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여행|인도에서 본 팔상록 8 (수하항마상) |
‘소설가 정찬주와 떠나는 <인도에서 본 팔상록>’을 연재합니다. 인도를 찾아 붓다의 일생을 여덟 가지로 요약한 팔상록(八相綠)의 현장을 직접 순례하며 쓰게 될 이번 연재는 단순한 기행문에 그치지 않고 오늘을 사는 사람들 모두 공감할 수 있는 우리들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명상여행, 그 이상이 될 것입니다. 싯다르타, 고행을 버리다 대탑으로 가는 길은 예나 지금이나 순례자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순례자들의 얼굴 색깔도 다양하다. 세계 각국에서 모여든 듯하다. 붓다의 진리가 지구인의 영혼을 적시고 있다는 증거다. 나 역시 걷고 싶지만 자전거에 의자가 붙은 릭샤를 타고 만다. 릭샤꾼이 다가와 애절한 눈빛으로 하소연해서다. 잡생각이 많은 내 몸무게가 힘겨운지 릭샤가 오르막길에서 멈추곤 한다. 이윽고 4각 4면으로서 위로 갈수록 뾰족해지는 대탑이 지척에 보인다. 그러나 이곳이 불교의 성지 중에 성지가 된 까닭은 대탑 뒤에서 큰 그늘을 드리운 보리수 때문이다. 바로 그 보리수 아래서 싯다르타가 위없는 깨달음을 이뤘던 것이다. 보리수의 그늘 같은 붓다의 덕화는 시공을 초월하여 헤아릴 길이 없다. 순례자들의 걸음걸이는 아름답다. 빠르거나 늦거나 걸음걸이의 모습은 하나같이 간절하다. 모두 얼굴빛은 다르나 땅에 입맞춤하듯 한 걸음 한 걸음 대탑을 향해 걸어가고 있다. 순간순간 깨어 있다는 느낌이다. 한국인 스님들의 모습도 더러 눈에 띈다. 문득 순례자들의 행렬을 따라 대탑으로 가고 있는 내가 부끄러워진다. 전정각산에서 6년 동안의 혹독한 고행을 마치시고 저 보리수 아래 고독하게 앉아 계셨던 싯다르타의 모습이 어른거린다. 6년 동안 고행을 하고 난 뒤, 싯다르타는 수행 방법을 바꾸지 않을 수 없었다. 고행을 더 밀고 나간다면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겨우 한 가닥 목숨만 남은 상태에서 싯다르타는 수행 방법으로써 지금 자신이 하고 있는 고행만이 최선인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내가 6년 동안 견딘 고행보다 더한 고행은 없을 것이다. 나는 고행의 극단까지 가 보지 않았던가. 과거에 고행했던 바라문들도 이 정도 수준의 고행이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미래에 누군가가 고행을 한다 해도 이보다 더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데도 나는 아직 위없는 깨달음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면 다른 길은 없는 것일까.’ 문득 싯다르타는 카필라성 시절이 떠올랐다. 부왕과 농경제에 참가했을 때 나무 그늘에 앉아 선정삼매에 든 기억이 떠올랐다. 잠시 욕망의 세계를 벗어났던 그 경험은 고행 없이 이루어진 삼매였다. 마침내 싯다르타는 선정을 방편 삼아 생사윤회를 끊는 깨달음에 다가서기로 결심했다. ‘고행을 지속한다는 것은 몸을 해칠 뿐이니 나를 위해서도, 세상 사람을 위해서도 좋은 일이 아니다. 