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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여행│인도에서 만난 팔상록 6

명상여행│인도에서 만난 팔상록 6
‘소설가 정찬주와 떠나는 <인도에서 본 팔상록>’을 연재합니다. 인도를 찾아 붓다의 일생을 여덟 가지로 요약한 팔상록(八相綠)의 현장을 직접 순례하며 쓰게 될 이번 연재는 단순한 기행문에 그치지 않고 오늘을 사는 사람들 모두 공감할 수 있는 우리들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명상여행, 그 이상이 될 것입니다.












출가란 자신에게 주어졌던 시간과 공간과의 이별

출가는 가출과 다르다. 출가는 모든 것을 버리는 행위이다. 반야의 지혜를 얻어 불(佛)을 이루기 위해 세속의 모든 것을 버리는 ‘위대한 포기’인 것이다. 그러나 모든 것을 버린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닐 터이다.
어떤 고승은 애지중지하던 책 세 권을 품속에 넣고 출가했다 행자 때 절에서 다 태워 버렸다 하고, 또 어떤 수행자는 아내를 너무도 사랑한 나머지 아내의 치마저고리를 챙겨 출가했다 평생을 걸망에 넣고 다니던 중 어느 날 집으로 돌려보냈다고 한다. 나 또한 대학 시절 때 이미 입적하신 구산 노스님께서 출가를 강요하셨으나 문학에 대한 애착이 너무 커 끝내 버리지 못하고 기회를 흘려버린 일이 있었던 것이다.
결심이 확고하다는 것은 그만큼 고뇌가 깊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싯다르타 태자의 고뇌와 이별의 무게야말로 그리 간단하지 않았을 것이다. 부왕과 아내, 양모와 자식 간에 정은 물론이고 카필라 성에서의 시간과 그 시간에서의 카필라 성과 헤어지는 무게를 극복해야 했기 때문이다.
태자는 마부 찬다카를 앞세우고 카필라 성벽을 넘었다고 한다. 성벽의 위치는 동남쪽의 성벽이었던 것 같다. 7세기 초에 카필라 성을 찾았던 현장의 『대당서역기』의 기록을 잠시 보자.

카필라 성 동남쪽 귀퉁이에 하나의 정사(精舍)가 있다. 안에는 태자가 백마를 타고 허공을 가르며 달리는 상이 있다. 유성(踰城; 성을 넘음) 터다.

모든 사람이 잠든 한밤중이었다. 싯다르타 태자는 성을 나가기 전에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러나 지나간 정경들이 머릿속을 빠르게 흘렀다. 특히 남문 밖에서 겪었던 일들이 먼저 떠올랐다. 태자의 출가 전 젊은 날을 짐작해 볼 수 있는 기록이 『대당서역기』에 생생하게 보인다.

카필라 성 남문 밖에 스투파가 있다. 태자가 석가족 청년과 씨름을 하고 코끼리를 내던진 곳이다. 원래 태자는 기예에 능하여 친구들 사이에서 홀로 뛰어났다. 어느 날 코끼리 몰이꾼이 코끼리를 몰고 막 성을 나가려고 했다. 그때 자신이 힘세다고 늘 자부해 온 데바닷타가 태자와의 씨름에서 지고 성 밖으로 오다가 코끼리 몰이꾼을 만나 “훌륭하게 기른 이 코끼리는 도대체 누가 타려는 것인가” 하고 묻자 “태자님이 돌아오려 하므로 마중 나가 태워 오려고 합니다”라고 대답했다.
씨름에 져서 분한 마음이 들었던 데바닷타는 태자를 태우고 올 코끼리를 끌어당겨 이마를 치고 가슴을 발로 차 죽여 버렸다. 남문 밖은 죽은 코끼리 때문에 길이 막혀 사람이 통행할 수 없게 되었다. 태자의 이복동생 난다가 코끼리 몰이꾼에게 “누가 이 코끼리를 죽였는가” 하고 묻자 코끼리몰이꾼이 “데바닷타입니다”라고 대답했다.
난다는 곧 코끼리를 끌어내어 길을 치웠다. 그런 뒤였다. 싯다르타 태자가 와서 “누가 이런 나쁜 짓을 하였는가” 하고 묻자 코끼리 몰이꾼이 “데바닷타가 죽여 문을 통괄할 수 없었는데, 난다님이 와서 코끼리를 끌어내어 길을 치웠습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태자는 코끼리를 높이 들어 올려 성 연못 저쪽으로 던져 버렸다. 죽은 코끼리가 땅에 떨어지자 깊은 구덩이가 패었다. 그 지방 사람들은 상타갱(象墮坑)이라 부른다.


