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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불자회

[종합] 대반열반경(D16 ) 2023년 3월 2일~8월 24일(총20회)

2023년 3월 2일 목요일 오후 9시에 <온라인불자회> 공부모임을 시작합니다. 다 같이 합장하고 큰 소리로 합창합니다.

 

나모 따사 바가와또 아라하또 삼마 삼붓다사(Namo tassa bhagavato arahato sammāsambuddhassa)
나모 따사 바가와또 아라하또 삼마 삼붓다사(Namo tassa bhagavato arahato sammāsambuddhassa)
나모 따사 바가와또 아라하또 삼마 삼붓다사(Namo tassa bhagavato arahato sammāsambuddhassa)

 

붓당 사라남 가차미 (Buddham Saranam Gacchami)  부처님께 귀의합니다.()

담망 사라남 가차미 (Dhammam Saranam Gacchami) 가르침에 귀의합니다.()

상강 사라남 가차미 (Sangham Saranam Gacchami)  승가에 귀의합니다.()

 

삽베삿따 바완뚜 수키땃따(sabbe sattā bhavantu sukhitattā)

 

 

대반열반경(大般涅槃経)  부처님의 마지막 발자취들 Mahāparinibbāna Sutta( D16 ) 

 

 

서언

 

1.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때 세존께서는 라자가하에서 독수리봉 산(영취산, gijjhakūṭe pabbate)에 머무셨다. 그 무렵에 마가다의 왕 아자따삿뚜 웨데히뿟따(ajātasattu vedehiputto)는 왓지를 공격하려 하고 있었다. 그는 이와 같이 말했다. “왓지가 이처럼 크게 번창하고 이처럼 큰 위력을 가졌지만 나는 왓지를 멸망시킬 것이고, 왓지를 파멸시킬 것이고, 왓지가 참극을 당하게 하고야 말 것이다.”

Evaṃ me sutaṃ—​   ekaṃ samayaṃ bhagavā rājagahe viharati gijjhakūṭe pabbate. Tena kho pana samayena rājā māgadho ajātasattu vedehiputto vajjī abhiyātukāmo hoti. So evamāha: “ahaṃ hime vajjī evaṃmahiddhike evaṃma­hānu­bhāve ucchecchāmi  vajjī, vināsessāmi vajjī, anayabyasanaṃ āpādessāmī”ti.

 

 

1.2. 그리고 나서 마가다의 왕 아자따삿뚜 웨데히뿟따는 마가다의 대신인 왓사까라(vassakāra) 바라문(brāhmaṇa)을 불러서 말하였다. “이리 오시오, 바라문이여. 그대는 세존께 가시오. 가서는 세존이시여, 마가다의 왕 아자따삿뚜 웨데히뿟따는 세존의 발에 머리 조아려 절을 올립니다. 그리고 병이 없으시고 어려움도 없으시며 가볍고 힘 있고 편안하게 머무시는지 문안을 여쭙니다.’라고 내 이름으로 세존의 발에 머리 조아려 절을 올리고, 세존께서 병이 없으시고 어려움도 없으시며, 가볍고 힘 있고 편안하게 머무시는지 문안을 여쭈시오. 그리고 이렇게 말씀드리시오. ‘세존이시여, 마가다의 왕 아자따삿뚜 웨데히뿟따는 왓지를 공격하려 합니다. 그는 이와 같이 말했습니다. ‘왓지가 이처럼 크게 번창하고 이처럼 큰 위력을 가졌지만 나는 왓지를 멸망시킬 것이고, 왓지를 파멸시킬 것이고, 왓지가 참극을 당하게 하고야 말 것이다.’라고.’ 그래서 세존께서 그대에게 설명해 주시는 것을 잘 호지하여 나에게 보고하시오. 여래들께서는 거짓을 말하지 않으시기 때문이오.”

Atha kho rājā māgadho ajātasattu vedehiputto vassakāraṃ brāhmaṇaṃ maga­dha­mahā­mattaṃ āmantesi: “ehi tvaṃ, brāhmaṇa, yena bhagavā tenupasaṅkama; upasaṅkamitvā mama vacanena bhagavato pāde sirasā vandāhi, appābādhaṃ appātaṅkaṃ lahuṭṭhānaṃ balaṃ phāsuvihāraṃ puccha: ‘rājā, bhante, māgadho ajātasattu vedehiputto bhagavato pāde sirasā vandati, appābādhaṃ appātaṅkaṃ lahuṭṭhānaṃ balaṃ phāsuvihāraṃ pucchatī’ti. Evañca vadehi: ‘rājā, bhante, māgadho ajātasattu vedehiputto vajjī abhiyātukāmo. So evamāha: “ahaṃ hime vajjī evaṃmahiddhike evaṃma­hānu­bhāve ucchecchāmi vajjī, vināsessāmi vajjī, anayabyasanaṃ āpādessāmī”’ti. Yathā te bhagavā byākaroti, taṃ sādhukaṃ uggahetvā mama āroceyyāsi. Na hi tathāgatā vitathaṃ bhaṇantī”ti.

 

 

 

왓사까라 바라문  1. ­Vassakā­rab­rāhmaṇa

 

1.3. “그렇게 하겠습니다, 폐하.”라고 마가다의 대신인 왓사까라 바라문은 마가다의 왕 아자따삿뚜 웨데히뿟따에게 대답한 뒤 아주 멋진 마차를 준비하게 하고 아주 멋진 마차에 올라서 아주 멋진 마차들을 거느리고 라자가하를 나가서 독수리봉 산으로 들어갔다. 더 이상 마차로 갈 수 없는 곳에 이르자 마차에서 내린 뒤 걸어서 세존께로 다가갔다. 가서는 세존과 함께 환담을 나누었다. 유쾌하고 기억할 만한 이야기로 서로 담소를 하고서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아서 마가다의 대신 왓사까라 바라문은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고따마 존자시여, 마가다의 왕 아자따삿뚜 웨데히뿟따는 세존의 발에 머리 조아려 절을 올립니다. 그리고 병이 없으시고 어려움도 없으시며, 가볍고 힘 있고 편안하게 머무시는지 문안을 여쭙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마가다의 왕 아자따삿뚜 웨데히뿟따는 왓지를 공격하려 합니다. 그는 이와 같이 말했습니다. ‘왓지가 이처럼 크게 번창하고 이처럼 큰 위력을 가졌지만 나는 왓지를 멸망시킬 것이고, 왓지를 파멸시킬 것이고, 왓지가 참극을 당하게 하고야 말 것이다.’라고.”

“rājā, bho gotama, māgadho ajātasattu vedehiputto bhoto gotamassa pāde sirasā vandati, appābādhaṃ appātaṅkaṃ lahuṭṭhānaṃ balaṃ phāsuvihāraṃ pucchati. Rājā, bho gotama, māgadho ajātasattu vedehiputto vajjī abhiyātukāmo. So evamāha: ‘ahaṃ hime vajjī evaṃmahiddhike evaṃma­hānu­bhāve ucchecchāmi vajjī, vināsessāmi vajjī, anayabyasanaṃ āpādessāmī’”ti.

 

 

 

 

공화국(共和國)이 쇠퇴하지 않는 법 2. Rāja a­pari­hāni­ya­dhamma

 

1.4. “그때 아난다 존자가 세존의 뒤에서 세존께 부채질을 해드리고 있었다. 그러자 세존께서는 아난다 존자를 불러서 말씀하셨다.Tena kho pana samayena āyasmā ānando bhagavato piṭṭhito ṭhito hoti bhagavantaṃ bījayamāno. Atha kho bhagavā āyasmantaṃ ānandaṃ āmantesi:

 

 

 아난다여, 그대는 왓지들이 정기적으로(abhiṇhaṃ) 모이고, 자주(­bahulā) 모인다고 들었는가?”

세존이시여, 저는 왓지들이 정기적으로 모이고, 자주 모인다고 들었습니다.”

아난다여, 왓지들이 정기적으로 모이고, 자주 모이는 한, 왓지들은 번영할 것이고 쇠퇴(parihāni)란 기대할 수 없다.”

 “kinti te, ānanda, sutaṃ, ‘vajjī abhiṇhaṃ sannipātā sanni­pāta­bahulā’”ti? “Sutaṃ metaṃ, bhante: ‘vajjī abhiṇhaṃ sannipātā sanni­pāta­bahulā’”ti. “Yāvakīvañca, ānanda, vajjī abhiṇhaṃ sannipātā sanni­pāta­bahulā bhavissanti, vuddhiyeva, ānanda, vajjīnaṃ pāṭikaṅkhā, no parihāni. 

 

 

 아난다여, 그대는 왓지들이 화합하여(samaggā) 모이고, 화합하여 해산하고, 화합하여 왓지의 업무를 본다고 들었는가?”

세존이시여, 저는 왓지들이 화합하여 모이고, 화합하여 해산하고, 화합하여 왓지의 업무를 본다고 들었습니다.”

아난다여, 왓지들이 화합하여 모이고, 화합하여 해산하고, 화합하여 왓지의 업무를 보는 한, 왓지들은 번영할 것이고 쇠퇴란 기대할 수 없다.”

Kinti te, ānanda, sutaṃ, ‘vajjī samaggā sannipatanti, samaggā vuṭṭhahanti, samaggā vajji­karaṇī­yāni karontī’”ti? “Sutaṃ metaṃ, bhante: ‘vajjī samaggā sannipatanti, samaggā vuṭṭhahanti, samaggā vajji­karaṇī­yāni karontī’”ti.

“Yāvakīvañca, ānanda, vajjī samaggā sanni­patis­santi, samaggā vuṭṭhahissanti, samaggā vajji­karaṇī­yāni karissanti, vuddhiyeva, ānanda, vajjīnaṃ pāṭikaṅkhā, no parihāni. (2)

 

 

 

 아난다여, 그대는 왓지들이 공인하지 않은 것은 인정하지 않고, 공인한 것은 깨뜨리지 않으며(paññattaṃ na samucchindanti), 공인되어 내려온 오래된 왓지의 법들을 준수하고 있다고 들었는가?”

세존이시여, 저는 왓지들이 공인하지 않은 것은 인정하지 않고, 공인한 것은 깨뜨리지 않으며, 공인되어 내려온 오래된 왓지의 법들을 준수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아난다여, 왓지들이 공인하지 않은 것은 인정하지 않고, 공인한 것은 깨뜨리지 않으며, 공인되어 내려온 오래된 왓지의 법들을 준수하고 있는 한, 왓지들은 번영할 것이고 쇠퇴란 기대할 수 없다.”

Kinti te, ānanda, sutaṃ, ‘vajjī apaññattaṃ na paññapenti, paññattaṃ na samucchindanti, yathāpaññatte porāṇe vajjidhamme samādāya vattantī’”ti? “Sutaṃ metaṃ, bhante: ‘vajjī apaññattaṃ na paññapenti, paññattaṃ na samucchindanti, yathāpaññatte porāṇe vajjidhamme samādāya vattantī’”ti. “Yāvakīvañca, ānanda, vajjī apaññattaṃ na paññapessanti, paññattaṃ na samucchin­dis­santi, yathāpaññatte porāṇe vajjidhamme samādāya vattissanti, vuddhiyeva, ānanda, vajjīnaṃ pāṭikaṅkhā, no parihāni. (3)

 

 

 아난다여, 그대는 왓지들이 왓지의 연장자들(vajjimahallakā)을 존경하고 존중하고 숭상하고 예배하며, 그들의 말을 경청해야 한다고 여긴다고 들었는가?”

세존이시여, 저는 왓지들이 왓지의 연장자들을 존경하고 존중하고 숭상하고 예배하며, 그들의 말을 경청해야 한다고 여긴다고 들었습니다.”

아난다여, 왓지들이 왓지의 연장자들을 존경하고 존중하고 숭상하고 예배하며, 그들의 말을 경청해야 한다고 여기는 한, 왓지들은 번영할 것이고 쇠퇴란 기대할 수 없다.”

Kinti te, ānanda, sutaṃ, ‘vajjī ye te vajjīnaṃ vajjimahallakā, te sakkaronti garuṃ karonti mānenti pūjenti, tesañca sotabbaṃ maññantī’”ti? “Sutaṃ metaṃ, bhante: ‘vajjī ye te vajjīnaṃ vajjimahallakā, te sakkaronti garuṃ karonti mānenti pūjenti, tesañca sotabbaṃ maññantī’”ti. “Yāvakīvañca, ānanda, vajjī ye te vajjīnaṃ vajjimahallakā, te sakkarissanti garuṃ karissanti mānessanti pūjessanti, tesañca sotabbaṃ maññissanti, vuddhiyeva, ānanda, vajjīnaṃ pāṭikaṅkhā, no parihāni. (4)

 

 

 아난다여, 그대는 왓지들이 [남의] 집안의 아내(kulitthiyo)와 [남의] 집안의 딸들을 강제로 끌고 와서 [자기와 함께] 살게 하지 않는다고 들었는가?”

세존이시여, 저는 왓지들이 [남의] 집안의 아내와 [남의] 집안의 딸들을 강제로 끌고 와서 [자기와 함께] 살게 하지 않는다고 들었습니다.”

아난다여, 왓지들이 [남의] 집안의 아내와 [남의] 집안의 딸들을 강제로 끌고 와서 [자기와 함께] 살게 하지 않는 한, 왓지들은 번영할 것이고 쇠퇴란 기대할 수 없다.”

Kinti te, ānanda, sutaṃ, ‘vajjī yā tā kulitthiyo kulakumāriyo, tā na okkassa pasayha vāsentī’”ti? “Sutaṃ metaṃ, bhante: ‘vajjī yā tā kulitthiyo kulakumāriyo tā na okkassa pasayha vāsentī’”ti. “Yāvakīvañca, ānanda, vajjī yā tā kulitthiyo kulakumāriyo, tā na okkassa pasayha vāsessanti, vuddhiyeva, ānanda, vajjīnaṃ pāṭikaṅkhā, no parihāni. (5)

 

 

 아난다여, 그대는 왓지들이 안에 있거나 밖에 있는 왓지의 탑묘(vajjicetiyāni)들을 존경하고 존중하고 숭상하고 예배하며, [탑묘에] 전에 이미 바쳤고 전에 이미 시행했던 법다운 봉납(baliṃ)을 철회하지 않는다고 들었는가?”

세존이시여, 저는 왓지들이 안에 있거나 밖에 있는 왓지의 탑묘들을 존경하고 존중하고 숭상하고 예배하며, [탑묘에] 전에 이미 바쳤고 전에 이미 시행했던 법다운 봉납을 철회하지 않는다고 들었습니다.”

아난다여, 왓지들이 안에 있거나 밖에 있는 왓지의 탑묘들을 존경하고 존중하고 숭상하고 예배하며, [탑묘에] 전에 이미 바쳤고 전에 이미 시행했던 법다운 봉납(dhammikaṃ baliṃ)을 철회하지 않는 한, 왓지들은 번영할 것이고 쇠퇴란 기대할 수 없다.”

Kinti te, ānanda, sutaṃ, ‘vajjī yāni tāni vajjīnaṃ vajjicetiyāni abbhantarāni ceva bāhirāni ca, tāni sakkaronti garuṃ karonti mānenti pūjenti, tesañca dinnapubbaṃ katapubbaṃ dhammikaṃ baliṃ no parihāpentī’”ti? “Sutaṃ metaṃ, bhante: ‘vajjī yāni tāni vajjīnaṃ vajjicetiyāni abbhantarāni ceva bāhirāni ca, tāni sakkaronti garuṃ karonti mānenti pūjenti tesañca dinnapubbaṃ katapubbaṃ dhammikaṃ baliṃ no parihāpentī’”ti. “Yāvakīvañca, ānanda, vajjī yāni tāni vajjīnaṃ vajjicetiyāni abbhantarāni ceva bāhirāni ca, tāni sakkarissanti garuṃ karissanti mānessanti pūjessanti, tesañca dinnapubbaṃ katapubbaṃ dhammikaṃ baliṃ no parihāpessanti, vuddhiyeva, ānanda, vajjīnaṃ pāṭikaṅkhā, no parihāni. (6)

 

 

 아난다여, 그대는 왓지들이 아라한들을 법답게 살피고 감싸고 보호해서 아직 오지 않은 아라한들은 그들의 영토에 오게 하며, 이미 그들의 영토에 온 아라한들은 편안하게 살도록 한다고 들었는가?”

세존이시여, 저는 왓지들이 아라한들을 법답게 살피고 감싸고 보호해서 아직 오지 않은 아라한들은 그들의 영토에 오게 하며, 이미 그들의 영토에 온 아라한들은 편안하게 살도록 한다고 들었습니다.”

아난다여, 왓지들이 아라한들을 법답게 살피고 감싸고 보호해서 아직 오지 않은 아라한들은 그들의 영토에 오게 하며, 이미 그들의 영토에 온 아라한들이 편안하게 살도록 하는 한, 왓지들은 번영할 것이고 쇠퇴란 기대할 수 없다.”

Kinti te, ānanda, sutaṃ, ‘vajjīnaṃ arahantesu dhammikā ­rak­khā­varaṇa­gutti susaṃvihitā, kinti anāgatā ca arahanto vijitaṃ āgaccheyyuṃ, āgatā ca arahanto vijite phāsu vihareyyun’”ti? “Sutaṃ metaṃ, bhante ‘vajjīnaṃ arahantesu dhammikā ­rak­khā­varaṇa­gutti susaṃvihitā kinti anāgatā ca arahanto vijitaṃ āgaccheyyuṃ, āgatā ca arahanto vijite phāsu vihareyyun’”ti. “Yāvakīvañca, ānanda, vajjīnaṃ arahantesu dhammikā ­rak­khā­varaṇa­gutti susaṃvihitā bhavissati, kinti anāgatā ca arahanto vijitaṃ āgaccheyyuṃ, āgatā ca arahanto vijite phāsu vihareyyunti. Vuddhiyeva, ānanda, vajjīnaṃ pāṭikaṅkhā, no parihānī”ti. (7)

 

 

1.5. 그러자 세존께서는 마가다의 대신 왓사까라 바라문을 불러서 말씀하셨다. “바라문이여, 한때 나는 웨살리에서 사란다다 탑묘(sārandade cetiye)에 머물렀다. 나는 거기서 왓지들에게 이러한 일곱 가지 쇠퇴하지 않는 법들을 가르쳤다. 바라문이여, 이 일곱 가지 쇠퇴하지 않는 법들이 왓지들에게 정착이 되고, 이 일곱 가지 쇠퇴하지 않는 법들을 왓지들이 준수한다면, 왓지들은 번영할 것이고 쇠퇴란 기대할 수 없다.”Atha kho bhagavā vassakāraṃ brāhmaṇaṃ maga­dha­mahā­mattaṃ āmantesi: “ekamidāhaṃ, brāhmaṇa, samayaṃ vesāliyaṃ viharāmi sārandade cetiye. Tatrāhaṃ vajjīnaṃ ime satta aparihāniye dhamme desesiṃ. Yāvakīvañca, brāhmaṇa, ime satta aparihāniyā dhammā vajjīsu ṭhassanti, imesu ca sattasu aparihāniyesu dhammesu vajjī sandississanti, vuddhiyeva, brāhmaṇa, vajjīnaṃ pāṭikaṅkhā, no parihānī”ti.

 

 

이렇게 말씀하시자 마가다의 대신 왓사까라 바라문은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고따마 존자시여, 각각의 쇠퇴하지 않는 법 하나만으로도 왓지들은 번영할 것이고 쇠퇴란 기대할 수 없을 것인데, 일곱 가지 쇠퇴하지 않는 법들 전체는 말해 무엇 하겠습니까?

Evaṃ vutte, vassakāro brāhmaṇo maga­dha­mahā­matto bhagavantaṃ etadavoca: “ekamekenapi, bho gotama, aparihāniyena dhammena samannāgatānaṃ vajjīnaṃ vuddhiyeva pāṭikaṅkhā, no parihāni. Ko pana vādo sattahi aparihāniyehi dhammehi.

 

 

고따마 존자시여, 마가다의 왕 아자따삿뚜 웨데히뿟따는 전쟁으로는 왓지들을 정복할 수 없겠습니다. 그 대신에 [왓지들의] 기만과 상호불신을 획책해야겠습니다(without deception, without hatred.). 고따마 존자시여, 이제 저는 그만 물러가겠습니다. 저는 바쁘고 해야 할 일이 많습니다.” Akaraṇīyāva, bho gotama, vajjī raññā māgadhena ajātasattunā vedehiputtena yadidaṃ yuddhassa, aññatra upalāpanāya aññatra mithubhedā. Handa ca dāni mayaṃ, bho gotama, gacchāma, bahukiccā mayaṃ bahukaraṇīyā”ti.

 

 

바라문이여, 지금이 적당한 시간이라면 그렇게 하라.”

그러자 마가다의 대신 왓사까라 바라문은 세존의 말씀을 기뻐하고 감사드린 뒤 자리에서 일어나 물러갔다.

 “Yassadāni tvaṃ, brāhmaṇa, kālaṃ maññasī”ti. Atha kho vassakāro brāhmaṇo maga­dha­mahā­matto bhagavato bhāsitaṃ abhinanditvā anumoditvā uṭṭhāyāsanā pakkāmi.

 

 

 

* 대반열반경이 설해진 시기와 배경 

 

유행경(遊行經)으로 한역된 마하빠리닙바나 숫따(Mahaparinibbana Sutta) 는  5부 니까야 가운데 유일하게 부처님의 행적을 연대기적으로 기술하고 있다. 라자가하에서 출발하여 꾸시나가라에 도착하여 반열반에  드신뒤 화장하고 그 진신사리를 수습하여 수투파를 만드는 것까지 기술하고 있다. 마가다왕이 공격하려는 왓지국(Vajji, 아래 지도에는 Vrijji로 표시되어있음)의 수도는 웨살리이다. 왓지국은 릿차위(Licchavī)족과 위데하(Videhā)족등 여러 민족의 연합이며 공화국(共和國)이다. 인류역사에 있어서 가장 오래된 공화국(共和國)이었기에 지금도 민주주의를 존중하는 인도 국회에서는 회기가 시작할때 이곳 호수의 물을 떠가서 회기를 시작한다. 왓지족의 공화정은 민주적인 승가공동체(4인,5인,10인,20인, 20인이상 승가)의 모델이 되었다.

 

부처님이 마지막여행을 시작할 때는 이미 80세로서 비극적인 일들이 겪었다. 부처님나이 80세때 빠세나디왕이 총사령관 디가까라야나를 데리고 메다딸룸빠에 계시는 붓다를 찾아 뵙고 담마쩨띠야 경(M89)을 듣고 있을 때,위두다바와 디가까라야나는 왕위를 찬탈했다. 빠세나디왕이 80세에 부처님을 친견한 후  빠세나디왕이 왕위를 위두다바에게 빼앗기고 아자따삿투(당시23세)에게 도움을 청하려다 죽었다. 부처님은 위두다바가 사끼야족을 멸망시키려는 것을 알고 길목에 나가 3번 말렸으나 끝내 사까야족은 처참하게 멸망하였다. 위두다바는 사끼야족을 죽이고 돌아와 아찌라와띠 강변에서 자다가 홍수로 휩쓸려 죽었다. 사리뿟따와 목갈라나가 부처님보다 6개월전에 열반에 들었다.

 

그러므로 부처님의 마지막 여행은 쓸쓸하였을 것이다. 마가다의 왕 아자따삿뚜 웨데히뿟따(ajātasattu vedehiputto)도 부처님이 72세가 되던해에 데와닷따의 꾀임에 빠져서 빔비사라왕을 감옥에 가두어 죽게하고 왕이된 자이다. 사문과경에는 아잣타삿투가 부처님을 방문하여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러한 흔적으로 보면 아잣타삿투는 부처님께 귀의하여 불자가 되었던 듯하다. 그런 왕이 부처님에게 왓지족을 침략하려고 하는데 자문을 구했다는 것은 부처님을 자신의 편으로 생각하고 있었던 듯하다.  그는 부처님의 사리를 가져다가 사리탑을 세웠을 뿐만이 아니라 제1결집을 하려는 승가를 외호하여 500결집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되게 하였다. 

 

독수리봉 산(gijjhakūṭe pabbate)은 우리에게 영축산,영취산으로 알려졌고 대승불교에서는 법화경의 설법지로 알려졌다. 데와닷따가 부처님을 죽이려고 돌을 굴린 곳이고 부처님과 제자들이 사용하던 동굴이 여러개 남아있다. 빔비사라왕이 싯닷타를 만나기 위해 올랐던 곳이며, 수많은 경전들이 설해진 곳이다. 율장대품에서 35살 부처님의 성도후 몇년동안의 활동을 공부했다면 이번에는 80세 부처님이 당신의 마지막을 어떻게 보내셨는지를 공부하게된다. 열반경은 특이하게도 1번  왓사까라 바라문(­Vassakā­ra b­rāhmaṇa)부터 40번 사리탑에 예배(Dhātu thūpa pūjā)까지 소주제가 붙어있다.이것만 보더라도 열반경은 40개 이상의 경을 묶어놓은 것이라는 것을 알수 있다.

 

 

 

2023년 3월 2일 열반경 토론공부 첫회에 18분이 참여 하였습니다. 처음으로 참여하신 분들도 여럿 있었습니다.

활발한 토론은 아니었습니다만 그런대로 1시간 40분정도 공부하였습니다.  

아래는 제가 논점들을 정리한 내용입니다. 

 

논점: 

 

1.  아자따삿투는 붓다를 반떼(bhante)라고 호칭하는데 왓사까라는 보(친구) 고따마(bho gotama)라고 부르고 있는 이유?

......왓사까라는 부처님을 "보(bho) 고따마(bho gotama)"라고 불렀다. 상대방을 부를때 '보(bho)'라고 부르는 것은 "친구,벗,자네,여보게"등으로 부르는 것이다.

아자따삿뚜왕이 대신인 왓사까라(vassakāra) 바라문을 부를때 '이리오시오. 그대여(Evaṃ, bho)'라고 부르고 있는 것에서 알수 있다.  열반경 중간에 릿차위들이 암바빨리 여인에게 부처님을 공양할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 bho(여보게들)라고 부르는 것에서도 알수 있다. 

 여보게들, 우리가 이 망고지기 여인에게 져버렸네.(jitamha vata bho ambakāya)

*일봉스님은 아자따삿투는 부처님 보다 나이가 많이 어리고 왓사까라대신은 부처님보다 나이가 많아서 그런 호칭을 했을 거란 의견을 주셨습니다. 

 

 

 

2. 승가에서 화합(Samagga)의 의미와 화합의 방법? 만장일치와의 차이는 ?

...화합,조화, 원칙,합법, 여법, 만장일치등의 뜻이 있고, 현전승가는 결계안에서 전원이 참석하여 회의를 하므로 만장일이나 다수결로 결정을 내릴 수 있다. 즉, 모든 갈마를 다수결로 결정할 수 있다.  

 

*Samagga:【形】團結的,同道的,一致的,和合的,結交的,和諧的。samaggakaraṇa【中】調解人,和事佬。      samaggatta【中】協定,團結的情況。samaggarata,samaggārāma【形】對和平的歡喜【反】asamsagga﹐

*samagga:a[saṃ-agga,BSksamagra] 和合せる,統一の-kamma 和合羯磨.-saṅgha 和合僧-parisā 和合衆.

*비구들이여, 조화로운 모임(samaggā parisā)이란 무엇인가? 여기에서 비구들은 하나가 되어 서로 감사하고, 논쟁하지 않고, 우유와 물처럼 섞이고, 친절한 눈으로 서로를 바라보며 머문다. 이것을 조화로운 모임(samaggā parisā)이라고 합니다. "katamā ca, bhikkhave, samaggā parisā? idha, bhikkhave, yassaṃ parisāyaṃ bhikkhū samaggā sammodāmānā avivadamānā khīrodakībhūtā aññamaññaṃ piyacakkhūhi sampassantā viharanti. ayaṃ vuccati, bhikkhave, samaggā parisā.

 

*대품 주석: 모임이 완전한 참모임(samaggo sangho)으로 모임이 불완전한 모임(vagga)의 반대를 의미한다.751p

3요자나 안에 있는 승가 전체가 모이는 것, 이것은 각 방향으로 1.5yojana=14km를 넘어서는 안된다는 것을 의미하 거나 삼각형지역일 경우에는 코너에서 코너가 요자나인 것도 허용된 것이다. Anujānāmi, bhikkhave, tiyoja­na­paramaṃ sīmaṃ sammannitun”ti.

 

*한때 짬빠 시의 수행승들이 이와 같이 갈마를 행했다. 그들은 원칙을 따르지 않을 뿐만 아니라 모임이 불완전한 갈마를 행했다. 원칙을 따르지 않지만 모임이 완전한 갈마를 행했다. 원칙을 따르지만 모임이 불완전한 갈마를 행했다. 유사원 칙을 따르지만 모임이 불완전한 갈마를 행했다. 유사원칙에 따르지만 모임이 완전한 갈마를 행했다. 723p

Tena kho pana samayena campāyaṃ bhikkhū evarūpāni kammāni karonti—adhammena vaggakammaṃ karonti, adhammena samaggakammaṃ karonti; dhammena vaggakammaṃ karonti, dhamma­pati­rūpa­kena vaggakammaṃ karonti; dhamma­pati­rūpa­kena samaggakammaṃ karonti; 

 

*아누룻다와 수행승들이여, 어떻게 해서 서로 화합하고 서로 감사하고 다투지 않고 우유와 물처럼 조회롭게 서로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대하며 지내고 있는가?" 878p

“Kacci pana vo, anuruddhā, samaggā sammodamānā avivadamānā khīrodakībhūtā aññamaññaṃ piyacakkhūhi sampassantā viharathā”ti? 

 

*5인승가는 중부지방에서의 구족계,출죄복귀를 제외하고는 모든 갈마에서 원칙에 맞고 완전한 갈마를 구성한다.

Tatra, bhikkhave, yvāyaṃ pañcavaggo bhikkhusaṃgho, ṭhapetvā dve kammāni— majjhimesu janapadesu upasampadaṃ abbhānaṃ, dhammena samaggo sabbakammesu kammappatto

 

*수행승들이여, 한때 어떤 처소에서 포살일에 많은 거주수행승들 가운 데 네 명이나 그 남짓 수행승들이 모인다. 그들은 ‘다른 거주수행승들이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라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그들은 원칙을 생각하고 계율을 생각 하지만, 모임이 불완전함에도 불구하고 모임이 완전하다고 생각하면서 포살을 행하고, 의무계율의 송출을 행한다. 그런데 의무계율의 송출을 행하고 있을 때, 다른 곳에 사는 보다 많은 수의 수행승들이 도착한다. 수행승들이여, 그 수행승들 은 다시 의무계율의 송출을 행해야 한다. 이미 송출을 행한 자들에게는 죄가 없다.

“Idha pana, bhikkhave, aññatarasmiṃ āvāse tadahuposathe sambahulā āvāsikā bhikkhū sannipatanti cattāro vā atirekā vā. Te na jānanti—‘atthaññe āvāsikā bhikkhū anāgatā’ti. Te dhammasaññino vinayasaññino vaggā samaggasaññino uposathaṃ karonti, pātimokkhaṃ uddisanti. Tehi uddissamāne pātimokkhe, athaññe āvāsikā bhikkhū āgacchanti bahutarā. Tehi, bhikkhave, bhikkhūhi puna pātimokkhaṃ uddisitabbaṃ. Uddesakānaṃ anāpatti.

 

 

* 비구들이여, 두 가지 회중이 있다. 어떤 것이 둘인가파당을 짓는 회중 화합하는 회중(samaggā ca parisā)이다.비구들이여, 어떤 것이 파당을 짓는 회중인가어떤 회중에서 비구들이 싸우기를 좋아하고 말다툼을 좋아하고 논쟁을 좋아하고 혀를 무기로 서로에게 상처를 주면서 머문다.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파당을 짓는 회중이라 한다.”

‘‘Dvemā, bhikkhave, parisā. Katamā dve? Vaggā ca parisā samaggā ca parisā. Katamā ca, bhikkhave, vaggā parisā? Idha, bhikkhave, yassaṃ parisāyaṃ bhikkhū bhaṇḍanajātā kalahajātā vivādāpannā aññamaññaṃ mukhasattīhi vitudantā viharanti. Ayaṃ vuccati, bhikkhave, vaggā parisā.

 

 

 비구들이여, 어떤 것이 화합하는 회중인가어떤 회중에서 비구들이 화합하고 정중하고 논쟁하지 않고 물과 우유가 섞인 것 같고 애정 어린 눈으로 서로를 바라보며 머문다.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화합하는 회중이라 한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두 가지 회중이 있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두 가지 회중 가운데 화합하는 회중이 뛰어나다.” Vagga-sutta(A2:5:2)

‘‘Katamā ca, bhikkhave, samaggā parisā? Idha, bhikkhave, yassaṃ parisāyaṃ bhikkhū samaggā sammodamānā avivadamānā khīrodakībhūtā aññamaññaṃ piyacakkhūhi sampassantā viharanti. Ayaṃ vuccati, bhikkhave, samaggā parisā. Imā kho, bhikkhave, dve parisā. Etadaggaṃ, bhikkhave, imāsaṃ dvinnaṃ parisānaṃ yadidaṃ samaggā parisā’’ti.

 

 

 

3. 인도의 공화정치가 승가에 끼친 영향은?

... 공화국은 정기적으로 모이고,화합하고,전통을 존중하고, 어른을 공경하고, 도덕적이고,제사를 잘 지내고, 덕 높은 스승(아라한)을 모시고 사는 것이 번영하는 길이며 승가도 이러한 원리에 의해 운영된다.

 

 

 

4. "고따마 존자시여, 마가다의 왕 아자따삿뚜 웨데히뿟따는 전쟁으로는 왓지들을 정복할 수 없겠습니다. 그 대신에 [왓지들의] 기만과 상호불신을 획책해야겠습니다."의 바른 해석은?

Akaraṇīyāva, bho gotama, vajjī raññā māgadhena ajātasattunā vedehiputtena yadidaṃ yuddhassa, aññatra upalāpanāya aññatra mithubhedā.

(King Ajātasattu cannot defeat the Vajjīs in war, unless by bribery or by sowing dissension)

고따마 벗이여, 마가다의 왕 아자따삿뚜 웨데히뿟따는 [왓지들에게] 기만과 분열을 조장하지 않는한, 전쟁으로는 왓지들을 정복할 수 없겠습니다.

 

 

5. 그 당시 탑묘(cetiyāni)의 의미는 ?

... 왓지들이  왓지의 탑묘(vajji cetiyāni)들을 존경하고 존중하고, 숭상하고 예배하며, [탑묘에] 봉납(baliṃ)하는 곳이다.

cetiyarukkhaṃ(the tree near a shrine),  cetiyaṅgaṇaṃ(group of shrines)등의 단어가 있는 것으로 보아 그곳에는 나무가 있고 그룹으로 제사등을 지냈음을 알 수 있다.

 

김성철교수님이 cetiya가 새로운 법신 숭배 혹은 경권 신앙으로 발전하여 불탑을 대신하는 새로운 cetiya의 탄생되었다는 이야기를 금강경 사구게를 통해 밝혀주셨습니다. 

“수부티여! 이 법문으로부터 최소한 4구로 이루어진 게송 하나를 취하거나 설하거나 가르치는 사람이 어떤 장소에 있다면, 그 장소는 천신과 사람과 아수라를 포함한 세상에서 성소(caitya)와 같은 곳이 될 것이다.” 

 

특히 우리 <온라인불자회>처럼 영상토론을 통해  <열반경>을 읽고 의견을 나누고 법담이 오가는 자리가 바로 성소(cetiya)가 되는 것이다. 라는 의견은 신선하고 많은 영감을 줍니다. 

 

 

6. 끄사뜨리야 왕이 바라문인 왓사까라를 신하로 두고 있는것은 카스트제도가 무너진 것인가? 후대에 편집된 것인가? 

마두라 경(M84)을 보면 끄샤뜨리야 혹은 와이샤가 아주 부유하다면 다른 와이샤는 물론 끄샤뜨리야도 바라문도 역시 그에게 시중을 들려고 한다고 말하고 있다. 부처님 시대에 상업이 발달하여 수닷타장자같은 부유한 장자계급이 생기고, 재산의 유무가 당시의 신분제도를 혼란시키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우루웰라에서 6년고행할때 싯타르타를 시봉하던 오비구( Kondañña,Bhaddiya, Vappa, Mahānāma Assaji)도 바라문들이었다. 아래 마두라 경(M84)에도 카스트의 홍란이 있기에  이러한 것을 두고 후대에 편집된 것이라고 추측하는 것은 과도하다.  

 

 

마두라 경(M84)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때 마하깟짜나 존자는 마두라의 군다 숲에 머물렀다.

마두라의 아완띠뿟따 왕은 이렇게 들었다...........

대왕이여, 바라문들만이 최상의 계급이다. 다른 계급은 저열하다. 바라문들만이 밝고 다른 계급은 어둡다. 바라문들만이 청정하고 다른 계급의 사람들은 그렇지 안다. 바라문들만이 범천의 아들들이고 적출들이고 입에서 태어났고 범천에서 태어났고 범천이 만들었고 범천의 상속자들이다.라는 것이 단지 세상에서 하는 말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은 이 방법으로 알 수 있습니다.

대왕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합니까? 만일 끄샤뜨리야의 어떤 사람이 재산과 곡식과 은과 금으로 아주 부유하다면 다른 크샤뜨리야가 그보다 일찍 일어나고 늦게 잠자고 그에게 시중을 들려고 하고 그를 기쁘게 하려고 하고 듣기 좋은 말을 하려고 하고, 바라문도 와이샤도 수두라도 역시 그보다 일찍 일어나고 늦게 잠자고 그에게 시중을 들려고 하고 그를 기쁘게 하려고 하고 듣기 좋은 말을 하려고 하겠습니까?

깟짜나 존자시여, 만일 끄샤뜨리야의 어떤 사람이 재산과 곡식과 은과 금으로 아주 부유하다면 다른 끄샤뜨리야가 그보다 일찍 일어나고 늦게 잠자고 그에게 시중을 들려고 하고 그를 기쁘게 하려고 하고 듣기 좋은 말을 하려고 하고, 바라문도 와이샤도 수드라도 역시 그보다 일찍 일어나고 늦게 잠자고 그에게 시중을 들려고 하고 그를 기쁘게 하려고 하고 듣기 좋은 말을 하려고 할 것 입니다.

 

....

대왕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합니까? 만일 어떤 와이샤가 재산과 곡식과 은과 금으로 아주 부유하다면 다른 와이샤가 그보다 일찍 일어나고 늦게 잠자고 그에게 시중을 들려고 하고 그를 기쁘게 하려고 하고 듣기 좋은 말을 하려고 하고, 와이샤도 끄샤뜨리야도 바라문도 역시 그보다 일찍 일어나고 늦게 잠자고 그에게 시중을 들려고 하고 그를 기쁘게 하려고 하고 듣기 좋은 말을 하려고 하겠습니까?

깟짜나 존자시여, 만일 어떤 수드라가 재산과 곡식과 은과 금으로 아주 부유하다면 다른 수드라가 그보다 일찍 일어나고 늦게 잠자고 그에게 시중을 들려고 하고 그를 기쁘게 하려고 하고 듣기 좋은 말을 하려고 하고, 끄샤뜨리야도 바라문도 와이샤도 역시 그보다 일찍 일어나고 늦게 잠자고 그에게 시중을 들려고 하고 그를 기쁘게 하려고 하고 듣기 좋은 말을 하려고 할것입니다.

 

대왕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합니까? 만일 어떤 수드라가 재산과 곡식과 은과 금으로 아주 부유하다면 다른 수드라가 그보다 일찍 일어나고 늦게 잠자고 그에게 시중을 들려고 하고 그를 기쁘게 하려고 하고 듣기 좋은 말을 하려고 하고, 끄샤뜨리야도 바라문도 와이샤도 역시 그보다 일찍 일어나고 늦게 잠자고 그에게 시중을 들려고 하고 그를 기쁘게 하려고 하고 듣기 좋은 말을 하려고 할 것입니다.

대왕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합니까? 만일 이와 같다면 이들 네 계급은 평등합니까, 그렇지 않습니까? 여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합니까?

깟짜나 존자시여, 참으로 그와 같다면 이들 네 계급은 평등합니다. 저는 여기서 어떤 다른 차이점을 보지 못합니다

 
 
 
 
 

2013년 3월 9일 목요일 오후 9시에 <온라인불자회> 공부모임을 시작합니다. 다 같이 합장하고 큰 소리로 합창합니다.

 

나모 따사 바가와또 아라하또 삼마 삼붓다사(Namo tassa bhagavato arahato sammāsambuddhassa)
나모 따사 바가와또 아라하또 삼마 삼붓다사(Namo tassa bhagavato arahato sammāsambuddhassa)
나모 따사 바가와또 아라하또 삼마 삼붓다사(Namo tassa bhagavato arahato sammāsambuddhassa)

 

붓당 사라남 가차미 (Buddham Saranam Gacchami)  부처님께 귀의합니다.()

담망 사라남 가차미 (Dhammam Saranam Gacchami) 가르침에 귀의합니다.()

상강 사라남 가차미 (Sangham Saranam Gacchami)  승가에 귀의합니다.()

 

삽베삿따 바완뚜 수키땃따(sabbe sattā bhavantu sukhitattā)

 

 

 

비구들이 퇴보하지 않는 법 

 

1.6. 세존께서는 마가다의 대신 왓사까라 바라문이 물러간지 오래지 않아서 아난다 존자를 불러서 말씀하셨다.

“아난다여, 그대는 가서 라자가하를 의지하여 머무르는 비구들을 모두 이곳으로 집회 장소로 모이게 하라.”

“그러겠습니다, 세존이시여.”라고 아난다 존자는 세존께 대답했다. 그리고 라자가하를 의지하여 머무르는 비구들을 모두 집회 장소로 모이게 하고서 세존께 갔다. 가서는 세존께 절을 올리고 한 곁에 섰다. 한 곁에 서서 아난다 존자는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비구 대중들이 다 모였습니다. 이제 세존께서 가실 시간이 되었습니다.”

 

세존께서는 자리에서 일어나셔서 집회 장소로 가셨다. 가서는 마련된 자리에 앉으셨다. 자리에 앉으셔서 세존께서는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그대들에게 일곱가지 퇴보하지 않는 법들을 설하리라. 그것을 듣고 마음에 잘 새겨라. 이제 설하리라.”

“그렇게 하겠습니다. 세존이시여”라고 비구들은 세존께 대답했다.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1) 비구들이여, 비구들이 정기적으로 모이고 자주 모이는 한(그 모임에 많은 비구들이 모이는 한),  비구들은 퇴보하는 일은 없고 오직 향상이 기대된다.

(2) 비구들이여, 비구들이 화합하여 모이고, 화합하여 해산하고, 화합하여(samaggā) 승가의 크고 작은 업무를 보는 한, 비구들은 퇴보하는 일은 없고 오직 향상이 기대된다.

Yāvakīvañca, bhikkhave, bhikkhū samaggā sanni­patis­santi, samaggā vuṭṭhahissanti, samaggā saṅ­ghakara­ṇīyāni karissanti, vuddhiyeva, bhikkhave, bhikkhūnaṃ pāṭikaṅkhā, no parihāni. 

*여기서 화합하여(samaggā) 는 전원참석을 말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3) 비구들이여, 비구들이 공인하지 않은 것은 인정하지 않고, 공인한 것은 깨뜨리지 않으며, 공인되어 온 학습계목(법. 가르침)들을 준수하고 있는 한, 비구들은 퇴보하는 일은 없고 오직 향상이 기대된다.

 

(4) 비구들이여, 비구들이 수행이 높고 출가한지 오래된 장로나, 모임의 지도자인 비구들을 존경하고 존중하고 숭상하고 예배하며, 그들의 말을 경청해야 한다고 여기는 한, 비구들은 퇴보하는 일은 없고 오직 향상이 기대된다.

 

 

(5) 비구들이여, 비구들이 다시 태어남을 가져오는 갈애가 생겼더라도 그것의 지배를 받지 않는 한, 비구들은 퇴보하는 일은 없고 오직 향상이 기대된다.

Yāvakīvañca, bhikkhave, bhikkhū uppannāya taṇhāya ponobbhavikāya na vasaṃ gacchissanti, vuddhiyeva, bhikkhave, bhikkhūnaṃ pāṭikaṅkhā, no parihāni. (5)

 

(6) 비구들이여, 비구들이 숲속의 거처에 대해서 큰 관심을 가지고 있는 한(숲 속 생활을 희망하고 원하는 한), 비구들은 퇴보하는 일은 없고 오직 향상이 기대된다.

 

(7) 비구들이여, 비구들이 개인적으로 각각 마음챙김을 확립해서 아직 오지 않은 좋은 동료 비구들은 오게 하고, 이미 온 좋은 동료 비구들은 편안하게 머물도록 하는 한, 비구들은 퇴보하는 일은 없고 오직 향상이 기대된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일곱가지 퇴보하지 않는 법들이 비구들에게 정착이 되고, 이러한 일곱가지 퇴보하지 않는 법들을 비구들이 준수한다면, 비구들은 향상할 것이고 퇴보란 기대할 수 없다.”

   

1.7. “비구들이여, 또 다른 일곱가지 퇴보하지 않는 법들을 설하리라. 그것을 듣고 마음에 잘 새겨라. 이제 설하리라.”

“그렇게 하겠습니다. 세존이시여”라고 비구들은 세존께 대답했다.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1) 비구들이여, 비구들이 세간적인 행위를 좋아하지 않으며, 세간적인 행위를 즐거워하지 않으며, 세간적인 행위의 즐거움에 열중하지 않는한, 비구들은 퇴보하는 일은 없고 오직 향상이 기대된다.

(2) 비구들이여, 비구들이 말하기를 즐겨하지 않고(법담이 아닌 세간적 잡담), 말하기를 기뻐하지 않고, 말하는 즐거움에 열중하지 않는 한, 비구들이 퇴보하는 일은 없고 오직 향상이 기대된다.

(3) 비구들이여, 비구들이 잠자기를 즐겨하지 않고, 잠자기를 기뻐하지 않고, 잠자는 즐거움에 열중하지 않는 한, 비구들이 퇴보하는 일은 없고 오직 향상이 기대된다.

(4) 비구들이여, 비구들이 무리지어 살기를 즐겨하지 않고, 무리지어 살기를 기뻐하지 않고saṅgaṇikaratā, 무리지어 사는 즐거움에 열중하지 않는 한, 비구들이 퇴보하는 일은 없고 오직 향상이 기대된다.

Yāvakīvañca, bhikkhave, bhikkhū na saṅgaṇikārāmā bhavissanti na saṅgaṇikaratā na saṅga­ṇikā­rāma­ta­manu­yuttā, vuddhiyeva, bhikkhave, bhikkhūnaṃ pāṭikaṅkhā, no parihāni. (4)

 

(5) 비구들이여, 비구들이 삿된 원들을 갖지 않고, 삿된 원들(pāpikānaṃ icchānaṃ)의 지배를 받지 않는 한, 비구들이 퇴보하는 일은 없고 오직 향상이 기대된다.

(6) 비구들이여, 비구들이 삿된 친구가 되지 않고, 삿된 동료가 되지 않고, 삿된 벗(도반)이 되지 않는 한, 비구들이 퇴보하는 일은 없고 오직 향상이 기대된다.

(7) 비구들이여, 비구들이 낮은 경지의 특별한 증득을 얻었다 하여 도중에 포기해 버리지 않는 한, 비구들이 퇴보하는 일은 없고 오직 향상이 기대된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일곱가지 퇴보하지 않는 법들이 비구들에게 정착이 되고, 이러한 일곱가지 퇴보하지 않는 법들을 비구들이 준수한다면, 비구들은 퇴보하는 일은 없고 오직 향상이 기대된다.”

   

1.8. “비구들이여, 또 다른 일곱가지 퇴보하지 않는 법들을 설하리라. 그것을 듣고 마음에 잘 새겨라. 이제 설하리라.”

“그렇게 하겠습니다. 세존이시여”라고 비구들은 세존께 대답했다.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1) 비구들이여, 비구들이 믿음(saddhā)이 있는 한, 퇴보하는 일은 없고 오직 향상이 기대된다.

(2) 비구들이여, 비구들이 양심이 있는 한, 퇴보하는 일은 없고 오직 향상이 기대된다.

(3) 비구들이여, 비구들이 수치심이 있는 한, 퇴보하는 일은 없고 오직 향상이 기대된다.

(4) 비구들이여, 비구들이 많이 배우는(닦는) 한, 퇴보하는 일은 없고 오직 향상이 기대된다.

(5) 비구들이여, 비구들이 열심히 정진하는 한, 퇴보하는 일은 없고 오직 향상이 기대된다.

(6) 비구들이여, 비구들이  마음챙김을 확립하는 한, 퇴보하는 일은 없고 오직 향상이 기대된다.

(7) 비구들이여, 비구들이 통찰지(지혜)를 가지는 한, 비구들이 퇴보하는 일은 없고 오직 향상이 기대된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일곱가지 퇴보하지 않는 법들이 비구들에게 정착이 되고, 이러한 일곱가지 퇴보하지 않는 법들을 비구들이 준수한다면, 비구들은 퇴보하는 일은 없고 오직 향상이 기대된다.”

   

1.9. “비구들이여, 또 다른 일곱가지 퇴보하지 않는 법들을 설하리라.그것을 듣고 마음에 잘 새겨라. 이제 설하리라.”

“그렇게 하겠습니다. 세존이시여”라고 비구들은 세존께 대답했다.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1) 비구들이여, 비구들이 마음챙김의 깨달음의 구성요소를 닦는 한, 퇴보하는 일은 없고 오직 향상이 기대된다.

(2) 비구들이여, 비구들이 법을 간택하는 깨달음의 구성요소를 닦는 한, 퇴보하는 일은 없고 오직 향상이 기대된다. 

(3) 비구들이여, 비구들이 정진의 깨달음의 구성요소를 닦는 한, 퇴보하는 일은 없고 오직 향상이 기대된다.

(4) 비구들이여, 비구들이 희열의 깨달음의 구성요소를 닦는 한, 퇴보하는 일은 없고 오직 향상이 기대된다.

(5) 비구들이여, 비구들이 편안함의 깨달음의 구성요소를 닦는 한, 퇴보하는 일은 없고 오직 향상이 기대된다.

(6) 비구들이여, 비구들이 삼매의 깨달음의 구성요소를 닦는 한, 퇴보하는 일은 없고 오직 향상이 기대된다.

(7) 비구들이여, 비구들이 평온의 깨달음의 구성요소를 닦는 한, 비구들이 퇴보하는 일은 없고 오직 향상이 기대된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일곱가지 퇴보하지 않는 법들이 비구들에게 정착이 되고, 이러한 일곱가지 퇴보하지 않는 법들을 비구들이 준수한다면, 비구들은 퇴보하는 일은 없고 오직 향상이 기대된다.”

 

1.10. “비구들이여, 또 다른 일곱가지 퇴보하지 않는 법들을 설하리라. 그것을 듣고 마음에 잘 새겨라. 이제 설하리라.”

“그렇게 하겠습니다. 세존이시여”라고 비구들은 세존께 대답했다.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1) 비구들이여, 비구들이 무상의 인식(aniccasaññaṃ)을 닦는 한, 퇴보하는 일은 없고 오직 향상이 기대된다.

(2) 비구들이여, 비구들이 무아의 인식(anattasaññaṃ)을 닦는 한, 퇴보하는 일은 없고 오직 향상이 기대된다.

(3) 비구들이여, 비구들이 부정의 인식(asubhasaññaṃ)을 닦는 한, 퇴보하는 일은 없고 오직 향상이 기대된다.

(4) 비구들이여, 비구들이 위험의 인식(ādīnavasaññaṃ)을 닦는 한, 퇴보하는 일은 없고 오직 향상이 기대된다.

(5) 비구들이여, 비구들이 버림의 인식(pahānasaññaṃ)을 닦는 한, 퇴보하는 일은 없고 오직 향상이 기대된다.

(6) 비구들이여, 비구들이 탐욕의 떠남의 인식(virāgasaññaṃ)을 닦는 한, 퇴보하는 일은 없고 오직 향상이 기대된다.

(7) 비구들이여, 비구들이 소멸의 인식(nirodhasaññaṃ)을 닦는 한, 퇴보하는 일은 없고 오직 향상이 기대된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일곱가지 퇴보하지 않는 법들이 비구들에게 정착이 되고, 이러한 일곱가지 퇴보하지 않는 법들을 비구들이 준수한다면, 비구들은 퇴보하는 일은 없고 오직 향상이 기대된다."

 

1.11. “비구들이여, 또 다른 여섯가지 퇴보하지 않는 법들을 설하리라. 그것을 듣고 마음에 잘 새겨라. 이제 설하리라.”

“그렇게 하겠습니다. 세존이시여”라고 비구들은 세존께 대답했다.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같이 말씀하셨다.

 

(1) 비구들이여, 비구들이 대중적으로나 개인적으로(āvi ceva raho ca) 동료 비구들에게 대해서 몸의 행위로 자애(mettaṃ kāyakammaṃ)를 유지하는 한, 비구들은 향상할 것이고 퇴보란 기대할 수 없다.

(꼬삼비 경 (M48):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동료 수행자들이 면전에 있건 없건(āvi ceva raho ca) 그들에 대해 몸의 업으로 자애를 유지한다. 이것이 기억해야 할 법이니 동료 수행지들에게 호감을 주고 공경을 불러오고 도움을 주고 분쟁을 없애고 화합하고 단결하게 한다.Idha, bhikkhave, bhikkhuno mettaṃ kāyakammaṃ paccupaṭṭhitaṃ hoti sabrahmacārīsu āvi ceva raho ca.Ayampi dhammo sāraṇīyo piyakaraṇo garukaraṇo saṅgahāya avivādāya sāmaggiyā ekībhāvāya saṃvattati.)

 

 

(2) 비구들이여, 비구들이 대중적으로나 개인적으로 동료 비구들에게 대해서 말의 행위로 자애를 유지하는 한, 비구들은 향상할 것이고 퇴보란 기대할 수 없다.

 

(3) 비구들이여, 비구들이 대중적으로나 개인적으로 동료 비구들에게 대해서 마음의 행위로 자애를 유지하는 한, 비구들은 향상할 것이고 퇴보란 기대할 수 없다.

 

(4) 비구들이여, 비구들이 법답게 얻은 법다운 것들은 그것이 비록 발우안에 담긴 것일지라도 혼자 두고 사용하지 않고 계를 잘 지키는 동료 비구들과 함께 나누어서 사용하는 한, 비구들은 향상할 것이고 퇴보란 기대할 수 없다.

 

(5) 비구들이여, 비구들이 훼손되지 않았고, 구멍이 나지 않았고, 오점이 없고, 얼룩이 없고, 벗어나게 하고 현자들이 찬탄하고 원만하고 삼매에 도움이 되는 그런 계(율)들을 대중적으로나 개인적으로 동료 비구들과 함께 구족하여 머무는 한, 비구들은 향상할 것이고 퇴보란 기대할 수 없다.

 

(6) 비구들이여, 비구들이 그대로 실현하면 괴로움의 소멸로 인도하며, 성스럽고 그것을 실천하는 사람을 멸진으로 인도하는 바른 견해에 대해서, 대중적으로나 개인적으로 동료 비구들과 함께 그런 바른 견해를 구족하여 머무는 한, 비구들은 향상할 것이고 퇴보란 기대할 수 없다.

Yāvakīvañca, bhikkhave, bhikkhū yāyaṃ diṭṭhi ariyā niyyānikā, niyyāti takkarassa sammā dukkhakkhayāya, tathārūpāya diṭṭhiyā diṭṭhi­sāmañ­ña­gatā viharissanti sabrahmacārīhi āvi ceva raho ca, vuddhiyeva, bhikkhave, bhikkhūnaṃ pāṭikaṅkhā, no parihāni. (6)

 

 

1.12. 이렇게 세존께서는 라자가하에서 독수리봉산에 머무시면서 많은 비구들에게 법에 관한 말씀을 하셨다.

“이러한 것이 계다. 이러한 것이 삼매다.이러한 것이 통찰지다. 계를 철저히 닦아서 생긴 삼매는 큰 결실이 있고 큰 이익이 있다. 삼매를 철저히 닦아서 생긴 통찰지는 큰 결실이 있고 큰 이익이 있다. 통찰지를 철저히 닦아서 생긴 마음은 바르게 번뇌들로부터 해탈하나니, 그 번뇌들은 바로 이 감각적 욕망에 기인한 번뇌, 존재에 기인한 번뇌, 무명에 기인한 번뇌이다.”라고.

   


3월 9일 토론에는 16~18명이 참석하여 11시까지 진지하게 공부하였다. 제가 사용하는 인터넷이 품질이 좋지 않아서 매끄럽게 진행하지 못해 죄송하다. 오늘 토론내용은 승가안에 있는 스님들과 종단 개혁을 원하는 불자들에게는 매우 중요한 내용들이다.   

 

 

논점

 

1. "비구들이여, 비구들이 화합하여 모이고, 화합하여 해산하고, 화합하여 승가의 크고 작은 업무를 보는 한(samaggā saṅ­ghakara­ṇīyāni karissanti)"...이러한 문장에서 "화합하여 해산하고, 화합하여 승가의 업무를 본다"는 것의 의미는 ? 

....상가의 업무를 처리하기 위해서는 구성원의 참여와 절차의 적법성이 가추어져야 하는데 절차의 적법성은

담마(dhamma)라고 하고 구성원의 참여는 사막가(samagga)라고한다.

담마(dhamma)는 일처리의 적합성,원칙성, 여법성, 정당성,투명성의 뜻이 있고 반대는 비법, 무원칙,비투명의 뜻이다.

참여는 사막가(samagga)는 구성원의 전체참여, 모임의 완전성, 전체대중, 현전승가, 다함께, 화합, 만장일치등의 의미를 갖고 반대는 왁가(vagga)로서 불완전한 모임, 전체대중의 비참여, 부분참여, 비화합의 뜻이다.. 

dhaṃena: 정당하게, 적합하게(일처리의 절차 문제),        samaggaṃ:전체가,다함께(구성원의 참석 문제)  

* 그러므로 '화합(samagga)'은 만장일치가 아니라 전원참석이고, '여법(dhamma)'은 절차를 잘 따르는 것이다. 

 '비화합(asamagga)'은 전원참석이 아닌 모임(vagga)이고, '비법(adhamma)'은 절차를 준수하지 않고 갈마(대중공사)를 진행하는 것이다. 

 

율장대품의 포살에서 아래와 같이 4가지 포살을 들고 마지막 절차와 모임의 완전성을 갖출때만 포살이 정당하다고 설명한다.

원칙을 따르지 않을 뿐만 아니라 모임이 불완전한 포살갈마

원칙을 따르지 않지만 모임이 완전 한 포살갈마

원칙을(dhammena) 따르지만 모임이 불완전한(vaggaṃ) 포살갈마

원칙을(dhammena) 따르고 모임도 완전한(samaggaṃ ) 포살갈마 298p

adhammena vaggaṃ uposathakammaṃ,

adhammena samaggaṃ uposathakammaṃ,

dhammena vaggaṃ uposathakammaṃ,

dhammena samaggaṃ uposa­tha­kammanti.

 

결계: 3요자(yojana)나 안에 있는 승가 전체가 모이는 것, 이것은 각 방향으로 1.5yojana=14km를 넘어서는 안된다는 것을 의미하 거나 삼각형지역일 경우에는 코너에서 코너가 요자나인 것도 허용된 것이다. Anujānāmi, bhikkhave, tiyoja­na­paramaṃ sīmaṃ sammannitun”ti. 하루동안에 걸어서 다녀올수 있는 거리라는 의미와 동의어다, 

 

 

2."비구들이 믿음(saddhā)이 있는 한, 퇴보하는 일은 없다."에서 믿음은 다른 종교의 믿음과 어떻데 다른가?

.....불교에서의 믿음은 불법승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 믿음, 지금여기서 스스로 점검할 수 있는 믿음이다. 이성(50%) 감성(50%)가 섞인 믿음으로  trust (신뢰)에 가깝다.  믿음에서 시작하여 지혜로 향하는 믿음이다, 

 

부처님은 '믿음으로 해탈한 자'라는 표현을 할때도 내용은 지혜를 이야기 하고 있다.

“비구들이여, 어떤 사람이 믿음으로 해탈한 자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어떤 사람은 물질을 초월한 무색계의 평화로운 해탈을 몸으로 체험하지 못하고 머물지만, 그는 반야로써 보아 일부 번뇌들을 제거하고 또 여래에 믿음을 심고 뿌리내려 확고하게 되었다.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믿음으로 해탈한 자라 한다. 이런 비구들에게도 방일하지 않고 해야할 일이 있다고 나는 말한다."

 

다만 대승불교에서는 불성, 관세음 보살등의 등장으로 관념적인 믿음으로 변화하였다.   

 

유일신교의 믿음은 감성(100%)의 믿음으로 belief(신앙)에 가깝다. 지금여기에서 점검 가능하지 않아서 부처님은 이러한 관념적인 믿음을 세상에서 가장 이쁜 여인을 사랑하는 이야기의 비유(한번 보지도 만나지도 못한 여인을 사랑한다고 이야기하는 남자)로 비판하셨다. 

 

 

3. 퇴보하지 않는 여섯조항과 한문 육화경과의 차이는 ?

....한문육화경은 신구의 계정혜라는 순서가 어긋나있고  무엇을 위한 화합인지도 모르게 되어있다. 같이 살라(共住)고 되어있어 마치 집단생활을 해야 하는 것처럼 왜곡되어있다. 한문 육화경으로는 승가의 화합을 이루어 내기 어렵다. 전통을 잘못 계승하게 만든 번역은 이후 백장청규등 많은 대중문화에 영향을 주었다. 백장암에서는 처음에 한문 육화경을 사용하다가 잘못되었음을 확인하고아래 사진과 같이  니까야에서 번역한 육화경을 사용하고 있다. 

끝-

 

 

 몸으로 화합함이니 같이 살라(身和共住)

 입으로 화합함이니 다투지 말라(口和無諍)

 뜻으로 화합함이니 같이 일하라(意和同事)

 계로 화합함이니 같이 수행하라(戒和同修)

 바른 견해로 화합함이니 함께 해탈하라(見和同解)

 이익으로 화합함이니 균등하게 나누라(利和同均)

 

.....육화경의 원형-순서가 있다.

(꼬삼비 경 (M48):다시 비구들 이여, 성스럽고 출리로 인도하고(niyyānikā) 그것을 실천하는 자에게(takkarassa) 괴로움의 소멸로 인도하는 바른견해가 있으니, 여기 비구는 동료 수행자들이 면전에 있건 없건(sabrahmacārīhi āvi ceva raho ca), 그 바른견해를 그들과 함께 동등하게 구족하여 머문다(diṭṭhiyā diṭṭhi­sāmañ­ña­gato viharati).비구들이여, 이것이 여섯 가지 기억해야 할 법이니, 동료 수행자들에게 호감을 주고 공경을 불러오고 도움을 주고 분쟁을 없애고 화합하고 단결하게 한다. 비구들이여, 이들 여섯 가지 기억해야할 법들 가운데 성스럽고, 출리로 인도하고, 그것을 실천하는 자를 바르게 괴로움의 소멸로 인도하는 바른견해가 최상이고 포괄적이고 총체적인 것이다.

비구들이여, 마치 이층 누각 집에 이층 누각이 최상이고 포괄적이고 총체적인 것처럼 그와 같이 이들 여섯 가지 기억해야 할 법들 가운데 성스럽고, 출리로 인도하고, 그것을 실천하는 자를 바르게 괴로움의 소멸로 인도하는 바른견해가 최상이고 포괄적이고 총체적인 것이다.)

Puna caparaṃ, bhikkhave, bhikkhu yāyaṃ diṭṭhi ariyā niyyānikā niyyāti takkarassa sammā dukkhakkhayāya tathārūpāya diṭṭhiyā diṭṭhi­sāmañ­ña­gato viharati sabrahmacārīhi āvi ceva raho ca. Ayampi dhammo sāraṇīyo piyakaraṇo garukaraṇo saṅgahāya avivādāya sāmaggiyā ekībhāvāya saṃvattati.)

As long as the mendicants live according to the view shared with their spiritual companions, both in public and in private—the view that is noble and emancipating, and leads one who practices it to the complete end of suffering—they can expect growth, not decline.

 

 

 

2013년 3월 16일 목요일 오후 9시에 <온라인불자회> 공부모임을 시작합니다. 다 같이 합장하고 큰 소리로 합창합니다.

 

나모 따사 바가와또 아라하또 삼마 삼붓다사(Namo tassa bhagavato arahato sammāsambuddhassa)
나모 따사 바가와또 아라하또 삼마 삼붓다사(Namo tassa bhagavato arahato sammāsambuddhassa)
나모 따사 바가와또 아라하또 삼마 삼붓다사(Namo tassa bhagavato arahato sammāsambuddhassa)

 

붓당 사라남 가차미 (Buddham Saranam Gacchami)  부처님께 귀의합니다.()

담망 사라남 가차미 (Dhammam Saranam Gacchami) 가르침에 귀의합니다.()

상강 사라남 가차미 (Sangham Saranam Gacchami)  승가에 귀의합니다.()

 

삽베삿따 바완뚜 수키땃따(sabbe sattā bhavantu sukhitattā)

 

 

 

1.13. 그때 세존께서는 라자가하에서 원하는 만큼 머무신 뒤 아난다 존자를 불러서 말씀하셨다. “아난다여, 이제 암발랏티까로 가자.”

그렇게 하겠습니다, 세존이시여.”라고 아난다 존자는 세존께 응답했다. 그리하여 세존께서는 많은 비구 승가와 함께 암발랏티까에 도착하셨다.세존께서는 거기 암발랏티까에서 왕의 객사에 머무셨다

Atha kho bhagavā rājagahe yathābhirantaṃ viharitvā āyasmantaṃ ānandaṃ āmantesi: “āyāmānanda, yena ambalaṭṭhikā tenu­pasaṅka­mis­sāmā”ti. “Evaṃ, bhante”ti kho āyasmā ānando bhagavato paccassosi. Atha kho bhagavā mahatā ­bhik­khu­saṅ­ghena saddhiṃ yena ambalaṭṭhikā tadavasari. Tatra sudaṃ bhagavā amba­laṭṭhi­kā­yaṃ viharati rājāgārake. 

