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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불교

삼장(三藏)의 성립과 발전

삼장(三藏)의 성립과 발전

 

후지타 코타츠 외/권오민 옮김

이 글은 후지타 코타츠 외/권오민 옮김, <초기.부파불교의 역사> (서울: 민족사, 1989), pp.201-213에 나오는 것이다. 팔리 성전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편집자 주>


(1) 제일결집(第一結集)



역사적 사실성

석존이 열반한 직후 남은 제자들 가운데 장로 중 한 명인 마하캇사파(大迦葉)의 발의로 5백 명의 비구가 라자가하 교외에서 집회를 가졌다. 그들은 거기서 그들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입멸한 스승의 가르침을 서로 확인하고 그것을 그릇됨이 없이 전승하였다고 전한다. 이 집회를 불교도들은 상기티 samgiti라고 한다. 이 말은 ‘[교설을] 모두 함께 소리내어 암송하는 것(合誦)’의 의미이지만 한역 불전에서는 이를 ‘결집(結集)’이라고 번역하고 있어, 일반에서는 이 말로 알려져 있다. 결집이라고 불려지는 모임은 그 후에도 몇 번인가 실시되었기 때문에 이때의 결집을 第一結集(또는 五百結集, 라자가하 결집)이라고 한다.

제1결집의 사건을 전하는 기술은 여러 불전에서 이루어지고 있지만 그 사이에는 서로 모순되는 점이 있기도 하고, 또한 그 밖의 여러 가지 이유에서 이를 역사적 사실의 기록이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우며 성전의 권위성을 높일 의도에서 조작된 가공의 이야기에 지나지 않는다고 보는 학자도 있다.

분명히 이 전설 가운데 담겨 있는 개개의 사항의 사실성(事實性)에는 문제가 많지만 이같은 전설이 만들어지는 데 토대가 되었던 어떠한 사실이 있었을 것이다. 다시 말해 불타가 열반한 후 불교승단이 영원히 의지해야 할 스승의 유법(遺法)이 망실되거나 잘못 전해지게 될 것을 두려워하여, 그것을 방지하기 위해 교법의 확인?확정을 꾀하였을 것으로 충분히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만약 그같은 시도를 통하여 확인되고, 그러한 확인 작업을 거쳤다고 하는 권위로서 전승되어진 교법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오늘날 전해지고 있는 초기불교 성전의 원형이 어떻게 정리될 수 있었겠는가. 그렇게 볼 때 우리는 이 제1결집의 사실성(事實性)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여기서는 주로 팔리어 불전에 전해지고 있는 그러한 전설을 그대로 요약하여 설명하기로 한다.

제1결집의 전설

마하캇사파는 500 명의 비구들과 함께 파바 Pava에서 쿠시나라를 향해 여행하던 도중 석존이 이미 반열반(般涅槃)에 들었다는 소문을 들었다. 그 소식을 들은 비구들은 혹은 어지할 바 몰라 비탄에 젖어 있기도 하고 혹은 불타가 교시한 무상(無常)의 도리를 새롭게 되새기기도 하였는데, 출가한 지 얼마 되지 않은 한 늙은 비구 수밧다 Subadda (Subhadra, 일설에는 우파난다 Upananda라고도 함)만은 ‘친구들이여, 슬퍼하지 마라. 우리들은 이제 저 대사문(大沙門, 석존을 말함)의 지배에서 벗어났다. 지금부터 하고 싶은 대로 행동할 수 있지 않은가’라고 큰소리치면서 슬퍼하는 기색조차 없었다. 이같은 말을 들은 캇사파는 결집이 급선무임을 통감하였다(결집 발의의 동기로서 이것과는 다른 이유를 주장하는 학설도 있음).

그는 결집에 참가할 499 명의 아라한(깨달음의 경지에 도달한 비구)을 뽑고, 여리다 또 한 사람 아난다를 더하여 500 명으로 결집을 구성하였다. 아난다는 아직 아라한의 경지에는 이르지 못하였지만 항상 석존 곁에서 시중을 들어 다문제일(多聞第一, 불타의 설법을 가장 많이 들은 자)로 인정받았기 때문에 사람들의 추천을 얻어 참가하게 되었던 것이다.

선발된 500 명은 캇사파의 제안에 따라 라자가하로 가 거기서 안거(安居)하면서 ‘법(法)’과 ‘율(律)’의 결집을 시행하기로 하였다.

결집회의는 라자가하 북문을 나와 서쪽 산기슭을 조금 거슬러 오른 산중턱의 동굴 사프타파르나 Saptaparna (七葉窟이라고 한역)에서 개최되었다고 한다(그 밖에 다른 곳을 주장하는 설도 있음).

결집회의는 캇사파가 우팔리 Upali(優波離)한테 ‘律(출가자의 생활규정이나 禁制)’에 대해 묻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즉 먼저 가장 중요한 禁制인 파라지카 parajika(波羅夷, 이를 범한 자는 승단으로부터 추방되는 네 가지 중죄) 중 첫 번째인 음계(淫戒)는 어디서, 누구에 대하여, 어떠한 연유에서 석존에 의해 제정되었는가 하고 물으면 우팔리는 여기에 대하여 순서대로 대답하였다. 다음 두 번째 도계(盜戒)에 대해서도 똑같은 문답이 행해졌다. 계속하여 세 번째, 네 번째도 이러한 방식으로 진행되고 나서, 비구?비구니들은 그러한 각각의 율 조항 하나하나에 대하여 문답을 반복하였다. 그것이 끝나자 이번에는 아난다에게 ‘法(교설)’에 대해 질문하였다. 먼저 캇사파가 <범망경(梵網經)>은 언제, 어디서, 누구에 대하여, 어떻게 설해졌는가를 묻고 여기에 대해 아난다가 대답하였다. 다음은 <사문과경(沙門果經)>에 대해서도 같은 방식의 문답이 이루어졌다. 계속하여 오부(五部) 경전 모두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하나하나 질문되고 대답되었다. 이렇게 하여 ‘法’과 ‘律’이 모두 송출(誦出)되어 다른 사람들의 확인을 받았다고 전한다.

