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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ver 지식人

힌두교의 참나는 선불교의 참나와 어떻게 다른가?

 

 

힌두교의 참나는 선불교의 참나와 어떻게 다른가?

snimjoa 2009.06.24 06:52

답변 4 NEW | 조회 85

바라문, 힌두교도의 말이다

 

아! 참나는 물들지 않았고, 근본물질을 초월하여 고요하다. 그렇게 오랫동안 참나는 환영으로 현혹되었다.(2.1)

이 모든 세계는 참나의 것이고, 참으로 그 밖에는 아무것도 없다.(2.2)

참나로부터 나온 세계는 참나와 분리되지않는다.(2.4)

세계의 본질은 참나이다.(2.5)

참나에서 창조된 우주에는 완전한 참나가 들어있다(2.6)

참나는 오지도 않고 어디로 가지도 않는 영원히 이 세계에 가득찬 그 하나이다.(2.12)

순수한 존재, 제한되지 않은 것, 말할수 없고 생각할 수 없는 것, 진실하지 않은 이 세계에서 진정한 본질의 빛, 이것을 브라흐만, 혹은 아트만 참나라고 한다.(3.7)

-[아슈타바카라 기타]와 [마하니르바나 탄트라] 중에서

 

 

선불교의 참나와 어떻게 다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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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힌두교의 참나는 선불교의 참나와 어떻게 다른가?

duksoe 2009.06.24 07:57

힌두교에서 처럼 참나를 이야기 하면 참나와 상반되는 가짜나라는 개념이 성립됩니다.

참이다 거짓이다 하는 것은 바로 상대적인 개념입니다.

 

참나라는 것에 집착을 하면 거짓나라는 것을 버리려고 애를 쓰게 됩니다. 

 

그래서 만일 자기가 아직 깨닫지 못하고 참나를 체험하지 못했다 생각하면 깨닫지 못한 지금의 자기는 거짓이기 때문에 현실의 자신을 거부하고 부정하고 떨쳐버리려고 애를 쓰게 됩니다.  하지만 이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짓입니다.

 

선불교에서는 참나라느니 거짓나라느니 하는 분별심을 떨쳐서 그런 분별망상의 경계로 부터 자유로와질 것을 가르칩니다.  결국 우주만물의 실상은 참나건 거짓나건 간에 "나"라고 집착할 것은 하나도 없다고 하는 무아를 가르치는 것입니다.  - 제법무아(諸法無我) 

 

아울러 참나가 있다고 하면 그것은 무슨 영원불멸하는 이른바 기독교의 여호와 같은 존재겠지요.  하지만 불교에서는 그런 영원불멸한 것은 없다, 우주만물은 무상해서 항상 변하는 것이라고 가르칩니다.  -제행무상(諸行無常) 

 

무상이란 허무하다란 말이 아닙니다. 항상 변화무쌍해서 항상그런 모습으로 영원불멸하는 것은 없다는 뜻입니다.

 

힌두교처럼 굳이 참나니 영원불멸의 진리니 한는 개념으로 선불교를 굳이 설명하자면

 

나라고 집착할 것은 하나도 없다고 하는 "무아"가 참나요.

세상에 영원하고 항상 똑같은 형태로 존재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어서 항상 변한다는 그 사실, 그 "무상"이라는 사실이 바로 영원불멸의 진리겠지요.

 

"지극한 진리는 결코 어렯지 않아서 단지 참이니 거짓이니 하면서 간택하는 것을 꺼릴 뿐이다.

무엇을 놓고 좋아하고 싫어하는 그 분별심만 내지 않으면 진리는 통연히 드러나리라."--(선불교의 주요 어록 중의 하나인 신심명의 첫구절을 나름 옮겨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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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견 7

snimjoa

글쎄요. 선불교에서도 참나와 다른 가아를 말하며 참나만이 불생불멸이라고 합니다. 다른 것들은 생멸한다고 하고요. 이런 것은 어찌 된것일까요?

