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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불자회

2월 1일 목요일 웰라마 경(A9:20) 보시공덕

2024년  2월 1일 목요일 백장암독송집에 실려 있는 경전 순서대로  웰라마 경(A9:20)을 공부합니다. 이번경은 보시의 공덕과  수행의 공덕의 차이를 잘 보여주는 경입니다. 

 

나모 따사 바가와또 아라하또 삼마 삼붓다사(Namo tassa bhagavato arahato sammāsambuddhassa)
나모 따사 바가와또 아라하또 삼마 삼붓다사(Namo tassa bhagavato arahato sammāsambuddhassa)
나모 따사 바가와또 아라하또 삼마 삼붓다사(Namo tassa bhagavato arahato sammāsambuddhassa)

 

붓당 사라남 가차미 (Buddham Saranam Gacchami)  부처님께 귀의합니다. (3번)

담망 사라남 가차미 (Dhammam Saranam Gacchami) 가르침에 귀의합니다. (3번) 

상강 사라남 가차미 (Sangham Saranam Gacchami)  승가에 귀의합니다. (3번)

 

 

 

 

웰라마 경(A9:20)

 

1. 한때 세존께서는 사왓띠에서 제따 숲의 급고독원에 머무셨다. 그때 급고독 장자가 세존께 다가갔다. 가서는 세존께 절을 올리고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급고독 장자에게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장자여, 그대의 가문에서는 보시합니까?”

세존이시여, 저의 가문에서는 보시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거친 것이어서, 시큼한 죽과 함께 뉘가 섞인 싸라기 쌀로 만든 것입니다.”

 

 

2.“장자여, 거친 것을 보시하든 뛰어난 것을 보시하든 존중함이 없이 보시하고, 존경함이 없이 보시하고, 자기 손으로 직접 보시하지 않고, 내버리듯이 보시하고, 돌아오지 않는다는 견해를 가지고 보시하면, 비록 어떤 곳에서 그에게 그런 보시의 과보가 생기더라도 그의 마음은 훌륭한 음식을 즐기는 것으로 기울지 못하고, 훌륭한 의복을 즐기는 것으로 기울지 못하고, 훌륭한 탈것을 즐기는 것으로 기울지 못하고, 다섯 가닥의 훌륭한 감각적 욕망을 즐기는 것으로 기울지 못한다. 그뿐만 아니라 그의 아들들이나 아내나 하인들이나 심부름꾼들이나 일꾼들도 그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고, 귀 기울이지 않고, 잘 알아서 마음에 새기지 않는다.

 

그것은 무슨 이유 때문인가? 장자여, 이것은 존중함이 없이 한 업들의 과보 때문이다.”

 

 

3.“장자여, 거친 것을 보시하든 뛰어난 것을 보시하든 존중하면서 보시하고, 존경하면서 보시하고, 자기 손으로 직접 보시하고, 소중히 여기면서 보시하고, 돌아온다는 견해를 가지고 보시하면, 어떤 곳에서 그에게 그런 보시의 과보가 생길 때 그의 마음은 훌륭한 음식을 즐기는 것으로 기울고, 훌륭한 의복을 즐기는 것으로 기울고, 훌륭한 탈것을 즐기는 것으로 기울고, 다섯 가닥의 훌륭한 감각적 욕망을 즐기는 것으로 기운다. 그리고 그의 아들들이나 아내나 하인들이나 심부름꾼들이나 일꾼들은 그의 말을 들으려 하고, 귀 기울이고, 잘 알아서 마음에 새긴다.

 

그것은 무슨 이유 때문인가? 장자여, 이것은 존중함을 가지고 한 업들의 과보 때문이다.”

 

 

4.“장자여, 옛날에 웰라마라는 바라문이 있었다. 그는 이러한 큰 보시를 했다. 그는 은으로 가득 채운 84천 개의 황금 그릇을 보시했고, 금으로 가득 채운 84천 개의 은그릇을 보시했고, 칠보로 가득 채운 84천 개의 동()그릇을 보시했다. 84천의 코끼리를 보시했나니 황금으로 장식되고 황금의 깃발을 가지고 황금의 그물로 덮인 것들이었다. 84천 대의 마차를 보시했나니 사자 가죽으로 덮인 것, 호랑이 가죽으로 덮인 것, 표범 가죽으로 덮인 것, 황색 담요로 덮인 것, 황금으로 장식된 것, 황금의 깃발을 가진 것, 황금의 그물로 덮인 것들이었다. 84천의 암소들을 보시했나니 섬세한 황마(黃麻)로 엮은 밧줄을 가졌으며 동()으로 된 우유통을 가진 것들이었다. 84천의 처녀들을 보시했나니 보석을 박은 귀걸이로 장식하고 있었다. 84천의 침상을 보시했나니 양털로 된 덮개가 있고, 흰색의 모직 이불이 깔려 있고, 영양 가죽 깔개가 펴져있고, 차양으로 가려졌고, 양쪽에 심홍색의 베개가 있었다. 84천 꼬띠의 옷을 보시했나니 섬세한 아마(亞麻)로 된 것, 섬세한 비단으로 된 것, 섬세한 모직으로 된 것, 섬세한 면으로 된 것이었다.하물며 먹을 것과 마실 것, 즉 딱딱한 것, 부드러운 것, 액즙, 주스에 대해서는 더 말해서 무엇 하겠는가? 그것은 마치 강처럼 흘렀다.”

