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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불자회

7월 20일 목요일 오후 9시 15분에 대반열반경(D16) -광채가 나는 여래의 몸

7월 20일 목요일 오후 9시 15분에 대반열반경(D16)  <온라인불자회> 공부모임을 시작합니다.

다 같이 합장하고 큰 소리로 합창합니다.

 

나모 따사 바가와또 아라하또 삼마 삼붓다사(Namo tassa bhagavato arahato sammāsambuddhassa)
나모 따사 바가와또 아라하또 삼마 삼붓다사(Namo tassa bhagavato arahato sammāsambuddhassa)
나모 따사 바가와또 아라하또 삼마 삼붓다사(Namo tassa bhagavato arahato sammāsambuddhassa)

 

붓당 사라남 가차미 (Buddham Saranam Gacchami)  부처님께 귀의합니다.(3번)

담망 사라남 가차미 (Dhammam Saranam Gacchami) 가르침에 귀의합니다.()

상강 사라남 가차미 (Sangham Saranam Gacchami)  승가에 귀의합니다.()

 

 

 

 

광채가 나는 여래의 몸

 

4.37. 뿍꾸사 말라뿟따가 물러간 지 오래지 않아서 아난다 존자는 지금 입을 수 있는 황금색 옷을 세존께 입혀드렸다. 세존의 몸에 그 옷을 입혀드렸지만 [세존의 몸에서] 그 옷의 황금빛은 죽어 버린 것처럼 빛이 나지 않았다. 그러자 아난다 존자는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경이롭습니다, 세존이시여. 놀랍습니다, 세존이시여. 세존이시여, 여래의 피부색이 이렇게 청정하고 이렇게 깨끗하다니요. 세존이시여, 지금 입을 수 있는 황금색 옷을 세존의 몸에 입혀드렸지만 그 옷의 황금빛은 마치 광채가 죽어 버린 것처럼 빛이 나지 않습니다.”

참으로 그러하다, 아난다여. 참으로 그러하다, 아난다여. 아난다여, 두 가지 경우에 여래의 몸은 지극히 청정하고 피부색은 깨끗하게 된다. 그러면 그 두 가지 경우란 어떤 것인가? 아난다여, 여래가 위없는 정등각을 깨달은 그 밤과 여래가 무여열반의 요소[]로 반열반하는 밤이다. 아난다여, 이런 두 가지 경우에 여래의 몸은 지극히 청정하고, 피부색은 깨끗하게 된다.”

 

4.38. “아난다여, 오늘 밤 삼경에 꾸시나라 근처에 있는 말라들의 살라 숲에서 한 쌍의 살라 나무[娑羅双樹] 사이에서 여래의 반열반이 있을 것이다. 오라, 아난다여. 까꿋타 강으로 가자.”

그렇게 하겠습니다, 세존이시여.”라고 아난다 존자는 세존께 대답하였다.

 

빛나는 황금색 옷 두 벌을 뿍꾸사는 바쳤으며

그것을 입은 황금색 피부를 가진 스승은 더 빛이 났다.

 

4.39. 그리고 세존께서는 많은 비구 승가와 함께 까꿋타 강으로 가셨다. 가서는 까꿋타 강(kakudhā nadī )에 들어가서 목욕을 하고 물을 마시고 다시 나오셔서 망고 숲으로 가셨다. 

Atha kho bhagavā mahatā ­bhik­khu­saṃ­ghena saddhiṃ yena kakudhā nadī tenupasaṅkami; upasaṅkamitvā kakudhaṃ nadiṃ ajjhogāhetvā nhatvā ca pivitvā ca paccuttaritvā yena ambavanaṃ tenupasaṅkami.

 

가셔서는 쭌다까 존자를 불러서 말씀하셨다. “준다까여, 가사를 네 겹으로 접어서 [자리를] 만들어라. 쭌다까여, 피곤하구나. 나는 좀 앉아야겠다.”

 Upasaṅkamitvā āyasmantaṃ cundakaṃ āmantesi: “iṅgha me tvaṃ, cundaka, catugguṇaṃ saṅghāṭiṃ paññapehi, kilantosmi, cundaka, nipajjissāmī”ti.

 

그렇게 하겠습니다, 세존이시여.”라고 쭌다까 존자는 세존께 대답한 뒤 가사를 네 겹으로 접어서 [자리를] 만들었다.

4.40. 그러자 세존께서는 발과 발을 포개시고, 마음챙기고 알아차리시면서[正念正知] 일어날 시간을 인식하여 마음에 잡도리하신 후 오른쪽 옆구리로 사자처럼 누우셨다. 쭌다까 존자는 거기 세존의 앞에 앉았다.

“Evaṃ, bhante”ti kho āyasmā cundako bhagavato paṭissutvā catugguṇaṃ saṅghāṭiṃ paññapesi. Atha kho bhagavā dakkhiṇena passena sīhaseyyaṃ kappesi pāde pādaṃ accādhāya sato sampajāno uṭṭhānasaññaṃ manasikaritvā. Āyasmā pana cundako tattheva bhagavato purato nisīdi.

 

 

 

 

 

4.41. 부처님은 까꿋타 강으로 가셨으니

투명하고 맑고 혼탁하지 않은 [그 강에]

세상에서 비할 데 없는 큰 스승 여래께선

심히 지친 몸을 담그고 목욕하고 물을 마시고 나오셨다.

