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아함경

[스크랩] 한영 대역 숫타니파타(Sutta-nipata)

                                     한영 대역 숫타니파타(Sutta-nipata)

 

팔리어로 Sutta는 경전, Nipata는 모음(集)이란 의미이다.

그러므로 <숫타니파타(Suttanipata)>란 곧 '경집(經集)'을 말한다.

 

<숫타니파타>는 1,000여 개의 게송이 5품 70경으로, 사품(蛇品), 소품(小品), 대품(大品), 의품(義品), 피안도품(彼岸道品)의 5장으로 되어 있다. 사품(蛇品)은 12개의 경을 수록, 수행자는 뱀이 제 낡은 허물을 벗어 버리듯 차안과 피안을 다 버린다는 구절이 반복되기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여졌다. 소품은 짧은 14개의 경을, 대품은 비교적 긴 11개의 경을 수록하고 있다. 의품은 원어인 Atthakavagga에 따라 팔게품(八偈品)이라고도 하며 예로부터 16경의 구성을 유지하며 전해져 왔는데 한역 의품경이 바로 이것이다. 피안도품은 16인의 학생들이 부처님께 질문하고 이에 대해 부처님께서 답하는 문답 16절과 서와 결을 합한 18절로 되어 있다.

 

<숫타니파타>의 오직 제4품만 의족경(義足經), 의품경이라는 이름으로 한역되었다.<불설의족경>은 2권으로 되어 있다. 인도 재가불자인 지겸이 중국에 와서 기원후 223년과 225년 사이에 번역했다. 팔리어본은 팔리대장경 속에 있거니와 이 의족경의 직접적인 범어 원본은 현재 발견되지 않고 있다. 단지 한역본과 일치하지 않는 범어본 <숫타니파타>의 파편이 나타났는데 많은 불경과 논장에서 이 <숫타니파타>가 중국어로 음역된 범어 이름으로 인용되고 있다.

 

<숫타니파타>는 부처님의 직접적인 가르침을 간결하고 소박하게 담고 있다. 부처님의 입김과 숨결이 풍겨 오는 듯한 원음으로 담겨 있다. 여기에는 아무런 현학적인 교리가 없다. 해탈의 피안을 향해 구도자가 가야할 길에 대해서 간단 명료하게 설해져 있다.

여기에서는 부처님이 멀리 있는 분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숫타니파타>의 말씀들은 인간이 봉착하는 문제들을 통달한 선생님이 제자들에게 말해 주는 것처럼 가깝게 느껴진다. 인생의 고뇌로부터 해탈하는 방법과 초탈한 사람의 생활 등에 대해서 간결하게 기록되어 있다. <숫타니파타>는 가장 오래 된 불경 중의 하나로 근본불교 사상을 이해하는 데 꼭 필요한 경전이다.

 

이 경이 처음부터 지금과 같은 형태로 모아져 있지는 않았고 각 품의 경들이 따로 떠돌아 다니다가 뒷날 모아졌기 때문에 경전의 앞뒤가 하나의 맥락으로 연결되어 있지는 않다. 그래서 각 품의 각 경을 떼어서 읽어도 된다.

 

 

* * *

URAGAVAGGA(蛇品)

 

1. URAGASUTTA(蛇經)

 

약으로 뱀의 독이 몸에 퍼지는 것을 막듯, 화가 일어날 때 억제하는 수행자는 차안과 피안을 떠난다, 뱀이 제 낡은 허물을 벗듯.

He who restrains anger when it has arisen, as they by medicines restrain the poison of the snake spreading in the body, that Bhikkhu leaves this and the further shore, as a snake quits its old worn out skin.

 

연못에서 자라는 연꽃을 물속에 들어가 꺾듯, 애욕을 완전히 끊은 수행자는 차안과 피안을 떠난다, 뱀이 제 낡은 허물을 벗듯.

He who has cut off passion entirely, as they cut off the lotus-flower growing in a lake, after diving into the water, that Bhikkhu leaves this and the further shore, as a snake quits its old worn out skin.

 

넘쳐 흐르는 갈애의 물살을 완전히 말려버린 수행자는 차안과 피안을 떠난다, 뱀이 제 낡은 허물을 벗듯.

He who has cut off craving entirely, the flowing, the quickly running, after drying it up, that Bhikkhu leaves this and the further shore, as a snake quits its old worn out skin.

 

홍수가 연약한 갈대 다리를 부수듯 교만을 완전히 없앤 수행자는 차안과 피안을 떠난다, 뱀이 제 낡은 허물을 벗듯.

He who has destroyed arrogance entirely, as the flood destroys a very frail bridge of reeds, that Bhikkhu leaves this and the further shore, as a snake quits its old worn out skin.

 

무화과나무에서 꽃을 찾는 사람처럼(꽃을 찾을 수 없듯), 존재에서 본질을 찾지 않는 수행자는 차안과 피안을 떠난다, 뱀이 제 낡은 허물을 벗듯.

He who has not found any essence in the existences, like one that looks for flowers on fig-trees, that Bhikkhu leaves this and the further shore, as a snake quits its old worn out skin.

 

가슴 속에 성냄이 없고 되풀이되는 삶을 극복한 수행자는 차안과 피안을 떠난다, 뱀이 제 낡은 허물을 벗듯.

He in whose breast there are no feelings of anger, who has thus overcome reiterated existence, that Bhikkhu leaves this and the further shore, as a snake quits its old worn out skin.

 

의심을 물리쳐 끊어서 완전히 내면을 향한 수행자는 차안과 피안을 떠난다, 뱀이 제 낡은 허물을 벗듯.

He whose doubts are scattered, cut off entirely inwardly, that Bhikkhu leaves this and the further shore, as a snake quits its old worn out skin.

 

앞으로 너무 빨리 가지도, 뒤처지지도 않고 이 세계의 미혹을 모두 이겨낸 수행자는 차안과 피안을 떠난다, 뱀이 제 낡은 허물을 벗듯.

He who did not go too fast forward, nor was left behind, who overcame all this world of delusion, that Bhikkhu leaves this and the further shore, as a snake quits its old worn out skin.

 

앞으로 너무 빨리 가지도, 뒤처지지도 않고 세상의 이 모든 것이 거짓임을 아는 수행자는 차안과 피안을 떠난다, 뱀이 제 낡은 허물을 벗듯.

He who did not go too fast forward, nor was left behind, having seen that all this in the world is false, that Bhikkhu leaves this and the further shore, as a snake quits its old worn out skin.

 

앞으로 너무 빨리 가지도, 뒤처지지도 않고, 이 모든 것이 거짓임을 알아 미움에서 자유로와진 수행자는 차안과 피안을 떠난다. 뱀이 제 낡은 허물을 벗듯.

He who did not go too fast forward, nor was left behind, being free from hatred, seeing that all this is false, that Bhikkhu leaves this and the further shore, as a snake quits its old worn out skin.

 

앞으로 너무 빨리 가지도, 뒤처지지도 않고, 이 모든 것이 거짓임을 알아 어리석음에서 자유로와진 수행자는 차안과 피안은 떠난다, 뱀이 제 낡은 허물을 벗듯.

He who did not go too fast forward, nor was left behind, being free from folly, seeing that all this is false, that Bhikkhu leaves this and the further shore, as a snake quits its old worn out skin.

 

어떤 애착도 없이 죄를 뿌리째 뽑아버린 수행자는 차안과 피안을 떠난다. 뱀이 제 낡은 허물을 벗듯.

He to whom there are no affections whatsoever, whose sins are extirpated from the root, that Bhikkhu leaves this and the further shore, as a snake quits its old worn out skin.

 

이 세상으로 돌아올 원인이 되는, 두려움에서 생기는 어떤 번뇌도 없는 수행자는 차안과 피안을 떠난다. 뱀이 제 낡은 허물을 벗듯.

He to whom there are no sins whatsoever originating in fear, which are the causes of coming back to this shore, that bhikkhu leaves this and the further shore, as a snake quits its old worn out skin.

 

사람을 생존에 묶는 원인이 되는, 욕망에서 생기는 어떤 번뇌도 없는 수행자는 차안과 피안을 떠난다. 뱀이 제 낡은 허물을 벗듯.

He to whom there are no sins whatsoever originating in desire, which are the causes of binding men to existence, that Bhikkhu leaves this and the further shore, as a snake quits its old worn out skin.

 

다섯 가지 장애를 떠나 고통에서 자유롭고, 의심을 극복하고, 고통을 여읜 수행자는 차안과 피안을 떠난다. 뱀이 제 낡은 허물을 벗듯.

He who, having left the five obstacles, is free from suffering, has overcome doubt, and is without pain, that Bhikkhu leaves this and the further shore, as a snake quits its old worn out skin.

 

 

2. DHANIYASUTTA (다니야경)

 

나는 밥도 지어 놓았고 소젖도 짜 놓았습니다, 목동 다니야가 말했다. 나는 마히강둑 가까이에서 처자와 살고 있습니다. 집의 이엉은 엮었고 불도 지펴 놓았으니 좋다면 비를 내리소서, 오 하늘이여.

‘I have boiled my rice, I have milked my cows’-so said the herdsman Dhaniya,-‘I am living together with my fellows near the banks of the Mahi river, my house is covered, the fire is kindled: therefore, if thou like, rain, O sky!’

 

나는 성냄에서도, 고집에서도 해방되었다. 스승(부처님)이 말씀하셨다. 나는 마히강둑 가까이에서 하룻밤을 묵고 있으며 이엉은 잇지 않았고 욕정의 불은 꺼졌다. 그러니 좋다면 비를 내리라, 오, 하늘이여!

I am free from anger, free from stubbornness’-so said Bhagavat-‘I am abiding for one night near the banks of the Mahi river, my house is uncovered, the fire of passion is extinguished: therefore, if thou like, rain, O sky!’

 

쇠파리도 없고, 풀이 무성한 초원에서 소들은 노닐고 그들은 비가 와도 참을 수 있으니, 좋으시다면 비를 내리소서, 오 하늘이여!

‘Gad-flies are not to be found with me’-so said the herdsman Dhaniya,-‘in meadows abounding with grass the cows are roaming, and they can endure rain when it comes: therefore, if thou like, rain, O sky!’

 

나는 튼튼한 뗏목을 만들어, 스승(부처님)이 말씀하셨다,열반으로 건너갔다. 나는 욕정의 급류를 이겨내고 피안에 이르러 이제 뗏목이 필요없으니, 좋다면 비를 내리라, 오 하늘이여!

‘By me is made a well constructed raft,’-so said Bhagavat,-‘I have passed over to Nibbana, I have reached the further bank, having overcome the torrent of passions; there is no further use for a raft: therefore if thou like, rain, O sky!’

 

내 아내는 순종적이고 부정한 여인도 아닙니다, 목동 다니야가 말했다. 아내는 오랫동안 나와 함께 살았는데 매력있고 그녀에 대한 나쁜 소문은 들어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러니 좋으시다면 비를 내리소서, 오 하늘이여!

‘My wife is obedient, not wanton,’- so said the herdsman Dhaniya,-‘for a long time she has been living together with me, she is winning, and I hear nothing wicked of her: therefore, if thou like, rain, O sky!’

 

내 마음은 고분고분하고 모든 세속적인 것에서 해방되어 있다, 스승이 말씀하셨다. 내 마음은 오랫동안 깊이 수양했고 잘 다스려져 내 안에는 삿된 것이 없다. 그러니 좋다면 비를 내리라, 오 하늘이여!

‘My mind is obedient, delivered from all worldliness,’-so said Bhagavat,-‘it has for a long time been highly cultivated and well-subdued, there is no longer anything wicked in me: therefore, if thou like, rain, O sky!’

 

나는 내가 벌어서 살아가고, 목동 다니야가 말했다, 나의 아이들은 내 주위에서 건강합니다. 나는 그들에 관한 어떤 나쁜 이야기도 듣지 못하니, 좋으시다면 비를 내리소서, 오 하늘이여!

‘I support myself by my own earnings,’-so said the herdsman Dhaniya,-‘and my children are all about me, healthy; I hear nothing wicked of them: therefore, if thou like, rain, O sky!’

 

스승(부처님)이 말했다. 나는 그 누구의 고용인도 아니다. 스스로 얻은 것에 의해 온 세상을 거니노라. 남에게 고용될 이유가 없다. 그러니 하늘이여 좋다면 비를 내리소서.

‘I am no one's servant’-so said Bhagavat, ‘with what I have gained I wander about in all the world, there is no need for me to serve: therefore, if thou like, rain, O sky!’

 

갓 태어난 송아지도 있고 젖을 짤 수 있는 암소도 있다. 목동 다니야가 말했다. 새끼 밴 어미소도 있고 발정기의 암소도 있다. 그리고 이 모든 소들의 짝인 황소도 있으니 하늘이여 좋다면 비를 내리소서.

‘I have cows, I have calves,’-so said the herdsman Dhaniya,-‘I have cows in calf and heifers, and I have also a bull as lord over the cows: therefore, if thou like, rain, O sky!’

 

스승이 답했다. 나에게는 송아지도 없고, 젖을 짤 수 있는 암소도 없다. 새끼 밴 암소도 없고 발정기의 암소도 없다. 그리고 이 모든 암소들의 짝인 황소도 없으니 좋다면 비를 내려라, 하늘이여!

‘I have no cows, I have no calves,’-so said Bhagavat,-‘I have no cows in calf and no heifers, and I have no bull as a lord over the cows : therefore, if thou like, rain, O sky!

 

말뚝이 깊게 박혀 흔들리지 않는다. 양치기 다니야가 말했다. ‘문사’풀로 엮은 새 밧줄은 잘 꾀어 있으니 송아지도 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니 하늘이여, 비를 내리려거든 내려라!

‘The stakes are driven in, and cannot be shaken,’-so said the herdsman Dhaniya,-‘the ropes are made of munga grass, new and well-made, the cows will not be able to break them : therefore, if thou like, rain, O sky!

 

스승이 답했다. 성난 황소같이 나는 고삐줄을 끊는다. 코끼리처럼 냄새나는 덩굴풀을 짓밟으며 나는 두 번 다시 모태속에 들어가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하늘이여, 비를 내리려거든 내려라!

이때 갑자기 큰 비가 내려 땅과 바다가 모두 물에 잠겼다. 하늘이 뿌리는 빗소리를 듣고 다니야는 말했다.

‘Having, like a bull, rent the bonds ; having, like an elephant, broken through the galukkhi creeper, I shall not again enter into a womb : therefore, if thou like, rain, O sky!’

Then at once a shower poured down, filling both sea and land. Hearing the sky raining,

Dhaniya spoke thus:

 

 

3. KHAGGAVISANASUTTA (코뿔소경)

 

살아 있는 것들에게 폭력을 쓰지 말라. 살아 있는 것들을 해치지도 말라. 너무 많은 자녀와 친구를 갖고자 하지도 말고 코뿔소처럼 혼자서 가라.

