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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불교

[스크랩] 연기(緣起)는 무엇인가?


부처가 무엇을 깨달았는가?
라는 대답은 緣起연기 라고 말 할수 있다.
그렇다면 연기는 무엇인가?


붓다는 가전연경에서 이렇게 자세하게 緣起를 설했습니다.

["참으로 올바른 지혜로써 있는 그대로 세상의 발생(고집)을 관찰하면 세상에 비존재라는 것은 사라진다. 참으로 올바른 지혜로써 세상의 소멸(멸도)을 관찰하면 세상에 존재라는 것은 사라진다. 여래는 이 양극단을 떠나서 중(majjhena)의 가르침을 설한다." ]
[쌍윷따 니까야 - 자양분의 품

연기를 보는 자는 붓다를 본다고 했지요.
이러한 연기가 후대 사람들에게 유의 견해로 오해되는데 ...왜 일까요?
연기(paticca-samuppada)라는 말은 [함께 인연하여 일어난다]는 말이기에 다분히 현상의 원리를 설명하는 이론으로 사용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흔적은 아주 많아서 현재에도 우리가 이런 해석의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정확히 연기는 [연기와 연멸]의 가르침입니다.
항상 발생(고집)과 소멸(멸도)을 같이 보아야 합니다.
(한역경전에는 緣起를 유전문(流轉門),순관(順觀)이라 하고 연멸을 환멸문(還滅門),역관(逆觀)라 합니다.)


세월이 흐름에 따라 이러한 연기가 有쪽으로 해석되는 것을 벗어나고자 용수(龍樹. A.D. 150-250)는 연기를 공으로 표현 합니다.
-인연소생법(因緣所生法) 아설즉시공(我說卽是空) 역위시가명(亦爲是假名) 역시중도의(亦是中道義)-한문번역 중론-

그러나 용수는 공이라는 표현함으로서 有쪽으로 해석되는 것을 막았지만 다시 공이라는 표현은 無 쪽으로 오해됩니다.
이렇게 흘러가는 것은 인간의 사고와 언어의 한계라고 할 수 있지요.

그래서 다시 유식은 마음(아뢰야식)으로 연기를 설명하고 대승후기의 경전들은 불성,여래장,진여등 이라는 이름으로 표현 되는데
이것이 요즘 다시 불생불멸하는 무엇이 있고 수행이란 그것을 찾는 것으로 오해되기에 이르지요.

연기의 가르침은 일어나고 사라지는 원리입니다.
이 원리 라는 것은 존재(유,무)도 아니요, 연기를 떠나 있는 불생불멸한 마음도 아닙니다.

연기를 부처님은 정확하게 연기와 연생법의 2가지 방법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연기 - paticca-samuppada - [관계에 대한 지혜(dhammatthitinanam)] 理法界
연생법 - paticca-samuppanna dhamma - [사실에 관한 지혜(paccayakare nanam)] 事法界

이 연기(관계에 대한 지혜)와 연생법(사실에 관한 지혜)의 관계는 반야심경에서 말하는 空卽是色이요 화엄의 사법계에서의 理事無碍(이사무애)입니다.
즉, 이러한 色,空,理,事의 표현은 연기와 연생법을 표현하는 다른 언어들 일 뿐입니다.
그래서 화엄학의 대가인 법장스님은 色卽是空을 설명할 때
[색이 공인 것은 색이 부서지지 않고, 시간을 기다리지 않고서 공이요]
空卽是色울 설명할때는
[공이 색인것은 만들어지지 않고 시간을 기다리지 않고서 색이다]라고 설명합니다.

연기의 진리는 세월속에서 많은 오염과 극복의 과정을 겪었습니다만 지금 우리는 다시 부처님의 원음에 비추어 보아 그 바른 뜻을 이해 해야만 할 것입니다.

["연기법은 여래가 출현하거나 출현하지 않거나 그 도리가 정해져 있으며 (객관성)
법으로 확립되어 있으며(필연성) 법으로 결정되어 있으며(불변성) 그것을 조건으로 하는 것(조건성)이다. 여래는 그것을 잘 깨닫고 이해한 후에 그것을 가르치고 알게하고
앞에 두고 열어보이고 분별하고 명확히 한다.
그러므로 그대들도 보라"고 말하는 것이다.] [쌍윷따 니까야 - 자양분의 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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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차맛어때
글쓴이 : 후박나무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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