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 불교 지식인의 질문에 대한 대답을 옮겨 놓습니다.>
이번생에 우리나라에 태어났으니... ^^오는사람 막지않고 가는 사람 잡지 않는다하는데요...이것이 불교전법에도 비슷해서 약간 소극적인것 같거든요.
근데 이것이 초기불교나 남방불교에서도 이렇게 소극적인가요?
또 원래 대승불교는 전법에 적극적이지 않나요?
부처님도 전법선언에서 강조했던것 같은데...
제가 생각하건데..선불교의 영향에다가... 산중불교..영향에다가... 기독교가 극성으로 전파하니 반사적으로 더욱 소극적이 된것 같은생각이 드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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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질문 감사합니다.
중요한 지적을 하여 주셨습니다.
우리가 지금 이야기 하고 있는 네이버 지식인 활동현황을 각 종교별로 비교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숫자는 이제까지 올라온 질문 갯수입니다)
개신교 (69,459) 불교 (15,744) 가톨릭 (23,655) 이슬람교 (1,214) 소규모종교 (3,360)
개신교에서 4.5배정도 질문이 많이 올라 왔군요. 가톨릭과 합하여 비교하면 더욱 차이가 나겠지요.
daum 에는 지식인 보다도 까페가 활성화 되었지요.
다음의 까페 수를 종교별로 비교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기독교(137738) 불교(10528) 가톨릭(15350) 종교일반(2910) 기타종교(5439) 종교모임(3263) 원불교(1659) 봉사(3540)
기독교의 까페가 불교보다 13배정도 많습니다. 까페 숫자로는 기독교 까페가 불교보다 127210개가 더 많습니다. 가톨릭 까페도 불교보다 5000개가 더 많구요.
오늘자 daum 의 종교란 뉴스를 보면 국민일보에서 보도한 기독교 뉴스가 22건이나 되는데 불교는 3건 정도입니다. 그것도 불교계는 일간신문이 없으니 불교에 대한 기사는 “연합뉴스”나 “한겨레신문”등에 의존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래서 거의 다음의 종교뉴스는 불교관련 뉴스가 한 두 개 정도이고 모두 기독교뉴스로 채워져 있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naver 의 종교란 뉴스도 마찬가지입니다. 국민일보에서 보도한 기독교 뉴스가 거의 독차지 하고 있습니다.
현대인들과 갈수록 밀접하게 사용되는 인터넷에서 불교는 다른 종교와 어깨를 나란히 하지 못합니다.
무려 13배나 차이가 나는 것, 이것이 지급 불교의 현주소입니다.
종교계가 세운 사립학교 숫자는 또 어떻습니까?
짐작컨대 100배 이상 차이가 날 것 같군요.
이렇게 기독교인들은 기독교 사립 학교에서 성경을 주입시키고 예배를 의무화 하면서 모든 학생을 기독교인으로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학교에서 종교자유를 외치던 강의석군이 지금 법원에서 패소하였습니다. 이제는 학교에서 성경교육을 시키고 강제로 예배를 하게 해도 좋다는 면죄부를 준 꼴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더 관심을 기울여야 했던 문제였습니다.
이렇게 불교는 이 땅에서 점점 쇠약해 가고 있습니다.
앞으로는 일반 청소년들이 학교를 가더라도 기독교 사립학교를 가게 되고 회사에 취직하더라도 기독교인이 운영하는 회사에 취업하고 인터넷도 기독교뉴스만 자연스럽게 접하다가 자연스럽게 기독교인이 되어 갈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은 불교인이 포교하는 방법은 일간신문 종합병원 사립학교를 건립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일상생활에서 불교적 정서가 흐르는 문화가 피어나게 해야 하는데 그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언론 즉, 일간신문이란 것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일간신문의 기사는 곧 인터넷 포털의 기사가 되기 때문에 막대한 영향력을 미치게 됩니다. 일간 신문이 어렵다면 오마이뉴스 같은 인터넷 신문이라도 만들어야 합니다. 일주일마다 한 두번 오는 기존의 불교신문 법보신문 현대불교신문 가지고는 결코 경쟁이 되지 못합니다.
