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여행|인도에서 본 팔상록 9(녹원전법상) |
‘소설가 정찬주와 떠나는 <인도에서 본 팔상록>’을 연재합니다. 인도를 찾아 붓다의 일생을 여덟 가지로 요약한 팔상록(八相綠)의 현장을 직접 순례하며 쓰게 될 이번 연재는 단순한 기행문에 그치지 않고 오늘을 사는 사람들 모두 공감할 수 있는 우리들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명상여행, 그 이상이 될 것입니다. 붓다여, 감로의 문을 여소서 서구에서 온 한 여인이 풀밭에 앉아 울고 있다. ‘진리를 관하다(法眼)’라는 뜻이 있는 다메크 탑을 바라보면서 눈물을 흘리고 있다. 그러나 그녀 옆에 앉은 두 명의 친구들은 웃고 있다. 그녀는 슬퍼서 우는 것이 아니라 감격에 겨워서 눈물을 흘리고 있다. 다메크 씩〈?사람의 마음을 끌어당기는 무언가가 있다. 티베트에서 온 여인뿐만 아니라 검은색 가사를 입은 대만의 순례자들도 탑돌이를 하고 있다. 한국에서 온 어린 대학생들도 신기한 듯 탑을 돌고 있다. 붓다가 최초로 설법한 성지라 하여 아쇼카대왕이 작은 탑을 조성하였는데, 굽타왕조에 이르러 현재와 같은 거대한 모습으로 증축되었다고 한다. 높이가 40여m에 이르니 우리나라 아파트로 치자면 20층 정도인 셈이다. 다메크 탑 건너편에는 사슴동산도 있다. 실제로 사슴들이 풀을 뜯고 있다. 그래서 녹야원(鹿野苑)이라 부르는 모양이다. 현재 이곳의 지명은 사르나트이다. 그런데 붓다는 왜 부다가야 보리수 아래서 위없는 깨달음을 성취하시고 100km쯤 떨어진 이곳 사르나트로 오셨을까. 당시 사르나트 녹야원에는 다섯 명의 수행자가 머물고 있었다고 한다. 그들은 우루벨라 고행촌에서 붓다가 6년 동안의 고행을 포기하자, 실망한 나머지 또 다른 스승을 만나기 위해 바라나시로 떠났던 수행자들이었다. 그들은 깨달음을 얻지는 못했으나 오랫동안 변함없이 수행한 사람들이었다. 붓다는 이제 그들에게도 아라한이 될 시절 인연이 찾아왔다고 판단했던 것일까. 그러나 붓다는 선뜻 나서지 못했다. 설법을 한다면 다섯 명의 수행자에게만 할 수는 없었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에게 당신이 깨달은 진리를 설해야 했다. 그것이 바로 붓다가 이 세상에 방편으로 탄생한 의미이기 때문이었다. 붓다는 태어나는 순간 이미 ‘하늘 위아래 나 홀로 존귀하도다. 삼계가 모두 고통에 헤매고 있나니 내 마땅히 이를 편안케 하리라’고 하늘과 인간 세상에 약속하셨던 것이다. ‘세상 사람들이 깊고 미묘한 진리를 이해할 수 있을까. 여래가 깨달은 진리가 도리어 해가 되지는 않을까. 너무 어려워 감동하지 못해 외면하지는 않을까.’ 이와 같은 붓다의 망설임이 『상응부경전』에 다음과 같이 나온다. 고행 끝에 겨우 얻은 이 법을 사람들에게 어찌 설해야 할까. 오! 탐욕과 노여움에 불타는 사람들에게 이 법을 알리기가 쉽지 않으리라. 그러자 허공에서 범천이 간절한 시로 상념에 잠긴 붓다에게 간청한다. 악마의 군대를 쳐부순 그 마음은 월식을 벗어난 달과 같네. 자, 어서 일어나시어 지혜의 빛으로 세상의 어둠을 비춰 주시오. 그래도 붓다가 생각에 잠겨 있자, 이번에는 대범천이 시로 말한다. 이전부터 마가다국에서는 때묻은 자들이 부정한 법을 말하고 있습니다. 감로의 문을 여소서. 청정한 부처님의 진리를 사람들에게 들려주소서. 범천이 ‘지혜의 빛으로 세상의 어둠을 비춰 달라’는 간청이나 대범천이 ‘때묻은 자들이 부정한 법을 말하고 있다’고 한 개탄은 당시 인간 세상의 혼탁함을 나타낸 말이었다. 그 혼탁함은 2천5백 년이 지난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붓다는 더 망설일 수 없었다. 붓다는 부다가야 보리수 아래서 다섯 명의 수행자가 머물고 있는 사르나트 녹야원으로 떠났다. 