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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셔온 글

문학은 사랑이고 연민이자 자비심이다-박범신

집중인터뷰 16

대중문화의 비중이 커지고 있다. 세계에서 영향력 있는 인물을 거론할 때 예술가와 연예인 등 대중문화인이 다수를 차지한다. 그만큼 대중문화는 이미 우리 삶 속 깊이 들어와 있으며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 또한 크다. 본지는 전통문화의 진정한 가치를 발견하고 우리 시대의 문화 흐름을 반영하는 코너 - 집중인터뷰를 마련, 각 분야에서 의미 있는 작업을 하고 있으며, 분야별로 대중문화를 돋보이게 하는 인물을 만나보기로 한다.





문학은 사랑이고 연민이자 자비심이다

그에게 불교와의 인연을 묻는 건 어리석은 일이었다. 작가 박범신은 언제랄 것이 없이 한국인들은 태생적으로 불교적 세계관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냐고 되물어왔다. 이 땅 부모의 부모, 그 부모의 부모들이 지녔던 그 품성이, 대물림되는 것이 아니냐는 것이었다.
그는 고교 시절 자살을 시도한 적이 있다. 선친이 남루한 이불보따리를 굽은 어깨에 걸어맨 채 ‘열일곱 약삐한 외아들’을 이끌고 간 곳은 계룡산 국사봉 꼭대기, 단군 모시는 제단 하나 지키고 사는 외딴집이었다. 선친은 데리러 올 때까지 엎드려 있으라 이르시곤 다시 ‘허청허청 산길을 내려’가셨다. 그런데 거기서 박범신은 불교에 관한 얘길 참 많이 들었다. 종종 산길을 내려와 동학사로 산책을 가기도 했다. 그렇게 몇 달 수양했던 때를 두고 그는 마치 절에 맡겨진 시간이었던 듯 추억한다.
문학적 소양을 키우면서 소설을 처음 쓴 곳은 무주였다. 교사 시절, 하루에 한 번쯤 버스가 오가는 오지에서 더디가는 시간을 벌기 위해 소설을 썼다. 그는 외로움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자기 구원에서 박범신의 소설이 시작됐다고 했다. 그 시절 토요일이면 8km 길을 걸어 적상산 안국사에 올랐다. 대웅전 지붕 위로 잡초가 무성하던 그 시절을 박범신은 소설에서 이렇게 그리고 있다. “절 앞 연못은 언제나 음습했지만 연꽃 다투어 피고, 전각들은 퇴락할 대로 퇴락했지만 노스님 한 분, 눈빛 맑고 허리 곧았다.”
문단 등단 이후로 그는 쉬지 않고 글을 썼다. 그렇게 쓴 그의 소설은 빠짐없이 베스트셀러가 됐다. 15년 동안 300 권이 넘게 판매되는 기록을 남긴 박범신이다. 인기 작가로서 독자들의 뜨거운 사랑도 받았다. 그런데 1993년 돌연 절필을 선언한다. 그가 ‘임종의 서’라고 표현한 「연재소설 중단의 변」이 실린 한쪽에 신문사에선 이런 소제목도 뽑았다.  “당분간 입산, 마음의 병 고친 뒤 돌아올 터……” 그시절 사람들은 박범신이 출가하는가보다고 쑥덕거렸다.
“워낙 많이 써댔어요, 우물이 아무리 깊어도 두레박질만 하면 흙탕물이 나오잖아요. 소설을 기술자처럼 써대는 게 아닌가 싶었고, 중년에 필연으로 만나는 실존적 번뇌들 즉 독자가 아는 박범신과 내 소설 사이의 거리, 내 이미지와 내 존재 사이의 거리, 내 문학적 방향과 시대적 거리로 앓았던 거죠.”



깨달음에 이르는 길이 그립다.

