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17일 목요일 오후 9시 15분에 대반열반경(D16) <온라인불자회> 공부모임을 시작합니다.
다 같이 합장하고 큰 소리로 합창합니다.
나모 따사 바가와또 아라하또 삼마 삼붓다사(Namo tassa bhagavato arahato sammāsambuddhassa)
나모 따사 바가와또 아라하또 삼마 삼붓다사(Namo tassa bhagavato arahato sammāsambuddhassa)
나모 따사 바가와또 아라하또 삼마 삼붓다사(Namo tassa bhagavato arahato sammāsambuddhassa)
붓당 사라남 가차미 (Buddham Saranam Gacchami) 부처님께 귀의합니다.(3번)
담망 사라남 가차미 (Dhammam Saranam Gacchami) 가르침에 귀의합니다.()
상강 사라남 가차미 (Sangham Saranam Gacchami) 승가에 귀의합니다.()
수밧다 유행승의 일화
34. Subhadda paribbājaka vatthu
5.23. 그 무렵에 수밧다라는 유행승이 꾸시나라에 살고 있었다. 수밧다 유행승은 ‘오늘 밤 삼경에 사문 고따마의 반열반이 있을 것이다.’라고 들었다. 그러자 수밧다 유행승에게 이런 생각이 들었다. ‘늙고 나이 든, 스승들의 전통을 가진 유행승들이 말하기를 ‘참으로 드물게 여래ㆍ아라한ㆍ정등각은 세상에 태어나신다.’라고 하는 것을 나는 들었다. 그런데 오늘 밤 삼경에 사문 고따마께서는 반열반하신다고 한다. 내게는 법에 대한 의심이 생겼다. 나는 사문 고따마께 청정한 믿음이 있다. 그러므로 사문 고따마께서는 내가 [품은] 법에 대한 의심을 제거할 수 있도록 법을 설해 주실 것이다.’
Tena kho pana samayena subhaddo nāma paribbājako kusinārāyaṃ paṭivasati. Assosi kho subhaddo paribbājako: “ajja kira rattiyā pacchime yāme samaṇassa gotamassa parinibbānaṃ bhavissatī”ti. Atha kho subhaddassa paribbājakassa etadahosi: “sutaṃ kho pana metaṃ paribbājakānaṃ vuḍḍhānaṃ mahallakānaṃ ācariyapācariyānaṃ bhāsamānānaṃ: ‘kadāci karahaci tathāgatā loke uppajjanti arahanto sammāsambuddhā’ti. Ajjeva rattiyā pacchime yāme samaṇassa gotamassa parinibbānaṃ bhavissati. Atthi ca me ayaṃ kaṅkhādhammo uppanno, evaṃ pasanno ahaṃ samaṇe gotame, ‘pahoti me samaṇo gotamo tathā dhammaṃ desetuṃ, yathāhaṃ imaṃ kaṅkhādhammaṃ pajaheyyan’”ti.
5.24. 그러자 수밧다 유행승은 근처에 있는 말라들의 살라 숲으로 아난다 존자에게 다가갔다. 가서는 아난다 존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아난다 존자여, 늙고 나이 든, 스승들의 전통을 가진 유행승들이 말하기를 ‘참으로 드물게 여래ㆍ아라한ㆍ정등각은 세상에 태어나신다.’라고 하는 것을 나는 들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밤 삼경에 사문 고따마께서는 반열반하신다고 합니다. 내게는 법에 대한 의심이 생겼습니다. 나는 사문 고따마께 청정한 믿음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문 고따마께서는 내가 [품은] 법에 대한 의심을 제거할 수 있도록 법을 설해 주실 것입니다. 아난다 존자여, 이런 내가 사문 고따마를 친견하도록 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러자 아난다 존자는 수밧다 유행승에게 이렇게 말했다. “도반 수밧다여, 그만 되었습니다. 여래를 성가시게 하지 마십시오. 세존께서는 피로하십니다.”
