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사는 이야기

문답

아래글은 인터넷까페에서 저와주고 받은 문답입니다.^^



[후박나무]
우리가 알고있는
견성하면 성불한다 즉 견성즉 성불이라 는 말에대해서 질문드립니다,

그 見性하는 그性이 각묵스님이 말씀하시는

찰라생 찰라멸 하는 性 일까요

불생불멸하는 性 일까요?

[ 비익조님의 답글]

> 합장()

> 그 性은 불생불멸하는 性이 맞읍니다.언제나 나와 함께 님들과 함깨한 그 본질을 보는것 이지요.

> 참고로.. 개인적인 생각 입니다.

> 반야심경에 나오는 색즉시공 공즉시색이니 하는것은 모든 생을 받는 이들에 관한 이야기 인것 같읍니다.

> 관세음 보살님이 그리 보시고 고해를 넘으셨다 하셨으니 그 보심은 생과 멸이 둘 아님을 이야기 하시고 계시는 것이라 저는 생각 합니다.

> 생하지 않으면 멸함이 없고 멸함이 없다면 또한 생함이 없지요. 그러나 중요한 것은 우리들은 생 하였다는 것 입니다.

> 그러나 이 생함이 또한 생한 것이라 확신하는 불자는 없으리라 생각 합니다.

> 좋은날에...
> 비익조 합장()


[ 石魚님의 답글]

찰라생 찰라멸은

인연생멸의 찰라생 찰라멸이지

색즉시공인 불생불멸은 아닙니다

또 색즉시공은 인연생멸의 相이 아니라

참마음의 작용인 마음의 성품이니

마음의 모든 현상인 각자의 세계는

마음이 생한 즉 색계가 되고

마음이 멸한 즉 공계가 되는 것이니

오직 유심세계만 있을 뿐 공계,색계는

마음의 꼭두인 성품계일 뿐입니다.


[후박나무의 답글]

님의 글 잘보았습니다.

色즉 시空?
오히려 이말은
찰라생찰라멸이 불생불멸과 같다는 말은 아닌지요?

찰라생찰라멸과 불생불멸이 다르다면
번뇌즉 보리란 무슨 말인가요?

다시한번 정중히 여쭙습니다.

[石魚님의 답글]


말 그대로 찰라생 찰라멸이란

순간의 인연생멸을 말하니

조금이라도 시간적 차이가 있고

색즉시공이란 시간적 차이가 없이

색 그것이 바로 공이라는 것이니

색과 공은 같은 것을 말하고

단지 그 시점에

우리 마음이 생하고 있으면 색이요

멸하고 있으면 공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생멸하고 있다하여도

단지 각자의 이때 참마음의 성품모양,

성품그림의 각자의 인식이지

내외적 대상물이 참마음을 동일하게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마음이 나타남은 외적내적 대상물에 의지하지만

외적내적 대상물이 있어 마음을 생멸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성불하세요



[후박나무의 답글]

님이 말씀하시는 참마음이란
단지 찰라생 찰라멸하는 그마음이 아닐런지요
찰라생 찰라멸하지만 생함없이 생하고 멸함없이 멸하여
언어로는 불생불멸이라 말해지는게 아닐까요?

만약 참마음이 따로있어
그참마음의 성품이란것이
찰라생찰라멸에 관계없이 존재한다는생각은

참마음을 실체화 시키고 있는것은 아닌지요?

그래서
[마음이 나타남은 외적내적 대상물에 의지하지만
외적내적 대상물이 있어 마음을 생멸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라는 말을하게 되는거라 생각합니다.


[石魚님의 답글]

생함 없음이 멸이고 멸함 없음이 생인데

생멸이라면 족한데 구태여 다시 나눌 필요가 있읍니까


순간의 인연 생멸이라도 대상의 목적이 각도에 따라 다르니

일면불 같이 우리 마음에 오래 머무는 것도 있고

월면불 같이 우리 마음에 빨리 사라지는 것이 있는데

이러한 것이 중중무진으로 복합되어 있으니

우리가 다같이 앞을 보아도

산을 보는 때도 있고, 나무를 보는 때도 있다는 것이며


로보트가 적외선으로 사물을 보는 것과

곤충이 많은 눈으로 사물을 보는 것과

색맹인 사람, 맹인,귀머거리가 보는 것이

대상은 같아도 모두 다르게 본다는 것이며


또 우리 마음으로 보지 못하고

우리 마음으로 볼 수 없는 것

우리 마음밖의 알 수 없는 것도 있으며

우리가 사물을 인식하는 것은

아무리 크고 작다하여도

이 마음에 한정이 되어 있는 것이고


참마음이란 의지함이 없이 있는데

색과공,생과멸에 분별함이 있겠읍니까.

단지 스스로가 상에 집착되어 알음알이로

인연을 보고 생멸을 보는 것입니다.


아이고 헤깔려 뱅뱅돌아 넘어지겠네

()


[후박나무의 답글]

참마음이 의지함없이 있다고 말씀 하시는데
그 생각 말고 다시 무엇이 있을까요?