전설은 또한 이후 아난다가 돌아가신 스승의 유언 가운데 ‘승단이 원한다면 계율 가운데 잡소(雜小)한 조항은 버려도 좋다’고 한 사실이 있었다고 말했다든지 장로비구들이 아난다의 과거를 하나하나 열거하여 비난한 사실이라든지, 장로 푼나 Punna, Purana 등은 이렇게 결집된 ‘法’과 ‘律’에 상관하지 않는 태도를 취했다는 사실 등 여러 가지 흥미있는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결집의 특징

이러한 결집, 즉 석존의 교설을 종합 정리한 최초의 시도에 대한 전설에는 다음과 같은 특징적인 사실이 있다.

1) 결집은 출가승단(僧伽)의 사람들, 특히 그 대표라고 할 수 있는 상좌비구(上座比丘)들이 개최한 것으로 재가신자들은 여기에 전혀 관여하지 안았다. 그러나 석존의 교설은 재가신자에 대해서도 물론 격의없이 설해졌으며, 때에 따라서는 특히 재가자에게만 설법되어지기도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서 결집이 오직 출가자들에 의해서만 개최되고, 거기서 송출(誦出)된 ‘法’과 ‘律’이 출가 승단에 의해서만 전지(傳持)되었다고 하는 사실은 이같은 ‘법’과 ‘율’의 성격을 규정하는 데 커다란 의의를 갖는다. 이러한 사실은 훗날 대승경전의 출현과도 무관하지 않다.

2) 결집은 500 명의 아라한들이 모인 집회에서 이루어졌다. 500 명이라고 하는 숫자는 차치하고서라도 정전(正典)이 되는 ‘법’과 ‘율’이 집회장에서 합의에 따라 승인되었다고 하는 사실은 불교승단의 성격에서 유래한 것이다. 불타의 가르침을 근거로 하여 중요한 사항들은 합의에 의해 결정하는 것이 승가의 방식이었다. 석존은 입멸할 때 뒤에 남은 교단을 통제할 후계자를 지목하지 않았으며(마하캇사파 역시 후계자로 지목된 것은 아님) 승계(僧階)나 역할?담당 등에 따른 승단의 조직도 서있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승단에는 혼란이 야기되지 않았으며 오히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유법(遺法)의 수집 확인이 이루어질 수 있었던 것은 승가에 이와 같은 합의의 관습이 확립되어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3) ‘법’과 ‘율’은 이때 상기티 samgiti(‘合誦’)된 것이며 그 후에도 오랫동안 오로지 구송(口誦)에 의해 전승되었다. 이것이 문자로 씌어지게 된 것은 적어도 200 년 뒤의 일이다. 구송에 의해 전승되었다는 사실은 지금 전해지고 있는 불교성전의 형태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4) 이러한 결집의 기도는 당시 불교승단 전체의 의향이 반영된 것은 아니며 단순히 캇사파를 중심으로 한 일파의 비구들의 모임이었든지 혹은 마가다 일대에 한정된 지방적인 회합에 불과한 것이었다고 보는 학자도 있다. 석존이 입멸할 때의 불교의 전파범위나 당시 정보전달?교통사정 등을 고려한다면 실제로 이루어진 집회는 필시 지역적 모임이었을 것이라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 그렇지만 그 이념만은 의심할 여지없이 부처의 보편적인 ‘법’과 ‘율’의 확정에 있었을 것이다.

(2) 삼장(三藏)의 성립

삼장(三藏)

불교성전을 총괄하여 경(經) · 율(律) ·론(論) 삼장(三藏)이라고 하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장(藏)’이라고 번역된 피타카 pitaka라고 하는 말은 원래 ‘바구니’, ‘용기’를 의미하지만 지금은 대개 세 부문으로 크게 나눈 불교성전의 각각의 부문을 그렇게 부른다.

첫 번째 경장(經藏, sutta pitaka) 즉 경(經)의 부문의 내용을 한마디로 말하면 석존의 교설로서 제1결집 때 아난다가 송출(誦出)하였다고 하는 ‘법(法)’이 그 원형이다. 두 번째 율장(律藏, vinaya pitaka) 즉 율(律)의 부문에는 출가자들이 지켜야 할 계율과 승단의 규정 등이 담겨져 있다. 이것은 제1결집 때 우팔리가 송출하였다고 하는 ‘율(律)’이 그 원형이다. 세 번째 논장(論藏, Abhidhamma pitaka) 즉 논(論)의 부문이란 經(法 즉 첫 번째 藏의 내용)에 대한 해석이나 논구(論究)이다. 따라서 당연히 논장(論藏)은 앞의 이장(二藏)에 비해 그 성립시기가 늦다.

경장(經藏)

제1결집의 결과, 종합 정리되어 구전된 ‘法’이 어떠한 내용의 것인지 그것을 원형 그대로 안다고 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것이 오늘날 우리들 손에 전해지고 있는 아함경전(阿含經典)의 원형임은 말할 필요도 없지만, 당초의 ‘법’에서 경장의 내용이 되는 <아함경>으로 정리되고, 나아가 그것이 오늘날 우리들 손에 전해지고 있는 여러 가지 아함의 형태로 되기까지에는 상당히 커다란 변화의 과정을 거치고 있기 때문에 아함의 현재 형태에서 바로 그 원형, 다시 말해 더욱 거슬러 올라가 원초의 ‘법’의 형태를 추정한다는 것은 쉽지 않다.