 

5.“장자여, 그대에게 이런 생각이 들지도 모른다. ‘참으로 그때에 큰 보시를 한 웰라마 바라문은 아마 어떤 다른 사람이었을 것이다.’라고. 장자여, 그러나 그렇게 여겨서는 안 된다. 바로 내가 그때 웰라마 바라문이었으며 내가 그런 큰 보시를 했다.장자여, 그러나 그러한 보시를 할 때 보시받아 마땅한 사람이 없었으며 아무도 그런 보시를 청정하게 하지 못했다.

 

 

장자여, 웰라마 바라문이 큰 보시를 했지만, 견해를 구족한 한 사람을 공양한다면, 이것은 그것보다 더 큰 결실이 있다.

 

 

장자여, 웰라마 바라문이 큰 보시를 했지만, 견해를 구족한 백 명의 사람들을 공양하는 것보다 한 사람의 일래자를 공양한다면, 이것이 그것보다 더 큰 결실이 있다.

 

 

장자여, 웰라마 바라문이 큰 보시를 했지만, 백 명의 일래자를 공양하는 것보다 한 사람의 불환자를 공양한다면, 이것이 그것보다 더 큰 결실이 있다.

 

 

장자여, 웰라마 바라문이 큰 보시를 했지만, 백 명의 불환자를 공양하는 것보다 한 사람의 아라한을 공양한다면, 이것이 그것보다 더 큰 결실이 있다.

 

 

장자여, 웰라마 바라문이 큰 보시를 했지만, 백 명의 아라한을 공양하는 것보다 한 사람의 벽지불을 공양한다면, 이것이 그것보다 더 큰 결실이 있다.

 

 

장자여, 웰라마 바라문이 큰 보시를 했지만, 백 명의 벽지불을 공양하는 것보다 한 사람의 여래ㆍ아라한ㆍ정등각을 공양한다면, 이것이 그것보다 더 큰 결실이 있다.

 

 

장자여, 웰라마 바라문이 큰 보시를 했지만, 부처님을 상수(上首)로 하는 비구승가를 공양한다면( yo ca buddhappamukhaṁ bhikkhusaṅghaṁ bhojeyya ), 이것이 그것보다 더 큰 결실이 있다.

 

장자여, 웰라마 바라문이 큰 보시를 했지만, 사방 승가를 위하여 승원을 짓는다면( yo ca cātuddisaṁ saṅghaṁ uddissa vihāraṁ kārāpeyya ), 이것이 그것보다 더 큰 결실이 있다.

 

장자여, 웰라마 바라문이 큰 보시를 했지만, 청정한 마음으로 부처님과 법과 승가에 귀의한다면( yo ca pasannacitto buddhañca dhammañca saṅghañca saraṇaṁ gaccheyya ), 이것이 그것보다 더 큰 결실이 있다.

 

청정한 마음으로 학습계목을 받아 지녀서 생명을 죽이는 것을 멀리 여의고, 주지 않은 것을 가지는 것을 멀리 여의고, 삿된 음행을 멀리 여의고, 거짓말을 멀리 여의고, 방일하는 근본이 되는 술과 중독성 물질을 멀리 여읜다면, 이것이 그것보다 더 큰 결실이 있다.

 

소젖을 한번 짜는 동안만큼이라도( yo ca antamaso gandhohanamattampi mettacittaṃ bhāveyya ) 자애의 마음을 닦는다면, 이것이 그것보다 더 큰 결실이 있다.

 

손가락을 튀기는 순간만큼이라도 무상이라는 인식을 닦는다면( yo ca accharāsaṅghātamattampi aniccasaññaṃ bhāveyya ), 이것이 그것보다 더 큰 결실이 있다.”

 


보시의 공덕을 설하고 있는 웰라마경이지만 실제로는 보시보다도 삼보에 귀의하는 공덕이 더 크다는 것을 말하기 위해서 이 경을 설한 것입니다. 아무리 보시를 많이해도 청정한 마음으로 삼귀의 하는 건만 못합니다. 보시는 남에게 하는 것이지만 삼귀의는 스스로 하는 것입니다.
 
논점
 
1. 이 경은 보시의 공덕과 수행의 공덕을 비교하는 경이고, 승가에 대한 정확한 의미가 설명되는 중요한 경이다.
...현재 조계종처럼  '승가=스님들'이라는 인식이 왜 잘못인지 이야기 해보자. 이야기 많이 함.
 

 

2. 청정한 마음으로 부처님과 법과 승가에 귀의한다면( yo ca pasannacitto buddhañca dhammañca saṅghañca saraṇaṁ gaccheyya )  
그냥 삼귀의와 청정한 마음으로 귀의 하는 차이는 무엇인가?
......청정하다 는 것은 이해를 바탕으로 믿음이다, 
pasannacitta adj. full of devotion; mentally full of confidence; lit. settled mind
 
 
3.이 경은 어떤 태도로 보시하느냐에 따라 공덕이 달라지다가, 어떤 대상에 보시하느냐에 따라 공덕이 달라진다는 설명이 이어진다. 지금은 어떤 것이 강조 되어야 할까? 