유명 작가, 베스트셀러 작가라는 틀을 깨고 박범신은 3년 동안 용인에 오두막집을 짓고 토굴살이 하는 스님처럼 독살이를 했다. 그곳에서 글은 안 썼다. 그러나 아무것도 안 쓰려니 너무도 외로워서 낙서 삼아 놀 듯이 뭔가를 썼고 훗날 모아 펴낸 것이 시집 『산이 움직이고 물은 머문다』였다.  그가 3년 절필을 끝내고, 훌쩍 가벼워진 심신으로 세상에 소설집 『흰 소가 끄는 수레』를 선보인 것은 꼭 십 년 전이다.
“절필하고 버림받은 느낌에 고독해서 구형 엘란트라를 몰고 목표 없이 집을 떠났어요. 가보니 해인사였습니다. 절이 부른 거죠. 부처님이 부르셨다고 생각해요. 눈발이 쏟아져서 바리게이트 쳐놓고 못 가게 하는데 신풍령 고개를 넘어 그 길로 무주 안국사까지 갔어요. 무주는 제 글쓰기의 자궁 같은 곳이죠. 해인사에서 안국사, 다시 해인사까지의 여정이 『흰소가 끄는 수레』에 담겨 있습니다.”
절필 선언과 함께 박범신은 ‘인기 작가’라는 안정된 기득권을 버렸다. 그것은 작가로서의 욕망과 결별한 것이었다. 이후 그가 다시 펜을 들었을 때 그는 버리고 비우고 멈추는 것에 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최근 십 년 동안 쓴 박범신의 소설, 산문들은 그의 말마따나 불교에 ‘기대어’ 쓴 글들이다. 그렇게 버리고 비우고 멈추면서 오히려 예전보다 문학적 성취가 더 높은 작품을 쓰고 있다는 평을 듣고 있다.


“젊은 날엔 내가 갖지 못한 걸 그리워했죠. 집도 사야 하고 내 독자들도 많아야 하고. 세속의 욕망은 나이 먹으면서 극복하게 되고, 그 욕망들은 내게 이젠 고통이 되질 않습니다. 하지만 이젠 이루지 못할 그리움이 가득해요. 초월적 세계, 깨달음의 세계에 다다르고 싶은 강렬한 욕망이 내게 있어요. 불멸, 영원성, 마음의 평화를 얻을 수 있다면 소설 쓰기를 관두라면 관둘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건 부족한 게 없고 가장 아름다운 것을 찾는 일이니까 결국 부처를 찾는 일이지요. 깨달음에 이르는 길을 그리워하고 있는 중이에요.”

퍽 오래전, 박수무당이 그의 신수를 짚어 보더니 ‘무당이나 스님이 되면 용맹정진할 수 있고 성공한다’고 했다. 그 시절 최고 인기 작가에게 뭐 부러울 게 있었으랴. 그는 그냥 크게 웃고 말았다. 인기가 높고, 인기와 함께 따라오는 안락한 삶도 있는데 용맹정진이란, 그것들을 버리고 떠날 만큼 절실한 것이 아니었다.
“그런데 최근 십오 년 사이에 히말라야 오지 여행을 많이 하면서, 내 마음속에 구도에 대한 욕망, 열망이 아주 오래전부터 있었다는 걸 느끼게 됐어요. 지금 내 열렬한 소망의 한 길에 ‘스님의 길’이 깃들어 있는 건 사실입니다.”



