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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불자회

7월 6일 목요일 오후 9시15분 대반열반경(D16) -네가지 권위

7월 6일 목요일 오후 9시 15분에 대반열반경(D16) 16번째 <온라인불자회> 공부모임을 시작합니다.

다 같이 합장하고 큰 소리로 합창합니다.

 

나모 따사 바가와또 아라하또 삼마 삼붓다사(Namo tassa bhagavato arahato sammāsambuddhassa)
나모 따사 바가와또 아라하또 삼마 삼붓다사(Namo tassa bhagavato arahato sammāsambuddhassa)
나모 따사 바가와또 아라하또 삼마 삼붓다사(Namo tassa bhagavato arahato sammāsambuddhassa)

 

붓당 사라남 가차미 (Buddham Saranam Gacchami)  부처님께 귀의합니다.(3번)

담망 사라남 가차미 (Dhammam Saranam Gacchami) 가르침에 귀의합니다.()

상강 사라남 가차미 (Sangham Saranam Gacchami)  승가에 귀의합니다.()

 

 

코끼리가 뒤돌아보듯  21. Nāgāpalokita

 

4.1. 그때 세존께서는 오전에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발우와 가사를 수하시고 걸식을 위해서 웨살리로 들어가셨다. 웨살리에서 걸식하여 공양을 마치고 걸식에서 돌아오시면서, 코끼리가 뒤를 돌아다보듯이(nāgāpalokitaṃ) 웨살리를 돌아다보신 후 아난다 존자를 불러서 말씀하셨다. “아난다여, 이것이 여래가 웨살리를 보는 마지막이 될 것이다. 오라, 아난다여. 이제 반다가마로 가자.”

그렇게 하겠습니다, 세존이시여.”라고 아난다 존자는 세존께 대답했다. 그러자 세존께서는 많은 비구 승가와 함께 반다가마로 가셨다. 세존께서는 거기 반다가마에서 머무셨다.

Atha kho bhagavā pubbaṇ­ha­samayaṃ nivāsetvā patta­cīvara­mādāya vesāliṃ piṇḍāya pāvisi. Vesāliyaṃ piṇḍāya caritvā pacchābhattaṃ piṇḍa­pāta­paṭik­kanto nāgāpalokitaṃ vesāliṃ apaloketvā āyasmantaṃ ānandaṃ āmantesi: “idaṃ pacchimakaṃ, ānanda, tathāgatassa vesāliyā dassanaṃ bhavissati. Āyāmānanda, yena bhaṇḍagāmo tenu­pasaṅka­mis­sāmā”ti. “Evaṃ, bhante”ti kho āyasmā ānando bhagavato paccassosi.

Atha kho bhagavā mahatā ­bhik­khu­saṅ­ghena saddhiṃ yena bhaṇḍagāmo tadavasari. Tatra sudaṃ bhagavā bhaṇḍagāme viharati. 

 

4.2. 거기서 세존께서는 비구들을 불러서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네 가지를 깨닫지 못하고 꿰뚫지 못하였기 때문에 나와 그대들은 이처럼 긴 세월을 치달리고 윤회하였다.Tatra kho bhagavā bhikkhū āmantesi: “catunnaṃ, bhikkhave, dhammānaṃ ananubodhā appaṭivedhā evamidaṃ dīghamaddhānaṃ sandhāvitaṃ saṃsaritaṃ mamañceva tumhākañca.

 

무엇이 네 가지인가? 비구들이여, 성스러운 계를 깨닫지 못하고 꿰뚫지 못하였기 때문에 나와 그대들은 이처럼 긴 세월을 치달리고 윤회하였다. Katamesaṃ catunnaṃ? Ariyassa, bhikkhave, sīlassa ananubodhā appaṭivedhā evamidaṃ dīghamaddhānaṃ sandhāvitaṃ saṃsaritaṃ mamañceva tumhākañca.

 

비구들이여, 성스러운 삼매를 깨닫지 못하고 꿰뚫지 못하였기 때문에, 나와 그대들은 이처럼 긴 세월을 치달리고 윤회하였다.   Ariyassa, bhikkhave, samādhissa ananubodhā appaṭivedhā evamidaṃ dīghamaddhānaṃ sandhāvitaṃ saṃsaritaṃ mamañceva tumhākañca. 