 

 

1.14. . 세존께서는 암발랏티까에서 왕의 객사에 머무시면서 많은 비구들에게 이러한 법에 관한 말씀을 하셨다. “이러한 것이 계다. 이러한 것이 삼매다. 이러한 것이 통찰지다. 계를 철저히 닦아서 생긴 삼매는 큰 결실이 있고 큰 이익이 있다. 삼매를 철저히 닦아서 생긴 통찰지는 큰 결실이 있고 큰 이익이 있다. 통찰지를 철저히 닦아서 생긴 마음은 바르게 번뇌들로부터 해탈하나니, 바로 이 감각적 욕망에 기인한 번뇌와 존재에 기인한 번뇌와 무명에 기인한 번뇌이다.”라고.

amba­laṭṭhi­kā­yaṃ viharanto rājāgārake etadeva bahulaṃ bhikkhūnaṃ dhammiṃ kathaṃ karoti: “iti sīlaṃ iti samādhi iti paññā. Sīla­pari­bhāvito samādhi mahapphalo hoti mahānisaṃso. Samā­dhi­pari­bhāvitā paññā mahapphalā hoti mahānisaṃsā. Paññā­pari­bhāvi­taṃ cittaṃ sammadeva āsavehi vimuccati, seyyathidaṃ—kāmāsavā, bhavāsavā, avijjāsavā”ti.

 

 

 

1.15. 그때 세존께서는 암발랏티까에서 원하는 만큼 머무신 뒤 아난다 존자를 불러서 말씀하셨다. “아난다여, 이제 날란다로 가자.”

그렇게 하겠습니다, 세존이시여.”라고 아난다 존자는 세존께 응답했다. 그리하여 세존께서는 많은 비구 승가와 함께 날란다에 도착하셨다. 세존께서는 거기 날란다에서 빠와리까의 망고 숲에 머무셨다.

Atha kho bhagavā amba­laṭṭhi­kā­yaṃ yathābhirantaṃ viharitvā āyasmantaṃ ānandaṃ āmantesi: “āyāmānanda, yena nāḷandā tenu­pasaṅka­mis­sāmā”ti. “Evaṃ, bhante”ti kho āyasmā ānando bhagavato paccassosi. Atha kho bhagavā mahatā ­bhik­khu­saṅ­ghena saddhiṃ yena nāḷandā tadavasari, tatra sudaṃ bhagavā nāḷandāyaṃ viharati ­pāvāri­kam­ba­vane.

 

 

 

 

사리뿟따의 사자후  4. Sāri­puttasī­hanāda

 

1.16. 그때 사리뿟따 존자가 세존께 다가갔다. 가서는 세존께 절을 올리고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아서 사리뿟따 존자는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Atha kho āyasmā sāriputto yena bhagavā tenupasaṅkami; upasaṅkamitvā bhagavantaṁ abhivādetvā ekamantaṁ nisīdi. Ekamantaṁ nisinno kho āyasmā sāriputto bhagavantaṁ etadavoca:

 

 

세존이시여, 저는 세존께 이러한 청정한 믿음(pasanno)이 있습니다. 바른 깨달음에 관한 한 세존을 능가하고 세존을 초월하는 사문이나 바라문은 이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며, 지금도 없습니다.”

“evaṃ pasanno ahaṃ, bhante, bhagavati; na cāhu na ca bhavissati na cetarahi vijjati añño samaṇo vā brāhmaṇo vā bhagavatā bhiyyo­bhiñña­taro yadidaṃ sambodhiyan”ti.

 

 

사리뿟따여, 그대는 세존이시여, 저는 세존께 이러한 청정한 믿음이 있습니다. 바른 깨달음에 관한 한 세존을 능가하고 세존을 초월하는 사문이나 바라문은 이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며, 지금도 없습니다.’라고 이처럼 황소같이 우렁찬 목소리로 말을 하고 확신에 찬 사자후를 토하는구나.

 “Uḷārā kho te ayaṃ, sāriputta, āsabhī vācā bhāsitā, ekaṃso gahito, sīhanādo nadito: ‘evaṃpasanno ahaṃ, bhante, bhagavati; na cāhu na ca bhavissati na cetarahi vijjati añño samaṇo vā brāhmaṇo vā bhagavatā bhiyyo­bhiñña­taro yadidaṃ sambodhiyan’ti.

 

 사리뿟따여, 그러면 그대는 그분 세존들께서는 이러한 계를 가진 분들이셨다. 그분 세존들께서는 이러한 법을 가진 분들이셨다. 그분 세존들께서는 이러한 통찰지를 가진 분들이셨다. 그분 세존들께서는 이러한 머묾을 가진 분들이셨다. 그분 세존들께서는 이런 해탈을 성취한 분들이셨다.’라고 과거의 모든 아라한ㆍ정등각들을 마음으로 마음을 통하여 알았는가?”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Kiṃ te, sāriputta, ye te ahesuṃ atītamaddhānaṃ arahanto sammāsambuddhā, sabbe te bhagavanto cetasā ceto paricca viditā: ‘evaṃsīlā te bhagavanto ahesuṃ itipi, evaṃdhammā evaṃpaññā evaṃvihārī evaṃvimuttā te bhagavanto ahesuṃ itipī’”ti? “No hetaṃ, bhante”.

 

 

 

사리뿟따여, 그러면 그대는 그분 세존들께서는 이러한 계를 가진 분들이실 것이다. 그분 세존들께서는 이러한 법을 가진 분들이실 것이다. 그분 세존들께서는 이러한 통찰지를 가진 분들이실 것이다. 그분 세존들께서는 이러한 머묾을 가진 분들이실 것이다. 그분 세존들께서는 이런 해탈을 성취한 분들이실 것이다.’라고 미래의 모든 아라한ㆍ정등각들을 마음으로 마음을 통하여 알았는가?”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Kiṃ pana te, sāriputta, ye te bhavissanti anāga­ta­maddhā­naṃ arahanto sammāsambuddhā, sabbe te bhagavanto cetasā ceto paricca viditā: ‘evaṃsīlā te bhagavanto bhavissanti itipi, evaṃdhammā evaṃpaññā evaṃvihārī evaṃvimuttā te bhagavanto bhavissanti itipī’”ti? “No hetaṃ, bhante”.

 

 

 

사리뿟따여, 나는 지금 시대에 아라한ㆍ정등각이다. 그러면 그대는 세존께서는 이러한 계를 가진 분이다. 세존께서는 이러한 법을 가진 분이다. 세존께서는 이러한 통찰지를 가진 분이다. 세존께서는 이러한 머묾을 가진 분이다. 세존께서는 이런 해탈을 성취한 분이다.’라고 [나에 대해서] 마음으로 마음을 통하여 알았는가?”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Kiṃ pana te, sāriputta, ahaṃ etarahi arahaṃ sammāsambuddho cetasā ceto paricca vidito: ‘evaṃsīlo bhagavā itipi, evaṃdhammo evaṃpañño evaṃvihārī evaṃvimutto bhagavā itipī’”ti? “No hetaṃ, bhante”.

 

 

 

사리뿟따여, 그렇다면 참으로 그대에게는 과거와 미래와 현재의 아라한ㆍ정등각들에 대해서 [남의] 마음을 아는 지혜[他心通,ceto­pariya­ñāṇaṃ]가 없다. 사리뿟따여, 그런데 어떻게 그대는 세존이시여, 저는 세존께 이러한 청정한 믿음이 있습니다. 바른 깨달음에 관한 한 세존을 능가하고 세존을 초월하는 사문이나 바라문은 이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며, 지금도 없습니다.’라고 이처럼 황소같이 우렁찬 목소리로 말을 하고 확신에 찬 사자후를 토하는가?”

“Ettha ca hi te, sāriputta, atī­tā­nāga­ta­pac­cup­pan­nesu arahantesu sammā­sambud­dhesu ceto­pariya­ñāṇaṃ natthi. Atha kiñcarahi te ayaṃ, sāriputta, uḷārā āsabhī vācā bhāsitā, ekaṃso gahito, sīhanādo nadito: ‘evaṃpasanno ahaṃ, bhante, bhagavati; na cāhu na ca bhavissati na cetarahi vijjati añño samaṇo vā brāhmaṇo vā bhagavatā bhiyyo­bhiñña­taro yadidaṃ sambodhiyan’”ti?

 

 

 

1.17. “세존이시여, 제게는 분명 과거와 미래와 현재의 아라한ㆍ정등각들의 마음을 아는 지혜[他心通]가 없습니다. 그러나 저는 법다운 추론(dhammanvayo, by inference from the teaching)으로 알았습니다. 세존이시여, 예를 들면 왕의 국경에 있는 도시는 튼튼한 기초와 튼튼한 성벽과 망루를 가지고 있고, 하나의 대문을 가지고 있습니다. 거기서 지혜롭고 입지가 굳고 현명한 문지기가 모르는 자들은 제지하고 아는 자들만 들어가게 합니다. 

“Na kho me, bhante, atī­tā­nāga­ta­pac­cup­pan­nesu arahantesu sammā­sambud­dhesu ceto­pariya­ñāṇaṃ atthi, api ca me dhammanvayo vidito. Seyyathāpi, bhante, rañño paccantimaṃ nagaraṃ daḷhuddhāpaṃ daḷ­ha­pākā­ra­toraṇaṃ ekadvāraṃ, tatrassa dovāriko paṇḍito viyatto medhāvī aññātānaṃ nivāretā ñātānaṃ pavesetā. 

 

그러나 그는 그 도시의 모든 통로를 다 순찰하면서 성벽의 이음매와 갈라진 틈으로 고양이가 지나다니는 것 까지는 보지 않습니다. 그에게 이런 생각이 들 것입니다. ‘이 도시를 들어오고 나가는 큰 생명체는 누구든 모두 이 대문으로 들어오고 나간다.’라고. 세존이시여, 그와 마찬가지로 저는 법다운 추론으로 알았습니다.

So tassa nagarassa samantā anu­pariyā­ya­pathaṃ anukkamamāno na passeyya pākārasandhiṃ vā pākāravivaraṃ vā, antamaso biḷāra­nikkha­ma­na­mattampi. Tassa evamassa: ‘ye kho keci oḷārikā pāṇā imaṃ nagaraṃ pavisanti vā nikkhamanti vā, sabbe te imināva dvārena pavisanti vā nikkhamanti vā’ti.

 

 

 

 

세존이시여, 과거의 모든 세존ㆍ아라한ㆍ정등각들께서는 다섯 가지 장애[五蓋pañca nīvaraṇe]들을 제거하셨고 마음의 오염원들(upakkilese)을 통찰지로써 무력하게 만드셨고, 네 가지 마음챙김의 확립[四念処]에 마음이 잘 확립되셨으며, 일곱 가지 깨달음의 구성요소[七覚支]들을 있는 그대로 닦으신 뒤, 위없는 정등각을 완전하게 깨달으셨습니다.

Evameva kho me, bhante, dhammanvayo vidito: ‘ye te, bhante, ahesuṃ atītamaddhānaṃ arahanto sammāsambuddhā, sabbe te bhagavanto pañca nīvaraṇe pahāya cetaso upakkilese paññāya dubbalīkaraṇe catūsu satipaṭṭhānesu

supa­tiṭṭhi­ta­cittā sattabojjhaṅge yathābhūtaṃ bhāvetvā anuttaraṃ sammāsambodhiṃ abhisam­bujjhiṃsu.

 

세존이시여, 미래의 모든 세존ㆍ아라한ㆍ정등각들께서도 다섯 가지 장애[五蓋]들을 제거하시고, 마음의 오염원들을 통찰지로써 무력하게 만드시고, 네 가지 마음챙김의 확립에 마음이 잘 확립되시며, 일곱 가지 깨달음의 구성요소들을 있는 그대로 닦으신 뒤, 위없는 정등각을 완전하게 깨달으실 것입니다.

Yepi te, bhante, bhavissanti anāgatamaddhānaṁ arahanto sammāsambuddhā, sabbe te bhagavanto pañca nīvaraṇe 

pahāya cetaso upakkilese paññāya dubbalīkaraṇe catūsu satipaṭṭhānesu supatiṭṭhitacittā satta bojjhaṅge yathābhūtaṁ 

bhāvetvā anuttaraṁ sammāsambodhiṁ abhisambujjhissanti.

 

세존이시여, 현재의 세존께서도 아라한ㆍ정등각이시니 다섯 가지 장애[五蓋]들을 제거하셨고, 마음의 오염원들을 통찰지로써 무력하게 만드셨고, 네 가지 마음챙김의 확립에 마음이 잘 확립되셨으며, 일곱 가지 깨달음의 구성요소들을 있는 그대로 닦으신 뒤, 위없는 정등각을 완전하게 깨달으셨습니다.”

Bhagavāpi, bhante, etarahi arahaṁ sammāsambuddho pañca nīvaraṇe pahāya cetaso upakkilese paññāya 

dubbalīkaraṇe catūsu satipaṭṭhānesu supatiṭṭhitacitto satta bojjhaṅge yathābhūtaṁ bhāvetvā anuttaraṁ 

sammāsambodhiṁ abhisambuddho’”ti.

 

1.18. 세존께서는 거기 날란다에서 빠와리까의 망고 숲에 머무셨다. 세존께서는 날란다에서 빠와리까의 망고 숲에 머무시면서 많은 비구들에게 이러한 법에 관한 말씀을 하셨다. “이러한 것이 계다. 이러한 것이 삼매다. 이러한 것이 통찰지다. 계를 철저히 닦아서 생긴 삼매는 큰 결실이 있고 큰 이익이 있다. 삼매를 철저히 닦아서 생긴 통찰지는 큰 결실이 있고 큰 이익이 있다. 통찰지를 철저히 닦아서 생긴 마음은 바르게 번뇌들로부터 해탈하나니, 바로 이 감각적 욕망에 기인한 번뇌와 존재에 기인한 번뇌와 무명에 기인한 번뇌이다.”라고.

 

 

 

 

 

 

논점: 

 

1.부처님의80세 마지막 유행길에 '많은 비구 승가(mahatā ­bhik­khu­saṅ­ghena)'와 함께 하는 이유는 ?

---많은 비구 승가와 함께 하는데는 별 의견이 없었습니다. 

 

 

 

 

 

2. '바른 깨달음에 관한 한 세존을 능가하고 세존을 초월하는 사문이나 바라문은 이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며, 지금도 없습니다.’라고 사리뿟따는 석가모니 부처님에 대한 청정한 믿음(pasanno)을 가지고 있다. 그 믿음을 통해서 타심통(他心通,ceto­pariya­ñāṇaṃ)은 없지만 과거와 미래의 부처님들(sammāsambuddhā)도 그럴 것이라고 법다운 추론(dhammanvayo)을 하고 있다.  마치 똑똑한 문지기가 드나드는 사람들을 모두 관찰하는 것처럼.

여기에서 '청정한 믿음'과 '법다운 추론'과 '다불사상'에 대해서 이야기해보자. 

*pasanna:① a.[pasīdati<sad の pp.] 明浄の,澄浄の,浄信ある,已信の,喜べる.buddhe ~,buddhassa ~ 仏を信ぜる人.-citta 明浄心,浄心.-mukhavaṇṇa 顔色光沢.② [pa-syad の pp.] 流出せる.

*anvaya:n. [〃cf. anveti] 隨行,類句,類比. anvaye ñāṇaṃ 類智. course; conformity; tradition.

---청정한 믿음이라 번역한 '빠산나'는 마음이 깨끗해짐, 청정해짐, 이라고 번역되어도 무방하기에 굳이 믿음이라는 표현을 하지 않아도 됩니다. 이것이 믿음(saddhā)와 다른 점 일 것입니다.

---법다운 추론은 현재 고따마 부처님을 보고 과거와 현재의 부처님들의 성격을 추론하는 것이고, 그렇게 과거와 부처님들을 추론 할수 있으므로 자연스럽게 수천명의 부처님이 존재를 말하는 다불사상이 출현 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3.  무명(avijja)과 번뇌(āsavā)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그런 나는 󰡐이것이 괴로움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았고, 󰡐이것이 괴로움의 일어남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았고,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닦음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았고, 󰡐이것이 번뇌의 일어남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았고, 󰡐이것이 번뇌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닦음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았다.󰡓

내가 이와 같이 알고 이와 같이 볼 때 나는 '감각적 욕망에 기인한 번뇌'에서 마음이 해탈했다. 존재에 기인한 번뇌에서도 마음이 해탈했다. 무명에 기인한 번뇌에서도 마음이 해탈했다. 해탈했을 때 해탈했다는 지혜가 생겼다. 󰡐태어남은 다했다. 청정범행은 성취되었다. 할 일을 다 해 마쳤다. 다시는 어떤 존재로도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라고 꿰뚫어 알았다."  상가라와 경(M100)

---무명은 나누어서 설명을 하지 않는데 번뇌는 나누어서 설명을 하고 번뇌에 무명도 포함 되므로 무명이 더 넓은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고 볼수 있습니다. 경에서는 무명과 번뇌는 서로서로 존건이 되는 것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2023년 3월 23일 목요일 오후 9시에 <온라인불자회> 공부모임을 시작합니다. 다 같이 합장하고 큰 소리로 합창합니다.

 

나모 따사 바가와또 아라하또 삼마 삼붓다사(Namo tassa bhagavato arahato sammāsambuddhassa)
나모 따사 바가와또 아라하또 삼마 삼붓다사(Namo tassa bhagavato arahato sammāsambuddhassa)
나모 따사 바가와또 아라하또 삼마 삼붓다사(Namo tassa bhagavato arahato sammāsambuddhassa)

 

붓당 사라남 가차미 (Buddham Saranam Gacchami)  부처님께 귀의합니다.()

담망 사라남 가차미 (Dhammam Saranam Gacchami) 가르침에 귀의합니다.()

상강 사라남 가차미 (Sangham Saranam Gacchami)  승가에 귀의합니다.()

 

 

 

1.19. 그때 세존께서는 날란다에서 원하는 만큼 머무신 뒤 아난다 존자를 불러서 말씀하셨다. “아난다여, 이제 빠딸리 마을로 가자.”

그렇게 하겠습니다, 세존이시여.”라고 아난다 존자는 세존께 응답했다. 그리하여 세존께서는 많은 비구 승가와 함께 빠딸리 마을에 도착하셨다.

 

1.20. 빠딸리 마을의 청신사들은 세존께서 빠딸리 마을에 오셨다고 들었다. 그러자 빠딸리 마을의 청신사들은 세존께 다가갔다. 가서는 세존께 절을 올린 뒤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아서 빠딸리 마을의 청신사들은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저희들의 공회당에 [머무실 것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세존께서는 침묵으로 허락하셨다.

 

1.21. 그러자 빠딸리 마을의 청신사들은 세존께서 허락하신 것을 알고서 자리에서 일어나 세존께 인사드리고 오른쪽으로 [세 번] 돌아 [경의를 표한] 뒤에 공회당으로 갔다. 가서는 공회당을 덮개로 완전하게 덮고 자리를 준비하고 물 항아리를 마련하고 기름 등불을 매달고서 세존을 뵈러갔다. 세존을 뵙고 인사드리고 한 곁에 섰다. 한 곁에 서서 빠딸리 마을의 청신사들은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공회당을 덮개로 완전하게 덮었고 자리를 준비하고 물 항아리를 마련하고 기름 등불을 매달았습니다. 세존이시여, 이제 세존께서 [가실] 시간이 되었습니다.”

 

1.22. 그러자 세존께서는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발우와 가사를 수하고 비구 승가와 더불어 공회당으로 가셨다. 발을 씻으시고 공회당으로 들어가셔서는 중간 기둥 곁에 동쪽을 향하여 앉으셨다. 비구들도 역시 발을 씻고서 공회당에 들어가서 서쪽 벽 근처에 동쪽을 향하여 세존을 앞에 모시고 앉았다. 빠딸리 마을의 청신사들도 역시 발을 씻고 공회당에 들어가서 동쪽 벽 근처에 서쪽을 보고 세존을 앞에 모시고 앉았다.

 

 

계행이 나쁜 자의 위험  5. Dussīlaādīnava

 

1.23. 그러자 세존께서는 빠딸리 마을의 청신사들을 불러서 말씀하셨다. “장자들이여, 계행이 나쁘고 계를 파한 자에게 다섯 가지 위험(ādīnavā)이 있다. 무엇이 다섯인가? 장자들이여, 여기  계행이 나쁘고 계를 파한 자는 방일한 결과로 큰 재물을 잃는다. 이것이 계행이 나쁜 자가 계를 파해서 얻는 첫 번째 위험이다. 

“pañcime, gahapatayo, ādīnavā dussīlassa sīlavipattiyā. Katame pañca? Idha, gahapatayo, dussīlo sīlavipanno pamā­dādhika­ra­ṇaṃ mahatiṃ bhogajāniṃ nigacchati. Ayaṃ paṭhamo ādīnavo dussīlassa sīlavipattiyā.

 

다시 장자들이여,  계행이 나쁘고 계를 파한 자는 악명이 자자하다. 이것이 계행이 나쁜 자가 계를 파해서 얻는 두 번째 위험이다. 다시 장자들이여,  계행이 나쁘고 계를 파한 자는 끄샤뜨리야의 회중이든, 바라문의 회중이든, 장자의 회중이든, 수행자의 회중이든, 그 어떤 회중에 들어가더라도 의기소침하여 들어간다. 이것이 계행이 나쁜 자가 계를 파해서 얻는 세 번째 위험이다. 다시 장자들이여,  계행이 나쁘고 계를 파한 자는 매()해서 죽는다. 이것이 계행이 나쁜 자가 계를 파해서 얻는 네 번째 위험이다. 다시 장자들이여,  계행이 나쁘고 계를 파한 자는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처참한 곳(apāyaṃ), 불행한 곳(duggatiṃ), 파멸처(vinipātaṃ), 지옥(nirayaṃ)에 떨어진다. 이것이 계행이 나쁜 자가 계를 파해서 얻는 다섯 번째 위험이다.”

 

 

계를 가진 자의 이익  6. Sīla­van­taā­nisaṃsa

 

1.24. “장자들이여, 계를 가진 자가 계를 받들어 지님에 다섯 가지 이익(ānisaṃsā)이 있다. 무엇이 다섯인가? 장자들이여, 여기  계를 가지고 계를 갖춘 자는 방일하지 않은 결과로 큰 재물을 얻는다. 이것이 계를 가진 자가 계를 받아지님으로써 얻는 첫 번째 이익이다. 다시 장자들이여,  계를 가지고 계를 갖춘 자는 훌륭한 명성을 얻는다. 이것이 계를 가진 자가 계를 받아지님으로써 얻는 두 번째 이익이다. 다시 장자들이여,  계를 가지고 계를 갖춘 자는 끄샤뜨리야의 회중이든, 바라문의 회중이든, 장자의 회중이든, 수행자의 회중이든, 그 어떤 회중에 들어가더라도 두려움 없고 당당하게 들어간다. 이것이 계를 가진 자가 계를 받아지님으로써 얻는 세 번째 이익이다. 다시 장자들이여,  계를 지니고, 계를 갖춘 자는 매하지 않고 죽는다. 이것이 계를 가진 자가 계를 받아지님으로써 얻는 네 번째 이익이다. 다시 장자들이여,  계를 지니고, 계를 갖춘 자는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선처 혹은 천상세계에 태어난다. 이것이 계를 가진 자가 계를 받아지님으로써 얻는 다섯 번째 이익이다.”

 

 

1.25. 그때 세존께서는 빠딸리 마을의 청신사들에게 밤이 깊도록 법을 설하시고 격려하시고 분발하게 하시고 기쁘게 하신 뒤 그들에게 떠날 것을 권하셨다.

장자들이여, 밤이 참 아름답구나. 이제 그대들이 갈 시간이 되었구나.”

그렇게 하겠습니다, 세존이시여.”라고 빠딸리 마을의 청신사들은 세존께 대답을 한 뒤 자리에서 일어나 세존께 절을 올리고 오른쪽으로 [세 번] 돌아 [경의를 표한] 뒤에 물러갔다.

 

 

 

오늘도 17명이 참여하여 주셨습니다. 진일스님이 도정스님의 초청으로 처음 참석하셨고 한병식거사님도 오랫만에 참여 하셨습니다. 오늘은 제가 만든 논점 3개 외에도 김성철교수님이 제안한 2개의 논점도 추가되었습니다.

이야기를 나누고 3월 22일 있었던 '종단 현안에 대한 긴급 기자회견'을 한 것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박정규 거사님이 자세한 설명을 해 주셨고 기영거사님이 선원, 승가대학, 종회등 220곳에 우편물을 발송한 작업이야기를 해주셨습니다.  우편물 작업과 설문조사에 들어간 비용은 '온라인불자회'에서 모금을 하여 충당하기로 하였습니다.

3월 30일 목요일 오후 9시에는 자유토론이 도정스님의 사회로 진행됩니다.

 

 

논점:

 

1.계를 가진 자의 이익(Sīla­van­taā­nisaṃsa) 과 녹야원에서 야사에게 했던 시계생천(施戒生天)의 법문과 같은 것일까?

* 가까이 다가가서 자리에 앉은 훌륭한 가문의 아들 야싸에게 세존께서는 차제설법(anupubbiṁ katha)을 설했다. , 보시에 대한 이야기, 계행에 대한 이야기, 하늘나라에 대한 이야기, 감각적 쾌락에 대한 욕망의 위험, ·타락·오염과, 욕망의 여읨에서 오는 공덕,에 대하여 설명 했다. dānakathaṁ sīlakathaṁ saggakathaṁ, kāmānaṁ ādīnavaṁ, okāraṁ saṅkilesaṁ, nekkhamme ānisaṁsaṁ pakāsesi.(율장대품)

----거의 같은 법문으로 이해됩니다. 계를 잘 갖추어도 천상에 태어나는데 그기다가 보시를 실천한다면 얼마나 더 쉽게 천상에 태어나겠습니까? 

 

 

2. "발을 씻으시고 공회당으로 들어가셔서는 중간 기둥 곁에 동쪽을 향하여 앉으셨다." 이렇게 부처님이 앉으시는 이유는 ?

-김성철교수님이 유목민인 아리얀족이 동쪽으로 내려왔기 때문에  동쪽이 곧 앞쪽이 되고 남쪽이 오른쪽이 되었다고 말씀해주셨고, 저는 동쪽으로 앉는 것은 보름달에 뜰때 설법자의 얼굴이 잘보이게 하려면 동쪽을 바라보아야 한다는 의견을 내었습니다.  그밖에 다른 의견도 있었는데 잘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3. 이익(ānisaṃsā)과 위험(ādīnavā)은 깔라마경과의 비교?

 “깔라마들이여, 사람의 내면에서 탐욕이 일어나면 그것은 그에게 이익(hitāya)이 되겠는가, 손해(ahitāya)가 되겠는가? 손해(ahitāya)가 됩니다, 세존이시여."

*“깔라마들이여, 멍청한 사람은 어리석음에 사로잡히고 그것에 얼이 빠져 생명을 죽이고, 주지 않은 것을 갖고, 남의 아내에게 접근하고, 거짓말을 하게 된다. 또한 다른 사람에게도 그렇게 하도록 유도한다. 그러면 이것은 오랜 세월을 그에게 손해(ahitāya)와 괴로움(dukkhāyā)이 되지 않겠는가?”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이 전법을 할때 열반경에서는 이익(ānisaṃsā)과 위험(ādīnavā), 깔라마경에서는 이익(hitāya)과 손해(ahitāya)라는 기준으로 설법을 하셨는데 이익과 손해에 민감한 중생에게는 솔깃한 이야기였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부처님이 중생이 솔깃할 만한 언어표현으로 설법을 하셨다는 것이 인상 깊습니다. 

 

 

4. 윤회가 있다면? 윤회가 없다면 ?

 “만약 다음 세상이 있고, 선행과 악행의 업들에 대한 결실과 과보가 있다면, 나는 몸이 무너져 죽은 뒤 좋은 곳[善處], 천상세계에 태어날 것이다.’라고. 이것이 그가 얻는 첫 번째 위안이다.

 ‘Sace kho pana atthi paro loko, atthi sukata­dukka­ṭā­naṃ kammānaṃ phalaṃ vipāko, athāhaṃ

 kāyassa bhedā paraṃ maraṇā sugatiṃ saggaṃ lokaṃ upapajjissāmī’ti, ayamassa paṭhamo assāso adhigato hoti.

 

만약 다음 세상이 없고 선행과 악행의 업들에 대한 결실과 과보도 없다면, 나는 금생에 원한 없고 악의 없고 고통 없이 행복하게 살 것이다.’라고. 이것이 그가 얻는 두 번째 위안이다.

‘Sace kho pana natthi paro loko, natthi sukata­dukka­ṭā­naṃ kammānaṃ phalaṃ vipāko, athāhaṃ diṭṭheva dhamme averaṃ abyāpajjhaṃ anīghaṃ sukhiṃ attānaṃ pariharāmī’ti, ayamassa dutiyo assāso adhigato hoti.

 

---부처님이 다음 세상이 없다면, 윤회가 없다면이라는 가정을 하면서 설법을 하시는 장면은 윤회를 믿는 사람에게만 불교를 이야기 할 수 있다는 고정관념을 깨우치게 합니다. 불교는 윤회를 믿지 않고도 시작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조건을 가지고 말하는 것은 불교가 믿음으로 시작하지 않는 종교이기에 그럴 것입니다. 

 

 

5. 왜 부처님은 식사 초대를 받았을 때, ‘가겠다’고 대답하지 않고 침묵으로 승낙하시나요?

---부처님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 분이기에 침묵하셨다. 라는 주장에 상황이 변경되면 그때가서 다시 변경된 것을 이야기하면 되지 굳이 침묵할 필요가 있나라는 반론이 제기 되었습니다. 저는 기후가 더운 나라이다 보니 말하는 것보다 침묵으로 응수하는 것이 에너지 소비가 적게 들기에 침묵으로 승낙하는 문화가 정착되었을 것이라고 봅니다. 비구들이 대중공사에서 침묵으로 결정하는 것이 그런 예일 것입니다. 또하나는 겸손을 표현하는 방법이라고 봅니다. 내가 들었다고 표현하지 않고 나에게 들렸다고 표현하는 것또한 겸손의 표현이라고 보는데 이 겸손은 무아사상을 배경에 깔고 있다고 보여집니다. 

 


6. 왜 제자나 재가자들이 인사를 할 때, (출가자의 경우 오른쪽 어깨를 드러나거나) 오른쪽으로 세 번 도나요?
-이 내용은 다음에 다루겠습니다. 

 

 

 

 

 

2023년 4월 6일 목요일 오후 9시에 <온라인불자회> 대반열반경(D16) 다섯번째 공부모임을 시작합니다.

다 같이 합장하고 큰 소리로 합창합니다.

 

나모 따사 바가와또 아라하또 삼마 삼붓다사(Namo tassa bhagavato arahato sammāsambuddhassa)
나모 따사 바가와또 아라하또 삼마 삼붓다사(Namo tassa bhagavato arahato sammāsambuddhassa)
나모 따사 바가와또 아라하또 삼마 삼붓다사(Namo tassa bhagavato arahato sammāsambuddhassa)

 

붓당 사라남 가차미 (Buddham Saranam Gacchami)  부처님께 귀의합니다.(3번)

담망 사라남 가차미 (Dhammam Saranam Gacchami) 가르침에 귀의합니다.(3번)

상강 사라남 가차미 (Sangham Saranam Gacchami)  승가에 귀의합니다.(3번)

 

 

 

 

 

빠딸리뿟따의 건설  7. Pāṭali­putta­nagara­māpana

 

1.26. 그 무렵에 마가다의 대신인 수니다와 왓사까라가 왓지들을 침략하기 위해서 빠딸리 마을에 도시를 건설하고 있었다. 그때 수천이나 되는 많은 신들이 빠딸리 마을에 터를 잡고 있었다. 

Tena kho pana samayena sunidha­vassakārā maga­dha­mahā­mattā pāṭaligāme nagaraṃ māpenti vajjīnaṃ paṭibāhāya. Tena samayena sambahulā devatāyo sahasseva pāṭaligāme vatthūni pariggaṇhanti.

 

그 지역에서 큰 위력을 가진 신들이 터를 잡고 있는 곳에는 왕의 측근 대신들 가운데 큰 위력을 가진 자들이 거기에 거처를 건설하도록 그 [대신]들의 마음을 움직였으며, 중간의 신들이 터를 잡고 있는 지역에는 왕의 측근 대신들 가운데 중간 정도의 위력을 가진 자들이 거기에 거처를 건설하도록 그들의 마음을 움직였으며, 낮은 신들이 터를 잡고 있는 지역에는 왕의 측근 대신들 가운데 낮은 위력을 가진 자들이 거기에 거처를 건설하도록 그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Yasmiṃ padese mahesakkhā devatā vatthūni pariggaṇhanti, mahesakkhānaṃ tattha raññaṃ rāja­mahā­mattā­naṃ cittāni namanti nivesanāni māpetuṃ. Yasmiṃ padese majjhimā devatā vatthūni pariggaṇhanti, majjhimānaṃ tattha raññaṃ rāja­mahā­mattā­naṃ cittāni namanti nivesanāni māpetuṃ. Yasmiṃ padese nīcā devatā vatthūni pariggaṇhanti, nīcānaṃ tattha raññaṃ rāja­mahā­mattā­naṃ cittāni namanti nivesanāni māpetuṃ.

 

 

 

1.27. 세존께서는 인간을 넘어선 청정한 하늘눈으로 수천이나 되는 많은 신들이 빠딸리 마을에 터를 잡고 있는 것을 보셨다. 그러자 세존께서는 밤이 지나고 새벽이 되었을 때 일어나셔서 아난다 존자를 불러서 말씀하셨다.

 

아난다여, 누가 지금 빠딸리 마을에 도시를 건설하고 있는가?”

세존이시여, 마가다의 대신인 수니다와 왓사까라가 왓지들을 침략하기 위해서(paṭibāhāyā) 빠딸리 마을에 도시를 건설하고 있습니다.”

“Ke nu kho, ānanda, pāṭaligāme nagaraṃ māpentī”ti? “Sunidha­vassakārā, bhante, maga­dha­mahā­mattā pāṭaligāme nagaraṃ māpenti vajjīnaṃ paṭibāhāyā”ti.

 

 

1.28. “아난다여, 마치 삼십삼천의 신들과 협의나 한 듯이 마가다의 대신 수니다와 왓사까라는 왓지들을 침략하기 위해서 빠딸리 마을에 도시를 건설하는구나. 아난다여, 여기서 나는 인간을 넘어선 청정한 하늘눈으로 수천이나 되는 많은 신들이 빠딸리 마을에 터를 잡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 지역에서 큰 위력을 가진 신들이 터를 잡고 있는 곳에는 큰 위력을 가진 왕의 측근 대신들이 거기에 거처를 건설하도록 그들의 마음을 움직였으며, 중간의 신들이 터를 잡고 있는 지역에는 중간의 왕의 측근 대신들이 거기에 거처를 건설하도록 그들의 마음을 움직였으며, 낮은 신들이 터를 잡고 있는 지역에는 낮은 왕의 측근 대신들이 거기에 거처를 건설하도록 그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아난다여, 고귀한 사람들이 계속해서 머물고 상인들이 왕래를 계속하는 한, 이곳은 빠딸리뿟따라 불리는 [물품이 가득 든] 통을 풀어놓는 최고의 도시가 될 것이다. 아난다여, 빠딸리뿟따는 세 가지 재난을 가질 것이니 불로 인한 재난[火災]과 물로 인한 재난[水災]과 상호불신이다.”

yāvatā, ānanda, ariyaṃ āyatanaṃ yāvatā vaṇippatho idaṃ agganagaraṃ bhavissati pāṭaliputtaṃ puṭabhedanaṃ  pāṭaliputtassa kho, ānanda, tayo antarāyā bhavissanti  aggito  udakato  mithubhedā ”ti.

puṭa: a container. (usually made of leaves); a pocket; a basket. (m.; nt.)
bhedana: breach; division; disunion. (nt.)

 

 

1.29. 그때 마가다의 대신 수니다와 왓사까라가 세존께 다가갔다. 가서는 세존과 함께 환담을 나누고 유쾌하고 기억할 만한 이야기로 서로 담소를 나누고 한 곁에 섰다. 한 곁에 서서 마가다의 대신 수니다와 왓사까라는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고따마 존자는 비구 승가와 함께 내일 저희들의 공양을 허락하여 주십시오.”

세존께서는 침묵으로(tuṇhībhāvena) 허락하셨다.

 “adhivāsetu no bhavaṃ gotamo ajjatanāya bhattaṃ saddhiṃ ­bhik­khu­saṅ­ghenā”ti. Adhivāsesi bhagavā tuṇhībhāvena.

 

 

 

1.30. 그러자 마가다의 대신 수니다와 왓사까라는 세존께서 침묵으로 허락하신 것을 알고서 자리에서 일어나 세존께 절을 올리고 오른쪽으로 [세 번] 돌아 [경의를 표한] 뒤에 물러갔다. 그리고 마가다의 대신 수니다와 왓사까라는 그 밤이 지나자 자신들의 집에서 맛있는 여러 음식을 준비하게 하여 세존께 시간을 알려드렸다.

고따마 존자시여, 시간이 되었습니다. 음식이 준비되었습니다.”라고.

그때 세존께서는 오전에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발우와 가사를 수하시고 비구 승가와 함께 마가다의 대신 수니다와 왓사까라의 집으로 가셨다. 가셔서는 비구 승가와 함께 지정된 자리에 앉으셨다. 그러자 마가다의 대신 수니다와 왓사까라는 부처님을 상수로 하는 비구 승가에게 맛있는 여러 음식을 자기 손으로 직접 대접하고 드시게 했다. 세존께서 공양을 마치시고 발우에서 손을 떼시자 마가다의 대신 수니다와 왓사까라는 어떤 낮은 자리를 잡아서 한 곁에 앉았다.

 

1.31. 세존께서는 한 곁에 앉은 마가다의 대신 수니다와 왓사까라를 다음의 게송으로 기쁘게 하셨다.

 

현자는 어느 지방에 거주하든

계를 지니고 잘 제어된

청정범행을 닦는 자들을 부양한다.

 

거기서 현자가 그들에게 보시를 베푸는 것을 보고

신들은 그에게 예배하고 그를 존경한다.

(그곳의 천신들,그들에게 공물을 바치면.
공양을 받은 그들은 그를 공양 한다.
존경을 받은 그들은 그를 존경 한다.)

yā tattha devatā āsuṁ
tāsaṁ dakkhiṇamādise.
tā pūjitā pūjayanti
mānitā mānayanti naṁ

 

신들은 그를 연민하나니

마치 어머니가 친아들을 그리하듯이.

신들이 연민하는 그는

항상 경사스러움을 보게 된다.

Deva­tā­nukam­pito poso,
sadā bhadrāni passatī”ti.

세존께서는 이 게송으로 마가다의 대신 수니다와 왓사까라를 기쁘게 하신 뒤 자리에서 일어나 나가시었다.

 

1.32. 그러자 마가디의 대신 수니다와 왓사까라는 세존을 계속해서 뒤따라갔다. “이제 사문 고따마께서 문으로 나가시는 곳은 오늘부터 고따마의 문(gotamadvāraṃ)이 될 것이고, 그분이 강가 강을 건너시는 여울은 오늘부터 고따마의 여울(gotamatitthaṃ)이 될 것이다.”라고 하면서. 그래서 세존께서 나가신 문은 고따마의 문이 되었다.

 

 

1.33. 그때 세존께서는 강가 강으로 가셨다. 그 무렵에 강가 강은 까마귀가 [그 강물을] 먹을 수 있을 만큼 가득 차 있었다. 저쪽 언덕으로 가고자 하여, 어떤 사람들은 배를 찾고 있었고, 어떤 사람들은 뗏목을 찾고 있었고, 어떤 사람들은 뗏목을 묶고 있었다. 그러자 세존께서는 마치 힘 센 사람이 구부렸던 팔을 펴고 폈던 팔을 구부리는 것처럼 비구 승가와 함께 이쪽 언덕에서 사라져서 저쪽 언덕에 나타나셨다.

Atha kho bhagavā—seyyathāpi nāma balavā puriso samiñjitaṃ vā bāhaṃ pasāreyya, pasāritaṃ vā bāhaṃ samiñjeyya; evameva—gaṅgāya nadiyā orimatīre antarahito pārimatīre paccuṭṭhāsi saddhiṃ ­bhik­khu­saṃ­ghena

 

 

1.34. 세존께서는 사람들이 저쪽 언덕으로 가고자 하여, 어떤 사람들은 배를 찾고 있고, 어떤 사람들은 뗏목을 찾고 있고, 어떤 사람들은 뗏목을 묶고 있는 것을 보셨다. 그때 세존께서는 이런 의향을 아시고 저쪽 언덕에서 다음과 같은 감흥어를 읊으셨다.

 

바다나 호수나 못을 건너려고 사람들은 다리를 만들거나

뗏목을 묶지만 지혜로운 자들은 이미 건넜다.”

“Ye taranti aṇṇavaṃ saraṃ,
Setuṃ katvāna visajja pallalāni;
Kullañhi jano bandhati,
Tiṇṇā medhāvino janā”ti.

 

 

 

 

 

논점

 

1."마가다의 대신 수니다와 왓사까라는 세존께서 침묵으로 허락하신 것을 알고서 자리에서 일어나 세존께 절을 올리고오른쪽으로[세 번]돌아[경의를 표한]뒤에 물러갔다." 인사를 할 때, 오른쪽으로 세번 도는 이유는?
==>>  

 

 

2."그 무렵에 마가다의 대신인 수니다와 왓사까라가 왓지들을 침략하기 위해서(paṭibāhāyā) 빠딸리 마을에 도시를 건설하고 있었다. 그때 수천이나 되는 많은 신들이 빠딸리 마을에 터를 잡고 있었다. 그 지역에서 큰 위력을 가진 신들이 터를 잡고 있는 곳에는 왕의 측근 대신들 가운데 큰 위력을 가진 자들이 거기에 거처를 건설하도록 그 [대신]들의 마음을 움직였으며, 중간의 신들이 터를 잡고 있는 지역에는 왕의 측근 대신들 가운데 중간 정도의 위력을 가진 자들이 거기에 거처를 건설하도록 그들의 마음을 움직였으며, 낮은 신들이 터를 잡고 있는 지역에는 왕의 측근 대신들 가운데 낮은 위력을 가진 자들이 거기에 거처를 건설하도록 그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이 말은 누구의 말인가?  또한 빠딸리뿟따(지금의 빠뜨나)를 건설하는데 큰 위력을 가진 신들,중간의 신들, 낮은 신들이 각각 그에 상응하는 대신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이유는?  또한 도시를 짓는 것은 왓지국을 침략하기 위해서 (paṭibāhāyā)인가 방어하기 위해서 (paṭibāhāyā)인가?

Now at that time the Magadhan chief ministers Sunīdha and Vassakāra were building up a city at Pāṭaligāma to ward off the Vajjians. 

“Sir, the Magadhan ministers Sunidha and Vassakāra are building a citadel to keep the Vajjis out.”

 

 

(반열반경 도입부)고따마 존자시여, 마가다의 왕 아자따삿뚜 웨데히뿟따는 왓지를 공격하려 합니다. 그는 이와 같이 말했습니다. ‘왓지가 이처럼 크게 번창하고 이처럼 큰 위력을 가졌지만 나는 왓지를 멸망시킬 것이고, 왓지를 파멸시킬 것이고, 왓지가 참극을 당하게 하고야 말 것이다.’라고.”

Rājā, bho gotama, māgadho ajātasattu vedehiputto vajjī abhiyātukāmo. So evamāha: ‘ahaṃ hime vajjī evaṃmahiddhike evaṃma­hānu­bhāve ucchecchāmi vajjī, vināsessāmi vajjī, anayabyasanaṃ āpādessāmī’”ti.

 

 

 

3. "아난다여, 고귀한 사람들이 계속해서 머물고 상인들이 왕래를 계속하는 한, 이곳은 빠딸리뿟따라 불리는 [물품이 가득 든] 통을 풀어놓는 최고의 도시(agganagaraṃ)가 될 것이다. 아난다여, 빠딸리뿟따는 세 가지 재난을 가질 것이니 불로 인한 재난[火災]과 물로 인한 재난[水災]과 상호불신이다.” 이렇게 예언하는 이유? 이 예언은 역사적인 사실이 되었나?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훌륭하구나, 아난아. 이렇게 계획한 것을 보면 우사공이 현명한 것을 알겠구나. 내가 도리천(忉利天)에 있는 모든 신묘천(神妙天)들이 이 땅을 함께 보호하는 것을 보았다. 천상 세계의 모든 천신들의 보호를 받기 때문에 이 땅은 반드시 편안하고 또 귀하게 될 것이다. 또 이 땅은 하늘의 중심이다. 이 땅의 네 분야(分野)를 관리하는 천신의 이름은 인의(仁意)이다. 인의가 보호하는 나라는 오래도록 이어가면서 더욱 훌륭해지며 반드시 성현(聖賢)과 지모(智謀)를 갖춘 사람들이 많이 나와 다른 나라들이 따를 수 없고 또한 파괴시킬 수도 없을 것이다. 이 파린성이 무너질 때에는 꼭 세 가지 일이 원인이 될 것이니, 첫째는 큰 불이요, 둘째는 큰 물이요, 셋째는 성안에 있는 사람이 성밖에 있는 사람과 공모하여 이 성을 파괴하는 것이다.”佛言善哉阿難雨舍公之賢乃知圖此吾見忉利天上諸神妙天共護此地其有土地爲天上諸神所護持者其地必安且貴又此地者天之中也主此四分野之天名曰仁意仁意所護者其國久而益勝必多聖賢智謀之人餘國不及亦無有能壞者是巴鄰城欲壞時當以三事一者大火二者大水三者中人與外人謀乃壞此城

 

 

 

 

 

 

4. "그러자 세존께서는 마치 힘 센 사람이 구부렸던 팔을 펴고 폈던 팔을 구부리는 것처럼 비구 승가와 함께 이쪽 언덕에서 사라져서 저쪽 언덕에 나타나셨다." 이 상황에서 부처님이 이러한 신통력을 쓰신 이유는?

 

* 부처님께서 강가에 이르시니 그 때 많은 백성들이 그 강을 건너려고 작은 배 두 척을 이어 묶은 큰 배[舫舡]를 타는 이도 있었고, 작은 배를 타는 이도 있었고, 대나무로 만든 뗏목을 타고 건너는 이도 있었다.

佛至江水邊時人民大衆多欲度中有乘舫舡者小舡者竹桴度者

부처님께서 앉아서 사유하셨다.‘내가 부처가 되기 전에는 이러한 강들을 건널 때에 뗏목과 배를 타고 건넜지만 지금 나의 몸은 다시는 뗏목과 배를 타고 강을 건너지 않을 것이다.’부처님께서 혼자 생각하셨다.
‘나는 사람들을 제도하는 스승[度人師]으로서 사람들에게 세상 벗어나는 도를 얻게 할지언정 다시는 사람들이 건네 주는 것을 받지 않겠다.’이렇게 생각하시고 나자 모든 비구들이 모두 이미 건너 있었다.

佛坐思念我未作佛時度此曹水乘桴舩度今我身不復乘桴舩度水佛自念言我是度人師使人得度世道不復從人受度念適已諸比丘皆已度(불반니원경(佛般泥洹經) 상권)

 

 

 

 

 

5. "마치 힘 센 사람이 구부렸던 팔을 펴고 폈던 팔을 구부리는 것처럼" 이런 비유가 사용되는 이유는? 

 

 

2023년 4월 13일 목요일 오후 9시에 대반열반경(D16) 여섯번째 <온라인불자회> 공부모임을 시작합니다.

다 같이 합장하고 큰 소리로 합창합니다.

 

나모 따사 바가와또 아라하또 삼마 삼붓다사(Namo tassa bhagavato arahato sammāsambuddhassa)
나모 따사 바가와또 아라하또 삼마 삼붓다사(Namo tassa bhagavato arahato sammāsambuddhassa)
나모 따사 바가와또 아라하또 삼마 삼붓다사(Namo tassa bhagavato arahato sammāsambuddhassa)

 

붓당 사라남 가차미 (Buddham Saranam Gacchami)  부처님께 귀의합니다.(3번)

담망 사라남 가차미 (Dhammam Saranam Gacchami) 가르침에 귀의합니다.()

상강 사라남 가차미 (Sangham Saranam Gacchami)  승가에 귀의합니다.()

 

 

 

 

 

2.1. 그때 세존께서는 아난다 존자를 불러서 말씀하셨다. “아난다여, 이제 꼬띠가마로 가자.”

그렇게 하겠습니다, 세존이시여.”라고 아난다 존자는 세존께 응답했다. 그리하여 세존께서는 많은 비구 승가와 함께 꼬띠가마에 도착하셨다. 세존께서는 거기 꼬띠가마에 머무셨다.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사성제8. Ariya­sacca­kathā

 

2.2. 거기서 세존께서는 비구들을 불러서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四聖諦]를 깨닫지 못하고 꿰뚫지 못하였기 때문에, 나와 그대들은 이처럼 긴 세월을 [이곳에서 저곳으로] 치달리고 윤회하였다.

Tatra sudaṃ bhagavā koṭigāme viharati. Tatra kho bhagavā bhikkhū āmantesi:

“Catunnaṃ, bhikkhave, ariyasaccānaṃ ananubodhā appaṭivedhā evamidaṃ dīghamaddhānaṃ sandhāvitaṃ saṃsaritaṃ mamañceva tumhākañca. 

 

 

어떤 것이 네 가지인가? 비구들이여, 괴로움의 성스러운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꿰뚫지 못하였기 때문에, 나와 그대들은 이처럼 긴 세월을 [이곳에서 저곳으로] 치달리고(sandhāvitaṃ) 윤회하였다(saṃsaritaṃ). 비구들이여, 괴로움의 일어남의 성스러운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꿰뚫지 못하였기 때문에, 나와 그대들은 이처럼 긴 세월을 [이곳에서 저곳으로] 치달리고 윤회하였다. 비구들이여, 괴로움의 소멸의 성스러운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꿰뚫지 못하였기 때문에, 나와 그대들은 이처럼 긴 세월을 [이곳에서 저곳으로] 치달리고 윤회하였다. 비구들이여, 괴로움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닦음의 성스러운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꿰뚫지 못하였기 때문에, 나와 그대들은 이처럼 긴 세월을 [이곳에서 저곳으로] 치달리고 윤회하였다.

Katamesaṃ catunnaṃ? Dukkhassa, bhikkhave, ariyasaccassa ananubodhā appaṭivedhā evamidaṃ dīghamaddhānaṃ sandhāvitaṃ saṃsaritaṃ mamañceva tumhākañca. Duk­kha­sa­muda­yassa, bhikkhave, ariyasaccassa ananubodhā appaṭivedhā evamidaṃ dīghamaddhānaṃ sandhāvitaṃ saṃsaritaṃ mamañceva tumhākañca. Duk­kha­nirodhassa, bhikkhave, ariyasaccassa ananubodhā appaṭivedhā evamidaṃ dīghamaddhānaṃ sandhāvitaṃ saṃsaritaṃ mamañceva tumhākañca. Duk­kha­nirodha­gāminiyā paṭipadāya, bhikkhave, ariyasaccassa ananubodhā appaṭivedhā evamidaṃ dīghamaddhānaṃ sandhāvitaṃ saṃsaritaṃ mamañceva tumhākañca.

 

비구들이여, 이제 괴로움의 성스러운 진리를 깨닫고 꿰뚫었다. 괴로움의 일어남의 성스러운 진리를 깨닫고 꿰뚫었다. 괴로움의 소멸의 성스러운 진리를 깨닫고 꿰뚫었다. 괴로움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닦음의 성스러운 진리를 깨닫고 꿰뚫었다. 그러므로 존재에 대한 갈애(bhavataṇhā)는 잘라졌고, 존재로 인도함(khīṇā bhavanetti)은 부수어졌으며, 다시 태어남은 이제 더 이상 존재하지(punabbhavo) 않는다.”

 Tayidaṃ, bhikkhave, dukkhaṃ ariyasaccaṃ anubuddhaṃ paṭividdhaṃ, duk­kha­sa­muda­yaṃ ariyasaccaṃ anubuddhaṃ paṭividdhaṃ, dukkhanirodhaṃ ariyasaccaṃ anubuddhaṃ paṭividdhaṃ, duk­kha­nirodha­gāminī paṭipadā ariyasaccaṃ anubuddhaṃ paṭividdhaṃ, ucchinnā bhavataṇhā, khīṇā bhavanetti, natthi dāni punabbhavo”ti.

 

 

2.3.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선서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신 뒤 다시 [게송으로] 이와 같이 설하셨다.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들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했기 때문에

긴 세월을 이 생 저 생으로 치달려왔다.

이제 이 [네 가지 진리]들을 보았다.

존재로 인도함을 근절하였다.

괴로움의 뿌리를 잘라버렸다.

이제 다시 태어남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2.4. 참으로 이렇게 세존께서는 꼬띠가마에 머무시면서 많은 비구들에게 법에 관한 말씀을 하셨다. “이러한 것이 계다. 이러한 것이 삼매다. 이러한 것이 통찰지다. 계를 철저히 닦아서 생긴 삼매는 큰 결실이 있고 큰 이익이 있다. 삼매를 철저히 닦아서 생긴 통찰지는 큰 결실이 있고 큰 이익이 있다. 통찰지를 철저히 닦아서 생긴 마음은 바르게 번뇌들로부터 해탈하나니, 바로 이 감각적 욕망에 기인한 번뇌와 존재에 기인한 번뇌와 무명에 기인한 번뇌이다.”라고.

 

 

윤회를 벗어나 깨달음으로 향하는 자들 9. Anāvat­ti­dhamma ­sam­bodhi­ parā­yaṇa

 

2.5. 그때 세존께서는 꼬띠가마에서 원하는 만큼 머무신 뒤 아난다 존자를 불러서 말씀하셨다. “아난다여, 이제 나디까로 가자.”

그렇게 하겠습니다, 세존이시여.”라고 아난다 존자는 세존께 응답했다. 그리하여 세존께서는 많은 비구 승가와 함께 나디까에 도착하셨다. 세존께서는 거기 나디까에서 벽돌집에 머무셨다.

Atha kho bhagavā koṭigāme yathābhirantaṃ viharitvā āyasmantaṃ ānandaṃ āmantesi: “āyāmānanda, yena nātikā tenu­paṅ­kamissāmā”ti. “Evaṃ, bhante”ti kho āyasmā ānando bhagavato paccassosi. Atha kho bhagavā mahatā ­bhik­khu­saṃ­ghena saddhiṃ yena nātikā tadavasari. 

 

 

2.6. 그때 아난다 존자는 세존께 다가갔다. 가서는 세존께 절을 올리고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아서 아난다 존자는 세존께 이와 같이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살하라는 비구가 나디까에서 임종을 했습니다. 그의 태어날 곳[行処]은 어디이고 그는 내세에 무엇이 되겠습니까? 세존이시여, 난다라는 비구니가 나디까에서 임종을 했습니다. 그의 태어날 곳은 어디이고 그는 내세에 무엇이 되겠습니까? 세존이시여, 수닷따라는 청신사가 나디까에서 임종을 했습니다. 그의 태어날 곳은 어디이고 그는 내세에 무엇이 되겠습니까? 세존이시여, 수자따라는 청신녀가 나디까에서 임종을 했습니다. 그의 태어날 곳은 어디이고 그는 내세에 무엇이 되겠습니까? 세존이시여, 까꾸다라는 청신사가  깔링가라는 청신사가  니까따라는 청신사가  까띳사바라는 청신사가  뚯타라는 청신사가  산뚯타라는 청신사가  밧다라는 청신사가  수밧다라는 청신사가 나디까에서 임종을 했습니다. 그의 태어날 곳은 어디이고 그는 내세에 무엇이 되겠습니까?”

 

2.7. “아난다여, 살하 비구는 모든 번뇌가 다하여 아무 번뇌가 없는 마음의 해탈[心解脱]과 통찰지의 해탈[慧解脱]을 바로 지금여기에서 스스로 최상의 지혜로 실현하고 구족하여 머물렀다.[阿羅漢]

“Sāḷho, ānanda, bhikkhu āsavānaṃ khayā anāsavaṃ cetovimuttiṃ paññāvimuttiṃ diṭṭheva dhamme sayaṃ abhiññā sacchikatvā upasampajja vihāsi.

 

아난다여, 난다 비구니는 다섯 가지 낮은 단계의 족쇄를 완전히 없애고 [정거천에] 화생하여 그곳에서 완전히 열반에 들어 그 세계로부터 다시 돌아오지 않는 법을 얻었다.[不還者]

 Nandā, ānanda, bhikkhunī pañcannaṃ orambhāgiyānaṃ saṃyojanānaṃ parikkhayā opapātikā tattha parinibbāyinī anāvattidhammā tasmā lokā.

 

아난다여, 수닷따 청신사는 세 가지 족쇄를 완전히 없애고 탐욕과 성냄과 미혹이 엷어져서 한 번만 더 돌아올 자[一来者]가 되어, 한 번만 이 세상에 와서 괴로움의 끝을 만들 것이다.

 Sudatto, ānanda, upāsako tiṇṇaṃ saṃyojanānaṃ parikkhayā rāgado­samohā­naṃ tanuttā sakadāgāmī sakideva imaṃ lokaṃ āgantvā dukkhassantaṃ karissati. 

 

아난다여, 수자따 청신녀는 세 가지 족쇄를 완전히 없애고 흐름에 든 자[預流者]가 되어, [악취에] 떨어지지 않는 법을 가지고 [해탈이] 확실하며 정등각으로 나아가는 자가 되었다.

Sujātā, ānanda, upāsikā tiṇṇaṁ saṁyojanānaṁ parikkhayā sotāpannā avinipātadhammā niyatā sambodhiparāyaṇā.

 

아난다여, 까꾸다Kukkuṭo 청신사는 다섯 가지 낮은 단계의 족쇄를 완전히 없애고 [정거천에] 화생하여 그곳에서 완전히 열반에 들어 그 세계로부터 다시 돌아오지 않는 법을 얻었다.

아난다여, 깔링가 청신사는  니까따 청신사는  까띳사바 청신사는  뚯타 청신사는  산뚯타 청신사는  밧다 청신사는  수밧다 청신사는 다섯 가지 낮은 단계의 족쇄를 완전히 없애고 [정거천에] 화생하여 그곳에서 완전히 열반에 들어 그 세계로부터 다시 돌아오지 않는 법을 얻었다.

 

 

아난다여, 50명이 넘는 나디까의 청신사들은 임종하여 다섯 가지 낮은 단계의 족쇄를 완전히 없애고 [정거천에] 화생하여 그곳에서 완전히 열반에 들어 그 세계로부터 다시 돌아오지 않는 법을 얻었다.[不還者]

아난다여, 90명이 넘는 나디까의 청신사들은 임종하여 세 가지 족쇄를 완전히 없애고 탐욕과 성냄과 미혹이 엷어져서 한 번만 더 돌아올 자[一来者]가 되어, 한 번만 이 세상에 와서 괴로움의 끝을 만들 것이다.

아난다여, 500명이 넘는 나디까의 청신사들은 임종하여 세 가지 족쇄를 완전히 없애고 흐름에 든 자[預流者]가 되어, [악취에] 떨어지지 않는 법을 가지고 [해탈이] 확실하며 정등각으로 나아가는 자가 되었다.”

 

법의 거울[法鏡dhammādāso]에 대한 법문   

 

2.8. "아난다여, 이와 같이 죽은 뒤의 일에 대해 아는 것은 여래에게 있어서 어렵거나 놀랄 만한 일이 아니다. 그러나 이런저런 사람이 죽을 후 일일이 여래에게 찾아와서 묻는다면 이것은 여래에게 번거로운 일이다. 

아난다여, 그러므로 여기서 '법의 거울[法鏡]'이라는 법문을 하리니 이것을 구족한 성스러운 제자는 그가 원하기만 하면 ‘나는 지옥을 부수었다. 나는 축생의 모태를 부수었고, 아귀계를 부수었으며, 나는 처참한 곳, 불행한 곳, 파멸처를 부수어서 흐름에 든 자가 되어, 악취에 떨어지지 않는 법을 가지고 해탈이 확실하며 정등각으로 나아가는 자가 되었다.’라고 스스로 자신에게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2.9. "아난다여, 그러면 어떤 것이 그 법의 거울(dhammādāso)이라는 법문이기에 이것을 구족한 성스러운 제자는 그가 원하기만 하면 ‘나는 지옥을 부수었다. 나는 축생의 모태를 부수었고, 아귀계를 부수었으며, 나는 처참한 곳, 불행한 곳, 파멸처를 부수어서 흐름에 든 자가 되어, 악취에 떨어지지 않는 법을 가지고 해탈이 확실하며 정등각으로 나아가는 자가 되었다.’ 라고 스스로 자신에게 설명할 수 있는가?

 

아난다여, 여기 성스러운 제자는

 

‘이런 [이유로] 그분 세존께서는

아라한[應供. 응공]이시며,

바르고 완전히 깨달으신 분[正等覺. 정등각]이며,

지혜와 실천이 구족하신 분[明行足. 명행족]이시며,

피안으로 잘 가신 분[善逝. 선서]이시며,

세간을 잘 알고 계신 분[世間解. 세간해]이시며,

위 없는 분[無上士. 무상사]이시며,

사람을 잘 길들이는 분[調御丈夫. 조어장부]이시며,

하늘과 인간의 스승[天人師. 천인사]이시며,

깨달은 분[佛.. 불]이시며,

존귀하신 분[世尊. 세존]이시다"라고

움직이지 않는 깨끗한 믿음(aveccappasādena)을 지닌다.

 

‘세존에 의해 잘 설해진 이 가르침은 

스스로 보아 알 수 있고(진리를 깨달을 수 있는 것),

시간이 걸리지 않고(때를 놓치지 않고 효과적으로 나타내는 것),

와서 보라는 것이고,

향상으로 인도하고,

현자들이 각자 알아야 하는 것이다."라고

법에 움직이지 않는 깨끗한 믿음을 지닌다.

    

세존의 제자들의 모임인 승가는 잘 도를 닦고(실천 수행하고), 

세존의 제자들의 모임인 승가는 바르게 도를 닦고, 

세존의 제자들의 모임인 승가는 참되게 도를 닦고, 

세존의 제자들의 모임인 승가는 합당하게 도를 닦으니, 

곧 네 쌍의 인간들이요[四雙] 여덟단계에 있는 사람들[八輩]이시다. 

이러한 세존의 제자들의 모임인 승가는 공양받아 마땅하고, 대접받아 마땅하고, 보시받아 마땅하고, 세상의 위없는(anuttaraṁ ) 복밭(福田,puññakkhettaṁ)이시다.'라고 승가에 움직이지 않는 청정한 믿음을 지닌다.

 

성자들이 좋아하며 훼손되지 않았고 구멍나지 오점이 없고 얼룩이 없고 벗어나게 하고 현자들이 찬탄하고, 원만하게 삼매에 도움이 되는 계를 구족한다.

  

아난다여, 이것이 법의 거울[法鏡,dhammādāso]이라는 법문이니 이것을 구족한 성스러운 제자는 그가 원하기만 하면 ‘나는 지옥을 부수었다. 나는 축생의 모태를 부수었고, 아귀계를 부수었으며, 나는 처참한 곳, 불행한 곳, 파멸처를 부수어서 흐름에 든 자[預流者]가 되어, 악취에 떨어지지 않는 법을 가지고 해탈이 확실하며 정등각으로 나아가는 자가 되었다.’라고 스스로 자신에 대해서 설명을 할 수 있다."   Ayaṁ kho so, ānanda, dhammādāso dhammapariyāyo, yena samannāgato ariyasāvako ākaṅkhamāno attanāva attānaṁ byākareyya:

‘khīṇanirayomhi khīṇatiracchānayoni khīṇapettivisayo khīṇāpāyaduggativinipāto, sotāpannohamasmi avinipātadhammo 

niyato sambodhiparāyaṇo’”ti.

 

2.10. 세존께서는 나디까에 머무시면서 많은 비구들에게 이러한 법에 관한 말씀을 하셨다. 

“이러한 것이 계다. 이러한 것이 삼매다. 이러한 것이 통찰지다. 계를 철저히 닦아서 생긴 삼매는 큰 결실이 있고 큰 이익이 있다. 삼매를 철저히 닦아서 생긴 통찰지는 큰 결실이 있고 큰 이익이 있다. 통찰지를 철저히 닦아서 생긴 마음은 바르게 번뇌들로부터 해탈하나니, 그 번뇌들은 바로 이 감각적 욕망에 기인한 번뇌와 존재에 기인한 번뇌와 무명에 기인한 번뇌이다.” 라고.

 


18분이 참여하여 진지하고 의미있는 토론을 진행하였습니다. 어제 이야기된 내용들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논점

 

1. "괴로움의 성스러운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꿰뚫지 못하였기 때문에,나와 그대들은 이처럼 긴 세월을[이곳에서 저곳으로]치달리고 윤회하였다."   평상시에 우리는 누구나 '괴로움'을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아는 괴로움과  '괴로움의 성스러운 진리'를 아는 것과 어떤 차이가 있을까

--고고, 괴고,행고를 다 알때 성스러운 진리를 아는 것이다.  다른 말로 성자가 되어야 ....탐진치가 소멸해야...취착이 없어야...성스러운 진리를 아는 것이다.  

 

 

2."이와 같이 죽은 뒤의 일에 대해 아는 것은 여래에게 있어서 어렵거나 놀랄 만한 일이 아니다."라는 부처님의 말씀을 들어보면 '윤회'가 있는 것 같은데 여러분들의 생각은 ?

----불교는 존재론도 인식론도 아닌 연기론이다. 연기론은 괴로움의 발생과 소멸을 밝히는 교설이다. 불일불이의 교설이다. 이렇게 이해하지 못하면 부처님이 염려하였던 무기와 희론으로 넘어간다. 윤회의 주체를 묻는 자도 윤회하고, 촛불의 비유를 들어 무아윤회를 설명하는 자도 윤회한다. 다만 탐진치를 없애고, 취착(upadana)을 없애야 윤회하지 않는다. 

 

 

 

3.요즘 사찰의 법당안에는 복전함(福田函), 불전함(佛田函) , 시주함(施主函), 보시함(報施函)등의 상자가 있다. 어떠한 이름을 사용해야 가장 공덕이 크다고 할수 있나? 

---"위없는(anuttaraṁ ) 복밭(福田,puññakkhettaṁ)"에 보시하는 것은 승가공동체에 보시하는 것이고 가장 큰 공덕을 가져온다.그러므로 시주함의 이름은 '복전함'이 되어야 한다. 