비구 승가의 수장이시고

여기 [이 세상에서] 법을 설하시는 분

대 선인(仙人)이신 그분 세존께서는

비구 승가에 둘러싸여서 망고 숲으로 가셨다.

쭌다까라는 비구를 불러서 말씀하셨으니

네 겹으로 접은 가사 위에 나는 누우리라.’.

자신을 잘 닦은 분에게서 명을 받은 쭌다는

네 겹으로 가사를 접어서 [자리를] 만들었다.

스승께서는 피로한 몸을 누이셨나니

쭌다도 그분 앞에 앉았다.

 

4.42. 그런 후 세존께서는 아난다 존자를 불러서 말씀하셨다. “아난다여, 그런데 대장장이의 아들 쭌다가 이렇게 스스로를 힐난할지도 모른다. ‘여보게 쭌다여, 여래께서는 네가 드린 탁발 음식을 마지막으로 드시고 반열반에 드셨으니 이건 참으로 너의 잘못이고 너의 불행이로구나.’

아난다여, 대장장이 쭌다의 아들에게 이와 같이 말하여 자책감을 없애주어야 한다. ‘도반 쭌다여, 여래께서는 그대가 드린 탁발 음식을 마지막으로 드시고 반열반에 드셨으니 이건 그대의 공덕이고 그대의 행운입니다. 도반 쭌다여, 모든 곳에서 두루 결실을 가져오고 모든 곳에서 두루 과보를 가져오는 두 가지 탁발 음식이 다른 탁발 음식들을 훨씬 능가하는 더 큰 결실과 더 큰 이익을 가져다준다고 나는 세존의 면전에서 직접 듣고 세존의 면전에서 직접 받아 지녔습니다.

어떤 것이 둘입니까? 그 탁발 음식을 드시고 여래께서 위없는 정등각을 깨달으신 것과 그 탁발 음식을 드시고 여래께서 무여열반의 요소[]로 반열반을 하신 것입니다. 이런 두 가지 탁발 음식은 더 큰 결실과 더 큰 이익을 가져다줍니다. 다른 탁발 음식들을 훨씬 능가합니다.

 

 

이제 대장장이의 아들 쭌다님은 긴 수명Āyu­을 가져다 줄 업을 쌓았습니다. 이제 대장장이의 아들 쭌다님은 좋은 용모vaṇṇa를 가져다 줄 업을 쌓았습니다. 이제 대장장이의 아들 쭌다님은 행복sukha을 가져다 줄 업을 쌓았습니다. 이제 대장장이의 아들 쭌다님은 명성yasa­을 가져다 줄 업을 쌓았습니다. 이제 대장장이의 아들 쭌다님은 천상sagga에 태어날 업을 쌓았습니다. 이제 대장장이의 아들 쭌다님은 위세ādhipa­teyya를 가질 업을 쌓았습니다.’라고.

아난다여, 이렇게 대장장이의 아들 쭌다의 자책감을 없애주어야 한다.”

Āyu­saṃ­vatta­ni­kaṃ āyasmatā cundena kammāraputtena kammaṃ upacitaṃ, vaṇṇa­saṃ­vatta­ni­kaṃ āyasmatā cundena kammāraputtena kammaṃ upacitaṃ, sukha­saṃ­vatta­ni­kaṃ āyasmatā cundena kammāraputtena kammaṃ upacitaṃ, yasa­saṃ­vatta­ni­kaṃ āyasmatā cundena kammāraputtena kammaṃ upacitaṃ, sagga­saṃ­vatta­ni­kaṃ āyasmatā cundena kammāraputtena kammaṃ upacitaṃ, ādhipa­teyya­saṃ­vatta­ni­kaṃ āyasmatā cundena kammāraputtena kammaṃ upacitan’ti. Cundassa, ānanda, kammā­ra­puttassa evaṃ vippaṭisāro paṭivinetabbo”ti. Atha kho bhagavā etamatthaṃ viditvā tāyaṃ velāyaṃ imaṃ udānaṃ udānesi:

 

*ādhipa­teyya­ (neuter) sovereignty, power; control, controlling influence

(adjective) powerful, controlling, sovereign

saṃ­vatta­ni­kaṃ adjective, conducive to; involving

 

 

4.43. 그때 세존께서는 이런 뜻을 드러내신 뒤 다음의 감흥어를 읊으셨다.

 

베풂에 의해서 공덕은 증가하고

제어에 의해서 증오는 쌓이지 않는다.

지혜로운 자 사악함을 없애고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을 버려서 열반을 얻는다.”

 

 

한 쌍의 살라 나무  26. Yamakasālā

 

5.1. 그러자 세존께서는 아난다 존자를 불러서 말씀하셨다. “오라, 아난다여. 히란냐와띠(hiraññavati) 강의 저쪽 언덕, 꾸시나라 근처에 있는 말라들의 살라 숲으로 가자.”

Atha kho bhagavā āyasmantaṃ ānandaṃ āmantesi: “āyāmānanda, yena hiraññavatiyā nadiyā pārimaṃ tīraṃ, yena kusinārā upavattanaṃ mallānaṃ sālavanaṃ tenu­pasaṅka­mis­sāmā”ti.

 

 

그렇게 하겠습니다, 세존이시여.”라고 아난다 존자는 세존께 대답했다. 그때 세존께서는 많은 비구 승가와 함께 히란냐와띠 강의 저쪽 언덕, 꾸시나라 근처에 있는 말라들의 살라 숲으로 가셨다.