Having laid aside the rod against all beings, and not hurting any of them, let no one wish for a son, much less for a companion, let him wander alone like a rhinoceros.

 

사귐이 깊어지면 애정이 싹트고 사랑이 있으면 거기 고통의 그림자가 따르나니 사랑으로부터 불행이 시작되는 것을 깊이 관찰하고 코뿔소처럼 혼자서 가라.

In him who has intercourse with others affections arise, and then the pain which follows affection ; considering the misery that originates in affection let one wander alone like a rhinoceros.

 

친구나 주위 사람들을 너무 좋아하여 마음이 그들에게 얽매이게 되면 본래의 뜻을 잃게된다. (친함)에는 이런 우려가 있다는 것을 관찰하고 코뿔소처럼 혼자서 가라.

He who has compassion on his friends and confidential companions loses his own advantage, having a fetteres mind ; seeing this danger in friendship let one wander alone like a rhinoceros.

 

자식이나 아내에 대한 애착은 마치 가지가 무성한 대나무가 서로 엉켜 있는 것과 같다. 그러나 죽순은 다른 나무가지에 달라붙지 않듯이 코뿔소처럼 혼자서 가라.

Just as a large bamboo tree with its branches entangled in each other, such is the care one has with children and wife ; but like the shoot of a bamboo not clinging to anything let one wander alone like a rhinoceros.

 

숲속의 자유로운 짐승이 먹이를 구하러 가듯 지혜로운 이는 그 자신의 길만을 생각하면서 코뿔소처럼 혼자서 가라.

As a beast unbound in the forest goes feeding at pleasure, so let the wise man, considering only his own will, wander alone like a rhinoceros.

 

동료들 속에 있으면 앉을 때나 설 때나 걸을 때나 여행할 때조차 항상 지나치게 간섭을 받게 된다. 그러나 홀로이 욕망으로부터 벗어나 자신의 뜻에 따라 코뿔소처럼 혼자서 가라.

There is a constant calling in the midst of company, both when sitting, standing, walking, and going away ; but let one, looking only for freedom from desire and for following his own will, wander alone like a rhinoceros.

 

동료들 속에 있으면 거기 유희와 환락이 있다. 또 자녀에 대한 애정은 깊어만 간다. 그러나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이별이 싫거든 코뿔소처럼 혼자서 가라.

There is sport and amusement in the midst of company, and for children there is great affection; although disliking separation from his dear friends, let one wander alone like a rhinoceros.

 

어느 곳이든 가고 싶은 대로 가라. 해치려는 마음을 갖지 말고 무엇을 얻든 그것으로 만족해 하라. 이 모든 고난을 참고 견디며 조금도 두려워 하지 말고 코뿔소처럼 혼자서 가라.

He who is at home in all the four regions and is not hostile to any one, being content with this or that, overcoming all dangers fearlessly, let him wander alone like a rhinoceros.

 

집을 떠난 수행자나 이 세상에 사는 사람 중에 지나치게 불만이 많은 사람들이 있다. 남의 자녀에 대해 지나친 관심을 갖지 말고 코뿔소처럼 혼자서 가라.

Discontented are some pabbagitas(ascetics) also some gahatthas(householders) dwelling in houses ; let one, caring little about other people’s children, wander alone like a rhinoceros.

 

잎이 진 코발라라 나무처럼 세속의 속박을 미련없이 잘라 버리고 코뿔소처럼 혼자서 가라.

Removing the marks of a gihin(a householder) like a Kovilara tree whose leaves are fallen, let one, after cutting off heroically the ties of a gihin, wander alone like a rhinoceros.

 

현명하고 올바른 벗들을 만난다면 이 모든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편안하고 넉넉한 마음으로 그들과 무리지어 함께 가거라.

If one acquires a clever companion, an associate righteous and wise, let him, overcoming all dangers, wander about with him glad and thoughtful.

 

그러나 현명하고 올바른 벗들을 만나지 못하면 왕이 정복했던 나라를 버리고 돌아가듯 코뿔소처럼 혼자서 가라.

If one does not acquires a clever companion, an associate righteous and wise, then as a king abandoning his conquered kingdom, let him wander alone like a rhinoceros.

 

이런 감각적 즐거움은 나에게 있어 재앙이며, 불행이며, 병이며, 극심한 고통이며, 하나의 위험이다. 이 모든 욕망의 대상에는 이런 위험이 있다는 것을 알고 코뿔소처럼 혼자서 가라.

These (pleasures) are to me calamities, boils, misfortunes, diseases, sharp pains, and dangers ; seeing this danger (originating) in sensual pleasures, let one wander alone like a rhinoceros.

 

추위와 더위, 굶주림과 목마름, 그리고 바람과 태양의 열기, 모기떼와 독사들, 이런 것들을 능히 참고 견디며 코뿔소처럼 혼자서 가라.

Both cold and heat, hunger and thirst, wind and a burning sun, and gad-flies and snakes - having overcome all these things, let one wander alone like a rhinoceros.

 

힘센 얼룩코끼리가 무리를 떠나 숲속에서 한가로이 노닐듯 코뿔소처럼 혼자서 가라.

As the elephant, the strong, the spotted, the large, after leaving the herd walks at pleasure in the forest, even so let one wander alone like a rhinoceros.

 

모임만을 너무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잠시도 영혼의 휴식에 이를 겨를이 없다. 태양의 후예(부처)가 하신 이 말씀을 명심하고 코뿔소처럼 혼자서 가라.

For him who delights in intercourse (with others, even) that is inconvenient which tends to temporary deliverance ; reflecting on the words of (Buddha) the kinsman of the Adikka family, let one wander alone like a rhinoceros.

 

‘논쟁의 철학적 견해를 극복하고 깨달음에 이르는 길에 도달하여 도를 얻은 사람은 다른 사람에 의해 끌려가지 않을 것이다’ 수행자는 이렇게 자신을 다짐하면서 코뿔소처럼 혼자서 가라.

The harshness of the (philosophical) views I have overcome, I have acquired self-command, I have attained to the way (leading to perfecting), I am in possession of knowledge, and not to be led by others; so speaking, let one wander alone like a rhinoceros.

 

탐내지 말라. 속이지 말라. 그리고 조급해하지 말며, 혼탁과 미망을 남김없이 씻어 버리고 이 세상의 욕망으로부터 벗어나서 코뿔소처럼 혼자서 가라.

Without covetousness, without deceit, without craving, without detraction, having got rid of passions and folly, being free from desire in all the world, let one wander alone like a rhinoceros.

 

의롭지 못한것을 보고 못 본 체하는 그런 나쁜 벗과는 가까이 말라. 감각적인 탐욕만을 일삼는 그런 벗과도 가까이 하지 말고 코뿔소처럼 혼자서 가라.

Let one avoid a wicked companion who teaches what is useless and has gone into what is wrong, let him not cultivate (the society of) one who is devoted (to and) lost in sensual pleasures, let one wander alone like a rhinoceros.

 

널리 배워 지혜를 아는 지성적이며 진리에 귀를 기울이는 벗을 가까이 하라. 이는 이로운 일이니 의심을 잘라 버리고 코뿔소처럼 혼자서 가라.

Let one cultivate (the society of) a friend who is learned and keeps the Dhamma, who is magnanimous and wise; knowing the meaning (of things and) subduing his doubts, let one wander alone like a rhinoceros.

 

세상의 유희나 오락 혹은 쾌락에 젖지 말고 관심도 가지지 말라. 꾸밈없이 진실을 말하면서 코뿔소처럼 혼자서 가라.

Not adorning himself, not looking out for sport, amusement, and the delight of pleasure in the world, (on the contrary) being loath of a life of dressing, speaking the truth, let one wander alone like a rhinoceros.

 

처자도 부모도 곡식도 재산도, 친척이나 모든 욕망까지도 다 버리고 코뿔소처럼 혼자서 가라.

Having left son and wife, father and mother, wealth, and corn, and relatives, the different objects of desire, let one wander alone like a rhinoceros.

 

‘이것은 집착이구나. 이곳에는 즐거움도 상쾌한 맛도 적고 괴로움뿐이다. 이것은 고기를 낚는 낚시이구나’이와 같이 깨닫고 현명한 사람은 코뿔소처럼 혼자서 가라.

‘This is a tie, in this there is little happiness, little enjoyment, but more of pain, this is a fish-hook’, so having understood, let a thoughtful man wander alone like a rhinoceros.

 

속의 고기가 그물을 찢듯, 한 번 불타버린 곳에는 다시 불이 붙지 않듯이 모든 번뇌의 매듭을 끊어버리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Having torn the ties, having broken the net as a fish in the water, being like a fire not returning to the burnt place, let one wander alone like a rhinoceros.

 

눈을 아래로 두고, 두리번거리거나 헤매지 말고, 모든 감관을 억제하여 마음을 지켜라. 번뇌에 휩쓸리지 말고 번뇌의 불에 타지도 말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With downcast eyes, and not prying, with his senses guarded, with his mind protected free from passion, not burning (with lust), let one wander alone like a rhinoceros.

 

잎이 져버린 파리찻타 나무처럼, 세속의 모든 표적을 버리고 출가하여 가사를 걸치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Removing the characteristics of a gihin(householder), like a Parikhatta tree whose leaves are cut off, clothed en a yellow robe after wandering away (from his house), let one wander alone like a rhinoceros.

 

달콤한 맛에 탐착하지 말고, 욕구하지도 말라. 다른 사람을 부양할 의무도 없으니 문전마다 밥을 빌며 거주처에 대한 애착을 끊어 버리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Not being greedy of sweet things, not being unsteady, not supporting others, going begging from house to house, having a mind which is not fettered to any household, let one wander alone like a rhinoceros.

 

마음속의 다섯가지 장애를 버리고 온갖 번뇌를 제거하여 의지하지 않으며, 애욕의 허물을 끊어버리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Having left the five obstacles of the mind, having dispelled all sin, being independent, having cut off the sin of desire, let one wander alone like a rhinoceros.

 

애착을 없애는 일에 게으르지 말고, 벙어리도 되지 말라. 부지런히 배우며 마음을 가다듬고 진리를 깨닫고자 노력하면서 저 광야를 가고 있는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Wishing for the destruction of desire (Nibbana), being careful, no fool, learned, strenuous, considerate, restrained, energetic, let one wander alone like a rhinoceros.

 

큰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와 같이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과 같이 물에 젖지 않는 연꽃과 같이 저 광야를 가고 있는 무소의 쁠처럼 혼자서 가라.

Like a lion not trembling at noises, like the wind not caught in a net, like a lotus not stained by water, let one wander alone like a rhinoceros.

 

이빨이 강한 사자가 뭇 짐승을 제압하고 능히 정글의 왕으로 군림하듯 궁핍하고 외딴 곳에 거처를 마련하고 저 광야를 가고 있는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As a lion strong by his teeth, after overcoming (all animals), wanders victorious as the king of the animals, and haunts distant dwelling-places, (even so) let one wander alone like a rhinoceros.

 

사랑과 연민, 기쁨과 평정과 해탈을 때때로 익히고 이 세상을 아주 저버림도 없이 저 광야를 가고 있는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Cultivating in (due)time kindness, equanimity, compassion, deliveranec, and rejoicing (with others), unobstructed by the whole world, let one wander alone like a rhinoceros.

 

쾌락과 고통을 버려라. 기쁨과 근심도 버려라. 그리고 맑고 편안하고 순수한 마음만으로 저 광야를 가고 있는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Having thrown behind(himself bodily) pleasure and pain, and preiously (mental) joy and distress, having acquired equanimity, tranquillity, purity, let one wander alone like a rhinoceros.

 

최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노력하라. 마음의 안일을 물리치고 수행에 게으르지 말며 용맹정진하여 체력과 지혜를 두루 갖추며 저 광야를 가고 있는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Strenuous for obtaining the supreme good (Nibbana), with a mind free from attachment, not living in idleness, being firm, endowed with bodily and mental strength, let one wander alone like a rhinoceros.

 

홀로 앉아 선정을 버리지 말고, 모든 일에 항상 이치와 법도에 맞도록 행동하며, 살아가는 데 있어서 무엇이 근심인지를 분명히 알고 저 광야를 가고 있는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Not abandoning seclusion and meditation, always wandering in (accordance with) the Dhammas seeing misery in the existences, let one wander alone like a rhinoceros.

 

열정, 미움과 어리석음, 그리고 뒤얽힌 번뇌의 매듭을 끊어 버려라. 목숨을 잃더라도 절대로 두려워하지 말고 저 광야를 가고 있는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Having abandoned both passion and hatred and folly, having rent the ties, not trembling in the loss of life, let one wander alone like a rhinoceros.

 

 

4. KASIBHARADVGASUTTA (바라드바자경)

 

나는 이렇게 들었다.

어느때 거룩하신 스승(부처님)께서는 마가다국(지금의 인도 라즈기르)의 남쪽 산기슭에 있는 한 마을에 계셨다.

밭을 갈고 있던 바라문 바라드바자는 씨를 뿌리려고 오백자루의 쟁기를 소에 매었다. 그때 스승은 아침밥을 얻기 위해 이른 아침 밥그릇을 들고 밭을 갈고 있는 바라드바자에게로 갔다. 그런데 마침 그때 바라드바자는 일군들에게 음식을 나눠주고 있었다. 스승도 음식을 나눠 주는 곳에 가서 곁에 섰다. 바라드바자는 스승이 음식을 얻기 위해 밥그릇을 들고 거기 서 있는 것을 보았다. 바라드바자는 이렇게 말했다.

So it was heard by me : At one time Bhagavat dwelt in Magadha at Dakkhinagiri in the Brahmana village Ekanala. And at that time the Brahmana Kasibharadvaga's five hundred ploughs were tied (to the yokes) in the sowing season. Then Bhagavat, in the morning, having put on his raiment and taken his bowl and robes, went to the place where the Brahmana Kasibharadcaga's work (was going on). At that time the Brahmana Kasibharadvaga's distribution of food took place. Then bhagavat went to the place where the distribution of food took place, and having gone there, he stood apart. The Brahmana Kasibharadvaga saw Bhagavat standing there to get alms, and having seen him, he said this to Bhagavat :

 

“수행자여, 나는 밭을 갈고 씨를 뿌린다. 밭을 갈고 씨를 뿌린 후에 먹는다. 그대도 우리처럼 밭을 갈고 씨를 뿌려라. 밭을 갈고 씨를 뿌린 뒤에 먹어라”스승이 대답했다. “바라드바자여, 나 또한 밭을 갈고 씨를 뿌린다. 밭을 갈고 씨를 뿌린 후에 먹는다”

바라드바자가 말했다. “그러나 나는 그대의 멍에도, 쟁기도, 소도 볼 수가 없구나. 그런데 그대는 어째서 “나도 밭을 갈고 씨를 뿌린다. 갈고 뿌린 다음에 먹는다”라고 말하고 있는가”

바라드바자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I O Samana, both plough and sow, and having ploughed and sown, I eat ; thou also, O Samana, shouldst plough and sow, and having ploughed and sown, thou shouldst eat.’

