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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단개혁

사십이장경 비판

사십이장경 비판

 

사십이장경의 이본(異本)들을 대별하면 세 가지 계통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첫째로 고려대장경, 송(宋)대장경에 수록되어 있는 것인데, 그 내용과 성격으로 보아 가장 오래된 것으로 가섭마등(迦葉摩騰)과 축법란(竺法蘭)이 번역한 원형에 가깝다. 둘째는 명(明)대장경에 수록된 것으로 고려대장경본 계통에 비해 증광(增廣)된 흔적이 현저하다. 셋째는 송대(宋代) 이후 선가(禪家)에서 유행된 것으로 앞의 두 계통본에 비해 현격하게 달라서 아마도 최후로 보정이 가해진 듯하다. 

 

사십이장경은 그 내용이 간결하고 부피가 작아서 불교 입문서로서 우리나라 스님들이 오랫동안 신봉해온 친숙한 경전이다. 그러나 사십이장경의 내용은 전혀 불교적이지 않은 가르침이 숨어있다. 사십이장경 11장에서 부처님보다 높은 무심도인이 있다는 해석을 하게 할만한 구절 때문이다. 대한불교 조계종 종정 진제스님이 계시는 해운정사 홈페이지에는 사십이장경을 인용하며 "부처님의 진리법에는 이렇게 소승의 경지대승의 경지부처님의 경지그리고 부처님의 경지 위에 다시 무심도인의 경지가 있는 것입니다."라는 안내문을 걸어놓고 있다. 일반 불자들이 보면 받아들이기 어려운 내용인데 선방에 공양하면 큰 공덕이 있다는 근거로 제시되고 있다.

 

"「사십이장경(四十二章經)에 보면.......'사바세계의 모든 중생에게 공양(供養)을 베푸는 것보다 소승(小乘)의 진리를 깨달은 한 아라한(阿羅漢)에게 공양을.......올리는 것이 더 복()이 많고일체의 아라한에게 공양 올리는 것보다 대승(大乘)의 진리를 깨달은 한 보살(菩薩)에게 .......공양을 올리는 것이 더 수승(殊勝)하며일체의 보살에게 공양 올리는 것보다 부처님의 경계를 깨달은 한 분에게 공양을.......올리는 것이 더 수승한 복을 짓는 일이다그러나 일체의 제불(諸佛)에게 공양 올리는 것보다 무심(無心)의 경계를 수용한.......한 분의 무심도인(無心道人)에게 공양을 올리는 것이 더없이 수승한 일이다.'라는 말씀이 있습니다부처님의 진리법에는 이렇게 소승의 경지대승의 경지부처님의 경지그리고 부처님의 경지 위에 다시 무심도인의 경지가 있는 것입니다."

 

정말 일체의 제불(諸佛)보다 더 수승한 무심도인(無心道人)의 경계가 있는 것일까? 일반인에게 널리 알려진 사십이장경은 2가지 본이 있는데 사십이장경 11장에 하나는 무심도인 이야기를 하는 것이고 하나는 착한이에게 보시하고 부모에게 효도를 말하는 것이다. 

 

A본:佛言。飯惡人百。不如飯一善人。飯善人千。不如飯一持五戒者。飯五戒者萬。不如飯一須陀洹。飯百萬須陀洹。不如飯一斯陀含。飯千萬斯陀含。不如飯一阿那含。飯一億阿那含。不如飯一阿羅漢。飯十億阿羅漢。不如飯一辟支佛。飯百億辟支佛。不如飯一三世諸佛。飯千億三世諸佛。不如一無念無住無修無證之者。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되, "악인 백을 공양하는 것이 착한 사람 하나를 공양하는 것만 같지 못하고 착한 사람 천을 공양하는 것이 5계 지키는 사람 하나를 공양하는 것만 같지 못하고 5계 지키는 사람 만()을 공양하는 것이 수다원 한 사람을 공양하는 것만 같지 못하고 수다원 백만 사람을 공양하는 것이 사다함 한 사람을 공양하는 것만 같지 못하고 사다함 천만 사람을 공양하는 것이 아나함 한 사람을 공양하는 것만 같지 못하고 아나함 일억만 사람을 공양하는 것이 아라한 한 사람을 공양하는 것만 같지 못하고 아라한 십억 사람을 공양하는 것이 벽지불 한 분을 공양하는 것만 같지 못하고 벽지불 백억 분을 공양하는 것이 부처님 한 분을 공양하는 것만 같지 못하고 천억의 삼세제불(諸佛)에게 공양 올리는 것보다 무념(無念)무주(無住) 무수(無修) 무증(無證之者)한 자에게 공양을 올리는 것만 같지 못하다.