 

 

 

4."이것이 법의 거울[法鏡]이라는 법문이니 이것을 구족한 성스러운 제자는 그가 원하기만 하면 ‘나는 지옥을 부수었다. 나는 축생의 모태를 부수었고, 아귀계를 부수었으며, 나는 처참한 곳, 불행한 곳, 파멸처를 부수어서 흐름에 든 자[預流者]가 되어, 악취에 떨어지지 않는 법을 가지고 해탈이 확실하며 정등각으로 나아가는 자가 되었다.’라고 스스로 자신에 대해서 설명을 할 수 있다."

 

이렇게 예류자가 된 자는 스스로 자신의 내생을 예언할 수 있는데, 스승의 인가가 필요하다고 하는 가르침은 왜 그럴까? 라는 논점에 대해서 정리한다.

 

이 대목을 읽고 '삼귀의한 자'는 모두 예류과를 얻은 성자다라고 보는 이가 있다. 그러면서 "세가지 족쇄를 없앤 사람을 예류과라고 한다"는 문장은 후대에 생겨난 사상으로 이해한다. 기회만 되면 니까야가 후대에 편집되었다는 주장을 한다. 

 

고성제를 '성스로운 괴로움의 진리', 혹은 '괴로움을 보는 성자들의 진리'라고 설명한다면 어떻게 여기서 '삼귀의한 자'는 모두 예류과를 얻은 성자다라고 말할수 있는가? 성자라는 단어가 들어가면 이미 최소한 "세가지 족쇄를 없앤 예류자"를 뜻한다. 그래서 "성스러운 제자는 그가 원하기만 하면"이라고 조건을 붙인 것이다.

또한 "움직이지 않는 깨끗한 믿음(aveccappasādena)"이란 표현은  "세가지 족쇄를 없앤"경지를 의미한다. 표현은 달라도 내용은 모두 예류과의 특징을 말하는 것이다. 움직이지 없는 경(A10:64)에서도 “비구들이여, 내게 움직임이 없는 청정한 믿음(aveccappasannā)을 가진 자들은 모두 예류자들이다."라고 나타나고 있다. 표현이 다르지만 같은 내용임을 이해하지 못하고 후대에 편집된 것이라고 보는 것은 제대로 이해를 못한 것이다. 

 

 

움직이지 없는 경(A10:64) Avecca-sutta

비구들이여, 내게 움직임이 없는 청정한 믿음을 가진 자들은 모두 흐름에 든 자들이다. 흐름에 든 자들 가운데 다섯은 여기 [이 세상에서] 완성에 [도달하는 자], 다섯은 여기를 떠난 뒤에 완성에 [도달하는 자]이다.”

“Ye keci, bhikkhave, mayi aveccappasannā, sabbe te sotāpannā. Tesaṃ sotāpannānaṃ pañcannaṃ idha niṭṭhā, pañcannaṃ idha vihāya niṭṭhā. 

 
 
 
 

 

 

 

2023년 4월 20일 목요일 오후 9시에 대반열반경(D16) 일곱번째 <온라인불자회> 공부모임을 시작합니다.

다 같이 합장하고 큰 소리로 합창합니다.

 

나모 따사 바가와또 아라하또 삼마 삼붓다사(Namo tassa bhagavato arahato sammāsambuddhassa)
나모 따사 바가와또 아라하또 삼마 삼붓다사(Namo tassa bhagavato arahato sammāsambuddhassa)
나모 따사 바가와또 아라하또 삼마 삼붓다사(Namo tassa bhagavato arahato sammāsambuddhassa)

 

붓당 사라남 가차미 (Buddham Saranam Gacchami)  부처님께 귀의합니다.(3번)

담망 사라남 가차미 (Dhammam Saranam Gacchami) 가르침에 귀의합니다.()

상강 사라남 가차미 (Sangham Saranam Gacchami)  승가에 귀의합니다.()

 

 

 

마음챙김과 알아차림[正念正知]

 

2.11. 그때 세존께서는 나디까에서 원하는 만큼 머무신 뒤 아난다존자를 불러서 말씀하셨다. "아난다여, 이제 웨살리로 가자."  "그렇게 하겠습니다. 세존이시여."라고 아난다 존자는 세존께 응답했다. 그리하여 세존께서는 많은 비구 승가와 함께 웨살리에 도착하셨다. 세존께서는 거기 웨살리에서 암바빨리 숲(ambapālivane)에 머무셨다.

Tatra sudaṃ bhagavā vesāliyaṃ viharati ambapālivane. 

 

2.12. 거기서 세존께서는 비구들을 불러서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비구는 마음챙기고 알아차리면서[正念正知] 머물러야 한다. 이것이 그대들에게 주는 나의 간곡한 당부(가르침,anusāsanī)이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떻게 비구는 마음챙기는가?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몸에서 몸을 관찰하며[身随観] 머문다. 세상에 대한 욕심과 싫어하는 마음을 버리면서 근면하게, 분명히 알아차리고 마음챙기는 자 되어 머문다. 느낌에서 느낌을 관찰하며[受随観] 머문다.  마음에서 마음을 관찰하며[心随観] 머문다.  법에서 법을 관찰하며[法随観] 머문다. 세상에 대한 욕심과 싫어하는 마음을 버리면서 근면하게, 분명히 알아차리고 마음챙기는 자 되어 머문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비구는 마음챙긴다.”

“Sato, bhikkhave, bhikkhu vihareyya sampajāno, ayaṃ vo amhākaṃ anusāsanī. Kathañca, bhikkhave, bhikkhu sato hoti? Idha, bhikkhave, bhikkhu kāye kāyānupassī viharati ātāpī sampajāno satimā vineyya loke abhij­jhā­do­manas­saṃ. Vedanāsu vedanānupassī … pe … citte cittānupassī … pe … dhammesu dhammānupassī viharati ātāpī sampajāno satimā vineyya loke abhij­jhā­do­manas­saṃ. Evaṃ kho, bhikkhave, bhikkhu sato hoti.

 

2.13. “비구들이여, 비구는 어떻게 알아차리는가? 비구들이여, 비구는 나아갈 때도 물러날 때도 [자신의 거동을] 분명히 알면서[正知] 행한다. 앞을 볼 때도 돌아볼 때도 분명히 알면서 행한다. 구부릴 때도 펼 때도 분명히 알면서 행한다. 가사ㆍ발우ㆍ의복을 지닐 때도 분명히 알면서 행한다. 먹을 때도 마실 때도 씹을 때도 맛볼 때도 분명히 알면서 행한다. 대소변을 볼 때도 분명히 알면서 행한다. 걸으면서ㆍ서면서ㆍ앉으면서ㆍ잠들면서ㆍ잠을 깨면서ㆍ말하면서ㆍ침묵하면서도 분명히 알면서 행한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비구는 알아차린다. 비구들이여, 비구는 마음챙기고 알아차리면서 머물러야 한다. 이것이 그대들에게 주는 나의 간곡한 당부(가르침,anusāsanī)이다.”

Kathañca, bhikkhave, bhikkhu sampajāno hoti? Idha, bhikkhave, bhikkhu abhikkante paṭikkante sampajānakārī hoti, ālokite vilokite sampajānakārī hoti, samiñjite pasārite sampajānakārī hoti, saṅghā­ṭi­patta­cīvara­dhāraṇe sampajānakārī hoti, asite pīte khāyite sāyite sampajānakārī hoti, uccāra­passā­va­kamme sampajānakārī hoti, gate ṭhite nisinne sutte jāgarite bhāsite tuṇhībhāve sampajānakārī hoti. Evaṃ kho, bhikkhave, bhikkhu sampajāno hoti. Sato, bhikkhave, bhikkhu vihareyya sampajāno, ayaṃ vo amhākaṃ anusāsanī”ti.

 

암바빨리 기녀  11. Ambapālīgaṇikā

 

2.14. 그때 암바빨리 기녀는 세존께서 웨살리에 오셔서 나의 망고 숲(mayhaṃ ambavane)에 머물고 계신다.’고 들었다. 그러자 암바빨리 기녀는 아주 멋진 마차들을 준비하게 하고 아주 멋진 마차에 올라서 아주 멋진 마차들을 거느리고 웨살리를 나가서 자신의 망고 숲으로 들어갔다. 더 이상 마차로 갈 수 없는 곳에 이르자 마차에서 내린 뒤 걸어서 세존께로 다가갔다. 가서는 세존께 절을 올린 뒤 한 곁에 앉았다. 세존께서는 한 곁에 앉은 암바빨리 기녀에게 법을 설하시고 격려하시고 분발하게 하시고 기쁘게 하셨다. 그러자 암바빨리 기녀는 세존께서 설하신 법을 [듣고] 격려 받고 분발하고 기뻐하여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비구 승가와 함께 내일 저희들의 공양을 허락하여 주십시오.”

세존께서는 침묵으로 허락하셨다. 암바빨리 기녀는 세존께서 허락하신 것을 알고서 자리에서 일어나 세존께 절을 올리고 오른쪽으로 [세 번] 돌아 [경의를 표한] 뒤에 물러갔다.

Assosi kho ambapālī gaṇikā: “bhagavā kira vesāliṃ anuppatto vesāliyaṃ viharati mayhaṃ ambavane”ti. Atha kho ambapālī gaṇikā bhaddāni bhaddāni yānāni yojāpetvā bhaddaṃ bhaddaṃ yānaṃ abhiruhitvā bhaddehi bhaddehi yānehi vesāliyā niyyāsi. Yena sako ārāmo tena pāyāsi. Yāvatikā yānassa bhūmi, yānena gantvā, yānā paccorohitvā pattikāva yena bhagavā tenupasaṅkami; upasaṅkamitvā bhagavantaṃ abhivādetvā ekamantaṃ nisīdi. Ekamantaṃ nisinnaṃ kho ambapāliṃ gaṇikaṃ bhagavā dhammiyā kathāya sandassesi samādapesi samuttejesi sampahaṃsesi. Atha kho ambapālī gaṇikā bhagavatā dhammiyā kathāya sandassitā samādapitā samuttejitā sampahaṃsitā bhagavantaṃ etadavoca: “adhivāsetu me, bhante, bhagavā svātanāya bhattaṃ saddhiṃ ­bhik­khu­saṃ­ghenā”ti. Adhivāsesi bhagavā tuṇhībhāvena. Atha kho ambapālī gaṇikā bhagavato adhivāsanaṃ viditvā uṭṭhāyāsanā bhagavantaṃ abhivādetvā padakkhiṇaṃ katvā pakkāmi.

 

2.15. 웨살리에 사는 릿차위들도 세존께서 웨살리에 오셔서 암바빨리 숲에 머무신다고 들었다. 그러자 릿차위들은 아주 멋진 마차들을 준비하게 하고 아주 멋진 마차에 올라서 아주 멋진 마차들을 거느리고 웨살리를 나갔다. 거기서 어떤 릿차위들은 푸른 색깔과 푸른 옷감과 푸른 장식을 하여 푸른색이었고, 어떤 릿차위들은 노란 색깔과 노란 옷감과 노란 장식을 하여 노란색이었고, 어떤 릿차위들은 붉은 색깔과 붉은 옷감과 붉은 장식을 하여 붉은색이었고, 어떤 릿차위들은 흰 색깔과 흰 옷감과 흰 장식을 하여 흰색이었다.

 

2.16. 그때 암바빨리 기녀는 차축은 차축끼리, 바퀴는 바퀴끼리, 멍에는 멍에끼리 릿차위의 젊은이들과 부딪히게 [마차를 몰면서 왔다]. 그러자 릿차위들은 암바빨리 기녀에게 이렇게 말했다.

여보시오, 암바빨리님, 왜 그대는 차축은 차축끼리, 바퀴는 바퀴끼리, 멍에는 멍에끼리 릿차위의 젊은이들과 부딪히게 [마차를 모는가요]?”

젊은 분들이여, 세존께서 비구 승가와 함께 내일 저의 공양에 초대되었기 때문입니다.”

여보시오, 암바빨리님, 그러면 십만의 []으로 그 공양을 우리에게 파시오.”

“Dehi, je ambapāli, etaṃ bhattaṃ satasahassenā”ti. 

 

젊은 분들이여, 만일 그대들이 제게 웨살리를 음식을 [얻을 수 있는 지방까지] 포함해서 다 준다 하더라도 이와 같은 중요한 공양은 그대들에게 드릴 수가 없군요.”

“Sacepi me, ayyaputtā, vesāliṃ sāhāraṃ dassatha, evamahaṃ taṃ bhattaṃ na dassāmī”ti

 

그러자 릿차위들은 손가락을 튕기면서 말했다. “여보게들, 우리가 이 망고지기 여인에게 져버렸네. 여보게들, 우리가 이 망고지기 여인에게 속아버렸네.그러면서 그 릿차위들은 암바빨리 숲으로 들어갔다.

Atha kho te licchavī aṅguliṃ phoṭesuṃ: “jitamha vata bho ambakāya, jitamha vata bho ambakāyā”ti.

 

2.17. 세존께서는 릿차위들이 멀리서 오는 것을 보시고서 비구들을 불러서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비구들 가운데서 삼십삼천의 신들을 아직 보지 못한 자들은 릿차위의 회중을 보거라. 비구들이여, 릿차위의 회중을 잘 살펴 보거라. 비구들이여, 그대들은 릿차위의 회중이 삼십삼천을 닮은 것을 보게 될 것이다.”

yesaṃ, bhikkhave, bhikkhūnaṃ devā tāvatiṃsā adiṭṭhapubbā, oloketha, bhikkhave, ­liccha­vi­parisaṃ; apaloketha, bhikkhave, ­liccha­vi­parisaṃ; upasaṃharatha, bhikkhave, ­liccha­vi­parisaṃ—tāvatiṃ­sa­sadisan”ti.

 

2.18. 그때 릿차위들은 더 이상 마차로 갈 수 없는 곳에 이르자 마차에서 내린 뒤 걸어서 세존께로 다가갔다. 가서는 세존께 절을 올린 뒤 한 곁에 앉았다. 세존께서는 한 곁에 앉은 릿차위들에게 법을 설하시고 격려하시고 분발하게 하시고 기쁘게 하셨다. 그러자 릿차위들은 세존께서 설하신 법을 [듣고] 격려 받고 분발하고 기뻐하여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비구 승가와 함께 내일 저희들의 공양을 허락하여 주십시오.”

릿차위들이여, 나는 이미 내일 암바빨리 기녀의 공양을 허락하였다.”

그러자 릿차위들은 손가락을 튕기면서 말했다. “여보게들, 우리가 이 망고지기 여인에게 져버렸네. 여보게들, 우리가 이 망고지기 여인에게 속아버렸네.”

그리고 릿차위들은 세존의 말씀을 기뻐하고 감사드린 뒤 자리에서 일어나 물러갔다.

 

2.19. 암바빨리 기녀는 그 밤이 지나자 자신의 집에서 맛있는 여러 음식을 준비하게 한 뒤 세존께 시간을 알려드렸다. “세존이시여, [가실] 시간이 되었습니다. 음식이 준비되었습니다.”라고.

그때 세존께서는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발우와 가사를 수하시고 비구 승가와 함께 오전에 암바빨리 기녀의 집으로 가셨다. 가셔서는 비구 승가와 함께 지정된 자리에 앉으셨다. 그러자 암바빨리 기녀는 부처님을 상수로 하는 비구 승가에게 맛있는 여러 음식을 자기 손으로 직접 대접하고 드시게 했다. 세존께서 공양을 마치시고 그릇에서 손을 떼시자 암바빨리 기녀는 어떤 낮은 자리를 잡아서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아서 암바빨리 기녀는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이 원림을 부처님을 상수로 한 비구 승가께 드립니다.” 세존께서는 원림을 받으셨다. 그리고 세존께서는 암바빨리 기녀에게 법을 설하시고 격려하시고 분발하게 하시고 기쁘게 하신 뒤 자리에서 일어나 가시었다.

“imāhaṃ, bhante, ārāmaṃ buddhap­pamu­khassa ­bhik­khu­saṅghassa dammī”ti. Paṭiggahesi bhagavā ārāmaṃ.

Atha kho bhagavā ambapāliṃ gaṇikaṃ dhammiyā kathāya sandassetvā samādapetvā samuttejetvā sampahaṃsetvā uṭṭhāyāsanā pakkāmi.

 

 

2.20. 참으로 이렇게 세존께서는 웨살리에서 암바빨리 숲(ambapālivane)에 머무시면서 많은 비구들에게 법에 관한 말씀을 하셨다. “이러한 것이 계다. 이러한 것이 삼매다. 이러한 것이 통찰지다. 계를 철저히 닦아서 생긴 삼매는 큰 결실이 있고 큰 이익이 있다. 삼매를 철저히 닦아서 생긴 통찰지는 큰 결실이 있고 큰 이익이 있다. 통찰지를 철저히 닦아서 생긴 마음은 바르게 번뇌들로부터 해탈하나니, 바로 이 감각적 욕망에 기인한 번뇌와 존재에 기인한 번뇌와 무명에 기인한 번뇌이다.”라고.

 

 

 

 

 

 

 

논점

 

 

1.비구들이여, 비구는 마음챙기고 알아차리면서[正念正知] 머물러야 한다. 이것이 그대들에게 주는 나의 간곡한 당부(가르침)이다(Sato, bhikkhave, bhikkhu vihareyya sampajāno, ayaṃ vo amhākaṃ anusāsanī)"

...마음챙기고(Sato正念) 알아차리면서(sampajāno正知)에 대한 적절한 번역은? 

 

*sati:f.[Sk.smṛti<sarati ②] 念,憶念,記憶,正念.-asammuṭṭha 明確不忘の念.-ākāra 念の行相.-indriya 念根.-uppāda 念の生起.-cariyā 念行.-paṭṭhāna 念処,念住.-vinaya 憶念毘尼.-vepulla 念広大.-saṃvara 念律儀.-

 

*sampajañña 念正知,正念正知.-sambojjhaṅga 念等覚支.-sammosa,-sammoha 念忘失,忘念,失念.

sampajāna:a.[<saṃ-pa-jñā,BSk.samprajāna] 正知の,意識的の,正知者; 故意の.-kārin 正知の作者,意識してなす.-musāvāda 故意の妄語,意識的の妄言(うそ).

 

 

 

2.암바빨리님, 그러면 십만의 []으로 그 공양을 우리에게 파시오(Dehi, je ambapāli, etaṃ bhattaṃ satasahassenā”ti)

젊은 분들이여, 만일 그대들이 제게 웨살리를 음식을 [얻을 수 있는 지방까지] 포함해서 다 준다 하더라도 이와 같은 중요한 공양은 그대들에게 드릴 수가 없군요.(Sacepi me, ayyaputtā, vesāliṃ sāhāraṃ dassatha, evamahaṃ taṃ bhattaṃ na dassāmī”ti)

전재성번역 - 그 공양을 십만금에 양도하십시오.” 

귀공자들이여, 베쌀리 영지를 다 준다고 하여도 저는 그 공양을 양도하지 않을 것입니다.”

 

....십만의 돈 혹은 십만의 분의 음식? 

 

* Bhatta,【中】 飯,食物,餐。boiled rice; food; meal.

* kahāpaṇa:m 貨幣,金貨,銀貨,銅貨,貨幣の単位 [4 pāda,20 māsaka] 

* Sāhāra,(adj.) [sa+āhāra] with its food ,食ある,食[領土]を含める

「ご令息がた、たとえあなた方が私にヴェーサーリーを領土として下さったとしても、私はそのようにこの食事〔を供する権利〕をお譲りすることはないでしょう」

“Masters, even if you were to give me Vesālī with her fiefdoms, I still wouldn’t give that meal to you.”

 

 

 

 

 

3.세존이시여, 이 원림을 부처님을 상수로 한 비구 승가께 드립니다.(imāhaṃ, bhante, ārāmaṃ buddhap­pamu­khassa ­bhik­khu­saṅghassa dammī”ti)"

부처님이 일러주지않아도 재가자들이  알아서 승가에 보시하고 있다. 이러한 전통은 언제부터 생겼을까? 

 

 

 

 

 

 

 

4.아래는 장로니게에 실려있는 암바빨리 비구니가 남긴 시다.  '암바빨리'에 대해서 이야기 해보자

 

1.

검은 색으로 말벌의 색깔 같은

나의 모발은 끝이 말려있었으나,

늙어서 대마의 껍질과 같으니.

진리를 말하는 님의 말씀은 틀림이 없다.

 

2.

좋은 향을 담은 상자와 같은

나의 머리는 꽃으로 덮여 있었으나,

늙어서 토끼털처럼 냄새가 나니,

진리를 말하는 님의 말씀은 틀림이 없다.

 

3.

잘 심어져 수풀처럼 무성하고

빗과 핀으로 나뉜 머리끝이 아름답게 장식되었으나,

늙어서 드문드문 희박하니,

진리를 말하는 님의 말씀은 틀림이 없다.

 

4.

유연하고 향내나고 금으로 치장된

땋은 머리가 장식으로 아름다웠으나,

늙어서 대머리가 되었으니,

진리를 말하는 님의 말씀은 틀림이 없다.

 

5.

화가가 잘 그려진 그림처럼

예전에 나의 아름다운 눈썹은 아름다웠으나,

늙어서 주름지고 축 늘어졌으니,

진리를 말하는 님의 말씀은 틀림이 없다.

 

6.

보석처럼 빛나고 반짝였던

나의 두 눈은 감청색으로 커다랬으나,

늙어서 흐리멍덩해졌으니,

진리를 말하는 님의 말씀은 틀림이 없다.

 

7.

부드러운 산봉우리처럼,

젊음이 한창일 때에 나의 코는 아름다웠으나,

늙어서 말라비틀어진 식물줄기와 같으니,

진리를 말하는 님의 말씀은 틀림이 없다.

 

8.

잘 만들어지고 잘 마감된 팔찌처럼

참으로 나의 귓불은 아름다웠지만,

늙어서 주름지고 축 늘어졌으니,

진리를 말하는 님의 말씀은 틀림이 없다.

 

9.

파초의 돋아난 새싹의 색깔과 같아

예전의 나의 이빨은 아름다웠으나,

늙어서 부서지고 검게 변했으니,

진리를 말하는 님의 말씀은 틀림이 없다.

 

10.

숲속 우거진 덤불을 날아다니는

뻐꾸기처럼 달콤한 목소리를 지녔었으나,

늙어서 여기 저기 더듬거리니,

진리를 말하는 님의 말씀은 틀림이 없다.

 

11.

잘 다듬은 부드러운 소라껍질처럼

예전의 나의 목은 아름다웠지만,

늙어서 망가지고 굽어졌으니,

진리를 말하는 님의 말씀은 틀림이 없다.

 

12.

둥근 빗장에 비유될 정도로

예전에 나의 두 팔은 아름다웠지만,

늙어서 빠딸리 꽃나무처럼 허약하니,

진리를 말하는 님의 말씀은 틀림이 없다.

 

13.

섬세한 반지와 금으로 단장했으니

예전에 나의 두 손은 아름다웠으나,

늙어서 뿌리줄기처럼 되었으니,

진리를 말하는 님의 말씀은 틀림이 없다.

 

14.

위로 둥글게 부풀러 올라 봉긋하여

예전에 나의 두 유방은 아름다웠지만,

물 없는 물주머니처럼 늘어졌으니,

진리를 말하는 님의 말씀은 틀림이 없다.

 

15.

잘 연마된 황금의 기둥처럼

예전의 나의 몸통은 아름다웠지만,

쪼글쪼글한 주름으로 덮였으니,

진리를 말하는 님의 말씀은 틀림이 없다.

 

16.

코끼리의 코에 비유될 정도로

예전에 나의 두 허벅지는 아름다웠지만,

늙어서 대나무의 줄기처럼 되었으니,

진리를 말하는 님의 말씀은 틀림이 없다.

 

17.

섬세한 발찌를 차고 금으로 장식해서

예전에 나의 두 정강이는 아름다웠지만,

늙어서 참깨의 마른 줄기처럼 되었으니,

진리를 말하는 님의 말씀은 틀림이 없다.

 

18.

솜으로 가득 찬 것에 비유될 정도로

예전의 나의 두 발은 아름다웠지만,

늙어서 갈라지고 쭈그러들었으니,

진리를 말하는 님의 말씀은 틀림이 없다.

 

19.

이 집적의 몸은 이와 같아졌다.

노쇠했고, 많은 고통의 주처로서

회반죽이 떨어진 낡은 집과 같아졌으니,

진리를 말하는 님의 말씀은 틀림이 없다.

 

(Thig.252-271, 전재성님역)

 

 

 

 

https://www.palikanon.com/english/pali_names/am/ambapaalii.htm

 

 

 

 

 

2023년 5월 4일 목요일 오후 9시에 대반열반경(D16) 일곱번째 <온라인불자회> 공부모임을 시작합니다.

다 같이 합장하고 큰 소리로 합창합니다.

 

나모 따사 바가와또 아라하또 삼마 삼붓다사(Namo tassa bhagavato arahato sammāsambuddhassa)
나모 따사 바가와또 아라하또 삼마 삼붓다사(Namo tassa bhagavato arahato sammāsambuddhassa)
나모 따사 바가와또 아라하또 삼마 삼붓다사(Namo tassa bhagavato arahato sammāsambuddhassa)

 

붓당 사라남 가차미 (Buddham Saranam Gacchami)  부처님께 귀의합니다.(3번)

담망 사라남 가차미 (Dhammam Saranam Gacchami) 가르침에 귀의합니다.()

상강 사라남 가차미 (Sangham Saranam Gacchami)  승가에 귀의합니다.()

 

 

 

벨루와가마에서 안거를 하심  12. Veḷu­vagāma­ vas­sūpaga­mana

 

2.21. 그때 세존께서는 암바빨리 숲에서 원하는 만큼 머무신 뒤 아난다 존자를 불러서 말씀하셨다. “아난다여, 이제 벨루와가마로가자.”

그렇게 하겠습니다, 세존이시여.”라고 아난다 존자는 세존께 응답했다. 그리하여 세존께서는 많은 비구 승가와 함께 벨루와가마에 도착하셨다. 세존께서는 거기 벨루와가마에 머무셨다.

 

2.22. 거기서 세존께서는 비구들을 불러서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이제 그대들은 도반을 따르거나 지인을 따르거나 후원자를 따라서 웨살리 전역으로 흩어져서 안거를 하여라. 나는 여기 이 벨루와가마에서 안거를 할 것이다.”

Tatra kho bhagavā bhikkhū āmantesi: “etha tumhe, bhikkhave, samantā vesāliṃ yathāmittaṃ yathā­sandiṭ­ṭhaṃ yathā­sam­bhat­taṃ vassaṃ upetha. Ahaṃ pana idheva veḷuvagāmake vassaṃ upagacchāmī”ti.

 

그렇게 하겠습니다, 세존이시여.”라고 세존께 응답한 뒤 비구들은 도반을 따르거나 지인을 따르거나 후원자를 따라서 웨살리 전역으로 흩어져서 안거를 하였다. 세존께서는 거기 벨루와가마에서 안거를 하셨다.

“Evaṃ, bhante”ti kho te bhikkhū bhagavato paṭissutvā samantā vesāliṃ yathāmittaṃ yathā­sandiṭ­ṭhaṃ yathā­sam­bhat­taṃ vassaṃ upagacchiṃsu. Bhagavā pana tattheva veḷuvagāmake vassaṃ upagacchi.

 

 

2.23. 그때 세존께서는 안거를 하시는 도중에 혹독한 병에 걸려서 죽음에 다다르는 극심한 고통이 생기셨다. 거기서 세존께서는 마음챙기고 알아차리시면서 흔들림 없이 그것을 감내하셨다. 그때 세존께 이런 생각이 드셨다.

Atha kho bhagavato vassūpagatassa kharo ābādho uppajji, bāḷhā vedanā vattanti māraṇantikā. Tā sudaṃ bhagavā sato sampajāno adhivāsesi avihaññamāno. Atha kho bhagavato etadahosi:

*khara: rough; hard; sharp; painful.        *bāḷha:strong; much; excessive   *māraṇantikā: 死に近い、瀕死の

 

 

내가 신도들(upaṭṭhāke,시자들)에게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비구 승가에게 알리지도 않고 반열반에 드는 것은 어울리지 않는다. 그러니 나는 이 병을 정진으로 다스리고 생명의 상카라를 굳세게 하여 머무르리라.” 그리고 세존께서는 그 병을 정진으로 다스리고 생명의 상카라(jīvita­saṅ­khā­raṃ)를 굳세게 하여 머무셨다. 그래서 세존께서는 그 병을 가라앉히셨다.

“na kho metaṃ patirūpaṃ, yvāhaṃ anāmantetvā upaṭṭhāke anapaloketvā bhikkhusaṃghaṃ pari­nib­bā­yey­yaṃ. Yannūnāhaṃ imaṃ ābādhaṃ vīriyena paṭipaṇāmetvā jīvita­saṅ­khā­raṃ adhiṭṭhāya vihareyyan”ti. Atha kho bhagavā taṃ ābādhaṃ vīriyena paṭipaṇāmetvā jīvita­saṅ­khā­raṃ adhiṭṭhāya vihāsi. 

*Upaṭṭhāka: a servitor, personal attendant, servant, "famulus" Ānanda was the last u. of Gotama Buddha

“It would not be appropriate for me to become fully extinguished before informing my supporters and taking leave of the mendicant Saṅgha.

 

 

2.24. 세존께서는 병이 나으신지 오래되지 않아서 간병실에서 나와 승원의 그늘에 마련된 자리에 앉으셨다. 그러자 아난다 존자는 세존께 다가가서 절을 올리고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아서 아난다 존자는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저는 세존께서 인내하시는 모습을 뵈었습니다. 저는 세존께서 삶을 지탱하시는 모습을 뵈었습니다. 세존이시여, 그런 저의 몸도 [세존께서 아프셨기 때문에] 마치 술에 취한 것과 같이 되어버렸습니다. 세존께서 아프셨기 때문에 저는 방향 감각을 잃어버렸고, 어떠한 법들도 제게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제게는 세존께서는 비구 승가를 두고 아무런 분부도 없으신 채로 반열반에 들지는 않으실 것이다.’라는 어떤 안심이 있었습니다.”

 

2.25. “아난다여, 그런데 비구 승가는 나에 대해서 무엇을 [] 바라는가? 아난다여, 나는 안과 밖이 없이 법을 설하였다. 아난다여, 여래가 [가르친] 법들에는 스승의 주먹[師拳]과 같은 것이 따로 없다.

“Kiṃ panānanda, bhikkhusaṃgho mayi paccāsīsati? Desito, ānanda, mayā dhammo anantaraṃ abāhiraṃ karitvā. Natthānanda, tathāgatassa dhammesu ācariyamuṭṭhi. 

 

아난다여, ‘나는 비구 승가를 거느린다.’거나 비구 승가는 나의 지도를 받는다.’라고 생각하는 자는 비구 승가에 대해서 무엇인가를 당부할 것이다. 아난다여, 그러나 여래에게는 나는 비구 승가를 거느린다.’거나 비구 승가는 나의 지도를 받는다.’라는 생각이 없다. 그러므로 여래가 비구 승가에 대해서 무엇을 당부한단 말인가?

Yassa nūna, ānanda, evamassa: ‘ahaṃ bhikkhusaṃghaṃ pariharissāmī’ti vā ‘mamuddesiko bhikkhusaṃgho’ti vā, so nūna, ānanda, bhikkhusaṃghaṃ ārabbha kiñcideva udāhareyya. Tathāgatassa kho, ānanda, na evaṃ hoti: ‘ahaṃ bhikkhusaṃghaṃ pariharissāmī’ti vā ‘mamuddesiko bhikkhusaṃgho’ti vā. Sakiṃ, ānanda, tathāgato bhikkhusaṃghaṃ ārabbha kiñcideva udāharissati. Ahaṃ kho panānanda, etarahi jiṇṇo vuddho mahallako addhagato vayo anuppatto. Āsītiko me vayo vattati. Seyyathāpi, ānanda, jajjarasakaṭaṃ veṭhamissakena yāpeti;

 

 

아난다여, 이제 나는 늙어서 나이 들고 노후하고, 긴 세월을 보냈고 노쇠하여, 내 나이가 여든이 되었다. 아난다여, 마치 낡은 수레가 가죽 끈에 묶여서 겨우 움직이는 것처럼 여래의 몸도 가죽 끈에 묶여서 겨우 [살아] 간다고 여겨진다. 아난다여, 여래가 모든 표상들을 마음에 잡도리하지 않고 이런 [세속적인] 명확한 느낌들을 소멸하여 표상 없는 마음의 삼매에 들어 머무는 그런 때에는 여래의 몸은 더욱더 편안해진다.”

evameva kho, ānanda, veṭhamissakena maññe tathāgatassa kāyo yāpeti. Yasmiṃ, ānanda, samaye tathāgato sabba­nimittā­naṃ amanasikārā ekaccānaṃ vedanānaṃ nirodhā animittaṃ cetosamādhiṃ upasampajja viharati, phāsutaro, ānanda, tasmiṃ samaye tathāgatassa kāyo hoti. 

 

 

자신과 법을 섬으로 삼고 귀의처로 삼아라

 

2.26. “아난다여, 그러므로 여기서 그대들은 자신을 섬으로 삼고[自灯明] 자신을 귀의처로 삼아[自帰依] 머물고, 남을 귀의처로 삼아 머물지 말라. 법을 섬으로 삼고[法灯明] 법을 귀의처로 삼아[法帰依] 머물고, 다른 것을 귀의처로 삼아 머물지 말라. Tasmātihānanda, attadīpā viharatha attasaraṇā anaññasaraṇā, dhammadīpā dhammasaraṇā anaññasaraṇā. 

 

아난다여, 그러면 어떻게 비구는 자신을 섬으로 삼고 자신을 귀의처로 삼아 머물고, 남을 귀의처로 삼아 머물지 않는가? 어떻게 비구는 법을 섬으로 삼고 법을 귀의처로 삼아 머물고, 다른 것을 귀의처로 삼아 머물지 않는가?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몸에서 몸을 관찰하며[身随観] 머문다. 세상에 대한 욕심과 싫어하는 마음을 버리면서 근면하게, 분명히 알아차리고 마음챙기는 자 되어 머문다. 느낌에서 느낌을 관찰하며[受随観] 머문다.  마음에서 마음을 관찰하며[心随観] 머문다.  법에서 법을 관찰하며[法随観] 머문다. 세상에 대한 욕심과 싫어하는 마음을 버리면서 근면하게, 분명히 알아차리고 마음챙기는 자 되어 머문다.

아난다여, 이와 같이 비구는 자신을 섬으로 삼고 자신을 귀의처로 삼아 머물고 남을 귀의처로 삼아 머물지 않으며, 법을 섬으로 삼고 법을 귀의처로 삼아 머물고 다른 것을 귀의처로 삼아 머물지 않는다.

아난다여, 누구든지 지금이나 내가 죽고 난 후에 자신을 섬으로 삼고 자신을 귀의처로 삼아 머물고 남을 귀의처로 삼아 머물지 않으며, 법을 섬으로 삼고 법을 귀의처로 삼아 머물고 다른 것을 귀의처로 삼아 머물지 않으면서 공부짓기를 원하는 비구들은 최고 중의 최고가 될 것이다.”

Kathañcānanda, bhikkhu attadīpo viharati attasaraṇo anaññasaraṇo, dhammadīpo dhammasaraṇo anaññasaraṇo? Idhānanda, bhikkhu kāye kāyānupassī viharati atāpī sampajāno satimā, vineyya loke abhij­jhā­do­manas­saṃ. Vedanāsu … pe … citte … pe … dhammesu dhammānupassī viharati ātāpī sampajāno satimā, vineyya loke abhij­jhā­do­manas­saṃ. Evaṃ kho, ānanda, bhikkhu attadīpo viharati attasaraṇo anaññasaraṇo, dhammadīpo dhammasaraṇo anaññasaraṇo.

Ye hi keci, ānanda, etarahi vā mama vā accayena attadīpā viharissanti attasaraṇā anaññasaraṇā, dhammadīpā dhammasaraṇā anaññasaraṇā, tamatagge me te, ānanda, bhikkhū bhavissanti ye keci sikkhākāmā”ti.

 

 

 

제가 요즘 만행중이라서 토론 시간을 깜박 잊는 일이 생겼다. 오늘은 칠곡군에 와 있는데 갑자기 모 스님과 전화를 하느라 토론시간을 잊은 것이다. 그래서 meet링크를 올려 달라는 일봉스님과 도정스님의 문자도 못보고 10분정도 늦게 meet링크를 올렸다. 오늘은 15명이 참석하였고 토론 주제가 모두 관심을 가질 만한 사항이라 진지하게 토론 되었다.  3개의 논점을 소화하기에도 시간이 모자랐다. 마지막에서 소감을 이야기하는 시간에 5월 20일 '윤석렬퇴진 시국법회'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오늘까지 시국법회에 지지하는 의사를 표해주신 스님들이 80여명 되는데  보낸 문자에 비해서는 저조한 수치이다. 시국법회 준비위원장 도정스님은 오마이뉴스에 인터뷰를 하였는데 조힛수가 50만이 넘었다. 오늘은 청량심보살님도 마무리 축원을 해 주셨다. 

 

 

논점

 

1. 아난다여, 그런데 비구 승가는 나에 대해서 무엇을 [] 바라는가? 아난다여, 나는 안과 밖이 없이 법을 설하였다. 아난다여, 여래가 [가르친] 법들에는 스승의 주먹[師拳ācariyamuṭṭhi]과 같은 것이 따로 없다."

부처님은 스승의 주먹[師拳ācariyamuṭṭhi]은 없다며 숨김없이 다 가르쳤다고 말하고 있는데 대승경전은 왜 더 수승한 가르침이 있다고 말하는 걸까? 

...법화경의 이야기를 주로 하였지만 다른 경전에서도 대승이 수승하다는 표현들이 있고 대승이란 용어 자체가 자기들이 더 수승하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기영거사님은 사향사과에서 보살십지등으로 수행계위를 설명하는 것이 벌써 차이를 두고 있는것이라고 설명했다. 법화경을 보자. 

 

 『법화경』 비유품에 지혜 제일이라고 하는 사리불이 방편품의 설법을 듣고 지난날 오해하였던 일과 지금에 이르러 진실을 알고 크게 깨닫고 기뻐하는 장면이 있다. "옛날에는 부처님께서 보살들에게만 부처가 될 수 있음을 허락하면서 우리들 성문 제자에게는 이에 참여시키지 않았으므로 지극히 슬픈 마음을 가지고 나날을 보냈다. 그러나 그때에도 우리들이 성불의 가르침을 바라고 기다렸으면 부처님은 틀림없이 대승의 가르침으로 우리들을 구하셨을 것이다. 그것을 알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에 부처님이 방편의 가르침을 베푸신 것을 그것이 방편인 줄도 모르고 수행하여 소승의 아라한과(阿羅漢果)를 얻었다. 그러던 중 오늘 법화경의 법문을 듣고 비로소 진실의 가르침인 일불승법(一佛乘法)을 알게 되었고, 종래의 가르침이 소승의 가르침이요, 방편의 가르침임을 알게 되었다."고 깨닫고 기뻐하는 것이다. 거기에서 부처가 사리불에게 미래에 화광여래(華光如來)라는 부처가 되어 삼승법으로 중생을 교화할 것이라고 수기(授記)한다. 이 수기에 이어 사리불은 일불승법을 이해하여 수기까지 받았지만, 자기의 도반인 1200명의 아라한들을 위하여 삼승법은 방편이요, 일불승법은 진실이라는 설법을 다시 해 주기를 간청하였고, 부처는 이에 응하여 설법을 하는데, 이것이 화택삼거유(火宅三車喩)라는 비유설화이다.

..법화경의 비유품(臂喩品)에 세 수레의 비유가 회삼귀일을 상징한다.

성문·연각은 모두 소승불교의 성자를 상징하며 소극적이고 염세적인 불교관을 표방한다. 보살은 물론 대승불교의 이상적 전형이지만, “내가 소승보다 우월하다.”고 하는 자만심을 지녔기 때문에 이 세 수레에 포함된다. 따라서, 회삼귀일사상은 이들 세 유형의 불교가 ‘법화(法華)’라는 일승으로 회향하여야 한다는 대승불교의 이상을 대변하고 있다. 대승불교는 일반적으로 소승을 비판하고 있지만, 그와 같은 상대적 입장 또한 버려야 한다는 암시가 담겨 있다. 따라서 일승이란 대승의 궁극, 상대적 차별의식의 초월이라고 해석한다. 이 ≪법화경≫의 논리는 대승정신의 현양이라는 측면과 함께 모든 상대적 차별을 불식시킨다는 사상성 때문에 우리 나라의 불교인들에게 매우 존중되었다. 회삼귀일사상에 많은 관심을 보인 인물은 원효·의상(義湘) 등이다.

원효의 회삼귀일사상에서 강조하는 ‘귀일(歸一)’의 정신은 원효의 화쟁논리의 핵심을 이루고 있다. 즉, 진여(眞如)·생멸(生滅)로 표현되는 일심의 경지는 궁극에 있어서 ‘하나’를 지향하게 된다. 그것이 곧 ‘귀일심원(歸一心源)’, 즉 일심의 원천을 회복하는 일이라고 보았다.

 

 

 

2023년 5월 11일 목요일 오후 9시에 대반열반경(D16) 일곱번째 <온라인불자회> 공부모임을 시작합니다.

다 같이 합장하고 큰 소리로 합창합니다.

 

나모 따사 바가와또 아라하또 삼마 삼붓다사(Namo tassa bhagavato arahato sammāsambuddhassa)
나모 따사 바가와또 아라하또 삼마 삼붓다사(Namo tassa bhagavato arahato sammāsambuddhassa)
나모 따사 바가와또 아라하또 삼마 삼붓다사(Namo tassa bhagavato arahato sammāsambuddhassa)

 

붓당 사라남 가차미 (Buddham Saranam Gacchami)  부처님께 귀의합니다.(3번)

담망 사라남 가차미 (Dhammam Saranam Gacchami) 가르침에 귀의합니다.()

상강 사라남 가차미 (Sangham Saranam Gacchami)  승가에 귀의합니다.()

 

 

 

암시와 빛  13. Nimit­t obhāsa­ kathā

cetiyasuttaṃ(S51.10) 과 같은 내용이다.

 

3.1. 그때 세존께서는 오전에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발우와 가사를 수하고 걸식을 위해서 웨살리로 들어가셨다. 웨살리에서 걸식을 하여 공양을 마치고 걸식에서 돌아와 아난다 존자를 불러서 말씀하셨다.

아난다여, 좌구를 챙겨라. 낮 동안의 머묾을 위해서 짜빨라 탑묘(cetiya)로 가자.”

그렇게 하겠습니다, 세존이시여.”라고 아난다 존자는 세존께 대답한 뒤 좌구를 챙겨서 세존의 뒤를 따라갔다.

Atha kho bhagavā pubbaṇ­ha­samayaṃ nivāsetvā patta­cīvara­mādāya vesāliṃ piṇḍāya pāvisi. Vesāliyaṃ piṇḍāya caritvā pacchābhattaṃ piṇḍa­pāta­paṭik­kanto āyasmantaṃ ānandaṃ āmantesi: “gaṇhāhi, ānanda, nisīdanaṃ, yena cāpālaṃ cetiyaṃ tenu­pasaṅka­mis­sāma divā vihārāyā”ti. “Evaṃ, bhante”ti kho āyasmā ānando bhagavato paṭissutvā nisīdanaṃ ādāya bhagavantaṃ piṭṭhito piṭṭhito anubandhi.

 

 

3.2. 세존께서는 짜빨라 탑묘로 가셔서 마련된 자리에 앉으셨다. 아난다 존자도 세존께 절을 올린 뒤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아난다 존자에게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난다여, 웨살리는 아름답구나. 우데나 탑묘도 아름답고, 고따마까 탑묘도 아름답고, 삿땀바까 탑묘도 아름답고, 바후뿟따 탑묘(다자탑)도 아름답고, 사란다다 탑묘도 아름답고, 짜빨라 탑묘도 아름답구나.”

 Atha kho bhagavā yena cāpālaṃ cetiyaṃ tenupasaṅkami; upasaṅkamitvā paññatte āsane nisīdi. Āyasmāpi kho ānando bhagavantaṃ abhivādetvā ekamantaṃ nisīdi.

Ekamantaṃ nisinnaṃ kho āyasmantaṃ ānandaṃ bhagavā etadavoca: “ramaṇīyā, ānanda, vesālī, ramaṇīyaṃ udenaṃ cetiyaṃ, ramaṇīyaṃ gotamakaṃ cetiyaṃ, ramaṇīyaṃ sattambaṃ cetiyaṃ, ramaṇīyaṃ bahuputtaṃ cetiyaṃ, ramaṇīyaṃ sārandadaṃ cetiyaṃ, ramaṇīyaṃ cāpālaṃ cetiyaṃ. 

 

3.3. “아난다여, 누구든지 네 가지() 성취수단[如意足, iddhipādā]을 닦고, 많이 [공부]짓고, 수레로 삼고, 기초로 삼고, 확립하고, 굳건히 하고, 부지런히 닦은 사람은 원하기만 하면 일 겁을 머물 수도 있고, 겁이 다하도록 머물 수도 있다. 아난다여, 여래는 네 가지 성취수단을 닦고, 많이 [공부]짓고, 수레로 삼고, 기초로 삼고, 확립하고, 굳건히 하고, 부지런히 닦았다. 여래는 원하기만 하면 일 겁을 머물 수도 있고 겁이 다하도록 머물 수도 있다.”

Yassa kassaci, ānanda, cattāro iddhipādā bhāvitā bahulīkatā yānīkatā vatthukatā anuṭṭhitā paricitā susamāraddhā, so ākaṅkhamāno kappaṃ vā tiṭṭheyya kappāvasesaṃ vā. Tathāgatassa kho, ānanda, cattāro iddhipādā bhāvitā bahulīkatā yānīkatā vatthukatā anuṭṭhitā paricitā susamāraddhā, so ākaṅkhamāno, ānanda, tathāgato kappaṃ vā tiṭṭheyya kappāvasesaṃ vā”ti. 

 

 

 

3.4. 세존께서 이와 같이 분명한 암시를 주시고 분명한 빛을 드러내셨다. 그러나 아난다 존자는 그 []을 꿰뚫어 보지 못했으니, 그의 마음이 마라에게 사로잡혔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세존께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많은 사람의 이익을 위하고, 많은 사람의 행복을 위하고, 세상을 연민하고, 신과 인간의 이상과 이익과 행복을 위하여, 일 겁을 머물러 주소서. 부디 선서께서는 일 겁을 머물러 주소서.”라고 간청하지 않았다.

Evampi kho āyasmā ānando bhagavatā oḷārike nimitte kayiramāne oḷārike obhāse kayiramāne nāsakkhi paṭivijjhituṃ; na bhagavantaṃ yāci: “tiṭṭhatu, bhante, bhagavā kappaṃ, tiṭṭhatu sugato kappaṃ bahujanahitāya bahu­jana­su­khāya lokānukampāya atthāya hitāya sukhāya devamanussānan”ti, yathā taṃ mārena pari­yuṭ­ṭhi­ta­citto.

 

 

3.5. 두 번째로  세 번째로 세존께서는 아난다 존자를 불러서 말씀하셨다.

아난다여, 웨살리는 아름답구나. 우데나 탑묘도 아름답고, 고따마까 탑묘도 아름답고, 삿땀바까 탑묘도 아름답고, 바후뿟따 탑묘(다자탑)도 아름답고, 사란다다 탑묘도 아름답고, 짜빨라 탑묘도 아름답구나.

아난다여, 누구든지 네 가지 성취수단[四如意足]을 닦고, 많이 [공부]짓고, 수레로 삼고, 기초로 삼고, 확립하고, 굳건히 하고, 부지런히 닦은 사람은 원하기만 하면 일 겁을 머물 수도 있고, 겁이 다하도록 머물 수도 있다. 아난다여, 여래는 네 가지 성취수단을 닦고, 많이 [공부]짓고, 수레로 삼고, 기초로 삼고, 확립하고, 굳건히 하고, 부지런히 닦았다. 여래는 원하기만 하면 일 겁을 머물 수도 있고 겁이 다하도록 머물 수도 있다.”

세존께서 이와 같이 분명한 암시를 주시고 분명한 빛을 드러내셨는데도 아난다 존자는 그 []을 꿰뚫어 보지 못했으니, 그의 마음은 마라에게 사로잡혔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세존께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많은 사람의 이익을 위하고, 많은 사람의 행복을 위하고, 세상을 연민하고, 신과 인간의 이상과 이익과 행복을 위하여, 일 겁을 머물러 주소서. 부디 선서께서는 일 겁을 머물러 주소서.”라고 간청하지 않았다.

 

3.6. 그러자 세존께서는 아난다 존자를 불러서 말씀하셨다. “아난다여, 그대는 좀 떨어져 있어라. 이제 그럴 시간이 된 것 같구나.”

그렇게 하겠습니다, 세존이시여.”라고 아난다 존자는 세존께 대답한 뒤 자리에서 일어나 세존께 절을 올리고 오른쪽으로 [세 번] 돌아 [경의를 표한] 뒤에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어떤 나무 아래 앉았다.

 

 

 

오늘은 다음주 5월 20일에 개최되는 시국법회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 위하여 공부 범위가 적습니다.

 

 

 

논점

 

 

1. iddhipādā를  성취수단, 如意足으로 번역하였다. 어떤 번역이 좋은가? 

*iddhi:Prosperity,power,majesty; supernatural power,magical power,miraculous faculty; a miracle

...iddhi는 신통,기적, 초월지   pādā는 기초, 토대,수단,

 

 

2."일 겁을 머물러 주소서( tiṭṭhatu sugato kappaṃ)"의 의미는 ?

....일생의 겁, 

 

 

 

3."그의 마음은 마라에게 사로잡혔기 때문이다" 부처님은 마라에 사로잡힌 아난다를 보고 왜 마라를 쫓아내지 않았을까?   

 

 

 


 

 

성취수단 경2(A5:68)   iddhipādā-sutta

 

1. 비구들이여, 내가 깨닫기 전, 아직 바른 깨달음을 성취하지 못한 보살이었을 때 다섯 가지 법을 닦았고 다섯 가지 법을 많이 [공부]지었다. 무엇이 다섯인가?”

 

2, 비구들이여, 나는 열의를 [주로 한] 삼매와 정근의 의도적 행위[]를 갖춘 성취수단을 닦았다. 정진을 [주로 한] 삼매와 정근의 의도적 행위를 갖춘 성취수단을 닦았다. 마음을 [주로 한] 삼매와 정근의 의도적 행위를 갖춘 성취수단을 닦았다. 검증을 [주로 한] 삼매와 정근의 의도적 행위를 갖춘 성취수단을 닦았다. 그리고 분발이 다섯 번째였다.

Chanda­samā­dhi­pa­dhā­na­saṅ­khā­ra­saman­nā­gataṃ iddhipādaṃ bhāvesiṃ, vīriyasamādhi … cittasamādhi … vīmaṃ­sā­samā­dhi­pa­dhā­na­saṅ­khā­ra­saman­nā­gataṃ iddhipādaṃ bhāvesiṃ, ussoḷhiññeva pañcamiṃ. 

 

 

 

비구들이여, 그런 나는 분발을 다섯 번째로 한 이러한 법들을 닦고 많이 [공부]지었기 때문에 최상의 지혜로 실현시킬 수 있는 법이라면 그것이 어떤 것이든지 간에, 최상의 지혜로 그 경지를 실현하기 위해서 마음을 기울이면, 그런 원인이 있을 때는 언제든지 그것을 실현하는 능력을 얻었다.

그런 내가 만일 원하기를, ‘나는 여러 가지 신통변화를 나투어야겠다.  심지어는 저 멀리 범천의 세상에까지도 몸의 자유자재함을 발해야겠다.’라고 하면, 이런 원인이 있을 때는 언제든지 이런 것을 실현하는 능력을 얻었다.[神足通]

그런 내가 만일 원하기를, ‘나는 인간의 능력을 넘어선 청정하고 신성한 귀의 요소로 천상이나 인간의 소리 둘 다를 멀든 가깝든 간에 다 들어야겠다.’라고 하면, 이런 원인이 있을 때는 언제든지 이런 것을 실현하는 능력을 얻었다.[天耳通]

그런 내가 만일 원하기를, ‘나는 자기의 마음으로 다른 중생들과 다른 인간들의 마음에 대하여 꿰뚫어 알 것이다. 탐욕이 있는 마음은 탐욕이 있는 마음이라고 꿰뚫어 알고  해탈하지 않은 마음은 해탈하지 않은 마음이라고 꿰뚫어 알아야겠다.’라고 하면, 이런 원인이 있을 때는 언제든지 이런 것을 실현하는 능력을 얻었다.[他心通]

그런 내가 만일 원하기를, ‘나는 수많은 전생의 갖가지 삶들을 기억할 것이다. 즉 한 생, 두 생,  이처럼 한량없는 전생의 갖가지 모습들을 그 특색과 더불어 상세하게 기억해내어야겠다.’라고 하면, 이런 원인이 있을 때는 언제든지 이런 것을 실현하는 능력을 얻었다.[宿命通]

그런 내가 만일 원하기를, ‘나는 청정하고 인간을 넘어선 신성한 눈으로 중생들이 죽고 태어나고,  중생들이 지은 바 그 업에 따라서 가는 것을 꿰뚫어 알아야겠다.’라고 하면, 이런 원인이 있을 때는 언제든지 이런 것을 실현하는 능력을 얻었다.[天眼通]

그런 내가 만일 원하기를, ‘나는 모든 번뇌가 다하여 아무 번뇌가 없는 마음의 해탈[心解脫]과 통찰지를 통한 해탈[慧解脫]을 바로 지금여기에서 스스로 최상의 지혜로 실현하고 구족하여 머물러야겠다.’라고 하면, 그는 이런 원인이 있을 때는 언제든지 이런 것을 실현하는 능력을 얻었다.[漏盡通]

 

 

 

 

 

*네 가지 성취수단(四如意足)

 

초기불교의 수행법을 체계적으로 담고 있는 37보리분법 가운데 세 번째 주제는 네 가지 성취수단(四如意足, 잇디빠다, iddhi-pa-da)이다. 경에서 잇디(iddhi)는 신통을 뜻하기도 하고 성취를 의미하기도 한다. 그리고 빠다(pa-da)는 √pad(to go)에서 파생된 남성 혹은 중성명사인데 다리(足)를 뜻한다. 그래서 이 전체를 중국에서는 여의족(如意足)으로 옮겼다. 주석서는 ‘성취를 위한 수단’과 ‘성취가 된 수단’의 두 가지로 성취수단을 설명하고 있다.(SA.iii.250) 성취수단에는 네 가지가 있는데 그것은 열의(chanda), 정진(viriya), 마음(citta), 검증(vI-mam.sa)이다. 경에서 네 가지 성취수단은 다음과 같이 정형화되어서 나타난다.

 

“여기 비구는 열의를 (주로 한) 삼매와 노력의 의도적 행위(行)를 갖춘 성취수단을 닦는다. 정진을 (주로 한) 삼매와 노력의 의도적 행위를 갖춘 성취수단을 닦는다. 마음을 (주로 한) 삼매와 노력의 의도적 행위를 갖춘 성취수단을 닦는다. 검증을 (주로 한) 삼매와 노력의 의도적 행위를 갖춘 성취수단을 닦는다.”(S51:1 등)

 

이 성취수단의 정형구에서 보듯이 성취수단의 정형구에는 ① 삼매(sama-dhi) ② 노력의 의도적 행위 ③ 삼매를 낳는데 필요한 네 가지 특별한 요소들 즉 열의, 정진, 마음, 검증의 세 가지가 포함되어 나타난다. 여기서 보듯이 네 가지 성취수단에서의 성취(iddhi)는 특히 ‘삼매의 성취’를 말한다. 그리고 삼매 특히 제4선을 닦아서 얻게 되는 ‘신통의 성취’도 포함된다. 이처럼 삼매를 성취하고 신통을 성취하는데 없어서는 안되는 열의, 정진, 마음, 검증(통찰지)이라는 네 가지를 ‘네 가지 성취수단(四如意足)’이라 부른다.

 

삼매 드는데 없어서는 안될

열의 정진 마음 검증…노력

 

초기불전의 여러 경들을 종합해보면, 네 가지 성취수단은 ① 삼매를 성취하는 수단도 되고 ② 신통을 성취하는 수단도 되며 ③ 깨달음과 열반을 성취하는 수단도 된다. 경의 인용을 통해서 살펴보자.

첫째, “비구들이여, 만일 비구가 열의를 의지하여 삼매를 얻고 마음이 한 끝에 집중됨(心一境性)을 얻으면 이를 일러 열의를 주로 한 삼매라 한다. … 비구들이여, 만일 비구가 정진을 의지하여 … 비구들이여, 만일 비구가 마음을 의지하여 … 비구들이여, 만일 비구가 검증을 의지하여 삼매를 얻고 마음이 한 끝에 집중됨을 얻으면 이를 일러 검증을 주로 한 삼매라 한다.”(S51:13 §§3~6)라고 나타난다. 이 가르침에서 성취수단은 ‘삼매를 성취하는 수단’을 뜻한다.

 

 

둘째, “비구들이여, 과거에… 미래에… 현재에 크나큰 신통력과 크나큰 위력이 있는 사문들이나 바라문들은 누구든지 네 가지 성취수단을 닦고 많이 (공부)짓는 자들이다.”(S51:16 §3) 등에서는 ‘신통을 성취하는 수단’을 의미한다.

 

 

셋째, “비구들이여, 네 가지 성취수단을 게을리하는 사람들은 누구든지 바르게 괴로움의 끝냄으로 인도하는 성스러운 도를 게을리 하는 것이다. 비구들이여, 네 가지 성취수단을 열심히 행하는 자들은 누구든지 괴로움의 끝냄으로 인도하는 성스러운 도를 열심히 행하는 것이다.”(S51:2 §3)와 “비구들이여, 네 가지 성취수단을 닦고 많이 (공부)지으면 그것은 염오로 인도하고, 탐욕의 빛바램으로 인도하고, 소멸로 인도하고, 고요함으로 인도하고, 최상의 지혜로 인도하고, 바른 깨달음으로 인도하고, 열반으로 인도한다.”(S51:4 §3)는 등의 가르침에서 성취수단은 ‘깨달음과 열반을 성취하는 수단’을 뜻한다.

 각묵스님 / 초기불전연구원 지도법사

 

[불교신문 2652호/ 9월1일자]

 

아잔타석굴의 cetiya

 

 

 

 

5월 20일 윤석열 퇴진 시국법회 야단법석 식순

1. 사전 행사 (14:45~15:00) 
<무대아래> 아미타불 사성정근에 맞춰 개인별 108배 
<무대 상단> 거리의 춤꾼 이삼헌 살풀이 춤

2. 여는 무대(15:00~15:06)
사물놀이 타악기 연주 및 퍼포먼스
법회 시작을 알리는 ‘명종’ 

3. 사회자 인사(15:06~15:07) : 전문 MC 감나래

4. 노래 ‘우리도 부처님같이’ 봉송(15:07~15:10)

5. 경과보고(15:10~15:13) : 야단법석 집행위원장 박종린(불력회 대표)

6. 시국발언(15:13~15:25) : 명진스님(평화의길 이사장)

7. 공연 아리랑 연주(15:25~15:30) : 체코 국적 피아니스트 스타니슬라프 오소프스키

7. 퇴진 비나리 낭송(15:30~15:36) : 도정스님(제주 남선사 주지)

8. 시국선언문 낭독(15:36~15:42) : 사부대중을 대표하는 비구, 비구니, 우바세, 우바이 4명

9. 마무리 노래(15:42~15:50)  

 

 

 

 

 

 

 

 

 

2. 아난다여, 그러므로 여기서 그대들은 자신을 섬으로 삼고[自灯明] 자신을 귀의처로 삼아[自帰依] 머물고, 남을 귀의처로 삼아 머물지 말라. 법을 섬으로 삼고[法灯明] 법을 귀의처로 삼아[法帰依] 머물고, 다른 것을 귀의처로 삼아 머물지 말라.(Tasmātihānanda, attadīpā viharatha attasaraṇā anaññasaraṇā, dhammadīpā dhammasaraṇā anaññasaraṇā)

대승불자들 중에는 다른 종교들에 진리가 있다(종교평화선언)고 말하기도 한다. 이것을 다른 것에 귀의하지 말라는 부처님의 입장과 비교해보자.  

 

..불교가 다른종교와 다르다는 경전의 내용을 이해해보자는 문제였음에도 진리가 다른종교에도 있다는 주장들이 있었다. 자신의 평소 생각을 말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토론에 임하기전에 경전의 내용을 읽고 그것에 기반해서 토론하였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열반경의 후반에 다음과 같은 말씀도 불교가 다른 종교가 다르다는 것을 말한다. 

수밧다여어떤 법과 율에서든 여덟 가지 성스러운 도[八支聖道]가 없으면 거기에는 사문도 없다거기에는 두 번째 사문도 없다거기에는 세 번째 사문도 없다거기에는 네 번째 사문도 없다수밧다여그러나 어떤 법과 율에서든 여덟 가지 성스러운 도[八支聖道]가 있으면 거기에는 사문도 있다거기에는 두 번째 사문도 있다거기에는 세 번째 사문도 있다거기에는 네 번째 사문도 있다수밧다여이 법과 율에는 여덟 가지 성스러운 도가 있다수밧다여그러므로 오직 여기에만 사문이 있다여기에만 두 번째 사문이 있다여기에만 세 번째 사문이 있다여기에만 네 번째 사문이 있다다른 교설들에는 사문들이 텅 비어 있다수밧다여이 비구들이 바르게 머문다면 세상에는 아라한들이 텅 비지 않을 것이다.

...팔정도가 있다는 것은 바른 견해와 바른 사유가 있다는 것이고, 연기론적인 사유가 있다는 것이다. 다른 곳에는 상견이나 단견이 있을뿐 연기론적인 견해와 사유가 없다. 부처님은 이것을 범망경(D1)에서 62가지 사견으로 정리하셨고 바른견해를 번뇌가 있는 바른견해와 번뇌가 없는 바른 견해로 자세히 설명하셨다. 진리가 다른 종교에도 있다고 말하는 것은 아직 연기론과 다른 사상의 차이점을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3."아난다여, 누구든지 지금이나 내가 죽고 난 후에 자신을 섬으로 삼고 자신을 귀의처로 삼아 머물고 남을 귀의처로 삼아 머물지 않으며, 법을 섬으로 삼고 법을 귀의처로 삼아 머물고 다른 것을 귀의처로 삼아 머물지 않으면서 공부짓기를 원하는 비구들은 최고 중의 최고가 될 것이다.”

...이것이 마지막 유언이 아닌데 마지막 유언이라고 보는 분들이 많다. 이것과 마지막 유언(비구들이여, 참으로 이제 그대들에게 당부하노니, 형성된 것들은 소멸하기 마련인 법이다. 방일하지 말고 [해야 할 바를 모두] 성취하라!)과 어떤 차이가 있나?

 

 

...방일하지 말라는 것은 알아차림을 유지하라는 것이고 자등명 법등명도 사념처를 닦는것으로 설명되고 사념처는 알아차림(sati)을 유지 하는 것이으로 결국은 같은 내용으로 봐야 한다. 같은 내용임에도 방일하지 말고 정진하라는 가르침이 마미막 유언으로서 더 와 닿는 측면이 있다.  

 

 

2023년 5월 18일 목요일 오후 9시에 대반열반경(D16) 일곱번째 <온라인불자회> 공부모임을 시작합니다.

다 같이 합장하고 큰 소리로 합창합니다.

 

나모 따사 바가와또 아라하또 삼마 삼붓다사(Namo tassa bhagavato arahato sammāsambuddhassa)
나모 따사 바가와또 아라하또 삼마 삼붓다사(Namo tassa bhagavato arahato sammāsambuddhassa)
나모 따사 바가와또 아라하또 삼마 삼붓다사(Namo tassa bhagavato arahato sammāsambuddhassa)

 

붓당 사라남 가차미 (Buddham Saranam Gacchami)  부처님께 귀의합니다.(3번)

담망 사라남 가차미 (Dhammam Saranam Gacchami) 가르침에 귀의합니다.()

상강 사라남 가차미 (Sangham Saranam Gacchami)  승가에 귀의합니다.()

 

 

 

 

마라의 간청  14. Māra­yācana­ka­thā

 

3.7. 그러자 마라 빠삐만이 아난다 존자가 떠난 지 오래되지 않아서 세존께 다가갔다. 가서는 한 곁에 섰다. 한 곁에 서서 마라 빠삐만은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이제 세존께서는 반열반(般涅槃)에 드십시오. 선서께서는 반열반에 드십시오. 세존이시여, 지금이 세존께서 반열반에 드실 시간입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전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parinibbātu dāni, bhante, bhagavā, parinibbātu sugato, pari­nib­bā­na­kālo dāni, bhante, bhagavato. Bhāsitā kho panesā, bhante, bhagavatā vācā: 

 

빠삐만이여, 나는 나의 비구 제자들이 입지가 굳고, 수행이 되고, 출중하며, 많이 배우고[多聞], 법을 잘 호지(護持)하고, [출세간]법에 이르게 하는 법을 닦고, 합당하게 도를 닦고, 법을 따라 행하며, 자기 스승에게 속하는 것을 파악한 뒤 그것을 천명하고 가르치고 알게 하고 확립하고 드러내고 분석하고 명료하게 설명하며, 다른 [삿된] 교설이 나타날 때 그것을 법으로 잘 제압하고, 제압한 뒤 [해탈을 성취하는] 기적을 갖춘 법을 설할 수 있게 되기까지는 반열반에 들지 않을 것이다.’라고.”

‘na tāvāhaṃ, pāpima, pari­nib­bā­yis­sāmi, yāva me bhikkhū na sāvakā bhavissanti viyattā vinītā visāradā bahussutā dhammadharā dhammā­nu­dhammap­paṭi­pannā sāmīcip­paṭi­pannā anu­dhamma­cārino, sakaṃ ācariyakaṃ uggahetvā ācikkhissanti desessanti paññapessanti paṭṭhapessanti vivarissanti vibhajissanti uttānīka­ris­santi, uppannaṃ parappavādaṃ sahadhammena suniggahitaṃ niggahetvā sappāṭihāriyaṃ dhammaṃ desessantī’ti. 

