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올의 <20살 반야심경에 미치다>를 읽고 허탈함을 감출 수 없다.
앞에는 서산스님과 경허, 만공스님이야기를 늘어놓다가 그냥 시중에 나와 있는 반야심경의 해석을 그대로 펼쳐 놓는다. 기존의 책들과 비교해 볼 때 전혀 새로울게 없는, 오히려 나만 제대로 알고 있다는 아만이 꽉들어찬 내용을 단지 20대 때 3개월간 출가했다는 사연을 방패삼아 쓴 글이다. 윤청광의 책, 수덕사에서 출간된 ‘경허집’등의 내용을 잔뜩 인용해 놓고 반야심경에 왜 훌륭한 책인지 왜 대승의 시작인지를 설명해 내지 못하고 있다.
자신이 소개한 신수대장경에 나오는 8개의 한문본 반야심경을 비교하지도 않았고 산스끄리뜨 반야심경과 비교하는 것도 없었다.
만약 그가 다른 한문본 반야심경들을 비교했으면 구마라즙과 현장(649)은 각각 照見五陰空과 照見五蘊皆空으로 自性을 생략하고 번역하였고 法月(738) 智慧輪(859) 法成, 施護(982)스님은 각각 照見五蘊自性皆空, 照見五蘊自性皆空, 觀察照見五蘊體性悉皆是空, 觀見五蘊自性皆空으로 스와바와(svabhāva)를 自性, 體性으로 성실하게 번역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산스끄리트에는 스와바와(svabhāva)가 공하다고 설명되고 있기 때문이다.
산스끄리뜨 원전에서는 五蘊(pañca-skandhāḥ)의 自性(svabhāva)이 空(śūnyān)함을 보았다(paśyati sma)로 나타나고 있다.
이런 차이를 알았다면 아공의 표현에서 법공의 표현으로 이어지는 반야심경의 역사적 맥락을 알아챘을 테고 왜 반야심경이 소승과 대승을 잇는 사다리가 되는지도 설명을 했을 것이다.
또한 ‘이것은 내 것이 아니요, 이것은 내가 아니며, 이것은 나의 자아(Atta)가 아니다.’라고 있는 그대로 바른 통찰지로 보아야 한다.”는 비아(非我)의 표현이 왜 후대로가면 무아(無我)의 표현으로 변해가는지도 설명할 수 있었을 것이고 4향4과를 얻은 소승비구는 안다는 차원에 머문다는 자신의 견해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 초기불교의 비아사상을 끝까지 밀고나가 공 사상으로 정립시키게 된이유, 초기의 비아사상과 공사상이 무엇이 같고 다른지를 설명했어야 했다. 아무튼 불교가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를 모르면서 부처님 입멸한지 약 500년 후에 나온 반야심경의 오온개공을 우주론적인 통찰이라고 말하는 것은 불교를 왜곡시키는 것이며 자신의 명성을 이용해 책을 팔아먹기 위한 수작에 지나지 않는다. 이런 자들에게는 입산의 경험도, 불경도 돈벌이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으니 한심하고 애석타. 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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