‘I also O Brahmana, both plough and sow, and having ploughed and sown, I eat,’ so said Bhagavat.

‘Yet we do not see the yoke, or the plough, or the ploughshare, or the goad, or the oxen of the venerable Gotama.’

And then the venerable Gotama spoke in this way :

‘I also, O Brahmana, both plough and sow, and having ploughed and sown, I eat,’ so said Bhagavat.

Then the Brahmana Kasibhara-dvaga addressed Bhagavat in a stanza :

 

수행자여 그대는 농부라고 자처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대가 밭가는 것을 보지 못했나니, 당신이 밭을 갈고 있다는 것을 우리가 알 수 있도록 말씀해 주십시오.

Thou professest to be a ploughman, and yet we do not see thy ploughing ; asked about (thy) ploughing, tell us (of it), that we may know thy ploughing.

 

스승이 대답했다. 나에게는 신앙이 씨앗이요, 고행은 비다. 그리고 지혜는 내 멍에며 쟁기요, 잘못을 반성하는 마음이 그 쟁기의 자루다. 또 곧은 마음은 쟁기를 매는 밧줄이요, 매사에 생각이 깊은 것은 쟁기의 보습이다.

Bhagavat answered : Faith is the seed, penance the rain, understanding my yoke and plough, modesty the pole of the plough, mind the tie, thoughtfulness my ploughshare and goad.

 

몸을 삼가고, 말을 삼가고, 음식을 절제하는 것, 그리고 말없이 진실을 지키는 것, 이것이 나에게 있어서는 소를 멍에에서 떼어놓는 일이다.

I am guarded in respect of the body, I am guarded in respect of speech, temperate in food ; I make truth to cut away (weeds), tenderness is my deliverance.

 

노력하는 것이 내 멍에를 맨 소이며, 이 소가 마침내는 니르바나의 저 언덕으로 나를 데리고 간다. 물러서지 않고 굳게 나아가서 니르바나, 저 언덕에 이르게 되면 근심과 걱정은 더이상 없게 된다.

Exertion is my beast of burden ; carrying (me) to Nibbana he goes without turning back to the place where having gone one does not grieve.

 

나는 이런 농사를 지어서 마침내는 저불멸의 과일을 열매 맺게 하나니 나처럼 농사를 짓게 되면 그대도 이 모든 고뇌로 부터 해방되리니.

So this ploughing is ploughed, it bears the fruit of immortality; having ploughed this ploughing one is freed from all pain.

 

그때 바라드바자는 놋쇠그릇에 우유를 담아서 스승에게 주었다. 그리고는 이렇게 말했다. "수행자여, 이 우유죽을 받으십시오. 당신이야말로 훌륭한 농부입니다. 저 불멸의 과일을 열리게 하는 농부입니다."

Then the Brahmana Kasi-bharadvaga, having poured rice-milk into a golden bowl, offered it to Bhagavat, saying, Let the venerable Bhagavat eat of the rice-milk ; the venerable is a ploughman, for the venerable Gotama ploughs a ploughing that bears the fruit of immortality.

 

그러나 스승은 말했다. 시를 읊은 그 대가로 얻은 음식을 나는 먹지 않겠다. 오, 바라드바자여, 이것은 진리에 어긋나는 것이다. 시를 읊은 그 대가로 얻은 음식을거절하는 것은 모든 깨달은 이의 생활태도다.

Bhagavat said : What is acquired by reciting stanzas is not to be eaten by me ; this is, O Brahmana, not the Dhamma of those that see rightly ; Buddha rejects what is acquired by reciting stanzas, this is the conduct (of Buddhas) as long as the Dhamma exists.

 

완전한 사람인 큰 선인(大仙人), 번뇌의 더러움을 다 없애고, 나쁜 행위를 소멸해버린 사람에게는 다른 음식을 주어라. 그것은 마침내 공덕을 바라는 이의 복밭이 될 것이다.

One who is an accomplished great Isi, whose passions are destroyed and whose misbehaviour has ceased, thou shouldst serve with other food and drink, for this is the field for one who looks for good works.

 

“그러면 고타마여, 이 우유죽을 저는 누구에게 드려야 합니까”바라드바자가 말했다.

“바라문이여, 신, 악마, 범천(梵天)들이 있는 세계에서 신, 인간, 사문, 바라문을 포함한 여러 중생 가운데 완전한 사람(如來)과 그의 제자를 빼놓고는, 아무도 이 우유죽을 먹고 소화시킬 사람은 없다. 그러므로 바라문이여, 이 우유죽은 산 풀이 없는 곳이나 생물이 없는 물속에 버려라”스승이 답했다.

To whom then, O gotama, shall I give this rice-milk? so said Kasibharadvaga.

I do not see, O Brahmana, in the world (of men) and gods and Maras and Brahmans, amongst beings comprising gods and men, and Samanas and Brahmanas, any by whom this rice-milk when eaten can be properly digested with the exception of Tathagata, or a disciple of Tathagata. Therefore, O Brahmana, thou shalt throw this rice-milk in(a place where there is) little grass, or cast it into water with no worms, so said Bhagavat.

 

그리하여 밭을 가는 바라문 바라드바자는 그 우유죽을 생물이 없는 물속에 쏟아 버렸다. 그런데 그 우유죽을 물속에 버리자마자 부글부글 소리를 내면서 많은 거품이 끓어올랐다. 마치 온종일 뙤약볕에 쬐어 뜨거워진 호미날을 물속에 넣었을 때 부글부글 소리를 내면서 많은 거품이 이는 것과 같았다.

Then the Brahmana Kasibharadvaga threw the rice-milk into some water with no worms. Then the rice-milk thrown into the water splashed, hissed, smoked in volumes ; for as a ploughshare that has got hot during the day when thrown into the water splashes, hisses, and smokes in volumes, even so the rice-milk (when) thrown into the water splashed, hissed, and smoked in volumes.

 

이때 바라문 바라드바자는 온몸이 오싹하여 두려워 떨면서 스승 곁에 다가섰다. 그리고 스승의 두 발에 머리를 조아리며 여쭈었다.

Then the Brahmana Kasibharadvaga alarmed and terrified went up to Bhagavat, and after having approached and fallen with his head at Bhagavat's feet, he said this to Bhagavat :

 

“놀라운 일입니다, 고타마시여. 놀라운 일입니다, 고타마시여. 마치 넘어진 사람을 일으켜 주듯이, 덮인 것을 벗겨주듯이, 길잃은 이에게 길을 가르쳐 주듯이, 혹은 ‘눈이 있는 자는 빛을 보리라’하여 어둠 속에서 등불을 비춰주듯이, 고타마 당신은 갖가지의 방편으로 진리를 밝혀주셨습니다.”

‘It is excellent, O venerable Gotama ! It is excellent, O venerable Gotama! As one raises what has been overthrown, or reveals what has been hidden, or tells the way to him who has gone astray, or holds out an oil lamp in the dark that those who have eyes may see the objects, even so by the venerable Gotama in manifold ways the Dhamma (has been) illustrated.’

 

“저는 고타마 당신께 귀의합니다. 그리고 진리와 도를 닦는 스님들의 모임에 귀의합니다. 저는 고타마 당신곁에 출가하여 완전한 계율을 받겠습니다.”

‘I take refuge in the venerable Gotama and in the Dhamma and in the Assembly of Bhikkhus;I wish to receive the pabbagga, I wish to receive the upasampada (the robe and the orders) from the venerable Gotama,’ so said Kasibharadvaga.

 

이렇게 해서 밭을 가는 바라문 바라드바자는 부처님 곁에 출가하여 완전히 계율을 받았다. 그 후 얼마되지 않아 이 바라드바자는 사람을 멀리하고 홀로 부지런히 정진하여, 마침내 더없이 청정한 행의 긍극을(많은 사람들은 바로 그것을 얻기 위해 집을 나와 집이 없는 상태가 된 것인데) 현세에서 스스로 깨달아 증명하고 구현하며 살았다.

Then the Brahmana Kasibharadvaga received the pabbagga from Bhagavat, and he received also the upasampada;and the venerable Bharadvaga having lately received the upasampada, leading a solitary, retired, strenuous, ardent, energetic life, lived after having in a short time in this existence by his own understanding ascertained and possessed himself of that highest perfection of a religious life for the sake of which men of good family rightly wander away from their houses to a houseless state.

 

“태어나는 일은 이제 끝났다. 청정한 행은 이미 완성되었다. 할 일을 다 마쳤다. 이제 또다시 이런 생존을 받지는 않는다”라고 깨달았다. 그리하여 바라드바자 장로(長老)는 성인(聖人)의 한 사람이 되었다.

‘Birth had been destroyed, a religious life had been led, what was to be done had been done, there was nothing else (to be done) for this existence,’so he perceived, and the venerable Bharadvaga became one of the arahats (saints).

 

 

5. KUNDASUTTA

 

부처님이 네 종류의 수행자를 대장장이 춘다에게 설명하셨다.

Buddha describes the four different kinds of Samanas to Kunda, the smith.

 

위대한 깨달음을 얻은 성인께 대장장이 춘다가 말했다. “진리의 주인, 집착이 없는 분, 인류의 최상인(最上人), 뛰어난 마부이신 부처님, 세상에는 어떤 수행자들이 있습니까?”

‘I ask the Muni of great understanding,’-so said Kunda, the smith,-‘Buddha, the lord of the Dhamma, who is free from craving, the best of bipeds, the most excellent of charioteers, how many (kinds of) Samanas are there in the world; pray tell me that?’ 

 

스승이 대답하셨다. “춘다여, 네 종류의 수행자가 있고, 다섯 번째 수행자는 없느니라. 내가 말한 수행자란 ‘도의 승리자’ ‘도를 말하는 사람’ ‘도에 의해 사는 사람’ 그리고 ‘도를 더럽히는 자’ 이니라.” ‘There four (kinds of) Samanas, (there if) not fifth, O Kunda,’-so said Bhagavat,-‘here I will reveal to thee, being asked in person; (they are) Maggaginas and Maggadesakas, Maggagivins and Maggadusins.’

 

대장장이 춘다가 말했다.

“눈을 뜬 사람은 누구를 가리켜 ‘도의 승리자’라 부릅니까? 왜 ‘도를 말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과 견줄 수 없으며, ‘도에 의해 산다’는 것은 무슨 뜻인지 설명해 주십시오. 그리고 ‘도를 더럽히는 자’에 대해 저에게 말해 주십시오.”

‘Whom do the Buddhas call a Maggagina?’-so said Kunda, the smith,-‘How is a Maggagghayin unequalled? Being asked, describe to me a Maggagivin, and reveal to me a Maggadusin.’

 

스승이 대답하셨다. “의혹을 극복한 사람은 고뇌를 떠나 열반을 즐긴다. 또한 탐욕을 버리고 신(神)들을 포함한 온 세계를 이끄는 사람이다. 바로 이런 사람이 ‘도의 승리자’라고 눈을 뜬 사람은 말한다.”

Bhagavat said : ‘He who has overcome doubt, is without pain, delights in Nibbana, is free from greed, a leader of the world of men and gods, such a one the Buddhas call a maggagina (that is, victorious by the way).’

 

“이 세상에서 가장 으뜸가는 것을 가장 으뜸가는 것으로 알고, 법을 설하고 해석하는 사람, 의혹을 버린 성인은 욕망이 없어 수행자들 중에서 둘째인 ‘도를 말하는 사람’이라 부른다.”

‘He who in this world having known the best (i.e.Nibbana) as the best, expounds and explains here the Dhamma, him, the doubt-cutting Muni, without desire, the second Bhikkhu they call a maggadesin (that is, teaching the way).’

 

“잘 설명된 진리의 말씀에 따라 살면서 스스로 억제하고 깊이 생각해서 잘못된 말을 하지 않는 사람을 수행자들 중에서 셋째로 ‘도에 의해 사는 사람’이라 부른다.”

‘He who lives in the way that has so well been taught in the Dhammapada, and is restrained, attentive, cultivating blameless words, him, the third Bhikkhu they call a maggagivin (that is, living in the way).’

 

“맹세한 계율을 잘 지키는 체하지만, 고집 세고 가문을 더럽히며, 오만하고 남을 속이며, 자제력이 없어 수다쟁이며 잘난 체하는 사람을 가리켜 ‘도를 더럽히는 자’라고 한다.”

‘He who although counterfeiting the virtuous is forward, disgraces families, is impudent, deceitful, unrestrained, a babbler, walking in disguise, such a one is a maggadusin (that is, defiling the way).’

 

“학식이 있고 총명한 재가(在家) 신도는, ‘그들 네 종류의 수행자는 다 이와 같다’고 알아, 그들을 통찰하여 그와 같이 보더라도 그의 믿음은 변하지 않는다. 그는 더럽혀진 것과 더럽혀지지 않은 것, 청정한 이와 청정하지 않은 자를 혼동할 염려가 없기 때문이다.”

‘He who has penetrated these (four Samanas), who is a householder, possessed of knowledge, a pupil of the venerable ones, wise, having known that they all are such,-having seen so, his faith is not lost ; for how could he make the undepraved equal to the depraved and the pure equal to the impure?’

 

 

6. PARABHAVASUTTA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So it was heard by me :

 

어느 때 거룩하신 스승께서는 사밧티의 제타 숲, 외로운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나눠주는 장자의 동산에 계시었다. 한 밤중에 이르러 용모가 아름다운 한 신이 제타 숲을 두루 비추면서 스승께 가까이 다가왔다. 스승께 예배드린 후, 한쪽에 서서 시로써 호소하였다.

At one time Bhagavat dwelt at Savatthi, in Getavana, in the park of Anathapindika. Then when the night had come, a certain deity of a beautiful appearance, having illuminated the whole Getavana, went up to Bhagavat, and having approached and saluted him, he stood apart, and standing apart that deity addressed Bhagavat in stanzas:

 

“저희는 파멸하는 사람에 대해서 고타마께 여쭈어보겠습니다. 파멸에 이르는 문은 어떤 것입니까? 스승께 그것을 묻고자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We ask (thee), Gotama, about a man that suffers loss ; having come to ask, Bhagavat, (tell us) what is the cause (of loss) to the losing (man).'’

 

스승은 대답하셨다. “번영하는 사람도 알아보기 쉽고, 파멸도 알아보기 쉽다. 진리를 사랑하는 사람은 번영하고, 진리를 싫어하는 사람은 망한다.”

Bhagavat : ‘The winner is easily known, easily known (is also) the loser : he who loves Dhamma is the winner, he who hates Dhamma is the loser.’

 

“잘 알겠습니다. 옳은 말씀입니다. 이것이 첫째 파멸입니다. 스승님, 둘째 것을 말씀해 주십시오. 파멸의 문은 무엇입니까?”

Deity : ‘We know this to be so, this is the first loser ; tell (us) the second, O Bhagavat, what is the cause (of loss) to the losing (man).’

