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여행|인도에서 본 팔상록(八相綠) |
‘소설가 정찬주와 떠나는 <인도에서 본 팔상록>’을 연재합니다. 인도를 찾아 붓다의 일생을 여덟 가지로 요약한 팔상록(八相綠)의 현장을 직접 순례하며 쓰게 될 이번 연재는 단순한 기행문에 그치지 않고 오늘을 사는 사람들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우리들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명상여행, 그 이상이 될 것입니다.
붓다가 탄생하신 땅 지금 나는 ‘영적인 빛으로 충만한 도시’란 뜻을 지닌 바라나시에 와 있다. 바라나시는 3천년의 역사를 지닌 고도(古都)이다. 붓다가 이 땅에 탄생하실 때에도 바라나시 바자르(bazar, 시장)에서는 비단 무역이 성했고, 힌두교도들이 평생을 걸어 찾아와 죽음을 맞이하는 성지 중의 성지였다고 한다. 붓다는 왕자 시절에 이곳에서 생산한 화려한 비단 옷을 입었는데, 경전에도 이곳이 ‘카시’라는 이름으로 나오고, 훗날에도 인도인들은 이곳의 비단을 카시비단이라 했다. 거리는 밤이 돼도 격정적이고 혼잡하다. 오토릭샤(삼륜 택시)와 릭샤, 자동차, 우마차 등이 사람들 사이를 곡예하듯 뚫고 다니는데, 흰 염소와 검은 소들이 어슬렁거리고 있다. 그래도 낮보다는 무질서가 덜하다. 나는 이 막무가내의 무질서를 예찬하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바라나시에서만은 알게 모르게 나를 길들였던 서울의 위악적인 질서를 칭송하고 싶지도 않다. 질서라는 강박으로 숨 막혔던 나는 이 바라나시의 무질서 속에서 한껏 자유를 향유하고 있다. 생명체에게는 균형을 맞추려 하는 본능이 있나 보다. 질서가 있다면 무질서가 있어야 균형을 이룰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붓다는 두 가지의 가치를 이분법과 상대적으로 보지 말고 ‘두 가지가 다르지 않다’는 불이(不二)의 눈으로 보라고 말씀하셨던 것 같다. 붓다가 깨달은 불이의 진리야말로 자신이 옳다고 극과 극으로 치달으며 서로에게 상처를 내며 미워하는 현대인들을 치유할 수 있는 명약이 아닐까 싶다. 바라나시에서는 잠시 인도(人道)를 벗어나 차도로 걸어도 되고, 아무 때나 가트(계단식 목욕장이나 화장터)로 나가 알몸에 강가(Ganges)의 강물을 끼얹을 수 있다. 서울에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지만 바라나시에서는 동쪽으로 난 어느 거리를 가든 끝까지 서성거리다 보면 강가 강에 닿을 수 있다. 생명체의 모든 핏줄이 심장으로 모아지듯 바라나시의 모든 길은 강가 강으로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이번이 세 번째 여행길이다. 15년 전에, 5년 전에, 그리고 이번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발걸음이다. 조금 전에 호텔에서 거부(巨富)의 결혼식 피로연을 보았으니 나는 이 바라나시에서 인간의 흥망성쇠를 다 본 듯한 느낌이다. 백마를 탄 신랑이 야외 식장으로 입장하니 제복을 입은 경찰들이 사열한 가운데 하객들이 신랑을 맞이했고, 연단의 악대가 귀에 익은 행진곡을 울리자 호화로운 피로연이 시작됐던 것이다. 아직도 ‘하하호호’ 깔깔대는 하객들의 웃음소리가 귓가에 맴도는 듯하다. 그런가 하면 낮 동안 거리를 거닐면서 보았던 엄마 젖을 빨던 아기요정의 이슬 같은 눈망울도 잊혀지지 않는다. 화장터로 이어지는 계단에서 내게 손을 내밀던 다리가 하나 없는 불구노인도 떠오르고. 그런데 화장터에서 태워지는 시신은 별 감흥을 주지 못했다. 죽음에 대한 관점이 달라서였을까. 무중력 상태의 동작처럼 느릿느릿 움직이는 장례 풍경이 나와 왠지 무관하게만 다가왔던 것이다. 머리끝과 두 발이 조금 드러난 채 흰 천으로 돌돌 말린 시신은 강가 강물에 두세 번 적셔진 후 장작불에 곧 화장이 되었는데, 상주는 슬퍼하기보다 무표정하기만 했다. 강가 강물에 아버지의 시신을 씻었으므로 망자의 죄는 다 소멸됐고 그리하여 더 이상 윤회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믿는 그런 얼굴이었다. 