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2월 22일 목요일 오후 9시, '성스러운 구함 경(M26)'을 공부하였고 다시 3월 7일날 다시 '성스러운 구함 경(M26)'을 공부합니다. 이 경은 부처님이 스스로 당신의 출가부터 성도까지의 수행과정을 밝힌 경으로 후대에 '부처님 일대기'를 구성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되어왔습니다. 한번으로 끝내기에는 긴경이라서 3월 7일 목요일에도 이 경을 가지고 공부하겠습니다.(2월 29일 목요일은 자유주제 토론날입니다) 저희들이 교재로 사용하고 있는 <백장암독송집> 이 필요하신 분들은 백장암 종무소(063-636-3598)에 연락하셔요.
오늘도 다같이 부처님께 예경하고 삼귀의를 하겠습니다.
나모 따사 바가와또 아라하또 삼마 삼붓다사(Namo tassa bhagavato arahato sammāsambuddhassa)
나모 따사 바가와또 아라하또 삼마 삼붓다사(Namo tassa bhagavato arahato sammāsambuddhassa)
나모 따사 바가와또 아라하또 삼마 삼붓다사(Namo tassa bhagavato arahato sammāsambuddhassa)
붓당 사라남 가차미 (Buddham Saranam Gacchami) 부처님께 귀의합니다. (3번)
담망 사라남 가차미 (Dhammam Saranam Gacchami) 가르침에 귀의합니다. (3번)
상강 사라남 가차미 (Sangham Saranam Gacchami) 승가에 귀의합니다. (3번)
성스러운 구함 경(M26) 백장암 윤문본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때 세존께서는 사왓티에서 제따 숲의 아나타삔디까 원림에 머무셨다.
2. 그때 세존께서는 오전에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발우와 가사를 수하시고 사왓티로 탁발하러 가셨다. 그때 많은 비구가 아난다 존자를 만나러 갔다. 만나러 가서는 아난다 존자에게 이와 같이 말했다.
도반 아난다여, 우리가 세존의 면전에서 설법을 들은 지가 오래되었습니다. 도반 아난다여, 우리는 세존의 면전에서 설법을 들을 수 있으면 참 좋겠습니다.
도반들이여, 그렇다면 람마까 바라문의 아쉬람으로 가십시오. 그러면 세존의 면전에서 설법을 들을 수 있을 겁니다.
그러겠습니다, 도반이여.라고 그 비구들은 아난다 존자에게 대답했다.
3. 그때 세존께서는 사왓티에서 탁발하여 공양을 마치시고 탁발에서 돌아와 아난다 존자를 부르셨다.
아난다여, 동쪽 원림의 녹자모 강당으로 가서 낮 동안 머물자.
그러겠습니다. 세존이시여.라고 아난다 존자는 세존께 대답했다. 그러자 세존께서는 아난다 존자와 함께 동쪽 원림의 녹자모 대강당(pubbārāmo migāramātupāsādo,동원정사)으로 가서 낮 동안을 머무셨다. 그때 세존께서는 해거름에 [낮 동안의] 홀로 앉음에서 일어나셔서 아난다 존자를 부르셨다.
아난다여, 동 꼿타까로 목욕하러 가자.
그러겠습니다, 세존이시여,라고 아난다 존자는 세존께 대답했다. 그리하여 부처님께서는 아난다 존자와 더불어 동 꼿타까로 목욕을 가셨다. 동 꼿타까에서 목욕을 하고 나와 가사 하나만을 입고 몸을 말리고 계셨다. 그때 아난 존자는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이 근처에 람마까 바라문의 아쉬람이 있습니다. 세존이시여, 람마까 바라문의 아쉬람은 상쾌한 곳입니다. 세존이시여, 람마까 바라문의 아쉬람은 편안합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 자비를 베푸시어 람마까 바라문의 아쉬람을 방문해주시면 좋겠습니다.세존께서는 침묵으로 승낙하셨다.
4. 그러자 세존께서는 람마까 바라문의 아쉬람으로 가셨다. 그때 비구들은 람마까 바라문의 아쉬람에서 법담을 나누며 모여있었다.
그러자 세존께서는 문밖에 서서 그 이야기가 끝나는 것을 기다리고 계셨다. 그때 세존께서는 이야기가 끝난 것을 아시고 헛기침을 하시며 문(aggaḷaṁ )을 가볍게 두드리셨다. (Atha kho bhagavā bahidvārakoṭṭhake aṭṭhāsi kathāpariyosānaṁ āgamayamāno. Atha kho bhagavā kathāpariyosānaṁ viditvā ukkāsitvā aggaḷaṁ ākoṭesi.)
*āgamayamāna prp (+acc). waiting (for) [√āgam–*aya–māna]
그 비구들은 세존께 문을 열어드렸다.
세존께서는 람마까 바라문의 아쉬람에 들어가셔서 마련해 드린 자리에 앉으셨다. 자리에 앉으신 세존께서는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여기 모여서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가? 그리고 그대들이 하다 만 이야기는 무엇인가?
세존이시여, 세존에 대해 이야기를 하던 중에 세존께서 오셨습니다.
장하구나, 비구들이여! 비구들이여, 이처럼 법담을 나누기 위해 모여있다니, 믿음으로 집을 나와 출가한 그대 좋은 가문의 아들들에게 참으로 어울리는 일이구나. 비구들이여, 그대들이 함께 모이면 오직 두 가지 할 일이 있나니, 법담을 나누거나 성스러운 침묵을 기키는 것이다.(Sannipatitānaṁ vo, bhikkhave, dvayaṁ karaṇīyaṁ— dhammī vā kathā, ariyo vā tuṇhībhāvo.)
5. 비구들이여, 두 가지 구함이 있나니 성스럽지 못한 구함과 성스러운 구함이 그것이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성스럽지 못한 구함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어떤 사람은 자신이 태어나기 마련이면서 또한 태어나기 마련인 것을 구하고, 자신이 늙기 마련이면서 늙기 마련인 것을 구하고, 자신이 병들기 마련이면서 병들기 마련인 것을 구하고, 자신이 죽기 마련이면서 죽기 마련인 것을 구하고, 자신이 슬퍼하기 마련이면서 슬퍼하기 마련인 것을 구하고, 자신이 오염되기 마련이면서 오염되기 마련인 것을 구한다.
6.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태어나기 마련인 것이라고 말하는가?
비구들이여, 아들과 아내가 태어나기 마련인 것이다. 하인과 하녀가 태어나기 마련인 것이다. 염소와 양이 태어나기 마련인 것이다. 닭과 돼지가 태어나기 마련인 것이다. 코끼리와 소와 수말과 암말이 태어나기 마련인 것이다. 금과 은이 태어나기 마련인 것이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취착이 태어나기 마련인 것이라고 말합니다.
여기에 묶이고 홀리고 집착하여 자신이 태어나기 마련이면서 또한 태어나기 마련인 것을 구한다.
7.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을 늙기 마련인 것이라고 하는가?
비구들이여, 아들과 아내가 늙기 마련인 것이다. 하인과 하녀가 … 염소와 양이 … 닭과 돼지가 … 코끼리와 소와 수말과 암말이 … 금과 은이 늙기 마련인 것이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취착이 늙기 마련인 것이라고 말합니다. 여기에 묶이고 홀리고 집착하여 자신이 늙기 마련이면서 또한 늙기 마련인 것을 구한다.
8.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을 병들기 마련인 것이라고 하는가?
비구들이여, 아들과 아내가 병들기 마련인 것이다. 하인과 하녀가 … 염소와 양이 … 닭과 돼지가 … 코끼리와 소와 수말과 암말이 병들기 마련인 것이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취착이 병들기 마련인 것이라고 말합니다. 여기에 묶이고 홀리고 집착하여 자신이 병들기 마련이면서 또한 병들기 마련인 것을 구한다.
9.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을 죽기 마련인 것이라고 하는가?
비구들이여, 아들과 아내가 죽기 마련인 것이다. 하인과 하녀가 … 염소와 양이 … 닭과 돼지가 … 코끼리와 소와 수말과 암말이 죽기 마련인 것이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취착이 죽기 마련인 것이라고 말합니다. 여기에 묶이고 홀리고 집착하여 자신이 죽기 마련이면서 또한 죽기 마련인 것을 구한다.
10.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을 슬퍼하기 마련인 것이라고 하는가?
비구들이여, 아들과 아내가 슬퍼하기 마련인 것이다. 하인과 하녀가 … 염소와 양이 … 닭과 돼지가 … 코끼리와 소와 수말과 암말이 슬퍼하기 마련인 것이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취착이 슬퍼하기 마련인 것이라고 말합니다. 여기에 묶이고 홀리고 집착하여 자신이 슬퍼하기 마련이면서 또한 슬퍼하기 마련인 것을 구한다.
11.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을 오염되기 마련인 것이라고 하는가? 비구들이여, 아들과 아내가 오염되기 마련인 것이다. 하인과 하녀가 오염되기 마련인 것이다. 염소와 양이 오염되기 마련인 것이다. 닭과 돼지가 오염되기 마련인 것이다. 코끼리와 소와 수말과 암말이 오염되기 마련인 것이다. 금과 은이 오염되기 마련인 것이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취착이 오염되기 마련인 것이라고 말합니다. 여기에 묶이고 홀리고 집착하여 자신이 오염되기 마련이면서 또한 오염되기 마련인 것을 구한다.
12.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성스러운 구함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어떤 사람은 자신이 태어나기 마련이지만 태어나기 마련인 것에서 위험을 알아 태어남이 없는 위없는 안온인 열반을 구하고, 자신이 늙기 마련이지만 늙기 마련인 것에서 재난을 알아 늙음이 없는 위없는 유가안은인 열반을 구하고, 자신이 병들기 마련이지만 병들기 마련인 것에서 재난을 알아 병이 없는 위없는 유가안은인 열반을 구하고, 자신이 죽기 마련이지만 죽기 마련인 것에서 재난을 알아 죽음이 없는 위없는 유가안은인 열반을 구하고, 자신이 슬퍼하기 마련이지만 슬퍼하기 마련인 것에서 재난을 알아 슬픔이 없는 위없는 유가안은인 열반을 구하고, 자신이 오염되기 마련이지만 오염되기 마련인 것에서 재난을 알아 오염이 없는 위없는 유가안은인 열반을 구한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성스러운 구함입니다.
13. 비구들이여, 나도 역시 깨닫기 전, 아직 정등각을 성취하지 못한 보살이었을 때 나 자신이 태어나기 마련이면서 태어나기 마련인 것을 구했다. 나 자신이 늙기 마련이면서 … 나 자신이 병들기 마련이면서 … 나 자신이 죽기 마련이면서 … 나 자신이 슬퍼하기 마련이면서 … 나 자신이 오염되기 마련이면서 오염되기 마련인 것을 구했다.
비구들이여, 그런 내게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왜 나 자신이 태어나면서 태어나기 마련인 것을 구하고 … 나는 왜 나 자신이 늙기 마련이면서 … 나는 왜 나 자신이 병들기 마련이면서 … 나는 왜 나 자신이 죽기 마련이면서 … 나는 왜 나 자신이 슬퍼하기 마련이면서 … 나는 왜 나 자신이 오염되기 마련이면서 오염되기 마련인 것을 구하는가? 참으로 나는 나 자신이 태어나기 마련이면서 태어나기 마련인 것에서 재난을 알아 태어남이 없는 위없는 유가안은인 열반을 구하고, 나 자신이 늙기 마련이면서 … 나 자신이 병들기 마련이면서 … 나 자신이 죽기 마련이면서 … 나 자신이 슬퍼하기 마련이면서 … 나 자신이 오염되기 마련이면서 오염되기 마련인 것에서 재난을 알아 오염이 없는 위없는 유가안은인 열반을 구하리라.
14.비구들이여, 그런 나는 나중에 아직은 연소하고 젊고 머리가 검고 축복받은 젊음을 구족한 초년기에 부모님이 원치 않아 눈물을 흘리며 통곡하심에도 불구하고 삭발하고 가사를 입고 집을 떠나 출가했다.
15.그런 나는 이와 같이 출가하여 유익한 것을 구하고 위없는 평화로운 경지를 찾아 알라라 깔라마를 만나러 갔다. 가서는 알라라 깔라마에게 이렇게 말했다.
알라라 깔라마시여, 이 법과 율에서 청정범행을 닦고자 합니다.
비구들이여, 이렇게 말하자 알라라 깔라마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존자는 머무십시오. 이 법은 이 법에 대해 지혜가 있는 사람이라면 오래지 않아 자기 스승과 동등한 것을 스스로 최상의 지혜로 알고 실현하고 증득하여 머물 수 있는 그런 법입니다.
비구들이여, 그런 나는 오래지 않아 단번에 그 법을 증득했습니다. 비구들이여, 그가 말하자마자 "나는 압니다. 나는 봅니다"라고 지혜롭고 확신에 찬 말로 선언했습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인정했습니다.
비구들이여, 그런 내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알라라 깔라마는 단순히 믿음만으로나는 이 법을 스스로 최상의 지혜로 알고 실현하고 증득하여 머문다.라고 선언하는 것이 아니라, 참으로 알라라 깔라마는 이 법을 알고 보면서 머문다.
비구들이여, 그러자 나는 알라라 깔라마를 만나러 가서 이렇게 말했다.
깔라마 존자시여, 어떻게 이 법을 스스로 최상의 지혜로 알고 실현하고 증득했다고 선언하십니까?
비구들이여, 이렇게 말하자 알라라 깔라마는 무소유처에 대해 설명해주었다.
비구들이여, 그런 내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알라라 깔라마에게만 믿음이 있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도 믿음이 있다. 알라라 깔라마에게만 정진이 있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도 정진이 있다. 알라라 깔라마에게만 마음챙김이 있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도 마음챙김이 있다. 알라라 깔라마에게만 삼매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도 삼매가 있다. 알라라 깔라마에게만 통찰지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도 통찰지가 있다. 참으로 나는 알라라 깔라마가 스스로 최상의 지혜로 알고 실현하고 증득했다고 선언하는 그 법을 실현하기 위해 정진하리라.
비구들이여, 그런 나는 오래지 않아 단번에 그 법을 스스로 최상의 지혜로 알고 실현하고 증득하여 머물렀다.
비구들이여, 그러자 나는 알라라 깔라마를 만나러 갔다. 가서는 알라라 깔라마에게 이렇게 말했다.
깔라마 존자시여, 당신은 이렇게 나는 이 법을 스스로 최상의 지혜로 알고 실현하고 증득했다.‘라고 선언하십니까?
존자여, 나는 이렇게 이 법을 스스로 최상의 지혜로 알고 실현하고 증득했다고 선언합니다.
깔라마 존자시여, 나도 이렇게 이 법을 스스로 최상의 지혜로 알고 실현하고 증득했다고 선언합니다.
존자여, 존자와 같은 분이 우리의 동료 수행자가 되는 것은 참으로 우리에게 이득이고 큰 축복입니다. 이처럼 내가 스스로 최상의 지혜로 알고 실현하고 증득하여 선언한 그 법을 존자도 스스로 최상의 지혜로 알고 실현하고 증득하여 머뭅니다. 그리고 존자가 스스로 최상의 지혜로 알고 실현하고 증득하여 머무는 법을 나도 스스로 최상의 지혜로 알고 실현하고 증득하여 선언합니다.
이처럼 내가 아는 그 법을 존자가 알고, 존자가 아는 그 법을 내가 압니다. 이와 같이 나처럼 존자도 그렇고 존자처럼 나도 그러합니다. 오십시오, 존자여. 우리 둘이 함께 머물면서 이 무리를 지도해 나갑시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알라라 깔라마는 나의 스승으로서 오히려 제자인 나에게 최상의 존경을 표했다. 비구들이여, 그런 내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법은 염오로 인도하지 못하고, 탐욕의 빛바램으로 인도하지 못하고, 소멸로 인도하지 못하고, 고요함으로 인도하지 못하고, 최상의 지혜로 인도하지 못하고, 바른 깨달음으로 인도하지 못하고, 열반으로 인도하지 못한다. 그것은 단지 무소유처에 다시 태어나게 할 뿐이다.
비구들이여, 그런 나는 그 법에 만족하지 않고 그 법을 염오하면서 떠나갔다.
16. 비구들이여, 그런 나는 유익한 것을 구하고 위없는 평화로운 경지를 찾아 웃다까 라마뿟따를 만나러 갔다. 가서는 웃다까 라마뿟따에게 이렇게 말했다.
웃다까 라마뿟따시여, 이 법과 율에서 청정범행을 닦고자 합니다.
비구들이여, 이렇게 말하자 웃다까 라마뿟따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존자는 머무십시오. 이 법은 이 법에 대해 지혜가 있는 사람이라면 오래지 않아 자기 스승과 동등한 것을 스스로 최상의 지혜로 알고 실현하고 증득하여 머물 수 있는 그런 법입니다.
비구들이여, 그런 나는 오래지 않아 즉시에 그 법을 증득했다. 비구들이여, 그런 나는 입술을 두드리자마자 말하자마자 지혜로운 말과 확신에 찬 말을 했다. 그래서 나는 나는 알고 본다.라고 선언했고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말했다.
비구들이여, 그런 내게 이런 생각이 들었다.
라마는 단순히 믿음만으로나는 이 법을 스스로 최상의 지혜로 알고 실현하고 증득하여 머문다.라고 선언하는 것이 아니라, 참으로 라마는 이 법을 알고 보면서 머문다.
비구들이여, 그러자 나는 웃다까 라마뿟따를 만나러 가서 이렇게 말했다.
라마뿟따 존자시여, 어떻게 이 법을 스스로 최상의 지혜로 알고 실현하고 증득하여 머문다고 선언하십니까?
비구들이여, 이렇게 말하자 웃다까 라마뿟따는 비상비비상처에 대해 설명해주었다.
비구들이여, 그런 내게 이런 생각이 들었다.
라마에게만 믿음이 있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도 믿음이 있다. 라마에게만 정진이 있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도 정진이 있다. 라마에게만 마음챙김이 있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도 마음챙김이 있다. 라마에게만 삼매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도 삼매가 있다. 라마에게만 통찰지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도 통찰지가 있다. 참으로 나는 라마가 스스로 최상의 지혜로 알고 실현하고 증득하여 머문다고 선언하는 그 법을 실현하기 위해 정진하리라.
비구들이여, 그런 나는 오래지 않아 단번에 그 법을 스스로 최상의 지혜로 알고 실현하고 증득하여 머물렀다. 비구들이여, 그러자 나는 웃다까 라마뿟따를 만나러 갔다. 가서는 웃다까 라마뿟따에게 이렇게 말했다.
존자시여, 라마는 이렇게나는 이 법을 스스로 최상의 지혜로 알고 실현하고 증득했다.라고 선언하셨습니까?
존자여, 라마는 이렇게 이 법을 스스로 최상의 지혜로 알고 실현하고 증득했다고 선언하셨습니다.
라마뿟따 존자시여, 나도 이렇게 이 법을 스스로 최상의 지혜로 알고 실현하고 증득하여 머뭅니다.
존자여, 존자와 같은 분이 우리의 동료 수행자가 되는 것은 참으로 우리에게 이득이고 큰 축복입니다. 이처럼 라마가 스스로 최상의 지혜로 알고 실현하고 증득하여 선언한 그 법을 존자도 스스로 최상의 지혜로 알고 실현하고 증득하여 머뭅니다. 그리고 존자가 스스로 최상의 지혜로 알고 실현하고 증득하여 머무는 그 법을 라마도 스스로 최상의 지혜로 알고 실현하고 증득하였다고 선언했습니다.
이처럼 라마가 알았던 그 법을 존자가 알고, 존자가 아는 그 법을 라마가 알았습니다. 이와 같이 존자도 그렇고 존자처럼 라마도 그러했습니다.
오십시오, 존자여. 그대가 이 무리를 지도해주십시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나의 동료였던 웃다까 라마뿟따는 나를 스승의 위치에 올려놓고 나를 크게 공경했다. 비구들이여, 그런 내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법은 염오로 인도하지 못하고, 탐욕의 빛바램으로 인도하지 못하고, 소멸로 인도하지 못하고, 고요함으로 인도하지 못하고, 최상의 지혜로 인도하지 못하고, 바른 깨달음으로 인도하지 못하고, 열반으로 인도하지 못한다. 그것은 단지 비상비비상처에 다시 태어나게 할 뿐이다.
비구들이여, 그런 나는 그 법에 만족하지 않고 그 법을 염오하면서 떠나갔다.
17. 비구들이여, 그런 나는 유익한 것을 구하고 위없는 평화로운 경지를 찾아 마가다 지방에서 차례로 유행하다가 우루웰라의 장군촌(세나니가마)에 이르렀다. 그곳에서 아름다운 땅과 매력적인 숲과 유유히 흐르는 깨끗한 강과 아름다운 강기슭과 근처에 탁발할 수 있는 마을을 보았다. 비구들이여, 그런 내게 이런 생각이 들었다.
땅은 풍요롭고 숲은 상쾌하다. 유유히 흐르는 강은 맑고, 강기슭은 아름답다. 근처에는 탁발할 수 있는 마을이 있다. 참으로 이곳은 용맹정진을 원하는 좋은 가문의 아들들이 용맹정진하기에 적합한 곳이다.
18. 비구들이여, 그런 나는 자신이 태어나기 마련이면서 태어나기 마련인 것에서 재난을 알아 태어남이 없는 위없는 유가안은인 열반을 구하여 태어남이 없는 위없는 유가안은인 열반을 증득했다.
자신이 늙기 마련이면서 늙기 마련인 것에서 재난을 알아 늙음이 없는 위없는 유가안은인 열반을 구하여 늙음이 없는 위없는 유가안은인 열반을 증득했다.