태자의 체력이 이렇게 강인했으니 성벽을 넘는 것쯤은 아무 일도 아니었으리라. 자비로운 태자의 성정으로 보아 연약했을 것으로 연상할 수 있으나 코끼리를 집어던질 만큼 힘이 센 청년이었던 것이다. 힘이 세니 다른 석가족 청년보다 화살의 위력은 쇠북을 뚫을 만큼 더 강했고, 화살이 날아가는 사정거리는 무려 30리 밖이었다. 이와 같은 얘기 역시 현장이 『대당서역기』에 기록하고 있다.

카필라성 남문 밖 길 왼쪽에 스투파가 있다. 태자가 석가족 사람들과 힘을 겨루면서 활로 쇠북을 쏜 곳이다. 여기서 동남쪽 30여 리 되는 곳에 작은 스투파가 있다. 그 옆에 우물이 있는데 그 흐르는 물이 거울처럼 맑다.
태자가 석가족 사람들과 강궁(强弓)을 당겨 재주를 겨룬 곳이다. 화살은 시위를 떠나 쇠북을 뚫고 연못까지 이르러 깃을 떨구었다. 그것이 원인이 되어 맑은 물이 솟은 것이다. 당시 그 고장에 전해 오는 말로는 이를 화살샘(箭泉)이라 하여 만약 병든 자가 마시거나 목욕하거나 하면 낫는 일이 많고, 멀리 사는 자는 그 진흙을 가지고 가 그 아픈 곳에 따라 물에 풀어 이마에 바르면 가호를 받아 완쾌되는 경우가 많았다.


태자가 남문 밖에서 쏜 화살이 30리 밖까지 날아갔다는 것은 사실일 수도 있겠지만 그것보다는 힘이 셌다는 것을 비유하기 위한 수사적 장치로 보인다. 그리고 화살 깃이 떨어진 우물은 신앙의 대상이 되어 치유 능력을 갖게 됐을 것이다.


위없는 깨달음을 얻기 전에는 결코 돌아오지 않으리

싯다르타 태자는 출가의 결심은 「오분율」에 나와 있다. 그러니까 백마 칸타카를 타고 성벽을 뛰어넘으면서 이렇게 서원했던 것이다.

나는 하늘에 태어나기를 원치 않는다.
많은 중생이 삶과 죽음의 고통 속에 있지 아니한가.
나는 이를 구제하기 위하여 집을 나가는 것이니
위없는 깨달음을 얻기 전에는 결코 돌아오지 않으리.


태자는 백마를 타고 밤새 동쪽으로 갔다. 새벽에 마이네야라는 곳에 이르렀다. 현장의 기록에 의하면 옛날 라마국(藍摩國) 땅인데, 현재는 인도 고락푸르와 네팔 국경 사이의 지역이다. 태자는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여기가 바로 내가 세속이라고 하는 새장에서 나올 수 있는 곳이고, 가족이라고 하는 속박에서 떠날 수 있는 곳이며, 말을 버릴 수 있는 곳이구나.’
태자는 곧 마부 찬다카에게 천관(天冠) 속의 마니보(摩尼寶)를 떼어 주면서 말했다. 천관 속의 마니보는 태자임을 증명할 수 있는 보석이었다.
“이 마니보를 가지고 가거라. 돌아가서 부왕께 마니보를 보여 드리고 말씀 드려라. ‘태자는 세속적인 욕망을 다 버렸으며, 또한 선업을 쌓아 천상에 태어나고 싶지도 않습니다. 다만 일체 중생이 바른 길을 몰라 헤매면서 생사윤회에 괴로워하는 것을 보고 이를 구제하기 위해 출가하는 것뿐입니다. 나는 아직 젊지만 생로병사에는 정해진 때가 따로 없으며, 지금 젊다고 안심할 수 없습니다. 예전부터 훌륭한 왕들은 나라를 내놓고 길을 찾아 숲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수행 도중에 세속 생활로 돌아가는 일은 없었습니다. 내 결심도 그와 같아, 위없는 깨달음을 얻기 전에는 돌아가지 않을 것입니다.’ 이와 같은 내 결심을 부왕께 전해라.”
태자는 몸에 지니고 있던 모든 보석들을 떼어 양어머니인 이모와 아쇼다라에게 전해 달라고 지시했다.

