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매주 목요일 오후 9시 15분에 진행되는 구글 meet영상토론 자료입니다.
거룩한 부처님께 귀의합니다. 거룩한 가르침에 귀의합니다. 거룩한 승가에 귀의합니다.
"살아 있는 생명이면 그 어떤 것이든, 모든 존재들이 안락하고 평화롭고 행복하기를..."
22 그런데 결발행자 나디 깟싸빠가 모발더미, 변발더미, 짐더미, 제구더미들을 물에 떠내려 오는 것을 보았다. 보고 나서 그는 이와 같이 생각했다.
[나디 깟싸빠] '나의 형제들에게 재앙이 닦친 것은 아니겠지.' 그는 결발행자들을 보냈다.
[나디 깟싸빠] "가서 나의 형제에 대하여 알아보라."
그리고 스스로 삼백명의 결발행자와 함께 결발행자 우루벨라 깟싸빠가 있는 곳을 찾아 갔다. 가까이 다가가서 말했다.
[나디 깟싸빠] "깟싸빠여, 좋은 일입니까?"“idaṁ nu kho, kassapa, seyyo”ti?
[우루벨라 깟싸빠] "형제여, 그렇다네. 좋은 일이네."“Āmāvuso, idaṁ seyyo”ti.
그러자 그 결발행자들은 모발더미, 변발더미, 짐더미, 제구더미들을 물에 떠내 려 보내고 세존께서 계신 곳을 찾아 갔다. 가까이 다가가서 세존의 두 발에 머리를 조아리고 말했다.
[결발행자들] "세존이시여, 저희들은 세존께 출가하여 구족계를 받고자 합니다."
[세존] "비구들이여, 오라! 가르침은 잘 설해졌으니, 그대들은 괴로움의 종식 을 위해 청정한 삶을 살아라!" 이렇게 해서 그들 존자들의 구족계가 이루어졌다.
23. 그런데 결발행자 가야 깟싸빠가 모발더미, 변발더미, 짐더미, 제구더미들을 물에 떠내려 오는 것을 보았다. 보고 나서 그는 이와 같이 생각했다.
[가야 깟싸빠] '나의 형제들에게 재앙이 닦친 것은 아니겠지.' 그는 결발행자들을 보냈다.
[가야 깟싸빠] "가서 나의 형제에 대하여 알아보라." 그리고 스스로 이백명의 결발행자와 함께 결발행자 우루벨라 깟싸빠가 있는 곳을 찾아 갔다. 가까이 다가가서 말했다.
[가야 깟싸빠] "까싸빠여, 좋은 일입니까?"
[우루벨라 깟싸빠] "형제여, 그렇다네. 좋은 일이네." 그러자 그 결발행자들은 모발더미, 변발더미, 짐더미, 제구더미들을 물에 떠내려 보내고 세존께서 계신 곳을 찾아 갔다. 가까이 다가가서 세존의 두 발에 머리를 조아리고 말했다.
[결발행자들] "세존이시여, 저희들은 세존께 출가하여 구족계를 받고자 합니다."
[세존] "비구들이여, 오라! 가르침은 잘 설해졌으니, 그대들은 괴로움의 종식 을 위해 청정한 삶을 살아라!" 이렇게 해서 그들 존자들의 구족계가 이루어졌다.
24. 세존의 가피에 의해서 오백 땔나무가 패지지 않거나 패지고, 불이 붙지 않거나 붙고, 불이 꺼지지 않거나 꺼지니, 오백 개의 화로가 만들어지니, 이와 같은 방법으로 삼천 오백의 신통변화가 이루어졌다. 깟싸빠 삼형제의 귀의가 끝났다.
불타오름 경
21. 연소의 법문에 대한 이야기(Aditta pariyayakatha)
1. 한때 세존께서는 우루벨라 지역에 계실만큼 계시다가 가야씨싸 산을 향하 여 모두가 예전의 결발행자인 천명의 크나큰 비구의 무리와 함께 출발했다. 거기서 세존께서는 가야 시의 가야씨싸 산에서 천 명의 비구들과 함께 지냈다.
