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초기불교

[스크랩] Re:[indriya]와 [aayatana]六根-十二處

아래는 각묵스님의 글입니다.
긑에 저의 의견도 달았습니다.
-------------------------------------------------------------------------------------------------------
[질문1]: 먼저 12처에 대해서 알고 싶습니다.
안이비설신과 색성향미촉의 5근과 5경은 이해하겠으나, 마지막 '의'와 그 대상인 '법'이 확실히 무엇을 말하고 있는 것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의'가 우리의 의식 그 자체를 말하고 '법'은 의식이 일으키는 생각을 말하는 것인지, 그렇담 안식, 이식, 비식, 등의 6근과 6경을 알아차리는 (인식하는) 그 '식'과 6근의 '의'는 무엇이 다른 것인지 가르쳐주세요.
--------------------------------------------------------------------------------------------------------

[답변1]:
먼저 處로 옮기고 있는 aayatana의 기본 뜻을 살펴보겠습니다. 감각장소[處, 入]로 옮긴 āyatana는 ā(이리로)+√yat/yam(to strech, to move)에서 파생된 중성명사입니다. 중국에서는 ‘이쪽으로 온다’는 문자적인 의미를 중시하여 入으로 번역하기도하고 이 단어가 장소(base, sphere)의 의미로 쓰이므로 處라고 옮기기도 합니다. 보통 12연기에서는 六入으로, 12처와 공무변처 등의 4처는 處로 옮기고 있습니다. 초기불전연구원에서는 감각작용과 관계된 육입이나 12처는 감각장소로 옮기고 4처는 장소로 옮기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12가지 감각장소[十二處]는 일체(sabba)에 대한 또 다른 시각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상응부에서 ‘일체 일체라고 하는데 어떤 것이 일체입니까?’라고 질문하자 부처님께서는 일체란 다름아닌 이 12가지 감각장소 즉 12처라고 답하고 계십니다. 이런 시각에서 보면 12처는 일체인 구경법들을 문(dvāra)과 대상(aarammana)의 측면에서 조망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세계에 존재하는 현상들이 아무리 복잡다단해도 그것은 감각 혹은 알음알이가 일어나는 12가지의 기본 장소로 환원해서 관찰해보면 문(안이비설신의)과 대상(색성향미촉법)으로 환원된다는 의미가 들어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마노(mano, 意)입니다. 마노는 여기서 보다시피 법을 대상으로 가지는 감각장소(aayatana) 혹은 감각기능(indriya)입니다. 다시 말해서 안이비설신으로 파악할 수 없는 모든 대상(그것을 12처에서는 법이라는 카테고리에 넣습니다)을 파악하는 문 혹은 감각장소 혹은 감각기능이 바로 마노입니다. 일단 이렇게 이해햐시면 됩니다. 즉 12처에서의 법은 안이비설신의 다섯의 문의 대상이 되는 색성향미촉에 속하지 않는 모든 대상을 의미하고 마노는 그런 대상을 파악하는 문 혹은 감각장소이다라고 이해하시면 됩니다. 아비담마에서는 법의 감각장소[法處]를 52가지 마음부수법들과 16가지 미세한 물질(sukhuma-rūpa)과 열반이라고 설명합니다.
-----------------------------------------------------------------------------------
[답변2]
초기경에는 ‘일체(sabba) 일체하는데 도대체 어떤 것이 일체인가’라는 질문에 세존께서 일체란 12처(aayatana)라고 답하시는 경이 나타납니다. 즉 일체란 것은 다름 아닌 인식기능(根)인 눈 귀 코 혀 몸 마음(mano)과 이 각각에 상응하는 대상(境)인 색깔(형상) 소리 냄세 맛 감촉 심리현상의 12가지일뿐이라는 말씀입니다. 이 12가지에서 이 세상의 온갖 사단은 다 벌어지고 전개된다는 말씀이겠지요. 이 12가지가 있으니 6가지 알음알이(識)가 있고 이 근경식의 맞닿음이 감각접촉(觸)이요 이 감각접촉에 기인하여 느낌 갈애 취착 존재 태어남 늙고 죽음 근심 괴로움 등의 모든 삶의 현상이 전개되어 간다는 것이 연기법이 설명하는 우리의 삶이겠지요. 물질적인 우주가 아무리 광활하다 해도 그것은 눈의 대상일 뿐이요 이 우주에 아무리 진동음으로 가득하다고 해도 그것은 내 귀의 대상일 뿐이요 ... 이렇게 파악하여 근경식촉수애취유로 전개되어가는 괴로움의 일어남을 바르게 철견해서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도록 가르치는 것이 불교의 근본이라 해야할 것입니다.

특히 아비담마는 만물이든 세계든 일체든 그것은 그 자체로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가르칩니다. 인식과 인식의 과정에 개재된 대상으로서의 만물, 세계, 일체를 말합니다.

