다. 이를테면 조계종과 태고종은 같은 율장을 가지고 포살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러한 차이를 무시하고 종단협의회 소속 모든 종파를 같은 승단이라고 인정해 주는 것은 잘못이다. 조계종을 '장자종단'이라고 부르는 것은 다른 종단을 '차자종단'이라고 인정해 주는 꼴이므로 장자종단이라는 표현도 사용하지 말아야한다. 조계종은 2022년 2월에 종단협의회 소속 종파를 모두 초청해서 조계사 마당에서 '승려대회'를 열었다. 같은 율장을 가지고 포살 할수 없는 다양한 종파(심지어 결혼도 가능한 종파가 포함)가 참여한 이날의 모음을 '승려대회'라고 불러서는 안된다. 같은 불자들이 모인 것이므로 "불자대회"라고 불러야 한다. 또한 승려대회에서 중요한 의결 과정도 3번의 질문과 대답을 들어 동의 받는 과정을 거치지 않았으므로 그 당시 의결된 모든 결정도 무효이다. 현재 조계종은 한글 삼귀의를 "스님들께 귀의한다"고 표현하고 있으니 종단 전체가 승가의 의미를 모르고 있다고 봐야한다. 승가의 의미를 모르니 아무것에나 '승려대회'라고 표현하는 것이다. 이러한 것을 개선하려면 재가단체에서라도 세미나와 토론회를 개최하여 승가의 의미를 바로 세우는 작업을 하는것이 가장 시급한 일이다. 개혁을 말하는 사람들은 서두르지 않고 여유를 가지고 이러한 세미나를 해나가면 점점 희망이 생길 것이다.
https://www.bulkyo21.com/news/articleView.html?idxno=57113
보시의 분석 경(M142)-개인에 보시 vs 승가에 보시
각묵 | 전재성 | |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때 세존께서는 삭까에서 까삘리왓투의 니그로다 원림에 머무셨다. 2. 그때 마하빠자빠띠 고따미가 한 벌의 새 옷을 가지고 세존을 뵈러 갔다. 가서는 세존께 절을 올리고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아서 마하빠자빠띠 고따미는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이 한 벌의 새 옷은 세존을 위해 제가 손수 물레질하여 짠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제게 연민을 일으키시어 이것을 받아주십시오. 이렇게 말씀드리자 세존께서는 마하빠자빠띠 고따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고따미여, 승가에 보시하십시오. 승가에 보시하면 나에게도 공양하는 것이 되고 승가에도 공양하는 것이 될 것입니다. “saṅghe, gotami, dehi. Saṅghe te dinne ahañceva pūjito bhavissāmi saṅgho cā”ti. saṅghe: 복수,목적격 |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때 세존께서는 싸끼야 국의 까삘라왓투에 있는 니그로다 승원에 계셨다. 2. 그때에 마하빠자빠띠 고따미가 한 벌의 새 법복을 가지고 세존께서 계신 곳을 찾았다. 가까이 다가가서 세존께 인사를 드리고 한쪽으로 물러앉았다. 3. 한쪽으로 물러앉은 마하빠자빠띠 고따미는 세존께 이와 같이 말했다. “세존이시여, 이 한 벌의 새 법복은 특별히 세존을 위하여 제가 손수 짜고 손수 기운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저를 위하여 이것을 영납하시고, 가엾이 여겨 받아주십시오.” 이와 같이 말하자 세존께서는 마하빠자빠띠 고따미에게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고따미여, 승단에 이것을 보시하십시오. 그대가 승단에 보시할 때에 곧 나와 승단을 공양하는 것이 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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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로 마하빠자빠띠 고따미는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이 한 벌의 새 옷은 세존을 위해 제가 손수 물레질하여 짠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제게 연민을 일으키시어 이것을 받아주십시오. 이렇게 말씀드리자 세존께서는 두 번째에도 마하빠자빠띠 고따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고따미여, 승가에 보시하십시오. 승가에 보시하면 나에게도 공양하는 것이 되고 승가에도 공양하는 것이 될 것입니다. |
