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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셔온 글

명상여행|인도에서 본 팔상록 10

명상여행
‘소설가 정찬주와 떠나는 <인도에서 본 팔상록>’을 연재합니다. 인도를 찾아 붓다의 일생을 여덟 가지로 요약한 팔상록(八相綠)의 현장을 직접 순례하며 쓰게 될 이번 연재는 단순한 기행문에 그치지 않고 오늘을 사는 사람들 모두 공감할 수 있는 우리들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명상여행, 그 이상이 될 것입니다.




왕사성 시녀의 순교를 찬미한 타고르

라즈기르. 붓다 당시에는 라자그리하라고 불렸고, 도시는 빔비사라왕이 머물던 마가다국의 수도였다. 붓다는 녹야원에서 수행자들과 재가자를 합쳐 60명에게 귀의를 받은 뒤, 왜 라자그리하로 향했을까. 해답은 붓다가 빔비사라왕을 만났을 때 그와 한 약속에 있지 않을까. 빔비사라왕이 라자그리하의 판다바산 동굴로 깨닫기 전의 붓다를 찾아와 마가다국에 머물 것을 요청하자 “부처님이 된 후 다시 찾아와 가르침을 주겠다”고 약속했던 것이다.
나는 지금 죽림정사에서 영축산으로 와 있다. 영축산도 관광지로 변해 리프트가 설치되어 산 정상으로 관광객을 실어 나르기에 바쁘다. 
다행히 붓다가 『법화경』 등 수많은 경전을 설한 독수리봉 밑의 향실(香室)을 가려면 리프트를 타서는 안 된다. 빔비사라왕도 붓다에게 존경의 예를 갖추고자 가마나 수레를 타지 않고 산길 초입의 하승(下乘)에서 걸어 올라갔다고 한다. 하승을 우리 식으로 표현하자면 하마비(下馬碑)쯤 된다. 현장의 『대당서역기』를 보면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
“길 도중에 두 개의 작은 탑이 있다. 하나는 하승이라 하는데, 왕이 여기까지 오면 그다음은 걸어서 간다는 뜻이다. 또 하나는 퇴범(退凡)이라 하는데, 범부를 구별하여 거기서부터는 함께 오르지 못한다는 뜻이다.”
붓다의 설법을 듣기 위해 땀을 뻘뻘 흘리며 이 산길을 올라갔을 빔비사라왕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붓다와 빔비사라왕 사이에 얽힌 눈물겨운 이야기가 하나 전해지고 있다. 빔비사라왕이 아들에게 왕권을 빼앗기고 감옥에 갇혀 있을 때였다. 그는 감옥의 창문을 통하여 날마다 붓다를 향해서 예배했다고 한다. 붓다 역시 날마다 감옥의 창문이 있는 곳으로 가 비탄에 빠진 왕을 위로했던 것이다. 빔비사라왕에게는 붓다를 향한 예배가 자신의 목숨을 이어 가는 유일한 힘이었다. 하루는 아들이 빔비사라왕에게 절망 속에서도 살아가는 이유를 묻자 아들에게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저 열린 창문으로 날마다 부처님을 뵙고 예배할 수 있기에 나는 아직 살아 있다.”
아들 아자타샤트루왕은 분기탱천하여 창문을 벽돌로 막고 빔비사라왕의 발목을 잘라 결국은 죽게 하고 만다. 그러고 그는 누구라도 붓다를 예배하면 참형에 처했다.
인도의 시성 타고르는 아자타샤트루왕이 붓다를 박해하던 그때를 소재로 한 편의 산문시를 남기고 있다.

빔비사라왕은 붓다의 절을 짓고 흰 대리석에 찬양의 말씀을 새겼습니다.
저녁때가 되면 궁궐의 여인들과 딸들이 모두 와서 꽃과 빛나는 초롱불을 바칠 것입니다.
아들은 자신의 시대가 와 왕위에 올랐을 때 아버지의 믿음을 피로 씻어 내고 성전에는 제물의 불을 밝혔습니다.

가을 해가 집니다.
저녁 예불 시간이 가까웠습니다.
왕비의 시녀 슈리마티는 붓다께 몸을 바치려는 듯 성스러운 물에 목욕하고는 싱싱한 흰 꽃과 황금 쟁반을 초롱불로 꾸미고 검은 눈을 조용히 들어 왕비의 얼굴을 보았습니다.

