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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불자회

12월 14일 목요일-깔라마 경(A3:65)

어제(12 14) 는 깔라마경을 공부합니다. 매주 목요일 오후 9시에 백장암독송집에 실려 있는 경전 순서대로 공부를 하고, 매월 마지막 주 목요일에는 자유토론을 합니다.

 

 

나모 따사 바가와또 아라하또 삼마 삼붓다사(Namo tassa bhagavato arahato sammāsambuddhassa)
나모 따사 바가와또 아라하또 삼마 삼붓다사(Namo tassa bhagavato arahato sammāsambuddhassa)
나모 따사 바가와또 아라하또 삼마 삼붓다사(Namo tassa bhagavato arahato sammāsambuddhassa)

 

붓당 사라남 가차미 (Buddham Saranam Gacchami)  부처님께 귀의합니다.(3번)

담망 사라남 가차미 (Dhammam Saranam Gacchami) 가르침에 귀의합니다.()

상강 사라남 가차미 (Sangham Saranam Gacchami)  승가에 귀의합니다.()

 

 

 

깔라마 경(A3:65)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때 세존께서 꼬살라에서 유행을 하시다가 많은 비구승가와 함께 께사뿟따라는 깔라마들의 성읍에 도착하였다. 께사뿟따에 사는 깔라마들은 들었다. ‘존자들이여, 사꺄의 후예인 사문 고따마가 사꺄 가문으로부터 출가하여 께사뿟따에 도착하셨습니다. 그분 고따마 존자께는 이러한 좋은 명성이 따릅니다. ‘이런 이유로 그분 세존께서는 아라한[應供]이며, 완전히 깨달은 분[正等覺]이며, 영지와 실천이 구족한 분[明行足]이며, 피안으로 잘 가신 분[善逝]이며, 세간을 잘 알고 계신 분[世間解]이며, 가장 높은 분[無上士]이며, 사람을 잘 길들이는 분[調御丈夫]이며, 하늘과 인간의 스승[天人師]이며, 깨달은 분[]이며, 세존(世尊)이시다.’라고. 그는 신을 포함하고 마라(samāra)를 포함하고 범천을 포함하고 사문ㆍ바라문을 포함하고 신과 인간을 포함한 이 세상을 스스로 최상의 지혜로 알고 실현하여 드러냅니다. 그는 법을 설합니다. 그는 시작도 훌륭하고 중간도 훌륭하고 끝도 훌륭하며, 의미와 표현을 구족하여 법을 설하여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하고 지극히 청정한 범행을 설합니다. 참으로 그러한 아라한을 뵙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라고.

 

 

 

그때 께사뿟따의 깔라마들은 세존께 다가갔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세존께 절을 올리고 한 곁에 앉았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세존과 유쾌하고 기억할 만한 이야기로 서로 담소를 나누고 한 곁에 앉았다. 어떤 사람들은 세존께 합장하여 인사드리고서 한 곁에 앉았다. 어떤 사람들은 세존의 앞에서 이름과 성을 말씀드리고 한 곁에 앉았다. 어떤 사람들은 조용히 한 곁에 앉았다. 이렇게 한 곁에 앉은 께사뿟따의 깔라마들은 세존께 이렇게 말했다.

 

 

 

2. “세존이시여, 어떤 사문ㆍ바라문들이 께사뿟따에 옵니다. 그들은 각자 자기의 주장을 설명하고 칭찬합니다. 다른 사람의 주장은 매도하고 욕하고 업신여기고 경멸합니다. 세존이시여, 다른 사문ㆍ바라문들 또한 께사뿟따에 옵니다. 그들도 각자 자기의 주장을 설명하고 칭찬합니다. 다른 사람의 주장은 매도하고 욕하고 업신여기고 경멸합니다. 세존이시여, 이런 존경하는 사문들 가운데 누가 진실을 얘기하고 누가 거짓을 말하는지 그들에 대해서 저희들은 미덥지 못하고 의심스럽습니다.”

 

3. “깔라마들이여, 그대들은 당연히 미덥지 못하고 의심스러울 것입니다. 미덥지 못한 곳에 의심이 일어납니다.

 

깔라마들이여, 오랫동안 전승되어 왔다고 해서, 대대로 계승되어 왔다고 해서, ‘그렇다 하더라.’고 해서, 성전에 쓰여 있다고 해서, 논리적이라고 해서, 추론 때문에, 이유가 적절하다고 해서, 우리가 사색하여 얻은 견해와 일치합니다고 해서, 유력한 사람의 말이라고 해서, 혹은 이 사문은 우리의 스승이다.’라는 생각 때문에 따르지 마십시오. 깔라마들이여, 그대들은 참으로 스스로가 이러한 법들은 해로운 것이고, 이러한 법들은 비난받아 마땅하고, 이런 법들은 지자들의 비난을 받을 것이고, 이러한 법들을 전적으로 받들어 행하면 손해와 괴로움이 있게 됩니다.’라고 알게 되면 그때 그것들을 버리도록 하십시오.”

 

 

4. “깔라마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합니까? 사람의 내면에서 탐욕이 일어나면 그것은 그에게 이익이 되겠습니까, 손해가 되겠습니까?”

 

손해가 됩니다, 세존이시여.”

 

 

깔라마들이여, 심한 탐욕을 가진 사람은 탐욕에 사로잡히고 그것에 얼이 빠져 생명을 죽이고, 주지 않은 것을 갖고, 남의 아내에게 접근하고, 거짓말을 하게 됩니다. 또한 다른 사람에게도 그렇게 하도록 유도합니다. 그러면 이것은 오랜 세월을 그에게 손해와 괴로움이 되지 않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5. “깔라마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합니까? 사람의 내면에서 성냄이 일어나면 그것은 그에게 이익이 되겠습니까, 손해가 되겠습니까?”

 

손해가 됩니다, 세존이시여.”

 

 

깔라마들이여, 포악한 사람은 성냄에 사로잡히고 그것에 얼이 빠져 생명을 죽이고, 주지 않은 것을 갖고, 남의 아내에게 접근하고, 거짓말을 하게 됩니다. 또한 다른 사람에게도 그렇게 하도록 유도합니다. 그러면 이것은 오랜 세월을 그에게 손해와 괴로움이 되지 않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6. “깔라마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합니까? 사람의 내면에서 어리석음이 일어나면 그것은 그에게 이익이 되겠습니까, 손해가 되겠습니까?”

 

손해가 됩니다, 세존이시여.”

 

 

깔라마들이여, 멍청한 사람은 어리석음에 사로잡히고 그것에 얼이 빠져 생명을 죽이고, 주지 않은 것을 갖고, 남의 아내에게 접근하고, 거짓말을 하게 됩니다. 또한 다른 사람에게도 그렇게 하도록 유도합니다. 그러면 이것은 오랜 세월을 그에게 손해와 괴로움이 되지 않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7. “깔라마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합니까? 이러한 법들은 유익한 것입니까 해로운 것입니까?”

 

해로운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비난받아 마땅한 것입니까, 그렇지 않은 것입니까?”

 

비난받아 마땅한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지자에 의해 비난받을 일입니까, 칭찬받을 일입니까?”

 

지자에 의해 비난받을 일입니다."

 

 

8. “깔라마들이여, 그래서 우리는 이와 같이 말했던 것입니다. 깔라마들이여, 오랫동안 전승되어 왔다고 해서, 대대로 계승되어 왔다고 해서, ‘그렇다 하더라.’고 해서, 성전에 쓰여 있다고 해서, 논리적이라고 해서, 추론 때문에, 이유가 적절하다고 해서, 우리가 사색하여 얻은 견해와 일치합니다고 해서, 유력한 사람의 말이라고 해서, 혹은 이 사문은 우리의 스승이다.’라는 생각 때문에 따르지 마십시오. 깔라마들이여, 그대들은 참으로 스스로가 이러한 법들은 해로운 것이고, 이러한 법들은 비난받아 마땅하고, 이런 법들은 지자들의 비난을 받을 것이고, 이러한 법들을 전적으로 받들어 행하면 손해와 괴로움이 있게 됩니다.’라고 알게 되면 그때 그것들을 버리도록 하십시오.”라고. 이러한 이유 때문에 이렇게 말한 것입니다.”

 

 

9. “깔라마들이여, 그래서 우리는 이와 같이 말했던 것입니다. 깔라마들이여, 오랫동안 전승되어 왔다고 해서, 대대로 계승되어 왔다고 해서, ‘그렇다 하더라.’고 해서, 성전에 쓰여 있다고 해서, 논리적이라고 해서, 추론 때문에, 이유가 적절하다고 해서, 우리가 사색하여 얻은 견해와 일치합니다고 해서, 유력한 사람의 말이라고 해서, 혹은 이 사문은 우리의 스승이다.’라는 생각 때문에 따르지 마십시오. 깔라마들이여, 그대들은 참으로 스스로가 이러한 법들은 유익한 것이고, 이러한 법들은 비난받지 않을 것이며, 이런 법들은 지자들의 비난을 받지 않을 것이고, 이러한 법들을 전적으로 받들어 행하면 이익과 행복이 있게 됩니다.’라고 알게 되면, 그대들이여, 그것들을 받아들이십시오."

 

 

10. “깔라마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합니까? 사람의 내면에서 탐욕 없음이 일어나면 그에게 이익이 되겠습니까, 손해가 되겠습니까?”

 

이익이 됩니다, 세존이시여.”

 

깔라마들이여, 심한 탐욕을 가지지 않은 사람은 탐욕에 사로잡히지 않고 그것에 얼이 빠지지 않아서 생명을 죽이지 않고, 주지 않은 것을 갖지 않고, 남의 아내에게 접근하지 않고, 거짓말을 하지 않게 됩니다. 또한 다른 사람에게도 그렇게 하도록 격려합니다. 그러면 이것은 오랜 세월을 그에게 이익과 행복이 되지 않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11. “깔라마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합니까? 사람의 내면에서 성냄 없음이 일어나면 그것은 그에게 이익이 되겠습니까, 손해가 되겠습니까?”

 

이익이 됩니다, 세존이시여.”