 

비구들이여, 성스러운 통찰지를 깨닫지 못하고 꿰뚫지 못하였기 때문에, 나와 그대들은 이처럼 긴 세월을 [이곳에서 저곳으로] 치달리고 윤회하였다. Ariyāya, bhikkhave, paññāya ananubodhā appaṭivedhā evamidaṃ dīghamaddhānaṃ sandhāvitaṃ saṃsaritaṃ mamañceva tumhākañca.

 

비구들이여, 성스러운 해탈을 깨닫지 못하고 꿰뚫지 못하였기 때문에, 나와 그대들은 이처럼 긴 세월을 [이곳에서 저곳으로] 치달리고 윤회하였다. Ariyāya, bhikkhave, vimuttiyā ananubodhā appaṭivedhā evamidaṃ dīghamaddhānaṃ sandhāvitaṃ saṃsaritaṃ mamañceva tumhākañca.

 

 

비구들이여, 이제 성스러운 계를 깨닫고 꿰뚫었다. 성스러운 삼매를 깨닫고 꿰뚫었다. 성스러운 통찰지를 깨닫고 꿰뚫었다. 성스러운 해탈을 깨닫고 꿰뚫었다. 그러므로 존재에 대한 갈애는 잘라졌고, 존재로 인도함은 부수어졌으며, 다시 태어남은 이제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Tayidaṃ, bhikkhave, ariyaṃ sīlaṃ anubuddhaṃ paṭividdhaṃ, ariyo samādhi anubuddho paṭividdho, ariyā paññā anubuddhā paṭividdhā, ariyā vimutti anubuddhā paṭividdhā, ucchinnā bhavataṇhā, khīṇā bhavanetti, natthi dāni punabbhavo”ti. 

 

 

4.3.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선서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신 뒤 다시 이와 같이 설하셨다.

Idamavoca bhagavā. Idaṃ vatvāna sugato athāparaṃ etadavoca satthā: 

 

계와 삼매와 통찰지와 위없는 해탈 

이 법들을 명성을 가진 고따마는 깨달았도다.

“Sīlaṃ samādhi paññā ca,
vimutti ca anuttarā;
Anubuddhā ime dhammā,
gotamena yasassinā.

 

 

이처럼 부처는 최상의 지혜로 안 뒤에

비구들에게 법을 설하였노라.

이제 괴로움의 끝을 낸

눈을 갖춘 스승은 반열반할 것이다.”

Iti buddho abhiññāya,
dhammamakkhāsi bhikkhunaṃ;
Duk­khas­santa­karo satthā,
cakkhumā parinibbuto”ti.

 

 

4.4. 참으로 이렇게 세존께서는 반다가마에 머무시면서 많은 비구들에게 법에 관한 말씀을 하셨다. “이러한 것이 계다. 이러한 것이 삼매다. 이러한 것이 통찰지다. 계를 철저히 닦아서 생긴 삼매는 큰 결실이 있고 큰 이익이 있다. 삼매를 철저히 닦아서 생긴 통찰지는 큰 결실이 있고 큰 이익이 있다. 통찰지를 철저히 닦아서 생긴 마음은 바르게 번뇌들로부터 해탈하나니, 바로 이 감각적 욕망에 기인한 번뇌와 존재에 기인한 번뇌와 무명에 기인한 번뇌이다.”라고.

Tatrāpi sudaṃ bhagavā bhaṇḍagāme viharanto etadeva bahulaṃ bhikkhūnaṃ dhammiṃ kathaṃ karoti: “iti sīlaṃ, iti samādhi, iti paññā. Sīla­pari­bhāvito samādhi mahapphalo hoti mahānisaṃso. Samā­dhi­pari­bhāvitā paññā mahapphalā hoti mahānisaṃsā. Paññā­pari­bhāvi­taṃ cittaṃ sammadeva āsavehi vimuccati, seyyathidaṃ—kāmāsavā, bhavāsavā, avijjāsavā”ti.

 

4.5. 그때 세존께서는 반다가마에서 원하는 만큼 머무신 뒤 아난다 존자를 불러서 말씀하셨다. “아난다여, 이제 핫티가마로  암바가마로  잠부가마로  보가나가라로 가자.”Atha kho bhagavā bhaṇḍagāme yathābhirantaṃ viharitvā āyasmantaṃ ānandaṃ āmantesi: “āyāmānanda, yena hatthigāmo, yena ambagāmo, yena jambugāmo, yena bhoganagaraṃ tenu­pasaṅka­mis­sāmā”ti. 

