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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셔온 글

“내 말이 내 몸의 일부이기를!”-작가 김훈

[김인정의 인물탐험] “내 말이 내 몸의 일부이기를!”
-작가 김훈

“난 남녀가 평등하다고 생각 안 해. 남성이 절대적으로 우월하고 압도적으로 유능하다고 보는 거지. 그래서 여자를 보호하고 예뻐하고 그러지.”
“나도 관념적으로는 통일을 바래. 하지만 피부가 아프게 몸을 상해 가면서 통일을 바라고 그런 건 아니야. 통일을 바라지 않아. 못살 게 뻔한데….”

 몇 해 전, 《한겨레 21》의 방담 코너인 ‘쾌도난담’은 평상시 그 잡지를 보지 않던 독자들까지 구경꾼으로 끌어 모으는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다. 게스트로 나온 김훈의 ‘톡톡 튀는 발언들’때문이었다.
사건 직후, 김훈은 곧바로 《시사저널》 편집국장 자리에서 스스로 물러났다. 나주 남평을 비롯한 시골을 전전하며, 그의 표현에 따르면 ‘정의로운 자들의 세계’로부터 스스로를 단절시켜 버렸다.

이후 《칼의 노래》로 동인문학상을 수상했고, 한겨레신문 사회부 기자로 입사해서 종로경찰서 2진으로 평기자 노릇을 했다. 한참 어린 후배 기자들과 똑같이 움직이며 의문사진상규명위의 현실적 벽, 정신대 할머니들의 수요집회와 여중생의 죽음을 외면하는 미군부대에 대해, 뜨겁고 눈물겨운 ‘속살의 언어’를 보여주었다. 그것도 잠시, 그는 다시 한겨레를 나왔다. 그리고 《자전거여행 2》와 《현의 노래》 《밥벌이의 지겨움》을 썼다.   

우리사회에 특별한 지형을 만드는 이름, 김훈
쉼 없이 끓어 넘치는 그래서 어디로 흘러갈 것인지를 짐작조차 할 수 없는 그의 궤적들을 보면서 놀라운 게 있다. 하나는 한국사회에서 다른 직업도 아닌 ‘기자’로 30여 년을 살아온 사람에게 어쩌면 이렇게 ‘날 것 그대로인 솔직함’이 있을까 하는 대목이고, 또 하나는 그런 김훈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뜻밖의 시선’이다.

이문열에게는 사정없이 돌을 던지던 진보적 지식인들조차도 김훈을 ‘이문열’ 대하듯 하지는 않는다. 신군부 시절, 용비어천가를 자청해서 썼다는 그의 전력조차도, 지난 대선 때, 노무현이 아니라 이회창을 지지했다는 그의 선택조차도,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려는 독특한 현상이 빚어지고 있다. 우리 아니면 적, 이분법적인 두 개의 바퀴로 굴러가는 우리 사회에서 사람들은 왜 ‘김훈’이라는 이름에 대해 이토록 특별한 지형을 허락하는 것일까. 김훈이 만들어낸 미묘한 접점의 힘은 어디에 있을까.

경기도 일산 국립암센터 근처에 작가 김훈의 집이 있다. 예전엔 바로 그 옆집에 김대중 대통령이 살았었다. 늘 경호원이 상주해 있어 도둑 염려가 없어 좋았다고 한다. 계획도시처럼 반듯하게 집과 가로수가 그려져 있는 이 동네에서 자가용이 아닌 자전거를 타고 나다니는 사람은 이제 자전거를 배우기 시작하는 꼬마아이들과 쉰 여덟이 되어 가는 김훈뿐이다.  

“자전거를 처음 탔을 때, 무슨 벼락을 맞은 것 같았어요. 세상에 이렇게 좋은 게 있었는데, 하마터면 모르고 살 뻔했구나. 강가를 달리고, 지는 햇살 속으로 스며들고, 바람 속으로 달려갈 때면, 어쩔 땐 큰소리로 마구 웃을 때가 있어요. 너무 좋아서…. 그래서 자전거를 몇 번 타보고는 마누라에게 말했지. 이걸로 먹고 살아야겠다고. 그랬더니 무슨 배달일 나갈 거냐고 하더구만. 큭큭큭.”
 

자신이 체득한 진실로만 얘기하는 모던보이
결국 그는 자전거로 밥벌이를 단단히 해냈다. ‘풍륜(風輪)’이라 이름 붙인 자전거를 타고서 그는 전국의 산천을 누볐다. 500만원이 넘는 고가 자전거가 늙은 말처럼 망가지도록 소백산맥을, 남쪽의 해안선을, 만경강 갯벌을 달려 다녔다. 그리곤 몸소 체득한 풍광의 서정들을 산지직송으로 도심의 지친 이들에게 배달해 주었다.  

“참 감동스러운 것은 가파른 산길을 갈 때, 자전거가 1단 기어로 올라간다는 사실이에요. 오르막에서 기어를 낮추지 않으면 견디지 못한다는 거지. 1단 기어는 고개의 가파름을 잘게 부셔서, 가장 완강한 고개를 가장 연약한 힘으로 넘게 해주지요. 자전거가 내 몸을 배기통으로 쓰면서 언덕을 함께 올라가는 거지요.”