두 번째로 … 세 번째로 수밧다 유행승은 아난다 존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아난다 존자여, 늙고 나이 든, 스승들의 전통을 가진 유행승들이 말하기를 ‘참으로 드물게 여래ㆍ아라한ㆍ정등각은 세상에 태어나신다.’라고 하는 것을 나는 들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밤 삼경에 사문 고따마께서는 반열반하신다고 합니다. 내게는 법에 대한 의심이 생겼습니다. 나는 사문 고따마께 청정한 믿음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문 고따마께서는 내가 [품은] 법에 대한 의심을 제거할 수 있도록 법을 설해 주실 것입니다. 아난다 존자여, 이런 내가 사문 고따마를친견하도록 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세 번째로 아난다 존자는 수밧다 유행승에게 이렇게 말했다. “도반 수밧다여, 그만 되었습니다. 여래를 성가시게 하지 마십시오. 세존께서는 피로하십니다.”
5.25. 세존께서는 아난다 존자가 수밧다 유행승과 함께 나눈 대화를 들으셨다. 그러자 세존께서는 아난다 존자를 불러서 말씀하셨다. “아난다여, 그만 하라. 수밧다를 막지 말라. 아난다여, 수밧다가 여래를 친견하게 해주어라. 수밧다가 내게 질문하려 하는 것은 모두 구경의 지혜를 터득하고자 함이지, 나를 성가시게 하고자 함이 아니다. 그가 질문한 것에 대해 내가 설명해 주면 그는 빨리 그것을 알게 될 것이다.” 그러자 아난다 존자는 수밧다 유행승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도반 수밧다여, 들어가십시오. 세존께서 그대에게 기회를 주셨습니다.”
5.26. 그러자 수밧다 유행승은 세존께 다가갔다. 가서는 세존과 함께 환담을 나누었다. 유쾌하고 기억할 만한 이야기로 서로 담소를 하고서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수밧다 유행승은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고따마 존자시여, 어떤 사문ㆍ바라문들은 승가를 가졌고 무리를 가졌고 무리의 스승이며 잘 알려졌고 명성을 가졌고 교단의 창시자이며 많은 사람들이 사두라고 인정합니다. 그들은 뿌라나 깟사빠, 막칼리 고살라, 아지따 께사깜발라, 빠꾸다 깟짜야나, 산자야 벨랏티뿟따, 니간타 나따뿟따입니다. 그들은 모두 스스로 자처하듯이 최상의 지혜를 가졌습니까? 아니면 모두 최상의 지혜를 가지지 못했습니까? 아니면 어떤 자들은 최상의 지혜를 가졌고 어떤 자들은 최상의 지혜를 가지지 못했습니까?”
“그만하라, 수밧다여. 그만 멈추어라. 그들 모두가 스스로 자처하듯이 최상의 지혜를 가졌건, 모두가 최상의 지혜를 가지지 못했건, 어떤 자들은 최상의 지혜를 가졌고 어떤 자들은 최상의 지혜를 가지지 못했건 간에, 나는 그대에게 법을 설하리라. 이것을 잘 들어라. 듣고 마음에 잘 새겨라. 이제 나는 설하리라.”
“그렇게 하겠습니다, 존자시여.”라고 수밧다 유행승은 세존께 대답했다.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Alaṃ, subhadda, tiṭṭhatetaṃ: ‘sabbete sakāya paṭiññāya abbhaññiṃsu, sabbeva na abbhaññiṃsu, udāhu ekacce abbhaññiṃsu, ekacce na abbhaññiṃsū’ti. Dhammaṃ te, subhadda, desessāmi; taṃ suṇāhi sādhukaṃ manasikarohi, bhāsissāmī”ti. “Evaṃ, bhante”ti kho subhaddo paribbājako bhagavato paccassosi. Bhagavā etadavoca:
5.27. “수밧다여, 어떤 법과 율에서든 여덟 가지 성스러운 도[八支聖道]가 없으면 거기에는 사문도 없다. 거기에는 두 번째 사문도 없다. 거기에는 세 번째 사문도 없다. 거기에는 네 번째 사문도 없다. 수밧다여, 그러나 어떤 법과 율에서든 여덟 가지 성스러운 도[八支聖道]가 있으면 거기에는 사문도 있다. 거기에는 두 번째 사문도 있다. 거기에는 세 번째 사문도 있다. 거기에는 네 번째 사문도 있다.“Yasmiṃ kho, subhadda, dhammavinaye ariyo aṭṭhaṅgiko maggo na upalabbhati, samaṇopi tattha na upalabbhati. Dutiyopi tattha samaṇo na upalabbhati. Tatiyopi tattha samaṇo na upalabbhati. Catutthopi tattha samaṇo na upalabbhati.
