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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ver 지식人

초기불교와 대승불교의 차이

 

봉강님 감사합니다.

어려운 시간을 내주셔서 긴 글을 써주시니 감사합니다.

맞춤법 문맥등이 좀 어긋난 경우가 있을 것이라고 하셨지만 그러한 것이 무에 대수겠습니까?

서로 바른 법에 대한 논의가 담겨있으면 그것으로 될뿐이지요.

봉강님의 글은 훌륭합니다.

공부도 많이 하셨고, 충분히 설득력이 있는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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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강님 우리시대 부처님의 원음을 공부하신 스님들과 불제자들이

응애하는 순간부터 아함경을 공부하고 부처님의 원음이 무엇인지 알고 신행생활을 했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거해스님 각묵스님 대림스님 재연스님 일묵스님 무념스님 서림스님 성열스님 호진스님등등 많은 초기불교를 전하고 계시는 스님들은 모두 조계종단 출신의 스님들로 대승과 선불교의 교학과 수행으로 오랜세월을 닦아오시던 분들이었습니다.

특히 선방에서 화두수행을 하시던 스님들이 많지요. 우리나라가 대승불교에 기반을 두고 있지만 주류가 선불교이다보니 당연하다고 하겠습니다.

또 스님들만 그러하겠습니까?

김열권법사님 묘원법사님 정원법사님 등등 많은 재가법사님들도 오랫동안 대승과 선불교의 영향을 받다가 부처님의 원음을 전하시는 분들입니다.

또 일반 재가불제자들은 어떻습니까?

전재성박사님 김현수판사님 일행님 단현님 실론섬님 eightfold님 donrs219님 신시다물님 호잔님 진흙속의연꽃님 kassaka님 명수님 진달래님 등등 인터넷에서 초기불교 부처님원음을 전하려고 노력하시는 재가불제자들도 거의 모두가 대승불교카페를 운영했거나 수행을 했거나 그러시다가 이제는 부처님원음을 전하는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저의 변화는 누구보다도 여기 지식인의 오래된 스님들이나 불제자들이 잘 압니다. jabong스님 pky스님 wau스님 th님 yidreug님 namieelf3d님 whoami님 이런 많은 네이버불교지식인의 스님들과 재가불제자님들이 3년전 저의 대승불교에 대한 답변을 해주셨고, 이후에 근본불교 초기불교를 알고 혼란스러워하던 나에게 답변을 해주셨으며, 비불설창작대승경전과 창작불보살을 말하는 지금에도 답변을 해주십니다.

그러므로 봉강님

저뿐만이 아니고

우리시대의 불제자들과 스님들이

오랫동안 신행해왔던 대승불교와 선불교에 의문을 표시하고

부처님의 원음을 공부하고

부처님의 원음을 전법하는 길로 들어서게 된 것들이

어느 한사람 어느 한 스님의 일이 아니라

거세찬 흐름으로 변화하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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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강님 이번에 부처님의 우다나를 한글로 역경하여 출간하신

전재성박사님의 신문 인터뷰를 보면은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20년 전 팔리어 원전 번역을 시작했을 때만 해도 국내 불교계에서는 남방 소승불교의 경전을 공부하는 것을 ‘외도’처럼 여기는 시선이 많았습니다. ....89년 귀국해 번역을 시작했는데, 당시만 해도 국내 불교계에서는 남방 소승불교의 경전을 공부하는 것을 이교도 취급할 때라 어려움이 많았죠.” 후원이 끊겨 번역한 책을 7년간이나 출간 못했다는 그는 99년 도법 스님(실상사 주지)을 만나 다시 작업에 매진해 왔다.


 

전재성박사님이 빠알리니까야를 역경하려하시자 종단차원의 지원은 고사하고, 소승불교의 경전을 번역한다고 외도시하는 시선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전재성박사님뿐이겠습니까? 각묵스님과 대림스님의 역경 대작불사도 조계종차원의 지원을 받지 못하고 시작한 것입니다.

 

이렇게 스님들과 유명한 재가불제자들만 고초를 겪는 것이 아니라, 초기불교를 접하고 전법하는 많은 불제자들에게도 많은 오해의 시선들이 있습니다. 그 뿌리는 물론 소승이라는 것입니다.

 

봉강님.

 

우리불교 1600년동안 소승불교와 소승경전에 대한 인식은 어떻습니까?

저열하고, 하근기이고, 이기적이고, 유치원법문이고, 덜떨어진 것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우리가 아는 많은 불교의 가르침을 분류한 기준에서

소승불교는 거의 가장 낮으며, 어떤 곳에선 외도와 거의 동급으로 묶어서 비판하고 있습니다.

 

봉강님.

 

이런 사정을 뻔히 알면서도 왜 인천의 스승들이신 스님들과, 또는 일반재가불제자들이

우리불교에서 멸시받는 소승경전인 아함경을 말하고 소승불교라는 아라한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소승수행법이라는 위빠사나를 이야기할까요?