일단 불교경전으로서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는 것은 매우 많지만 크게 두 종류로 나눌 수 있다. 즉 아함경전과 대승경전이 그것이다. 이 두 가지는 다같이 불교경전이라고 불리면서도 그 성립사정은 전혀 다르다. <아함경>은 앞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제1결집에서 정리된 ‘법’을 기본으로 삼아 성립하였다. 그 ‘법’의 내용은 일찍이 석존이 설법한 자리에서 그것을 들은 제자들이 석존의 입멸 직후 그들의 기억 속에 남아 있던 고사(故師)의 교설을 서로 확인하고 전승한 것이기 때문에, 결국 아함경전(‘阿含’ Agama이란 傳承된 가르침의 뜻)은 역사상의 존재인 석존의 설법을 기록?집성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에 반해 대승경전은 대체로 매우 많고 다양하며, 역사상의 존재인 석존 이후에 구현되고 있던 불타(佛陀)의 이념, 인간 고타마 싯닷타로 하여금 불타가 되게 하였던 법(法)의 이념, 그리고 그러한 법에 의해 모든 사람이 불타가 된다고 하는 성불(成佛)의 이념 등을 설명하기 위한 종교문할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는 <아함경>에 대해서만 설하기로 한다. 삼장(三藏)이라 하면 넓은 의미에서 처음부터 경 · 율 · 론을 포함하는 모든 불교성전을 의미하지만 여기서는 대승불전을 제외한 협의의 삼장, 즉 이른바 초기불교 성전 혹은 적당한 호칭은 아니지만 소위 소승불교 성전에 한정시켜 설명하려는 것이다.

<아함경>이라 지칭할 때도 그것이 오직 하나의 경전만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며 매우 많은 경전의 집록(集錄)이다. 석존은 생애 후반을 전도 · 교화를 위해 바쳤으며 그것은 일소부주(一所不住)의 여행으로 일관하였다고 할 수 있다. 석존은 여행지에 이르는 곳마다 때와 기회가 닿는 대로 설법의 자리를 마련하였다. 따라서 그 교설은 그때그때의 단발적이고 우발적인 것이 많으며, 주로 회화의 형태로 이루어진 짧고 간명한 교훈을 즐겨 설하였다. 석존은 장대한 강의나 체계적인 논술 등을 좋아하지 않았던 것으로 생각된다. <아함경>은 그같은 석존의 평생동안의 설법을 기록한 전승이기 때문에 당연히 수많은 짧은 교설의 집성이며, 그러한 개개의 교설은 각각 하나의 경전을 이루고 있다. 오늘날 그것을 단경(單經)이라고 한다. <아함경>은 이러한 수많은 단경으로 이루어진 집록(集錄)이다.

단경(單經)의 수는 너무나 많기 때문에 전승되는 사이에 그것들을 부류대로 분류?조직하여 정리하려고 하였던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한 분류나 정리의 과정도 그다지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대체로 먼저 경의 길이에 의해 나누어진 듯하다. 각각의 단경은 모두 짧은(이를테면 <화엄경> · <법화경> 등의 대승경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짧음) 것들이지만 그 가운데에서도 비교적 긴 경만을 모아 하나로 조직하였다. 그것이 ‘장아함(長阿含)’이다. 중간 길이 정도의 단경을 모아 하나로 조직하고 그것을 ‘중아함(中阿含)’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나머지 경들은 모두 지극히 짧은 것(대부분 보통 인쇄로서 한 페이지가 채 되지 않음)인데 그 수가 너무나 많기 때문에 그것을 다시 두 가지로 나누어 ‘잡아함(雜阿含)’ (혹은 ‘相應阿含’)과 ‘증일아함(增一阿含)’이라고 하였다. 전자는 교설의 내용에 따라 유형별로 배열하고 있으며, 후자는 수(數)와 관계가 있는 교설만을 모아 그것을 1에서부터 2, 3, 4 등의 수에 따라 배열하고 있다. 초기 무렵 각 아함에 담겨진 단경의 수는 확실하지는 않지만 ‘장아함’이 20 내지 30 가지 정도, ‘중아함’이 150 내지 200 가지 정도, ‘잡’과 ‘증일’은 헤아리는 방법에 따라 다르지만 각각 1,000 내지 2,000 가지 정도에 달한다. 또한 특수한 성질의 경으로서 이상 네 가지 아함에 들어 있지 않은 것이나 후대에 추가된 것 등을 합하여 정리한 것도 있다. 때에 따라서는 그것을 다섯 번째 아함으로 꼽기도 한다. 따라서 이 사아함(四阿含)에다 그것을 더하여 경장(經藏)의 총체로 삼고 있는 것이다.

율장(律藏)

제1결집에서 송출된 ‘律’과 삼장(三藏)의 하나인 율장(律藏)의 당초 내용과 오늘날 전승되고 있는 율장 사이에도 경장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커다란 변천이 있었지만 여기서 그 자취를 자세히 살펴보기는 어렵다. 어쨌든 제1결집에서 성립된 율장은 대개 ⑴ 파라제목차(波羅提木叉) ⑵ 경분별(經分別) ⑶ 건도부(建度部) 등 세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⑴ 파라제목차(波羅提木叉 Patimokkha, 戒經)라고 하는 말의 어원은 확실하지 않지만 그 내용은 대개 출가자가 지켜야 할 계율(戒律)의 조문(이것을 ‘學處’라고 함)을 모은 것이다. 비구의 경우와 비구니의 경우에 있어서 지켜야 할 조항에는 다소간의 차이가 있기 때문에 바라제목차에도 비구의 그것과 비구니의 그것에는 차이가 있다.