카일라스 가는 길

인도인들이 우주의 중심이라고 생각하는 산이 카일라스다. 브라만 교도들은 이 산에 그들의 신인 인드라가 살고 있다고 믿었고 힌두교도들은 시바 신이, 불자들은 제석천이 머물고 있다고 믿고 있는 곳, 그곳이 카일라스다. 지난해 우주의 중심이자 지구의 배꼽이라는 카일라스를 순례한 작가 박범신은 최근 명상 에세이집 『카일라스 가는 길』을 펴냈다. 작가의 감성으로 찍어놓은 티베트의 눈시린 장관들이 압권이다. 그이는 티베트 순례를 두고 ‘내 안으로 걷기’라고 이름 붙여놓았다.
“카일라스에 가려면 라싸까지 가서 그곳에서 일주일 동안 고행에 가까운 길을 가야 합니다. 교통도 나쁘고 고독하고 힘들게 하는 동안 문명에 억눌린 자기 본성을 만나게 되거든요. 몇 해 전에 로버트 서먼이 쓴 『티베트의 영혼 카일라스』를 읽으면서 카일라스에 매료됐죠.마치 연인을 그리워하듯 꿈속에서도 봤어요. 반드시 가봐야 할 곳 같아서 카일라스 사진을 벽에 붙여두고 오랜 기다림과 그리움 끝에 순례하게 된 거예요.”
  카일라스 만년 빙하의 정수리가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 그는 히말라야 트래킹을 수없이 했어도 이렇게 잘생기고 부드럽고 위엄 넘치는 봉우리를 본 적이 없었다고 한다. 산 중심에 만년설을 이고, 주위에 수많은 산들이 나한처럼 도열하듯 싸고 있는 성산의 모습에 압도당한 그 순간을 그이는 ‘생로병사도 없고 시간조차 흐르지 않는다’는 ‘저쪽 언덕’을 보는 것 같다고 표현했다.
“여행이란 마음을 열고 산과 공기와 바람을 끌어안아야 합니다. 불교에서 우리 몸은 지수화풍, 흙과 물과 불과 바람이 결합돼 있다고 하죠. 평소에 불처럼 사는 우리들이 물과 허공이란 빈 이미지를 받아들이러 가는 일이 여행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면에서 티베트는 좋은 순례지지요.”



세상에 대한 연민이 나로부터 나온다

만년 빙하가 둘러쳐져 있는 설산의 스카이라인을 보며 엎드려 울었다는 작가 박범신. 그의 연구실은 삼면이 히말라야 사진들로 가득하다. 그곳에서 글을 쓰고, 찾아오는 학생들을 챙기고, 그곳에서 싸이질도 한다. 그렇다면 몇 년 뒤에 있을 정년퇴직 이후에 그는 어떤 계획을 품고 있을까?
“아직 남모르는 비밀인데……. 일주일에 한 번씩 영어를 공부하고 있어요. 해도 해도 늘지 않는게 어학이지만 전 세계를 떠돌아다닐 때 적어도 저렴하게 먹고 쉴 순 있어야 할 것 같아서 그만큼은 말하고 싶어서 영어를 공부하고 있어요.”
박범신을 두고 영원한 청년 작가, 향기로운 소설을 쓰는 젊은 작가라고 부르는 건 세월이 어찌 흐를지라도 항상 현실을 박차고 새로운 방식으로 글쓰기를 하기 때문일 것이다. 머무름이 없이 ‘모든 걸 벗어나서 참된 자유의 길을 따라 꿈같이 노닐며 흐르고’ 싶어 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와 마주한 시간이 눈 밝은 큰스님의 법문을 팁?편히 듣는 느낌이었던 것도 그 때문이다. 그의 입에서, 그의 눈에서, 그의 가슴 깊은 곳에서 불교의 지혜가 펑펑 쏟아져 흐르고 있었다.
“문학이 뭐냐고 물으면 사랑이라고 답해 왔습니다. 인생에서 그거 빼면 ‘꽝’이라고 생각해요. 그것 때문에 살고 꿈꾸고 그것 때문에 내 부족을 봅니다. 그 사랑이란 게 실은 연민이고 자비지요. 불심과 자비, 세상에 대한 연민이 나로부터 나옵니다. 그래서 쓰는 게 소설이에요. 나이 들면 저절로 절이 되고 불자가 됩니다.”

박범신 작업실에 걸려 있는 그가 가슴에 품고 사랑하는 시 한 구절을 옮겨 적어 본다.

“눈물짓는 슬픔에 찬 세상을 떠나서
고독한 동굴을 네 아버지 집으로
정적을 네 낙원으로 만들라.
사고를 다스리는 사고가 너의 기운 찬 말이고
네 몸이 신들로 가득 찬 너의 사원이며
끊임없는 헌신이 너의 최선의 약이 되게 하라”


- 성자 말라레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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