 

이분들이 원래 소승이었기 때문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대부분 대승불교와 선불교를 수행하다가 부처님원음을 공부하고 전법하시는 분들이지요.

 

이분들이 저열하고 하근기이기 때문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특히 초기불교를 전법하는 스님들의 경우는 조계종단안에서도 훌륭하신 스님들이었습니다.

 

이분들이 이기적이기 때문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저를 말하는 것이 부끄럽지만 저또한 비난받기보다는 칭찬받는 불제자였으며,

초기불교를 전하는 스님들이나 재가불제자들이 예전에도 이타적이었고, 지금도 신행의 모범이 될정도로 이타적인 분들이 많습니다.

 

봉강님.

 

그런데 왜 이러한 스님들과 재가불제자들이 일부러 우리나라불교에서 오해시되고 멸시받는 소승불교의 굴레속으로 스스로 걸어들어가서 그것을 전법하는 길로 들어섰을까요? 자기자신은 저열하고 근기가낮으며 지혜가낮고 이기적이고 유치원법문이 수준에 딱맞다는 것을 스스로 광고하기 위해서 그 족쇄와 굴레를 스스로 목에 걸었을까요?

 

아닙니다.

 

봉강님.

 

봉강님이 오늘 올려주신 위 글의 견해는 단지 봉강님만의 견해가 아니었고, 3년전 아니 수십년동안 저의 견해였습니다. 제가 스님들과 법문집 책들에서 배운 내용이고, 이해했던 내용이었으며, 그러한 것을 전법하였던 내용입니다. 저뿐만이겠습니까? 대부분의 초기불교를 전법하는 스님들과 불제자들이 거의 모두 봉강님이 위에 ㎢?것의 내용을 공부하였으며, 들어왔으며, 바른 견해라고 수지하였으며, 그렇게 알고왔습니다.

 

봉강님 하다못해 저는 다른 분들보다 늦되었고, 늦깍이입니다. 다른 분들이 쓰신 것을 보면 단숨에 초기불교를 심장으로 받아들인 분들이 많으며, 아주 짧은 혼란을 경험하고 빠르게 부처님원음을 받아들인 분들도 많습니다. 그러나 저는 어린시절 부모님 손에 이끌려 불문에 들고, 또 이후에 근본불교 초기불교 부처님원음 위빠사나 아함경에 대하여 무수히 많은 말을 여기에서 듣고, 의문과 의혹이 생겼지만 단숨에 빠르게 부처님원음을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저의 이런 것은 위에서 언급한 이곳 불교지식인의 훌륭한 스님들이나 불제자들이 더욱 잘압니다. 저는 부처님원음이란 소리를 들었을때 모두가 부처님원음인데 무슨 부처님원음이 따로있단 말인가? 왠 생뚱맞은 말일까? 라는 생각을 할 정도였으며, 초기불교와 아함경을 말하는 분들이 법을 말하면 곧 이것이 한결같이 소승과 대승의 논쟁으로 번져가는 것을 보고, 피로감을 느꼈고, 대승과 소승이 없는 법화경식 일불승이 참으로 바른길이라고 오랫동안 생각하였습니다. 혹 이렇게 변한 제자신이 궁금하시다면 저의 지식인정보를 일별하시면 저의 말이 거짓말이 아님을 아실것입니다.

 

이렇게 봉강님, 봉강님이 위에서 말씀하신 견해는 제가 오랫동안 공부하고 수지하였던 견해이고, 큰 의문이 없었습니다. 믿음있는 신자였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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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강님

 

제가 초기불교 부처님원음을 공부하는데 늦깍이였던 이유의 가장 큰 것은,

 

앞에서 말한 법화경의 일불승개념과

성철스님의 대승경전은 부처님직설은 아니지만, 삼법인 중도가 있으므로 불설이라고 볼수도 있다라는

두가지가 컸습니다.

 

사실 이러한 입장은 저만 가지는 입장이 아니고, 많은 불제자들, 또 봉강님도 그런 입장을 은연중에 가지고 있지 않으십니까?

 

그런데 인연이 차올랐던지, 어느날 애독하던 법화경을 읽다가 석가모니부처님이 문수보살에게 법화경을 부촉하는 것에 이르러, 갑자기 성철스님의 "대승경전은 부처님 직설이 아니지만"이라는 말씀이 섬광처럼 벼락처럼 저를 스치고 지나갔습니다.

 

성철스님의 말씀은 무슨의미일까?

여기 법화경에서 석가모니부처님은 문수에게 법을 부촉하고 있는데 이것이 직설이 아니라면

이러한 것들이 설정이란 말일까?

저는 참으로 멍청했던 것입니다.

더이상 저는 더 생각을 할수 없었지요.