...공덕을 구하고 공덕을 바라는 것이 수행과 연결되는 것이 이 경이다. 행복경에서도 세속의 행복과 출세간의 행복을 이어주며 설명하고 있듯이. 온라인불자회는 삼귀의로 시작해서 자애 축원으로 끝나므로 이 시간은 공부시간이고, 공덕을 짓는 시간이기도 하다.  

 

4. 이 경에 비추어 보면 기복불교를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행복경과 웰라마경을 보면 세속의 행복과 출세간의 행복을 같이 이야기 하고 있고, 세속의 공덕과 출세간의 공덕을 같이 이야기 하고 있다. 이러한 행복과 공덕을 바라는 것을 기복이라 한다면 기복불교는 바람직하다.

 

 

5.각묵스님과 전재성님의 번역이 다르다.

"소젖을 한번 짜는 동안만큼이라도",   "단지 스치는 향기처럼이라도" 어떤 번역이 더 적절한가?  

It would be more fruitful to develop a heart of love—even just as long as it takes to pull a cow’s udder—than to undertake the training rules.(수자또비구)

 

 

 

 

 

웰라마 경(A9:20)-보시공덕의 차이와 삼귀의의 공덕

 

각묵   전재성


1. 
한때 세존께서는 사왓띠에서 제따 숲의 급고독원에 머무셨다. 그때 급고독 장자가 세존께 다가갔다. 가서는 세존께 절을 올리고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급고독 장자에게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장자여, 그대의 가문에서는 보시하는가?”
세존이시여, 저의 가문에서는 보시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거친 것이어서, 시큼한 죽과 함께 뉘가 섞인 싸라기 쌀로 만든 것입니다.”


2.“장자여, 거친 것을 보시하든 뛰어난 것을 보시하든 존중함이 없이 보시하고, 존경함이 없이 보시하고, 자기 손으로 직접 보시하지 않고, 내버리듯이 보시하고, 돌아오지 않는다는 견해를 가지고 보시하면, 비록 어떤 곳에서 그에게 그런 보시의 과보가 생기더라도 그의 마음은 훌륭한 음식을 즐기는 것으로 기울지 못하고, 훌륭한 의복을 즐기는 것으로 기울지 못하고, 훌륭한 탈것을 즐기는 것으로 기울지 못하고, 다섯 가닥의 훌륭한 감각적 욕망을 즐기는 것으로 기울지 못한다. 


“Dīyati me, bhante, kule dānaṃ; tañca kho lūkhaṃ kaṇājakaṃ biḷaṅgadutiyan”ti. “Lūkhañcepi, gahapati, dānaṃ deti paṇītaṃ vā; tañca asakkaccaṃ deti, acittīkatvā deti, asahatthā deti, apaviddhaṃ deti, anāgama­na­diṭṭhiko deti. Yattha yattha tassa tassa dānassa vipāko nibbattati, na uḷārāya bhattabhogāya cittaṃ namati, na uḷārāya vatthabhogāya cittaṃ namati, na uḷārāya yānabhogāya cittaṃ namati, na uḷāresu pañcasu kāmaguṇesu bhogāya cittaṃ namati.


그뿐만 아니라 그의 아들들이나 아내나 하인들이나 심부름꾼들이나 일꾼들도 그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고, 귀 기울이지 않고, 잘 알아서 마음에 새기지 않는다. 
Yepissa te honti puttāti vā dārāti vā dāsāti vā pessāti vā kammakarāti vā, tepi na sussūsanti na sotaṃ odahanti na aññā cittaṃ upaṭṭhapenti. 


그것은 무슨 이유 때문인가? 장자여, 이것은 존중함이 없이 한 업들의 과보 때문이다.”Taṃ kissa hetu? Evañhetaṃ, gahapati, hoti asakkaccaṃ katānaṃ kammānaṃ vipāko.
  1.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 세존께서는 싸밧티 시의 제따 숲에 있는 아나타삔디까 승원에 계셨다.
2. 그 때 장자 아나타삔디까가 세존께서 계신 곳으로 찾아왔다. 가까 이 다가와서 세존께 인사를 드리고 한쪽으로 물러나 앉았다. 한쪽으 로 물러나 앉은 장자 아나타삔디까에게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 하셨다.
3. [세존] "장자여, 그대의 가정에서 보시를 합니까?" [아나타삔디까] "세존이시여, 저의 가정에서 보시를 합니다. 그것 은 거친 쌀가루와 산죽입니다."

4. [세존] "장자여, 거친 것이건 세밀한 것이건 보시하는데, 정중하지 않게 주고, 공손하게 주지 않고, 손수 주지 않고, 쓰레기를 주고, 미래를 생각하지 않고 주면, 그 보시의 결과가 나타날 때마다 그의 마음은 뛰어난 음식도 즐길 수 없고, 뛰어난 옷도 즐길 수 없고, 뛰어 난 수레도 즐길 수 없고, 뛰어난 다섯 가지 감각적 쾌락의 대상을 즐길 수 없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자식, 아내, 하인, 노예, 일꾼이 그 의 말을 듣지 않고 그에게 귀를 기울이지 않고 그를 배려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무슨 까닭입니까? 장자여, 그것은 정중하게 주지 않은 행위의 과보입니다.