 

3.8. “세존이시여, 그러나 지금 세존의 비구 제자들은 입지가 굳고, 수행이 되고, 출중하며, 많이 배우고, 법을 잘 호지하고, [출세간]법에 이르게 하는 법을 닦고, 합당하게 도를 닦고, 법을 따라 행하며, 자기 스승에게 속하는 것을 파악한 뒤 그것을 천명하고 가르치고 알게 하고 확립하고 드러내고 분석하고 명료하게 설명하며, 다른 [삿된] 교설이 나타날 때 그것을 법으로 잘 제압하고, 제압한 뒤 [해탈을 성취하는] 기적을 갖춘 법을 설할 수 있습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니 이제 세존께서는 반열반에 드십시오. 선서께서는 반열반에 드십시오. 세존이시여, 지금이 세존께서 반열반에 드실 시간입니다.

Etarahi kho pana, bhante, bhikkhū bhagavato sāvakā viyattā vinītā visāradā bahussutā dhammadharā dhammā­nu­dhammap­paṭi­pannā sāmīcip­paṭi­pannā anu­dhamma­cārino, sakaṃ ācariyakaṃ uggahetvā ācikkhanti desenti paññapenti paṭṭhapenti vivaranti vibhajanti uttānīkaronti, uppannaṃ parappavādaṃ sahadhammena suniggahitaṃ niggahetvā sappāṭihāriyaṃ dhammaṃ desenti. Parinibbātu dāni, bhante, bhagavā, parinibbātu sugato, pari­nib­bā­na­kālo dāni, bhante, bhagavato.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전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빠삐만이여, 나는 나의 비구니 제자들이 입지가 굳고, 수행이 되고, 출중하며, 많이 배우고, 법을 잘 호지하고, [출세간]법에 이르게 하는 법을 닦고, 합당하게 도를 닦고, 법을 따라 행하며, 자기 스승에게 속하는 것을 파악한 뒤 그것을 천명하고 가르치고 알게 하고 확립하고 드러내고 분석하고 명료하게 설명하며, 다른 [삿된] 교설이 나타날 때 그것을 법으로 잘 제압하고, 제압한 뒤 [해탈을 성취하는] 기적을 갖춘 법을 설할 수 있게 되기까지는 반열반에 들지 않을 것이다.’라고.

 

세존이시여, 그러나 지금 세존의 비구니 제자들은 입지가 굳고, 수행이 되고, 출중하며, 많이 배우고, 법을 잘 호지하고, [출세간]법에 이르게 하는 법을 닦고, 합당하게 도를 닦고, 법을 따라 행하며, 자기 스승에게 속하는 것을 파악한 뒤 그것을 천명하고 가르치고 알게 하고 확립하고 드러내고 분석하고 명료하게 설명하며, 다른 [삿된] 교설이 나타날 때 그것을 법으로 잘 제압하고, 제압한 뒤 [해탈을 성취하는] 기적을 갖춘 법을 설할 수 있습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니 이제 세존께서는 반열반에 드십시오. 선서께서는 반열반에 드십시오. 세존이시여, 지금이 세존께서 반열반에 드실 시간입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전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빠삐만이여, 나는 나의 청신사 제자들이 입지가 굳고, 수행이 되고, 출중하며, 많이 배우고, 법을 잘 호지하고, [출세간]법에 이르게 하는 법을 닦고, 합당하게 도를 닦고, 법을 따라 행하며, 자기 스승에게 속하는 것을 파악한 뒤 그것을 천명하고 가르치고 알게 하고 확립하고 드러내고 분석하고 명료하게 설명하며, 다른 [삿된] 교설이 나타날 때 그것을 법으로 잘 제압하고, 제압한 뒤 [해탈을 성취하는] 기적을 갖춘 법을 설할 수 있게 되기까지는 반열반에 들지 않을 것이다.’라고.

 

세존이시여, 그러나 지금 세존의 청신사 제자들은 입지가 굳고, 수행이 되고, 출중하며, 많이 배우고, 법을 잘 호지하고, [출세간]법에 이르게 하는 법에 따라 도를 닦고, 합당하게 도를 닦고, 법을 따라 행하며, 자기 스승에게 속하는 것을 파악한 뒤 그것을 천명하고 가르치고 알게 하고 확립하고 드러내고 분석하고 명료하게 설명하며, 다른 [삿된] 교설이 나타날 때 그것을 법으로 잘 제압하고, 제압한 뒤 [해탈을 성취하는] 기적을 갖춘 법을 설할 수 있습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니 이제 세존께서는 반열반에 드십시오. 선서께서는 반열반에 드십시오. 세존이시여, 지금이 세존께서 반열반에 드실 시간입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전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빠삐만이여, 나는 나의 청신녀 제자들이 입지가 굳고, 수행이 되고, 출중하며, 많이 배우고, 법을 잘 호지하고, [출세간]법에 이르게 하는 법을 닦고, 합당하게 도를 닦고, 법을 따라 행하며, 자기 스승에게 속하는 것을 파악한 뒤 그것을 천명하고 가르치고 알게 하고 확립하고 드러내고 분석하고 명료하게 설명하며, 다른 [삿된] 교설이 나타날 때 그것을 법으로 잘 제압하고, 제압한 뒤 [해탈을 성취하는] 기적을 갖춘 법을 설할 수 있게 되기까지는 반열반에 들지 않을 것이다.’라고.

 

세존이시여, 그러나 지금 세존의 청신녀 제자들은 입지가 굳고, 수행이 되고, 출중하며, 많이 배우고, 법을 잘 호지하고, [출세간]법에 이르게 하는 법을 닦고, 합당하게 도를 닦고, 법을 따라 행하며, 자기 스승에게 속하는 것을 파악한 뒤 그것을 천명하고 가르치고 알게 하고 확립하고 드러내고 분석하고 명료하게 설명하며, 다른 [삿된] 교설이 나타날 때 그것을 법으로 잘 제압하고, 제압한 뒤 [해탈을 성취하는] 기적을 갖춘 법을 설할 수 있습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니 이제 세존께서는 반열반에 드십시오. 선서께서는 반열반에 드십시오. 세존이시여, 지금이 세존께서 반열반에 드실 시간입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전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빠삐만이여, 나는 나의 이러한 청정범행이 잘 유지되고, 번창하고, 널리 퍼지고, 많은 사람들이 따르고, 대중적이어서 신과 인간들 사이에서 잘 설명되기까지는 반열반에 들지 않을 것이다.’라고.Bhāsitā kho panesā, bhante, bhagavatā vācā: ‘na tāvāhaṃ, pāpima, pari­nib­bā­yis­sāmi, yāva me idaṃ brahmacariyaṃ na iddhañceva bhavissati phītañca vitthārikaṃ bāhujaññaṃ puthubhūtaṃ yāva devamanussehi suppakāsitan’ti.

 

 

세존이시여, 그러나 지금 세존의 이러한 청정범행은 잘 유지되고, 번창하고, 널리 퍼지고, 많은 사람들이 따르고, 대중적이어서 신과 인간들 사이에서 잘 설명되었습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니 이제 세존께서는 반열반에 드십시오. 선서께서는 반열반에 드십시오. 세존이시여, 지금이 세존께서 반열반에 드실 시간입니다.”

Etarahi kho pana, bhante, bhagavato brahmacariyaṃ iddhañceva phītañca vitthārikaṃ bāhujaññaṃ puthubhūtaṃ, yāva devamanussehi suppakāsitaṃ. Parinibbātu dāni, bhante, bhagavā, parinibbātu sugato, pari­nib­bā­na­kālo dāni, bhante, bhagavato”ti.

 

3.9. 이렇게 말씀드리자 세존께서는 마라 빠삐만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빠삐만이여, 그대는 조용히 있어라. 오래지 않아 여래는 반열반에 들 것이다. 지금부터 3개월이 넘지 않아서 여래는 반열반에 들 것이다.”

 Evaṃ vutte, bhagavā māraṃ pāpimantaṃ etadavoca: “appossukko tvaṃ, pāpima, hohi, na ciraṃ tathāgatassa parinibbānaṃ bhavissati. Ito tiṇṇaṃ māsānaṃ accayena tathāgato pari­nib­bā­yis­satī”ti.

 

 

논점

 

1. 경에서 열반(nib­bā­na)과 반열반(pari­nib­bā­na)은 확실히 다른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그런데 어떻게 열반(nib­bā­na)이 죽음의 의미가 되었나? 

 

 

 

2.나는 나의 청신녀 제자들이 입지가 굳고, 수행이 되고, 출중하며, 많이 배우고, 법을 잘 호지하고, 법에 이르게 하는 법을 닦고, 합당하게 도를 닦고, 법을 따라 행하며, 자기 스승에게 속하는 것을 파악한 뒤 그것을 천명하고 가르치고 알게 하고 확립하고 드러내고 분석하고 명료하게 설명하며, 다른 교설이 나타날 때 그것을 법으로 잘 제압하고, 제압한 뒤 [해탈을 성취하는] 기적을 갖춘 법을 설할 수 있게 되기까지는 반열반에 들지 않을 것이다.’라고.

....비구,비구니.청신사, 청신녀가 공부하는 내용과 얻는 경지가 모두 같은 것으로 설명되고 있다.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3."지금부터 3개월이 넘지 않아서 여래는 반열반에 들 것이다.”이런 말씀을 한뒤 3개월안에 반열반하셨나? 아니면 3개월이 더 걸렸나?

*Three months from now the Realized One will finally be extinguished.(수자또비구)

*after three months have passed from now, the Realised One will attain Final Emancipation.(조띠비구)

 

 

 

 

 

2023년 6월 1일 목요일 오후 9시에 대반열반경(D16) 일곱번째 <온라인불자회> 공부모임을 시작합니다.

다 같이 합장하고 큰 소리로 합창합니다.

 

나모 따사 바가와또 아라하또 삼마 삼붓다사(Namo tassa bhagavato arahato sammāsambuddhassa)
나모 따사 바가와또 아라하또 삼마 삼붓다사(Namo tassa bhagavato arahato sammāsambuddhassa)
나모 따사 바가와또 아라하또 삼마 삼붓다사(Namo tassa bhagavato arahato sammāsambuddhassa)

 

붓당 사라남 가차미 (Buddham Saranam Gacchami)  부처님께 귀의합니다.(3번)

담망 사라남 가차미 (Dhammam Saranam Gacchami) 가르침에 귀의합니다.()

상강 사라남 가차미 (Sangham Saranam Gacchami)  승가에 귀의합니다.()

 

 

 

 

수명의 상카라를 포기하심15. Āyu­saṅ­khā­ra­os­saj­jana

 

3.10. 그리고 세존께서는 짜빨라 탑묘에서 마음챙기고 알아차리시면서 수명의 상카라를 포기하셨다. 세존께서 수명(寿命)의 상카라를 포기하시자, 무시무시하고 털을 곤두서게 하는 큰 지진이 있었으며 천둥번개가 내리쳤다. 그때 세존께서는 이런 것을 아시고 그 시간에 다음의 감흥어를 읊으셨다.

Atha kho bhagavā cāpāle cetiye sato sampajāno āyusaṅkhāraṃ ossaji. Ossaṭṭhe ca bhagavatā āyusaṅkhāre 

mahābhūmicālo ahosi bhiṃsanako salomahaṃso, devadundubhiyo ca phaliṃsu. 

Atha kho bhagavā etamatthaṃ viditvā tāyaṃ velāyaṃ imaṃ udānaṃ udānesi: 

 

잴 수 없는 [열반과] 존재를 견주어 보고(잴수 있고 잴수 없는 존재)

성자는 존재의 상카라를 포기하셨고

안으로 침잠하고 삼매에 들어

껍질을 벗듯이 자신의 생성(존재)을 벗어버렸노라.”

“Tulam atulañca sambhavaṃ, Bhava­ saṅ­khā­ra­m a­vassaji muni;

Ajjhatta rato samāhito, Abhindi kavaca­m i­va atta­ sam­bha­van”ti.

“Measurable and immeasurable continuity,
And the continuation-process the Sage relinquished.
Content in himself, and concentrated,
He broke continuity of self like a coat of mail.”

 

 

대지가 진동하는 이유16. Mahā­bhūmi­cāla­hetu

 

3.11. 그때 아난다 존자에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참으로 경이롭고, 참으로 놀랍구나. 이렇게 크게 대지가 진동하다니! 이렇게 무시무시하고 털을 곤두서게 하는 큰 지진이 있고 천둥번개가 내리치다니! 도대체 무슨 이유(hetu)와 무슨 조건(paccayo) 때문에 이처럼 큰 지진이 일어났는가?”

Atha kho āyasmato ānandassa etadahosi: “acchariyaṃ vata bho, abbhutaṃ vata bho, mahā vatāyaṃ bhūmicālo; sumahā vatāyaṃ bhūmicālo bhiṃsanako salomahaṃso; devadundubhiyo ca phaliṃsu. Ko nu kho hetu ko paccayo mahato bhūmicālassa pātubhāvāyā”ti?

 

 

3.12. 그러자 아난다 존자는 세존께 다가갔다. 가서는 세존께 절을 올리고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아난다 존자는 세존께 이와 같이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참으로 경이롭습니다. 세존이시여, 참으로 놀랍습니다. 이렇게 크게 대지가 진동하다니요! 이렇게 무시무시하고 털을 곤두서게 하는, 엄청나게 큰 지진이 있고 천둥번개가 내리치다니요! 도대체 무슨 이유와 무슨 조건 때문에 이처럼 큰 지진이 일어났습니까?”

Atha kho āyasmā ānando yena bhagavā tenupasaṅkami, upasaṅkamitvā bhagavantaṃ abhivādetvā ekamantaṃ nisīdi, ekamantaṃ nisinno kho āyasmā ānando bhagavantaṃ etadavoca: “acchariyaṃ, bhante, abbhutaṃ, bhante. Mahā vatāyaṃ, bhante, bhūmicālo; sumahā vatāyaṃ, bhante, bhūmicālo bhiṃsanako salomahaṃso; devadundubhiyo ca phaliṃsu. Ko nu kho, bhante, hetu ko paccayo mahato bhūmicālassa pātubhāvāyā”ti?

 

3.13. 아난다여, 여덟 가지 원인과 여덟 가지 조건 때문에 큰 지진은 일어난다. 무엇이 여덟인가? 아난다여,  이 대지는 물에 놓여있고 물은 바람에 놓여 있고 바람은 허공에 놓여 있다. 아난다여, 큰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큰 바람은 불면서 물을 흔들고 물은 흔들려서 땅을 흔든다. 이것이 큰 지진이 일어나는 첫 번째 원인이요 첫 번째 조건이다.”

“Aṭṭha kho ime, ānanda, hetū, aṭṭha paccayā mahato bhūmicālassa pātubhāvāya. Katame aṭṭha? Ayaṃ, ānanda, mahāpathavī udake patiṭṭhitā, udakaṃ vāte patiṭṭhitaṃ, vāto ākāsaṭṭho. Hoti kho so, ānanda, samayo, yaṃ mahāvātā vāyanti. Mahāvātā vāyantā udakaṃ kampenti. Udakaṃ kampitaṃ pathaviṃ kampeti. Ayaṃ paṭhamo hetu paṭhamo paccayo mahato bhūmicālassa pātubhāvāya.

 

 

3.14. “다시 아난다여,  신통이 있고 마음의 자유자재를 얻은 사문이나 바라문이나, 큰 신통과 큰 위력을 가진 신이 있는데 그들의 인식이 땅에 대해서는 제한적으로 개발되었지만 물에 대한 인식은 무량하게 개발되었다. 이런 자들이 이 땅을 흔들리게 하고 아주 흔들리게 하고 강하게 흔들리게 하고 요동치게 한다. 이것이 큰 지진이 일어나는 두 번째 원인이요 두 번째 조건이다.”

Puna caparaṃ, ānanda, samaṇo vā hoti brāhmaṇo vā iddhimā cetovasippatto, devo vā mahiddhiko mahānubhāvo, tassa parittā pathavīsaññā bhāvitā hoti, appamāṇā āposaññā. So imaṃ pathaviṃ kampeti saṅkampeti sampakampeti sampavedheti. Ayaṃ dutiyo hetu dutiyo paccayo mahato bhūmicālassa pātubhāvāya.

 

3.15. “다시 아난다여,  보살이 마음챙기고 분명하게 알아차리면서 도솔천에서 몸을 버리고 모태에 들 때에 땅은 흔들리고 많이 흔들리고 강하게 흔들리고 요동친다. 이것이 큰 지진이 일어나는 세 번째 원인이요 세 번째 조건이다.”

 

3.16. “다시 아난다여,  보살이 마음챙기고 분명하게 알아차리면서 모태로부터 나올 때에 땅은 흔들리고 많이 흔들리고 강하게 흔들리고 요동친다. 이것이 큰 지진이 일어나는 네 번째 원인이요 네 번째 조건이다.”

 

3.17. “다시 아난다여,  여래가 위없는 정등각을 깨달을 때에 땅은 흔들리고 아주 흔들리고 강하게 흔들리고 요동친다. 이것이 큰 지진이 일어나는 다섯 번째 원인이요 다섯 번째 조건이다.”

 

3.18. “다시 아난다여,  여래가 위없는 법의 바퀴를 굴릴 때에 땅은 흔들리고 아주 흔들리고 강하게 흔들리고 요동친다. 이것이 큰 지진이 일어나는 여섯 번째 원인이요 여섯 번째 조건이다.”

 

3.19. “다시 아난다여,  여래가 마음챙기고 알아차리면서 수명의 상카라를 포기할 때에 땅은 흔들리고 아주 흔들리고 강하게 흔들리고 요동친다. 이것이 큰 지진이 일어나는 일곱 번째 원인이요 일곱 번째 조건이다.”

 

3.20. “다시 아난다여,  여래가 무여열반의 요소[anupādisesāya nibbānadhātuyā] 반열반할 때parinibbāyati에 땅은 흔들리고 아주 흔들리고 강하게 흔들리고 요동친다. 이것이 큰 지진이 일어나는 여덟 번째 원인이요 여덟 번째 조건이다. 이들 여덟 가지 원인과 여덟 가지 조건 때문에 큰 지진은 일어난다.”Puna caparaṃ, ānanda, yadā tathāgato anupādisesāya nibbānadhātuyā parinibbāyati, tadāyaṃ pathavī kampati saṅkampati sampakampati sampavedhati. Ayaṃ aṭṭhamo hetu aṭṭhamo paccayo mahato bhūmicālassa pātubhāvāya. Ime kho, ānanda, aṭṭha hetū, aṭṭha paccayā mahato bhūmicālassa pātubhāvāya.

 

 

 

논점

 

 

1.이 대지는 물에 놓여있고 물은 바람에 놓여 있고 바람은 허공에 놓여 있다(Ayaṃ, ānanda, mahāpathavī udake patiṭṭhitā, udakaṃ vāte patiṭṭhitaṃ, vāto ākāsaṭṭho) 2700년전 부처님 당시에 이러한 통찰은 현대 과학에서 말하는 사실과 같은가?  

 

 

 

 

2.여덟 가지 원인과 여덟 가지 조건 때문에 큰 지진은 일어난다.(Aṭṭha kho ime, ānanda, hetū, aṭṭha paccayā mahato bhūmicālassa pātubhāvāya) 여기에서 원인hetū과 조건paccayā의 의미는 ?

 

 

 

3. 4대성지는 익히 알고 있지만 수명의 상카라를 놓은 웨살리를 추가하면 5대성지가 될 것이다. 8대성지, 10대성지를 지정한 다면 어느 곳이 추가 되어야 할까? 

 

 

 

4.지진이 일어나는 8가지 이유 이외에 다른 이유는 없을까?

 

 

 

6월 8일 목요일 오후 9시 15분에 대반열반경(D16) 일곱번째 <온라인불자회> 공부모임을 시작합니다.

다 같이 합장하고 큰 소리로 합창합니다.

 

나모 따사 바가와또 아라하또 삼마 삼붓다사(Namo tassa bhagavato arahato sammāsambuddhassa)
나모 따사 바가와또 아라하또 삼마 삼붓다사(Namo tassa bhagavato arahato sammāsambuddhassa)
나모 따사 바가와또 아라하또 삼마 삼붓다사(Namo tassa bhagavato arahato sammāsambuddhassa)

 

붓당 사라남 가차미 (Buddham Saranam Gacchami)  부처님께 귀의합니다.(3번)

담망 사라남 가차미 (Dhammam Saranam Gacchami) 가르침에 귀의합니다.()

상강 사라남 가차미 (Sangham Saranam Gacchami)  승가에 귀의합니다.()

 

 

 

 

여덟 가지 회중(parisā)

17. Aṭṭha  parisā

 

3.21. “아난다여, 여덟 가지 회중[八会衆]이 있나니 끄샤뜨리야의 회중, 바라문의 회중, 장자의 회중, 사문의 회중, 사대천왕의 회중, 삼십삼천의 회중, 마라의 회중, 범천의 회중이다.”

Aṭṭha kho imā, ānanda, parisā. Katamā aṭṭha? Khattiyaparisā, brāhmaṇaparisā, gahapatiparisā, samaṇaparisā, ­cātuma­hārā­jika­parisā, tāvatiṃ­sa­parisā, māraparisā, brahmaparisā. 

 

3.22. “아난다여, 전에 나는 수백의 끄샤뜨리야 회중을 만나러 가서 거기에 함께 앉았고 대화를 하였고 토론에 몰두하였음을 잘 알고 있다. 거기서 그들이 어떤 [빼어난] 용모를 가졌다 할지라도 나도 그런 [빼어난] 용모를 가졌으며, 그들이 어떤 [좋은] 음성을 가졌다 할지라도 나도 그런 [좋은] 음성을 가졌다. 

Abhijānāmi kho panāhaṃ, ānanda, anekasataṃ khat­tiya­parisaṃ upasaṅkamitā. Tatrapi mayā sanni­sinna­pubbañ­ceva salla­pi­ta­pubbañca sākacchā ca samā­pajji­ta­pubbā. Tattha yādisako tesaṃ vaṇṇo hoti, tādisako mayhaṃ vaṇṇo hoti. Yādisako tesaṃ saro hoti, tādisako mayhaṃ saro hoti. 

 

 

나는 그들에게 법을 설하고 격려하고 분발하게 하고 기쁘게 하였지만 그들은 내가 그렇게 말할 때 누가 이런 말을 하는가, 그는 신인가 인간인가?’라고 하면서 나를 알지 못하였다. Dhammiyā kathāya sandassemi samādapemi samuttejemi sampahaṃsemi. Bhāsamānañca maṃ na jānanti: ‘ko nu kho ayaṃ bhāsati devo vā manusso vā’ti? 

 

 

나는 그들에게 법을 설하고 격려하고 분발하게 하고 기쁘게 한 뒤 사라졌나니 그들은 내가 사라졌을 때 누가 여기서 사라졌는가, 그는 신인가 인간인가?’라고 하면서 나를 알지 못하였다.”

Dhammiyā kathāya sandassetvā samādapetvā samuttejetvā sampahaṃsetvā antaradhāyāmi. Antarahitañca maṃ na jānanti: ‘ko nu kho ayaṃ antarahito devo vā manusso vā’ti? 

 

 

3.22. “아난다여, 전에 나는 수백의 바라문의 회중을  장자의 회중을  사문의 회중을  사대천왕의 회중을  삼십삼천의 회중을  마라의 회중을  범천의 회중을 만나러 가서 거기에 함께 앉았고 대화를 하였고 토론에 몰두하였음을 잘 알고 있다. 거기서 그들이 어떤 [빼어난] 용모를 가졌다 할지라도 나도 그런 [빼어난] 웅모를 가졌으며, 그들이 어떤 [좋은] 음성을 가졌더라도 나도 그런 [좋은] 음성을 가졌다. 나는 그들에게 법을 설하고 격려하고 분발하게 하고 기쁘게 하였지만 그들은 내가 그렇게 말할 때 누가 이런 말을 하는가, 그는 신인가 인간인가?’라고 하면서 나를 알지 못하였다. 나는 그들에게 법을 설하고 격려하고 분발하게 하고 기쁘게 한 뒤 사라졌나니 그들은 내가 사라졌을 때 누가 여기서 사라졌는가, 그는 신인가 인간인가?’라고 하면서 나를 알지 못하였다.”

 

 

여덟 가지 지배의 경지

18. Aṭṭha­  abhi­bhāyatana (abhibhū–āyatana) 숙달의 수단]

 

3.24. “아난다여, 여덟 가지 지배의 경지[八勝処]가 있다. 무엇이 여덟인가?”

Aṭṭha kho imāni, ānanda, abhi­bhāyata­nāni. Katamāni aṭṭha? 

 

3.25. “ 어떤 자는 안으로 물질[]을 인식하면서, 밖으로 좋은 색깔이나 나쁜 색깔을 가진 제한된 물질들을 본다. 이것들을 지배하면서 나는 알고 본다.’라고 이렇게 인식한다. 이것이 첫 번째 지배의 경지이다.”

Ajjhattaṃ rūpasaññī eko bahiddhā rūpāni passati parittāni suvaṇ­ṇa­dubbaṇ­ṇāni. ‘Tāni abhibhuyya jānāmi passāmī’ti evaṃsaññī hoti. Idaṃ paṭhamaṃ abhibhāyatanaṃ.

Perceiving forms internally, someone sees forms externally, limited, beautiful or ugly, and having mastered them, he is one who perceives thus: ‘I know, I see’. This is the first means of (mind) mastery. 

 

3.26. “ 어떤 자는 안으로 물질을 인식하면서, 밖으로 좋은 색깔이나 나쁜 색깔을 가진 무량한 물질들을 본다. 이것들을 지배하면서 나는 알고 본다.’라고 이렇게 인식한다. 이것이 두 번째 지배의 경지이다.”

 

3.27. “ 어떤 자는 안으로 물질을 인식하지 않으면서, 밖으로 좋은 색깔이나 나쁜 색깔을 가진 제한된 물질들을 본다. 이것들을 지배하면서 나는 알고 본다.’라고 이렇게 인식한다. 이것이 세 번째 지배의 경지이다.”

 

3.28. “ 어떤 자는 안으로 물질을 인식하지 않으면서, 밖으로 좋은 색깔이나 나쁜 색깔을 가진 무량한 물질들을 본다. 이것들을 지배하면서 나는 알고 본다.’라고 이렇게 인식한다. 이것이 네 번째 지배의 경지이다.”

 

3.29. “ 어떤 자는 안으로는 물질을 인식하지 않으면서, 밖으로 푸른 색깔을 가졌고 푸른 외양을 가졌고 푸른 광명을 가진 푸른 물질들을 본다. 마치 아마 꽃(umāpupphaṃ)이 푸르고 푸른 색깔을 가졌고 푸른 외양을 가졌고 푸른 광명을 가진 것처럼, 마치 양면이 모두 부드러운 와라나시 옷감(bārāṇaseyyakaṃ)이 푸르고 푸른 색깔을 가졌고 푸른 외양을 가졌고 푸른 광명을 가진 것처럼, 어떤 자는 안으로 물질을 인식하지 않으면서 밖으로 푸르고 푸른 색깔을 가졌고 푸른 외양을 가졌고 푸른 광명을 가진 물질들을 본다. 이것들을 지배하면서 나는 알고 본다.’라고 이렇게 인식한다. 이것이 다섯 번째 지배의 경지이다.”

Ajjhattaṃ arūpasaññī eko bahiddhā rūpāni passati nīlāni nīlavaṇṇāni nīla­ni­dassa­nāni nīlanibhāsāni. Seyyathāpi nāma umāpupphaṃ nīlaṃ nīlavaṇṇaṃ nīlanidassanaṃ nīlanibhāsaṃ. Seyyathā vā pana taṃ vatthaṃ bārāṇaseyyakaṃ ubhato­bhāga­vi­maṭṭhaṃ nīlaṃ nīlavaṇṇaṃ nīlanidassanaṃ nīlanibhāsaṃ. Evameva ajjhattaṃ arūpasaññī eko bahiddhā rūpāni passati nīlāni nīlavaṇṇāni nīla­ni­dassa­nāni nīlanibhāsāni. ‘Tāni abhibhuyya jānāmi passāmī’ti evaṃsaññī hoti. Idaṃ pañcamaṃ abhibhāyatanaṃ.

 

3.30. “ 어떤 자는 안으로는 물질을 인식하지 않으면서, 밖으로 노란 색깔을 가졌고 노란 외양을 가졌고 노란 광명을 가진 노란 물질들을 본다. 마치 깐니까라 꽃(kaṇikā­ra­pupphaṃ)이 노랗고 노란 색깔을 가졌고 노란 외양을 가졌고 노란 광명을 가진 것처럼, 마치 양면이 모두 부드러운 와라나시 옷감(bārāṇaseyyakaṃ)이 노랗고 노란 색깔을 가졌고 노란 외양을 가졌고 노란 광명을 가진 것처럼, 어떤 자는 안으로 물질을 인식하지 않으면서 밖으로 노랗고 노란 색깔을 가졌고 노란 외양을 가졌고 노란 광명을 가진 물질들을 본다. 이것들을 지배하면서 나는 알고 본다.’라고 이렇게 인식한다. 이것이 여섯 번째 지배의 경지이다.”

Ajjhattaṃ arūpasaññī eko bahiddhā rūpāni passati pītāni pītavaṇṇāni pīta­ni­dassa­nāni pītanibhāsāni. Seyyathāpi nāma ­kaṇikā­ra­pupphaṃ pītaṃ pītavaṇṇaṃ pītanidassanaṃ pītanibhāsaṃ. Seyyathā vā pana taṃ vatthaṃ bārāṇaseyyakaṃ ubhato­bhāga­vi­maṭṭhaṃ pītaṃ pītavaṇṇaṃ pītanidassanaṃ pītanibhāsaṃ. Evameva ajjhattaṃ arūpasaññī eko bahiddhā rūpāni passati pītāni pītavaṇṇāni pīta­ni­dassa­nāni pītanibhāsāni. ‘Tāni abhibhuyya jānāmi passāmī’ti evaṃsaññī hoti. Idaṃ chaṭṭhaṃ abhibhāyatanaṃ.

 

 

3.31. “ 어떤 자는 안으로는 물질을 인식하지 않으면서, 밖으로 빨간 색깔을 가졌고 빨간 외양을 가졌고 빨간 광명을 가진 빨간 물질들을 본다. 마치 월계꽃(bandhu­jīvaka­pupphaṃ)이 빨갛고 빨간 색깔을 가졌고 빨간 외양을 가졌고 빨간 광명을 가진 것처럼, 마치 양면이 모두 부드러운 와라나시 옷감(bārāṇaseyyakaṃ)이 빨갛고 빨간 색깔을 가졌고 빨간 외양을 가졌고 빨간 광명을 가진 것처럼, 어떤 자는 안으로는 물질을 인식하지 않고 밖으로 빨간 색깔을 가졌고 빨간 외양을 가졌고 빨간 광명을 가진 빨간 물질들을 본다. 이것들을 지배하면서 나는 알고 본다.’라고 이렇게 인식한다. 이것이 일곱 번째 지배의 경지이다.”

Ajjhattaṃ arūpasaññī eko bahiddhā rūpāni passati lohitakāni lohita­ka­vaṇṇāni lohita­ka­ni­dassa­nāni lohita­ka­nibhā­sāni. Seyyathāpi nāma bandhu­jīvaka­pupphaṃ lohitakaṃ lohitakavaṇṇaṃ lohita­ka­ni­dassa­naṃ lohita­ka­nibhā­saṃ. Seyyathā vā pana taṃ vatthaṃ bārāṇaseyyakaṃ ubhato­bhāga­vi­maṭṭhaṃ lohitakaṃ lohitakavaṇṇaṃ lohita­ka­ni­dassa­naṃ lohita­ka­nibhā­saṃ. Evameva ajjhattaṃ arūpasaññī eko bahiddhā rūpāni passati lohitakāni lohita­ka­vaṇṇāni lohita­ka­ni­dassa­nāni lohita­ka­nibhā­sāni. ‘Tāni abhibhuyya jānāmi passāmī’ti evaṃsaññī hoti. Idaṃ sattamaṃ abhibhāyatanaṃ.

 

 

3.32. “ 어떤 자는 안으로는 물질을 인식하지 않으면서, 밖으로 흰 색깔을 가졌고 흰 외양을 가졌고 흰 광명을 가진 흰 물질들을 본다. 마치 샛별(osadhitārakā)이 희고 흰 색깔을 가졌고 흰 외양을 가졌고 흰 광명을 가진 것처럼, 마치 양면이 모두 부드러운 와라나시 옷감(bārāṇaseyyakaṃ)이 희고 흰 색깔을 가졌고 흰 외양을 가졌고 흰 광명을 가진 것처럼 어떤 자는 안으로는 물질을 인식하지 않고 밖으로 흰 색깔을 가졌고 흰 외양을 가졌고 흰 광명을 가진 흰 물질들을 본다. 이것들을 지배하면서 나는 알고 본다.’라고 이렇게 인식한다. 이것이 여덟 번째 지배의 경지이다.”

Ajjhattaṃ arūpasaññī eko bahiddhā rūpāni passati odātāni odātavaṇṇāni odāta­ni­dassa­nāni odātanibhāsāni. Seyyathāpi nāma osadhitārakā odātā odātavaṇṇā odātanidassanā odātanibhāsā. Seyyathā vā pana taṃ vatthaṃ bārāṇaseyyakaṃ ubhato­bhāga­vi­maṭṭhaṃ odātaṃ odātavaṇṇaṃ odāta­ni­dassa­naṃ odātanibhāsaṃ. Evameva ajjhattaṃ arūpasaññī eko bahiddhā rūpāni passati odātāni odātavaṇṇāni odāta­ni­dassa­nāni odātanibhāsāni. ‘Tāni abhibhuyya jānāmi passāmī’ti evaṃsaññī hoti. Idaṃ aṭṭhamaṃ abhibhāyatanaṃ. Imāni kho, ānanda, aṭṭha abhi­bhāyata­nāni.

 

 

 

 

 

논점

 

1. 회중(parisā)과 회중(saṅgha)의 차이점은?

 

*parisā:f.[Sk.pariṣad] 衆,衆会,会衆,集会処.

*saṅgha:m.[saṃ-hṛ] 衆,衆団,僧伽,僧,僧団,教団,和合衆.instr.saṅghena,saṅghā

 

 

2.나는 그들에게 법을 설하고 격려하고 분발하게 하고 기쁘게 하였지만 그들은 내가 그렇게 말할 때 누가 이런 말을 하는가, 그는 신인가 인간인가?’라고 하면서 나를 알지 못하였다. --이 문장의 의미는 ?

 

 

3. 브라흐마나빠리사brāhmaṇa parisā와  브라흐마빠리사brahma parisā의 차이점은 ?

 

 

 

4.지배의 경지(abhi­bhāyata­nāni,abhibhū–āyatana )란 무엇인가?  

 

*abhibhū masc. conqueror; victor; vanquisher; master [abhi–√bhū–ū]

* abhibhāyatana:the 8 stages of mastery are powers to be obtained by means of the kasiṇa-exercises.

The abhibhāyatana through their counteracting may master (suppress) the adverse states,and by means of higher knowledge they may master the objects of mind." 

 

 

 

 

 

 

 

 

"ummaka" (Linum usitatissimum

 

 

 

kaṇikāra"(Cassia fistula)

 

Bandhujīvaka(Pentapetes phoenicia)

 

지배 경(A8:65) Abhibhu-sutta

 

1. “비구들이여, 여덟 가지 지배의 경지[八勝處]가 있다. 무엇이 여덟인가?”

 

2. “어떤 자는 안으로 색깔[]을 인식하면서, 밖으로 색깔들을 본다. 그 색깔들은 제한된 것이고 곱거나 혹은 흉한 것이다. 이것들을 지배하면서 나는 알고 본다.’라고 이렇게 인식한다. 이것이 첫 번째 지배의 경지이다.”

 

3. “어떤 자는 안으로 색깔을 인식하면서, 밖으로 색깔들을 본다. 그 색깔들은 무량한 것이고 곱거나 혹은 흉한 것이다. 이것들을 지배하면서 나는 알고 본다.’라고 이렇게 인식한다. 이것이 두 번째 지배이 경지이다.”

 

4. “어떤 자는 안으로 색깔을 인식하지 않으면서, 밖으로 색깔들을 본다. 그 색깔들은 제한된 것이고 곱거나 흉한 것이다. 이것들을 지배하면서 나는 알고 본다.’라고 이렇게 인식한다. 이것이 세 번째 지배의 경지이다.”

 

5. “어떤 자는 안으로 색깔을 인식하지 않으면서, 밖으로 색깔들을 본다. 그 색깔들은 무량한 것이고 곱거나 혹은 흉한 것이다. 이것들을 지배하면서 나는 알고 본다.’라고 이렇게 인식한다. 이것이 네 번째 지배의 경지이다.”

 

6. “어떤 자는 안으로 색깔들을 인식하지 않으면서 밖으로 색깔들을 본다. 그것은 파랗고 파란색이며 파랗게 보이고 파란빛을 발한다. 이것들을 지배하면서 나는 알고 본다.’라고 이렇게 인식한다. 이것이 다섯 번째 지배의 경지이다.”

 

7. “어떤 자는 안으로 색깔을 인식하지 않으면서, 밖으로 색깔들을 본다. 그것은 노랗고 노란색이며 노랗게 보이고 노란빛을 발한다. 이것들을 지배하면서 나는 알고 본다.’라고 이렇게 인식한다. 이것이 여섯 번째 지배의 경지이다.”

 

8. “어떤 자는 안으로 색깔을 인식하지 않으면서, 밖으로 색깔들을 본다. 그것은 빨갛고 빨간색이며 빨갛게 보이고 빨간빛을 발한다. 이것들을 지배하면서 나는 알고 본다.’라고 이렇게 인식한다. 이것이 일곱 번째 지배의 경지이다.”

 

9. “어떤 자는 안으로 색깔을 인식하지 않으면서, 밖으로 색깔들을 본다. 그것은 희고 흰색이며 희게 보이고 흰빛을 발한다. 이것들을 지배하면서 나는 알고 본다.’라고 이렇게 인식한다. 이것이 여덟 번째 지배의 경지이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여덟 가지 지배의 경지가 있다.”

 

 

*gathering, assembly에 대한 pali 동의어들

ācinanta prp. accumulating; gathering; collecting

parisā fem. assembly; meeting; forum; gathering; group 

sannipāta masc. assembly; congregation; gathering 

sannipāta masc. connection; combination; gathering 

samaya masc. gathering; massing; congregation; assembly 

samāgamma ger. gathering; assembling 

samiti fem. assembly; crowd; gathering 

saṃvāsa masc. group meeting; gathering; communion

sabhā fem. society; assembly; company

 

 

group에 대한 pali 동의어들

 

āmaṇḍaliya nt. bunch; cluster; group; circle

kāya masc. group; host; company; collection; multitude; mass

kāya masc. category (of); class (of); group (of) (+gen)

khandha masc. group; class; category

gaṇa masc. group; crowd

gaṇa masc. (gram) set; group; collection

gāma masc. group; class; type; family

ghaṭā fem. group; cluster; swarm; mass; crowd

ṭhāna nt. group; division

nikāya masc. group; type; class; order

pakkha masc. side; party; group; faction

parisā fem. assembly; meeting; forum; gathering; group

pūga masc. guild; group; club; association

bhāga masc. class; category; group; subdivision

magga masc. series; sequence; group

saṅgha masc. group; crowd; mass; multitude; collection; entourage

saṇḍa masc. group; mass; multitude; throng; swarm

seni fem. guild; group; club; association

vagga masc. group; chapter; party; faction

vagga masc. (of consonants) set; group; class; series

 

 

 

6월 15일 목요일 오후 9시에 대반열반경(D16) 일곱번째 <온라인불자회> 공부모임을 시작합니다.

다 같이 합장하고 큰 소리로 합창합니다.

 

나모 따사 바가와또 아라하또 삼마 삼붓다사(Namo tassa bhagavato arahato sammāsambuddhassa)
나모 따사 바가와또 아라하또 삼마 삼붓다사(Namo tassa bhagavato arahato sammāsambuddhassa)
나모 따사 바가와또 아라하또 삼마 삼붓다사(Namo tassa bhagavato arahato sammāsambuddhassa)

 

붓당 사라남 가차미 (Buddham Saranam Gacchami)  부처님께 귀의합니다.(3번)

담망 사라남 가차미 (Dhammam Saranam Gacchami) 가르침에 귀의합니다.()

상강 사라남 가차미 (Sangham Saranam Gacchami)  승가에 귀의합니다.()

 

 

 

여덟 가지 해탈 19. Aṭṭha  vimokkha

 

3.33. “아난다여, 여덟 가지 해탈[八解脱]이 있다. 무엇이 여덟인가?

Aṭṭha kho ime, ānanda, vimokkhā. Katame aṭṭha? 

 

 여기 비구는 [안으로] 색계에 속하는 [에 들어] 밖으로 물질들을 본다. 이것이 첫 번째 해탈이다.

Rūpī rūpāni passati, ayaṃ paṭhamo vimokkho.

 

 안으로 물질에 대한 인식이 없이 밖으로 물질들을 본다. 이것이 두 번째 해탈이다.

Ajjhattaṃ arūpasaññī bahiddhā rūpāni passati, ayaṃ dutiyo vimokkho. 

Not perceiving form internally, they see visions externally.

 

 깨끗하다[]고 확신한다. 이것이 세 번째 해탈이다.

 Subhanteva adhimutto hoti, ayaṃ tatiyo vimokkho.

They’re focused only on beauty.

 

 물질[]에 대한 인식(산냐)을 완전히 초월하고, 부딪힘의 인식을 소멸하고, 갖가지 인식을 마음에 잡도리하지 않기 때문에 무한한 허공이라고 하면서 공무변처(空無邊処)를 구족하여 머문다. 이것이 네 번째 해탈이다.

 Sabbaso rūpasaññānaṃ samatikkamā paṭi­gha­saññā­naṃ atthaṅgamā nānat­ta­saññā­naṃ amanasikārā ‘ananto ākāso’ti ākāsānañ­cāyata­naṃ upasampajja viharati, ayaṃ catuttho vimokkho. 

 

 공무변처를 완전히 초월하여 무한한 알음알이[]라고 하면서 식무변처(識無邊処)를 구족하여 머문다. 이것이 다섯 번째 해탈이다.Sabbaso ākāsānañ­cāyata­naṃ samatikkamma ‘anantaṃ viññāṇan’ti viñ­ñā­ṇañ­cāyata­naṃ upasampajja viharati, ayaṃ pañcamo vimokkho. 

 

 식무변처를 완전히 초월하여 아무것도 없다.’라고 하면서 무소유처(無所有処)를 구족하며 머문다. 이것이 여섯 번째 해탈이다.Sabbaso viñ­ñā­ṇañ­cāyata­naṃ samatikkamma ‘natthi kiñcī’ti ākiñ­cañ­ñā­yatanaṃ upasampajja viharati, ayaṃ chaṭṭho vimokkho. 

 

 무소유처를 완전히 초월하여 비상비비상처(非想非非想処)를 구족하여 머문다. 이것이 일곱 번째 해탈이다.

Sabbaso ākiñ­cañ­ñā­yatanaṃ samatikkamma neva­saññā­nā­sañ­ñāyata­naṃ upasampajja viharati, ayaṃ sattamo vimokkho.

 

 일체 비상비비상처를 완전히 초월하여 상수멸(想受滅, saññā­ve­dayi­ta­nirodhaṃ)을 구족하여 머문다. 이것이 여덟 번째 해탈이다.” Sabbaso neva­saññā­nā­sañ­ñāyata­naṃ samatikkamma saññā­ve­dayi­ta­nirodhaṃ upasampajja viharati, ayaṃ aṭṭhamo vimokkho. Ime kho, ānanda, aṭṭha vimokkhā.

 

 

3.34. “아난다여, 한때 나는 우루웰라에서 네란자라 강둑에 있는 염소치기의 니그로다 나무 아래에서 처음 정등각을 성취하여 머물렀다. 그러자 마라 빠삐만이 나에게 다가왔다. 와서는 한 곁에 섰다. 한 곁에 서서 마라 빠삐만은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세존이시여, 이제 세존께서는 반열반에 드십시오. 선서께서는 반열반에 드십시오. 세존이시여, 지금이 세존께서 반열반에 드실 시간입니다.’라고.”Ekamidāhaṃ, ānanda, samayaṃ uruvelāyaṃ viharāmi najjā nerañjarāya tīre ajapā­la­nigrodhe paṭha­mā­bhisam­buddho. Atha kho, ānanda, māro pāpimā yenāhaṃ tenupasaṅkami; upasaṅkamitvā ekamantaṃ aṭṭhāsi. Ekamantaṃ ṭhito kho, ānanda, māro pāpimā maṃ etadavoca: ‘parinibbātu dāni, bhante, bhagavā; parinibbātu sugato, pari­nib­bā­na­kālo dāni, bhante, bhagavato’ti.  

 

3.35. “아난다여, 이렇게 말했을 때 나는 마라 빠삐만에게 이렇게 대답했다.

빠삐만이여, 나는 나의 비구 제자들이 입지가 굳고, 수행이 되고, 출중하며, 많이 배우고[多聞], 법을 잘 호지(護持)하고, [출세간]법에 이르게 하는 법에 따라 도를 닦고, 합당하게 도를 닦고, 법을 따라 행하며, 자기 스승에게 속하는 것을 파악한 뒤 그것을 천명하고 가르치고 알게 하고 확립하고 드러내고 분석하고 명료하게 설명하며, 다른 [삿된] 교설이 나타날 때 그것을 법으로 잘 제압하고, 제압한 뒤 [해탈을 성취하는] 기적을 갖춘 법을 설할 수 있게 되기까지는 반열반에 들지 않을 것이다.

빠삐만이여, 나는 나의 비구니 제자들이 입지가 굳고, 수행이 되고, 출중하며, 많이 배우고, 법을 잘 호지하고, [출세간]법에 이르게 하는 법에 따라 도를 닦고, 합당하게 도를 닦고, 법을 따라 행하며, 자기 스승에게 속하는 것을 파악한 뒤 그것을 천명하고 가르치고 알게 하고 확립하고 드러내고 분석하고 명료하게 설명하며, 다른 [삿된] 교설이 나타날 때 그것을 법으로 잘 제압하고, 제압한 뒤 [해탈을 성취하는] 기적을 갖춘 법을 설할 수 있게 되기까지는 반열반에 들지 않을 것이다.

 

빠삐만이여, 나는 나의 청신사 제자들이 입지가 굳고, 수행이 되고, 출중하며, 많이 배우고, 법을 잘 호지하고, [출세간]법에 이르게 하는 법에 따라 도를 닦고, 합당하게 도를 닦고, 법을 따라 행하며, 자기 스승에게 속하는 것을 파악한 뒤 그것을 천명하고 가르치고 알게 하고 확립하고 드러내고 분석하고 명료하게 설명하며, 다른 [삿된] 교설이 나타날 때 그것을 법으로 잘 제압하고, 제압한 뒤 [해탈을 성취하는] 기적을 갖춘 법을 설할 수 있게 되기까지는 반열반에 들지 않을 것이다.

 

빠삐만이여, 나는 나의 청신녀 제자들이 입지가 굳고, 수행이 되고, 출중하며, 많이 배우고, 법을 잘 호지하고, [출세간]법에 이르게 하는 법에 따라 도를 닦고, 합당하게 도를 닦고, 법을 따라 행하며, 자기 스승에게 속하는 것을 파악한 뒤 그것을 천명하고 가르치고 알게 하고 확립하고 드러내고 분석하고 명료하게 설명하며, 다른 [삿된] 교설이 나타날 때 그것을 법으로 잘 제압하고, 제압한 뒤 [해탈을 성취하는] 기적을 갖춘 법을 설할 수 있게 되기까지는 반열반에 들지 않을 것이다.

빠삐만이여, 나는 나의 이러한 청정범행이 잘 유지되고, 번창하고, 널리 퍼지고, 많은 사람들이 따르고, 대중적이어서 신과 인간들 사이에서 잘 설명되기까지는 반열반에 들지 않을 것이다.’라고.”

 

3.36. “아난다여, 그런데 지금 오늘 이 짜빨라 탑묘에서 마라 빠삐만이 [다시] 나에게 다가왔다. 와서는 한 곁에 섰다. 한 곁에 서서 마라 빠삐만은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세존이시여, 이제 세존께서는 반열반에 드십시오. 선서께서는 반열반에 드십시오. 세존이시여, 지금이 세존께서 반열반에 드실 시간입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중간생략>  

 

세존이시여, 그러나 지금 세존의 이러한 청정범행은 잘 유지되고, 번창하고, 널리 퍼지고, 많은 사람들이 따르고, 대중적이어서 신과 인간들 사이에서 잘 설명되었습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니 이제 세존께서는 반열반에 드십시오. 선서께서는 반열반에 드십시오. 세존이시여, 지금이 세존께서 반열반에 드실 시간입니다.’라고.”

Etarahi kho pana, bhante, bhagavato brahmacariyaṃ iddhañceva phītañca vitthārikaṃ bāhujaññaṃ puthubhūtaṃ, yāva devamanussehi suppakāsitaṃ. Parinibbātu dāni, bhante, bhagavā, parinibbātu sugato, pari­nib­bā­na­kālo dāni, bhante, bhagavato’ti.

 

 

 

3.37. “이렇게 말하였을 때 나는 마라 빠삐만에게 이렇게 대답하였다. ‘빠삐만이여, 그대는 조용히 있어라. 오래지 않아 여래( the Realized One )는 반열반에 들 것이다. 지금부터 3개월이 넘지 않아서 여래는 반열반에 들 것이다.’(지금부터 3개월이 지나서 여래는 반열반에 들 것이다)라고. 아난다여, 지금 오늘 이 짜빨라 탑묘에서 여래는 마음챙기고 알아차리면서 수명의 상카라를 포기하였다.”

Evaṃ vutte, ahaṃ, ānanda, māraṃ pāpimantaṃ etadavocaṃ: ‘appossukko tvaṃ, pāpima, hohi, na ciraṃ tathāgatassa parinibbānaṃ bhavissati. Ito tiṇṇaṃ māsānaṃ accayena tathāgato pari­nib­bā­yis­satī’ti. Idāneva kho, ānanda, ajja cāpāle cetiye tathāgatena satena sampajānena āyusaṅkhāro ossaṭṭho”ti.

 

 

‘Relax, Wicked One. The final extinguishment of the Realized One will be soon.

 "지금부터 3개월이 넘지 않아서 여래는 반열반에 들 것이다"라는 문장이 열반경에서 4번 반복해서 나옴’

 

 

 

논점

 

 

1. 여덟 가지 해탈[八解脱]와 여덟 가지 지배의 경지(Aṭṭha­  abhi­bhāyatana)는 어떻게 다른가? 

 

 

 

2. 여덟 가지 해탈[八解脱]은 여덟가지 삼매의 내용이다. 삼매를 해탈이라고 표현하는 이유는? 

 

 

 

3. "지금 오늘 이 짜빨라 탑묘에서 여래는 마음챙기고 알아차리면서 수명의 상카라를 포기하였다.”라는 표현이 왜 과거시제여야 하는가?

 

 

 

 

 

6월 22일 목요일 오후 9시 15분에 대반열반경(D16) 15번째 <온라인불자회> 공부모임을 시작합니다.

다 같이 합장하고 큰 소리로 합창합니다.

 

나모 따사 바가와또 아라하또 삼마 삼붓다사(Namo tassa bhagavato arahato sammāsambuddhassa)
나모 따사 바가와또 아라하또 삼마 삼붓다사(Namo tassa bhagavato arahato sammāsambuddhassa)
나모 따사 바가와또 아라하또 삼마 삼붓다사(Namo tassa bhagavato arahato sammāsambuddhassa)

 

붓당 사라남 가차미 (Buddham Saranam Gacchami)  부처님께 귀의합니다.(3번)

담망 사라남 가차미 (Dhammam Saranam Gacchami) 가르침에 귀의합니다.()

상강 사라남 가차미 (Sangham Saranam Gacchami)  승가에 귀의합니다.()

 

 

아난다의 간청  20. Ānanda­  yācana­ ka­thā

 

3.38. 이렇게 말씀하시자 아난다 존자는 [그때서야]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많은 사람의 이익을 위하고 많은 사람의 행복을 위하고 세상을 연민하고 신과 인간의 이상과 이익과 행복을 위하여 일 겁을 머물러 주소서. 부디 선서께서는 일 겁을 머물러 주소서.”

 

 

아난다여, 이제 되었다. 여래에게 간청을 하지 말라. 아난다여, 지금은 여래에게 간청할 적당한 시간이 아니다.”

3.39. 두 번째로  세 번째로 아난다 존자는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많은 사람의 이익을 위하고 많은 사람의 행복을 위하고 세상을 연민하고 신과 인간의 이상과 이익과 행복을 위하여 일 겁을 머물러 주소서. 부디 선서께서는 일 겁을 머물러 주소서.”

“Alaṃ dāni, ānanda. Mā tathāgataṃ yāci, akālo dāni, ānanda, tathāgataṃ yācanāyā”ti. Dutiyampi kho āyasmā ānando … pe … tatiyampi kho āyasmā ānando bhagavantaṃ etadavoca: “tiṭṭhatu, bhante, bhagavā kappaṃ, tiṭṭhatu sugato kappaṃ bahujanahitāya bahu­jana­su­khāya lokānukampāya atthāya hitāya sukhāya devamanussānan”ti.

 

 

 

 

 

아난다여, 그대는 여래의 깨달음을 믿는가?”

그러하옵니다, 세존이시여.”

아난다여, 그렇다면 그대는 왜 세 번까지 [간청을 하여] 여래를 성가시게 하는가?”

“Saddahasi tvaṃ, ānanda, tathāgatassa bodhin”ti? “Evaṃ, bhante”. “Atha kiñcarahi tvaṃ, ānanda, tathāgataṃ yāvatatiyakaṃ abhinippīḷesī”ti? 

 

 

3.40. “세존이시여, 저는 세존의 면전에서 아난다여, 누구든지 네 가지 성취수단[四如意足]을 닦고, 많이 [공부]짓고, 수레로 삼고, 기초로 삼고, 확립하고, 굳건히 하고, 부지런히 닦은 사람은 원하기만 하면 일 겁 동안 머물 수도 있고 겁이 다하도록 머물 수도 있다. 아난다여, 여래는 네 가지 성취수단을 닦고, 많이 [공부]짓고, 수레로 삼고, 기초로 삼고, 확립하고, 굳건히 하고, 부지런히 닦았다. 여래는 원하기만 하면 일 겁 동안 머물 수도 있고 겁이 다하도록 머물 수도 있다.’라고 들었고 면전에서 받아 지녔습니다.”

“Sammukhā metaṃ, bhante, bhagavato sutaṃ sammukhā paṭiggahitaṃ: ‘yassa kassaci, ānanda, cattāro iddhipādā bhāvitā bahulīkatā yānīkatā vatthukatā anuṭṭhitā paricitā susamāraddhā, so ākaṅkhamāno kappaṃ vā tiṭṭheyya kappāvasesaṃ vā. Tathāgatassa kho, ānanda, cattāro iddhipādā bhāvitā bahulīkatā yānīkatā vatthukatā anuṭṭhitā paricitā susamāraddhā. So ākaṅkhamāno, ānanda, tathāgato kappaṃ vā tiṭṭheyya kappāvasesaṃ vā’”ti.

 

 

아난다여, 그대는 여래의 깨달음을 믿는가?”

그러하옵니다, 세존이시여.”

아난다여, 그러므로 이런 잘못은 그대에게 있다. 그대가 이런 잘못을 범하였다. 여래가 이와 같이 분명한 암시를 주고 분명한 빛을 드러내었는데도 그대는 그 뜻을 꿰뚫어 보지 못했다. 그래서 그대는 여래에게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많은 사람의 이익을 위하고 많은 사람의 행복을 위하고 세상을 연민하고 신과 인간의 이상과 이익과 행복을 위하여 일 겁을 머물러 주소서. 부디 선서께서는 일 겁을 머물러 주소서.’라고 간청하지 않았다. 

“Saddahasi tvaṃ, ānandā”ti? “Evaṃ, bhante”. “Tasmātihānanda, tuyhevetaṃ dukkaṭaṃ, tuyhevetaṃ aparaddhaṃ, yaṃ tvaṃ tathāgatena evaṃ oḷārike nimitte kayiramāne oḷārike obhāse kayiramāne nāsakkhi paṭivijjhituṃ, na tathāgataṃ yāci: ‘tiṭṭhatu, bhante, bhagavā kappaṃ, tiṭṭhatu sugato kappaṃ bahujanahitāya bahu­jana­su­khāya lokānukampāya atthāya hitāya sukhāya devamanussānan’ti.

 

아난다여, 만일 그대가 여래에게 간청을 했더라면 두 번은 그대의 말을 거절했을 것이지만 여래는 세 번째에는 허락하였을 것이다. 아난다여, 그러므로 이런 잘못은 그대에게 있다. 그대가 이런 잘못을 범하였다.”

Sace tvaṃ, ānanda, tathāgataṃ yāceyyāsi, dveva te vācā tathāgato paṭikkhipeyya, atha tatiyakaṃ adhivāseyya. Tasmātihānanda, tuyhevetaṃ dukkaṭaṃ, tuyhevetaṃ aparaddhaṃ.

 

 

3.41. “아난다여, 한때 나는 라자가하에서 독수리봉 산(영취산)에 머물렀다. 아난다여, 거기서도 나는 그대를 불러서 말하였다. ‘아난다여, 라자가하는 아름답구나. 독수리봉 산은 아름답구나. 아난다여, 누구든지 네 가지 성취수단[四如意足]을 닦고, 많이 [공부]짓고, 수레로 삼고, 기초로 삼고, 확립하고, 굳건히 하고, 부지런히 닦은 사람은 원하기만 하면 일 겁을 머물 수도 있고 겁이 다하도록 머물 수도 있다. 아난다여, 여래는 네 가지 성취수단을 닦고, 많이 [공부]짓고, 수레로 삼고, 기초로 삼고, 확립하고, 굳건히 하고, 부지런히 닦았다. 여래는 원하기만 하면 일 겁을 머물 수도 있고 겁이 다하도록 머물 수도 있다.’라고.

아난다여, 여래가 이와 같이 분명한 암시를 주고 분명한 빛을 드러내었는데도 그대는 그 뜻을 꿰뚫어 보지 못했다. 그래서 그대는 여래에게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많은 사람의 이익을 위하고 많은 사람의 행복을 위하고 세상을 연민하고 신과 인간의 이상과 이익과 행복을 위하여 일 겁을 머물러 주소서. 부디 선서께서는 일 겁을 머물러 주소서.’라고 간청하지 않았다. 아난다여, 만일 그대가 여래에게 간청을 했더라면 두 번은 그대의 말을 거절했을 것이지만 여래는 세 번째에는 허락하였을 것이다. 아난다여, 그러므로 이런 잘못은 그대에게 있다. 그대가 이런 잘못을 범하였다.”

 

3.42. “아난다여, 한때 나는 라자가하에서 니그로다 숲에  라자가하에서 도둑의 낭떠러지에  라자가하에서 웨바라 산비탈의 칠엽굴에  라자가하에서 이시길리 산비탈의 검은 바위에  라자가하에서 차가운 숲에 있는 뱀 못의 비탈에  라자가하에서 따뽀다 원림에  라자가하에서 웰루와나의 다람쥐 보호구역에  라자가하에서 지와까의 망고 숲에  라자가하에서 맛다꿋치의 녹야원에 머물렀다.”

 

3.43. “아난다여, 거기서도 나는 그대를 불러서 말하였다. ‘아난다여, 라자가하는 아름답구나. 독수리봉 산은 아름답구나. 니그로다 숲은 아름답구나. 도둑의 낭떠러지는 아름답구나. 웨바라 산비탈의 칠엽굴은 아름답구나. 이시길리 산비탈의 검은 바위는 아름답구나. 차가운 숲에 있는 뱀 못의 비탈은 아름답구나. 따뽀다 원림은 아름답구나. 웰루와나의 다람쥐 보호구역은 아름답구나. 지와까의 망고 숲은 아름답구나. 맛다꿋치의 녹야원은 아름답구나.’”

 

3.44. “아난다여, 누구든지 네 가지 성취수단[四如意足]을 닦고, 많이 [공부]짓고, 수레로 삼고, 기초로 삼고, 확립하고, 굳건히 하고, 부지런히 닦은 사람은 원하기만 하면 일 겁을 머물 수도 있고 겁이 다하도록 머물 수도 있다. 아난다여, 여래는 네 가지 성취수단을 닦고, 많이 [공부]짓고, 수레로 삼고, 기초로 삼고, 확립하고, 굳건히 하고, 부지런히 닦았다. 여래는 원하기만 하면 일 겁을 머물 수도 있고 겁이 다하도록 머물 수도 있다.’라고.

아난다여, 여래가 이와 같이 분명한 암시를 주고 분명한 빛을 드러내었는데도 그대는 그 뜻을 꿰뚫어 보지 못했다. 그래서 그대는 여래에게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많은 사람의 이익을 위하고 많은 사람의 행복을 위하고 세상을 연민하고 신과 인간의 이상과 이익과 행복을 위하여 일 겁을 머물러 주소서. 부디 선서께서는 일 겁을 머물러 주소서.’라고 간청하지 않았다. 아난다여, 만일 그대가 여래에게 간청을 했더라면 두 번은 그대의 말을 거절했을 것이지만 여래는 세 번째에는 허락하였을 것이다. 아난다여, 그러므로 이런 잘못은 그대에게 있다. 그대가 이런 잘못을 범하였다.”

 

3.45. “아난다여, 누구든지 네 가지 성취수단[四如意足]을 닦고, 많이 [공부]짓고, 수레로 삼고, 기초로 삼고, 확립하고, 굳건히 하고, 부지런히 닦은 사람은 원하기만 하면 일 겁을 머물 수도 있고 겁이 다하도록 머물 수도 있다. 아난다여, 여래는 네 가지 성취수단을 닦고, 많이 [공부]짓고, 수레로 삼고, 기초로 삼고, 확립하고, 굳건히 하고, 부지런히 닦았다. 여래는 원하기만 하면 일 겁을 머물 수도 있고 겁이 다하도록 머물 수도 있다.’라고.

아난다여, 여래가 이와 같이 분명한 암시를 주고 분명한 빛을 드러내었는데도 그대는 그것을 꿰뚫어 볼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대는 여래에게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많은 사람의 이익을 위하고 많은 사람의 행복을 위하고 세상을 연민하고 신과 인간의 이상과 이익과 행복을 위하여 일 겁을 머물러 주소서. 부디 선서께서는 일 겁을 머물러 주소서.’라고 간청하지 않았다. 

Ekamidāhaṃ, ānanda, samayaṃ idheva vesāliyaṃ viharāmi udene cetiye. Tatrāpi kho tāhaṃ, ānanda, āmantesiṃ: ‘ramaṇīyā, ānanda, vesālī, ramaṇīyaṃ udenaṃ cetiyaṃ. Yassa kassaci, ānanda, cattāro iddhipādā bhāvitā bahulīkatā yānīkatā vatthukatā anuṭṭhitā paricitā susamāraddhā, so ākaṅkhamāno kappaṃ vā tiṭṭheyya kappāvasesaṃ vā. Tathāgatassa kho, ānanda, cattāro iddhipādā bhāvitā bahulīkatā yānīkatā vatthukatā anuṭṭhitā paricitā susamāraddhā, so ākaṅkhamāno, ānanda, tathāgato kappaṃ vā tiṭṭheyya kappāvasesaṃ vā’ti. Evampi kho tvaṃ, ānanda, tathāgatena oḷārike nimitte kayiramāne oḷārike obhāse kayiramāne nāsakkhi paṭivijjhituṃ, na tathāgataṃ yāci: ‘tiṭṭhatu, bhante, bhagavā kappaṃ, tiṭṭhatu sugato kappaṃ bahujanahitāya bahu­jana­su­khāya lokānukampāya atthāya hitāya sukhāya devamanussānan’ti.

 

 

아난다여, 만일 그대가 여래에게 간청을 했더라면 두 번은 그대의 말을 거절하였을 것이지만 여래는 세 번째에는 허락하였을 것이다. 아난다여, 그러므로 이런 잘못은 그대에게 있다. 그대가 이런 잘못을 범하였다.”

Sace tvaṃ, ānanda, tathāgataṃ yāceyyāsi, dveva te vācā tathāgato paṭikkhipeyya, atha tatiyakaṃ adhivāseyya, tasmātihānanda, tuyhevetaṃ dukkaṭaṃ, tuyhevetaṃ aparaddhaṃ.

 

 

3.46. “아난다여, 한때 나는 여기 웨살리에서 고따마까 탑묘에  웨살리에서 삿따마까 탑묘에  웨살리에서 바후뿟따 탑묘에  웨살리에서 사란다다 탑묘에 머물렀다.”

3.47. “아난다여, 그리고 지금 오늘 짜빨라 탑묘에서 그대를 불러서 말하였다. ‘아난다여, 웨살리는 아름답구나. 우데나 탑묘도 아름답고, 고따마까 탑묘도 아름답고, 삿땀바 탑묘도 아름답고, 바후뿟따 탑묘(다자탑)도 아름답고, 사란다다 탑묘도 아름답고, 짜빨라 탑묘도 아름답구나.

Ekamidāhaṃ, ānanda, samayaṃ idheva vesāliyaṃ viharāmi gotamake cetiye … pe … idheva vesāliyaṃ viharāmi sattambe cetiye … idheva vesāliyaṃ viharāmi bahuputte cetiye … idheva vesāliyaṃ viharāmi sārandade cetiye … idāneva kho tāhaṃ, ānanda, ajja cāpāle cetiye āmantesiṃ: ‘ramaṇīyā, ānanda, vesālī, ramaṇīyaṃ udenaṃ cetiyaṃ, ramaṇīyaṃ gotamakaṃ cetiyaṃ, ramaṇīyaṃ sattambaṃ cetiyaṃ, ramaṇīyaṃ bahuputtaṃ cetiyaṃ, ramaṇīyaṃ sārandadaṃ cetiyaṃ, ramaṇīyaṃ cāpālaṃ cetiyaṃ. 

 

아난다여, 누구든지 네 가지 성취수단[四如意足]을 닦고, 많이 [공부]짓고, 수레로 삼고, 기초로 삼고, 확립하고, 굳건히 하고, 부지런히 닦은 사람은 원하기만 하면 일 겁을 머물 수도 있고, 겁이 다하도록 머물 수도 있다. 아난다여, 여래는 네 가지 성취수단을 닦고, 많이 [공부]짓고, 수레로 삼고, 기초로 삼고, 확립하고, 굳건히 하고, 부지런히 닦았다. 여래는 원하기만 하면 일 겁을 머물 수도 있고 겁이 다하도록 머물 수도 있다.’라고.

