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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구경

하느님도 아라한을 이길 수 없다 - 104번 105번 게송

<하느님도 아라한을 이길 수 없다>

 

법구경 104105번 게송

 

자기 자신을 이기는 일은 남을 이기는 일보다 뛰어난 것

그러니 자신을 억제하고 항상 절제하는 사람이 되라.

 

자신을 다스리고 언제 나 자제하며 사는 자

자신을 이기는 자가 다른 사람을 이기는 자보다 낫다.

 

自勝最賢 故曰人王 護意調身 自損至終

자승최현 고왈인왕 호의조신 자손지종

 

能克制自己過於勝他人若有克己者常行自節制

 

Attā have jitaṁ seyyo yā cāyaṁ itarā pajā,

attadantassa posassa, niccaṁ saññatacārino,

 

Conquest of self is indeed better than the conquest of other persons; of one who has disciplined himself, who always practises self-control.

 

~법구경 105번 게송

 

이와 같은 사람의 승리는 그 누구도 꺽어 물리칠 수 없다.

음악의 신도 악마도 또한 세상을 창조한 최고의 신이라 할지라도.

 

천신도 건달바도 악마도 하느님도

그와 같은 존재의 승리를 패배로 바꿀 수 없다.

 

雖曰尊天 神魔梵釋 皆莫能勝 自勝之人

수왈존천 신마범석 개막능승 자승지인

 

天神乾闥婆魔王並梵天皆遭於敗北不能勝彼人

 

neva devo na gandhabbo, na Māro saha Brahmunā,

jitaṁ apajitaṁ kayirā tathārūpassa jantuno.

 

Not even a god nor a gandharva* nor Mara along with Brahma* could turn into defeat the victory of such a one (who has conquered himself). [Note: gandharvas are fairies. Brahma is the creator god according to Hindu tradition.]

 

[인연담]

 

한때 아나타뿟차까라는 이름을 가진 브라흐민이 제따와나 승원으로 부처님을 찾아와서 이렇게 말한 적이 있었다.

 

"존경하옵는 분이시여, 제 생각에 당신은 다만 이익되는 수행에 대해 아실 뿐 이익이 되지 않는 수행에 대해서는 모르시는 것 같습니다.“

 

부처님은 자신은 이익이 되지 않고 해를 끼치는 수행에 대해서도 아신다고 대답하였다. 부처님은 그런 수행에는 다음의 여섯 가지가 있다고 말했다.

 

해가 높이 떠올랐을 때까지 늦잠 자는 것

습관적으로 게으르고 태만한 것.

잔인하고 사나운 마음을 가지는 것.

늘 취해 있고, 술 마시기를 좋아하는 것.

때 아닌 시간, 예컨대 밤이 깊었는데 거리를 헤매고 다니는 것.

절제없이 삿된 음행을 하는 것.

 

이런 것들을 말씀하시고 나서 부처님은 브라흐민에게 그대는 어떻게 생활하고 있느냐고 물었다. 만약 도박을 한다면 이기는지 지는지도 질문하였다. 이에 대해 브라흐민은 어떤 때는 이기고 어떤 때는 진다고 대답하였는데, 부처님은 이에 대해서

 

"도박에서 이기는 것을 어떻게 번뇌를 이기는 승리에 비길 수 있으랴?" 라고 말했다. 부처님은 다음의 게송 두 편을 읊었다.

 

자기를 이기는 것이

다른 사람을 이기는 것보다 진정 나은 것.

그러므로 자기를 잘 다스리라

마침내 모든 행동에 자재함을 얻으리니.

 

설사 천왕ㆍ천인ㆍ마라ㆍ건달바일지라도

자기를 이긴 승리자를

다시는 패배자로 만들지 못한다.

 

 

 

 

 

[해설]

 

범천 브라흐마(Brahma)를 법정스님은 세상을 창조한 최고의 신이라 번역하였고 전재성은 하느님이라고 번역하고 있다. ‘세상을 창조한이라는 수식어는 없지만 그렇게 수식어를 붙여서 번역한 것은 일반적으로 브라흐만교에서 범천을 세상을 창조한 자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힌두교의 브라흐마(Brahma)와 기독교의 야훼신등이 세상을 창조했다고 믿는 창조론은 세상을 설명하는 가장 손쉬운 방법으로 전해져왔다. 불교에서는 상견(常見)이라고도 하는데 부처님은 이러한 견해들이 유한한 인간의 욕망과 무지에서 기인한 견해라고 말한다.