사르나트 박물관에서 약 5분 거리에 챠우칸디 스투파가 있다. 다섯 명의 수행자가 붓다를 맞이했다고 해서 영불탑(迎佛塔)이라고도 부른다. 허물어져 거대한 흙더미 같지만 위로 올라가서 보니 마치 전망대처럼 사르나트와 바라나시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영불탑에서 다섯 명의 수행자는 붓다가 멀리서 걸어오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들은 그때까지도 붓다에게 우루벨라 고행촌에서 받은 실망감을 떨쳐 버리지 못하고 있었다. “저 수행자는 싯다르타가 아닌가. 6년 동안 고행을 했으면서도 깨달음을 이루지 못한 싯다르타 태자가 아닌가.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음식도 먹는 타락한 수행자가 아닌가. 우리가 또다시 고행촌에서 한 것처럼 싯다르타를 시중들 필요가 있을까. 이제 스승의 예를 갖추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래도 한때 시중을 들었으니 손발 씻을 물과 음식이나 내다 주고 그가 무엇을 하든 신경을 쓰지 않으리라.” 그러나 그들은 붓다를 가까이에서 보자마자 감격했다. 눈물이 나오려고 했다. 목이 멨다. 빛이 나는 법신(法身)을 보는 것처럼 눈이 부셨다. 다섯 명의 수행자는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려 붓다에게 예배하고 시중을 들었다. 한 사람은 붓다의 누더기 가사를 받아 들었고, 또 한 사람은 붓다가 앉을 자리를 쓸었으며, 또 한 사람은 발 씻을 물을 떠오고, 또 한 사람은 붓다의 발을 씻어 주었고, 또 한 사람은 붓다가 먹을 음식을 내왔다. 한 사람이 붓다에게 말했다. “친구여, 가장 윗자리에 앉으시오.” 그러자 붓다가 따뜻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제 그대들은 여래를 친구라고 불러서는 안 된다. 나는 위없는 깨달음을 이루었다. 내 가르침을 따른다면 그대들도 아라한이 될 것이다.” 붓다는 자신을 가리킬 때 여래(如來)라 부르고 있었다. 붓다, 녹야원에서 중도와 사성제를 설하다 사슴들이 붓다의 전생을 얘기해 주는 것 같다. 『구색녹경(九色鹿經)』에 나오는 얘기다. 붓다는 전생에 아홉 빛깔의 사슴이었던 적도 있었다. 한 사내가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자 사슴은 자신의 뿔을 디밀어 사내를 살렸다. 그런 후 사슴은 기진맥진하여 쓰러지고 마는데, 그 나라 왕비가 아홉 빛깔의 사슴 가죽으로 만든 방석과 사슴 뿔로 만든 부채 자루를 갖고 싶어 했다. 사내는 왕의 상금이 탐이 나서 군사들에게 사슴의 위치를 알려준다. 그 업보로 사내의 얼굴에는 갑자기 종기가 났고, 군사들에게 잡혀 온 사슴이 왕에게 전후 사정을 얘기하자, 왕은 사내에게 의리를 저버린 사람이라 하여 벌을 내린다는 얘기다. 동화 같은 붓다의 전생담이지만 상징하는 바가 크다. 사내는 탐욕에 불타는 중생을, 사슴은 혼신의 힘을 다해 중생을 구제하는 붓다를 상징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의 녹야원에는 사슴들이 우리에 갇혀 순례자들이 던져 주는 사과나 당근을 먹고 있다. 인도 아이들이 눈빛을 반짝이며 집요하게 사슴 먹이를 사달라고 호객한다. 붓다가 어느 전생에 사슴이었다는 얘기를 알고 있기에 순례자들은 강매(?)를 당한다. 한국에서 온 비구니 스님이 좌선을 하고 있다. 다메크 탑을 붓다인 양 마주하고 가부좌를 틀고 있다. 석양이 기울어 날이 좀 선선해졌다. 녹야원 여기저기서 좌선하는 사람들도 많아지고 있다. 나도 풀밭에 앉자 붓다가 다섯 명의 수행자에게 처음으로 한 설법이 무엇이었는지 상념에 잠긴다. 