자신이 병들기 마련이면서 병들기 마련인 것에서 재난을 알아 병이 없는 위없는 유가안은인 열반을 구하여 병이 없는 위없는 유가안은인 열반을 증득했다.
자신이 죽기 마련이면서 죽기 마련인 것에서 재난을 알아 죽음이 없는 위없는 유가안은인 열반을 구하여 죽음이 없는 위없는 유가안은인 열반을 증득했다.
자신이 슬퍼하기 마련이면서 슬퍼하기 마련인 것에서 재난을 알아 슬픔이 없는 위없는 유가안은인 열반을 구하여 슬픔이 없는 위없는 유가안은인 열반을 증득했다. 자신이 오염되기 마련이면서 오염되기 마련인 것에서 재난을 알아 오염이 없는 위없는 유가안은인 열반을 구하여 오염이 없는 위없는 유가안은인 열반을 증득했다. 내게는 앎과 봄이 생겼다. 나의 해탈은 확고부동하다. 이것이 나의 마지막 태어남이다. 더 이상 다시 태어남은 없다.라고.
19. 비구들이여, 그런 내게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증득한 이 법은 심오하여 보기 어렵고 깨닫기 어렵고 고요하고 수승하고 사유의 영역을 넘어섰고 미묘하여 오로지 현자들만이 알아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집착을 좋아하고 집착을 기뻐하고 집착을 즐긴다. 집착을 좋아하고 집착을 기뻐하고 집착을 즐기는 사람들이 이런 이치 즉 이것이 조건이 됨, 연기를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또한 모든 형성된 것들의 가라앉음, 모든 재생의 근거를 완전히 놓아 버림, 갈애의 멸진, 탐욕의 빛바램, 소멸, 열반을 보기도 어려울 것이다. 설혹 내가 법을 가르친다고 하더라도 저들의 내 말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나를 피로하게 할 뿐이고, 나를 성가시게 할 뿐이다.
그때 나에게 이전에 들어보지 못한 게송이 문득 떠올랐다.
내가 어렵게 증득한 법을
과연 지금 당장 설할 필요가 있을까?
탐욕과 성냄으로 가득한 자들은
흐름을 거스르고 미묘하고
심오하고 보기 어렵고 미세한
이 법을 깨닫기란 실로 어렵네.
어둠의 무더기에 덮여있고
탐욕에 물든 자들은 이 법을 보지 못하리.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숙고할 때 내 마음은 법을 설하기보다는 무관심으로 기울었다.
20.비구들이여, 그때 사함빠띠 범천은 그의 마음으로 내 마음의 일으킨 생각을 알고서 이런 생각을 했다.
여래•아라한•정등각자께서 법을 설하기보다는 무관심으로 마음을 기울이신다면 세상은 망할 것이고, 세상은 파멸할 것이다.
비구들이여, 그러자 사함빠띠 범천은 마치 힘센 사람이 구부린 팔을 펴고 편 팔을 구부리듯이 그렇게 재빨리 범천의 세상에서 사라져 내 앞에 나타났다. 비구들이여, 그때 사함빠띠 범천은 한쪽 어깨가 드러나게 윗옷을 입고 나를 향해 합장하고 이렇게 말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법을 설하소서. 선서께서는 법을 설하소서. 눈에 먼지가 적게 낀 중생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법을 듣지 않으면 타락할 것입니다. 그 법을 이해할만한 자들이 있을 것입니다.
비구들이여, 사함빠띠 범천은 이렇게 말했다. 이렇게 말하고 다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때 묻은 자들이 궁리해낸 청정치 못한 법이
일찍이 마가다에 퍼져있으니,
불사의 문을 여소서.
때 없는 분이 깨달으신 법을 듣게 하소서.
마치 바위산 꼭대기에 서면
주변의 사람들을 두루 볼 수 있듯이
널리 보는 눈을 지닌 현자시여,
그와 같이 법의 궁전에 올라
슬픔을 제거한 분께서는
슬픔에 빠져 있고 태어남과 늙음에 압도된
자들을 굽어 살피소서.
일어서소서. 영웅이시여, 전쟁의 승리자시여,
대상의 지도자시여, 빚 없는 분이시여, 세상에 유행하소서.
법을 이해할만한 자들이 있으리니
세존께서는 법을 설하소서.
21. 비구들이여, 그러자 나는 범천의 간청을 충분히 알고 중생에 대한 연민으로 부처의 눈으로 세상을 두루 살펴보았다. 비구들이여, 나는 부처의 눈으로 세상을 두루 살펴보면서 중생들 가운데는 때가 엷게 낀 사람도 있고 두텁게 낀 사람도 있고, 기능이 예리한 사람도 있고 둔한 사람도 있고, 자질이 선량한 사람도 있고 나쁜 사람도 있고, 가르치기 쉬운 사람도 있고 어려운 사람도 있으며, 어떤 사람들은 저세상과 비난에 대해 두려움을 보며 지내는 것도 보았다.
예를 들면 어떤 청련이나 홍련이나 백련은 물속에서 생겨나 물속에서 성장하고 물에 잠겨 그 속에서만 자란다. 어떤 청련이나 홍련이나 백련은 물속에서 생겨나 물속에서 자라서 물의 표면까지 나온다. 어떤 청련이나 홍련이나 백련은 물속에서 생겨나 물속에서 성장하여 물 위로 올라와 당당하게 서서 물에 젖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그와 같이 나는 부처의 눈으로 세상을 두루 살펴보면서 중생들 가운데 때가 엷게 낀 사람도 있고 두텁게 낀 사람도 있고, 기능이 예리한 사람도 있고 둔한 사람도 있고, 자질이 선량한 사람도 있고 나쁜 사람도 있고, 가르치기 쉬운 사람도 있고 어려운 사람도 있으며, 어떤 사람들은 저세상과 비난에 대해 두려움을 보며 지내는 것도 보았다. 비구들이여, 그때 나는 사함빠띠 범천에게 게송으로 대답했다.
그들에게 감로의 문은 열렸다.
귀를 가진 자, 자신의 믿음을 버려라.
범천이여, 이 미묘하고 숭고한 법을
성가실 뿐이라는 생각에
사람들에게 설하지 않았네.
비구들이여, 그러자 사함빠띠 범천은 나는 세존께서 법을 설하시도록 기회를 제공했다.라고 생각하면서 내게 절을 올리고 오른쪽으로 돌아 그곳에서 사라졌다.
22. 비구들이여, 그런 내게 이런 생각이 들었다.
누구에게 제일 먼저 법을 설해야 할까? 누가 이 법을 빨리 이해할 수 있을까?
비구들이여, 그런 내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알라라 깔라마는 지자이시고 슬기롭고 현명하며 오랫동안 때가 엷게 낀 분이다. 나는 알라라 깔라마에게 제일 먼저 법을 설하리라. 그는 이 법을 빨리 이해할 것이다.
비구들이여, 그러자 천신들이 내게 와서 이렇게 말했다.
세존이시여, 알라라 깔라마는 칠 일 전에 임종했습니다.
그러자 내게도알라라 깔라마는 칠 일 전에 임종했다.라는 앎과 봄이 일어났다. 비구들이여, 그런 내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알라라 깔라마는 크게 잃었구나! 그가 이 법을 들었더라면 즉시 이해했을 것이다.
23. 비구들이여, 그런 내게 이런 생각이 들었다.
누구에게 제일 먼저 법을 설해야 할까? 누가 이 법을 빨리 이해할 수 있을까?
비구들이여, 그런 내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웃다까 라마뿟따는 지자이시고 슬기롭고 현명하며 오랫동안 때가 엷게 낀 분이다. 나는 웃다까 라마뿟따에게 제일 먼저 법을 설하리라. 그는 이 법을 빨리 이해할 것이다.
비구들이여, 그러자 천신들이 내게 와서 이렇게 말했다.
세존이시여, 웃다까 라마뿟따는 지난밤에 임종했습니다.
그러자 내게도웃다까 라마뿟따는 지난밤에 임종했다.라는 앎과 봄이 일어났다. 비구들이여, 그런 내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웃다까 라마뿟따는 크게 잃었구나! 그가 이 법을 들었더라면 즉시 이해했을 것이다.
24. 비구들이여, 그런 내게 이런 생각이 들었다.
누구에게 제일 먼저 법을 설해야 할까? 누가 이 법을 빨리 이해할 수 있을까?
비구들이여, 그런 내게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용맹정진을 할 때 오비구가 나를 시봉하면서 내게 많은 도움을 주었다. 나는 그 오비구에게 제일 먼저 법을 설하리라. 그들은 이 법을 즉시 이해할 것이다.
비구들이여, 그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지금 오비구는 어디에 머물고 있을까?
비구들이여, 나는 인간의 능력을 넘어선 청정한 하늘눈으로 오비구가 바라나시에서 이시빠따나의 녹야원에 머물고 있는 것을 보았다.
법을 설하심
25. 비구들이여, 나는 우루웰라에서 흡족하게 머물고는 바라나시로 유행을 떠났다. 비구들이여, 아지와까 유행승인 우빠까가 가야와 보리좌의 중간쯤에서 길 가는 나를 보고 이렇게 말했다.
도반이여, 그대의 감관은 밝습니다. 피부색은 청정하고 빛이 납니다. 도반이여, 그대는 어느 분께 출가했습니까? 그대의 스승은 누구십니까? 그대는 어느 분의 가르침을 따르고 있습니까?
비구들이여, 이렇게 말했을 때 나는 아지와까 유행승인 우빠까에게 게송으로 대답했다.
나는 일체승자요, 일체지자이며
어떤 것에도 물들지 않고
일체를 버리고 갈애가 다하여 해탈했고
스스로 최상의 지혜로 알았으니
누구를 스승이라 부르겠는가?
나에게는 스승도 없고 유사한 이도 없으며
지상에도 천상에도 나와 견줄 이 없네.
나는 세상에서 아라한이고 위없는 스승이며
유일한 정등각자이고 모든 번뇌가 꺼졌고
적멸을 이루었다네.
나는 까시의 성으로 가서 법의 바퀴를 굴리리라.
어두운 이 세상에 불사의 북을 울릴 것이다.
도반이여,그대가 선언한 바와 같다면 그대는 무한한 승리자가 되기에 적합합니다.
"번뇌 다한 나 같은 사람들이야말로 진정한 승리자이니
우빠까여, 일체의 악한 법을 정복했기에 나는 승리자이다."
비구들이여, 이렇게 말하자 그 아지와까 유행승인 우빠까는 "도반이여, 그렇게 되길 바랍니다"라고 말하고서 머리를 흔들면서 다른 길로 떠났다.
26.비구들이여, 그때 나는 차례대로 유행하여 바라나시 이시빠따나의 녹야원에 있는 오비구를 찾아갔다. 비구들이여, 오비구는 멀리서 내가 오는 것을 보았다. 보고는 서로 합의했다.
“도반들이여, 저기 사문 고따마가 오고 있습니다. 그는 호사스러운 생활을 하고 용맹정진을 포기하고 사치스러운 생활에 젖어있습니다. 그가 오면 아무런 인사도 하지 말고, 일어서지도 말고, 그의 발우와 가사를 받아주지도 맙시다. 그러나 만일 그가 원한다면 앉을 수는 있도록 자리는 마련해줍시다.
비구들이여, 그러나 내가 점점 가까이 다가가자 오비구는 그들 스스로의 합의를 지킬 수 없었다. 한 사람은 마중 나와 발우와 가사를 받아 들었고, 다른 사람은 자리를 마련하고, 또 다른 사람은 발 씻을 물을 가져왔다. 그들은 나의 이름을 부르고도반이여.라고 말을 걸었다.
27.비구들이여, 나는 오비구에게 이렇게 말했다.
비구들이여, 여래를 고따마라는 이름으로 불러서도 안되고도반이여.라고 불러서도 안된다. 비구들이여, 여래는 아라한이고, 바르게 완전한 깨달음을 성취한 사람이다. 비구들이여, 귀를 기울여라. 불사는 성취되었다. 내 이제 그대들에게 가르쳐주리라. 그대들에게 법을 설하리라.
내가 가르친 대로 따라 실천하면, 그대들은 오래지 않아 좋은 가문의 아들들이 바르게 집을 떠나 출가하는 목적인 그 위없는 청정범행의 완성을 지금여기에서 최상의 지혜로 알고 실현하고 구족하여 머물 것이다.
비구들이여, 이렇게 말하자 오비구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도반 고따마여, 그런 행동과 그런 도닦음과 그런 난행고행으로도 인간의 법을 초월했고 성자들에게 적합한 앎과 봄이 특별함이 성취되지 않았습니다. 그대는 이제 호사스러운 생활을 하고 용맹정진을 포기하고 사치스러운 생활에 젖어있습니다. 그런 그대가 어떻게 인간의 법을 초월했고 성자들에게 적합한 앎과 봄의 특별함을 증득하겠습니까?
비구들이여, 오비구가 이와 같이 말했을 때 나는 그들에게 이렇게 대답했다.
비구들이여, 여래는 호사스러운 생활을 하지도 용맹정진을 포기하지도 사치스러운 생활에 젖지도 않았다. 비구들이여, 여래는 아라한이고, 바르게 완전한 깨달음을 성취한 사람이다. 비구들이여, 귀를 기울여라. 불사는 성취되었다. 내 이제 그대들에게 가르쳐주리라. 그대들에게 법을 설하리라. 내가 가르친 대로 따라 실천하면, 그대들은 오래지 않아 좋은 가문의 아들들이 바르게 집을 떠나 출가하는 목적인 그 위없는 청정범행의 완성을 지금여기에서 최상의 지혜로 알고 실현하고 구족하여 머물 것이다.
비구들이여, 두 번째에도 오비구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도반 고따마여, 그런 행동과 그런 도닦음과 그런 난행고행으로도 … 인간의 법을 초월했고 성자들에게 적합한 앎과 봄의 특별함을 증득했습니까?
비구들이여, 그때에도 나는 오비구에게 대답했다.
비구들이여, 여래는 호사스러운 생활을 하지도 … 구족하여 머물 것이다.
비구들이여, 세 번째에도 오비구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도반 고따마여, 그런 행동과 그런 도닦음과 그런 난행고행으로도 … 인간의 법을 초월했고 성자들에게 적합한 앎과 봄의 특별함을 증득했습니까?
비구들이여, 그때에도 나는 오비구에게 대답했다.
비구들이여, 여래는 호사스러운 생활을 하지도 … 구족하여 머물 것이다.
28.비구들이여, 오비구가 이와 같이 말했을 때 나는 그들에게 이렇게 대답했다. 비구들이여, 그대들은 이전에 내가 이렇게 말하는 것을 본 적이 있는가?
없습니다, 존자시여.
비구들이여, 여래는 호사스러운 생활을 하지도 용맹정진을 포기하지도 사치스러운 생활에 젖지도 않았다. 비구들이여, 여래는 아라한이고, 바르게 완전한 깨달음을 성취한 사람이다. 비구들이여, 귀를 기울여라. 불사는 성취되었다. 내 이제 그대들에게 가르쳐주리라. 그대들에게 법을 설하리라. 내가 가르친 대로 따라 실천하면, 그대들은 오래지 않아 좋은 가문의 아들들이 바르게 집을 떠나 출가하는 목적인 그 위없는 청정범행의 완성을 지금여기에서 최상의 지혜로 알고 실현하고 구족하여 머물 것이다.
29.비구들이여, 드디어 나는 오비구를 확신시킬 수가 있었다. 비구들이여, 두 비구를 가르치는 동안 세 비구가 탁발을 나갔다. 세 비구가 탁발하여 가져오면 우리 여섯 명이 연명했다. 비구들이여, 세 비구를 가르치는 동안 두 비구가 탁발을 나갔다. 두 비구가 탁발하여 가져오면 우리 여섯 명이 연명했다.
30.비구들이여, 오비구는 나에게 이런 교훈을 받고 이런 가르침을 받아 자신들이 태어나기 마련이면서 태어나기 마련인 것에서 재난을 알아 태어남이 없는 위없는 유가안은인 열반을 구하여 태어남이 없는 위없는 유가안은인 열반을 증득했다.
자신들이 늙기 마련이면서 … 자신들이 병들기 마련이면서 … 자신들이 죽기 마련이면서 … 자신들이 슬퍼하기 마련이면서 … 자신들이 오염되기 마련이면서 오염되기 마련인 것에서 재난을 알아 오염이 없는 위없는 유가안은인 열반을 구하여 오염이 없는 위없는 유가안은인 열반을 증득했다.
그들에게 앎과 봄이 생겼다. 우리의 해탈은 확고부동하다. 이것이 마지막 태어남이다. 더 이상 다시 태어남은 없다.라고.
감각적 욕망
31.비구들이여, 다섯 가닥의 얽어매는 감각적 욕망이 있다. 무엇이 다섯인가?
원하고 좋아하고 마음에 들고 사랑스럽고 감각적 욕망을 짝하고 매혹적인, 눈으로 인식되는 형색들이 있다. … 귀로 인식되는 소리들이 있다. … 코로 인식되는 냄새들이 있다. … 혀로 인식되는 맛들이 있다. 원하고 좋아하고 마음에 들고 사랑스럽고 감각적 욕망을 짝하고 매혹적인, 몸으로 인식되는 감촉들이 있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다섯 가닥의 얽어매는 감각적 욕망이다.
32.비구들이여,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이든지 간에 이들 다섯 가닥의 얽어매는 감각적 욕망에 묶이고 흘리고 푹 빠져서 재난을 보지 못하고 벗어남에 대한 통찰지가 없이 그것을 즐기면, 그들은 불행을 만났고 재난을 얻었고 사악한 마라(māra)의 손아귀에 들어갔다.라고 알아야 한다.
비구들이여, 예를 들면 숲속의 사슴이 묶인 채 올가미 더미 위에 누워있다면, 그는 불행을 만났고 재난을 얻었고 사악한 마라의 손아귀에 들어갔다. 사냥꾼이 오더라도 그가 가고 싶은 곳으로 달려갈 수 없을 것이다.라고 여겨지는 것과 같다.
비구들이여, 그와 같이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이든지 간에 이들 다섯 가닥의 얽어매는 감각적 욕망에 묶이고 흘리고 푹 빠져서 재난을 보지 못하고 벗어남에 대한 통찰지가 없이 그것을 즐기는 자들은불행을 만났고 재난을 얻었고 사악한 마라의 손아귀에 들어갔다.라고 알아야 한다.
33. 비구들이여,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이든지 간에 이들 다섯 가닥의 얽어매는 감각적 욕망에 묶이지 않고 홀리지 않고 푹 빠지지 않아서 재난을 보고 벗어남에 대한 통찰지를 갖추어서 수용하면,그들은 불행을 만나지 않았고, 재난을 얻지 않았고, 사악한 마라의 손아귀에 들지 않았다.라고 알아야 한다.
비구들이여, 예를 들면 예를 들면 숲속의 사슴이 묶이지 않은 채 올가미 더미 위에 앉아만 있다면,그는 불행을 만나지 않았고 재난을 얻지 않았고 사악한 사냥꾼의 손아귀에 들지 않았다. 사냥꾼이 오더라도 그가 가고 싶은 곳으로 달려갈 수 있을 것이다.라고 여겨지는 것과 같다.
비구들이여, 그와 같이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이든지 간에 이들 다섯 가닥의 얽어매는 감각적 욕망에 묶이지 않고 흘리지 않고 푹 빠지지 않아서 재난을 보고 벗어남에 대한 통찰지를 갖추어 수용하면, 그들은불행을 만나지 않았고 재난을 얻지 않았고 사악한 마라의 손아귀에 들지 않았다.라고 알아야 한다.
34.비구들이여, 예를 들면 숲속 사슴이 숲의 밀림에서 다닐 때 두려움 없이 가고 두려움 없이 서고 두려움 없이 앉고 두려움 없이 잠을 자는 것과 같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사냥꾼의 영역을 벗어났기 때문이다.
비구들이여, 그와 같이 비구는 감각적 욕망들을 완전히 떨쳐버리고 해로운 법들을 떨쳐버린 뒤, 일으킨 생각과 지속적 고찰이 있고, 떨쳐버렸음에서 생긴 희열과 행복이 있는 초선을 구족하여 머문다.
비구들이여, 이 비구를 "마라의 눈을 멀게 했고, 흔적없이 발판이 없도록 그렇게 빼버려서 그 사악한 마라가 볼 수 없게 만든 자"라고 말합니다.
35.비구들이여, 다시 비구는 일으킨 생각과 지속적 고찰을 가라앉혔기 때문에 [더 이상 존재하지 않고] 자기 내면의 것이고, 확신이 있으며, 마음의 단일한 상태이고, 일으킨 생각과 지속적 고찰은 없고, 삼매에서 생긴 희열과 행복이 있는 제2선을 구족하여 머문다.
비구들이여, 이 비구를 일러마라를 눈멀게 했고, 마라의 눈을 빼버려 그 사악한 마라가 볼 수 없는 곳으로 갔다.라고 한다.
36.비구들이여, 다시 비구는 희열이 빛바랬기 때문에 평온하게 머물고, 마음챙기고 알아차리며 몸으로 행복을 경험한다. 성자들이 그를 두고평온하고 마음챙기며 행복하게 머문다.고 묘사하는 제3선을 구족하여 머문다.
비구들이여, 이 비구를 일러마라를 눈멀게 했고, 마라의 눈을 빼버려 그 사악한 마라가 볼 수 없는 곳으로 갔다.라고 한다.
37.“비구들이여, 다시 비구는 행복도 버리고 괴로움도 버리고, 아울러 그 이전에 이미 기쁨과 슬픔을 소멸하였으므로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으며, 평온으로 인해 마음챙김이 청정한 제4선으로 구족하여 머문다.
비구들이여, 이 비구를 일러마라를 눈멀게 했고, 마라의 눈을 발판이 없도록 그렇게 빼버려 그 사악한 마라가 볼 수 없는 곳으로 갔다.라고 한다.