 

아난다여, 여래가 이와 같이 분명한 암시를 주고 분명한 빛을 드러내었는데도 그대는 그 뜻을 꿰뚫어 보지 못하였다. 그래서 그대는 여래에게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많은 사람의 이익을 위하고 많은 사람의 행복을 위하고 세상을 연민하고 신과 인간의 이상과 이익과 행복을 위하여 일 겁을 머물러 주소서. 부디 선서께서는 일 겁을 머물러 주소서.’라고 간청하지 않았다. 

Yassa kassaci, ānanda, cattāro iddhipādā bhāvitā bahulīkatā yānīkatā vatthukatā anuṭṭhitā paricitā susamāraddhā, so ākaṅkhamāno kappaṃ vā tiṭṭheyya kappāvasesaṃ vā. Tathāgatassa kho, ānanda, cattāro iddhipādā bhāvitā bahulīkatā yānīkatā vatthukatā anuṭṭhitā paricitā susamāraddhā, so ākaṅkhamāno, ānanda, tathāgato kappaṃ vā tiṭṭheyya kappāvasesaṃ vā’ti. Evampi kho tvaṃ, ānanda, tathāgatena oḷārike nimitte kayiramāne oḷārike obhāse kayiramāne nāsakkhi paṭivijjhituṃ, na tathāgataṃ yāci: ‘tiṭṭhatu bhagavā kappaṃ, tiṭṭhatu sugato kappaṃ bahujanahitāya bahu­jana­su­khāya lokānukampāya atthāya hitāya sukhāya devamanussānan’ti.

 

 

아난다여, 만일 그대가 여래에게 간청을 했더라면 두 번은 그대의 말을 거절했을 것이지만 여래는 세 번째에는 허락하였을 것이다. 아난다여, 그러므로 이런 잘못은 그대에게 있다. 그대가 이런 잘못을 범하였다.”

Sace tvaṃ, ānanda, tathāgataṃ yāceyyāsi, dveva te vācā tathāgato paṭikkhipeyya, atha tatiyakaṃ adhivāseyya. Tasmātihānanda, tuyhevetaṃ dukkaṭaṃ, tuyhevetaṃ aparaddhaṃ.

 

 

3.48. “아난다여, [그리고] 참으로 내가 전에 사랑스럽고 마음에 드는 모든 것과는 헤어지기 마련이고 없어지기 마련이고 달라지기 마련이라고 그처럼 말하지 않았던가. 아난다여, 그러니 여기서 [그대가 간청하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아난다여, 태어났고 존재했고 형성된 것은 모두 부서지기 마련인 법이거늘 그런 것을 두고 절대로 부서지지 말라.’고 한다면 그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아난다여, 그리고 여래는 이미 수명의 상카라를 포기하여 그것을 버렸고 내던졌고 풀어버렸고 제거했고 방기하였다. 그리하여 오래지 않아서 여래는 반열반에 들 것이다. 지금부터 3개월이 넘지 않아서 여래는 반열반에 들 것이다.’라고 분명하게 말하였다. 그런데 그것을 여래가 [] 살기 위해서 다시 돌이킨다는 것은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아난다여, 이제 큰 숲에 있는 중각강당으로 가자.”

그렇게 하겠습니다, 세존이시여.”라고 아난다 존자는 세존께 대답했다.

Nanu etaṃ, ānanda, mayā paṭikacceva  akkhātaṃ: ‘sabbeheva piyehi manāpehi nānābhāvo vinābhāvo aññathābhāvo. Taṃ kutettha, ānanda, labbhā, yaṃ taṃ jātaṃ bhūtaṃ saṅkhataṃ palokadhammaṃ, taṃ vata mā palujjīti netaṃ ṭhānaṃ vijjati’. Yaṃ kho panetaṃ, ānanda, tathāgatena cattaṃ vantaṃ muttaṃ pahīnaṃ paṭinissaṭṭhaṃ ossaṭṭho āyusaṅkhāro, ekaṃsena vācā bhāsitā: ‘na ciraṃ tathāgatassa parinibbānaṃ bhavissati. Ito tiṇṇaṃ māsānaṃ accayena tathāgato pari­nib­bā­yis­satī’ti. Tañca tathāgato jīvitahetu puna paccā­va­missatīti  netaṃ ṭhānaṃ vijjati. Āyāmānanda, yena mahāvanaṃ kūṭāgārasālā tenu­pasaṅka­mis­sāmā”ti. “Evaṃ, bhante”ti kho āyasmā ānando bhagavato paccassosi.

 

 

3.49. 그러자 세존께서는 아난다 존자와 함께 큰 숲에 있는 중각강당으로 가셨다. 가서는 아난다 존자를 불러서 말씀하셨다.아난다여, 그대는 가서 웨살리를 의지하여 머무르는 비구들을 모두 집회소로 모이게 하라.”

Atha kho bhagavā āyasmatā ānandena saddhiṃ yena mahāvanaṃ kūṭāgārasālā tenupasaṅkami; upasaṅkamitvā āyasmantaṃ ānandaṃ āmantesi: “gaccha tvaṃ, ānanda, yāvatikā bhikkhū vesāliṃ upanissāya viharanti, te sabbe upaṭṭhā­na­sālā­yaṃ sannipātehī”ti. 

 

 

그렇게 하겠습니다, 세존이시여.”라고 아난다 존자는 세존께 대답한 뒤 웨살리를 의지하여 머무르는 비구들을 모두 집회소로 모이게 하고서 세존께 갔다. 가서는 세존께 절을 올리고 한 곁에 섰다. 한 곁에 서서 아난다 존자는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세존이시여, 비구 승가가 다 모였습니다. 이제 세존께서 [가실] 시간이 되었습니다.”

“Evaṃ, bhante”ti kho āyasmā ānando bhagavato paṭissutvā yāvatikā bhikkhū vesāliṃ upanissāya viharanti, te sabbe upaṭṭhā­na­sālā­yaṃ sannipātetvā yena bhagavā tenupasaṅkami; upasaṅkamitvā bhagavantaṃ abhivādetvā ekamantaṃ aṭṭhāsi. Ekamantaṃ ṭhito kho āyasmā ānando bhagavantaṃ etadavoca: “sannipatito, bhante, bhikkhusaṅgho, yassadāni, bhante, bhagavā kālaṃ maññatī”ti.

 

 

3.50. 그러자 세존께서는 자리에서 일어나 집회소로 가셨다. 가서는 마련된 자리에 앉으셨다. 자리에 앉아서 세존께서는 비구들을 불러서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여기 [이 세상]에서 나는 이런 법들을 최상의 지혜로 안 뒤에 설하였나니 그대들은 그것을 호지한 뒤 받들어 행해야 하고 닦아야 하고 많이 [공부]지어야 한다. 그래서 이 청정범행이 길이 전해지고 오래 머물게 해야 한다. 이것이 많은 사람의 이익을 위하고 많은 사람의 행복을 위하고 세상을 연민하고 신과 인간의 이상과 이익과 행복을 위하는 것이다.

Atha kho bhagavā yenu­paṭṭhā­na­sālā tenupasaṅkami; upasaṅkamitvā paññatte āsane nisīdi. Nisajja kho bhagavā bhikkhū āmantesi: “tasmātiha, bhikkhave, ye te mayā dhammā abhiññā desitā, te vo sādhukaṃ uggahetvā āsevitabbā bhāvetabbā bahulīkātabbā, yathayidaṃ brahmacariyaṃ addhaniyaṃ assa ciraṭṭhitikaṃ, tadassa bahujanahitāya bahu­jana­su­khāya lokānukampāya atthāya hitāya sukhāya devamanussānaṃ. 

 

 

비구들이여, 그러면 나는 어떤 법들을 최상의 지혜로 안 뒤에 설하였는가? 그것은 네 가지 마음챙김의 확립[四念処], 네 가지 바른 노력[四正勤], 네 가지 성취수단[四如意足], 다섯 가지 기능[五根], 다섯 가지 힘[五力], 일곱 가지 깨달음의 구성요소[七覚支], 여덟 가지 구성요소를 가진 성스러운 도[八支聖道]이다. 비구들이여, 나는 이런 법들을 최상의 지혜로 안 뒤에 설하였나니 그대들은 이를 호지한 뒤 받들어 행해야 하고 닦아야 하고 많이 [공부]지어야 한다. 그래서 이 청정범행이 길이 전해지고 오래 머물게 해야 한다. 이것이 많은 사람의 이익을 위하고 많은 사람의 행복을 위하고 세상을 연민하고 신과 인간의 이상과 이익과 행복을 위하는 것이다.”

Katame ca te, bhikkhave, dhammā mayā abhiññā desitā, ye vo sādhukaṃ uggahetvā āsevitabbā bhāvetabbā bahulīkātabbā, yathayidaṃ brahmacariyaṃ addhaniyaṃ assa ciraṭṭhitikaṃ, tadassa bahujanahitāya bahu­jana­su­khāya lokānukampāya atthāya hitāya sukhāya devamanussānaṃ. Seyyathidaṃ—cattāro satipaṭṭhānā, cattāro sammappadhānā, cattāro iddhipādā, pañcindriyāni, pañca balāni, satta bojjhaṅgā, ariyo aṭṭhaṅgiko maggo. Ime kho te, bhikkhave, dhammā mayā abhiññā desitā, ye vo sādhukaṃ uggahetvā āsevitabbā bhāvetabbā bahulīkātabbā, yathayidaṃ brahmacariyaṃ addhaniyaṃ assa ciraṭṭhitikaṃ, tadassa bahujanahitāya bahu­jana­su­khāya lokānukampāya atthāya hitāya sukhāya devamanussānan”ti.

 

 

3.51. 그리고 다시 세존께서는 비구들을 불러서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참으로 이제 나는 당부하노니 모든 형성된 것들은 소멸하기 마련인 법이다. 방일하지 말고 [해야 할 바를 모두] 성취하라(vayadhammā saṅkhārā, appamādena sampādetha). 오래지 않아서 여래의 반열반이 있을 것이다. 지금부터 3개월이 넘지 않아서 여래는 반열반할 것이다.”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선서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신 뒤 다시 [게송으로] 이와 같이 설하셨다.

Atha kho bhagavā bhikkhū āmantesi: “handa dāni, bhikkhave, āmantayāmi vo, vayadhammā saṅkhārā, appamādena sampādetha. Naciraṃ tathāgatassa parinibbānaṃ bhavissati. Ito tiṇṇaṃ māsānaṃ accayena tathāgato pari­nib­bā­yis­satī”ti. Idamavoca bhagavā. Idaṃ vatvāna sugato athāparaṃ etadavoca satthā:

 

 

내 나이 무르익어

나의 수명은 이제 한계에 달했도다.

그대들을 버리고 나는 가리니

나는 내 자신을 의지처로 삼았다.

“Paripakko vayo mayhaṃ,
parittaṃ mama jīvitaṃ;
Pahāya vo gamissāmi,
kataṃ me saraṇamattano.

 

 

비구들이여, 방일하지 말고

마음챙김을 가지고 계를 잘 지켜라.

사유(思惟)를 잘 안주시키고

자신의 마음을 잘 보호하라.

Appamattā satīmanto,
susīlā hotha bhikkhavo;
Susa­māhi­ta­saṅkappā,
sacitta­ma­nurak­kha­tha.

 

 

이 법과 율에서

방일하지 않고 머무는 자는

태어남의 윤회를 버리고

괴로움의 끝을 만들 것이다.”

Yo imasmiṃ dhammavinaye,
appamatto vihassati;
Pahāya jātisaṃsāraṃ,
dukkhassantaṃ karissatī”ti.

 

 

 

 

 

논점

 

1. "아난다여, 만일 그대가 여래에게 간청을 했더라면 두 번은 그대의 말을 거절하였을 것이지만 여래는 세 번째에는 허락하였을 것이다. 아난다여, 그러므로 이런 잘못은 그대에게 있다. 그대가 이런 잘못을 범하였다.” 이문장의 의미는 무엇인가?

Sace tvaṃ, ānanda, tathāgataṃ yāceyyāsi, dveva te vācā tathāgato paṭikkhipeyya, atha tatiyakaṃ adhivāseyya, tasmātihānanda, tuyhevetaṃ dukkaṭaṃ, tuyhevetaṃ aparaddhaṃ.

 

 

2. 아난다여, 그대는 여래의 깨달음을 믿는가?”

그러하옵니다, 세존이시여.”

아난다여, 그렇다면 그대는 왜 세 번까지 [간청을 하여] 여래를 성가시게 하는가?”

“Saddahasi tvaṃ, ānanda, tathāgatassa bodhin”ti? “Evaṃ, bhante”. “Atha kiñcarahi tvaṃ, ānanda, tathāgataṃ yāvatatiyakaṃ abhinippīḷesī”ti? 

이문장의 의미는 무엇인가?

 

 

 

3.열반경에서 부처님 가르침에 따르면 많은 사람의 이익을 위하고 많은 사람의 행복을 위하고 세상을 연민하는 길은 무엇인가? 

 

 

4."나는 내 자신을 의지처로 삼았다.kataṃ me saraṇamattano."는 의미는 ?

 

 

 

 

 

7월 6일 목요일 오후 9시 15분에 대반열반경(D16) 16번째 <온라인불자회> 공부모임을 시작합니다.

다 같이 합장하고 큰 소리로 합창합니다.

 

나모 따사 바가와또 아라하또 삼마 삼붓다사(Namo tassa bhagavato arahato sammāsambuddhassa)
나모 따사 바가와또 아라하또 삼마 삼붓다사(Namo tassa bhagavato arahato sammāsambuddhassa)
나모 따사 바가와또 아라하또 삼마 삼붓다사(Namo tassa bhagavato arahato sammāsambuddhassa)

 

붓당 사라남 가차미 (Buddham Saranam Gacchami)  부처님께 귀의합니다.(3번)

담망 사라남 가차미 (Dhammam Saranam Gacchami) 가르침에 귀의합니다.()

상강 사라남 가차미 (Sangham Saranam Gacchami)  승가에 귀의합니다.()

 

 

코끼리가 뒤돌아보듯  21. Nāgāpalokita

 

4.1. 그때 세존께서는 오전에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발우와 가사를 수하시고 걸식을 위해서 웨살리로 들어가셨다. 웨살리에서 걸식하여 공양을 마치고 걸식에서 돌아오시면서, 코끼리가 뒤를 돌아다보듯이(nāgāpalokitaṃ) 웨살리를 돌아다보신 후 아난다 존자를 불러서 말씀하셨다. “아난다여, 이것이 여래가 웨살리를 보는 마지막이 될 것이다. 오라, 아난다여. 이제 반다가마로 가자.”

그렇게 하겠습니다, 세존이시여.”라고 아난다 존자는 세존께 대답했다. 그러자 세존께서는 많은 비구 승가와 함께 반다가마로 가셨다. 세존께서는 거기 반다가마에서 머무셨다.

Atha kho bhagavā pubbaṇ­ha­samayaṃ nivāsetvā patta­cīvara­mādāya vesāliṃ piṇḍāya pāvisi. Vesāliyaṃ piṇḍāya caritvā pacchābhattaṃ piṇḍa­pāta­paṭik­kanto nāgāpalokitaṃ vesāliṃ apaloketvā āyasmantaṃ ānandaṃ āmantesi: “idaṃ pacchimakaṃ, ānanda, tathāgatassa vesāliyā dassanaṃ bhavissati. Āyāmānanda, yena bhaṇḍagāmo tenu­pasaṅka­mis­sāmā”ti. “Evaṃ, bhante”ti kho āyasmā ānando bhagavato paccassosi.

Atha kho bhagavā mahatā ­bhik­khu­saṅ­ghena saddhiṃ yena bhaṇḍagāmo tadavasari. Tatra sudaṃ bhagavā bhaṇḍagāme viharati. 

 

4.2. 거기서 세존께서는 비구들을 불러서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네 가지를 깨닫지 못하고 꿰뚫지 못하였기 때문에 나와 그대들은 이처럼 긴 세월을 치달리고 윤회하였다.Tatra kho bhagavā bhikkhū āmantesi: “catunnaṃ, bhikkhave, dhammānaṃ ananubodhā appaṭivedhā evamidaṃ dīghamaddhānaṃ sandhāvitaṃ saṃsaritaṃ mamañceva tumhākañca.

 

무엇이 네 가지인가? 비구들이여, 성스러운 계를 깨닫지 못하고 꿰뚫지 못하였기 때문에 나와 그대들은 이처럼 긴 세월을 치달리고 윤회하였다. Katamesaṃ catunnaṃ? Ariyassa, bhikkhave, sīlassa ananubodhā appaṭivedhā evamidaṃ dīghamaddhānaṃ sandhāvitaṃ saṃsaritaṃ mamañceva tumhākañca.

 

비구들이여, 성스러운 삼매를 깨닫지 못하고 꿰뚫지 못하였기 때문에, 나와 그대들은 이처럼 긴 세월을 치달리고 윤회하였다.   Ariyassa, bhikkhave, samādhissa ananubodhā appaṭivedhā evamidaṃ dīghamaddhānaṃ sandhāvitaṃ saṃsaritaṃ mamañceva tumhākañca. 

 

비구들이여, 성스러운 통찰지를 깨닫지 못하고 꿰뚫지 못하였기 때문에, 나와 그대들은 이처럼 긴 세월을 [이곳에서 저곳으로] 치달리고 윤회하였다. Ariyāya, bhikkhave, paññāya ananubodhā appaṭivedhā evamidaṃ dīghamaddhānaṃ sandhāvitaṃ saṃsaritaṃ mamañceva tumhākañca.

 

비구들이여, 성스러운 해탈을 깨닫지 못하고 꿰뚫지 못하였기 때문에, 나와 그대들은 이처럼 긴 세월을 [이곳에서 저곳으로] 치달리고 윤회하였다. Ariyāya, bhikkhave, vimuttiyā ananubodhā appaṭivedhā evamidaṃ dīghamaddhānaṃ sandhāvitaṃ saṃsaritaṃ mamañceva tumhākañca.

 

 

비구들이여, 이제 성스러운 계를 깨닫고 꿰뚫었다. 성스러운 삼매를 깨닫고 꿰뚫었다. 성스러운 통찰지를 깨닫고 꿰뚫었다. 성스러운 해탈을 깨닫고 꿰뚫었다. 그러므로 존재에 대한 갈애는 잘라졌고, 존재로 인도함은 부수어졌으며, 다시 태어남은 이제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Tayidaṃ, bhikkhave, ariyaṃ sīlaṃ anubuddhaṃ paṭividdhaṃ, ariyo samādhi anubuddho paṭividdho, ariyā paññā anubuddhā paṭividdhā, ariyā vimutti anubuddhā paṭividdhā, ucchinnā bhavataṇhā, khīṇā bhavanetti, natthi dāni punabbhavo”ti. 

 

 

4.3.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선서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신 뒤 다시 이와 같이 설하셨다.

Idamavoca bhagavā. Idaṃ vatvāna sugato athāparaṃ etadavoca satthā: 

 

계와 삼매와 통찰지와 위없는 해탈 

이 법들을 명성을 가진 고따마는 깨달았도다.

“Sīlaṃ samādhi paññā ca,
vimutti ca anuttarā;
Anubuddhā ime dhammā,
gotamena yasassinā.

 

 

이처럼 부처는 최상의 지혜로 안 뒤에

비구들에게 법을 설하였노라.

이제 괴로움의 끝을 낸

눈을 갖춘 스승은 반열반할 것이다.”

Iti buddho abhiññāya,
dhammamakkhāsi bhikkhunaṃ;
Duk­khas­santa­karo satthā,
cakkhumā parinibbuto”ti.

 

 

4.4. 참으로 이렇게 세존께서는 반다가마에 머무시면서 많은 비구들에게 법에 관한 말씀을 하셨다. “이러한 것이 계다. 이러한 것이 삼매다. 이러한 것이 통찰지다. 계를 철저히 닦아서 생긴 삼매는 큰 결실이 있고 큰 이익이 있다. 삼매를 철저히 닦아서 생긴 통찰지는 큰 결실이 있고 큰 이익이 있다. 통찰지를 철저히 닦아서 생긴 마음은 바르게 번뇌들로부터 해탈하나니, 바로 이 감각적 욕망에 기인한 번뇌와 존재에 기인한 번뇌와 무명에 기인한 번뇌이다.”라고.

Tatrāpi sudaṃ bhagavā bhaṇḍagāme viharanto etadeva bahulaṃ bhikkhūnaṃ dhammiṃ kathaṃ karoti: “iti sīlaṃ, iti samādhi, iti paññā. Sīla­pari­bhāvito samādhi mahapphalo hoti mahānisaṃso. Samā­dhi­pari­bhāvitā paññā mahapphalā hoti mahānisaṃsā. Paññā­pari­bhāvi­taṃ cittaṃ sammadeva āsavehi vimuccati, seyyathidaṃ—kāmāsavā, bhavāsavā, avijjāsavā”ti.

 

4.5. 그때 세존께서는 반다가마에서 원하는 만큼 머무신 뒤 아난다 존자를 불러서 말씀하셨다. “아난다여, 이제 핫티가마로  암바가마로  잠부가마로  보가나가라로 가자.”Atha kho bhagavā bhaṇḍagāme yathābhirantaṃ viharitvā āyasmantaṃ ānandaṃ āmantesi: “āyāmānanda, yena hatthigāmo, yena ambagāmo, yena jambugāmo, yena bhoganagaraṃ tenu­pasaṅka­mis­sāmā”ti. 

 

4.6. “그렇게 하겠습니다, 세존이시여.”라고 아난다 존자는 세존께 응답했다. 그리하여 세존께서는 많은 비구 승가와 함께 보가나가라에 도착하셨다.“Evaṃ, bhante”ti kho āyasmā ānando bhagavato paccassosi.Atha kho bhagavā mahatā ­bhik­khu­saṃ­ghena saddhiṃ yena bhoganagaraṃ tadavasari.

 

 

네 가지 큰 권위 22. ­Catuma­hāpa­desa­kathā

 

 

4.7. 세존께서는 거기 보가나가라에서 아난다 탑묘에 머무셨다. 거기서 세존께서는 비구들을 불러서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네 가지 큰 권위[大法教]를 설하리라. “Mendicants, I will teach you the four great references. 

Tatra sudaṃ bhagavā bhoganagare viharati ānande cetiye. Tatra kho bhagavā bhikkhū āmantesi: “cattārome, bhikkhave, mahāpadese desessāmi, 

 

 

그것을 듣고 마음에 잘 새겨라. 이제 설하리라.”

그렇게 하겠습니다, 세존이시여.”라고 비구들은 세존께 응답했다.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taṃ suṇātha, sādhukaṃ manasikarotha, bhāsissāmī”ti. “Evaṃ, bhante”ti kho te bhikkhū bhagavato paccassosuṃ. Bhagavā etadavoca:

 

4.8.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가 말하기를 도반들이여, 나는 이것을 세존의 면전에서 듣고 세존의 면전에서 받아 지녔습니다. 이것은 법이고 이것은 율이고 이것은 스승의 교법입니다.’(sammukhā metaṁ, āvuso, bhagavato sutaṁ sammukhā paṭiggahitaṁ, ayaṁ dhammo ayaṁ vinayo idaṁ satthusāsanan’ti.)라고 하면, 그런 비구의 말을 인정하지도 말고 공박하지도 말아야 한다. 인정하지도 공박하지도 않은 채로 그 단어와 문장(padabyañjanāni)들을 주의 깊게 들어서 경과 대조해 보고 율에 비추어 보아야 한다.

그의 말을 경과 대조해 보고 율에 비추어 보아서, 만일 경과 견주어지지 않고 율과 맞지 않는다면 여기서 이것은 세존의 말씀이 아닙니다. 이 비구가 잘못 호지한 것입니다.’라는 결론에 도달해야 한다. 비구들이여, 이렇게 해서 이것은 물리쳐야 한다. 그의 말을 경과 견주어 보고 율에 비추어 보아서 만일 경과 견주어지고 율과 맞는다면 여기서 이것은 세존의 말씀입니다. 이 비구가 잘 호지한 것입니다. ‘addhā idaṃ tassa bhagavato vacanaṃ; imassa ca bhikkhuno suggahitan’ti.라는 결론에 도달해야 한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첫 번째 큰 권위이다.”

“Idha, bhikkhave, bhikkhu evaṃ vadeyya: ‘sammukhā metaṃ, āvuso, bhagavato sutaṃ sammukhā paṭiggahitaṃ, ayaṃ dhammo ayaṃ vinayo idaṃ satthusāsanan’ti. Tassa, bhikkhave, bhikkhuno bhāsitaṃ neva abhinan­di­tab­baṃ nap­paṭik­kosi­tabbaṃ. Anabhinanditvā appaṭikkositvā tāni padabyañjanāni sādhukaṃ uggahetvā sutte osāretabbāni, vinaye sandas­setab­bāni. Tāni ce sutte osāriyamānāni vinaye san­dassi­ya­mānāni na ceva sutte osaranti, na ca vinaye sandissanti, niṭṭhamettha gantabbaṃ: ‘addhā idaṃ na ceva tassa bhagavato vacanaṃ; imassa ca bhikkhuno duggahitan’ti. Iti hetaṃ, bhikkhave, chaḍḍeyyātha. Tāni ce sutte osāriyamānāni vinaye san­dassi­ya­mānāni sutte ceva osaranti, vinaye ca sandissanti, niṭṭhamettha gantabbaṃ: ‘addhā idaṃ tassa bhagavato vacanaṃ; imassa ca bhikkhuno suggahitan’ti. Idaṃ, bhikkhave, paṭhamaṃ mahāpadesaṃ dhāreyyātha. (1)

 

 

4.9.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가 말하기를 도반들이여, 아무개 거처에 장로들과 유명한 스승(sathero sapāmokkho.)이 계시는 승가가 있습니다. 그런 나는 이것을 그 승가의 면전에서 듣고 승가의 면전에서 받아 지녔습니다. 이것은 법이고 이것은 율이고 이것은 스승의 교법입니다.’라고 하면, 그런 비구의 말을 인정하지도 말고 공박하지도 말아야 한다. 인정하지도 공박하지도 않은 채로 그 단어와 문장들(padabyañjanāni)을 주의 깊게 들어서 경과 대조해 보고 율에 비추어 보아야 한다.

그의 말을 경과 대조해 보고 율에 비추어 보아서, 만일 경과 견주어지지 않고 율과 맞지 않는다면 여기서 이것은 세존의 말씀이 아닙니다. 이 비구가 잘못 호지한 것입니다.’라는 결론에 도달해야 한다. 비구들이여, 이렇게 해서 이것은 물리쳐야 한다. 그의 말을 경과 대조해 보고 율에 비추어 보아서 만일 경과 견주어지고 율과 맞는다면Tāni ce sutte osāriyamānāni vinaye san­dassi­ya­mānāni sutte ceva osaranti, vinaye ca sandissanti 여기서 이것은 세존의 말씀입니다. 이 비구가 잘 호지한 것입니다.‘addhā idaṃ tassa bhagavato vacanaṃ; tassa ca saṅghassa suggahitan’ti라는 결론에 도달해야 한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두 번째 큰 권위이다.”

Idha pana, bhikkhave, bhikkhu evaṃ vadeyya: ‘amukasmiṃ nāma āvāse saṅgho viharati sathero sapāmokkho. Tassa me saṅghassa sammukhā sutaṃ sammukhā paṭiggahitaṃ, ayaṃ dhammo ayaṃ vinayo idaṃ satthusāsanan’ti. Tassa, bhikkhave, bhikkhuno bhāsitaṃ neva abhinan­di­tab­baṃ nap­paṭik­kosi­tabbaṃ. Anabhinanditvā appaṭikkositvā tāni padabyañjanāni sādhukaṃ uggahetvā sutte osāretabbāni, vinaye sandas­setab­bāni. Tāni ce sutte osāriyamānāni vinaye san­dassi­ya­mānāni na ceva sutte osaranti, na ca vinaye sandissanti, niṭṭhamettha gantabbaṃ: ‘addhā idaṃ na ceva tassa bhagavato vacanaṃ; tassa ca saṅghassa duggahitan’ti. Itihetaṃ, bhikkhave, chaḍḍeyyātha. Tāni ce sutte osāriyamānāni vinaye san­dassi­ya­mānāni sutte ceva osaranti, vinaye ca sandissanti, niṭṭhamettha gantabbaṃ: ‘addhā idaṃ tassa bhagavato vacanaṃ; tassa ca saṅghassa suggahitan’ti. Idaṃ, bhikkhave, dutiyaṃ mahāpadesaṃ dhāreyyātha. (2)

 

 

4.10.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가 말하기를 도반들이여, 아무개 거처에 많이 배우고, 전승된 가르침에 능통하고, 법을 호지하고(dhammadharā), 율을 호지하고(vinayadharā), 마띠까(論母)를 호지(mātikādharā)하는 많은 장로 비구들이 계십니다.(sambahulā therā bhikkhū viharanti bahussutā āgatāgamā dhammadharā vinayadharā mātikādharā. 그런 나는 이것을 그 장로들의 면전에서 듣고 장로들의 면전에서 받아 지녔습니다. 이것은 법이고 이것은 율이고 이것은 스승의 교법입니다.’라고 하면, 그런 비구의 말을 인정하지도 말고 공박하지도 말아야 한다. 인정하지도 공박하지도 않은 채로 그 단어와 문장들(padabyañjanāni)을 주의 깊게 들어서 경과 대조해 보고 율에 비추어 보아야 한다.

그의 말을 경과 대조해 보고 율에 비추어 보아서, 만일 경과 견주어지지 않고 율과 맞지 않는다면 여기서 이것은 세존의 말씀이 아닙니다. 이 비구가 잘못 호지한 것입니다.’라는 결론에 도달해야 한다. 비구들이여, 이렇게 해서 이것은 물리쳐야 한다. 만일 그의 말을 경과 대조해 보고 율에 비추어 보아서 만일 경과 견주어지고 율과 맞는다면 여기서 이것은 세존의 말씀입니다. 이 비구가 잘 호지한 것입니다.‘addhā idaṃ tassa bhagavato vacanaṃ; tesañca therānaṃ suggahitan’ti.라는 결론에 도달해야 한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세 번째 큰 권위이다.”

 

4.11.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가 말하기를 도반들이여, 아무개 거처에 많이 배우고, 전승된 가르침에 능통하고, 법을 호지하고, 율을 호지하고, 마띠까(論母)를 호지하는 한 분의 장로 비구가 계십니다.(eko thero bhikkhu viharati bahussuto āgatāgamo dhammadharo vinayadharo mātikādharo.) 그런 나는 이것을 그 장로의 면전에서 듣고 장로들의 면전에서 받아 지녔습니다. 이것은 법이고 이것은 율이고 이것은 스승의 교법입니다.’라고 하면, 그런 비구의 말을 인정하지도 말고 공박하지도 말아야 한다. 인정하지도 공박하지도 않은 채로 그 단어와 문장들(padabyañjanāni)을 주의 깊게 들어서 경과 대조해 보고 율에 비추어 보아야 한다.

그의 말을 경과 대조해 보고 율에 비추어 보아서, 만일 경과 견주어지지 않고 율과 맞지 않는다면 여기서 이것은 세존의 말씀이 아닙니다. 이 비구가 잘못 호지한 것입니다.’라는 결론에 도달해야 한다. 비구들이여, 이렇게 해서 이것은 물리쳐야 한다. 그의 말을 경과 대조해 보고 율에 비추어 보아서 만일 경과 견주어지고 율과 맞는다면 여기서 이것은 세존의 말씀입니다. 이 비구가 잘 호지한 것입니다.’‘addhā idaṃ tassa bhagavato vacanaṃ; tassa ca therassa suggahitan’ti라는 결론에 도달해야 한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네 번째 큰 권위이다.”

 

4.12. 참으로 이렇게 세존께서는 보가나가라에 머무시면서 많은 비구들에게 법에 관한 말씀을 하셨다. “이러한 것이 계다. 이러한 것이 삼매다. 이러한 것이 통찰지다. 계를 철저히 닦아서 생긴 삼매는 큰 결실이 있고 큰 이익이 있다. 삼매를 철저히 닦아서 생긴 통찰지는 큰 결실이 있고 큰 이익이 있다. 통찰지를 철저히 닦아서 생긴 마음은 바르게 번뇌들로부터 해탈하나니, 바로 이 감각적 욕망에 기인한 번뇌와 존재에 기인한 번뇌와 무명에 기인한 번뇌이다.”라고.

Paññā­pari­bhāvi­taṃ cittaṃ sammadeva āsavehi vimuccati, seyyathidaṃ—kāmāsavā, bhavāsavā, avijjāsavā”ti.

 

 

 

 

 

논점

 

 

1.비구들이여, 네 가지를 깨닫지 못하고 꿰뚫지 못하였기 때문에 나와 그대들은 이처럼 긴 세월을 치달리고 윤회하였다"라고 윤회를 인정하고 있다. 그 이유를 사성제를 모르기 때문이라고 설명하는데 여기서는 네가지 법(catunnaṃ dhammānaṃ)을 모르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계,정,혜,해탈과 사성제를 깨닫는 것은 같은 의미이다. 

 

 

2. 코끼리가 뒤를 돌아다보듯이(nāgāpalokitaṃ) 웨살리를 돌아다보신 후 아난다 존자를 불러서 말씀하셨다. “아난다여, 이것이 여래가 웨살리를 보는 마지막이 될 것이다. 오라, 아난다여. 이제 반다가마로 가자.” 코끼리가 뒤돌아보듯(Nāgāpalokita)이라고 해석하는 것이 옳은가?   세가지 의견이 제시되었는데

---나가(nāgā)는 부처님을 지칭하므로 부처님이 뒤를 돌아다보듯이(nāgāpalokitaṃ)이라고 해석되어야 한다.

---코끼리가 뒤를 돌아다보듯이코끼리처럼 천천히 마음 챙기면서 되돌아 본것을 의미한다.

---80세의 부처님이 힘겹게 되돌아 보는 것을 코끼리가 뒤를 돌아다보듯이라고 비유한 것이다. 

nāga: a cobra, an elephant; the iron-wood tree; a noble person. (m.)
apalokita: looked up to; obtained permission from; gave notice. (pp. of avaloketi

 

 

 

3.네 가지 큰 권위(­ma­hāpa­desa) 인가? 네가지 큰 지시(­ma­hāpa­desa)­인가?

이러한 부처님의 지시가 결집에 어떤 영향을 주었을까? 

---지대한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당시의 경은 암송되었는데 9가지로 나누어서 암송되었다. 그 구분교는 제1차결집 때 오부니까야로 정리되었는데, 구분교와 오부니까야와의 관계는 아래 도표와 같다.

 

Padesa,[m.] region; place; district; location; spot【陽】指示(indication)。地方(location),範圍(range),區域、地域(district、region),位置(spot),地點(place)

 

   구 분교        오부 니까야(nikaya)   아가마(agama)
경(sutta)

미증유법(abbhutadhamma)
문답(vedalla)
응송(geyya)
수기(veyyākaraṇa)

디가 니까야(Dīgha Nikāya, 34경

맛지마 니까야(Majjhima Nikāya, 152경
상윳따 니까야(Saṃyutta Nikāya, 2,875경 
앙굿따라니까야(Aṅguttara Nikāya,  2,198경

장아함(長阿含經)    32
중아함(中阿含經)   222
잡아함(雜阿含經)   l,362
증일아함(增一阿含經)  472
게송(gāthā),
감흥어(udāna),
여시어(tivuttaka),
본생담(jātaka),
쿳다까 니까야(Khuddaka Nikāya, 小部)              없음
* 평가 : 문답(vedalla)은 mahāvedallasuttaṃ (MN 43) cūḷavedallasuttaṃ (MN 44)에 들어가 있고  수기(veyyākaraṇa)는 ānandaparikathā (D18), sakkapañhasuttaṃ(D21), kīṭāgirisuttaṃ(M70)등에 들어가 있고, 문답(vedalla)은 cūḷavedalla(M44) , mahāvedalla(M43)에 들어있다. 대승,법신상주(法身常住),타방불토사상 등은  대승사상이 나타나는 증일아함경에는 정경(正經)ㆍ가영(歌詠)ㆍ기설(記說)ㆍ게타(偈咃)ㆍ인연(因緣)ㆍ찬록(撰錄)ㆍ본기本起)ㆍ차설(此說)ㆍ생처(生處)ㆍ광해(廣解)ㆍ미증유법(未曾有法), 설의(說義)와 같은 12경이 나타나고있다. 중아함경은 98경만이 맛지마 니까야와 내용이 일치한다.결과적으로 9분교는 오부니까야와 형식과 내용이 일치하는데 아가마(阿含)는 12분교로 나타나고 경전수도 적고 소부(小部)도 없다.

 

 

4. "그런 비구의 말을 인정하지도 말고 공박하지도 말아야 한다. 인정하지도 공박하지도 않은 채로 그 단어와 문장들(padabyañjanāni)을 주의 깊게 들어서 경과 대조해 보고 율에 비추어 보아야 한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는것인가? 

----부처님 가르침()에 이견이 생기면 부처님이나 장로비구들에게 찾아가서 장로들이 암송하는 가르침을 듣고 단어(pada)와 문장(byañjanāni)을 대조해 보고 법()인지 비법(非法)인지,혹은 율()인지 비율(非律)인지 파악해야 한다. 그 당시에 종이로 된 경전은 없었고 다만 법을 암송하는 분(dhammadharā), 율을 암송하는 분(vinayadharā)들이 있어서 그 분들의 도움으로 법과 비법을 판단할 수 있었다. 그 판단은 한 두사람의 비구가 하는 것보다 여러 비구들이 모여서 단체로 판단해야 공신력이 높아진다. 이렇게 많은 비구들이 모여 법과 율을 판단을 하는 것은 불멸후 결집이라는 형태로 지속된다. 불교역사 2600년동안 인도에서 3, 스리랑카에서 1, 미얀마에서 2,  6번의 결집이 있었다. 니까야는 이렇게 ()인지 비법(非法)인지 6번의 확인작업을 거쳐 승가에 의해서 공인(公認) 된 것이다. 그런데 역사적으로 대승경전은 한 번도 승가의 공인 작업을 거치지 않았다. 만약에 지금이라도 대승경전을 가지고 결집이 이루진다면 부처님 말씀대로 이전의 경과 율에 대조해 보아야 하는데 과연 그 경과율은 무엇인가? 6차례나 승가에 의해서 확인작업과 공인을 거친 빠알리 니까야와 율장이 될 것이다. 이렇듯 니까야는 지구 상에 남아있는 부처님 경전 중에서 부동의 기준이 되는 것이다.

 

 

 

 

 

 

5. 번뇌는 감각적 욕망에 기인한 번뇌kāmāsavā와 존재에 기인한 번뇌bhavāsavā와 무명에 기인한 번뇌avijjāsavā라는 3가지로 나누어 설명한다. 

 

 

열반경 2023.7.13. 강독 정리

4.13 (쭌다의 공양)
개요: 부처님께서 ‘빠와’로 이동하시어 ‘쭌다’의 망고 숲에 머무시니 ‘쭌다’가 찾아와 공양청을 올림.  침묵의 허락을 받은 ‘쭌다’는 이튿날 여러 음식과 부드러운 돼지고기로 만든 음식을 준비하였는데 부처님께서는 부드러운 돼지고기 음식만 당신에게 올리고 비구들에게는 다른 (돼지고기가 아닌) 음식을 드시게 하라고 말씀하심.  남은 돼지고기 음식은 모두 구덩이에 파묻으라고 하셨는데 이유는 여래를 제외한 존재는 부드러운 돼지고기 음식을 먹고 소화시킬 수 없다는 것임.  돼지고기 음식을 드신 부처님은 혹독한 이질에 걸려 극심한 고통을 받으심(적리: 피똥). 
=> 논점: “부처님은 부드러운 돼지고기가 상한 것인줄 아시고도 (일부러) 드셨을까?”
(1) 공양을 드시기 전에 부처님은 음식이 상한 것을 아시고 여래 외엔 누구도 들지 못하게 하시되 정성을 다 한 ‘쭌다’의 공양이니만큼 (내색을 않고) 태연하게 드시고 바로 이질, 설사병에 걸리셨을 것이다. (추정-1)
(2) 적어도 경장에 나온 말씀이니 단순한 사실적 묘사가 아닌 ‘상징’과 ‘은유’가 내재된 일종의 가르침일 것이다. 즉, 오온으로 이루어진 인간의 몸은 생로병사의 과정으로 부서지기 마련임을 몸소 병에 걸림으로써 보여준 것이고 자신의 반열반이 임박했음을 암시한 의도적 현시(顯示)일 것이다. (추정-2)

4.21 (물을 떠 옴)
개요: 이질을 다스리시면서 ‘꾸시나라’로 이동하시던 부처님은 도중에 피곤을 느끼시어 가사를 4겹으로 깔게 하고 그 위에 앉아 휴식을 취하심.  아난다에게 갈증을 호소하며 물 좀 달라고 하셨는데 아난다는 방금 500대의 수레가 지나가는 통에 물이 혼탁하여졌다, 조금 더 가면 맑고 시원한 물이 있는 ‘까꿋다’강이 있으니 거기에서 물을 드시라고 답하였음.  부처님은 재차 똑같은 요청을 하셨고 아난다는 동일한 답을 반복하였으나 3번째 요청에는 할 수 없이 물을 뜨러 혼탁해진 물 가로 갔음.  별안간 물이 께끗하게 변한 것을 발견한 아난다는 놀란 가운데 물을 떠 부처님께 바치면서 여래의 신통력을 찬탄함,
=> 논점: “부처님이 500대의 수레바퀴로 혼탁하여진 물이 깨끗하게 변화하는 신통력을 보여주신 이유는?”
(1) 전에 부처님이 ‘짜빨라’ 탑묘에서 수명의 상카라를  포기하신 후 (늦게서야) 아난다가 세상과 인간을 위하여 일 겁을 더 머물러 달라고 간청한 적이 있는데 이 때 부처님은 여래의 깨달음을 믿느냐라고 물었고 아난다는 그렇다고 대답하니 이전에 여러차례 암시를 주었는데도 알아차리지 못하고 (일 겁) 더 계셔달라는 요청을 안 한 아난다의 잘못을 지적하신 적이 있었음.  그에 관련하여 아난다가 여래의 깨달음을 (아직도) 믿지 못하고 있을까봐 물을 맑게 하는 신통력을 보여줬을 가능성이 있다. (추정-1)
(2) 부처님의 요청에 아난다가 2차례나 물을 뜨러 가지 않다가 (할 수 없이) 3번째 발우를 들고 갔을 때엔 이미 시간이 경과하여 혼탁했던 물이 가라앉았을 수도 있다. (추정-2)
(3) 아난다가 계속 부처님의 요청에 즉각 나서지 않은 것은 이질에 걸려 고통을 겪으신 부처님이 탁한 물을 마실 수 없다고 판단했던 때문인지도 모른다. (추정-3)

4.26 (뿍꾸사 말라뿟다의 일화)
개요: 과거 부처님이 만난 적이 있는 수행자 ‘알라라 깔라마’의 제자 ‘뿍꾸사 말라뿟다’가 ‘꾸시나라’에서 ‘말라’로 가는 도중 부처님을 만남.  부처님의 정좌 및 선정의 모습을 보고 감탄한 ‘뿍꾸사’가 자신의 스승 ‘알라라 깔라마’가 수레 500대가 지나가더라도 선정을 흐트러뜨리지 않았음을 거론하자 부처님께선 억수같은 빗속에서 천둥번개와 벼락이 떨어져 탈곡장에 있던 인부 3명과 소 4마리가 즉사하는 상황에서도 선정을 깨지 않았던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해 줌.  선정력의 차이를 알게 된 ‘뿌꾸사’는 크게 감동받아 세존께 귀의함 (마지막 귀의자).
=> 논점: “부처님의 방편설에 ‘뿍꾸사가 목숨이 있는 날까지 불법승에 귀의한다고 하였는바 그 원인은 무엇일까?”
(1) 극한상황(경계)에서 인식을 가지고, 깨어 있으면서도 눈(眼)이나 귀(耳)로 들어오는 사건(色)에 휘말리지(물들지) 않는 경지로 보아 부처님은 적어도 ‘비상비비상’ (초선 - 2선 - 3선 - 4선- 공무변처 - 식무변처 - 무소유처 - 비상비비상처 - 상수멸의 단계에서) 정도에 머무신 것 같다.
(2) 보지도 못했고, 듣지도 못했으며 그렇다고 잠들지도 않았는데 인식은 있었다 하셨는바 각 삼매의 단계에 대하여서는 ‘청정도론’을 참조하자.

4.35 ‘뿍꾸사’가 황금색 가사 2벌을 바쳤는데 부처님은 1벌은 자신에게, 다른 1벌은 아난다에게 보시하라 하셨음. 이는 ‘多聞第一’ 아난다의 그 동안의 시자로서의 노고를 인정함과 동시에 부처님 열반 후 아난다의 역할에 대한 메시지가 아닐까 여겨진다.  끝

 

 

 

 

 

 

 

7월 13일 목요일 오후 9시 15분에 대반열반경(D16)  <온라인불자회> 공부모임을 시작합니다.

다 같이 합장하고 큰 소리로 합창합니다.

 

나모 따사 바가와또 아라하또 삼마 삼붓다사(Namo tassa bhagavato arahato sammāsambuddhassa)
나모 따사 바가와또 아라하또 삼마 삼붓다사(Namo tassa bhagavato arahato sammāsambuddhassa)
나모 따사 바가와또 아라하또 삼마 삼붓다사(Namo tassa bhagavato arahato sammāsambuddhassa)

 

붓당 사라남 가차미 (Buddham Saranam Gacchami)  부처님께 귀의합니다.(3번)

담망 사라남 가차미 (Dhammam Saranam Gacchami) 가르침에 귀의합니다.()

상강 사라남 가차미 (Sangham Saranam Gacchami)  승가에 귀의합니다.()

 

 

 

대장장이의 아들 쭌다의 공양  23. Kammā­ra­putta­cun­davat­thu

 

4.13. 그때 세존께서는 보가나가라에서 원하는 만큼 머무신 뒤 아난다 존자를 불러서 말씀하셨다. “아난다여, 이제 빠와로 가자.” “āyāmānanda, yena pāvā tenu­pasaṅka­mis­sāmā”ti.

그렇게 하겠습니다, 세존이시여.”라고 아난다 존자는 세존께 응답했다. 그리하여 세존께서는 많은 비구 승가와 함께 빠와에 도착하셨다. 세존께서는 거기 빠와에서 대장장이의 아들 쭌다의 망고 숲에 머무셨다.

 

4.14. 대장장이의 아들 쭌다는 세존께서 빠와에 오셨다고 들었다. 그러자 대장장이의 아들 쭌다는 세존께 갔다. 가서는 세존께 절을 올린 뒤 한 곁에 앉았다. 세존께서는 한 곁에 앉은 대장장이의 아들 쭌다에게 법을 설하시고 격려하시고 분발하게 하시고 기쁘게 하셨다.

 

4.15. 그러자 대장장이의 아들 쭌다는 세존께서 설하신 법을 [듣고] 격려 받고 분발하고 기뻐하여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비구 승가와 함께 내일 저의 공양을 허락하여 주십시오.”

세존께서는 침묵으로 허락하셨다.

 

4.16. 대장장이의 아들 쭌다는 세존께서 허락하신 것을 알고서 자리에서 일어나 세존께 절을 올리고 오른쪽으로 [세 번] 돌아 [경의를 표한] 뒤에 물러갔다.

 

4.17. 그리고 대장장이의 아들 쭌다는 그 밤이 지나자 자신의 집에서 맛있는 여러 음식과 부드러운 돼지고기로 만든 음식을 많이 준비하게 하여 세존께 시간을 알려드렸다. “세존이시여,  시간이 되었습니다. 음식이 준비되었습니다.”라고.

Atha kho cundo kammāraputto tassā rattiyā accayena sake nivesane paṇītaṃ khādanīyaṃ bhojanīyaṃ paṭiyādāpetvā pahūtañca sūkaramaddavaṃ bhagavato kālaṃ ārocāpesi: “kālo, bhante, niṭṭhitaṃ bhattan”ti. 

 

 

4.18. 그때 세존께서는 오전에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발우와 가사를 수하시고 비구 승가와 함께 대장장이의 아들 쭌다의 집으로 가셨다. 가셔서는 비구 승가와 함께 지정된 자리에 앉으셨다. 앉으셔서는 대장장이의 아들 쭌다를 불러서 말씀하셨다. “쭌다여, 부드러운 돼지고기로 만든 음식은 나에게 공양하고, 다른 여러 음식은 비구 승가에게 공양하여라.”

그렇게 하겠습니다, 세존이시여.”라고 대장장이의 아들 쭌다는 세존께 대답하고서 부드러운 돼지고기(sūkaramaddavaṃ)가 든 음식은 세존께 공양하고, 다른 여러 음식은 비구 승가에게 공양하였다.

Atha kho bhagavā pubbaṇ­ha­samayaṃ nivāsetvā patta­cīvara­mādāya saddhiṃ ­bhik­khu­saṅ­ghena yena cundassa kammā­ra­puttassa nivesanaṃ tenupasaṅkami; upasaṅkamitvā paññatte āsane nisīdi. Nisajja kho bhagavā cundaṃ kammāraputtaṃ āmantesi: “yaṃ te, cunda, sūkaramaddavaṃ paṭiyattaṃ, tena maṃ parivisa. Yaṃ panaññaṃ khādanīyaṃ bhojanīyaṃ paṭiyattaṃ, tena bhikkhusaṅghaṃ parivisā”ti. 

 

4.19. 그러자 세존께서는 대장장이의 아들 쭌다를 불러서 말씀하셨다. “쭌다여, 부드러운 돼지고기(sūkaramaddavaṃ)로 만든 음식이 남은 것은 깊은 구덩이(sobbhe)를 파서 묻어라(nikhaṇāhi). 쭌다여, 나는 신들을 포함하고 마라를 포함하고 범천을 포함한 세상에서, 사문ㆍ바라문을 포함하고 신과 인간을 포함한 생명체들 가운데서, 여래를 제외한 어느 누구도 이 음식을 먹고 바르게 소화시킬 사람을 보지 못한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세존이시여.”라고 대장장이의 아들 쭌다는 세존께 대답한 뒤 부드러운 돼지고기로 만든 음식이 남은 것은 깊은 구덩이를 파서 묻고 세존께로 갔다. 가서는 세존께 절을 올리고 한 곁에 앉았다. 세존께서는 한 곁에 앉은 대장장이의 아들 쭌다에게 법을 설하시고 격려하시고 분발하게 하시고 기쁘게 하셨다.

Atha kho bhagavā cundaṃ kammāraputtaṃ āmantesi: “yaṃ te, cunda, sūkaramaddavaṃ avasiṭṭhaṃ, taṃ sobbhe nikhaṇāhi. Nāhaṃ taṃ, cunda, passāmi sadevake loke samārake sabrahmake ­sassama­ṇab­rāhma­ṇiyā pajāya sade­va­manus­sāya, yassa taṃ paribhuttaṃ sammā pariṇāmaṃ gaccheyya aññatra tathāgatassā”ti. “Evaṃ, bhante”ti kho cundo kammāraputto bhagavato paṭissutvā yaṃ ahosi sūkaramaddavaṃ avasiṭṭhaṃ, taṃ sobbhe nikhaṇitvā yena bhagavā tenupasaṅkami; upasaṅkamitvā bhagavantaṃ abhivādetvā ekamantaṃ nisīdi. Ekamantaṃ nisinnaṃ kho cundaṃ kammāraputtaṃ bhagavā dhammiyā kathāya sandassetvā samādapetvā samuttejetvā sampahaṃsetvā uṭṭhāyāsanā pakkāmi.

 

 

 

4.20. 그때 세존께서는 대장장이의 아들 쭌다가 올린 음식을 드시고 혹독한 병에 걸리셨나니 피가 나오는 적리(lohita­pak­khan­dikā赤痢)에 걸려서 죽음에 다다르는 극심한 고통이 생기셨다. 거기서 세존께서는 마음챙기고 알아차리시면서 흔들림 없이 그것을 감내하셨다. 그때 세존께서는 아난다 존자를 불러서 말씀하셨다.

아난다여, 이제 꾸시나라로 가자.”

그렇게 하겠습니다, 세존이시여.”라고 아난다 존자는 세존께 응답했다.

Atha kho bhagavato cundassa kammā­ra­puttassa bhattaṃ bhuttāvissa kharo ābādho uppajji, lohita­pak­khan­dikā pabāḷhā vedanā vattanti māraṇantikā. Tā sudaṃ bhagavā sato sampajāno adhivāsesi avihaññamāno. Atha kho bhagavā āyasmantaṃ ānandaṃ āmantesi: “āyāmānanda, yena kusinārā tenu­pasaṅka­mis­sāmā”ti.

“Evaṃ, bhante”ti kho āyasmā ānando bhagavato paccassosi.

 

 

나는 이렇게 들었나니

대장장이 쭌다가 올린 음식을 드시고

현자께서는 죽음에 다다르는 극심한 병에 걸리셨다.

부드러운 돼지고기로 만든 음식을 드신

스승께 극심한 병이 생겼나니

그것을 깨끗하게 하시면서 세존께서는

꾸시나라 도시로 가자고 말씀하셨다.

 

 

 

물을 떠 옴  25. Pukkusa­malla­putta­vatthu

 

4.21. 그때 세존께서는 길을 가시다가 어떤 나무 아래로 가셨다. 가셔서는 아난다 존자를 불러서 말씀하셨다. “아난다여, 가사를 네 겹으로 접어서 [자리를] 만들어라. 아난다여, 피곤하구나. 나는 좀 앉아야겠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세존이시여.”라고 아난다 존자는 세존께 대답한 뒤 가사를 네 겹으로 접어서 [자리를] 만들었다.

 

4.22. 세존께서는 만들어 드린 자리에 앉으셨다. 앉으신 뒤 세존께서는 아난다 존자를 불러서 말씀하셨다. “아난다여, 그대는 나를 위해서 물을 좀 다오. 아난다여, 목이 마르구나. 나는 물을 마셔야겠다.”

이렇게 말씀하시자 아난다 존자는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지금 500대의 수레가 지나갔습니다. 수레바퀴로 휘저은 물은 좋지 않고 뒤범벅이 되어 혼탁해졌습니다. 세존이시여, 까꿋타 강이 멀지 않은 곳에 있습니다. 그 물은 맑고 만족을 주고 차갑고 투명하며, 튼튼한 제방으로 보호되어 있습니다. 거기서 세존께서는 물을 드시고 몸을 시원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4.23. 두 번째로 세존께서는 아난다 존자를 불러서 말씀하셨다. “아난다여, 그대는 나를 위해서 물을 좀 다오. 아난다여, 목이 마르구나. 나는 물을 마셔야겠다.”

이렇게 말씀하시자 아난다 존자는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지금 500대의 수레가 지나갔습니다. 수레바퀴로 휘저은 물은 좋지 않고 뒤범벅이 되어 혼탁해졌습니다. 세존이시여, 까꿋타 강이 멀지 않은 곳에 있습니다. 그 물은 맑고 만족을 주고 차갑고 투명하며, 튼튼한 제방으로 보호되어 있습니다. 거기서 세존께서는 물을 드시고 몸을 시원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4.24. 세 번째로 세존께서는 아난다 존자를 불러서 말씀하셨다. “아난다여, 그대는 나를 위해서 물을 좀 다오. 아난다여, 목이 마르구나. 나는 물을 마셔야겠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세존이시여.”라고 아난다 존자는 세존께 대답한 뒤 발우를 가지고 그 작은 강으로 갔다. 아난다 존자가 다가가자 수레바퀴로 휘저어져서 좋지 않고 뒤범벅이 되어 혼탁해진 그 물은 맑고 만족을 주고 차갑게 되었다.

 

4.25. 그러자 아난다 존자에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여래의 큰 신통과 큰 위력은 참으로 경이롭고, 참으로 놀랍구나. 수레바퀴로 휘저어져서 좋지 않고 뒤범벅이 되어 혼탁해진 물이 내가 다가가자 좋고 맑고 혼탁하지 않게 되었구나.” 아난다 존자는 발우로 물을 떠서 세존께 다가갔다. 가서는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여래의 큰 신통과 큰 위력은 참으로 경이롭습니다. 세존이시여, 참으로 놀랍습니다. 세존이시여, 수레바퀴로 휘저어져서 좋지 않고 뒤범벅이 되어 혼탁해진 물이 제가 다가가자 좋고 맑고 혼탁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세존께서는 물을 드십시오. 선서께서는 물을 드십시오.” 그러자 세존께서는 물을 드셨다.

Pattena pānīyaṃ ādāya yena bhagavā tenupasaṅkami; upasaṅkamitvā bhagavantaṃ etadavoca: “acchariyaṃ, bhante, abbhutaṃ, bhante, tathāgatassa mahiddhikatā mahānubhāvatā. Idāni sā bhante nadikā cakkacchinnā parittā luḷitā āvilā sandamānā mayi upasaṅkamante acchā vippasannā anāvilā sandittha. Pivatu bhagavā pānīyaṃ pivatu sugato pānīyan”ti. Atha kho bhagavā pānīyaṃ apāyi.

 

 

 

 

뿍꾸사 말라뿟따의 일화

25. Pukkusa­malla­putta­vatthu

 

4.26. 그 무렵에 뿍꾸사 말라뿟따는 알라라 깔라마의 제자였는데 꾸시나라로부터 말라로 가는 대로를 따라가고 있었다. 뿍꾸사 말라뿟따는 세존께서 어떤 나무 아래에 앉아계신 것을 보고 세존께로 다가갔다. 가서는 세존께 절을 올리고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뿍꾸사 말라뿟따는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경이롭습니다, 세존이시여. 놀랍습니다, 세존이시여. 세존이시여, 출가자들은 참으로 고요하게 머무십니다.”

 

4.27. “세존이시여, 전에 알라라 깔라마는 대로를 따라가다가 길에서 나와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어떤 나무 아래 낮 동안의 머묾을 위해서 앉았습니다. 세존이시여, 그때 500대의 수레가 알라라 깔라마의 곁으로 계속해서 지나갔습니다. 세존이시여, 그때 어떤 사람이 그 대상의 뒤를 따라 오다가 알라라 깔라마에게 다가갔습니다. 가서는 알라라 깔라마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존자여, 500대의 수레가 지나가는 것을 보셨습니까?’

도반이여, 나는 보지 못했다오.’

존자여, 그러면 소리를 들었습니까?’

도반이여, 나는 소리를 듣지 못했다오.’

존자시여, 그러면 잠들었습니까?‘

도반이여, 나는 잠들지 않았다오.’

존자이여, 그러면 인식은 가지고 있었습니까?’

도반이여, 그랬다오.’

존자여, 그런 당신은 인식을 가지고 있고 깨어 있으면서도 500대의 수레가 곁으로 계속해서 지나가는데도 보지도 못하고 소리를 듣지도 못했다는 말씀이십니까? 존자여, 당신의 겉옷은 먼지로 범벅이 되어 있는데도 말입니까?’

도반이여, 그렇다오.’

그러자 그 사람에게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출가자들은 참으로 고요하게 머무르니 참으로 경이롭고 참으로 놀랍구나. 여기서 인식을 가지고 있고 깨어 있으면서도 500대의 수레가 곁으로 계속해서 지나가는 것을 보지도 못하고 소리를 듣지도 못하는구나.’라고. 이와 같이 그는 알라라 깔라마에게 청정한 믿음을 크게 표시한 뒤 떠났습니다.”

 

4.28. “뿍꾸사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인식을 가지고 있고 깨어 있으면서도 500대의 수레가 곁으로 계속해서 지나가는 것을 보지도 못하고 듣지도 못하는 것이 더 행하기 어렵고 더 경험하기 어려운가? 아니면 인식을 가지고 있고 깨어 있으면서도 비가 억수같이 내리고 비가 콸콸 쏟아지고 번개가 치고 천둥소리가 요란한 것을 보지도 못하고 듣지도 못하는 것이 더 행하기 어렵고 더 경험하기 어려운가?”

 

4.29. “세존이시여, 500대의 수레가 아니라 600, 700, 800, 900, 천 대, 아니 십만 대의 수레라도 어떻게 비교를 할 수 있겠습니까? 참으로 인식을 가지고 있고 깨어 있으면서도 비가 억수같이 내리고 비가 콸콸 쏟아지고 번개가 치고 천둥소리가 요란한 것을 보지도 못하고 듣지도 못하는 것이 더 행하기 어렵고 더 경험하기 어렵습니다.”

 

4.30. “뿍꾸사여, 한때 나는 아뚜마에서 탈곡장에 머물렀다. 그러던 어느 때에 비가 억수같이 내리고 비가 콸콸 쏟아지고 번개가 치고 천둥소리가 요란하였으며 탈곡장에서 농부 두 사람과 황소 네 마리가 벼락에 맞아 죽었다. 뿍꾸사여, 그러자 아뚜마의 많은 사람들이 나와서 농부 두 사람이 죽고 황소 네 마리가 죽은 곳으로 갔다.”

 

4.31. “뿍꾸사여, 그 무렵에 나는 탈곡장의 문밖으로 나와 노지에서 포행을 하고 있었다. 뿍꾸사여, 그러자 어떤 사람이 많은 사람들의 무리로부터 나와서 나에게로 다가왔다. 와서는 나에게 절을 올리고 한 곁에 섰다. 뿍꾸사여, 나는 한 곁에 선 그 사람에게 이렇게 말했다.”

 

4.32. “‘여보게, 왜 많은 사람들의 무리가 여기 모였는가?’

세존이시여, 여기에 비가 억수같이 내리고 비가 콸콸 쏟아지고 번개가 치고 천둥소리가 요란하였으며 탈곡장에서 농부 두 사람과 황소 네 마리가 벼락에 맞아서 죽었습니다. 그래서 저 많은 사람들의 무리가 여기 모인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런데 세존께서는 어디에 계셨습니까?’

여보게, 바로 여기 있었다네.’

세존이시여, 그런데 보지 못하셨단 말입니까?’

여보게, 나는 보지 못하였다네.’

세존이시여, 그렇다면 소리도 듣지 못하셨습니까?’

여보게, 나는 소리도 듣지 못하였네.’

세존이시여, 그러면 잠드셨습니까?’

여보게, 나는 잠들지 않았네.’

세존이시여, 그러면 인식을 가지고 계셨습니까?’

여보게, 그렇다네.’

세존이시여, 그런 세존께서는 참으로 인식을 가지고 있고 깨어 있으면서도 비가 억수같이 내리고 비가 콸콸 쏟아지고 번개가 치고 천둥소리가 요란한데도 그것을 보지도 못하고 듣지도 못하셨단 말입니까?’

여보게, 그렇다네.’”

 

4.33. “뿍꾸사여, 그러자 그 사람에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출가자들은 참으로 고요하게 머무르니 참으로 경이롭고 참으로 놀랍구나. 여기서 인식을 가지고 있고 깨어 있으면서도 비가 억수같이 내리고 비가 콸콸 쏟아지고 번개가 치고 천둥소리가 요란한 것을 보지도 못하고 소리를 듣지도 못하는구나.’라고. 이와 같이 그는 나에게 청정한 믿음을 크게 표시한 뒤 떠났다.”

 

4.34. 이렇게 말씀하시자 뿍꾸사 말라뿟따는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제가 알라라 깔라마에게 가졌던 청정한 믿음은 마치 강풍에 날아가듯이 날아 가버렸고, 강의 급류에 휩쓸리듯이 휩쓸려 가버렸습니다. 경이롭습니다, 세존이시여. 경이롭습니다, 세존이시여. 마치 넘어진 자를 일으켜 세우시듯, 덮여있는 것을 걷어내 보이시듯, [방향을] 잃어버린 자에게 길을 가리켜 주시듯, ‘눈 있는 자 형상을 보라.’고 어둠 속에서 등불을 비춰 주시듯, 세존께서는 여러 가지 방편으로 법을 설해주셨습니다. 저는 이제 세존께 귀의하옵고, 법과 비구 승가에 또한 귀의합니다. 세존께서는 저를, 오늘부터 목숨이 있는 날까지 귀의한 청신사로 받아주소서.”

Seyyathāpi, bhante, nikkujjitaṃ vā ukkujjeyya, paṭicchannaṃ vā vivareyya, mūḷhassa vā maggaṃ ācikkheyya, andhakāre vā telapajjotaṃ dhāreyya: ‘cakkhumanto rūpāni dakkhantī’ti; evamevaṃ bhagavatā aneka­pariyā­yena dhammo pakāsito. Esāhaṃ, bhante, bhagavantaṃ saraṇaṃ gacchāmi dhammañca ­bhik­khu­saṃ­ghañca. Upāsakaṃ maṃ bhagavā dhāretu ajjatagge pāṇupetaṃ saraṇaṃ gatan”ti.

 

 

4.35. 그리고 뿍꾸사 말라뿟따는 어떤 사람을 불러서 말하였다. “여보게, 그대는 지금 입을 수 있는 황금색 옷 두 벌을 나에게로 가져오시오.”Atha kho pukkuso mallaputto aññataraṃ purisaṃ āmantesi: “iṅgha me tvaṃ, bhaṇe, siṅgīvaṇṇaṃ yugamaṭṭhaṃ dhāraṇīyaṃ āharā”ti.

 

 

그렇게 하겠습니다, 존자시여.”라고 그 사람은 뿍꾸사 말라뿟따에게 대답한 뒤 지금 입을 수 있는 황금색(siṅgīvaṇṇaṃ) 옷 두 벌을 가지고 왔다. 그러자 뿍꾸사 말라뿟따는 지금 입을 수 있는 황금색 옷 두 벌을 세존께 바쳤다.

 “Evaṃ, bhante”ti kho so puriso pukkusassa mallaputtassa paṭissutvā taṃ siṅgīvaṇṇaṃ yugamaṭṭhaṃ dhāraṇīyaṃ āhari. Atha kho pukkuso mallaputto taṃ siṅgīvaṇṇaṃ yugamaṭṭhaṃ dhāraṇīyaṃ bhagavato upanāmesi: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저를 애민하게 여기시어 지금 입을 수 있는 황금색 옷 두 벌을 받아 주소서.”

뿍꾸사여, 그렇다면 한 벌은 내게 보시하고, 한 벌은 아난다에게 보시하여라.”