수밧다여, 이 법과 율에는 여덟 가지 성스러운 도가 있다. 수밧다여, 그러므로 오직 여기에만 사문이 있다. 여기에만 두 번째 사문이 있다. 여기에만 세 번째 사문이 있다. 여기에만 네 번째 사문이 있다. 다른 교설들에는 사문들이 텅 비어 있다. 수밧다여, 이 비구들이 바르게 머문다면 세상에는 아라한들이 텅 비지 않을 것이다.
수밧다여, 29세가 되어 나는
무엇이 유익함인지를 구하여 출가하였노라.
수밧다여, 이제 51년 동안
출가 생활을 하면서 바른 방법과 법을 위해서
[여러] 지방에 머물렀나니
이밖에는 사문이 없다.
Ekūnatiṃso vayasā subhadda,
Yaṃ pabbajiṃ kiṅkusalānuesī;
Vassāni paññāsa samādhikāni,
Yato ahaṃ pabbajito subhadda;
Ñāyassa dhammassa padesavattī,
Ito bahiddhā samaṇopi natthi.
두 번째 사문도 없다. 세 번째 사문도 없다. 네 번째 사문도 없다. 다른 교설들에는 사문들이 텅 비어 있다. 수밧다여, 이 비구들이 바르게 머문다면 세상에는 아라한들이 텅 비지 않을 것이다.”Ime ca, subhadda, bhikkhū sammā vihareyyuṁ, asuñño loko arahantehi assā”ti.
5.28. 이렇게 말씀하시자 수밧다 유행승은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경이롭습니다, 세존이시여. 경이롭습니다, 세존이시여. 마치 넘어진 자를 일으켜 세우시듯, 덮여있는 것을 걷어내 보이시듯, [방향을] 잃어버린 자에게 길을 가리켜 주시듯, ‘눈 있는 자 형상을 보라.’고 어둠 속에서 등불을 비춰 주시듯, 세존께서는 여러 가지 방편으로 법을 설해주셨습니다. 저는 이제 세존께 귀의하옵고, 법과 비구 승가에 또한 귀의합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세존의 곁에 출가하고자 합니다. 저는 구족계를 받고자 합니다.”
“수밧다여, 전에 외도였던 자가 이 법과 율에서 출가하기를 원하고 구족계 받기를 원하면 그는 넉 달의 견습기간을 거쳐야 한다. 넉 달이 지나고 비구들이 동의하면 출가하게 하여 비구가 되는 구족계를 받게 한다. 물론 여기에 개인마다 차이가 있음을 나는 인정한다.”
5.29. “세존이시여, 만일 전에 외도였던 자가 이 법과 율에서 출가하기를 원하고 구족계 받기를 원하면 그는 넉 달의 견습기간을 거쳐야 하고, 넉 달이 지나고 비구들이 동의하면 출가하게 하여 비구가 되는 구족계를 받게 하신다면, 저는 4년의 견습기간을 거치겠습니다. 4년이 지나고 비구들이 동의하면 출가하게 하시어 비구가 되는 구족계를 받게 해 주소서.”
그러자 세존께서는 아난다를 불러서 말씀하셨다.
“아난다여, 참으로 저러하니 수밧다 유행승을 출가하게 하여라.”
“그렇게 하겠습니다, 세존이시여.”라고 아난다 존자는 세존께 대답하였다.
Atha kho bhagavā āyasmantaṃ ānandaṃ āmantesi: “tenahānanda, subhaddaṃ pabbājehī”ti. “Evaṃ, bhante”ti kho āyasmā ānando bhagavato paccassosi.
5.30. 그러자 수밧다 유행승은 아난다 존자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도반 아난다여, 그대들은 스승의 면전에서 그분의 제자로 수계를 받았으니 그대들은 참으로 이익을 얻었습니다. 그대들은 참으로 큰 이익을 얻었습니다.”
수밧다 유행승은 세존의 곁으로 출가하였고 구족계를 받았다.