그렇다. 선정을 하기 위해서는 우선 지칠 대로 지친 내 몸을 추스려야 한다.’ 싯다르타는 건강을 회복하기 위해 공양을 하기로 했다. 그러려면 수행자로서 최소한의 위의를 갖추어야 했다. 싯다르타는 옷을 구하기 위해 공동묘지로 갔다. 공동묘지에는 시체를 싸던 천 조각들이 널려 있었다. 수자타의 공양을 받고 선정에 들다 다음 날. 싯다르타는 분소의를 걸치고 탁발을 나갔다. 우루빌라 땅 대부분은 크샤트리아 계급인 장군의 소유지로 그에게는 천 마리가 넘는 소들이 있었고, 소젖을 짜는 어여쁜 딸 수자타가 있었다. 수자타는 새벽에 소젖을 짜 끓인 다음 쌀을 넣고 죽을 쑤어 아침마다 수행자들에게 보시를 했다. 그날도 수자타는 끓인 소젖에 쌀을 넣고 죽을 끓이고 있었는데, 그날따라 죽 위에 만(卍)자 문양이 나타났다. ‘상서로운 문양이 나타난 이 죽을 먹는 수행자는 부처님이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수자타는 가슴이 설레ㅆ다. 수자타는 황금 바리때에 죽을 담아 놓고 수행자를 기다렸다. 그러나 아침이 다 지나가는데 단 한 사람의 수행자도 나타나지 않았다. 수자타는 조급한 마음에 시녀 웃타라를 밖으로 보내 수행자가 오는지 살펴보라고 시켰다. 이윽고 웃타라를 따라 들어온 싯다르타는 수자타가 만든 죽을 공양 받았다. 죽을 끓이는 동안 만(卍)자가 나타났다는 얘기를 수자타에게 전해들은 싯다르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 이 죽으로 힘을 얻은 나는 최고의 깨달음을 이룰 것이다.’ 싯다르타는 수자타의 공양을 받고 나서 감사의 표시로 합장을 했다. 싯다르타가 일어서 나가려 하자, 수자타가 말했다. “황금 바리때를 드리겠사오니 가지고 가십시오.” 비로소 싯다르타는 수행자로서 한 벌의 옷과 바리때 하나를 (一衣一鉢) 갖춘 셈이었다. 우루빌라 마을에서 나온 싯다르타는 수염을 깎고 몸을 씻기 위해 나이란자나강에 몸을 적셨다. 이를 지켜본 다섯 명의 수행자는 극도로 실망했다. 싯다르타가 고행을 극단으로 밀고 갈 때만 해도 깨달음이 가까워졌다고 기대했는데, 이제는 그게 아니었다. 그들은 싯다르타에게 속았다며 분하게 여겼다. “싯다르타는 고행을 6년 동안이나 했으면서도 깨닫지 못한 사람이다. 그런 그가 이제는 세상 사람들과 같이 음식을 먹는구나. 그러니 우리는 타락한 싯다르타를 시중들 필요가 없어졌다.” 그들은 싯다르타에게 더는 기대할 것이 없으므로 앞으로는 스스로 알아서 수행할 수밖에 없다며 녹야원으로 떠나 버렸다. 그러나 싯다르타는 그들을 붙잡지 않았다. 우루빌라 마을 저편에 선 보리수를 향해 걸음을 천천히 옮길 뿐이었다. 싯다르타는 길을 가는 도중에 풀을 깎고 있는 스바티카를 만나 풀을 얻었다. 풀의 이름은 길상초였다. 드디어 싯다르타는 동쪽을 향해 길상초를 깔고 앉아 맹세했다. ‘내 여기서 위없는 깨달음을 얻지 못한다면 차라리 이 몸이 부서지는 한이 있더라도 마침내 이 자리에서 일어서지 않으리.’ 싯다르타, 마왕을 항복시키다 보리수 아래 앉은 싯다르타는 자신의 의지를 시험하기 위해 마라 파피야스를 불러냈다. 마라(魔羅)는 줄여서 마(魔)라 하고, 파피야스를 파순(波旬)으로 음역하는데, 그 뜻은 ‘더없이 나쁜 자’이고, 그가 욕계의 왕이 된 까닭은 일찍이 전생에 단 한 번 보시한 공덕이 있기 때문이었다. ‘욕계의 왕은 마라 파피야스다. 