 

4.6. “그렇게 하겠습니다, 세존이시여.”라고 아난다 존자는 세존께 응답했다. 그리하여 세존께서는 많은 비구 승가와 함께 보가나가라에 도착하셨다.“Evaṃ, bhante”ti kho āyasmā ānando bhagavato paccassosi.Atha kho bhagavā mahatā ­bhik­khu­saṃ­ghena saddhiṃ yena bhoganagaraṃ tadavasari.

 

 

네 가지 큰 권위 22. ­Catuma­hāpa­desa­kathā

 

 

4.7. 세존께서는 거기 보가나가라에서 아난다 탑묘에 머무셨다. 거기서 세존께서는 비구들을 불러서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네 가지 큰 권위[大法教]를 설하리라. “Mendicants, I will teach you the four great references. 

Tatra sudaṃ bhagavā bhoganagare viharati ānande cetiye. Tatra kho bhagavā bhikkhū āmantesi: “cattārome, bhikkhave, mahāpadese desessāmi, 

 

 

그것을 듣고 마음에 잘 새겨라. 이제 설하리라.”

그렇게 하겠습니다, 세존이시여.”라고 비구들은 세존께 응답했다.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taṃ suṇātha, sādhukaṃ manasikarotha, bhāsissāmī”ti. “Evaṃ, bhante”ti kho te bhikkhū bhagavato paccassosuṃ. Bhagavā etadavoca:

 

4.8.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가 말하기를 도반들이여, 나는 이것을 세존의 면전에서 듣고 세존의 면전에서 받아 지녔습니다. 이것은 법이고 이것은 율이고 이것은 스승의 교법입니다.’(sammukhā metaṁ, āvuso, bhagavato sutaṁ sammukhā paṭiggahitaṁ, ayaṁ dhammo ayaṁ vinayo idaṁ satthusāsanan’ti.)라고 하면, 그런 비구의 말을 인정하지도 말고 공박하지도 말아야 한다. 인정하지도 공박하지도 않은 채로 그 단어와 문장(padabyañjanāni)들을 주의 깊게 들어서 경과 대조해 보고 율에 비추어 보아야 한다.

그의 말을 경과 대조해 보고 율에 비추어 보아서, 만일 경과 견주어지지 않고 율과 맞지 않는다면 여기서 이것은 세존의 말씀이 아닙니다. 이 비구가 잘못 호지한 것입니다.’라는 결론에 도달해야 한다. 비구들이여, 이렇게 해서 이것은 물리쳐야 한다. 그의 말을 경과 견주어 보고 율에 비추어 보아서 만일 경과 견주어지고 율과 맞는다면 여기서 이것은 세존의 말씀입니다. 이 비구가 잘 호지한 것입니다. ‘addhā idaṃ tassa bhagavato vacanaṃ; imassa ca bhikkhuno suggahitan’ti.라는 결론에 도달해야 한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첫 번째 큰 권위이다.”

“Idha, bhikkhave, bhikkhu evaṃ vadeyya: ‘sammukhā metaṃ, āvuso, bhagavato sutaṃ sammukhā paṭiggahitaṃ, ayaṃ dhammo ayaṃ vinayo idaṃ satthusāsanan’ti. Tassa, bhikkhave, bhikkhuno bhāsitaṃ neva abhinan­di­tab­baṃ nap­paṭik­kosi­tabbaṃ. Anabhinanditvā appaṭikkositvā tāni padabyañjanāni sādhukaṃ uggahetvā sutte osāretabbāni, vinaye sandas­setab­bāni. Tāni ce sutte osāriyamānāni vinaye san­dassi­ya­mānāni na ceva sutte osaranti, na ca vinaye sandissanti, niṭṭhamettha gantabbaṃ: ‘addhā idaṃ na ceva tassa bhagavato vacanaṃ; imassa ca bhikkhuno duggahitan’ti. Iti hetaṃ, bhikkhave, chaḍḍeyyātha. Tāni ce sutte osāriyamānāni vinaye san­dassi­ya­mānāni sutte ceva osaranti, vinaye ca sandissanti, niṭṭhamettha gantabbaṃ: ‘addhā idaṃ tassa bhagavato vacanaṃ; imassa ca bhikkhuno suggahitan’ti. Idaṃ, bhikkhave, paṭhamaṃ mahāpadesaṃ dhāreyyātha. (1)

 

 

4.9.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가 말하기를 도반들이여, 아무개 거처에 장로들과 유명한 스승(sathero sapāmokkho.)이 계시는 승가가 있습니다. 그런 나는 이것을 그 승가의 면전에서 듣고 승가의 면전에서 받아 지녔습니다. 이것은 법이고 이것은 율이고 이것은 스승의 교법입니다.’라고 하면, 그런 비구의 말을 인정하지도 말고 공박하지도 말아야 한다. 인정하지도 공박하지도 않은 채로 그 단어와 문장들(padabyañjanāni)을 주의 깊게 들어서 경과 대조해 보고 율에 비추어 보아야 한다.