 

 

B본: 佛言 飯凡人百不如飯一善人,飯善人千不如飯持五戒者一人,飯持五戒者萬人不如飯一須陀洹,飯須陀洹百萬不如飯一斯陀含,飯斯陀含千萬不如飯一阿那含,飯阿那含一億不如飯一阿羅漢,飯阿羅漢十億不如飯辟支佛一人,飯辟支佛百億不如以三尊之教度其一世二親,教親千億不如飯一佛學願求佛,欲濟眾生也。飯善人福最深重,凡人事天地鬼神,不如孝其親矣,二親最神也。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범인 백 사람을 공양하는 것이 한 명의 착한 사람을 공양하는 것만 못하고, 착한 사람 천 명을 공양하는 것이 5계를 지키는 한 사람을 공양하는 것만 못하며, 5계를 지키는 사람 만 명을 공양하는 것이 한 명의 수다원을 공양하는 것만 못하고, 수다원 백만 명을 공양하는 것이 한 명의 사다함을 공양하는 것만 못하며, 사다함 천만 명을 공양하는 것이 한 명의 아나함을 공양하는 것만 못하고, 아나함 1억 명을 공양하는 것이 한 명의 아라한을 공양하는 것만 못하며, 아라한 10억 명을 공양하는 것이 벽지불(辟支佛) 한 명을 공양하는 것만 못하고, 백억 명의 벽지불을 공양하는 것이 3존의 가르침으로 그 한 생애의 두 어버이를 제도하는 것만 못하며, 천억 명을 가르치는 것이 부처가 되기를 바라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한 명의 불학(佛學:菩薩)에게 공양하는 것만 못하다. 착한 사람을 공양하는 복이 가장 깊고 소중하다. 범인들이 천지의 귀신을 섬기는 것은 그 어버이에게 효도하는 것만 못하니, 두 어버이가 가장 높은 신이다.”

 

 

 

 

 

 

A본은 "천억의 삼세제불(諸佛)에게 공양 올리는 것보다 무념(無念)무주(無住) 무수(無修) 무증(無證之者)한 자에게 공양을 올리는 것만 같지 못하다."라고 나타나는 반면에 B본은 "착한 사람을 섬기고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이 가장 공덕이 크다"고 한다. A본에서 종정스님이 말하는 부처님 보다 높은 무심도인이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종종 A본의 한글본은 "부처님 천억 분을 공양하는 것이 생사고락의 모든 차별법을 초월하여 닦을 것도 없고 얻을 것도 없는 자성을 깨침만 같지 못하나니라."라는 의역본 들이 많다. 不如飯一無念無住無修無證之者를 직역하게 되면 부처님보다 높은 경지를 인정하게 되는 모순을 피하기 위하여 그런 의역을 한 것으로 보인다. 상식적인 사람이라면 부처님보다 높은 무심도인을 인정하는 것이 불편할 것이다. C본은 앞부분에 나타나는 착한 사람(善人)과 뒷부분에 나타나는 착한 사람(善人)이 각각 어떤 차이가 있는지 불분명하다. 부처가 되기를 바라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한 명의 불학(佛學.보살)이라는 표현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 후대에 편집된 것으로 보여진다. 

 

문제는 A본의 "천억의 삼세제불(諸佛)에게 공양 올리는 것보다 무념(無念)무주(無住) 무수(無修) 무증(無證之者)한 자에게 공양을 올리는 것만 같지 못하다."는 말이다. 이 말은 선사스님들에게 큰 영향을 주어 여래선보다 조사선을 높은 경지로 두는 전통이 생겨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선불교를 신본하는 사람들 중에는 지금도 부처를 능가하는 무심도인 있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사십이장경의 이 대목의 영향 때문이라고 본다. 그러나 사십이장경 11장의 내용에 대응하는 웰라마 경(A9:20)에서는 무심도인 같은 것은 등장하지 않는다. 처음에는 보시받는 대상에 따라 공덕의 차이가 있음을 설명하다가 나중에는 스스로의 수행 즉삼귀의 하고 5계를 지키고 자애관을 닦고 무상관을 닦는 수행공덕이 보시공덕보다 수승함을 설명하고 있다. 보시에서 수행으로 나아가라는 것이 웰라마 경의 취지인 것이다.

 

웰라마경(A9:20)

........장자여웰라마 바라문이 큰 보시를 했지만 견해를 구족한 한 사람을 공양한다면이것은 그것보다 더 큰 결실이 있다견해를 구족한 백 명의 사람들을 공양하는 것보다 한 사람의 일래자를 공양한다면...

백 명의 일래자를 공양하는 것보다 한 사람의 불환자를 공양한다면 

백 명의 불환자를 공양하는 것보다 한 사람의 아라한을 공양한다면 

백 명의 아라한을 공양하는 것보다 한 사람의 벽지불을 공양한다면 

백 명의 벽지불을 공양하는 것보다 한 사람의 여래ㆍ아라한ㆍ정등각을 공양한다면 

부처님을 상수로 하는 비구승가를 공양한다면 사방 승가를 위하여 승원을 짓는다면 

(여기까지 보시공덕을 이야기하고 있다. 이후에는 스스로 삼보에 귀의 하는등 스스로 수행을 하는 것이 보시공덕보다 수승하다고 말하는 내용이다)

청정한 마음으로 부처님과 법과 승가에 귀의한다면 청정한 마음으로 학습계목을 받아 지녀서 생명을 죽이는 것을 멀리 여의고주지 않은 것을 가지는 것을 멀리 여의고삿된 음행을 멀리 여의고거짓말을 멀리 여의고방일하는 근본이 되는 술과 중독성 물질을 멀리 여읜다면 소젖을 한번 짜는 동안만큼이라도 자애의 마음을 닦는다면 손가락을 튀기는 순간만큼이라도 무상이라는 인식을 닦는다면이것이 이전 것보다 더 큰 결실이 있다.”