그가 모르는 사이 내가 위없는 깨달음을 얻는다는 것은 떳떳하지 못하다. 마라를 불러내 나를 시험해 보자. 마라를 항복시키면 욕계의 신들은 모두 내 가르침에 고개를 숙일 것이다.’ 욕계의 왕 마라는 세 명의 딸을 보내 싯다르타를 유혹하게 했다. “꽃피는 봄이군요. 나무와 풀도 싱싱하게 자라고 있어요. 사람에게 봄이 있다면 젊은 시절일 거예요. 젊음은 두 번 다시 되풀이되지 않죠. 당신은 젊고 풋풋하군요. 우리들이 어여쁘지 않은가요. 우리와 함께 놀아요.” 이에 싯다르타는 조금도 마음에 흔들림이 없었다. 오히려 부드러운 말씨로 그녀들을 타일렀다. “그대들의 몸은 비록 아름답지만 온갖 악으로 가득해 견고하지 않고 더러움이 흘러 생로병사가 따른다. 손에는 팔찌, 귀에는 귀고리를 흔들면서 교태 섞인 웃음으로 탐욕의 화살을 쏘지만 지혜로운 사람은 그대들의 욕망을 독약으로 여긴다. 칼날에 발린 꿀은 혀를 상하게 하고 사악한 욕정은 독사의 머리와 같으니 내 이미 모든 유혹을 뛰어넘었다. 그대들은 모두 본래의 모습을 드러내고 물러갈 것이다.” 그래도 마라의 세 딸들이 물러가지 않자 싯다르타는 다시 말했다. “그대들이 천녀의 모습을 한 까닭은 옛날에 한 번 선업을 닦았기 때문이다. 나쁜 짓을 하면 반드시 지옥에 떨어져 고통받게 되니 물러가거라.” 싯다르타의 이 한마디에 마라의 세 딸들은 추한 노파로 변해 탄식하며 물러갔다. 그러자 마라는 화가 나 보리수를 향해 태풍과 함께 폭우를 쏟았다. 또 악귀를 보내 온갖 악행으로 싯다르타의 선정을 방해했다. 그래도 싯다르타가 보리수 아래서 일어나지 않자, 이번에는 마라가 직접 나타났다. “석가족의 아들, 싯다르타여. 그대는 속히 일어나 이곳을 떠나라. 그대에게는 전륜성왕의 지위가 보장되어 있지 않은가. 이제 세상을 다스리는 위대한 왕이 되어 사람들을 지배하고 오감의 쾌락이 주는 미묘한 맛을 마음껏 즐기라. 석가족의 아들이여! 그대가 추구하는 도는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단지 피로만 더할 뿐임을 어찌 알지 못하는가.” 이에 싯다르타가 말했다. “마라여, 그대는 단 한 번의 공양으로 욕계의 왕이 되었소. 반면에 나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생애를 두고 내 몸까지도 중생을 위해 베풀어 왔소. 그렇기 때문에 나는 부처의 자리에 오를 수 있는 것이오.” 마라는 쉽게 물러서지 않았다. “전생에 내가 공양한 것은 방금 그대가 말한 바와 같지만 그대가 전생에 공양한 일을 증언할 자는 없소. 그러니 이 승부는 그대가 진 것이오.” 싯다르타는 당황하지 않고 자신의 손을 대지에 댄 채 말했다. “만물의 의지처인 이 대지, 움직이는 것이나 움직이지 않는 것이나 모든 것에 공평한 이 대지가 나를 위해 진실한 증인이 될 것이오. 자, 대지여, 나를 위해 증언해다오.” 그러자 대지의 여신인 수타바라가 나타나 증언했다. “당신이 말씀하신 그대로입니다. 저희가 증인이 되겠습니다. 당신이야말로 인간과 하늘의 스승이 되실 분입니다.” 결국 싯다르타는 마왕 마라를 굴복시킴으로써 선정에 들 수 있었다. 그날 밤 초저녁에는 전생을 아는 지혜, 즉 숙명통을 얻어서 윤회하였던 수많은 생을 돌이켜 기억할 수 있었다. 한밤중에는 무량한 중생들이 업에 따라 오가는 것이 보이는 천안통을 얻었다. 또 번뇌가 사라지고 그 자리에 지혜가 나타났다. 진리를 보지 못하게 하던 무명에서 벗어났다. 