이윽고 찬다카가 울면서 돌아가자, 태자는 자신의 머리카락을 잘랐다. 그래도 왕자의 흔적이 보였다. 보석을 떼어낸 옷이지만 수행자의 누더기 가사에 비해 화려했다. 그래서 태자는 자신의 옷을 벗고 해진 옷과 바꾸려 했다. 마침 사냥꾼이 나타나 태자는 그와 옷을 바꿔 입었다.
남루한 옷으로 바꿔 입자 이제 태자는 누가 보더라도 숲 속에서 정진하는 수행자로 보였다. 싯다르타는 스승을 찾아 계속 걸었다. 가다가 고행하는 두 고행녀(苦行女)에게 공양을 받기도 했다. 여성이지만 집을 떠나 고행하는 그녀들의 태도가 배울 만했다. 싯다르타는 강가 강 지류를 따라 다시 남쪽으로 내려가 바이샬리의 발가바 선인을 만났다.
그런데 발가바 선인을 추종하는 바라문 출신의 수행자들은 싯다르타가 이해할 수 없을 만큼의 기행과 고행을 일삼고 있었다. 거꾸로 물구나무를 서 있거나 초식동물처럼 나뭇가지나 풀을 뜯어먹는가 하면, 흙이나 쇠똥을 먹는 고행자도 있고, 맨몸으로 날카로운 가시 위에서 자는가 하면, 꼬물거리는 벌레집에서 웅크리고 앉아 고통을 참는 고행자도 있었다.
싯다르타가 그들에게 물었다.
“선인이시여, 무엇 때문에 고행하고 있습니까.”
“다음 생에서는 천상에 태어나기 위해 고행하고 있습니다.”
싯다르타는 육체를 괴롭힘으로써 다음 생에 안락을 얻는다는 그들의 믿음에 동조할 수 없었다.  밧지족과 같은 동족이 살고 있는 미티라 성에서는 양을 죽여 제사를 지내는 선인도 있었다.
“선인이시여, 무엇 때문에 양을 죽이어 제사를 지내고 있습니까.”
“다음 생에 복을 받기 위해 그렇습니다.”
싯다르타는 그들에게 살아 있는 짐승을 죽이는 것은 죄악이자 악행이라고 말했으나 그들은 듣지 않았다. 그중에 한 선인이 해탈을 구하는 싯다르타의 마음을 간파하고 바이샬리 근처에 아라다 카라마라는 선인이 있으니 만나 보라고 권유하여 싯다르타는 그곳을 떠났다.


