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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ver 지식人

돈황본단경

 

 

조계 단경과 불교 1

qwes51 2009.06.24 06:56

답변 3 NEW | 조회 73

혜능대사가 거주하였던 산이 조계산이었어요.  

오늘날 한국불교 선종의 대표종단의 이름의 하나로 되었지요? 

그리고 조계종의 소의경전으로는 금강경이지요? 

덕이본 법보단경은 혜능대사의 설법이 편집된 거라고 알려져 있지요?

 

앞으로 주로 단경에 근거하여서 

불법에 대한 몇가지 이야기를 하여 보고자 함니다.

단경 이야기를 하는 거에는 몇가지 이유가 있슴니다. 

 

불교는 아시아를 벗어나서 세계적 종교로 발전하고 있슴니다. 

서양에서는 근본불교 선불교 티벳불교 대승불교가 제한이란 없이 혼입되어 학습소화되어지어 활용되어지기 때문에 세계불교로서의 관점에서 볼 적에 어떤 경전이 특정 종만의 경전일 수는 없게 되어졌슴니다.

 

그리고 돈황본단경이 발견되고 나서 이전의 이본단경들을 선호하든 각국의 선종 각 종파의 혈맥에 대한 주장조차 그 설득력이 약화되었슴니다.

돈황본단경에 대해서는 세계불교계 어느 불자라도 서로 평등한 입장에서 이해하고 스스로 활용할 수 있게 되어졌슴니다.   

단경은 그 누구에 의해서도 정확히 이해되어 활용되어지고 있는 게 아님니다.  

단경은 불조의 가르침중에서 최상승의 가르침이 실려진 거임니다.

세존으로 부터 전해져 온 최상승수행법의 핵심은 순수선임니다.

단경은 유식한 이와 무식한 이, 재가와 출가, 남자와 여자, 고참자와 신참자를 구분하지 아니함니다.

그래서 단경은 세계의 모든 불자들에게 도움이 될 거이지요. 

 

그래서 돈황본단경에 근거하여서 이야기함으로서

불자님들에게 약간의 안내를 하여보고자 함니다.

 

이 글을 읽는 님들은 선입견으로 접근하지 말 거를 권고드림니다.

돈황본단경에 대하여서는 그 누구도 지적소유권을 설정할 수가 없는 거임니다마는, 단경의 가르침에 대한 비난성 발언은 삼가하시기를 권고하여 둠니다.

 

이 권고에도 불구하고 비난하면 

스스로 백해무익을 자초하기 때문이네요.

 

나무마하반야바라밀

 

 

re: 조계 단경과 불교 1

snimjoa 2009.06.24 15:38

 

그리고 돈황본단경이 발견되고 나서 이전의 이본단경들을 선호하든 각국의 선종 각 종파의 혈맥에 대한 주장조차 그 설득력이 약화되었슴니다.

....... 돈황본 단경까지도 서천28조라는 날조된 선맥을 적고 있는 것을 아십니까? 단경을 둘러싼 법맥논쟁이 지겹다면 서천28조의 법맥이란 것도 허황한 것이라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더우기 이런 황당한 법맥논쟁이 보조네 보우네 중국에서 인가를 받았으니 정통이네, 중국에서 인가를 안받았으니 정통이 아니네 하는 낯뜨거운 법맥논쟁으로 이어진것이 아닙니까? 더우기 염화시중경이라는 선종에서 애지중지하는 그 창작불보살경전에서조차 마하가섭은 염화미소하고 열반묘심을 전해받았지만 성불은 하지못하고 미래세에 성불한다고 나와있지 않습니까? 그러니 근거로 삼는 비불설창작대승경전인 염화시중경에서조차 성불시키지 못한 마하가섭존자를 초조로하여 그 뒤를 이은 조사들이 견성성불했다고 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러므로 진정 법맥싸움이 지겹다면 다음과 같은 부처님말씀을 백번 천번 만번 읽고 읽어 골수에 사무치게 해야할것입니다.