2009-06-24 08:35:46신고
saraha2

생멸하고 변화하는 것은 다 거짓과 환영이며 불생불멸하는 것만이 참이라고 했습니다. 그 이름이 참나이든 가아든 무아든 아무런 관련없죠.

2009-06-24 11:07:20신고
snimjoa

사라님 힌두교의 참나가 바로 불생불멸이라고 합니다. 그 이름이 참나이든 무아이든 아무런 관련이 없으면 어째서 석가모니부처님이 바라문의 참나를 비판하고 무아를 설햇을까요? 부처님당시의 이야기에 근거하여 생각해보시지요.. _()_

2009-06-24 14:30:38신고
snimjoa

그리고 사라님 초기불교는 둘째치고 생멸하는 것이 없음을 설하는 것이 바로 반야중관의 공성입니다. 제법공상불생불멸이라고 반야심경에서 말하지 않습니까? 불생불멸하는 것만 참이라고 하면 반야심경 반야중관의 공성은 일체법이 참이란 것입니다. 어디에도 참나만이 불생불멸이라는 것은 없습니다. 이것은 어쩝니까?

2009-06-24 14:32:48신고
duksoe

무아의 무자에 걸려서 말잔치를 하시는 군요...일체법이 참이라...눈위에 서리를 뿌리시고 계십니다. 말잔치가 재미있기는 합니다만...

2009-06-25 09:59:12신고
snimjoa

duksoe님 일체법이 참이라 눈위에 서리를 뿌리시고 계시네요 하셨지만 ... 바로 그 일체법이 불생불멸이라는 것을 그대로 아는 것이 무생법인이라고 하는 것이 아닙니까? 대승에서 무생법인이 말잔치인가요? 무생법인이 바로 공성의 핵심인데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2009-06-25 18:55:02신고
duksoe

일체법이 참이라 했으면 남방불교도 참이요 선불교도 참이겠죠 나아가 예수교도 참이요 힌두교도 참이겠죠 지장보살도 참이고 시바신도 참이고 관세음보살도 참입니다? 근데 무슨 맺힌 한이 그리도 많고 무슨 할 말이 그리도 많으신지.... 무생법인이 말잔치가 아니거늘 님이 말잔치로 만들고 있지 않습니까?

2009-06-26 12:15:31신고
1

re: 힌두교의 참나는 선불교의 참나와 어떻게 다른가?

tira123 2009.06.24 11:06

힌두교에서는 본질을 아트만이라고 부르며 인간이 수행을 하여 나아갈수있는 궁극의 경지로 봅니다

어떤 절대적인 뭔가가 있다는거죠.  신이든  성인이든 조물주든..

 

선가에서는  뭔가가 있는 자체를 부정합니다.

말로는 불성이니 성품이니 해도 이것은 뭔가 표현하기위한 방편일뿐 원래 있는것이 아니라는겁니다

 

하지만 중요한건 위에서 말한 두가지가 다 논리에 입각해서 말하고있다는 겁니다.

제가 위의 글을 썼고 누군가가  "그런거구나" 하며 고개를 끄덕인다면 이분은 사량분별심에 빠져든건지도

모릅니다

 

그냥 이순간 이대로 있을수 있는거 이거 말고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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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힌두교의 참나는 선불교의 참나와 어떻게 다른가?

bongkang8 2009.06.25 15:29

삼보에 귀의 하옵고

 

_()_

 

이렇게 물어 보시면 더 간단합니다

 

예수님에 사랑은 불교와 어떻게 다르냐가? 더 쉬울것입니다

 

종교라는게 비슷한 부분도 있고 다른것도 있습니다

 

또 선불교가 아니라 힌두교 전신(여기서는 물어보는 참나를 님이 잘못 이해 하신것 같아요)을 알아야 하고

 

차라리 상좌부와 비교하는게 더 어울립니다

 

왜냐하면 힌두교 탄생 시절을 알어보면 답이 나옵니다

(찿아 보세요 하도 아는체를 하니 제가 말해도 소용 없을듯~~)

 

그럼 결론적으로 말씀 드리자면 "불교에서 "참나"라는것은 존재 하지도 않습니다

참나라는것은 부처님께서 출생하여 성불하는 과정을 스스로 증명한 것중 진정한 자아를 찿아야 함을 그렇게 언어적으로 쓸뿐입니다

 

그러면 힌두교 참나?? 선불교 참나??