싯다르타, 첫 스승을 찾아가 만나다

실제로 바이샬리 교외에는 아라다 카라마 선인이 제자 300여 명을 거느리고 있었다. 싯다르타는 그의 명성을 이미 듣고 있었으므로 그의 가르침을 받고 싶었다. 밧지족의 일족인 릿차비인들의 도읍인 바이샬리 교외 숲에는 당시 수행자들이 모여들어 사는 땅이었고, 강가강 남쪽의 마가다국 사람들과 달리 황색인종인 석가족 사람들과 외모가 비슷했다.
싯다르타가 그곳에 도착하자 아라다 카라마의 제자가 스승과 그의 동료들에게 알렸다.
“여러분, 놀라지 마십시오. 한 수행자가 바이샬리로 걸어오고 있습니다. 그분은 우리와 피부색이 비슷한 석가족이 틀림없습니다. 당당하고 거룩한 모습은 왕자 출신 같고 마치 저 하늘에 뜬 태양과 같습니다. 실수하지 말고 그분을 정중하게 맞이합니다. 제사 일은 다음에 준비합시다.”
아라다 카라마도 싯다르타를 마음으로 환영했다. 두 사람은 인사를 나눈 뒤 곧 대화를 나누었다. 싯다르타는 아라다 카라마의 가르침을 다음과 같이 이해했다.
인간은 무지로 삶과 죽음의 고통을 끝없이 윤회하며 겪지만, 수행을 바르게 하면 생사윤회의 고통에서 해탈할 수 있다. 수행에 필요한 것은 생각을 한곳에 집중하는 선정인데, 이것에 의해서 지혜에 이를 수 있다.
여러 가지 수행 중에서도 중심을 이루는 것은 선정이다. 선정은 좌선해 정신을 통일하는 일이다. 그 정신적 체험에는 여러 단계가 있는데, 스승의 지도와 본인의 근기나 정진에 따라 어느 경지까지 나아갈 수 있으나 수행자마다 차이가 있다. 아라다 카라마 자신은 ‘무소유처정(無所有處定; 마음을 무소유라고 관하는 선정)까지 이르렀으나, 최고의 단계는 아니었다.
수행하여 얻은 가르침을 다르마, 즉 법이라고 부르며, 깨달음은 주로 선정에 의해서 이룰 수 있다.
아라다 카라마는 자신의 가르침은 독창적인 것이 아니라고 보았다. 선인들이 실천한 것들을 자신의 가르침으로 정리했다는 것이다.
아라다 카라마도 다른 교단의 지도자와 마찬가지로 수행과 제사를 병행하고 있었다. 탁발이 아닌 제사를 지내 의식주를 해결하고 있었다.      
싯다르타를 만난 아라다 카라마의 나이는 120세였다. 싯다르타는 아라다 카라마에게 말했다.
“카라마시여, 나는 이 법과 율에서 범행(梵行)을 닦고자 합니다.”
‘법과 율’이란 아라다 카라마 교단의 교리를, 범행은 수행을 뜻했다. 그러니까 요즘 말로 하자면 이런 말이었다.
“스승 카라마시여, 나는 당신의 가르침에 따라 청정한 수행을 하고 싶습니다.”
16세 출가하여 104년 동안이나 수행했으나 해탈의 경지에 이르지 못한 아라다 카라마는 언행이 거룩한 싯다르타를 기꺼이 제자로 받아들였다.
“여기 머무르시오. 그대와 같은 지혜로운 수행자가 우리 법과 율에 따라서 범행을 닦으면 머잖아 최고의 깨달음에 이를 것입니다.”
과연 싯다르타는 그곳에 머무른 지 얼마 되지 않아  선정을 얻었고, 그 경지를 아라다 카라마에게 말했다. 그러자 아라다 카라마는 자신이 개달은 무소유처(無所有處)라는 선정을 가르쳐 주었다. 무소유처란 말 그대로 마음 안팎으로 무념무상의 고요한 경지를 말했다.
다시 얼마 되지 않아 싯다르타는 그 경지마저 깨달았다. 그러자 아라다 카라마는 감탄하며 말했다.
“그대와 같은 수행자를 이 늙은 나이에 만나다니 나는 얼마나 행복한지 모르겠소. 내가 수행하여 깨달은 진리를 그대도 깨달았소. 이제 우리 사이에는 아무런 차이도 없소. 앞으로 이 교단의 수행자들을 우리 둘이 힘을 합쳐 가르칩시다.”
이 말은 아라다 카라마가 교단에서 자기와 같은 스승의 자격으로 싯다르타를 예우하겠다는 뜻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싯다르타는 이에 만족할 수 없었다. 이 경지는 무념무상의 선정 삼매에 들어 마음이 평안할 수는 있으나 생사윤회를 해결하는 깨달음의 경지가 아니니 때문이었다.
‘카라마의 가르침에 의해서 나는 무소유처의 선정 삼매에 들 수는 있었다. 그러나 내가 얻고자 하는 것은 생사윤회의 고통을 끊는 깨달음이 아니었던가. 내가 얻고자 하는 것은 위없는 깨달음이요, 생사해탈이다. 카라마여, 그대의 가르침에서 나는 멈출 수가 없다네.’
그래서 싯다르타는 교단을 함께 거느리자는 아라다 카라마의 제의를 뿌리치고 다시 길을 떠났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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