그러나 붓다는 뭐라고 했던가. 바라문 산가라바는 매일 아침저녁으로 낮 동안 자신이 저지른 죄를 씻기 위해 강가 강에서 목욕을 했는데, 이때 붓다는 산가라바에게 이렇게 말했던 것이다. “강가 강에서 목욕을 함으로 해서 모든 죄를 씻을 수 있다면 개구리나 거북이나 악어들도 죄로부터 자유로워지리라!” 붓다는 산가라바에게 죄를 씻으려면 강가 강이 아닌 선(禪)의 강에 목욕하라고 일렀다. “진정한 강은 선의 강이니 선의 맑고 깨끗한 물은 모든 사람을 자비롭게 씻어 준다. 선의 물에 뛰어들어 수영하는 법을 배우라.” 어느 별에서 한 점 영혼으로 깨어있을까 별 하나가 나를 보며 반짝이고 있다. 나는 그 별을 ‘깨어 있는 영혼’이라고 부르고 싶다. 영(靈)이라고 한 음절로 부르기에는 죽음 이후의 존재 같고, 혼(魂)이라고 부르기에도 역시 죽음 이후에 구천을 떠도는 외로운 존재 같기에, 생사를 초월하여 맑게 깨어 있는 존재를 나는 ‘깨어 있는 영혼’이라고 부르고 싶은 것이다. 일찍이 붓다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들은 단잠을 즐기라고 있는 것이 아니다.” 공부를 게을리하는 수행자들에게 잠을 줄여 부지런히 정진할 것을 강조한 말씀일 수도 있으나, 그보다 더 깊은 뜻이 있지 않았을까. 제자들에게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들을 보라고 한 이면에는 심오한 오의(奧義)가 있었던 것은 아닐까. 맑은 별빛을 타고 오는 ‘깨어 있는 영혼’을 만나 이심전심의 대화를 나누라고 한 말씀이 아니었을까. 지금 나는 그리 생각할 수밖에 없고 그리 믿고 있다. 엉덩이가 축축하다. 손수건을 깔고 앉았지만 낮 동안 힌두교도들이 몸을 씻느라고 끼얹은 물이 아직도 계단을 적시고 있기 때문이다. 강물을 끼얹는다고 해서 지은 죄가 소멸되고 윤회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 붓다가 말한 인과법(因果法)으로는 ‘아니오’라고 부정할 수밖에 없다. 그것은 힌두교의 속죄의식일 뿐이다. 죄를 지었으면 죄를 받는 것이 붓다의 진리다. 인(因)을 지었으면 이 세상 어느 누구라도 과(果)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어느새 나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좋아했던 한 편의 시를 중얼거려 본다. 이산(怡山) 김광섭(金珖燮, 1906~1977)이 남긴 절창의 시 「저녁에」라는 작품이다. 저렇게 많은 중에서 별 하나가 나를 내려다본다. 이렇게 많은 사람 중에서 그 별 하나를 쳐다본다. 밤이 깊을수록 별은 밝은 속에 사라지고 나는 어둠 속에 사라진다. 이렇게 정다운 너 하나 나 하나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나는 불가의 윤회와 인연을 담은, 이처럼 아름답고 절절한 시를 아직 본 적이 없다. 사람은 누구나 희로애락 속에서 울고 웃다가 사라진다. 붓다에 이르지 못한 중생이라면 빛도 있고 그림자도 있고 아름다운 면도 있고 지우고 싶은 흠결?있게 마련이다. 그러나 미완의 인간이라도 자비와 사랑하는 마음으로 참으로 그리워한다는 것은 무릇 아름다운 일이고, 그러한 인연을 노래한 작품이 바로 김광섭의 「저녁에」이다. 나는 이 시를 좋아하다가 죽은, 목이 유난히 길었던 화가 한 사람도 잊을 수 없다. 전남 신안군 안좌면 출신의 수화(樹話) 김환기(金煥基, 1913~1974) 화백이다. 그는 말년에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 뉴욕생활을 하면서 인연 맺었던 사람들이 너무 그리워 김광섭의 「저녁에」 마지막 시 구절인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Where would we meet as what?)’에 영감을 받아 밤하늘의 별을 보며 그리운 사람들이 생각날 때마다 캔버스에 점을 하나씩 찍어갔다. 소위 점화(點畵)를 완성한 것이다. 이 그림이 1970년 제1회 <한국미술 대상전>에서 대상을 받았고 그가 남긴 최고의 명화가 됐다. 김환기가 김광섭의 시를 만날 수 있었던 것은 생전에 문인과 사귀기를 좋아했던 그의 성정에서 비롯되었을 터이다. 