2 거기서 세존께서는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Atha kho bhagavā uruvelāyaṁ yathābhirantaṁ viharitvā yena gayāsīsaṁ tena pakkāmi mahatā bhikkhusaṅghena
saddhiṁ bhikkhusahassena sabbeheva purāṇajaṭilehi.Tatra sudaṁ bhagavā gayāyaṁ viharati gayāsīse saddhiṁ
bhikkhusahassena.Tatra kho bhagavā bhikkhū āmantesi—
[세존] "비구들이여, 일체가 불타고 있다. 비구들이여, 어떻게 일체가 불타고 있는가?
1) 비구들이여, 시각도 불타고 있고 형상도 불타고 있고 시각의식도 불타고 있고 시각접촉도 불타고 있고 시각접촉을 조건으로 생겨나는 즐겁거나 괴롭거 나 즐겁지도 괴롭지도 않은 느낌도 불타고 있다. 어떻게 불타고 있는가? 탐욕의 불로, 성냄의 불로, 어리석음의 불로 불타고 있고 태어남·늙음죽음슬픔비탄·고통근심·절망으로 불타고 있다고 나는 말한다.
“Sabbaṁ, bhikkhave, ādittaṁ.Kiñca, bhikkhave, sabbaṁ ādittaṁ?Cakkhu ādittaṁ, rūpā ādittā, cakkhuviññāṇaṁ ādittaṁ, cakkhusamphasso āditto, yamidaṁ cakkhusamphassapaccayā
uppajjati vedayitaṁ sukhaṁ vā dukkhaṁ vā adukkhamasukhaṁ vā tampi ādittaṁ.Kena ādittaṁ?
Rāgagginā dosagginā mohagginā ādittaṁ, jātiyā jarāya maraṇena sokehi paridevehi dukkhehi domanassehi upāyāsehi ādittanti vadāmi.
2) 비구들이여, 청각도 불타고 있고 소리도 불타고 있고 청각의식도 불타고 있고 청각접촉도 불타고 있고 청각접촉을 조건으로 생겨나는 즐겁거나 괴롭거나 즐겁지도 괴롭지도 않은 느낌도 불타고 있다. 어떻게 불타고 있는가? 탐욕 의 불로, 성냄의 불로, 어리석음의 불로 불타고 있고 태어남늙음죽음슬픔비탄·고통근심·절망으로 불타고 있다고 나는 말한다.
3) 비구들이여, 후각도 불타고 있고 냄새도 불타고 있고 후각의식도 불타고 있고 후각접촉도 불타고 있고 후각접촉을 조건으로 생겨나는 즐겁거나 괴롭거나 즐겁지도 괴롭지도 않은 느낌도 불타고 있다. 어떻게 불타고 있는가? 탐욕 의 불로, 성냄의 불로, 어리석음의 불로 불타고 있고 태어남늙음죽음슬픔비탄·고통근심·절망으로 불타고 있다고 나는 말한다.
4) 비구들이여, 미각도 불타고 있고 맛도 불타고 있고 미각의식도 불타고 있고 미각접촉도 불타고 있고 미각접촉을 조건으로 생겨나는 즐겁거나 괴롭거나 즐겁지도 괴롭지도 않은 느낌도 불타고 있다. 어떻게 불타고 있는가? 탐욕의 불로, 성냄의 불로, 어리석음의 불로 불타고 있고 태어남·늙음죽음슬픔비탄 고통근심·절망으로 불타고 있다고 나는 말한다.
5) 비구들이여, 촉각도 불타고 있고 감촉도 불타고 있고 촉각의식도 불타고 있고 촉각접촉도 불타고 있고 촉각접촉을 조건으로 생겨나는 즐겁거나 괴롭거 나 즐겁지도 괴롭지도 않은 느낌도 불타고 있다. 어떻게 불타고 있는가? 탐욕 의 불로, 성냄의 불로, 어리석음의 불로 불타고 있고 태어남늙음죽음슬픔비탄·고통근심·절망으로 불타고 있다고 나는 말한다.