그의 말을 경과 대조해 보고 율에 비추어 보아서, 만일 경과 견주어지지 않고 율과 맞지 않는다면 여기서 이것은 세존의 말씀이 아닙니다. 이 비구가 잘못 호지한 것입니다.’라는 결론에 도달해야 한다. 비구들이여, 이렇게 해서 이것은 물리쳐야 한다. 그의 말을 경과 대조해 보고 율에 비추어 보아서 만일 경과 견주어지고 율과 맞는다면Tāni ce sutte osāriyamānāni vinaye san­dassi­ya­mānāni sutte ceva osaranti, vinaye ca sandissanti 여기서 이것은 세존의 말씀입니다. 이 비구가 잘 호지한 것입니다.‘addhā idaṃ tassa bhagavato vacanaṃ; tassa ca saṅghassa suggahitan’ti라는 결론에 도달해야 한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두 번째 큰 권위이다.”

Idha pana, bhikkhave, bhikkhu evaṃ vadeyya: ‘amukasmiṃ nāma āvāse saṅgho viharati sathero sapāmokkho. Tassa me saṅghassa sammukhā sutaṃ sammukhā paṭiggahitaṃ, ayaṃ dhammo ayaṃ vinayo idaṃ satthusāsanan’ti. Tassa, bhikkhave, bhikkhuno bhāsitaṃ neva abhinan­di­tab­baṃ nap­paṭik­kosi­tabbaṃ. Anabhinanditvā appaṭikkositvā tāni padabyañjanāni sādhukaṃ uggahetvā sutte osāretabbāni, vinaye sandas­setab­bāni. Tāni ce sutte osāriyamānāni vinaye san­dassi­ya­mānāni na ceva sutte osaranti, na ca vinaye sandissanti, niṭṭhamettha gantabbaṃ: ‘addhā idaṃ na ceva tassa bhagavato vacanaṃ; tassa ca saṅghassa duggahitan’ti. Itihetaṃ, bhikkhave, chaḍḍeyyātha. Tāni ce sutte osāriyamānāni vinaye san­dassi­ya­mānāni sutte ceva osaranti, vinaye ca sandissanti, niṭṭhamettha gantabbaṃ: ‘addhā idaṃ tassa bhagavato vacanaṃ; tassa ca saṅghassa suggahitan’ti. Idaṃ, bhikkhave, dutiyaṃ mahāpadesaṃ dhāreyyātha. (2)

 

 

4.10.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가 말하기를 도반들이여, 아무개 거처에 많이 배우고, 전승된 가르침에 능통하고, 법을 호지하고(dhammadharā), 율을 호지하고(vinayadharā), 마띠까(論母)를 호지(mātikādharā)하는 많은 장로 비구들이 계십니다.(sambahulā therā bhikkhū viharanti bahussutā āgatāgamā dhammadharā vinayadharā mātikādharā. 그런 나는 이것을 그 장로들의 면전에서 듣고 장로들의 면전에서 받아 지녔습니다. 이것은 법이고 이것은 율이고 이것은 스승의 교법입니다.’라고 하면, 그런 비구의 말을 인정하지도 말고 공박하지도 말아야 한다. 인정하지도 공박하지도 않은 채로 그 단어와 문장들(padabyañjanāni)을 주의 깊게 들어서 경과 대조해 보고 율에 비추어 보아야 한다.

그의 말을 경과 대조해 보고 율에 비추어 보아서, 만일 경과 견주어지지 않고 율과 맞지 않는다면 여기서 이것은 세존의 말씀이 아닙니다. 이 비구가 잘못 호지한 것입니다.’라는 결론에 도달해야 한다. 비구들이여, 이렇게 해서 이것은 물리쳐야 한다. 만일 그의 말을 경과 대조해 보고 율에 비추어 보아서 만일 경과 견주어지고 율과 맞는다면 여기서 이것은 세존의 말씀입니다. 이 비구가 잘 호지한 것입니다.‘addhā idaṃ tassa bhagavato vacanaṃ; tesañca therānaṃ suggahitan’ti.라는 결론에 도달해야 한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세 번째 큰 권위이다.”