불경하다고 생각될만한 생각들이 연이어 일어날려고 햇었으니까요.

 

그러다가 한참후에 모임때문에 부파불교의 논서를 뒤적이다가

용수의 대지도론도 참조를 하게되었습니다.

용수의 대지도론을 흥미롭고 감탄하며 읽다가

아주 충격적이고 놀라운 구절을 읽게 되었습니다.

 

대지도론은 부처님반열반 수백년이 지난후에 쓰여진 유명한 대승논서로서

용수의 저작이라고 이름이 높은 논서인데

용수는 거기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대의 말은 잘못 경을 읽은 것이다. 부처님이 한 시대에 두 부처님이 세상에 나올수 없다고 한것이지, 다른 타방세계에도 부처님이 나오지않을 것이라고 말하신 것은 아니다. 타방부처님은 있을 가능성이 있다."

이런 요지였습니다.

전 이 문답이 괴이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대승경전에 이미 부처님재세시에 대승과 소승이 있었으며

대승경전에 이미 수많은 타방부처와 불보살들이 나오는데

어찌하여 부파논사는 부처님이 한 시대에 두 부처가 나올수 없다고 한 아함경의 말을 인용한 것일까?

그리고 용수는 어찌하여 부처님재세시에 이미 타방부처와 불보살들이 있었는데 무슨 소리냐. 눈으로 알고 보았으면서 그것을 부정한단 말이냐라고 일축하지 않고, 쓸데없는 긴 변론을 하면서 '그대가 아함경을 잘못 해석한 것이다. 타방부처님은 있을 가능성이 있다'라고 말하는 것일까?라는 의혹이 생겼습니다.

봉강님이 생각해도 너무 괴상한 문답이 아닙니까?

사리불 목련도 타방부처를 알았는데 넌 왜 그것을 눈감고 모른체하냐라고 한마디면 족한데

왜 용수는 긴 변론문을 써서 타방부처가 존재할 가능성에 대하여 변론을 쓸까요.

 

봉강이 존재한단 말인가? 라고 묻는다면

그것이 무상고무아라는 법차원의 질문이 아니라 세속적인 질문이라면

저기 저렇게 봉강이 있지 않은가? 라고 한마디하면 될뿐이지

 

봉강이 존재할수 있는 이유를 보고서쓰듯이 레포트쓰듯이 그렇게 서술할 이유가 있을까요?

 

전 머리속이 하얗게 변하고, 충격으로 심장이 두근거렸습니다.

 

용수의 이 변론이야말로 대승의 불보살들이 부처님재세시에 없었으며,

대승의 불보살들이 아함경에 나오지 않는 이유이며

대승의 불보살들이 대승경전에만 나오는 이유이며

대승경전이 설정이며,

대승경전이 논사들의 작품이며

'대승경전이 부처님직설이 아니지만'이라는 성철스님말씀의 뜻이며,

대승의 불보살들이 창작되었을 것이라는 증거가 됩니다.

 

바로 이 두가지 말씀

성철스님의 '대승경전은 부처님 직설은 아니지만'이라는 말씀과

용수의 '타방부처가 있을 가능성이 있다'라는 말이

 

이해되지 않았던 대승경전과 대승불교의 비밀을 하나의 구슬로 쫙꿰어지게 만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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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강님

봉강님은 위글에서 이렇게 쓰셨습니다.

 

"부처님 당시에는 대승,소승도 없었듯이 불상도 없었고 불탑도 없었습니다 물런 불교라는 승단도 없엇습니다"

 

봉강님도 그렇지만 저도 다음 두가지 연결되지 않는 이상한 말을 함께 가졌습니다.

 

1. 부파불교는 이기적이고, 법의 오류를 범했기 때문에 대승불교가 일어나게 되었다.

2. 대승경전에는 부처님재세시에 이미 대소승, 화엄 아함 방등 반야 법화 열반 밀교가 있었고, 이승과 삼승이 있었으며, 그것을 분별한 것은 부처님 스스로 하신 것이다. 부처님재세시에 불보살들이 있었다.

 

이 두가지 말은 연결되지 않습니다.

 

1번의 말이 맞다면 2번 말은 틀렸다는 것을 말합니다.

2번의 말이 맞다면 1번말이 틀렸다는 것을 말합니다.

 

봉강님도 그렇고 저도 그렇고 이 두가지 어긋나는 말을 수지하면서, 대승불교의 일어남은 부파불교때문이었고, 부처님당시에 대승이 있었다는 이상한 견해를 가지게 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봉강님

 

"부처님 당시에는 대승,소승도 없었듯이"라고 하신 말씀은 무슨 의미입니까?