가셔서는 아난다 존자를 불러서 말씀하셨다.

“Evaṃ, bhante”ti kho āyasmā ānando bhagavato paccassosi. Atha kho bhagavā mahatā ­bhik­khu­saṃ­ghena saddhiṃ yena hiraññavatiyā nadiyā pārimaṃ tīraṃ, yena kusinārā upavattanaṃ mallānaṃ sālavanaṃ tenupasaṅkami. Upasaṅkamitvā āyasmantaṃ ānandaṃ āmantesi:

 

 

아난다여, 그대는 한 쌍의 살라 나무 사이에 북쪽으로 머리를 둔 침상을 만들어라. 아난다여, 피곤하구나. 누워야겠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세존이시여.”라고 아난다 존자는 세존께 대답한 뒤 두 살라 나무 사이에 북쪽으로 머리를 둔 침상을 만들었다. 그러자 세존께서는 발과 발을 포개고 마음챙기고 알아차리시면서[正念正知] 오른쪽 옆구리로 사자처럼 누우셨다.

“iṅgha me tvaṃ, ānanda, antarena yamakasālānaṃ uttarasīsakaṃ mañcakaṃ paññapehi, kilantosmi, ānanda, nipajjissāmī”ti. “Evaṃ, bhante”ti kho āyasmā ānando bhagavato paṭissutvā antarena yamakasālānaṃ uttarasīsakaṃ mañcakaṃ paññapesi. Atha kho bhagavā dakkhiṇena passena sīhaseyyaṃ kappesi pāde pādaṃ accādhāya sato sampajāno.

 

 

5.2. 그러자 한 쌍의 살라 나무는 때 아닌 꽃들로 만개하여 여래께 예배를 올리기 위해서 여래의 몸(sarīraṃ) 위로 떨어지고 흩날리고 덮었다. 하늘나라의 만다라와 꽃들이 허공에서 떨어져서 여래께 예배를 올리기 위해서 여래의 몸 위로 떨어지고 흩날리고 덮었다. 하늘나라의 전단향 가루가 허공에서 떨어져서 여래께 예배를 올리기 위해서 여래의 몸 위로 떨어지고 흩날리고 덮었다. 하늘나라의 음악(saṅgītāni)이 여래께 예배를 올리기 위해서 허공에서 연주되었으며 하늘나라의 노래가 여래께 예배를 올리기 위해서 울려 퍼졌다.

Tena kho pana samayena yamakasālā sabba­phāli­phullā honti akālapupphehi. Te tathāgatassa sarīraṃ okiranti ajjhokiranti abhippakiranti tathāgatassa pūjāya. Dibbānipi mandā­ra­va­pupphāni antalikkhā papatanti, tāni tathāgatassa sarīraṃ okiranti ajjhokiranti abhippakiranti tathāgatassa pūjāya. Dibbānipi candanacuṇṇāni antalikkhā papatanti, tāni tathāgatassa sarīraṃ okiranti ajjhokiranti abhippakiranti tathāgatassa pūjāya. Dibbānipi tūriyāni antalikkhe vajjanti tathāgatassa pūjāya. Dibbānipi saṅgītāni antalikkhe vattanti tathāgatassa pūjāya.

 

 

5.3. 그러자 세존께서는 아난다 존자를 불러서 말씀하셨다. “아난다여, 한 쌍의 살라 나무는 때 아닌 꽃들로 만개하여 여래께 예배를 올리기 위해서 여래의 몸 위로 떨어지고 흩날리고 덮이는구나. 하늘나라의 만다라와 꽃들이 허공에서 떨어져서 여래께 예배를 올리기 위해서 여래의 몸 위로 떨어지고 흩날리고 덮이는구나. 하늘나라의 전단향 가루가 허공에서 떨어져서 여래께 예배를 올리기 위해서 여래의 몸 위로 떨어지고 흩날리고 덮이는구나. 하늘나라의 음악이 여래께 예배를 올리기 위해서 허공에서 연주되고 하늘나라의 노래가 여래께 예배를 올리기 위해서 울려 퍼지는구나.아난다여, 그러나 이러한 것으로는 여래를 존경하고 존중하고 숭상하고 예배하는 것이 아니다. 

 

 

 

아난다여, 비구나 비구니나 청신사나 청신녀가 [출세간]법에 이르게 하는 법을 닦고, 합당하게 도를 닦고, 법을 따라 행하며 머무는 것이 참으로 최고의 예배로 여래를 존경하고 존중하고 숭상하고 예배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난다여, 여기서 우리는 [출세간]법에 이르게 하는 법을 닦고, 합당하게 도를 닦고, 법을 따라 행하며 머물러야 한다.”

Yo kho, ānanda, bhikkhu vā bhikkhunī vā upāsako vā upāsikā vā dhammā­nu­dhammap­paṭi­panno viharati sāmīcip­paṭi­panno anudhammacārī, so tathāgataṃ sakkaroti garuṃ karoti māneti pūjeti apaciyati, paramāya pūjāya. Tasmātihānanda, dhammā­nu­dhammap­paṭi­pannā viharissāma sāmīcip­paṭi­pannā anu­dhamma­cāri­noti. Evañhi vo, ānanda, sikkhitabban”ti.