 

 

깔라마들이여, 성내지 않는 사람은 성냄에 사로잡히지 않고 그것에 얼이 빠지지 않아서 생명을 죽이지 않고, 주지 않은 것을 갖지 않고, 남의 아내에게 접근하지 않고, 거짓말을 하지 않게 됩니다. 또한 다른 사람에게도 그렇게 하도록 격려합니다. 그러면 이것은 오랜 세월을 그에게 이익과 행복이 되지 않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12. “깔라마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합니까? 사람의 내면에서 어리석음 없음이 일어나면 그것은 그에게 이익이 되겠습니까, 손해가 되겠습니까?”

 

이익이 됩니다, 세존이시여.”

 

 

깔라마들이여, 영민한 사람은 어리석음에 사로잡히지 않고 그것에 얼이 빠지지 않아서 생명을 죽이지 않고, 주지 않은 것을 갖지 않고, 남의 아내에게 접근하지 않고, 거짓말을 하지 않게 됩니다. 또한 다른 사람에게도 그렇게 하도록 격려합니다. 그러면 이것은 오랜 세월을 그에게 이익과 행복이 되지 않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13. “깔라마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합니까? 이러한 법들은 유익한 것입니까, 해로운 것입니까?”

 

유익한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비난받아 마땅한 것입니까, 그렇지 않을 일입니까?”

 

비난받지 않을 일입니다, 세존이시여.”

 

지자에 의해 비난받을 일입니까, 칭찬받을 일입니까?”

 

칭찬받을 일입니다, 세존이시여.”

 

전적으로 받들어 행하면 이익이 있고 행복하게 되는가, 아닌가? 그대들의 생각에는 어떠한가?”

 

세존이시여, 전적으로 받들어 행하면 이익이 있고 행복하게 됩니다. 저희들은 이렇게 생각합니다.”

 

14. “깔라마들이여, 성스러운 제자는 이와 같이 탐욕이 없고 악의가 없고 현혹됨이 없이 분명히 알아차리고 마음 챙깁니다. 그는 자애가 함께한 마음으로 한 방향을 가득 채우고 머뭅니다. 그처럼 두 번째 방향을, 그처럼 세 번째 방향을, 그처럼 네 번째 방향을, 이와 같이 위로, 아래로, 주위로, 모든 곳에서 모두를 자신처럼 여기고, 모든 세상을 풍만하고, 광대하고, 무량하고, 원한 없고, 악의 없는 평온이 함께한 마음으로 가득 채우고 머뭅니다.

 

깔라마들이여, 성스러운 제자는 이와 같이 탐욕이 없고 악의가 없고 현혹됨이 없이 분명히 알아차리고 마음 챙깁니다. 그는 자애가 함께한 마음으로 한 방향을 가득 채우고 머뭅니다. 그처럼 두 번째 방향을, 그처럼 세 번째 방향을, 그처럼 네 번째 방향을, 이와 같이 위로, 아래로, 주위로, 모든 곳에서 모두를 자신처럼 여기고, 모든 세상을 풍만하고, 광대하고, 무량하고, 원한 없고, 악의 없는 평온이 함께한 마음으로 가득 채우고 머뭅니다.....그는 연민이 함께한 마음으로...그는 더불어 기뻐함이 함께한 마음으로...그는 평온이 함께한 마음으로 한 방향을 가득 채우고 머뭅니다. 그처럼 두 번째 방향을, 그처럼 세 번째 방향을, 그처럼 네 번째 방향을, 이와 같이 위로, 아래로, 주위로, 모든 곳에서 모두를 자신처럼 여기고, 모든 세상을 풍만하고, 광대하고, 무량하고, 원한 없고, 악의 없는 평온이 함께한 마음으로 가득 채우고 머뭅니다.

 

 

깔라마들이여, 성스러운 제자는 이와 같이 마음에 원한이 없고, 마음에 악의가 없고, 마음이 오염되지 않고, 마음이 청정하여 금생에 네 가지 위안을 얻습니다.”

 

15. “만약 다음 세상이 있고, 선행과 악행의 업들에 대한 결실과 과보가 있다면, 나는 몸이 무너져 죽은 뒤 좋은 곳[善處], 천상세계에 태어날 것입니다.’라고. 이것이 그가 얻는 첫 번째 위안입니다.

 

만약 다음 세상이 없고 선행과 악행의 업들에 대한 결실과 과보도 없다면, 나는 금생에 원한 없고 악의 없고 고통 없이 행복하게 살 것입니다.’라고. 이것이 그가 얻는 두 번째 위안입니다.

 

 

만약 어떤 행위자가 악()을 행한다고 해도, 내가 다른 이에게 악을 저지르도록 교사하지 않았고 나 자신도 악업을 짓지 않았거늘 어떻게 내가 괴로움과 마주치겠는가?’라고. 이것이 그가 얻는 세 번째 위안입니다.

 

‘‘만약 어떤 행위자가 악()을 행하지 않는다 해도, 나는 양면으로 청정한 나를 볼 것입니다. 라고. 이것이 그가 얻는 네 번째 위안입니다.‘

깔라마들이여, 성스러운 제자는 이와 같이 마음에 원한이 없고, 마음에 악의가 없고, 마음이 오염되지 않고, 마음이 청정하여 금생에 네 가지 위안을 얻습니다.”

 

16. “세존이시여, 그러합니다. 세존이시여, 참으로 그러합니다. 세존이시여, 성스러운 제자는 이와 같이 마음에 원한이 없고, 마음에 악의가 없고, 마음이 오염되지 않고, 마음이 청정하여 금생에 네 가지 위안을 얻습니다.

 

만약 다음 세상이 있고, 선행과 악행의 업들에 대한 결실과 과보가 있다면 나는 몸이 무너져 죽은 뒤 좋은 곳[善處], 천상세계에 태어날 것입니다.’라고. 이것이 그가 얻는 첫 번째 위안입니다.

만약 다음 세상이 없고 선행과 악행의 업들에 대한 결실과 과보도 없다면 나는 금생에 원한 없고 악의 없고 고통 없이 행복하게 살 것입니다.’라고. 이것이 그가 얻는 두 번째 위안입니다.

 

만약 행위자가 악()을 행한다고 해도, 내가 다른 이에게 악을 저지르도록 교사하지 않았고 나 자신도 악업을 짓지 않았거늘 어떻게 내가 괴로움과 마주치겠는가?’라고. 이것이 그가 얻는 세 번째 위안입니다.

 

‘‘만약 행위자가 악()을 행하지 않는다 해도, 나는 양면으로 청정한 나를 볼 것입니다. 라고. 이것이 그가 얻는 네 번째 위안입니다.‘

깔라마들이여, 성스러운 제자는 이와 같이 마음에 원한이 없고, 마음에 악의가 없고, 마음이 오염되지 않고, 마음이 청정하여 금생에 네 가지 위안을 얻습니다.”

 

경이롭습니다, 세존이시여. 경이롭습니다, 세존이시여. 마치 넘어진 자를 일으켜 세우시듯, 덮여있는 것을 걷어내 보이시듯, 길을 잃어버린 자에게 길을 가리켜주시듯, 눈 있는 자 형상을 보라고 어둠 속에서 등불을 비춰주시듯, 세존께서는 여러 가지 방편으로 법을 설해주셨습니다. 저희들은 이제 세존께 귀의하옵고 법과 비구승가에 귀의합니다. 세존께서는 저희를 재가신자로 받아주소서. 오늘부터 목숨이 붙어 있는 그 날까지 귀의합니다.”

 

 

 

 

깔라마의 경(kālāmasutta, A3:65) 번역비교 

 

각묵     전재성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때 세존께서 꼬살라에서 유행을 하시다가 많은 비구승가와 함께 께사뿟따라는 깔라마들의 성읍에 도착하셨다. 께사뿟따에 사는 깔라마들은 들었다. ‘존자들이여, 사꺄의 후예인 사문 고따마가 사꺄 가문으로부터 출가하여 께사뿟따에 도착하셨습니다.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 세존께서는 많은 수행승들의 무리와 함께 꼬살라 국을 유행하다가 께싸뿟따1 시라고 하는 깔라마2인들의 조그마한 도시에 도착했다.
 2. 께싸뿟따 시의 깔라마 인들은 이와 같이 ‘싸끼야 족의 아들로서 싸끼야족에서 출가한 수행자 고따마가 께싸뿟따 시에 도착했다. .
그분 고따마 존자께는 이러한 좋은 명성이 따릅니다. ‘이런 [이유로] 그분 세존께서는 아라한[應供]이시며, 완전히 깨달은 분[正等覺]이시며, 영지와 실천이 구족한 분[明行足]이시며, 피안으로 잘 가신 분[善逝]이시며, 세간을 잘 알고 계신 분[世間解]이시며, 가장 높은 분[無上士]이시며, 사람을 잘 길들이는 분[調御丈夫]이시며, 하늘과 인간의 스승[天人師]이시며, 깨달은 분[佛]이시며, 세존(世尊)이시다.’라고. 그는 신을 포함하고 마라(samāra)를 포함하고 범천을 포함하고 사문ㆍ바라문을 포함하고 신과 인간을 포함한 이 세상을 스스로 최상의 지혜로 알고 실현하여 드러냅니다. 그는 법을 설합니다. 그는 시작도 훌륭하고 중간도 훌륭하고 끝도 훌륭하며, 의미와 표현을 구족하여 법을 설하여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하고 지극히 청정한 범행을 설합니다참으로 그러한 아라한을 뵙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라고.   또한 그 세존이신 고따마는 이와 같이‘세존께서는 거룩한 님, 올바로 원만히 깨달은 님, 명지와 덕행을 갖춘 님, 올바른 길로 가신 님, 세상을 아는 님, 위없이 높으신 님, 사람을 길들이는 님, 하늘사람과 인간의 스승이신 님, 깨달은 님, 세상의 존귀한 님입니다.’라고 명성을 드날리고 있다. 그는 신들의 세계, 악마들의 세계, 하느님들의 세계, 성직자들과 수행자들, 그리고 왕들과 백성들과 그 후예들의 세계에서 스스로 곧바로 알고 깨달아 설법하고 있다. 그는 처음도 훌륭하고 중간도 훌륭하고 마지막도 훌륭한, 내용을 갖추고 형식이 완성된 가르침을 설한다. 그는 지극히 원만하고 오로지 청정한 거룩한 삶을 실현한다. 이와 같이 거룩한 님을 친견하는 것은 얼마나 훌륭한 일인가? 라고 들었다
그때 께사뿟따의 깔라마들은 세존께 다가갔다어떤 사람들은 세존께 절을 올리고 한 곁에 앉았다. 어떤 사람들은 세존과 유쾌하고 기억할 만한 이야기로 서로 담소를 나누고 한 곁에 앉았다.어떤 사람들은 세존께 합장하여 인사드리고서 한 곁에 앉았다. 어떤 사람들은 세존의 앞에서 이름과 성을 말씀드리고 한 곁에 앉았다. 어떤 사람들은 조용히 한 곁에 앉았다.   

