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타니파타 5.3. 학인 띳싸 멧떼이야의 질문에 대한 경.
“ 이 세상에서 누가 만족합니까? 누가 동요(*1)하지 않는 자입니까? 누가 양극단을 곧바로 알아 지혜롭게 중간에도 때 묻지 않는 자입니까?(*2) 누구를 위대한 님이라고 부릅니까? 이 세상에서 피륙을 뛰어넘은 자는 누구입니까?”
감각적 쾌락의 세계에서도 청정한 삶을 지키며, 갈애를 떠나 항상 새김을 확립하고 성찰하여 열반에 든 수행자, 그에게는 동요가 없는 것입니다.
지혜롭게 중간에도 더럽혀지지 않습니다. 그를 나는 위대한 님이라 부릅니다. 그는 이 세상에서 욕망의 피륙을 뛰어넘어 있습니다.”
주해(*1) prj Ⅱ. 588에 따르면 ‘갈애와 견해에 의하여 흔들리는 것들’을 말한다.
학인 띳싸 멧떼이야의 경이 끝났다. ---------------------------------------------------------------------------------------------------- re: 숫타니파타 5.3. 학인 띳싸 멧떼이야의 질문에 대한 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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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보에 귀의하옵고
법우님 안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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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경은 숫타니파타뿐만 아니라 앙굿따라니까야나 잡아함에도 나옵니다.
불제자와 수행자에게 무척이나 중요한 경으로
사성제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고
연기법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고
윤회가 일어나고 소멸하는 것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고
대념처경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고
지금여기 마음챙기고 알아차리며 갈애를 끊는데 직접 도움이 됩니다.
멧떼이야의 질문은 4가지입니다. 부처님도 이 순서에 맞추어 답을 하시고 계십니다.
1. “ 이 세상에서 누가 만족합니까?
[세존] 멧떼이야여,감각적 쾌락의 세계에서도 청정한 삶을 지키며,
= > 소욕지족을 말합니다.
2. 누가 동요(*1)하지 않는 자입니까?
“갈애를 떠나 항상 새김을 확립하고
성찰하여 열반에 든 수행자,
그에게는 동요가 없는 것입니다.
* 전재성박사님은 sati를 새김이라고 번역하십니다. 보통 알아차림이라고 합니다. 부처님에게 이 말씀은 완전한 정등각자이시고 아라한이시기 때문에 무명과 갈애가 완전히 소멸하여 항상 적정열반임을 말씀해주시고 계십니다. 불제자와 수행자들은 갈애가 일어나지 않도록 알아차림을 놓지 않아야 하겠습니다. 이것이 불제자들이 닦아야 할 위빠사나입니다. 거꾸로 동요가 없다는 것은 열반에 들었기 때문이며, 열반에 든 것은 갈애를 떠났기 때문이며, 갈애를 떠난 것은 항상 알아차림을 확립하였기 때문인것입니다.
3. 누가 양극단을 곧바로 알아
지혜롭게 중간에도 때 묻지 않는 자입니까?(*2)
4. 누구를 위대한 님이라고 부릅니까?
이 세상에서 피륙을 뛰어넘은 자는 누구입니까?”
그는 양극단을 곧바로 알아,
지혜롭게 중간에도 더럽혀지지 않습니다.
그를 나는 위대한 님이라 부릅니다.
그는 이 세상에서 욕망의 피륙을 뛰어넘어 있습니다.”
=> 이 부분에 대하여 초기승단의 존자들이 모여 무슨뜻인가를 서로 논의 하시는 경이 있습니다. 앙굿따라니까야a6.61.중간경(Majjhesutta), 잡아함1164. 바라연경(波羅延經)이 그렇습니다. 초기승단에서도 이러한 숫타니파타의 경이 합송되어 전승되고 논의하는데 부처님이 설하신 뜻을 잘 모르면 서로 논의하기도 하고, 또 부처님의 설법을 듣기도 한것입니다. 이 경에서 말씀하시는 양극단과 중간은 우리가 잘아는 양극단과 중도의 의미와는 조금 다릅니다. 같다고 볼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우선 차이가 있으니 주의하시면서 읽으시면 좋겠습니다.
