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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여행│인도에서 만난 팔상록 5

명상여행│인도에서 만난 팔상록 5
‘소설가 정찬주와 떠나는 <인도에서 본 팔상록>’을 연재합니다. 인도를 찾아 붓다의 일생을 여덟 가지로 요약한 팔상록(八相綠)의 현장을 직접 순례하며 쓰게 될 이번 연재는 단순한 기행문에 그치지 않고 오늘을 사는 사람들 모두 공감할 수 있는 우리들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명상여행, 그 이상이 될 것입니다.





이 세상 모든 아버지의 마음

슛도다나 왕은 명상과 사색을 좋아하는 싯다르타를 보면서 잠을 이루지 못했다. 대왕답지 않게 극도로 불안해했다. 그는 싯다르타가 전륜성왕이 되기를 바랐지만 태자는 그의 기대와 반대로 성장하고 있다고 여기었다. 지난 농경제에서 벌레 한 마리가 죽어 가는 것을 보고도 싯다르타는 연민의 정에 빠졌었고, 그때 슛도다나 왕은 아들의 모습에서 문득 부처님의 자비로운 그림자를 보았던 것이다.
‘싯다르타 태자여, 모든 것이 다 이루어지라는 뜻으로 나는 너에게 그런 이름을 지어 주었건만 이제 나의 꿈이 깨어지고 있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프구나. 나는 네가 전쟁을 하지 않고도 이기는 전륜성왕이 되기를 바랐건만 너는 어느 날 홀연히 카필라 성을 떠나 부처님이 될 것만 같구나.’
슛도다나 왕이 아니라도 사랑하는 자식을 대하는 부모의 사고방식은 지극히 세속적일 수밖에 없을 터이다. ‘그래, 출가하는 것이 너의 행복이다. 어서 입산하여 좋은 스승을 만나 도를 이루거라. 도를 이루기 전에는 다시 집으로 돌아올 생각을 하지 말거라’ 하고 자식을 집 밖으로 내보낼 부모가 어디 있겠는가. 비유가 적절하다고 생각지는 않지만 나도 어느 날인가 대학을 다니는 둘째 딸아이가 “아빠, 나도 스님이 될 수 있을까” 하고 넌지시 물어왔을 때 솔직하게 말하지 못하고 “넌 게으르고 야무지지 못해서 스님이 될 수 없다”고 어물쩍 둘러대고 말았던 적이 있다.
슛도다나 왕은 싯다르타를 왕궁에 묶어 두기 위해 궁리한다. 가장 좋은 방법은 싯다르타를 결혼시키는 일이었다. 아리따운 여인과 결혼하면 싯다르타는 그 인연의 울타리를 벗어나지 못할 거라고 믿었던 것이 틀림없다.
예전 우리 주변에서도 흔히 보아 왔던 일종의 강제결혼인데, 어떻게든 아들을 왕궁에 붙잡아 두고 싶었던 슛도다나 왕 처지에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더구나 당시 풍습으로는 태자가 몇 명의 아내를 두어도 아무렇지 않았으므로 슛도다나 왕은 태자비를 구하는 데 적극적이었다. 그래서 싯다르타는 세 번의 결혼을 하고, 세 명의 태자비를 맞게 되었다.