3. 그래서 께싸뿟따 시의 깔라마 인들은 세존께서 계신 곳을 찾아왔다. 가까이 다가와서 어떤 이들은 세존께 인사를 드리고 한 쪽으로 물러나 앉았다. 어떤 이들은 세존과 인사를 나누고 안부를 주고받은 뒤에 한 쪽으로 물러나 앉았다. 어떤 이들은 세존께 합장공경하고 한 쪽으로 물러나 앉았다. 어떤 이들은 세존께 이름을 대고 한 쪽으로 물러나 앉았다. 어떤 이들은 말없이 한 쪽으로 물러나 앉았다.



이렇게 한 곁에 앉은 께사뿟따의 깔라마들은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

2. “세존이시여, 어떤 사문ㆍ바라문들이 께사뿟따에 옵니다. 그들은 각자 자기의 주장을 설명하고 칭찬합니다. 다른 사람의 주장은 매도하고 욕하고 업신여기고 경멸합니다. 세존이시여, 다른 사문ㆍ바라문들 또한 께사뿟따에 옵니다. 그들도 각자 자기의 주장을 설명하고 칭찬합니다. 다른 사람의 주장은 매도하고 욕하고 업신여기고 경멸합니다. 세존이시여, 이런 존경하는 사문들 가운데 누가 진실을 얘기하고 누가 거짓을 말하는지 그들에 대해서 저희들은 미덥지 못하고 의심스럽습니다.”



 

4. 한 쪽으로 물러나 앉아서 그 께싸뿟따 시의 깔라마 인들은 세존께 이와 같이 말씀드렸다.

[까라마들] “ 세존이시여, 이곳 께싸뿟따를 방문한 어떤 수행자들과 성직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오직 자기의 가르침만을 설명하고 계몽할 뿐, 다른 교리에 대해서는 비난하고 욕하고 경멸하고 코웃음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다른 수행자들과 성직자들이 왔는데 그들도 역시 차례로 자기의 가르침만을 설명하고 계몽할 뿐, 다른 교리에 대해서는 비난하고 욕하고 경멸하고 코웃음치는 것이었습니다.세존이시여, 저희들로서는 그들 존경스러운 수행자들과 성직자들 가운데 누가 진리를 말하고 누가 거짓을 말하는지 미심쩍고 의심스럽기만 합니다.”
3. “깔라마들이여, 그대들은 당연히 미덥지 못하고 의심스러울 것이다. 미덥지 못한 곳에 의심이 일어난다. 깔라마들이여, 소문으로 들었다고 해서, 대대로 전승되어온다고 해서, ‘그렇다 하더라.’고 해서, 성전에 쓰여 있다고 해서, 논리적이라고 해서, 추론 때문에, 이유가 적절하다고 해서, 우리가 사색하여 얻은 견해와 일치한다고 해서, 유력한 사람이 한 말이라고 해서, 혹은 ‘이 사문은 우리의 스승이시다.’라는 생각 때문에 진실이라고 받아들이지 말라.

깔라마들이여, 그대들은 참으로 스스로가 ‘이러한 법들은 해로운 것이고, 이러한 법들은 비난받아 마땅하고, 이런 법들은 지자들의 비난을 받을 것이고, 이러한 법들을 전적으로 받들어 행하면 손해와 괴로움이 있게 된다.’라고 알게 되면 그때 그것들을 버리도록 하라."
 


5. [세존] “깔라마들이여, 당신들이 미심쩍어하고 의심스러워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왜냐하면 의심스러운 것은 미심쩍은 일에서 생겨나기 때문입니다.

깔라마들이여, 소문이나 전승이나 여론에 끄달리지 말고3, 성전의 권위나 논리나 추론에도 끄달리지 말고4, 상태에 대한 분석이나 견해에 대한 이해에도 끄달리지 말고5, 그럴듯한 개인적 인상이나 ‘이 수행자가 나의 스승이다.’라는 생각에 끄달리지 마십시오6.


깔라마들이여, 이러한 것들이 악하고 건전하지 못하고, 이러한 것들이 잘못된 것이고, 이러한 것들은 식자에게 비난받을 만하고, 이러한 것들은 실천하여 받아들이면, 유익하지 못하고, 괴로움을 야기하는 것이라고 스스로 알게 되면, 깔라마들이여, 그 때 그것들을 버리십시오.”








4. “
깔라마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사람의 내면에서 탐욕이 일어나면 그것은 그에게 이익이 되겠는가, 손해가 되겠는가?”

손해가 됩니다, 세존이시여.”


깔라마들이여, 심한 탐욕을 가진 사람은 탐욕에 사로잡히고 그것에 얼이 빠져 생명을 죽이고, 주지 않은 것을 갖고, 남의 아내에게 접근하고, 거짓말을 하게 된다. 또한 다른 사람에게도 그렇게 하도록 유도한다. 그러면 이것은 오랜 세월을 그에게 손해와 괴로움이 되지 않겠는가?”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5. “깔라마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사람의 내면에서 성냄이 일어나면 그것은 그에게 이익이 되겠는가, 손해가 되겠는가?”
손해가 됩니다, 세존이시여.”


깔라마들이여, 포악한 사람은 성냄에 사로잡히고 그것에 얼이 빠져 생명을 죽이고, 주지 않은 것을 갖고, 남의 아내에게 접근하고, 거짓말을 하게 된다. 또한 다른 사람에게도 그렇게 하도록 유도한다. 그러면 이것은 오랜 세월을 그에게 손해와 괴로움이 되지 않겠는가?”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6. “깔라마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사람의 내면에서 어리석음이 일어나면 그것은 그에게 이익이 되겠는가, 손해가 되겠는가?”
손해가 됩니다, 세존이시여.”


깔라마들이여, 멍청한 사람은 어리석음에 사로잡히고 그것에 얼이 빠져 생명을 죽이고, 주지 않은 것을 갖고, 남의 아내에게 접근하고, 거짓말을 하게 된다. 또한 다른 사람에게도 그렇게 하도록 유도한다. 그러면 이것은 오랜 세월을 그에게 손해와 괴로움이 되지 않겠는가?”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6.[세존]“깔라마들이여,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사람의 안에서 생겨나는 탐욕은 유익한 것입니까? 무익한 것입니까?
[깔라마들]“세존이시여, 무익한 것입니다.”
[세존]“깔라마들이여, 탐욕으로 가득 찬 사람이 탐욕에 사로 잡혀 마음이 현혹되어, 살아있는 생명을 죽이고, 주지 않은 것을 빼앗고, 남의 아내를 겁탈하고, 거짓말을 하고, 타인에게 이와 같은 것을 권하면, 그는 오랜 세월 무익하고 고통스러울 것입니다.”
[깔라마들] “세존이시여, 그렇습니다.”
 
7. [세존]“깔라마들이여,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사람의 안에서 생겨나는 성냄은 유익한 것입니까? 무익한 것입니까?
[깔라마들]“세존이시여, 무익한 것입니다.”



[세존]“깔라마들이여, 성냄으로 가득 찬 사람이 성냄에 사로 잡혀 마음이 현혹되어, 살아있는 생명을 죽이고, 주지 않은 것을 빼앗고, 남의 아내를 겁탈하고, 거짓말을 하고, 타인에게 이와 같은 것을 권하면, 그는 오랜 세월 무익하고 고통스러울 것입니다.”
[깔라마들] “세존이시여, 그렇습니다.”
 
8. [세존]“깔라마들이여,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사람의 안에서 생겨나는 어리석음은 유익한 것입니까? 무익한 것입니까?
[깔라마들]“세존이시여, 무익한 것입니다.”



[세존]“깔라마들이여, 어리석음으로 가득 찬 사람이 어리석음에 사로 잡혀 마음이 현혹되어, 살아있는 생명을 죽이고, 주지 않은 것을 빼앗고, 남의 아내를 겁탈하고, 거짓말을 하고, 타인에게 이와 같은 것을 권하면, 그는 오랜 세월 무익하고 고통스러울 것입니다.”
[깔라마들] “세존이시여, 그렇습니다.”

7. “
깔라마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이러한 법들은 유익한 것인가 해로운 것인가?”

해로운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비난받아 마땅한 것인가, 그렇지 않은 것인가?”
비난받아 마땅한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지자에 의해 비난받을 일인가, 칭찬받을 일인가?”
지자에 의해 비난받을 일입니다."

 

9. [세존]“깔라마들이여,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러한 것들은 착하고 건전한 것입니까? 악하고 불건전한 것입니까?”

[깔라마들]“세존이시여, 약하고 불건전한 것입니다.”
[세존]“이러한 것들은 잘못이 있는 것입니까 잘못이 없는 것입니까?”
[깔라마들]“세존이시여, 잘못이 있는 것입니다.”
[세존]“이러한 것들은 식자에게 비난받는 것입니까 식자에게 칭찬받는 것입니까?”
[까라마들]“세존이시여, 식자에게 비난받는 것입니다.”
[세존]“이러한 것들은 실천하고 받아들이면, 무익하고 고통으로 이끄는 것입니까 그대들은 어떻게 생각합니까?”
[깔라마들]“세존이시여, 이러한 것들은 실천하고 받아들이면, 무익하고 고통으로 이끄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와 같이 생각합니다.”


8. “깔라마들이여, 그래서 우리는 이와 같이 말했던 것이다. ‘깔라마들이여, 그대들은 소문으로 들었다고 해서, 대대로 전승되어온다고 해서, ‘그렇다 하더라.’고 해서, 성전에 쓰여 있다고 해서, 논리적이라고 해서, 추론 때문에, 이유가 적절하다고 해서, 우리가 사색하여 얻은 견해와 일치한다고 해서, 유력한 사람이 한 말이라고 해서, 혹은 ‘이 사문은 우리의 스승이시다.’라는 생각 때문에 진실이라고 받아들이지 말라.
 
10.[세존]“깔라마들이여, 그래서 나는 말합니다.