38. 비구들이여, 다시 비구는 물질에 대한 인식을 완전히 초월하고 부딪힘의 인식을 소멸하고 갖가지 인식을 마음에 잡도리하지 않기 때문에 무한한 허공이라고 하면서 공무변처를 구족하여 머문다.비구들이여, 이 비구를 일러마라를 눈멀게 했고, 마라의 눈을 발판이 없도록 그렇게 빼버려 그 사악한 마라가 볼 수 없는 곳으로 갔다.라고 한다.
39.비구들이여, 다시 비구는 공무변처를 완전히 초월하여 무한한 알음알이라고 하면서 식무변처를 구족하여 머문다. 비구들이여, 이 비구를 일러마라를 눈멀게 했고, 마라의 눈을 발판이 없도록 그렇게 빼버려 그 사악한 마라가 볼 수 없는 곳으로 갔다.라고 한다.
40.비구들이여, 다시 비구는 식무변처를 완전히 초월하여아무것도 없다.라고 하면서 무소유처를 구족하여 머문다. 비구들이여, 이 비구를 일러마라를 눈멀게 했고, 마라의 눈을 발판이 없도록 그렇게 빼버려 그 사악한 마라가 볼 수 없는 곳으로 갔다.라고 한다.
41.비구들이여, 다시 비구는 무소유처를 완전히 초월하여 비상비비상처를 구족하여 머문다. 비구들이여, 이 비구를 일러마라를 눈멀게 했고, 마라의 눈을 발판이 없도록 그렇게 빼버려 그 사악한 마라가 볼 수 없는 곳으로 갔다.라고 한다.
42. 비구들이여, 다시 비구는 비상비비상처를 완전히 초월하여 상수멸을 구족하여 머문다. 그리고 그의 통찰지로 [진리를] 보아서 번뇌를 남김없이 소멸한다.
비구들이여, 이 비구를 일러 마라를 눈멀게 했고, 마라의 눈을 발판이 없도록 그렇게 빼버려 그 사악한 [마라]가 볼 수 없는 곳으로 갔고, 세상에 대한 집착을 초월했다.라고 한다.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설하셨다. 그 비구들은 흡족한 마음으로 세존의 말씀을 크게 기뻐했다.
[전재성] 수행승들이여, 그는 두려움 없이 서고, 두려움 없이 앉고, 두려움 없이 눕습니다. 그 까닭은 무엇입니까? 그가 악마의 영역에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세존께서는 이와같이 설하셨다. 그 비구들은 흡족한 마음으로 세존의 말씀을 크게 기뻐했다.
논점
1. 동쪽 원림의 녹자모 대강당(pubbārāmo migāramātupāsādo,동원정사)에 대해서 이야기해보자.
부처님은 동원정사에서 5안거를 나셨고 남아있는 경전도 36개정도 남아있다. 특히 맛지마니까의 10개 경전이 동원정사에서 설해졌는데 출입식념경(ānāpānassatisutta.M118), 소공경(cūḷasuññatasutta.M121)같은 우리가 잘 아는 경전들이 여기서설해졌다. 현재 사위성 남쪽에 있는 동원정사를 방문하면 위빠사나 수행을 하는 인도스님이 살고있다. 창고형태의 법당에는 태국불상이 모셔져있는데 그 스님에게 부탁하면 이제까지 발굴된 유물도 보여준다. 동원정사 중앙에는 아소까석주 부러진 조각이 땅에 묻혀있다. 인도스님이 이곳에 살기전에는 힌두교인들이 링가로 모시고 살고있었다고 한다. 동원정사를 건립하여 보시한 위사카보살에 대해서는 아래와 같은 이야기가 전한다.
부처님이 사왓티에 계실 때 보시제일 위사카 법구경 인연담 53번을 이야기했다. 밧디야(Bhaddiya) 지방의 큰 부호인 아버지 다난자야(Dhanañjaya) 와 어머니 수마나(Sumanā)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녀의 할아버지 멘다까(Mendaka)는 빔비사라 왕이 다스리는 마가다 국에서 다섯 손가란 안에 드는 큰 부자였다. 위사카가 일곱 살이 되던 해에 부처님께서 밧디야 지방에 오시었다. 이때 부호 멘다까는 손녀인 위사카와 손녀의 시녀 오백 명을 데리고 부처님을 친견하기 위해서 승원을 방문했다. 그는 부처님께 공손히 인사를 올리고 부처님의 법문을 들었는데, 그때 멘다까와 그의 손녀, 그리고 시녀들 모두가 예류과를 성취하였다.
위사카가 나이 열여섯 살이 되었을 때 그녀는 역시 대단한 재산가인 사왓티에 사는 미라가(Miraga)의 아들과 결혼했다. 그녀가 결혼하고 난 뒤의 어느 날이었다. 그녀의 시아버지인 미라가가 식사를 하고 있는데 비구 한 사람이 문 앞에 와서 탁발을 청했다. 그런데 늙은 미라가는 그 비구를 보자 몸을 집 안쪽으로 돌려 버렸다. 이 광경을 목격한 위사카는 그 비구에게 다가가 이렇게 용서를 청했다.
"대단히 죄송하오나 저의 시아버지는 식은 밥을 잡숫는 분이라 밥을 드릴 게 없습니다."
이 말은 시아버지 미라가의 귀에도 들렸기 때문에 그는 매우 노하여 위사카에게 당장 이 집을 나가라고 호통을 쳤다. 위사카는 자기가 시집올 때 데리고 온 여덟 명의 나이 많고 현명한 사람들을 불러 그들의 의견을 물었다. 그들은 위사카의 아버지가 상당한 재산과 함께 딸려 보낸 사람들로서, 만약에 위사카가 위기에 처하면 도와주라는 부탁을 받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위사카와 함께 미라가에게 가서 전말을 따졌다. 미라가는 말했다.
"그때 나는 황금 사발에 우유 쌀죽을 먹고 있었소. 그런데 며느리는 우리 시아버지가 식은 밥이나 잡숫는 분이라고 말하지 않았겠소 ? 나는 이런 불경스런 언행을 하는 며느리를 참을 수가 없소. 그래서 며느리를 친정으로 보내려는거요."
여덟명의 현자들은 위사카에게 잘못이 없다고 판정하였다. 이에 용기를 얻은 위사카가 말했다.
"시아버님, 저는 마음속으로 부처님을 존경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부처님과 담마를 믿고 실천하는 사람으로서 항상 비구 비구들을 공양하고 실은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버님은 그것을 허락하시지 않습니다. 만약 앞으로도 비구 비구들을 공양하도록 허락하지 않으신다면 저는 친정으로 돌아가겠습니다."
그녀의 시아버지는 할 수 없이 며느리의 청을 들어주었다.
위사카는 곧 부처님과 비구들을 집으로 초청하였다. 그리고 공양 때가 되자 시어버지께서 직접 공양을 올리라고 부탁했는데, 나형 외도 니간타의 제자인 그는 응하지 않았다. 공양이 끝났을 때 위사카는 두 번째로 사람을 보내어 부처님의 설법을 들으라고 시아버지에게 권했다. 이번에는 미라가도 응할 마음이 동했지만, 같이 있던 니간타 수행자가 그를 제지하는 바람에 설법회에 참석하지는 못했다.
미라가와 니간타는 병풍 뒤에 숨어서 설법을 듣기로 했다. 그 결과 미라가는 예류과를 성취하였다. 그렇게 되자 그는 부처님과 며느리 위사카에게 큰 고마움을 느꼈다. 그래서 이후부터 그는 며느리를 어머니처럼 존경하여 위사카를 미라가마따(Miragamata) 즉, 미라가의 어머니(鹿子母)라고 불렀다. 위사카는 열 명의 아들과 열 명의 딸을 낳았으며 뿝빠라마 승원을 부처님과 비구 승단에 기증하였다. 그런 다음 가족을 모아 놓고 이렇게 말했다.
"나는 이제 내가 소원하던 바를 모두 다 이루었다. 나는 더 이상 아무것도 원하는 게 없다."
이렇게 말한 뒤 그녀는 기쁜 마음으로 게송을 읊으며 승원 주위를 돌고 또 돌았다. 부처님은 말했다.
"비구들이여, 오늘은 위사카가 과거와 현재의 모든 원을 다 성취한 날이니라. 그녀는 지금 그 성취감 때문에 매우 만족하여 훌륭한 게송을 읊으며 승원 주위를 돌고 있는 것이며, 정신이 이상해 진것이 아니다," 부처님이 게송을 읊으셨다.
"꽃들의 더미에서 많고 다양한 꽃다발을 만들 수 있는 것처럼,
태어나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이지만,많은 착하고 건전한 것들을 이룰 수 있으리."
2. 다음과 같이 문밖에서 기다리시는 부처님의 태도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울 수 있는가?
"그러자 세존께서는 문밖에 서서 그 이야기가 끝나는 것을 기다리고 계셨다. 그때 세존께서는 이야기가 끝난 것을 아시고 헛기침을 하시며 문을 가볍게 두드리셨다." (Atha kho bhagavā bahidvārakoṭṭhake aṭṭhāsi kathāpariyosānaṁ āgamayamāno. Atha kho bhagavā kathāpariyosānaṁ viditvā ukkāsitvā aggaḷaṁ ākoṭesi.)
..부처님이 제자들을 존중해주는 모습에서 권위적이지 않음을 느낀다. 언어로 표현된 가르침이 아니지만 감동이 크다. 스승노릇을 하고 있는 분들이 부처님의 이런 점을 배워야할 것이다. 요즘 부모님도 아이들의 방을 들어갈때 노크하고 들어가야 한다는 것을 부처님의 행동을 들어 설명하면 아이들이 쉽게 받아들일 것이다.
3. 금과 은이 태어나기 마련인 것이고, 늙기 마련인 것이고, 오염되기 마련인 것이다. 왜 금과 은은 이 세가지에만 해당될까? (병들고 죽고 슬픈 것에서는 제외됨)
..금과 은이 소유물이라서 그럴것인데 기타 아내,하녀,염소,말등도 모두 소유물을 상징하고 있다고 보여진다. 무아상경등에서 "‘이것은 내 것이고 이것이야말로 나이며 이것은 나의 자아다.’라고 하는 것은 옳은 것인가?”라고 물을때에도 '나의 것'이라는 소유물이 가장 먼저 나온다. 그 만큼 인간은 소유물에 대한 집착이 크다고 보여진다.
그리고 괴로움에서 괴로움을 구하는 것에 대한 표현을 아래와 같이 하는 것은 참으로 자연스러우면서도 설득력있다.
"비구들이여, 여기 어떤 사람은 자신이 태어나기 마련이면서 또한 태어나기 마련인 것을 구하고, 자신이 늙기 마련이면서 늙기 마련인 것을 구하고, 자신이 병들기 마련이면서 병들기 마련인 것을 구하고, 자신이 죽기 마련이면서 죽기 마련인 것을 구하고, 자신이 슬퍼하기 마련이면서 슬퍼하기 마련인 것을 구하고, 자신이 오염되기 마련이면서 오염되기 마련인 것을 구한다."
4. ' 태어남이 없는 위없는 안온인 열반' ,'늙음이 없는 위없는 유가안은인 열반','병이 없는 위없는 유가안은인 열반','죽음이 없는 위없는 유가안은인 열반', '슬픔이 없는 위없는 유가안은인 열반', 오염이 없는 위없는 유가안은인 열반'에서 성스러운 구함과 열반의 동의어들에 대해서 이야기 해보자.
..."불사(不死)는 성취되었다"라는 열반의 동의어를 두고 오해가 발생하곤 한다. 그러나 여기에서 " 태어남이 없음은 성취되었다" ,'늙음이 없 은 성취되었다",'병이 없 은 성취되었다" ,'죽음이 없음은 성취되었다" , '슬픔이 없음은 성취되었다" 등 열반의 동의어들이 이렇게 일상의 여러가지 용어로 표현되고 있다는 것을 알면 열반을 오해하지 않을수 있다.
5.싯타르타가 깨닫기 전에 자신의 수행목적을 "그런 나는 이와 같이 출가하여 유익한 것을 구하고(kiṅkusalagavesī ) 위없는 평화로운 경지(anuttaraṁ santivarapadaṁ )를 찾아 알라라 깔라마를 만나러 갔다." 라고 말하고 있다.
깨닫고나서 제자들에게 가르칠 때는 아눗따라 요가케마(,anuttaraṁ yogakkhemaṁ nibbānaṁ,상유가안은)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이것은 같은 용어일까?
* 구경의 완성/구경의 유가안은/구경의 목적
'유가안은(瑜伽安隱)'은 yogakkhema(요가케마)의 한역이다. 여기서 유가(瑜伽)는 yoga의 음역이고 안은(安隱)은 khema의 의역이다. 이 단어는 「리그베다에서부터 나타나는데 yoga는 '획득'을 khema는 '보존(저축)'을 뜻했다. 그러나 빠알리 주석서들에서 예외없이 yoga를 속박으로 해석해서 속박들로부터 풀려나서 안온한 열반으로 유가안은을 설명한다. 유가안온(Sk. yogaksema)의 개념은 까우띨랴(Kautilya)의 정치학 논서인「아르타샤스트라(副論)에서 왕도정치의 이념으로 표방되었으며, 초기부터 불교에서 받아들여 anuttara(無上)란 수식어를 붙여 anuttara yogakkhema(무상 유가안은)라는 표현으로 사용되었다. 이것은 열반의 동의어로 중요하게 쓰였다.
Once I had gone fort I set out to discover what is skillful, seeking the supreme state of sublime peace.
6. 알라라 깔라마와 웃따까라마뿟따가 말하는 믿음,정진, 사띠, 삼매,지혜는 각각 어떤 의미인가? " 그들에게 불사(不死)의 문은 열렸다. 듣는 자들은 자신의 믿음을 버려라."에서 믿음을 버리라고 한것과 오력의 믿음은 모순이 아닌가?
"알라라 깔라마에게만 믿음이 있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도 믿음이 있다. 알라라 깔라마에게만 정진이 있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도 정진이 있다. 알라라 깔라마에게만 마음챙김이 있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도 마음챙김이 있다. 알라라 깔라마에게만 삼매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도 삼매가 있다. 알라라 깔라마에게만 통찰지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도 통찰지가 있다. 참으로 나는 알라라 깔라마가 스스로 최상의 지혜로 알고 실현하고 증득했다고 선언하는 그 법을 실현하기 위해 정진하리라"(na kho āḷārasseva kālāmassa atthi saddhā, mayhampatthi saddhā)
...부처님은 알라라 깔라마와 웃따까라마뿟따가 수행한 오근(五根) 오력(五力)을 부처님도 그대로 단어를 가져다가 오근(五根) 오력(五力)을 말씀하시는데 내용이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한다. 다르게 표현한 것은 경전에 나와 있고 이름도 바른알아차림(sammaSati)처럼 바른(samma)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가운데(majjhima)라는 단어를 사용하신 것이다.
7. 알라라 깔라마와 웃다까라마뿟따를 어디서 만났고, 빨리 만날 수 있었는가? 왜 그들은 육사외도에 포함되지 않았을까?
왜 그들을 스승으로 인정하지 않았을까?
8. 범천이 이러한 붓다의 마음을 알고 3번에 걸쳐 설법해주기를 권청합니다. 결국 붓다는 사람의 근기가 같지 않음을 숙고하시고 설법을 허락합니다. 아래 경전은 이제 설법을 허락하는 장면입니다.
"Apārutā tesam amatassa dvārā
ye sotavanto pamuñcantu saddham
vihimsasaññī pagunam na bhāsim
Dhammam panītam manujesu brahme"ti.
권청경(SN.1.137.Āyācanasutta) 대전기경(DN.2.14.Mahāpadānasutta) (MN.1.169) (MN.2.94)
[전재성님 번역] "그들에게 불사(不死)의 문은 열렸다. 듣는 자들은 자신의 믿음을 버려라. 범천이여, 나는 상처받는다는 생각으로 사람에게 미묘한 진리를 설하지 않았네."
[각묵스님 번역]
이렇게 보신 뒤 세존께서는 사함빠띠 범천에게 게송으로 대답하셨다.
*‘믿음을 보여라{pamuñcantu saddharh)는 것은 불사(不死,amata) 라고 불리는 열반의 문인 성스러운 도를 설했으니 이제 모든 사람들은 자기 자신 의 믿음(attano sadclhã) 을 보내리(pamuñcantu), 펴 보여라(vissajjentu) 는 말씀이다. "(MA.ii. 181)
[주석] pamuñcantu saddhanti sabbe attano saddhaṃ pamuñcantu vissajjentu. pacchimapadadvaye ayamattho, ahañhi attano paguṇaṃ suppavattitampi imaṃ paṇītaṃ uttamaṃ dhammaṃ kāyavācākilamathasaññī hutvā na bhāsiṃ, idāni pana sabbe janā saddhābhājanaṃ upanentu, pūressāmi tesaṃ saṅkappanti.
*vissajjentu vissajjeti: answers; distributes; sends off; spends; gets rid of; emits; lets loose.
* pamuñcantu pamuñcati: lets loose; emits; liberates.
[최봉수님] 귀 있는 자들에게 불사의 문을 열겠으니 죽은 자에 대한 근거 없는 제사는 그만두어라. 범천아, 나는 단지 피로할 뿐이라고 생각했기에 사람들에게 덕스럽고 숭고한 법을 설하지 않았던 것이다. (마하왁가 p.53)
(*5) “‘믿음을 보여라(pamuñcantu saddhaṃ)’는 것은
불사(不死, amata)라고 불리는 열반의 문인 성스러운 도를 설했으니
이제 모든 사람들은 자기 자신의 믿음(attana saddhā)을 보내라(pamuñcantu),
펴 보여라(vissajjentu)는 말씀이다.”(MA.ⅱ.181)
[토론하여 정리 한 표현]
"그들에게 불사(不死)의 문은 열렸다. 듣는 자들은 자신의 믿음을 버려라.
범천이여, 나는 말해도 소용없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사람에게 미묘한 진리를 설하지 않았네."
나는 이제 너의 청 때문에
마땅히 단 이슬을 내려야 하겠다.
온갖 모든 세간의
하늘ㆍ사람ㆍ용ㆍ신들로서
만약 깨끗한 믿음을 지닌 이면
이와 같은 법을 듣고 받을지니라.
我今爲汝請,
當雨於甘露,
一切諸世閒,
天人龍神等,
若有淨信者,
聽受如是法。
『방광대장엄경』 10권(ABC, K0111 v9, p.621a02-a03)
그때 세존은 대범천왕과 석제환인 등에게 말씀하였다.‘나 역시 일체 중생들을 위하여 법의 바퀴를 굴리고는 싶으나 다만 얻은 법이 미묘하고 아주 깊숙하고 풀이하기 어렵고 알기도 어려워 모든 중생들이 믿어 받을 수도 없거니와 비방하는 마음을 내어서 지옥에 떨어지리니, 나는 지금 이 때문에 잠자코 있을 뿐이니라.’ 때에 범천왕 등은 세 번을 청하자, 때에 여래는 꼭 이레 만에야 잠자코 수락하시므로 범천왕 등은 부처님께서 청을 수락하심을 알고 땅에 엎드려 발에 예배하고서 저마다 사는 데로 돌아갔다.爾時世尊答大梵天王及釋提桓因等言:‘我亦欲爲一切衆生轉於法輪,但所得法,微妙甚深,難解難知。諸衆生等,不能信受,生誹謗心,墮於地獄。我今爲此,故默然耳。’時梵天王等,乃至三請;爾時如來,至滿七日,默然受之。梵天王等,知佛受請,頭面禮足,各還所住。
각묵스님과 전재성거사의 pamuñcantu saddhaṃ 에 대한 번역 변화
구 분 | 내 용 | 비 고 |
빠알리 원문 | Apārutā tesaṃ amatassa dvārā Ye sotavanto pamuñcantu saddhaṃ Vihiṃsasaññi paguṇaṃ nabhāsiṃ, Dhammaṃ paṇītaṃ manujesu brahme ti. |
pamuñcantu saddhaṃ |
초불연 디가니까야(D14) 2006년판, 각묵스님역 |
그들에게 불사(不死)의 문은 열렸도다. 귀를 가진 자 믿음을 내어라. 범천이여, 이 미묘하고 숭고한 법이 인간들 사이에서 해악을 초래 할지도 모른다는 인식 때문에 나는 설하지 않으려 하였다. |
믿음을 내어라. (오역) |
초불연 맛지마니까야(M26) 2012년판, 대림스님역 |
"그들에게 불사(不死)의 문은 열렸도다. 귀를 가진 자 믿음을 내어라. 범천이여, 이 미묘하고 숭고한 법이 인간들 사이에서 해악을 초래 할지도 모른다는 인식 때문에 나는 설하지 않으려 하였다.“(M26) 왕자여, 그때 나는 사함빠띠 범천에게 게송으로 대답했다. 그대에게 감로의 문은 열렸다. 귀를 가진 자, 자신의 믿음을 보여라. 범천이여, 이 미묘하고 숭고한 법을 피로해질 뿐이라는 생각에 사람들에게 설하지 않았다. (M85)보디왕자경 |
믿음을 보여라. (오역) |
초불연 상윳따마니까야(S6.1) 2013년판(초판2쇄), 각묵스님역 |
그들에게 불사의 문들은 열렸도다. 귀를 가진 자 자신의 믿음을 버려라. 범천이여, 이 미묘하고 숭고한 법을 피로해질 뿐이라는 인식 때문에 나는 설하지 않았다. “그들에게 불사(不死)의 문들은 열렸도다. 귀를 가진 자, (외도의 가르침에 대한)자신의 믿음을 버려라. 범천이여, 이 미묘하고 숭고한 법을 피로해질 뿐이라는 인식 때문에 나는 중생(사람)들에게 설하지 않았다.”(S6.1)권청경 |
믿음을 버려라 |
성전협 맛지마니까야(M26) 2009년 개정 초판, 전재성님역 |
그들에게 불사의 문은 열렸다. 듣는 자들은 자신의 신앙을 버려라. 하느님이여, 곤란을 예견하고 나는 승묘한 진리를 설하지 않았네. 왕자여, 그리고 나서 나는 하느님 싸함빠띠에게 시로써 대답했습니다. ‘진실로 불사의 문이 열렸으니 귀 있는 자들은 자신의 믿음을 놓아 버려라. 하느님이여, 나는 상처받는다는 생각으로 사람에게 승묘한 진리를 설하지 않았네.’ |
신앙을 버려라 믿음을 놓아 버려라. |
성전협 디가니까야(D14) 2011년 초판, 전재성님역 |
그들에게 불사의 문은 열렸다. 듣는 자들은 자신의 신앙을 버려라. 하느님이여, 곤란을 예견하고 나는 승묘한 진리를 설하지 않았네. |
신앙을 버려라 |
성전협 상윳따니까야(S6.1) 2006년 개정 초판, 전재성님역 |
그들에게 불사의 문은 열렸다. 듣는 자들은 자신의 신앙을 버려라. 하느님이여, 곤란을 예견하고 나는 승묘한 진리를 설하지 않았네. |
신앙을 버려라 |
영역 맛지마니까야(M26) 빅쿠 보디와 빅쿠 냐나몰리 공역 |
‘Open for them are the doors to the Deathless, Let those with ears now show their faith. Thinking it would be troublesome, O Brahma, I did not speak the Dhamma subtle and sublime.’ |
show their faith. (믿음을 보여라) (오역) |
영역 디가니까야(D14) |
Open to them are the Deathless doors! Let those that hear now put forth faith. For fear of trouble I did not preach at first The excellent Dhamma for men, Brahma! |
put forth faith (믿음을 내어라) (오역) |
영역 CDB 상윳따니까야(S6.1) 빅쿠 보디 영역 |
Open to them are the doors to the Deathless: Let those who have ears release faith. Foreseeing trouble, 0 Brahrna I did not speak The refined, sublime Dharnma among human beings. Let those with ears to hear commit to faith.(수자또) |
release faith. (믿음을 내어라) (오역) commit to faith (믿음을 가져라) |
율장 대품 최봉수님역 |
귀 있는 자들에게 불사의 문을 열겠으니 죽은 자에 대한 근거 없는 제사는 그만두어라. 범천아, 나는 단지 피로할 뿐이라고 생각했기에 사람들에게 덕스럽고 숭고한 법을 설하지 않았던 것이다. | 근거 없는 제사는 그만두어라 |
한역 아함경 第六 梵天相應 第一 梵天品 [一] 第一 勸請 (일본사이트) |
見已,以偈答梵天沙巷婆提: 為於彼等眾 開啟甘露門 有耳之眾人 捨離其他信 梵天我思惑 不說微妙法 |
捨離其他信 (다른 믿음을 버려라) |
9. "비구들이여, '여래를' '고따마'라는 이름으로 불러서도 안되고, 도반이여!라고 불러서도 안된다."