자전거를 타고 오르막을 오를 때, 길이 몸 안으로 흘러들어올 뿐 아니라 기어의 톱니까지도 몸 안으로 흘러 들어온다. 내 몸이 나의 기어인 것이다. 오르막에서, 땀에 젖은 등판과 터질 듯한 심장과 허파는 바퀴와 길로부터 소외되지 않는다. 땅에 들러붙어서, 그것들은 함께 가거나 함께 쓰러진다.

“자동차는 운전을 할 줄도 모르고, 사실은 무서워요.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속도를 내는 물건이 무서워. 기차는 좀 나은데, 자동차는 죽음을 내재하고 다니는 물체 같아서….”

인디안블루빛의 털스웨터를 입고, 빛바랜 청멜빵바지를 입었다. 이마 위로 흩어진 희끗거리는 흰머리도 멋부리기 위해 일부러 물을 들인 브릿지헤어 같다. ‘모던보이’같은 도회풍의 겉모습으로 보자면 스포츠카를 몰아도 손색이 없을 듯한데, 자동차뿐 아니라 컴퓨터도 없다. 몽당연필로 종이에 한 자 한 자 고쳐가며 글을 쓴다. 체질적 보수주의자 같기도 하고, 몸으로 부딪치는 일 외엔 흥미가 없는 사람 같기도 하다.

―자주 사표를 쓰고, 쉽게 자릴 박차고 나왔다. 왜 그런가.
△한 스무 번쯤 된다. 갈등이 생겼을 때, 쉽게 타협 않는다. 속을 접은 화해보단 갈등이 더 낫다. 사내들은 돈 잘 벌어서 가족들에게 따뜻한 집을 만들어주고 싶고, 예쁜 여자들을 사랑해주고 싶어한다. 나 역시도. 그런 말들을 했대서 죽일 놈이 되고, 그런 말을 안 했대서 도덕군자는 아니다.

―출판인들이 뽑은 차세대 대표 작가다. 어떻게 생각하는가.
△차세대를 대표할 생각이 추호도 없다. 나는 그냥 내 글을 간신히 쓸 뿐이다. 작가는 대단한 게 아니다. 밥벌이를 위해 자기 재주를 부리는 사람이다. 노래하는 사람이 자기 목소리로 노래할 수밖에 없듯이, 악기가 제 공명통으로 소리를 낼 수밖에 없듯이 나는 나의 기록을 해나갈 뿐, 한계는 너무나 많다.

―김훈표 미문(美文),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내 문체를 말하는 이들 가운데 나를 경멸하기 위해 문체만을 얘기하는 이들이 있다. 하지만 그 역시도 좋다. 나는 글을 쓸 때, 휘모리로 쓸 것인지, 진양조로 쓸 것인지 음악성을 먼저 고민한다. 음악성을 정하고 나면, 다음은 영상이다. 혼자 앉아서 그림들을 조합해 본다. 그러니 골방에 앉아서 작곡도 하고, 영화도 찍는다. 아무도 도와줄 사람이 없는 지독한 작업이다.
 
글쓰기는 아무도 도와줄 사람 없는 지독한 작업
이야기를 나누며 둘러본 김훈의 서재에는 별의별 책들이 다 많다. 무기와 전쟁에 관한 전문서적들이 빼곡한가 하면, 다른 한켠에는 한국의 악기와 중국, 일본, 서양의 악기에 관한 꽤 비싼 책들이 수도 없다. 배관공 자격시험문제집, 연판공, 항해사 관련 서적들도 있다. 자전거 수리용 부품과 나침반, 타이어에 바람을 넣는 손장비도 있다. 취재하고, 또 취재하고, 들여다보고 또 들여다보는 자의 고단한 몸짓이 그의 공간 사방에 스며 있다.

왜 이렇게 스스로에게 눈을 부릅뜨고 있을까 싶을 만큼 선연한 자의식, 변명보다는 침묵의 대가로 몰매를 맞고 마는 못말리는 기질, 물음표처럼 자전거 위에 웅크린 채 쌩쌩 달리는 자동차 사이를 비윗살 없이 가는 사람, 이야기를 나누며 그려보는 김훈의 그림은 아무래도 편안한 것이 되진 못했다.

몽당연필이 가득한 작업실을 빠져나오며, 언젠가 그의 책에서 읽은 문장이 선연하게 떠올랐다. 
<나는 내 말이 눈물이나 고름처럼 내 몸에서 흘러나오는 액즙이기를 바랐다. 그 분비물로 보편적 진실을 말하려는 허영심이 내겐 없다. 나는 그 진물이 내 몸의 일부이기만을 바랐다. 세상은 읽혀지거나 설명되는 곳이 아니고, 다만 살아낼 수밖에 없을 터이다. 나는 미리 설정한 사유의 틀 속으로 세상을 편입시킬 수는 없었다.”

김인정님은 소설가로, 방송작가로, 한겨레신문 방송컬럼니스트로 다양한 매체에서 글쓰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따뜻하면서도 깊이 있는 눈으로 세상풍경과 사람살이를 건져 올립니다. 지금 광주MBC <오정해가 만난 사람>의 작가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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