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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

두 스님의 고뇌

 

같은 날 같은 시각에 인터넷에 올라온 두 스님의 글입니다.

두 스님은 처해있는 환경이 다릅니다. 그래서 입장이 다릅니다.

그 다른 입장을 바라보는 후학은 또한 어느곳에 서서 어느곳을 바라보아야 하는가요? 

주장자 두드리는 것으로는 대답이 아니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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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장 설정 스님

 

 

 

 

 

 

 

 

                                                                          

 

 

- 불교의 사회 회향, 깨달음의 사회화, 나아가 신대승불교운동이 종단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습니다. 수좌로서의 입장은 남다를것 같습니다.

"그렇습니다. 당연히 중생 없는 부처는 있을 수 없지요. 하지만 진정으로 남을 위할려면 힘과 능력, 덕이 있어야지요. 덕, 지혜, 힘이 없는 상태에서 남을 위하는 것은 허구입니다. 있을 수도, 될 수도 없습니다.

사회참여 소중합니다. 현장에 들어가서 중생과 함께 호흡하고 공부, 봉사하는 것이 보살정신입니다. 자칫 복덕과 지혜, 힘이 없으면 잘못되기 일쑤입니다. 덕 지혜 공덕을 축적해 그 여력으로 중생을 위하는 것이 참입니다.

그러면 언제 그것들 다 채우고 배워서 중생돕느냐 할 수 있지만 우리네는 늘 사홍서원의 큰 원을 세웠습니다. 사홍서원의 깊은 의미를 잘 새겨야 합니다. 생각만으로 뛰어들어서는 안됩니다.

 

 

http://www.bulkyo21.com/news/articleView.html?idxno=9667

 

 

 

                                                                                                                                             

 

 

 

 

 

 

 

 

 

 

 

“최근에 위빠사나 열풍, 간화선 대중화 등 불교계 안팎에서 붐을 일으키고 있는 것들을 살펴보면 대부분 몸과 마음에 대한 관찰에 한정되고 있습니다. 이는 우리 스스로 대승불교의 정신을 포기하고 불교의 바운더리를 마음수양으로 한정하는 행위들입니다."

 

 

 

"인류사회가 고도로 발달된 시대를 맞아 불교는 연기론을 바탕으로 본격적인 역사이론을 펼치는 단계가 돼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불교가 역사성과 사회성을 외면하고 연기론적 범주에만 머무는 것은 불교 스스로 퇴보를 자초하는 것입니다.”

 

 

                                                                                              교육원장 현응 스님

 

 

 

“불교가 말하는 무상, 무아, 공의 가르침을 받아들인다면 실재성의 근거를 상실하기 때문에 삶의 동기와 행동의 당위성 및 필요성이 어떻게 성립하는지를 알 수 없어 놀라고 두려워하고 허둥대게 됩니다. 이런 상황에서 불교는 실재론에 서있는 다른 종교와 대항할 적극적인 연기적 역사관을 필요로 하게 되었고, 내부적으로도 연기론을 이해한 불교도들에게 보다 진전된 불교이론을 펼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에 대한 해답으로 나타난 것이 바로 대승불교입니다.”

 

http://www.mediabuddha.net/detail.php?number=5146&thread=23r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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