고통의 원인을 거슬러 올라가 보니 모든 고통에는 무명이 자리 잡고 있었다. 이른바 십이연기의 도리를 관했다. 싯다르타, 마침내 위없는 깨달음을 이루다 마침내 싯다르타가 붓다가 되는 순간이었다. 해탈의 순간이었다. ‘나의 해탈은 흔들리지 않는 것이다. 이것이 내 마지막 생애이고, 이 이상 다시 태어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생사윤회의 지배를 받지 않게 된 붓다는 다시 한 번 더 자신의 경지를 확인하고 선언했다. 다시 태어나야 할 일은 끝났다. 높은 수행을 하여 마쳤다. 해야 할 일을 모두 마쳤다. 해탈을 얻기 위해 다시 더 수행해야 할 일은 없다. 이러한 것을 스스로의 지혜로 알았다. 새벽이 되어서는 인간의 미세한 고뇌까지 말끔히 씻어 버리는 누진통을 얻었다. 먼동이 트기 전, 샛별이 돋고 있을 때였다. 그날 아침에도 수자타는 보리수 주변을 청소하기 위해 시녀 웃타라를 보냈다. 그러나 웃타라는 어제와 달라진 싯다르타의 모습에 놀라 집으로 돌아와 수자타에게 알렸다. 잠시 후 웃타라를 앞세우고 보리수로 달려온 수자타는 깨달음을 이룬 붓다에게 우유죽을 올리며 기뻐했다. “웃타라야, 나의 공양을 받은 분이 세상에 위없는 깨달음을 얻으셨으니 얼마나 기쁜 일이냐.” 맨발로 대탑 경내로 들어가 합장한 채 시계 방향으로 돌아본다. 붉은색 가사를 입은 티베트 수행자들의 오체투지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이윽고 붓다가 위없는 깨달음을 이룬 보리수 아래서 나도 가부좌를 튼다. 하늘로 치솟은 보리수의 키만큼이나 신심이 솟구치고, 보리수 이파리들만큼이나 잘 살아야지 하는 발심이 무성해지는 것 같다. 붓다는 위없는 깨달음을 이룬 뒤에도 7일 동안 이곳에서 선정에 들어 연기를 관하면서 해탈의 법열에 잠겼다. 이레마다 자리를 옮겨 가며 칠칠일, 즉 49일 동안 해탈의 기쁨을 누렸다. 둘째 주에는 한 바라문이 나타나 붓다에게 말을 걸어 왔으나 그는 모처럼의 기회를 놓치고 만다. 그리고 마지막 주에는 트라프사와 바루리카라는 두 상인이 소달구지에 물건을 싣고 보리수 부근을 지나기도 했다. 그런데 그때 앞서 가던 두 마리의 소가 꿈쩍 않자 거대한 소달구지 행렬이 멈추는 일이 생겼다. 두 상인이 쩔쩔매고 있자, 숲 속에서 한 선인이 나타나 말했다. “상인들이여, 걱정하시 마시오. 부처님이 출현하시었소. 부처님께서 지혜를 주실 것이오. 그런데 부처님은 지금 아무것도 먹지 않으셨으니 그대들이 음식을 공양했으면 좋겠소.” 두 상인은 좋은 우유로 쌀밥을 지어 향나무 바리때에 담아 붓다에게 공양을 올렸다. 붓다가 공양을 마치자, 그 공덕으로 두 마리의 소가 움직였다. 두 상인은 붓다의 발밑에 머리를 대고 공손히 예배하면서 말했다. “우리는 붓다께 귀의하겠습니다. 우파사카(優婆塞; 재가신자)로 받아 주십시오.” 이로써 두 상인은 붓다에게 귀의한 최초의 우파사카가 되었다. 보리수 아래서 일어나려니 왠지 허전하여 견딜 수 없다. 새벽에 다시 와야겠다고 생각하니 그제야 발걸음이 떨어진다. 붓다에게 미세한 번뇌까지도 말끔하게 씻어 주었던 그 샛별의 빛으로 내 눈과 마음도 맑혀 보고 싶어지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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