⑵ 경분별(經分別 Sutta vibhanga)이라고 하는 용어는 팔리어 율전(律典)에서 쓰이는 호칭이지만 지금은 일반호칭으로 이를 차용하고 있다. 이 경우 ‘경(經)’이라고 하는 것은 계율 조문의 텍스트를 의미하고 ‘분별(分別)’이라고 하는 것은 설명 · 해석을 의미한다. 즉 이것은 바라제목차의 주석이다. 계율 하나하나의 조문에 대하여 그 조문이 제정되기에 이른 사정을 말하고 그 조문의 해석이나 판례 · 적용법 등을 나타내고 있다.

⑶ 건도부(建度部 Khandhaka)이라는 것은 승단 내의 행사규정이나, 승단 내외에서의 행의작법(行儀作法), 출가자가 일상생활에서 지켜야 할 사항 등을 규정한 것이다.

논장(論藏)

경(經) · 율(律) 이장(二藏)은 다양한 변천을 거쳐 현재의 형태에 이르렀지만 적어도 그 기본이 되는 것은 석존 자신의 교설이나 훈계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따라서 그것들은 모두 전통적인 불타의 직설(直說) 그대로가 전승된 것이다. 이에 반해 논장(論藏)은 불설(佛說)에 대한 승단 사람들의 연구성과이다. 다만 일부에서는 전통적으로 논장 역시 석존 자신의 교설이라는 견해도 있지만 그것을 역사적 사실로서 인정하기는 어렵다.

‘논(論)’ 즉 아비다르마(Abhidharma, abhidhamma 아비달마(阿毘達磨)라고 하는 말은 원래 ‘다르마 dharma 즉 법에 대한 [연구]’를 의미한다. 이 원의에서 볼 때 아비달마의 기원은 어쩌면 석존 재세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갈지도 모른다. 그것은 그 무렵 이미 비구들 사이에 불타 교법에 대한 학습?연구?토의가 왕성하게 일어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아함경의 기술을 통해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통 아비달마라고 할 때에는 보다 후대, 주로 승단이 여러 부파로 분열한 후 그들 부파 내부에서 급속히 발전한 아함의 연구 및 그 교의를 조직화하려는 노력 등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러한 노력의 소산으로 점차 여러 부차 안에서 저술되어진 교의 해설서 · 요강서 · 논술서 등 또한 아비달마라고 한다. 바로 이것이 세 번째 장(藏)인 논장의 내용을 이루는 것이다.


(3) 현존하는 삼장(三藏)

팔리어 경장

오늘날 우리들은 원문으로 남아 있는 완전한 경(經) · 율(律) · 논(論) 삼장으로는 오직 한 셋트만을 볼 수 있을 뿐이다. 바로 팔리어 삼장이 그것이다. 이것은 현재 스리랑카(세일론) · 버어마 · 타이 등 남 · 동남아시아 국가들에서 번영하고 있는 불교, 상좌부(上座部 Theravadin) 즉 분별설부(分別說部 Vibhajja-vadin)의 성전으로써 전승되고 있는 것이다.

팔리어 성전이 유럽에 알려진 것은 영국이 세일론을 지배한 이후인 19세기 전반이지만 1881년 T. W. 리쓰 데이비즈 Rhys Davids가 런던에 설립한 팔리성전협회(Pali Text Society) 등의 활동에 의해 로마자화 된 교정본문(校訂本文)이나 영역본(英譯本)의 간행이 계속되면서 전 세계에 널리 읽혀지게 되었다. 일본에서는 1935년부터 16년에 걸쳐 <남전대장경> 65권 70책이 많은 학자들의 협력에 의해 완성되어, 팔리어 삼장은 모두 일본어로 번역되었다.

팔리어 경장은 보통 ‘아함(阿含)’이라 하지 않고 ‘부(部 nikaya)’라고 하는데, ‘장부(長部 Digha nikaya)’, ‘중부(中部 Majjhima nikaya)’, ‘상응부(相應部 Samyutta nikaya)’, ‘증지부(增支部 Anguttara nikaya)’ 등의 사부(四部)에 다섯 번째 아함이라고 할 수 있는 ‘소부(小部 Khuddhaka nikaya)’를 더하여 오부(五部)로 이루어져 있다. ‘소부(小部)’는 여러 가지 형식 · 내용을 지닌 50 편의 성전을 포함하고 있는데, 그 가운데에는 <담마파다 Dhammapada> (보통 <法句經>으로 한역), <우다나 Udana>, <이티붓타카 Itivuttaka>, <숫타니파타 Suttanipata> (<經集>) 등 그 성립도 빠르고 내용도 잘 알려진 중요한 것이 들어 있다. <담마파다>와 <숫타니파타>에 대해서는 <남전대장경>의 번역 이외에도 여러 종류의 번역이 출판되고 있을 정도이다. 또 <자타카 Jataka> (<本生> 등으로 한역)는 석존의 전생 이야기를 오백 수십 편 수록하고 있어, 이러한 종류의 설화로서는 가장 방대한 것이다. 이처럼 팔리어 경장 가운데 ‘소부(小部)’는 매우 커다란 특징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초기불교의 연구를 위해서는 사아함(四阿含) 사부(四部)에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이다.