Atha kho subhaddo paribbājako āyasmantaṃ ānandaṃ etadavoca: “lābhā vo, āvuso ānanda; suladdhaṃ vo, āvuso ānanda, ye ettha satthu sammukhā antevāsikābhisekena abhisittā”ti. Alattha kho subhaddo paribbājako bhagavato santike pabbajjaṃ, alattha upasampadaṃ.
구족계를 받은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수밧다 존자는 혼자 은둔하여 방일하지 않고 열심히, 스스로 독려하며 지냈다. 그는 오래지 않아 좋은 가문의 아들들이 집에서 나와 출가하여 성취하고자 하는 그 위없는 청정범행의 완성을 지금여기에서 스스로 최상의 지혜로 실현하고 구족하여 머물렀다.
Acirūpasampanno kho panāyasmā subhaddo eko vūpakaṭṭho appamatto ātāpī pahitatto viharanto nacirasseva—yassatthāya kulaputtā sammadeva agārasmā anagāriyaṃ pabbajanti—tadanuttaraṃ brahmacariyapariyosānaṃ diṭṭheva dhamme sayaṃ abhiññā sacchikatvā upasampajja vihāsi.
‘태어남은 다했다. 청정범행은 성취되었다. 할 일을 다 해 마쳤다. 다시는 어떤 존재로도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라고 최상의 지혜로 알았다. 수밧다 존자는 아라한들 중의 한 분이 되었다. 그는 세존의 마지막 직계제자였다.
“Khīṇā jāti, vusitaṃ brahmacariyaṃ, kataṃ karaṇīyaṃ, nāparaṃ itthattāyā”ti abbhaññāsi. Aññataro kho panāyasmā subhaddo arahataṃ ahosi. So bhagavato pacchimo sakkhisāvako ahosīti.
여래의 마지막 유훈 35. Tathāgatapacchimavācā
6.1. 그때 세존께서는 아난다 존자를 불러서 말씀하셨다. “아난다여, 그런데 아마 그대들에게 ‘스승의 가르침은 이제 끝나 버렸다. 이제 스승은 계시지 않는다.’라는 이런 생각이 들지도 모른다. 아난다여, 그러나 그렇게 봐서는 안 된다. 아난다여, 내가 가고난 후에는 내가 그대들에게 가르치고 천명한 법과 율이 그대들의 스승이 될 것이다.”이렇게 봐야한다.
atha kho bhagavā āyasmantaṃ ānandaṃ āmantesi — “siyā kho panānanda, tumhākaṃ evamassa — ‘atītasatthukaṃ pāvacanaṃ, natthi no satthā’ti. na kho panetaṃ, ānanda, evaṃ daṭṭhabbaṃ. yo vo, ānanda, mayā dhammo ca vinayo ca desito paññatto, so vo mamaccayena satthā.
6.2. “아난다여, 그리고 지금 비구들은 서로를 모두 도반(āvuso)이라는 말로 부르고 있다. 그러나 내가 가고난 후에는 그대들은 이렇게 불러서는 안 된다. 아난다여, 구참(久参) 비구는 신참 비구를 이름이나 성이나 도반이라는 말로 불러야 한다. 신참 비구는 구참 비구를 존자(bhante)라거나 장로(āyasmā)라고 불러야 한다.”
Yathā kho panānanda, etarahi bhikkhū aññamaññaṃ āvusovādena samudācaranti, na kho mamaccayena evaṃ samudācaritabbaṃ. Theratarena, ānanda, bhikkhunā navakataro bhikkhu nāmena vā gottena vā āvusovādena vā samudācaritabbo.Navakatarena bhikkhunā therataro bhikkhu ‘bhante’ti vā ‘āyasmā’ti vā samudācaritabbo.
6.3. “아난다여, 승가가 원한다면 내가 가고난 후에는 사소한[雑砕] 학습계목들은 폐지해도 좋다.”
Ākaṅkhamāno, ānanda, saṃgho mamaccayena khuddānukhuddakāni sikkhāpadāni samūhanatu.
6.4. “아난다여, 내가 가고난 후에 찬나 비구에게는 최고의 처벌을 주어야 한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어떤 것이 최고의 처벌입니까?”