뭐라고 해야할지 난감 하네요

 

과정을 이야기하죠

 

아차피 힌두교라는 종교가 바라문교에 바탕이 있지만 초기불교에 많은 영향을 받은겁니다

그래서 바라문교에 신에 절대성과 기원전 2~3세기경 어느 사상이 대두됩니다

 

그 사상은 길어서 이야기 하기는 그렇고 기독교 유일신사상,예수이후 기독교사상과 비슷합니다

 

그러니 힌두교와 선불교를 비교하는것 보다

 

초기불교와 힌두교를 비교하거나   기독교(천주교),선불교를 비교하는게 더 빠르다는 겁니다

 

천주교에서 비교한게 잇으니 찿아 보세요

 

한가지 알려 드릴것은 "참나"라는 글귀 하나로 무얼 비교한다는것은 태평양에서 한강물 찿기입니다

 

이점 유념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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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견 22

snimjoa

참나라는 글귀하나가 아니라 선사들이 말하는 참나에 대한 설법이 힌두교설법과 유사하다는 것입니다. 위에 여러번 올린 힌두교의 참나이론과 선사들의 설법을 비교해보세요. 유사하지 않습니까? 오히려 부처님의 무아설법과는 딴판이고요. 이게 뭘까요?

2009-06-25 15:36:22신고
snimjoa

참나는 불생불멸이라고 해요. 참나만 불생불멸이라는 것이지요. 반야심경은 제법공상 불생불멸입니다. 일체법이 불생불멸이란 것이지요. 이런 차이는 뭘까요?

2009-06-25 15:38:02신고
bongkang8

제말을 제대로 이해 해 보세요 님에 반야심경 참나? 불생불멸도 황당할뿐만 아니라 초기불교에 부처님 가르침을 알면 힌두교 정신이 나옵니다 어차피 불교에 영향하에 힌두교가 나온거 아닌가요? 즉 다시 말해서 힌두교와 초기불교는 서로 교류를 햇지만 힌두교와선불교는 지리적으로 문화적으로 교류가 없다 이겁니다

2009-06-25 16:22:13신고
bongkang8

어차피 6조해능부터 선불교라는 개념이 생겼으니 말이죠 불립문자...

2009-06-25 16:23:31신고
bongkang8

그런식으로 따지자면 바라문교,자이나교를 불교를 비교하는게 낫죠 바로 이겁니다 선불교 그밖에 종파는 평등입니다,절대적인 신이 없다는 것이죠 그 2~3세기 힌두리즘이 현대종교에 큰 영향을 준건 사실입니다 특히 유대교말고 서양종교에요 그래서 그렇게 비교말고 차라리 한국에 익숙한 기독교로 비교하는게 낫다고 한겁니다

2009-06-25 16:27:51신고
snimjoa

봉강님 부처님의 핵심교리는 연기무아입니다. 바라문힌두교는 그렇지 않아요. 선불교에서 말하는 참나는 이 연기무아가 아니라 힌두교바라문의 참나 아트만 진아 대아 우주아와 더 가까워요. 이 부처님의 핵심교리인 연기무아를 말하는것입니다. .... 예를들면 힌두교와 불교의 차이는 무엇인가 말하면 여러가지가 있지만 핵심은 힌두교는 참나를 말하고 불교는 무아를 말하는 것입니다. 선불교가 참나를 말하며 힌두교요가지도자의 책이나 뒤적이며 부처님 무아연기를 벗어나고 있다면 그것은 괴상한 일일것입니다.