이렇게 말하는 의도는 무엇인가? 어떻게 붓다를 불러야 하는가?
...나는 일반인이 아니다. 부처님들을 부르는 이름이 있다. 나도 나를 부르는 이름이 있다. 여래십호가 생겨난 이유.
10. 천상천하유하독존이라고 번역된 탄생게와 아래 게송을 비교해보자.
"나는 일체승자요, 일체지자이며
어떤 것에도 물들지 않고
일체를 버리고 갈애가 다하여 해탈했고
스스로 최상의 지혜로 알았으니
누구를 스승이라 부르겠는가?
나에게는 스승도 없고 유사한 이도 없으며
지상에도 천상에도 나와 견줄 이 없네.
나는 세상에서 아라한이고 위없는 스승이며
유일한 정등각자이고 모든 번뇌가 꺼졌고
적멸을 이루었다네."
11. 어떤 백련은 물속에서 잠겨있고, 어떤 백련은 물의 표면까지 나와있고, 어떤 백련은 물 위로 올라와 물에 젖지 않고 있는 것을 근기론으로 볼수 있는가? 근기론으로 본다면 문제가 생겨날까?
"예를 들면 어떤 청련이나 홍련이나 백련은 물속에서 생겨나 물속에서 성장하고 물에 잠겨 그 속에서만 자란다. 어떤 청련이나 홍련이나 백련은 물속에서 생겨나 물속에서 자라서 물의 표면까지 나온다. 어떤 청련이나 홍련이나 백련은 물속에서 생겨나 물속에서 성장하여 물 위로 올라와 당당하게 서서 물에 젖지 않는다."
12.아래 문장에대해서 이야기 해보자.
마라와 악마라는 번역의 차이
[각묵] 비구들이여, 다시 비구는 비상비비상처를 완전히 초월하여 상수멸을 구족하여 머문다. 그리고 그의 통찰지로 [진리를] 보아서 번뇌를 남김없이 소멸한다.
비구들이여, 이 비구를 일러 마라를 눈멀게 했고, 마라의 눈을 발판이 없도록 그렇게 빼버려 그 사악한 [마라]가 볼 수 없는 곳으로 갔고, 세상에 대한 집착을 초월했다.라고 한다.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설하셨다. 그 비구들은 흡족한 마음으로 세존의 말씀을 크게 기뻐했다.
[전재성] 수행승들이여, 다시 그 수행승은 자신이 원하는 대로 ‘지각하는 것도 아니고 지각하지 않는 것도 아닌 세계’를 완전히 뛰어넘어 ‘지각과 느낌의 소멸’에 들어 지혜로써 보아 번뇌가 소멸된 것을 안다. 수행승들이여, 그 수행승을 두고 ‘악마를 눈멀게 만들고, 악마의 눈을 뽑아, 악마를 볼 수 없게 만드는 자, 세상에 대한 집착을 뛰어넘은 자’라고 한다. 수행승들이여, 그는 안심하여 가고, 안심하여 서고 안심하여 앉고 안심하여 눕는다. 그 까닭은 무엇인가? 그가 악마의 영역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수행승들은 만족하여 세존께서 하신 말씀을 기쁘게 받아들였다.
Puna caparaṁ, bhikkhave, bhikkhu sabbaso nevasaññānāsaññāyatanaṁ samatikkamma saññāvedayitanirodhaṁ upasampajja viharati, paññāya cassa disvā āsavā parikkhīṇā honti. Ayaṁ vuccati, bhikkhave, bhikkhu andhamakāsi māraṁ apadaṁ, vadhitvā māracakkhuṁ adassanaṁ gato pāpimato. Tiṇṇo loke visattikaṁ vissattho gacchati, vissattho tiṭṭhati, vissattho nisīdati, vissattho seyyaṁ kappeti. Taṁ kissa hetu? Anāpāthagato, bhikkhave, pāpimato”ti.
Idamavoca bhagavā. Attamanā te bhikkhū bhagavato bhāsitaṁ abhinandunti.
성스러운 구함 경(M26)-부처님 자신이 설명하는 부처님 생애
각묵 | 전재성 | |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때 세존께서는 사왓티에서 제따 숲의 아나타삔디까 원림에 머무셨다. 2. 그때 세존께서는 오전에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발우와 가사를 수하시고 사왓티로 탁발하러 가셨다. 그때 많은 비구가 아난다 존자를 만나러 갔다. 만나러 가서는 아난다 존자에게 이와 같이 말했다. 도반 아난다여, 우리가 세존의 면전에서 설법을 들은 지가 오래되었습니다. 도반 아난다여, 우리는 세존의 면전에서 설법을 들을 수 있으면 참 좋겠습니다. 도반들이여, 그렇다면 람마까 바라문의 아쉬람으로 가십시오. 그러면 세존의 면전에서 설법을 들을 수 있을 겁니다. 그러겠습니다, 도반이여.라고 그 비구들은 아난다 존자에게 대답했다. 3. 그때 세존께서는 사왓티에서 탁발하여 공양을 마치시고 탁발에서 돌아와 아난다 존자를 부르셨다. 아난다여, 동쪽 원림의 녹자모 강당으로 가서 낮 동안 머물자. 그러겠습니다. 세존이시여.라고 아난다 존자는 세존께 대답했다. 그러자 세존께서는 아난다 존자와 함께 동쪽 원림의 녹자모 대강당으로 가서 낮 동안을 머무셨다. 그때 세존께서는 해거름에 [낮 동안의] 홀로 앉음에서 일어나셔서 아난다 존자를 부르셨다. 아난다여, 동 꼿타까로 목욕하러 가자. 그러겠습니다, 세존이시여,라고 아난다 존자는 세존께 대답했다. 그리하여 부처님께서는 아난다 존자와 더불어 동 꼿타까로 목욕을 가셨다. 동 꼿타까에서 목욕을 하고 나와 가사 하나만을 입고 몸을 말리고 계셨다. 그때 아난 존자는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이 근처에 람마까 바라문의 아쉬람이 있습니다. 세존이시여, 람마까 바라문의 아쉬람은 상쾌한 곳입니다. 세존이시여, 람마까 바라문의 아쉬람은 편안합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 자비를 베푸시어 람마까 바라문의 아쉬람을 방문해주시면 좋겠습니다.세존께서는 침묵으로 승낙하셨다. Assama a hermitage (of a brahmin ascetic esp. a jaṭila) ā + śram |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 세존께서 싸밧티 시의 제따 숲에 있는 아나타삔디까 승원에 계셨다. 그 때 세존께서는 아침 일찍 옷을 입고 발우와 가사를 들고 싸밧티 시로 탁발하러 들어 가셨다. 마침 많은 수행승들이 존자 아난다가 있는 곳을 찾았다. 다가와서 존자 아난다에게 이와 같이 말했다. "벗이여, 아난다여, 우리들은 세존을 친견하여 설법을 들은 지 오래 되었습니다. 벗이여, 아난다여, 우리들이 세존을 친견하여 설법을 들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벗들이여, 그렇다면 바라문 람마까의 아슈람으로 오십시오. 거기서 세존을 친견하고 설법을 경청하십시오." "벗이여,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 수행승들은 존자 아난다에게 대답했다. 마침 세존께서는 싸밧티 시로 탁발하러 가서, 식사를 마친 뒤, 탁발에서 돌아와 존자 아난다에게 말씀하셨다. "아난다여, 우리들은 뿝바라마 승원의 미가라마뚜 강당이 있는 곳을 찾아서 대낮을 보내자." "세존이시여, 그렇게 하겠습니다." 존자 아난다는 세존께 대답했다. 세존께서는 존자 아난다와 함께 뿝바라마 승원의 미가라마뚜 강당이 있는 곳을 찾아서 대낮을 보냈다. 세존께서는 저녁 무렵 명상에서 일어나 존자 아난다에게 말씀하셨다. "아난다여, 우리들은 몸을 씻으러 뿝바꼿타까의 냇가로 가자." "세존이시여, 그렇게 하겠습니다." 존자 아난다는 세존께 대답했다. 그래서 세존께서는 존자 아난다와 함께 몸을 씻으러 뿝바꼿타까의 냇가로 갔다. 뿝바꼿타까의 냇가에서 몸을 씻은 뒤에 나와서 옷을 하나만 걸치고 몸을 말리셨다. 그때 존자 아난다는 세존께 이와 같이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바라문 람마까의 아슈람이 가까운 곳에 있습니다. 세존이시여, 바라문 람마까의 아슈람은 시간을 보내기 즐거운 곳입니다. 세존이시여, 바라문 람마까의 아슈람은 맑고 깨끗한 곳입니다. 세존이시여, 불쌍히 여겨서 바라문 람마까의 아슈람을 찾아주시면 좋겠습니다." 세존께서는 침묵으로 허락하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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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그러자 세존께서는 람마까 바라문의 아쉬람으로 가셨다. 그때 비구들은 람마까 바라문의 아쉬람에서 법담을 나누며 모여있었다. 그러자 세존께서는 문밖에 서서 그 이야기가 끝나는 것을 기다리고 계셨다. Atha kho bhagavā yena rammakassa brāhmaṇassa assamo tenupasaṅkami. Tena kho pana samayena sambahulā bhikkhū rammakassa brāhmaṇassa assame dhammiyā kathāya sannisinnā honti. Atha kho bhagavā bahidvārakoṭṭhake aṭṭhāsi kathāpariyosānaṃ āgamayamāno. 그때 세존께서는 이야기가 끝난 것을 아시고 어흠하고 헛기침 ukkāsitvā을 하시며 문을 가볍게 두드리셨다. 그 비구들은 세존께 문을 열어드렸다. Atha kho bhagavā kathāpariyosānaṃ viditvā ukkāsitvā aggaḷaṃ ākoṭesi. Vivariṃsu kho te bhikkhū bhagavato dvāraṃ. 세존께서는 람마까 바라문의 아쉬람에 들어가셔서 마련해 드린 자리에 앉으셨다. 자리에 앉으신 세존께서는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Atha kho bhagavā rammakassa brāhmaṇassa assamaṃ pavisitvā paññatte āsane nisīdi. Nisajja kho bhagavā bhikkhū āmantesi: 비구들이여, 여기 모여서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가? 무슨 이야기를 하기 위해 지금 여기에 모였는가? 그리고 그대들이 하다 만 이야기는 무엇인가? 세존이시여, 세존에 대해 이야기를 하던 중에 세존께서 오셨습니다.“kāya nuttha, bhikkhave, etarahi kathāya sannisinnā? Kā ca pana vo antarākathā vippakatā”ti? “Bhagavantameva kho no, bhante, ārabbha dhammī kathā vippakatā, atha bhagavā anuppatto”ti. 장하구나, 비구들이여! 비구들이여, 이처럼 법담을 나누기 위해 모여있다니, 믿음으로 집을 나와 출가한 그대 좋은 가문의 아들들에게 참으로 어울리는 일이구나. 비구들이여, 그대들이 함께 모이면 오직 두 가지 할 일이 있나니, 법담을 나누거나 성스러운 침묵을 기키는 것이다. |
그래서 세존께서는 바라문 람마까의 아슈람을 찾으셨다. 그 때 많은 수행승들이 바라문 람마까의 아슈람에서 법담을 나누며 모여있었다. 세존께서는 문밖에 서서 이야기가 끝나는 것을 기다리고 있었다. 세존께서는 이야기가 끝난 것을 알고 기침소리를 내며 빗장을 두드렸다. 그 수행승들은 세존께 문을 열어드렸다. 세존께서는 바라문 람마까의 아슈람에 들어와 마련된 자리에 앉으셨다. 자리에 앉아서 세존게서는 그 수행승들에게 말했다. "수행승들이여, 모여서 어떠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고, 그 가운데 어떠한 부분에서 중단되었는가?" "세존이시여, 저희들은 세존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그 때 세존께서 들어오셨습니다." "수행승들이여, 믿음으로써 집에서 집 없는 곳으로 출가한 그대들 훌륭한 가문의 자제들이 법담을 위하여 모였다는 것은 훌륭한 일이다. 수행승들이여, 모임은 두 종류로 이루어져야 한다. 법에 대해 이야기하거나 고귀한 침묵을 지키는 일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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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비구들이여, 두 가지 구함이 있나니 성스럽지 못한 구함과 성스러운 구함이 그것이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성스럽지 못한 구함인가?Katamā ca, bhikkhave, anariyā pariyesanā? 비구들이여, 여기 어떤 사람은 자신이 태어나기 마련이면서 또한 태어나기 마련인 것을 구하고, 자신이 늙기 마련이면서 늙기 마련인 것을 구하고, 자신이 병들기 마련이면서 병들기 마련인 것을 구하고, 자신이 죽기 마련이면서 죽기 마련인 것을 구하고, 자신이 슬퍼하기 마련이면서 슬퍼하기 마련인 것을 구하고, 자신이 오염되기 마련이면서 오염되기 마련인 것을 구한다. Idha, bhikkhave, ekacco attanā jātidhammo samāno jātidhammaṃyeva pariyesati, attanā jarādhammo samāno jarādhammaṃyeva pariyesati, attanā byādhidhammo samāno byādhidhammaṃyeva pariyesati, attanā maraṇadhammo samāno maraṇadhammaṃyeva pariyesati, attanā sokadhammo samāno sokadhammaṃyeva pariyesati, attanā saṅkilesadhammo samāno saṅkilesadhammaṃyeva pariyesati. 6.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태어나기 마련인 것이라고 말하는가? 비구들이여, 아들과 아내가 태어나기 마련인 것이다. 하인과 하녀가 태어나기 마련인 것이다. 염소와 양이 태어나기 마련인 것이다. 닭과 돼지가 태어나기 마련인 것이다. 코끼리와 소와 수말과 암말이 태어나기 마련인 것이다. 금과 은이 태어나기 마련인 것이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취착이 재생의 근거들이 태어나기 마련인 것이라고 말합니다. 여기에 묶이고 홀리고 집착하여 자신이 태어나기 마련이면서 또한 태어나기 마련인 것을 구한다. Kiñca, bhikkhave, jātidhammaṃ vadetha? Puttabhariyaṃ, bhikkhave, jātidhammaṃ, dāsidāsaṃ jātidhammaṃ, ajeḷakaṃ jātidhammaṃ, kukkuṭasūkaraṃ jātidhammaṃ, hatthigavāssavaḷavaṃ jātidhammaṃ, jātarūparajataṃ jātidhammaṃ. Jātidhammā hete, bhikkhave, upadhayo. Etthāyaṃ gathito mucchito ajjhāpanno attanā jātidhammo samāno jātidhammaṃyeva pariyesati. 7.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을 늙기 마련인 것이라고 하는가? 비구들이여, 아들과 아내가 늙기 마련인 것이다. 하인과 하녀가 … 염소와 양이 … 닭과 돼지가 … 코끼리와 소와 수말과 암말이 … 금과 은이 늙기 마련인 것이다. 비구들이여, 이런 재생의 근거들이 늙기 마련인 것이다.비구들이여, 이러한 취착이 늙기 마련인 것이라고 말합니다. 여기에 묶이고 홀리고 집착하여 자신이 늙기 마련이면서 또한 늙기 마련인 것을 구한다. 8.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을 병들기 마련인 것이라고 하는가? 비구들이여, 아들과 아내가 병들기 마련인 것이다. 하인과 하녀가 … 염소와 양이 … 닭과 돼지가 … 코끼리와 소와 수말과 암말이 병들기 마련인 것이다. 비구들이여, 이런 재생의 근거들이 병들기 마련인 것이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취착이 병들기 마련인 것이라고 말합니다. 여기에 묶이고 홀리고 집착하여 자신이 병들기 마련이면서 또한 병들기 마련인 것을 구한다. 9.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을 죽기 마련인 것이라고 하는가? 비구들이여, 아들과 아내가 죽기 마련인 것이다. 하인과 하녀가 … 염소와 양이 … 닭과 돼지가 … 코끼리와 소와 수말과 암말이 죽기 마련인 것이다. 비구들이여, 이런 재생의 근거들이 죽기 마련인 것이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취착이 죽기 마련인 것이라고 말합니다. 여기에 묶이고 홀리고 집착하여 자신이 죽기 마련이면서 또한 죽기 마련인 것을 구한다. 10.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을 슬퍼하기 마련인 것이라고 하는가? 비구들이여, 아들과 아내가 슬퍼하기 마련인 것이다. 하인과 하녀가 … 염소와 양이 … 닭과 돼지가 … 코끼리와 소와 수말과 암말이 슬퍼하기 마련인 것이다. 비구들이여, 이런 재생의 근거들이 슬퍼하기 마련인 것이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취착이 슬퍼하기 마련인 것이라고 말합니다. 여기에 묶이고 홀리고 집착하여 자신이 슬퍼하기 마련이면서 또한 슬퍼하기 마련인 것을 구한다. 11.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을 오염되기 마련인 것이라고 하는가? 비구들이여, 아들과 아내가 오염되기 마련인 것이다. 하인과 하녀가 오염되기 마련인 것이다. 염소와 양이 오염되기 마련인 것이다. 닭과 돼지가 오염되기 마련인 것이다. 코끼리와 소와 수말과 암말이 오염되기 마련인 것이다. 금과 은이 오염되기 마련인 것이다. 비구들이여, 이런 재생의 근거들이 오염되기 마련인 것이다.비구들이여, 이러한 취착이 오염되기 마련인 것이라고 말합니다. 여기에 묶이고 홀리고 집착하여 자신이 오염되기 마련이면서 또한 오염되기 마련인 것을 구한다. |