 

 

디가니까야 대반열반경2.25.

“아난다여, 그런데 비구 승가는 나에 대해서 무엇을 [더] 바라는가?
아난다여, 나는 안과 밖이 없이57) 법을 설하였다.
아난다여, 여래가 [가르친] 법들에는 스승의 주먹[師拳]58)과 같은 것이 따로 없다.

아난다여, ‘나는 비구 승가를 거느린다.’거나
‘비구 승가는 나의 지도를 받는다.’라고 생각하는 자는 비구 승가에 대해서 무엇인가를 당부할 것이다.
아난다여, 그러나 여래에게는 ‘나는 비구 승가를 거느린다.’거나
‘비구 승가는 나의 지도를 받는다.’라는 생각이 없다.
그러므로 여래가 비구 승가에 대해서 무엇을 당부한단 말인가?

 

 

 

단경은 불조의 가르침중에서 최상승의 가르침이 실려진 거임니다.

세존으로 부터 전해져 온 최상승수행법의 핵심은 순수선임니다.

...... 부처님의 가르침중에서 무엇이 최상승인데 그 최상승법이 전해졌다고 할까요?

부처님의 마음이란 해탈열반입니다. 하다못해 창작불보살경인 염화시중경까지 마하가섭존자에게 열반묘심을 전해줬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부처님의 마음이란 해탈열반의 마음이며,

탐진치삼독심이 멸한 마음이며, 무명과 갈애가 다한 마음이며, 윤회가 끝난 마음이며, 다시 태어남이 없는 마음입니다.

부처님이 최상승으로 가르쳐준 것은 바로 사념처위빠사나입니다.

왜냐하면 바로 그것이 무상고무아를 철견하여 해탈열반에 이르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입니다.

“비구들이여, 이 도는 유일한 길이니,
중생들의 청정을 위하고,
근심과 탄식을 다 건너기 위한 것이며,
육체적 고통과 정신적 고통을 사라지게 하고,
옳은 방법을 터득하고,
열반을 실현하기 위한 것이다.
그것은 바로 ‘네 가지 마음챙김의 확립[四念處]’이다.

-대념처경에서 -

또한 부처님은 중생들의 행복을 위하고 이익을 위해 오래도록 전하고 닦아라라고 하신 것이 있으니 바로 37조도품입니다.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디가니까야 대반열반경3.49.
그러자 세존께서는 아난다 존자와 함께 큰 숲에 있는 중각강당으로 가셨다. 가서는 아난다 존자를 불러서 말씀하셨다.
“아난다여, 그대는 가서 웨살리를 의지하여 머무르는 비구들을 모두 집회소로 모이게 하라.”
“그렇게 하겠습니다. 세존이시여.”라고 아난다 존자는 세존께 대답한 뒤 웨살리를 의지하여 머무르는 비구들을 모두 집회소로 모이게 하고서 세존께 갔다. 가서는 세존께 절을 올리고 한 곁에 섰다. 한 곁에 서서 아난다 존자는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비구 승가가 다 모였습니다. 이제 세존께서 [가실] 시간이 되었습니다.”