 

제가 보기엔 1번의 견해를 취하여 대승불교의 일어남은 부파분열이후의 일로 생각하고 말씀하신 것으로 이해되는데, 그러면 2번의 견해는 어떻게 됩니까? 대소승이 부처님재세시에 없었는데, 어떻게 대승경전에는 부처님재세시에 대소승이 있는 것으로 나오고, 그것을 논사들의 투쟁때문에 분열된 것이 아니라 부처님이 스스로 법을 나누어 이승과 삼승으로 설한 것처럼 나옵니까?

 

봉강님 성철스님은 백일법문에서 이렇게 근본불교 원시불교 부파불교 대승불교의 차이를 적확하게 분류하셨습니다.

 

대개 학자나 스님들은 원시경전인 아함경을 소승에 소속된  것으로 분류하였는데, 지금까지의 인용 경전과 그 해설에서 그와 같은 취급이 반드시 옳지만은 않다는 점을 다소간 이해하였으리라  봅니다. .. 학문이 발달하기 전에는 불교라고 하면 그냥 불교라는  것뿐이었는데, 학문이 발할함에 따라 불교도 역사적인 전개에 따라 근본불교(根本佛敎). 원시불교(原始佛敎). 부파불교(部派佛敎). 대승불교(大乘佛敎)등으로 분류하여 연구하게 되었습니다. 근본불교란  부처님과 부처님의 직접 제자들에 의해 이루어진 원초기의  불교를 말하고 , 원시불교란 부처님 제자들 이후부터 부파의 분열 이전까지 백여 년 동안의 불교를 말합니다. 그 뒤로 십수개의 부파가 나뉘어져 서로 이론적 논쟁을 하게 되었는데, 그 시대의 불교를  부파불교라 합니다. 흔히 말하는 소승 불교는 바로 그 부파불교를 가리킵니다. 부파 성립 이후의 교단은 거의 소승불교에 의해 지배당하게 되는데, 거기에서 소승불교의 문제점을 극복하고 근본불교 정신으로 되돌아가려고 일어난 것이 바로 대승불교입니다.

 

성철스님또한 1번 계율논쟁이후에 대승불교의 일어남이라는 견해를 말씀하시는 것 아닙니까? 즉 부처님당시의 불교는 소승불교가 아니다라는 말씀입니다. 이러한 견해는 백일법문 내에서 소승불교와 근본불교를 구분하여 적확하게 말씀하시는 것을 보면 알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봉강님이 말씀하시고, 성철스님이 말씀하셨듯이 부처님재세시에 대승과 소승은 없었으며, 대승경전에 대승과 소승이 이미 있었던 것처럼 나오는 것은 수수께끼이게 된것입니다.

 

수수께끼의 답은 대승경전은 부처님직설이 아니며, 대승논사들의 작품이고 설정이라는 것입니다.

 

 

그럼 창작불보살은 무엇인가?

 

다시 성철스님의 백일법문 말씀을 보도록 하지요.

 


누구든지  지. 관(止觀), 정. 혜(定慧)를 함께 닦아서 중도를 정등각하여  진여법계로 들어가면 그만이지 거기에서 보면 무슨 이승이니 삼승이니 하는 헛된 길(空路)은 없습니다.  원시경전에 부처님 제자들이 깨친 경로가 삼아승지겁이 걸린다고 하는 등의 수증(修證)의 점차(漸次)는 결코 보이지 않습니다. 비구 교진여가 부처님의 중도법문을 듣고 바로 깨치고 나서'집(集)이 곧 멸(滅)'이라고, 즉  생사가  곧 열반이라고 하니 부처님께서 인가하셨다는 말은  내가 앞에서도 여러 번 귀따가울 정도로 말했습니다. 말로서만 '생사 즉 열반'이 아니라 확실히 원융무애한 것을 체득한 것입니다. 그 뒤에도 부처님의 제자가 깨친 사실이 자주 나오는데 그것을 보면 모두가 바로 깨쳐 들어갔지, '삼아승지겁을 닦아 성불한다'는 말은  절대로 하지 않았습니다. 둘러가는 공로(空路)는 말씀하시지 않았습니다.

 

성철스님은 백일법문에서 원시경전(아함경과 니까야, 남전대장경을 말합니다. 성철스님은 아함경도 부처님원음인줄 확신할수 없었다고 말씀은 하셨지만, 이렇게 중요한 곳에서 바로 그 확실하지 않다고 한 아함경과 니까야 남전대장경의 말씀을 들어 설명하고 계십니다. 이것을 바로 이해하여야 하겠습니다.)에는 부처님제자들이 깨친 경로가 삼아승지겁이 걸친다고 하는 수증의 점차가 결코 보이지 않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또 '삼아승지겁을 닦아 성불한다'는 말은 절대로 하지 않았습니다.라고 말씀하십니다.

 

봉강님

 

성철스님은 율장이 부처님원음에 가장 가깝고 아함경은 부처님직설에 가장 가깝지만 그렇다고 부처님원음이라고 완전하게 확신할수는 없습니다. 라고 말씀하셨는데 어찌하여 대승경전의 가장 핵심인 성불론과 보살행을 비판하는데 그 확실하지 않은 아함경 니까야 남전대장경을 근거로 삼아 저런 말씀을 하셨겠습니까?