한역(漢譯) 아함(阿含)

아함경이 중국대륙에 전해져 한문으로 번역되기 시작한 것은 앞에서 설명한 것처럼 안세고(安世高)가 후한(後漢) 말 즉 기원후 2세기 중반 무렵 낙양에 오면서부터이다. 그 후 5세기 전반에 이르기까지 사아함(四阿含)의 거의 모든 내용이 한역되었다. 그러나 이것은 팔리어 아함의 경우와는 달리 완전히 한 셋트로 갖추어진 사아함(四阿含)이 번역된 것은 아니고 어떤 부파가 전승한 중아함(中阿含)이 어느 때, 다른 사람에 의해 번역되는 등 각각 무관계하게 번역된 것이 우연하게도 네 가지가 한 셋트로 갖추어지는 결과를 낳게 되었던 것이다. 각각의 단경이 별도로 한역된 경우도 많으며 잡아함(雜阿含)에는 불완본(不完本)이면서 이역(異譯)도 있어, 이중으로 혹은 삼중, 사중으로 중복되어 번역된 것도 상당한 수에 달한다. 그렇지만 반대로 팔리어 경장에는 보이면서 한역(漢譯)에는 그에 상당하는 것이 전혀 나타나지 않는 경(經)도 있다. 우연하고도 요행스럽게 갖추어지게 된 사아함(四阿含) 가운데 중 · 잡아함은 분명히 설일체유부(說一切有部) 계(系)가 전한 것이지만 장 · 증일 두 가지 아함은 소속 부파가 확실하지 않다. 장아함은 법장부(法藏部)의 소전(所傳)이라고 하지만 확실한 증거가 없으며 증일아함은 대중부(大衆部) 소전(所傳)으로 알려져 왔지만 근래에 이르러 유력한 반대 의견도 나오고 있다. 한역 증일아함은 그것이 어느 부파에 속하였든간에 거기에는 대승경전에서 즐겨 쓰이는 말이 많이 나타나는 등 두드러진 특징을 띠고 있다.

한역 대장경 안에는 팔리어 경장 중 ‘소부(小部)’에 실린 여러 경전과 상응하는 것도 매우 많이 실려 있는데, 이는 여러 부파에서 전승된 것들이다. 다만 그 모두가 각각 독립된 경전으로 번역된 것이어서 어떤 부파 소속의 다섯 번째 아함인지는 알 수 없다. 분량으로 볼 때 역시 자타카가 가장 많고 다음으로 불전(佛傳) · 비유(譬喩, 팔리어 小部 중 ‘아바다나’에 해당함) · 法句經 (同 ‘담마파다’에 해당함) 등이다. 한역 불전 중 가장 새롭고 또한 총체적으로 집대성한 것으로 볼 수 있는 <大正新修大藏經>에서는 이러한 여러 경들을 ‘아함부(阿含部)’와는 별도로 ‘본연부(本緣部)’에 수록하고 있다.


여러 부파 아함 사이의 이동(異同)

다른 한편 티베트어 역 대장경 안에는 대부분 설일체유부 계로 생각되는 아함의 단경(單經)이 얼마간 실려 있고 또 중앙아시아 각지로부터 대다수 단편적이기는 하지만 상당수의 산스크리트어 혹은 프라크리트 Prakrit語(여러 가지 속어) 단경이 발견되고 있다.

이처럼 오늘날 우리들이 볼 수 있는 아함경전은 모두 초기승단이 여러 부파로 분열하면서 그 누군가의 손에 의해 전승되어진 것이다. 이를 다른 부파가 전승한 아함과 비교해 보면 여기에는 매우 많은 차이가 있다. 따라서 이것들은 그것들이 공통하는 원천, 다시 말해 최초에 경장르로서 종합 정리된 것에서 본다면 각기 어느 정도 변화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면 안된다. 여기서 현존하는 아함 사이의 차이의 정도를 나타내기 위해 간단한 일례를 들어보면 남방 상좌부가 전승한 팔리어 中阿含(中部 Majjhima nikaya)은 152經을 갖고 있다. 이에 반해 설일체유부가 전승한 한역 중아함경은 222경을 포함하고 있으며 양쪽 모두에 공통되는 경전은 100 경에도 미치지 못한다. 공통되는 경전이라 해도 대개는 대강의 줄거리가 일치하는 정도이고 문구가지 일치하는 정도의 경은 매우 드물다고 할 수 있다.

현존하는 율장(律藏)

律藏은 경장에 비해 그 소속 부파가 훨씬 명확하다. 율장에는 남방 상좌부(분별설부)의 팔리어 율장 이외에 설일체유부의 <십송율(十誦律)>, 법장부의 <사분율(四分律)>, 근본설일체유부의 <비나야(毘奈耶)(律)> 등 모두 다섯 가지가 전하고 있어 이것을 오부광율(五部廣律)이라고 한다. <根本說一切有部律>에 대해서는 산스크리트語本이 남아 있고 티베트어 역본도 현존한다. 이 밖에도 적은 편수의, 혹은 단편적인, 그리고 그 중에는 소속 부파가 명확하지 않은 율전(律典)이 산스크리트어 원문으로나 한역으로 다수 남아 있다.

오부광율(五部廣律)과 팔리율을 합한 육부(六部)를 서로 비교 검토해 보면 율전도 경전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혹은 그 이상으로 여러 부파의 전승 사이에 현전한 차이가 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다만 중학법(衆學法)이라는 부분을 뺀 바라제목차(波羅提木叉)의 조문만은 여러 부의 율전이 많은 부분에서 서로 일치하고 있어 특히 일찍 성립하여 고정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이에 반해 경분별(經分別)과 건도분(建度分)은 각기 부파분열 이후 지금의 형태로 형성된 것이다.

제1결집의 결과로서의 <法>과 <律>, 그로부터 얼마 후 정리?조직된 원초적인 경장(經藏)과 율장(律藏), 나아가 그것이 분립(分立)하여 여러 부파 사이에 전승되면서 각기 변화하여 성립한 현존하는 여러 경전과 율전 등이 거쳐온 과정의 자세한 내용을 정확하게 더듬어보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우리는 다만 불교사가 전개되면서 성전상에 있어서도 두드러진 전개의 흔적이 있었다는 사실만을 알뿐이다.