깔라마들이여, 소문이나 전승이나 여론에 끄달리지 말고, 성전의 권위나 논리나 추론에 끄달리지 말고, 상태에 대한 분석이나 견해에 대한 이해에도 끄달리지 말고, 그럴듯한 개인적 인상이나 ‘이분이 나의 스승이다’라는 생각에 끄달리지 마십시오.

 깔라마들이여, 그대들은 참으로 스스로가 ‘이러한 법들은 해로운 것이고, 이러한 법들은 비난받아 마땅하고, 이런 법들은 지자들의 비난을 받을 일이고, 이러한 법들을 전적으로 받들어 행하면 손해와 괴로움이 있게 된다.’라고 알게 되면 그때 그것들을 버리도록 하라.’라고. 이러한 이유 때문에 이렇게 말한 것입니다.”   깔라마들이여, 이러한 것들이 악하고 건전하지 못하고, 이러한 것들이 잘못된 것이고, 이러한 것들은 식자에게 비난받을 만하고, 이러한 것들은 실천하여 받아들이면, 유익하지 못하고, 괴로움을 야기하는 것이라고 스스로 알게 되면, 깔라마들이여, 그 때에 그것들을 버리십시오. 내가 이와 같이 말한 것을 이러한 것들과 관련하여 말한 것입니다.
9. “깔라마들이여, 그대들은 소문으로 들었다고 해서, 대대로 전승되어온다고 해서, ‘그렇다 하더라.’고 해서, [우리의] 성전에 쓰여 있다고 해서, 추측이 그렇다고 해서, 논리적이라고 해서, 추론 때문에, 이유가 적절하다고 해서, 우리가 사색하여 얻은 견해와 일치한다고 해서, 유력한 사람이 한 말이라고 해서, 혹은 이 사문은 우리의 스승이시다.’라는 생각 때문에 진실이라고 받아들이지 마십시오. 

깔라마들이여, 그대들은 참으로 스스로가 이러한 법들은 유익한 것이고, 이러한 법들은 비난받지 않을 것이며, 이런 법들은 지자들의 비난을 받지 않을 것이고, 이러한 법들을 전적으로 받들어 행하면 이익과 행복이 있게 된다.’라고 알게 되면, 그대들이여, 그것들을 받아들이십시오."


  11. 그러므로 깔라마들이여, 소문이나 전승이나 여론에 끄달리지 말고, 성전의 권위나 논리나 추론에도 끄달리지 말고, 상태에 대한 분석이나 견해에 대한 이해에도 끄달리지 말고, 상태에 대한 분석이나 견해에 대한 이해에도 끄달리지 말고, 그럴듯한 개인적 인상이나 ‘이분이 나의 스승이다’라는 생각에 끄달리지 마십시오.


깔라마들이여, 이러한 것들은 착하고 건전하고, 이러한 것들이 잘못이 없는 것이고, 이러한 것들이 식자에게 칭찬받을 만하고, 이러한 것들은 실천하고 받아들이면, 유익하고 행복을 가져오는 것이라고 스스로 알게 되면, 깔라마들이여, 그 때에 그것들을 받아들이십시오.”


10. “
깔라마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사람의 내면에서 탐욕 없음이 일어나면 그에게 이익이 되겠는가, 손해가 되겠는가?”

이익이 됩니다, 세존이시여.”


깔라마들이여, 심한 탐욕을 가지지 않은 사람은 탐욕에 사로잡히지 않고 그것에 얼이 빠지지 않아서 생명을 죽이지 않고, 주지 않은 것을 갖지 않고, 남의 아내에게 접근하지 않고, 거짓말을 하지 않게 된다. 또한 다른 사람에게도 그렇게 하도록 격려한다. 그러면 이것은 오랜 세월을 그에게 이익과 행복이 되지 않겠는가?”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11. “깔라마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사람의 내면에서 성냄 없음이 일어나면 그것은 그에게 이익이 되겠는가, 손해가 되겠는가?”
이익이 됩니다, 세존이시여.”


깔라마들이여, 성내지 않는 사람은 성냄에 사로잡히지 않고 그것에 얼이 빠지지 않아서 생명을 죽이지 않고, 주지 않은 것을 갖지 않고, 남의 아내에게 접근하지 않고, 거짓말을 하지 않게 된다. 또한 다른 사람에게도 그렇게 하도록 격려한다. 그러면 이것은 오랜 세월을 그에게 이익과 행복이 되지 않겠는가?”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12.[세존]“깔라마들이여,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사람의 안에서 생겨나는 탐욕의 여읨은 유익한 것입니까? 무익한 것입니까?”
[깔라마들]“세존이시여, 유익한 것입니다.”


[세존]“깔라마들이여, 탐욕을 여읜 사람이 탐욕에서 벗어나 마음이 현혹되지 않아, 살아있는 생명을 죽이지 않고, 주지 않는 것을 빼앗지 않고, 남의 아내를 겁탈하지 않고, 타인에게 이와 같은 것을 권하지 않으면, 그는 오랜 세월 유익하고 행복할 것입니다.”
[깔라마들]“세존이시여, 그렇습니다.”


13.[세존]“깔라마들이여,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사람의 안에서 생겨나는 성냄의 여읨은 유익한 것입니까? 무익한 것입니까?”
[깔라마들]“세존이시여, 유익한 것입니다.”



[세존]“깔라마들이여, 성냄을 여읜 사람이 성냄에서 벗어나 마음이 현혹되지 않아, 살아있는 생명을 죽이지 않고, 주지 않는 것을 빼앗지 않고, 남의 아내를 겁탈하지 않고, 타인에게 이와 같은 것을 권하지 않으면, 그는 오랜 세월 유익하고 행복할 것입니다.”
[깔라마들]“세존이시여, 그렇습니다.”




12. “
깔라마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사람의 내면에서 어리석음 없음이 일어나면 그것은 그에게 이익이 되겠는가, 손해가 되겠는가?”

이익이 됩니다, 세존이시여.”


깔라마들이여, 영민한 사람은 어리석음에 사로잡히지 않고 그것에 얼이 빠지지 않아서 생명을 죽이지 않고, 주지 않은 것을 갖지 않고, 남의 아내에게 접근하지 않고, 거짓말을 하지 않게 된다. 또한 다른 사람에게도 그렇게 하도록 격려한다. 그러면 이것은 오랜 세월을 그에게 이익과 행복이 되지 않겠는가?”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13. “깔라마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이러한 법들은 유익한 것인가, 해로운 것인가?”
유익한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비난받아 마땅한 것인가, 그렇지 않을 일인가?”
비난받지 않을 일입니다, 세존이시여.”
지자에 의해 비난받을 일인가, 칭찬받을 일인가?”
칭찬받을 일입니다, 세존이시여.”
전적으로 받들어 행하면 이익이 있고 행복하게 되는가, 아닌가? 그대들의 생각에는 어떠한가?”
세존이시여, 전적으로 받들어 행하면 이익이 있고 행복하게 됩니다. 저희들은 이렇게 생각합니다.”





  14.[세존]“깔라마들이여,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사람의 안에서 생겨나는 어리석음의 여윔은 유익한 것입니까? 무익한 것입니까?”
[깔라마들]“세존이시여, 유익한 것입니다.”



[세존]“깔라마들이여, 어리석음을 여읜 사람이 어리석음에서 벗어나 마음이 현혹되지 않아, 살아있는 생명을 죽이지 않고, 주지 않는 것을 빼앗지 않고, 남의 아내를 겁탈하지 않고, 타인에게 이와 같은 것을 권하지 않으면, 그는 오랜 세월 유익하고 행복할 것입니다.”
[깔라마들]“세존이시여, 그렇습니다.”
 
15.[세존]“깔라마들이여,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러한 것들은 착하고 건전한 것입니까? 악하고 불건전한 것입니까?”
[깔라마들]“세존이시여, 착하고 건전한 것입니다.”
[세존]“이러한 것들은 잘못이 있는 것입니까 잘못이 없는 것입니까?”
[깔라마들]“세존이시여, 잘못이 없는 것입니다.”
[세존]“이러한 것들은 식자에게 비난받는 것입니까 식자에게 칭찬받는 것입니까?”
[까라마들]“세존이시여, 식자에게 칭찬받는 것입니다.”
[세존]“이러한 것들은 실천하고 받아들이면, 유익하고 행복으로 이끄는 것입니까 그대들은 어떻게 생각합니까?”
[깔라마들]“세존이시여, 이러한 것들은 실천하고 받아들이면, 유익하고 행복으로 이끄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와 같이 생각합니다.”
 

    16.[세존]“깔라마들이여, 그래서 나는 말합니다.
깔라마들이여, 소문이나 전승이나 여론에 끄달리지 말고, 성전의 권위나 논리나 추론에 끄달리지 말고, 상태에 대한 분석이나 견해에 대한 이해에도 끄달리지 말고, 그럴듯한 개인적 인상이나 ‘이분이 나의 스승이다’라는 생각에 끄달리지 마십시오.
 
깔라마들이여, 이러한 것들은 착하고 건전하고, 이러한 것들이 잘못이 없는 것이고, 이러한 것들이 식자에게 칭찬받을 만하고, 이러한 것들은 실천하고 받아들이면, 유익하고 행복을 가져오는 것이라고 스스로 알게 되면, 깔라마들이여, 그 때에 그것들을 받아들이십시오, 내가 이와 같이 말한 것은 이것들과 관련하여 말한 것입니다.”