싯다르타를 사랑한 세 명의 부인

첫 번째 태자비는 ‘고파’였다. 고파는 ‘고피카’ 혹은 ‘고피’ 혹은 ‘고타미’로 전해지는데, 그녀는 석가족의 한 가문으로 큰 부자 단다파니의 딸이었다. 그녀는 싱싱하고 풋풋한 미모를 지닌 처녀였으므로 싯다르타의 아우 난다와 사촌동생 데바닷다가 몹시 부러워했을 정도였다.  
이때 싯다르타는 태자비를 빨리 정하고 싶은 슛도다나 왕에게 실현되기 어려운 제의를 한다. 금세공 장인을 시켜 아름다운 여인상을 조각케 한 다음, 그 여인상에 태자비가 될 자격을 낱낱이 새기게 하였다. 싯다르타로서는 아버지의 뜻을 거절하기 위해 한 일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왕의 명을 받은 신하는 카필라 성 안을 돌아다니다 조각한 여인상과 흡사한 단다파니의 딸을 발견하게 된다. 할 수 없이 싯다르타는 약속을 지킬 수밖에 없었고, 고파를 만난 싯다르타가 그녀의 목에 자신의 목걸이를 걸어 주려 하자 그녀가 이렇게 말한다.
“싯다르타 태자님이시여, 소녀는 태자님의 목걸이를 받을 수 없나이다. 차라리 저의 마음을 바쳐 태자님을 장식해 주고 싶나이다.”
그러나 고파는 싯다르타 태자의 정비(正妃)가 되지 못한다. 아이를 갖지 못해서 그랬을 가능성이 크다. 마음이 넉넉했던 그녀는 싯다르타의 두 번째 부인 야수다라를 진심으로 도왔으며 붓다가 성도한 후 카필라 성에 다시 돌아왔을 때는 불행하게도 이미 죽은 뒤였다고 한다.
고파가 건강한 야성미를 지녔던 데 비해 새침데기 야수다라는 자존심이 강했다. 야수다라의 가문도 석가족으로 그녀의 아버지는 수프라붓다(善覺) 왕이었다. 또한 데바닷타와 아난다는 그녀의 친동생이었다.
데바다하 성에는 수프라붓다 왕이라고 불리워진 왕들이 있었다. 슛도다나 왕의 부인인 마야와 그녀의 동생 마하프라자파티의 아버지도 역시 수프라붓다 왕이었다. 그러니까 마야 부인이나 야수다라는 싯다르타의 외가 쪽 왕족이 분명하고, 야수다라는 싯다르타 태자의 외사촌 동생뻘일 수도 있는 것이다.
야수다라와 싯다르타가 부부로 맺어진 계기도 역시 슛도다나 왕의 계산이 작용했다. 슛도다나 왕은 카필라 성 밖의 아가씨들을 초대하여 싯다르타로 하여금 선택하게 했다. 싯다르타가 마음에 드는 아가씨에게  준비해 둔 보석 바구니를 건네주게 했다.
이때 야수다라 아버지인 수프라붓다 왕은 그녀에게 싯다르타 태자에게 가서 보석 바구니를 받아 오게 했다. 그러나 야수다라 공주는 데바다하 성의 왕궁에도 보석이 많은데 왜 카필라 성까지 가야 하느냐고 거절했다. 같은 석가족이라고 하지만 야수다라는 데바다하 성 공주로서 자존심을 내세웠던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수프라붓다 왕에게 전후 사정의 얘기를 듣고는 데바다하 성의 명예를 걸고 카필라 성으로 떠났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싯다르타 태자의 손에는 이미 보석 바구니가 없었다. 야수다라 공주는 당황하며 말했다.
“카필라 성 태자님이시여, 데바다하 성의 공주에게 창피를 주시려고 이러십니까?”