2009-06-25 18:58:52신고
bongkang8

내가 왠만하면 다시는 상대 안할려고 합니다만 반야심경에서 참나 라고 정의하면 공도 아니고 참나도 아닙니다 언어도단입니다 그걸 따지면 님은 부처님을 능가하는겁니다 언어도단을 아시는지요? 이 글은 대승불교 대가인 님이 찾아 보세요 "* *야"..중략_()_중생을 멸도하되 실로 중생은 멸도하는이가 없나니 어찌한 연고인가? 보살은 멸도하되 멸도함이 없나니라" 이게 공이고 상이라면 과연 참나가 뭔가요? 부처님 같으면 이렇게 이야기 했겟지요 "참나란 참나가 없으매 그게 참나니라" 이게 공이고 진정한 대승입니다 진리라고 이야기를 하는순간 진리에 벗어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참나가 어디 잇어요? 다시 이야기 하자면 예수 안믿으면 다 지옥갑니다 그런사람은 진정한 예수를 벗어난것이요 부처님 원음 이야기하는 순간 부처님 원음하고는 관계없다는 논리입니다

2009-06-25 20:56:21신고
bongkang8

제가 진정코 진정코 부탁 하건데 이렇게 해 보세요 각묵스님 찿아가서서 진정으로 좀 배워 보세요.. 정말이지 스님좋아님이 여기서 하는행동말 법담이 아닙니다 악담입니다 다만 그마나 여기서 스님좋아님 답변 해준다면은 아마 그나마 저보다 자비심이 많아서일겁니다

bongkang8

정말 부탁합니다 만나지 말아야할 인연입니다 부디 부처님 법 많이 받으소서 마하 석가모니불)_()_

2009-06-25 21:03:16신고
snimjoa

봉강님.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여래장 참나 이론이 원래 부처님의 설법이 아니라 후대의 비불설창작대승경전을 쓴 대승논사들이 힌두의 이론을 습합하여 불교에 가지고 들어온 것이라는 것은 여러가지로 말해지고 있습니다. 여래장을 불생불멸 참나를 불생불멸로 보는 것은 부처님의 무아연기와 달라도 너무 다른 것이지요. 여래장과 참나가 불설이라고만 생각하면 오해가 일어납니다. 대승논사들이 수입한 힌두이론이라는 관점에서 한 번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2009-06-27 11:02:53신고
snimjoa

그리고 님께서는 각묵스님을 자꾸 말씀하시는데, 진정코 각묵스님의 글을 읽어보시길 바랍니다. 님이 제게 읽어보라고 하던 금강경역해에 바로 참나 진아 여래장에 대한 스님의 비판이 담겨져 있지 않습니까? 초기불교가 아니라 금강경에 입각하여 보더라도 여래장 참나는 잘못이란 것입니다. 아래에 각묵스님의 글을 몇가지 발췌하여 인용해보겠습니다. 참고하시면 도움이 되실것입니다.

2009-06-27 11:06:01신고
snimjoa

각무스님말씀1.역자는 무아요, 무생을 설하는 법을 인욕으로써 받아들인다는 데는 음미해야 할 뜻이 있다고 본다. 불교가 무아를 근본 입장으로 표방하자 인도의 종교와 사상계에서는 지금까지도 이 무아설을 가장 천박한 수준으로 비난하고 있다. 아무 것도 없는 데서 모든 것이 생겨났다니 이것은 논리적으로도 모순이요, 허무주의의 가르침이라고 지금까지도 그렇게 설명하면서 불교를 아무 것도 아닌 가르침으로 비하하려 하고 있다.