4. 마하빠자라띠 고따미는 다시 세존께 이와 같이 말했다. “세존이시여, 이 한 벌의 새 법복은 특별히 세존을 위하여 제가 손수 짜고 손수 기운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저를 위하여 이것을 영납하시고, 가엾이 여겨 받아주십시오.” 이와 같이 말하자 세존께서는 다시 마하빠자빠띠 고따미에게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고따미여, 승단에 이것을 보시하십시오. 그대가 승단에 보시할 때에 곧 나와 승단을 공양하는 것이 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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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로 마하빠자빠띠 고따미는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이 한 벌의 새 옷은 세존을 위해 손수 물레질하여 짠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제게 연민을 일으키시어 이것을 받아주십시오. 이렇게 말씀드리자 세존께서는 세 번째에도 마하빠자빠띠 고따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고따미여, 승가에 보시하십시오. 승가에 보시하면 나에게도 공양하는 것이 되고 승가에도 공양하는 것이 될 것입니다. Tatiyampi kho bhagavā mahāpajāpatiṃ gotamiṃ etadavoca: “saṅghe, gotami, dehi. Saṅghe te dinne ahañceva pūjito bhavissāmi saṅgho cā”ti. 3. 이렇게 말씀하시자 아난다 존자는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마하빠자빠띠 고따미가 가져온 한 벌의 새 옷을 받아주십시오. 세존이시여, 마하빠자빠띠 고따미는 이모로서, 유모로서, 양모로서, 수유자로서 세존께 많은 도움을 주었습니다. 세존을 낳아주신 친어머니가 돌아가시자 자신의 젖을 먹였습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도 마하빠자빠띠 고따미에게 많은 도움을 주셨습니다. 세존이시여, 세존 덕에 마하빠자빠띠 고따미는 부처님께 귀의하고 법에 귀의하고 승가에 귀의했습니다. 세존이시여, 세존 덕에 마하빠자빠띠 고따미는 생명을 죽이는 것을 삼갔고 주지 않은 것을 가지는 것을 삼갔고 삿된 음행을 삼갔고 거짓말하는 것을 삼갔고 방일하는 근본이 되는 술 등을 마시는 것을 삼갔습니다. 세존이시여, 세존 덕에 마하빠자빠띠 고따미는 부처님께 완전한 믿음을 구족했고 법에 완전한 믿음을 구족했고 승가에 완전한 믿음을 구족했고 성자들이 좋아하는 계율에 완전한 믿음을 구족했습니다. Bhagavantaṁ, bhante, āgamma mahāpajāpati gotamī buddhe aveccappasādena samannāgatā, dhamme aveccappasādena samannāgatā, saṅghe aveccappasādena samannāgatā ariyakantehi sīlehi samannāgatā. 세존이시여, 세존 덕에 마하빠자빠띠 고따미는 괴로움에 대해 의심이 없고 괴로움의 일어남에 대해 의심이 없고, 괴로움의 소멸에 대해 의심이 없고 괴로움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닦음에 대해 의심이 없습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도 역시 마하빠자빠띠 고따미에게 많은 도움을 주셨습니다. Bhagavantaṁ, bhante, āgamma mahāpajāpati gotamī dukkhe nikkaṅkhā, dukkhasamudaye nikkaṅkhā, dukkhanirodhe nikkaṅkhā, dukkhanirodhagāminiyā paṭipadāya nikkaṅkhā. Bhagavāpi, bhante, bahūpakāro mahāpajāpatiyā gotamiyā”ti. |
