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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단개혁

현각스님과 혜민스님

현각스님과 혜민스님

이들의 논란이 한바탕 헤프닝이라는 생각이 들어 그냥 지나가려다가 한겨레신문에 "혜민스님 안거수행기록 0번" 이라는 기사를 보고 아래와 같은 댓글을 달게 되었다.

"이런 기사를 쓰는기자 이름이 누군지 찾아보니 기자이름이 보이지 않네.

혜민스님은 안거를 안한 것이 아니라 봉암사에서 산철안거를 했다. 일반 하안거 동안거는 기록에 남지만 산철안거는 기록에 남지 않는다. 이런면에서 산철에 참선을 하는 스님들을 더 칭찬해야 한다. 조계종의 기본교육은 참선뿐만이 아니라 승가대학, 소임살이,포교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한 것을 동등하게 인정해준다. 혜민스님은 선방에서 공부하지 않아도 비구계를 받을자격이 되었지만 안거로 인정해주지 않아도 스스로 공부를 한거다. 이건 칭찬받아야 한다. 이런것도 모르면서 왜 이런기사를 쓰나? 클릭 수를 높이려는 속셈인가? 논란이 시들어가는 것이 속상한가? 제대로 알고 기사를 써라."

....안거 기록까지 찾아서 비판을 이어나갈 필요가 있을까? 저런 비판이 애정어린 비판일까? 승냥이처럼 비판꺼리를 찾아 비판을 즐기고 즐기도록 유도하는 언론의 모습은 비겁하고 치졸하다.

불자가 아닌 사람들은 그렇다고 치고 불자들은 이 논란에서 얻어야할 교훈이 있다. 현각스님과 혜민스님 두 스님 모두 승가라는 공동체의 보호와 감시를 받지 않고 살아서 생긴 문제이다. 승가는 공동체는 구성원들을 보호해야 하는 의무와 감시해야 하는 의무가 있다. 현재 조계종에서는 공동체가 이러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대다수 조계종스님들은 개인의 자유를 맘껏 누리며 살지만 공동체의식이 희박하다. 현각스님이나 혜민스님이나 불교방송

에 출현하는 스타스님들이 비구니 차별을 규탄하고 멸빈자 서의현이 대종사가 된 것에 대해서 비판하는 걸 본 적이 있는가? 그들은 승가공동체에 관심이 없다.

돈과 권력으로 승가를 조종하는 무리들에 의해 공동체가 무너지다보니 사찰은 주지가 사업장처럼 운영하고 승려들은 종업원처럼 되었다. 인터넷에 사찰을 매매하고 기도스님을 구하는 ‘사찰넷’같은 사이트를 찾아보면 불교의 현주소를 알 수 있다. 승려들이 사유재산을 추구하며 개인처소에 살다보니 주거지 생활비가 필요하다. 하여 사회처럼 알바를 해서 먹고살아야 한다는 스님들이 의외로 많다. 수행을 하건 번역을 하건 포교를 하는 하건 승려들의 개인적인 역량은 뛰어나나 승려들에게 공동체의식이 없다. 이렇게 각자도생 하는 것이 생활화 되었기에 부처님 법은 생활비를 버는 수단이 되었다.

자신의 생존과 생활비를 벌기 위해 부처님 팔아먹고 장사한다는 말이 새삼스럽지 않다. 대한불교조계종 승가에는 부동산 임야 전답 등 전체 승려들이 풍족하게 살 수 있는 물질적인 자산이 있지만 그 공적자산을 일부 권력을 가진 승려들이 독점하고 있다. 그래서 스님들 사이에서도 사회와 같은 경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현각스님이나 혜민스님이 승가에 도움을 받고 보호를 받으면서 살았다면 현각스님의 막말이 없었을테고 혜민스님의 건물주 논란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승가안에서 대중공사를 통해서 논란을 해결하였을 것이다. 이 논란에서 불자들은 승가공동체가 무너진 것이 근본 원인임을 발견해야 한다.

첨언 하자면

승가란 스님들이 한 사찰에 모여 사는 것도 아니고 승가가 산속에 있어야만 하는 것도 아니다. 스님들은 도시에 살아도 되고 산에 살아도 된다. 다만 정기적으로 모여서 법을 토론하고 포살(반성과 성찰의 시간을 갖는 것)과 자자(스스로 경책해 주기를 바라는것)를 하고 대중공사(전체승려가 모여 결정하는 것)를 진행하므로서 승가공동체의 일원이 된다.

승가의 보호와 지원과 감시를 받으며 살아가게 된다.

이렇게 글을 쓰면서도 마음이 무겁다. 혼자서 사유재산을 가지고 자유롭게 사는 스님들은 어느덧 그렇게 사는 맛에 길들여져서 ‘승가’ ‘육화경’등의 이야기를 본능적으로 싫어한다.

“이대로가 좋아!”

라고 외치며 변화를 거부한다.

그러니 앞으로도 이런 일이 일어날 가능성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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