그러자 세존께서는 자리에서 일어나 집회소로 가셨다. 가서는 마련된 자리에 앉으셨다. 자리에 앉아서 세존께서는 비구들을 불러서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여기 [이 세상]에서 나는 이런 법들을 최상의 지혜로 안 뒤에 설하였나니 그대들은 그것을 호지한 뒤 받들어 행해야 하고 닦아야 하고 많이 [공부]지어야 한다. 그래서 이 청정범행이 길이 전해지고 오래 머물게 해야 한다. 이것이 많은 사람의 이익을 위하고 많은 사람의 행복을 위하고 세상을 연민하고 신과 인간의 이상과 이익과 행복을 위하는 것이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나는 어떤 법들을 최상의 지혜로 안 뒤에 설하였는가? 그것은 네가지 마음챙김의 확립[四念處], 네가지 바른 노력[四正勤], 네가지 성취수단[四如意足], 다섯가지 기능[五根], 다섯가지 힘[五力], 일곱가지 깨달음의 구성요소[七覺支], 여덟가지 구성요소를 가진 성스러운 도[八支聖道]105)이다.
비구들이여, 나는 이런 법들을 최상의 지혜로 안 뒤에 설하였나니 그대들은 이를 호지한 뒤 받들어 행해야 하고 닦아야 하고 많이 [공부]지어야 한다. 그래서 이 청정범행이 길이 전해지고 오래 머물게 해야 한다. 이것이 많은 사람의 이익을 위하고 많은 사람의 행복을 위하고 세상을 연민하고 신과 인간의 이상과 이익과 행복을 위하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 말씀들은 부처님의 깨달음을 이룬 무상 고 무아를 철견하여 연기법을 깨치고 해탈열반에 이르는 길을 위한 가르침들이란 것입니다. 그래서 여래께서는 이것을 최상의 지혜로 안뒤에 설하셨다고 하셨고, 이것을 호지하고 받들어 행하고 닦아야하고 많이 공부지어야 한다고 하셨으며, 바로 그러한 것이 많은 사람의 이익과 행복을 위하고, 세상을 자비 연민하는 것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진정 부처님으로 부터 이어져 내려온 최상승법이란 말을 한다면

사념처... 팔정도라는 37조도품에 대한 바른 인식과 함께

해탈열반의 유일한 길이라는 사념처위빠사나를 닦아 무명과 갈애의 완전한 소멸을 이루어 해탈열반에 이르러야 할것입니다. 이것이 많은 중생의 이익을 위한 여래의 당부가 아닙니까?

 

 

 

이 글을 읽는 님들은 선입견으로 접근하지 말 거를 권고드림니다.

돈황본단경에 대하여서는 그 누구도 지적소유권을 설정할 수가 없는 거임니다마는, 단경의 가르침에 대한 비난성 발언은 삼가하시기를 권고하여 둠니다.

이 권고에도 불구하고 비난하면 

스스로 백해무익을 자초하기 때문이네요.

 

......... 진정으로 육조를 스승으로 생각하고 존경하는 마음이 있다면

바로 그러한 마음으로 불제자들의 위대한 스승들인 사리불 목건련 가섭 아난같은 부처님직제자들을 능멸하고 조롱하고 비난을 퍼부었던 대승불교의 논사들에대한 바른 견해를 가져야할것입니다.

 

대승불교의 논사가 부처님직제자들을 조롱하고 비난하는 것은 방편이고

육조에 대한 이런 저런 말들은 모조리 비난성발언으로 듣겠다는 것은 우습지 않겠습니까?

저야 그렇지 않겠지만

설혹 어떤 자들이 육조를 비난한다면 그것은 그들의 방편일 가능성도 있지 않겠습니까?

말의 뜻만 가려서 들으면 되지 육조를 비난하는 돈황본단경을 비난하는 듯한 말에 국집하여 그것을 비난성발언으로 인정하고 육조와 돈황본단경을 비난하면 해로운 과보를 초래할것이라고 엄포를 놓는다면 사실 우습지 않겠습니까?

 

님이 하신 말씀이

대승논사가 부처님직제자들을 공격하는 것은 관대하시고

일반불제자가 육조와 돈황본단경에 대하여 이렇게 저렇게 말하는 것은 결기를 세우시겠다니

문득 생각이 일어 끄적거려보았습니다.

 

제말도 방편이니 제말의 일부분에 결기를 일으키신다면

말에 떨어진 것이 되고 뜻은 보지 못하는 것이 되실까요?