 

“나쁜 사람을 가까이하고 착한 사람을 멀리하며, 나쁜 사람이 하는 일을 좋아하면 이것은 파멸의 문이다.”

Bhagavat : ‘Wicked men are dear to him, he does not do anything that is dear to the good, he approves of the Dhamma of the wicked, -that is the cause (of loss) to the losing (man).’

 

“잘 알겠습니다. 옳은 말씀입니다. 이것이 둘째 파멸입니다. 스승님, 셋째 것을 말씀해 주십시오. 파멸의 문은 무엇입니까?”

Deity : ‘We know this to be so, this is the second loser; tell us the third, O Bhagavat, what is the cause (of loss) to the losing (man).’

 

“활기가 없고 친구 사귀기를 좋아하며, 분발하여 정진하지 않고 게으르며, 걸핏하면 화를 잘 내는 사람이 있다. 이것은 파멸의 문이다.”

Bhagavat : ‘The man who is drowsy, fond of society and without energy, lazy, given to anger, - that is the cause (of loss) to the losing (man).’

 

“잘 알겠습니다. 옳은 말씀입니다. 이것이 셋째 파멸입니다. 스승님, 넷째 것을 말씀해 주십시오, 파멸의 문은 무엇입니까?”

Deity : ‘We know this to be so, this is the third loser ; tell us the fourth, O Bhagavat, what is the cause (of loss) to the losing (man).’

 

“자기는 풍족하게 살고 있으면서 늙어 쇠약한 부모는 돌보지 않는 그런 사람이 있다. 이것은 파멸의 문이다.”

Bhagavat : ‘He who being rich does not support mother or father who are old or past

their youth,-that is the cause (of loss) to the losing (man).’

 

“잘 알겠습니다. 옳은 말씀입니다.

이것이 넷째 파멸입니다. 스승님 다섯째 것을 말씀해 주십시오. 파멸의 문은 무엇입니까?”

Deity : ‘We know this to be so, this is the fourth loser ; tell us the fifth, O Bhagavat, what is the cause (of loss) to the losing (man).’

 

“바라문이나 사문, 혹은 다른 걸식하는 이를 거짓말로 속인다면, 이것은 파멸의 문이다.”

Bhagavat : ‘He who by falsehood deceives either a Brahmans or a Samana or any other mendicant,-that is the cause (of loss) to the losing (man).’

 

“잘 알겠습니다. 옳은 말씀입니다. 이것이 다섯째 파멸입니다. 스승님, 여섯째 것을 말씀해 주십시오. 파멸의 문은 무엇입니까?”

Deity : 'We know this to be so, this is the fifth loser ;tell us the sixth, O Bhagavat, what is the cause (of loss) to the losing (man).'

 

“풍족한 사람이 엄청나게 많은 재산과 귀금속과 먹을 것을 자기 혼자서만 독식한다면, 이것은 파멸의 문이다.”

Bhagavat : 'The man who is possessed of much property, who has gold and food, (and still) enjoys alone his sweet things, - that is the cause (of loss) to the losing (man).' 

 

“잘 알겠습니다. 옳은 말씀입니다. 이것이 여섯째 파멸입니다. 스승님, 일곱째 것을 말씀해 주십시오. 파멸의 문은 무엇입니까?”

Deity : 'We know this to be so, this is the sixth loser ; tell us the seventh, O Bhagavat, what 1is the cause (of loss) to the losing (man).'

 

“혈통을 뽐내고 재산과 문벌을 자랑하면서 자기의 친척을 멸시하는 사람이 있다. 이것이 파멸의 문이다.”

Bhagavat : 'The man who proud of his birth, of his wealth, and of his family, despises his relatives, - that is the cause (of loss) to the losing (man).'

 

“잘 알겠습니다. 옳은 말씀입니다. 이것이 일곱째 파멸입니다. 스승님, 여덟째 것을 말씀해 주십시오. 파멸의 문은 무엇입니까?”

Deity : 'We know this to be so, this is the seventh loser : tell us the eighth, O Bhagavat, what is the cause (of loss) to the losing (man).'

 

 

7. KASIBHARADVGASUTTA (바라드바자경)

 

“여자, 술, 도박에 빠져 버는 족족 탕진하는 사람이 있다. 이것이 파멸의 문이다.”

Bhagavat : ‘The man who given to women, to strong drink, and to dice, wastes whatever he has gained,-that is the cause (of loss) to the losing (man).’

 

“잘 알겠습니다. 옳은 말씀입니다. 이것이 여덟째 파멸입니다. 스승님, 아홉째 것을 말씀해 주십시오. 파멸의 문은 무엇입니까?”

Deity : ‘We know this to be so, this is the eighth loser ; tell us the ninth, O Bhagavat, what is the cause (of loss) to the losing (man).’

 

“자기 아내로 만족하지 않고, 매춘부나 남의 아내와 어울리는 사람이 있다. 이것은 파멸의 문이다.”

Deity : ‘We know this to be so, this is the ninth loser ; tell us the tenth, O Bhagavat, what (is) the cause (of loss) to the losing (man).’

 

“잘 알겠습니다. 옳은 말씀입니다. 이것이 아홉째 파멸입니다. 스승님, 열번째 것을 말씀해 주십시오. 파멸의 문은 무엇입니까?”

Bhagavat : ‘He who, not satisfied with his own wife, is seen with harlots and the wives of others,-that is the cause (of loss) to the losing (man).’

 

“한창때를 지난 남자가 틴발 열매처럼 불룩한 젖가슴을 가진 젊은 여인을 집안으로 데려오고, 그녀를 질투하는 일로 밤잠을 이루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이것이 파멸의 문이다.”

Bhagavat : ‘The man who past his youth, brings home a woman with breasts like the timbaru fruit, and for jealousy of her cannot sleep,-that is the cause (of loss) to the losing (man).’

 

“잘 알겠습니다. 옳은 말씀입니다. 이것이 열번째 파멸입니다. 스승님, 열한번째 것을 말씀해 주십시오. 파멸의 문은 무엇입니까?”

Deity : 'We know this to be so, this is the tenth loser; tell us the eleventh, O Bhagavat, what is the cause (of loss) to the losing (man).'

 

“술과 고기 맛에 빠져 재물을 헤프게 쓰는 여자나 남자에게 집안일의 실권을 맡긴다면, 이것은 파멸의 문이다.”

Bhagavat : 'He who places in supremacy a woman given to drink and squandering, or a man of the same kind, - that is the cause (of loss) to the losing (man).'

 

“잘 알겠습니다. 옳은 말씀입니다. 이것이 열한번째 파멸입니다. 스승님, 열두번째 것을 말씀해 주십시오. 파멸의 문은 무엇입니까?”

Deity : 'We know this to be so, this is the eleventh loser; tell us the twelfth, O Bhagavat, what is the cause (of loss) to the losing (man).'

 

“크샤트리야(武士) 집안에 태어난 사람이 권세는 작은데 욕망만 커서, 이 세상에서 왕위를 얻고자 한다면, 이것이 파멸의 문이다.”

Bhagavat : 'He who has little property, (but) great craving, is born in a Khattiya family and wishes for the kingdom in this world, - that is the cause (of loss) to the losing (man).’

 

“현자와 성자들은 세상의 이와 같은 파멸이 있다는 것을 잘 살피어, 현자와 성자들은 진리를 보고 행복한 세계에 이른다.”

‘Having taken into consideration these losses in the world, the wise, venerable man, who is endowed with insight, cultivates the happy world (of the gods).’

 

 

8. VASALASUTTA

 

나는 이렇게 들었다:어느날 거룩하신 스승은 사위성(舍衛城) 제타 숲, 급고독장자(給孤獨長者)의 공원에 계셨다. 그때 스승께서는 아침에 의복을 입고 바루와 가사를 걸치고 밥을 빌러 사위성(城)에 들어가셨다.

So it was heard by me:At one time Bhagavat dwelt at Savatthi, in Getavana, in the park of Anathapindika. Then Bhagavat having put on his raiment in the morning, and having taken his bowl and his robes, entered Savatthi for alms.

 

그때 바라문 바라드바자의 집에는 성화(聖火)가 켜지고 재물이 올려져 있었다. 스승은 사위성 이집저집을 탁발하면서 그의 집에 가까이 가셨다.

Now at that time in the house of the Brahmana Aggikabharadvaga the fire was blazing, the offering brought forth. Then Bhagavat going or alms from house to house in Savatthi went to the house of the Brahmana Aggikabharadvaga.

 

바라문 바라드바자는 스승이 멀리서 오는 것을 보더니 이렇게 말했다. “머리깎은 땡초야, 거기 서라. 초라한 사문아, 멈추어라. 천한 놈아, 거기 섰거라.”

The Brahmana Aggikbharadvaga saw Bhagavat coming at a distance, and seeing him he said this: ‘Stay there, O Shaveling; (stay) there, O wrectched Samana; (stay) there, O Vasalaka!’

 

이말을 들은 스승은 불을 섬기는 바라문 바드라바자에게 말씀하셨다. “바라문이여, 그대는 천한 사람을 알고 있소? 또 천한 사람을 만드는 조건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소?”

This having been said, Bhagavat replied to the Brahmana Aggikabharadvaga; ‘Do you know, O Brahmana, an outcast, or the things that make an outcast?’

 

“고타마여 저는 천하게 만드는 조건이 무엇인지 알지 못합니다. 고타마여 부디 제가 천한 사람을 만드는 조건이 무엇인지 알 수 있도록 그 이치를 말씀해 주십시오.”

‘No, O venerable Gotama, I do not know an outcast, or the things that make an outcast; let the venerable Gotama teach me this so well that I may know an outcast, or the things that make an outcast.’

 

“바라문이여 내가 알려줄터이니 주의깊게 들으시오.” “네, 어서 말씀해 주십시오.” 불을 섬기는 바라문 바라드바자는 스승께 대답했다. 스승은 말했다.

‘Listen then, O Brahmana, attend carefully, I will tell you.’‘Even so, O venerable one,’ so the Brahmana Aggikabharadvaga replied to Bhagavat. Then Bhagavat said this:

 

“화를 잘 내고 원한을 품으며, 간사하고 사악해서 남의 미덕을 덮어버리고, 그릇된 소견으로 음모하는 사람, 그를 천한 사람으로 아시오.”

‘The man who is angry and bears hatred, who is wicked and hypocritical, who is deceitful, let one know him as an outcast.’

 

“한 번 태어나는 것이거나 두 번 태어나는 것이거나, 이 세상에는 생물을 해치고 동정심이 없는 사람, 그를 천한 사람으로 아시오.”

‘whosoever in this world harms living beings, whether once or twice born, and in whom there is no compassion for living beings, let one know him as an outcast.’

 

“시골과 도시를 파괴하고 포위하여, 독재자로서 널리 알려진 사람, 그를 천한 사람으로 아시오.”

‘whosoever destroys or lays siege to villages and towns, and is known as an enemy, let one know him as an outcast.’

 

마을에서나 숲에서나 남의 것을 주지도 않는데 훔치려는 생각으로 이를 취하는 사람, 그를 천한 사람으로 아시오.

‘Be it in the village or in the wood, whosoever appropriates by theft what is the property of others and what has not been given, let one know him as an outcast.’

 

부모, 형제, 자매 혹은 계모를 때리거나 말로써 괴롭히는 사람, 그를 천한 사람으로 아시오.

whosoever strikes or by words annoys mother or father, brother, sister, or mother-in-law, let one know him as an outcast.

 

상대가 선(善)을 물었을 때, 악(惡)을 가르쳐주거나 숨긴 일을 발설하는 사람, 그를 천한 사람으로 아시오

Whosoever, being asked about what is good, teaches what is bad and advises (another, while) concealing (something form him), let one know him as an outcast.

 

나쁜 행위를 하면서, 아무도 가지가 한 일을 모르기를 바라며 숨기는 사람, 그를 천한 사람으로 아시오.

Whosoever, having committed a bad deed, hopes (saying), Let no one know me (as having done it, who is) a dissembler, let one know him as an outcast.

 

남의 집에 갔을 때는 융숭한 대접을 받으면서, 그 쪽에서 손님으로 왔을 때는 예의로써 보답하지 않는 사람, 그를 천한 사람으로 아시오.

Whosoever, having gone to another's house and partaken of his good food, does not in return honour him when he comes, let one know him as an outcast.

 

바라문이나 사문 또는 걸식(乞食)하는 사람에게 거짓말로 속이는 사람, 그를 천한 사람으로 아시오. Whosoever by falsehood deceives either a Brahmana or a Samana or any other mendicant, let one know him as an outcast.

 

식사 때가 되었는데도 바라문이나 사문에게 욕하며 먹을 것을 주지 않는 사람, 그를 천한 사람으로 아시오.

Whosoever by words annoys either a Brahmana or a Samana when meal-time has come and does not give (him anything), let one know him as an outcast.

 

이 세상에서 어리석음에 싸여 사소한 재물은 턱없이 타내어 일어나지도 않을 일을 예언하는 사람, 그를 천한 사람으로 아시오.

Whosoever enveloped in ignorance in this world predicts what is not (to take place), coveting a trifle, let one know him as an outcast.

 

깨달은 사람 뿐만 아니라 그의 제자 중에서 탁발하거나 재가의 제자들을 헐뜯는 사람, 그를 천한 사람으로 아시오.

Whosoever reviles buddha or his disciple, be he a wandering mendicant (paribbaga) or a householder (gahattha), let one know him as an outcast.

 

성자(아라한)도 아니庸?성자라고 사칭하는 사람은 전 우주의 도둑이오. 그런 사람이야말로 실은 가장 천한 사람이오. 내가 당신에게 말한 이러한 사람들은 모두가 참으로 천한 사람이오.

whosoever without being a saint (arahat) pretends to be a saint, (and is) a thief in all the worlds including that of Brahman, he is indeed the lowest outcast; (all) these who have been described by me to you are indeed called outcasts.

 

자신을 칭찬하고 남을 깔보며, 스스로의 교만 때문에 비굴해진 사람, 그를 천한 사람으로 아시오.

Whosoever exalts himself and despises others, being mean by his pride, let one know him as an outcast.

 

날 때부터 천한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오. 태어나면서 바라문이 되는 것도 아니오. 바로 행위에 의해서 천한 사람도 되고 바라문도 되는 것이오.

Not by birth does one become an outcast, not by birth does one become a Brahmana; by deeds one becomes an outcast, by deeds one becomes a Brahmana.

 

나는 다음에 실례를 들겠으니 이것으로 내 말뜻을 알아들으시오. 찬다라족의 아들이며, 개백정 마탕가로 세상에 알려진 사람이 있었소.

Know ye this in the way that this example of mine (shows): There was a Kandala of the Sopaka caste, well known as Matanga.

 

그 마탕가는 얻기 어려운 최상의 명성을 얻었소. 많은 왕족과 바라문들이 그를 섬기려고 모여들었소.

This Matanga reached the highest fame, such as was very difficult to obtain, and many Khattiyas and Brahmanas went to serve him.