5. 세 번째에도 마하빠자빠띠 고따미는 세존께 이와 같이 말했다. “세존이시여, 이 한 벌의 새 법복은 특별히 세존을 위하여 제가 손수 짜고 손수 기운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저를 위하여 이것을 영납하시고, 가엾이 여겨 받아주십시오.” (이렇게 말씀드리자 세존께서는 세 번째에도 마하빠자빠띠 고따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고따미여, 승가에 보시하십시오. 승가에 보시하면 나에게도 공양하는 것이 되고 승가에도 공양하는 것이 될 것입니다.-생략) 이와 같이 말하자 존자 아난다가 세존께 이와 같이 말했다. 6.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마하빠자빠띠 고따미께서 지은 이 한 벌의 새 법복을 받아주십시오. 세존이시여, 마하빠자빠띠 고따미는 세존께 이모이며, 양모이며, 양육자이며, 수유자로서 많은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도 마하빠자빠띠 고따미에게 많은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1) 세존이시여, 세존을 인연으로 마하빠자빠띠 고따미께서는 부처님에게 귀의하였고 가르침에 귀의하였고 참모임에 귀의하였습니다. 2) 세존이시여, 세존을 인연으로 마하빠자빠띠 고따미께서는 살아있는 생명을 죽이는 것을 삼가고, 주지 않은 것을 빼앗는 것을 삼가고, 사랑을 나눔에 잘못된 행동을 하는 것을 삼가고, 어리석은 거짓말을 하는 것을 삼가고, 곡주나 과일주 등의 취기가 있는 것을 삼갑니다. 3) 세존이시여, 세존을 인연으로 마하빠자빠띠 고따미께서는 부처님에 대하여 청정한 믿음을 갖추고, 가르침에 대하여 청정한 믿음을 갖추고, 참모임에 대하여 청정한 믿음을 갖추고, 거룩한 이들이 사랑하는 계행에 대하여 청정한 믿음을 갖추었습니다. 4) 세존이시여, 세존을 인연으로 마하빠자빠띠 고따미께서는 괴로움에 대하여 의심하지 않고, 괴로움의 발생에 대하여 의심하지 않고, 괴로움의 소멸에 대하여 의심하지 않고,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에 대하여 의심하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도 마하빠자빠띠 고따미에게 많은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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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그러하다, 아난다여. 참으로 그러하다, 아난다여. 그러나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의 영향을 받아 부처님께 귀의하고 법에 귀의하고 승가에 귀의했다면, 그 처음 사람이 나중 사람에게 인사하고 자리에서 일어나서 맞고 합장하고 예의 바르게 처신하며 의복, 음식, 거처, 병구완하는 약품을 제공하여 보답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라고 나는 말한다.그 인연을 맺어준 사람에게 인사하고 자리에서 일어나서 맞고 합장하고 예의 바르게 처신하며 의복, 음식, 거처, 병구완하는 약품을 제공는 것만으로는 그 큰 은혜를 갚지 못한다고 나는 말합니다. Yaṁ hānanda, puggalo puggalaṁ āgamma buddhaṁ saraṇaṁ gato hoti, dhammaṁ saraṇaṁ gato hoti, saṅghaṁ saraṇaṁ gato hoti, imassānanda, puggalassa iminā puggalena na suppatikāraṁ vadāmi, yadidaṁ— abhivādanapaccuṭṭhānaañjalikammasāmīcikammacīvarapiṇḍapātasenāsanagilānappaccayabhe 아난다여,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의 영향을 받아 생명을 죽이는 것을 삼갔고 주지 않은 것을 가지는 것을 삼갔고 삿된 음행을 삼갔고 거짓말하는 것을 삼갔고 방일하는 근본이 되는 술 등을 마시는 것을 삼갔다면, 그 처음 사람이 나중 사람에게 인사하고 자리에서 일어나서 맞고 합장하고 예의 바르게 처신하며 의복, 음식, 거처, 병구완하는 약품을 제공하여 보답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라고 나는 말한다.그 인연을 맺어준 사람에게 인사하고 자리에서 일어나서 맞고 합장하고 예의 바르게 처신하며 의복, 음식, 거처, 병구완하는 약품을 제공는 것만으로는 그 큰 은혜를 갚지 못한다고 나는 말합니다. 아난다여,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의 영향을 받아 부처님께 완전한 믿음을 구족했고, 법에 완전한 믿음을 구족했고, 승가에 완전한 믿음을 구족했고, 성자들이 좋아하는 계율에 완전한 믿음을 구족했다면, 그 처음 사람이 나중 사람에게 인사하고 자리에서 일어나서 맞고 합장하고 예의 바르게 처신하며 의복, 음식, 거처, 병구완하는 약품을 제공하여 보답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라고 나는 말한다.