수행승들이여, 두 종류의 구함이 있다. 고귀하게 구하거나 고귀하지 않게 구하는 것이다. 수행승들이여, 고귀하지 않게 구하는 것은 어떠한 것인가? 세상에 어떤 사람이 스스로 생겨남에 묶여 있으면서 생겨남에 묶여 있는 것을 구하며, 스스로 늙음에 묶여 있으면서 늙음에 묶여 있는 것을 구하며, 스스로 병듦에 묶여 있으면서 병듦에 묶여 있는 것을 구하며, 스스로 죽음에 묶여 있으면서 죽음에 묶여 잇는 것을 구하고, 스스로 슬픔에 묶여 있으면서 슬픔에 묶여 있는 것을 구하고, 스스로 오염에 묶여 있으면서 오염에 묶여 있는 것을 구한다. 수행승들이여, 생겨남에 묶여 있는 것이란 어떠한 것일까? 처자가 생겨남에 묶여 있는 것이고, 노비가 생겨남에 묶여 있는 것이고, 산양이나 양이 생겨남에 묶여 있는 것이고, 닭이나 돼지가 생겨남에 묶여 있는 것이고, 코끼리, 소, 수말, 암말이 생겨남에 묶여 있는 것이고, 금, 은이 생겨남에 묶여 있는 것이다. 수행승들이여, 참으로 이러한 집착의 대상들은 생겨남에 묶여 있는 것이다. 이러한 것에 묶여 넋을 잃고 탐착하여, 스스로 생겨남에 묶여 있으면서 생겨남에 묶여 있는 것을 구한다. 수행승들이여, 늙음에 묶여 있는 것이란 어떠한 것일까? 처자가 늙음에 묶여 있는 것이고, 노비가 늙음에 묶여 있는 것이고, 산양이나 양이 늙음에 묶여 있는 것이고, 닭이나 돼지가 늙음에 묶여 있는 것이고, 코끼리, 소, 수말, 암말이 늙음에 묶여 있는 것이고, 금, 은이 늙음에 묶여 있는 것이다. 수행승들이여, 참으로 이러한 집착의 대상들은 늙음에 묶여 있는 것이다. 이러한 것에 묶여 넋을 잃고 탐착하여, 스스로 늙음에 묶여 있으면서 늙음에 묶여 있는 것을 구한다. 수행승들이여, 병듦에 묶여 있는 것이란 어떠한 것일까? 처자가 병듦에 묶여 있는 것이고, 노비가 병듦에 묶여 있는 것이고, 산양이나 양이 병듦에 묶여 잇는 것이고, 닭이나 돼지가 병듦에 묶여 있는 것이고, 코끼리, 소, 수말, 암말이 병듦에 묶여 있는 것이다. 수행승들이여, 참으로 이러한 집착의 대상들은 병듦에 묶여 있는 것이다. 이러한 것에 묶여 넋을 잃고 탐착하여, 스스로 병듦에 묶여 있으면서 병듦에 묶여 있는 것을 구한다. 수행승들이여, 죽음에 묶여 있는 것이란 어떠한 것일까? 처자가 죽음에 묶여 있는 것이고, 노비가 죽음에 묶여 있는 것이고, 산양이나 양이 죽음에 묶여 잇는 것이고, 닭이나 돼지가 죽음에 묶여 있는 것이고, 코끼리, 소, 수말, 암말이 죽음에 묶여 있는 것이다. 수행승들이여, 참으로 이러한 집착의 대상들은 죽음에 묶여 있는 것이다. 이러한 것에 묶여 넋을 잃고 탐착하여, 스스로 죽음에 묶여 있으면서 죽음에 묶여 있는 것을 구한다. 수행승들이여, 슬픔에 묶여 있는 것이란 어떠한 것일까? 처자가 슬픔에 묶여 있는 것이고, 노비가 슬픔에 묶여 있는 것이고, 산양이나 양이 슬픔에 묶여 잇는 것이고, 닭이나 돼지가 슬픔에 묶여 있는 것이고, 코끼리, 소, 수말, 암말이 슬픔에 묶여 있는 것이다. 수행승들이여, 참으로 이러한 집착의 대상들은 슬픔에 묶여 있는 것이다. 이러한 것에 묶여 넋을 잃고 탐착하여, 스스로 슬픔에 묶여 있으면서 슬픔에 묶여 있는 것을 구한다. 수행승들이여, 오염에 묶여 있는 것이란 어떠한 것일까? 처자가 오염에 묶여 있는 것이고, 노비가 오염에 묶여 있는 것이고, 산양이나 양이 오염에 묶여 잇는 것이고, 닭이나 돼지가 오염에 묶여 있는 것이고, 코끼리, 소, 수말, 암말이 오염에 묶여 있는 것이다. 수행승들이여, 참으로 이러한 집착의 대상들은 오염에 묶여 있는 것이다. 이러한 것에 묶여 넋을 잃고 탐착하여, 스스로 오염에 묶여 있으면서 오염에 묶여 있는 것을 구한다. 수행승들이여, 이러한 것이 고귀하지 못한 구함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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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성스러운 구함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어떤 사람은 자신이 태어나기 마련이지만 태어나기 마련인 것에서 위험을 알아재난을 알아 태어남이 없는 위없는 안온인위없는 유가안은인 열반을 구하고, 자신이 늙기 마련이지만 늙기 마련인 것에서 재난을 알아 늙음이 없는 위없는 유가안은인 열반을 구하고, 자신이 병들기 마련이지만 병들기 마련인 것에서 재난을 알아 병이 없는 위없는 유가안은인 열반을 구하고, 자신이 죽기 마련이지만 죽기 마련인 것에서 재난을 알아 죽음이 없는 위없는 유가안은인 열반을 구하고, 자신이 슬퍼하기 마련이지만 슬퍼하기 마련인 것에서 재난을 알아 슬픔이 없는 위없는 유가안은인 열반을 구하고, 자신이 오염되기 마련이지만 오염되기 마련인 것에서 재난을 알아 오염이 없는 위없는 유가안은인 열반을 구한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성스러운 구함입니다.(첨가) 13. 비구들이여, 나도 역시 깨닫기 전, 아직 정등각을 성취하지 못한 보살이었을 때 나 자신이 태어나기 마련이면서 태어나기 마련인 것을 구했다. 나 자신이 늙기 마련이면서 … 나 자신이 병들기 마련이면서 … 나 자신이 죽기 마련이면서 … 나 자신이 슬퍼하기 마련이면서 … 나 자신이 오염되기 마련이면서 오염되기 마련인 것을 구했다. 비구들이여, 그런 내게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왜 나 자신이 태어나면서 태어나기 마련인 것을 구하고 … 나는 왜 나 자신이 늙기 마련이면서 … 나는 왜 나 자신이 병들기 마련이면서 … 나는 왜 나 자신이 죽기 마련이면서 … 나는 왜 나 자신이 슬퍼하기 마련이면서 … 나는 왜 나 자신이 오염되기 마련이면서 오염되기 마련인 것을 구하는가? 참으로 나는 나 자신이 태어나기 마련이면서 태어나기 마련인 것에서 재난을 알아 태어남이 없는 위없는 유가안은인 열반을 구하고, 나 자신이 늙기 마련이면서 … 나 자신이 병들기 마련이면서 … 나 자신이 죽기 마련이면서 … 나 자신이 슬퍼하기 마련이면서 … 나 자신이 오염되기 마련이면서 오염되기 마련인 것에서 재난을 알아 오염이 없는 위없는 유가안은인 열반을 구하리라. |
수행승들이여, 고귀하게 구하는 것은 어떠한 것인가? 세상에 어떤 사람이 1) 스스로 생겨남에 묶여 있지만 생겨남에 묶여 있는 것의 위험을 알고, 생겨남에 묶여 있지 않은 위없는 안온인 열반을 구한다. 2) 스스로 늙음에 묶여 있지만 늙음에 묶여 있는 것의 위험을 알고, 늙음에 묶여 있지 않은 위없는 안온인 열반을 구한다. 3) 스스로 병듦에 묶여 있지만 병듦에 묶여 있는 것의 위험을 알고, 병듦에 묶여 있지 않은 위없는 안온인 열반을 구한다. 4) 스스로 죽음에 묶여 있지만 죽음에 묶여 있는 것의 위험을 알고, 죽음에 묶여 있지 않은 위없는 안온인 열반을 구한다. 5) 스스로 슬픔에 묶여 있지만 슬픔에 묶여 있는 것의 위험을 알고, 슬픔에 묶여 있지 않은 위없는 안온인 열반을 구한다. 6) 스스로 오염에 묶여 있지만 오염에 묶여 있는 것의 위험을 알고, 오염에 묶여 있지 않은 위없는 안온인 열반을 구한다. 수행승들이여, 이것이 고귀한 구함이다. 수행승들이여, 내가 깨달음을 이루기 전에 아직 바르고 원만하게 깨닫지 못한 보살이었을 때, 스스로 생겨남에 묶여 있으면서 생겨남에 묶여 있는 것을 구하며, 스스로는 늙음에 묶여 있으면서 늙음에 묶여 있는 것을 구하며, 스스로 병듦에 묶여 있으면서 병듦에 묶여 있는 것을 구하며, 스스로 죽음에 묶여 있으면서 죽음에 묶여 있는 것을 구하고, 스스로 슬픔에 묶여 있으면서 슬픔에 묶여 있는 것을 구하고, 스스로 오염에 묶여 있으면서 오염에 묶여 있는 것을 구했다. 수행승들이여, 그 때 나에게 이와 같은 생각이 떠올랐다. '왜 나는 스스로 생겨남에 묶여 있으면서 생겨남에 묶여 있는 것을 구하며, 스스로 늙음에 묶여 있으면서 늙음에 묶여 있는 것을 구하며, 스스로 병듦에 묶여 있으면서 병듦에 묶여 있는 것을 구하며, 스스로 죽음에 묶여 있으면서 죽음에 묶여 있는 것을 구하고, 스스로 슬픔에 묶여 있으면서 슬픔에 묶여 있는 것을 구하고, 스스로 오염에 묶여 있으면서 오염에 묶여 있는 것을 구하는가? 그러자 나에게 '스스로 생겨남에 묶여 있지만 생겨남에 묶여 있는 것의 위험을 알고, 생겨남에 묶여 있지 않은 위없는 안온인 열반을 구하고, 스스로 늙음에 묶여 있지만 늙음에 묶여 있는 것의 위험을 알고, 늙음에 묶여 있지 않은 위없는 안온인 열반을 구하고, 스스로 병듦에 묶여 있지만 병듦에 묶여 있는 것의 위험을 알고, 병듦에 묶여 있지 않은 위없는 안온인 열반을 구하고, 스스로 죽음에 묶여 있지만 죽음에 묶여 있는 것의 위험을 알고, 죽음에 묶여 있지 않은 위없는 안온인 열반을 구하고, 스스로 슬픔에 묶여 있지만 슬픔에 묶여 있는 것의 위험을 알고, 슬픔에 묶여 있지 않은 위없는 안온인 열반을 구하고, 스스로 오염에 묶여 있지만 오염에 묶여 있는 것의 위험을 알고, 오염에 묶여 있지 않은 위없는 안온인 열반을 구하는 것이 어떨까?'라는 생각이 떠올랐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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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비구들이여, 그런 나는 나중에 아직은 연소하고 젊고 머리가 검고 축복받은 젊음을 구족한 초년기에 부모님이 원치 않아 눈물을 흘리며 통곡하심에도 불구하고 삭발하고 가사를 입고 집을 떠나 출가했다. 15.그런 나는 이와 같이 출가하여 유익한 것을 구하고 위없는 평화로운 경지를 찾아 알라라 깔라마를 만나러 갔다. 가서는 알라라 깔라마에게 이렇게 말했다. 알라라 깔라마시여, 이 법과 율에서 청정범행을 닦고자 합니다. 비구들이여, 이렇게 말하자 알라라 깔라마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존자는 머무십시오. 이 법은 이 법에 대해 지혜가 있는 사람이라면 오래지 않아 자기 스승과 동등한 것을 스스로 최상의 지혜로 알고 실현하고 증득하여 머물 수 있는 그런 법입니다. 비구들이여, 그런 나는 오래지 않아 단번에즉시에 그 법을 증득했습니다. 비구들이여, 그가 말하자마자 "나는 압니다. 나는 봅니다"라고 지혜롭고 확신에 찬 말로 선언했습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인정했습니다. 비구들이여, 그런 내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알라라 깔라마는 단순히 믿음만으로나는 이 법을 스스로 최상의 지혜로 알고 실현하고 증득하여 머문다.라고 선언하는 것이 아니라, 참으로 알라라 깔라마는 이 법을 알고 보면서 머문다. 비구들이여, 그러자 나는 알라라 깔라마를 만나러 가서 이렇게 말했다. 깔라마 존자시여, 어떻게 이 법을 스스로 최상의 지혜로 알고 실현하고 증득했다고 머문다고 선언하십니까? ‘kittāvatā no, āvuso kālāma, imaṃ dhammaṃ sayaṃ abhiññā sacchikatvā upasampajja viharāmīti pavedesī’ti? 비구들이여, 이렇게 말하자 알라라 깔라마는 무소유처에 대해 설명해주었다. 비구들이여, 그런 내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알라라 깔라마에게만 믿음이 있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도 믿음이 있다. 알라라 깔라마에게만 정진이 있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도 정진이 있다. 알라라 깔라마에게만 마음챙김이 있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도 마음챙김이 있다. 알라라 깔라마에게만 삼매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도 삼매가 있다. 알라라 깔라마에게만 통찰지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도 통찰지가 있다. 참으로 나는 알라라 깔라마가 스스로 최상의 지혜로 알고 실현하고 증득했다고 증득하여 머문다고 선언하는 그 법을 실현하기 위해 정진하리라. 비구들이여, 그런 나는 오래지 않아 단번에즉시에 그 법을 스스로 최상의 지혜로 알고 실현하고 증득하여 머물렀다. So kho ahaṃ, bhikkhave, nacirasseva khippameva taṃ dhammaṃ sayaṃ abhiññā sacchikatvā upasampajja vihāsiṃ. 비구들이여, 그러자 나는 알라라 깔라마를 만나러 갔다. 가서는 알라라 깔라마에게 이렇게 말했다. 깔라마 존자시여, 당신은 이렇게 나는 이 법을 스스로 최상의 지혜로 알고 실현하고 증득했다.‘라고 선언하십니까? 존자여, 나는 이렇게 이 법을 스스로 최상의 지혜로 알고 실현하고 증득했다고 선언합니다. 깔라마 존자시여, 나도 이렇게 이 법을 스스로 최상의 지혜로 알고 실현하고 증득했다고 선언합니다. 존자여, 존자와 같은 분이 우리의 동료 수행자가 되는 것은 참으로 우리에게 이득이고 큰 축복입니다. 이처럼 내가 스스로 최상의 지혜로 알고 실현하고 증득하여 선언한 그 법을 존자도 스스로 최상의 지혜로 알고 실현하고 증득하여 머뭅니다. 그리고 존자가 스스로 최상의 지혜로 알고 실현하고 증득하여 머무는 법을 나도 스스로 최상의 지혜로 알고 실현하고 증득하여 선언합니다. 이처럼 내가 아는 그 법을 존자가 알고, 존자가 아는 그 법을 내가 압니다. 이와 같이 나처럼 존자도 그렇고 존자처럼 나도 그러합니다. 오십시오, 존자여. 우리 둘이 함께 머물면서 이 무리를 지도해 나갑시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알라라 깔라마는 나의 스승으로서 오히려 제자인 나에게 최상의 존경을 표했다. 나의 스승이었던 알라라 깔라마는 제자인 나를 자신과 동등한 위치에 놓고 나를 크게 공경했다. 비구들이여, 그런 내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법은 염오로 인도하지 못하고, 탐욕의 빛바램으로 인도하지 못하고, 소멸로 인도하지 못하고, 고요함으로 인도하지 못하고, 최상의 지혜로 인도하지 못하고, 바른 깨달음으로 인도하지 못하고, 열반으로 인도하지 못한다. 그것은 단지 무소유처에 다시 태어나게 할 뿐이다. 비구들이여, 그런 나는 그 법에 만족하지 않고 그 법을 염오하면서 떠나갔다. |
수행승들이여, 이러한 내가 나중에 젊은 청년이 되어 칠흑같은 머리카락을 지니고, 다복하고 혈기왕성한 인생의 청춘에 이르렀으나, 부모를 즐겁게 하지 않고, 그들이 눈물을 흘리고 통곡하는 가운데, 머리카락과 수염을 깎고 가사를 입고 집에서 집 없는 곳으로 출가했다. 나는 바로 이와 같이 수행자가 되어 무엇보다도 착하고 건전한 것들을 구하고 위없는 최상의 평화를 구하러 알라라 깔라마가 있는 곳을 찾아갔다. 가까이 다가가서 나는 알라라 깔라마에게 말했다. '존자여, 깔라마여, 나는 그대의 가르침과 계율에 따라 청정한 삶을 살고자 원합니다.' 수행승들이여, 이처럼 말하자 알라라 깔라마는 나에게 대답했다. '존자여, 머무십시오. 나의 가르침은 슬기로운 자라면 오래지 않아서 그 스승과 동일한 경지를 스스로 알고 깨달아 성취할 수 있는 그러한 가르침입니다.' 그래서 수행승들이여, 나는 오래지 않아 그 가르침을 배웠다. 수행승들이여, 나는 스승이 말하는 것과 똑같을 정도로 지혜의 이론을 말하고 장로의 이론에 대해 말했다. 나와 남이 모두 '나는 알고 또한 본다.'라고 인정했다. 수행승들이여, 그 때 나에게 이와 같은 생각이 떠올랐다. '깔라마는 자신의 가르침에 대해 '나는 스스로 알고 깨달아 성취했다.'라고 단지 확신만으로 주장한 것이 아니다. 실제로 깔라마는 이 가르침을 알고 또한 본다.' 그래서 나는 알라라 깔라마가 있는 곳을 찾아갔다. 가까이 다가가서 알라라 깔라마에게 말했다. '존자 깔라마여, 그대는 어떻게 '나는 스스로 알고 깨달아 성취했다.'라고 주장합니까?' 수행승들이여, 이와 같이 말하자 알라라 깔라마는 '아무 것도 없는 세계'에 관해 알려주었다. 수행승들이여, 그러자 나에게 이와 같은 생각이 떠올랐다. '깔라마에게만 믿음이 있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도 믿음이 있다. 깔라마에게만 정진이 있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도 정진이 있다. 깔라마에게만 새김이 있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도 새김이 있다. 깔라마에게만 집중이 있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도 집중이 있다. 깔라마에게만 지혜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도 지혜가 있다. 자, 이제 깔라마가 스스로 알고 깨달아 성취한 그 가르침을 스스로 성취하기 위해 노력해보면 어떨까?' 그 뒤에 수행승들이여, 나는 머지않아 곧 그 가르침을 스스로 알고 깨달아 성취했다. 수행승들이여, 그래서 나는 알라라 깔라마가 있는 곳을 다시 찾았다. 다가가서 알라라 깔라마에게 말했다. '존자 깔라마여, 그대는 이렇게 '나는 스스로 알고 깨달아 성취했다.'라고 주장합니까?' '존자여, 나는 이렇게 '내가 스스로 알고 깨달아 성취했다.'라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존자여, 나도 이렇게 그 가르침에 대해 스스로 알고 깨달아 성취했습니다.' '존자여, 이와 같은 존자를 동료 수행자로 보는 것은, 우리들에게 참으로 다행하고 행복한 일입니다. 이와 같이 내가 스스로 알고 깨달아 성취하여 주장한 그 가르침을 존자는 스스로 알고 깨달아 성취했습니다. 존자가 스스로 알고 깨달아 성취한 그 가르침이 바로 내가 스스로 알고 깨닫고 성취한 가르침이라고 선언합니다. 이와 같이 내가 아는 가르침을 존자가 알고 또한 존자가 아는 그 가르침을 내가 알았습니다. 이와 같이 나처럼 존자 역시 그러했고 존자처럼 나 역시 그러했습니다. 오십시오 존자여, 우리들 둘이서 이 무리를 수호합시다.' 수행승들이여, 이와 같이 알라라 깔라마는 나의 스승으로서 오히려 제자인 나에게 최상의 존경을 표했다. 그러나 그 때 나에게 '아무 것도 없는 세계'에 머무는 한, 그의 가르침은 싫어하여 떠남, 사라짐, 소멸, 적정, 지혜, 올바른 깨달음, 열반으로 이끌지 못한다.'라는 이와 같은 생각이 떠올랐다. 수행승들이여, 그래서 나는 그 가르침에 만족하지 않고 그 가르침을 싫어하여 그 곳을 떠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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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비구들이여, 그런 나는 유익한 것을 구하고 위없는 평화로운 경지를 찾아 웃다까 라마뿟따를 만나러 갔다. 가서는 웃다까 라마뿟따에게 이렇게 말했다. 웃다까 라마뿟따시여, 이 법과 율에서 청정범행을 닦고자 합니다. 비구들이여, 이렇게 말하자 웃다까 라마뿟따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존자는 머무십시오. 이 법은 이 법에 대해 지혜가 있는 사람이라면 오래지 않아 자기 스승과 동등한 것을 스스로 최상의 지혜로 알고 실현하고 증득하여 머물 수 있는 그런 법입니다. 비구들이여, 그런 나는 오래지 않아 즉시에 그 법을 증득했다. 비구들이여, 그런 나는 입술을 두드리자마자 말하자마자 지혜로운 말과 확신에 찬 말을 했다. 그래서 나는 나는 알고 본다.라고 선언했고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말했다. 비구들이여, 그런 내게 이런 생각이 들었다. 라마는 단순히 믿음만으로나는 이 법을 스스로 최상의 지혜로 알고 실현하고 증득하여 머문다.라고 선언하는 것이 아니라, 참으로 라마는 이 법을 알고 보면서 머문다. 비구들이여, 그러자 나는 웃다까 라마뿟따를 만나러 가서 이렇게 말했다. 라마뿟따 존자시여, 어떻게 이 법을 스스로 최상의 지혜로 알고 실현하고 증득하여 머문다고 선언하십니까? 비구들이여, 이렇게 말하자 웃다까 라마뿟따는 비상비비상처무소유처에 대해 설명해주었다. 비구들이여, 그런 내게 이런 생각이 들었다. 라마에게만 믿음이 있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도 믿음이 있다. 라마에게만 정진이 있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도 정진이 있다. 라마에게만 마음챙김이 있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도 마음챙김이 있다. 라마에게만 삼매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도 삼매가 있다. 라마에게만 통찰지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도 통찰지가 있다. 참으로 나는 라마가 스스로 최상의 지혜로 알고 실현하고 증득하여 머문다고 선언하는 그 법을 실현하기 위해 정진하리라. 비구들이여, 그런 나는 오래지 않아 단번에즉시에 그 법을 스스로 최상의 지혜로 알고 실현하고 증득하여 머물렀다. 비구들이여, 그러자 나는 웃다까 라마뿟따를 만나러 갔다. 가서는 웃다까 라마뿟따에게 이렇게 말했다. 존자시여, 라마는 이렇게나는 이 법을 스스로 최상의 지혜로 알고 실현하고 증득했다.라고 선언하셨습니까? 존자여, 라마는 이렇게 이 법을 스스로 최상의 지혜로 알고 실현하고 증득했다고 선언하셨습니다. 라마뿟따 존자시여, 나도 이렇게 이 법을 스스로 최상의 지혜로 알고 실현하고 증득하여 머뭅니다. 존자여, 존자와 같은 분이 우리의 동료 수행자가 되는 것은 참으로 우리에게 이득이고 큰 축복입니다. 이처럼 라마가 스스로 최상의 지혜로 알고 실현하고 증득하여 선언한 그 법을 존자도 스스로 최상의 지혜로 알고 실현하고 증득하여 머뭅니다. 그리고 존자가 스스로 최상의 지혜로 알고 실현하고 증득하여 머무는 그 법을 라마도 스스로 최상의 지혜로 알고 실현하고 증득하였다고 선언했습니다. 이처럼 라마가 알았던 그 법을 존자가 알고, 존자가 아는 그 법을 라마가 알았습니다. 이와 같이 라마처럼 존자도 그렇고 존자처럼 라마도 그러했습니다. 오십시오, 존자여. 그대가 이 무리를 지도해주십시오.Ehi dāni, āvuso, tuvaṃ imaṃ gaṇaṃ pariharā’ti.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나의 동료였던 웃다까 라마뿟따는 나를 스승의 위치에 올려놓고 나를 크게 공경했다. 비구들이여, 그런 내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법은 염오로 인도하지 못하고, 탐욕의 빛바램으로 인도하지 못하고, 소멸로 인도하지 못하고, 고요함으로 인도하지 못하고, 최상의 지혜로 인도하지 못하고, 바른 깨달음으로 인도하지 못하고, 열반으로 인도하지 못한다. 그것은 단지 비상비비상처에 다시 태어나게 할 뿐이다. 비구들이여, 그런 나는 그 법에 만족하지 않고 그 법을 염오하면서 떠나갔다. |