님의 말씀대로


번뇌없음이 참마음이고
참마음이 번뇌없음이고

明이없음이 無明이고
無明이 明이 없음이지

무명이 따로 있고 명이 따로 있다고 하면
이름에 떨어진다고 할것입니다.

올림파나 내림솔이나 소리는 같고 이름만 다른
즉, 딴 이름 한소리일 뿐이지만
우리가 그걸 억지로 표현하자니 올림파나 내림솔 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올림파나 내림솔이 아니듯
참마음 이란것도 다만 번뇌없음이지
영원히 불생불멸하는 무엇이라고
생각해선 안될것이라는 생각입니다.

선가귀감의 한마디 입니다.

"但盡凡情이요 別無聖解니라."



[石魚님의 답글]

올림파나 내림솔을

언어를 떠나서 한 번 표현해 보세요

그러면 번뇌즉 보리와 색즉시공

불생불멸한 참나를 풀지 않을까 합니다.

()


[후박나무의 답글]

질문하신 문제에 답을 하라면

"내림솔"이라 하겠습니다.

아래는 참마음에대한 사전적 해석입니다.

---------------------------------------

참마음이란 무엇입니까?

참마음이란 본성이라고 하는데, 우리가 인식하는 나[生]고 멸(滅)하는 마음과는 상관없는 본래 마음입니다.
이 마음은 나고 멸함에 있되 나고 멸하지 아니하고, 크고 작은데 있되 크고 작은 것이 아니며, 깨끗하고 더러운 것에 있되 깨끗하고 더러운 것에 무관한 마음입니다.
환(幻)과 같고 꿈과 같고 메아리 같은 삼라만상 현상에 처하되 조금도 동요가 없으며, 일체 있고 없음에 있되 도무지 있고 없음에 상관없는 마음입니다.
이 마음은 경계로 취하거나 마음으로 잡으려 하면 잡지 못하고 놓아서 얻으려 하면 얻지 못합니다. 구하는 마음이 쉴 때 원래 거기에 넘쳐 있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 참마음은 앞서 본성이라고 말하였습니다. 불성이라고 하고 법성(法性)이라고도 합니다. 또 진여심(眞如心)이라고도 합니다.

-----------------------------------------------------------

참마음의 사전적 해석은 님이 말한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참마음이란것이 연기,무아,법성,등으로 불릴때는 그래도

괜찮은데 그것이 불성,진아, 참나등으로 불릴때는

그모든것이 존재하기전에 존재하고 있었던 아트만 의냄새를

짙게 풍기더란 이야기입니다

"이 마음은 경계로 취하거나 마음으로 잡으려 하면 잡지 못하고 놓아서 얻으려 하면 얻지 못합니다. 구하는 마음이 쉴 때 원래 거기에 넘쳐 있는 것을 알게 됩니다."

위해석도" 구하는 마음을 쉴때 원래 거기에..."라는 표현으로 오해의 소지를 남기고 있습니다.

자아가 있다, 우리 마음은 영원히 생사를 초월해있다,

생멸하는 현상계 배후에는 불생불멸의 진여자성이 있다라는

이런 想(산냐)를 극복하라는 것이 금강경의 근본 가르침이라고 봅니다.



[石魚님의답글]


내림솔이 옳다하여도

님에게는 조금의 도움도 되지 않고,

아상을 타파하여야 한다는 님의 생각은

어떠한 상에 집착이 되어있음을 볼 수가 있으며

부처든 조사든 대선지식이든 그 분들이 타인을

구제할 수가 있는 능력이 있는 것이 아니며

이곳에 우리들의 배움은 오히려 돌과 나무,

나비와 새들의 말소리에 더 큰 배움이 있으며,

공이란 우리가 이러한 식에 집착되어 알음알이에

끄달리는 마음을 쉬게 함이 큰 뜻인데

의공이 아닌 진공이라도 참성품을 보지 못하면

모두 다 하나를 푸는 것이 하나를 묶는 것이되는

숙명의 인연속을 헤맨다 할 것입니다.

()


[후박나무의 답글]

내림솔이 옳다하여도

저에게는 조금의 도움도 되지 않습니다.

아상을 타파하여야 한다는 저의 생각은

어떠한 상에 집착이 되어있는 것입니다.

부처든 조사든 대선지식이든 그 분들이 타인을

구제할 수가 있는 능력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저는 내림솔이라 말했으며

想의 타파를 말했으며

불성이 찾아내어야할 무엇이 아니라

想의 타파즉 불성의 현현 이라 말했습니다.

正見은수행을하는 이유인동시에 수행인동시에 수행의완성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언어를 빌려 여기 토론마당에 참여 했던것입니다.

저의 장단에 추임새를 넣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728x90

'사는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어디가 길인가  (0) 2003.03.15
"눈있는자는 와서 보라"  (0) 2003.03.15
해제...그리움  (0) 2003.03.15
마산에서....  (0) 2003.03.15
참선하는 이의 자세  (0) 2003.03.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