 

그는 신들의 마차에 올라타고 허망한 욕망의 티끌로 부터 자유로운 대도(大道)에 들어서 범천의 세계로 가게 되었소.

He having mounted the vehicle of the gods, (and entered) the high road (that is) free from dust, having abandoned sensual desires, went to the Brahma world.

 

그들은 브라만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다. 반면 베다 독송하는 사람의 친구나 교사의 가정에 태어나 글귀에 친숙한 바라문들이 있다.

His birth did not prevent him from being re-born in the Brahma world ; on the other hand there are Brahmanas, born in the family of preceptors, friends of the hymns of the Vedas

 

그러나 그들은 나쁜 행위에 빠져들고 현세에서 비난을 받는다면 내세에는 나쁜 곳에 태어나오. 신분이 높은 태생도 그들이 나쁜 곳에 태어나는 것을, 그리고 비난받는 것을 막을 수 없소.

But they are continually caught in sinful deeds, and are to be blamed in this world, while in the coming (world) hell (awaits them); birth does not save them from hell nor from blame.

 

따라서 날 때부터 천한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오, 날 때부터 바라문이 되는 것도 아니오. 오로지 그 행위로인해 천한 사람도 되고 바라문도 되는 것이오.

Therefore not by birth does one become an outcast, not by birth does one become a Brahmana, by deeds one becomes an outcast, by deeds one become a Brhmana.

 

이와 같이 말씀하셨을 때에 불을 섬기는 바라문 바라드바자는 스승께 사뢰었다.

This having been said, the Brahmana Aggikabharadvaga answered Bhagavat as follows:

 

훌륭하신 말씀이십니다, 고타마시여. 훌륭한 말씀이십니다, 고타마시여. 마치 넘어진 사름을 일으켜주듯이, 덮인 것을 벗겨주었습니다.

Excellent, O venerable Gotama! Excellent, O venerable Gotama! As one, O venerable Gotama! raises what has been overthrown, or reveals what has been hidden.

 

 

9. METTASUTTA

 

- metta (빠알리어) 자비로운 mettasutta(자비로운 경전) mettacitta(자비로운 마음)

 

사물에 통달한 사람이 평안한 경지에 이르러 해야 할 일은 다음과 같다. 유능하고 정직하고 말씨는 상냥하고 부드러우며, 잘난 체하지 말아야 한다.

Whatever is to be done by one who is skillful in seeking (what is) good, having attained that tranquil state (of Nibbana):-Let him be able and upright and conscientious and of soft speech, gentle, not proud.

 

만족할 줄은 알고, 많은 것을 구하지 않고, 잡일을 줄이고 생활도 간소하게 하며, 모든 감관이 안정되고 총명하며 마음이 흐트러지지 않으면, 남의 집에 가서도 탐욕을 부리지 않는다.

And contented and easily supported and having few cares, unburdened and with his sense calmed and wise, not arrogant, without(showing) greediness (when going his round) in families.

 

다른 식자들로부터 비난을 살 만한 비열한 행동을 결코 해서는 안된다. 살아 있는 모든 것은 다 행복하라. 태평하라. 안락하라.

And let him not do anything mean for which others who are wise might reprove (him); may all beings be happy and secure, may they be happy-minded.

 

겁에 떨거나 강하고 굳세거나, 그리고 긴 것이건 큰 것이건 중간치건, 짧고 가는 것이건, 또는 조잡하고 거대한 것이건간에 어떤 생물이든 존재하는 이유가 있다.

Whatever living beings there are, either feeble or strong, all either long or great, middled-sized, short, small or large,

 

눈에 보이는 것이나 보이지 않는 것이나, 멀리 또는 가까이 살고 있는 것이나, 이미 태어난 것이나 앞으로 태어날 것이거나 살아 있는 모든 것은 다 행복하라.

Either seen or which are not seen, and which live far (or) near, either born or seeking birth, may all creatures be happy-minded.

 

어느 누구도 남을 속여서는 안된다. 또 어디서나 남을 경멸해서도 안된다. 남을 골려줄 생각으로 화를 내어 남에게 고통을 주어서도 안된다.

Let no one deceive another, let him not despise (another) in any place, let him not out of anger or resentment wish harm to another.

 

마치 어머니가 목숨을 걸고 외아들을 아끼듯이, 모두 살아 있는 것에 대해서 한량없는 자비심을 내라.

As a mother at the risk of her life watches over her own child, her only child, so also let every one cultivate a boundless (friendly) mind towards all beings.

 

또한 세계에 대해서 한량없는 자비를 행하라. 위 아래로, 또는 옆으로 장애와 원한과 적의가 없는 자비를 행하라.

And let him cultivate goodwill towards all the world, a boundless friendly mind, above and below and across, unobstructed, without hatred, without enmity.

 

서 있을 때나 앉아 있을 때나 누워서 잠들지 않는한, 이 자비심을 굳게 가지라. 이 세상에서는 이러한 상태를 신성한 경지라 부른다.

Standing, walking or sitting or lying, as long as he be awake, let him devote himself to this mind; this (way of) living they say is the best in this world.

 

온갖 삿된 소견에 팔리지 말고, 계행(戒行)을 지키고 지견(知見)을 갖추어 모든 욕망에 대한 탐착을 버린 사람은 결코 다시는 모태(母胎)에 드는 일이 없을 것이다.

He who, not having embraced philosophical views, is virtuous, endowed with perfect vision, after subbuing greediness for sensual pleasures, will never again go to a mother's womb.

 

 

10. HEMAVATASUTTA

 

- HEMAVATA 금계(金戒)경전 (hema 금, vata 계율)

 

오늘은 보름, 포살일이다. 순결한 밤이 가까워졌다. 자, 우리들은 세상에서 명성이 자자한 스승 고타마를 뵈러 가자. 칠악야차가 말했다.

Today is the fifteenth, a fast day; a lovely night has come - so said the Yakkha Satagira-let us go and see the renowned Master Gotama.

 

부처님의 마음은 살아 있는 모든 생물에 대해서 좋은 감정을 품고 있을까. 또 그분의 생각은 바라던 것이나 바라지 않던 것에 대해서도 자제될 수 있을까. 설산야차가 말했다.

Is the mind of such a one well disposed towards all beings? - so said the Yakkha Hemavata - are his thoughts restrained as to things wished for or not wished for?

 

부처님의 마음은 모든 살아 있는 것에 대해서 좋은 감정을 품고 있다. 또 그분의 생각은 바라던 것이나 바라지 않던 것에 대해서도 잘 자제될 수 있다. 칠악야차가 말했다.

His mind is well disposed towards all beings, the mind of such a one - so said the Yakkha Satagira - and his thoughts are restrained as to things wished for or not wished for.

 

부처님은 주지 않는 것을 갖지 않을까? 그가 살아 있는 것에 대해 자제하고 있을까? 그는 부주의로부터 멀리 떠나 있을까? 그리고 그는 명상을 그만두지 않고 있는가? 설산야차가 말했다.

Does he not take what has not been given to him? - so said the Yakkha Hemavata, - is he self-controlled to living beings? is he far from a state of carelessness? does he not abandon meditation?

 

그분은 주지 않는 것을 갖지 않는다. 그분은 산 것을 죽이지 않으려고 자신의 습성을 조심한다. 그분은 경솔함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 부처님은 명상을 그만두지 않는다. 칠악야차가 말했다.

He does not take what has not been given to him - so said the Yakkha satagira, - and he is self-controlled in him behaviour to living beings, and he is far from a state of carelessness; Buddha does not abandon meditation.

 

그는 거짓말을 하지 않을까? 또한 귀에 거슬리는 말도 하지 않을까? 그는 욕설을 입 밖에 내지 않을까? 이간질을 하지 않을까? 그리고 어리석은 말도 하지 않을까? 설산야차가 말했다.

Does he not speak falsely ? - so said the Yakkha Hemavata, - is he not harsh-spoken? does he not utter slander? does he not talk nonsense?

 

부처님은 거짓말을 하지 않으며 귀에 거슬리는 말도 하지 않는다. 또한 자신이 좋은 말을 하려고 노력해 이간질이나 쓸데없는 말도 하지 않는다. 그는 자신이 올바른 의식에서 말하고 있는가를 판단해 욕설을 입 밖에 내지않는다. 칠악야차가 말했다.

He does not speak falsely - so said the Yakkha Stagira - he said not harsh-spoken. he does not utter slander, with judgment he utters what is good sense.

 

그는 음탕한 향락에 빠지는 일은 없을까? 그의 마음은 혼탁하지는 않을가? 마음은 평정한가? 어리석은 행동에서 벗어났을까? 그리고 모든 사물의 진법을 똑똑히 볼수 있을까? 설산야차가 말했다.

Is he not given to sensual pleasures? - so said the Yakkha Hemavata - is his mind undisturbed? Has he overcome folly? does he see clearly in all things dhammas?

 

그분은 음탕한 향락에 빠지지 않는다. 그분의 마음은 혼탁하지 않다. 그는 평정하며, 또한 모든 사물의 진법을 똑똑히 볼 수 있다. 칠악야차가 말했다.

He is not given to sensual pleasures - so said the Yakkha Stagira - and his mind is undisturbed : he has overcome all folly; Buddha sees clearly in (all) things.

 

그는 지혜를 갖추고 있을까? 그의 행동은 고결할까? 그는 고(苦)를 소멸했을까? 속세에 다시 태어나는 않을까? 설산야차가 말했다.

Is he endowed with knowledge? - so said the Yakkha Hemavata - is his conduct pure? have his passions been destroyed? is there no new birth (for him)?

 

그분은 지혜를 갖추었다. 그 분의 행동은 고결하다. 그분은 고(苦)를 소멸해버렸다. 그리고 그분은 다시는 속세에 태어나는 않는다.

He is endowed with knowledge - so said the Yakkha Satagira - and his conduct is pure; all his passions have been destroyed; there is no new birth for him.

 

성인의 마음은 언행(言行)으로 나타난다. 고타마는 지혜와 도덕적인 품행을 통해 가르치는 분. 우리 함께 고타마를 뵈러 가자. 설산야차가 말했다.

The mind of the Muni is accomplished in deed and word; Gotama, who is accomplished by his knowlege and conduct, let us (go and) see.

 

우리는 고타마를 뵈러 가자. 그는 영양(羚羊)처럼 여윈 정강이를 가졌고, 총명하며 소식(小食)을 해 음식을 탐내지 않고 숲속에서 조용히 사색하고 있다. 설산야차가 말했다. Come, let us (go and) see Gotama, who has legs like an antelope, who is thin, who is wise, living on little food, not covetous, the Muni who is meditating in the forest.

 

온갖 욕망을 돌아보지 않고 마치 사자처럼, 코끼리처럼 홀로 가는 그에게 가서 우리는 물어보자. 죽음의 올가미로부터 벗어나는 길을

Having gone to him who is like a lion, a lonely wandering elephant, and who does not look for sensual pleasures, let us ask about the deliverance from the snares of death.

 

열어 보이는 분, 풀어서 밝히는 분, 모든 사물을 간파하고 증오와 공포를 초월하여 눈을 뜬 고타마께 우리는 물어보자.

Let us ask Gotama, the preacher, the expounder, who has penetrated all things, Buddha who has overcome hatred and fear.

 

인간은 어떻게 생성되며 무엇을 사랑하게 됩니까? 또 인간은 어떤 것을 집착하게 되고 무엇으로 인해 괴로워합니까? 설산야차가 물었다.

In what has the world originated? - so said the Yakkha Hemavat - with what is the world intimate? by what is the world afflicted, after having grasped at what?

 

설산야차여! 인간은 여섯가지 것으로 인해 생성되고, 여섯 가지 것에 집착하고 사랑을 하게된다. 또 그 여섯가지로 인해 고통을 당하게 된다. 성인이 말했다.

In six the world has originated, O Hemavata - so said Bhagavat - with six it is intimate by six the world is afflicted, after having grasped at six.

 

설사야차가 말했다. 세상 사람들을 괴롭힌다는 집착이란 무엇입니까? 고통으로부터 벗어나는 길을 말씀해 주십시오. 어떻게 해야지만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지 저에게 구제책을 가르쳐 주십시오.

Hemavata said:What is the grasping by which the world is afflicted? Asked about salvation, tell (me) how one is released from pain?'

 

성인이 말했다. 인간에게는 다섯가지 욕망이 있다. 이러한 욕망을 떨쳐없애고 고통으로 부터 벗어날 수 있는 여섯번째로써 의지가 있다.

Bhagavat said:Five pleasure of sense are said to be in the world, with (the pleasures of) the mind as the sixth; having divested oneself of desire for these, one is thus released from pain.

 

설산야차가 물었다. 이 세상에서 누가 거센 흐름을 건널 수 있겠습니까. 이 세상에서 어떤 사람이 바다를 건널 수 있겠습니까. 의지할 것도, 붙잡을 것도 없는 깊은 바다에 들어가면 어떤 사람이 가라앉지 않습니까?

Hemavata said: Who in this world crosses the stream? who in this world crosses the sea? who does not sink into the deep, where there is no footing and no support?

 

현자가 말했다. 항상 계(戒)를 몸에 지니고 지혜가 있고 마음을 한 곳에 모아 안으로 살피고 염원이 있는 사람만이 건너기 어려운 거센 흐름을 능히 건널 수 있다.

Bhagavat said : He who is always endowed with virtue, possessed of understanding, well composed, reflecting within himself, and thoughtful. crosses the stream that is difficult to cross.

 

관능의 욕망에서 떠나 모든 속박에서 벗어나고 쾌락을 혐오스럽게 생각하는 사람, 그런 사람은 깊은 바다에 가라앉지 않는다.

He who is disgusted with sensual pleasures, who has overcome all bonds and destroyed joy, such a one does not sink into the deep.'

 

설산야차가 말했다. 지혜가 깊고 심오한 뜻에 통달하며, 아무것도 가지지 않고 관능에 집착하지 않으며, 모든 일에서 해탈하여 천상의 길을 가는 저 위대한 선인을 보라.

Hemavata said: He who is endowed with a profound understanding, seeing what is subtile, possessing nothing, not clinging to sensual pleasures, behold him who is in every respect liberated, the great Isi, walking in the divine path.

 

명성이 높고 심오한 뜻에 통달해 있으며, 지혜를 가르쳐주고 욕망의 집착에서 떠나 모든 것을 알고 현명하며, 거룩한 길을 가고 있는 저 위대한 선인을 보라.

He who has got a great name, see what is subtle, imparts understanding, and does not cling to the abode of sensual pleasures, behold him, the all knowing, the wise, walking in the noble path.

 

오늘 우리는 눈부신 태양을 보고, 아름다운 새벽을 만나 상쾌한 기분으로 새날을 맞이했다. 거센 흐름을 건너 번뇌로부터 자유로운, 깨달은 사람을 만났기 때문이다.

A good sight indeed has met us to-day, a good daybreak, a beautiful rising, for we have seen the perfectly enlightened, who has crossed the stream, and is free from passion.