그의 결혼식에선 시인 정지용이 청첩인으로 하객을 맞이했고, 시인 조병화도 절친한 평생지기였다. 애절한 그리움은 때로 사람을 사랑하게 하는 힘이 되기도 하는 모양이다. 자비심을 길러 주는 원천이 되기도 한다. 붓다는 “자비심이 곧 여래다”라고 했다. 그러니 중생에 대한 그리움이 없는 수행자는 진정한 수행자라고 할 수 없으리라. 나는 2천5백 년 전의 붓다가 어느 별에서 한 점 영혼으로 깨어 있을 때에 무엇을 생각했을까 하고 명상에 잠긴 일이 있다. 언젠가가 아니라 지금도 그런 상념에 빠져 있다. 강가 강물에 떨어지는 저 별빛이 나를 그때로 안내하고 있다. ‘붓다가 태어나시기 전 어느 별에서 한 점 깨어 있는 영혼으로 계실 때 어떤 생각으로 지상의 중생들을 바라보았을까. 생로병사의 고통에 빠져 있는 중생을 보고 무슨 마음을 내셨을까.’ 붓다의 마음은 자비심 그 자체다. 붓다의 후예들이 저술한 『팔상록(八相錄)』을 보면 중생을 향한 그리움으로 점철되어 있다. 모든 중생을 생로병사로부터 자유케 하고자 궁구하고 있는 것이다. 붓다의 눈은 이 세상 모든 중생의 눈물인 양 설산에서 발원한 강가 강의 지류를 따라 움직이다가 카필라 성이란 조그만 소국에서 시선을 멈추고 있다. 『팔상록』은 붓다가 머문 별을 ‘도솔천’이라 하고 있다. 도솔천이란 수많은 별(극락)들 중에서 선한 행위를 한 공덕으로 태어나는 곳을 말한다. 도솔천에서의 붓다 이름은 호명 보살, 도솔천의 천인(天人)들이 호명 보살의 마음을 읽고 이렇게 청한다. 존귀하신 스승이시여, 당신이 10바라밀을 행하심은 제석천이나 마왕, 범천, 전륜왕의 영광을 위해 이룬 것이 아니옵고, 오직 저 세상의 모든 중생을 제도하고자 일체지(一切智)를 추구함으로써 이루신 것이옵니다. 스승이시여, 바야흐로 부처님이 되기 위한 때가 왔나이다. 존귀하신 스승이시여, 부처님이 될 때나이다. 이에 호명 보살은 천인들과 자신의 마음이 이심전심이 된 것을 기뻐했다. 호명 보살은 중생을 제도하고자 10바라밀을 닦아왔으나 새들이 허공에 자취를 남기지 않듯 자신의 목적을 드러내지 않고 때를 기다려 왔던 것이다. 순례자의 발걸음은 쉼이 없다 보살은 먼저 자신이 태어날 때와 장소를 생각했다. 시기를 살피게 된 이유는 인간 세상이 너무 평화로우면 신앙심이 생겨나지 않고, 반대로 인간 세상이 너무 타락한 상태라면 신앙심까지 메말라 있을 것 같아서였다. 그래서 보살은 그 중간 정도의 시기를 찾았다. 장소는 번성한 바라나시를 중심으로 하여 발달한 인도 중심부의 국가 중 하나를 선택했다. 태어날 출신계급은 귀족인 크샤트리아가 좋을 것 같았다. 귀족은 세습 종교가인 바라문과 무사 귀족인 크샤트리아가 있었는데, 보살은 종교적으로 편견이 있는 바라문보다는 무슨 사상이든 받아들일 수 있는 크샤트리아가 알맞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어느 왕의 몸을 빌려 태어날지에 대한 문제는 토론이 길어졌다. 천인들은 인도의 열여섯 나라를 하나하나 짚어 갔지만 하나도 점지하지 못했다. 결국 보살에게 조건을 제시받았다. 보살은 국토의 조건에 대해서는 예순네 가지, 어머니가 되실 분의 조건에 대해서는 서른두 가지를 말했다. 태어날 땅은 상업이 발달한 곳보다는 수행 환경이 좋은 농경의 대지가 좋았고, 어머니는 무슨 일이든 이해하고 자비심이 뛰어난 분이어야 했다. 결국 이런 조건을 갖춘 땅은 석가족의 슛도다나 왕이 지배하고 있는 카필라 성(바스투)이었고, 어머니는 마야 왕비가 되었다. 그런데 왜 보살은 카필라 성 서쪽에 있는 코살라국이나 강가 강의 남쪽에 있는 마가다국이라는 강대국에 태어나지 않고 조그만 소국에 태어났을까. 그 이유는 번잡한 도시국가보다는 조용한 농촌사회가 사색과 명상을 하기에 알맞았기 때문이다. 보살은 어머니 마야 왕비의 태 안에 들어가기 전에 마지막으로 신들과 천인들에게 설법을 했다. 설법 가운데 주목할 만한 것은 미륵보살에게 언젠가 자신처럼 지상으로 내려와 말세 중생들을 제도하라고 당부하는 대목이었다. 이 부문을 『팔상록』은 도솔래의상(挑率來儀相; 도솔천에서 내려오시다)이라고 요약하여 표현하고 있는데,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붓다의 행동이 천인들의 간청에 의한 것이 아니라 붓다의 의지에 의한 필연이라는 점이다. 