싯다르타 태자는 진심으로 미안해했다. 그래서 자신의 옷에 달린 보석을 떼어 야수다라 공주에게 주려고 했다.
“데바다하 공주님이시여, 그대는 많은 아가씨들이 떠난 뒤, 그것도 너무 늦게 홀로 왔습니다. 그러니 나는 공주에게 내 옷을 치장한 보석을 드릴 수밖에 없습니다.”
야수다라 공주의 자존심은 햇볕에 봄눈 녹듯 사라졌다. 싯다르타 태자의 부드러운 태도에 반해 버렸다.
“그러지 마십시오. 저는 태자님이 치장하고 있는 보석을 떼고 싶지 않습니다. 제 몸을 태자님께 바치고 싶을 따름입니다.”
이와 같은 사실을 신하로부터 보고받은 슛도다나 왕은 즉시 야수다라 공주의 아버지인 수프라붓다 왕에게 정식으로 청혼을 하니 야수다라는 비로소 싯다르타 태자의 정비가 된 것이었다.
그런데 야수다라의 자존심은 태자비가 되어 카필라 성을 들어설 때도 스스럼없이 드러난다. 원래 태자비는 외출할 때 얼굴을 베일로 가리고 다니게 돼 있는데, 야수다라는 베일을 벗은 맨얼굴로 당당하게 거리를 걸었다. 시녀가 만류했지만 새침데기 야수다라는 이렇게 말했다.
“흠이 없는 내 얼굴을 베일로 감쌀 게 뭐람.”
세 번째 비의 이름은 므리가자 혹은 마노라타 혹은 마노다라로 전해지는데, 그녀의 아버지 카라크세마도 석가족이었고, 훗날 붓다에게 귀의해 절을 세웠다고 한다.
므리가자의 특기는 아름다운 목소리로 노래를 잘 부르는 것이었다. 어느 날 싯다르타 태자가 마차를 타고 므리가자 집 앞을 지날 때였다. 마침 므리가자가 싯다르타 태자를 찬탄하는 노래를 불렀던 것인데, 태자는 그 노래에 감동하여 그녀에게 진주목걸이를 선물했다고 한다.
아무튼 당시 카필라 성의 모든 사내들은 싯다르타 태자를 부러워했을 것이 틀림없다. 첫 번째 아내는 건강미 넘치는 풋풋한 여인이었고, 두 번째 아내는 새침데기에다 내숭의 매력적인 여인이었고, 세 번째 아내는 청아한 목소리로 슬픈 곡이든 기쁜 곡이든 노래를 잘 부르는 여인이었던 것이다.   
실제로 경전에 보면 슛도다나 왕은 싯다르타 태자가 딴 생각을 하지 못하도록 봄, 여름, 가을에 거처할 수 있는 세 채의 화려한 궁전을 지어 주었다고 나오는데, 이는 세 사람의 태자비가 각각 살던 궁전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싯다르타 태자는 행복하지 못했다. 슛도다나 왕이 지어 준 궁전이 답답했다. 세 사람의 부인으로부터도 행복을 찾지 못했다. 좋은 옷을 입고, 좋은 음식을 먹고, 아름다운 부인과 잠자리에 드는 것이 순간적인 쾌락은 될 수 있으나 영원한 행복은 아니었다.
이윽고 싯다르타 태자는 화려한 궁전을 감옥이라고 여기기 시작했다. 감각의 노예가 되어 살게 하는 감옥이라고 생각했다. 맛있는 음식과, 번쩍거리는 보석과, 귀를 간질이는 음악과, 혀를 달콤하게 하는 술이 넘쳐나는 궁전이었지만 싯다르타는 그것들이 자신에게 영원한 행복을 줄 수 없다고 깨달았다. 문득 싯다르타 태자는 눈을 취하게 하고, 귀를 취하게 하고, 코를 취하게 하고, 혀를 취하게 하고, 몸을 취하게 하는 것들로부터 도망치고 싶었다. 그럴수록 카필라 성 밖으로 무한히 뻗은 세상의 길이 더 궁금했다. 싯다르타의 깊은 성찰이었다. 싯다르타 내면의 붓다 의식이었다. 진리를 바라보는 깨어 있는 눈이었다.