그 인연을 맺어준 사람에게 인사하고 자리에서 일어나서 맞고 합장하고 예의 바르게 처신하며 의복, 음식, 거처, 병구완하는 약품을 제공는 것만으로는 그 큰 은혜를 갚지 못한다고 나는 말합니다. 아난다여,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의 영향을 받아 괴로움에 대해 의심이 없고 괴로움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닦음에 대해 의심이 없다면, 그 처음 사람이 나중 사람에게 인사하고 자리에서 일어나서 맞고 합장하고 예의 바르게 처신하며 의복, 음식, 거처, 병구완하는 약품을 제공하여 보답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라고 나는 말한다.그 인연을 맺어준 사람에게 인사하고 자리에서 일어나서 맞고 합장하고 예의 바르게 처신하며 의복, 음식, 거처, 병구완하는 약품을 제공는 것만으로는 그 큰 은혜를 갚지 못한다고 나는 말합니다. abhivādanapaccuṭṭhānaañjalikammasāmīcikammacīvarapiṇḍapātasenāsanagilānappaccayabhesajjaparikkhārānuppadānena. |
7. “아난다여, 그렇다. 아난다여, 그렇다. 1) 아난다여, 어떤 사람이 누군가를 인연으로 부처님께 귀의하였고 가르침에 귀의하였고 참모임에 귀의하였다면, 그 사람이 그 누군가에 대하여 인사하거나 일어서 맞이하거나 합장을 하거나 친절을 보이거나 의복, 음식, 깔개, 필수약품을 보시하여 그 은혜를 갚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라고 나는 말한다. 2) 아난다여, 어떤 사람이 누군가를 인연으로 살아 있는 생명을 죽이는 것을 삼가고, 주지 않은 것을 빼앗는 것을 삼가고, 사랑을 나눔에 잘못된 행동을 하는 것을 삼가고, 어리석은 거짓말을 하는 것을 삼가고, 곡주나 과일주 등의 취기가 있는 것을 삼갔다면, 그 사람이 그 누군가에 대하여 인사하거나 일어서 맞이하거나 합장을 하거나 친절을 보이거나 의복, 음식, 깔개, 필수약품을 보시하여 그 은혜를 갚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라고 나는 말한다. 3) 아난다여, 어떤 사람이 누군가를 인연으로 부처님에 대하여 청정한 믿음을 갖추고, 가르침에 대하여 청정한 믿음을 갖추고, 참모임에 대하여 청정한 믿음을 갖추고, 거룩한 이들이 사랑하는 계행에 대하여 청정한 믿음을 갖추었다면, 그 사람이 그 누군가에 대하여 인사하거나 일어서 맞이하거나 합장을 하거나 친절을 보이거나 의복, 음식, 깔개, 필수약품을 보시하여 그 은혜를 갚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라고 나는 말한다. 4) 아난다여, 어떤 사람이 누군가를 인연으로 괴로움에 대하여 의심하지 않고, 괴로움의 발생에 대하여 의심하지 않고, 괴로움의 소멸에 대하여 의심하지 않고,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에 대하여 의심하지 않았다면, 그 사람이 그 누군가에 대하여 인사하거나 일어서 맞이하거나 합장을 하거나 친절을 보이거나 의복, 음식, 깔개, 필수약품을 보시하여 그 은혜를 갚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라고 나는 말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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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아난다여, 그런데 열네 가지 개인을 위한 보시가 있다. 여래․아라한․정등각자께 보시하는 것이 첫 번째 개인을 위한 보시이다. 벽지불에게 보시하는 것이 두 번째 개인을 위한 보시이다. 여래의 제자인 아라한에게 보시하는 것이 세 번째 개인을 위한 보시이다. 아라한과의 실형을 닦는 자에게 보시하는 것이 네 번째 개인을 위한 보시이다. 불환자게 보시하는 것이 다섯 번째 개인을 위한 보시이다. 불환과의 실현을 닦는 자에게 보시하는 것이 여섯 번째 개인을 위한 보시이다. 일래자에게 보시하는 것이 일곱 번째 개인을 위한 보시이다. 일래과의 실현을 닦는 자에게 보시하는 것이 여덟 번째 개인을 위한 보시이다. 예류자에게 보시하는 것이 아홉 번째 개인을 위한 보시이다. 예류과의 실현을 닦는 자에게 보시하는 것이 열 번째 개인을 위한 보시이다. 감각적 욕망에 대해 탐욕을 여윈 이교도에게 보시하는 것이 열두 번째 개인을 위한 보시이다. 행실이 바른 범부에게 보시하는 것이 열두 번째 개인을 위한 보시이다. 행실이 나쁜 범부에게 보시하는 것이 열세 번째 개인을 위한 보시이다. 축생에게 보시하는 것이 열네 번째 개인을 위한 보시이다. |