왕비는 두려움에 떨었습니다. 왕비는 말했습니다.
“어리석은 계집아, 붓다의 절에 불공을 드리는 이는 누구에게나 죽음의 벌이 내리는 것을 너는 모르느냐.”
“임금님(빔비사라왕)의 뜻입니다.”

슈리마티는 왕비에게 절하고 문을 나와 태자비 아미타 앞에 섰습니다.
번쩍이는 황금 거울을 무릎에 놓고 새 태자비는 검고 긴 머리카락을 갈라 땋고 행운의 붉은 연지를 찍고 있었습니다.
태자비는 젊은 시녀를 보고 손을 떨며 소리쳤습니다.
“얼마나 무서운 파멸을 나에게 가져오려고 하느냐. 어서 다른 데로 가거라.”
슈클라 공주는 창가에 앉아 지는 햇빛 속에서 이야기책을 읽고 있었습니다.
이 여인도 시녀가 성스러운 제물을 가지고 있는 것을 보고 놀랐습니다.
공주는 무릎에서 책을 떨어뜨리며 슈리마티의 귀에다 속삭였습니다.
“죽음 속으로 뛰어들지 마라. 이 무모한 여인이여!”
슈리마티는 이 문 저 문으로 돌아다녔습니다.
시녀는 머리를 들고 이렇게 외쳤습니다.
“오, 궁궐에 있는 여인들이여, 서두르십시오! 붓다께 불공 드릴 시간이 다가왔습니다!”
더러는 면전에서 문을 닫기도 하고, 더러는 시녀에게 욕도 하였습니다.
마지막 햇살이 궁궐 탑 청동의 궁륭(穹空)으로부터 사라져 갔습니다.
깊은 그늘이 거리 구석구석 스며 자리를 잡았습니다. 시끄럽던 거리는 조용해졌습니다. 시바 사원의 종소리는 저녁 예불을 알렸습니다.
투명한 못과도 같이, 깊은 가을 저녁의 어둠 속에서 별들이 빛나며 흔들릴 즈음에, 궁궐의 뜰을 지키는 이가 숲 속에서 붓다의 절에서 타오르는 초롱불을 보고 놀랐습니다.
파수병들은 칼을 뽑아들고 달려가며 외쳤습니다.
“누구냐. 어리석은 자여, 죽음이 두렵지 않은가.”
“나는 슈리마티입니다. 붓다의 하인입니다” 하고 아름다운 목소리가 대답했습니다.
다음 순간 시녀의 심장에서 나온 피가 차디 찬 대리석을 빨갛게 물들였습니다.
별이 반짝이는 고요한 시간에 절 밑에 있는 마지막 초롱불도 꺼졌습니다.

타고르가 슈리마티의 죽음을 예찬한 산문시다. 그러나 이 시는 사(死)의 찬미가 아니라 믿음의 찬미다. 자신을 붓다의 하인이라고 낮추어 말하는 슈리마티의 지고지순한 믿음을 찬미한 것이다. 영원히 반짝일 붓다를 위해 자신의 삶을 바치는 슈마리티의 믿음이 맑고 조용한 가을 못과 같다.


선종 화두의 기원, 염화시중이 탄생한 현장

1300년 전 영축산 봉우리를 찾은 중국 승려 의정은 이러한 시를 남겼다.

영축산 봉우리 올라서서
옛 왕사성 내려다보니
만 년이나 흘러내린 못은 맑고
천 년 지난 그 뜰은 깨끗하건만
옛 일 새겨 주는 빔비사라왕의 길
부서져 남은 왕사성의 지난날 영화
칠보의 선대(仙臺)는 사라지고
하늘꽃비 내리던 빗소리 멈추었네.