2009-06-27 11:13:29신고
snimjoa

2. 지금까지도 그러하지만 인도 지성들이 불교가 생긴 후 지금까지도 받아들이기를 강하게 거부할 뿐 아니라 없애려고 무진 애를 쓰고 있는 게 이 무아의 가르침이다. 자아(아뜨만=브라흐만)가 있다고 그들 나름의 논리로 주장하고 믿고 헌신함을 모든 생활의 근본으로 여기는 인도인들 입장에서 무아의 가르침은 청천벽력과도 같은 말이다. 어떤 우빠니샤드를 읽어보아도 사실 그것은 저 아뜨만과 브라흐만의 예찬에 지나지 않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 것이다. 발제자는 인도에 있으면서 초기 10가지 우빠니샤드와 브라흐마수뜨라, 냐야수뜨라, 요가수뜨라, 상캬까리까 등등을 많이 읽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면서 발제자가 신물나도록 느낀 것은 자아에 대한 엄청난 집착을 빼버리고 나면 인도사상에 남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러다 보니 무아의 가르침을 그들은 도저히 용납할 수가 없는 것이다

2009-06-27 11:14:26신고
snimjoa

3.아니 그들이 여러 중요 논서에서 그렇게 자아를 강조하고 찬양하고 경배해 마지않는 것은 아마 이런 불교의 입장을 너무나 의식해서인지도 모른다. 그러다 보니 그들은 두 귀를 틀어막고 이 무아의 가르침이 잘못되었다고 온갖 수단을 다 동원하여 증명하여 보이려하고 으르고 달래고 협박하고 해 내려온 게 불교와 천 오백여 년을 지속해온 사상 논쟁이었을 것이다. 오죽했으면 가장 논리적이어야 할 후대 인명(논리)학 논서에서조차도 “불교 논사는 ‘무아다’라고 외치고 절벽에서 떨어지자 즉사해버렸고 그들 냐야(인명) 논사는 ‘자아는 있다’라고 외치고 절벽에서 뛰어내렸지만 살았다. 그래서 자아는 있고 위대하다”고 마지막으로 결론짓고 있을까!!

2009-06-27 11:14:45신고
snimjoa

4. 거듭 말하지만 금강경은 중생이니, 무상정등각이니, 보살이니, 불국토 건설이니 하는 불교 특히 대승불교의 가장 중요한 개념들을 거론하고 이런 것들이 고정불변의 진리로 정해져 있다는 생각을 거듭해서 척파하고 있다. 그리고 여기서 제법무아의 불교의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가르침을 제기하면서 여기에 확신을 가져서야 그를 일러 보살 마하살이라 한다고 통쾌하게 결론짓고 있다.

2009-06-27 11:15:52신고
snimjoa

5.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어떠한가? 모두 우빠니샤드의 아류적인 발상으로 참선을 하고 불교를 설하고 있지는 않은가. 마음, 마음 하지만 그 마음을 아뜨만적인 견해로 받아들여 가르치고 있지는 않은가. 우빠니샤드의 아류적인 발상으로 생사를 초월한 영원한 생명자리인 자아(ātman)가 있나니 그것을 찾기 위해서 생명을 걸자고 힘으로 몰아붙이고 있지 않은가? 참으로 이러한 힘의 논리를 앞세워, 화두를 힘으로 밀어붙여 타파해야 할 그 무엇으로 간주하여서 온 몸과 마음을 몰아세워가고 있지는 않은가? 힘으로 밀어붙여 화두가 핵폭발하는 것처럼 어느 순간에 펑하고 터지면 그 즉시에 도인이 되고 부처가 되어 만중생의 존경과 귀의와 찬탄과 예경을 받게 되는 것으로 돈오돈수를 생각하고 있지나 않은가?

snimjoa

6.발자제는 거듭 주장하고 싶다. 부처님께서는 와서보라(ehipassika)고 하셨다. 불성, 자성청정심, 진여, 불성은 와서 보라할 것이 아니다. 와서 믿어라고 할 뿐이다. 너에게 불성이 있다는 믿음일 뿐이다. 그래서 평천창 교수는 범부에게 있어서 여래장은 보이지 않기 때문에 그 존재를 믿고 수행을 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러므로 불성은 관념(산냐)놀음으로 치딜릴 수밖에 없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2009-06-27 11:17:09신고
snimjoa