 

 

우빠와나 장로

 

5.4. 그때에 우빠와나 존자가 세존의 앞에 서서 세존께 부채를 부쳐드리고 있었다. 그러자 세존께서는 비구여, 저리로 가거라. 내 앞에 서지 말라.”고 하시면서 우빠와나 존자를 달가워하지 않으셨다.

그러자 아난다 존자에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우빠와나 존자는 오랜 세월 세존의 시자였으며 항상 임석해 있었고 항상 곁에 모시고 살았다. 그런데 지금 세존께서는 마지막 [임종]시간에 이르러 비구여, 저리로 가거라. 내 앞에 서지 말라.’고 하시면서 우빠와나 존자를 달가워하지 않으신다. 무슨 이유와 무슨 조건 때문에 세존께서는 비구여, 저리로 가거라. 내 앞에 서지 말라.’고 하시면서 우빠와나 존자를 달가워하지 않으시는 것일까?’

Tena kho pana samayena āyasmā upavāṇo bhagavato purato ṭhito hoti bhagavantaṃ bījayamāno. Atha kho bhagavā āyasmantaṃ upavāṇaṃ apasāresi: “apehi, bhikkhu, mā me purato aṭṭhāsī”ti. Atha kho āyasmato ānandassa etadahosi: “ayaṃ kho āyasmā upavāṇo dīgharattaṃ bhagavato upaṭṭhāko santikāvacaro samīpacārī. Atha ca pana bhagavā pacchime kāle āyasmantaṃ upavāṇaṃ apasāreti: ‘apehi, bhikkhu, mā me purato aṭṭhāsī’ti. Ko nu kho hetu, ko paccayo, yaṃ bhagavā āyasmantaṃ upavāṇaṃ apasāreti: ‘apehi, bhikkhu, mā me purato aṭṭhāsī’”ti?

 

 

 

5.5. 그래서 아난다 존자는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우빠와나 존자는 오랜 세월 세존의 시자였으며 항상 임석해 있었고 항상 곁에 모시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지금 세존께서는 마지막 [임종]시간에 이르러 비구여, 저리로 가거라. 내 앞에 서지 말라.’고 하시면서 우빠와나 존자를 달가워하지 않으십니다. 세존이시여, 무슨 이유와 무슨 조건 때문에 세존께서는 비구여, 저리로 가거라. 내 앞에 서지 말라.’고 하시면서 우빠와나 존자를 달가워하지 않으시는 것입니까?”

Atha kho āyasmā ānando bhagavantaṃ etadavoca: “ayaṃ, bhante, āyasmā upavāṇo dīgharattaṃ bhagavato upaṭṭhāko santikāvacaro samīpacārī. Atha ca pana bhagavā pacchime kāle āyasmantaṃ upavāṇaṃ apasāreti: ‘apehi, bhikkhu, mā me purato aṭṭhāsī’ti. Ko nu kho, bhante, hetu, ko paccayo, yaṃ bhagavā āyasmantaṃ upavāṇaṃ apasāreti: ‘apehi, bhikkhu, mā me purato aṭṭhāsī’”ti? 

 

 

아난다여, 여래를 친견하기 위해서 신들은 꾸시나라 근처에 있는 말라들의 살라 숲을 12요자나까지 가득 채우고, 대략 열 곳의 세계로부터 모여들었다. 이 지역은 머리카락 한 올이 들어갈 틈이 없을 정도로, 큰 위력을 지닌 신들로 채워지지 않은 곳이 없다. 아난다여, 신들은 이렇게 푸념하고 있다. ‘우리는 참으로 여래를 친견하기 위해서 멀리서 왔다. 참으로 드물게 여래ㆍ아라한ㆍ정등각께서는 세상에 태어나신다. 오늘 밤 삼경에 그런 여래의 반열반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 큰 위력을 가진 비구가 세존의 앞에 서서 막고 있어서, 우리는 마지막 [임종]시간에 여래를 친견할 수가 없구나.’라고.”

“Yebhuyyena, ānanda, dasasu lokadhātūsu devatā sannipatitā tathāgataṃ dassanāya. Yāvatā, ānanda, kusinārā upavattanaṃ mallānaṃ sālavanaṃ samantato dvādasa yojanāni, natthi so padeso vālag­ga­koṭi­nit­tuda­na­mat­topi mahesakkhāhi devatāhi apphuṭo. Devatā, ānanda, ujjhāyanti: ‘dūrā ca vatamha āgatā tathāgataṃ dassanāya. Kadāci karahaci tathāgatā loke uppajjanti arahanto sammāsambuddhā. Ajjeva rattiyā pacchime yāme tathāgatassa parinibbānaṃ bhavissati. Ayañca mahesakkho bhikkhu bhagavato purato ṭhito ovārento, na mayaṃ labhāma pacchime kāle tathāgataṃ dassanāyā’”ti.

 

 

 

5.6. “세존이시여, 그러면 세존께서는 어떠한 신들을 마음에 잡도리하십니까?”

아난다여, 허공에서 [땅을 창조하여] 땅의 인식을 가진 신들이 있나니 그들은 머리칼을 뜯으면서 울부짖고 손을 마구 흔들면서 울부짖고 다리가 잘린 듯이 넘어지고 이리 뒹굴고 저리 뒹굴면서 세존께서는 너무 빨리 반열반하려 하시는구나. 너무 빨리 선서께서는 반열반하려 하시는구나. 너무 빨리 눈을 가진 분이 세상에서 사라지려 하시는구나.’라고 한다.