 

아함경과 니까야의 수증점차라는 것은 사성제 팔정도를 닦아 멸성제 즉 깨달음 해탈열반을 얻는것을 말하고, 성자의 과위로 말할때는 예류자... 아라한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까? 성철스님이 가장 귀중히 여기신 율장에도 바로 이러한 수증점차를 이야기하고 있지 대승경전에서 말하는 그러한 것을 설하고 있진 않지 않습니까?

 

그리고 성철스님이 "부처님제자들이 깨친 경로가 삼아승지겁이 걸친다고 하는 수증의 점차가 결코 보이지 않는다 ....삼아승지겁을 닦아 성불한다'는 말은 절대로 하지 않았습니다.라고 하신 말씀은 율장과 아함 니까야의 수증점차가 아니라 바로 대승경전에서 말하는 수증점차가 아닙니까? 성불 삼아승기겁에 걸친 보살행. 53계단의 과위... 이러한 것들은 바로 대승경전의 수증점차가 아닙니까?

 

즉 성철스님은 율장과 아함경 니까야를 부처님의 원음으로 보고, 부처님의 원음에서는 이승삼승이니 삼아승기겁에 걸친 보살행이니 그러한 것들을 결코, 절대로(성철스님이 이 두개의 단어를 사용한 이유를 주목하십시오) 설하지 않았다고 하셨습니다. 성철스님은 이런 대승경전에 나오는 것을 우리말로 3자 한문으로 2자로 탁 규정하셨습니다. 즉 한글로는 헛된 길이고 한자로는 空路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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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저나 봉강님이나 성철스님은 부처님재세시에 대승과 소승이라는 이승 삼승론은 없었다는 것을 알게된것입니다.

 

성철스님은 그래서 대승경전이 부처님직설이 아니라고 하셨으며,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불교는 부처님의 가르침이 근본이 되는 것인 만큼 부처님과 그 가르침을 직접 받은 제자들 당시의 불교가 중심이  되어야 함은 당연한 이치입니다. 시대를 내려오면서 만일 그  근본취지가 변질된 것이 있다면 그 변질된 것은 마땅히 시정되어야  합니다.

 

위 말씀은 무슨 뜻입니까?

그 가르침을 직접 받은 제자들이란 창작불보살들입니까? 사리불 목련 가섭아난같은 제자들을 말합니까?

사리불 목련 가섭 아난을 말합니다.

 

시대를 내려오면서 만일 그 근본취지가 변질된 것이 있다면 그 변질된 것은 마땅히 시정되어야 합니다.라는 말씀은 무슨 뜻입니까?

 

성철스님은 바로 이뜻으로 백일 법문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하나 덧붙일 것은 시대적으로  보아서  불교를  원시불교(原始佛敎). 부파불교(部派佛敎). 대승불교(大乘佛敎)로  나눕니다. 원시불교를 다시 부처님 당시와 직계 자제들이 있었던 불멸 후  30년까지를 대개 근본불교(根本佛敎)라 하고 부처님께서 돌아 가신  후 백년까지를 협의의 원시불교라 합니다. 부파불교란 곧 소승불교로서 불멸 후 1세기부터 대승불교가 일어나기까지 4. 5백년  사이를 말하고 또 대승불교는 서기전 1세기 무렵부터 일어난 새로운  불교를 말합니다. 근본불교인 원시불교와 부파불교인 소승불교는 근본적으로 틀립니다. 부파불교시대에 있어서는 유견 아니면  무견, 무견 아니면 유견의 변견으로 각기 자기 교설을 주자한 소승불교로서 중도사상이 없는데 반하여, 근본불교는 중도사상에 입각하여 모든 교설이 설하여져 있습니다.

그러므로 천태대사나 현수대사가 아함경을 소승으로 취급하여 아함의 연기를 생멸연기로 해석하고, 아함의 사제도  생멸사제로  간주한 것은 결단코 잘못된 것입니다.