14. “깔라마들이여, 성스러운 제자는 이와 같이 탐욕이 없고 악의가 없고 현혹됨이 없이 분명히 알아차리고 마음 챙긴다. 그는 자애가 함께한 마음으로 한 방향을 가득 채우고 머문다. 그처럼 두 번째 방향을, 그처럼 세 번째 방향을, 그처럼 네 번째 방향을, 이와 같이 위로, 아래로, 주위로, 모든 곳에서 모두를 자신처럼 여기고, 모든 세상을 풍만하고, 광대하고, 무량하고, 원한 없고, 악의 없는 평온이 함께한 마음으로 가득 채우고 머문다.    
“깔라마들이여, 성스러운 제자는 이와 같이 탐욕이 없고 악의가 없고 현혹됨이 없이 분명히 알아차리고 마음 챙긴다. 그는 자애가 함께한 마음으로 한 방향을 가득 채우고 머문다. 그처럼 두 번째 방향을, 그처럼 세 번째 방향을, 그처럼 네 번째 방향을, 이와 같이 위로, 아래로, 주위로, 모든 곳에서 모두를 자신처럼 여기고, 모든 세상을 풍만하고, 광대하고, 무량하고, 원한 없고, 악의 없는 평온이 함께한 마음으로 가득 채우고 머문다.....그는 연민이 함께한 마음으로...그는 더불어 기뻐함이 함께한 마음으로...그는 평온이 함께한 마음으로 한 방향을 가득 채우고 머문다. 그처럼 두 번째 방향을, 그처럼 세 번째 방향을, 그처럼 네 번째 방향을, 이와 같이 위로, 아래로, 주위로, 모든 곳에서 모두를 자신처럼 여기고, 모든 세상을 풍만하고, 광대하고, 무량하고, 원한 없고, 악의 없는 평온이 함께한 마음으로 가득 채우고 머문다.   17.[세존] “깔라마들이여, 고귀한 제자는 이와 같이 탐욕을 여의고 악의를 여의고, 미혹을 여의고, 올바로 알아채고 사띠를 확립하여,
 자애의 마음으로 동쪽 방향을 가득 채우고, 자애의 마음으로 남쪽 방향을 가득 채우고, 자애의 마음으로 서쪽 방향을 가득 채우고, 자애의 마음으로 북쪽 방향을 가득 채우고, 자애의 마음으로 위와 아래와 옆과 모든 곳을 빠짐없이 가득 채워서, 광대하고 멀리 미치고 한량없고 원한 없고 악의 없는 자애의 마음으로 일체의 세계를 가득 채웁니다.
 연민의 마음으로 동쪽 방향을 가득 채우고, 연민의 마음으로 남쪽 방향을 가득 채우고, 연민의 마음으로 서쪽 방향을 가득 채우고, 연민의 마음으로 북쪽 방향을 가득 채우고, 연민의 마음으로 위와 아래와 옆과 모든 곳을 빠짐없이 가득 채워서, 광대하고 멀리 미치고 한량없고 원한 없고 악의 없는 자애의 마음으로 일체의 세계를 가득 채웁니다.
 기쁨의 마음으로 동쪽 방향을 가득 채우고, 기쁨의 마음으로 남쪽 방향을 가득 채우고, 기쁨의 마음으로 서쪽 방향을 가득 채우고, 기쁨의 마음으로 북쪽 방향을 가득 채우고, 기쁨의 마음으로 위와 아래와 옆과 모든 곳을 빠짐없이 가득 채워서, 광대하고 멀리 미치고 한량없고 원한 없고 악의 없는 자애의 마음으로 일체의 세계를 가득 채웁니다.
 평정의 마음으로 동쪽 방향을 가득 채우고, 평정의 마음으로 남쪽 방향을 가득 채우고, 평정의 마음으로 서쪽 방향을 가득 채우고, 평정의 마음으로 북쪽 방향을 가득 채우고, 평정의 마음으로 위와 아래와 옆과 모든 곳을 빠짐없이 가득 채워서, 광대하고 멀리 미치고 한량없고 원한 없고 악의 없는 자애의 마음으로 일체의 세계를 가득 채웁니다.
 

깔라마들이여, 성스러운 제자는 이와 같이 마음에 원한이 없고, 마음에 악의가 없고, 마음이 오염되지 않고, 마음이 청정하여 금생에 네 가지 위안을 얻는다.”
15. “만약 다음 세상이 있고, 선행과 악행의 업들에 대한 결실과 과보가 있다면, 나는 몸이 무너져 죽은 뒤 좋은 곳[善處], 천상세계에 태어날 것이다.’라고. 이것이 그가 얻는 첫 번째 위안이다.
만약 다음 세상이 없고 선행과 악행의 업들에 대한 결실과 과보도 없다면, 나는 금생에 원한 없고 악의 없고 고통 없이 행복하게 살 것이다.’라고. 이것이 그가 얻는 두 번째 위안이다.

‘만약 어떤 행위자에게 나쁜 일이 닥친다해도, 나는 다른 이에게 악을 저지르게 시키지도 않았고 나 자신도 악업을 짓지 않았으니 어떻게 나에게 괴로움이 발생하겠는가?’라고. 이것이 그가 얻는 세 번째 위안(assāso)이다.
‘만약 어떤 행위자에게 나쁜 일이 닥치지 않는다해도, 나는 양면으로 청정한 나를 볼 것이다. 라고. 이것이 그가 얻는 네 번째 위안이다.‘깔라마들이여, 성스러운 제자는 이와 같이 마음에 원한이 없고, 마음에 악의가 없고, 마음이 오염되지 않고, 마음이 청정하여 금생에 네 가지 위안을 얻는다.”
  18.[세존]“깔라마들이여, 그 거룩한 제자는 이와 같이 원한을 여읜 마음으로, 이와 같이 폭력을 여읜 마음으로, 이와 같이 오염을 여읜 마음으로, 이와 같이 청정한 마음으로 현세에서 네 가지 안식을 얻습니다.
 만약 다른 세상이 있고 선행과 악행의 과보가 있다면, ‘나는 몸이 파괴되어 죽은 뒤에 죽은 뒤에 좋은 곳, 하늘나라에 태어날 것이다.’라는 희망이 그가 얻는 첫 번째 안식입니다.7
 만약 다른 세상이 없고 선행과 악행의 과보가 없다면, ‘나는 세상에 현세에 원한을 여의고 폭력을 여의고 고뇌 없이 행복한 자신을 수호한다.’는 그것이 그가 얻는 두 번째 안식입니다.8
 만약 악한 자가 악을 행하더라도 ‘내가 누구에게도 악을 행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악을 행하지 않는 나에게 고통이 닥치겠는가?’라는 그것이 그가 얻는 세 번째 안식입니다.9
 만약에 악한 자가 악을 행하지 않는다면, ‘나는 양자가 잘못이 없다는 것을 안다.’는 그것이 그가 얻는 네 번째 안식입니다.10
깔라마들이여, 그 거룩한 제자는 이와 같이 원한을 여읜 마음으로, 이와 같이 폭력을 여읜 마음으로, 이와 같이 오염을 여읜 마음으로 이와 같이 청정한 마음으로 현세에서 네 가지 안식을 얻습니다.”

16. “세존이시여, 그러합니다. 세존이시여, 참으로 그러합니다. 세존이시여, 성스러운 제자는 이와 같이 마음에 원한이 없고, 마음에 악의가 없고, 마음이 오염되지 않고, 마음이 청정하여 금생에 네 가지 위안을 얻습니다.
 
만약 다음 세상이 있고, 선행과 악행의 업들에 대한 결실과 과보가 있다면 나는 몸이 무너져 죽은 뒤 좋은 곳[善處], 천상세계에 태어날 것이다.’라고. 이것이 그가 얻는 첫 번째 위안입니다.
 
만약 다음 세상이 없고 선행과 악행의 업들에 대한 결실과 과보도 없다면 나는 금생에 원한 없고 악의 없고 고통 없이 행복하게 살 것이다.’라고. 이것이 그가 얻는 두 번째 위안입니다.
 
만약 어떤 이가 행하면서 나쁜 행을 하더라도 내가 다른 이에게 악을 저지르도록 교사하지 않았고 나 자신도 악업을 짓지 않았거늘 어떻게 내가 고통과 마주치겠는가?’라고. 이것이 그가 얻는 세 번째 위안입니다.
 
만약 어떤 이가 행하면서 나쁜 행을 하지 않으면 나는 양면으로 청정한 나를 볼 것이다.’라고. 이것이 그가 얻는 네 번째 위안입니다.
  19.[깔라마들] “세상에 존귀한 님이시여, 그렇습니다. 올바른 길로 잘 가신 님이시여, 그렇습니다.
① 세존이시여, 그 거룩한 제자는 이와 같이 원한을 여읜 마음으로, 이와 같이 폭력을 여읜 마음으로, 이와 같이 오염을 여읜 마음으로, 이와 같이 청정한 마음으로 현세에서 네 가지 안식을 얻습니다.
만약 다른 세상이 있고 선행과 악행의 과보가 있다면, ‘나는 몸이 파괴되어 죽은 뒤에 죽은 뒤에 좋은 곳, 하늘나라에 태어날 것이다.’라는 희망이 그가 얻는 첫 번째 안식입니다.
 만약 다른 세상이 없고 선행과 악행의 과보가 없다면, ‘나는 세상에 현세에 원한을 여의고 폭력을 여의고 고뇌 없이 행복한 자신을 수호한다.’는 그것이 그가 얻는 두 번째 안식입니다.
 만약 악한 자가 악을 행하더라도 ‘내가 누구에게도 악을 행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악을 행하지 않는 나에게 고통이 닥치겠는가?’라는 그것이 그가 얻는 세 번째 안식입니다.
 만약에 악한 자가 악을 행하지 않는다면, ‘나는 양자가 잘못이 없다는 것을 안다.’는 그것이 그가 얻는 네 번째 안식입니다.

세존이시여, 성스러운 제자는 이와 같이 마음에 원한이 없고, 마음에 악의가 없고, 마음이 오염되지 않고, 마음이 청정하여 금생에 네 가지 위안을 얻습니다.


경이롭습니다, 세존이시여. 경이롭습니다, 세존이시여. 마치 넘어진 자를 일으켜 세우시듯, 덮여있는 것을 걷어내 보이시듯, 길을 잃어버린 자에게 길을 가리켜주시듯, 눈 있는 자 형상을 보라고 어둠 속에서 등불을 비춰주시듯, 세존께서는 여러 가지 방편으로 법을 설해주셨습니다. 저희들은 이제 세존께 귀의하옵고 법과 비구승가에 귀의합니다. 세존께서는 저희를 재가신자로 받아주소서. 오늘부터 목숨이 붙어 있는 그날까지 귀의합니다.”









  세존이시이여, 그 거룩한 제자는 이와 같이 원한을 여읜 마음으로, 이와 같이 폭력을 여읜 마음으로, 이와 같이 오염을 여읜 마음으로 이와 같이 청정한 마음으로 현세에서 네 가지 안식을 얻습니다.
 