“Kathaṃbhūtā pana, bhante, bhagavā devatā manasikarotī”ti? “Santānanda, devatā ākāse patha­vī­saññi­niyo kese pakiriya kandanti, bāhā paggayha kandanti, chinnapātaṃ papatanti, āvaṭṭanti, vivaṭṭanti: ‘atikhippaṃ bhagavā pari­nib­bā­yis­sati, atikhippaṃ sugato pari­nib­bā­yis­sati, atikhippaṃ cakkhuṃ loke antara­dhāyis­satī’ti.

 

 

아난다여, 땅에서 [땅을 창조하여] 땅의 인식을 가진 신들이 있나니 그들은 머리칼을 뜯으면서 울부짖고 손을 마구 흔들면서 울부짖고 다리가 잘린 듯이 넘어지고 이리 뒹굴고 저리 뒹굴면서 세존께서는 너무 빨리 반열반하려 하시는구나. 너무 빨리 선서께서는 반열반하려 하시는구나. 너무 빨리 눈을 가진 분이 세상에서 사라지려 하시는구나.’라고 한다.

Santānanda, devatā pathaviyaṃ patha­vī­saññi­niyo kese pakiriya kandanti, bāhā paggayha kandanti, chinnapātaṃ papatanti, āvaṭṭanti, vivaṭṭanti: ‘atikhippaṃ bhagavā pari­nib­bā­yis­sati, atikhippaṃ sugato pari­nib­bā­yis­sati, atikhippaṃ cakkhuṃ loke antara­dhāyis­satī’ti.

 

 

그러나 애욕을 벗어난 신들은 마음챙기고 알아차리면서 형성된 것들은 무상하다. 그러니 여기서 [울부짖는다 해서]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라고 한다.”

Yā pana tā devatā vītarāgā, tā satā sampajānā adhivāsenti: ‘aniccā saṅkhārā, taṃ kutettha labbhā’”ti.

 

 

 

 


 

 

논점

 

 

1. "오른쪽 옆구리로 사자처럼 누우셨다." 사자도 오른쪽 옆구리로 눕나?

 

 

2. "보시의 공덕으로 긴 수명Āyuṃ, 좋은 용모vaṇṇaṃ, 행복sukhaṃ,명성yasa,천상sagga,위세ādhipa­teyya를 가질 6가지 업을 쌓았습니다."라고 설명한다. 이러한 보시공덕은 다른곳에 5가지 보시 공덕과 차이를 보인다. 그 이유는 ? 

 

---“비구들이여, 음식을 보시하는 사람은 보시받는 사람들에게 다섯 가지를 보시한다. 무엇이 다섯인가?”

 수명Āyuṃ, 좋은 용모vaṇṇaṃ, 행복sukhaṃ, 힘balaṃ을 보시하고 총명함(paṭibhānaṃ)을 보시한다.

Āyuṃ deti, vaṇṇaṃ deti, sukhaṃ deti, balaṃ deti, paṭibhānaṃ deti.--음식 경(A5:37)Bhojana-sutta--

 

 

 

 

3.대장장이의 아들 쭌다의 자책감을 없애주는 것은 부처님의 자비인가? 아니면 정말 쭌다는 아무 잘못이 없기 때문인가? 

 

 

 

 

4. 아난다여, 한 쌍의 살라 나무는 때 아닌 꽃들로 만개하여 여래께 예배를 올리기 위해서 여래의 몸 위로 떨어지고 흩날리고 덮이는구나. 하늘나라의 만다라와 꽃들이 허공에서 떨어져서 여래께 예배를 올리기 위해서 여래의 몸 위로 떨어지고 흩날리고 덮이는구나. 하늘나라의 전단향 가루가 허공에서 떨어져서 여래께 예배를 올리기 위해서 여래의 몸 위로 떨어지고 흩날리고 덮이는구나. 하늘나라의 음악이 여래께 예배를 올리기 위해서 허공에서 연주되고 하늘나라의 노래가 여래께 예배를 올리기 위해서 울려 퍼지는구나."

"아난다여, 그러나 이러한 것으로는 여래를 존경하고 존중하고 숭상하고 예배하는 것이 아니다. 아난다여, 비구나 비구니나 청신사나 청신녀가 법에 이르게 하는 법을 닦고, 합당하게 도를 닦고, 법을 따라 행하며 머무는 것이 참으로 최고의 예배로 여래를 존경하고 존중하고 숭상하고 예배하는 것이다." 이러한 설법을 듣고 느끼는 감상을 이야기 해보자.

 

 

 

 

 

5. “아난다여, 허공에서 [땅을 창조하여] 땅의 인식을 가진 신들이 있나니 ...아난다여, 땅에서 [땅을 창조하여] 땅의 인식을 가진 신들이 있나니 그들은 머리칼을 뜯으면서 울부짖고 손을 마구 흔들면서 울부짖고 다리가 잘린 듯이 넘어지고 이리 뒹굴고 저리 뒹굴면서 세존께서는 너무 빨리 반열반하려 하시는구나. 너무 빨리 선서께서는 반열반하려 하시는구나. 너무 빨리 눈을 가진 분이 세상에서 사라지려 하시는구나.’라고 한다."