그래서 나는 무엇보다도 착하고 건전한 것들을 구하고 위없는 최상의 평화를 구하러 웃다까 라마뿟따가 있는 곳을 찾아갔다. 가까이 다가가서 나는 웃다까 라마뿟따에게 말했다. '존자여, 라마뿟따여, 나는 그대의 가르침과 계율에 따라 청정한 삶을 살고자 원합니다.' 수행승들이여, 이처럼 말하자 웃다까 라마뿟따는 나에게 대답했다. '존자여, 머무십시오. 나의 가르침은 슬기로운 자라면 오래지 않아서 그 스승과 동일한 세계를 스스로 알고 깨달아 성취할 수 있는 그러한 가르침입니다.' 그래서 수행승들이여, 나는 오래지 않아 그 가르침을 배웠다. 수행승들이여, 나는 스승이 말하는 것과 똑같을 정도로 지혜의 이론을 말하고 장로의 이론에 대해 말했다. 나와 남이 모두 내가 알고 또한 본다는 것을 인정했다. 수행승들이여, 그 때 나에게 이와 같은 생각이 떠올랐다. '라마뿟따는 자신의 가르침에 대해 '나는 스스로 알고 깨달아 성취했다.'라고 단지 확신만으로 주장한 것이 아니다. 실제로 라마뿟따는 이 가르침을 알고 또한 본다.' 그래서 나는 웃다까 라마뿟따가 있는 곳을 찾아갔다. 가까이 다가가서 웃다까 라마뿟따에게 말했다. '존자 라마뿟따여, 그대는 어떻게 '나는 스스로 알고 깨달아 성취했다.'라고 주장합니까?' 수행승들이여, 이와 같이 말하자 웃다까 라마뿟따는 '지각하는 것도 아니고 지각하지 않는 것도 아닌 세계'에 관해 알려주었다. 수행승들이여, 그러자 나에게 이와 같은 생각이 떠올랐다. '라마뿟따에게만 믿음이 있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도 믿음이 있다. 라마뿟따에게만 정진이 있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도 정진이 있다. 라마뿟따에게만 새김이 있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도 새김이 있다. 라마뿟따에게만 집중이 있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도 집중이 있다. 라마뿟따에게만 지혜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도 지혜가 있다. 자, 이제 라마뿟따가 스스로 알고 깨달아 성취한 그 가르침을 스스로 성취하기 위해 노력해보면 어떨까?' 그 뒤에 수행승들이여, 나는 머지않아 곧 그 가르침을 스스로 알고 깨달아 성취했다. 수행승들이여, 그래서 나는 웃다까 라마뿟따가 있는 곳을 다시 찾았다. 다가가서 웃다까 라마뿟따에게 말했다. '존자 라마뿟따여, 그대는 이렇게 '나는 스스로 알고 깨달아 성취했다.'라고 주장합니까?' '존자여, 나는 이렇게 '내가 스스로 알고 깨달아 성취했다.'라고 주장합니다.' '존자여, 나도 이렇게 그 가르침에 대해 스스로 알고 깨달아 성취했습니다.' '존자여, 이와 같은 존자를 동료 수행자로 보는 것은, 우리들에게 참으로 다행하고 행복한 일입니다. 이와 같이 내가 스스로 알고 깨달아 성취하여 주장한 그 가르침을 존자는 스스로 알고 깨달아 성취했습니다. 존자가 스스로 알고 깨달아 성취한 그 가르침이 바로 내가 스스로 알고 깨닫고 성취한 가르침이라고 선언합니다. 이와 같이 내가 아는 가르침을 존자가 알고 또한 존자가 아는 그 가르침을 내가 알았습니다. 이와 같이 나처럼 존자 역시 그러했고 존자처럼 나 역시 그러했습니다. 오십시오 존자여, 우리들 둘이서 이 무리를 수호합시다.' 수행승들이여, 이와 같이 웃다까 라마뿟따는 나의 스승으로서 오히려 제자인 나에게 최상의 존경을 표했다. 그러나 그 때 나에게 '지각하는 것도 아니고 지각하지 않는 것도 아닌 세계'에 머무는 한, 그의 가르침은 싫어하여 떠남, 사라짐, 소멸, 적정, 지혜, 올바른 깨달음, 열반으로 이끌지 못한다.'라는 이와 같은 생각이 떠올랐다. 수행승들이여, 그래서 나는 그 가르침을 존중하지 않고 그 가르침을 싫어하여 그 곳을 떠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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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비구들이여, 그런 나는 유익한 것을 구하고 위없는 평화로운 경지를 찾아 마가다 지방에서 차례로 유행하다가 우루웰라의 장군촌에 이르렀다. 그곳에서 아름다운 땅과 매력적인 숲과 유유히 흐르는 깨끗한 강과 아름다운 강기슭과 근처에 탁발할 수 있는 마을을 보았다. 비구들이여, 그런 내게 이런 생각이 들었다. 땅은 풍요롭고 숲은 상쾌하다. 유유히 흐르는 강은 맑고, 강기슭은 아름답다. 근처에는 탁발할 수 있는 마을이 있다. 참으로 이곳은 용맹정진을 원하는 좋은 가문의 아들들이 용맹정진하기에 적합한 곳이다. 18. 비구들이여, 그런 나는 자신이 태어나기 마련이면서 태어나기 마련인 것에서 재난을 알아 태어남이 없는 위없는 유가안은인 열반을 구하여 태어남이 없는 위없는 유가안은인 열반을 증득했다. 자신이 늙기 마련이면서 늙기 마련인 것에서 재난을 알아 늙음이 없는 위없는 유가안은인 열반을 구하여 늙음이 없는 위없는 유가안은인 열반을 증득했다. 자신이 병들기 마련이면서 병들기 마련인 것에서 재난을 알아 병이 없는 위없는 유가안은인 열반을 구하여 병이 없는 위없는 유가안은인 열반을 증득했다. 자신이 죽기 마련이면서 죽기 마련인 것에서 재난을 알아 죽음이 없는 위없는 유가안은인 열반을 구하여 죽음이 없는 위없는 유가안은인 열반을 증득했다. 자신이 슬퍼하기 마련이면서 슬퍼하기 마련인 것에서 재난을 알아 슬픔이 없는 위없는 유가안은인 열반을 구하여 슬픔이 없는 위없는 유가안은인 열반을 증득했다. 자신이 오염되기 마련이면서 오염되기 마련인 것에서 재난을 알아 오염이 없는 위없는 유가안은인 열반을 구하여 오염이 없는 위없는 유가안은인 열반을 증득했다. 내게는 지와 견이 생겼다. 나의 해탈은 확고부동하다. 이것이 나의 마지막 태어남이다. 더 이상 다시 태어남은 없다.라고. 19. 비구들이여, 그런 내게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증득한 이 법은 심오하여 보기 어렵고 깨닫기 어렵고 고요하고 수승하고 사유의 영역을 넘어섰고 미묘하여 오로지 현자들만이 알아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집착을 좋아하고 집착을 기뻐하고 집착을 즐긴다. 집착을 좋아하고 집착을 기뻐하고 집착을 즐기는 사람들이 이런 이치경지(idaṁ ṭhānaṁ), 즉 이것이 조건이 됨, 연기를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또한 모든 형성된 것들의 가라앉음, 모든 재생의 근거를 완전히 놓아 버림, 갈애의 멸진, 탐욕의 빛바램, 소멸, 열반을 보기도 어려울 것이다. 설혹 내가 법을 가르친다고 하더라도 저들의 내 말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나를 피로하게 할 뿐이고, 나를 성가시게 할 뿐이다. 그때 나에게 이전에 들어보지 못한 게송계승이 문득즉흥적으로 떠올랐다. idappaccayatā paṭiccasamuppādo. Idampi kho ṭhānaṃ duddasaṃ yadidaṃ |
그래서 나는 무엇보다도 착하고 건전한 것들을 구하고 위없는 최상의 평화를 구하러 마가다 국을 차례로 유행하면서 마침내 우루벨라 근처의 쎄나니가마에 도착했다. 거기서 나는 고요한 우거진 숲이 있고 아름다운 둑에 싸여 맑게 흐르는 강물이 있고, 주변에 탁발할 수 있는 마을이 있는, 마음에 드는 지역을 발견했다. 그래서 나에게 이와 같은 생각이 떠올랐다. '고요한 우거진 숲이 있고, 아름다운 둑에 싸여 맑게 흐르는 강물이 있고, 주변에 탁발할 수 있는 마을이 있는, 이 지역이 마음에 든다. 이곳은 정진을 바라는 훌륭한 가문의 자제가 정진에 집중할 수 있는 적당한 장소이다.' 나는 '이곳은 정진하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하며 거기에 좌정했다. 수행승들이여, 그래서 나는 1) 스스로 생겨남에 묶여 있지만, 생겨남에 묶여 있는 것의 위험을 알고 생겨남에 묶여 있지 않은 위없는 안온인 열반을 구하고, 생겨남이 없는 위없는 안온인 열반에 도달했다. 2) 스스로 늙음에 묶여 있지만, 늙음에 묶여 있는 것의 위험을 알고 늙음에 묶여 있지 않은 위없는 안온인 열반을 구하고, 늙음이 없는 위없는 안온인 열반에 도달했다. 3) 스스로 병듦에 묶여 있지만, 병듦에 묶여 있는 것의 위험을 알고 병듦에 묶여 있지 않은 위없는 안온인 열반을 구하고, 병듦이 없는 위없는 안온인 열반에 도달했다. 4) 스스로 죽음에 묶여 있지만, 죽음에 묶여 있는 것의 위험을 알고 죽음에 묶여 있지 않은 위없는 안온인 열반을 구하고, 죽음이 없는 위없는 안온인 열반에 도달했다. 5) 스스로 슬픔에 묶여 있지만, 슬픔에 묶여 있는 것의 위험을 알고 슬픔에 묶여 있지 않은 위없는 안온인 열반을 구하고, 슬픔이 없는 위없는 안온인 열반에 도달했다. 6) 스스로 오염에 묶여 있지만, 오염에 묶여 있는 것의 위험을 알고 오염에 묶여 있지 않은 위없는 안온인 열반을 구하고, 오염이 없는 위없는 안온인 열반에 도달했다. 나에게 이와 같이 '나의 해탈은 흔들리지 않는다. 이것이 태어남의 끝이다. 더 이상 윤회는 없다.'라고 앎과 봄이 생겨났다. 수행승들이여, 이와 같이 나는 생각했다. '내가 증득한 이 진리는 심원하고, 보기 어렵고, 깨닫기 어렵고, 고요하고, 탁월하고, 사고의 영역을 뛰어넘고, 극히 미묘하여 슬기로운 자들에게만 알려지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경향을 즐기고 경향을 기뻐하고 경향에 만족한다. 그러나 경향을 즐기고 경향을 기뻐하고 경향에 만족하는 사람들은 이와 같은 도리, 즉 조건적 발생의 법칙인 연기를 보기 어렵다. 또한 이와 같은 도리, 즉 모든 형성의 그침, 모든 집착의 보내버림, 갈애의 부숨, 사라짐, 소멸, 열반을 보기 어렵다. 그러나 내가 이 진리를 가르쳐서 다른 사람들이 나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나의 고통이 되고 나에게 상처를 줄 것이다.' 그런데, 수행승들이여, 나에게 예전에 없었던 경탄할 만한 훌륭한 시들이 떠올랐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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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어렵게 증득한 법을 과연 지금 당장 설할 필요가 있을까? 탐욕과 성냄으로 가득한 자들은 흐름을 거스르고 미묘하고 심오하고 보기 어렵고 미세한 이 법을 깨닫기란 실로 어렵네. 어둠의 무더기에 덮여있고 탐욕에 물든 자들은 이 법을 보지 못하리.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숙고할 때 내 마음은 법을 설하기보다는 무관심으로 기울었다. 20.비구들이여, 그때 사함빠띠 범천은 그의 마음으로 내 마음의 일으킨 생각을 알고서 이런 생각을 했다. 여래•아라한•정등각자께서 법을 설하기보다는 무관심으로 마음을 기울이신다면 세상은 망할 것이고, 세상은 파멸할 것이다. 비구들이여, 그러자 사함빠띠 범천은 마치 힘센 사람이 구부린 팔을 펴고 편 팔을 구부리듯이 그렇게 재빨리 범천의 세상에서 사라져 내 앞에 나타났다. 비구들이여, 그때 사함빠띠 범천은 한쪽 어깨가 드러나게 윗옷을 입고 나를 향해 합장하고 이렇게 말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법을 설하소서. 선서께서는 법을 설하소서. 눈에 먼지가 적게 낀 중생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법을 듣지 않으면 타락할 것입니다. 그 법을 이해할만한 자들이 있을 것입니다. 비구들이여, 사함빠띠 범천은 이렇게 말했다. 이렇게 말하고 다시 다음과 같이 말했다. |
'참으로 힘들게 성취한 진리를 왜 내가 지금 설해야 하나. 탐욕과 미움에 사로잡힌 자들은 이 진리를 잘 이해하기 힘드네. 흐름을 거슬러가 오묘하며 심오하고 미세한 진리는 보기 어렵네. 어둠의 무리에 뒤덮인 탐욕에 물든 자들은 보지 못하네.' 수행승들이여, 이와 같이 나는 숙고해서 주저하며 진리를 설하지 않기로 마음을 기울였다. 수행승들이여, 그 때 하느님 싸함빠띠(부처님시대에 싸하까라는 장로)가 내가 마음속으로 생각하는 바를 알아 차리고 이와 같이 생각했다. '이렇게 오신 님, 고귀한 님, 올바로 원만히 깨달은 님께서 주저하며 진리를 설하지 않기로 마음을 기울이신다면 참으로 세계는 멸망한다. 참으로 세계는 파멸한다.' 수행승들이여, 그래서 하느님 싸함빠띠는 마치 힘센 사람이 굽혀진 팔을 펴고 펴진 팔을 굽히는 듯한 그 사이에, 하느님의 세계에서 모습을 감추고 내 앞에 모습을 나타내었다. 수행승들이여, 그리고 하느님 싸함빠띠는 왼쪽 어께에 가사를 걸치고 오른쪽 무릎을 땅에 꿇은 채, 내가 있는 곳을 향해 합장하고 나에게 이와 같이 말했다. '세존이시여, 세상에서 존귀한 님께서는 진리를 가르쳐 주십시오. 올바른 길로 잘 가신 님께서는 진리를 가르쳐 주십시오. 태어날 때부터 거의 더러움에 물들지 않은 뭇삶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진리를 듣지 못하면 쇠퇴합니다. 진리를 이해하는 자도 있을 것입니다.' 수행승들이여, 이와 같이 하느님 싸함빠띠는 말했다. 말하고 나서 이와 같은 시를 읊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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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 묻은 자들이 궁리해낸 청정치 못한 법이 일찍이(전에) 마가다에 퍼져있으니,나타났습니다. 불사의 문을 여소서. 때 없는 분이 깨달으신 법을 듣게 하소서. Pāturahosi magadhesu pubbe, 마치 바위산 꼭대기에 서면 주변의 사람들을 두루 볼 수 있듯이 널리 보는 눈을 지닌 현자시여, 그와 같이 법의으로 충만한 궁전에 올라 슬픔을 제거한 분께서는 슬픔에 빠져 있고 태어남과 늙음에 압도된 자들을 굽어 살피시오소서. Sele yathā pabbatamuddhaniṭṭhito, Yathāpi passe janataṃ samantato; Tathūpamaṃ dhammamayaṃ sumedha, Pāsādamāruyha samantacakkhu; Sokāvatiṇṇaṃ janatamapetasoko, Avekkhassu jātijarābhibhūtaṃ. 일어서소서. 영웅이시여, 전쟁의 승리자시여,에서 승리하신 분이시여 대상의 지도자시여, 빚 없는 분이시여, 세상에 유행하소서. 법을 이해할만한 자들이 있으리니 을 것입니다. 세존께서는 법을 설하소서. 21. 비구들이여, 그러자 나는 범천의 간청을 충분히 알고 중생에 대한 연민으로 부처의 눈으로 세상을 두루 살펴보았다. 비구들이여, 나는 부처의 눈으로 세상을 두루 살펴보면서 중생들 가운데는 때가 엷게 낀 사람도 있고 두텁게 낀 사람도 있고, 기능이 예리한 사람도 있고 둔한 사람도 있고, 자질이 선량한 사람도 있고 나쁜 사람도 있고, 가르치기 쉬운 사람도 있고 어려운 사람도 있으며, 어떤 사람들은 저세상과 비난에 대해 두려움을 보며 지내는 것도 보았다. 예를 들면 어떤 청련이나 홍련이나 백련은(uppalāni vā padumāni vā puṇḍarīkāni ) 물속에서 생겨나 물속에서 성장하고 물에 잠겨 그 속에서만 자란다. 어떤 청련이나 홍련이나 백련은 물속에서 생겨나 물속에서 자라서 물의 표면까지 나온다. 어떤 청련이나 홍련이나 백련은 물속에서 생겨나 물속에서 성장하여 물 위로 올라와 당당하게 서서 물에 젖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그와 같이 나는 부처의 눈으로 세상을 두루 살펴보면서 중생들 가운데 때가 엷게 낀 사람도 있고 두텁게 낀 사람도 있고, 기능이 예리한 사람도 있고 둔한 사람도 있고, 자질이 선량한 사람도 있고 나쁜 사람도 있고, 가르치기 쉬운 사람도 있고 어려운 사람도 있으며, 어떤 사람들은 저세상과 비난에 대해 두려움을 보며 지내는 것도 보았다. 비구들이여, 그때 나는 사함빠띠 범천에게 게송으로 대답했다. |