 

이러한 견해는 인간에게 고통을 준다. 고통을 야기하는 3가지 갈애 즉, 감각적욕망에 대한 갈애(kāma tanhā), 존재에 대한 갈애(bhava tanhā), 단멸에 대한 갈애(vibhava tanhā)가 있는데 영원히 살고 싶다는 갈애는 존재에 대한 갈애(bhava tanhā)이다. 존재에 대한 갈애는 생명이 있는 것들에게는 무조건적인 것으로 감각적욕망에 대한 갈애(kāma tanhā)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범천이 세상을 창조했다는 믿음을 가진 사람에게 부처님은 세상에서 제일 예쁜 미인의 비유를 들어 설명한다.

 

어떤 사람이세상에서 제일 예쁜 미녀를 사랑하고 있다고 소리치며 다녔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에게 그 미녀가 어디에 사는지 물었다. 그는 그 미녀가 어디에 사는지는 모른다고 대답했다. 그 미녀의 이름은 무엇인지, 나이는 몇 살인지를 물었다. 그는 모른다고 대답했다. 다시 그녀의 키, 몸무게, 피부색깔이 어떤지를 물었다. 그는 이 모든 질문에도 모른다고 대답했다. 다시 그에게 그녀를 한번이라도 만난 적이 있는지를 물었다. 그는 그 미녀를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다고 답했다. 마지막으로 그에게 이렇게 물었다. “그렇다면 그대는 알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한 세상에서 제일 예쁜 미녀를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인가?” 그는 그렇다네.’ 라고 말했다. 붓다는 이렇게 터무니 없는 말을 하는 사람은 바로 나는 을 사랑한다고 말하는 사람을 비유한 것이다라고 말했다.(D13)

 

인간은 세상을 창조했다고 믿는 그 을 알지도 보지도 만나지도 못했지만 여전히 나는 을 사랑한다’ ‘은 나를 사랑한다고 믿고 있다. 부처님은 자기야 말로 자신의 주인 어떤 주인이 따로 있을까. 자기를 잘 다룰 때 얻기 힘든 주인을 얻는다”(160번게송)라고 가르쳤고 또한

내가 악행을 하면 스스로 더러워지고 내가 선행을 하면 스스로 깨끗해진다. 그러니 깨끗하고 더러움은 내게 달린 것, 아무도 나를 깨끗하게 해줄 수 없다.”(165번게송)라고 말했다.

여기 105번 게송에서는 자신을 다스리고 언제 나 자제하며 사는 자를 천신도 건달바도 악마도 하느님(브라흐마)도 그를 패배하게 할 수가 없다.”라고 말한다. 부처님과 아라한들의 위치가 이렇게 높고 굳기 때문에 웰라마 경(A9:20)에서는 장자여, 그러나 그러한 보시를 할 때 보시받아 마땅한 사람이 없었으며 아무도 그런 보시를 청정하게 하지 못했다. 장자여, 웰라마 바라문이 큰 보시를 했지만 견해를 구족한 한 사람을 공양한다면, 이것은 그것보다 더 큰 결실이 있다. 한 사람의 일래자를 공양한다면, 한 사람의 불환자를 공양한다면, 한 사람의 아라한을 공양한다면, 한 사람의 벽지불을 공양한다면, 한 사람의 정등각을 공양한다면, 이것이 이전 것보다 더 큰 결실이 있다.”라고 설명한다.

 

이렇듯 부처님이 세상에 나타나면서 부터는 탐진치를 제거한 부처님이나 아라한이 신의 권위를 능가하는 최고의 존재가 되었다. 그들의 깨달음이라는 것은 인간이 어떻게 신(GOD)이라는 관념을 만들어 내고 어떻게 그 관념에 믿음을 갖는지를 아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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