 

4.11.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가 말하기를 도반들이여, 아무개 거처에 많이 배우고, 전승된 가르침에 능통하고, 법을 호지하고, 율을 호지하고, 마띠까(論母)를 호지하는 한 분의 장로 비구가 계십니다.(eko thero bhikkhu viharati bahussuto āgatāgamo dhammadharo vinayadharo mātikādharo.) 그런 나는 이것을 그 장로의 면전에서 듣고 장로들의 면전에서 받아 지녔습니다. 이것은 법이고 이것은 율이고 이것은 스승의 교법입니다.’라고 하면, 그런 비구의 말을 인정하지도 말고 공박하지도 말아야 한다. 인정하지도 공박하지도 않은 채로 그 단어와 문장들(padabyañjanāni)을 주의 깊게 들어서 경과 대조해 보고 율에 비추어 보아야 한다.

그의 말을 경과 대조해 보고 율에 비추어 보아서, 만일 경과 견주어지지 않고 율과 맞지 않는다면 여기서 이것은 세존의 말씀이 아닙니다. 이 비구가 잘못 호지한 것입니다.’라는 결론에 도달해야 한다. 비구들이여, 이렇게 해서 이것은 물리쳐야 한다. 그의 말을 경과 대조해 보고 율에 비추어 보아서 만일 경과 견주어지고 율과 맞는다면 여기서 이것은 세존의 말씀입니다. 이 비구가 잘 호지한 것입니다.’‘addhā idaṃ tassa bhagavato vacanaṃ; tassa ca therassa suggahitan’ti라는 결론에 도달해야 한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네 번째 큰 권위이다.”

 

4.12. 참으로 이렇게 세존께서는 보가나가라에 머무시면서 많은 비구들에게 법에 관한 말씀을 하셨다. “이러한 것이 계다. 이러한 것이 삼매다. 이러한 것이 통찰지다. 계를 철저히 닦아서 생긴 삼매는 큰 결실이 있고 큰 이익이 있다. 삼매를 철저히 닦아서 생긴 통찰지는 큰 결실이 있고 큰 이익이 있다. 통찰지를 철저히 닦아서 생긴 마음은 바르게 번뇌들로부터 해탈하나니, 바로 이 감각적 욕망에 기인한 번뇌와 존재에 기인한 번뇌와 무명에 기인한 번뇌이다.”라고.

Paññā­pari­bhāvi­taṃ cittaṃ sammadeva āsavehi vimuccati, seyyathidaṃ—kāmāsavā, bhavāsavā, avijjāsavā”ti.

 

 

 

 

 

논점

 

 

1.비구들이여, 네 가지를 깨닫지 못하고 꿰뚫지 못하였기 때문에 나와 그대들은 이처럼 긴 세월을 치달리고 윤회하였다"라고 윤회를 인정하고 있다. 그 이유를 사성제를 모르기 때문이라고 설명하는데 여기서는 네가지 법(catunnaṃ dhammānaṃ)을 모르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계,정,혜,해탈과 사성제를 깨닫는 것은 같은 의미이다. 

 

 

2. 코끼리가 뒤를 돌아다보듯이(nāgāpalokitaṃ) 웨살리를 돌아다보신 후 아난다 존자를 불러서 말씀하셨다. “아난다여, 이것이 여래가 웨살리를 보는 마지막이 될 것이다. 오라, 아난다여. 이제 반다가마로 가자.” 코끼리가 뒤돌아보듯(Nāgāpalokita)이라고 해석하는 것이 옳은가?   세가지 의견이 제시되었는데

---나가(nāgā)는 부처님을 지칭하므로 부처님이 뒤를 돌아다보듯이(nāgāpalokitaṃ)이라고 해석되어야 한다.

---코끼리가 뒤를 돌아다보듯이코끼리처럼 천천히 마음 챙기면서 되돌아 본것을 의미한다.

---80세의 부처님이 힘겹게 되돌아 보는 것을 코끼리가 뒤를 돌아다보듯이라고 비유한 것이다. 

nāga: a cobra, an elephant; the iron-wood tree; a noble person. (m.)
apalokita: looked up to; obtained permission from; gave notice. (pp. of avaloketi

 

 

 

3.네 가지 큰 권위(­ma­hāpa­desa) 인가? 네가지 큰 지시(­ma­hāpa­desa)­인가?

이러한 부처님의 지시가 결집에 어떤 영향을 주었을까? 