8. 아난다여, 개인에 대한 갚음의 보시에는 열네 가지가 있다. 1) 이렇게 오신 분, 거룩한 분, 올바로 원만히 깨달은 분께 보시한다면, 이것이 첫 번째의 개인에 대한 갚음의 보시이다. 2) 연기법을 깨달은 분에게 보시한다면, 이것이 두 번째의 개인에 대한 갚음의 보시이다. 3) 여래의 제자인 거룩한 분에게 보시한다면, 이것이 세 번째의 개인에 대한 갚음의 보시이다. 4) 거룩한 경지를 실현하는 길에 들어선 분에게 보시한다면, 이것이 네 번째의 개인에 대한 갚음의 보시이다. 5) 돌아오지 않는 분에게 보시한다면, 이것이 다섯 번째의 개인에 대한 갚음의 보시이다. 6) 돌아오지 않는 경지를 실현하는 길에 들어선 분에게 보시한다면, 이것이 여섯 번째의 개인에 대한 갚음의 보시이다. 7) 한 번 돌아오는 분에게 보시한다면, 이것이 일곱 번째의 개인에 대한 갚음의 보시이다. 8) 한번 돌아오는 경지를 실현하는 길에 들어선 분에게 보시한다면, 이것이 여덟 번째의 개인에 대한 갚음의 보시이다. 9) 흐름에 든 분에게 보시한다면, 이것이 아홉 번째의 개인에 대한 갚음의 보시이다. 10) 흐름에 든 경지를 실현하는 길에 들어선 분에게 보시한다면, 이것이 열 번째의 개인에 대한 갚음의 보시이다. 11) 감각적 쾌락에 대한 욕망에서 벗어난 밖의 사람에게 보시한다면, 이것이 열한 번째의 개인에 대한 갚음의 보시이다. 12) 도덕적인 일반 사람들에게 보시한다면, 이것이 열두 번째의 개인에 대한 갚음의 보시이다. 13) 부도덕한 일반 사람들에게 보시한다면, 이것이 열세 번째의 개인에 대한 갚음의 보시이다. 14) 축생에게 보시한다면, 이것이 열네 번째의 개인에 대한 갚음의 보시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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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아난다여, 이 가운데서 축생에게 보시하면 백 배의 보답이 기대된다. 행실이 나쁜 범부에게 보시를 하면 천 배의 보답이 기대된다. 행실이 바른 범부에게 보시를 하면 십만 배의 보답이 기대된다. 감각적 욕망에 대해 탐욕을 여윈 이교도들에게 보시하면 천억 배의 보답이 기대된다. 예류과의 실현을 닦는 자에게 보시 하면 헤아릴 수 없고 잴 수 없는 보답이 기대된다. 하물며 예류자에게 보시를 하면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일래과의 실현을 닦는 자에게 보시하면 헤아릴 수 없고 잴 수 없는 보답이 기대된다. 하물며 일래자에게 보시를 하면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ko pana vādo sakadāgāmiphalasacchikiriyāya paṭipanne, ko pana vādo sakadāgāmissa, 불환과의 실현을 닦는 자에게 보시하면 헤아릴 수 없고 잴 수 없는 보답이 기대된다. 하물며 불환자에게 보시를 하면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ko pana vādo anāgāmiphalasacchikiriyāya paṭipanne, ko pana vādo anāgāmissa, 아라한과의 실현을 닦는 자에게 보시하면 헤아릴 수 없고 잴 수 없는 보답이 기대된다. 하물며 아라한에게 보시를 하면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ko pana vādo arahattaphalasacchikiriyāya paṭipanne, ko pana vādo arahante, 하물며 벽지불에게 보시를 하면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ko pana vādo paccekasambuddhe, 하물며 여래․아라한․정등각자에게 보시를 하면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ko pana vādo tathāgate arahante sammāsambuddhe. |