땅에 있는데 다시 땅에서 땅을 창조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6. "애욕을 벗어난 신들은 마음챙기고 알아차리면서 형성된 것들은 무상하다. 그러니 여기서 [울부짖는다 해서]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라고 한다.” 애욕을 벗어난 신들은 어느 곳에서 온 신들인가? 

 

 

 

열반경 2023.7.20.강독 정리


광채가 나는 여래의 몸 (4.37 - 4.43)
개요: 아난다는 뿍꾸사 말라뿟따가 보시한 황금색 옷을 부처님께 입혀드렸다. 그러나 황금색 옷은 전혀 빛이 나지 않았는데 이유는 부처님의 몸이 반열반을 앞두고 지극히 청정하고 피부가 깨끗해졌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빛을 잃었다). 이 현상에 놀란 아난다에게 여래는 두 번 (깨달음을 이룬 밤과 반열반에 드는 밤, 즉 가장 중요한 때) 그 몸이 빛을 발한다고 말씀하심.  
부처님은 오늘 밤 삼경에 꾸시나라의 ‘사라쌍수’에서 당신이 반열반하시겠다고 말씀하시고 ‘까꿋타’강에 가 목욕을 하시고 물도 마심.  다시 망고 숲에 돌아오신 부처님은 쭌다까 존자 (대장장이 아들 쭌다와 다른 인물, 사리뿟타의 동생임)에게 가사를 4겹으로 접어 자리를 만들게 하시고 거기에 오른쪽 옆구리로 사자처럼 누우셨다.  그런 후 아난다 존자를 불러 대장장이 아들 쭌다가 부처님에게 식사공양을 올린 결과로 반열반에 드신(돌아가신) 사실에 괴로워할까봐 공양이 오히려 공덕이요 행운임을 알게 하라고 당부하심.  즉, 쭌다의 공양으로 인해 부처님이 무여열반을 이루었으니 쭌다는 긴 수명, 좋은 용모, 행복, 명성 및 천상에 태어나고 위세(권세)를 받을 수 있는 업을 쌓은 것이라는 것.

 


논점-1: “부처님이 오른쪽 옆구리로 사자처럼 누우셨다고 했는데 사자도 (실제) 오른쪽 옆구리로 눕는 것일까?”
가) 누운 모습이 사자처럼 위엄있다는 표현이지 사자가 그렇게 눕는다는 의미는 아닐 것이다.
나) 사자는 백수의 왕으로 특히 숫사자는 덩치나 갈기 등 위엄이 빼어나다.  호랑이와 달리 집단생활을 하기에 출가수행자 들의 공동생활과도 비슷하다. 경전에 사자가 많이 인용되는데 불교는 처음부터 사자와 인연이 깊은 것 같다.  사자좌는 부처님의 설법 대좌(臺座), 사자후는 부처님의 설법을 말함.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처럼’이라는 숫타니파타 게송도 있고...
다) 누울 때 오른쪽으로 누우라는 데는 이유가 있다.  심장의 압박이나 위장의 형상, 간장 등 장기의 배치로 보아 오른쪽으로 눕는 것이 건강에도 좋고 잠도 편히 잔다는 일설이 있다.
라) 참고로 인도(힌디)어에 사자는 "Singh"로 표기하며 여기에서 Singapore(싱가폴: 사자들의 나라). Sinhala(싱할라: 사자 민족, 스리랑카 민족 - 실제 가장 용맹한 민족으로 영국, 프랑스, 네델란드 등이 식민지 시대에 군사력으로 제압하지 못했음) 

 

 


논점-2: “보시의 공덕으로 긴 수명, 좋은 용모, 행복, 명성, 천상에 태어날 업, 위세를 가질 업을 쌓았다고 하였는데 이 보시공덕이 다른 것과 차이가 있다. 그 이유는?”
가) 보통의 보시공덕은 4가지인데 (수명, 용모, 행복, 위세) 여기에서 6가지나 거론한 이유는 그만큼 쭌다의 마지막 공양의 공덕이 크다는 (성도 때 수밧타의 우유죽 공양과 동등한) 의미이며 부처님 열반 후 혹시 발생할지 모를 쭌다에의 비난, 공격을 미리 차단하기 위한 부처님의 배려, 자비심인 것 같다.

 

 


논점-3: “대장장이의 아들 쭌다의 자책감을 없애주는 것은 부처님의 자비인가? 아니면 쭌다는 정말 아무 잘못이 없는가?”
가) 혹시 공양한 음식이 상했다 하드라도 고의가 아닌만큼 그의 허물은 없다고 보아야 하고 부처님은 오직 자비심으로 쭌다가 자책하거나 다른 대중으로부터 공박받는 것을 염려하신 것 같다.

한 쌍의 살라나무 (5.1 - 5.3)
개요: 마침내 부처님 일행은 꾸시나라 근처의 살라 숲에 도착하심. 부처님은 피곤하다시며 아난다에게 북쪽으로 머리를 둔 침상을 마련케 하고 자리에 누우심. (눕는 방식: 발과 발을 포개고, 마음 챙기고, 알아차리면서 -正念正知-, 사자처럼 오른쪽 옆구리로) 
이 때 한 쌍의 살라나무 (사라쌍수)는 꽃 들을 활짝 피워냈고, 허공에서 만다라 꽃비가 내려 부처님의 몸을 덮었다.  하늘나라의 전단향 가루가 내리고, 하늘나라 음악, 노래가 울려 퍼졌다.  그러나 부처님은 아난다에게 여래를 예배하기 위하여 꽃비가 내리고 전단향, 하늘나라 음악 및 노래가 필요한 게 아니라 4부대중이 출세간 법을 닦고, 합당한 도를 닦으며, 법을 따라 행하며 머무는 것이야말로 최고의 예배라고 말씀하셨음.

