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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국가가 가난한 것이 아니라 정치의 영향을 받습니다.
부처님당시에 불교를 믿었던 나라들이 무수히 많았는데
대표적으로 마가다국과 코살라국이 있습니다.
이 나라의 두 왕인 빔비사라왕과 빠세나디왕은 부처님께 귀의한 신심있는 불제자로 유명하지요.
마가다국과 코살라국이 가난했을까요?
아닙니다.
당시 인도의 최강대국들이었지요.
전쟁을 통해 왕위에 오르고, 수많은 형제들을 살육하고 왕위에 오른
인도의 아쇼까왕은 부처님가르침을 전하는 아라한의 말씀에
크게 뉘우치고 불자가되어 거대한 불교국가를 만들었습니다.
인도통일왕국의 위대한 군주였던 아쇼까왕의 인도는
가난한 나라였을가요?
아닙니다.
당시 인도의 국력은 사방에 위세를 떨치는 강대국이었습니다.
당나라의 이세민은 불교를 받아들여
불자로 귀의하고 현장법사에게 불경을 가져오라고 명령한 왕이었는데
당나라는 가난한 나라였을까요?
아닙니다.
당시 당나라는 전세계를 통틀어 위대한 강대국이었지요.
원나라나 청나라의 옹정제나 건륭제같은 분들은
티벳불교의 달라이라마를 극진하게 숭상하고
불교의 가르침을 숭상하였는데
이러한 원나라와 청나라는 당시에 약한 나라였을까요?
아닙니다.
우리나라에는 비록 아픈 기억을 주었지만
세계사적으로 엄청난 강대국이었지요.
고구려 백제 신라는 불법을 받아들였고
특히 백제와 신라는 불교문화를 꽃피웠는데
이러한 불교를 받아들인 백제와 신라가
약한 나라였을까요?
아닙니다.
백제는 화려한 전성기를 부처님의 가르침으로 덮었으며
신라또한 통일신라의 시기를 거쳐 무려 천년이상
부처님가르침으로 세상을 통치하였습니다.
고려또한 불법을 숭상하였는데
고려도 약소국이었을까요?
아닙니다.
고려또한 문화강대국이었으며
자존감을 가진 위대한 나라였습니다.
남방으로 가보아도
스리랑카나 미얀마나 태국이나
이런 나라들이 부처님가르침을 받아들여
자기나라에서 가장 화려하고 강성하고 문화적으로 성숙한 사회를 만들었던 역사가
있습니다.
이러한 불교문화가 꽃피던 당시의 남방국가들이
그 당시에 약소국이었을가요?
아닙니다.
유럽에서 문명사적으로 가장 화려했던 시대는
그리스로마시대입니다.
후대의 로마는 둘째치고라도
그 이전의 그리스와 로마가
기독교를 받아들였기 때문에
문화적으로 국력이 강성했을까요?
아닙니다.
기독교와 가톨릭문화가 절정에 이뤘던 시대는
유렵에서 중세시대라고 합니다.
중세는 과연 강성하고 문화적으로 성숙한 시대였을까요?
마녀사냥이 이루어지고,
인간에 대한 화형이 이루어졌으며,
신을 앞세워 무참한 살육이 죄의식없이 저질러지던 암흑의 시대였습니다.
기독교와 가톨릭이 가장 절정에 달한 중세시대를
왜 서구에서는 찬란한 시대라하지 않고
암흑의 시대라고 합니까?
중세유럽의 암흑시대를 벗어나서
르네상스운동이 벌어지자
기독교와 가톨릭에 대한 비판이 거셋습니다.
바로 그러한 기독교 가톨릭의 그늘에서 벗어남으로 해서
유럽은 르네상스를 이루고
산업혁명을 이루고
기술의 진보를 이루었던 것입니다.
오늘날도 유럽에서 기독교와 가톨릭은 쇠잔해가고 있으며
교회와 성당은 텅텅비고 있습니다.