붓다가 다섯 명의 수행자에게 설법한 시각은 어둠이 녹야원의 사슴들을 부드럽게 감싸고 있을 때였다. 달빛과 별빛이 흘러들어 밤의 정령이 활동하는 시간에 붓다도 초저녁부터 들었던 선정에서 막 깨어난다. 붓다 앞에는 다섯 명의 수행자가 간절하게 청법의 예를 갖추고 있었다. 마침내 붓다가 다섯 명의 수행자를 위해 이 세상에 처음으로 법을 설하였다. 그래서 이때의 설법을 ‘초전법륜(初轉法輪)’이라 한다. 붓다의 음성은 달빛과 별빛처럼 은은하고 또록또록하게 수행자들의 영혼을 적셨다. “수행승들이여, 세상에는 두 개의 극단이 있다. 수행자는 그 어느 쪽으로 기울어도 안 된다. 두 개의 극단이란 무엇인가. 첫째는 본능이 하자는 대로 욕망의 쾌락에 빠지는 일인데, 이는 천박하고 저속하며 어리석고 무익하다. 둘째는 자기 자신을 괴롭히는 데 빠지는 일인데, 이는 고통스럽고 천박하고 무익하다. 수행승들이여, 여래는 양 극단을 버리고 중도(中道)를 깨달았다. 이 중도에 의해서 통찰과 새로운 인식을 얻었고, 번뇌의 세계를 완전히 극복한 니르바나에 이르렀다.” 붓다는 계속해서 설법했다. 『전법륜경(轉法輪經)』의 붓다의 말씀은 이렇다. “수행승들이여, 중도란 이런 것이다. 여덟 가지로 이루어진 성스러운 길이다. 올바른 견해(正見), 올바른 결의(正思), 올바른 말(正語), 올바른 행위(正業), 올바른 생활(正命), 올바른 노력(正精進), 올바른 생각(正念), 올바른 명상(正定)이다.” 중도를 구체적으로 실천하는 내용이 이와 같은 팔정도(八正道)라면, 중도(中道)와 정도(正道)는 동의어가 아닐까. 중도는 유교의 중용처럼 가운데가 아니라, 올바름과 같은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붓다는 이어 ‘네 가지의 성스러운’ 이른바 사성제(四聖諦)를 설하였다. “수행승들이여, 괴로움에 대한 성스러운 진리(苦聖諦)는 이와 같다. 태어남은 괴로움이고 늙음도 괴로움이며, 질병도 괴로움이고 죽음도 괴로움이다. 미운 자와 만나는 것도 괴로움이고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는 것도 괴로움이며, 갖고 싶은 것을 가질 수 없는 것도 괴로움이며, 인간을 이루는 모든 물질과 정신의 요소는 다 괴로움이다.” 붓다는 괴로움의 원인에 대한 성스러운 진리(苦集聖諦)도 설법했다. “수행승들이여, 괴로움의 원인에 대한 성스러운 진리란 이와 같다. 다시 태어나는 원인이 되고, 기쁨과 탐욕을 따르며, 여기저기서 즐거움을 찾는 욕망을 말한다. 감각이 이끄는 욕망과 생존하려는 욕망과 죽음에 대한 욕망이다.” 세 가지의 본능적인 욕망이 있는데, 그 첫째는 감각적인 욕망이 있고, 두 번째는 살려고 하는 생존의 욕망이 있으며, 세 번째는 생존에서 도피하려는 죽음의 욕망이 있다는 것이다. 이 세 가지의 욕망 때문에 인간은 고통이 끝없이 반복되는, 즉 윤회를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윤회란 전생과 금생의 생사만이 아니라, 순간적인 상태로는 고통이 있는 한 들숨과 날숨의 반복도 윤회가 된다. 붓다는 설법을 계속하였다. “수행승들이여, 괴로움의 극복에 대한 성스러운 진리(苦滅聖諦)란 이와 같다. 욕망을 남김없이 없애고 단념하고 버리고 벗어나 집착이 없어지는 것을 말한다.” 붓다는 괴로움을 극복하는 데 실천하는 진리(苦滅道聖諦)도 설하였다. “수행승들이여, 괴로움의 극복을 실현하기 위한 길의 성스러운 진리란 이와 같다. 여덟 가지로 이루어진 성스러운 길이다. 올바른 견해, 올바른 결의, 올바른 말, 올바른 행위, 올바른 생활, 올바른 노력, 올바른 생각, 올바른 명상이다.” 붓다는 다시 자신의 깨달음을 예로 들어 반복해서 설법했다. “여래는 괴로움에 대한 성스러운 진리를 발견했다. 그 진리를 철저하게 인식하지 않으면 안 되었고, 이미 철저하게 인식했다. 