싯다르타의 운명은 붓다 의식

붓다의 의식-.
그것은 틸라우라코트 숲을 투과하는 저 햇살처럼 맑고 투명하지 않았을까. 저 티 없이 맑은 아침 햇살이 잠든 숲을 깨우고 어두운 세상을 밝히고 있으니 말이다. 붓다께서 활동하셨던 2천5백 년의 시공을 뛰어넘어 나는 지금 네팔의 국경 지대 틸라우라코트의 숲길을 걷고 있는 중이다.
무케르지(P.C. Mukerjee) 같은 고고학자는 이곳이 고대 카필라 성이라고 주장하고 있는데, 나는 벽돌 무더기만 남은 서문을 통해서 폐허가 된 성안으로 들어가고 있다. 맞은편 오솔길에서는 꼬질꼬질한 교복을 입은 어린 학생들이 자전거를 탄 채 미소 짓고 있다. 그리고 안개가 가시지 않은 저 동문 쪽에는 네팔의 한 수행자가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다.
『장부경전』이나 『제14대본경(大本經)』에 나오는 「사문유관(四門遊觀)」을 요약하면 이렇다. 어느 날 싯다르타 태자는 부왕 슛도다나 왕에게 허락을 받아 성 밖으로 마부를 앞세워 시종을 거느리고 나가게 된다.
첫 번째로 나간 성문이 동문이었다. 싯다르타 태자가 마차를 타고 동문을 벗어났을 때 한 노인이 성을 향해서 쓰러질 듯이 힘겹게 걸어오고 있었다. 노인은 지팡이에 몸을 의지한 채 숨을 헐떡거리고 있었다. 더 가까이서 보니 팔다리는 가죽과 뼈만 남아 앙상했고, 이빨은 다 빠져 볼이 움푹 꺼져 있었고, 쭈글쭈글한 얼굴에는 눈물과 콧물이 흐르고 있었다. 궁전에서는 이런 몰골의 노인을 본 적이 없던 싯다르타 태자는 자못 놀라 마부에게 물었다.
“사람이 왜 이런 모습을 하고 있는가?”
“이 사람은 늙어서 이러합니다.”
“늙은 사람이란 말이냐?”
“젊은 사람도 차차 노쇠해져서 기운이 빠지고, 사람들에게 바보 취급을 당하고, 몸을 움직이기가 괴로워지고, 남은 목숨이 얼마 남지 않게 됩니다. 이런 사람을 늙은이라고 합니다.”
“너도, 나도 이렇게 된단 말이냐?”
“태어난 자는 귀천의 구별 없이 누구나 다 이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없사옵니다.”
성으로 돌아온 싯다르타는 ‘늙어 가는 괴로움을 벗어나는 길은 없을까’ 하고 밤을 새우며 깊은 상념에 잠겼다.
싯다르타가 두 번째로 나간 문은 남문이었다. 이번에 만난 사람은 병으로 괴로워하는 병자였다. 그는 자신이 토해 놓은 오물에 뒹굴면서 고통스럽게 신음을 내뱉고 있었다. 역시 싯다르타는 성으로 돌아와 ‘사람은 왜 병에 걸리는 것일까’ 하고 사람들을 연민의 눈으로 바라보았다.
싯다르타가 세 번째로 외출한 문은 서문이었다. 마차를 타고 가는데 슬픈 얼굴을 한 사람들이 시신 주위에 모여 있었고 한 여인의 애절한 통곡소리가 들려왔다. 싯다르타는 시신 곁에 마차를 세우게 하고는 마부에게 물었다.
“죽음이 어떤 것이기에 저렇게 슬피 우는 것인가?”
“죽음이란 부모와 형제와 친척들과 영원히 헤어지는 것이옵니다. 저렇게 우는 부모와 형제, 친척들 또한 언젠가는 죽게 되옵니다.”
“그렇다면 너도 나도 죽음을 면치 못한단 말인가? 부모와 모든 사람들과 영원히 이별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말인가?”
“태자님이시여, 사람은 모두가 반드시 죽게 되는 것이며, 누구라도 결코 죽음에서 벗어날 수 없사옵니다.”
싯다르타가 네 번째로 외출한 문은 북문이었다. 이번에 만난 사람은 황색 가사를 걸친 출가 사문이었다. 지팡이를 든 수도승은 그윽한 눈으로 길을 바라보면서 천천히 걷고 있었다. 당당한 그의 모습은 늙고 병들고 죽는 것의 괴로움으로부터 벗어나 있는 것처럼 보였다. 싯다르타는 절로 존경심이 우러나 마차에서 내렸다.
“사문이시여, 출가에는 어떤 이로움이 있는 것입니까.”
“저는 일찍이 집에 있을 때 생로병사에 관한 것을 직접 겪어 보고 모든 것이 덧없음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친족을 떠나 쓸쓸하고 고요한 곳에서 수행하여 해탈할 수 있도록 힘써 왔습니다. 제가 수행하는 것은 맑고 성스러운 길입니다. 저는 바른 법을 실천하고 본능을 이기고 큰 자비를 일으켜 사람들에게 안심을 줍니다. 생각과 행동이 조화를 이루어 중생을 보호하고, 세간의 더러움에 물들지 않으며 영원히 해탈할 수 있었습니다. 이것이 출가의 이로움이었습니다.”
수도승의 말을 듣자마자 싯다르타는 자신도 출가할 것이라고 결심해 버렸다.
‘이 길이야말로 내가 찾던 길이다. 이제 나는 이 길을 가고 말 것이다.’
궁전으로 돌아와서도 싯다르타의 마음은 요지부동이었다. 자나 깨나 출가하려는 마음뿐이었다. 이제는 아내 야수다라의 사랑도, 아들 라훌라의 귀여움도 출가하려는 자신의 마음을 꺾지 못했다. 그동안의 고뇌와 번민은 기름으로 변하여 발심의 불을 활활 지폈다.
경전에는 싯다르타가 네 성문 밖에서 만난 사람은 정거천(淨居天)에서 내려온 천인(天人)의 변신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싯다르타 태자 마음속에 있는 불성을 일깨우기 위해 그랬다는 것인데, 그렇다면 이미 정해진 길로 가는 싯다르타의 운명은 누구도 막을 수 없었을 터였다. 

나는 황색 가사를 걸친 네팔의 수행자가 있는 곳까지 숲길을 걸으면서 명상에 잠겨 본다. 그는 이방인인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다. 나에게 틸라우라코트의 유적지를 설명해 주고 일용할 양식을 구하려고 저렇게 기다리고 있음이 분명하다.
서문 밖 초라한 민가 마당에 화덕을 만들어 놓고 이곳을 찾는 순례자들에게 짜파티를 구워 파는 네팔의 아낙네가 떠오른다. 그녀에게 따끈따끈한 짜파티를 구해 와 저 네팔 스님에게 공양하지 못한 것이 아쉽다. 2천5백 년 전 싯다르타 태자가 거닐었던 이 틸라우라코트의 숲길을 염치없이 걷자니 미안한 마음이 들어서다. 붓다의 의식 같은 아침 햇살이 쌓이는 이 숲길을 걷고 있다는 인연이 너무도 고맙다. 숲길에 떨어진 아침 햇살이 나의 아침 공양이라면 나는 이 세상에서 가장 멋진 공양을 받고 있는 셈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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