교회와 성당은 텅텅비는데 유럽이 발전하는 것이
과연 교회와 성당의 역할때문이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들은 이런 역사적인 경험들을 되살려 짚어보면
불교를 믿는 나라가 약한 것도 아니었으며
기독교와 가톨릭을 믿는 나라가 찬란한 시대가 아니라 암흑의 시대를 보냈다는 것도 알게되며
이러한 기독교와 가톨릭의 영향을 벗어나자말자 르네상스와 산업혁명을 이루어냈다는 것을 알게되며
오늘날 유럽에서 교회와 성당이 텅텅비는데도 불구하고 유럽이 발전하는 것도 알게되며
이러한 것들을 보아
지금의 불교국가들이 어느 정도 어려움을 겪는 것은
르네상스와 산업혁명을 이룬 유럽제국들의 식민지지배의 후유증이 남은 것임을 알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불교의 가르침도 중요하지만
그러한 불교의 가르침을 따르는 불자들을이끄는 나라의 정치가들과 사부대중의
바른 노력도 반드시 필요함을 알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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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견 3
그 외 답변들 7
re: 불교국가는 가난하다 ?비공개
답변채택률 0.0% 2009.06.12 15: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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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와 정치는 별개이고 종교와 과학이 별개인 것과 같이 종교와 경제는 별개입니다.
역사적으로 수많은 철학자와 과학자와 의학자 경제학자가 있으나 종교학자라고 불리울 만한 사람은 손으로 꼽을 정도이므로 그들이 경제에 관여할 이유나 소지가 없고 그러한 예도 없습니다.
종교가 경제를 키운 것이 아닌 것입니다.
불교국가가 가난하다 하는 것은 기독교를 두고 하는 말인데 기독교는 유럽의 정치 경제 과학이 발달하는 틈새에 끼어 전파되었을 뿐입니다.
유럽을 키워 온 사람들이 기독교에 매달려 있었다면 오로지 기독교를 전파하고자 한 역사적인 사실이 뚜렸이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는 않은 것입니다.
종교전쟁이 있었으나 기독교인들끼리 치고박고 열심히 싸운 것이고 잘못된 침략전쟁으로 경제발전과는 전혀 관계가 없고 오히려 경제는 피폐해졌고 수많은 사람들이 학살되었을 뿐입니다.
위키백과에서 가져온 글인데 보면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십자군(라틴어: croisade)은 교황의 호소로 조직된 기독교적인 성향을 강하게 띤 군대를 가리킨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대부분의 경우 11세기부터 13세기까지 감행된 중세 서유럽의 로마 가톨릭 국가들이 중동의 이슬람 국가에 대항하여 성지 예루살렘을 탈환하는 것을 목적으로 행해진 대규모의 군사 원정을 가리킨다. 넓은 의미로는 직접적으로 성지와는 관계없는 레콩키스타나 동유럽에 파견된 동방십자군, 발트해 연안의 여러 나라에 원정을 감행한 북방십자군, 이단에 대한 알비 십자군 등이 포함되었다. 하지만 그 취지와는 다르게 십자군측이 예루살렘을 확보한 기간은 1099년 ~ 1187년 및 1229년 ~ 1244년뿐이었다. 이후 20세기까지 예루살렘은 이슬람의 지배하에 있게 된다.
당시 서유럽의 로마 가톨릭 국가들의 입장에서 본다면 십자군은 의로운 군대로 이 전투는 성전이 되지만, 실제로는 이슬람 세계의 여러 나라들 뿐만 아니라 같은 기독교 문화권이였던 동방정교회의 나라들까지 공격해 들어간 침략군이라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십자군 운동은 처음의 순수한 열정과는 달리 점차 정치적·경제적 이권에 따라 움직이면서 순수함이 무너지는 모습을 보였다. 사자심왕 리처드 등 서유럽의 대표적인 세 나라의 군주들이 함께 참가한 제3차 십자군이 가장 유명하고, 그 절정은 콘스탄티노폴리스를 함락시켜 같은 기독교 국가인 동로마 제국을 몰아내고 라틴 제국을 세운 제4차 십자군이었다.
2001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그리스를 방문하여 과거 십자군에 의한 침략과 학살, 약탈행위 등에 대해서 정식으로 사과했다."
불교 또한 정치나 경제와는 무관하다고 할 것이나 기독교와 같이 수많은 사람을 학살한 전쟁을 한 사실은 없습니다.
위정자가 통치수단으로 불교를 수용한 면이 있을 것이나 종교가 국가 통치 수단의 전부가 아닌 것입니다.
학설적으로도 기독교나 불교가 경제 발전에 이바지 하였다는 것이나 종교로 하여 경제발전이 좌우지 된다는 것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불교국가는 가난하다거나 기독교국가는 부유하다는 이론은 성립될 수 없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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