9. 아난다여, 축생에게 보시한다면, 그 보시는 백 배의 갚음이 기대된다. 부도덕한 일반 사람들에게 보시한다면, 그 보시는 천 배의 갚음이 기대된다. 도덕적인 일반 사람들에게 보시한다면, 그 보시는 십만 배의 갚음이 기대된다. 감각적 쾌락에 대한 욕망에서 벗어난 밖의 사람에게 보시한다면, 그 보시는 천억 배의 갚음이 기대된다. 흐름에 든 경지를 실현하는 길에 들어선 분에게 보시한다면, 그 보시는 셀 수 없고 헤아릴 수 없는 갚음이 기대된다. 하물며 흐름에 든 분에게 보시한다면 말할 나위가 있겠는가? sotāpattiphalasacchikiriyāya paṭipanne dānaṃ datvā asaṅkheyyā appameyyā dakkhiṇā pāṭikaṅkhitabbā, ko pana vādo sotāpanne, 하물며 한 번 돌아오는 경지를 실현하는 길에 들어선 분에게 보시한다면 말할 나위가 있겠는가? 하물며 한 번 돌아오는 분에게 보시한다면 말할 나위가 있겠는가? 하물며 돌아오지 않는 경지를 실현하는 길에 들어선 분에게 보시한다면 말할 나위가 있겠는가? 하물며 돌아오지 않는 분에게 보시한다면 말할 나위가 있겠는가? 하물며 거룩한 경지를 실현하는 길에 들어선 분에게 보시한다면 말할 나위가 있겠는가? 하물며 여래의 제자인 거룩한 분에게 보시한다면 말할 나위가 있겠는가? 하물며 연기법을 깨달은 분에게 보시한다면 말할 나위가 있겠는가? 하물며 이렇게 오신 분, 거룩한 분, 올바로 원만히 깨달은 분에게 보시한다면 말할 나위가 있겠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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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아난다여, 그런데 일곱 가지 승가를 위한 보시가 있다. 부처님을 상수로 하는 비구와 비구니 두 승가에 보시하는 것이 첫 번째 승가를 위한 보시이다. 여래가 완전한 열반에 들고 나서 비구와 비구니 두 승가에 보시하는 것이 두 번째 승가를 위한 보시이다. 비구 승가에 보시하는 것이 세 번째 승가를 위한 보시이다. 비구니 승가에 보시하는 것이 네 번째 승가를 위한 보시이다. 승가에서 이 정도의 비구와 비구니들을 제게 정해주십시오.라고 말하고 보시하는 것이 다섯 번째 승가를 위한 보시이다. 승가에서 이 정도의 비구들을 제게 정해주십시오.라고 말하고 보시하는 것이 여섯 번째 승가를 위한 보시이다. 승가에서 이 정도의 비구니들을 제게 정해주십시오.라고 말하고 보시하는 것이 일곱 번째 승가를 위한 보시이다. Satta kho panimānanda, saṅghagatā dakkhiṇā. Katamā satta? Buddhappamukhe ubhatosaṅghe dānaṁ deti— ayaṁ paṭhamā saṅghagatā dakkhiṇā. Tathāgate parinibbute ubhatosaṅghe dānaṁ deti— ayaṁ dutiyā saṅghagatā dakkhiṇā. Bhikkhusaṅghe dānaṁ deti— ayaṁ tatiyā saṅghagatā dakkhiṇā. Bhikkhunisaṅghe dānaṁ deti— ayaṁ catutthī saṅghagatā dakkhiṇā. ‘Ettakā me bhikkhū ca bhikkhuniyo ca saṅghato uddissathā’ti dānaṁ deti— ayaṁ pañcamī saṅghagatā dakkhiṇā. ‘Ettakā me bhikkhū saṅghato uddissathā’ti dānaṁ deti— ayaṁ chaṭṭhī saṅghagatā dakkhiṇā. ‘Ettakā me bhikkhuniyo saṅghato uddissathā’ti dānaṁ deti— ayaṁ sattamī saṅghagatā dakkhiṇā. |
10. 아난다여, 참모임에 대한 갚음의 보시에는 일곱 가지가 있다. 1) 부처님을 상수로 하는 수행승과 수행녀의 참모임에 보시한다. 이것이 첫 번째의 참모임에 대한 갚음의 보시이다. 2) 여래가 최후의 열반에 든 이후에 수행승과 수행녀의 참모임에 보시한다. 이것이 두 번째의 참모임에 대한 갚음의 보시이다. 3) 수행승의 참모임에 보시한다. 이것이 세 번째의 참모임에 대한 갚음의 보시이다. 4) 수행녀의 참모임에 보시한다. 이것이 네 번째의 참모임에 대한 갚음의 보시이다. 5) ‘나를 위해 일정한 수행승들과 수행녀들을 지정해주십시오.’라고 말하고 보시한다. 이것이 다섯 번째의 참모임에 대한 갚음의 보시이다. 6) ‘나를 위해 일정한 수행승들을 지정해주십시오.’라고 말하고 보시한다. 이것이 여섯 번째의 참모임에 대한 갚음의 보시이다. 7) ‘나를 위해 일정한 수행녀들을 지정해주십시오.’라고 말하고 보시한다. 이것이 일곱 번째의 참모임에 대한 갚음의 보시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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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아난다여, 미래세에 계행이 청정치 못하고 삿된 법을 가졌으며 노란 가사를 목에 두른 일족들이 있을 것이다. 