그렇게 하겠습니다, 세존이시여.”라고 뿍꾸사 말라뿟따는 세존께 대답한 뒤 한 벌은 세존께 보시하였고, 한 벌은 아난다 존자께 보시하였다.

“idaṃ, bhante, siṅgīvaṇṇaṃ yugamaṭṭhaṃ dhāraṇīyaṃ, taṃ me bhagavā paṭiggaṇhātu anukampaṃ upādāyā”ti.

“Tena hi, pukkusa, ekena maṃ acchādehi, ekena ānandan”ti. 

 

 

4.36. 그러자 세존께서는 뿍꾸사 말라뿟따에게 법을 설하시고 격려하시고 분발하게 하시고 기쁘게 하셨다. 그러자 뿍꾸사 말라뿟따는 세존께서 설하신 법을 [듣고] 격려 받고 분발하고 기뻐하여 자리에서 일어나 세존께 절을 올리고 오른쪽으로 돌아 [경의를 표한] 뒤에 물러갔다.

 

 

 

논점

 

1.쭌다여,부드러운 돼지고기(sūkaramaddavaṃ)로 만든 음식이 남은 것은 깊은 구덩이를 파서 묻어라.쭌다여,나는 신들을 포함하고 마라를 포함하고 범천을 포함한 세상에서,사문ㆍ바라문을 포함하고 신과 인간을 포함한 생명체들 가운데서,여래를 제외한 어느 누구도 이 음식을 먹고 바르게 소화시킬 사람을 보지 못한다.”이러한 문장을 보면 부드러운 돼지고기가 상한 것인줄 알고도 드셨다는 뜻일까? 

 

 

 

2. 여래의 큰 신통과 큰 위력은 참으로 경이롭고, 참으로 놀랍구나. 수레바퀴로 휘저어져서 좋지 않고 뒤범벅이 되어 혼탁해진 물이 내가 다가가자 좋고 맑고 혼탁하지 않게 되었구나.” 이러한 신통력을 보여주신 이유는?

 

 

 

 

3."세존께서는 여러 가지 방편으로 법을 설해주셨습니다. 저는 이제 세존께 귀의하옵고, 법과 비구 승가에 또한 귀의합니다. 세존께서는 저를, 오늘부터 목숨이 있는 날까지 귀의한 청신사로 받아주소서.”Esāhaṃ, bhante, bhagavantaṃ saraṇaṃ gacchāmi dhammañca ­bhik­khu­saṃ­ghañca. Upāsakaṃ maṃ bhagavā dhāretu ajjatagge pāṇupetaṃ saraṇaṃ gatan”ti.

---오늘부터 목숨이 있는 날까지....이렇게 귀의 하는 이유는 ?

 

 

 

쭌다 경(A10:176)

Cunda-sutta

 

1. 한때 세존께서는 빠와에서 대장장이의 아들 쭌다의 망고 숲에 머무셨다. 그때 대장장이의 아들 쭌다가 세존께 다가갔다. 세존께 절을 올리고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대장장이의 아들 쭌다에게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쭌다여, 그대는 누구의 정화의식을 좋아하는가?”

세존이시여, 서쪽지방에 바라문들이 있어, 그들은 물병을 들고 세왈라 수초로 만든 화환을 두르고 불을 숭배하고 물에 들어가는 정화의식을 천명합니다. 저는 그들의 정화의식을 좋아합니다.”

쭌다여, 그렇다면 서쪽지방의 바라문들은 정화의식을 어떻게 천명하는가?”

세존이시여, 서쪽지방의 바라문들은 물병을 들고 세왈라 수초로 만든 화환을 두르고 불을 숭배하고 물에 들어가서는, 그의 제자들에게 이와 같이 가르칩니다. ‘오시오, 아무개 사람이여. 그대는 좋은 시간에 침상에서 일어나 땅을 만지시오. 땅을 만지지 못하면 젖은 소똥을 만지시오. 젖은 소똥을 만지지 못하면 푸른 풀을 만지시오. 푸른 풀을 만지지 못하면 불을 숭배하시오. 불을 숭배하지 못하면 합장하고 태양에 예배하시오. 만일 합장하고 태양에 예배하지 못하면 밤의 삼경에 물에 들어가시오.’ 세존이시여, 서쪽지방의 바라문들은 이와 같이 물병을 들고 세왈라 수초로 만든 화환을 두르고 불을 숭배하고 물에 들어가는 정화의식을 천명합니다. 저는 그들의 정화의식을 좋아합니다.”

쭌다여, 서쪽지방의 바라문들이 천명하는, 물병을 들고 세왈라 수초로 만든 화환을 두르고 불을 숭배하고 물에 들어가는 정화의식과 성스러운 율에서의 정화의식은 다르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성스러운 율에서의 정화의식은 어떻게 합니까? 성스러운 율에서의 정화의식에 대해 제게 법을 설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쭌다여, 그렇다면 그것을 들어라. 듣고 마음에 잘 새겨라. 나는 설할 것이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세존이시여.”라고 대장장이의 아들 쭌다는 세존께 대답했다.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2. 쭌다여, 몸으로 [짓는] 세 가지 불결함이 있고, 말로 [짓는] 네 가지 불결함이 있고, 마음으로 [짓는] 세 가지 불결함이 있다. 쭌다여, 그러면 어떤 것이 몸으로 [짓는] 세 가지 불결함인가?”

 

3. 쭌다여, 여기 어떤 자는 생명을 죽인다. 그는 잔인하고, 손에 피를 묻히고, 죽이고 폭력을 휘두르는 데 몰두하며, 모든 생명들에게 동정심이 없다.

그는 주지 않은 것을 가진다. 그는 마을에서나 숲속에서 자기에게 주지 않은, 남의 재산과 재물을 도적질로써 취한다.

그는 삿된 음행을 한다. 어머니가 보호하고, 아버지가 보호하고, 오빠가 보호하고, 언니가 보호하고, 친지들이 보호하고, 법으로 보호하고, 남편이 있고, 몽둥이로 보호하고 심지어 [혼약의 정표로] 화환을 두른 그러한 여인들과 성행위를 한다.

쭌다여, 이것이 몸으로 [짓는] 세 가지 불결함이다.”

 

4. 쭌다여, 그러면 어떤 것이 말로 [짓는] 네 가지 불결함인가?

쭌다여, 여기 어떤 자는 거짓말을 한다. 그는 법정에서나 회의에서나 친척들 사이에서나 조합원들 사이에서나 왕 앞에서 증인으로 출두하여, ‘오시오, 선남자여. 그대가 아는 것을 말해주시오.’라고 질문을 받는다. 그러면 그는 알지 못하면서 나는 압니다.’라고 말하고, 알면서 나는 알지 못합니다.’라고 한다. 보지 못하면서 나는 봅니다.’라고 말하고, 보면서 나는 보지 않습니다.’라고 말한다. 이와 같이 자기의 목적을 위해서나 남의 목적을 위해서나 어떤 세속적인 목적을 위해서 고의로 거짓말을 한다.

그는 중상모략을 한다. 그는 여기서 듣고서 이들을 이간시키려고 저기서 말한다. 저기서 듣고서 저들을 이간시키려고 여기서 말한다. 이처럼 화합하는 자들을 이간시키고 이간을 조장한다. 그는 불화를 좋아하고, 불화를 기뻐하고, 불화를 즐기며, 불화를 만드는 말을 한다.

그는 욕설을 한다. 그는 거칠고, 험하고, 남을 언짢게 하고, 남을 모욕하고, 분노에 휩싸이고, 삼매로 이끌지 못하는 그런 말을 한다.

그는 잡담을 한다. 그는 부적절한 시기에 말하고, 사실이 아닌 것을 말하고, 무익한 것을 말하고, 법에 어긋나는 것을 말하고, 율에 저촉되는 말을 하고, 가슴에 새겨둘 필요가 없는 말을 한다. 그는 이치에 맞지 않고, 무절제하며, 유익하지 못한 말을 부적절한 시기에 한다.

쭌다여, 이것이 말로 [짓는] 네 가지 불결함이다.”

 

5. 쭌다여, 그러면 어떤 것이 마음으로 [짓는] 세 가지 불결함인가?

쭌다여, 여기 어떤 자는 간탐한다. 그는 , 저 사람 것이 내 것이라면.’이라고 남의 재산과 재물을 탐한다.

그의 마음은 악의로 차있다. 그는 이 중생들이 죽어버리길, 파멸되기를, 파괴되기를, 멸망해버리길, 없어져버리길.’하고 타락한 생각을 품는다.

그는 삿된 견해를 가진다. ‘보시도 없고 공물도 없고 제사(헌공)도 없다. 선행과 악행의 업들에 대한 열매도 없고 과보도 없다. 이 세상도 없고 저 세상도 없다. 어머니도 없고 아버지도 없다. 화생하는 중생도 없고 이 세상과 저 세상을 스스로 최상의 지혜로 실현하여 선언하는, 덕스럽고 바른 도를 구족한 사문ㆍ바라문들도 이 세상에는 없다.’라는 전도된 소견을 가진다.

쭌다여, 이것이 마음으로 [짓는] 세 가지 불결함이다.”

 

6. 쭌다여, 이것이 열 가지 해로운 업의 길[不善業道]이다. 쭌다여, 이러한 열 가지 해로운 업의 길을 갖춘 자는 적당한 시간에 침상에서 일어나 땅을 만지더라도 청정하지 못하며, 땅을 만지지 않더라도 청정하지 못하다. 젖은 소똥을 만지더라도 청정하지 못하며, 젖은 소똥을 만지지 않더라도 청정하지 못하다. 푸른 풀을 만지더라도 청정하지 못하며, 푸른 풀을 만지지 않더라도 청정하지 못하다. 불을 숭배하더라도 청정하지 못하며, 불을 숭배하지 않더라도 청정하지 못하다. 합장하고 태양에 예배하지 않더라도 청정하지 못하다. 밤의 삼경에 물에 들어가더라도 청정하지 못하며, 밤의 삼경에 물에 들어가지 않더라도 청정하지 못하다.

그것은 무슨 이유 때문인가? 이러한 열 가지 해로운 업의 길 자체가 청정하지 못하고, 또 청정하지 못함을 만들기 때문이다. 쭌다여, 이러한 열 가지 해로운 업의 길을 갖춤으로써 지옥이 알려졌으며, 축생의 모태가 알려졌으며, 아귀계가 알려졌으며, 여러 비참한 세계[惡趣]들이 알려진 것이다.”

 

7. 쭌다여, 몸으로 [짓는] 세 가지 청정함이 있고 말로 [짓는] 네 가지 청정함이 있고 마음으로 [짓는] 세 가지 청정함이 있다. 쭌다여, 그러면 어떤 것이 몸으로 [짓는] 세 가지 청정함인가?”

 

8. 쭌다여, 여기 어떤 자는 생명을 죽이는 것을 버리고, 생명을 죽이는 것을 멀리 여읜다. 몽둥이를 내려놓고 칼을 내려놓는다. 양심적이고 동정심이 있으며 모든 생명의 이익을 위하고 연민하며 머문다.

그는 주지 않은 것을 가지는 것을 버리고, 주지 않은 것을 가지는 것을 멀리 여읜다. 그는 마을에서나 숲속에서 남의 재산과 재물을 도적질로써 취하지 않는다.

그는 음행을 버리고 삿된 음행을 멀리 여읜다. 그는 어머니가 보호하고, 아버지가 보호하고, 오빠가 보호하고, 언니가 보호하며, 친지들이 보호하고, 남편이 있고, 몽둥이로 보호하고, [혼약의 정표로] 화환을 두른 그러한 여인들과 성행위를 범하지 않는다.

쭌다여, 이것이 몸으로 [짓는] 세 가지 청정함이다.”

 

9. 쭌다여, 그러면 어떤 것이 말로 짓는 네 가지 청정함인가?

쭌다여, 여기 어떤 자는 거짓말을 버리고, 거짓말을 멀리 여읜다. 그는 법정에서나 회의에서나 친척들 사이에서나 조합원들 사이에서나 왕 앞에서 증인으로 출두하여, ‘오시오, 선남자여. 그대가 아는 것을 말해주시오.’라고 질문을 받는다. 그러면 그는 알지 못하면 나는 알지 못합니다.’라고 말하고, 알면 나는 압니다.’라고 말한다. 보지 못하면 나는 보지 못합니다.’라고 말하고, 보면 나는 봅니다.’라고 말한다. 이와 같이 자기의 목적을 위해서나 남의 목적을 위해서나 세속적인 어떤 목적을 위해서도 고의로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그는 중상모략을 버리고, 중상모략을 멀리 여읜다. 그는 여기서 듣고서 이들을 이간시키려고 저기서 말하지 않는다. 저기서 듣고서 저들을 이간시키려고 여기서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이와 같이 분열된 자들을 합치고, 우정을 장려하며, 화합을 좋아하고, 화합을 기뻐하고, 화합을 즐기며, 화합하게 하는 말을 한다.

그는 욕설을 버리고, 욕설을 멀리 여읜다. 그는 유순하고, 귀에 즐겁고, 사랑스럽고, 가슴에 와 닿고, 점잖고,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고, 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드는 그런 말을 한다.

그는 잡담을 버리고, 잡담을 멀리 여읜다. 그는 적절한 시기에 말하고, 사실을 말하고, 유익한 말을 하고, 법을 말하고, 율을 말하며, 가슴에 담아둘 만한 말을 한다. 그는 이치에 맞고, 절제가 있으며, 유익한 말을 적절한 시기에 한다.

쭌다여, 이것이 말로 [짓는] 네 가지 청정함이다.”

 

10. 쭌다여, 그러면 어떤 것이 마음으로 [짓는] 세 가지 청정함인가?

쭌다여, 여기 어떤 자는 간탐하지 않는다. 그는 , 저 사람 것이 내 것이라면.’이라고 남의 재산과 재물을 탐하지 않는다.

그의 마음은 악의가 없다. ‘이 중생들이 적의에서 벗어나고, 고통에서 벗어나고, 해악에서 벗어나기를. 그들 스스로 행복하게 지내기를.’하고 타락하지 않은 생각을 품는다.

그는 바른 견해를 가진다. ‘보시도 있고 공물도 있고 제사(헌공)도 있다. 선행과 악행의 업들에 대한 열매도 있고 과보도 있다. 이 세상도 있고 저 세상도 있다. 어머니도 있고 아버지도 있다. 화생하는 중생도 있고 이 세상과 저 세상을 스스로 최상의 지혜로 실현하여 선언하는, 덕스럽고 바른 도를 구족한 사문ㆍ바라문들도 이 세상에는 있다.’라는 전도되지 않은 소견을 가진다.

쭌다여, 이것이 마음으로 [짓는] 세 가지 청정함이다.”

 

11. 쭌다여, 이것이 열 가지 유익한 업의 길[十善業道]이다. 쭌다여, 이러한 열 가지 유익한 업의 길을 갖춘 자는 적당한 시간에 침사에서 일어나 땅을 만지더라도 청정하며, 땅을 만지지 않더라도 청정하다. 젖은 소똥을 만지더라도 청정하며, 젖은 소똥을 만지지 않더라도 청정하다. 푸른 풀을 만지더라도 청정하며, 푸른 풀을 만지지 않더라도 청정하다. 불을 숭배하더라도 청정하며, 불을 숭배하지 않더라도 청정하다. 합장하고 태양에 예배하더라도 청정하며, 합장하고 태양에 예배하지 않더라도 청정하다. 밤의 삼경에 물에 들어가더라도 청정하며, 밤의 삼경에 물에 들어가지 않더라도 청정하다.

그것은 무슨 이유 때문인가? 이러한 열 가지 유익한 업의 길 자체가 청정하고, 또 청정함을 만들기 때문이다. 쭌다여, 이러한 열 가지 유익한 업의 길을 갖춤으로써 천상이 알려졌으며, 인간이 알려졌으며, 여러 좋은 곳[善處]들이 알려진 것이다.”

 

12. 이렇게 말씀하시자 대장장이의 아들 쭌다는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경이롭습니다, 세존이시여. 경이롭습니다, 세존이시여. 마치 넘어진 자를 일으켜 세우시듯, 덮여있는 것을 걷어내 보이시듯, [방향을] 잃어버린 자에게 길을 가리켜주시듯, 눈 있는 자 형상을 보라고 어둠 속에서 등불을 비춰주시듯, 세존께서는 여러 가지 방편으로 법을 설해주셨습니다. 저는 이제 세존께 귀의하옵고 법과 비구승가에 귀의합니다. 세존께서는 저를 재가신자로 받아주소서. 오늘부터 목숨이 붙어 있는 그날까지 귀의하옵니다.”

 
 

 

4.42. 그런 후 세존께서는 아난다 존자를 불러서 말씀하셨다. “아난다여, 그런데 대장장이의 아들 쭌다가 이렇게 스스로를 힐난할지도 모른다. ‘여보게 쭌다여, 여래께서는 네가 드린 탁발 음식을 마지막으로 드시고 반열반에 드셨으니 이건 참으로 너의 잘못이고 너의 불행이로구나.’

아난다여, 대장장이 쭌다의 아들에게 이와 같이 말하여 자책감을 없애주어야 한다. ‘도반 쭌다여, 여래께서는 그대가 드린 탁발 음식을 마지막으로 드시고 반열반에 드셨으니 이건 그대의 공덕이고 그대의 행운입니다. 도반 쭌다여, 모든 곳에서 두루 결실을 가져오고 모든 곳에서 두루 과보를 가져오는 두 가지 탁발 음식이 다른 탁발 음식들을 훨씬 능가하는 더 큰 결실과 더 큰 이익을 가져다준다고 나는 세존의 면전에서 직접 듣고 세존의 면전에서 직접 받아 지녔습니다.

어떤 것이 둘입니까? 그 탁발 음식을 드시고 여래께서 위없는 정등각을 깨달으신 것과 그 탁발 음식을 드시고 여래께서 무여열반의 요소[]로 반열반을 하신 것입니다. 이런 두 가지 탁발 음식은 더 큰 결실과 더 큰 이익을 가져다줍니다. 다른 탁발 음식들을 훨씬 능가합니다.

이제 대장장이의 아들 쭌다님은 긴 수명을 가져다 줄 업을 쌓았습니다. 이제 대장장이의 아들 쭌다님은 좋은 용모를 가져다 줄 업을 쌓았습니다. 이제 대장장이의 아들 쭌다님은 행복을 가져다 줄 업을 쌓았습니다. 이제 대장장이의 아들 쭌다님은 명성을 가져다 줄 업을 쌓았습니다. 이제 대장장이의 아들 쭌다님은 천상에 태어날 업을 쌓았습니다. 이제 대장장이의 아들 쭌다님은 위세를 가질 업을 쌓았습니다.’라고.

아난다여, 이렇게 대장장이의 아들 쭌다의 자책감을 없애주어야 한다.”

 

 

 

 

 

 

 

 

7월 20일 목요일 오후 9시 15분에 대반열반경(D16)  <온라인불자회> 공부모임을 시작합니다.

다 같이 합장하고 큰 소리로 합창합니다.

 

나모 따사 바가와또 아라하또 삼마 삼붓다사(Namo tassa bhagavato arahato sammāsambuddhassa)
나모 따사 바가와또 아라하또 삼마 삼붓다사(Namo tassa bhagavato arahato sammāsambuddhassa)
나모 따사 바가와또 아라하또 삼마 삼붓다사(Namo tassa bhagavato arahato sammāsambuddhassa)

 

붓당 사라남 가차미 (Buddham Saranam Gacchami)  부처님께 귀의합니다.(3번)

담망 사라남 가차미 (Dhammam Saranam Gacchami) 가르침에 귀의합니다.()

상강 사라남 가차미 (Sangham Saranam Gacchami)  승가에 귀의합니다.()

 

 

 

 

광채가 나는 여래의 몸

 

4.37. 뿍꾸사 말라뿟따가 물러간 지 오래지 않아서 아난다 존자는 지금 입을 수 있는 황금색 옷을 세존께 입혀드렸다. 세존의 몸에 그 옷을 입혀드렸지만 [세존의 몸에서] 그 옷의 황금빛은 죽어 버린 것처럼 빛이 나지 않았다. 그러자 아난다 존자는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경이롭습니다, 세존이시여. 놀랍습니다, 세존이시여. 세존이시여, 여래의 피부색이 이렇게 청정하고 이렇게 깨끗하다니요. 세존이시여, 지금 입을 수 있는 황금색 옷을 세존의 몸에 입혀드렸지만 그 옷의 황금빛은 마치 광채가 죽어 버린 것처럼 빛이 나지 않습니다.”

참으로 그러하다, 아난다여. 참으로 그러하다, 아난다여. 아난다여, 두 가지 경우에 여래의 몸은 지극히 청정하고 피부색은 깨끗하게 된다. 그러면 그 두 가지 경우란 어떤 것인가? 아난다여, 여래가 위없는 정등각을 깨달은 그 밤과 여래가 무여열반의 요소[]로 반열반하는 밤이다. 아난다여, 이런 두 가지 경우에 여래의 몸은 지극히 청정하고, 피부색은 깨끗하게 된다.”

 

4.38. “아난다여, 오늘 밤 삼경에 꾸시나라 근처에 있는 말라들의 살라 숲에서 한 쌍의 살라 나무[娑羅双樹] 사이에서 여래의 반열반이 있을 것이다. 오라, 아난다여. 까꿋타 강으로 가자.”

그렇게 하겠습니다, 세존이시여.”라고 아난다 존자는 세존께 대답하였다.

 

빛나는 황금색 옷 두 벌을 뿍꾸사는 바쳤으며

그것을 입은 황금색 피부를 가진 스승은 더 빛이 났다.

 

4.39. 그리고 세존께서는 많은 비구 승가와 함께 까꿋타 강으로 가셨다. 가서는 까꿋타 강(kakudhā nadī )에 들어가서 목욕을 하고 물을 마시고 다시 나오셔서 망고 숲으로 가셨다. 

Atha kho bhagavā mahatā ­bhik­khu­saṃ­ghena saddhiṃ yena kakudhā nadī tenupasaṅkami; upasaṅkamitvā kakudhaṃ nadiṃ ajjhogāhetvā nhatvā ca pivitvā ca paccuttaritvā yena ambavanaṃ tenupasaṅkami.

 

가셔서는 쭌다까 존자를 불러서 말씀하셨다. “준다까여, 가사를 네 겹으로 접어서 [자리를] 만들어라. 쭌다까여, 피곤하구나. 나는 좀 앉아야겠다.”

 Upasaṅkamitvā āyasmantaṃ cundakaṃ āmantesi: “iṅgha me tvaṃ, cundaka, catugguṇaṃ saṅghāṭiṃ paññapehi, kilantosmi, cundaka, nipajjissāmī”ti.

 

그렇게 하겠습니다, 세존이시여.”라고 쭌다까 존자는 세존께 대답한 뒤 가사를 네 겹으로 접어서 [자리를] 만들었다.

4.40. 그러자 세존께서는 발과 발을 포개시고, 마음챙기고 알아차리시면서[正念正知] 일어날 시간을 인식하여 마음에 잡도리하신 후 오른쪽 옆구리로 사자처럼 누우셨다. 쭌다까 존자는 거기 세존의 앞에 앉았다.

“Evaṃ, bhante”ti kho āyasmā cundako bhagavato paṭissutvā catugguṇaṃ saṅghāṭiṃ paññapesi. Atha kho bhagavā dakkhiṇena passena sīhaseyyaṃ kappesi pāde pādaṃ accādhāya sato sampajāno uṭṭhānasaññaṃ manasikaritvā. Āyasmā pana cundako tattheva bhagavato purato nisīdi.

 

 

 

 

 

4.41. 부처님은 까꿋타 강으로 가셨으니

투명하고 맑고 혼탁하지 않은 [그 강에]

세상에서 비할 데 없는 큰 스승 여래께선

심히 지친 몸을 담그고 목욕하고 물을 마시고 나오셨다.

비구 승가의 수장이시고

여기 [이 세상에서] 법을 설하시는 분

대 선인(仙人)이신 그분 세존께서는

비구 승가에 둘러싸여서 망고 숲으로 가셨다.

쭌다까라는 비구를 불러서 말씀하셨으니

네 겹으로 접은 가사 위에 나는 누우리라.’.

자신을 잘 닦은 분에게서 명을 받은 쭌다는

네 겹으로 가사를 접어서 [자리를] 만들었다.

스승께서는 피로한 몸을 누이셨나니

쭌다도 그분 앞에 앉았다.

 

4.42. 그런 후 세존께서는 아난다 존자를 불러서 말씀하셨다. “아난다여, 그런데 대장장이의 아들 쭌다가 이렇게 스스로를 힐난할지도 모른다. ‘여보게 쭌다여, 여래께서는 네가 드린 탁발 음식을 마지막으로 드시고 반열반에 드셨으니 이건 참으로 너의 잘못이고 너의 불행이로구나.’

아난다여, 대장장이 쭌다의 아들에게 이와 같이 말하여 자책감을 없애주어야 한다. ‘도반 쭌다여, 여래께서는 그대가 드린 탁발 음식을 마지막으로 드시고 반열반에 드셨으니 이건 그대의 공덕이고 그대의 행운입니다. 도반 쭌다여, 모든 곳에서 두루 결실을 가져오고 모든 곳에서 두루 과보를 가져오는 두 가지 탁발 음식이 다른 탁발 음식들을 훨씬 능가하는 더 큰 결실과 더 큰 이익을 가져다준다고 나는 세존의 면전에서 직접 듣고 세존의 면전에서 직접 받아 지녔습니다.

어떤 것이 둘입니까? 그 탁발 음식을 드시고 여래께서 위없는 정등각을 깨달으신 것과 그 탁발 음식을 드시고 여래께서 무여열반의 요소[]로 반열반을 하신 것입니다. 이런 두 가지 탁발 음식은 더 큰 결실과 더 큰 이익을 가져다줍니다. 다른 탁발 음식들을 훨씬 능가합니다.

이제 대장장이의 아들 쭌다님은 긴 수명을 가져다 줄 업을 쌓았습니다. 이제 대장장이의 아들 쭌다님은 좋은 용모를 가져다 줄 업을 쌓았습니다. 이제 대장장이의 아들 쭌다님은 행복을 가져다 줄 업을 쌓았습니다. 이제 대장장이의 아들 쭌다님은 명성을 가져다 줄 업을 쌓았습니다. 이제 대장장이의 아들 쭌다님은 천상에 태어날 업을 쌓았습니다. 이제 대장장이의 아들 쭌다님은 위세를 가질 업을 쌓았습니다.’라고.

아난다여, 이렇게 대장장이의 아들 쭌다의 자책감을 없애주어야 한다.”

 

4.43. 그때 세존께서는 이런 뜻을 드러내신 뒤 다음의 감흥어를 읊으셨다.

 

베풂에 의해서 공덕은 증가하고

제어에 의해서 증오는 쌓이지 않는다.

지혜로운 자 사악함을 없애고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을 버려서 열반을 얻는다.”

 

 

한 쌍의 살라 나무  26. Yamakasālā

 

5.1. 그러자 세존께서는 아난다 존자를 불러서 말씀하셨다. “오라, 아난다여. 히란냐와띠(hiraññavati) 강의 저쪽 언덕, 꾸시나라 근처에 있는 말라들의 살라 숲으로 가자.”

Atha kho bhagavā āyasmantaṃ ānandaṃ āmantesi: “āyāmānanda, yena hiraññavatiyā nadiyā pārimaṃ tīraṃ, yena kusinārā upavattanaṃ mallānaṃ sālavanaṃ tenu­pasaṅka­mis­sāmā”ti.

 

 

그렇게 하겠습니다, 세존이시여.”라고 아난다 존자는 세존께 대답했다. 그때 세존께서는 많은 비구 승가와 함께 히란냐와띠 강의 저쪽 언덕, 꾸시나라 근처에 있는 말라들의 살라 숲으로 가셨다.

가셔서는 아난다 존자를 불러서 말씀하셨다.

“Evaṃ, bhante”ti kho āyasmā ānando bhagavato paccassosi. Atha kho bhagavā mahatā ­bhik­khu­saṃ­ghena saddhiṃ yena hiraññavatiyā nadiyā pārimaṃ tīraṃ, yena kusinārā upavattanaṃ mallānaṃ sālavanaṃ tenupasaṅkami. Upasaṅkamitvā āyasmantaṃ ānandaṃ āmantesi:

 

 

아난다여, 그대는 한 쌍의 살라 나무 사이에 북쪽으로 머리를 둔 침상을 만들어라. 아난다여, 피곤하구나. 누워야겠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세존이시여.”라고 아난다 존자는 세존께 대답한 뒤 두 살라 나무 사이에 북쪽으로 머리를 둔 침상을 만들었다. 그러자 세존께서는 발과 발을 포개고 마음챙기고 알아차리시면서[正念正知] 오른쪽 옆구리로 사자처럼 누우셨다.

“iṅgha me tvaṃ, ānanda, antarena yamakasālānaṃ uttarasīsakaṃ mañcakaṃ paññapehi, kilantosmi, ānanda, nipajjissāmī”ti. “Evaṃ, bhante”ti kho āyasmā ānando bhagavato paṭissutvā antarena yamakasālānaṃ uttarasīsakaṃ mañcakaṃ paññapesi. Atha kho bhagavā dakkhiṇena passena sīhaseyyaṃ kappesi pāde pādaṃ accādhāya sato sampajāno.

 

 

5.2. 그러자 한 쌍의 살라 나무는 때 아닌 꽃들로 만개하여 여래께 예배를 올리기 위해서 여래의 몸(sarīraṃ) 위로 떨어지고 흩날리고 덮었다. 하늘나라의 만다라와 꽃들이 허공에서 떨어져서 여래께 예배를 올리기 위해서 여래의 몸 위로 떨어지고 흩날리고 덮었다. 하늘나라의 전단향 가루가 허공에서 떨어져서 여래께 예배를 올리기 위해서 여래의 몸 위로 떨어지고 흩날리고 덮었다. 하늘나라의 음악(saṅgītāni)이 여래께 예배를 올리기 위해서 허공에서 연주되었으며 하늘나라의 노래가 여래께 예배를 올리기 위해서 울려 퍼졌다.

Tena kho pana samayena yamakasālā sabba­phāli­phullā honti akālapupphehi. Te tathāgatassa sarīraṃ okiranti ajjhokiranti abhippakiranti tathāgatassa pūjāya. Dibbānipi mandā­ra­va­pupphāni antalikkhā papatanti, tāni tathāgatassa sarīraṃ okiranti ajjhokiranti abhippakiranti tathāgatassa pūjāya. Dibbānipi candanacuṇṇāni antalikkhā papatanti, tāni tathāgatassa sarīraṃ okiranti ajjhokiranti abhippakiranti tathāgatassa pūjāya. Dibbānipi tūriyāni antalikkhe vajjanti tathāgatassa pūjāya. Dibbānipi saṅgītāni antalikkhe vattanti tathāgatassa pūjāya.

 

 

5.3. 그러자 세존께서는 아난다 존자를 불러서 말씀하셨다. “아난다여, 한 쌍의 살라 나무는 때 아닌 꽃들로 만개하여 여래께 예배를 올리기 위해서 여래의 몸 위로 떨어지고 흩날리고 덮이는구나. 하늘나라의 만다라와 꽃들이 허공에서 떨어져서 여래께 예배를 올리기 위해서 여래의 몸 위로 떨어지고 흩날리고 덮이는구나. 하늘나라의 전단향 가루가 허공에서 떨어져서 여래께 예배를 올리기 위해서 여래의 몸 위로 떨어지고 흩날리고 덮이는구나. 하늘나라의 음악이 여래께 예배를 올리기 위해서 허공에서 연주되고 하늘나라의 노래가 여래께 예배를 올리기 위해서 울려 퍼지는구나.아난다여, 그러나 이러한 것으로는 여래를 존경하고 존중하고 숭상하고 예배하는 것이 아니다. 

 

 

 

아난다여, 비구나 비구니나 청신사나 청신녀가 [출세간]법에 이르게 하는 법을 닦고, 합당하게 도를 닦고, 법을 따라 행하며 머무는 것이 참으로 최고의 예배로 여래를 존경하고 존중하고 숭상하고 예배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난다여, 여기서 우리는 [출세간]법에 이르게 하는 법을 닦고, 합당하게 도를 닦고, 법을 따라 행하며 머물러야 한다.”

Yo kho, ānanda, bhikkhu vā bhikkhunī vā upāsako vā upāsikā vā dhammā­nu­dhammap­paṭi­panno viharati sāmīcip­paṭi­panno anudhammacārī, so tathāgataṃ sakkaroti garuṃ karoti māneti pūjeti apaciyati, paramāya pūjāya. Tasmātihānanda, dhammā­nu­dhammap­paṭi­pannā viharissāma sāmīcip­paṭi­pannā anu­dhamma­cāri­noti. Evañhi vo, ānanda, sikkhitabban”ti.

 

 

우빠와나 장로

 

5.4. 그때에 우빠와나 존자가 세존의 앞에 서서 세존께 부채를 부쳐드리고 있었다. 그러자 세존께서는 비구여, 저리로 가거라. 내 앞에 서지 말라.”고 하시면서 우빠와나 존자를 달가워하지 않으셨다.

그러자 아난다 존자에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우빠와나 존자는 오랜 세월 세존의 시자였으며 항상 임석해 있었고 항상 곁에 모시고 살았다. 그런데 지금 세존께서는 마지막 [임종]시간에 이르러 비구여, 저리로 가거라. 내 앞에 서지 말라.’고 하시면서 우빠와나 존자를 달가워하지 않으신다. 무슨 이유와 무슨 조건 때문에 세존께서는 비구여, 저리로 가거라. 내 앞에 서지 말라.’고 하시면서 우빠와나 존자를 달가워하지 않으시는 것일까?’

 

5.5. 그래서 아난다 존자는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우빠와나 존자는 오랜 세월 세존의 시자였으며 항상 임석해 있었고 항상 곁에 모시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지금 세존께서는 마지막 [임종]시간에 이르러 비구여, 저리로 가거라. 내 앞에 서지 말라.’고 하시면서 우빠와나 존자를 달가워하지 않으십니다. 세존이시여, 무슨 이유와 무슨 조건 때문에 세존께서는 비구여, 저리로 가거라. 내 앞에 서지 말라.’고 하시면서 우빠와나 존자를 달가워하지 않으시는 것입니까?”

아난다여, 여래를 친견하기 위해서 신들은 꾸시나라 근처에 있는 말라들의 살라 숲을 12요자나까지 가득 채우고, 대략 열 곳의 세계로부터 모여들었다. 이 지역은 머리카락 한 올이 들어갈 틈이 없을 정도로, 큰 위력을 지닌 신들로 채워지지 않은 곳이 없다. 아난다여, 신들은 이렇게 푸념하고 있다. ‘우리는 참으로 여래를 친견하기 위해서 멀리서 왔다. 참으로 드물게 여래ㆍ아라한ㆍ정등각께서는 세상에 태어나신다. 오늘 밤 삼경에 그런 여래의 반열반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 큰 위력을 가진 비구가 세존의 앞에 서서 막고 있어서, 우리는 마지막 [임종]시간에 여래를 친견할 수가 없구나.’라고.”

 

5.6. “세존이시여, 그러면 세존께서는 어떠한 신들을 마음에 잡도리하십니까?”

아난다여, 허공에서 [땅을 창조하여] 땅의 인식을 가진 신들이 있나니 그들은 머리칼을 뜯으면서 울부짖고 손을 마구 흔들면서 울부짖고 다리가 잘린 듯이 넘어지고 이리 뒹굴고 저리 뒹굴면서 세존께서는 너무 빨리 반열반하려 하시는구나. 너무 빨리 선서께서는 반열반하려 하시는구나. 너무 빨리 눈을 가진 분이 세상에서 사라지려 하시는구나.’라고 한다.

 

 

아난다여, 땅에서 [땅을 창조하여] 땅의 인식을 가진 신들이 있나니 그들은 머리칼을 뜯으면서 울부짖고 손을 마구 흔들면서 울부짖고 다리가 잘린 듯이 넘어지고 이리 뒹굴고 저리 뒹굴면서 세존께서는 너무 빨리 반열반하려 하시는구나. 너무 빨리 선서께서는 반열반하려 하시는구나. 너무 빨리 눈을 가진 분이 세상에서 사라지려 하시는구나.’라고 한다.

Santānanda, devatā pathaviyaṃ patha­vī­saññi­niyo kese pakiriya kandanti, bāhā paggayha kandanti, chinnapātaṃ papatanti, āvaṭṭanti, vivaṭṭanti: ‘atikhippaṃ bhagavā pari­nib­bā­yis­sati, atikhippaṃ sugato pari­nib­bā­yis­sati, atikhippaṃ cakkhuṃ loke antara­dhāyis­satī’ti.

 

 

그러나 애욕을 벗어난 신들은 마음챙기고 알아차리면서 형성된 것들은 무상하다. 그러니 여기서 [울부짖는다 해서]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라고 한다.”

Yā pana tā devatā vītarāgā, tā satā sampajānā adhivāsenti: ‘aniccā saṅkhārā, taṃ kutettha labbhā’”ti.

 

 

 

논점

 

 

1. "오른쪽 옆구리로 사자처럼 누우셨다." 사자도 오른쪽 옆구리로 눕나?

 

 

2. "보시의 공덕으로 긴 수명, 좋은 용모, 행복,명성,천상에 태어날 업,위세를 가질 업을 쌓았습니다."라고 설명한다. 

이러한 보시공덕은 다른곳에 보시하는 공덕과 차이를 보인다. 

 

 

 

3.대장장이의 아들 쭌다의 자책감을 없애주는 것은 부처님의 자비인가? 아니면 정말 쭌다는 아무 잘못이 없기 때문인가? 

 

 

 

 

4. 아난다여, 한 쌍의 살라 나무는 때 아닌 꽃들로 만개하여 여래께 예배를 올리기 위해서 여래의 몸 위로 떨어지고 흩날리고 덮이는구나. 하늘나라의 만다라와 꽃들이 허공에서 떨어져서 여래께 예배를 올리기 위해서 여래의 몸 위로 떨어지고 흩날리고 덮이는구나. 하늘나라의 전단향 가루가 허공에서 떨어져서 여래께 예배를 올리기 위해서 여래의 몸 위로 떨어지고 흩날리고 덮이는구나. 하늘나라의 음악이 여래께 예배를 올리기 위해서 허공에서 연주되고 하늘나라의 노래가 여래께 예배를 올리기 위해서 울려 퍼지는구나."

"아난다여, 그러나 이러한 것으로는 여래를 존경하고 존중하고 숭상하고 예배하는 것이 아니다. 아난다여, 비구나 비구니나 청신사나 청신녀가 법에 이르게 하는 법을 닦고, 합당하게 도를 닦고, 법을 따라 행하며 머무는 것이 참으로 최고의 예배로 여래를 존경하고 존중하고 숭상하고 예배하는 것이다." 이러한 설법을 듣고 느끼는 감상을 이야기 해보자.

 

 

5. “아난다여, 허공에서 [땅을 창조하여] 땅의 인식을 가진 신들이 있나니 ...아난다여, 땅에서 [땅을 창조하여] 땅의 인식을 가진 신들이 있나니 그들은 머리칼을 뜯으면서 울부짖고 손을 마구 흔들면서 울부짖고 다리가 잘린 듯이 넘어지고 이리 뒹굴고 저리 뒹굴면서 세존께서는 너무 빨리 반열반하려 하시는구나. 너무 빨리 선서께서는 반열반하려 하시는구나. 너무 빨리 눈을 가진 분이 세상에서 사라지려 하시는구나.’라고 한다."

땅에 있는데 다시 땅에서 땅을 창조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6. "애욕을 벗어난 신들은 마음챙기고 알아차리면서 형성된 것들은 무상하다. 그러니 여기서 [울부짖는다 해서]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라고 한다.” 애욕을 벗어난 신들은 어느 곳에서 온 신들인가? 

 

 

 

 

 

 

pava부터 kakudhā강을 거쳐서 꾸시나라까지 가는 코스

 

 

빠와에 있는 공양터

 

 

 

 

8월 3일 목요일 오후 9시 15분에 대반열반경(D16)  <온라인불자회> 공부모임을 시작합니다.

다 같이 합장하고 큰 소리로 합창합니다.

 

나모 따사 바가와또 아라하또 삼마 삼붓다사(Namo tassa bhagavato arahato sammāsambuddhassa)
나모 따사 바가와또 아라하또 삼마 삼붓다사(Namo tassa bhagavato arahato sammāsambuddhassa)
나모 따사 바가와또 아라하또 삼마 삼붓다사(Namo tassa bhagavato arahato sammāsambuddhassa)

 

붓당 사라남 가차미 (Buddham Saranam Gacchami)  부처님께 귀의합니다.(3번)

담망 사라남 가차미 (Dhammam Saranam Gacchami) 가르침에 귀의합니다.()

상강 사라남 가차미 (Sangham Saranam Gacchami)  승가에 귀의합니다.()

 

 

 

 

네 가지 순례해야 할 장소

28. Catu­  saṃve­janī­ya­  ṭhāna

 

5.7. “세존이시여, 전에는 안거가 끝나면 비구들은 여래를 친견하러 왔고 우리는 그런 마음을 잘 닦은 비구들을 맞이하였고 그들은 세존을 친견하고 공경을 할 수 있었습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나 이제 세존께서 가시고 나면 우리는 그런 마음을 잘 닦은 비구들을 맞이하지 못할 것이고 그들은 세존을 친견하고 공경을 하지 못할 것입니다.”

“Pubbe, bhante, disāsu vassaṃvuṭṭhā bhikkhū āgacchanti tathāgataṃ dassanāya. Te mayaṃ labhāma manobhāvanīye bhikkhū dassanāya, labhāma payirupāsanāya. Bhagavato pana mayaṃ, bhante, accayena na labhissāma manobhāvanīye bhikkhū dassanāya, na labhissāma payirupāsanāyā”ti.

 

 

5.8. “아난다여, 믿음을 가진 선남자가 친견해야 하고 절박함을(saṃvejanīyāni) 일으켜야 하는 네 가지 장소가 있다. 어떤 것이 넷인가?

여기서 여래가 태어나셨다.’  아난다여, 이곳이 믿음을 가진 선남자가 친견해야 하고 절박함을 일으켜야 하는 장소이다. ‘여기서 여래가 위없는 정등각을 깨달으셨다.’  이곳이 믿음을 가진 선남자가 친견해야 하고 절박함을 일으켜야 하는 장소이다. ‘여기서 여래가 위없는 법의 바퀴를 굴리셨다.’  이곳이 믿음을 가진 선남자가 친견해야 하고 절박함을 일으켜야 하는 장소이다. ‘여기서 여래가 무여열반의 요소로 반열반하셨다.’  이곳이 믿음을 가진 선남자가 친견해야 하고 절박함을 일으켜야 하는 장소이다. 아난다여, 이것이 믿음을 가진 선남자가 친견해야 하고 절박함을 일으켜야 하는 네 가지 장소들이다.

“Cattārimāni, ānanda, saddhassa kulaputtassa dassanīyāni saṃvejanīyāni ṭhānāni. Katamāni cattāri? ‘Idha tathāgato jāto’ti, ānanda, saddhassa kulaputtassa dassanīyaṃ saṃvejanīyaṃ ṭhānaṃ. ‘Idha tathāgato anuttaraṃ sammāsambodhiṃ abhisambuddho’ti, ānanda, saddhassa kulaputtassa dassanīyaṃ saṃvejanīyaṃ ṭhānaṃ. ‘Idha tathāgatena anuttaraṃ dhammacakkaṃ pavattitan’ti, ānanda, saddhassa kulaputtassa dassanīyaṃ saṃvejanīyaṃ ṭhānaṃ. ‘Idha tathāgato anupādisesāya nibbānadhātuyā parinibbuto’ti, ānanda, saddhassa kulaputtassa dassanīyaṃ saṃvejanīyaṃ ṭhānaṃ. Imāni kho, ānanda, cattāri saddhassa kulaputtassa dassanīyāni saṃvejanīyāni ṭhānāni.

*saṃvejaniya adj. apt to cause emotion or anxiety saṃvejaniya < saṃ √vij (shake, be afraid, be in awe)

 

 

아난다여, ‘여기서 여래가 태어나셨다.’ ‘여기서 여래가 위없는 정등각을 깨달으셨다.’ ‘여기서 여래가 위없는 법의 바퀴를 굴리셨다.’ ‘여기서 여래가 무여열반의 요소로 반열반하셨다.’라면서 믿음을 가진 비구들과 비구니들과 청신사들과 청신녀들이 이곳을 방문할 것이다. 아난다여, 누구든 이러한 성지순례(cetiyacārikaṃ)를 떠나는 청정한 믿음을 가진 자들은 모두 몸이 무너져 죽은 뒤 좋은 곳[善処], 천상세계에 태어날 것이다.”

Āgamissanti kho, ānanda, saddhā bhikkhū bhikkhuniyo upāsakā upāsikāyo: ‘idha tathāgato jāto’tipi, ‘idha tathāgato anuttaraṃ sammāsambodhiṃ abhisambuddho’tipi, ‘idha tathāgatena anuttaraṃ dhammacakkaṃ pavattitan’tipi, ‘idha tathāgato anupādisesāya nibbānadhātuyā parinibbuto’tipi. Ye hi keci, ānanda, cetiyacārikaṃ āhiṇḍantā pasannacittā kālaṃ karissanti, sabbe te kāyassa bhedā paraṃ maraṇā sugatiṃ saggaṃ lokaṃ upapajjissantī”ti.

*āhiṇḍanta prp. wandering around; walking about

 

 

 

아난다의 질문  29. Ānanda­  pucchā  ­ka­thā

 

5.9. “세존이시여, 저희들은 어떻게 여인들을 대처해야 합니까?”

아난다여, 쳐다보지 말라.”

“Kathaṃ mayaṃ, bhante, mātugāme paṭipajjāmā”ti? “Adassanaṃ, ānandā”ti. 

 

세존이시여, 쳐다보게 되면 어떻게 대처해야 합니까?”

아난다여, 말하지 말라.”

“Dassane, bhagavā, sati kathaṃ paṭi­pajji­tabban”ti? “Anālāpo, ānandā”ti.

 

세존이시여, 말을 하게 되면 어떻게 대처해야 합니까?”

아난다여, 마음챙김을 확립해야 한다.”

 “Ālapantena pana, bhante, kathaṃ paṭi­pajji­tabban”ti? “Sati, ānanda, upaṭṭhāpetabbā”ti.

 

 

 

 

5.10. “세존이시여, 저희들은 어떻게 여래의 존체(尊体,sarīre)에 대처해야 합니까?”

아난다여, 그대들은 여래의 몸을(tathāgatassa sarīre) 수습하는 것에는 관심을 두지 말라. 아난다여, 그대들은 근본에 힘쓰고 근본에(sāratthe,복수) 몰두하여라. 근본에(sāratthe) 방일하지 말고 근면하고 스스로 독려하며 머물러라. 

“Kathaṃ mayaṃ, bhante, tathāgatassa sarīre paṭipajjāmā”ti? “ Abyāvaṭā tumhe, ānanda, hotha tathāgatassa sarīrapūjāya. Iṅgha tumhe, ānanda, sāratthe ghaṭatha anuyuñjatha, sāratthe appamattā ātāpino pahitattā viharatha.

*sarīre :neut acc pl   (living or dead) body . *sāratthe :masc acc pl  heart of the goal; essence of welfare

 

아난다여, 여래에 청정한 믿음이 있는 끄샤뜨리야 현자들과 바라문 현자들과 장자 현자들이 여래의 몸sarīre을 수습할 것이다.”

Santānanda, khat­tiya­paṇ­ḍitāpi brāhma­ṇa­paṇ­ḍitāpi gaha­pati­paṇ­ḍitāpi tathāgate abhippasannā, te tathāgatassa sarīrapūjaṃ karissantī”ti.

 

 

5.11. “세존이시여, 그러면 어떻게 여래의 존체에 대처해야 합니까?”

아난다여, 전륜성왕의 유체에 대처하듯이 여래의 유체에도 대처하면 된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어떻게 전륜성왕의 유체에 대처합니까?”

“Kathaṃ pana, bhante, tathāgatassa sarīre paṭi­pajji­tabban”ti? “Yathā kho, ānanda, rañño cakkavattissa sarīre paṭipajjanti, evaṃ tathāgatassa sarīre paṭi­pajji­tabban”ti. “Kathaṃ pana, bhante, rañño cakkavattissa sarīre paṭipajjantī”ti?

 

 

 

아난다여, 전륜성왕의 유체는 새 천ahatena으로 감싼다. 새 천으로 감싼 뒤 새 솜으로 감싼다. 새 솜綿花으로 감싼 뒤 [다시] 새 천으로 감싼다. 이런 방법으로 500번 전륜성왕의 유체를 감싼 뒤 황금으로(āyasāya,철로만든) 만든 기름통(teladoṇiyā)에 넣고, 황금으로(āyasāya,철로만든) 만든 다른 통으로 덮은 뒤, 모든 향으로 장엄을 하여, 전륜성왕의 유체를 화장한다. 

 “Rañño, ānanda, cakkavattissa sarīraṃ ahatena vatthena veṭhenti, ahatena vatthena veṭhetvā vihatena kappāsena veṭhenti, vihatena kappāsena veṭhetvā ahatena vatthena veṭhenti. Etenupāyena pañcahi yugasatehi rañño cakkavattissa sarīraṃ veṭhetvā āyasāya teladoṇiyā pakkhipitvā aññissā āyasāya doṇiyā paṭikujjitvā sabbagandhānaṃ citakaṃ karitvā rañño cakkavattissa sarīraṃ jhāpenti.

*āyasa adj. made of iron; metal [ayas–*a]

 

 

그리고 큰 길 사거리에 전륜성왕의 탑(thūpaṃ) 조성한다. 아난다여, 전륜성왕의 유체는 이렇게 대처한다.

아난다여, 전륜성왕의 유체에 대처하듯이 여래의 유체도 대처해야 한다. 그리고 큰 길 사거리에 여래의 탑을 조성해야 한다. 거기에 화환이나 향이나 향가루를cuṇṇakaṃ 올리거나 절을 하거나 마음으로 청정한 믿음을 가지는 자들에게는 오랜 세월 이익과 행복이 있을 것이다.

 Cātumahāpathe rañño cakkavattissa thūpaṃ karonti. Evaṃ kho, ānanda, rañño cakkavattissa sarīre paṭipajjanti. Yathā kho, ānanda, rañño cakkavattissa sarīre paṭipajjanti, evaṃ tathāgatassa sarīre paṭi­pajji­tabbaṃ. Cātumahāpathe tathāgatassa thūpo kātabbo. Tattha ye mālaṃ vā gandhaṃ vā cuṇṇakaṃ vā āropessanti vā abhivādessanti vā cittaṃ vā pasādessanti tesaṃ taṃ bhavissati dīgharattaṃ hitāya sukhāya.

 

 

 

탑을 조성할 만한 사람

30. Thūpā­raha­ puggala

 

5.12. “아난다여, thūpā을 조성할 만한 사람으로 네 사람이 있다. 어떤 것이 넷인가? 여래ㆍ아라한ㆍ정등각의 탑은 조성할 만하다. 벽지불의 탑은 조성할 만하다. 여래의 제자의 탑은 조성할 만하다. 전륜성왕의 탑은 조성할 만하다.

Cattārome, ānanda, thūpārahā. Katame cattāro? Tathāgato arahaṃ sammāsambuddho thūpāraho, pac­ce­ka­sambud­dho thūpāraho, tathāgatassa sāvako thūpāraho, rājā cakkavattī thūpārahoti.

 

 

아난다여, 그러면 어떤 이익이 있기 때문에 여래ㆍ아라한ㆍ정등각의 탑은 조성할 만한가? 아난다여, ‘이것은 그분 세존ㆍ아라한ㆍ정등각의 탑이다.’라고 많은 사람들은 마음으로 청정한 믿음을 가진다. 그들은 거기서 마음으로 청정한 믿음을 가지고서 몸이 무너져 죽은 뒤 좋은 곳[善処], 천상세계에 태어난다. 아난다여, 이런 이익이 있기 때문에 여래ㆍ아라한ㆍ정등각의 탑은 조성할 만하다.

Kiñcānanda, atthavasaṃ paṭicca tathāgato arahaṃ sammāsambuddho thūpāraho? ‘Ayaṃ tassa bhagavato arahato sammā­sambud­dhassa thūpo’ti, ānanda, bahujanā cittaṃ pasādenti. Te tattha cittaṃ pasādetvā kāyassa bhedā paraṃ maraṇā sugatiṃ saggaṃ lokaṃ upapajjanti. Idaṃ kho, ānanda, atthavasaṃ paṭicca tathāgato arahaṃ sammāsambuddho thūpāraho.

 

 

 

 

아난다여, 그러면 어떤 이익이 있기 때문에 벽지불의 탑은 조성할 만한가? 아난다여, ‘이것은 그분 벽지불의 탑이다.’라고 많은 사람들은 마음으로 청정한 믿음을 가진다. 그들은 거기서 마음으로 청정한 믿음을 가지고서 몸이 무너져 죽은 뒤 좋은 곳, 천상세계에 태어난다. 아난다여, 이런 이익이 있기 때문에 벽지불의 탑은 조성할 만하다.

Kiñcānanda, atthavasaṃ paṭicca pac­ce­ka­sambud­dho thūpāraho? ‘Ayaṃ tassa bhagavato pac­ce­ka­sambud­dhassa thūpo’ti, ānanda, bahujanā cittaṃ pasādenti. Te tattha cittaṃ pasādetvā kāyassa bhedā paraṃ maraṇā sugatiṃ saggaṃ lokaṃ upapajjanti. Idaṃ kho, ānanda, atthavasaṃ paṭicca pac­ce­ka­sambud­dho thūpāraho.

 

 

아난다여, 그러면 어떤 이익이 있기 때문에 여래의 제자의 탑은 조성할 만한가? 아난다여, ‘이것은 여래의 제자의 탑이다.’라고 많은 사람들은 마음으로 청정한 믿음을 가진다. 그들은 거기서 마음으로 청정한 믿음을 가지고서 몸이 무너져 죽은 뒤 좋은 곳, 천상세계에 태어난다. 아난다여, 이런 이익이 있기 때문에 여래의 제자의 탑은 조성할 만하다.

Kiñcānanda, atthavasaṃ paṭicca tathāgatassa sāvako thūpāraho? ‘Ayaṃ tassa bhagavato arahato sammā­sambud­dhassa sāvakassa thūpo’ti, ānanda, bahujanā cittaṃ pasādenti. Te tattha cittaṃ pasādetvā kāyassa bhedā paraṃ maraṇā sugatiṃ saggaṃ lokaṃ upapajjanti. Idaṃ kho, ānanda, atthavasaṃ paṭicca tathāgatassa sāvako thūpāraho.

 

 

아난다여, 그러면 어떤 이익이 있기 때문에 전륜성왕의 탑은 조성할 만한가? 아난다여, ‘이것은 정의로운 분이요 법다운 왕의 탑이다.’라고 많은 사람들은 마음으로 청정한 믿음을 가진다. 그들은 거기서 마음으로 청정한 믿음을 가지고서 몸이 무너져 죽은 뒤 좋은 곳, 천상세계에 태어난다. 아난다여, 이런 이익이 있기 때문에 전륜성왕의 탑은 조성할 만하다. 아난다여, 이것이 탑을 조성할 만한 네 사람이다.”

Kiñcānanda, atthavasaṃ paṭicca rājā cakkavattī thūpāraho? ‘Ayaṃ tassa dhammikassa dhammarañño thūpo’ti, ānanda, bahujanā cittaṃ pasādenti. Te tattha cittaṃ pasādetvā kāyassa bhedā paraṃ maraṇā sugatiṃ saggaṃ lokaṃ upapajjanti. Idaṃ kho, ānanda, atthavasaṃ paṭicca rājā cakkavattī thūpāraho. Ime kho, ānanda, cattāro thūpārahā”ti.

 

 

 

 

 

 

논점

 

1. 쩨띠야(cetiya)와 탑(thūpā)을 구분해보자. 성지순례를 쩨띠야짜리깜(cetiya cārikaṃ)이라고 표현하는 이유는?

(전재성번역)  "아난다며, 이와 같은 네 종류의 탑묘를 조성할 가치 있는 님이 있다. 

 

 

 

 

2."철로(āyasāya) 만든 기름통(teladoṇiyā)에 넣고, 철로(āyasāya) 만든 다른 통으로 덮은 뒤"라는 문장으로 봐서 관은 아니더라도 철로만든 통같은 곳에 집어 넣고 뚜껑을 덮는다고 나온다. 이것이 곽시쌍부와 관련이 있을까?

(주석)ayasaya: Smy. 583에 따르면, '쇠'라는 것은 여기서 '황금'을 말한다.

다리부터 천을 돌리면 500번 정도 돌려도 두껍지는 않을 듯....

500번이라는 숫자는 많다는 관형적인 표현라고 본다. 

 

 

 

 

3.. “세존이시여, 저희들은 어떻게 여인을 대처해야 합니까?” 아난다의 나이도 많았을 텐데 갑자기 아난다가 이러한 질문을 하는 이유는?

 

(주석서) analapo ananda'ti: Smv.582-583에 따르면, 칼을 가지고 '만약 나와 이야기하면, 그 자리에서 당신의 목을 자르겠다.'라고 서있는 남자나 '만약 나와 이야기하면, 당신의 살을 먹어버리겠다.'라는 야차녀와 이야기하는 것이 낫다. 왜냐하면, 그것은 현세에서만 그 때문에 파멸이 생기지만, 여러 나쁜 곳에서 한량없는 괴로움을 받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성과 대화하면, 친교가 생겨나고 친교가 생기면 정이 깊어지고, 번민하고 계행을 파괴하 고 괴로운 곳을 채우는 자가 된다.

“sace mayā saddhiṃ ālapasi, ettheva te sīsaṃ pātessāmī”ti ṭhitapurisena vā, “sace mayā saddhiṃ ālapasi, ettheva te maṃsaṃ murumurāpetvā khādissāmī”ti ṭhitayakkhiniyā  ālapituṃ varaṃ. ekasseva hi attabhāvassa tappaccayā vināso hoti, na apāyesu aparicchinnadukkhānubhavanaṃ. mātugāmena pana ālāpasallāpe sati vissāso hoti, vissāse sati otāro hoti, otiṇṇacitto sīlabyasanaṃ patvā apāyapūrako hoti; tasmā anālāpoti āha. 

 

 

 

 

4. 탑(thūpā)을  조성하는 문화가 인도에서 부처님 이전에도 있었나?

 

 

 

 

5. 여래의 존체(尊体,sarīre), 여래의 몸(tathāgatassa sarīre)이라며 아직 화장을 하지 않은 몸을 '사리'라고 표현한다. 태운몸도 '사리'라고 표현하는데 어떻게 구분할까?

 

 

열반경 2023.8.03. 강독 정리

네 가지 순례해야 할 장소 (5.7 - 5.8)
개요: 아난다는 부처님이 곧 반열반하실 것을 알고 비구들이 안거 후 부처님을 친견하러 오곤 하였는데 이젠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묻는다.
부처님께선 네 가지 장소 즉, 태어나신 ‘룸비니’, 성도하신 ‘보드가야’, 초전법륜지 ‘와라나시의 녹야원’과 입멸하시는 ‘꾸시나라’의 4 성지를 방문하고 사부대중이 이 곳에서 부처님을 친견하듯 절박한 마음을 일으키게 되면 사후 선처, 천상세계에 태어날 것이다라고 답변하셨다.

아난다의 질문 (5.9 - 5.11)
개용: 또한 아난다는 “여인 대처법”에 대하여 묻는다.  이에 부처님은 첫째, 쳐다보지 말 것, 둘째, 말하지 말 것, 샛째, 마음챙김을 확립할 것이라고 아주 명확하게 말씀하셨다.   다음 부처님 입멸 후 존체 수습에 대하여 질문하였는데 그런 일(장사)은 재가자(끄샤뜨리야, 바라문 및 장자)들에게 맡기고 그대(출가자)들은 수행근본에 매진하라, 그리고 여래의 존체는 마치 전륜성왕의 유해를 수습하듯 새 천으로 감싸고, 새 헝겊으로 감싼 뒤 다시 새 천으로 500번 감싼 후 황금 기름통에 안치하여 황금 뚜껑을 덮고 각종 향으로 장엄한 다음 화장을 시키라고 구체적인 방법을 알려주셨다.
그리고 큰 길 사거리에 탑을 조성하여 사람들이 절을 하거나 화환, 향, 향가루를 올리게 하도록 하라는 말씀도 덧붙였다.

탑을 조성할만한 사람 (5.12)
개요: 부처님은 탑을 조성하여 공경할 대상으로 ① 여래·아라한·정등각 ② 벽지불(연각,독각) ③ 여래의 제자 ④ 전륜성왕이라고 명확히 하셨고 탑을 조성하여 사람들이 청정한 믿음을 가지고 예배토록 하면 육신이 멸한 뒤 좋은 곳, 천상세계에 태어나는 이익이 있을 것이라는 말씀도 아울러 주셨다. 

논점-1: “쩨띠야(cetiya)나 탑(thupa)을 구분해보자.  성지순례를 ‘쩨띠야 짜니캄(cetiya canikam)이라고 표현하는데 그 이유는?”
가) ‘쩨띠야(cetiya)라는 단어는 경전 곳곳에 많이 나온다.
 1) 쌍윳따 니까야(S51:10)의 ‘탑묘경(cetiya sutta)에서 부처님은 ’아난다여, 웨쌀리는 아름답구나.  우데나 탑묘도 아름답고, 고따마까 탑묘도 아름답고, 쌋땀바따 탑묘도 아름답고, 바후뿟따 탑묘도 아름답고, 사란다다 탑묘도 아름답고, 짜빨라 탑묘도 아름답구나....(후략)‘ (열반경 3.1 암시와 빛)
 2) 열반경 3.36에서 ‘아난다여, 그런데 지금 오늘 이 짜빨라 탑묘에서 마라 빠삐만이 다시 나에게 다가왔다...(후략)’ *빠삐만이 반열반하실 것을 종용하고 부처님은 여기에서 수명의 상카라를 포기하셨음.
 3) 열반경 4.7 “네가지 큰 권위”에서 ‘세존께서는 거기 보가나가라에서 아난다 탑묘에 머무셨다....(후략)’
나) 고로 쩨띠야(cetiya)는 부처님 이전에도 존재하였던 것으로 판단되고 고대 인도인들이 제사를 지내거나 자이나교도들이 약카(야차)를 모시던 장소로 사용되었으며 불교의 탑묘를 지칭할 때는 (즉 불교가 널리 퍼진 뒤에는) 스투빠(stupa, sk) 혹은 투빠(thupa, pl)로 불리웠다 한다.
다) 시간이 흘러 쩨띠야(cetiya)는 불교사원이나 석굴(아잔타, 엘로라 등)에서 불상이나 탑을 모신 장소로 위하라(vihara, 승방/승당)와 구분지어 사용되었음.
라) 일설에 의하면 부처님 사리를 모신 곳이라면 투빠/스투빠라고 하고, 없는 곳이라면 쩨띠야라고 부른다 함.
* 인도식 복발형 (사발을 엎어놓은 듯한 건축양식) 탑은 중국으로 넘어와 건물과 같이 층의 개념을 도입한 탑으로 변형되었고 한국도 그 양식을 따라갔다.

논점-2: “‘철로(ayasaya) 만든 기름통(teladoniya)에 넣고 철로(ayasaya) 만든 다른 통으로 덮은 뒤‘라는 문장으로 보아서 관은 아니더라도 철로 만든 통같은 곳에 집어넣고 뚜껑을 덮는다고 나온다. 이 것이 ’곽시쌍부‘와 관련이 있을까? 또한 500번 천을 돌렸다 했는데 과연 그럴까?”
가) ‘곽시쌍부(槨示雙趺)’는 부처님 열반 당시 유행중이던 상수제자 가섭존자가 임종을 못하고 입멸 7일 후에야 도착하였을 때 부처님이 관 밖으로 두발을 내밀었다는 고사인데 이는 정작 열반경에는 나오지 않는 대목으로 중국에서 선종의 법통이 부처님에게서 가섭존자에게 전해졌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염화시중과 같은 맥락으로 만들어진 스토리텔링이지 않나 싶다.  실제 중국 선어록(禪語錄)에는 이 당시의 상황이 훨씬 구체적이고 드라마틱하게 표현된다.
나) 부처님의 존체를 새 천과 새 솜으로 500번 감싼다고 하였는데 500번이라 함은 발부터 머리 끝까지 감는 수를 말할 수도 있고 단지 많이 감는다는 뜻일 수도 있겠다.  경전에 500이란 숫자는 자주 나오는 바 그게 꽉 들어맞는 정수이겠는가?

논점-3: “세존이시여, 저희들은 어떻게 여인을 대처해야 합니까?  아난다의 나이도 많았을텐데 이러한 질문을 하는 이유는?”
가) 우선 부처님 열반 즈음에 법에 관한 질문보다 이런 종류의 질문을 한 것은 가히 충격적이다.  달리 생각하면 그만큼 사실에 입각한 현실적 문제를 다룬 것이 불교의 위대함이라고도 할 수 있다.  아난다는 초기불교의 비구니 교단 형성에 결정적 역할을 한 장본인으로 어쩌면 부처님이 안계실 때 생길 수 있는 문제에 대해 부처님의 권위로 다시 한 번 쐐기를 박고자 했는지 모른다.
나) 달리 부처님 입멸하실 때에 이미 비구들의 파계가 발생했을 수도 있었겠다.  중생에 있어 성적욕망은 근본욕구로 부처님 생전에 확인을 받아낸 것이 아닌가 싶다.
* 참고로 다문제일(多聞第一) 아난다는 총명하고 기억력이 비상했을 뿐 아니라 용모가 당시 인도 최고의 아이돌 급이었다 한다.  수많은 여인들이 아난다를 흠모하였고 그를 따라 출가한 여성도 많았다 함 (예, 마등가의 유혹).  25년간 부처님을 시봉한 아난다는 120세에 입적하였다고..

논점-4: “탑을 조성하는 문화가 인도에서 부처님 이전에도 있었나?” 
상기 논점-1에서 기 거론됨.

논점-5: “여래의 존체(sarire), 여래의 몸(tathagatassa sarire)이라며 아직 화장을 하지 않은 몸을 사리라고 표현한다. 태운 몸도 사리라고 하는데 어떻게 구분할까?”
가) 초기경전에서는 부처님의 시신(존체, 유체)를 사리라고 하였는데 화장한 후의 유골도 sarire로 불렸고 우리가 ‘사리’라고 하는 구슬 모양의 결정체는 아주 시간이 흐른 후 형성된 과장된 인식이다.