 

평소에 qwes51님을 존경하는 마음이 강하지만

육조와 단경을 결사옹호하려는 님의 모습이 저와 크게 다르지 않아

인연따라 적어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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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승비불설은 친일파인가

 

 

대승비불설은 일본인 학자가 처음 주장했다고 한다.

 

우리민족은 일본에 침탈된 아픈 역사가 있다.

그러므로 이러한 역사가 없는 서양사람들보다

우리가 일본에 대하여 더욱 잘알고 있다고 볼수 있다.

부처님가르침에 의해서도 악업을 자행한 인과응보를 받을 것이라는 것은 당연하다.

또한 일본이 그러한 악업을 참회하고 바른 길로 나아가야 함도 당연하다.

 

그런데 불교안에서 이런 아픈 역사를 엉뚱한 곳으로 이야기하는 경우도 있다.

 

대승비불설은 일본인이 주장했으므로, 대승비불설을 말하면 친일파라는 논리이다.

 

아래의 글은 동국대의 한 스님이 발표한 글에 다른 스님이 비판한 글에서 발췌한 내용이다.

 

 

옛날에 용수보살이 삼매에 들어서 미륵보살을 친견하고 유식학을 가지고 와 유식학을 발전 했고,또 용궁에서 불경을 구해왔어 화엄학이 생겼다.그래서 일본사람들이 역사적으로 증명 할 수없으니 대승 비불설이라는 말이 생긴것이다.불교학 박사학위 받을라면 일본밖에 없으니 그기서 받아 와 가지고 일본의 후견인 노릇을 한다. 역사적으로 증명 할 수 없으면 대승비불설이며  허황한 위경이 되는 것이다 .천수경도 비불설이며 오로지 불설은 아함경이라는 것이다. 

...

이것은 어찌보면 권세에 아부하는 중국 북방식 불교의 전통을 그대로 이어져내려온 선보다 교를 숭상하는 학문숭배인지 모른다.남방불교는 권세에 타협하지않고 아부하지 않는 선의 불교라고 할 수 있을것이다. 현대 일본은 대승비불설 하는 것처럼 생활불교를 지향하고 있다  그게서 박사 학위 따온사람들이  일본의 앞잡이 노릇 한답시고 조사를 뒤업고, 대승 비불설을 외치고   우리도 생활불교를 해야 된다는 것이다. 이러다가 선이 학문적인 이름만 남아 있지 않을 까 걱정이다.

...
일본가서 불교학 박사 학위딴 사람치고 제대로 된 사람 없다고 봐야 옳을 것이다. "대승비불설"이라 외치고 "화엄경"등 대승경들이 비불설이 중간에 중간에 누가 만들은 가짜경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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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승비불설을 말하면

일본의 후견인 노릇을 하는 것이고

일본의 앞잡이 노릇 하는 것이고

이런 사람은 "제대로 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다.

 

과연 그러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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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대승비불설이 무엇인가 생각해보자.

 

대승이 부처님직설이란 말은 석가모니부처님이 직접 설하신 것이고, 그러므로 처음도 중간도 끝도 좋다는 것이다.

 

대승비불설이란 석가모니부처님이 설하시지 않고, 대승논사들이 쓴 것이라는 것을 말하고, 어떤 부분은 부처님법에 맞는 것도 있고 어떤 것은 대승논사의 지나친 해석일수도 있고, 어떤 것은 대승논사가 힌두교나 바라문에서 수입한 이론도 있으며, 어떤 것은 잘못된 이론도 있고, 어떤 것은 사악한 것도 있을수 있음을 바로 보자는 것이다.

 

생각해보자

 

스님들은 인연에 맞게 법문을 하시고, 법문집을 내시기도 하고, 논문도 내시고, 시대에 맞는 새로운 주장을 하시기도 한다.

 

우리들은 이런 스님들의 말씀을 불설이라고 일반적으로 부르진 않는다.

즉 스님법문비불설이다.

이것이 스님의 말씀 법문 일체를 거부하는 말인가?