 

누구든지  지. 관(止觀), 정. 혜(定慧)를 함께 닦아서 중도를 정등각하여  진여법계로 들어가면 그만이지 거기에서 보면 무슨 이승이니 삼승이니 하는 헛된 길(空路)은 없습니다.  원시경전에 부처님 제자들이 깨친 경로가 삼아승지겁이 걸린다고 하는 등의 수증(修證)의 점차(漸次)는 결코 보이지 않습니다. 비구 교진여가 부처님의 중도법문을 듣고 바로 깨치고 나서'집(集)이 곧 멸(滅)'이라고, 즉  생사가  곧 열반이라고 하니 부처님께서 인가하셨다는 말은  내가 앞에서도 여러 번 귀따가울 정도로 말했습니다. 말로서만 '생사 즉 열반'이 아니라 확실히 원융무애한 것을 체득한 것입니다. 그 뒤에도 부처님의 제자가 깨친 사실이 자주 나오는데 그것을 보면 모두가 바로 깨쳐 들어갔지, '삼아승지겁을 닦아 성불한다'는 말은  절대로 하지 않았습니다. 둘러가는 공로(空路)는 말씀하시지 않았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 참고로 알아둘 것은 선인녹원에서 사제의 법륜을 굴렸다고 하는 것은 부처님이 다섯 비구를 위해서 설법한 것을 말하는데, 그러면 부처님은 녹원에서 사제를 설하실 때 아공만 설하고 법공은 설하시지 않았는가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이것은 잘못된 교판입니다. 녹원에서 부처님이 사제를 설하든  팔정도(八正道)를 설하든 혹은 무엇을 설하든지간에 그것은 분명히 중도를 근본으로 삼아 설법하셨지, 어느 것 하나 중도를 벗어난 것은  없습니다. 즉 중도 이것이 팔정도라고 선언해 놓고 사제법문도 설한 것입니다. 그래서 공이라는 것을 말할 때도 아(我)나 아소(我所)의 공인 아공(我空)만이 아니라 법공(法空)또한 설했다고 보아야 합니다.

 

바로 이렇게 성철스님은 율장과 아함과 니까야에 근거하여, 대승의 이승 삼승론과 성불론과 후대의 오시교판론같은 교상판석을 "시대를 내려오면서 만일 그 근본취지가 변질된 것이 있다면 그 변질된 것은 마땅히 시정되어야 합니다"라고 사자후하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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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철스님은 저처럼 대승경전이 비불설창작대승경전이라고 말씀하시지 않았으며

성철스님은 저처럼 대승의 불보살이 창작불보살이라는 것을 말씀하시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미 위에서 말씀드린 성철스님의 말씀들에 깔린 의미를 본다면

성철스님께서 역시 그러한 견해를 가졋음을 분명히 알수 있습니다.

다만 종단의 큰 어른이고 시절인연이 있었기 때문에 말씀을 삼가신 것이라고 볼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봉강님이 계율논쟁으로 인하여 대승불교의 일어남을 설명하려한다면

부처님재세시에 대승과 소승이 이미 있었다는 것을 전제로 한 대승경전과

대승경전에 나오는 불보살들이 허구적인 것임을 드러내는 양날의 칼이 되는 것입니다.

부파불교를 비판하면서 대승을 합리화하는 성과를 거둠과 동시에

대승경전자체가 허구적인 것임을 바로 스스로 허무는 것이 됩니다.

봉강님 어찌 그러지 않겠습니까?

 

봉강님 그것은 그렇다치고 제가 그래서 만약 봉강님이 계율논쟁으로 인한 대승불교의 일어남을 합리화하려 한다면 다음과 같은 질문에 부딪힌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물론 봉강님은 답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저에게 답하지 않아다고 해서 봉강님 마음속에서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저에게 답하지 않아도 좋으니 스스로 마음속에서 답하여 보시기 바랍니다.

 

 

봉강님

님이 대승불교의 일어남의 원인을 계율논쟁으로부터 합리화의 길을 찾는다면

 

다음에 부딪칩니다.

 

 

1. 계율논쟁이전에 대승은 있었는가? 계율논쟁이후에 대승이 일어났는가?

 

2. 계율논쟁을 거치고 보살사상이 나타나면서 부파불교를 비판하고 대승이 일어나는 정당한 이유가 되었다면,

왜 대승경전에는 이미 부처님당시에 대승과 소승이 있는 것처럼 거짓말하고 있는가? 결국 계율논쟁으로 대승불교의 정당한 이유를 찾는다면, 바로 그것으로 인해 대승경전에 나타나는 부처님 당시의 대승과 소승이라는 분별이 거짓말이라는 것과, 이러한 대승경전이 대승논사들의 작품이라는 것을 역설적으로 드러내고 있는데 어떻게 할것인가?

 

3. 계율논쟁으로 대승의 일어남을 합리화한다면, 당시의 근본분열당시보다도 더욱 엄청난 계율에 대한 차이가 드러나는 조계종 태고종 대처승 섹스밀교에 대해서는 어떤 잣대를 갖다댈것인가?

 

4. 계율논쟁을 거쳐 대승이 일어남을 합리화한다 치더라도, 왜 대승논사들은 부파논사들을 비판하는데 그치지 않고, 부처님직제자들을 비불설창작대승경전에 불러들여 영구 칠득이 쪼다 멍청이 취급을 주구장창햇는가? 이것은 정당한가? 왜 우리불제자들은 대승논사들이 비판하고자 햇던 부파논사가 아니라 애꿎은 부처님당시의 위대한 아라한들을 능멸하고 조롱하고 왜곡된 진실을 전하는 것들을 경전에 써진 불설이라고 수지독송하여야 하는가?