『팔상록』에는 중생제도를 위해 모든 지혜를 닦았고 10바라밀을 행했다고 하지만 다른 경전에는 수백생의 정업(淨業)을 닦았다는 기록이 보인다. 나 같은 중생으로서는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세월 동안의 긴긴 서원이자 원력이다. 붓다의 탄생은 이처럼 보살의 큰 원력에 의한 필연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필연을 믿어야만 우리는 붓다의 위대하고 거룩한 일생을 조금이라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수백 생이나 이어진 붓다의 전생을 잘라버린 채 우리들의 눈에 보이는 80년을 살다간 한 인간의 일생 속에서만 붓다를 이해하려는 것은 마치 장님이 코끼리 뒷다리를 만져 보고 태산 같은 코끼리를 얘기하는 것이나 다름없는 일일 터이다. 두말할 것도 없이 수백생의 정업을 닦은 보살이었기에 도솔천이란 별에 태어났고, 그 도솔천에서 지상의 중생들을 너무나 그리워하고 사랑하였기에 보살은 지상으로 내려올 시기를 준비하고 있었던 것이다. 컴컴한 밤인데도 나룻배들이 강 건너 모래밭까지 왕래하고 있다. 순례자들이 촛불을 손에 들고 기도하고 있는 모양이다. 경전에는 저 모래밭을 항하사(恒河沙), 강가 강물을 항하수(恒河水)라고 표현하고 있다. ‘강가’를 한문으로 ‘항하’라고 하니, 헤아릴 수 없는 양(量)을 그렇게 비유하고 있는 것이다. 바라나시의 하수가 흘러들어 강가 강물이 악취를 풍길 것 같은데도 다음날이면 히말라야 쪽에서 흘러든 물로 정화된다고 하고, 강물은 끝없이 흘러오고 또 흘러가니 『반야심경』의 구절처럼 ‘불구부정(不垢不淨)’, ‘부증불감(不增不減)’이다. 강가 강은 바라나시의 심장이자 우리 눈앞에 펼쳐진 『반야심경』이다. <계속> 정찬주 1953년 보성 출생. 동국대 국문과를 졸업했으며 『한국문학』 신인상을 받으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20여 년간 깊이 있는 명상적 산문과 소설을 발표해 왔으며 성철 스님 일대기를 다룬 『산은 산 물은 물』, 만해 한용운 이야기를 담은 『만행』 등의 장편소설과 『선방 가는 길』, 『나를 찾는 암자 여행』, 『길 끝나는 곳에 암자가 있다』, 『정찬주의 茶人기행』 등의 산문집을 발표했다. 1996년 행원문학상을 수상했으며 지금은 화순 쌍봉사 입구에 ‘이불재(耳佛齋)’라는 산방을 짓고 농사와 집필에 전념하고 있다.
[느낌] ...디가니가야의 14번째 대전기경은 91겁 전의 위빠시 붓다를 시작으로 하는 과거 7불을 이야기하고 이른바 부처들이 이 세상에 출현하는 법칙들을 열거하고 있다. 도솔천에 있다가 청정한 여인의 자궁에 하강하고, 보살의 어머니는 10달 동안 임신해 있다가 서서 출산하고, 보살의 어머니는 7일만에 죽어서 도솔천에 태어난다는 내용이다. 아기가 태어날 때 하늘에서 두 개의 물줄기가 �아져서 아기를 목욕시키고, 아기는 북쪽으로 일곱 발자국 걸어가서는 “나는 세상에서 최상이요, 나는 세상에서 으뜸이다, 이것이 마지막 생이다. 더 이상 다시 태어남은 없다”라는 선언을 한다고 한다.
이것을 그대로 믿을 것인가? 아니면 신화적으로 해석할 것인가?
이 문제를 정리하는 것이 붓다를 평가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이 될 것이다. 대전기경은 니까야라는 원전의 근거가 되는 경인데 대전기경의 불타관은 대승의 원류가 되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
728x90
'모셔온 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명상여행|인도에서 본 팔상록(八相綠) 3 (0) | 2008.08.25 |
---|---|
명상여행|인도에서 본 팔상록(八相綠) 2 (0) | 2008.08.24 |
오온(五縕)이 모두 공(空)한 것을 통찰하심으로--한형조_ (0) | 2008.08.23 |
휴암 스님 인터뷰 - 누가 감히 불교를 사랑하나 (0) | 2008.08.23 |
“내 말이 내 몸의 일부이기를!”-작가 김훈 (0) | 2008.08.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