 


논점-4: “여래를 존중, 존경, 숭상하고 여래의 열반을 예배하기 위하여 만다라 꽃비, 전단향 가루, 하늘나라 음악과 노래를 바치는 것보다 4부대중이 법과 도를 닦고 법에 따라 행하며 머무는 것이 진정한 존경, 존중, 숭상이고 예배이다라는 설법에 대하여 느끼는 바는?”
가) 장엄(壯嚴)과 외식(外飾)으로 경배하는 것보다 자등명, 법등명에 따른 실질적 수행 및 수도가 더 중요하다.  보이는 것, 들리는 것, 향기로운 냄새, 맛있는 음식을 공양함보다 계를 지키고 선정을 닦아 통찰지를 얻어 해탈하는 것이야말로 부처님을 진정으로 받드는 길이다라는 가르침.

우빠와나 장로 (5.4 - 5.6)
이 때 우빠와나 존자가 부처님께 부채를 부쳐드리고 있었는데 부처님은 내 앞에 서지 말고 저리로 가거라며 달가워하지 않으셨다. 아난다는 속으로 참 우빠와나 존자가 오랜 시간 부처님을 시봉하여 왔는데 마지막 임종의 순간에 내치는 이유는 무엇일까 하고 괴이하게 생각하여 부처님께 왜 그러시는지 물었다.
부처님은 여래를 친견하기 위하여 신들이 대략 10곳의 세계로부터 모여들어 꾸시나라 살라 숲을 가득 채웠다. (인간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저 큰 위력을 지닌 신들이 머리카락 한 올 들어갈 틈이 없을 정도로 모여 여래의 반열반을 친견하고자 하는데 우빠와나 존자가 앞을 가로막고 있어 불평이 가득하기 때문이라고 답하셨다.  그럼 세존께서는 어떤 신 들을 마음으로 보고 계십니까?하고 물으니 허공에서 (땅을 창조하여) 땅의 인식을 가진 신 들은 울고불고 나뒹굴면서 선서의 반열반을 애통해하고 있고, 땅에서 (땅을 창조하여) 땅의 인식을 가진 신 들 역시 마찬가지로 팔짝팔짝 뛰면서 괴로워하고 있는데 오직 애욕을 벗어난 신들은 마음 챙기고 알아차리면서 ‘형성된 것들은 무상하다. 그러니 여기서 울부짖는다 해서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하면서 머물고 있음을 본다라고 대답하셨다.

 


논점-5: “땅에 있는데 다시 땅에서 땅을 창조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가) 어느 천신들은 신체형상이 극미세하여 땅에 서지 못하고 땅 속으로 꺼져버린다.  (정제된 버터와 참기름을 모래에 부으면 모래 속으로 스며들 듯이)  그래서 앙굿따라니까야 3:125 (핫타카 경)에 보면 천신의 아들 핫타까가 부처님 앞에 서려 하였지만 몸이 땅 속으로 스며들어버리자 부처님이 ‘네 몸을 거칠게 만들어라’라고 하여 그렇게 하는 대목이 나옴.  즉 색계의 하늘나라 중 정거천 정도에 거하는 천신들은 이 땅에 서기 위하여 몸을 변화시키는 (땅을 창조하는) 과정을 거쳐야 할 것이 아닌가 여겨진다.
나) 영혼결혼식에서 보면 신발을 준비하는 관습이 있다.  이 것도 어쩌면 상기와 같은 신을 위함일지 모르겠다.

 

 


논점-6: “애욕을 벗어난 신들은 어느 곳에서 온 신들인가?”
가) 4선정에 든 존재들은 행복과 괴로움을 벗어버리고 기쁨과 슬픔을 소멸하였으므로 적어도 4선정에 들어야 가능한 7가지 세상 (무상유정천, 광과천, 무번천, 무열천, 선현천, 선견천, 색구경천)의 천신들을 지칭하는 것으로 보임.
참고로 상기 핫타카는 무번천에서 왔다 함. 끝

 

 

pava부터 kakudhā강을 거쳐서 꾸시나라까지 가는 코스

 

 

빠와에 있는 공양터

 

 

빠와에 있는 마하비라 열반지

 

 

핫타까 경(A3:125) Hatthaka-sutta

 

1. 한때 세존께서는 사왓티에서 제따 숲의 급고독원에 머무셨다. 그때 신의 아들 핫타까가 밤이 아주 깊었을 때 아주 멋진 모습을 하고 온 제따 숲을 환하게 밝히면서 세존께 찾아갔다. 가서는 나는 세존의 앞에 서리라.’고 하였지만 땅으로 가라앉고 스며들어서 바로 설 수가 없었다

Ekaṃ samayaṃ bhagavā sāvatthiyaṃ viharati jetavane anātha­piṇḍi­kassa ārāme. Atha kho hatthako devaputto abhikkantāya rattiyā abhikkan­ta­vaṇṇo kevalakappaṃ jetavanaṃ obhāsetvā yena bhagavā tenupasaṅkami; upasaṅkamitvā: “bhagavato purato ṭhassāmī”ti osīdatimeva saṃsīdatimeva, na sakkoti saṇṭhātuṃ.

