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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구경

법구경 제1번 게송

법구경(Dhammapada)6가지 버전과 인연담으로 비교하며 공부합니다.

1우리말(법정역) - 2우리말(전재성역) - 3한문(224支謙) 4한문(1953了參- 5빠알리 6영어(Fronsdal번역) 7인연담 - 8해설

 

 

법구경 제1번 게송

 

모든 일은 마음이 근본이다. 마음에서 나와 마음으로 이루어진다.

나쁜 마음을 가지고 말하거나 행동하면 괴로움이 그를 따른다.

수레바퀴가 소의 발자국을 따르듯이

 

정신이 사실들의 선구이고 정신이 그것들의 최상이고 그것들은 정신으로 이루어진 것이니

만약에 사람이 오염된 정신으로 말하거나 행동하면 괴로움이 그를 따르리.

수레바퀴가 황소의 발굽을 따르듯

 

心爲法本 心尊心使. 中心念惡 卽言卽行. 罪苦自追 車轢於轍.

 

諸法意先導意主意造作若以染污意或語或行業是則苦隨彼如輪隨獸足

 

 

Manopubbaṅgammā dhammā

Manoseṭṭhā manomayā

Manasā ce paduṭṭhena

Bhāsati vā karoti vā

Tato naṃ dukkham anveti

Cakkaṃ va vahato padaṃ

(DhP 1)

 

 

All mental phenomena are preceded by mind,

Mind is their master, they are produced by mind.

If somebody speaks or acts With a corrupted mind,

Hence suffering follows him, Like the wheel the foot of the bearing animal.

 

 

어느 때 짝쿠빨라 테라는 석 달 동안의 안거를 무사히 마치고 부처님을 뵙기 위해서 제따와나 수도원에 도착했다. 테라는 이날 밤 자신의 걷는 동작 하나하나에 마음을 잘 집중시키는 걷기 정진(경행)을 했다. 테라의 정진은 새벽녘까지 계속되었는데, 주위가 어두웠던 탓으로 그만 벌레 몇 마리를 밟고 말았다. 이튿날 아침, 비구 몇 사람이 짝쿠빨라 테라가 머무는 곳에 왔다가 벌레들이 밟혀 죽어 있는 것을 보았다. 빅쿠들은 짝쿠빨라 테라의 계행을 의심하게 되어 이 사실을 부처님께 보고드렸다. 보고를 받으신 부처님께서는 빅쿠들에게 짝쿠빨라 테라가 벌레를 의도적으로 죽이는 것을 보았는지 여부를 물으시었다. 빅쿠들이 그렇지는 않다고 사뢰자, 부처님께서는 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시었다.

 

 

짝쿠빨라가 의도적으로 벌레를 죽이는 것을 보지 못했듯이, 앞을 보지 못하는 그 또한 벌레들이 거기 있는 것을 보지 못한 것이니라. 그는 이미 아라핫따 팔라를 성취한 성자이니라. 그런 그가 무엇 때문에 고의로 생명을 해치겠느냐 ? , 설사 그가 벌레를 죽게 하였다 하더라도 그것은 고의적인 해위가 아니었으므로 그의 계행에는 아무런 손상됨이 없느니라

 

 

[해설]

 

법구경 제1번 게송에서는 마노(mano)와 담마(dhammā)를 어떻게 해석하느냐가 관건이다. 지금까지 여러 번역가들은 마노(mano)를 마음(),정신(), mind, heart로 번역하였고 담마(dhammā)는 모든 일, 사실, All things, thoughts, all mental phenomena, mental states로 번역 하였다. 요참은 담마()는 불선법(不善法)이라고 주석을 달고 있다. 1번 게송의 의미는 사람이 어떤 말과 행동을 할 때 어떤 마음으로 하느냐에 따라서 고통이 따르고 행복이 따른다는 이야기다. 소를 따르는 바퀴의 비유는 그 인과법칙은 어긋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부처님은 신구의(身口意) 삼업(三業)중에서 의업(意業)이 가장 중요하다고 가르쳤다. 불자가 제거해야 할 탐진치도 모두 마음에 관한 것이다. 여기서 마음(mano)은 말과 행위에 앞서는 의도를 의미하고 담마(dhammā)는 그 의도적인 마음으로 말하고 행동함으로서 나타나는 고통과 행복의 상태,결과를 말한다. 짝꾸빨라 비구는 장님이지만 아라한이기에 벌레를 밟았을 뿐 죽일 의도(마음)가 없었다. 이렇게 나쁜의도가 없는 마음에서 나온 행위는 악업이 아니라고 부처님은 설명한다. 마음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서 행복한 삶을 살기도 하고 불행한 삶을 살기도 한다는 것이 불교의 요체다.

 

지겸의 심위법본(心爲法本)은 마음과 법을 선후 인과적 관계로 보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법의 근본 혹은 본체라고 이해하게 만들 수 있는 위험성이 있다. 또한 지겸은 마노(mano)와 찟따(citta)를 모두 으로 번역하고 있는데 이러한 번역은 부처님이 citta가 아닌 mano를 사용하신 이유를 불분명하게 만든다. 뿐나지비구는 마노(mano)를 이성적인 마음(intellect), 찟따(citta)를 감성적인 마음(emotion)이라고 다르게 번역하고 있다. 불교처럼 신구의(身口意) 삼업(三業)중에서 의업(意業)을 중요시하고 강조하는 종교도 없을 것이다. 2번 게송은 의업의 중요성을 더 선명하게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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