기타 
가) 인도 성지순례가 너무 불성실하고 여법하지 않게 진행되고 있다. 불자의 성지순례라면 최소한 각 성지에 맞는 불경을 봉송하고, 법문하며 간절하게 의미를 새기는 순례가 되어야 하는데 (부처님 유훈처럼) 한국 불자들은 그저 관광객처럼 돌아다니고만 있다.
나) 경전을 읽을 때엔 생각(사유)하면서 읽도록 하자.
다) 9월 2일 백장암 회향모임에 대한 이야기 (실상사 참배) 등. 끝

 

 

 

 

 

 

 

 

 

 

 

 

8월10일 목요일 오후 9시 15분에 대반열반경(D16)  <온라인불자회> 공부모임을 시작합니다.

다 같이 합장하고 큰 소리로 합창합니다.

 

나모 따사 바가와또 아라하또 삼마 삼붓다사(Namo tassa bhagavato arahato sammāsambuddhassa)
나모 따사 바가와또 아라하또 삼마 삼붓다사(Namo tassa bhagavato arahato sammāsambuddhassa)
나모 따사 바가와또 아라하또 삼마 삼붓다사(Namo tassa bhagavato arahato sammāsambuddhassa)

 

붓당 사라남 가차미 (Buddham Saranam Gacchami)  부처님께 귀의합니다.(3번)

담망 사라남 가차미 (Dhammam Saranam Gacchami) 가르침에 귀의합니다.()

상강 사라남 가차미 (Sangham Saranam Gacchami)  승가에 귀의합니다.()

 

 

 

아난다가 가진 경이로운 자질

31. Ānanda­  accha­riya­dhamma

 

 

5.13. 그러자 아난다 존자는 방으로 들어가서 문틀에 기대어 나는 아직 유학(有学)이라서 더 닦아야 할 것이 있다. 그러나 나를 연민해 주시는 스승께서는 이제 반열반을 하실 것이다.”라고 울면서 서있었다.

그때 세존께서는 비구들을 불러서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지금 아난다는 어디에 있는가?”“kahaṃ nu kho, bhikkhave, ānando”ti? 

세존이시여, 아난다 존자는 방으로 들어가서 문틀에 기대어 나는 아직 유학이라서 더 닦아야 할 것이 있다. 그러나 나를 연민해 주시는 스승께서는 이제 반열반을 하실 것이다.’라고 울면서 서있습니다.”

그러자 세존께서는 어떤 비구를 불러서 말씀하셨다.

오라, 비구여. 그대는 나의 이름으로 아난다를 불러오라. ‘도반 아난다여, 스승께서 그대를 부르십니다.’라고.”

그렇게 하겠습니다, 세존이시여.”라고 그 비구는 세존께 대답한 뒤 아난다 존자에게 다가갔다. 가서는 아난다 존자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도반 아난다여, 스승께서 그대를 부르십니다.”

알겠습니다, 도반이여.”라고 아난다 존자는 그 비구에게 대답한 뒤 세존께 다가갔다. 가서는 세존께 절을 올리고 한 곁에 앉았다.

 

5.14. 한 곁에 앉은 아난다 존자에게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만 하여라, 아난다여. 슬퍼하지 말라. 탄식하지 말라. 아난다여, 참으로 내가 전에 사랑스럽고 마음에 드는 모든 것과는 헤어지기 마련이고 없어지기 마련이고 달라지기 마련이라고 그처럼 말하지 않았던가. 아난다여, 그러니 여기서 [그대가 슬퍼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Ekamantaṃ nisinnaṃ kho āyasmantaṃ ānandaṃ bhagavā etadavoca: “ alaṃ, ānanda, mā soci mā paridevi, nanu etaṃ, ānanda, mayā paṭikacceva akkhātaṃ: ‘sabbeheva piyehi manāpehi nānābhāvo vinābhāvo aññathābhāvo’; taṃ kutettha, ānanda, labbhā.

 

아난다여, 태어났고 존재했고 형성된 것은 모두 부서지기 마련인 법이거늘 그런 것을 두고 절대로 부서지지 말라.’고 한다면 그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런 경우란 존재하지 않는다. 아난다여, 그대는 오랜 세월 동안 이롭고 행복하고 둘이 아니고 한량이 없는 자애로운 몸의 업과, 이롭고 행복하고 둘이 아니고 한량이 없는 자애로운 말의 업과, 이롭고 행복하고 둘이 아니고 한량이 없는 자애로운 마음의 업으로 여래를 시봉하였다. 아난다여, 그대는 참으로 공덕을 지었다. 정진에 몰두하여라. 그대는 곧 번뇌 다한 [아라한이] 될 것이다.”

 Yaṃ taṃ jātaṃ bhūtaṃ saṅkhataṃ palokadhammaṃ, ‘taṃ vata tathāgatassāpi sarīraṃ mā palujjī’ti netaṃ ṭhānaṃ vijjati. Dīgharattaṃ kho te, ānanda, tathāgato paccupaṭṭhito mettena kāyakammena hitena sukhena advayena appamāṇena, mettena vacīkammena hitena sukhena advayena appamāṇena, mettena manokammena hitena sukhena advayena appamāṇena. Katapuññosi tvaṃ, ānanda, padhā­na­manu­yuñja, khippaṃ hohisi anāsavo”ti.

 

 

 

5.15. 그리고 나서 세존께서는 비구들을 불러서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과거세의 아라한ㆍ정등각들인 그분 세존들에게는 각각 최고의 시자들이 있었나니 예를 들면 나에게 아난다가 있는 것과 같다. 비구들이여, 미래세의 아라한ㆍ정등각들인 그분 세존들에게도 각각 최고의 시자들이 있을 것이니 예를 들면 나에게 아난다가 있는 것과 같다.

비구들이여, 아난다는 현자이다. 비구들이여, 아난다는 지혜롭다. 그는 지금은 비구들이 여래를 친견하러 가기에 적당한 시간이다. 지금은 비구니들이  청신사들이  청신녀들이  왕들이  왕의 대신들이  외도들이  외도의 제자들이 여래를 친견하러 가기에 적당한 시간이다.’라고 잘 안다.”

 

5.16. “비구들이여, 아난다에게는 네 가지 놀랍고 경이로운 법이 있다. 무엇이 넷인가?

Cattārome, bhikkhave, acchariyā abbhutā dhammā ānande. Katame cattāro? Sace, bhikkhave,

 

 

비구들이여, 만일 비구의 무리(bhikkhuparisā)가 아난다를 보기 위해서 다가가면 보는 것만으로 그들은 마음이 흡족해진다. 만일 거기서 아난다가 법을 설하면 설하는 것만으로도 그들의 마음은 흡족해진다. 만일 아난다가 침묵하고 있으면 비구의 무리는 흡족해 하지 않는다.bhikkhuparisā ānandaṃ dassanāya upasaṅkamati, dassanena sā attamanā hoti. Tatra ce ānando dhammaṃ bhāsati, bhāsitenapi sā attamanā hoti. Atittāva, bhikkhave, bhikkhuparisā hoti, atha kho ānando tuṇhī hoti.

 

 

비구들이여, 만일 비구니의 무리(bhik­khu­nī­parisā)가 아난다를 보기 위해서 다가가면 보는 것만으로 그들은 마음이 흡족해진다. 만일 거기서 아난다가 법을 설하면 설하는 것만으로도 그들의 마음은 흡족해진다. 만일 아난다가 침묵하고 있으면 비구니의 무리는 흡족해 하지 않는다.  Sace, bhikkhave, ­bhik­khu­nī­parisā ānandaṃ dassanāya upasaṅkamati, dassanena sā attamanā hoti. Tatra ce ānando dhammaṃ bhāsati, bhāsitenapi sā attamanā hoti. Atittāva, bhikkhave, ­bhik­khu­nī­parisā hoti, atha kho ānando tuṇhī hoti. 

 

비구들이여, 만일 청신사의 무리(upāsakaparisā)가 아난다를 보기 위해서 다가가면 보는 것만으로 그들은 마음이 흡족해진다. 만일 거기서 아난다가 법을 설하면 설하는 것만으로도 그들의 마음은 흡족해진다. 만일 아난다가 침묵하고 있으면 청신사의 무리는 흡족해 하지 않는다.Sace, bhikkhave, upāsakaparisā ānandaṃ dassanāya upasaṅkamati, dassanena sā attamanā hoti. Tatra ce ānando dhammaṃ bhāsati, bhāsitenapi sā attamanā hoti. Atittāva, bhikkhave, upāsakaparisā hoti, atha kho ānando tuṇhī hoti. 

 

 

비구들이여, 만일 청신녀의 무리(upāsikāparisā)가 아난다를 보기 위해서 다가가면 보는 것만으로 그들은 마음이 흡족해진다. 만일 거기서 아난다가 법을 설하면 설하는 것만으로도 그들의 마음은 흡족해진다. 만일 아난다가 침묵하고 있으면 청신녀의 무리는 흡족해 하지 않는다. Sace, bhikkhave, upāsikāparisā ānandaṃ dassanāya upasaṅkamati, dassanena sā attamanā hoti. Tatra ce ānando dhammaṃ bhāsati, bhāsitenapi sā attamanā hoti. Atittāva, bhikkhave, upāsikāparisā hoti, atha kho ānando tuṇhī hoti. 

 

비구들이여, 아난다에게는 이런 네 가지 놀랍고 경이로운 법이 있다.

Ime kho, bhikkhave, cattāro acchariyā abbhutā dhammā ānande.

 

비구들이여, 전륜성왕에게는 네 가지 놀랍고 경이로운 법이 있다. 무엇이 넷인가?

Cattārome, bhikkhave, acchariyā abbhutā dhammā raññe cakkavattimhi. Katame cattāro? 

 

비구들이여, 만일 끄샤뜨리야의 무리가 전륜성왕을 보기 위해서 다가가면 보는 것만으로 그들은 마음이 흡족해진다. 만일 거기서 전륜성왕이 말을 하면 말하는 것만으로도 그들의 마음은 흡족해진다. 만일 전륜성왕이 침묵하고 있으면 끄샤뜨리야의 무리는 흡족해 하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만일 바라문의 무리가  장자의 무리가  사문의 무리가 전륜성왕을 보기 위해서 다가가면 보는 것만으로 그들은 마음이 흡족해진다. 만일 거기서 전륜성왕이 말을 하면 말하는 것만으로도 그들의 마음은 흡족해진다. 만일 전륜성왕이 침묵하고 있으면 사문의 무리는 흡족해 하지 않는다.

Sace, bhikkhave, khattiyaparisā rājānaṃ cakkavattiṃ dassanāya upasaṅkamati, dassanena sā attamanā hoti. Tatra ce rājā cakkavattī bhāsati, bhāsitenapi sā attamanā hoti. Atittāva, bhikkhave, khattiyaparisā hoti. Atha kho rājā cakkavattī tuṇhī hoti. Sace bhikkhave, brāhmaṇaparisā … pe … gahapatiparisā … pe … samaṇaparisā rājānaṃ cakkavattiṃ dassanāya upasaṅkamati, dassanena sā attamanā hoti. Tatra ce rājā cakkavattī bhāsati, bhāsitenapi sā attamanā hoti. Atittāva, bhikkhave, samaṇaparisā hoti. Atha kho rājā cakkavattī tuṇhī hoti. Evameva kho, bhikkhave, cattārome acchariyā abbhutā dhammā ānande. 

 

그와 마찬가지로 비구들이여, 아난다에게는 네 가지 놀랍고 경이로운 법이 있다. 비구들이여, 만일 비구의 무리가  비구니의 무리가  청신사의 무리가  청신녀의 무리가 아난다를 보기 위해서 다가가면 보는 것만으로 그들은 마음이 흡족해진다. 만일 거기서 아난다가 법을 설하면 설하는 것만으로도 그들의 마음은 흡족해진다. 만일 아난다가 침묵하고 있으면 청신녀의 무리는 흡족해 하지 않는다.”

 

 

마하수닷사나 왕에 대한 말씀 32. Mahā­sudas­sa­na­sut­tadesanā

 

5.17. 이렇게 말씀하시자 아난다 존자는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이처럼 조그마하고 척박하고 볼품없는 도시에서 반열반하지 마시옵소서. 세존이시여, 짬빠, 라자가하, 사왓티, 사께따, 꼬삼비, 와라나시 같은 다른 큰 도시들이 있습니다. 거기에는 세존께 청정한 믿음을 가진 많은 끄샤뜨리야 부호들과 바라문 부호들과 장자 부호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여래의 존체를 잘 수습할 것입니다.”

아난다여, 그렇게 말하지 말라. 아난다여, [꾸시나라를] 조그마하고 척박하고 볼품없는 도시라고 그렇게 말하지 말라.”

 

5.18. “아난다여, 옛적에 마하수닷사나라는 전륜성왕이 있었나니 그는 정의로운 분이요 법다운 왕이었으며 사방을 정복한 승리자여서 나라를 안정되게 하고 일곱 가지 보배를 두루 갖추었다. 아난다여, 이 꾸시나라는 마하수닷사나 왕이 [다스리던] 꾸사와띠라는 수도였으니 동쪽부터 서쪽까지는 12요자나의 길이였고 북쪽부터 남쪽까지는 7요자나의 너비였다. 

Bhūtapubbaṃ, ānanda, rājā mahāsudassano nāma ahosi cakkavattī dhammiko dhammarājā cāturanto vijitāvī jana­padat­thāva­riyap­patto satta­ratana­saman­nā­gato. Rañño, ānanda, mahā­sudas­sa­nassa ayaṃ kusinārā kusāvatī nāma rājadhānī ahosi, puratthimena ca pacchimena ca dvāda­sa­yojanāni āyāmena; uttarena ca dakkhiṇena ca sattayojanāni vitthārena.

 

 

아난다여, 수도 꾸사와띠는 부유하고 번창하였으며 인구가 많고 사람들로 붐비며 풍족하였다. 아난다여, 마치 알라까만다라는 신들의 수도가 부유하고 번창하고 인구가 많고 사람들로 붐비며 풍족한 것처럼, 그와 같이 수도 꾸사와띠는 부유하고 번창하였으며 인구가 많고 사람들로 붐비며 풍족하였다. 아난다여, 수도 꾸사와띠에는 열 가지 소리가 끊인 적이 없었나니 즉 코끼리 소리, 말 소리, 마차 소리, 북 소리, 무딩가 북 소리, 류트 소리, 노래 소리, 심벌즈 소리, 벨 소리, 그리고 열 번째로 잡수세요(asnātha). 마시세요(pivatha). 드세요(khādathā).’라는 소리였다.”

 Kusāvatī, ānanda, rājadhānī iddhā ceva ahosi phītā ca bahujanā ca ākiṇṇamanussā ca subhikkhā ca. Seyyathāpi, ānanda, devānaṃ āḷakamandā nāma rājadhānī iddhā ceva hoti phītā ca bahujanā ca ākiṇṇayakkhā ca subhikkhā ca; evameva kho, ānanda, kusāvatī rājadhānī iddhā ceva ahosi phītā ca bahujanā ca ākiṇṇamanussā ca subhikkhā ca. Kusāvatī, ānanda, rājadhānī dasahi saddehi avivittā ahosi divā ceva rattiñca, seyyathidaṃ—hatthisaddena assasaddena rathasaddena bherisaddena mudiṅgasaddena vīṇāsaddena gītasaddena saṅkhasaddena sammasaddena pāṇitā­ḷa­sad­dena ‘asnātha pivatha khādathā’ti dasamena saddena.

 

말라들의 친견

33. Mallā­naṃ­vandanā

 

5.19. “아난다여, 가거라. 그대는 꾸시나라에 들어가서 꾸시나라에 사는 말라들에게 이렇게 일러라. ‘와셋타들이여, 오늘 밤 삼경에 여래의 반열반이 있을 것입니다. 와셋타들이여, 오십시오. 와셋타들이여, 오십시오. ‘우리 마을의 땅에서 여래의 반열반이 있었는데 우리는 마지막 [임종]시간에 여래를 친견하지 못했구나.’라고 나중에 자책하지 마십시오.’라고.”

그렇게 하겠습니다, 세존이시여.”라고 아난다 존자는 세존께 대답한 뒤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발우와 가사를 수하고 도반과 함께 꾸시나라로 들어갔다.

 

5.20. 그 무렵에 꾸시나라에 사는 말라들은 어떤 일 때문에 집회소에 함께 모여 있었다. 그때 아난다 존자는 꾸시나라에 사는 말라들의 집회소로 다가갔다. 가서는 꾸시나라의 말라들에게 이렇게 일렀다. “와셋타들이여, 오늘 밤 삼경에 여래의 반열반이 있을 것입니다. 와셋타들이여, 오십시오. 와셋타들이여, 오십시오. ‘우리 마을의 땅에서 여래께서 반열반하셨는데 우리는 마지막 [임종]시간에 여래를 친견하지 못했구나.’라고 나중에 자책하지 마십시오.”

 

5.21. 아난다 존자의 이런 말을 듣고서 말라들과 말라의 아들들과 말라의 며느리들과 말라의 아내들은 괴롭고 슬프고 정신적인 공황상태에 빠져 어떤 자들은 머리칼을 뜯으면서 울부짖고 손을 마구 흔들면서 울부짖고 다리가 잘린 듯이 넘어지고 이리 뒹굴고 저리 뒹굴면서 세존께서는 너무 빨리 반열반하려 하시는구나. 너무 빨리 선서께서는 반열반하려 하시는구나. 너무 빨리 눈을 가진 분이 세상에서 사라지려 하시는구나.”라고 하였다. 그리고 말라들과 말라의 아들들과 말라의 며느리들과 말라의 아내들은 괴롭고 슬프고 정신적인 공황상태에 빠져 근처에 있는 말라들의 살라 숲으로 아난다 존자에게 다가갔다.

 

5.22. 그리고 아난다 존자에게 이런 생각이 들었다. ‘만일 내가 꾸시나라에 사는 말라들을 한 사람씩 세존께 인사드리게 한다면 꾸시나라에 사는 말라들이 다 인사드리지 못한 채 밤이 새어버릴 것이다. 그러니 나는 꾸시나라에 사는 말라들을 가문별로 서게 하여 세존이시여, 이러한 이름의 말라가 아들들과 아내와 일꾼들과 친구들과 함께 세존의 발에 머리 조아려 인사드립니다.’라고 세존께 인사드리게 해야겠다.’ 그리고 나서 아난다 존자는 꾸시나라에 사는 말라들을 가문별로 서게 하여 세존이시여, 이러한 이름의 말라가 아들들과 아내와 일꾼들과 친구들과 함께 세존의 발에 머리 조아려 인사드립니다.”라고 세존께 인사드리게 했다. 그래서 아난다 존자는 이런 방법으로 초경에 꾸시나라에 사는 말라들이 모두 세존께 인사를 마치게 하였다.

Atha kho āyasmato ānandassa etadahosi: “sace kho ahaṃ kosinārake malle ekamekaṃ bhagavantaṃ vandāpessāmi, avandito bhagavā kosinārakehi mallehi bhavissati, athāyaṃ ratti vibhāyissati. Yannūnāhaṃ kosinārake malle kula­pari­vattaso kula­pari­vattaso ṭhapetvā bhagavantaṃ vandāpeyyaṃ: ‘itthannāmo, bhante, mallo saputto sabhariyo sapariso sāmacco bhagavato pāde sirasā vandatī’”ti. Atha kho āyasmā ānando kosinārake malle kula­pari­vattaso kula­pari­vattaso ṭhapetvā bhagavantaṃ vandāpesi: “itthannāmo, bhante, mallo saputto sabhariyo sapariso sāmacco bhagavato pāde sirasā vandatī”ti. Atha kho āyasmā ānando etena upāyena paṭhameneva yāmena kosinārake malle bhagavantaṃ vandāpesi.

 

 

 

 

 

 

 

논점

 

 

 

1. 동쪽부터 서쪽까지는 12요자나의 길이였고 북쪽부터 남쪽까지는 7요자나의 너비인 꾸사와띠는 얼마나 큰 수도인가?

* yojana nt. approximately twenty kilometres; lit. yoking [√yuj–*e–ana] 

20*12=240km, 20*7=140km

 

 

 

 

2. "아난다여, 그대는 참으로 공덕을 지었다. 정진에 몰두하여라. 그대는 곧 번뇌 다한 [아라한이] 될 것이다.(Katapuññosi tvaṃ, ānanda, padhā­na­manu­yuñja, khippaṃ hohisi anāsavo”ti)" 

이렇게 부처님이 예언하시는 경우는 특별하다. 이렇게 예언한 사례가 또 있었나?

 

 

 

 

3. “와셋타들이여, 오늘 밤 삼경에 여래의 반열반이 있을 것입니다. 와셋타들이여, 오십시오. 와셋타들이여, 오십시오. ‘우리 마을의 땅에서 여래께서 반열반하셨는데 우리는 마지막 [임종]시간에 여래를 친견하지 못했구나.’라고 나중에 자책하지 마십시오.” 불교사에 있어서 부처님처럼 돌아가시기 전에 마을 사람들을 다 불러서 당신을 친견하게 하는 출가자가 또 있었나? 

 

 

 

 

4.부처님은 정말 꾸시나가라에서 반열반에 드시기 위해서 라자가하에서부터 그 먼 길을 걸어오신 것일까? 

 

 

 

 

 

8월 17일 목요일 오후 9시 15분에 대반열반경(D16)  <온라인불자회> 공부모임을 시작합니다.

다 같이 합장하고 큰 소리로 합창합니다.

 

나모 따사 바가와또 아라하또 삼마 삼붓다사(Namo tassa bhagavato arahato sammāsambuddhassa)
나모 따사 바가와또 아라하또 삼마 삼붓다사(Namo tassa bhagavato arahato sammāsambuddhassa)
나모 따사 바가와또 아라하또 삼마 삼붓다사(Namo tassa bhagavato arahato sammāsambuddhassa)

 

붓당 사라남 가차미 (Buddham Saranam Gacchami)  부처님께 귀의합니다.(3번)

담망 사라남 가차미 (Dhammam Saranam Gacchami) 가르침에 귀의합니다.()

상강 사라남 가차미 (Sangham Saranam Gacchami)  승가에 귀의합니다.()

 

 

 

수밧다 유행승의 일화

34. Subhad­da  ­parib­bāja­ka­  vatthu

 

5.23. 그 무렵에 수밧다라는 유행승이 꾸시나라에 살고 있었다. 수밧다 유행승은 오늘 밤 삼경에 사문 고따마의 반열반이 있을 것이다.’라고 들었다. 그러자 수밧다 유행승에게 이런 생각이 들었다. ‘늙고 나이 든, 스승들의 전통을 가진 유행승들이 말하기를 참으로 드물게 여래ㆍ아라한ㆍ정등각은 세상에 태어나신다.’라고 하는 것을 나는 들었다. 그런데 오늘 밤 삼경에 사문 고따마께서는 반열반하신다고 한다. 내게는 법에 대한 의심이 생겼다. 나는 사문 고따마께 청정한 믿음이 있다. 그러므로 사문 고따마께서는 내가 [품은] 법에 대한 의심을 제거할 수 있도록 법을 설해 주실 것이다.’

Tena kho pana samayena subhaddo nāma paribbājako kusinārāyaṃ paṭivasati. Assosi kho subhaddo paribbājako: “ajja kira rattiyā pacchime yāme samaṇassa gotamassa parinibbānaṃ bhavissatī”ti. Atha kho subhaddassa paribbājakassa etadahosi: “sutaṃ kho pana metaṃ paribbājakānaṃ vuḍḍhānaṃ mahallakānaṃ ācari­ya­pācari­yā­naṃ bhāsamānānaṃ: ‘kadāci karahaci tathāgatā loke uppajjanti arahanto sammāsambuddhā’ti. Ajjeva rattiyā pacchime yāme samaṇassa gotamassa parinibbānaṃ bhavissati. Atthi ca me ayaṃ kaṅkhādhammo uppanno, evaṃ pasanno ahaṃ samaṇe gotame, ‘pahoti me samaṇo gotamo tathā dhammaṃ desetuṃ, yathāhaṃ imaṃ kaṅkhādhammaṃ pajaheyyan’”ti.

 

 

5.24. 그러자 수밧다 유행승은 근처에 있는 말라들의 살라 숲으로 아난다 존자에게 다가갔다. 가서는 아난다 존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아난다 존자여, 늙고 나이 든, 스승들의 전통을 가진 유행승들이 말하기를 참으로 드물게 여래ㆍ아라한ㆍ정등각은 세상에 태어나신다.’라고 하는 것을 나는 들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밤 삼경에 사문 고따마께서는 반열반하신다고 합니다. 내게는 법에 대한 의심이 생겼습니다. 나는 사문 고따마께 청정한 믿음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문 고따마께서는 내가 [품은] 법에 대한 의심을 제거할 수 있도록 법을 설해 주실 것입니다. 아난다 존자여, 이런 내가 사문 고따마를 친견하도록 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러자 아난다 존자는 수밧다 유행승에게 이렇게 말했다. “도반 수밧다여, 그만 되었습니다. 여래를 성가시게 하지 마십시오. 세존께서는 피로하십니다.”

두 번째로  세 번째로 수밧다 유행승은 아난다 존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아난다 존자여, 늙고 나이 든, 스승들의 전통을 가진 유행승들이 말하기를 참으로 드물게 여래ㆍ아라한ㆍ정등각은 세상에 태어나신다.’라고 하는 것을 나는 들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밤 삼경에 사문 고따마께서는 반열반하신다고 합니다. 내게는 법에 대한 의심이 생겼습니다. 나는 사문 고따마께 청정한 믿음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문 고따마께서는 내가 [품은] 법에 대한 의심을 제거할 수 있도록 법을 설해 주실 것입니다. 아난다 존자여, 이런 내가 사문 고따마를친견하도록 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세 번째로 아난다 존자는 수밧다 유행승에게 이렇게 말했다. “도반 수밧다여, 그만 되었습니다. 여래를 성가시게 하지 마십시오. 세존께서는 피로하십니다.”

 

5.25. 세존께서는 아난다 존자가 수밧다 유행승과 함께 나눈 대화를 들으셨다. 그러자 세존께서는 아난다 존자를 불러서 말씀하셨다. “아난다여, 그만 하라. 수밧다를 막지 말라. 아난다여, 수밧다가 여래를 친견하게 해주어라. 수밧다가 내게 질문하려 하는 것은 모두 구경의 지혜를 터득하고자 함이지, 나를 성가시게 하고자 함이 아니다. 그가 질문한 것에 대해 내가 설명해 주면 그는 빨리 그것을 알게 될 것이다.” 그러자 아난다 존자는 수밧다 유행승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도반 수밧다여, 들어가십시오. 세존께서 그대에게 기회를 주셨습니다.”

 

5.26. 그러자 수밧다 유행승은 세존께 다가갔다. 가서는 세존과 함께 환담을 나누었다. 유쾌하고 기억할 만한 이야기로 서로 담소를 하고서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수밧다 유행승은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고따마 존자시여, 어떤 사문ㆍ바라문들은 승가를 가졌고 무리를 가졌고 무리의 스승이며 잘 알려졌고 명성을 가졌고 교단의 창시자이며 많은 사람들이 사두라고 인정합니다. 그들은 뿌라나 깟사빠, 막칼리 고살라, 아지따 께사깜발라, 빠꾸다 깟짜야나, 산자야 벨랏티뿟따, 니간타 나따뿟따입니다. 그들은 모두 스스로 자처하듯이 최상의 지혜를 가졌습니까? 아니면 모두 최상의 지혜를 가지지 못했습니까? 아니면 어떤 자들은 최상의 지혜를 가졌고 어떤 자들은 최상의 지혜를 가지지 못했습니까?”

 

 

그만하라, 수밧다여. 그만 멈추어라. 그들 모두가 스스로 자처하듯이 최상의 지혜를 가졌건, 모두가 최상의 지혜를 가지지 못했건, 어떤 자들은 최상의 지혜를 가졌고 어떤 자들은 최상의 지혜를 가지지 못했건 간에, 나는 그대에게 법을 설하리라. 이것을 잘 들어라. 듣고 마음에 잘 새겨라. 이제 나는 설하리라.”

그렇게 하겠습니다, 존자시여.”라고 수밧다 유행승은 세존께 대답했다.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Alaṃ, subhadda, tiṭṭhatetaṃ: ‘sabbete sakāya paṭiññāya abbhaññiṃsu, sabbeva na abbhaññiṃsu, udāhu ekacce abbhaññiṃsu, ekacce na abbhaññiṃsū’ti. Dhammaṃ te, subhadda, desessāmi; taṃ suṇāhi sādhukaṃ manasikarohi, bhāsissāmī”ti. “Evaṃ, bhante”ti kho subhaddo paribbājako bhagavato paccassosi. Bhagavā etadavoca:

 

 

 

5.27. “수밧다여, 어떤 법과 율에서든 여덟 가지 성스러운 도[八支聖道]가 없으면 거기에는 사문도 없다. 거기에는 두 번째 사문도 없다. 거기에는 세 번째 사문도 없다. 거기에는 네 번째 사문도 없다. 수밧다여, 그러나 어떤 법과 율에서든 여덟 가지 성스러운 도[八支聖道]가 있으면 거기에는 사문도 있다. 거기에는 두 번째 사문도 있다. 거기에는 세 번째 사문도 있다. 거기에는 네 번째 사문도 있다.“Yasmiṃ kho, subhadda, dhammavinaye ariyo aṭṭhaṅgiko maggo na upalabbhati, samaṇopi tattha na upalabbhati. Dutiyopi tattha samaṇo na upalabbhati. Tatiyopi tattha samaṇo na upalabbhati. Catutthopi tattha samaṇo na upalabbhati. 

 

 

수밧다여, 이 법과 율에는 여덟 가지 성스러운 도가 있다. 수밧다여, 그러므로 오직 여기에만 사문이 있다. 여기에만 두 번째 사문이 있다. 여기에만 세 번째 사문이 있다. 여기에만 네 번째 사문이 있다. 다른 교설들에는 사문들이 텅 비어 있다. 수밧다여, 이 비구들이 바르게 머문다면 세상에는 아라한들이 텅 비지 않을 것이다.

 

수밧다여, 29세가 되어 나는

무엇이 유익함인지를 구하여 출가하였노라.

수밧다여, 이제 51년 동안

출가 생활을 하면서 바른 방법과 법을 위해서

[여러] 지방에 머물렀나니

이밖에는 사문이 없다.

Ekūnatiṃso vayasā subhadda,
Yaṃ pabbajiṃ kiṅkusalānuesī;
Vassāni paññāsa samādhikāni,
Yato ahaṃ pabbajito subhadda;
Ñāyassa dhammassa padesavattī,
Ito bahiddhā samaṇopi natthi.

 

 

두 번째 사문도 없다. 세 번째 사문도 없다. 네 번째 사문도 없다. 다른 교설들에는 사문들이 텅 비어 있다. 수밧다여, 이 비구들이 바르게 머문다면 세상에는 아라한들이 텅 비지 않을 것이다.”Ime ca, subhadda, bhikkhū sammā vihareyyuṁ, asuñño loko arahantehi assā”ti.

 

5.28. 이렇게 말씀하시자 수밧다 유행승은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경이롭습니다, 세존이시여. 경이롭습니다, 세존이시여. 마치 넘어진 자를 일으켜 세우시듯, 덮여있는 것을 걷어내 보이시듯, [방향을] 잃어버린 자에게 길을 가리켜 주시듯, ‘눈 있는 자 형상을 보라.’고 어둠 속에서 등불을 비춰 주시듯, 세존께서는 여러 가지 방편으로 법을 설해주셨습니다. 저는 이제 세존께 귀의하옵고, 법과 비구 승가에 또한 귀의합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세존의 곁에 출가하고자 합니다. 저는 구족계를 받고자 합니다.”

수밧다여, 전에 외도였던 자가 이 법과 율에서 출가하기를 원하고 구족계 받기를 원하면 그는 넉 달의 견습기간을 거쳐야 한다. 넉 달이 지나고 비구들이 동의하면 출가하게 하여 비구가 되는 구족계를 받게 한다. 물론 여기에 개인마다 차이가 있음을 나는 인정한다.”

 

5.29. “세존이시여, 만일 전에 외도였던 자가 이 법과 율에서 출가하기를 원하고 구족계 받기를 원하면 그는 넉 달의 견습기간을 거쳐야 하고, 넉 달이 지나고 비구들이 동의하면 출가하게 하여 비구가 되는 구족계를 받게 하신다면, 저는 4년의 견습기간을 거치겠습니다. 4년이 지나고 비구들이 동의하면 출가하게 하시어 비구가 되는 구족계를 받게 해 주소서.”

그러자 세존께서는 아난다를 불러서 말씀하셨다.

아난다여, 참으로 저러하니 수밧다 유행승을 출가하게 하여라.”

그렇게 하겠습니다, 세존이시여.”라고 아난다 존자는 세존께 대답하였다.

Atha kho bhagavā āyasmantaṃ ānandaṃ āmantesi: “tenahānanda, subhaddaṃ pabbājehī”ti. “Evaṃ, bhante”ti kho āyasmā ānando bhagavato paccassosi. 

 

 

5.30. 그러자 수밧다 유행승은 아난다 존자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도반 아난다여, 그대들은 스승의 면전에서 그분의 제자로 수계를 받았으니 그대들은 참으로 이익을 얻었습니다. 그대들은 참으로 큰 이익을 얻었습니다.”

수밧다 유행승은 세존의 곁으로 출가하였고 구족계를 받았다.

Atha kho subhaddo paribbājako āyasmantaṃ ānandaṃ etadavoca: “lābhā vo, āvuso ānanda; suladdhaṃ vo, āvuso ānanda, ye ettha satthu sammukhā antevā­si­kā­bhi­sekena abhisittā”ti. Alattha kho subhaddo paribbājako bhagavato santike pabbajjaṃ, alattha upasampadaṃ.

 

 

구족계를 받은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수밧다 존자는 혼자 은둔하여 방일하지 않고 열심히, 스스로 독려하며 지냈다. 그는 오래지 않아 좋은 가문의 아들들이 집에서 나와 출가하여 성취하고자 하는 그 위없는 청정범행의 완성을 지금여기에서 스스로 최상의 지혜로 실현하고 구족하여 머물렀다.

 Acirū­pasam­panno kho panāyasmā subhaddo eko vūpakaṭṭho appamatto ātāpī pahitatto viharanto nacirasseva—yassatthāya kulaputtā sammadeva agārasmā anagāriyaṃ pabbajanti—tadanuttaraṃ brahma­cari­ya­pari­yosānaṃ diṭṭheva dhamme sayaṃ abhiññā sacchikatvā upasampajja vihāsi.

 

 

 

태어남은 다했다. 청정범행은 성취되었다. 할 일을 다 해 마쳤다. 다시는 어떤 존재로도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라고 최상의 지혜로 알았다. 수밧다 존자는 아라한들 중의 한 분이 되었다. 그는 세존의 마지막 직계제자였다.

 “Khīṇā jāti, vusitaṃ brahmacariyaṃ, kataṃ karaṇīyaṃ, nāparaṃ itthattāyā”ti abbhaññāsi. Aññataro kho panāyasmā subhaddo arahataṃ ahosi. So bhagavato pacchimo sakkhisāvako ahosīti.

 

여래의 마지막 유훈 35. Tathā­gata­pacchi­ma­vācā

 

6.1. 그때 세존께서는 아난다 존자를 불러서 말씀하셨다. “아난다여, 그런데 아마 그대들에게 스승의 가르침은 이제 끝나 버렸다. 이제 스승은 계시지 않는다.’라는 이런 생각이 들지도 모른다. 아난다여, 그러나 그렇게 봐서는 안 된다. 아난다여, 내가 가고난 후에는 내가 그대들에게 가르치고 천명한 법과 율이 그대들의 스승이 될 것이다.”이렇게 봐야한다. 

atha kho bhagavā āyasmantaṃ ānandaṃ āmantesi  “siyā kho panānanda, tumhākaṃ evamassa  ‘atītasatthukaṃ pāvacanaṃ, natthi no satthā’ti. na kho panetaṃ, ānanda, evaṃ daṭṭhabbaṃ. yo vo, ānanda, mayā dhammo ca vinayo ca desito paññatto, so vo mamaccayena satthā.

 

 

6.2. “아난다여, 그리고 지금 비구들은 서로를 모두 도반(āvuso)이라는 말로 부르고 있다. 그러나 내가 가고난 후에는 그대들은 이렇게 불러서는 안 된다. 아난다여, 구참(久参) 비구는 신참 비구를 이름이나 성이나 도반이라는 말로 불러야 한다. 신참 비구는 구참 비구를 존자(bhante)라거나 장로(āyasmā)라고 불러야 한다.”

Yathā kho panānanda, etarahi bhikkhū aññamaññaṃ āvusovādena samudācaranti, na kho mamaccayena evaṃ samudā­cari­tab­baṃ. Theratarena, ānanda, bhikkhunā navakataro bhikkhu nāmena vā gottena vā āvusovādena vā samudā­cari­tabbo.Navakatarena bhikkhunā therataro bhikkhu ‘bhante’ti vā ‘āyasmā’ti vā samudā­cari­tabbo.

 

 

6.3. “아난다여, 승가가 원한다면 내가 가고난 후에는 사소한[雑砕] 학습계목들은 폐지해도 좋다.”

Ākaṅkhamāno, ānanda, saṃgho mamaccayena khuddā­nu­khudda­kāni sikkhāpadāni samūhanatu.

 

 

6.4. “아난다여, 내가 가고난 후에 찬나 비구에게는 최고의 처벌을 주어야 한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어떤 것이 최고의 처벌입니까?”

아난다여, 찬나 비구가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말하더라도 비구들은 결코 그에게 말을 해서도 안 되고, 훈계를 해서도 안 되고, 가르쳐서도 안 된다.”

 Channassa, ānanda, bhikkhuno mamaccayena brahmadaṇḍo dātabbo”ti. “Katamo pana, bhante, brahmadaṇḍo”ti? “Channo, ānanda, bhikkhu yaṃ iccheyya, taṃ vadeyya. So bhikkhūhi neva vattabbo, na ovaditabbo, na anusāsitabbo”ti.

 

 

 

6.5. 그리고 나서 세존께서는 비구들을 불러서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어느 한 비구라도 부처나 법이나 승가나 도나 도닦음에 대해서 의심이 있거나 혼란이 있으면 지금 물어라. 비구들이여, 그대들은 우리의 스승은 면전에 계셨다. 그러나 우리는 세존의 면전에서 제대로 여쭈어 보지 못했다.’라고 나중에 자책하는 자가 되지 말라.” 이렇게 말씀하셨지만 비구들은 침묵하고 있었다.Atha kho bhagavā bhikkhū āmantesi: “siyā kho pana, bhikkhave, eka­bhik­khus­sāpi kaṅkhā vā vimati vā buddhe vā dhamme vā saṅghe vā magge vā paṭipadāya vā, pucchatha, bhikkhave, mā pacchā vippaṭisārino ahuvattha: ‘sammukhībhūto no satthā ahosi, na mayaṃ sakkhimhā bhagavantaṃ sammukhā paṭipucchitun’”ti. Evaṃ vutte, te bhikkhū tuṇhī ahesuṃ.

 

 

두 번째로  세 번째로 세존께서는 비구들을 불러서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어느 한 비구라도 부처나 법이나 승가나 도나 도닦음에 대해서 의심이 있거나 혼란이 있으면 지금 물어라. 비구들이여, 그대들은 우리의 스승은 면전에 계셨다. 그러나 우리는 세존의 면전에서 제대로 여쭈어 보지 못했다.’라고 나중에 자책하는 자가 되지 말라.” 이렇게 말씀하셨지만 비구들은 [여전히] 침묵하고 있었다.

 

6.6. 그러자 아난다 존자가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참으로 경이롭습니다. 세존이시여, 참으로 놀랍습니다. 세존이시여, 이 비구 승가에는 부처님이나 법이나 승가나 도나 도닦음에 대해서 의심이 있거나 혼란이 있는 비구는 단 한 명도 없다고 제게는 청정한 믿음이 있습니다.”

아난다여, 그대는 청정한 믿음으로 말을 하는구나. 아난다여, 참으로 여기에 대해서 여래에게는 이 비구 승가에는 부처님이나 법이나 승가나 도나 도닦음에 대해서 의심이 있거나 혼란이 있는 비구는 단 한 명도 없다.’는 지혜가 있느니라. 아난다여, 이들 500명의 비구들 가운데 최하인 비구가 예류자이니 그는 [악취에] 떨어지지 않는 법을 가지고 [해탈이] 확실하며 정등각으로 나아가는 자이다.”

 

6.7. 그리고 나서 세존께서는 비구들을 불러서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참으로 이제 그대들에게 당부하노니, 형성된 것들은 소멸하기 마련인 법이다. 방일하지 말고 [해야 할 바를 모두] 성취하라!”

이것이 여래의 마지막 유훈이다.

atha kho bhagavā bhikkhū āmantesi  “handa dāni, bhikkhave, āmantayāmi vo, vayadhammā saṅkhārā appamādena sampādethā”ti. ayaṃ tathāgatassa pacchimā vācā.

 

 

 

논점

 

 

 

1.소위 육사외도(뿌라나 깟사빠, 막칼리 고살라, 아지따 께사깜발라, 빠꾸다 깟짜야나, 산자야 벨랏티뿟따, 니간타 나따뿟따)라고 하는 분들과 부처님은 살아생전에 왜 만나지 못했나?

 

 

2.부처님의 출가생활이 50년인가 51년인가? 

我年二十九,出家求善道,須跋我成佛,今已五十年。 When I was 29, I became homeless to search for the way of goodness; Subhadda, then I became the Buddha, until today it has been 50 years. *paññāsā card. fifty (50) [pañca–dasa–ā]

 

 

 

3. “수밧다여, 어떤 법과 율에서든 여덟 가지 성스러운 도[八支聖道]가 없으면 거기에는 사문도 없다. 거기에는 두 번째 사문도 없다. 거기에는 세 번째 사문도 없다. 거기에는 네 번째 사문도 없다." 이말의 의미는 ?

 

 

 

4. "아난다여, 내가 가고난 후에는 내가 그대들에게 가르치고 천명한 법(dhammo)과 율(vinayo)이 그대들의 스승이 될 것이다.”

어떻게 법과 율에 의지하는가?

 

 

 

5. “비구들이여, 어느 한 비구라도 부처나 법이나 승가나 도나 도닦음에 대해서 의심이 있거나 혼란이 있으면 지금 물어라." 이 문장의 의미를 이해해보자.

 

 

 

 

 

 

5.청신사의 무리(upāsaka-parisā), 청신녀의 무리(upāsikāparisā)처럼 비구,비구니의 모임에 상가(sangha)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고 빠리사(parisā)라는 단어를 붙이는 것이 눈에 띕니다. 비구의 무리(bhikkhu parisā)와 비구의 상가(bhikkhu sangha)는 의미가 다르기에 용어를 달리 사용한 것으로 보입니다. 또한 상가(sangha)는 출가자의 모임에만 사용하고 빠리사(parisā)는 어떤 모임이든 사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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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6. “비구들이여, 아난다에게는 네 가지 놀랍고 경이로운 법이 있다. 무엇이 넷인가?

 

비구들이여, 만일 비구의 무리(bhikkhu parisā)가 아난다를 보기 위해서 다가가면 보는 것만으로 그들은 마음이 흡족해진다. 만일 거기서 아난다가 법을 설하면 설하는 것만으로도 그들의 마음은 흡족해진다. 만일 아난다가 침묵하고 있으면 비구의 무리는 흡족해 하지 않는다.bhikkhuparisā ānandaṃ dassanāya upasaṅkamati, dassanena sā attamanā hoti. Tatra ce ānando dhammaṃ bhāsati, bhāsitenapi sā attamanā hoti. Atittāva, bhikkhave, bhikkhuparisā hoti, atha kho ānando tuṇhī hoti.

 

 

비구들이여, 만일 비구니의 무리(bhikkhunī­parisā)가 아난다를 보기 위해서 다가가면 보는 것만으로 그들은 마음이 흡족해진다. 만일 거기서 아난다가 법을 설하면 설하는 것만으로도 그들의 마음은 흡족해진다. 만일 아난다가 침묵하고 있으면 비구니의 무리는 흡족해 하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만일 청신사의 무리(upāsakaparisā)가 아난다를 보기 위해서 다가가면 보는 것만으로 그들은 마음이 흡족해진다. 만일 거기서 아난다가 법을 설하면 설하는 것만으로도 그들의 마음은 흡족해진다. 만일 아난다가 침묵하고 있으면 청신사의 무리는 흡족해 하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만일 청신녀의 무리(upāsikāparisā)가 아난다를 보기 위해서 다가가면 보는 것만으로 그들은 마음이 흡족해진다. 만일 거기서 아난다가 법을 설하면 설하는 것만으로도 그들의 마음은 흡족해진다. 만일 아난다가 침묵하고 있으면 청신녀의 무리는 흡족해 하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아난다에게는 이런 네 가지 놀랍고 경이로운 법이 있다.

 

 

 

 

8월 24일 목요일 오후 9시 15분에 마지막 대반열반경(D16)  <온라인불자회> 공부모임을 시작합니다.

다 같이 합장하고 큰 소리로 합창합니다.

 

나모 따사 바가와또 아라하또 삼마 삼붓다사(Namo tassa bhagavato arahato sammāsambuddhassa)
나모 따사 바가와또 아라하또 삼마 삼붓다사(Namo tassa bhagavato arahato sammāsambuddhassa)
나모 따사 바가와또 아라하또 삼마 삼붓다사(Namo tassa bhagavato arahato sammāsambuddhassa)

 

붓당 사라남 가차미 (Buddham Saranam Gacchami)  부처님께 귀의합니다.(3번)

담망 사라남 가차미 (Dhammam Saranam Gacchami) 가르침에 귀의합니다.()

상강 사라남 가차미 (Sangham Saranam Gacchami)  승가에 귀의합니다.()

 

 

 

 

여래의 반열반 36. Pari­nibbuta­kathā

 

6.8. 그러자 세존께서는 초선에 드셨다. 초선에서 출정하신 뒤 제2선에 드셨다. 2선에서 출정하신 뒤 제3선에 드셨다. 3선에서 출정하신 뒤 제4선에 드셨다. 4선에서 출정하신 뒤 공무변처에 드셨다. 공무변처의 증득에서 출정하신 뒤 식무변처에 드셨다. 식무변처의 증득에서 출정하신 뒤 무소유처에 드셨다. 무소유처의 증득에서 출정하신 뒤 비상비비상처에 드셨다. 비상비비상처의 증득에서 출정하신 뒤 상수멸에 드셨다.

그러자 아난다 존자는 아누룻다 존자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아누룻다 존자시여, 세존께서는 반열반하셨습니다.”

도반 아난다여, 세존께서는 반열반하시지 않았습니다. 상수멸에 드신 것입니다.”

Atha kho bhagavā paṭhamaṃ jhānaṃ samāpajji, paṭhamajjhānā vuṭṭhahitvā dutiyaṃ jhānaṃ samāpajji, dutiyajjhānā vuṭṭhahitvā tatiyaṃ jhānaṃ samāpajji, tatiyajjhānā vuṭṭhahitvā catutthaṃ jhānaṃ samāpajji, catutthajjhānā vuṭṭhahitvā ākāsānañ­cāyata­naṃ samāpajji, ākāsānañ­cāyata­na­samā­pattiyā vuṭṭhahitvā viñ­ñā­ṇañ­cāyata­naṃ samāpajji, viñ­ñā­ṇañ­cāyata­na­samā­pattiyā vuṭṭhahitvā ākiñ­cañ­ñā­yatanaṃ samāpajji, ākiñ­cañ­ñā­yatana­samā­pattiyā vuṭṭhahitvā neva­saññā­nā­sañ­ñāyata­naṃ samāpajji, neva­saññā­nā­saññāya­tana­samā­pattiyā vuṭṭhahitvā saññā­ve­dayi­ta­nirodhaṃ samāpajji.

Atha kho āyasmā ānando āyasmantaṃ anuruddhaṃ etadavoca: “parinibbuto, bhante anuruddha, bhagavā”ti. “Nāvuso ānanda, bhagavā parinibbuto, saññā­ve­dayi­ta­nirodhaṃ samāpanno”ti.

 

 

6.9. 그러자 세존께서는 상수멸의 증득에서 출정하신 뒤 비상비비상처에 드셨다. 비상비비상처의 증득에서 출정하신 뒤 무소유처에 드셨다. 무소유처의 증득에서 출정하신 뒤 식무변처에 드셨다. 식무변처의 증득에서 출정하신 뒤 공무변처에 드셨다. 공무변처의 증득에서 출정하신 뒤 제4선에 드셨다. 4선에서 출정하신 뒤 제3선에 드셨다. 3선에서 출정하신 뒤 제2선에 드셨다. 2선에서 출정하신 뒤 초선에 드셨다. 초선에서 출정하신 뒤 제2선에 드셨다. 2선에서 출정하신 뒤 제3선에 드셨다. 3선에서 출정하신 뒤 제4선에 드셨다. 4선에서 출정하신 뒤 바로 다음에 세존께서는 반열반하셨다.

Atha kho bhagavā saññā­ve­dayi­ta­nirodha­samā­pattiyā vuṭṭhahitvā neva­saññā­nā­sañ­ñāyata­naṃ samāpajji, neva­saññā­nā­saññāya­tana­samā­pattiyā vuṭṭhahitvā ākiñ­cañ­ñā­yatanaṃ samāpajji, ākiñ­cañ­ñā­yatana­samā­pattiyā vuṭṭhahitvā viñ­ñā­ṇañ­cāyata­naṃ samāpajji, viñ­ñā­ṇañ­cāyata­na­samā­pattiyā vuṭṭhahitvā ākāsānañ­cāyata­naṃ samāpajji, ākāsānañ­cāyata­na­samā­pattiyā vuṭṭhahitvā catutthaṃ jhānaṃ samāpajji, catutthajjhānā vuṭṭhahitvā tatiyaṃ jhānaṃ samāpajji, tatiyajjhānā vuṭṭhahitvā dutiyaṃ jhānaṃ samāpajji, dutiyajjhānā vuṭṭhahitvā paṭhamaṃ jhānaṃ samāpajji, paṭhamajjhānā vuṭṭhahitvā dutiyaṃ jhānaṃ samāpajji, dutiyajjhānā vuṭṭhahitvā tatiyaṃ jhānaṃ samāpajji, tatiyajjhānā vuṭṭhahitvā catutthaṃ jhānaṃ samāpajji, catutthajjhānā vuṭṭhahitvā samanantarā bhagavā parinibbāyi.

 

 

6.10. 세존께서 반열반하시자 반열반과 함께 두려움과 공포의 전율을 일으키는 큰 지진이 있었으며 천둥번개가 내리쳤다.

세존께서 반열반하시자 반열반과 함께 사함빠띠 범천은 이런 게송을 읊었다.

Parinibbute bhagavati saha parinibbānā mahābhūmicālo ahosi bhiṃsanako salomahaṃso. Devadundubhiyo ca phaliṃsu. Parinibbute bhagavati saha parinibbānā brahmā­saham­pati imaṃ gāthaṃ abhāsi: 

 

 

세상의 모든 존재들은 필경에는 몸을 내려놓는구나.

이 세상 그 누구와도 견줄 수 없는 스승

힘을 갖추셨고 바르게 깨달으신 여래

그분도 이처럼 반열반하시는구나!”

“Sabbeva nikkhipissanti,
bhūtā loke samussayaṃ;
Yattha etādiso satthā,
loke appaṭipuggalo;
Tathāgato balappatto,
sambuddho parinibbuto”ti

 

 

 

 

세존께서 반열반하시자 반열반과 함께 신들의 왕인 삭까(인드라)는 이런 게송을 읊었다.

 

형성된 것들은 참으로 무상하여

일어났다가는 사라지는 법

일어났다가는 소멸하나니

이들의 가라앉음이 행복이로다.”

Parinibbute bhagavati saha parinibbānā sakko devānamindo imaṃ gāthaṃ abhāsi:

“Aniccā vata saṅkhārā,
uppā­davaya­dham­mino;
Uppajjitvā nirujjhanti,
tesaṃ vūpasamo sukho”ti.

 

 

세존께서 반열반하시자 반열반과 함께 아누룻다 존자는 이런 게송을 읊었다.

 

들숨날숨이 없으신 분, 확고부동하신 분, 여여하신 분,

욕망을 여의신 분, 성인께서는 고요함으로 가셨네.

흔들림 없는 마음으로 [고통스런] 느낌을 감내하셨으니

등불이 꺼지듯 그렇게 그분의 마음은 해탈하셨네.”

Parinibbute bhagavati saha parinibbānā āyasmā anuruddho imā gāthāyo abhāsi:

“Nāhu assāsapassāso,

ṭhitacittassa tādino;
Anejo santimārabbha,
yaṃ kālamakarī muni.

Asallīnena cittena,
vedanaṃ ajjhavāsayi;
Pajjotasseva nibbānaṃ,
vimokkho cetaso ahū”ti.

 

 

 

세존께서 반열반하시자 반열반과 함께 아난다 존자는 이런 게송을 읊었다.

 

“[최상의 계행 등] 모든 덕을 구족하신

정등각께서 반열반하셨을 때

그때 [생긴 지진은] 무서웠고,

그때 [생긴 지진은] 모골이 송연했네.”

Parinibbute bhagavati saha parinibbānā āyasmā ānando imaṃ gāthaṃ abhāsi:

“Tadāsi yaṃ bhiṃsanakaṃ,
tadāsi lomahaṃsanaṃ;
Sab­bākāra­varū­pete,
sambuddhe parinibbute”ti.

 

 

세존께서 반열반하시자 반열반과 함께 애정을 버리지 못한 비구들은 손을 마구 흔들면서 울부짖고 다리가 잘린 듯이 넘어지고 이리 뒹굴고 저리 뒹굴면서, “세존께서는 너무 빨리 반열반하시는구나. 너무 빨리 선서께서는 반열반하시는구나. 너무 빨리 눈을 가진 분이 세상에서 사라지시는구나.”라고 하였다.

그러나 애정을 벗어난 비구들은 마음챙기고 알아차리면서, “형성된 것들은 무상하다. 그러니 여기서 [슬퍼함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라고 하였다.

 

6.11. 그러자 아누룻다 존자는 비구들을 불러서 말하였다.

도반들이여, 이제 그만하십시오. 슬퍼하지 마십시오. 탄식하지 마십시오. 도반들이여, 참으로 세존께서는 전에 사랑스럽고 마음에 드는 모든 것과는 헤어지기 마련이고 없어지기 마련이고 달라지기 마련이라고 그처럼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까? 도반들이여, 그러므로 태어났고 존재했고 형성된 것은 모두 부서지기 마련인 법이거늘 그런 것을 두고 절대로 부서지지 말라.’고 한다면 그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런 경우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도반들이여, 신들이 푸념합니다.”

아누룻다 존자시여, 그러면 아누룻다 존자는 어떠한 신들을 마음에 잡도리합니까?”

도반 아난다여, 허공에서 [땅을 창조하여] 땅의 인식을 가진 신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머리칼을 뜯으면서 울부짖고 손을 마구 흔들면서 울부짖고 다리가 잘린 듯이 넘어지고 이리 뒹굴고 저리 뒹굴면서 세존께서는 너무 빨리 반열반하려 하시는구나. 너무 빨리 선서께서는 반열반하려 하시는구나. 너무 빨리 눈을 가진 분이 세상에서 사라지려 하시는구나.’라고 합니다.

도반 아난다여, 땅에서 [땅을 창조하여] 땅의 인식을 가진 신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머리칼을 뜯으면서 울부짖고 손을 마구 흔들면서 울부짖고 다리가 잘린 듯이 넘어지고 이리 뒹굴고 저리 뒹굴면서 세존께서는 너무 빨리 반열반하려 하시는구나. 너무 빨리 선서께서는 반열반하려 하시는구나. 너무 빨리 눈을 가진 분이 세상에서 사라지려 하시는구나.’라고 합니다.

그러나 애정을 벗어난 신들은 마음챙기고 알아차리면서 형성된 것들은 무상하다. 그러니 여기서 [울부짖는다 해서]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라고 합니다.”

 

6.12. 그러자 아누룻다 존자는 아난다 존자를 불러서 말하였다.

도반 아난다여, 가시오. 그대는 꾸시나라에 들어가서 꾸시나라에 사는 말라들에게 이렇게 말하시오. ‘와셋타들이여, 세존께서 반열반하셨습니다. 와셋타들이여, 지금이 [그대들이 방문하기에] 적당한 시간입니다.’라고.”

그렇게 하겠습니다, 존자시여.”라고 아난다 존자는 아누룻다 존자에게 대답한 뒤 오전에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발우와 가사를 수하고 동료와 함께 꾸시나라로 들어갔다.

그 무렵에 꾸시나라에 사는 말라들은 어떤 일 때문에 집회소에 함께 모여 있었다. 그때 아난다 존자는 꾸시나라에 사는 말라들의 집회소로 다가갔다. 가서는 꾸시나라의 말라들에게 이렇게 일렀다.

와셋타들이여, 세존께서 반열반하셨습니다. 와셋타들이여, 지금이 [그대들이 방문하기에] 적당한 시간입니다.”라고.

아난다 존자의 이런 말을 듣고서 말라들과 말라의 아들들과 말라의 며느리들과 말라의 아내들은 괴롭고 슬프고 정신적인 공황상태에 빠져 어떤 자들은 머리칼을 뜯으면서 울부짖고 손을 마구 흔들면서 울부짖고 다리가 잘린 듯이 넘어지고 이리 뒹굴고 저리 뒹굴면서 세존께서는 너무 빨리 반열반하시는구나. 너무 빨리 선서께서는 반열반하시는구나. 너무 빨리 눈을 가진 분이 세상에서 사라지시는구나.”라고 하였다.

 

 

부처님 존체(尊体)에 예배함   37. Buddha­sarīra­pūjā

 

6.13. 그리고 꾸시나라에 사는 말라들은 사람들에게 꾸시나라로 향과 화환을 가져오게 하고 모든 음악가들을 모이도록 하였다. 그러자 꾸시나라에 사는 말라들은 향과 화환을 가져오고 모든 음악가들을 모으고 500필의 천을 가지고 근처에 있는 말라들의 살라 숲으로 세존의 존체가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가서는 춤과 노래와 음악과 화환과 향으로 세존의 존체를 존경하고 존중하고 숭상하고 예배하고 천으로 차일을 치고 둥근 천막을 만들면서 이와 같이 하여 그날을 보냈다.

그때 꾸시나라의 말라들에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오늘 세존의 존체를 화장하는 것은 참으로 바른 시간이 아니다. 우리는 내일 세존의 존체를 화장해야겠다.”

그러자 꾸시나라에 사는 말라들은 춤과 노래와 음악과 화환과 향으로 세존의 존체를 존경하고 존중하고 숭상하고 예배하고 천으로 차일을 치고 둥근 천막을 만들면서 이와 같이 하여 둘째 날을 보냈고, 셋째 날을 보냈고, 넷째 날을 보냈고, 다섯 째 날을 보냈고, 여섯째 날을 보냈다.

 

6.14. 그리고 칠 일째에 꾸시나라에 사는 말라들에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춤과 노래와 음악과 화환과 향으로 세존의 존체를 존경하고 존중하고 숭상하고 예배하면서 도시의 남쪽으로 운구해서 도시의 남쪽 밖에서 세존의 존체를 화장하리라.”

그 무렵에 여덟 명의 말라의 수장들은 머리를 깎고 새 옷으로 갈아입고, ‘세존의 존체를 운구하리라.’하였지만 들어 올릴 수가 없었다. 그러자 꾸시나라에 사는 말라들은 아누룻다 존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아누룻다 존자시여, 무슨 이유 때문에 우리 여덟 명의 말라의 수장들이 머리를 깎고 새 옷으로 갈아입고 세존의 존체를 운구하리라.’하였지만 들어 올릴 수가 없습니까?”

와셋타들이여, 그대들이 뜻하는 바와 신들이 뜻하는 바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6.15. “존자시여, 그러면 신들이 뜻하는 바는 무엇입니까?”

와셋타들이여, 그대들이 뜻하는 바는 우리는 춤과 노래와 음악과 화환과 향으로 세존의 존체를 존경하고 존중하고 숭상하고 예배하면서 도시의 남쪽으로 운구해서 도시의 남쪽 밖에서 세존의 존체를 화장하리라.’는 것입니다. 와셋타들이여, 그러나 신들이 뜻하는 바는 우리는 춤과 노래와 음악과 화환과 향으로 세존의 존체를 존경하고 존중하고 숭상하고 예배하면서 도시의 북쪽으로 운구해서 도시의 북문으로 도시에 들어간 뒤, 도시의 가운데로 운구해서 다시 동쪽 문으로 나가서 도시의 동쪽에 있는 마꾸따반다나라는 말라들의 탑묘에서 세존의 존체를 화장하리라.’라는 것입니다.”

존자시여, 그러면 신들이 뜻하는 바대로 하겠습니다.”

 

6.16. 그 무렵에 꾸시나라에는 하수구와 쓰레기 더미에조차 무릎까지 차도록 만다라와 꽃이 [하늘에서] 내렸으며, 신들과 꾸시나라의 말라들은 하늘과 인간의 춤과 노래와 음악과 화환과 향으로 세존의 존체를 존경하고 존중하고 숭상하고 예배하면서 도시의 북쪽으로 운구해서 도시의 북문으로 도시에 들어간 뒤, 도시의 가운데로 운구해서 다시 동쪽 문으로 나가서 도시의 동쪽에 있는 마꾸따반다나라는 말라들의 탑묘에 세존의 존체를 내려놓았다.

 

6.17. 그리고 나서 꾸시나라에 사는 말라들은 아난다 존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아난다 존자시여, 저희들이 어떻게 여래의 존체에 대처해야 합니까?”

와셋타들이여, 전륜성왕의 유체에 대처하듯이 여래의 유체에도 대처하면 됩니다.”

아난다 존자시여, 그러면 어떻게 전륜성왕의 유체에 대처합니까?”

와셋타들이여, 전륜성왕의 유체는 새 천으로 감쌉니다. 새 천으로 감싼 뒤 새 솜으로 감쌉니다. 새 솜으로 감싼 뒤 [다시] 새 천으로 감쌉니다. 이런 방법으로 500번을 전륜성왕의 유체를 감싼 뒤 황금으로 [만든] 기름통에 넣고, 황금으로 만든 다른 통으로 덮은 뒤, 모든 향으로 장엄을 하여 전륜성왕의 유체를 화장합니다. 그리고 큰 길 사거리에 전륜성왕의 탑을 조성합니다. 와셋타들이여, 이와 같이 전륜성왕의 유체에 대처합니다. 와셋타들이여, 전륜성왕의 유체에 대처하듯이 여래의 유체에도 대처해야 합니다. 그리고 큰 길 사거리에 여래의 탑을 조성해야 합니다. 거기에 화환이나 향이나 향가루를 올리거나 절을 하거나 마음으로 청정한 믿음을 가지는 자들에게는 오랜 세월 이익과 행복이 있을 것입니다.”

 

6.18. 그러자 꾸시나라에 사는 말라들은 사람들에게, “말라들의 새 솜을 모두 모아오라.”고 하였다. 그리고 꾸시나라에 사는 말라들은 세존의 존체를 새 천으로 감쌌다. 새 천으로 감싼 뒤 새 솜으로 감쌌다. 새 솜으로 감싼 뒤 [다시] 새 천으로 감쌌다. 이런 방법으로 500번을 세존의 존체를 감싼 뒤 황금으로 [만든] 기름통에 넣고, 황금으로 만든 다른 통으로 덮은 뒤, 모든 향으로 장엄을 하고 모든 향기로운 나무로 화장용 장작더미를 만들어서 세존의 존체를 그 위에 올렸다.

 

 

 

 

 

 

 

 

마하깟사빠 존자의 일화 38. Mahā­kassa­pat­thera­vatthu

 

6.19. 그 무렵에 마하깟사빠(대가섭) 존자는 500명의 많은 비구 승가와 함께 빠와로부터 꾸시나라로 통하는 대로를 따라가다가 길에서 나와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어떤 나무 아래 낮 동안의 머묾을 위해서 앉아 있었다. 그때 어떤 아지와까가 꾸시나라로부터 만다라와 꽃을 가지고 빠와로 가는 대로를 따라가고 있었다. 마하깟사빠 존자는 그 아지와까가 멀리서 오는 것을 보고서 그에게 이렇게 말했다.

도반이여, 우리 스승에 대해서 아십니까?”

물론이지요, 도반이여. 저는 알고 있습니다. 오늘부터 7일 전에 사문 고따마께서는 반열반하셨습니다. 거기서 나는 이 만다라와 꽃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애정을 버리지 못한 비구들은 손을 마구 흔들면서 울부짖고 다리가 잘린 듯이 넘어지고 이리 뒹굴고 저리 뒹굴면서, “세존께서는 너무 빨리 반열반하시는구나. 너무 빨리 선서께서는 반열반하시는구나. 너무 빨리 눈을 가진 분이 세상에서 사라지시는구나.”라고 하였다.

그러나 애정을 벗어난 비구들은 마음챙기고 알아차리면서, “형성된 것들은 무상하다. 그러니 여기서 [슬퍼하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라고 하였다.

 

6.20. 그때 수밧다라는 늦깎이가 그 회중에 앉아 있었다. 늦깎이 수밧다는 비구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도반들이여, 이제 그만하십시오. 슬퍼하지 마십시오. 탄식하지 마십시오. 도반들이여, 우리는 이제 그러한 대사문으로부터 속 시원하게 해방되었습니다. 우리는 이것은 그대들에게 적당하다. 이것은 그대들에게 적당하지 않다.’라고 늘 간섭받았습니다. 그러나 이제 우리들은 무엇이든 원하는 것은 할 수 있고 무엇이든 원하지 않는 것은 하지 않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마하깟사빠 존자는 비구들을 불러서 말하였다. “도반들이여, 이제 그만하십시오. 슬퍼하지 마십시오. 탄식하지 마십시오. 도반들이여, 참으로 세존께서는 전에 사랑스럽고 마음에 드는 모든 것과는 헤어지기 마련이고 없어지기 마련이고 달라지기 마련이라고 그처럼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까? 도반들이여, 그러니 여기서 [그대들이 슬퍼하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도반들이여, 태어났고 존재했고 형성된 것은 모두 부서지기 마련인 법이거늘 그런 것을 두고 절대로 부서지지 말라.’고 한다면 그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6.21. 그때 네 명의 말라의 수장들이 머리를 깎고 새 옷으로 갈아입고 우리는 세존의 화장용 장작더미에 불을 붙이리라.’라고 하였지만 불을 붙일 수가 없었다. 그러자 꾸시나라에 사는 말라들은 아누룻다 존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아누룻다 존자시여, 무슨 이유 때문에 우리 네 명의 말라들의 수장들이 머리를 깎고 새 옷으로 갈아입고 우리는 세존의 화장용 장작더미에 불을 붙이리라.’라고 하였지만 불을 붙일 수가 없습니까?”