 

5. 대승경전이 부처님당시로 돌아가자였다는 구호가 맞다면, 어찌하여 대승경전은 부처님의 원음인 아함경과 니까야를 소승경전으로 능멸하고, 부처님당시의 직제자들을 능멸하는가? 이것이 초기불교로 돌아가자는 진정한 깃발인가? 왜 모든 교상판석에서 부처님이 설하신 경전만 소승이고 외도와 동급취급받으며, 부처님이 설하시지 않은 비불설창작대승경전과 창작불보살들을 조종하여 말한 대승논사의 말들만 숭앙하고 존숭하고 공경하고 수지독송해야 하는가? 이것이 진정으로 대승이 초기불교로 돌아가자는 허위 선전선동깃발의 결과물인가?

 

 

이런 의문에 답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_()_

 

봉강님

 

봉강님이 진지하게 마음을 열어 법담을 할수 있는 관대함을 보여주셨으니

일부러 이러저러한 구구절절한 말을 해보았습니다.

 

불제자가 무슨 할일이 없어서 지식자랑을 하고, 난체하고, 교만심에 빠져 우쭐하고

남을 타도하려하고, 승부심에 집착하고, 욕설과 비방에 빠져 살겠습니까?

 

바로 법을 바로 세우기 위함입니다.

 

마지막으로 부처님말씀을 옮겨 적습니다.

장문의 글이 되었지만

다른 것을 일체 생각하지 않고

이렇게 긴 글을 적어보았습니다.

 

 

_()_

 

비불설(非佛說)은 물리쳐야 하고, 연민심으로 법을 설하라.
 - 부처님의 원음에서 가려뽑은 불설과 비불설에 대한 말씀.


 

1. 여래가 가르친 법과 율이 그대들의 스승이 될 것이다.



디가니까야16.대반열반경6.1의 부처님 말씀

그때 세존께서는 아난다 존자를 불러서 말씀하셧다.

“아난다여, 그런데 아마 그대들에게 ‘스승의 가르침은 이제 끝나버렸다. 이제 스승은 계시지 않는다.’라는 이런 생각이 들지도 모른다.

아난다여. 그러나 그렇게 봐서는 안된다.

아난다여, 내가 가고난 후에는 내가 그대들에게 가르치고 천명한 법(dhamma)과 율(vinaya)이 그대들의 스승이 될것이다.”145)


장아함 유행경의 부처님 말씀

“아난아, 너는 여래가 멸도한 뒤에는 다시 보호할 이가 없어 닦아 오던 것을 잃으리라고 생각하는가. 그런 생각은 하지 말라. 내가 부처가 된 뒤로 지금까지 말한 경(經)과 계(戒)는 곧 너를 보호하고 네가 가져야 할 것이다.”

阿難。汝謂佛滅度後。無復覆護。失所持耶。勿造斯觀。我成佛來所說經戒。卽是汝護。是汝所持。





2. 불설이라고 주장하는 자가 있으면
경과 율에 비추어 보아 맞지 않으면 비불설이라고 결론짓고 물리쳐야 한다.
경과 율에 비추어 보아 맞으면 불설이라고 결론지어야 한다.



디가니까야16.대반열반경4.8의 부처님말씀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가 말하기를 ‘도반들이여, 나는 이것을 세존의 면전에서 듣고 세존의 면전에서 받아 지녔습니다. 이것은 법(dhamma)이고 이것은 율(vinaya)이고 이것은 스승의 교법(satthusāsana)입니다.’라고 하면, [일단] 그런 비구의 말을 인정하지도 말고 공박하지도 말아야 한다.

인정하지도 공박하지도 않은 채로 그 단어와 문장들을 주의 깊게 들어서 경(sutta)과 대조해 보고 율(vinaya)에 비추어 보아야 한다.

그의 말을 경과 대조해보고 율에 비추어 보아서, 만일 경과 견주어지지 않고 율과 맞지 않는다면 여기서 ‘이것은 세존의 말씀이 아닙니다(非佛說). 이 비구가 잘못 호지한 것입니다.’라는 결론에 도달해야 한다. 비구들이여, 이렇게 해서 이것은 물리쳐야 한다.
‘addhā, idaṃ na ceva tassa bhagavato vacanaṃ.

그의 말을 경과 견주어 보고 율에 비추어보아서 만약 경과 견주어지고 율과 맞는다면 여기서 ‘이것은 세존의 말씀입니다.(佛說) 이 비구가 잘 호지한 것입니다.’라는 결론에 도달해야 한다.”
‘addhā, idaṃ tassa bhagavato vacanaṃ.