“아난다여, 찬나 비구가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말하더라도 비구들은 결코 그에게 말을 해서도 안 되고, 훈계를 해서도 안 되고, 가르쳐서도 안 된다.”
Channassa, ānanda, bhikkhuno mamaccayena brahmadaṇḍo dātabbo”ti. “Katamo pana, bhante, brahmadaṇḍo”ti? “Channo, ānanda, bhikkhu yaṃ iccheyya, taṃ vadeyya. So bhikkhūhi neva vattabbo, na ovaditabbo, na anusāsitabbo”ti.
6.5. 그리고 나서 세존께서는 비구들을 불러서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어느 한 비구라도 부처나 법이나 승가나 도나 도닦음에 대해서 의심이 있거나 혼란이 있으면 지금 물어라. 비구들이여, 그대들은 ‘우리의 스승은 면전에 계셨다. 그러나 우리는 세존의 면전에서 제대로 여쭈어 보지 못했다.’라고 나중에 자책하는 자가 되지 말라.” 이렇게 말씀하셨지만 비구들은 침묵하고 있었다.Atha kho bhagavā bhikkhū āmantesi: “siyā kho pana, bhikkhave, ekabhikkhussāpi kaṅkhā vā vimati vā buddhe vā dhamme vā saṅghe vā magge vā paṭipadāya vā, pucchatha, bhikkhave, mā pacchā vippaṭisārino ahuvattha: ‘sammukhībhūto no satthā ahosi, na mayaṃ sakkhimhā bhagavantaṃ sammukhā paṭipucchitun’”ti. Evaṃ vutte, te bhikkhū tuṇhī ahesuṃ.
두 번째로 … 세 번째로 세존께서는 비구들을 불러서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어느 한 비구라도 부처나 법이나 승가나 도나 도닦음에 대해서 의심이 있거나 혼란이 있으면 지금 물어라. 비구들이여, 그대들은 ‘우리의 스승은 면전에 계셨다. 그러나 우리는 세존의 면전에서 제대로 여쭈어 보지 못했다.’라고 나중에 자책하는 자가 되지 말라.” 이렇게 말씀하셨지만 비구들은 [여전히] 침묵하고 있었다.
6.6. 그러자 아난다 존자가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참으로 경이롭습니다. 세존이시여, 참으로 놀랍습니다. 세존이시여, 이 비구 승가에는 부처님이나 법이나 승가나 도나 도닦음에 대해서 의심이 있거나 혼란이 있는 비구는 단 한 명도 없다고 제게는 청정한 믿음이 있습니다.”
“아난다여, 그대는 청정한 믿음으로 말을 하는구나. 아난다여, 참으로 여기에 대해서 여래에게는 ‘이 비구 승가에는 부처님이나 법이나 승가나 도나 도닦음에 대해서 의심이 있거나 혼란이 있는 비구는 단 한 명도 없다.’는 지혜가 있느니라. 아난다여, 이들 500명의 비구들 가운데 최하인 비구가 예류자이니 그는 [악취에] 떨어지지 않는 법을 가지고 [해탈이] 확실하며 정등각으로 나아가는 자이다.”
6.7. 그리고 나서 세존께서는 비구들을 불러서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참으로 이제 그대들에게 당부하노니, 형성된 것들은 소멸하기 마련인 법이다. 방일하지 말고 [해야 할 바를 모두] 성취하라!”
이것이 여래의 마지막 유훈이다.
atha kho bhagavā bhikkhū āmantesi — “handa dāni, bhikkhave, āmantayāmi vo, vayadhammā saṅkhārā appamādena sampādethā”ti. ayaṃ tathāgatassa pacchimā vācā.
논점
1.소위 육사외도(뿌라나 깟사빠, 막칼리 고살라, 아지따 께사깜발라, 빠꾸다 깟짜야나, 산자야 벨랏티뿟따, 니간타 나따뿟따)라고 하는 분들과 부처님은 살아생전에 왜 만나지 못했나?
---글쎄
2.부처님의 출가생활이 50년인가 51년인가?