3.“
장자여, 거친 것을 보시하든 뛰어난 것을 보시하든 존중하면서 보시하고, 존경하면서 보시하고, 자기 손으로 직접 보시하고, 소중히 여기면서 보시하고, [보시의 과보가] 온다는 견해를 가지고 보시하면, 어떤 곳에서 그에게 그런 보시의 과보가 생길 때 그의 마음은 훌륭한 음식을 즐기는 것으로 기울고, 훌륭한 의복을 즐기는 것으로 기울고, 훌륭한 탈것을 즐기는 것으로 기울고, 다섯 가닥의 훌륭한 감각적 욕망을 즐기는 것으로 기운다. 그리고 그의 아들들이나 아내나 하인들이나 심부름꾼들이나 일꾼들은 그의 말을 들으려 하고, 귀 기울이고, [그가 한 말을] 잘 알아서 마음에 새긴다. 

그것은 무슨 이유 때문인가? 장자여, 이것은 존중함을 가지고 한 업들의 과보 때문이다.”
  5. 장자여, 거친 것이건 세밀한 것이건 보시하는데, 정중하게 주고, 공손하게 주고, 손수 주고, 쓰레기를 주지 않고, 미래를 생각하여 주 면, 그 보시의 결과가 나타날 때마다 그의 마음은 뛰어난 음식도 즐 길 수 있고 뛰어난 옷도 즐길 수 있고, 뛰어난 수레도 즐길 수 있고 뛰어난 다섯 가지 감각적 쾌락의 대상을 즐길 수 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자식, 아내, 하인, 노예, 일꾼이 그의 말을 듣고 그에게 귀를기울이고 그를 배려합니다. 

그것은 무슨 까닭입니까? 장자의 그것은 정중하게 주는 행위의 과보입니다.





4.“
장자여, 옛날에 웰라마라는 바라문이 있었다. 그는 이러한 큰 보시를 했다. 그는 은으로 가득 채운 84천 개의 황금 그릇을 보시했고, 금으로 가득 채운 84천 개의 은그릇을 보시했고, 칠보로 가득 채운 84천 개의 동 그릇을 보시했다. 84천의 코끼리를 보시했나니 황금으로 장식되고 황금의 깃발을 가지고 황금의 그물로 덮인 것들이었다. 84천 대의 마차를 보시했나니 사자 가죽으로 덮인 것, 호랑이 가죽으로 덮인 것, 표범 가죽으로 덮인 것, 황색 담요로 덮인 것, 황금으로 장식된 것, 황금의 깃발을 가진 것, 황금의 그물로 덮인 것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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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천의 암소들을 보시했나니 섬세한 황마(黃麻)로 엮은 밧줄을 가졌으며 은으로 된 우유통을 가진 것들이었다. 84천의 처녀들을 보시했나니 보석을 박은 귀걸이로 장식하고 있었다. 84천의 침상을 보시했나니 양털로 된 덮개가 있고, 흰색의 모직 이불이 깔려 있고, 영양 가죽 깔개가 펴져있고, 차양으로 가려졌고, 양쪽에 심홍색의 베개가 있었다. 84천 꼬띠의 옷을 보시했나니 섬세한 아마(亞麻)로 된 것, 섬세한 비단으로 된 것, 섬세한 모직으로 된 것, 섬세한 면으로 된 것이었다.하물며 먹을 것과 마실 것, 즉 딱딱한 것, 부드러운 것, 액즙, 주스에 대해서는 더 말해서 무엇 하겠는가? 그것은 마치 강처럼 흘렀다.”


  6. 장자여, 옛날에 벨라마라는 바라문이 살았는데, 그는 이의 은 보시, 굉장한 보시를 했습니다. 그는 팔만사천 개의 황금 그릇을 보시했는데 그 속에 은이 가득했고, 그는 팔만사천 개의 은그릇을 보시했는데 그 속에는 금이 가득했고 그는 팔만사천 개의 그릇 을 보시했는데 그 속에는 황금이 가득했고, 그는 팔만사천 다리의 코끼리를 보시했는데 그들은 금치장을 하고 금 깃발을 갖고 그들 을 덮었고, 그는 팔만사천 대의 수레를 보시했는데 그것들은 자 가죽을 깔고 호랑이 가죽을 깔고 표범의 가죽을 깔고 황모포를 들 고금 치장을 하고 금 깃발을 달고 금 그물을 덮었고,