논장(論藏)의 경우

논장은 경 · 율장과는 달리 앞서 설명한 것처럼 본래부터 이미 부파적인 것이다. 그것은 각각의 부파에서 활발하게 전개된 아함연구의 소산이다. 여러 부파로 분열하기 이전에 원초적인 논장으로서 종합 정리된 것이 있었다고는 생각할 수 없을 것이다. 남방 상좌부에서는 논장을 이루고 있는 일곱 가지 논서(論書, 다만 <카타밧투 Kathavatthu>는 그러한 論의 제목일 뿐임)를 전통적으로 석존의 소설(所說)이라고도 하며 설일체유부에서도 역시 초기 몇 가지 논서를 석존 직제자(直弟子)가 설한 것이라고 하지만 사실은 각기 그 부파 논사들의 손에 의해 작성된 것이다.

경 · 율 이장(二藏)에 대하여 논장이라 하는 불교 전적의 세 번째 장르를 분파된 모든 부파(그 수는 뒤에 설명하겠지만 20개 부파에 달함)가 지니고 있었는지 어떤지는 상당히 의심스럽다. 실제로 유력한 몇 개의 부파만이 독자적으로 삼장을 갖추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어쨌든 오늘날 우리가 찾아볼 수 있는 아비달마(阿毘達磨) 논서는 대체로 남전(南傳) 상좌부(上座部)의 팔리어 논장과 북전(北傳) 설일체유부(說一切有部)의 여러 논서 등 오직 두 파에 한정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그 밖의 부파의 논서로서 현존하는 것은 실제로는 얼마 되지 않는다.

팔리어 아비달마에서는 앞에서 설명한 것처럼 논장으로 오직 칠론(七論)만을 꼽고 있다. 이것들은 실제로는 기원전후 시기에 이르기까지 약 200 년간에 걸쳐 점차적으로 성립한 것인데, 정확한 연대는 알려지지 않으며 그 선후도 그다지 분명하지 않다. 칠론(七論) 가운데 <담마상가니 Dhammasangani 法聚論>, <비방가 Vibhanga 分別論>가 특히 중요하다. 또 <카타밧투 Kathavatthu 論事>는 가장 늦게 성립하였지만 여러 부파의 이설(異說)을 들어 비판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해야 할 것이다. 논장 가운데에는 논장으로 꼽을 수 없는(그것을 ‘藏外’라고 함) 논서 혹은 그것에 준하는 것으로서, 오래된 것으로는 <넷티파카라나 Netippakarana 指導論>, <페타코파데사 Petakopadesa 藏釋論> 등을 꼽을 수 있는데, 5세기 이후 붓다고사 Buddhaghosa, 담마팔라 Dhammapala, 아누룻다 Anuruddha 등의 논사가 출현하여 많은 논(論)을 저술하였다.

설일체유부의 논장은 대개 기원전 1-2세기 무렵에 이르기까지 성립하여 남전(南傳)의 <담마상가니> · <비방가>에 상응한다고 하는 <집이문족론(集異門足論)> · <법온족론(法蘊足論)>을 비롯하여 그 최후의 완성된 형태를 나타내는 5세기 무렵의 <구사론(俱舍論)> · <순정리론(順正理論)>에 이르기까지 몇 번의 발전단계를 거치면서 성립하였는데, 매우 많은 논서가 주로 한역 가운데 전승되고 있으며 일부는 산스크리트어 원문으로도 남아 있다.

남방 상좌부나 설일체유부 이외 다른 부파의 논서로서는 얼마 되지 않지만 <사리불아비담론(舍利弗阿毘曇論)>이라든가 <삼미저부론(三彌底部論)> 등이 한역으로 남아 있는 정도이다. 원래 이 두 부파에 필적할 만한 양의 논서를 가졌던 부파가 달리 없었기도 하였겠지만 그렇다고 해도 상당히 많은 논서가 역시 몇 개의 부파에 의해 작성되었음이 분명한데, 그 대부분은 망실되어 버렸던 것이다.

본생(本生) · 비유(譬喩) · 불전(佛傳)

팔리어 경장에 있어서 ‘소부(小部)’에 수록된 것 가운데 <자타카 Jataka> · <아파다나 Apadana> · <붓다밤사 Buddhavamsa> · <차리야피타카 Cariyapitaka> 등은 불교적인 설화문학이라고도 할 만한 독특한 스타일을 지닌 것으로, 불교의 역사상 또 다른 독특한 의의를 갖는다. 한역의 경우 이러한 경들이 <大正新修大藏經>에서 ‘본연부(本緣部)’라는 이름하에 종합 정리되고 있다는 것은 앞에서 설명한 대로이다. 석존의 전기나 그 전생(本生) 이야기, 석존보다 훨씬 이전에 이 세상에 출?였다고 하는 과거 제불(諸佛)의 이야기, 유명한 불제자들의 인연 이야기 등 이러한 설화문학은 승단의 사람들보다도 오히려 일반 재가시민들 사이에 더 인기가 있어서 불교전파를 촉진시키는 힘이 되었다. 이같은 사실은 초기 불교미술의 주제를 거의 모두 불전(佛傳) 혹은 본생(本生) 이야기에서 취재하였다는 사실로써도 상상할 수 있는 일이다. 필시 승단 내부에 있어서 아비달마의 발전과 병행하여 다른 한편으로 이러한 설화가 활발하게 구전됨으로써 불교와 재가의 사람들의 접촉을 쉽게 하였고, 따라서 그것은 점차 커다란 부피로 커지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또한 뒷날 성립하는 대승경전의 적지 않은 부분이 이러한 설화문학의 발전과 깊은 관계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도 주목해야 할 것이다.