'오염된 자들이 생각해낸 부정한 가르침이 일찍이 마가다 인들에게 퍼져있으니, 불사의 문을 열어젖히소서! 그들이 듣게 하소서! 청정한 님께서 깨달은 진리를. 산꼭대기의 바위 위에 서서 사방으로 사람들을 굽어보는 것처럼, 현자여, 널리 보는 눈을 지닌 님이여, 진리로 이루어진 전당에 오르소서. 슬픔을 여윈 님께서는 슬픔에 빠지고 태어남과 늙음에 고통받는 뭇삶을 보소서. 일어서소서. 영웅이여, 전쟁의 승리자여, 세상을 거니소서. 캐러밴의 지도자여, 허물없는 님이여, 알아듣는 자가 반드시 있으리니. 세존께서는 가르침을 설하여 주소서.' 수행승들이여, 그러자 나는 하느님의 요청을 알고는 뭇삶에 대한 자비심 때문에 깨달은 님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았다. 그 때, 수행승들이여, 나는 깨달은 님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면서 조금밖에 오염되지 않은 뭇삶, 많이 오염되 뭇삶, 예리한 감각능력을 지닌 뭇삶, 둔한 감각능력을 지진 뭇삶, 아름다운 모습의 뭇삶, 추한 모습의 뭇삶, 가르치기 쉬운 뭇삶, 가르치기 어려운 뭇삶, 그리고 내세와 죄악을 두려워하는 무리의 뭇삶들을 보았다. 마치 청련화, 홍련화, 백련화의 연못에서 어떤 무리의 청련화, 홍련화, 백련화는 물속에서 생겨나 물속에서 자라서 물속에서 나오지 않고 수중에 잠겨 자라고 어떤 무리의 청련화, 홍련화, 백련화는 물속에서 생겨나 물속에서 자라서 수면까지 나와 있으며, 어떤 무리의 청련화, 홍련화, 백련화는 물속에서 생겨나 물속에서 자라서 수면을 벗어나 물에 젖지 않는 것처럼, 이와 같이 깨달은 님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조금밖에 오염되지 않은 뭇삶, 많이 오염된 뭇삶, 예리한 감각능력을 지닌 뭇삶, 둔한 감각능력을 지닌 뭇삶, 아름다운 모습의 뭇삶, 추한 모습의 뭇삶, 가르치기 쉬운 뭇삶, 가르치기 어려운 뭇삶, 그리고 내세와 죄악을 두려워하는 무리의 뭇삶들을 보았다. 수행승들이여, 그리고 나서 나는 하느님 싸함빠띠에게 시로써 대답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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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에게 감로의 문은 열렸다. 귀를 가진 자, 자신의 믿음을 버려라. 범천이여, 이 미묘하고 숭고한 법을 성가실 뿐이라는 생각에 사람들에게 설하지 않았네. 비구들이여, 그러자 사함빠띠 범천은 나는 세존께서 법을 설하시도록 기회를 제공했다.라고 생각하면서 내게 절을 올리고 오른쪽으로 돌아 그곳에서 사라졌다. 22. 비구들이여, 그런 내게 이런 생각이 들었다. 누구에게 제일 먼저 법을 설해야 할까? 누가 이 법을 빨리 이해할 수 있을까? 비구들이여, 그런 내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알라라 깔라마는 지자이시고 슬기롭고 현명하며 오랫동안 때가 엷게 낀 분이다. 나는 알라라 깔라마에게 제일 먼저 법을 설하리라. 그는 이 법을 빨리 이해할 것이다. 비구들이여, 그러자 천신들이 내게 와서 이렇게 말했다. 세존이시여, 알라라 깔라마는 칠 일 전에 임종했습니다. 그러자 내게도알라라 깔라마는 칠 일 전에 임종했다.라는 지와 견이 일어났다. 비구들이여, 그런 내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알라라 깔라마는 크게 잃었구나! 그가 이 법을 들었더라면 즉시 이해했을 것이다. 23. 비구들이여, 그런 내게 이런 생각이 들었다. 누구에게 제일 먼저 법을 설해야 할까? 누가 이 법을 빨리 이해할 수 있을까? 비구들이여, 그런 내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웃다까 라마뿟따는 지자이시고 슬기롭고 현명하며 오랫동안 때가 엷게 낀 분이다. 나는 웃다까 라마뿟따에게 제일 먼저 법을 설하리라. 그는 이 법을 빨리 이해할 것이다. 비구들이여, 그러자 천신들이 내게 와서 이렇게 말했다. 세존이시여, 웃다까 라마뿟따는 지난밤에 임종했습니다. 그러자 내게도웃다까 라마뿟따는 지난밤에 임종했다.라는 지와 견이 일어났다. 비구들이여, 그런 내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웃다까 라마뿟따는 크게 잃었구나! 그가 이 법을 들었더라면 즉시 이해했을 것이다. Tassa mayhaṃ, bhikkhave, etadahosi: ‘mahājāniyo kho udako rāmaputto. Sace hi so imaṃ dhammaṃ suṇeyya, khippameva ājāneyyā’ti. jāniya adj. incurring a loss; having a misfortune [√hā–ni–iya] |
'그들에게 불사의 문은 열렸다. 듣는 자들은 자신의 신앙을 버려라. 하느님이여, 나는 곤란을 예견하고 극히 미묘한 진리를 설하지 않았네.' 수행승들이여, 그 때야 비로소 하느님 싸함빠띠는 생각했다. '세존께서는 진리를 설하실 것을 내게 수락하셨다.' 그는 나에게 인사를 하고 오른쪽으로 돌고 나서 그곳에서 사라졌다. 수행승들이여, 마침 이와 같은 생각이 나에게 떠올랐다. '누구에게 내가 가장 먼저 가르침을 설할까? 누가 이 가르침을 신속하게 이해할 수 있을까?' 수행승들이여, 그래서 나에게 이와 같은 생각이 생겨났다. '그 알라라 깔라마는 현자로서 유능하고 슬기로운 자이며, 오랜 세월 눈에 티끌을 여읜 자이다. 내가 알라라 깔라마에게 가장 먼저 가르침을 설하면 어떨까? 그가 이 가르침을 신속하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수행승들이여, 그 때 어떤 하늘사람이 내려와 나에게 말했다. '세존이시여, 알라라 깔라마는 죽은 지 이미 칠일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나에게도 역시 '알라라 깔라마는 죽은지 이미 칠일이 되었다.'라는 앎과 봄이 일어났다. 수행승들이여, 그래서 내게 이와 같은 생각이 일어났다. '알라라 깔라마는 그 성품이 위대했다. 만약 그가 가르침을 들었다면, 신속하게 이해했을 것이다.' 수행승들이여, 마침 이와 같은 생각이 나에게 떠올랐다. '누구에게 내가 가장 먼저 가르침을 설할까? 누가 이 가르침을 신속하게 이해할 수 있을까?' 수행승들이여, 그래서 나에게 이와 같은 생각이 생겨났다. '그 웃다까 라마뿟따는 현자로서 유능하고 슬기로운 자이며 오랜 세월 눈에 티끌을 여읜 자이다. 내가 웃다까 라마뿟따에게 가장 먼저 가르침을 설하면 어떨까?' 수행승들이여, 그 때 어떤 하늘사람이 내려와 나에게 말했다. '세존이시여, 웃다까 라마뿟따는 지난 밤에 죽었습니다.' 그런데 나에게도 역시 '웃다까 라마뿟따는 지난 밤에 죽었다.'라는 앎과 봄이 일어났다. 수행승들이여, 그래서 내게 이와 같은 생각이 일어났다. '웃다까 라마뿟따는 그 성품이 위대했다. 크게 잃었구나만약 그가 가르침을 들었다면, 신속하게 이해했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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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비구들이여, 그런 내게 이런 생각이 들었다. 누구에게 제일 먼저 법을 설해야 할까? 누가 이 법을 빨리 이해할 수 있을까? 비구들이여, 그런 내게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용맹정진을 할 때 오비구가 나를 시봉하면서 내게 많은 도움을 주었다. 나는 그 오비구에게 제일 먼저 법을 설하리라. 그들은 이 법을 즉시 이행할 것이다. 비구들이여, 그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지금 오비구는 어디에 머물고 있을까? 비구들이여, 나는 인간의 능력을 넘어선 청정한 하늘눈으로 오비구가 바라나시에서 이시빠따나의 녹야원에 머물고 있는 것을 보았다. 법을 설하심 25. 비구들이여, 나는 우루웰라에서 흡족하게 머물고는 바라나시로 유행을 떠났다. 비구들이여, 아지와까 유행승인 우빠까가 가야와 보리좌의 중간쯤에서 길 가는 나를 보고 이렇게 말했다. 도반이여, 그대의 감관은 밝습니다. 피부색은 청정하고 빛이 납니다. 도반이여, 그대는 어느 분께 출가했습니까? 그대의 스승은 누구십니까? 그대는 어느 분의 가르침을 따르고 있습니까? 비구들이여, 이렇게 말했을 때 나는 아지와까 유행승인 우빠까에게 게송으로 대답했다. 나는 일체승자요, 일체지자이며 어떤 것에도 물들지 않고 일체를 버리고 갈애가 다하여 해탈했고 스스로 최상의 지혜로 알았으니 누구를 스승이라 부르겠는가? 나에게는 스승도 없고 유사한 이도 없으며 지상에도 천상에도 나와 견줄 이 없네. 나는 세상에서 아라한이고 위없는 스승이며 유일한 정등각자이고 모든 번뇌가 꺼졌고 적멸을 이루었다네. Ahañhi arahā loke, ahaṃ satthā anuttaro; Ekomhi sammāsambuddho, sītibhūtosmi nibbuto. 나는 까시가시의 성으로 가서 법의 바퀴를 굴리리라.19 어두운 이 세상에 불사의 북을 울릴 것이다. Dhammacakkaṃ pavattetuṃ, Gacchāmi kāsinaṃ puraṃ; Andhībhūtasmiṃ lokasmiṃ, Āhañchaṃ amatadundubhin’ti. 도반이여,그대가 선언한 바와 같다면 그대는 무한한 승리자가 되기에 적합합니다. 번뇌 다한 나 같은 사람들이야말로 진정한 승리자이니 우빠까여, 일체의 악한 법을 정복했기에 나는 승리자이다. 비구들이여, 이렇게 말하자 그 아지와까 유행승인 우빠까는 도반이여, 그렇게 되길 바랍니다.라고 말하고서 머리를 흔들면서 다른 길로 떠났다. |
수행승들이여, 마침 이와 같은 생각이 나에게 떠올랐다. '누구에게 내가 가장 먼저 가르침을 설할까? 누가 이 가르침을 신속하게 이해할 수 있을까?' 수행승들이여, 그래서 나에게 이와 같은 생각이 생겨났다. '내가 정진하며 스스로 노력할 때에 나를 도와 많은 도움을 준 다섯 명의 수행승들이 있다. 내가 그들 다섯 명의 수행승들에게 가장 먼저 가르침을 설하면 어떨까?' 수행승들이여, 이 때 이와 같은 생각이 떠올랐다. '그런데 다섯 명의 수행자들은 어디에 있을까?' 수행승들이여, 나는 청정해서 인간을 뛰어넘는 하늘눈으로 다섯 명의 수행승들이 바라나씨 시에 있는 이씨빠따나의 미가다야에서 지내는 것을 보았다. 수행승들이여, 그래서 나는 우루벨라에서 뜻대로 즐겁게 지낸 뒤에 바라나씨 시로 출발했다. 수행승들이여, 사명외도 우빠까가 가야 강과 보리수 사이에서 길을 가는 나를 보았다. 보고 나서 나에게 말했다. '벗이여, 그대의 감관은 맑고 피부색은 청정하다. 벗이여, 그대는 누구에게 출가하였으며, 그대의 스승은 누구인가, 누구의 가르침을 즐겨 배우는가?' 수행승들이여, 이와 같은 말을 듣고 나는 사명외도 우빠까에게 시로써 말했다. -'나는 모든 것에서 승리한 자, 일체를 아는 자. 모든 상태에 오염되는 것이 없으니 일체를 버리고 갈애를 부수어 해탈을 이루었네 스스로 알았으니 누구를 스승이라 하겠는가. 나에게는 스승도 없고 그와 유사한 것도 없고. 천상과 인간의 세계에서 나와 견줄만한 이 없네. 나는 참으로 세상에서 거룩한 님, 위없는 스승이고 유일한, 올바로 원만히 깨달은 자로서 청량한 적멸을 얻었네. 진리의 수레바퀴를 굴리기 위하여 까씨 성으로 가네 눈 먼 세계에서 불사의 북을 두드리리.' -'벗이여, 무한승리자가 될 만하다고 자인하는가?' -'번뇌가 부수어지면 그들도 나와 같은 승리자가 되리. 악한 것을 정복하여, 우빠까여, 나는 승리자가 되었네.' 수행승들이여, 이와 같이 말하자 사명외도 우빠까는 '벗이여, 그럴 지도 모르지.'라고 말하고 머리를 흔들며 샛길로 사라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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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비구들이여, 그때 나는 차례대로 유행하여 바라나시 이시빠따나의 녹야원에 있는 오비구를 찾아갔다. 비구들이여, 오비구는 멀리서 내가 오는 것을 보았다. 보고는 서로 합의했다. “도반들이여, 저기 사문 고따마가 오고 있습니다. 그는 호사스러운 생활을 하고 용맹정진을 포기하고 사치스러운 생활에 젖어있습니다. 그가 오면 아무런 인사도 하지 말고, 일어서지도 말고, 그의 발우와 가사를 받아주지도 맙시다. 그러나 만일 그가 원한다면 앉을 수는 있도록 자리는 마련해줍시다. 비구들이여, 그러나 나는 내가 점점 가까이 다가가자 오비구는 그들 스스로의 합의를 지킬 수 없었다. 한 사람은 마중 나와 발우와 가사를 받아 들었고, 다른 사람은 자리를 마련하고, 또 다른 사람은 발 씻을 물을 가져왔다. 그러나 그들은 나의 이름을 부르고도반이여.라고 말을 걸었다. 27.비구들이여, 나는 오비구에게 이렇게 말했다. 비구들이여, 여래를 (고따마라는)이름으로 불러서도 안되고도반이여.라고 불러서도 안된다. 비구들이여, 여래는 아라한이고, 바르게 완전한 깨달음을 성취한 사람이다. 비구들이여, 귀를 기울여라. 불사는 성취되었다. 내 이제 그대들에게 가르쳐주리라. 그대들에게 법을 설하리라. ‘mā, bhikkhave, tathāgataṃ nāmena ca āvusovādena ca samudācaratha. Arahaṃ, bhikkhave, tathāgato sammāsambuddho. Odahatha, bhikkhave, sotaṃ, amatamadhigataṃ, ahamanusāsāmi, ahaṃ dhammaṃ desemi. 내가 가르친 대로 따라 실천하면, 그대들은 오래지 않아 좋은 가문의 아들들이 바르게 집을 떠나 출가하는 목적인 그 위없는 청정범행의 완성을 지금여기에서 최상의 지혜로 알고 실현하고 구족하여 머물 것이다. 비구들이여, 이렇게 말하자 오비구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도반 고따마여, 그런 행동과 그런 도닦음과 그런 난행고행으로도 인간의 법을 초월했고 성자들에게 적합한 지와 견의 특별함이 성취되지 않았습니다. 그대는 이제 호사스러운 생활을 하고 용맹정진을 포기하고 사치스러운 생활에 젖어있습니다. 그런 그대가 어떻게 인간의 법을 초월했고 성자들에게 적합한 지와 견의 특별함을 증득하겠습니까? 비구들이여, 오비구가 이와 같이 말했을 때 나는 그들에게 이렇게 대답했다. 비구들이여, 여래는 호사스러운 생활을 하지도 용맹정진을 포기하지도 사치스러운 생활에 젖지도 않았다. 비구들이여, 여래는 아라한이고, 바르게 완전한 깨달음을 성취한 사람이다. 비구들이여, 귀를 기울여라. 불사는 성취되었다. 내 이제 그대들에게 가르쳐주리라. 그대들에게 법을 설하리라. 내가 가르친 대로 따라 실천하면, 그대들은 오래지 않아 좋은 가문의 아들들이 바르게 집을 떠나 출가하는 목적인 그 위없는 청정범행의 완성을 지금여기에서 최상의 지혜로 알고 실현하고 구족하여 머물 것이다. |
수행승들이여, 그래서 나는 점차로 유행하면서, 바라나씨 시에 있는 이씨빠따나의 미가다야로 다섯 명의 수행승들이 있는 곳을 찾아갔다. 수행승들이여, 그들 다섯 명의 수행승들은 멀리서 내가 오는 것을 보았다. 보고 나서 그들은 서로 약조했다. '벗이여, 수행자 고따마가 온다. 윤택하게 살며 정진을 포기하고 사치에 빠졌다. 우리는 그에게 인사도 하지 말고 일어나 영접하지도 말고 옷과 발우를 받지도 말자. 그러나 그가 앉기를 원한다면, 자리를 깔아주자.' 그렇지만 수행승들이여, 내가 더 가까이 다가감에 따라서 그들 다섯 명의 수행승들은 스스로 약조를 지킬 수 없었다. 어떤 자는 나를 맞으러 나와 가사와 발우를 받아 들었다. 어떤 자는 자리를 펴주고, 어떤 자는 발 씻을 물을 준비했다. 또한 그들은 나의 이름을 부르며 '벗이여'라고 말을 걸었다. 수행승들이여, 그와 같이 말을 걸어오자 나는 다섯 명의 수행승들에게 이와 같이 말했다. -'수행승들이여, 여래의 호칭을 '벗이여'라고 부르지 말라. 수행승들이여, 여래는 거룩한 님, 올바로 원만히 깨달은 님이다. 수행승들이여, 귀를 기울여라. 불사가 성취되었다. 내가 가르치리라. 내가 가르침을 설할 것이다. 내가 가르친 대로 그대로 실천하면, 머지않아 훌륭한 가문의 자제로서 집에서 집 없는 곳으로 출가한 그 목적인 위없는 청정한 삶의 완성을 지금 여기에서 스스로 알고 깨닫고 성취하게 될 것이다.' 수행승들이여, 이와 같이 말하자 다섯 명의 수행승들은 내게 이와 같이 말했다. -'벗이여, 그대는 그 행동, 그 실천, 그 고행으로도 인간의 상태를 뛰어넘지 못했고, 그대는 고귀한 님이 갖추어야 할, 지극히 탁월한 앎과 봄에 이르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지금 그대는 윤택하게 살며 정진을 포기하고 사치에 빠져 있습니다. 그런 그대가 어떻게, 인간의 상태를 뛰어넘고, 고귀한 님이 갖추어야 할, 지극히 탁월한 앎과 봄에 이를 수 있겠습니까?' 수행승들이여, 이와 같은 말을 듣고, 나는 그들 다섯 명의 수행승들에게 말했다. -'수행승들이여, 나는 윤택하게 살지 않으며 정진을 포기하지도 않았고 사치에 빠지지도 않았다. 수행승들이여, 여래는 거룩한 님, 올바로 원만히 깨달은 님이다. 수행승들이여, 귀를 기울여라. 불사가 성취되었다. 내가 가르치리라. 내가 가르침을 설할 것이다. 내가 가르친 대로 그대로 실천하면, 머지않아 훌륭한 가문의 자제로서 집에서 집 없는 곳으로 출가한 그 목적인, 위없는 청정한 삶의 완성을 지금 여기에서 스스로 알고 깨닫고 성취하게 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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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구들이여, 두 번째에도 오비구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도반 고따마여, 그런 행동과 그런 도닦음과 그런 난행고행으로도 … 인간의 법을 초월했고 성자들에게 적합한 지와 견의 특별함을 증득했습니까? 비구들이여, 그때에도 나는 오비구에게 대답했다. 비구들이여, 여래는 호사스러운 생활을 하지도 … 구족하여 머물 것이다. 비구들이여, 세 번째에도 오비구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도반 고따마여, 그런 행동과 그런 도닦음과 그런 난행고행으로도 … 인간의 법을 초월했고 성자들에게 적합한 지와 견의 특별함을 증득했습니까? 비구들이여, 그때에도 나는 오비구에게 대답했다. 비구들이여, 여래는 호사스러운 생활을 하지도 … 구족하여 머물 것이다. 28.비구들이여, 오비구가 이와 같이 말했을 때 나는 그들에게 이렇게 대답했다. 비구들이여, 그대들은 이전에 내가 이렇게 말하는 것을 본 적이 있는가? 없습니다, 존자시여.‘abhijānātha me no tumhe, bhikkhave, ito pubbe evarūpaṃ pabhāvitametan’ti? ‘No hetaṃ, bhante’. 비구들이여, 여래는 호사스러운 생활을 하지도 용맹정진을 포기하지도 사치스러운 생활에 젖지도 않았다. 비구들이여, 여래는 아라한이고, 바르게 완전한 깨달음을 성취한 사람이다. 비구들이여, 귀를 기울여라. 불사는 성취되었다. 내 이제 그대들에게 가르쳐주리라. 그대들에게 법을 설하리라. 내가 가르친 대로 따라 실천하면, 그대들은 오래지 않아 좋은 가문의 아들들이 바르게 집을 떠나 출가하는 목적인 그 위없는 청정범행의 완성을 지금여기에서 최상의 지혜로 알고 실현하고 구족하여 머물 것이다. 29.비구들이여, 드디어 나는 오비구를 확신시킬 수가 있었다. 비구들이여, 두 비구를 가르치는 동안 세 비구가 탁발을 나갔다. 세 비구가 탁발하여 가져오면 우리 여섯 명이 연명했다. 비구들이여, 세 비구를 가르치는 동안 두 비구가 탁발을 나갔다. 두 비구가 탁발하여 가져오면 우리 여섯 명이 연명했다. |