我年二十九,出家求善道,須跋我成佛,今已五十。
When I was 29, I became homeless to search for the way of goodness; Subhadda, then I became the Buddha, until today it has been 50 years. *paññāsā fifty (50) [pañca–dasa–ā]
---50(paññāsā)이라는 원문이 있고 다른 분들은 모두 50년이라고 번역하였는데 왜 각묵스님만 51세로 번역나 의아하여 논점을 잡아 보았음. 아마 각묵스님은 29+50= 79살이 나오니까 출가생활이 51년이라고 번역한거 같음.
3. “수밧다여, 어떤 법과 율에서든 여덟 가지 성스러운 도[八支聖道]가 없으면 거기에는 사문도 없다. 거기에는 두 번째 사문도 없다. 거기에는 세 번째 사문도 없다. 거기에는 네 번째 사문도 없다." 이 말의 의미는 ?
---불교의 특수성,탁월성,우수성을 말하는 것으로 다른 종교와 같지 않음.천주교처럼 우리밖에도 구원이있다고 말하지 못하며 종교평화선언이 이러한 근거로 발표되지 못함.
4. "아난다여, 내가 가고난 후에는 내가 그대들에게 가르치고 천명한 법(dhammo)과 율(vinayo)이 그대들의 스승이 될 것이다.” 어떻게 법과 율에 의지하는가?
---승가는 대중의 결의에 의해 제1차~제6차 결집이 법과율에 의지하려는 노력이라고 봄.
맛지마니까야 사마가마경(M104)-결집을 하여 다수결로 결정하라.고 말씀하심.
5. “비구들이여, 어느 한 비구라도 부처나 '법'이나 '승가'나 '도'나 '도닦음'에 대해서 의심이 있거나 혼란이 있으면 지금 물어라." 이 문장의 의미를 이해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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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아난다여, 승가가 원한다면 내가 가고난 후에는 사소한[雑砕] 학습계목들은 폐지해도 좋다.”사소한 계율이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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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찬나비구에게 내린 최고의 벌의 의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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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부처님 유훈의 정리해보자.
---여러가지 세밀한 붓다의 마음씀이 보임, 몇천년을 내다보는 혜안도 보임.
열반경 2023.8.17. 강독정리
34. 수밧다 유행승의 일화(5.23 - 5.30)
개요: 부처님의 반열반이 가까웠을 당시 꾸시나라에 수밧다라는 유행승(遊行僧)이 살고 있었다. 그는 여래(아라한, 정등각)는 참으로 드믈게 세상에 오시는데 오늘 밤 삼경에 부처님이 반열반하신다는 소식을 듣고 열반에 드시기 전에 친견하여 법을 듣겠다고 결심한다. 그리하여 수밧다는 살라 숲에 찾아가 아난다에게 부처님을 뵙게 해달라고 부탁하였다. 그러나 아난다는 부처님이 피로하시다 하여 3차례나 연이어 거절하였는데 (멀리서) 이를 듣고 계셨던 부처님이 아난다에게 허락하라고 이르셔서 수밧다는 어렵게 부처님을 뵙게 되었다. 이 자리에서 수밧다는 6사외도(六師外道)의 수장인 뿌라나 깟사빠, 막칼리 고살라, 아지따 께사깜발라, 빠꾸다 깟짜야나, 산자야 벨랏티뿟따, 니간타 나따뿟타를 거론하며 저 들이 무리를 지어 교단을 형성, 나름대로 교리를 펴고 있는데 과연 그 들의 주장을 믿을 수 있는가라고 물었다. 부처님께서는 여덟가지 성스러운 도(八支聖道)가 없으면 그 것은 믿고 의지할만한 법과 율이 아니다라고 단언하시면서 여래는 29세에 출가하여 51년 동안 바른 법을 펴왔는데 다른 교설들에게는 사문이 텅 비어 있고 오직 부처님 가르침 속에서만 사문이 존재하고 아라한도 거기에서 나온다고 알려주셨다. 이에 확실한 방향을 잡은 수밧다는 그 자리에서 부처님(과 법, 상가)에 귀의할 것을 청하였고 이의 허락을 받아 부처님의 마지막 직계제자가 되는 영광을 얻었다. (수밧다는 나중에 아라한이 되었음.)