6) 비구들이여, 정신도 불타고 있고 법(法)도 불타고 있고 정신의식도 불타고 있고 정신접촉도 불타고 있고 정신접촉을 조건으로 생겨나는 즐겁거나 괴롭거나 즐겁지도 괴롭지도 않은 느낌도 불타고 있다. 어떻게 불타고 있는가? 탐욕 의 불로, 성냄의 불로, 어리석음의 불로 불타고 있고 태어남늙음죽음슬픔비탄·고통·근심·절망으로 불타고 있다고 나는 말한다."
3. [세존] 1)."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보아서 잘 배운 고귀한 제자는 시각에서도 싫어하여 떠나고 형상에서도 싫어하여 떠나고 시각의식에서도 싫어하여 떠나고, 시각접 촉에서도 싫어하여 떠나고 시각접촉을 조건으로 생겨나는 즐겁거나 괴롭거나 즐겁지도 괴롭지도 않은 느낌에서도 싫어하여 떠난다. 그는 싫어하여 떠나 사라지고, 사라져서 해탈한다. 그가 해탈할 때 '해탈되었다'는 궁극의 앓이 생겨나서, '태어남은 부서졌고, 청정한 삶은 이루어졌고, 해야 할 일은 다 마쳤으니, 더 이상 윤회하지 않는다.'라고 분명히 안다.
Evaṁ passaṁ, bhikkhave, sutavā ariyasāvako cakkhusmimpi nibbindati, rūpesupi nibbindati, cakkhuviññāṇepi
nibbindati, cakkhusamphassepi nibbindati, yamidaṁ cakkhusamphassapaccayā uppajjati vedayitaṁ sukhaṁ vā
dukkhaṁ vā adukkhamasukhaṁ vā, tasmimpi nibbindati.nibbindaṁ virajjati, virāgā vimuccati, vimuttasmiṁ vimuttamiti ñāṇaṁ hoti. Khīṇā jāti, vusitaṁ brahmacariyaṁ, kataṁ karaṇīyaṁ, nāparaṁ itthattāyāti pajānātī”ti.
2)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보아서 잘 배운 고귀한 제자는 청각에서도 싫어하여 떠나고 소리에서도 싫어하여 떠나고 청각의식에서도 싫어하여 떠나고, 청각접 촉에서도 싫어하여 떠나고 청각접촉을 조건으로 생겨나는 즐겁거나 괴롭거나 즐겁지도 괴롭지도 않은 느낌에서도 싫어하여 떠난다. 그는 싫어하여 떠나 사라지고, 사라져서 해탈한다. 그가 해탈할 때 '해탈되었다'는 궁극의 앓이 생겨나서, '태어남은 부서졌고, 청정한 삶은 이루어졌고, 해야 할 일은 다 마쳤 으니, 더 이상 윤회하지 않는다.'라고 분명히 안다.
3)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보아서 잘 배운 고귀한 제자는 후각에서도 싫어하여 떠나고 냄새에서도 싫어하여 떠나고 후각의식에서도 싫어하여 떠나고, 후각접촉에서도 싫어하여 떠나고 후각접촉을 조건으로 생겨나는 즐겁거나 괴 롭거나 즐겁지도 괴롭지도 않은 느낌에서도 싫어하여 떠난다. 그는 싫어하여 떠나 사라지고, 사라져서 해탈한다. 그가 해탈할 때 '해탈되었다'는 궁극의 앓이 생겨나서, '태어남은 부서졌고, 청정한 삶은 이루어졌고, 해야 할 일은 다 마쳤으니, 더 이상 윤회하지 않는다.'라고 분명히 안다.
4)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보아서 잘 배운 고귀한 제자는 미각에서도 싫어하여 떠나고 맛에서도 싫어하여 떠나고 미각의식에서도 싫어하여 떠나고 미각접촉 에서도 싫어하여 떠나고 미각접촉을 조건으로 생겨나는 즐겁거나 괴롭거나 즐겁지도 괴롭지도 않은 느낌에서도 싫어하여 떠난다. 그는 싫어하여 떠나 사라지고, 사라져서 해탈한다. 그가 해탈할 때 '해탈되었다'는 궁극의 앓이 생겨나서, '태어남은 부서졌고, 청정한 삶은 이루어졌고, 해야 할 일은 다 마쳤 으니, 더 이상 윤회하지 않는다. '라고 분명히 안다.