실제로 영축산 독수리봉으로 가는 빔비사라왕의 길을 오르다 뒤돌아보면 널따란 분지 같은 왕사성 터가 보이는데, 지금은 가난한 인도 여인들이 땔나무를 하러 드나드는 잡목 숲으로 변해 있다. 칠보의 선대란 아마도 붓다가 제자들에게 법문한 지금의 향실을 말하는 듯하다.
경전에 “한때 부처님께서 기사굴 산중에 계실 때 비구 1250명과 함께하셨는데” 하고 나오는 기사굴 산이 바로 영축산이다. 붓다는 영축산에서 수많은 경전을 설했다. 『법화경』, 『관무량수경』, 『보적경』, 『대집경』, 『허공장경』 등등을 남겼던 것이다.
붓다가 제자들 중에서 마하가섭에게 심법(心法)을 전한 장소도 바로 이 영축산이었다. 붓다가 설법하던 중 홀연히 연꽃을 들어 보이자, 모인 대중 중에 아무도 붓다의 마음을 알지 못할 때 마하가섭이 조용히 미소를 지었다는 얘기가 염화시중이다. 그때 붓다는 마하가섭에게 다음과 같이 정법을 전했으니 ‘염화시중’은 선종의 최초 화두가 된다.
“여래에게 정법안장(正法眼藏) 열반묘심(涅槃妙心)이 있으니 이를 마하가섭에게 전하노라.”
 마하가섭은 붓다의 십대 제자 중에서 두타 제일의 수행자였다. 붓다가 그의 건강을 염려할 만큼 그는 철저한 두타행의 수행자였다.
마하가섭도 붓다처럼 전생에 이미 보살의 공덕을 쌓은 사람이 아닌가 싶다. 왕사성 바라문 가문에서 태어난 그는 오직 청정한 독신 비구로 사는 것이 꿈이었으니 부모와 갈등할 수밖에 없었다.
아들의 전생을 알 리 없는 마하가섭의 부모는 대가 끊어질 것을 걱정해 마하가섭에게 결혼을 강요했다. 청년 마하가섭은 부모가 들어주지 못할 어려운 조건을 제시했다. 금세공인에게 아름다운 여인상을 만들게 하여 부모에게 보여 주면서 그 같은 여인이 있으면 결혼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마하가섭의 부모는 바이샬리 교외의 카필라카 마을로 가서 바라문 가문의 딸인 밧다 카필라니라는 처녀를 찾아내고 만다. 할 수 없이 마하가섭은 그녀의 집을 찾아가서 그녀에게 “세속적인 욕망에 붙잡혀 살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 그러자 밧다도 호응하여 고백한다.
“먼저 찾아와 말씀해 주시니 정말 감사합니다. 저도 마하가섭님과 같은 생각입니다. 우린 부모님을 안심시키고자 결혼하려 할 뿐입니다.”
부부가 된 두 사람은 12년 동안 육체 관계를 갖지 않고 살았다. 양가의 부모가 돌아가실 때까지 기다렸다. 어느 날 밧다가 기름을 짜려고 참깨를 말리고 있었다. 그런데 참깨 속에서 작은 벌레들이 고물거렸다. 기름을 짜면 벌레들이 죽을 것 같았으므로 밧다는 괴로웠다. 또 마하가섭은 밭일을 하다가도 흙을 뒤엎는 소의 괴로움을 생각하니 마음이 아팠다. 그날 부부는 자신들의 괴로움을 이야기한 후 이제야말로 출가할 때가 되었다고 다짐했다. 