팔리어 소부(小部)나 한역 본연부(本緣部)에 들어 있는 것 이외의 이러한 종류의 전적은 어느 정도 산스크리크어 원문으로도 남아 있다. 그 가운데 중요한 것으로 ‘譬喩’(아바다나 avadana, 팔리어로 아파다나 apadana 因緣 이야기>類로서는 <아바다나싸타카 Avadanasataka>나 <디브야아바다나 Divyavadana>, ‘本生’으로서는 <자타카마라 Jatakamala>, ‘佛傳’으로서는 설출세부(說出世部)가 전하는 <마하바스투 Mahavastu>나 한역으로도 일찍부터 전하여지는 <랄리카비스타라 Lalitavistara> (한역 <普曜經> · <方廣大莊嚴經>, 작자가 분명한 아쓰바고샤 Asvaghosa의 <붓다차리타 Buddhacarita> (한역 <佛所行讚>) 등을 들 수 있다.

 

 

 

** pali 율장(律藏)의 성립

불교의 경전은 경(經), 율(律), 론(論)의 삼장(三藏)으로 나눈다. 경장(經藏)은 주로 붓다의 설법을, 율장(律藏)은 승가 즉 교단생활에 관한 금율(禁律)과 행지(行持)를 규정한 것이고, 논장(論藏)은 경장(經藏)에 있는 붓다의 설교에 관하여 불제자 혹은 그 후의 장로 학자들이 행한 해설과 연구를 모은 것이다.

이 가운데 비교적 원시적 형태에 가까운 현형(現形)의 율장(律藏)은 부파분열 이후 즉 불멸(佛滅) 후 200- 300년 이후에 성립되었다는 것이 학계의 정설이다. 즉 여러 광율(廣律)의 현재의 형태가 확정된 것은 부파 대립 이후 각 부파에서 완성된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현재와 같이 각 부파에 따라 율장이 다른 이유를 설명할 수 없게 된다. 그러나 지금의 율장의 형태가 전부 한꺼번에 이루어졌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현형의 율장 가운데 그 근본이 되는 것은 제2결집, 혹은 제1결집 더욱 소급하여 붓다시대에 있었던 것이지만 현형으로 확정된 것은 부파 대립시대 이후라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율장 내용에서 각부(各部)의 성립에 관하여 율장은 불멸 직후 제1결집에서 아난(阿難)이 경(經)을 송출하고 우바리(優波利)가 율(律)을 송출한 것이 현재의 율장이라고 한 것은 제외하고, 율장 가운데 신고(新古)의 부분을 결정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각종 율장의 같고 다름의 비교로써 이것에 의해 가장 잘 일치하는 부분은 가장 오래되고 다른 부분은 새로운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율장의 경분별부(經分別部)와 건도부는 대체적으로 일치하므로 이것은 그 원형을 부파분열 이전에 있었던 것, 즉 제2결집시대에 이미 있었던 것으로 보아도 될 것이다. 그런데 그 후 부록부분은 여러 계율에 의해 조직 내용과 함께 크게 다르기 때문에 이 부분은 부파 대립 후에 성립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율장의 조직과 내용

팔리근본율장의 조직은 경분별(經分別, suttavibhanga), 건도부(khandhaka), 부수(附隨, parivara)의 세 부분으로 되어있다. 경분별은 비구와 비구니의 계조(戒條)에 관한 설명부분으로 비구계 227조, 비구니계 311조를 열거하여 각각의 계조(戒條)에 대해 그 계가 제정되기까지의 사정, 조문의 해석, 운용의 실례 등을 덧붙여 율장의 중심을 이루고 있다. 건도부는 교단에서 중요한 행사방식, 제도규정, 경분별에 대한 계조(戒條)의 운영규정 등을 설명한 것으로 맨 끝에는 불교성전이 편찬된 사정을 기술하고 있다. 부수는 부록이며 19장으로 되어 있고 앞의 경분별이나 건도부보다 나중에 성립된 것이다. 경분별과 건도부는 대체로 한역과 일치하고 있다.

율장의 중심은 경분별의 비구계를 여덟 종류로 나눈 것으로, 이는 227개조를 그 죄과(罪過)에 따라 분류한 것이다. 여덟 종류는 바라이(波羅夷, Parajika), 승잔(僧殘, Samghadisesa), 부정(不定, Aniyata), 사타(捨墮, Nissaggiya pacittiya), 단타(單墮, Pacittya), 바라제제사니(波羅提提舍尼, Patidesaniya), 중학(衆學, Sekhiya), 멸쟁(滅諍, Adhikarana samatha)이다.