35. 여래의 마지막 유훈(6.1 - 6.7)
(1) 부처님은 아난다를 불러 부처님이 가신 후에는 스승이 사라졌다고 생각하지 말고 그 동안 가르치고 천명한 「법」과 「율」을 스승으로 삼아 정진하라고 당부하셨고
(2) 지금은 제자들이 서로 도반(avuso)라고 호칭하나 부처님 가신 후에는 구참 비구는 신참 비구를 이름, 성 혹은 도반으로 부르고, 신참은 구참을 존자나 장로로 부르라고 정하여 주셨다.
(3) 그리고 부처님이 가신 후 승가가 원한다면 사소한 학습계목(戒目)은 폐지해도 좋고
(4) (옛날 부처님의 마부였다가 출가한 바 있는) 찬나 비구에게는 최고의 처벌을 주는데 구체적으로 누구도 말을 걸지 말고 훈계도 하지 말며 가르치려 들지 말라고 이르셨다.
(5) 그리고 마지막으로 부처나 법, 승가, 도, 도닦음에 대해 의심이나 혼란이 있으면 지금 (아직 여기 계실 때) 물으라고 비구들에게 기회를 주셨으나 (3차례나) 모든 비구들은 침묵을 지켰고 종내 아난다는 의심이나 혼란이 있는 비구는 한 명도 없음을 보고드렸다. 부처님께서는 500명의 비구들 가운데 최하위가 예류자이니 (이미 많은 수행으로 상당한 도과에 도달한 자 들이니) 모두 악취(惡趣)에 떨어지지 않는 법을 호지하여 확실한 해탈과 정등각으로 나아가리라고 말씀하셨다.
*** 마지막으로 “비구들이여, 참으로 그대들에게 당부하노니, 형성된 것들은 모두 소멸하기 마련인 것이다. 방일하지 말고 (해야 할 바를 모두) 성취하라”고 말씀하셨으니 이 것이 부처님의 마지막 유훈이다.
논점-1: 소위 육사외도라고 하는 분들과 부처님은 살아 생전에 왜 만나지 못하였나?
가) 뿌라나 깟사빠(선과 악은 인간이 임의로 정한 것으로 절대기준이랄 게 없고 따라서 그에 따른 업보도 없다는 무도덕론자/무인무연론자), 막칼리 고살라(인간은 그저 운명적 상황에 본능적으로 대응할 뿐이며 고로 자유의지란 없다라는 운명론적 자연론자), 아지따 께사깜발라(영혼은 없고 육신은 죽으면 해체될 뿐이며 내세도 없어 그 과보도 있을 수 없다라는 유물론적 허무주의자), 빠꾸다 깟짜야나(쾌락주의자), 산자야 벨랏티뿟따(회의론자/불가지론자), 니간타 나따뿟따(고행,금욕주의자 - 후일 자이나교를 창시하여 ‘마하비라’로 불리움)는 교설이 부처님의 정법과 달라 외도라 칭하는 마당에 부처님이 그 들을 만날 일이 없었을 것 같다.
나) 부처님의 구법과정에서 고행주의자 ‘박가와’, 선정(禪定)주의자 ‘알라라깔라마’ 및 비상비비상처정까지 도달한 ‘웃다까라마뿟따’ 등 각 종파 지도자들을 만났으나 만족하지 못하여 떠나는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따라서 혁신적이며 비법적인 6사외도는 아예 만나려 시도조차 하지 않았을 개연성이 크다.
논점-2: 부처님의 출가생활이 50년인가? 51년인가?
가) 29세에 출가하시어 80세에 열반하였으니 출가당년인 29세를 제외하면 햇수로 51년이 되나 일본 번역은 50년으로 되어 있다. 아마 일본인들은 순수한 출가생활을 기준으로 (만으로) 50년이라 했는지도 모른다.
논점-3: “수밧다여, 어떤 법과 율에서든 여덟가지 성스러운 도(八支聖道)가 없으면 거기에는 사문도 없다. 거기에는 두 번째 사문도 없다. 거기에는 세 번째 사문도 없다. 거기에는 네 번째 사문도 없다.” 이 말의 의미는?
가) 부처님이 명상에서 사마따를 가르치더라도 해탈을 위한 명상으로 위빠사나를 추천하셨듯 모든 법과 율도 궁극적인 실천방안으로 팔정도로 귀결되어야 비로소 해탈을 얻을 수 있다라는 가르침인 것 같다.