_()_
앙굿따라 니까야 중간 경(A6:61.7.Majjhesutta)에서 인용합니다.
잡아함1164. 바라연경(波羅延經)
내가 『숫따니빠따』「도피안 품」의「멧떼야의 질문」에서 설하기를,
“지혜로운 자는 양극단을 안 뒤
중간에도 물들지 않도다.
나는 그를 대인(大人)이라 부르노니
그는 여기서 바느질 하는 여인[針母]을 넘어섰도다.”
라고한 것에 대한 설명을 그대들은 들어라. 듣고 잘 마음에 잡도리 하라. 이제 나는 설할 것이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세존이시여.”라고 장로 비구들은 세존께 응답했다.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감각접촉[觸]이 하나의 극단이고
감각접촉의 일어남이 두 번째 극단이며
감각접촉의 소멸이 중간이고
갈애가 바느질하는 여인이다.
갈애가 그것을 기워서 이런저런 존재로 태어나게 한다.
비구들이여, 비구는 이렇게 하여 최상의 지혜로 알아야할 것을 최상의 지혜로 알고 철저하게 알아야할 것을 철저하게 안다. 최상의 지혜로 알아야할 것을 최상의 지혜로 알고 철저하게 알아야할 것을 철저하게 알면 지금여기에서 괴로움을 끝내게 된다.”
부처님이 설법하신 것에 의하면 이 게송에서 하신 양극단 중간 바느질하는 여인(피륙)은 감각접촉, 감각접촉의 일어남, 감각접촉의 소멸, 갈애라고 합니다.
이 말씀의 간단한 뜻은 바로 위에서 멧떼이야에게 말씀하신 다음 게송과 같습니다.
“갈애를 떠나 항상 새김을 확립하고
성찰하여 열반에 든 수행자,
그에게는 동요가 없는 것입니다."
알아차림이란 육근과 육경이 부딪히는 감각접촉, 감각접촉의 일어남, 감각접촉의 소멸을 마음챙기며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불제자와 수행자는 알아차림이 깊어지면서 이런 6문에서 일어나는 감각접촉/감각접촉의 일어남/감각접촉의 소멸을 위빠사나로 지켜볼수 있게됩니다.
부처님은 이것을 알아차리지 못하였을때 갈애라는 바느질 하는 여인이 이렇게 저렇게 기워서 이곳 저곳에 태어나게 한다고 하신것입니다. 우리가 육문에서 일어나는 감각접촉을 바르게 알아차리지 못하였을때 끊임없이 갈애에 휘둘릴수 밖에 없음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사성제의 집성제가 바로 이러한 갈애가 끊임없이 일어남을 말합니다.
대념처경의 뒷부분에 집성제는 이러한 갈애의 일어남이요. 멸성제는 갈애의 소멸 포기로 나타납니다.
그러므로 양극단을 여의고 중간에도 집착하지 않아 바느질하는 것을 멈추게 하려면 불제자가
감각접촉/ 감각접촉의 일어남/ 감각접촉의 소멸을 마음챙기고 알아차려 갈애가 일어나는것을 차단하는 것입니다. 부처님이 이것을 위해 사념처 위빠사나를 가르쳐주신 것입니다.
... 부처님은 이 경에서 갈애를 옷감짜는 것, 피륙을 짜는 것, 바느질 하는 것으로 비유를 하셨는데 널리 알려진 부처님의 오도송에서는 갈애를 집짓는 것으로 비유하셨습니다. 부처님의 오도송과 관련하여 이 경을 읽어도 불제자들에게 참으로 좋을 것입니다.
_()_
그러므로 이 경의 핵심은 이 게송입니다.
2. [세존] “멧떼이야여,
감각적 쾌락의 세계에서도 청정한 삶을 지키며,
갈애를 떠나 항상 새김을 확립하고
성찰하여 열반에 든 수행자,
그에게는 동요가 없는 것입니다.
위 게송에서 핵심은
"갈애를 떠나 항상 새김(알아차림)을 확립하고" 라고 하겠습니다.
알아차림이 갈애를 끊습니다.
알아차림이 바느질하는 여인이 바늘을 놀릴수 없게 합니다.
알아차림이 지금까지 바느질한 옷감을 찢어버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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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석가모니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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