 

여기 1천이나 되는 야차의 무리들은 신통력이 있고 명성도 가지고 있지만, 우리들은 모두 당신께 귀의합니다. 당신은 우리들의 비길 데 없는 스승이기 때문입니다.

These ten hundred Yakkhas, possessed of supernatural power and of fame, they all take refuge in thee, thou art our incomparable Master.

 

깨달은 분과 완벽한 진리에 예배드리면서 우리들은 마을에서 마을로, 산에서 산으로 돌아다니겠습니다.

We will wander about from village to village, from mountain to mountain, worshipping the perfectly enlightened and the perfection of the Dhamma.

 

 

11. Alavakasutta (알라바카경전)

 

이 세상에서 사람에게 으뜸가는 재산은 무엇입니까? 어떤 선행이 안락을 가져옵니까? 어떻게 사는 것을 최상의 생활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What in this world is the best property for a man? what being well done conveys happiness? what is indeed the sweetest of sweet things? how lived do they call life the best?

 

스승은 대답하셨다. 이 세상에서 사람에게 으뜸가는 재산은 믿음이다. 진리를 잘 따르면 안락을 가져온다. 진실이야말로 맛 중의 맛이며, 지혜롭게 사는 것이 최상의 생활이라 할 수 있다.

Bhagavat said; Faith is in this world the best property for a man; Dhamma, well observed, conveys happiness; truth indeed is the sweetest of things; and that life they call the best which is lived with understanding.

 

알라바카 야차가 묻었다. 사람은 무엇으로 삶의 거센 흐름을 건넙니까? 무엇으로 바다를 건너며 무엇으로 고통을 극복합니까? 그리고 무엇으로 완전히 청정해질 수 있습니까?

Alavaka said; How does one cross the stream of existence? how does one cross the sea? how does one conquer pain? how is one purified?

 

스승이 대답하셨다. 사람은 신앙의 힘으로 거센 흐름을 건너고, 정진으로 바다를 건너며 근면으로써 고통을 극복할 수 있고, 지혜로써 완전히 청정해진다.

Bhagavat said; By faith one crosses the stream, by zeal the sea, by exertion one conquers pain, by understanding one is purified.

 

사람은 어떻게 해서 지혜를 얻습니까. 어떻게 해서 재물을 얻고 어떻게 해서 명성을 떨치며, 어떻게 해서 친교를 맺습니까. 또 어떻게 하면 이 세상에서 저 세상으로 갔을 때 슬퍼하지 않겠습니까?

Alavaka said; How does one obtain understanding? how does one acquire wealth? how does one obtain fame? how does one bind friends to himself? how does one not grieve passing away from this world to the other?

 

성자들이 열반을 얻는 이치를 믿고 부지런히 정진하고 총명하다면 가르침을 들으려는 열망에 의해서 지혜를 얻는다.

Bhagavat said; He who believes in the Dhamma of the venerable ones as to the acquisition of Nibbana, will obtain understanding from his desire to hear, being zealous and discerning.

 

적절하게 일을 하고 참을성 있게 노력하는 이는 재물을 얻는다. 성실을 다하면 명성을 떨치고 무엇인가를 줌으로써 친교를 맺는다.

He who does what is proper, who takes the yoke and exerts himself, will acquire wealth, by truth he will obtain fame, and being charitable he will bind friends to himself.

 

깊은 신앙을 가지고 가정생활을 하는 사람에게 성실, 자제, 견고와 보시의 네가지 덕이 있으면, 그는 내세에도 걱정이 없을 것이다.

He who is faithful and leads the life of a householder, and possesses the following four Dhammas virtues, truth, justice dhamma, firmness , and liberality,-such a one indeed does not grieve when passing away.

 

만일 이 세상에 성실과 자제와 보시와 인내보다 더 나은 것이 있다면, 그것을 널리 사문이나 바라문에게 물어보라.

Pray, ask also other Samanas and Brahmanas far and wide, whether there is found in this world anything greater than truth, self-restraint, liberality, and forbearance.

 

야차가 말했다. 무엇 때문에 사문이나 바라문에게 널리 물을 필요가 있겠습니까. 저는 오늘 내세에 이익되는 일을 깨달았습니다.

Alavaka said; Why should I now ask Samanas and Brahmanas far and wide? I now know what is my future good.

 

아, 깨달으신 분께서 알라비에 살러 오신 것은, 저를 이롭게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오늘 저는 보시를 하면 어째서 위대한 과보가 얻어지는가를 알았습니다.

For my good Buddha came to live at Alavi; now I know where a gift will bear great fruit.

 

저는 시골에서 시골로, 도시에서 도시로 돌아다니겠습니다. 깨달으신 분과 진리의 뛰어남에 예배드리면서.

I will wander about from village to village, from town to town, worshipping the perfectly enlightened and the perfection of the Dhamma.

 

 

12. Vigayasutta

 

- Vigaya(빠알리어) 승복, 정복 극복(Vijaya의 로마자음역)

 

걷거나 서며, 혹은 앉고 눕거나 몸을 구부리고 또는 편다. 이것이 신체의 동작이다.

I either wolking or standing, sitting or lying, any one contracts or streches his body, this is the matoin of the body.

 

이 육신은 뼈와 근육으로 연결되어 있고 내피와 살과 살갗으로 덮여져 있기 때문에 있는 그대로 볼 수 없다.

The body which is put together with bones and sinews, plastered with membrane and flesh, and coverd with skin, is not seen as it really is.

 

여기에는 창자·위·간장·심장·폐·신장·비장 등으로 채워져 있다.

It is filled with the intestines, the stomach, the lump of the liver, the abdomen, the heart, the lungs, the kidneys, the spleen.

 

또 육신에는 점액·타액·땀·림프액·혈액 등과 관절을 유연하게 움직이게 하는 윤활제인 담즙·지방 등이 있다.

With mucus, saliva, perspiration, lymph, blood, the fluid that lubricates the joints, bile, and fat.

 

이 육신의 아홉 구멍에서는 끊임없이 오물이 흘러나온다. 눈에서는 눈곱, 귀에서는 귀지.

Then in nine streams impurity flows always from it; from the eye the eye-excrement, from the ear the ear-excrement.

 

코에서는 콧물, 입에서는 침을 흘리고 가래를 뱉는다. 그리고 온몸에서는 땀과 때를 배설한다.

Mucus from the nose, through the mouth it ejects at one time bile and at other times it ejects phlegm, and from all the body come sweat and dirt.

 

또 그 머리의 빈 곳은 뇌수로 가득 차 있다. 그런데 어리석은 사람들은 무명(無明)에 이끌려서 이런 육신을 깨끗한 것으로 착각하고 있다.

Then its hollow head is filled with the brain. A fool led by ignorance thinks it a fine thing.

 

또 죽어서 몸이 쓰러졌을 때에는 부어서 검푸르게 되고, 무덤에 버려져 친척도 그것을 돌보지 않는다.

And when it lies dead, swollen and livid, discarded in the cemetery, relatives do not care for it.

 

개나 재칼·여우·늑대·벌레들이 파먹고, 까마귀나 독수리 등이 쪼아 먹는다. 또 시체 주변에서 살고 있는 다른 것들 역시 갉아 먹는다.

Dogs eat it and jackals, wolves and worms; crows and vultures eat it, and what other living creatures there are.

 

이 세상에서 지혜로운 수행자는, 깨달은 사람의 말씀을 듣고 그것을 완전히 이해한다. 왜냐하면 그는 있는 그대로 보기 때문이다.

The Bhikku possessed of understanding in this world, having listened to Buddha's words, he certainly knows it thoroughly , for he sees it as it really is.

 

저 죽은 시체도 얼마 전까지는 살아 있는 내 몸뚱이와 같은 것이었다. 살아 있는 이몸도 언젠가는 죽은 저 시체처럼 될 것이다. 이와 같이 알고 안팎으로 몸에 대한 욕망에서 벗어나야 한다.

As this living body is so is that dead one, as this is so that will be; let one put away desire for the body, both as to its interior and as to its exterior.

 

이 세상에서 애욕을 떠난 지혜로운 수행자는, 죽지 않고 평안하고 멸하지 않는 열반의 경지에 도달해 있다.

Such a Bhikkhu who has turned away from desire and attachment, and is possessed of understanding in this world, has already gone to the immortal peace, the unchangeable state of Nibbana.

 

인간의 이 육신은 부정하고 악취를 풍기므로 꽃이나 향으로 은폐되어 있다. 그렇지만 온갖 오물로 가득 차 있어 여기저기서 그것이 흘러나오고 있다.

This body with two feet is cherished although impure, ill-smelling, filled with various kinds of stench, and trickling here and there.

 

이런 몸뚱이를 지니고 있으면서 자신을 잘난체 뻐기거나 남을 깔본다면, 그는 소경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He who with such a body thinks to exalt himself or despises others - what else is this but blindness.

 

 

13. MUNISUTTA

 

- muni (빠알리어) 성인·현장

 

친교(親交)에서 두려움이 생기고, 가정생활에서 더러운 먼지가 낀다. 그러니 가정을 일구지 않고 친교로부터 자유로운 것이 바로 성인의 생각이다.

From acquaintanceship arises fear, form houselife arises defilement; the houseless state, freedom from acquaintanceship - this is indeed the view of a Muni.

 

이미 돋아난 번뇌의 싹을 잘라버리고, 새로 심지 않고 지금 생긴 번뇌를 가르지 않는다면, 이 홀로 가는 사람을 성인이라 부른다. 저 위대한 선인은 평안의 경지를 본 것이다.

Whosoever, after having uprooted his arisen, would not replant it and would not allow it to grow up, him the solitarily wandering they call a Muni; such a great Isi has seen the state of peace.

 

번뇌가 일어나는 근본을 살피어 그 종자를 헤아려 알고 그것에 집착하는 마음을 기르지 않는다면, 그는 참으로 생을 멸해 구경을 본 성인이다. 그는 이미 망상을 초월했기 때문에 미궁에 빠진 자의 무리 속에 끼지 않는다.

Having considered the causes having discerned the seed, let him not allow any desire for it; such a Muni who sees the end of birth and destruction, after leaving reasoning behind, does not enter the number

 

모든 집착이 일어나는 곳을 알아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탐욕을 떠나 욕심이

없는 성인은 무엇을 하려고 따로 구하지 않는다. 그는 이미 피안에 도달해 있기 때문이다.

He who has penetrated all the resting-places does not wish for any of them, - such a Muni indeed, free from covetousness and free from greediness, strives no longer, for he has reached the other shore.

 

모든 것을 이기고 온갖 것을 알며, 지극히 총명하고 여러 가지 사물에 더럽히지 않으며, 모든 것을 버리고 애착을 끊어 해탈한 사람, 현자들은 그를 성인으로 안다.

The man who has overcome everything, who knows everything, who is possessed of a good understanding, undefiled in all things, abandoning everything, liberated in the destruction of desire, him the wise style a Muni.

 

지혜의 힘이 있고 부여된 계율과 맹세를 잘 지키고, 마음이 잘 집중되어 있고 선정을 즐기며, 생각이 깊고 집착에서 벗어나 거칠지 않고, 번뇌의 때가 묻지 않은 사람, 현자들은 그를 성인으로 안다.

The man who has the strength of understanding, is endowed with virtue and holy works, is composed, delights in meditation, is thoughtful, free from ties, free from harshness, and free from passion, him the wise style a Muni.

 

홀로 행하고 게으르지 않으며, 비난과 칭찬에도 흔들리지 않고,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처럼,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진흙에 더럽히지 않는 연꽃처럼, 남에게 이끌리지 않고 남을 이끄는 사람, 현자들은 그를 성인으로 안다.

The Muni that wanders solitarily, the zealous, that is not shaken by blame and praise, like a lion not trembling at noises, like the wind not caught in a net, like a lotus not soiled by water, leading others, not led by others, him the wise style a Muni.

 

남들이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거나 욕을 하더라도 수영장에 서 있는 기둥처럼 태연하고, 애욕을 떠나 모든 감관을 잘 가라앉힌 사람, 현자들은 그를 성인으로 안다.

Whossever becomes firm as the post in a bathing-place, in whom others acknowledge propriety of speech, who is free from passion, and with well-composed senses, such a one the wise style a Muni.

 

베짜는 북처럼 변함없이 모든 악한 행위를 싫어하고, 바른 것과 바르지 않은 것을 곰곰이 생각하는 사람, 현자들은 그를 성인으로 안다.

Whosoever is firm, like a straight shuttle, and is disgusted with evil actions, reflecting on what is just and unjust, him the wise style a Muni.

 

자제하여 악을 행하지 않고, 젊을 때나 중년이 되어서도 성인은 자신을 억제한다. 그는 남을 괴롭히지 않고, 남한테서 괴로움을 받지도 않는다. 현자들은 그를 성인으로 안다.

Whosoever is self-restrained and does not do evil, is young or middle-age Muni, self-subdued, one that should not be provoked as he does not provoke any, him the wise style a Muni.

 

남이 주는 것으로 생활하고 새 음식이거나 먹던 음식이거나 남은 찌꺼기를 받더라도, 먹을 것을 준 사람을 칭찬하지 않고 화를 내어 욕하지도 않는 사람, 현자들은 그를 성인으로 안다.

Whosoever, living upon what is given by others, receives a lump of rice from the top, from the middle or from the rest of the vessel, and does not prise the giver nor speak harsh words, him the wise style a Muni.

 

성의 접촉을 끊고, 어떤 젊은 여성에게도 마음을 빼앗기지 않으며, 스스로 득의(得意)했다는 자만심의 굴레에서 벗어난 사람, 현자들은 그를 성인으로 안다.

The Muni that wander about abstaining from sexual intercourse, who in his youth is not fettered in any case, is abstaining from the insanity of pride, liberated, him the wise style a Muni.

 

세상 이치에 막힘없이 통달하고 최고의 진리를 알는 사람, 거센 흐름과 바다를 건넌 사람, 속박을 끊고 의존하지 않으며 번뇌의 때가 묻지 않은 사람을 현자들은 성인으로 안다.

The man who having penetrated the world, sees the highest truth, such a one, after crossing the stream and sea who has cut off all ties, is independent, free from passion, him indeed the wise style a Muni.

 

출가자와 재가불자의 거처와 생활은 아주 다르다. 재가불자는 처자를 부양하지만, 이타적이며 덕이 있는 이(출가자)는 무엇을 보아도 내것이라는 집착이 없다. 재가불자는 남의 목숨을 해치고 절제하기 어렵지만 성인은 자제하고 항상 남의 목숨을 지켜준다.

Two whose mode of life and occupation are quite different, are not equal: a householder maintaining a wife, and an unselfish virtuous man. A householder is intent upon the destruction of other living creatures, being unrestrained; but a Muni always protects living creatures, being restrained.

 

볏을 세우고 목이 푸른 공작새가 아무리 애를 써도 빨리 날아가는 백조를 따를 수 없는 것처럼, 재가불자는 숲속에서 명상하며 은둔하는 성인이나 수행자에게 미치지 못한다.

