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 자등명법등명이 사념처 위빠사나인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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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자인사 백번 듣고 의심하는 것보다 한번 석가모니부처님이 직접 설하신 초기경전의 것을 확인하니 의심하지 않게됩니다. 부처님의 말씀을 금구성언으로 받아야겠습니다.
사념처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우리 불제자들이 백번 이야기하는 것보다 부처님이 직접 설하신것을 읽는 것이 큰 도움이 될것입니다. 더우기 불제자인 제가 사념처를 찬탄하고 널리 밝히는것은 당연한 것이겟지만 아무래도 부처님이 사념처에 대하여 설하신것을 모아서 법우님들이 한번 직접 읽게 하는 공덕만 할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
부처님이 자등명법등명을 설하신 경우는 꽤 많이 있습니다. 특히 자등명법등명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는가를 부처님은 스스로 설하셨는데 사념처라고 구체적으로 설하셨습니다.
rockshake님이 찾아주신 잡아함의 포살경도 매우 분명하게 자귀의법귀의란 바로 몸 느낌 마음 법에 대한 마음챙김인 사념처임을 설하고 있습니다. 잡아함에 사념처가 자등명법등명임을 설하는 경전들이 또 있습니다.
그렇지만 가장 중요한 경전은 아무래도 부처님 반열반하시기 전의 여로를 기록한 대반열반경에서 사념처가 바로 자등명법등명임을 설한것을 알고 있는것이 매우 중요할것입니다. 부처님은 이렇게 유훈으로서 유교로서 설하고 있는것입니다.
대반열반경에서 석가모니부처님은 아난에게 자등명 법등명에 대해서 설하시고, 사념처가 그것임을 설하시고, 부처님 반열반하신후에 이 법대로(사념처를 닦는 것으로 자등명 법등명을 삼는것) 수행하는 자가 잇으면 그는 부처님의 참제자이고 제일가는 수행자이라고 합니다.
“내가 죽은 뒤에 능히 이 법대로 수행하는 자가 있으면 그는 곧 나의 참 제자요, 또 제일가는 수행자일 것이다.”
吾滅度後。能有修行此法者。則爲眞我弟子第一學者。
오멸도후。능유수행차법자。즉위진아제자제일학자。
한역대반열반경은 여러 가지가 잇는데 장아함경의 2번째경인 유행경이 마하가섭과 아난이 결집한 대반열반경에 가깝습니다. 빠알리삼장엔 디가니까야 16번째경이 대반열반경이고 거기에도 똑같이 자등명법등명이 사념처임을 설합니다. 사념처 위빠사나에 대한 부처님의 원음을 직접 읽어보는 것이 사념처에 대한 의심을 말끔히 씻어내는 데 중요하겟습니다.
아난이 다시 아뢰었다.
“세존께서 병이 나시니 제 마음은 황송하고 두려우며 걱정스럽고 근심되어 어쩔 줄을 모르다가 겨우 정신을 차려 가만히 이렇게 생각하였습니다.
'여래께서는 아직 열반에 드시지 않으셨고, 세간의 눈은 아직 멸하지 않았으며, 큰 법은 아직 없어지지 않았다. 왜 지금 모든 제자들에게 가르침을 내리지 않으실까?'”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여러 비구들이 내게 기대하는 것이라도 있는가? 만일 스스로 '나는 여러 스님들을 거느리고 있다. 나는 여러 스님들을 다스리고 있다'고 말하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은 대중에게 내릴 가르침이 있을 것이나, 여래는 '나는 대중을 거느리고 있다. 나는 대중을 다스리고 있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러니 무슨 대중에게 내릴 가르침이 있겠는가? 아난아, 나는 설해야 할 법을 안팎으로 이미 설하였지만 '보아야 할 것을 모두 통달하였다'고 스스로 자랑한 적은 한 번도 없느니라. 나는 이미 늙었고, 나이 또한 80이나 된다. 마치 낡은 수레를 방편으로 수리하면 좀 더 갈 수 있는 것처럼 내 몸도 또한 그렇다. 방편의 힘으로써 잠시 목숨을 연장할 수 있기에 나는 스스로 힘써 정진하면서 이 고통을 참느니라. 일체의 사물을 생각하지 않고 생각이 없는 선정[無想定]에 들어갈 때, 내 몸은 안온하여 아무런 번민도 고통도 없느니라.