왕사성의 사리불과 목련도 붓다에게 귀의하다

빔비사라왕의 아들 아자타샤트루왕도 붓다를 만나 법문을 듣고는 부왕을 죽인 악행을 참회하고 붓다의 가르침을 따랐다. 그러자 왕사성은 다시 빔비사라왕 시절처럼 불심이 넘치는 나라로 바뀌었다.
 붓다의 십대 제자 중에서 지혜제일이라 불리는 사리불(舍利弗)도 이때 붓다에게 귀의했다. 사리불은 라자그리하에서 좀 떨어진 나라다 마을에서 자랐고 부자 바라문의 맏아들이었다. 우파티샤가 원래 이름이었으나 출가한 후 어머니 이름인 사리를 따서 사리불이라 불리었다. 사리불은 여덟 형제 중에서 가장 총명해 베다를 모두 외웠고 예술적인 재능도 뛰어났다. 옆 마을인 코리가라 마을에도 사리불처럼 총명하고 단정한 아이가 있었다. 그의 이름은 코리타였다. 출가하여 그는 목련으로 이름이 바뀌었고 붓다의 십대 제자 중에서 신통제일의 제자가 되었다.
 어느 날 사리불과 목련은 바라문이 집전하는 제사를 구경하려고 길을 나섰다. 길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마차나 코끼리를 타고 제사 장소로 가고 있었다. 악기 소리에 맞추어 모인 사람들이 모두 춤추고 노래 불렀다. 사리불과 목련도 처음에는 그들을 따라 했다. 그러나 그때 사리불은 한순간 깊은 생각에 빠졌다.
 “이 수많은 사람들이 백 년이 지난 후에도 살아서 이처럼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를 수 있을까.”
 목련도 사리불과 같은 생각이었다. 사리불과 목련은 삶의 무상함을 느꼈다. 집으로 돌아가면서 서로 출가하여 덧없는 세상을 뛰어넘는 진리를 깨닫자고 맹세했다. 집으로 돌아온 사리불은 출가하겠다고 말했으나 부모는 사리불의 청을 거절했다.
 “너는 바라문인 가문의 대를 잇고 제사를 지내야 할 책임이 있는 큰 자식이? 더구나 너는 여덟 형제 중에서 가장 믿고 의지하던 아들이 아니냐.”
 부모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사리불은 7일 동안 단식한 끝에 출가의 허락을 받아 라자그리하에서 많은 제자를 거느리고 있는 회의론자 산자하의 제자가 되었다. 이후 사리불은 7일 만에 산자하의 경지에 도달하여 함께 출가했던 목련과 또다시 다른 스승을 찾아 나선다. 이윽고 사리불과 목련은 라자그리하 거리에서 탁발하는 한 수행자를 만난다. 그가 바로 녹야원에서 붓다에게 처음으로 설법을 들었던 다섯 명의 수행자 중 한 사람인 앗사지(馬勝) 비구였다. 사리불이 앗사지에게 말을 걸었다.
 “수행자여, 그대의 스승은 어떤 분이십니까.”
앗사지는 걸음을 멈추고 사리불에게 대답했다.
“나의 스승은 부처님입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무엇입니까.”
“부처님의 제자가 된 지 얼마 되지 않아 부처님의 가르침을 자세히 말씀드릴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제가 감명받았던 가르침은 이렇습니다.”
앗사지는 사리불과 목련에게 붓다의 가르침 중에서 연기(緣起)를 얘기했다. 그러자 사리불은 진리를 볼 수 있는 법안(法眼)이 생겼고, 그는 붓다의 제자가 될 것을 결심했다.
붓다는 누구든 차별하지 않았고, 근기에 맞는 설법을 하여 그들을 깨달음에 이르도록 했다. 제자들 중에는 머리가 나쁜 출라판타카도 있었다. 한역으로는 주리반특(周利槃特)이라 하는데, 그는 머리가 아둔해 붓다의 말씀을 한 문장도 외우지 못했다. 반면 그의 형 마하판타카는 매우 영리했다. 출라판타카는 형을 따라 출가했으나 늘 형에게 구박만 받았다.
“진홍빛 연꽃이 새벽에 피어나 향기를 내는 것 같이, 창공에 빛나는 태양과 같이, 만물을 널리 비추어 밝히는 부처님을 보라.”
이와 같은 붓다의 말씀도 넉 달이 지나도록 외우지 못했다. 형은 동생을 붓다의 제자로 만들고 싶었으나 더는 참을 수 없었다. 그래서 형은 동생을 절 밖으로 쫓아 버렸다. 마침 붓다가 그곳을 지나다가 출라판타카를 발견하고 물었다.
“출라판타카여, 너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느냐.”
출라판타카는 형이 자신을 내쫓았다고 사실대로 말했다. 그러자 붓다가 다시 말했다.
“출라판타카여, 너는 내게 귀의하지 않았느냐. 형에게 쫓겨났더라도 내게 와야 한다. 그러니 나와 함께 가자꾸나.”
출라판타카는 붓다를 따라가 새로운 가르침을 받았다.
“너는 정사 앞에서 내가 준 베를 만지며 ‘먼지와 때를 털어 버리자’는 말만 하면 된다.”
출라판타카는 몇 달 동안 끈기 있게 붓다가 시킨 대로 했다. 그동안 깨끗한 베는 까맣게 변했다. 어느 순간 출라판타카는 더러워진 베를 보고는 깨달음을 얻었다.
“깨끗한 베도 더러워지는구나. 이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없구나(諸行無常).”
붓다는 출라판타카의 마음속 변화를 살피고는 말했다.
“이 베만 먼지와 때에 더러워진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사람의 마음도 마찬가지다. 그러니 마음속의 번뇌를 없애는 것이 중요하다.”
마침내 출라판타카도 아라한이 되었고 신통력을 얻었다. 이처럼 붓다는 차별 없이 죽림정사가 있는 왕사성과 사위성의 기원정사를 오가며 고통으로 신음하는 어리석은 중생들에게 진리를 설하여 그들 스스로 깨달음에 이르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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