5)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보아서 잘 배운 고귀한 제자는 촉각에서도 싫어하여 떠나고 감촉에서도 싫어하여 떠나고 촉각의식에서도 싫어하여 떠나고 촉각접 촉에서도 싫어하여 떠나고 촉각접촉을 조건으로 생겨나는 즐겁거나 괴롭거나 즐겁지도 괴롭지도 않은 느낌에서도 싫어하여 떠난다. 그는 싫어하여 떠나 사라지고, 사라져서 해탈한다. 그가 해탈할 때 '해탈되었다'는 궁극의 앓이 생겨나서, · 태어남은 부서졌고, 청정한 삶은 이루어졌고, 해야 할 일은 다 마쳤으니, 더 이상 윤회하지 않는다.' '라고 분명히 안다.
6)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보아서 잘 배운 고귀한 제자는 정신에서도 싫어하여 떠나고 법에서도 싫어하여 떠나고 정신의식에서도 싫어하여 떠나고 정신접 촉에서도 싫어하여 떠나고 정신접촉을 조건으로 생겨나는 즐겁거나 괴롭거나 즐겁지도 괴롭지도 않은 느낌에서도 싫어하여 떠난다. 그는 싫어하여 떠나 사라지고, 사라져서 해탈한다.
manasmimpi nibbindati, dhammesupi nibbindati, manoviññāṇepi nibbindati, manosamphassepi nibbindati,
yamidaṁ manosamphassapaccayā uppajjati vedayitaṁ sukhaṁ vā dukkhaṁ vā adukkhamasukhaṁ vā tasmimpi
nibbindati,nibbindaṁ virajjati, virāgā vimuccati,
그가 해탈할 때 '해탈되었다'는 궁극의 앓이 생겨나서, '태어남은 부서졌고, 청정한 삶은 이루어졌고, 해야 할 일은 다 마쳤으니, 더 이상 윤회하지 않는다.'라고 분명히 안다."
vimuttasmiṁ vimuttamiti ñāṇaṁ hoti. Khīṇā jāti, vusitaṁ brahmacariyaṁ, kataṁ karaṇīyaṁ, nāparaṁ itthattāyāti pajānātī”ti.
They understand that birth has come to an end, that the spiritual life has been fulfilled, that the job has been done, that there is no further state of existence.”
4. 세존께서 이처럼 말씀하시자 그 비구들은 세존께서 하신 말씀에 환회하여 기뻐했다. 그리고 이와 같은 가르침이 설해졌을 때에, 그 천 명의 비구들의 마음은 집착 없이 번뇌에서 해탈되었다. 연소의 법문이 끝났다.
Imasmiñca pana veyyākaraṇasmiṁ bhaññamāne tassa bhikkhusahassassa anupādāya āsavehi cittāni vimucciṁsu.
세 번째 송출품 우루벨라의 신통변화가 끝났다.
Ādittapariyāyasuttaṁ niṭṭhitaṁ.
논점
1. 상두산(gayāsīse)에 올라서 연소법문을 설하였는데 상두산(象頭山)은 어디인가? 우리나라에 가야산 상왕산이 많은 이유는?
= 코끼리(gayā) 머리(sīse)를 닮은 산이라서 상두산이다. 원래 가자(Gaja)가 코끼리라는 의미인데 여기서 가야(gayā)가 코끼리라는 의미로 사용됨. 가야와 상왕과 상두는 같은 의미.
아소까왕시대에는 부처님을 조각하는 것이 불경하다고 생각되어 여러가지 동물(소, 말,사자,코끼리,바퀴.보리수등)로 표현하였다. 그러므로 가야산, 상왕산은 사실 붓다산, 부처산, 부처님산이다.
2. 육근-육경-육촉-삼수-태어남·늙음-죽음-슬픔-비탄-고통-근심-절망으로 불타고 있다는 설명을 어떻해 이해할까?