그러므로 아난아, 스스로 맹렬히 정진하되 법(法)에 맹렬히 정진해야지 다른 것에 맹렬히 정진하지 말며, 스스로 귀의하되 법에 귀의해야지 다른 것에 귀의하지 말라.23)
是故。阿難。當自熾燃。熾燃於法。勿他熾燃。當自歸依。歸依於法。勿他歸依。
시고。아난。당자치연。치연어법。물타치연。당자귀의。귀의어법。물타귀의。
23) 참조하여 “자신을 등불로 삼고 법을 등불로 삼으며 다른 것을 등불로 삼지 말라. 자신을 귀의처로 삼고 법을 귀의처로 삼으며 다른 것을 귀의처로 삼지 말라”로 번역하기도 한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한역(漢譯)의 문장[文]에 충실하여 위와 같이 번역하였다. 한역에서 熾燃이라고 번역한것을 보통 등명이라고 번역합니다. 등을 밝힌다의 의미이지요. 그러므로 등명이나 熾燃은 같습니다.
어떤 것을 '스스로 맹렬히 정진하되, 법에 맹렬히 정진해야지 다른 것에 맹렬히 정진하지 말며, 스스로 귀의하되 법에 귀의해야지 다른 것에 귀의하지 말라'라고 하는가?
아난아, 비구는 안의 몸을 관찰하기를 부지런히 하고 게을리 하지 않아야 하며 잘 기억하여 잊지 않음으로써 세상의 탐욕과 걱정을 없애야 한다. 또 밖의 몸을 관찰하고, 안팎의 몸을 관찰하기를 부지런히 하고 게을리 하지 않아야 하며, 잘 기억하여 잊지 않음으로써 세상의 탐욕과 걱정을 없애야 한다. 수(受)와 의(意)와 법(法)도 또한 이와 같이 관찰해야 하느니라. 이것을 아난아, '스스로 맹렬히 정진하되, 법(法)에 맹렬히 정진해야지 다른 것에 맹렬히 정진하지 말며, 스스로 귀의하되 법에 귀의해야지 다른 것에 귀의하지 말라'고 하는 것이다.”
云何自熾燃。熾燃於法。勿他熾燃。當自歸依。歸依於法。勿他歸依。阿難。比丘觀內身精勤無懈。憶念不忘。除世貪憂。觀外身․觀內外身。精勤不懈。憶念不忘。除世貪憂。受․意․法觀。亦復如是。是謂。阿難。自熾燃。熾燃於法。勿他熾燃。當自歸依。歸依於法。勿他歸依。
주) 사념처에 대한 설명입니다. 간략한 정형구로 말씀하셨습니다. 사념처의 구체적행법은 잡아함의 사념처상응이나 중아함경등에 많이 나와있고, 빠알리삼장에선 유명한 대념처경같은 경들이 사념처를 구체적으로 설하고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다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죽은 뒤에 능히 이 법대로 수행하는 자가 있으면 그는 곧 나의 참 제자요, 또 제일가는 수행자일 것이다.”
佛告阿難。吾滅度後。能有修行此法者。則爲眞我弟子第一學者。
주) 이렇게 자등명법등명의 가르침인 사념처를 수행하는 것은 부처님의 참제자이며 제일가는 수행자라고 하십니다. 사념처수행에 대한 잘못된 비방은 이렇게 석가모니부처님의 말과 어긋납니다. 사념처수행을 한는것이 자기를 밝히고 법을 밝히는것입니다. 빠알리식으로 하면 스스로 섬이 되고 법이 섬이 되는것입니다. 사념처는 위빳사나에 다름아닙니다. 그러므로 사념처위빳사나를 수행하는것은 부처님의 참제자요 제일가는 수행자가 되는것입니다. ^^
아래는 향산거사님의 블로그에서 옮겨온 글입니다. 빠알리 대반열반경 영역본을 한글로 번역하신것입니다. 위의 유행경과 같은 부분만 발췌하여 보았습니다.
33. Therefore, Ananda, be islands unto yourselves, refuges unto yourselves, seeking no exteranal refuge; with the Dhamma as your island, the Dhamma as your refuge, seeking no other refuge.
And how, Ananda, is a bhikkhu an island unto himself, a refuge unto himself, seeking no external refuge; with the Dhamma as his island, the Dhamma as his refuge, seeking no other refuge?
아난다야! 그러므로 외부의 귀의처를 절대로 찾지 말고, 그 자신에게 섬[의지할 곳]이 되고 그 자신에게 귀의처가 되어라. 다른 의지처를 하나도 찾지 말고, 진리 법을 자신의 섬으로, 진리 법을 자신의 귀의처로 [하라].