사람들은 승가를 위해 그 계행이 청정치 못한 자들에게 보시를 베풀 것이다. Bhavissanti kho panānanda, anāgatamaddhānaṁ gotrabhuno kāsāvakaṇṭhā dussīlā pāpadhammā. Tesu dussīlesu saṅghaṁ uddissa dānaṁ dassanti. People will give gifts to those unethical people in the name of the Saṅgha. 아난다여. 그렇더라고 승가를 위한 보시는 그 공덕이 헤아릴 수 없고 잴 수 없다고 나는 말한다. Tadāpāhaṁ, ānanda, saṅghagataṁ dakkhiṇaṁ asaṅkheyyaṁ appameyyaṁ vadāmi. 아난다여, 개인에게 하는 보시가 승가에 하는 보시보다 그 과보가 더 크다고 나는 절대 말하지 않는다. Na tvevāhaṁ, ānanda, kenaci pariyāyena saṅghagatāya dakkhiṇāya pāṭipuggalikaṁ dānaṁ mahapphalataraṁ vadāmi. 9.아난다여, 네 가지 보시의 청정이 있다. 무엇이 넷인가? 아난다여, 보시하는 자는 청정하지만, 보시받는 자는 청정치 못한 보시가 있다. 아난다여, 보시받는 자는 청정하지만 보시하는 자는 청정치 못한 보시가 있다. 아난다여, 보시하는 자도 보시받는 자도 청정하지 못한 보시가 있다. 아난다여, 보시하는 자도 보시받는 자도 청정한 보시가 있다. 10.아난다여, 그러면 어떤 것이 보시하는 자는 청정하지만, 보시받는 자는 청정치 못한 보시인가? 아난다여, 여기 보시하는 자는 계행이 청정하고 좋은 성품을 가졌지만, 보시받는 자는 계행이 청정치 못하고 나쁜 성품을 가졌다. 아난다여, 이것이 보시하는 자는 청정하지만, 보시받는 자는 청정치 못한 보시이다. |
11. 아난다여, 미래에 황색의 목을 하고 비도덕적이고 악한 성품을 지닌 가문의 구성원들이 있을 것이다. 사람들은 참모임을 위해 그 비도덕적인 사람들에게 보시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모임에 주어진 보시는 셀 수 없고 헤아릴 수 없는 것이라고 나는 말한다. 그리고 결코 개인에 대한 보시가 참모임에 대한 보시보다 더욱 커다란 과보를 낳지는 못한다고 나는 말한다. 12. 아난다여, 보시의 청정에는 네 가지가 있다. 네 가지란 무엇인가? 1) 보시하는 자가 청정하지만 보시 받는 자는 청정하지 못한 보시가 있다. 2) 보시 받는 자는 청정하지만 보시하는 자는 청정하지 못한 보시가 있다. 3) 보시하는 자도 청정하지 못하지만 보시 받는 자도 청정하지 못한 보시가 있다. 4) 보시하는 자도 청정하지만 보시 받는 자도 청정한 보시가 있다. 13. 아난다여, 보시하는 자는 청정하지만 보시 받는 자는 청정하지 못한 보시란 어떠한 것인가? 보시하는 자는 도덕적이고 좋은 성품을 갖고 있으나 보시 받는 자는 비도덕적이고 나쁜 성품을 갖고 있다면, 보시하는 자는 청정하지만 보시 받는 자는 청정하지 못한 보시가 이루어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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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아난다여, 그러면 어떤 것이 보시받는 자는 청정하지만 보시하는 자는 청정치 못한 보시인가? 아난다여, 여기 보시하는 자는 계행이 청정치 못하고 나쁜 성품을 가졌지만, 보시받는 자는 계행이 청정하고 좋은 성품을 가졌다. 아난다여, 이것이 보시받는 자는 청정하지만 보시하는 자는 청정치 못한 보시이다. 12.아난다여, 그러면 어떤 것이 보시하는 자도 보시받는 자도 청정치 못한 보시인가? 아난다여, 여기 보시하는 자도 계행이 청정치 못하고 나쁜 성품을 가졌고 보시받는 자도 계행이 청정치 못하고 나쁜 성품을 가졌다. 아난다여, 이것이 보시하는 자도 보시받는 자도 청정치 못한 보시이다. 13.아난다여, 그러면 어떤 것이 보시하는 자도 보시받는 자도 청정한 보시인가? 아난다여, 여기 보시하는 자도 계행이 청정하고 좋은 성품을 가졌고 받는 자도 계행이 청정하고 좋은 성품을 가졌다. 아난다여, 이것이 보시하는 자도 보시받는 자도 청정한 보시이다. 아난다여, 이러한 네 가지 보시의 청정이 있다. 14.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선서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고 스승께서는 더 나아가 이렇게 말씀하셨다. |