="탐욕 의 불로, 성냄의 불로, 어리석음의 불로 불타고 있고 태어남·늙음죽음슬픔비탄·고통근심·절망으로 불타고 있다"
3.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보아서 잘 배운 고귀한 제자는 시각에서도 싫어하여 떠나고 형상에서도 싫어하여 떠나고 시각의식에서도 싫어하여 떠나고, 시각접 촉에서도 싫어하여 떠나고 시각접촉을 조건으로 생겨나는 즐겁거나 괴롭거나 즐겁지도 괴롭지도 않은 느낌에서도 싫어하여 떠난다.그는 싫어하여 떠나 사라지고,사라져서 해탈한다."
위 문장에서처럼 싫어하여 떠나는 것이 느낌에서 끝나는 이유는 ?
---느낌까지 첫번째 화살
---애착은 두번째 화살
* 수행은 두번째 화살을 맞지 않는 것.
4. "싫어하여 떠난다- 싫어하여 떠나 사라지고-사라져서 해탈한다- 해탈할 때 '해탈되었다'는 궁극의 앓이 생겨난다."이러한 수행단계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무상․고․무아의 통찰과 염오(厭惡, nibbida-)-이욕(離慾, vira-ga)-해탈(解脫, vimutti)-구경해탈지를 주석서들은 한결 같이 염오를 강한 위빳사나로, 이욕은 도(예류도부터 아라한도까지)로, 해탈은 과(예류과부터 아라한과까지)로, 구경해탈지는 반조의 지혜로 설명하고 있다.
5. "태어남은 부서졌고,청정한 삶은 이루어졌고,해야 할 일은 다 마쳤으니, nāparaṁ itthattāyāti 를 더이상 이러한 존재가 되지 않는다(there is no further state of existence)."
이 문장을 "더 이상 윤회하지 않는다.라고 번역하는 것은 옳은 번역인가? 윤회를 알기 쉽게 설명해 보자.
“비구들이여, 나의 성문 비구니들 가운데서 전생을 기억하는 것에서 으뜸인 자는 '밧다 까삘라니(Bhaddā Kapilānī )'이다.”
“비구들이여, 나의 성문 비구들 가운데서 전생을 기억하는 것에서 으뜸인 자는 소비따(sobhita)이다.“
이와 같이 부처님이 윤회를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것이 경전에서 많다.
'전생, 윤회를 말하는 다양한 경전들'이라는 글을 읽어보라. (이 글 쓰는데 3달 걸림)
니까야를 읽어보고 부정이든 긍정이든 하라. https://whoami555.tistory.com/13742594
3500번+
7. 윤회에 대하여
경전에서는 윤회에 대한 설명이 무지 많이 나온다. 이것을 내 기준으로 거부하려 하지 말고 다만
경전을 읽고 경전에 나온 사실을 말하자.다음과 같이 말하면 된다.
"경전에서는 윤회에 대한 설명이 많이 나온다. 나는 그 부처님 말씀을 믿는다. (혹은 그럼에도 나는 믿음이 가지 않는다.) 윤회를 믿거나 부정하는것 둘다 믿음의 차원이다. 갈등을 일으키는 믿음으로 나아가지 말고 "모른다" "차차 알게 될 것이다." "지금은 판단 중지다" 에 머물러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
나는 언제 죽을 지 알수 없다는 무상함을 느끼며 지금 여기서 내가 할 수 있는 수행을 한다.
예를들면 호흡관찰, 자비관, 부정관, 참선, 염불, 경전읽기, 절수행, 보시, 지계등....
불교는 눈으로 보여지는 것(무상하다) 느껴지는 것(괴롭다)등으로 설명되기에 지금 여기에서 누구에게나 경험할수있다. 믿음으로 시작할 필요가 없어 관념적이 아니다.
정견은 사성제를 아는 것, 즉,고와 고의 원인을 아는 것에서 시작한다.
'정견을 업과 윤회를 이해하는 것'으로 설명하면 불교가 어려워진다. 경전에서 나온대로 정견은 '고와 고의 원인을 아는 것'으로 설명하여야한다.
그런데 기독교는 신, 천국,영생,구원, 원죄등 믿음으로 시작하는 단어로 설명하기에 관념적이다. 불교를 그런 관념적인 단어로 접근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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