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형수를 사랑한 곱슬머리 여인>
법구경 102번 103번 게송
쓸모 없는 구절을 모아 백 편의 시를 읊기보다
들으면 마음이 가라앉는 한편의 시가 훨씬 뛰어난 것이다.
쓸데없는 백 개의 시를 말하는 것보다
들어서 안온해지는 한 마디 진리의 말씀이 낫다.
雖多誦經 不解何益 解一法句 行可得道
수다송경 불해하익 해일법구 행가득도
彼誦百句偈,若無義理者,不如一法句,聞已得寂靜。
Yo ce gāthāsataṁ bhāse anatthapadasaṁhitā,
ekaṁ Dhammapadaṁ seyyo, yaṁ sutvā upasammati.
Better than reciting a hundred verses composed of meaningless words is one text on hearing which one becomes peaceful.
~법구경 103번 게송
전쟁터에서 싸워 백만인을 이기기보다
자기 자신을 이기는 사람이 가장 뛰어난 승리자다.
전쟁에서 백만이나 되는 대군을 이기는 것보다
하나의 자신을 이기는 자야말로 참으로 전쟁의 승리자이다.
千千爲敵 一夫勝之 未若自勝 爲戰中上
천천위적 일부승지 미약자승 위전중상
彼於戰場上,雖勝百萬人;未若克己者,戰士之最上!
Yo sahassaṁ sahassena saṅgāme mānuse jine,
ekañ-ca jeyya attānaṁ, sa ve saṅgāmajuttamo.
If a man were to conquer in battle a thousand times a thousand men, and another conquer one, himself, he indeed is the greatest of conquerors.
[인연담]
밧다 꾼달라께사(Bhaddā-Kundalakesā)는 라자가하에 사는 한 부자의 딸이었다. 그녀는 어릴 적부터 조용하고 한적한 생활을 좋아했는데, 어느 날 사형장으로 끌려가는 도둑을 보고 그만 사랑에 빠져 버렸다. 그녀의 부모는 큰 부자였던 만큼 딸을 생각해서 도둑을 잡아가는 사람에게 많은 돈을 주고 그를 풀어 주도록 한 뒤 그녀와 결혼을 시켰다. 꾼달라께사는 자기와 결혼한 남자가 한때 도둑이긴 했지만 그래도 그를 매우 사랑했다. 그러나 그녀의 남편은 본래 도둑이었던지라 사랑보다는 그녀가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재산과, 또 몸에 지니고 있는 값진 금은 보석 따위에 더 마음을 두고 있었다.
어느날 남편은 아내에게 모든 값진 물건을 몸에 다 지니게 하고 자기와 함께 멀리 산에 올라가서 산신에게 제사를 지내자고 말했다. 남편은 아내에게 자기는 옛날에 죽을 지경에 처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산신이 생명을 구해 주었다고 말했다. 그러므로 이제는 아내와 함게 산에 가서 제사를 올리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남편은 그녀를 데리고 산꼭대기까지 올라갔다. 산 위에 오른 남편은 갑자기 태도를 바꾸어 사실은 자기는 제사를 지내려는 것이 아니라 너를 죽이고 몸에 지닌 값진 것들을 빼앗으려는 거라고 말했다. 이에 너무나 놀란 아내는 모든 것을 다 드릴 테니 목숨만은 살려 달라고 애원했다. 그렇지만 남편은 마음을 바꾸려고 하지 않았다. 그 순간 아내는 생각했다.
"이렇게 되었으니 내가 살기위해서는 남편을 처치하는 수밖에 없겠다. 그러니 나는 아주 능숙하게 행동해야 할 것이다."
이렇게 마음을 정한 꾼달라께사는 몸에 지니고 있는 보석들을 풀어 남편이 안심하도록 유도하면서 슬픈 목소리로 말했다.
"이제 저는 당신에 의해 죽게 되었어요. 이것이 우리의 마지막이 되겠군요. 우리는 이번에 헤어지면 다시는 만날 수 없는 운명입니다. 그렇더라도 어쨌건 당신은 제 첫사랑이었고, 제 남편이었습니다. 이제 저는 당신께 마지막으로 제 사랑을 표시하고 싶어요. 법도에 맞게 공손하게 예를 표할 수 있게 잠시 여유를 주세요. 이제부터 제가 당신의 오른편으로 조용히 세 바퀴를 돌고 큰 절을 올릴 테니 그 다음엔 모든 것을 당신 마음대로 하세요.”
이렇게 간청하자 도둑도 마음이 움직였던지 그것을 허락해 주었다. 꾼달라께사는 두 손을 모아 합장하고 아주 천천히 남편의 오른쪽 방향으로 돌면서 그의 동정을 예리하게 살폈다. 그때 남편은 자기 눈앞에 쌓인 보석에 모든 관심이 집중되어 있어서 아내의 행동에는 주의를 가울이지 못하고 있었다. 그때를 그녀는 남편의 등을 떠밀어 벼랑 아래로 떨어뜨려 버렸다.