20. 세존이시여, 훌륭하십니다. 세존이시여, 훌륭하십니다. 세존이시여, 넘어진 것을 일으켜 세우듯, 가려진 것을 열어 보이듯, 어리석은 자에게 길을 가리켜 주듯, 눈 있는 자는 형상을 보라고 어둠 속에 등불을 가져오듯,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여러 가지 방법으로 진리를 밝혀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세존께 귀의합니다. 또한 그 가르침에 귀의합니다. 또한 그 수행승의 참모임에 귀의합니다. 세존께서는 저를 재가신도로 받아 주십시오. 오늘부터 목숨이 다하도록 귀의하겠습니다.”

     

 

 

kesamuttisuttaṃ (AN 3.66-께사무띠 경)[깔라마 경]

 

66. evaṃ me sutaṃ — ekaṃ samayaṃ bhagavā kosalesu cārikaṃ caramāno mahatā bhikkhusaṅghena saddhiṃ yena kesamuttaṃ nāma kālāmānaṃ nigamo tadavasari. assosuṃ kho kesamuttiyā kālāmā — “samaṇo khalu, bho, gotamo sakyaputto sakyakulā pabbajito kesamuttaṃ anuppatto. taṃ kho pana bhavantaṃ gotamaṃ evaṃ kalyāṇo kittisaddo abbhuggato — ‘itipi so bhagavā ... pe ... sādhu kho pana tathārūpānaṃ arahataṃ dassanaṃ hotī’”ti.

 

이렇게 나는 들었다. — 한때 꼬살라에서 큰 비구 상가와 함께 돌아다니면서 살고 있던 세존은 께사무띠라는 깔라마의 번화가에 도착했다. 께사무띠의 깔라마들은 들었다. — “존자들이여, 큰 비구 상가와 함께 꼬살라에서 돌아다니면서 사는, 사꺄의 자손이고 사꺄 가문으로부터 출가한 사문 고따마가 께사무띠에 도착했습니다. 참으로 세존이신 그분 고따마에게는 이런 좋은 명성이 퍼져있습니다. — ’이렇게 그분 세존께서는 모든 번뇌 떠나신 분, … 참으로 그런 아라한을 뵙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라고.

 

atha kho kesamuttiyā kālāmā yena bhagavā tenupasaṅkamiṃsu; upasaṅkamitvā appekacce bhagavantaṃ abhivādetvā ekamantaṃ nisīdiṃsu, appekacce bhagavatā saddhiṃ sammodiṃsu, sammodanīyaṃ kathaṃ sāraṇīyaṃ vītisāretvā ekamantaṃ nisīdiṃsu, appekacce yena bhagavā tenañjaliṃ paṇāmetvā ekamantaṃ nisīdiṃsu, appekacce nāmagottaṃ sāvetvā ekamantaṃ nisīdiṃsu, appekacce tuṇhībhūtā ekamantaṃ nisīdiṃsu. ekamantaṃ nisinnā kho te kesamuttiyā kālāmā bhagavantaṃ etadavocuṃ —

 

그러자 께사무띠의 깔라마들은 세존에게 왔다. 와서 어떤 사람들은 세존에게 절한 뒤 한 곁에 앉았다. 어떤 사람들은 세존과 함께 인사를 나누었다. 유쾌하고 기억할만한 이야기를 주고받은 뒤 한 곁에 앉았다. 어떤 사람들은 세존에게 합장하여 인사한 뒤 한 곁에 앉았다. 어떤 사람들은 세존의 앞에서 이름과 성을 말하고 한 곁에 앉았다. 어떤 사람은 조용히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그 께사무띠의 깔라마들은 세존에게 이렇게 말했다. — 

 

“santi, bhante, eke samaṇabrāhmaṇā kesamuttaṃ āgacchanti. te sakaṃyeva vādaṃ dīpenti jotenti, parappavādaṃ pana khuṃsenti vambhenti paribhavanti omakkhiṃ karonti. aparepi, bhante, eke samaṇabrāhmaṇā kesamuttaṃ āgacchanti. tepi sakaṃyeva vādaṃ dīpenti jotenti, parappavādaṃ pana khuṃsenti vambhenti paribhavanti omakkhiṃ karonti. tesaṃ no, bhante, amhākaṃ hoteva kaṅkhā hoti vicikicchā — ‘ko su nāma imesaṃ bhavataṃ samaṇabrāhmaṇānaṃ saccaṃ āha, ko musā’”ti? “alañhi vo, kālāmā, kaṅkhituṃ alaṃ vicikicchituṃ. kaṅkhanīyeva pana vo ṭhāne vicikicchā uppannā”.

 

“대덕이시여, 께사무띠에 오는 어떤 사문-바라문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주장은 설명하고 돋보이게 하면서 남의 주장은 질책하고 멸시하고 무시하고 열등한 것으로 치부합니다. 대덕이시여, 다른 어떤 사문-바라문들도 께사무띠에 옵니다. 그들도 자신의 주장은 설명하고 돋보이게 하면서 남의 주장은 질책하고 멸시하고 무시하고 열등한 것으로 치부합니다. 대덕이시여, 저희에게 그들에 대한 불확실함과 의심이 있습니다. — ‘이 사문-바라문 존자들 가운데 누가 진실을 말하고 누가 거짓을 말하는가?’라고.” 

 

“깔라마들이여, 그대들이 불확실해하는 것은 그럴만하고, 의심스러워하는 것은 그럴만합니다. 불확실함의 경우에 의심이 생기는 것입니다.

 

“etha tumhe, kālāmā, mā anussavena, mā paramparāya, mā itikirāya, mā piṭakasampadānena, mā takkahetu, mā nayahetu, mā ākāraparivitakkena, mā diṭṭhinijjhānakkhantiyā, mā bhabbarūpatāya, mā samaṇo no garūti. yadā tumhe, kālāmā, attanāva jāneyyātha — ‘ime dhammā akusalā, ime dhammā sāvajjā, ime dhammā viññugarahitā, ime dhammā samattā samādinnā ahitāya dukkhāya saṃvattantī’”ti, atha tumhe, kālāmā, pajaheyyātha.

 

깔라마들이여, 전승에 의해, 계승에 의해, 내가 들었다고 해서, 성전의 자료라고 해서, 딱까를 원인으로, 문법적 의미를 원인으로, 온전한 생각 떠오름의 출현에 의해, 견해와 통찰의 지속에 의해, 가능성이 있다고 해서, ‘사문은 우리의 스승이다.’라고 해서 그대들은 오지(받아들이지) 말아야 합니다. 깔라마들이여, 그대들이 스스로 ‘이 법들은 불선(不善)이고, 이 법들은 결점이 있는 것이고, 이 법들은 현명한 자에 의해 질책받는 것이고, 이 법들은 온전히 받아 지니면 불익과 괴로움으로 이끈다.’라고 알게 될 때, 깔라마들이여, 그대들은 버려야 합니다.

 

“taṃ kiṃ maññatha, kālāmā, lobho purisassa ajjhattaṃ uppajjamāno uppajjati hitāya vā ahitāya vā”ti?

 

깔라마들이여, 이것을 어떻게 생각합니까? 사람에게 내적으로 생기는 것인 망(望)은 이익을 위해 생깁니까, 아니면 불익을 위해 생깁니까?”

 

“ahitāya, bhante”.

 

“불익을 위해 생깁니다, 대덕이시여.”

 

“luddho panāyaṃ, kālāmā, purisapuggalo lobhena abhibhūto pariyādinnacitto pāṇampi hanati, adinnampi ādiyati, paradārampi gacchati, musāpi bhaṇati, parampi tathattāya samādapeti, yaṃ sa hoti dīgharattaṃ ahitāya dukkhāyā”ti.

 

“깔라마들이여, 열망(熱望)하고, 망(望)에 사로잡히고, 소진(消盡)된 심(心)을 가진 이런 사람은 생명을 해치기도 하고, 주지 않는 것을 가지기도 하고, 남의 아내에게 가기도 하고, 거짓을 말하기도 합니다. 또한, 남에게도 그렇게 하도록 부추깁니다. 이런 그에게 오랫동안 불익과 괴로움이 있습니다.”

 

“evaṃ, bhante”.

 

“그렇습니다, 대덕이시여.”

 

“taṃ kiṃ maññatha, kālāmā, doso purisassa ajjhattaṃ uppajjamāno uppajjati hitāya vā ahitāya vā”ti?

 

“깔라마들이여, 이것을 어떻게 생각합니까? 사람에게 내적으로 생기는 것인 진(嗔)은 이익을 위해 생깁니까, 아니면 불익을 위해 생깁니까?”

 

“ahitāya, bhante”.

 

“불익을 위해 생깁니다, 대덕이시여.”

 

“duṭṭho panāyaṃ, kālāmā, purisapuggalo dosena abhibhūto pariyādinnacitto pāṇampi hanati, adinnampi ādiyati, paradārampi gacchati, musāpi bhaṇati, parampi tathattāya samādapeti, yaṃ sa hoti dīgharattaṃ ahitāya dukkhāyā”ti.

 

“불쾌해하고, 진(嗔)에 사로잡히고, 소진(消盡)된 심(心)을 가진 이런 사람은 생명을 해치기도 하고, 주지 않는 것을 가지기도 하고, 남의 아내에게 가기도 하고, 거짓을 말하기도 합니다. 또한, 남에게도 그렇게 하도록 부추깁니다. 이런 그에게 오랫동안 불익과 괴로움이 있습니다.”

 

“evaṃ, bhante”.

 

“그렇습니다, 대덕이시여.”

 

“taṃ kiṃ maññatha, kālāmā, moho purisassa ajjhattaṃ uppajjamāno uppajjati hitāya vā ahitāya vā”ti?

 

“깔라마들이여, 이것을 어떻게 생각합니까? 사람에게 내적으로 생기는 것인 치(癡)는 이익을 위해 생깁니까, 아니면 불익을 위해 생깁니까?”

 

“ahitāya, bhante”.

 

“불익을 위해 생깁니다, 대덕이시여.”

 

“mūḷho panāyaṃ, kālāmā, purisapuggalo mohena abhibhūto pariyādinnacitto pāṇampi hanati, adinnampi ādiyati, paradārampi gacchati, musāpi bhaṇati, parampi tathattāya samādapeti, yaṃ sa hoti dīgharattaṃ ahitāya dukkhāyā”ti.

