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각스님과 혜민스님2
혜민스님이 봉암사 산철에 참선을 한 것은 칭찬받을 일이다라는 댓글을 달았더니 혜민스님의 건물주라는 것에는 왜 한마디도 안 하냐고 불만을 토한다. 혜민스님이 건물을 샀고 그 소유권을 종단에 등록했다는 이야기도 있는데 그것이 사실이라면 이것도 칭찬받아야 할 일이다. 반대로 현재 혜민스님이 몇억정도의 건물주라고 해도 이것은 조계종스님들에게는 놀라운 일이 아니다.
혜민스님은 남산이 보이는 전망이 좋은 방을 스스로 공개했다. 어떤 기자가 집요하게 취재해서 밝혀낸 것이 아니다. 공영방송에 자신의 방을 소개하는 혜민스님의 모습은 당당하다. 제가 말하려고 하는 것은 이 부분이다. 조계종에는 혜민스님처럼 재력이 있는 스님들이 여럿이다. 그런분들은 “내가 이 정도 차는 타야지” “통장에 이 정도는 있어야지” “이 정도의 처소에서 살아야지”라는 생각을 하며산다. 품위유지비라는 것을 소중히 여긴다.
이것을 확인 하려면 조계종 '본사주지회의'에 참석하려고 주지스님들이 타고 오는 차종들을 보시라.
그렇다면 조계종에서는 사유재산을 인정하고 있을까? 아니다. 율장에는 "금이나 은을받아서는 안된다"라는 조항이 있고 조계종의 승려법 제34 조에는 “승려는 종단의 공익과 중생 구제의 목적 이외에는 본인이나 세속의 가족을 위하여 개인 명의의 재산을 취득하여서는 아니된다.”라고 명시하고 있다. 문제는 “본인이나 세속의 가족을 위하여 개인 명의의 재산을 취득하여서는 아니된다.”라고 되어 있는데 조계종스님들 99%가 개인통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스님들에게 소유를 인정하지 않는데 왜 소유물을 가지고 있느냐고 물으면 불사를 하기 위해서 중생구제하기 위해서 통장과 자가용과 건물을 소유하고 있다고 대답한다. 승려법이 소유물을 금지하는 것 같지만 실질적으로는 구성원들은 소유물을 인정하는 문장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혜민스님도 건물을 사면서 “이건 중생구제를 위해서 사는거야”라는 당당함이 있었을 것이다. 오히려 능력이 더 있었다면 더 큰 건물을 샀을 것이다. 차리리 종법으로 소유를 인정하되 차는 몇씨씨이하, 방은 몇평이하, 통장의 돈은 얼마 이하라고 법을 만들었으면 스님들이 이렇게 이중적으로 살게되지는 않는다. 법을 만들었으나 누구나 쉽게 법을 위반하게 만든 것이 문제의 핵심이다. 어떤 단체에서 법을 만들었는데 대다수가 그 법을 지키지 않아도 아무런 반박이나 문제의식이 없는 집단이 제대로된 집단일까? 조계종의 현실이 이렇다.
또한 승려법 제46조에는 “4바라이죄를 범하여 실형을 받은 자는 멸빈에 처한다”라고 되어 있다. 4바라이죄란 살인을 하고 도둑질을 하고 음행을 하고 깨달았다는 거짓말을 하면 승단에서 추방당되어야하는 4가지 큰죄이다. 그런데 이부분도 승려들이 4가지 큰죄를 저질렀어도 사회법으로 ‘실형’만 받지 않으면 된다는 식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 문제다. 이 조항은 권승들이 자기편이면 승려가 사실혼 관계에 있더라도 결혼신고만 하지 않고, 들키지만 아니면 징계를 하지 않는 수단으로 활용된다. 이러한 법을 만든 사람이나 통과시킨 사람들은 무슨 생각으로 이렇게 한 걸까? 이런 법 때문에 승려들이 잘못을 저질러서 뉴스에 나오고 사회의 뭇매를 맞아야만 종단이 움직이는 늦장 대응의 이유가 되고 있다고본다.
이렇게 허술한 종헌종법을 의지해서 살아가는데 계율이 혼탁해지지 않을 수 있겠는가? 금권선거, 도박, 횡령등 비난받을 만한 일이 지속적으로 일어나게 되어 있다. 혜민 스님이 자신의 건물을 공개할 때 그것이 비난 거리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공개했을 것이다.
현각스님이 혜민스님을 공격하고 화해하는 이 사건을 계기로 나는 2번째 글을 쓰게 되었다. 승가공동체가 무너진 현실에서, 99%의 승려들이 개인통장을 가지고 있는 현실에서 무소유를 강조하는 것은 기만이다. 우선적으로는 개인소유가 없어도 공유물을 사용하여 승가는 풍족해도 스님은 가난한 분위기를 만들어야 하고 차선책으로는 소유물을 인정하되 차는 몇씨씨이하, 방은 몇평이하. 통장에는 얼마이하라는 등의 기준을 마련해야한다. 그래야만 승려들이 법을 만들고도 법을 지키지 않는 이중성에서 벗어날 수 있다.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소수 권력자들이 종헌종법의 빈틈을 이용해서 본인들에게는 사리사욕을 채우는 도구로 사용하고 비판세력에게는 무자비한 탄압을 가하고 있다. 이러한 사실들에 눈을 뜨고 종법개정의 여론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 그나마 혜민스님 논란에서 불자들이 얻을 수 있는 교훈이라고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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