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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단개혁

산철만행7





산철만행7

 

어디서든 나를 지켜보는 건 나다. 어디서건 나를 만나는 건 나다. 잊고 있다가 헤메이다가 다시 정신 차려서 기억해서 나는 나에게 길을 묻는다. 내가 결정해야 할 문제들, 길이 보이지 않는 길을 내게 묻는다. 그때마다 내가 온전히 대답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한결 같은 대답이 나오는 것도 아니지만 어제의 내가 오늘의 나에게로 다다르는 과정을 지켜보고 있기에 한결같지 않음도 불안하지 않다. 언제고 물은 흐른다고 말해야 하리라.

오늘은 현진,무송,여여스님과 함께 양평 상원사를 찾아간다. 가는 길에도 새삼 다시 묻는다. 무엇이 각자를 움직이게 하고 있는 거지? 우리가 찾아가는 양평 상원사라는 공간은 같은데 우리를 움직이는 내면의 이유는 다 같을까? 오늘 우리의 함께는 그야말로 오늘의 함께일 뿐이다. 어제 종단사 최초로 직선제 촉구를 위한 촛불법회에 참석했다는 것이 우리가 오늘 함께하는 공통 이유다. 무송스님과는 며칠 다닌적이 있지만 제주도에서 감귤농사를 짓는 다는 여여스님과 여의도에서 삼십년간 포교당을 운영하신 현진스님과는 처음으로 동행한다. 조계사측의 불허로 조계사 마당에서 촛불을 들지 못하고 길건너 템플스테이관 앞에서 촛불을 들었다. 촛불법회 전날 잠이 오지 않았다. 과연 스님들과 재가자가 몇 명이나 올 것인지, 앞으로 직선제 운동이 어떤식으로 흘러갈 것인지 대답 없는 의문들이 괴롭혔다. 이제까지 뜻대로 되는 일이 없었기에 그저 내일의 상황에 흐름에 순응하기로 했다. 다행히 17일 금요일 첫 촛불법회에는 여덟분의 스님들과 구십여분의 재가자가 참석했다. 예상보다 적은 숫자였지만 그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했다. 우리의 능력과 한계를 인정해야 했다.

 

생각해보니 양평 상원사는 처음 방문하는 사찰이다. 정말 좋은 터에 자리잡은 사찰이건만 첫 인상이 위압적인 느낌이 드는 건 자연과 어울리지 않게 불사를 한 탓일 것이다. 풍수가들도 만장일치로 전망이 백점이라고 말한다는 선방은 정말 마음에 들었다. 언젠가 이곳에 방부를 들여 살 때가 있을 것이다.

 

점심공양을 하고 의정스님과 차담을 나누었다. 현진스님과 여여스님과 긴 대화를 나누던 의정스님은 조용히 차를 마시던 나를 보며 스님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고 했다. 나는 현진스님과 여여스님의 이야기를 들으며 내심 내가 이야기할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의정스님이 내게 말을 시키자 나는 백인 대중공사에 참석하게 되었던 일부터 시작해서 직선제홍보 동영상 만들기, 세미나와 공청회 그리고 어제 촛불법회까지의 과정을 간단하게 설명 드렸다. 가능성이 있어서 시작한 일이 아니라 다만 해야 할 일이었기에 시작한 일이고 지금도 나는 직선제가 종회에서 통과 될 것이라는 기대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이런 나의 말과 태도에 현진스님과 무송스님은 책임감이 없다고 했고 의정스님도 의아한 눈으로 나를 보았다. 나는 책임감이 없는건 사실이다. 그런데 책임감이 있는 분들은 모두 조용한데 왜 책임감이 없는 내가 앞에서 직선제운동을 하고 있는 것일까요라고 물었다. 의정스님은 잠자던 수좌회가 직선제운동에 나서게 될 수 있었던 것은 스님이 직선제의 불씨를 계속 지키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고마워 하시며 후원금도 주셨다. 의정스님의 격려에 그래, 나는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다. 출가자들이 세속인들보다 더 소유에 집착하고 이기주의가 팽배해 있어서 사회에서는 촛불이 일어나 대통령을 끌어 내렸지만 승가에서는 도저히 촛불이 일어날 수 없다고 절망하면서도 나는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얼마전에 만난 모 종회의원은 나를 보고 안타깝다고 했다. 내가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그들이 살아가는 것처럼 돈과 명예를 얻을 수 있는데 변방에서 집도 절도 없이 살고 있다고. 그런 이야기를 듣고 스님과 나는 가는 길이 다르다고 대답을 하려다 말았다. 왜 가는 길이 다른지를 설명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 스님을 가장 쉽게 이해시킬 수 있는 대답이 지금 생각났다. “나는 가난하게 살겁니다.” 사실 이 한마디면 모든 것이 설명된다. 가망이 없어 보이는 직선제 운동을 하는 것도, 승가는 풍족해도 스님은 가난하게 살아야 한다는 것도, 불교개혁이 곧 사회개혁이라고 외치는 것도, 이 가난하게 살겠다는 말에 모두 포함된다.

 

삶의 자세는 정신적인 문제 같지만 물질적인 문제다. 아무리 그럴듯한 말을 하는 출가자라도 소유에 집착하는 사람이라면 아직 먼 인간이다. 수행자를 판단하는 가장 정확한 기준은 돈을 대하는 태도다라고 언젠가부터 생각해 오고 있다. 그 확신은 날이 갈수록 굳건해진다. 권력과 명예를 다 얻으려 하니까 삶이 힘들어 지는 거다. 그런 걸 다 갖춘 어떤 사람들은 큰 스님 소리를 들으며 살고 있지만 나는 그들이 존경스럽기는 커녕 측은하고 안스럽다. 출가자에게 가난은 최상의 복이고 행복이다. 가난을 사랑하는 마음이면 무엇을 사랑하지 못하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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