 

“열중하고, 치(癡)에 사로잡히고, 소진(消盡)된 심(心)을 가진 이런 사람은 생명을 해치기도 하고, 주지 않는 것을 가지기도 하고, 남의 아내에게 가기도 하고, 거짓을 말하기도 합니다. 또한, 남에게도 그렇게 하도록 부추깁니다. 이런 그에게 오랫동안 불익과 괴로움이 있습니다.”

 

“evaṃ, bhante”.

 

“그렇습니다, 대덕이시여.”

 

“taṃ kiṃ maññatha, kālāmā, ime dhammā kusalā vā akusalā vā”ti?

 

“깔라마들이여, 이것을 어떻게 생각합니까? 이 법들은 선(善)입니까, 불선(不善)입니까?”

 

“akusalā, bhante”.

 

“불선(不善)입니다, 대덕이시여.”

 

“sāvajjā vā anavajjā vā”ti?

 

“결점이 있는 것입니까, 결점이 없는 것입니까?”

 

“sāvajjā, bhante”.

 

“결점이 있는 것입니다, 대덕이시여.”

 

“viññugarahitā vā viññuppasatthā vā”ti?

 

“현명한 자에 의해 질책받는 것입니까, 현명한 자에 의해 찬양되는 것입니까?”

 

“viññugarahitā, bhante”.

 

“현명한 자에 의해 질책받는 것입니다, 대덕이시여.”

 

“samattā samādinnā ahitāya dukkhāya saṃvattanti, no vā? kathaṃ vā ettha hotī”ti?

 

“온전히 받아 지니면 불익과 괴로움으로 이끄는 것입니까, 아닙니까? 그대들은 어떻게 생각합니까?”

 

“samattā, bhante, samādinnā ahitāya dukkhāya saṃvattantīti. evaṃ no ettha hotī”ti.

 

“대덕이시여, 온전히 받아 지니면 불익과 괴로움으로 이끈다고 저희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iti kho, kālāmā, yaṃ taṃ avocumhā — ‘etha tumhe, kālāmā! mā anussavena, mā paramparāya, mā itikirāya, mā piṭakasampadānena, mā takkahetu, mā nayahetu, mā ākāraparivitakkena, mā diṭṭhinijjhānakkhantiyā, mā bhabbarūpatāya, mā samaṇo no garūti. yadā tumhe kālāmā attanāva jāneyyātha — ‘ime dhammā akusalā, ime dhammā sāvajjā, ime dhammā viññugarahitā, ime dhammā samattā samādinnā ahitāya dukkhāya saṃvattantīti, atha tumhe, kālāmā, pajaheyyāthā’ti, iti yaṃ taṃ vuttaṃ, idametaṃ paṭicca vuttaṃ.

 

“그래서 깔라마들이여, ‘전승에 의해, 계승에 의해, 내가 들었다고 해서, 성전의 자료라고 해서, 딱까를 원인으로, 문법적 의미를 원인으로, 온전한 생각 떠오름의 출현에 의해, 견해와 통찰의 지속에 의해, 가능성이 있다고 해서, ‘사문은 우리의 스승이다.’라고 해서 그대들은 오지(받아들이지) 말아야 합니다. 깔라마들이여, 그대들이 스스로 ‘이 법들은 불선(不善)이고, 이 법들은 결점이 있는 것이고, 이 법들은 현명한 자에 의해 질책받는 것이고, 이 법들은 온전히 받아 지니면 불익과 괴로움으로 이끈다.’라고 알게 될 때, 깔라마들이여, 그대들은 버려야 합니다.[망(望)-진(嗔)-치(癡)의 법(法)]’라고 말했습니다. 이렇게 말한 이것은 이것을 연(緣)하여 말했습니다. 

 

“etha tumhe, kālāmā, mā anussavena, mā paramparāya, mā itikirāya, mā piṭakasampadānena, mā takkahetu, mā nayahetu, mā ākāraparivitakkena, mā diṭṭhinijjhānakkhantiyā, mā bhabbarūpatāya, mā samaṇo no garūti. yadā tumhe, kālāmā, attanāva jāneyyātha — ‘ime dhammā kusalā, ime dhammā anavajjā, ime dhammā viññuppasatthā, ime dhammā samattā samādinnā hitāya sukhāya saṃvattantī’ti, atha tumhe, kālāmā, upasampajja vihareyyātha.

 

깔라마들이여, ‘전승에 의해, 계승에 의해, 내가 들었다고 해서, 성전의 자료라고 해서, 딱까를 원인으로, 문법적 의미를 원인으로, 온전한 생각 떠오름의 출현에 의해, 견해와 통찰의 지속에 의해, 가능성이 있다고 해서, ‘사문은 우리의 스승이다.’라고 해서 그대들은 오지(받아들이지) 말아야 합니다. 깔라마들이여, 그대들이 스스로 ‘이 법들은 선(善)이고, 이 법들은 결점이 없는 것이고, 이 법들은 현명한 자에 의해 찬양되는 것이고, 이 법들은 온전히 받아 지니면 이익과 즐거움으로 이끈다.’라고 알게 될 때, 깔라마들이여, 그대들은 성취하여 머물러야 합니다.

 

“taṃ kiṃ maññatha, kālāmā, alobho purisassa ajjhattaṃ uppajjamāno uppajjati hitāya vā ahitāya vā”ti?

 

깔라마들이여, 이것을 어떻게 생각합니까? 사람에게 내적으로 생기는 것인 무망(無望)은 이익을 위해 생깁니까, 아니면 불익을 위해 생깁니까?”

 

“hitāya, bhante”.

 

“이익을 위해 생깁니다, 대덕이시여.”

 

“aluddho panāyaṃ, kālāmā, purisapuggalo lobhena anabhibhūto apariyādinnacitto neva pāṇaṃ hanati, na adinnaṃ ādiyati, na paradāraṃ gacchati, na musā bhaṇati, na parampi tathattāya samādapeti, yaṃ sa hoti dīgharattaṃ hitāya sukhāyā”ti.

 

“열망(熱望)하지 않고, 망(望)에 사로잡히지 않고, 소진(消盡)되지 않은 심(心)을 가진 이런 사람은 생명을 해치지 않고, 주지 않는 것을 가지지 않고, 남의 아내에게 가지 않고, 거짓을 말하지 않습니다. 또한, 남에게도 그렇게 하지 않도록 부추깁니다. 이런 그에게 오랫동안 이익과 즐거움이 있습니다.”

 

“evaṃ, bhante”.

 

“그렇습니다, 대덕이시여.”

 

“taṃ kiṃ maññatha, kālāmā, adoso purisassa ajjhattaṃ uppajjamāno uppajjati ... pe ... amoho purisassa ajjhattaṃ uppajjamāno uppajjati ... pe ... hitāya sukhāyā”ti.

 

“깔라마들이여, 이것을 어떻게 생각합니까? 사람에게 내적으로 생기는 것인 무진(無嗔)은 이익을 위해 생깁니까, 아니면 불익을 위해 생깁니까?” … 사람에게 내적으로 생기는 것인 무치(無癡)는 이익을 위해 생깁니까, 아니면 불익을 위해 생깁니까?” … 이런 그에게 오랫동안 이익과 즐거움이 있습니다.”

 

“evaṃ bhante”.

 

“그렇습니다, 대덕이시여.”

 

“taṃ kiṃ maññatha, kālāmā, ime dhammā kusalā vā akusalā vā”ti?

 

“깔라마들이여, 이것을 어떻게 생각합니까? 이 법들은 선(善)입니까, 불선(不善)입니까?”

 

“kusalā, bhante”.

 

“선(善)입니다, 대덕이시여.”

 

“sāvajjā vā anavajjā vā”ti?

 

“결점이 있는 것입니까, 결점이 없는 것입니까?”

 

“anavajjā, bhante”.

 

“결점이 없는 것입니다, 대덕이시여.”

 

“viññugarahitā vā viññuppasatthā vā”ti?

 

“현명한 자에 의해 질책받는 것입니까, 현명한 자에 의해 찬양되는 것입니까?”

 

“viññuppasatthā, bhante”.

 

“현명한 자에 의해 찬양되는 것입니다, 대덕이시여.”

 

“samattā samādinnā hitāya sukhāya saṃvattanti no vā? kathaṃ vā ettha hotī”ti?

 

“온전히 받아 지니면 이익과 즐거움으로 이끄는 것입니까, 아닙니까? 그대들은 어떻게 생각합니까?”

 

“samattā, bhante, samādinnā hitāya sukhāya saṃvattanti. evaṃ no ettha hotī”ti.

 

“대덕이시여, 온전히 받아 지니면 이익과 즐거움으로 이끕니다. 저희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iti kho, kālāmā, yaṃ taṃ avocumhā — ‘etha tumhe, kālāmā! mā anussavena, mā paramparāya, mā itikirāya, mā piṭakasampadānena, mā takkahetu, mā nayahetu, mā ākāraparivitakkena, mā diṭṭhinijjhānakkhantiyā, mā bhabbarūpatāya, mā samaṇo no garūti. yadā tumhe, kālāmā, attanāva jāneyyātha — ime dhammā kusalā, ime dhammā anavajjā, ime dhammā viññuppasatthā, ime dhammā samattā samādinnā hitāya sukhāya saṃvattantīti, atha tumhe, kālāmā, upasampajja vihareyyāthā’ti, iti yaṃ taṃ vuttaṃ idametaṃ paṭicca vuttaṃ.

 

“그래서 깔라마들이여, ‘전승에 의해, 계승에 의해, 내가 들었다고 해서, 성전의 자료라고 해서, 딱까를 원인으로, 문법적 의미를 원인으로, 온전한 생각 떠오름의 출현에 의해, 견해와 통찰의 지속에 의해, 가능성이 있다고 해서, ‘사문은 우리의 스승이다.’라고 해서 그대들은 오지(받아들이지) 말아야 합니다. 깔라마들이여, 그대들이 스스로 ‘이 법들은 선(善)이고, 이 법들은 결점이 없는 것이고, 이 법들은 현명한 자에 의해 찬양되는 것이고, 이 법들은 온전히 받아 지니면 이익과 즐거움으로 이끈다.’라고 알게 될 때, 깔라마들이여, 그대들은 성취하여 머물러야 합니다.[무망(無望)-무진(無嗔)-무치(無癡)의 법(法)]’라고 말했습니다. 이렇게 말한 이것은 이것을 연(緣)하여 말했습니다. 