여래는 괴로움의 원인에 대한 성스러운 진리를 발견했다. 그 진리를 끊어 없애지 않으면 안 되었고, 이미 끊어 없앴다. 여래는 괴로움의 극복에 대한 성스러운 진리를 발견했다. 그 진리를 실현하지 않으면 안 되었고, 이미 실현했다. 여래는 괴로움의 극복을 실현하기 위한 길의 성스러운 진리를 발견했다. 그 진리를 실천하지 않으면 안 되었고, 그리고 이미 실천했다.” 붓다는 마지막으로 다섯 명의 수행자에게 설법했다. “수행승들이여, 이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에 대해 이와 같이 각각 세 단계로 나누고, 열두 가지 양상에 대해 올바르게 인식함으로써 나는 비로소 부처가 되었다. 나의 해탈은 흔들림이 없다. 이것은 내 마지막 생애이고, 이후에는 다시 태어나는 일은 없을 것이다.” 붓다의 설법이 끝나자마자 콘단냐는 깨달음을 얻어 아라한이 되었다. 이어서 밧파, 밧디야, 마하나만, 앗사지(馬勝)도 깨달아 아라한이 되었다. 다섯 명의 수행자가 모두 아라한이 된 것이었다. 붓다는 이들 말고도 자신의 가르침을 듣는 순간 아라한이 될 수행자가 누구인지 헤아려 보았다. 가장 먼저 떠오른 사람은 바이샬리 교외에서 만났던 첫 번째 스승 아라다 카라마였다. 그러나 그는 이미 죽고 없었다. 라자그리하에서 만났던 두 번째 스승 우드라카 라마푸트라도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니 위없는 깨달음을 알려 줄 방법이 없었다. 하는 수 없이 붓다는 다섯 명의 아라한과 함께 녹야원에 머물면서 순번을 정하여 바라나시로 나가 탁발을 하며 머물렀다. 이때 바라나시 부호의 아들 야샤스가 출가했다. 야샤스는 시중드는 여자들에 둘러싸여 환락과 애욕에 빠져 살고 있었다. 그런데 야샤스는 어느 날 새벽에 일찍 일어나 밤새 유희를 즐겼던 시녀들의 잠자는 모습을 보고는 크게 실망했다. 시녀들은 조금도 아름답지 않았다. 헝클어진 채 시체처럼 아무렇게 늘어져 자고 있었다. 야샤스는 갑자기 자신의 삶이 허무했다. 그래서 밖으로 나와 녹야원까지 걸었다. 야샤스는 “아아, 야샤스는 싫구나. 한심스럽구나”라고 중얼거리며 걸었다. 야샤스가 탄식하는 소리는 새벽 공기를 가르며 새벽 산책을 하는 붓다에게까지 들렸다. 붓다가 다가와 야샤스에게 말했다. “야샤스여, 붓다가 머무는 녹야원에는 싫은 것도 한심스러운 것도 없구나. 야샤스여, 여기 앉겠느냐. 여래는 너를 위해 진리를 설해 주겠다.” 야샤스는 붓다의 설법을 듣고는 곧 아라한이 되었다. 다섯 명의 수행자 이후 첫 번째로 깨달음을 이룬 셈이었다. 야샤스가 아라한이 된 후 그의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그의 아내도 붓다의 설법을 들은 후 재가 신도가 되었다. 그의 가족이 모두 불교로 귀의하자, 그 파장은 컸다. 야샤스의 친구 네 사람과 50명의 젊은이가 집단으로 출가를 하였다. 붓다는 예순 명의 제자들을 위해서 또 설법을 했다. “수행승들이여, 여래는 신과 인간의 온갖 속박 속에서 자유로워졌다. 수행승들이여, 이제는 편력의 길로 떠나라. 많은 사람들과 신들의 이익을 위해, 안락을 위해, 세상에 자비를 베풀기 위해 길을 떠나라. 길을 떠날 때는 같은 길을 두 사람이 함께 가지 말라. 수행승들이여, 처음도 좋고 중간도 좋고 끝도 좋은 법, 내용과 이론이 갖추어진 진리를 설하라. 안전하고 깨끗한 수행 생활을 보여 주어라. 세상에는 때가 덜 묻은 사람이 있다. 그들은 진리를 듣지 않으면 퇴보하지만, 진리를 들으면 진리를 깨달을 것이다.” 붓다의 제자는 순식간에 60명이 되었고, 붓다는 빔비사라왕이 통치하는 마가다국으로 떠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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