나) 타 종교 대비 불교의 수월성을 가리키는 대목이다. 방편이 다를 뿐 어느 종교라도 진리에 도달할 수 있다라고도 할 수 있지만 (카톨릭은 이 점을 인정) 불교는 특히 그 교리의 정교함, 과학성, 포용성으로 시대를 초월한 가르침이라 할 수 있다. 부처님은 그 것을 수밧다에게 말씀하신 거다.
논점-4: "아난다여, 내가 가고난 후에는 내가 그대들에게 가르치고 천명한 법(dhammo)과 율(vinayo)이 그대들의 스승이 될 것이다.“ 이 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가) 부처님 가신 후 발생한 대승불교파에서는 초기불교처럼 법과 율을 고집할 게 아니라 법성(法性)의 유무로 기준을 삼아야 한다는 주장을 하였는데 이러한 변용된 기준은 부처님의 의도와 맞지 않다고 보아야 한다. 그 들은 ‘대승열반경’에서 법의 판단기준으로 4가지를 거론하였는데 (4依止); 」①依義不依語 ②依了義不依不了義③依法不依人④依智不依識 --뜻에 의지하고 말에 의지하지 말라, 바른 뜻을 담은 경전에 의지하고 바르지않은 뜻을 담은 경전에 의지하지 말라, 법성에 의지하고 사람에 의지하지 말라, 지혜에 의지하고 인식에 의지하지 말라--라고 기술하여 놓았는 바 뜻, 법성, 지혜 등은 추상적 영역으로 개인의 판단에 의해 좌우될 가능성이 높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거스를 위험성이 크다.
* 9부교(9部敎)란 부처님의 교설이 5부 니까야로 정리되기 전의 경(sutta), 응송(geyya), 수기(veyakarana), 게송(gatha), 감흥어(udana), 여시어(tivuttaka), 본생담(jataka), 미증유법(abutadhamma), 문답(vedalla)의 총 아홉가지인데 중국의 대승불교에서는 이를 부정하고 ‘대승방등12부경’이 바른 뜻을 가진 了義經이니 이 것을 의지해야 한다고 주장함.
나) 부처님 당시 문자화된 경전이 존재하지 않았는데 어떤 것을 전거로 법과 율이라고 주장할 것인가?
=> 승가대중이 모여 결의에 의해 이루어진 결집(제1차 - 제6차)이 법과 율에 의지하려는 노력이라고 볼 수 있다. 대중의 결정은 만장일치가 아닌 다수결에 의하였는데 이 것도 부처님의 말씀에 따른 것(맛지마 니까야 M104, 사마가마경)
=> 결집된 내용이 문자화되기 전에는 암송된 경이 지배적으로 적용되었는데 고대인도의 암송문화가 철저하여 꼭 문자화되지 않았다 하더라도 전거로 사용하는데 큰 지장은 없었을 듯.
논점-6: “아난다여, 승가가 원한다면 내가 가고 난 후에는 사소한 학습계목들은 폐지해도 좋다”에서 사소한 계율이란 무언인가?
가) 명문화된 것 외에는 사소하다고 볼 수 있음.
나) 구체적 식사요령, 내복 복장 규정, 탑/불상 조성 규정, 포살의 상세 등 분쟁/갈등 여지가 있는 규정은 합의 (다수결, not 전원합의)에 의해 변경 가능할 것이다.
다) 250가지 계율은 지켜져야 하지만 시대와 관습의 변화를 무시할 수만은 없다. 예) 태국에서는 스님이 담배를 피워도 된다 (육식은 물론), 비구가 운전시 옆좌석에 여성이 앉을 수 있나? 여성의 범위(모친, 형제 포함?) 등등
라) 중요한 것은 감각적 욕망에 종사하느냐 아니냐이다.
기타 논의사항:
가) 해안스님의 거리시위는 9월 01일(안거해제일) 회향 예정
나) 청주 야단법석, 8월 26일(토) 예정. 모금액 소진으로 향후방향 탐색.
다) 이태원참사1주기 추모를 겸한 비상시국회의는 각 종교의 기도일 상이로 공동으로 하지 않고 종교별 실시.
라) 강독회는 이후 2차례 남음 (8/24, 8/31). 고로 별도 주제토론은 생략함.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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