---지대한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당시의 경은 암송되었는데 9가지로 나누어서 암송되었다. 그 구분교는 제1차결집 때 오부니까야로 정리되었는데, 구분교와 오부니까야와의 관계는 아래 도표와 같다.

 

Padesa,[m.] region; place; district; location; spot【陽】指示(indication)。地方(location),範圍(range),區域、地域(district、region),位置(spot),地點(place)

 

   구 분교        오부 니까야(nikaya)   아가마(agama)
경(sutta)

미증유법(abbhutadhamma)
문답(vedalla)
응송(geyya)
수기(veyyākaraṇa)

디가 니까야(Dīgha Nikāya, 34경

맛지마 니까야(Majjhima Nikāya, 152경
상윳따 니까야(Saṃyutta Nikāya, 2,875경 
앙굿따라니까야(Aṅguttara Nikāya,  2,198경

장아함(長阿含經)    32
중아함(中阿含經)   222
잡아함(雜阿含經)   l,362
증일아함(增一阿含經)  472
게송(gāthā),
감흥어(udāna),
여시어(tivuttaka),
본생담(jātaka),
쿳다까 니까야(Khuddaka Nikāya, 小部)              없음
* 평가 : 문답(vedalla)은 mahāvedallasuttaṃ (MN 43) cūḷavedallasuttaṃ (MN 44)에 들어가 있고  수기(veyyākaraṇa)는 ānandaparikathā (D18), sakkapañhasuttaṃ(D21), kīṭāgirisuttaṃ(M70)등에 들어가 있고, 문답(vedalla)은 cūḷavedalla(M44) , mahāvedalla(M43)에 들어있다. 대승,법신상주(法身常住),타방불토사상 등은  대승사상이 나타나는 증일아함경에는 정경(正經)ㆍ가영(歌詠)ㆍ기설(記說)ㆍ게타(偈咃)ㆍ인연(因緣)ㆍ찬록(撰錄)ㆍ본기本起)ㆍ차설(此說)ㆍ생처(生處)ㆍ광해(廣解)ㆍ미증유법(未曾有法), 설의(說義)와 같은 12경이 나타나고있다. 중아함경은 98경만이 맛지마 니까야와 내용이 일치한다.결과적으로 9분교는 오부니까야와 형식과 내용이 일치하는데 아가마(阿含)는 12분교로 나타나고 경전수도 적고 소부(小部)도 없다.

 

 

4. "그런 비구의 말을 인정하지도 말고 공박하지도 말아야 한다. 인정하지도 공박하지도 않은 채로 그 단어와 문장들(padabyañjanāni)을 주의 깊게 들어서 경과 대조해 보고 율에 비추어 보아야 한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는것인가? 

----부처님 가르침()에 이견이 생기면 부처님이나 장로비구들에게 찾아가서 장로들이 암송하는 가르침을 듣고 단어(pada)와 문장(byañjanāni)을 대조해 보고 법()인지 비법(非法)인지,혹은 율()인지 비율(非律)인지 파악해야 한다. 그 당시에 종이로 된 경전은 없었고 다만 법을 암송하는 분(dhammadharā), 율을 암송하는 분(vinayadharā)들이 있어서 그 분들의 도움으로 법과 비법을 판단할 수 있었다. 그 판단은 한 두사람의 비구가 하는 것보다 여러 비구들이 모여서 단체로 판단해야 공신력이 높아진다. 이렇게 많은 비구들이 모여 법과 율을 판단을 하는 것은 불멸후 결집이라는 형태로 지속된다. 불교역사 2600년동안 인도에서 3, 스리랑카에서 1, 미얀마에서 2, 6번의 결집이 있었다. 니까야는 이렇게 ()인지 비법(非法)인지 6번의 확인작업을 거쳐 승가에 의해서 공인(公認) 된 것이다. 그런데 역사적으로 대승경전은 한 번도 승가의 공인 작업을 거치지 않았다. 만약에 지금이라도 대승경전을 가지고 결집이 이루진다면 부처님 말씀대로 이전의 경과 율에 대조해 보아야 하는데 과연 그 경과율은 무엇인가? 6차례나 승가에 의해서 확인작업과 공인을 거친 빠알리 니까야와 율장이 될 것이다. 이렇듯 니까야는 지구 상에 남아있는 부처님 경전 중에서 부동의 기준이 되는 것이다.

 

 

 

 

 

 

5. 번뇌는 감각적 욕망에 기인한 번뇌kāmāsavā와 존재에 기인한 번뇌bhavāsavā와 무명에 기인한 번뇌avijjāsavā라는 3가지로 나누어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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