와셋타들이여, 그대들이 뜻하는 바와 신들이 뜻하는 바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존자시여. 그러면 신들이 뜻하는 바는 무엇입니까?”

와셋타들이여, 그대들이 뜻하는 바는 우리는 세존의 화장용 장작더미에 불을 붙이리라.’는 것입니다. 와셋타들이여, 그러나 신들이 뜻하는 바는 그분 마하깟사빠 존자가 500명의 많은 비구 승가와 함께 빠와로부터 꾸시나라로 통하는 대로를 따라 오고 있다. 마하깟사빠 존자가 세존의 발에 머리로 절을 하기 전에는 세존의 화장용 장작더미가 타지 말기를!’이라는 것입니다.”

존자시여, 그러면 신들이 뜻하는 바대로 하겠습니다.”

 

6.22. 그때 마하깟사빠 존자가 꾸시나라의 마꾸따반다나라는 말라들의 탑묘에 있는 세존의 화장용 장작더미로 왔다. 와서는 한쪽 어깨가 드러나게 옷을 입고 합장하고 화장용 장작더미를 오른쪽으로 세 번 돌아 [경의를 표한] 뒤 발쪽을 열고 세존의 발에 머리로 절을 올렸다. 함께 온 500명의 비구들도 한쪽 어깨가 드러나게 옷을 입고 합장하고 화장용 장작더미를 오른쪽으로 [세 번] 돌아 [경의를 표한] 뒤 발쪽을 열고 세존의 발에 머리로 절을 올렸다. 마하깟사빠 존자와 500명의 비구들이 절을 하자 세존의 화장용 장작불은 저절로 타올랐다.

 

6.23. 세존의 존체는 표피와 속 살갗과 살점과 힘줄과 관절활액은 모두 다 타고 재도 먼지도 없이 오직 사리들만이 남았다. 마치 버터기름이나 참기름이 타면 재도 먼지도 없는 것처럼 세존의 존체도 표피와 속 살갗과 살점과 힘줄과 관절활액은 모두 다 타고 재도 먼지도 없이 오직 사리들만이 남았다. 500겹을 둘러싼 천들도 가장 안쪽에 있는 것과 가장 바깥에 있는 두 개의 천조차도 모두 다 탔다.

세존의 존체가 다 타자 허공에서 물줄기가 나타나서 세존의 화장용 장작더미를 껐다. 살라 나무로부터도 물이 나와서 세존의 화장용 장작더미를 껐다. 꾸시나라에 사는 말라들은 모든 종류의 향수로 세존의 화장용 장작더미를 껐다.

그리고 나서 꾸시나라에 사는 말라들은 집회소에 격자 모양의 통을 만들고 [그 주위에 다시] 활로 된 벽을 만든 뒤 칠 일 동안 춤과 노래와 음악과 화환과 향으로 세존의 사리들을 존경하고 존중하고 숭상하고 예배하였다.

 

 

사리 분배 39. Sarīra­dhātu­vibha­jana

 

 

6.24. 이때 마가다의 왕 아자따삿뚜 웨데히뿟따는 세존께서 꾸시나라에서 반열반하셨다고 들었다. 그러자 마가다의 왕 아자따삿뚜 웨데히뿟따는 꾸시나라에 사는 말라들에게 사자(使者)를 보내서 세존께서도 끄샤뜨리야이시고 짐도 끄샤뜨리야이니 짐도 세존의 사리들 가운데 일부분을 가져갈 자격이 있습니다. 나는 세존의 사리들로 큰 탑을 만들 것입니다.”라고 전하였다.

웨살리에 사는 릿차위들도 세존께서 꾸시나라에서 반열반하셨다고 들었다. 그러자 웨살리에 사는 릿차위들은 꾸시나라에 사는 말라들에게 사자를 보내서 세존께서도 끄샤뜨리야이시고 우리도 끄샤뜨리야이니 우리도 세존의 사리들 가운데 일부분을 가져갈 자격이 있습니다. 우리는 세존의 사리들로 큰 탑을 만들 것입니다.”라고 전하였다.

까삘라왓투에 사는 사꺄들도 세존께서 꾸시나라에서 반열반하셨다고 들었다. 그러자 까삘라왓투에 사는 사꺄들은 꾸시나라에 사는 말라들에게 사자를 보내서 세존께서는 우리 종족의 최고어른이시니 우리도 세존의 사리들 가운데 일부분을 가져갈 자격이 있습니다. 우리는 세존의 사리들로 큰 탑을 만들 것입니다.”라고 전하였다.

알라깝빠에 사는 불리들도 세존께서 꾸시나라에서 반열반하셨다고 들었다. 그러자 알라깝빠에 사는 불리들은 꾸시나라에 사는 말라들에게 사자를 보내서 세존께서도 끄샤뜨리야이시고 우리도 끄샤뜨리야이니 우리도 세존의 사리들 가운데 일부분을 가져갈 자격이 있습니다. 우리는 세존의 사리들로 큰 탑을 만들 것입니다.”라고 전하였다.

라마가마에 사는 꼴리야들도 세존께서 꾸시나라에서 반열반하셨다고 들었다. 그러자 라마가마에 사는 꼴리야들은 꾸시나라에 사는 말라들에게 사자를 보내서 세존께서도 끄샤뜨리야이시고 우리도 끄샤뜨리야이니 우리도 세존의 사리들 가운데 일부분을 가져갈 자격이 있습니다. 우리는 세존의 사리들로 큰 탑을 만들 것입니다.”라고 전하였다.

웨타디빠에 사는 바라문도 세존께서 꾸시나라에서 반열반하셨다고 들었다. 그러자 웨타디빠에 사는 바라문은 꾸시나라에 사는 말라들에게 사자를 보내서 세존께서는 끄샤뜨리야이시고 나는 바라문이니 나도 세존의 사리들 가운데 일부분을 가져갈 자격이 있습니다. 나는 세존의 사리들로 큰 탑을 만들 것입니다.”라고 전하였다.

빠와에 사는 말라들도 세존께서 꾸시나라에서 반열반하셨다고 들었다. 그러자 빠와에 사는 말라들은 꾸시나라에 사는 말라들에게 사자를 보내서 세존께서도 끄샤뜨리야이시고 우리도 끄샤뜨리야이니 우리도 세존의 사리들 가운데 일부분을 가져갈 자격이 있습니다. 우리는 세존의 사리들로 큰 탑을 만들 것입니다.”라고 전하였다.

 

6.25. 이렇게 말하였을 때, 꾸시나라에 사는 말라들은 그 대중과 무리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세존께서는 우리 마을의 땅에서 반열반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존의 사리들을 나누어 가지지 않겠습니다.”

이렇게 말하자, 도나 바라문이 그 대중과 무리에게 이렇게 말했다.

 

존자들이여, 나의 제안을 들어 보시오.

우리의 부처님은 인욕을 설하신 분입니다.

최고이신 어른의 사리 분배를 두고

싸움이 일어난다면 그건 좋지 못합니다.

존자들이여, 모두 우정을 가지고 화합하며

서로 사이좋게 분배해 나눕시다.

널리 사방에 탑들을 만드십시오.

많은 사람들이 눈을 가지신 분께 청정한 믿음을 가지도록.”

 

바라문이여, 그렇다면 그대가 세존의 사리들을 여덟 등분으로 공평하게 잘 분배하십시오.”

그렇게 하겠습니다, 존자들이여.”라고 도나 바라문은 그 대중들과 무리들에게 대답한 뒤 세존의 사리들을 여덟 등분으로 공평하게 잘 배분하여 대중과 무리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존자들이여,  [사리]함은 제게 주십시오. 나도 [사리]함으로 큰 탑을 만들 것입니다.”

그들은 도나 바라문에게 [사리]함을 주었다.

 

6.26. 삡팔리 숲에 사는 모리야들도 세존께서 꾸시나라에서 반열반하셨다고 들었다. 그러자 삡팔리 숲에 사는 모리야들은 꾸시나라에 사는 말라들에게 사자를 보내서 세존께서도 끄샤뜨리야이시고 우리도 끄샤뜨리야이니 우리도 세존의 사리들 가운데 일부분을 가져갈 자격이 있습니다. 우리는 세존의 사리들로 큰 탑을 만들 것입니다.”라고 전하였다.

세존의 사리들 가운데 분배할 것이 없습니다. 세존의 사리들은 모두 분배하였습니다. 이곳에서 숯이라도 가져가십시오.”

그들은 거기서 숯을 가져갔다.

 

 

사리탑의 건립  40. Dhātu thūpapūjā

 

6.27. 그러자 마가다의 왕 아자따삿뚜 웨데히뿟따는 라자가하에 세존의 사리들로 큰 탑을 만들었다. 웨살리에 사는 릿차위들도 웨살리에 세존의 사리들로 큰 탑을 만들었다. 까삘라왓투의 사꺄들도 까삘라왓투에 세존의 사리들로 큰 탑을 만들었다. 알라깝빠에 사는 불리들도 알라깝빠에 세존의 사리들로 큰 탑을 만들었다. 라마가마에사는 꼴리야들도 라마가마에 세존의 사리들로 큰 탑을 만들었다. 웨타디빠에 사는 바라문도 웨타디빠에 세존의 사리들로 큰 탑을 만들었다. 빠와에 사는 말라들도 빠와에 세존의 사리들로 큰 탑을 만들었다. 도나 바라문은 [사리]함으로 큰 탑을 만들었다. 삡팔리 숲에 사는 모리야들도 삡팔리 숲에 숯으로 큰 탑을 만들었다. 이와 같이 여덟 군데에 사리탑이, 아홉 번째로 [사리함]의 탑이(tumbathūpo), 열 번째로 숯을 담은 탑이 옛적에 건립되었다.

Atha kho rājā māgadho ajātasattu vedehiputto rājagahe bhagavato sarīrānaṃ thūpañca mahañca akāsi. Vesālikāpi licchavī vesāliyaṃ bhagavato sarīrānaṃ thūpañca mahañca akaṃsu. Kapila­vatthu­vāsīpi sakyā kapila­vatthus­miṃ bhagavato sarīrānaṃ thūpañca mahañca akaṃsu. Allakappakāpi bulayo allakappe bhagavato sarīrānaṃ thūpañca mahañca akaṃsu. Rāmagāmakāpi koḷiyā rāmagāme bhagavato sarīrānaṃ thūpañca mahañca akaṃsu. Veṭṭhadīpakopi brāhmaṇo veṭṭhadīpe bhagavato sarīrānaṃ thūpañca mahañca akāsi. Pāveyyakāpi mallā pāvāyaṃ bhagavato sarīrānaṃ thūpañca mahañca akaṃsu. Kosinārakāpi mallā kusinārāyaṃ bhagavato sarīrānaṃ thūpañca mahañca akaṃsu. Doṇopi brāhmaṇo tumbassa thūpañca mahañca akāsi. Pip­pali­vaniyāpi moriyā pippalivane aṅgārānaṃ thūpañca mahañca akaṃsu. Iti aṭṭha sarīrathūpā navamo tumbathūpo dasamo aṅgārathūpo. Evametaṃ bhūtapubbanti.

 

 

6.28. “눈을 가지신 분의 사리는 여덟 부분으로 [분배하여]

일곱 부분은 인도 대륙에서 모시고 있다.

최상의 인간의 한 부분은

라마가마에서 나가 왕이 모시고 있고

치아 하나는 삼십삼천이 예배하고

하나는 간다라의 도시에서 모시고 있다.

깔링가 왕이 다시 하나를 얻었으며

하나는 다시 나가 왕이 모시고 있다.

그분의 광명으로 이 영광을 가진 []은 장엄되고

최상의 제사를 받을 만한 자들에 의해서

대지는 장엄되었다.

이와 같이 눈을 가진 분의 사리는

존경할 만한 분들에 의해서 존경되었다.

신의 왕과 나가의 왕과 인간의 왕의

예배를 받는 그 분은

이처럼 인간의 왕들로부터 예배 받았다.

손을 높이 합장하여 그분께 절을 올려라.

부처님은 백 겁 동안 만나기 어려우리라.”

 

 

논점

 

 

 

1." 부처님을 칠 일째에 화장하는 이유는 ?

 

 

 

2.신들이 뜻하는 바는 우리는 춤과 노래와 음악과 화환과 향으로 세존의 존체를 존경하고 존중하고 숭상하고 예배하면서 도시의 북쪽으로 운구해서 도시의 북문으로 도시에 들어간 뒤도시의 가운데로 운구해서 다시 동쪽 문으로 나가서 도시의 동쪽에 있는 마꾸따반다나(makuṭabandhanaṁ)라는 말라들의 탑묘(mallānaṁ cetiyaṁ)에서 세존의 존체를 화장하리라.’라는 것입니다.”

--말라들은 남쪽으로 가서 화장하고 싶아하고 신들은 북쪽문으로 나가서 동쪽에 있는 말라들의 탑묘(mallānaṁ cetiyaṁ)에서 화장하고 싶어한다. 각각 그 이유는 무엇인가? 

 

 

 

 

 

3.부처님께 설법요청을 하고 반열반을 지켜보는 사함빠띠 범천은 누구인가?

 

세상의 모든 존재들은 필경에는 몸을 내려놓는구나.

이 세상 그 누구와도 견줄 수 없는 스승

힘을 갖추셨고 바르게 깨달으신 여래

그분도 이처럼 반열반하시는구나!”

 

 

 

 

4.신들의 왕인 삭까(인드라)의 게송을 음미해보자.

 

형성된 것들은 참으로 무상하여

일어났다가는 사라지는 법

일어났다가는 소멸하나니

이들의 가라앉음이 행복이로다.”

“Aniccā vata saṅkhārā,
uppā­davaya­dham­mino;
Uppajjitvā nirujjhanti,
tesaṃ vūpasamo sukho”ti.

 

 

 

5.아누룻다 존자의 게송을 음미해보자.

 

들숨날숨이 없으신 분, 확고부동하신 분, 여여하신 분,

욕망을 여의신 분, 성인께서는 고요함으로 가셨네.

흔들림 없는 마음으로 [고통스런] 느낌을 감내하셨으니

등불이 꺼지듯 그렇게 그분의 마음은 해탈하셨네.”

 

“Nāhu assāsapassāso,

ṭhitacittassa tādino;
Anejo santimārabbha,
yaṃ kālamakarī muni.

Asallīnena cittena,
vedanaṃ ajjhavāsayi;
Pajjotasseva nibbānaṃ,
vimokkho cetaso ahū”ti.

 

 

 

6.세존의 죽음 앞에서 춤과 노래와 음악으로 숭상하고 예배하는 전통이 생소하다. 왜 이런 전통이 이어지지 않았을까?  

 

 

 

 

 

 

7."그때 마하깟사빠 존자가 꾸시나라의 마꾸따반다나라는 말라들의 탑묘에 있는 세존의 화장용 장작더미로 왔다. 와서는 한쪽 어깨가 드러나게 옷을 입고 합장하고 화장용 장작더미를 오른쪽으로 세 번 돌은 뒤 발쪽을 열고 세존의 발에 머리로 절을 올렸다."  Atha kho āyasmā mahākassapo yena kusinārā makuṭabandhanaṁ nāma mallānaṁ cetiyaṁ, yena bhagavato citako tenupasaṅkami; upasaṅkamitvā ekaṁsaṁ cīvaraṁ katvā añjaliṁ paṇāmetvā tikkhattuṁ citakaṁ padakkhiṇaṁ katvā bhagavato pāde sirasā vandi.

--"뒤 발쪽을 열고 세존의 발에 머리로 절을 올렸다."라는 번역에서 "뒤 발쪽을 열고"라는 문장으 없는데 왜 이문장을 첨가했을까?  

 

 

 

8."그분 마하깟사빠 존자가 500명의 많은 비구 승가와 함께 빠와로부터 꾸시나라로 통하는 대로를 따라 오고 있다."

이 오백명이 1차결집을 한 것인가? 

 

 

 

 

 

9.도나 바라문이 세존의 사리들을 여덟 등분으로 공평하게 잘 배분하였는데 도나 바라문은 어떻게 그런 권위를 가질수 있었나 ?

 

 

 

10. 꼬살라국에서 사리를 가지러 오지 않은 이유는 ? 

 

 

 

* 열반경 공부가 끝났습니다. 9월 2일 백장암 모임에서 대반열반경 강독 전체 평가를 할때 다루었음하는 주제를 추천해 주셔요.  

 

 

 

 

논점

 

 

 

1." 부처님을 칠 일째에 화장하는 이유는 ?

 

 

 

2.신들이 뜻하는 바는 우리는 춤과 노래와 음악과 화환과 향으로 세존의 존체를 존경하고 존중하고 숭상하고 예배하면서 도시의 북쪽으로 운구해서 도시의 북문으로 도시에 들어간 뒤도시의 가운데로 운구해서 다시 동쪽 문으로 나가서 도시의 동쪽에 있는 마꾸따반다나(makuṭabandhanaṁ)라는 말라들의 탑묘(mallānaṁ cetiyaṁ)에서 세존의 존체를 화장하리라.’라는 것입니다.”

--말라들은 남쪽으로 가서 화장하고 싶아하고 신들은 북쪽문으로 나가서 동쪽에 있는 말라들의 탑묘(mallānaṁ cetiyaṁ)에서 화장하고 싶어한다. 각각 그 이유는 무엇인가? 

 

 

 

 

 

3.부처님께 설법요청을 하고 반열반을 지켜보는 사함빠띠 범천은 누구인가?

 

세상의 모든 존재들은 필경에는 몸을 내려놓는구나.

이 세상 그 누구와도 견줄 수 없는 스승

힘을 갖추셨고 바르게 깨달으신 여래

그분도 이처럼 반열반하시는구나!”

 

 

 

 

4.신들의 왕인 삭까(인드라)의 게송을 음미해보자.

 

형성된 것들은 참으로 무상하여

일어났다가는 사라지는 법

일어났다가는 소멸하나니

이들의 가라앉음이 행복이로다.”

“Aniccā vata saṅkhārā,
uppā­davaya­dham­mino;
Uppajjitvā nirujjhanti,
tesaṃ vūpasamo sukho”ti.

 

 

 

5.아누룻다 존자의 게송을 음미해보자.

 

들숨날숨이 없으신 분, 확고부동하신 분, 여여하신 분,

욕망을 여의신 분, 성인께서는 고요함으로 가셨네.

흔들림 없는 마음으로 [고통스런] 느낌을 감내하셨으니

등불이 꺼지듯 그렇게 그분의 마음은 해탈하셨네.”

 

“Nāhu assāsapassāso,

ṭhitacittassa tādino;
Anejo santimārabbha,
yaṃ kālamakarī muni.

Asallīnena cittena,
vedanaṃ ajjhavāsayi;
Pajjotasseva nibbānaṃ,
vimokkho cetaso ahū”ti.

 

 

 

6.세존의 죽음 앞에서 춤과 노래와 음악으로 숭상하고 예배하는 전통이 생소하다. 왜 이런 전통이 이어지지 않았을까?  

 

 

 

 

 

 

7."그때 마하깟사빠 존자가 꾸시나라의 마꾸따반다나라는 말라들의 탑묘에 있는 세존의 화장용 장작더미로 왔다. 와서는 한쪽 어깨가 드러나게 옷을 입고 합장하고 화장용 장작더미를 오른쪽으로 세 번 돌은 뒤 발쪽을 열고 세존의 발에 머리로 절을 올렸다."  Atha kho āyasmā mahākassapo yena kusinārā makuṭabandhanaṁ nāma mallānaṁ cetiyaṁ, yena bhagavato citako tenupasaṅkami; upasaṅkamitvā ekaṁsaṁ cīvaraṁ katvā añjaliṁ paṇāmetvā tikkhattuṁ citakaṁ padakkhiṇaṁ katvā bhagavato pāde sirasā vandi.

--"뒤 발쪽을 열고 세존의 발에 머리로 절을 올렸다."라는 번역에서 "뒤 발쪽을 열고"라는 문장으 없는데 왜 이문장을 첨가했을까?  

 

 

 

8."그분 마하깟사빠 존자가 500명의 많은 비구 승가와 함께 빠와로부터 꾸시나라로 통하는 대로를 따라 오고 있다."

이 오백명이 1차결집을 한 것인가? 

 

 

 

 

 

9.도나 바라문이 세존의 사리들을 여덟 등분으로 공평하게 잘 배분하였는데 도나 바라문은 어떻게 그런 권위를 가질수 있었나 ?

 

 

 

10. 꼬살라국에서 사리를 가지러 오지 않은 이유는 ? 

 

 

열반경 2023.8.24. 강독정리

36. 여래의 반열반 (6.8 - 6.12)
개요: 부처님의 (반)열반 과정은 아래와 같다.
우선 선정에 드신 후: 초선 -> 2선 -> 3선 -> 4선 -> 공무변처 -> 식무변처 -> 무소유처 -> 비상비비상처 -> 상수멸.   여기까지 오셨을 때 아난다는 부처님이 반열반하신 줄 알고 아누룻다에게 이를 고하니 아누룻다는 아직 아니다, 상수멸에 드신 것이다라고 답해준다.
부처님은 거꾸로 상수멸 -> 비상비비상처 -> 무소유처 -> 식무변처 -> 공무변처 -> 4선 -> 3선 -> 2선-> 초선까지 내려왔다가 다시 초선 -> 2선 -> 3선 -> 4선에 드신 후 4선에서 출정하여 반열반하시었다(돌아가셨다).  이 때 큰 지진과 천둥번개가 내려쳐 사람들은 두려움과 공포의 전율에 사로잡혔다.  지켜보던 ‘사함빠다’ 범천, 신들의 왕인 ‘삭카’(인드라), 아누룻다 존자, 아난다 존자가 각각 게송을 읊어 부처님의 입멸을 기렸고, 부처님에 대한 애정이 깊었던 비구들은 다리가 잘린 듯 뒹굴면서 슬퍼했으나 중생의 오욕칠정을 벗어난 상급과위의 비구들은 마음챙기고 알아차리면서(사띠) “형성된 것은 무상하니 여기서 슬퍼함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하며 머물렀다. 이에 비구들의 좌장격인 아누룻다 존자는 뭇 비구들을 위로하며 다독거렸고 아난다에게 지시하여 꾸시나라의 말라족들에게 부처님의 열반을 알려주라고 하였다.  집회소에 모여있던 말라족들 역시 무처님의 열반 소식에 머리칼을 뜯으며 울부짖고 뒹구는 공황상태에 빠졌다.

37. 부처님 존체에 예배함(6.13 - 6.18)
개요: (언재까지 슬퍼할 수만 없는) 말라족들은 나라의 모든 향과 꽂다발, 음악가들을 동원하여 500필의 (새) 천을 가지고 살라 숲의 부처님 존체에 다가갔다.  천으로 차일을 치고 둥근 천막을 만들어 장소를 준비한 다음 화환과 향을 바치고 춤과 노래와 음악으로 부처님을 예배하였다.  말라족들은 3일장을 생각하고 다음 날 존체를 화장하리라 마음먹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고 연일 춤과 노래, 음악과 화환/향으로 6일째까지 지낸 후 7일차에 들어서 장례를 시도하였다.  우선 8명의 말라족 지도자들이 머리를 깎고 새 옷으로 갈아입은 후 부처님의 존체를 모신 평상을 들려 했지만 평상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다비장소: 도시의 남쪽으로 운구하여 남문 밖에서 화장)   이에 아누룻다 존자가 알려주기를 천신들은 부처님의 존체를 도시의 북쪽으로 운구하여 북문으로 입성한 뒤 도시의 가운데를 지나 동문으로 나가서 동문 밖 ‘마꾸따반다나’라는 말라족들의 탑묘에서 화장하는 것을 원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천신들의 뜻을 따르기로 한 말라족들은 부처님의 존체를 도시의 북문 -> 도시 중앙부 -> 동문 -> 성 밖의 ‘마꾸따반다나’ 탑묘로 운구하였는데 (춤, 노래/음악, 꽂/향과 함께) 도중 하늘에서 만다라 꽂이 비처럼 내려와 무릎까지 찼다.  존체를 내려놓은 말라족들은 아난다가 알려주는대로 (아난다는 부처님에게 이미 들은대로) 전륜성왕의 장례와 같이 존체를 새 천, 새 솜, 새 천으로 500번 감싼 후, 황금으로 만든 기름통에 안치하고, 또 다른 황금통을 덮은 뒤, 온갖 향으로 장엄하여, 향기나는 장작더미를 깔고 그 위에 존체를 모셨다.

39. 마하깟사빠 존자의 일화 (6.19 - 6.23)
개요: 한편 마하깟사빠(대가섭) 존자는 500명의 승가와 함께 북쪽 ‘빠와’에서 남쪽 ‘꾸시나라’로 오고 있었다.  도중에 어느 아지와까(나체 수행자)를 만났는데 그를 통하여 부처님께서 7일전에 이미 열반하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500명의 비구대중은 이리 뒹굴고 저리 뒹굴며 애통해 했고 일부 사띠가 확립된 비구들만 침착과 냉정을 유지했다. 
* 그 중 ‘늦깍이 수밧다’라는 별명을 지닌 비구는 “이래저래 간섭하는 대사문이 가셨으니 이제 우리는 자유다”라며 기뻐하였다.
마하깟사빠는 비구들을 진정시키고 장례에 참석하기 위하여 길을 서둘렀는데 다비장에서는 네 명의 말라족 수장들이 화장을 위하여 장작더미에 불을 붙이려 하고 있었다. 그러나 전혀 점화가 되지 않자 아누룻다 존자에게 연유를 물으니 그는 천신들이 마하깟사빠의 도착에 맞추어 다비하는 것을 원한다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마침내 도착한 마하깟사빠가 부처님의 존체가 모셔진 장작더미를 500비구와 함께 오른쪽으로 세 번 돌아 경의를 표하고 부처님이 발쪽을 열어 머리로 세존의 발에 절하였다.  그러자 그동안 그렇게 불이 붙지 않았던 장작더미가 저절로 불이 붙어 순식간에 타오르기 시작했다.  부처님의 존체는 모든 살과 힘줄, 관절활액 등이 전부 타버리고 오직 사리만이 남았다.  사라쌍수에서 물줄기가 쏟아져 불을 껐고 말라족들도 향수로 남은 장작불을 껐다.  이후 말라족들은 7일에 걸쳐 춤, 노래/음악, 꽂과 향으로 예배를 올렸다.

39. 사리분배 (6.24 - 6.26)
개요: 사리의 분배를 요청한 국가/도시는 아래와 같다.
1) ‘마가다’의 왕 아자따삿뚜 위데히뿟따
2) ‘웨살리’의 릿차위(왓지국)
3) ‘까삘라왓투’의 사까족 (부처님 고향)
4) ‘알라깝빠’의 불리
5) ‘라마가마’의 꼴리야
6) ‘웨따다빠’의 바라문
7) “빠와‘의 말라
그러나 꾸시나라의 말라족들이 처음엔 부처님 사리의 점유권을 주장하며 나눠주려 하지 않자 ‘도나’라는 저명한 바라문이 나서서 사리를 공평하게 8등분하여 나누어 주었다.  분배가 끝난 후 ‘도나’ 바라문은 사리를 담았던 사리함을 차지하였고 뒤늦게 도착한 삡빨리 숲의 모리야들에겐 타다 남은 숯 밖에 줄 것이 없었다.

40. 사리탑의 건립 (6.27 - 6.28)
개요: 8부분으로 분배된 사리는 각자의 국가/도시에 건립된 사리탑에 모셔졌고 사리함 및 숯만 봉안한 탑도 세워졌다.

논점-1) “부처님을 7일째 화장하는 이유는?”
가) 인도는 덥다. 7일장이 어려웠겠지만 되도록 많은 사람들이 참배하기 위하여 7일은 필요하였던 것 같다.
나) 전륜성왕과 같은 양식의 장례를 하라고 하시었으니 그에 맞게 7일을 선택했는지도....
다) 禪語錄에서는 말라족들이 3일장을 계획하였으나 천신들이 7일장을 원하여 그에 따랐다는 이야기.
라) 마하까사파가 아직 장례에 도착하지 않았으니 더 기다렸다는 설 등이 있다.

논점-2) “말라족들의 운구 및 다비장소와 천신들의 그 것이 다른 이유는?”
가) 일반적으로 인도인들은 공터에서 다비를 하는 풍습에 비해 적어도 대사문인 부처님은 정식 탑묘(cetiyam)에서 다비하고 싶었을지도..
* 실제 성지순례에서 확인해보면 부처님 열반한 장소에서 다비한 장소까지는 약 3-4km 정도라 릭사나 도보로도 이동이 가능.
나) 천신들의 의사가 자주 표명되었는데 그 것은 누구를 통하여 전달되었을까? => 아누룻다 존자가 통신을 담당.

논점-3) “가장 먼저 부처님께 설법요청을 하고 부처님의 마지막 반열반을 지켜보는 ‘사함빠디’ 범천은 누구인가?”
가) 색계(色界)의 대표신인 ‘사함빠다’는 17개의 천상 중 대범천에 거주하는 수명이 1아승지겁(= 우주가 한 번 탄생하여 멸하기까지의 주기)인 천신으로 세상의 창조신에 해당.  그는 부처님 성도 후 우루웰라의 네란자라 강가에 현신하여 부처님께 깨달음을 뭇중생들에게 전파하여달라고 요청한 천신임 (梵天勸請).
나) ‘사함빠다’의 수명이 1겁에 이르니 아마 석가모니 부처님 외 다른 부처님 들의 반열반도 목격하였을 가능성이 크다. 아무튼 그는 부처님의 성도 및 열반이라는 양대 event에 등장하는 최고의 천신이라 하겠다.

                     = ‘사함빠띠’의 게송=
“ 세상의 모든 존재들은 필경에는 몸을 내려놓는구나.  이 세상 그 누구도 견줄 수 없는 스승.  힘을 갖추었고 바르게 깨달으신 여래 그 분도 이처럼 반열반하시는구나. ”

* 게송의 내용도 오온으로 이루어진 육신을 내려놓음으로써 무여열반을 이룬다는 최상급(究境) 경지를 읊음.

논점-4) “신들의 왕인 삭까(인드라)의 게송을 음미해보자.”

“형성된 것들은 참으로 무상하여 일어났다가는 사라지는 법, 일어났다가 소멸하나니 이들의 가라앉음이 행복이로다.”

가) 욕계는 5욕(식욕, 수면욕, 성욕, 재욕, 명예욕)이 존재하는 산란된 세계로 그 상부에는 6개의 하늘나라(欲界六天: 사대왕천, 삼십삼천 혹은 도리천, 야마천, 도솔천, 화락천, 타화자재천)가 있고 그 으뜸 신이 삭까(인드라, 제석천)이다. 
나) 아직 갈애의 멍에로부터 벗어나지 못한 존재로서 현상(色)의 덧없음을 일깨워주는 게송이라 하겠음.

논점-5) “아누룻다 존자의 게송을 음미해보자.”

“들숨날숨이 없으신 분, 확고부동하신 분, 여여하신 분, 욕망을 여의신 분, 성인께서는 고요함으로 가셨네.  흔들림없는 마음으로 (고통스런) 느낌을 감내하셨으니 등불이 꺼지듯 그렇게 그 분의 마음은 해탈하셨네.”

가) 아누룻다(아나율) 존자는 부처님의 사촌으로 부처님의 성도 2년 후 (37세) 까필라왓뚜에 돌아오셨을 때 집단출가한 왕자들 중 한 명이다.  부처님 설법 중 자주 졸다가 크게 질책을 받고 대오분발하여 잠을 자지 않고 정진하다가 눈이 멀어버린 그러나 덕분에 하늘 눈이 열린 “天眼第一.
나) 부처님을 어려서부터 보아 왔고 10대 제자로 꼽힌 그에게 부처님의 생애와 입멸이 주는 감흥을 단적으로 표현한 게송이다. 

* 4개의 게송(사함빠띠, 삭까, 아누룻다, 아난다가 읊은)에는 각각 그 들이 속하는 존재계(세상) 혹은 과위에 해당하는 표현이 등장함으로 열반경 편집시 이에 관한 의도가 작용하였다고 볼 수 있다.
* 요즈음 남방불교 국가에서의 제사문화는 아주 단순하여 정해진 게송 독송 및 가사공양으로 금방 끝나는데 유교문화가 가미된 한국의 장례는 단계와 절차가 복잡하여 상호 대비된다.  장지(모지) 선택도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

논점-6) “세존의 죽음 앞에서 춤과 노래와 음악으로 숭상하고 예배하는 전통이 생소하다.  왜 이러한 전통이 이어지지 않았을까?”
가) 미얀마의 경우 장례행렬을 따라가며 전통음악을 연주하는데 이 것이 부처님 당시의 인도풍슴의 잔류일 수 있겠다.
나) 한국의 경우 곡성을 내야 하는 관습에서 탈피하여 노래와 춤 등으로 죽음에 대한 인식을 바꾸어보는 것도 바람직할 것 같다. 

논점-7) “마하깟사빠 존자가 세존의 발에 머리로 절을 올렸을 때 (Bhaga vato pade sirasa vandi)라는 문장을 ”뒤 발쪽을 열고“라고 원문에 없는 문장을 첨가한 이유는 무엇인가?”
가) 이미 천, 솜 등으로 500겹이나 감쌌고 황금 관에 안치하였는데 부처님의 두 발을 물리적으로 노출시킬 순 없고 관 위에 쌓인 꽃과 향더미를 헤치고 발이 있는 부분에 머리를 대고 절하였다고 볼 수 있다.
나) 상좌부 주석서에서는 늦게 도착한 마하까사빠가 4선에 들어가 신통력으로 그렇게 했다는(쌍부노출) 이야기도 있고, 중국의 선어록에서는 마하까사빠가 도착하였을 때 이미 부처님의 양 발이 나와 있었는데 색깔이 변한 것을 보고 아난다에게 물으니 어느 노파가 무처님 발을 붙잡고 눈물을 흘려 그리 됐다는 대답에 내심 언짢아 했다는 설도 있다. 

논점-8) “마하깟사빠 존자의 500명 숭가가 1차 결짐에 참여하였을까?”
가) 아라한 과위 이상을 증득한 499명을 뽑았다고 하였는 바 깟사빠의 500명이 전부 아라한 과를 얻었다고 불 수도 없고 그 중에는 부처님 열반을 기뻐한 사람도 있었다는 점을 보면 그럴 것 같진 않다.
나) 장례에 21일 소요한 (7일 예배 + 7일 화장 + 7일 예배) 40일 후인 기원전 544년 음력 6월 보름에 시작하여 장장 7개월에 걸쳐 이루어낸 1차 결집은 당시의 교통여건상 먼 지역(아단띠, 상깟사, 쩨띠, 꼬삼비 등)에서는 참여하지 못했을 것 같고 가까운 지역의 대상자들이 모였을 겻이며 결집장소를 마가다국 라자가하의 칠엽굴로 정한 이유도 당시 아자따삿뚜 왕의 지원약속도 있고 그 쪽의 신심이 더 강했기 때문일 듯.
다) 실제 성지순례 때 확인해보면 칠엽굴의 면적이 500명 수용하기엔 다소 협소하나 칠엽굴 앞 공터가 상당히 너르고 (지진으로 일부 절토되었지만) 왕이 건물도 세워주어 큰 불편은 없었을 듯 하다.

논점-9) “‘도나’ 바라문이 세존의 사리를 8등분으로 공평하게 잘 배분하였는 바 ‘도나’ 바라문은 어떻게 그런 권위를 가질 수 있었나?”
가) ‘도나’ 바라문은 부처님 당시 고명한 바라문으로 각처의 존경을 받은 인물이었는데 부처님이 그를 만나러 Ukkatha에서 Setavya로 가시던 중 길 위에 나있던 부처님 발자국을 발견한 ‘도나’ 바라문이 뒤쫒아가 부처님을 만나 여러 이야기를 나누던 끝에 깨달음(불환과)에 이른 사람이었다. 
나) 때문에 각 국가/도시의 사신들이 사리를 놓고 갈등을 빚을 때 그가 지은 12,000자의 부처님 칭송 게송을 읊어 모두를 가라앉혔고 질서있게 사리를 배분할 수 있었다. 
다) 그런 그도 사리 분배 과정에서 부처님의 오른쪽 어금니를 터번 속에에 숨겨놓았다가 천신 삭까에게 들켜 빼앗기고 할 수 없이 사리함만 차지했다는 설이 있다.
라) 부처님이 가장 많이 활동한 곳이 마가다 국의 ‘라자가하’와 꼬살라 국의 ‘사왓티’였는데 왜 꼬살라 국에서는 사리를 가지러 오지 않았을까?에 대해서는 부처님 열반 전 꼬살라 국은 인근 까삘라왓투(부처님 탄생국)를 침략하고 수많은 살상을 한 바 있어서 감히 사리를 달라고 하지 못했을 것임.

기타:
가) 충무공 일기에 보면 일본은 불구대천의 원수라 하였는데 그런 일본이 한국의 묵인하에 핵오염수를 방류하였다.  통탄‼, 통탄‼
나) 그동안 근 석달간 비가 오나 땡볕이나 노상투쟁한 해안스님도 맨붕.
다) 8/26일 청주 야단법석에서 거론 예정. 끝

 

 

 

* 총20회에 걸쳐서 대반열반경(D16)공부가 끝났습니다.어떤 공부모임보다도 촘촘하게 열반경을 공부했다고 자평합니다. 9월 2일 백장암 모임에서 대반열반경 강독 전체 평가를 할때 이야기를 나눌 주제를 추천해 주셔요. 못다한 이야기를 나눌회가 되길 바랍니다.() 

 

 

9월 2일 오후 2시 백장암에서 개최되는 <온라인불자회> 모임에서 아래와 같은 주제를 가지고 논의하겠습니다.

●열반경이 사건의 발생순서대로 편집한 것인가? 아닌가?
날란다에서 사리뿟따가 등장하는 것등을보면 발생순서가 아닌 것 같다.

●부처님의 탄생과 죽음이 신화적으로 표현 되었다고 볼 수 있는가?

●종교인은 정치에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는가? 

●제1차 결집에 참석한 500명은 어떤 분들 이었을까?

●윤회에 대한 의문들에 대하여
등등...

 

 

 

 

쭌다 경(S47:13) Cunda-sutta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때 세존께서는 사왓티에서 제따 숲의 아나타삔디까 승원에 머무셨다.

 

2. 그때 사리뿟따 존자는 마가다의 날라까가마까에 머물고 있었는데 중병에 걸려 아픔과 고통에 시달리고 있었다. 쭌다 사미가 사리뿟따 존자의 시자로 있었다. 그때 사리뿟따 존자는 그 병으로 완전한 열반에 들었다.

 

) 쭌다 사미는 사리뿟따의 동생이었다. 구족계를 받기 전에 불리던 이름이었는데 장로가 된 후에도 이렇게 불렸기 때문에 쭌다 사미라고 하는 것이다. 쭌다 사미는 마하쭌다 존자로도, 쭌다 존자로도, 쭌다까 존자로도 불렸다고 한다.

 

3. 그러자 쭌다 사미는 사리뿟따의 발우와 가사를 가지고 사왓티 제따 숲의 아나타삔디까 승원으로 가서 아난다 존자에게 다가갔다. 가서는 아난다 존자에게 절을 올리고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쭌다 사미는 아난다 존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존자시여, 사리뿟따 존자께서 완전한 열반에 드셨습니다. 이것이 그분의 발우와 가사입니다.”

 

4. “도반 쭌다여, 이것은 세존을 뵙고 말씀드려야 할 문제입니다. 도반 쭌다여, 같이 세존을 뵈러 갑시다. 뵙고서 이 문제를 세존께 말씀드립시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존자시여.”라고 쭌다 사미는 아난다 존자에게 대답했다.

 

5. 그때 아난다 존자와 쭌다 사미는 세존께 다가갔다. 가서는 세존께 절을 올리고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아난다 존자는 세존게 이렇게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이 쭌다 사미가 이렇게 말합니다. ‘존자시여, 사리뿟따 존자께서 완전한 열반에 드셨습니다. 이것이 그분의 발우와 가사입니다.’라고. 세존이시여, 사리뿟따 존자가 완전한 열반에 들었다는 말을 듣고 저의 몸은 무겁기만 합니다. 방향 감각도 잃어버렸고 법들도 제게 분명하게 나타나지 않습니다.”

 

6. “아난다여, 사리뿟따가 완전한 열반에 들면서 그대의 계의 무더기를 가져가 버리기라도 했는가? 아니면 완전한 열반에 들면서 그대의 삼매의 무더기를 가져가 버리기라도 했는가? 아니면 완전한 열반에 들면서 그대의 통찰지의 무더기를 가져가 버리기라도 했는가? 아니면 완전한 열반에 들면서 그대의 해탈의 무더기를 가져가 버리기라도 했는가? 아니면 완전한 열반에 들면서 그대의 해탈지견의 무더기를 가져가 버리기라도 했는가?”

 

7.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사리뿟따 존자가 완전한 열반에 들면서 저의 계의 무더기를 해달지견의 무더기를 가져가 버리지 않았습니다. 세존이시여, 그렇지만 사리뿟따는 저를 교계하고 감싸주고 일깨워주고 가르치고 격려하고 분발하게 하고 기쁘게 하였습니다. 법을 가르치기에 피로한 줄 몰랐으며 동료 수행자들에게 큰 도움을 주는 자였습니다. 저희는 사리뿟따 존자가 베풀어준 법의 자양분과 법의 재물과 법의 도움을 기억합니다.”

 

8. “아난다여, 참으로 내가 전에 사랑스럽고 마음에 드는 모든 것과는 헤어지기 마련이고 없어지기 마련이고 달라지기 마련이라고 그처럼 말하지 않았던가? 아난다여, 그러니 여기서 그대가 슬퍼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아난다여, 태어났고 존재했고 형성된 것은 모두 부서지기 마련인 법이거늘 그런 것을 두고 절대로 부서지지 말라.’고 한다면 그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런 경우란 존재하지 않는다.

 

9. “아난다여, 예를 들면 속재목[心材]을 가지고 튼튼하게 서 있는 큰 나무의 가장 큰 가지가 꺾어진 것과 같다.

 

아난다여, 그와 같이 속재목을 가지고 튼튼하게 서 있는 비구 승가에서 사리뿟따가 완전한 열반에 든 것이다. 아난다여, 태어났고 존재했고 형성된 것은 모두 부서지기 마련인 법이거늘 그런 것을 두고 절대로 부서지지 말라.’라고 한다면 그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런 경우란 존재하지 않는다.”

 

10. “아난다여, 그러므로 여기서 그대들은 자신을 섬으로 삼고[自燈明] 자신을 귀의처로 삼아[自歸依] 머물고, 남을 귀의처로 삼아 머물지 말라. 법을 섬으로 삼고[法燈明] 법을 귀의처로 삼아[法歸依] 머물고, 다른 것을 귀의처로 삼아 머물지 말라.”

 

11. “아난다여, 그러면 어떻게 비구는 자신을 섬으로 삼고 자신을 귀의처로 삼아 머물고, 남을 귀의처로 삼아 머물지 않는가?

 

아난다여, 여기 비구는 몸에서 몸을 관찰하며 머문다. 세상에 대한 욕심과 싫어하는 마음을 버리면서 근면하게, 분명히 알아차리고 마음 챙기면서 머문다. 여기 비구는 느낌에서 느낌을 관찰하며 머문다. 세상에 대한 욕심과 싫어하는 마음을 버리면서 근면하게, 분명히 알아차리고 마음 챙기면서 머문다. 여기 비구는 마음에서 마음을 관찰하며 머문다. 세상에 대한 욕심과 싫어하는 마음을 버리면서 근면하게, 분명히 알아차리고 마음 챙기면서 머문다. 여기 비구는 법에서 법을 관찰하며 머문다. 세상에 대한 욕심과 싫어하는 마음을 버리면서 근면하게, 분명히 알아차리고 마음 챙기면서 머문다.

 

아난다여, 이와 같이 비구는 자신을 섬으로 삼고 자신을 귀의처로 삼아 머물고 남을 귀의처로 삼아 머물지 않으며, 법을 섬으로 삼고, 법을 귀의처로 삼아 머물고 다른 것을 귀의처로 삼아 머물지 않는다.”

 

12. “아난다여, 누구든지 지금이나 내가 죽고 난 후에 자신을 섬으로 삼고 자신을 귀의처로 삼아 머물고 남을 귀의처로 삼아 머물지 않으며, 법을 섬으로 삼고, 법을 귀의처로 삼아 머물고 다른 것을 귀의처로 삼아 머물지 않으면서 공부 짓기를 원하는 비구들은 최고 중의 최고가 될 것이다.”

 

 

 

SN 47.14

 

욱까쩰라 경(S47:14) Ukkacelā-sutta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때 세존께서는 왓지에서 욱까쩰라의 강가 강 언덕에 고귀한 비구 승가와 함께 머무셨는데 그것은 사리뿟따와 목갈라나가 완전한 열반에 든 뒤 오래지 않았을 때였다.

 

) 주석서에 의하면 목갈라나 존자는 사리뿟따 존자가 임종한 지 보름 후에 반열반했다고 한다. 사리뿟따 존자는 깟띠까 달(10)의 보름에 입적하였고 목갈라나 존자는 그 다음 달의 초하루에 입적하였다고 한다. 세존의 입적이 웨사카 달(4) 보름이기 때문에 사리뿟따 존자는 세존보다 6개월 먼저 입적하였고 목갈라나 존자는 5개월 보름 먼저 입적한 셈이다.

 

2. 그 무렵 세존께서는 비구 승가에 둘러싸여서 노지에 앉아 계셨다. 그때 세존께서는 침묵하고 침묵하는 비구 승가를 둘러보신 뒤 비구들을 불러 말씀하셨다.

 

3. “비구들이여, 사리뿟따와 목갈라나가 완전한 열반에 들자 내게는 회중이 텅 빈 것처럼 여겨지지만, 나의 회중은 텅 비지 않았고 사리뿟따와 목갈라나가 머물던 그 방향에 대해서는 아무 관심이 없다.

 

4. “비구들이여, 지금의 나에게 사리뿟따와 목갈라나라는 고결한 두 상수제자가 있듯이 과거의 세존아라한정등각자들께도 고결한 두 상수제자가 있었다. 비구들이여, 지금의 나에게 사리뿟따와 목갈라나라는 고결한 두 상수제자가 있듯이 미래의 세존.아라한.정등각자들께도 고결한 두 상수제자가 있을 것이다.”

 

5. “비구들이여, 제자들의 입장에서 보자면 그들은 경이롭다. 비구들이여, 제자들의 입장에서 보자면 그들은 놀랍다. 왜냐하면 그들은 스승의 교법에 따라 행할 것이고 스승의 교계에 따를 것이며, 사부대중이 좋아하고 마음에 들어 하며 존중하고 높이 평가할 것이기 때문이다. 비구들이여, 여래의 입장에서 보자면 그들은 경이롭다. 비구들이여, 여래의 입장에서 보자면 그들은 놀랍다. 왜냐하면 이러한 두 제자가 완전한 열반에 들었는데도 여래에게는 근심과 탄식이 없기 때문이다.

 

비구들이여, 그러니 여기서 그대들이 슬퍼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비구들이여, 태어났고 존재했고 형성된 것은 모두 부서지기 마련인 법이거늘 그런 것을 두고 절대로 부서지지 말라.’고 한다면 그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런 경우란 존재하지 않는다.”

 

6. “비구들이여, 예를 들면 속재목을 가지고 튼튼하게 서 있는 큰 나무의 가장 큰 가지가 꺾어진 것과 같다.

 

비구들이여, 그와 같이 속재목을 가지고 튼튼하게 서 있는 비구 승가에서 사리뿟따와 목갈라나가 완전한 열반에 든 것이다. 비구들이여, 그러니 여기서 그대가 슬퍼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비구들이여, 태어났고 존재했고 형성된 것은 모두 부서지기 마련인 법이거늘 그런 것을 두고 절대로 부서지지 말라.’고 한다면 그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런 경우란 존재하지 않는다.”

 

7. “비구들이여, 그러므로 여기서 그대들은 자신을 섬으로 삼고[自燈明] 자신을 귀의처로 삼아[自歸依] 머물고, 남을 귀의처로 삼아 머물지 말라. 법을 섬으로 삼고[法燈明] 법을 귀의처로 삼아[法歸依] 머물고, 다른 것을 귀의처로 삼아 머물지 말라.”

 

8.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떻게 비구는 자신을 섬으로 삼고 자신을 귀의처로 삼아 머물고, 남을 귀의처로 삼아 머물지 않는가?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몸에서 몸을 관찰하며 머문다. 세상에 대한 욕심과 싫어하는 마음을 버리면서 근면하게, 분명히 알아차리고 마음 챙기면서 머문다. 느낌에서 느낌을 관찰하며 머문다. 여기 비구는 마음에서 마음을 관찰하며 머문다. 세상에 대한 욕심과 싫어하는 마음을 버리면서 근면하게, 분명히 알아차리고 마음 챙기면서 머문다. 여기 비구는 법에서 법을 관찰하며 머문다. 세상에 대한 욕심과 싫어하는 마음을 버리면서 근면하게, 분명히 알아차리고 마음 챙기면서 머문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비구는 자신을 섬으로 삼고 자신을 귀의처로 삼아 머물고 남을 귀의처로 삼아 머물지 않으며, 법을 섬으로 삼고, 법을 귀의처로 삼아 머물고 다른 것을 귀의처로 삼아 머물지 않는다.”

 

9. “비구들이여 누구든지 지금이나 내가 죽고 난 후에 자신을 섬으로 삼고 자신을 귀의처로 삼아 머물고 남을 귀의처로 삼아 머물지 않으며, 법을 섬으로 삼고, 법을 귀의처로 삼아 머물고 다른 것을 귀의처로 삼아 머물지 않으면서 공부 짓기를 원하는 비구들은 최고 중의 최고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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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반열반경 학습회 회향토론 정리

* 장소: 지리산 백장암

* 일시: 2023.9.02.() - 2023.9.03.()

* 참석: 재가 - 기영, 김선미, 박정규, 고관순, 박진경, 진훈(나우), 문기관,

미연, 정경희(환희), 이빈, 임휘용 등

스님 - 허정, 도정(행운), 현달, 묘운, 일봉, 유연, 덕인

백장암 - 행선(주지), 남전, 도원 외 2분 수좌

* 집중토론 내용

1. “열반경이 사건의 발생순서대로 편집한 것인가, 아닌가? 날란다에서 사리뿟

다가 등장하는 것들을 보면 빌생순서대로 기록되지 않은 것 같다.”

(1) 열반경이 사건발생 순으로 편집되었는가, 아니면 특정한 편집의도에 따라

순서와 관계없이 편집되었는가는 확실치 않다. 그러나 열반경 텍스트를 따라가

보면 경이나 주석서에 기재된 시기와 장소 등이 상호연결되지 않는 부분이 있

어 사건발생 순서대로 편집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우선 부처님의 마지막 여정은 언제인지는 모르나 마가다국 라자가하에서 시

작하여 17장소(2개 포함: 강가 강 및 까꿋다 강)를 거쳐 열반지 꾸시나라에 도착하시는 것으로 되어 있다. ‘꾸시나라에서 ()열반하신 것이 BC5444.15(음력).

그런데 부처님은 생전에 당신이 열반하실 때를 예언하셨는데 그 것은 마라(

) 빠삐만이 웨살리짜빨라 탑묘에 나타나 때가 되었으니 이제 반열반하십

시오라고 권청하였을 때이다. “3개월 이내에 그리 하겠다라고 답하신 것이 정확하게 실현되었다면 적어도

BC5441.15일 이후 어느 때가 되어야 한다. 그러나 웨살리는 부처님이 벨루와가마에서 안거(6.15 - 9.15) 중 혹독한 병

에 걸리셨다가 회복한 후 얼마 되지 않아 방문한 장소라서 빠삐만에게 이야기

하신 것은 9.15일에서 그리 먼 시기가 아니라고 보아야 한다. 3-4개월 정도

시차가 나는데 이를 설명하기가 곤란하다. 또한 사리뿟다는 날란다의 빠와리까 망고 숲에서 부처님께 부처님이 최고라

(세존을 능가하고 세존을 초월하는 사문이나 바라문은 이전에도 없었고 앞

으로도 없을 것이며 지금도 없다라는) 이른바 사자후를 토했는데 이 때는 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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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지 라자가하를 떠나서 암발랏띠까를 거쳐 도착한 날란다에서의 일이었

. 즉 출발한지 얼마 안되는 때 이런 일이 일어났는데 그런 사리뿟따는 부처

님 반열반 6개월 전에 입멸한 것으로 되어있다. 6개월 전이라면 BC5444.15- 6개월 = BC54510.15일인 셈이다. 10.15일은 부처님이 안거를 끝내고 난 한 달 후이며 빠삐만 권청이 있었던 때

와 비슷한 시기이다. 이 때에 사리뿟따가 죽었다고?.. 그런데 쭌다 경(S47:13)에 의하면 부음을 그

의 동생 쭌다 존자가 사왓띠에 계시던 부처님께 고했다고 되어 있다. ‘사왓띠는 꼬살라 국의 수도이며 사리뿟따가 사자후를 토했던 날란다에서

460km나 북서쪽으로 떨어져 있다. 도저히 시간과 장소가 일치하지 않는 기

술이다. 꼭 끼워 맞추자면 사리뿟따는 날란다에서 사자후를 토하고 다시 마

가다 국으로 내려갔고 부처님 일행은 무슨 연유인지 모르겠으나 460km 밖의 사왓띠로 올라가셨다가 그의 임종소식을 들었다고 밖에 할 수 없는데 이 가

정은 현실적으로 납득이 어렵다.

(2) 2600년이나 전에 발생한 사실이 팩트 그대로 기록될 수 있다고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한국의 경우 그저 암흑과 같지 않은가? 더욱이 문자화되기 약

1000년 전의 사실을 암송구전하는 내용이 기가 막히게 정확할 수는 없다. 편집과정에서 가르침(교설) 위주로 엮다 보면 다소 앞뒤가 맞지 않을 수도 있

을 것이다. 우리는 시간이 맞나 안맞나를 따지는 것보다 각 장이 의도하는 바

가 무엇인가 우리가 취할 점이 무엇인가에 보다 집중해야 한다고 본다. 2. “부처님의 탄생과 죽음이 신화적으로 표현되었다고 볼 수 있는가?”

(1) 부처님의 탄생 스토리가 열반 스토리보다 더 신화적인 것은 틀림없다. 반열반하신 후 새 솜과 헝겊으로 500번 감싸고 황금관에 기름을 채워 존체를

안치한다는 구성은 생전에 부처님이 전륜성왕을 전거로 장례를 치르라는 말씀

이 있었기에 그에 따랐다고 볼 수 있다. 500번이라는 숫자는 경전에 무수히

나오기 때문에 그저 많게를 표현하는 방식일 수 있고 지금도 남방 일부 국

가에서 금색 칠을 한 관을 사용하는 곳도 있어 시비를 따질 내용은 아닌 것

같다. 단 니까야에 기술된 내용보다 중국의 선어록에서는 더 길고, 상세하게

절차와 과정을 기술해 놓았는데 이는 다른 경전과 마찬가지로 한문화할 때 발

생하는 부연과 과장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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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부처님의 탄생담은 신화적 표현으로 가득 차 있는데 이는 경전에 근거한

. 대전기경(大傳記經, Mahapuddana Sutta)에 의하면 과거7불의 탄생과정

이 상세하게 기술되어 있는바 정해진 법칙이라 하여 한결같이 모든 부처님

은 도솔천에 계시다가 지상의 모태에 들어가는데 어머니는 애욕이 없는 청정

한 상태에서 무병의 신체를 유지할 때 잉태하고 반드시 10달을 채워 출산하되

서서 출산하며 출산 후 7일째 임종하여 도솔천에서 태어나게 되어 있다.

, 점액, 피나 불결한 것들이 없어야 하며 하늘에서 내려오는 깨끗한 냉,온수

로 목욕하게 되어 있다. 32가지의 대인상을 지닌 채 태어나는 부처님은 세상

에 나오자 마자 북쪽으로 7발자국을 걸으며 천상천하 유아독존과 다시 태어

남은 없다라고 선포하여야 한다. 이런 표현들을 어떻게 해석할 수 있겠는가?

현실적으로 가능한 부분도 있고 가르침으로 받아들여야 할 대목도 있다. 마야

왕비가 (무우수를 붙잡은 채) 서서 출산하는 것은 유사한 예가 많고 옆으로 나

온다는 것도 알렉산더 대왕처럼 제왕절개를 상상할 수 있다. 요체는 신화적인 표현이 지닌 함의가 무엇인가에 있고 우리 불자는 어떻게 가

르침을 따라가냐에 있다고 본다.

(3) 열반경에서 가장 소중한 가르침은 바로 반열반 최종단계에서 부처님이 몸

소 보여준 선정에 있다고 본다. 초선부터 시작하여 상수멸까지 도달하였다가

역으로 초선으로 내려온 후 다시 4선으로 이동하였다가 열반하신 과정이다. (# 반론도 생각할 수 있는데 부처님의 경지까지 도달한 사람이 없는데 어떻게

부처님의 선정단계를 알 수 있었을까? 이에 반하여 아누룻다 존자의 신통 정

도면 -천안제일- 능히 부처님의 선정상태를 파악할 수 있었을 거라는 추론도

있었음)

3. “종교인은 정치에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는가?” *다양한 의견 그대로 기재

(1) 불교는 관계불교여야 한다. 즉 세상 일을 모른 척 하고 있어서는 안된다. 조계종은 정치적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 정교분리는 지켜져야 하되 국민

의 한 사람으로서 정치참여는 가능하다고 본다. 후쿠시마 핵오염수 관련 그나

마 해안스님이 불교계의 체면을 살려주었다.

(2) 현정부의 정책방향이 잘못되어 있다. 그에 반대하는 움직임에 동참하겠다.

(3) 정치참여는 불교공부에 지장을 준다. 세속의 일에 관여하는 것은 피하려

하나 의견은 가질 수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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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잘못된 사안에는 발언을 해야 한다. 부처님도 성도 후 세상 속으로 나오

시지 않았는가? 승납 20년 미만이면 아직 공부에 매진할 수 있으나 적어도

20년 이상이면 나서야 한다.

(5) 중립을 지킨다. 과도한 개입은 곤란하다.

(6) 정치를 바라보는 시각의 차이가 존재하는만큼 정확한 답은 없다. 현재는

기독교, 천주교는 활발하게 목소리를 내는데 불교계는 조용한 편이다. 베트남

의 틱광한 스님처럼 소신공양으로 정권을 바꾼 경우도 있지 않은가?

(7) 계율을 지키느냐 정의를 지키느냐의 차이이다. 미얀마에선 샤프란 혁명

때 스님들이 나섰다가 탄압이 심해진 요즘은 조용해졌다. 한국의 경우 임진왜

란 때 승병으로 차출된 것은 정치가 종교를 활용한 사례이고 5.18때 일부 스

님들이 구조활동에 참여한 것은 순수 자발적 행동이었다.

(8) 부처님 당시 꼴리야 족이 샤카 족을 공격했을 때 부처님이 나서서 2번을

막았으나 3번째는 어쩔 수 없었다. (샤카 족 멸망)

(9) 한국불교는 현재 정치화, 권력화되어 있고 정치는 불교를 활()용하고 있

. 조계종은 세속화를 가속하여 정권과 야합, 종단권력을 독점한 채 계속 세

를 늘려가고 있다. 이를 직언하는 스님들이 불과 몇 명에 불과하여 조계종의

앞날이 심히 우려된다.

(10) 한국에선 정치는 종교화되어 있고 (좌우 이념 맹종), 종교는 정치화되어

있다 (정교 유착 심화). 깨어있는 국민, 참여하는 불자가 절실하다. - 이태원 참사 1주년 위령제는 조계사에서 위폐, 영정없이 실시된다. (과연 누

구를 위한 위령제인가?) - 내년 총선에 조계종에 후보를 5명 추천한다 한다. (점입가경)

4. “윤회에 대하여

(1) 불교의 신심이 돈독한 사람들은 윤회의 부정을 위험하고 두려운 일이라고

믿으나 불교계 일부에서는 공공연하게 윤회를 부정하고 있다. 경전에 수도 없

이 반복되는 윤회관련 표현은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 윤회사상은 과연 힌두이

즘의 산물인가 아니면 불교의 으뜸 가르침인가?

(2) 깔라마 경(A3:65)에 의하면 많은 知者·賢人들이 자기들의 주장이 옳다 하

고 남의 주장을 매도하며 경멸할 때에는 그 주장이 논리적이라고 해서, 자기들

경전에 쓰여있다고 해서, 이유가 적정하다고 해서, 사색하여 얻은 견해와 일치

하다고 해서, 저명한 사람이 말했다고 해서, 스승이 말했다고 해서, 대대로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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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되어 왔다고 해서, 소문으로 들었거나 그렇다고 하더라 해서 - 진실이라고

받아들이지 말라. 오직 그 주장이 해로운 것인지, 비난받아 마땅한지, 손해와

괴로움을 초래할 것인지를 보고 판단하라라고 되어 있다. 윤회에 대한 것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윤회를 신봉하여 살아가는 이익이 손해

보다 클 때 그를 따를 것이며 이도 저도 아닌 경우에는 판단을 중지해야 한다.

(섣불리 있다 없다 하지 말라.)

(3) 부처님도 윤회에 대하여 만약 다음 세상이 있고, 선행과 악행의 업 들에

대한 결실과 과보가 있다면 몸이 무너져 죽은 뒤 좋은 곳(善處), 천상세계에

태어날 것이고 만약 다음 세상이 없고 선행과 악행의 업들에 대한 결실과

과보도 없다면 금생에 원한없고 악의없고 고통없이 행복하게 살 것이라면서

양자긍정의 태도를 취하셨다. 윤회가 있나 없나가 중요한 게 아니라 선행을

하느냐 약행을 하느냐가 관건이라는 이야기이리라. 이는 윤회가 불교를 믿는

조건이 아님을 말하며 어떤 교리에 대한 무조건적 신봉으로 시작하지 않는 종

교임을 가리킨다 하겠다.

(4) 윤회는 존재론적 윤회와 무아론적 윤회로 구분할 수 있는데 존재론적 윤회

多宇宙, 多生을 전제로 한 개념이고 무아론적 윤회는 라는 존재가 아

니고 오온의 업이 상속한다는 개념으로 그 차이를 숙고해야 한다. 존재론적

윤회는 그대로 믿으면 되겠으나 무아론적 윤회는 라는 실체가 없고 때문

에 현재의 이 가 윤회한다는 착각을 버려야 하며 내생의 유무, 어떤 존재

/형태로 재생할 것인가에 천착하기보다 오온(五蘊=색수상행식, 궁극적으로 색)

의 관리에 보다 집중해야 할 것이다.

(5) x스님, x스님 등이 윤회를 부정하는 배경에는 선불교의 영향이 작용하

는 것 같다. 선불교는 화엄을 기초로 하고 있고 번뇌 = 열반, 중생 = 부처라

는 관념에서 수처작주(隨處作主: 언제 어디서나 내가 곧 주인)하기에 과정을

생략한 결론만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지금·여기를 중요시하여 활발

하게 살다가 미련없이 사라지는 스타일을 지향하는 어찌 보면 단멸론과 비슷

한 사고를 가지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부처님은 단멸론도 Atman을 전제로 한 眞我論이나 唯我論을 모두

부정하셨다. 윤회의 주체는 찰나생·찰나멸하는 오온이기에 인과에 바탕을 둔

과학적 사고방식으로 그 맥락을 이해(正見)할 때 비로소 자발적 믿음이 형성되

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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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티벳불교의 린포체, 환생 문제는 티벳이라는 환경에서 태어난 고유한 문화

인 것 같다. 아주 어린 아이를 환생대상으로 간택(설정)하여 수많은 교육과 훈

련으로 성자로 키워내는 시스템, 그리 하여 그 영적 존재가 고의 바다를 헤매

는 중생(민중)들에게 희망과 위로를 주게 하는 장치 - 그 가치를 따질 일이지

사실이냐 아니냐로 판단할 사안은 아닌 것 같다.

(7) 윤회는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 모든 존재는 엄청난 생존에너지를 가지

고 태어나기에(生來) 갈애가 필연적으로 수반되고 이 것이 업으로 연결될 때

윤회는 지속된다. 그러나 이 고리를 끊어내게 되면 (아라한이 되면) 윤회는

사라진다. 고로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 행선주지스님

(8) 부처님의 가르침은 장구한 세월에 걸쳐 여러 지역으로 전파, 확산되어 나

름대로의 고유한 형태로 변용되어 왔기에 이제 와서 모든 불교를 하나로 회통

하기는 어렵다고 보여진다. 우리 온라인 불자들은 가능한 부처님 당시의 상황과 가르침을 설해놓았다고

(원음이라고) 여겨지는 니까야를 최전방에 놓고 여러 불교를 비교·연구하면서

진리를 찾아가자. 5. “온라인 불자회에 대한 인상“ 1) 신선하다. 이렇게 출가스님들과 재가신도들이 머리를 맞대고 자유롭게 토론

하며 학습하는 곳이 어디 있나? 지금까지 일방적 법문, 강의형태의 모임이

대부분인데 여기는 새로운 시도를 하는 모임이다. 2) 다양한 의견을 한 자리에서 들을 수 있어 좋고 듣는 것만으로도 공부가 된

. 꼭 자기의견을 발표하지 않아도 좋으니 부담이 없다. 3) 단순하게 교리, 가르침만 공부하지 않고 사회현실에 대한 의견도 교환하니

이른바 중생과 함께라는 보살정신도 더 하고 공소에 빠지지 않아 좋다. 4) 편하다. 숨어서 들었는데도 머리에 와닿고 친근감이 생긴다 신보살

5) 시대의 변화에 맞추어 토론학습 과정을 (유튜브 등에) 공개하여 보자. 스스

로의 발전에 도움이 될 수 있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유익한 영향을 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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