7.그래서 C님의 글에서도 진아와 무아는 표현이 다를 뿐이다라고 주장하고 있으며 한국에서 힌두계통의 책을 접하고 그들의 이론을 받아들이는 분들은 모두 이렇게 말하고 있고 나는 누구인가와 이뭐꼬를 같은 것으로 보는 수행자들도 한결같이 이렇게 주장하고 있다. 그리고 성이든 주인공이든 깨달음의 상태든 언어발생이전이든 그 무엇을 세우면 힌두교적인 신비주의 수행법인 초월명상, 라즈니쉬 명상, 아봐타 명상등 온갖 비불교적인 명상법과 불교 수행법을 구분할 근거를 발견하기가 아주 어려워진다. 이건 중요한 판단 근거이다. 그래서 일부 스님들조차 이런 신비주의 수행법을 불교와 같은 것으로 받아들이고 추종하고 있는 실정이다. 다음에 논할 기회가 있기를 바란다.

2009-06-27 11:20:09신고
snimjoa

8.마지막으로 발제자는 불교 용어로서 연기와 무아만을 사용할 것을 주장한다. (공이라는 표현까지는 괜찮다고 본다.) 부처님께서는 이 두 단어만을 사용하셨다. 이 두 단어만으로도 부처님의 메시지를 생생하게 담아낼 수 있다.

2009-06-27 11:20:37신고
snimjoa

9.이처럼 불성, 여래장은 그 시대의 사조와 교감하기 위해서 만들어낸 술어들이다. 이제 시대가 바뀌었다. 지금시대에는 불성, 여래장이란 용어가 오히려 부처님의 근본 메시지를 왜곡시키는 전위대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 발제자의 견해이다. 발제자의 말을 무식한 사람의 과격한 언어구사라고 폄하하기 이전에 발제자의 고언을 조금은 귀담아 들어주시기를 간곡히 바란다. 그리고 우주의 본체, 삶의 본질을 드러내니 성의 가르침이 더 수승한 가르침이라는 철기시대적이고 전제군주시대적인 발상에서 벗어나자고 말하고 싶다. 세상은 바뀌었다. 철이 상징하는 전제군주시대에서 신소재가 상징하는 민주시대, 개인의 시대, 자기개발의 시대가 되었다. 바로 내안에서 벌어지는 현상을 먼저 관찰하고 그것이 무상고무아인줄 먼저알자. 부처님께서는 상응부에서 ꡒ인식과 알음알이를 가진 이 한 길 몸뚱이에서 세상의 일어남과 사라짐을 본다ꡓ고 하시지 않았는가? 현실에 사무칠때 본질의 문제는 더 생생하게 다가올 것이다

2009-06-27 11:21:00신고
snimjoa

위에서 몇가지 각묵스님의 글을 인용하였는데요. 위글들은 거의가 각묵스님이 금강경역해를 출간하시고 .. 이후 실상사에서 사부대중이 금강경결제하였을때 하신 말씀들입니다. ... 이후에 각묵스님의 입장은 제가 살펴보건데 초기불전연구원 문답메뉴를 보시면 도움이 되실것같아요.

2009-06-27 11:23:07신고
snimjoa

봉강님... 살펴보시고 해주실 말씀이 있으시면 편하게 말씀해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_()_

2009-06-27 11:24:30신고
 

 

re: 힌두교의 참나는 선불교의 참나와 어떻게 다른가?

wxpzthvd 2009.07.01 10:58

석가모니의 무아는 이미 죽었다

 

석가모니는 영혼을 부정했지만

 

영혼은 석가모니가 모르는 신비로움으로

 

존재한다

   

인간이 우주에 가는 이 21세기에 석가모니의 말은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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