As the crested bird with the blue neck the peacock never attains the swiftness of the swan, even so a householder does not equal a Bhikkhu, a secluded Muni meditaiting in the wood.

 

 

14. RATANASUTTA

 

- ratana (빠알리어) 삼보, 보석

 

여기 모인 귀신들은 지상의 것이건 공중에 있는 것이건 모두 기뻐하라. 그리고 주의하여 이 말을 들으라. 귀신들이여, 너희들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제물을 바치는 사람들에게 자비를 베풀어라. 힘겨워하는 그들을 돌보라.

Whatever spirits have come together here, either belonging to the earth or living in the air, let all spirirts be happy, and then listen attentively to what is said.

Therefore, O spirits, do ye all pay attention, show kindness to the human race who both day and night bring their offerings; protect them strenuously.

 

이 세상과 내세의 그 어떤 부(富)라 할지라도, 천상에서 가장 소중한 보배라 할지라도, 여래(如來)에게 견줄 만한 것은 없다. 이 훌륭한 보배는 깨달은 사람 안에 있다. 이 진리에 의해서 사람을 구제하라.

Whatever wealth there be here or in the other world, or whatever excellent jewel in the heavens, it is certainly not equal to Tathagata. This excellent jewel is found in Buddha, by this truth may there be salvation.

 

석가모니가 일념으로 도달한 번뇌의 소멸·자유·불후의 명성과 견줄 것은 아무것도 없다. 훌륭한 보배는 진리(佛法) 속에 있다. 이 진리에 의해서 사람을 구제하라.

The destruction of passion, the freedom from passion, the excellent immortality which Sakyamuni attained being composed, - there is nothing equal to that Dhamma. This excellent jewel is found in the Dhamma, by this truth may there be salvation.

 

부처가 가장 찬탄했던 청정심을 사부대중들은 ‘끊임없는 명상’이라고 한다. 청정한 명상과 대등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뛰어난 보배는 이 진리 속에 있으며 이것으로 사람을 구제하라.

The purity which the best of Buddhas praised, the meditation which they call uninterrupted, there is no meditation like this. This excellent jewel is found in the Dhamma, by this truth may there be salvation.

 

대중이 정직하다고 일컫는 여덟가지의 지위는 네 개의 상을 가진 사람에게 부여된다. 그들은 부처님의 신도이며 보시를 받을 만한 사람들이다. 그들에게 베푼 사람은 과보를 얻는다. 이 뛰어난 보배는 승단 안에 있다. 이 진리에 의해서 행복하라.

The eight persons that are praised by the righteous, and make these four pairs they are worthy of offerings, (being) Sugata's disciples; what is given to these will bear great fruit. they are is given to these will bear great fruit. This excellent jewel is found in the Assembly (sangha) by this truth may there be salvation.

 

마음을 굳게 다져 열심히 공부하고 부처님의 계율을 따르며 욕망에서 벗어난 사람들은 점차 죽음이 없는데 들어가 위대한 경지에 이르며, 어떤 조건도 없이 평안의 즐거움을 누린다. 이 뛰어난 보배는 승단 안에 있다. 이 진리에 의해서 행복하라.

Those who have applied themselves studiously with a firm mind and free from desire to the commandments of Gotama, have otained the highest gain, having merged into immortality, and enjoying happiness after getting it for nothing. This excellent jewel is found in the Assembly by this truth may there be salvation.

 

마치 성문 맞은편에 서있는 기둥이 땅속 깊숙히 박혀있어 거세게 불어오는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는 것처럼, 정직한 사람이야 말로 고귀한 진리를 통찰할 수 있다. 이 뛰어난 보배는 승단 안에 있다. 이 진리에 의해서 행복하라.

As a post in the front of a city gate is firm in the earth and cannot be shaken by the four winds, like that I declare the righteous man to be who, having penetrated the noble truths, sees them clearly. This excellent jewel is found in the Assembly, by this truth may there be salvation.

 

심오한 지혜를 가진 사람에게 잘 배워 거룩한 진리를 아는 사람들은 아무리 커다란 잘못에 빠지는 일이 있다 할지라도, 여덟번째 생존을 받지는 않는다. 이 뛰어난 보배는 승단 안에 있다. 이 진리에 의해서 행복하라.

자신을 실재(實在)라고 보는 견해와 의혹과 형식적인 신앙, 이 세가지가 조금이라도 있다면, 그는 지견(知見)을 성취하는 동시에 그것들은 버려진다.

Those who understand the noble truths well taught by the profoundly wise, though they be greatly distracted, will not have to take the eighth birth. This execllent jewel is found in the Assembly, by this truth may there be salvation.

On his attaining the bliss of the right view three things dhammas are left behind by him : conceit and doubt and whatever he has got of virtue and holy works.

 

그는 네 가지 지옥을 떠나, 다시 여섯 가지 큰 죄를 범하지는 않는다. 이 뛰어난 보배는 승단 안에 있다. 이 진리에 의해서 행복하라.

He is released also from the four hells, and he is incapable of committing the six deadly sins. This excellent jewel is found in the Assembly, by this truth may there be salvation.

 

또 그가 몸과 말과 생각으로 사소한 나쁜 짓을 했을지라도 그는 그것을 감추지 못한다. 긍극의 경지를 본 사람은 감출 수가 없다. 이 뛰어난 보배는 승단 안에 있다. 이 진리에 의해서 행복하라.

Even if he commit a sinful deed by his body, or in word or in thought, he is incapable of concealing it for to conceal is said to be impossible for one that has seen the state of Nibbana. This excellent Jewel is found in the Assembly by this truth may there be salvation.

 

초여름의 더위가 숲속의 가지에 꽃을 피우듯이, 그와 같이 평안에 이르는 묘법(妙法)을 눈뜬 사람이 가르치셨다. 이익이 되는 최상의 일들을 위해서. 이 뛰어난 보배는 눈뜬 사람 안에 있다. 이 진리에 의해서 행복하라

As in a clump of tree with their tops in bloom in the first heat of the hot month, so buddha taught the excellent Dhamma leading to Nibbana to the greatest benefit for all. This excellent jewel is found Buddha by this truth may there be salvation.

 

뛰어난 것을 알고, 뛰어난 것을 주고, 뛰어난 것을 가져오는 위없는 이가 으뜸가는 법을 설했다.

The excellent one who knows what is excellent, who gives what is excellent, and who brings what is excellent the incomparable one taught the excellent Damma.

 

묵은 업이 사라졌고 새로운 업이 생기지 않는다. 그 마음은 미래의 삶에 집착하지 않는다. 자손의 씨앗을 없앤 현자들은 자손이 늘어나는 것을 원치 않고 등불처럼 꺼져 열반에 든다.

The old is destroyed, the new has not arisen those whose minds are disgusted with a future existenxe the wise who have destroyed their seeds whose desires do not increase, go out like this lamp.

 

여기 모인 귀신들이여, 지상의 것이건 공중의 것이건 신과 인간이 다 같이 섬기는 완성된 진리를 경외하라.

Whatever spirits have come together here, either belonging to the earth or living in the air let us worship the perfect Dhamma, revered by gods and men; may there be salvation.

 

산 것을 죽이는 일, 때리고 자르고 묶는 일, 훔치고 거짓말하는 일, 사기와 속이는 일, 그릇된 것을 배우는 일, 이것이 바로 비린 것이지 육식이 비린 것은 아니다.

Destroying living beings, killing, cutting, binding, stealing, speaking falsehood, fraud and deception-this is Amagandha, but not the eating of flesh.

 

이 세상에서 욕망을 억제하지 않고, 맛있는 것을 탐내고 부정한 생활에 어울리며, 허무론을 가지고 바르지 못한 행을 하는 사람들, 이것이 비린 것이지 육식이 비린 것은 아니다.

Those persons who in this world are unrestrained in sensual pleasures, greedy of sweet things associated with what is impure, skeptics-this is Amagandha, but not the eating of flesh.

 

감관을 지키고 감각을 억제하며 행하라. 법을 확립하고 바르고 솔직한 것을 즐기고, 집착을 떠나 모든 고통을 버린 어진이는 보고 듣는 것에 연연해 하지 않는다.

The wise man wanders about with his organs of sense guarded, and his senses conquered, standing firm in Dhamma, delighting in what is right and mild; having overcome all ties and left behind all pain, he does not cling to what is seen and heard.

 

모든 친구에게 실천이 없이 말만 앞세우는 사람은 ‘말만하고 실천하지 않는 사람’임을 어진이는 알고 있다.

Whosoever uses words to friends without effect, the wise know as one that only talks, but does not do anything.

 

은둔과 평정의 맛을 아는 이는 고뇌와 과업에서 벗어나 법향(法香)을 즐긴다.

Having tasted the sweetness of seclusion and tranquillity one becomes free from fear and free from sin, drinking in the sweetness of the Dhamma.

 

보시와 이치에 맞는 행위와 친족을 사랑하고 보호하는 것과 비난을 받지 않는 행위, 이것이 더없는 행복이다.

Giving alms, living religiously, protecting relatives, blameless deeds, this is the highest blessing.

 

번뇌가 어떤 원인으로 일어나는 것인지 아는 사람은 번뇌를 버릴 수 있다.

Those who know whence it sin arises, drive it away.

 

말다툼을 즐기고 우매한 성미로 덮여 있는 수행자는 번뇌가 지옥으로 가는 길임을 알지 못한다.

A Bhikkhu who delights in quarrelling and is shrouded in folly, does not understand that sin is the way leading to hell.

 

옛 선인들은 자신을 억제하는 고행자였소. 그들은 오욕(五欲)의 대상을 버리고 자기의 참된 의(義)를 행하였소.

The old sages were self-retrained, penitent; having abandoned the objects of the five senses, they studied their own welfare.

 

어진이는 이것을 이해해서 듣고, 이치에 따라 가르침을 실천한다. 이러한 사람을 가까이함에 게으르지 않는다면 분별할 줄 아는 이, 총명한 이가 된다.

Having heard and considered that Dhamma, the wise man practising the Dhamma that is in accordance with the highest Dhamma, becomes learned, expert, and skilful, strenuously associating with such a learned teacher.

 

아직도 사물을 이해 못하고 질투심이 있는 소인이나 어리석은 이를 가까이 섬긴다면, 이 세상에서는 이치를 알지 못하고 의심을 버리지 못한 채 죽음에 이른다.

He who serves a low teacher, a fool who has not understood the meaning, and who is envious, goes to death, not having overcome doubt, and not having understood the Dhamma.

 

고집을 버리고 겸허한 태도로 때를 맞추어 스승을 찾아가라. 사물과 진리와 자제(自制)와 청정한 행동을 마음에 두고 이를 설명하라.

Let him in due time go to the presence of his teacher, let him be humble after casing away obstinacy, let him remember and practise what is good, the Dhamma, self-restraint, and chastity.

 

게으름은 때와 같은 것, 때는 게으름 때문에 생긴다. 애써 닦음으로써, 또한 밝은 지혜로써 욕망의 화살을 뽑으라.

Indolence is defilement; by earnestness and knowledge let one pull out his arrow of passion.

 

사랑스럽고 즐거움이 되는 오욕(五欲)의 대상을 버리고, 믿음을 가지고 집을 떠나 괴로움(苦) 조차 없는 사람이 되라.

Having abandoned the objects of the five sense, the beautiful, the charming, and gone out from thy house with faith, do thou put and end to pain.

 

덕이 높은 사람과 사귀어라. 인가(人家)를 떠나 깊숙하고 고요한 곳에서 거처하여라. 그리고 음식을 절제하는 사람이 되어라.

Cultivate virtuous friends and a distant dwelling-place, secluded and quiet; be moderate in food.

 

애욕 때문에 아름답게 보이는 겉모양을 떠나서 생각하라. 육신은 부정한 것이라고 마음에 새겨두고, 마음을 하나로 집중시켜라.

Avoid signs, what is pleasant and is accompanied with passion, turn thy mind undisturbed and weel composed to what is not pleasant.

 

마음에 자취(相)를 두지 말라. 자만심을 버려라. 자만심을 없앤 너는 마음 편안한 나날을 보내리라.

Cherish what is signless, leave the inclinations for pride; then by sacrificing thy pride thou shalt wander calm.

 

사랑스럽고 즐거움이 되는 오욕의 대상을 버리고 믿음으로 집을 떠나 괴로움을 없애는 사람이 되라.

Having abandoned the objects of the five sense, the beautiful, the charming, and gone out from thy house with faith, do thou put an end ot pain.

 

선한 친구와 사귀어라. 인가를 떠나 깊숙하고 고요한 곳에서 거처하여라. 그리고 음식의 분량을 아는 사람이 되어라.

Cultivate virtuous friends and a distant dwelling-place, secluded and quiet; be moderate in food.

 

옷과 얻은 음식과 세속에 돌아가지 말라.

Robes alms, requisites, a dwelling-place,-do not thirst after these, that thou mayest not go back to the world again.

 

계율을 지키고 다섯 감관을 지켜 네 육신을 살펴라. 참으로 세속을 지겹게 생각하라.

Be subdued accoriding to the precepts, and as to the five senses, be attentive as regards thy body, and be full of disgust.

 

애욕 때문에 아름답게 보이는 생각에서 벗어나라. 육신은 부정한 것이라고 마음에 새겨두고, 마음을 가다듬어라.

Avoid signs, what is pleasant and is accom- panied with passion, turn thy mind undisturbed and well composed to what is not pleasant.

 

마음에 자취를 두지 말라. 마음에 도사린 오만을 버려라. 오만을 없앤 너는 마음 편안한 나날을 보내라.

Cherish what is signless, leave the inclination for pride; then by sacrificing thy pride thou shalt wander calm.

 

이 세상에는 여러 가지 속박이 있고 그것은 미혹으로 가는 길이고 무지와 의혹으로 인해서 있는 것이지만 완전한 사람을 만나면 그런 것은 다 사라지고 만다. 그 눈은 인간 중에서 으뜸가는 눈이기 때문이다.

Whatever ties there are in this world constituting the way to folly, combined with ignorance, forming the seat of doubt, they do not exist before Tathagata, for he is the best eye of men.

 

바람이 구름을 걷어버리듯이 이 분(부처님)이 번뇌의 티끌을 털어버리지 않는다면 온 세상은 뒤덮이어 암흑이 될 것이다. 빛을 가진 사람들도 빛을 내지 못할 것이다.

If a man does not for ever dispel the sin as the wind dispels a mass of clouds, all the world will be enveloped in darkness, not even illustrious men will shine.

 

길조의 점, 천지이변의 점, 해몽, 관상 보는 일을 완전히 버리고 길흉의 판단을 버린 수행자는 세상에서 바르게 편력할 것이다.

He whose ideas of omens, meteors, dreams and signs are destroyed such Bhikkhu who has abandoned the sinful omens, wanders rightly in the world.