아난다야! 그러면 비구는 어떻게 해서 외부의 귀의처를 절대로 찾지 않고 그 자신에게 섬이 되고 그 자신에게 귀의처가 되며, 다른 의지처를 하나도 찾지 않고 진리 법을 그의 섬으로, 진리 법을 그의 귀의처로 할수있는가?
34. When he dwells contemplating the body in the body, earnestly, clearly comprehending, and mindfully, after having overcome desire and sorrow in regard to the world; when he dwells contemplating feelings in feelings, the mind in the mind, and mental objects in mental objects, earnestly, clearly comprehending, and mindfully, after having overcome desire and sorrow in regard to the world, then, truly, he is an island unto himself, a refuge unto himself, seeking no external refuge; having the Dhamma as his island, the Dhamma as his refuge, seeking no other refuge.
' 그가 세상에 관해서 욕망과 슬픔을 극복한 뒤에 몸으로 몸을 잘 관찰하고 진지하고 분명하게 파악하며 마음을 챙기며 살 때에, 그리고 그가 세상에 관하여 욕망과 슬픔을 극복한 뒤에 느낌으로 느낌을, 마음으로 마음을 그리고 심적 대상으로 심적 대상을 잘 관찰하고 진지하고 분명하게 파악하며 마음을 챙기며 살 때, 그렇게 될 때에 그는 진정으로 외부의 귀의처를 절대로 찾지 않고 그 자신에게 섬이 되고 자신에게 귀의처가 되며, 다른 의지처를 하나도 찾지 않고 진리 법을 자기 섬으로 진리 법을 자기 귀의처로 삼게 되는 것이다.
35. Those bhikkhus of mine, Ananda, who now or after I am gone, abide as an island unto themselves, as a refuge unto themselves, seeking no other refuge; having the Dhamma as their island and refuge: it is they who will become the highest,3) if they have the desire to learn.”
아난다야! 지금이나 내가 떠나고 난 뒤에 다른 귀의처를 하나도 찾지 않고 그들 자신에게 섬이 되고 자신들에게 귀의처가 되어 살아가고 진리 법을 그들의 섬과 귀의처로 삼는 나의 [제자] 비구들, 만약 그들이 배우고자 하는 욕망이 있다면, 최고가 될 사람들은4) 바로 그들이다.”
아래는 디가니까야 16. 대반열반경의 자등명법등명 부분 빠알리 원문입니다. 제가 초기불전연구원에서 번역한 디가니까야를 지금 참조할수 없어 이렇게 빠알리 원문을 올립니다. 죄송합니다. 관심있는분들은 디가니까야를 참조하시면 되겠습니다.
Tasmātihānanda, attadīpā(스스로 섬이되고) viharatha attasaranā(스스로귀의하고) anaññasaranā, dhammadīpā(법을섬으로 하고) dhammasaranā(법에귀의하고) anaññasaranā.
Kathañcānanda, bhikkhu attadīpo viharati attasarano anaññasarano, dhammadīpo dhammasarano anaññasarano?
어떻게 스스로 섬이되고.... 법에귀의하는가?
Idhānanda, bhikkhu kāye kāyānupassī(몸에대한 마음챙김) viharati atāpī sampajāno satimā, vineyya loke abhijjhādomanassam.
Vedanāsu(느낌)…pe… citte(마음)…pe… dhammesu dhammānupassī(법에대한 마음챙김) viharati ātāpī sampajāno satimā, vineyya loke abhijjhādomanassam.
Evam kho, ānanda, bhikkhu attadīpo viharati attasarano anaññasarano, dhammadīpo dhammasarano anaññasarano Ye hi keci, ānanda, etarahi vā mama vā accayena attadīpā viharissanti attasaranā anaññasaranā, dhammadīpā dhammasaranā anaññasaranā,
스스로 섬이되고... 법에귀의한다는것은 이렇게 사념처를 의미한다...
tamatagge me te, ānanda, bhikkhū bhavissanti ye keci sikkhākāmā”ti.
아난다 비구들은 이렇게 수행하고 공부지어라...
이렇게 석가모니부처님은 해탈열반하기 위해선 자등명법등명하시길 바
랬는데 그것은 바로 사념처가 방법이라고 하셨습니다.
자등명법등명이 사념처 위빳사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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