14. 아난다여, 보시 받는 자는 청정하지만 보시하는 자는 청정하지 못한 보시란 어떠한 것인가? 보시하는 자는 비도덕적이고 나쁜 성품을 갖고 있으나 보시 받는 자는 도덕적이고 좋은 성품을 갖고 있다면, 보시 받는 자는 청정하지만 보시하는 자는 청정하지 못한 보시가 이루어진다. 15. 아난다여, 보시하는 자도 청정하지 못하지만 보시 받는 자도 청정하지 못한 보시란 어떠한 것인가? 보시하는 자도 비도덕적이고 나쁜 성품을 갖고 있고 보시 받는 자도 비도덕적이고 나쁜 성품을 갖고 있다면, 보시하는 자도 청정하지 못하지만 보시 받는 자도 청정하지 못한 보시가 이루어진다. 16. 아난다여, 보시하는 자도 청정하지만 보시 받는 자도 청정한 보시는 어떠한 것인가? 보시하는 자도 도덕적이고 좋은 성품을 갖고 있고 보시 받는 자도 도덕적이고 좋은 성품을 갖고 있다면, 보시하는 자도 청정하지만 보시 받는 자도 청정한 보시가 이루어진다. 17. 이처럼 세상에 존경받는 분께서는 말씀하셨다 바른 길로 잘 가신 분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시고 스승으로서 또 다시 이와 같은 시를 읊으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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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행이 청정한 자가 계행이 청정치 못한 자들에게 행위의 결실이 크다는 것을 확신하면서 법답게 얻은 것을 아주 깨끗한 마음으로 보시할 때 그러면 보시는 보시하는 자에 의해 청정해진다. 계행이 청정하지 못한 자가 계행이 청정한 자들에게 행위의 결실이 크다는 것을 확신하지 못하고 법답지 않게 얻은 것 깨끗하지 못한 마음으로 보시할 때 그러한 보시는 받는 자에 의해서 청정해진다. 계행이 청정치 못한 자가 계행이 청정치 못한 자들에게 행위의 결실이 크다는 것을 확신하지 못하고 법답지 않게 얻은 것 깨끗하지 못한 마음으로 보시할 때 그러한 보시는 풍성한 과보를 가져오지 못한다고 나는 말한다. 그러한 보시는 어느 쪽에 의해서도 청정해지지 않는다. Yo dussīlo dussīlesu dadāti dānaṁ,Adhammena laddhaṁ appasannacitto;Anabhisaddahaṁ kammaphalaṁ uḷāraṁ, Na taṁ dānaṁ vipulapphalanti brūmi. 계행이 청정한 자가 계행이 청정한 자들에게 행위의 결실이 크다는 것을 확신하면서 법답게 얻은 것을 아주 깨끗한 마음으로 보시할 때 그러한 보시는 풍성한 과보를 가져온다고 나는 말한다. Yo sīlavā sīlavantesu dadāti dānaṁ,Dhammena laddhaṁ supasannacitto;Abhisaddahaṁ kammaphalaṁ uḷāraṁ, Taṁ ve dānaṁ vipulapphalanti brūmi. |
계행을 지키는 자가 계행을 지키지 않는 자에게 행위의 과보가 크다는 믿음을 가지고 여법하게 얻어진 것을 흔쾌한 마음으로 보시하면 보시하는 자의 덕행이 보시를 청정하게 만드네. 계행을 지키지 않는 자가 계행을 지키는 자에게 행위의 과보가 크다는 믿음을 가지지 않고 여법하지 않게 얻어진 것을 불신의 마음으로 보시하면 보시 받는 자의 덕행이 보시를 청정하게 만드네. 계행을 지키지 않는 자가 계행을 지키지 않는 자에게 행위의 과보가 크다는 믿음을 가지지 않고 여법하지 않게 얻어진 것을 불신의 마음으로 보시하면 어느 쪽의 덕행도 보시를 청정하게 만들지 못하네. 그러한 보시는 풍성한 과보를 가져오지 못한다고 나는 말한다. 계행을 지키는 자가 계행을 지키는 자에게
행위의 과보가 크다는 믿음을 가지고 여법하게 얻어진 것을 흔쾌한 마음으로 보시하면 그 보시는 굉장한 과보를 가져온다고 나는 말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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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욕을 끊은 자가 탐욕을 끊은 자들에게 행위의 결실이 크다는 것을 확신하면서 법답게 얻은 것을 아주 깨끗한 마음으로 보시할 때 그러한 보시는 세속적인 보시 가운데 으뜸이라고 나는 말한다. |
탐욕을 떠난 자가 탐욕을 떠난 자에게 행위의 과보가 크다는 믿음을 가지고 여법하게 얻어진 것을 흔쾌한 마음으로 보시하면 그 보시는 세간적인 보시 가운데 최상이라고 나는 말한다. |
*알림: 스님과 재가자들이 함께 공부하는 <온라인불자회>에 초대합니다.매주 목요일 오후 9시에 구글meet영상토론 합니다. https://open.kakao.com/o/gYJgSxze 참여코드를 적으시고 들어오셔야 합니다. 참여코드는 buddh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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