 

수행자가 생존을 초월하고 이치를 깨달아 인간계와 천상의 모든 향락에 대한 탐욕을 버린다면 그는 세상에서 바르게 편력할 것이다.

Let the Bhikkhu subdue his passion for human and divine pleasure, then after conquer- ing existence and under- stand ing the Dhamma, such a one will wander rightly in the world.

 

말과 생각과 행동으로 거역하지 않고 바르게 법을 알아 열반의 경지를 구한다면 그는 세상에서 바르게 편력할 것이다.

He who is not opposed to any one in word, thought or deed, who, after having understood the Dhamma perfectly, longs ofr the state of Nibbana such a one will wander rightly in the world.

 

모든 빛, 소리, 냄새, 맛, 촉감은 사람을 도취시킨다. 이런 것에 대한 욕망을 삼가고 정해진 시각에 아침밥을 얻으러 마을에 들어가라.

Form sound taste smell and touch which intoxicate creatures having subdued the desire for all these things, let him in due time go in for his breakfast.

 

산 것을 몸소 죽여서는 안된다. 또 남을 시켜 죽여서도 안된다. 그리고 죽이는 것을 보고 묵인해도 안된다. 난폭한 짓을 두려워하는 모든 생물에 대해서 폭력을 거두어야 한다.

Let him not kill, nor cause to be killed any living being, nor let him approve of others killing, after having refrained from hurting all creatures both those that are strong and those that tremble in the world.

 

슬기로운 사람은 음행을 회피하라. 타오르는 불구덩이를 피하 듯, 만일 불음(不淫)을 닦을 수가 없더라도, 남의 아내를 범해서는 안된다.

Let the wise man avoid an unchaste life as a burning heap of coals; not being able to live a life of chastity, let him not transgress with another man's life.

 

집회의 장소에 있든 단체에 있든지 간에, 누구도 남에게 거짓말을 해서는 안된다. 또 남이 거짓말하는 것을 묵인해도 안된다. 모든 거짓된 말을 하지 말라.

Let no one speak falsely to another in the hall of justice or in the hall of the assembly, let him not cause any one to speak falsely, nor approve of those that speak falsely, let him avoid all sort of untruth.

 

출생을 묻지 말고 행위를 물으시오. 불은 온갖 섶에서 일어나는 것, 천한 집에 태어난 사람이라도 겸손한 마음으로 행동을 삼가면 고귀한 사람이 되는 것이오.

Do not ask about descent, but ask about conduct; from wood, it is true, fire is born; a firm Muni, although belonging to a law family, may become noble, when restrained by humility.

 

진실을 가지고 자제하고 모든 감관을 억제하며, 불도(佛道)의 뜻을 통달하고 청정한 행을 닦는 사람들, 그들에게 때때로 공양을 바치시오.

He who is subdued by truth, endowed with temperance, accomplished, leading a religious life on such a one in due time people should bestow oblations.

Those who after leaving sensual pleasures wander about houseless, well restrained, being like a straight shuttle, on such in due time people should bestow oblations.

 

모든 욕망을 버리고 집 없이 거닐며, 자기 분수를 잘 알아 억제하고, 베틀의 북처럼 곧은 사람들, 그들에게 때때로 공양을 바치시오.

Those whose passions are gone whose senses are well com- posed, who are liberated like the moon out of the grasp of Rahu, on such in due time people should bestow oblations.

 

탐욕을 떠나 감관을 조용히 지키고, 달이 라후의 속박에서 벗어난 달(月)과 같이 걸림이 없는 사람들, 그들에게 때때로 공양을 바치시오.

Those who wander about in the world without clinging (to anything) always thoughtful having left selfishness, on such in due time people should bestow oblations.

 

집착하는 일이 없이 항상 마음을 다스려 내것이라고 고집했던 모든 것을 버리고 세상을 거니는 사람들, 그들에게 때때로 공양을 바치시오.

모든 악을 물리치고 때묻지 않고, 마음을 잘 가라앉혀 스스로 인정하며, 윤회를 넘어서 완전한 자가 되어 걸림이 없는 사람, 그를 ‘바라문'이라 합니다.

He who, after removing all sins, is immaculate, well composed, firm-minded, perfect after crossing the Samsara, such an independent one is called a Brahmana.

 

평안에 돌아가 선과 악을 버리고 때묻지 않으며, 이 세상과 저 세상을 알고 생과 사를 초월한 사람, 이런 사람이야말로 ‘사문’입니다.

He who is calm, having left behind good and evil, free from defilement, having understood this and the other world, and conquered birth and death, such a one is called a Samana by being so.

 

온 세상에서 안팎으로 모든 죄악을 씻어버리고, 시간의 지배를 받는 신과 인간 속에 살면서도 시간에 얽매이지 않는 사람, 그를 ‘죄를 씻어낸 사람’이라 부릅니다.

Whosever, after having washed away all sins internally and externally in all the world, does not enter time (kappa) amongst gods and men who are subject to time, him they call a Nahataka(cleansed).

 

세상에 있으면서 어떠한 죄악도 짓지 않고 온갖 매듭의 얽힘을 풀어 버리고 모든 것에서 자유로운 사람 이런 사람, 이런 사람을 ‘용’이라 합니다.

He who does not commit any crime in the world who after abandoning all bonds and fetters cling to nothing being liberated such a one is called a Naga (sinless) by being so.

 

무엇을 얻은 이를 베다에 통달한 사람이라 부릅니까. 무엇에 의해 ‘알아버린 사람’이 됩니까? 어떻게 해서 힘써 노력하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까? 스승이시여, 저에게 설명해 주십시오.

What should one necessarily have obtained that people may call him vedagu? And how, may they call him, Anuvidita? and how Viriyavat? Asked about this do thou, O Bhagavat, explain it to me.

He who, having conquered all sensations , O Sabhiya, which are known to Samanas and to Brahmanas, is free from passion for all sensation, he is Vedagu after conquering all sensation.

 

사비야, 사문이나 바라문들이 알고 있는 모든 베다를 잘 분별해서 감수에 대한 탐욕을 버리고 그 감수마저 초월한 사람, 그가 ‘베다에 통달한 사람’이다.

안팎으로 병의 근원이 되는 망상의 명칭과 형태를 알아서, 온갖 병의 근원이 속박에서 벗어난 사람, 그런 사람은 바로 그 때문에 ‘달관한 사람’이라 불린다.

He who, having seen the delusion of name and form, internally and externally, the root of sickness, and is delivered from the radical bond of all sickness, such a one is called Anuvidita by being so.

 

이 세상에서 모든 죄악을 떠나 지옥의 고통을 이기고 부지런히 노력하는 사람, 힘을 다해 정진하는 현자, 그런 사람을 ‘힘써 노력하는 사람’이라 부른다.

He who is disgusted in this world with all sins, is strong after conquering the pain of hell, is strong and powerful, such a one is called Dhira by being so.

 

이 세상에서 사람의 명은 정해 있지 않아 얼마 살는지 아무도 모른다. 애처롭고 짧아 고뇌로 엉켜 있다.

Without a cause and unknown is the life of mortal in this world, troubled and brief, and combined with pain.

 

태어난 것은 죽음을 피할 길이 없다. 늙으면 죽음이 온다. 실로 생이 있는 자의 운명은 이런 것이다.

For there is not nay means by which those that have been born can avoid dying; after reaching old age there is death, of such a nature are living beings.

 

익은 과일은 빨리 떨어질 위험이 있다. 그와 같이 태어난 자는 죽지 않으면 안된다. 그들에게는 항상 죽음의 두려움이 있다.

As ripe fruits are early in danger of falling, so mortal when born are always in danger of death.

 

미망(迷妄)에 사로잡혀 자기를 해치고 있는 사람이 울고불고해서 무슨 이익이라도 생긴다면 현자도 그렇게 할 것이다.

If he who grieves gains anything, (although he is only) a fool hurting hmself, let the wise man do the same.

 

울고 슬퍼하는 것으로써는 마음의 평안을 얻을 수 없다. 다만 그에게는 더욱더 괴로움이 생기고 몸만 여윌 따름이다.

Not from weeping nor from grieving will any one obtain peace of mind; (on the contrary), hte greater his pain will be, and his body will suffer.

 

모든 속박을 끊고 겁내지 않으며, 집착을 초월해 붙잡혀 있지 않은 사람, 그를 나는 바라문이라 부른다.

Whosoever after cutting all bonds does not tremble has shaken off all ties and is liberated him, I call a Brahmana.

 

죄 없이 욕을 먹고 구타나 구속을 참고 견디며, 인내력이 있고 마음이 용맹한 사람, 그를 나는 바라문이라 부른다.

Whosoever being innocent endures reproach blows and bonds the man who is strong in his endurance and has for his army this strength him, I call a Brahmana.

 

성내지 않고 도덕을 지키며, 계율에 따라 욕심을 부리지 않고, 몸을 안정시켜 ‘최후의 몸’에 이른 사람, 그를 나는 바라문이라 부른다.

The man who is free from anger endowed with (holy) works, virtuous, without desire subdued and wearing the last body him, I call a Brahmana.

 

연꽃잎의 이슬처럼, 송곳 끝의 겨자씨처럼, 온갖 욕정에 더럽히지 않는 사람, 그를 나는 바라문이라 부른다.

The man who like water on a lotus leaf or a mustard seed on the point of a needle does not cling to sensual pleasures him, I call a Brahmana.

 

현세에서 이미 자기의 고뇌가 소멸된 것을 알고,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걸림이 없는 사람, 그를 나는 바라문이라 부른다.

The man who knows in this world the destruction of his pain, who has laid aside him burden and is liberated him, I call a Brahmana.

 

지혜 깊고 총명하며 온갖 길에 통달해 최고의 목적에 도달한 사람, 그를 나는 바라문이라 부른다.

The man who has a profound understanding who is wise who knows the true way and the wrong way who has attained the highest good him, I call a Brahmana.

 

비난받을 사람을 칭찬하고 또 칭찬해야 할 사람을 비난하는 사람, 그는 입으로 죄를 더하고 그 죄 때문에 즐거움을 누리지 못한다.

He who praises him who is to be blamed, or blames him who is to be praised, gathers up sin in his mouth, and through that he will not find any joy.

 

도박으로 재산을 잃은 죄는 오히려 사소한 불행이다. 그러나 완전한 경지에 이른 사람에게 악의를 품은 죄는 아주 무겁다.

The trifling is the sin that consists in losing riches by dice; this is a greater sin that corrupts the mind against sugatas.

 

거짓말을 하는 자는 지옥에 떨어진다. 또 했으면서 안했다고 하는 자도 마찬가지다. 둘 다 똑같이 행동이 비열한 사람들이라, 죽은 후에는 같은 지옥에 떨어진다.

He who speaks falsely goes to hell, or he who having done something says, “I have not done it both these after death become equal in another world they are both men guilty of a mean deed.

 

남을 해칠 마음 없이 깨끗하고 더럽지 않은 사람을 미워하는 자에게는 반드시 그러한 악이 돌아온다. 바람을 거슬러서 먼지를 날리는 것처럼.

Thou spreadest pollution to the misfortune of others, thou revilest the just, committing sin yourself and having done many evil deeds thou wilt go to the pool of hell for a long time.

 

그 어떤 업(業)도 멸하지 않는다. 그것은 반드시 되돌아와 그 임자가 그것을 받는다. 어리석은 자는 죄를 짓고 내세에서 그 괴로운 과보를 받는다.

For one’s deeds are not lost, they will surely come back to you, their master will meet with them, the fool who commits sin will feel the pain in himself in the other world.

 

욕망을 이루고자 하는 사람이 생각대로 잘 되면, 그는 인간이 갖고자 하는 것을 얻었기 때문에 기뻐한다.

If he who desires sensual pleasures is successful, he certainly becomes glad-minded, having obtained what a mortal wishes for.

 

욕망을 이루고자 탐욕이 생긴 사람이 만일 욕망을 이루지 못하게 되면, 그는 화살에 맞은 사람처럼 괴로워하고 번민한다.

But if those sensual pleasures fail the person who desires and wishes (for them), he will suffer pierced by the arrow of pain.

 

뱀의 머리를 밟지 않으려고 조심하는 것처럼, 모든 욕망을 피하는 사람은 바른 생각을 하고, 이 세상의 애착을 넘어선다.

He who avoids sensual pleasures as he would avoid treading upon the head of a snake with his foot, such a one, being thoughtful, will conquer this desire.

 

농토·집터·황금·마소(馬牛)·노비·부녀자·친척 그 밖에 여러 가지를 탐내는 사람이 있다면,

He who covets extensively such pleasures as these, fields, goods or gold, cows and horses, servants, women, relations,

 

죄악이 그를 이기고 위험이 그를 뭉갠다. 또 괴로움이 그를 따른다. 마치 파손된 배에 물이 새어들듯이.

Sins will overpower him, dangers will crush him, and pain will follow him as water pours into a broken ship.

 

그래서 사람은 항상 바른 생각을 지키고 모든 욕망을 회피해야 한다. 배에 스며든 물을 퍼내듯이. 그와 같은 욕망을 버리고 강을 건너 피안에 도달한 사람이 되라.

Therefore let one always be thoughtful, and avoid pleasures; having abandoned them, let him cross the stream, after baling out the ship, and go to the other shore.

 

동굴 속에 머물러 집착하고, 온갖 번뇌에 사로잡혀 미망 속에 빠져 있는 사람, 이러한 사람은 집착에서 벗어날 수 없다. 참으로 이 세상 욕망을 버리기란 어렵기 때문이다.

A man that lives adhering to the cave, who is covered with much sin and sunk into delusion, such a one is far from seclusion for the sensual pleasures in the world are not easy to abandon.

 

욕구에 따라 생존의 쾌락에 붙잡힌 사람들은 해탈하기 어렵다. 남이 해탈을 시켜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들은 미래와 과거를 생각하면서 이러한 현재의 욕망, 또는 과거의 욕망에 탐착한다.

Those whose wishes are their motives, those who are linked to the pleasures of the world, they are difficult to liberated, for they cannot be liberated by others, looking for what is before coveting these and former sensual pleasures.

 

무엇인가를 내 것이라고 집착해 동요하고 있는 사람을 보라. 그들의 모습은 메말라, 물이 적은 개울에서 허덕이는 물고기와 같다. 이 꼴을 보고 내 것이라는 생각을 말아야 한다. 여러 가지 생존에 대해 착을 버리고.

Look upon those men trembling in selfishness, like fish in a stream nearly dried up, with little water; seeing this, let one wander about unselfish, without forming any attachment to existences.

 

현자는 양극단에 대한 욕망을 억제하고 감관과 대상의 접촉을 잘 알아서 탐하지 않는다. 자기 자신조차 비난할 나쁜 짓을 하지 않고, 보고 듣는 일에 팔리지 않는다.

Having subdued his wish for both ends, having fully understood touch without being greedy, not doing what he has himself blamed, the wise does not cling to what is seen and heard

 

출처 : 호암산방
글쓴이 : 관문 원글보기
메모 :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