 

 

 

마치 정제된 버터와 참기름을 모래에 부으면 모래vālukāya 속으로 스며들고 배어들어서 설 수 없는 것처럼 신의 아들 핫타까는 ‘나는 세존의 앞에 서리라.’고 하였지만 가라앉고 스며들어서 바로 설 수가 없었다.

Seyyathāpi nāma sappi vā telaṃ vā vālukāya āsittaṃ osīdatimeva saṃsīdatimeva, na saṇṭhāti; evamevaṃ hatthako devaputto: “bhagavato purato ṭhassāmī”ti osīdatimeva saṃsīdatimeva, na sakkoti saṇṭhātuṃ.

 

 

 

 

2. 그러자 세존께서는 신의 아들 핫타까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핫타까여, 그대의 거친 몸을 만들어라.

Atha kho bhagavā hatthakaṃ devaputtaṃ etadavoca: “oḷārikaṃ, hatthaka, attabhāvaṃ abhinimmināhī”ti.

 

 

 

그렇게 하겠습니다, 세존이시여.”라고 신의 아들 핫타까는 세존께 대답한 뒤 자신의 거친 몸을 만들어서 세존께 절을 올린 뒤 한 곁에 섰다. 신의 아들 핫타까가 한 곁에 섰을 때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Evaṃ, bhante”ti, kho hatthako devaputto bhagavato paṭissutvā oḷārikaṃ attabhāvaṃ abhinimminitvā bhagavantaṃ abhivādetvā ekamantaṃ aṭṭhāsi. Ekamantaṃ ṭhitaṃ kho hatthakaṃ devaputtaṃ bhagavā etadavoca: 

 

 

 

핫타까여, 그대가 인간이었을 때에 그대에게 나타났던 그 법들이 지금도 나타나는가?”

세존이시여, 제가 인간이었을 때에 제게 나타났던 그 법들이 지금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인간이었을 때에 제게 나타나지 않았던 법들도 지금 제게 나타납니다

“Ye te, hatthaka, dhammā pubbe ­manus­sa­bhūtassa pavattino ahesuṃ, api nu te te dhammā etarahi pavattino”ti? “Ye ca me, bhante, dhammā pubbe ­manus­sa­bhūtassa pavattino ahesuṃ, te ca me dhammā etarahi pavattino; ye ca me, bhante, dhammā pubbe ­manus­sa­bhūtassa nappavattino ahesuṃ, te ca me dhammā etarahi pavattino.

 

 

 

세존이시여, 예를 들면 세존께서 지금 비구들과 비구니들과 청신사들과 청신녀들과 왕들과 대신들과 외도들과 외도의 제자들에 둘러싸여서 머무시는 것처럼 저도 신의 아들들에 둘러싸여서 지냅니다. 세존이시여, 신의 아들들은 멀리서도 ‘신의 아들 핫타까의 곁에서 법을 들으리라.’고 하면서 옵니다.

Seyyathāpi, bhante, bhagavā etarahi ākiṇṇo viharati bhikkhūhi bhikkhunīhi upāsakehi upāsikāhi rājūhi rāja­mahā­mattehi titthiyehi ­titthi­ya­sā­vakehi; evamevaṃ kho ahaṃ, bhante, ākiṇṇo viharāmi devaputtehi. Dūratopi, bhante, devaputtā āgacchanti hatthakassa devaputtassa santike ‘dhammaṃ sossāmā’ti. 

 

 

 

세존이시여, 저는 세 가지 법을 충족하지 못하고 만족하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무엇이 셋일까요?

세존이시여, 저는 세존을 친견하는 것을 충족하지 못하고 만족하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정법을 듣는 것을 충족하지 못하고 만족하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승가를 시중드는 것을 충족하지 못하고 만족하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이러한 세 가지 법을 충족하지 못하고 만족하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Tiṇṇāhaṃ, bhante, dhammānaṃ atitto appaṭivāno kālaṅkato. Katamesaṃ tiṇṇaṃ? Bhagavato ahaṃ, bhante, dassanassa atitto appaṭivāno kālaṅkato; sad­dhamma­savanas­sāhaṃ, bhante, atitto appaṭivāno kālaṅkato; saṅghassāhaṃ, bhante, upaṭṭhānassa atitto appaṭivāno kālaṅkato. Imesaṃ kho ahaṃ, bhante, tiṇṇaṃ dhammānaṃ atitto appaṭivāno kālaṅkatoti.

 

 

 

 

3. “저는 세존을 친견하는 것을

결코 충족하지 못하였습니다.

승가를 시중드는 것도

정법을 듣는 것도 그러하였습니다.

Nāhaṃ bhagavato  dassanassa,
Tittimajjhagā  kudācanaṃ;
Saṃghassa upaṭṭhānassa,
Sad­dhamma­savanassa ca.

 

 

높은 계를 수행하고

정법 듣는 것을 좋아하고

이러한 세 가지 법을 충족하지 못한 핫타까는

무번천(無煩天, Avihā)에 태어났습니다.”

Adhisīlaṃ sikkhamāno,
saddham­ma­savane rato;
Tiṇṇaṃ dhammānaṃ atitto,
hatthako avihaṃ gato”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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