그렇지 않다.

스님들의 말씀 법문은 불자들이 존중하고 공경하며 또 스님들 사이에서 이런 저런 논의과정을 거치기도 한다.

스님들의 말씀과 법문을 석가모니부처님의 직설이 아니라고 한다고 해서

그것을 불제자들이 스님들의 말씀 일체를 무시하고 버려야한다고 주장한다고 하면 말이 안되지 않을까?

 

그와 마찬가지로 대승비불설은

석가모니부처님이 설하신 것이 아니라 대승논사스님들이 쓴 논장 법문집이라는 것을 말하는 것일뿐이다.

이것을 바르게 말하는 것이 대승경전전체를 모조리 폐기해야 한다고 말한다고 하는 것은 논리비약이다.

우리 불제자들은 대승경전을 비불설로 바로 알고, 장점은 받아들이고, 단점은 비판하고, 독소는 버리기를 바랄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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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대승비불설을 말하면 친일파 앞잡이라는 논리에 대하여 생각해보자.

 

 

빠알리니까야를 역경하시는 각묵스님과 대림스님 전재성거사님, 그리고 위빠사나수행을 전법하는 묘원법사님 정원법사님 김열권법사님 이런 분들은 친일파이고 일본의 앞잡이 일본의 후견인 "제대로 된 사람이 아닌" 것일까?

 

 

성철스님은 백일법문에서 학자들의 주장을 받아들여 "대승경전은 부처님직설은 아니지만 중도가 있으므로 불설이라고도 볼수있다"라고 하셨는데, 성철스님의 이 말씀은 대승경전의 구성은 소설적구성으로 부처님재세시의 불교와는 상관이 없으며, 단지 그 사상이 부처님법과 통하는 것이 있으므로 불설이라고 볼수도 있다는 말씀이다. 결국 실제적으로는 대승비불설을 받아들이시고, 내용적으로 극복하여 하신 것이다.

 

예전에는 원시경전이든 대승경전이든 모두 부처님께서 친히 말씀하신 것으로 믿고 경전 그 자체에 대해서 누구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학문이 발달되고 불교연구가 깊어짐에 따라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경전들의 성립시기가 밝혀지게 되었습니다. (중략) 이러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대승경전은 부처님이 친히 설하신 경전이 아니라'고 주장하여 불교계가 크게 당황하게 되었으니 이것을 대승비불설이라 합니다. 이 대승비불설의 주장에 대해서 많은 학자들이 경전 연구를 거듭한 결과 '대승경전은 부처님이 친히 설하신 경전은 아니다'고 하는 확증이 서게 되었습니다.

 

성철스님은 위에서 일본학자들의 주장을 전적으로 받아들이시고 있는데, 성철스님은 친일파이고 일본의 앞잡이 일본의 후견인 "제대로 된 사람이 아닌" 것일까?

 

 

남방상좌부불교로 가보도록 하자.

대승비불설은 일본인 학자가 처음 주장한 것이라는 말을 하곤 하지만, 사실과 다르다.

남방상좌부불교 국가의 역사를 보면 대승불교와 초기불교가 공존하던 시기가 있었고, 대승불교가 강성하던 시대도 있었다.

남방상좌부불교 국가는 처음부터 끝까지 초기불교의 전통만이 이어진 것이 아니다.

부처님의 원음인 아함경과 니까야를 전승한 남방상좌부불교교단은

처음부터 대승경전이 부처님의 직설이 아님을 알고 말하여 왔다.

일본의 한 학자가 대승비불설을 말하기 까마득히 먼 옛날부터 대승비불설을 말하여 왔다.

남방상좌부불교는 친일파이고 일본의 앞잡이 일본의 후견인 "제대로 된 사람이 아닌" 것일까?

일본과의 교류도 없었던 고시대의 남방상좌부불교국가들은

고시대부터 친일파였고, 일본의 앞잡이였고, 일본의 후견인들이었단 말일까?