장아함 유행경의 부처님말씀

 

“만일 어떤 비구가 말하기를 ‘여러분, 나는 어떤 촌 어떤 성 어떤 나라에서 직접 부처님에게 들었고 직접 이런 계율과 이런 가르침을 받았다. 그것을 들은 사람은 그것을 믿지 않으면 안 된다. 또 그것을 헐 수도 없는 것이다’ 하거든, 마땅히 모든 경전에서 그 허실(虛實)을 참고하고 계율에 의하고 법에 의하여 그 본말(本末)을 연구해 보라.

 

若有比丘作如是言。諸賢。我於彼村․彼城․彼國。躬從佛聞。躬受是敎。從其聞者。不應不信。亦不應毁。當於諸經推其虛實。依律․依法究其本末。

 

그래서 그의 한 말이 경전도 아니요 계율도 아니요 법도 아니거든 마땅히 그에게 말하라. ‘부처님은 그렇게 말씀하시지 않았다(佛不說此). 그것은 네가 잘못 들은 것이 아닌가. 왜냐하면 내가 모든 경전과 계율과 법에 대조해 보매 네가 아까 한 말은 법과 서로 어긋난다. 현사(賢士)여, 너는 그것을 받아 가지지 말라 또 남을 위해서도 말하지 말라. 너는 마땅히 그것을 버려라’고.

 

若其所言非經․非律․非法。當語彼言。佛不說此。汝謬受耶。所以然者。我依諸經․依律․依法。汝先所言。與法相違。賢士。汝莫受持。莫爲人說。當捐捨之。

 

만일 그가 한 말이 경전과 계율과 법에 의거한 것이거든 마땅히 그에게 말하라. ‘네가 한 말은 진실로 부처님의 하신 말씀이다(汝所言是眞佛所說). 왜냐하면 우리가 모든 경전과 계율과 법에 대조해 보매 네가 아까 한 말은 법과 서로 맞다. 현사여, 너는 마땅히 그것을 받아 가지고 또 남을 위하여 그것을 널리 펴라. 부디 삼가 그것을 버리지 말라.’ 이것이 제 一의 큰 교법이다.

若其所言依經․依律․依法者。當語彼言。汝所言是眞佛所說。所以然者。我依諸經․依律․依法。汝先所言。與法相應。賢士。汝當受持。廣爲人說。愼勿捐捨。



3. 출가제자와 재가제자들은
법을 잘 닦고 가르치며,
삿된 교설을 법으로 잘 제압하여야 하고,
해탈을 성취하는 기적을 갖춘 법을 설하라.



디가니까야16.대반열반경3.35.의 부처님말씀

‘빠삐만이여, 나는 나의

비구 제자들이... 비구니 제자들이... 청신사 제자들이... 청신녀 제자들이

입지가 굳고, 수행이 되고, 출중하며, 많이 배우고[多聞], 법을 잘 호지(護持)하고, [출세간]법에 이르게 하는 법을 닦고, 합당하게 도를 닦고, 법을 따라서 행하며,

자기 스승에게 속하는 것을 파악한 뒤 그것을 천명하고 가르치고 알게 하고 확립하고 드러내고 분석하고 명료하게 설명하며,

다른 [삿된] 교설이 나타날 때 그것을 법으로 잘 제압하고,

제압한 뒤 [해탈을 성취하는] 기적을 갖춘 법을 설할 수 있게 되기까지는
반열반에 들지 않을 것이다.


4. 삼보를 비방하는 자들에게 분노하지 말고
연민심을 가지고 바른 법을 설하라.



디가니까야1.범망경의 부처님말씀

"비구들이여, 그대들은
남들이 나를 비방하고 법을 비방하고 승가를 비방하더라도
거기서 적대감을 가져서는 안되고
기분 나빠해서도 안되고
마음으로 싫어해서도 안된다.

비구들이여, 남들이
나를 비방하고 법을 비방하고 승가를 비방한다고 해서
만일 그대들이 거기에 자극받아서
분노하고 싫어하는 마음을 낸다면
그것은 그대들에게 장애가 된다.

비구들이여, 남들이
나를 비방하고 법을 비방하고 승가를 비방한다고 해서
그대들이 거기에 자극받아서
분노하고 싫어하는 마음을 낸다면
그대들은 남들이 말을 잘했는지 말을 잘못했는지 제대로 알 수 있겠는가?  

 "알수없습니다, 세존이시여. "

"비구들이여, 남들이
나를 비방하거나 법을 비방하거나 승가를 비방한다면
거기서 그대들은 사실이 아닌 것은 사실이 아니라고 설명해 주어야 한다.

'이러하기 때문에 이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이러하기 때문에 이것은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에게는 이러한 것이 없습니다.
이것은 우리에게는 알려지지 않은 것입니다. '라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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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석가모니불

나무 석가모니불

나무 시아본사 석가모니불

 

나모 땃사 바가와또 아라하또 삼마 삼붓다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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