그는 팔만사천마리의 암소를 보시했는데 황마포로 치장하고 동그릇의 착유통을 차고 있었고 그는 팔만사천 명의 소녀를 보시했는데 그녀들은 보석이 박힌 귀고리를 하고 있었고, 그는 팔만사천 개의 침대를 보 시했는데 그것들은 긴 털의 흑색 양모를 깔고 백색 양모를 받고 꽃 무늬의 양모포를 깔고 값비싼 카달리 사슴의 가족을 맡았고 그 위에 차양을 하고 양쪽으로는 붉은 베개가 있었고 그는 팔만사천고 띠의 옷을 보시했는데 그것들은 섬세한 마마, 섬세한 비단 한 모직, 섬세한 면적으로 이루어졌습니다. 하물며 누가 씹을만하고 삼킬 만하고 맛볼 만하고 마실만한 음식에 대해서 말할 수 있겠습 니까! 생각건대 강물들이 흘러넘치는 듯했습니다.
5.“장자여, 그대에게 이런 생각이 들지도 모른다. ‘참으로 그때에 큰 보시를 한 웰라마 바라문은 아마 어떤 다른 사람이었을 것이다.’라고. 장자여, 그러나 그렇게 여겨서는 안 된다. 바로 내가 그때 웰라마 바라문이었으며 내가 그런 큰 보시를 했다.장자여, 그러나 그러한 보시를 할 때 보시받아 마땅한 사람이 없었으며 아무도 그런 보시를 청정하게 하지 못했다.


장자여, 웰라마 바라문이 큰 보시를 했지만, 견해를 구족한 한 사람을 공양한다면, 이것은 그것보다 더 큰 결실이 있다.


장자여, 웰라마 바라문이 큰 보시를 했지만, 견해를 구족한 백 명의 사람들을 공양하는 것보다 한 사람의 일래자를 공양한다면, 이것이 그것보다 더 큰 결실이 있다.


장자여, 웰라마 바라문이 큰 보시를 했지만 백 명의 일래자를 공양하는 것보다 한 사람의 불환자를 공양한다면, 이것이 그것보다 더 큰 결실이 있다.


장자여, 웰라마 바라문이 큰 보시를 했지만, 백 명의 불환자를 공양하는 것보다 한 사람의 아라한을 공양한다면, 이것이 그것보다 더 큰 결실이 있다.


장자여, 웰라마 바라문이 큰 보시를 했지만, 백 명의 아라한을 공양하는 것보다 한 사람의 벽지불을 공양한다면, 이것이 그것보다 더 큰 결실이 있다.






백 명의 벽지불을 공양하는 것보다 한 사람의 여래ㆍ아라한ㆍ정등각을 공양한다면, 이것이 그것보다 더 큰 결실이 있다.


부처님을 상수로 하는 비구승가를 공양한다면, 이것이 그것보다 더 큰 결실이 있다.buddhap­pamu­khaṃ bhikkhusaṃghaṃ bhojeyya
 

장자여, 그대는 이와 같이 '그 당시에 그 보시, 그 굉장한 사 행한 바라문 벨라마는 누군가 다른 사람일 것이다.'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나 장자여, 그렇게 보아서는 안 됩니다. 그 당시에 그 보시, 그 굉장한 보시를 행한 바라문 벨라마는 바로 나였습니다. 장자여, 그 보시가 주어질 때에 아무도 보시받을 만한 사람이 없었고 아무도 그 보시를 정화시키지 못했습니다.

9. 장자여, 바라문 벨라마가 행한 그 보시, 그 굉장한 보시보다 한 사람의 견해를 갖춘 님에게 보시한다면, 그것이 더욱 커다란 과보 를 가져올 것입니다.

10. 장자여, 바라문 벨라마가 그 보시, 그 굉장한 보시를 행한 것이나 한 사람의 견해를 갖춘 님에게 보시하는 것보다 백 사람의 견해 를 갖춘 님에게 보시한다면, 그것이 더욱 커다란 과보를 가져올 것입니다.

11. 장자여, 바라문 벨라마가 그 보시, 그 굉장한 보시를 행한 것이 나 한 사람의 견해를 갖춘 님에게 보시하는 것이나 백 사람의 견해를 갖춘 님에게 보시하는 것보다 한번 돌아오는 님에게 보시한다 면, 그것이 더욱 커다란 과보를 가져올 것입니다.

12. 장자여, 바라문 벨라마가 그 보시, 그 굉장한 보시를 행한 것이 나 한 사람의 견해를 갖춘 님에게 보시하는 것이나 백 사람의 견해 를 갖춘 님에게 보시하는 것이나 한 사람의 한번 돌아오는 님에게 보시하는 것보다 백 사람의 한번 돌아오는 님에게 보시한다면, 그 것이 더욱 커다란 과보를 가져올 것입니다.

13. 장자여, 바라문 벨라마가 그 보시, 그 굉장한 보시를 행한 것이나 한 사람의 견해를 갖춘 님에게 보시하는 것이나 백 사람의 견해 를 갖춘 님에게 보시하는 것이나 한 사람의 한번 돌아오는 님에게 보시하는 것이나 백 사람의 한번 돌아오는 님에게 보시하는 것보 다. 한 사람의 돌아오지 않는 님에게 보시한다면, 그것이 더욱 커다란 과보를 가져올 것입니다.