이같이 도둑 남편을 처치하고 자기 목숨을 구한 그녀는 금은 보석을 나무위에 매달아 놓았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그저 무조건 앞으로 걷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그녀는 니간타들과 같이 살게되었고 그곳에서 머리를 뽑고 다시 자라는 바람에 꾼달라(곱슬)께사(머리)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 꾼달라께사는 니간타 무리에서 뛰쳐나와 다른 수행그룹에 들어갔다. 그녀는 두뇌가 매우 명석하였으므로 아주 짧은 기간에 그곳에서 가르치는 모든 것을 터득했다. 그녀의 스승(여자)이 말했다.
"너는 이제 세상에 나가서 그 동안 배운 일천 가지 문제를 제기해 보아라.“
꾼달라께사는 세상으로 나왔다. 그녀는 세상에 널리 돌아다니면서 자기의 지식과 능력을 드러내었고, 공개적으로 도전자를 청했다. 그러나 아무도 그녀에게 도전해 오는 사람이 없었으므로 그녀는 계속하여 이 지방 저 지방으로 순회를 하면서 상대를 구했다. 그 때문에 세상을 누비는 여자 수행자라고 불리었다.
이렇게 지방을 계속 여행하던 어느 날 사왓티에 도착했다. 그녀는 성에 들어가 탁발을 하기 전에 자기에게 도전해 올 사람을 찾는다는 표시로 모래 무덤을 크게 만들고 그 꼭대기에 우제니아(열대식물) 가지를 걸어 높이 달아 두었다.
이때 사리뿟따 비구가 이 여인에게 도전하게 되었다. 꾼달라께사는 갈고 닦은 솜씨를 발휘하여 일천 가지의 문제를 제기했다. 그렇지만 사리뿟따 비구는 아주 쉽게 이 모든 문제를 풀었다. 그 다음은 사리뿟다 비구가 질문할 차례였다. 사리뿟따 비구는 그녀에게 단 한 가지를 물었을 뿐이었다. 그 질문은 "하나는 무엇인가?" 라는 것이었다.
꾼달라께사는 가르쳐 달라고 청했고, 비구는 그러려면 먼저 비구니가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리하여 그녀는 비구니가 되었다.
꾼달라께사는 수행을 시작한지 불과 며칠만에 아라한이 되었다. 몇몇 비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비구니 꾼달라께사는 어떻게 적은 법문만을 듣더라도 아라한이 될 수 있었습니까? 그녀는 출가하기 전에 다른 수행 단체에 속해 있었고, 또 사람을 죽인 여인이었는데 말입니다.“
부처님께서는 다음의 게송 두 편으로 대답을 대신하였다.
열반을 깨닫는 것과 관계없는
무의미한 게송 백 편을 읊어 주는 것보다는
단 한 편에 지나지 않을지라도
듣는 이의 마음을 고요하게 해주는
게송을 읊어 주는 편이 훨씬 낫다.
전쟁터에서 백만인을 정복한 것보다는
자기 자신을 정복한 것이
참으로 더욱 위대한 것이다.
[해설]
꾼달라께사의 기구한 인생도 영화로 만들어도 손색이 없을 듯하다. 본래 영민한 까닭에 사리뿟따를 만나서 짧은 시간에 아라한이 되었다. 아라한이 되었으니 이전의 고된 삶은 후회에서 보람으로 가치가 변화되었다. 이렇듯 현재의 삶이 현재의 마음이 과거를 규정하고 또한 미래를 규정한다. 그러니 현재 깨어있는 마음이 가장 중요하다.
장로니게 107~111게송에는 꾼달라께사 비구니가 읊은 시가 있다.
옛날에 나는 머리 자르고
한 가지 옷과 때가 낀 이빨로서
허물 없는 것을 허물 있다 생각하고
있는 허물을 없다 보며 다녔다.
영취산 위에서
한낮을 쉬고 돌아와서는
번뇌를 떠난 저 부처님이
비구들에 둘러싸여 계시는 것 보았다.
땅에 무릎 대고 예배한 뒤에
바로 그 앞에서 합장하고 서 있었다.
부처님은 "잘 오너라. 밧다여!" 하셨나니
이것이 내가 처음 계율 받은 것이다.
앙가. 마가다. 밧지. 카시
그리고 코살라를 두루 돌면서
50년 동안을 빠뜨림 없이
백성들의 음식을 받아 먹었다.
온갖 결박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이 밧다에게 옷을 베푼 이
이 지혜 있는 재가자도
또한 많은 복업을 쌓았다.
여기서도 ‘쓸데없는 백 개의 시를 말하는 것보다’는 ‘의미없는 게송’이라고 가치 중립적인 단어로 번역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천개의 게송이 쓸데 없지는 않을 것이고 다만 외우는 사람이 그 게송에서 감동하지 못한 것이다. 천개의 게송이 다 쓸데 없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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