왜 그럼 우리는 찬란한 역사를 가지고 수많은 문화재 사찰을 가지고도 이러한 신문, 병원, 학교를 많이 가지지 못하였을 까요?
우리가 소승 불교라고 부르는 테라와다 스님들은 노래 부르고 춤추는 곳에 가면 계를 파하게 됩니다.
그런데 대승불교의 스님들은 노래하는 스님, 화가스님, 음악가 스님, 스키선수 스님, 택시운전하는 스님까지 모두 용납이 되는데 어째서 이 사회에서 영향력이 점점 사그러져 가고 있느냐 말입니다.
저는 한국 불교가 대승이면서도 스님들이 “대승적이지 못해서” 라고 보고 싶습니다. 자리이타를 배우면서도 자신만의 해탈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그렇게 자기만의 해탈을 위해 전력하는 것도 나쁘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것도 제대로 못합니다. 왜냐하면 해탈하기 위한 방법과 원리와 이정표를 잘 모르고 배우지도 않기 때문입니다. 이것의 큰 요인은 이제까지 한문으로 불교를 해야 했던 운명도 한 몫합니다.
하나의 한문 경전을 보면 10가지의 해석이 나오게 마련인 한문경전을 해석하다보니 해석불교, 자신만의 불교를 하게 됩니다. 더군다다 아함경을 소승경전으로 무시하여 왔던 탓에 역사속의 붓다를 모릅니다. 불교 역사를 배우지도 않을 뿐더러 한국의 강원교재는 기원전의 인도불교의 역사는 건드려 보지도 못하는 교재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렇게 붓다와 붓다의 가르침을 잘 모르니 자기만의 불교를 하게 되고, 한문과 선의 흐름속에서 분석과 이해가 아닌 직관을 강보하게 되니 이성적인 대화도 사라져 버렸습니다. 그리하여 대화를 논리정연하게 못하는 집단이 되다보니 이러한 집단이 어떻게 사회를 이끌고 선도해 나갈 수 있겠습니까?
이럴 줄 몰랐습니까?
현대사회가 이렇게 변화하고 불교가 이렇게 될 줄...
우리 불자들은 이렇게 될 줄도 몰랐습니다.
부자집이 망해도 3년은 간다는 말처럼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교는 당분간 지속되기는 할 것입니다.
그러나 불교가 지속되는 형태는 사회의 홀대와 멸시 속에서 지속 될것 입니다.
불교가 탄압받고 있는 현재의 이시점이 어쩌면 그때가 아닌가 합니다.
그러나 역사속에서는 언제나 희망은 있었듯이 지금도 희망은 있습니다. 스님들이나 불자들에게 불교의 희망이 승가 집단에 있는 것이 아니라 불교사상의 우수성에 있다고 보는 것도 가장 큰 희망입니다. 그리고 지금 아함경이 중요하게 생각되고 빠알리어 원전에서 직접 벅역된 [니까야 경전]도 널리 알려지기 시작하니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문제해결과 대화문화가 치어날 것이라는 기대를 갖게 합니다.
지금 (힘없는)우리가 할 일은 우선 불교를 열심히 공부해서 “많은 사람들의 행복을 위하여 이익을 위하여 길을 떠나라. 한길을 두 사람이 가지마라. 처음도 좋고 중간도 좋고 끝도 좋은 법을 설하라.”고 하신 붓다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실천하는 현대적인 방법은 모든 국민이 보는 일간신문, 인터넷신문을 만드는 것입니다.
naver 불교 지식인 활동도 그중의 하나라고 볼 수 있겠군요.
불교의 우수성, 합리성, 무궁한 콘텐츠는 인터넷에서 더욱 빛을 발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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