11. 장자여, 바라문 벨라마가 그 보시, 그 굉장한 보시를 행한 것이 나 한 사람의 견해를 갖춘 님에게 보시하는 것이나 백 사람의 견해 를 갖춘 님에게 보시하는 것이나 한 사람의 한번 돌아오는 님에게 보시하는 것보다 백 사람의 한번 돌아오는 님에게 보시하는 것이나 한 사람의 돌아오지 않는 님에게 보시하는 것보다 백 사람의 돌아 오지 않는 님에게 보시한다면, 그것이 더욱 커다란 과보를 가져올 것입니다.

15. 장자여, 바라문 벨라마가 그 보시, 그 굉장한 보시를 행한 것이 나 한 사람의 견해를 갖춘 님에게 보시하는 것이나 백 사람의 견해 를 갖춘 님에게 보시하는 것이나 한 사람의 한번 돌아오는 님에게 보시하는 것이나 백 사람의 한번 돌아오는 님에게 보시하는 것이나 한 사람의 돌아오지 않는 님에게 보시하는 것이나 백 사람의 돌아 오지 않는 님에게 보시하는 것보다, 한 사람의 거룩한 님에게 보시 한다면, 그것이 더욱 커다란 과보를 가져올 것입니다.

16. 장자여, 바라문 벨라마가 그 보시, 그 굉장한 보시를 행한 것이 나 한 사람의 견해를 갖춘 님에게 보시하는 것이나 백 사람의 견해 를 갖춘 님에게 보시하는 것이나 한 사람의 한번 돌아오는 님에게 보시하는 것이나 백 사람의 한번 돌아오는 님에게 보시하는 것이나 한 사람의 돌아오지 않는 님에게 보시하는 것이나 백 사람의 돌아 오지 않는 님에게 보시하는 것이나 한 사람의 거룩한 님에게 보시 하는 것보다, 백사람의 거룩한 님에게 보시한다면, 그것이 더욱 커 다란 과보를 가져올 것입니다.


17. 장자여, 바라문 벨라마가 그 보시, 그 굉장한 보시를 행한 것이나 한 사람의 견해를 갖춘 님에게 보시하는 것이나 백 사람의 견해 를 갖춘 님에게 보시하는 것이나 한 사람의 한번 돌아오는 님에게 보시하는 것이나 백 사람의 한번 돌아오는 님에게 보시하는 것이나 한 사람의 돌아오지 않는 님에게 보시하는 것이나 백 사람의 돌아 오지 않는 님에게 보시하는 것이나 한 사람의 거룩한 님에게 보시 하는 것이나 백 사람의 거룩한 님에게 보시하는 것보다, 한 사람의 연기법을 깨달은 님에게 보시한다면, 그것이 더욱 커다란 과보 를 가져올 것입니다.

18. 장자여, 바라문 벨라마가 그 보시, 그 굉장한 보시를 행한 것이나 한 사람의 견해를 갖춘 님에게 보시하는 것이나 백 사람의 견해를 갖춘 님에게 보시하는 것이나 한 사람의 한번 돌아오는 님에게 보시하는 것이나 백 사람의 한번 돌아오는 님에게 보시하는 것이나 한 사람의 돌아오지 않는 님에게 보시하는 것이나 백 사람의 돌아 오지 않는 님에게 보시하는 것이나 한 사람의 거룩한 님에게 보시하는 것이나 백 사람의 거룩한 님에게 보시하는 것이나 한 사람의 연기법을 깨달은 님에게 보시하는 것보다, 백 사람의 연기법을 깨달은 님에게 보시한다면, 그것이 더욱 커다란 과보를 가져올 것입 니다.

19. 장자여, 바라문 벨라마가 그 보시, 그 굉장한 보시를 행한 것이 나 한 사람의 견해를 갖춘 님에게 보시하는 것이나 백 사람의 견해를 갖춘 님에게 보시하는 것이나 한 사람의 한번 돌아오는 님에게 보시하는 것이나 백 사람의 한번 돌아오는 님에게 보시하는 것이나 한 사람의 돌아오지 않는 님에게 보시하는 것이나 백 사람의 돌아 오지 않는 님에게 보시하는 것이나 한 사람의 거룩한 님에게 보시 하는 것이나 백 사람의 거룩한 님에게 보시하는 것이나 한 사람의 "연기법을 깨달은 님에게 보시하는 것이나 백 사람의 연기법을 깨달 은 님에게 보시하는 것보다, 한 사람의 이렇게 오신 님, 거룩한 님, 올바로 원만히 깨달은 님에게 보시한다면, 그것이 더욱 커다란 과 보를 가져올 것입니다.

20. 장자여, 바라문 벨라마가 그 보시, 그 굉장한 보시를 행한 것이나 한 사람의 견해를 갖춘 님에게 보시하는 것이나 백 사람의 견해 를 갖춘 님에게 보시하는 것이나 한 사람의 한번 돌아오는 님에게 보시하는 것이나 백 사람의 한번 돌아오는 님에게 보시하는 것이나 한 사람의 돌아오지 않는 님에게 보시하는 것이나 백 사람의 돌아 오지 않는 님에게 보시하는 것이나 한 사람의 거룩한 님에게 보시 하는 것이나 백 사람의 거룩한 님에게 보시하는 것이나 한 사람의 연기법을 깨달은 님에게 보시하는 것이나 백 사람의 연기법을 깨달 은 님에게 보시하는 것이나 한 사람의 이렇게 오신 님, 거룩한 님, 올바로 원만히 깨달은 님에게 보시하는 것보다, 깨달은 님 앞에서 수행승의 참모임에 공양한다면, 그것이 더욱 커다란 과보를 가져올 것입니다.