수행승들이여, 두 번째에도 다섯 명의 수행승들은 내게 이와 같이 말했다. -'벗이여, 그대는 그 행동, 그 실천, 그 고행으로도 인간의 상태를 뛰어넘지 못했고, 그대는 고귀한 님이 갖추어야 할, 지극히 탁월한 앎과 봄에 이르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지금 그대는 윤택하게 살며 정진을 포기하고 사치에 빠져 있습니다. 그런 그대가 어떻게, 인간의 상태를 뛰어넘고, 고귀한 님이 갖추어야 할, 지극히 탁월한 앎과 봄에 이를 수 있겠습니까?' 수행승들이여, 나는 두 번째에도 그들 다섯 명의 수행승들에게 말했다. -'수행승들이여, 나는 윤택하게 살지 않으며 정진을 포기하지도 않았고 사치에 빠지지도 않았다. 수행승들이여, 여래는 거룩한 님, 올바로 원만히 깨달은 님이다. 수행승들이여, 귀를 기울여라. 불사가 성취되었다. 내가 가르치리라. 내가 가르침을 설할 것이다. 내가 가르친 대로 그대로 실천하면, 머지않아 훌륭한 가문의 자제로서 집에서 집 없는 곳으로 출가한 그 목적인, 위없는 청정한 삶의 완성을 지금 여기에서 스스로 알고 깨닫고 성취하게 될 것이다.' 수행승들이여, 세 번째에도 다섯 명의 수행승들은 내게 이와 같이 말했다. -'벗이여, 그대는 그 행동, 그 실천, 그 고행으로도 인간의 상태를 뛰어넘지 못했고, 그대는 고귀한 님이 갖추어야 할, 지극히 탁월한 앎과 봄에 이르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지금 그대는 윤택하게 살며 정진을 포기하고 사치에 빠져 있습니다. 그런 그대가 어떻게, 인간의 상태를 뛰어넘고, 고귀한 님이 갖추어야 할, 지극히 탁월한 앎과 봄에 이를 수 있겠습니까?' 수행승들이여, 이와 같은 말을 듣고 나는 다섯 명의 수행승에게 말했다. -'수행승들이여, 그대들은 지금보다 예전에 내가 이와 같이 말하는 것을 본 적이 있는가?' -'세존이시여, 없습니다.' -'수행승들이여, 여래는 거룩한 님, 올바로 원만히 깨달은 님이다. 수행승들이여, 귀를 기울여라. 불사가 성취되었다. 내가 가르치리라. 내가 가르침을 설할 것이다. 내가 가르친 대로 그대로 실천하며, 머지않아 훌륭한 가문의 자제로서 집에서 집 없는 곳으로 출가한 그 목적인 위없는 청정한 삶의 완성을 지금 여기에서 스스로 알고 깨닫고 성취하게 될 것이다.' 수행승들이여, 나는 다섯 명의 수행승들을 설득시킬 수 있었다. 그래서 수행승들이여, 두 수행승을 가르칠 때에 세 수행승이 탁발을 하고, 세 수행승이 탁발에서 돌아오면 우리는 여섯 명이 함께 생활했다. 수행승들이여, 세 수행승을 가르칠 때에 두 수행승이 탁발을 하고, 두 수행승이 탁발에서 돌아오면 우리는 여섯 명이 함께 생활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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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비구들이여, 오비구는 나에게 이런 교훈을 받고 이런 가르침을 받아 자신들이 태어나기 마련이면서 태어나기 마련인 것에서 재난을 알아 태어남이 없는 위없는 유가안은인 열반을 구하여 태어남이 없는 위없는 유가안은인 열반을 증득했다. 자신들이 늙기 마련이면서 … 자신들이 병들기 마련이면서 … 자신들이 죽기 마련이면서 … 자신들이 슬퍼하기 마련이면서 … 자신들이 오염되기 마련이면서 오염되기 마련인 것에서 재난을 알아 오염이 없는 위없는 유가안은인 열반을 구하여 오염이 없는 위없는 유가안은인 열반을 증득했다. 그들에게 지와 견이 생겼다. 우리의 해탈은 확고부동하다. 이것이 마지막 태어남이다. 더 이상 다시 태어남은 없다.라고. 감각적 욕망 31.비구들이여, 다섯 가닥의 얽어매는 감각적 욕망이 있다. 무엇이 다섯인가? 원하고 좋아하고 마음에 들고 사랑스럽고 감각적 욕망을 짝하고 매혹적인, 눈으로 인식되는 형색들이 있다. … 귀로 인식되는 소리들이 있다. … 코로 인식되는 냄새들이 있다. … 혀로 인식되는 맛들이 있다. 원하고 좋아하고 마음에 들고 사랑스럽고 감각적 욕망을 짝하고 매혹적인, 몸으로 인식되는 감촉들이 있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다섯 가닥의 얽어매는 감각적 욕망이다. 32.비구들이여,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이든지 간에 이들 다섯 가닥의 얽어매는 감각적 욕망에 묶이고 흘리고 푹 빠져서 재난을 보지 못하고 벗어남에 대한 통찰지가 없이 그것을 즐기면, 그들은 불행을 만났고 재난을 얻었고 사악한 마라(māra)의 손아귀에 들어갔다.라고 알아야 한다. 비구들이여, 예를 들면 숲속의 사슴이 묶인 채 올가미 더미 위에 누워있다면, 그는 불행을 만났고 재난을 얻었고 사악한 마라의 손아귀에 들어갔다. 사냥꾼이 오더라도 그가 가고 싶은 곳으로 달려갈 수 없을 것이다.라고 여겨지는 것과 같다. 비구들이여, 그와 같이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이든지 간에 이들 다섯 가닥의 얽어매는 감각적 욕망에 묶이고 흘리고 푹 빠져서 재난을 보지 못하고 벗어남에 대한 통찰지가 없이 그것을 즐기는 자들은불행을 만났고 재난을 얻었고 사악한 마라의 손아귀에 들어갔다.라고 알아야 한다. 33. 비구들이여,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이든지 간에 이들 다섯 가닥의 얽어매는 감각적 욕망에 묶이지 않고 홀리지 않고 푹 빠지지 않아서 재난을 보고 벗어남에 대한 통찰지를 갖추어서 수용하면,그들은 불행을 만나지 않았고, 재난을 얻지 않았고, 사악한 마라의 손아귀에 들지 않았다.라고 알아야 한다. |
수행승들이여, 여기 다섯 명의 수행승들은 나에게 이와 같이 듣고 이와 같이 가르침을 받아, 1) 스스로 생겨남에 묶여 있지만 생겨남에 묶여 있는 것에서 위험을 알고 생겨남에 묶여 있지 않은 위없는 안온인 열반을 구하려, 생겨남이 없는 위없는 안온인 열반에 도달했다. 2) 스스로 늙음에 묶여 있지만 늙음에 묶여 있는 것에서 위험을 알고 늙음에 묶여 있지 않은 위없는 안온인 열반을 구하려, 늙음이 없는 위없는 안온인 열반에 도달했다. 3) 스스로 병듦에 묶여 있지만 병듦에 묶여 있는 것에서 위험을 알고 병듦에 묶여 있지 않은 위없는 안온인 열반을 구하려, 병듦이 없는 위없는 안온인 열반에 도달했다. 4) 스스로 죽음에 묶여 있지만 죽음에 묶여 있는 것에서 위험을 알고 죽음에 묶여 있지 않은 위없는 안온인 열반을 구하려, 죽음이 없는 위없는 안온인 열반에 도달했다. 5) 스스로 슬픔에 묶여 있지만 슬픔에 묶여 있는 것에서 위험을 알고 슬픔에 묶여 있지 않은 위없는 안온인 열반을 구하려, 슬픔이 없는 위없는 안온인 열반에 도달했다. 6) 스스로 오염에 묶여 있지만 오염에 묶여 있는 것에서 위험을 알고 오염에 묶여 있지 않은 위없는 안온인 열반을 구하려, 오염이 없는 위없는 안온인 열반에 도달했다. 그래서 그들에게 '우리들의 해탈은 흔들리지 않는다. 이것이 최후의 태어남이며, 더 이상 윤회하지 않는다.'라는 이와 같은 앎과 봄이 생겨났다. 수행승들이여, 다섯 가지 감각적 쾌락에 대한 욕망의 대상이 있다. 다섯 가지란 어떠한 것인가? 원하고 즐겁고 마음에 들고 사랑스럽고 감각적 욕망을 자극하고 애착의 대상이 되는, 시각으로 인식되는 형상이 있다. 원하고 즐겁고 마음에 들고 사랑스럽고 감각적 욕망을 자극하고 애착의 대상이 되는, 청각에 의하여 인식되는 소리가 있다. 원하고 즐겁고 마음에 들고 사랑스럽고 감각적 욕망을 자극하고 애착의 대상이 되는, 후각에 의하여 인식되는 냄새가 있다. 원하고 즐겁고 마음에 들고 사랑스럽고 감각적 욕망을 자극하고 애착의 대상이 되는, 미각에 의하여 인식되는 맛이 있다. 원하고 즐겁고 마음에 들고 사랑스럽고 감각적 욕망을 자극하고 애착의 대상이 되는, 촉각에 의하여 인식되는 감촉이 있다. 수행승들이여, 이러한 것들이 다섯 가지 감각적 쾌락에 대한 욕망의 대상이다. 수행승들이여, '어떠한 수행자들이나 성직자들이라도 이들 다섯 가지 감각적 쾌락에 대한 욕망의 대상에 묶이고 넋을 잃고 탐착하여 위험을 보지 못하고 여읨을 보지 못하고 그것을 탐닉하면, 그들은 불행에 이르고, 파멸에 빠지고, 악마의 뜻대로 처리된다.'라고 알아야 한다. 수행승들이여, 예를 들어 숲속에 사는 사슴이 그물에 걸려 쓰러지게 되면 불행에 이르고 파멸에 빠지고, 그 사슴은 사냥꾼의 뜻대로 처리되고 사냥꾼이 올 때 자기가 가고 싶은 곳으로 갈 수 없을 것이다. 이와 같이 수행승들이여, '어떠한 수행자들이나 성직자들이라도 이들 다섯 가지 감각적 쾌락에 대한 욕망의 대상에 묶이고 넋을 잃고 탐착하여 위험을 보지 못하고 여읨을 보지 못하고 그것을 탐닉하면, 그들은 불행에 이르고, 파멸에 빠지고, 악마의 뜻대로 처리된다.'라고 알아야한다. 수행승들이여, '어떠한 수행자들이나 성직자들이라도 이들 다섯 가지 감각적 쾌락에 대한 욕망의 대상에 묶이지 않고 넋을 잃지 않고 탐착하지 않고 위험을 보고 여읨을 분명히 알고 그것을 탐닉하지 않으면, 그들은 불행에 이르지 않고, 파멸에 빠지지 않고, 악마의 뜻대로 처리되지 않는다.'라고 알아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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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구들이여, 예를 들면 예를 들면 숲속의 사슴이 묶이지 않은 채 올가미 더미 위에 앉아만 있다면,그는 불행을 만나지 않았고 재난을 얻지 않았고 사악한 사냥꾼의 손아귀에 들지 않았다. 사냥꾼이 오더라도 그가 가고 싶은 곳으로 달려갈 수 있을 것이다.라고 여겨지는 것과 같다. 비구들이여, 그와 같이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이든지 간에 이들 다섯 가닥의 얽어매는 감각적 욕망에 묶이지 않고 흘리지 않고 푹 빠지지 않아서 재난을 보고 벗어남에 대한 통찰지를 갖추어 수용하면, 그들은불행을 만나지 않았고 재난을 얻지 않았고 사악한 마라의 손아귀에 들지 않았다.라고 알아야 한다. 34.비구들이여, 예를 들면 숲속 사슴이 숲의 밀림에서 다닐 때 두려움 없이 가고 두려움 없이 서고 두려움 없이 앉고 두려움 없이 잠을 자는 것과 같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사냥꾼의 영역을 벗어났기 때문이다. 비구들이여, 그와 같이 비구는 감각적 욕망들을 완전히 떨쳐버리고 해로운 법들을 떨쳐버린 뒤, 일으킨 생각과 지속적 고찰이 있고, 떨쳐버렸음에서 생긴 희열과 행복이 있는 초선을 구족하여 머문다. 비구들이여, 이 비구를 "마라의 눈을 멀게 했고, 흔적없이 발판이 없도록 그렇게 빼버려서 그 사악한 마라가 볼 수 없게 만든 자"라고 말합니다. Ayaṁ vuccati, bhikkhave, bhikkhu andhamakāsi māraṁ apadaṁ vadhitvā māracakkhuṁ adassanaṁ gato pāpimato. 35.비구들이여, 다시 비구는 일으킨 생각과 지속적 고찰을 가라앉혔기 때문에 [더 이상 존재하지 않고] 자기 내면의 것이고, 확신이 있으며, 마음의 단일한 상태이고, 일으킨 생각과 지속적 고찰은 없고, 삼매에서 생긴 희열과 행복이 있는 제2선을 구족하여 머문다. 비구들이여, 이 비구를 일러마라를 눈멀게 했고, 마라의 눈을 발판이 없도록 그렇게 빼버려 그 사악한 마라가 볼 수 없는 곳으로 갔다.라고 한다. 36.비구들이여, 다시 비구는 희열이 빛바랬기 때문에 평온하게 머물고, 마음챙기고 알아차리며 몸으로 행복을 경험한다. 성자들이 그를 두고평온하고 마음챙기며 행복하게 머문다.고 묘사하는 제3선을 구족하여 머문다. 비구들이여, 이 비구를 일러마라를 눈멀게 했고, 마라의 눈을 발판이 없도록 그렇게 빼버려 vadhitvā그 사악한 마라가 볼 수 없는 곳으로 갔다.라고 한다. Ayaṃ vuccati, bhikkhave, bhikkhu andhamakāsi māraṃ apadaṃ, vadhitvā māracakkhuṃ adassanaṃ gato pāpimato. 37.“비구들이여, 다시 비구는 행복도 버리고 괴로움도 버리고, 아울러 그 이전에 이미 기쁨과 슬픔을 소멸하였으므로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으며, 평온으로 인해 마음챙김이 청정한 제4선으로 구족하여 머문다. 비구들이여, 이 비구를 일러마라를 눈멀게 했고, 마라의 눈을 발판이 없도록 그렇게 빼버려 그 사악한 마라가 볼 수 없는 곳으로 갔다.라고 한다. 38. 비구들이여, 다시 비구는 물질에 대한 인식을 완전히 초월하고 부딪힘의 인식을 소멸하고 갖가지 인식을 마음에 잡도리하지 않기 때문에 무한한 허공이라고 하면서 공무변처를 구족하여 머문다.비구들이여, 이 비구를 일러마라를 눈멀게 했고, 마라의 눈을 발판이 없도록 그렇게 빼버려 그 사악한 마라가 볼 수 없는 곳으로 갔다.라고 한다. 비구들이여, 이 비구를 일러마라를 눈멀게 했고, 마라의 눈을 발판이 없도록 그렇게 빼버려 그 사악한 마라가 볼 수 없는 곳으로 갔다.라고 한다. 39.비구들이여, 다시 비구는 공무변처를 완전히 초월하여 무한한 알음알이라고 하면서 식무변처를 구족하여 머문다. 비구들이여, 이 비구를 일러마라를 눈멀게 했고, 마라의 눈을 발판이 없도록 그렇게 빼버려 그 사악한 마라가 볼 수 없는 곳으로 갔다.라고 한다. 40.비구들이여, 다시 비구는 식무변처를 완전히 초월하여아무것도 없다.라고 하면서 무소유처를 구족하여 머문다. 비구들이여, 이 비구를 일러마라를 눈멀게 했고, 마라의 눈을 발판이 없도록 그렇게 빼버려 그 사악한 마라가 볼 수 없는 곳으로 갔다.라고 한다. 41.비구들이여, 다시 비구는 무소유처를 완전히 초월하여 비상비비상처를 구족하여 머문다. 비구들이여, 이 비구를 일러마라를 눈멀게 했고, 마라의 눈을 발판이 없도록 그렇게 빼버려 그 사악한 마라가 볼 수 없는 곳으로 갔다.라고 한다. 42.비구들이여, 다시 비구는 비상비비상처를 완전히 초월하여 상수멸을 구족하여 머문다. 그리고 그의 통찰지로 진리를 보아서 번뇌를 남김없이 소멸한다. Puna caparaṃ, bhikkhave, bhikkhu sabbaso nevasaññānāsaññāyatanaṃ samatikkamma saññāvedayitanirodhaṃ upasampajja viharati, paññāya cassa disvā āsavā parikkhīṇā honti. 비구들이여, 이 비구를 "마라의 눈을 멀게 했고, 흔적없이 발판이 없도록 그렇게 빼버려서 그 사악한 마라가 볼 수 없게 만든 자"라고 말합니다. 그는 세상에 대한 집착을 건넌자이고 두려움이 없는 자입니다. Ayaṃ vuccati, bhikkhave, bhikkhu andhamakāsi māraṃ apadaṃ, vadhitvā māracakkhuṃ adassanaṃ gato pāpimato. Tiṇṇo loke visattikaṃ vissattho gacchati, 수행승들이여, 그는 두려움 없이 서고, 두려움 없이 앉고, 두려움 없이 눕습니다. 그 까닭은 무엇입니까? 그가 악마의 영역에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vissattho tiṭṭhati, vissattho nisīdati, vissattho seyyaṃ kappeti. Taṃ kissa hetu? Anāpāthagato, bhikkhave, pāpimato”ti. 세존께서는 이와같이 설하셨다. 그 비구들은 흡족한 마음으로 세존의 말씀을 크게 기뻐했다. Idamavoca bhagavā. Attamanā te bhikkhū bhagavato bhāsitaṃ abhinandunti. vissattha:pp. confident; self-assured; fearless; bold [vi–√sas–ta] |
수행승들이여, 예를들어 숲속에 사는 사슴이 그물에 걸려 쓰러지지 않게 되면, 그 사슴은 불행에 이르지 않고, 파멸에 빠지지 않고, 사냥꾼의 뜻대로 처리되지 않고, 사냥꾼이 올 때, 자기가 가고 싶은 곳으로 갈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이 수행승들이여, '어떠한 수행자들이나 성직자들이라도 이들 다섯 가지 감각적 쾌락에 대한 욕망의 대상에 묶이지 않고 넋을 잃지 않고 탐착하지 않고 위험을 보고 여읨을 분명히 알고 그것을 탐닉하지 않으면, 그들은 불행에 이르지 않고, 파멸에 빠지지 않고, 악마의 뜻대로 처리되지 않는다.'라고 알아야한다. 수행승들이여, 예를 들어 숲속의 사슴이 산록에서 살면서 안심하여 가고 안심하여 서있고 안심하여 앉아 있고 안심하여 누워있다고 하자. 그 까닭은 무엇인가? 그가 사냥꾼의 영역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수행승들이여, 이와 같이 수행승은 감각적 쾌락에 대한 욕망을 여의고 악하고 불건전한 상태를 떠나서, 사유를 갖추고 숙고를 갖추어, 멀리 여읨에서 생겨나는 희열과 행복으로 가득한 첫 번째 선정을 성취한다. 수행승들이여, 그 수행승을 두고 '악마를 눈멀게 만들었으니, 악마의 눈을 뽑아, 악마가 볼 수 없게 만드는 자'라고 한다. 수행승들이여, 다시 그 수행승은 사유와 숙고가 멈추어진 뒤, 내적인 평온과 마음의 통일을 이루고, 사유를 뛰어넘고 숙고를 뛰어넘어 삼매에서 생겨나는 희열과 행복으로 가득한 두 번째 선정을 성취한다. 비구들이여, 이 비구를 일러마라를 눈멀게 했고, 마라의 눈을 발판이 없도록 그렇게 빼버려 그 사악한 마라가 볼 수 없는 곳으로 갔다.라고 한다.생략- 수행승들이여, 다시 그 수행승은 희열이 또한 사라진 뒤, 새김을 확립하고 올바로 알아차리고 평정하게 지내고 신체적으로 행복을 느끼며, 고귀한 님들이 평정하고 새김있는 행복한 삶이라 부르는 세 번째 선정을 성취한다. 그 수행승을 두고 '악마를 눈멀게 만들었으니, 악마의 눈을 뽑아, 악마가 볼 수 없게 만드는 자'라고 한다. 수행승들이여, 다시 그 수행승은 행복과 고통이 버려지고 이전의 만족과 불만도 사라진 뒤, 괴로움을 뛰어넘고 즐거움을 뛰어넘어, 평정하고 새김 있고 청정한 네 번째 선정을 성취한다. 그 수행승을 두고 '악마를 눈멀게 만들었으니, 악마의 눈을 뽑아, 악마가 볼 수 없게 만드는 자'라고 한다. 수행승들이여, 다시 그 수행승은 자신이 원하는 대로 완전히 미세한 물질계에 대한 지각을 완전히 뛰어넘어 감각적 저촉의 지각이 사라진 뒤에 다양성의 지각에 정신활동을 일으키지 않음으로써 '공간이 무한하다.'라고 정신활동을 일으키며 무한공간의 세계를 성취한다. 수행승들이여, 그 수행승을 두고 '악마를 눈멀게 만들었으니, 악마의 눈을 뽑아, 악마가 볼 수 없게 만드는 자'라고 한다. 수행승들이여, 다시 그 수행승은 자신이 원하는 대로 완전히 '무한공간의 세계'를 뛰어넘어 '의식은 무한하다.'라고 정신활동을 일으키며 무한공간의 세계를 성취한다. 수행승들이여, 그 수행승을 두고 '악마를 눈멀게 만들었으니, 악마의 눈을 뽑아, 악마가 볼 수 없게 만드는 자'라고 한다. 수행승들이여, 다시 그 수행승은 자신이 원하는 대로 무한의식의 세계를 완전히 뛰어넘어 '아무것도 없다.'라고 정신활동을 일으키며 아무것도 없는 세계를 성취한다. 수행승들이여, 그 수행승을 두고 '악마를 눈멀게 만들었으니, 악마의 눈을 뽑아, 악마가 볼 수 없게 만드는 자'라고 한다. 수행승들이여, 다시 그 수행승은 자신이 원하는 대로 아무 것도 없는 세계를 완전히 뛰어넘어 '지각하는 것도 아니고 지각하지 않는 것도 아닌 세계'를 성취한다. 수행승들이여, 그 수행승을 두고 '악마를 눈멀게 만들었으니, 악마의 눈을 뽑아, 악마가 볼 수 없게 만드는 자'라고 한다. 수행승들이여, 다시 그 수행승은 자신이 원하는 대로 '지각하는 것도 아니고 지각하지 않는 것도 아닌 세계'를 완전히 뛰어넘어 '지각과 느낌의 소멸'을 성취한다.그리고 그는 지혜로써 보아 번뇌를 부순다. 수행승들이여, 그 수행승을 두고 '악마를 눈멀게 만들었으니, 악마의 눈을 뽑아, 악마가 볼 수 없게 만드는 자'라고 한다.그는 세상에 대한 집착을 건넌자이고 두려움이 없는 자입니다. 수행승들이여, 그는 안심하여 가고, 안심하여 서고 안심하여 앉고 안심하여 눕는다. 그 까닭은 무엇인가? 그가 악마의 영역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세존께서 말씀하시자, 수행승들은 세존께서 하신 말씀에 만족하며 기뻐했다. |
*알림: 스님과 재가자들이 함께 공부하는 <온라인불자회>에 초대합니다.매주 목요일 오후 9시에 구글meet영상토론 합니다. https://open.kakao.com/o/gYJgSxze 참여코드를 적으시고 들어오셔야 합니다. 참여코드는 buddh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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