상응부의 로히따사데와따 숫따(lohitassadevataa-sutta, 로히따 천신 경)에도 로히따라는 천신이 우주의 기원과 소멸처를 알고자하여 그의 신통력으로 저 우주의 끝까지 가보려고 아무리 노력해도 이를 수 없자 실망하여 세존께 찾아와서 “참으로 태어나지 않고 잃어버리지 않고 죽지 않고 사라지지 않고 일어나지 않는 그 우주의 끝을 걸어서 알고보고 도달할 수가 있습니까?”라고 질문을 합니다. 세존께서는 그것은 불가능하다고 하시고 대신에 그에게

[‘나는 인식과 알음알이를 더불은 이 한길 몸뚱이에서 우주와, 우주의 일어남과, 우주의 사라짐과, 우주의 사라짐에 이르는 길을 보노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경은 이런 ‘나’를 분석하여 설명하는 오온, 12처, 18계를 중시하는 불교의 입장을 멋지게 천명한 경으로 아주 유명한 경입니다.


......

후박나무의 소감
/////

쌍윳따 니까야에서
"일체(sabba) 일체하는데 도대체 어떤 것이 일체인가’라는 물음에
즉 일체란 眼 ,耳 , 鼻 ,舌 ,身 , 意(mano)
과 色 ,聲, 香, 味, 觸, 法(심리현상)의 12가지로 답합니다.

이것이 12처(aayatana)인데 감각기능,감각능력을 뜻하는 [indriya]와 많이 혼동합니다.
입니다.

12처에서 앞의 여섯 기관을 6근 (六根) , 6내처(六內處 ) 라 하고
뒤의 여섯 대상을 6경 (六境 ). 6외처 (六外處 )라 하는데
이 6내처(六內處) 를 六根 [indriya]이라고 함께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감각능력을 뜻하는 [indriya]는 [aayatana]와 쓰임이 다릅니다.

쌍윳따 니까야 에서 감각능력[indriya]의 성취란 무엇인가? 라는 법문이 있습니다.
즉 감각능력[indriya]은 성취하고 회복 해야할 청정한 능력이고
[aayatana]는 아래 12연기에서 보는 바와 같이 육처(六處)는 버리고 극복해야할 것입니다.
무명(無明)-행(行)-식(識)-명색(名色)들...처럼

사실 12연기는 속시원히 설명하는 책들이 없습니다.
가장 중요하면서도 가장 모르는 부분입니다.

무명(無明) -행(行)-식(識)-명색(名色)-육처(六處)-촉(觸)-수(受)-애(愛)-취(取)-유(有)-생(生)-노사우비고뇌(고의 발생).

명색(名色)-육처(六處)를 버리라 하시는 붓다의 뜻을 알지 못하면
12연기를 모르는 것입니다.

저는 12연기를 [삼세 양중인과]로 설명하는 것은 본래의 뜻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 6근은 [indriya]일수도[aayatana]일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12연기에서 설명되는 6근은 마땅히 버려야할 [aayatana]입니다.

저는 12연기에서 말하는 명색(nama-rupa.名色)와 육처(aayatana)는 무명에 의해서 비롯되는 [고의 발생과정과 고의 소멸과정] 이라고 이해하고 있습니다.
12연기의 끝에는 항상 이렇게 [고의 무더기가 발생한다] 라는 말이 나옵니다.

명색(nama-rupa.名色)은 식의 대상이 되는 [이름과 형태]라는 개인 존재(존재감)를 의미한다고 이해하며
육처(六處)는 [내가 있다]는 생각에서 출발하는 육처(六處)로 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12연기는 인간의 역관(해탈과정)과 순관(속박과정)을 보여주고 있는데 붓다는 이순관과 역관을 바로보아 [유무를 떠나 중의 견해로서 관찰하라]고 설법하고 있습니다.
이 순관과 역관이 바로 중의 견해(바른견해)이며 이것은 역관과 순관의 상태란 파도와 바닥물의 관계처럼 [번뇌가 지혜]가 되는 것을 보여 준다고 하겠습니다.
이동하는 자리가 바로 중의 자라이며 그러므로....
결코 무명이 멸하여 식 명색,육입등이 멸한다는것이 인간의 죽음으로 인식되는 경우는 없다 하겟습니다.

이러한 견해는 12연기를 삼세양중인과 적으로 생각하는 것일진데.. .
이렇게 발생론적으로 12연기를 보는 것은 12연기의 본듯과는 멀다는것이
저의 생각입니다.

...()


출처 : 차맛어때
글쓴이 : 후박나무 원글보기
메모 :
728x90

'초기불교'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불교는 종교가 아니다?  (0) 2006.04.29
12연기의 해석과 명색의 뜻  (0) 2006.04.08
― 칼라마경 ―  (0) 2006.03.01
고통(dukkha)이란 무엇인가?  (0) 2006.02.20
[스크랩] 연기(緣起)는 무엇인가?  (0) 2006.02.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