21. 장자여, 바라문 벨라마가 그 보시, 그 굉장한 보시를 행한 것이나 한 사람의 견해를 갖춘 님에게 보시하는 것이나 백 사람의 견해 를 갖춘 님에게 보시하는 것이나 한 사람의 한번 돌아오는 님에게 보시하는 것이나 백 사람의 한번 돌아오는 님에게 보시하는 것이나
한 사람의 돌아오지 않는 님에게 보시하는 것이나 백 사람의 돌아 오지 않는 님에게 보시하는 것이나 한 사람의 거룩한 님에게 보시 하는 것이나 백 사람의 거룩한 님에게 보시하는 것이나 한 사람의 연기법을 깨달은 님에게 보시하는 것이나 백 사람의 연기법을 깨달 은 님에게 보시하는 것이나 한 사람의 이렇게 오신 님, 거룩한 님, 올바로 원만히 깨달은 님에게 보시하는 것이나 깨달은 님 앞에서 수행승의 참모임에 공양하는 것보다, 사방의 참모임을 위해 승원을 세운다면, 그것이 더욱 커다란 과보를 가져올 것입니다.





사방 승가를 위하여 승원을 짓는다면, 이것이 그것보다 더 큰 결실이 있다.

청정한 마음으로 부처님과 법과 승가에 귀의한다면, 이것이 그것보다 더 큰 결실이 있다.


  22. 장자여, 바라문 벨라마가 그 보시, 그 굉장한 보시를 행한 것이 나 한 사람의 견해를 갖춘 님에게 보시하는 것이나 백 사람의 견해 를 갖춘 님에게 보시하는 것이나 한 사람의 한번 돌아오는 님에게 보시하는 것이나 백 사람의 한번 돌아오는 님에게 보시하는 것이나 한 사람의 돌아오지 않는 님에게 보시하는 것이나 백 사람의 돌아 오지 않는 님에게 보시하는 것이나 한 사람의 거룩한 님에게 보시 하는 것이나 백 사람의 거룩한 님에게 보시하는 것이나 한 사람의 연기법을 깨달은 님에게 보시하는 것이나 백 사람의 연기법을 깨달 은 님에게 보시하는 것이나 한 사람의 이렇게 오신 님, 거룩한 님, 올바로 원만히 깨달은 님에게 보시하는 것이나 깨달은 님 앞에서 수행승의 참모임에 공양하는 것이나 사방의 참모임을 위해 승원을 세우는 것보다, 청정한 믿음의 마음으로 부처님과 가르침과 참모임 에 귀의한다면, 그것이 더욱 커다란 과보를 가져올 것입니다.
청정한 마음으로 학습계목을 받아 지녀서 생명을 죽이는 것을 멀리 여의고, 주지 않은 것을 가지는 것을 멀리 여의고, 삿된 음행을 멀리 여의고, 거짓말을 멀리 여의고, 방일하는 근본이 되는 술과 중독성 물질을 멀리 여읜다면, 이것이 그것보다 더 큰 결실이 있다.

pasannacitto sikkhāpadāni samādiyeyya

소젖을 한번 짜는 동안만큼이라도 자애의 마음을 닦는다면, 이것이 그것보다 더 큰 결실이 있다.
yo ca antamaso gandho­ha­namattampi mettacittaṃ bhāveyya, 

손가락을 튀기는 순간만큼이라도 무상이라는 인식을 닦는다면, 이것이 그것보다 더 큰 결실이 있다.”
yo ca accha­rā­saṅghā­ta­mattampi aniccasaññaṃ bhāveyya, idaṃ tato mahap­phala­taran”ti.





「Gandhohanamattanとはgandha-ūhanamattaṃである。二本の指で、腫瘍の塊を掴んで嗅ぐだけでも、ということである。また他にgaddohanamatta’’n と〔異版の〕聖典にいわれているのは、牝牛の一本の毛を乳房から引くだけでも、という意味が言われたのである」Gandhohanamattanti gandhaūhanamattaṃ, dvīhaṅgulīhi gaṇḍapiṇḍaṃ gahetvā upasiṅghanamattaṃ. Apare pana ‘‘gaddohanamatta’’nti pāḷiṃ vatvā gāviyā ekavāraṃ thanaañchanamattanti atthaṃ vadanti. と『註』は述べる。真に受けてよい解釈かどうかはさておき、ここでは前者にのっとって訳した。いずれにせよ「ほんの僅かでも」という意味合いなのであろう。