 

 

대승불교가 일어나던 시점으로 가보자.

대승경전에는 대승경전을 부처님이 설하신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자들을 멀리하라고 나온다.

당시에 아함경을 전승하고 있던 부파불교의 스님들은

대승경전이 부처님직설이 아니라고 즉 대승비불설이라고 주장한것이다.

이런 고대에 이미 대승비불설을 주장했던 부파불교 스님들은

이미 그때부터 친일파였고, 일본의 앞잡이였고, 일본의 후견인들이었단 말일까?

 

 

초기승단 ... 부처님에게로 가보자.

부처님당시에 대승과 소승이 있었다는 것은 대승경전의 설정이지 사실이 아니다.

성철스님은 백일법문에서 소승과 대승이 부처님재세시에 공존하고 있었다는 것을 부정하고

부처님재세시에는 소승과 대승이란 아예 없었고 그것을 근본불교라고 하며

이후에 부파불교를 소승불교라고 부르시고 있다.

즉 부처님당시에 대승 소승이란 아예 없었다는 것이 성철스님만이 아니라 조계종의 불자교육용 자료에도 버젓이 나온다.

 

근본불교란  부처님과 부처님의 직접 제자들에 의해 이루어진 원초기의  불교를 말하고 , 원시불교란 부처님 제자들 이후부터 부파의 분열 이전까지 백여 년 동안의 불교를 말합니다. 그 뒤로 십수개의 부파가 나뉘어져 서로 이론적 논쟁을 하게 되었는데, 그 시대의 불교를  부파불교라 합니다. 흔히 말하는 소승 불교는 바로 그 부파불교를 가리킵니다. 부파 성립 이후.. 일어난 것이 바로 대승불교입니다.

- 성철스님의 백일법문 중에서-

 

우리가 부처님당시의 사리불존자나 목련존자나 가섭 아난 존자 같은 분들에게 대승경전이 불설인지 물어본다고 하자.

과연 뭐라고 하시겠는가?

 

초기승단의 스님들은 당연히 대승비불설을 말할테니,

초기불교승단은 이미 그때부터 친일파였고, 일본의 앞잡이였고, 일본의 후견인들이었단 말일까?

석가모니부처님도 친일파 일본의 앞잡이 후견인 덜된 사람이란 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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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불교에 큰 충격을 준 대승비불설은 일본인 학자에 의해서 촉발된 것이 사실이겠지만

대승비불설은 일본인 학자가 처음 주장한 것이 아니다.

 

대승경전이 비불설이라는 것은 예전에는 고승대덕이나 이름높은 학자들정도 되셔야 알수 있는것이었다.

 

그러나 지금 우리 불제자들은 아함경과 니까야를 읽고 바로 대승경전이 비불설임을 알고 꿰뚫어본다.

지금 우리 불제자들은 근본불교-초기불교-부파불교-대승불교(초기대승-중기대승-후기대승) 이런 역사를 통해서도

부처님당시에 대소승이란 아예 없었고, 대승의 출현은 부처님반열반한 훨씬 이후의 일임을 안다.

이런 아함경과 니까야 그리고 오픈된 불교역사가 평범한 우리 불제자들조차도

대승경전이 비불설임을, 비불설창작대승경전임을 법답게 추론하여 알고 꿰뚫어 안다.

 

대승경전이 부처님직설이 아니라는 것은

우리 사부대중 모두에게 지극히 충격적인 일이고

믿음과 수행 또는 신행전체에 걸쳐 큰 영향을 끼치지만

그렇다고 하여 사실을 사실대로 말한다고 하여

우리민족의 아픈 역사를 등에 업고

부처님원음을 전법하는 분들에게

친일파 일본의 앞잡이 일본의 후견인이라고

이치에 맞지 않는 말을 하는 것은

삼가야 하고 널리 되돌아봐야 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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