 

부처님은 처음 만나는 재가자들에게 시계천(施戒天) 예비법문을 하여 재가자들의 마음이 부드럽고 여유롭게 되면 4성제등 높은 단계의 법을 설하셨다. 이것이 차제설법(次第說法) 혹은 대기설법(對機說法)이다. 사십이장경 11장의 내용이나 웰라마경의 내용도 이러한 차제설법의 내용이 보인다. 그런데 이것을 부처님보다 더높은 '무심도인'이라는 경계가 있다는 의미로 받아들인다면 그것은 심각한 훼불사상이다. 무심도인을 인정하는 듯한 A본은 번역의 오류로 보이고 보살사상을 인정하는 것과 무념(無念)무주(無住) 무수(無修) 무증(無證)의 표현을 볼때 B본은 후대에 편집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웰라마경과 대응하는 한문경전은 中阿含 155번 梵志品 須達哆經이다이 경에서 부처님이 아직 깨닫지 못했을 때 보시한 것을 설명하고 지금 깨닫고 나서는 어떤 보시가 보다 수승한 줄 알게 되었고 가장 큰 공덕은 스스로 삼보에 귀의하고 계를 받고 수행하여 부처가 되는 것임을 설명하고 있다

 

 

 

"若梵志隨藍行如是大施。及施滿閻浮場凡夫人食。施百須陀洹.百斯陀含.百阿那含.百阿
羅訶.百辟支佛食。作房舍施四方比丘眾。若有歡喜心歸命三尊佛.法.比丘眾及受戒
者。此於彼施為最勝也。

 만일 범지 수람이 이러한 큰 보시를 행하고, 또 염부장에 가득 찬 범부들에게 밥을 보시하며, 백 수다원·백 사다함·백 아나함·백 아라한·백 벽지불에게 밥을 보시하고, 방사를 지어 사방비구승가에 보시하더라도, 만일 다시 어떤 이가 기뻐하는 마음으로 부처님과 법과 비구승가체 귀명하고, 또 계를 받으면, 이것은 저 보시보다 가장 훌륭한 것이다.

 

 

 

증일아함경에도 대응하는 경전이 나오는데 내용은 중아함 수달다경과 같다니까야의 웰라마경과 아가마의 수달다경을 근거로 사십이장경 A본의 번역이 잘못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십이장경 11장을 바르게 해석하려면 공양(飯)한다는 단어가 없이 '부처님 천억 분을 공양하는 것이  무념, 무주, 무수, 무증한 사람만 못하다.'라고 해석되어야 한다. 이렇게 번역하면 무심도인이 부처님보다 높은 경지가 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수행을 통해 깨달음을 얻은 것이 진정한 공덕이라는 말이 되어 웰라마경과 수달다경과 부합하게된다. 사십이장경(정우서적)을 해설한 성법스님은 "부처님은 삼세제불보다 더욱 존귀한 무념, 무주, 무수, 무증한 분이 있다고 하셨다."라며 보시하는 자가 무공양의 공양, 무공덕의 공덕의 마음으로 공양하는 것으로 해설하고 있다. 단계별로 높은 경지에 보시하는 것을 이야기하다가 갑자기 보시하는 마음가짐을 이야기하는 것이라고 해석하는 것은 문맥에 맞지 않다. 송강사 강주를 지낸 지운스님도 이 대목을 해설하기를 "無念 등을 성취한 사람에게 공양하는 것이 낫다는 말은 공양하는 자의 수행의 경지와 상관관계가 있다. 말하자면 부처님은 보는 사람의 경지에 따라 다르게 보인다는 것이다." 라며 공양하는 사람의 수준을 문제 삼는다. 이러한 해석들은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구절 즉 잘못 번역된 구절을 보고 어떻게 해서든 이해해 보려는 노력이겠지만 불교를 혼란스럽게 하는데 이바지 해왔다. 


사십이장경 A본같이 잘못 번역된 하나의 구절 때문에 오랫동안 불교를 혼란스럽게 하는 일이 벌어져 왔고 지금도 해운정사의 사이트에서 나타나고 있다.

이제 한문경전의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은 니까야등 다른 경전들과 상호 비교를 통해서 교정 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그런면에서 빠알리 불교가 수입된 것은 한문불교를 하는 사람들에게는 엄청난 축복이다. 애매한 부분을 바로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A본을 읽고 공부한 출가자들이 무심도인 타령을 하게 됨으로서 많은 피해를 주어왔다. 내가 아는 스님은 삼세제불(諸佛)보다 높은 무념(無念)무주(無住) 무수(無修) 무증(無證)의 경지를 쫓다가 정신이 이상하게 되어 환속하였다. 사십이장경 11장 부분을 비판하게 된 것도 그 스님을 만나 그 피해를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시급히 바로잡아야 할 오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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