 
23. 장자여, 바라문 벨라마가 그 보시, 그 굉장한 보시를 행한 것이나 한 사람의 견해를 갖춘 님에게 보시하는 것이나 백 사람의 견해 를 갖춘 님에게 보시하는 것이나 한 사람의 한번 돌아오는 님에게 보시하는 것이나 백 사람의 한번 돌아오는 님에게 보시하는 것이나 한 사람의 돌아오지 않는 님에게 보시하는 것이나 백 사람의 돌아 오지 않는 님에게 보시하는 것이나 한 사람의 거룩한 님에게 보시 하는 것이나 백 사람의 거룩한 님에게 보시하는 것이나 한 사람의 연기법을 깨달은 님에게 보시하는 것이나 백 사람의 연기법을 깨달 은 님에게 보시하는 것이나 한 사람의 이렇게 오신 님, 거룩한 님, 올바로 원만히 깨달은 님에게 보시하는 것이나 깨달은 님 앞에서 수행승의 참모임에 공양하는 것이나 사방의 참모임을 위해 승원을 세우는 것이나 청정한 믿음의 마음으로 부처님과 가르침과 참모임 에 귀의하는 것보다, 청정한 믿음의 마음으로 살아있는 생명을 죽 이는 것을 삼가고, 주지 않는 것을 빼앗는 것을 삼가고, 사랑을 나눔에 잘못을 범하는 것을 삼가고, 거짓말을 하는 것을 삼가고, 곡주나 과일주등의 취기있는 것에 취하는 것을 삼가는 학습계율을 갖춘다면, 그것이 더욱 커다란 과보를 가져올 것입니다.

24. 장자여, 바라문 벨라마가 그 보시, 그 굉장한 보시를 행한 것이 나 한 사람의 견해를 갖춘 님에게 보시하는 것이나 백 사람의 견해 를 갖춘 님에게 보시하는 것이나 한 사람의 한번 돌아오는 님에게 보시하는 것보다 백 사람의 한번 돌아오는 님에게 보시하는 것이나 한 사람의 돌아오지 않는 님에게 보시하는 것이나 백 사람의 돌아 오지 않는 님에게 보시하는 것이나 한 사람의 거룩한 님에게 보시 하는 것이나 백 사람의 거룩한 님에게 보시하는 것이나 한 사람의 연기법을 깨달은 님에게 보시하는 것이나 백 사람의 연기법을 깨달은 님에게 보시하는 것이나 한 사람의 이렇게 오신 님, 거룩한 님, 올바로 원만히 깨달은 님에게 보시하는 것이나 깨달은 님 앞에서 수행승의 참모임에 공양하는 것이나 사방의 참모임을 위해 승원을 세우는 것이나 청정한 믿음의 마음으로 부처님과 가르침과 참모임 에 귀의하는 것이나 청정한 믿음의 마음으로 살아있는 생명을 죽이 는 것을 삼가고, 주지 않는 것을 빼앗는 것을 삼가고, 사랑을 나눔 에 잘못을 범하는 것을 삼가고, 거짓말을 하는 것을 삼가고, 주나 과일주 등의 취기있는 것에 취하는 것을 삼가는 학습계율을 갖추는 것보다, 단지 스치는 향기처럼이라도 자애의 마음을 닦는다면, 그 것이 더욱 커다란 과보를 가져올 것입니다.

25. 장자여, 바라문 벨라마가 그 보시, 그 굉장한 보시를 행한 것이 나 한 사람의 견해를 갖춘 님에게 보시하는 것이나 백 사람의 견해 를 갖춘 님에게 보시하는 것이나 한 사람의 한번 돌아오는 님에게 보시하는 것이나 백 사람의 한번 돌아오는 님에게 보시하는 것이나 한 사람의 돌아오지 않는 님에게 보시하는 것이나 백 사람의 돌아 오지 않는 님에게 보시하는 것이나 한 사람의 거룩한 님에게 보시 하는 것이나 백 사람의 거룩한 님에게 보시하는 것이나 한 사람의 연기법을 깨달은 님에게 보시하는 것이나 백 사람의 연기법을 깨달 은 님에게 보시하는 것이나 한 사람의 이렇게 오신 님, 거룩한 님, 올바로 원만히 깨달은 님에게 보시하는 것이나 깨달은 님 앞에서 수행승의 참모임에 공양하는 것이나 사방의 참모임을 위해 승원을 세우는 것이나 청정한 믿음의 마음으로 부처님과 가르침과 참모임 에 귀의하는 것이나 청정한 믿음의 마음으로 살아있는 생명을 죽이 는 것을 삼가고, 주지 않는 것을 빼앗는 것을 삼가고, 사랑을 나눔 에 잘못을 범하는 것을 삼가고, 거짓말을 하는 것을 삼가고 과일주 등의 취기있는 것에 취하는 것을 삼가는 학습계율을 갖추는 것이나 단지 스치는 향기처럼이라도 자애의 마음을 닦는 것보다. 단지 손가락 튕기는 순간이라도 무상에 대한 지각을 닦는다면, 그 것이 더욱 커다란 과보를 가져올 것입니다."

 

 

 

 

*알림: 스님과 재가자들이 함께 공부하는 <온라인불자회>에 초대합니다.매주 목요일 오후 9시에 구글meet영상토론 합니다. 
https://open.kakao.com/o/gYJgSxze

참여코드를 적으시고 들어오셔야 합니다.
참여코드는 buddh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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