바라이(波羅夷)는 비구의 극형을 설명한 부분으로 이 죄를 범한 자를 비구로서의 자격을 잃고 교단에서 추방된다. 승잔(僧殘)은 바라이 다음 가는 중죄로 비구로서의 자격을 잃어버리지는 않지만 죄에 굴복하거나 죄를 용서받는 일은 모두 승단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다. 부정(不定)은 불결정(不決定)의 죄이다. 사타(捨墮)는 의복, 와구 등 소유물에 관해 정하는 것 이상을 소유하거나 불법태도가 있을 경우 그 물품은 승단에 몰수되고 승려들에게 참회해야 하는 죄로 30개가 있다. 이 죄를 범한 사람은 4인 이상의 승려들에게 그 물품을 제출하고 참회해야 한다. 단타(單墮)는 재물에 관한 죄가 아닌 망어(妄語), 양설(兩舌), 살축생(殺畜生), 음주(飮酒) 등과 같이 집착심과 번뇌에 관한 죄로 93개조를 들고 있다. 바라제제사니(波羅提提舍尼)는 회과(悔過)라고도 하는데 타인에게 고백하고 참회해야 할 죄이다. 중학(衆學)은 죄의 이름이 아니고 식사의 방법, 설법의 방법, 재가자에게 접근할 때의 주의 등 알아두어야 할 위의작법(威儀作法)을 기술한 것으로 여기에 반대되는 행위를 하면 돌길라죄(突吉羅罪)가 된다. 이것에 75개의 조가 있지만 한역의 <사분율>과 <오분율>에는 100개의 조가 있다. 이것을 고의로 범했을 때는 상좌비구에게 참회해야 하고 고의가 아닌 경우는 자기 마음 속으로 참회하면 된다. 멸쟁(滅諍)도 죄의 이름이 아니고 승단 중에 일어났거나 일으키려는 분쟁을 가라앉히는 7종의 방법을 열거한 것으로 이것에 의해 적당히 분쟁이 진압되지 않을 때는 상조가 돌길라죄(突吉羅罪)를 적용하는 것이다.

건도부는 소품(小品)과 대품(大品)으로 나누어지고 총 22장으로 되어 있다. 대품(大品, Mahavagga)는 수계편(受戒篇), 포살편(布殺篇), 안거편(安居篇), 자자편(自恣篇), 피혁편(皮革篇), 약제편(藥劑篇), 가치나의편(迦緇那衣篇), 법의편(法衣篇), 담파편(膽波篇), 구섬미편(拘贍彌篇)으로 나누어져 있다.

수계편(受戒篇)에서는 출가입단법(出家入團法) 즉 비구계를 받고 출가한 승단의 일원이 되었을 때 알아야 할 법규로 수계의 방법, 수계자의 자격, 계를 주는 자의 자격, 새 출가자의 훈육법 등을 설명한다. 포살편(布殺篇)에서는 매월 8일, 14일, 15일 3회 교구승(敎區僧)이 전부 집합해서 바라제목차를 읽고 수양하는 포살의 방법, 이것에 관련하여 계구설정법(界區說定法)을 설명한다. 안거편(安居篇)에서는 매년 우기(雨期) 3개월 뭇 승려들이 일정한 거처에 정주(定住)하여 수양하는 안거의 규칙을 설명한다. 자자편(自恣篇)에서는 매년 안거가 끝나는 날, 즉 7월 15일 혹은 8월 15일에 뭇 승려들이 서로 안거 동안의 행위에 관해 견문한 바를 충고하는 자자(自恣)에 대해 설명한다. 피혁편(皮革篇)은 비구가 피혁제품을 소지하고 사용하는 것에 대한 법, 비법(非法), 지방에서의 계율상의 특례를 설명한다. 약제편(藥劑篇)에서는 비구의 식물, 약 등에 대한 제규(制規)를 설명한다. 가치나의편(迦緇那衣篇)에서는 안거 동안 정진에 힘쓴 비구에게 규정된 삼의(三衣)를 지어줄 동안에 주는 특별한 의복인 가치나의에 관해서 설명한다. 법의편(法衣篇)에서는 비구의 의복에 대한 여러 가지 규정을 설명한다. 담파편(膽波篇)에서는 붓다가 담파에 있을 때 죄없는 비구를 승려들이 죄있다고 판결한 것에 대해 설명하고 승려들이 행하는 갈마의 종류의 유효와 무효에 대해 설명한다. 구섬니편(拘贍彌篇)에서는 구섬니의 한 비구의 유죄와 무죄에 관해 승려들 가운데 이론(異論)이 생긴 후에 조정된 것을 설명한다.

소품(小品, Cullavagga)는 갈마편, 별주편(別住篇), 죄집편(罪集篇), 멸쟁편(滅諍篇), 소사편(小事編), 좌와처편(坐臥處篇), 파승편(破僧篇), 법편(法篇), 차편(遮篇), 비구니편(比丘尼篇), 오백인편(五百人篇), 칠백인편(七百人篇)으로 나누어져 있다.

갈마편에서는 불법 행위에 대한 처벌을 과(課)하는 방법, 죄를 면하는 방법 등을 설명한다. 별주편(別住篇)에서는 승잔죄를 범한 비구가 받는 형인 별주(別住), 육야마나타(六夜摩那唾)를 행하는 비구의 실권(失權)에 대해 설명한다. 죄집편(罪集篇)에서는 전편에 계속된 것으로 별주(別住), 육마나타형에 관해 설명한다. 멸쟁법(滅諍篇)에서는 승단 가운데 일어날 수 있는 분쟁을 진정하는 7종류의 법을 설명한다. 소사편(小事編)에서는 비구의 의식주에 대한 모든 일의 잡연(雜然)과 소규정을 모은 것이다. 좌와처편(坐臥處篇)에서는 비구의 주거, 와구 등에 대한 제규(制規)를 설한다. 파승편(破僧篇)에서는 제바에 의한 승단의 분열사건을 진술하여 파승(破僧)의 의의, 파승자(破僧者)의 죄보 등을 설명한다. 법편(法篇)에서는 비구의 일상생활에 대한 작법을 설명한다. 차편(遮篇)에서는 포살할 때 계를 범한 비구에게 열석(列席)을 금지하는 것을 설명한다. 비구니편(比丘尼篇)에서는 비구니에 관한 여러 가지의 규정을 설명한다. 오백인편(五百人篇)에서는 불멸 후 왕사성(王舍城)에서 행해진 제1결집을 설명한다. 칠백인편(七百人篇)에서는 불멸 후 100년을 지나 비사리(毘舍離)에서 행해진 제2결집에 대해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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