 

“sa kho so, kālāmā, ariyasāvako evaṃ vigatābhijjho vigatabyāpādo asammūḷho sampajāno patissato mettāsahagatena cetasā ekaṃ disaṃ pharitvā viharati, tathā dutiyaṃ, tathā tatiyaṃ, tathā catutthaṃ, iti uddhamadho tiriyaṃ sabbadhi sabbattatāya sabbāvantaṃ lokaṃ mettāsahagatena cetasā vipulena mahaggatena appamāṇena averena abyāpajjhena pharitvā viharati. karuṇāsahagatena cetasā ... pe ... muditāsahagatena cetasā ... pe ... upekkhāsahagatena cetasā ekaṃ disaṃ pharitvā viharati, tathā dutiyaṃ, tathā tatiyaṃ, tathā catutthaṃ, iti uddhamadho tiriyaṃ sabbadhi sabbattatāya sabbāvantaṃ lokaṃ upekkhāsahagatena cetasā vipulena mahaggatena appamāṇena averena abyāpajjhena pharitvā viharati.

 

깔라마들이여, 빈틈없이 알아차리고[밀착된 념(念)], 옳고 그름을 판단하여[정지(正知)] 이렇게 간탐하지 않고, 진에하지 않고, 열중하지 않는 그 성스러운 제자는 자(慈)가 함께한 심(心)으로 한 방향을 두루 미치면서 머뭅니다. 그렇게 두 방향을, 그렇게 세 방향을, 그렇게 네 방향을. 이렇게 위로 아래로 중간방위로, 모든 곳에서 모두에게 펼쳐서 모든 세상을 크고 귀하고 무량한, 원망 없고 거슬림 없는 자(慈)가 함께한 심(心)으로 두루 미치면서 머뭅니다. 비(悲)가 함께한 심(心)으로 … 희(喜)가 함께한 심(心)으로 … 사(捨)가 함께한 심(心)으로 한 방향을 두루 미치면서 머뭅니다. 그렇게 두 방향을, 그렇게 세 방향을, 그렇게 네 방향을. 이렇게 위로 아래로 중간방위로, 모든 곳에서 모두에게 펼쳐서 모든 세상을 크고 귀하고 무량한, 원망 없고 거슬림 없는 사(捨)가 함께한 심(心)으로 두루 미치면서 머뭅니다. 

 

“sa kho so, kālāmā, ariyasāvako evaṃ averacitto evaṃ abyāpajjhacitto evaṃ asaṃkiliṭṭhacitto evaṃ visuddhacitto. tassa diṭṭheva dhamme cattāro assāsā adhigatā honti. ‘sace kho pana atthi paro loko, atthi sukatadukkaṭānaṃ kammānaṃ phalaṃ vipāko, athāhaṃ kāyassa bhedā paraṃ maraṇā sugatiṃ saggaṃ lokaṃ upapajjissāmī’ti, ayamassa paṭhamo assāso adhigato hoti.

 

깔라마들이여, 그 성스러운 제자는 이렇게 원망 없는 심(心)을 가졌고, 이렇게 거슬림 없는 심(心)을 가졌고, 오염 없는 심(心)을 가졌고, 이렇게 청정한 심(心)을 가졌습니다. 그는 지금여기에서 네 가지 위안을 얻습니다. ‘만약 저세상이 있고, 선행(善行)과 악행(惡行)의 업들의 과(果)와 보(報)가 있다면, 나는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좋은 곳 하늘 세상에 태어날 것이다.’라는 이것이 첫 번째 얻는 위안입니다. 

 

“‘sace kho pana natthi paro loko, natthi sukatadukkaṭānaṃ kammānaṃ phalaṃ vipāko, athāhaṃ diṭṭheva dhamme averaṃ abyāpajjhaṃ anīghaṃ sukhiṃ attānaṃ pariharāmī’ti, ayamassa dutiyo assāso adhigato hoti.

 

‘만약 저 세상이 없고, 선행(善行)과 악행(惡行)의 업들의 과(果)와 보(報)가 없다면, 나는 지금여기에서 원망 없고, 거슬림 없고, 고통 없고, 행복한 자신을 보호한다.’라는 이것이 두 번째 얻는 위안입니다.

 

“sace kho pana karoto karīyati pāpaṃ, na kho panāhaṃ — kassaci pāpaṃ cetemi, akarontaṃ kho pana maṃ pāpakammaṃ kuto dukkhaṃ phusissatī’ti, ayamassa tatiyo assāso adhigato hoti.

 

‘만약 행하는 자가 악(惡)을 행한다 해도, 나는 누구에게도 악(惡)을 의도하지 않는다. 악업(惡業)을 행하지 않는 나에게 어디로부터 괴로움이 닿을 것인가?’라는 이것이 세 번째 얻는 위안입니다.

 

“‘sace kho pana karoto na karīyati pāpaṃ, athāhaṃ ubhayeneva visuddhaṃ attānaṃ samanupassāmī’ti, ayamassa catuttho assāso adhigato hoti.

 

‘만약 행하는 자가 악(惡)을 행하지 않는다면, 그것으로 인해 나는 양면으로 청정한 나를 본다.’라는 이것이 네 번째 얻는 위안입니다.

 

“sa kho so, kālāmā, ariyasāvako evaṃ averacitto evaṃ abyāpajjhacitto evaṃ asaṃkiliṭṭhacitto evaṃ visuddhacitto. tassa diṭṭheva dhamme ime cattāro assāsā adhigatā hontī”ti.

 

깔라마들이여, 그 성스러운 제자는 이렇게 원망 없는 심(心)을 가졌고, 이렇게 거슬림 없는 심(心)을 가졌고, 오염 없는 심(心)을 가졌고, 이렇게 청정한 심(心)을 가졌습니다. 그는 지금여기에서 이런 네 가지 위안을 얻습니다.”

 

“evametaṃ, bhagavā, evametaṃ, sugata! sa kho so, bhante, ariyasāvako evaṃ averacitto evaṃ abyāpajjhacitto evaṃ asaṃkiliṭṭhacitto evaṃ visuddhacitto. tassa diṭṭheva dhamme cattāro assāsā adhigatā honti. ‘sace kho pana atthi paro loko, atthi sukatadukkaṭānaṃ kammānaṃ phalaṃ vipāko, athāhaṃ kāyassa bhedā paraṃ maraṇā sugatiṃ saggaṃ lokaṃ upapajjissāmī’ti, ayamassa paṭhamo assāso adhigato hoti.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그렇습니다, 선서시여! 대덕이시여, 그 성스러운 제자는 이렇게 원망 없는 심(心)을 가졌고, 이렇게 거슬림 없는 심(心)을 가졌고, 오염 없는 심(心)을 가졌고, 이렇게 청정한 심(心)을 가졌습니다. 그는 지금여기에서 네 가지 위안을 얻습니다. ‘만약 저 세상이 있고, 선행(善行)과 악행(惡行)의 업들의 과(果)와 보(報)가 있다면, 나는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좋은 곳 하늘 세상에 태어날 것이다.’라는 이것이 첫 번째 얻는 위안입니다. 

 

“‘sace kho pana natthi paro loko, natthi sukatadukkaṭānaṃ kammānaṃ phalaṃ vipāko, athāhaṃ diṭṭheva dhamme averaṃ abyāpajjhaṃ anīghaṃ sukhiṃ attānaṃ pariharāmī’ti, ayamassa dutiyo assāso adhigato hoti.

 

‘만약 저 세상이 없고, 선행(善行)과 악행(惡行)의 업들의 과(果)와 보(報)가 없다면, 나는 지금여기에서 원망 없고, 거슬림 없고, 고통 없고, 행복한 자신을 보호한다.’라는 이것이 두 번째 얻는 위안입니다.

 

“sace kho pana karoto karīyati pāpaṃ, na kho panāhaṃ — kassaci pāpaṃ cetemi, akarontaṃ kho pana maṃ pāpakammaṃ kuto dukkhaṃ phusissatī’ti, ayamassa tatiyo assāso adhigato hoti.

 

‘만약 행하는 자가 악(惡)을 행한다 해도, 나는 누구에게도 악(惡)을 의도하지 않는다. 악업(惡業)을 행하지 않는 나에게 어디로부터 괴로움이 닿을 것인가?’라는 이것이 세 번째 얻는 위안입니다.

 

“‘sace kho pana karoto na karīyati pāpaṃ, athāhaṃ ubhayeneva visuddhaṃ attānaṃ samanupassāmī’ti, ayamassa catuttho assāso adhigato hoti.

 

‘만약 행하는 자가 악(惡)을 행하지 않는다면, 그것으로 인해 나는 양면으로 청정한 나를 본다.’라는 이것이 네 번째 얻는 위안입니다.

 

“sa kho so, bhante, ariyasāvako evaṃ averacitto evaṃ abyāpajjhacitto evaṃ asaṃkiliṭṭhacitto evaṃ visuddhacitto. tassa diṭṭheva dhamme ime cattāro assāsā adhigatā honti.

 

대덕이시여, 그 성스러운 제자는 이렇게 원망 없는 심(心)을 가졌고, 이렇게 거슬림 없는 심(心)을 가졌고, 오염 없는 심(心)을 가졌고, 이렇게 청정한 심(心)을 가졌습니다. 그는 지금여기에서 이런 네 가지 위안을 얻습니다.”

 

“abhikkantaṃ, bhante ... pe ... ete mayaṃ, bhante, bhagavantaṃ saraṇaṃ gacchāma dhammañca bhikkhusaṅghañca. upāsake no, bhante, bhagavā dhāretu ajjatagge pāṇupete saraṇaṃ gate”ti. pañcamaṃ. 

 

정말 기쁩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정말 기쁩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예를 들면, 대덕이시여, 넘어진 자를 일으킬 것입니다. 덮여있는 것을 걷어낼 것입니다. 길 잃은 자에게 길을 알려줄 것입니다. ‘눈 있는 자들은 모습들을 본다.’라며 어둠 속에서 기름 등불을 들 것입니다. 이처럼, 세존(世尊)에 의해서 여러 가지 방법으로 설해진 법이 있습니다. 대덕이시여, 저는 의지처인 세존(世尊) 그리고 가르침과 비구 상가에게로 갑니다. 세존(世尊)께서는 저를 오늘부터 살아 있는 동안 귀의한 재가 신자로 받아 주십시오.”

 

 

 

 

 
 
<온라인불자회 초창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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