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훈민정음과 범어

세종 단독 창제설(親制說)을 뒷받침하는 근거

지금까지 나온 자료를 통합하고, 추가로 확인 가능한 자료를 더해 총 일곱 곳 이상으로 정리하겠습니다.

세종 단독 창제설(親制說)을 뒷받침하는 문헌 근거

1. 《세종실록》 25년(1443) 12월 30일조

"이달에 임금이 친히 언문(諺文) 스물여덟 자를 지으셨다(是月, 上親制諺文二十八字)"고 기록하며, 초성ㆍ중성ㆍ종성이 합쳐져 글자를 이루는 원리와 명칭(훈민정음)을 밝힙니다. 국가 공식 사관 기록에서 창제의 주어를 "上"(임금) 한 사람으로 명시한 최초의 근거입니다.

2. 최만리(崔萬理) 등의 반대 상소 — 《세종실록》 26년(1444) 2월 20일조

집현전 부제학 최만리 등이 훈민정음 반포에 반대하며 올린 상소로, 이들이 창제 과정에 사전 참여하지 못하고 완성된 결과를 통보받은 정황이 드러납니다. 집현전 최고위 학자조차 몰랐던 사업이라는 점에서, 창제가 소수 혹은 왕 단독으로 은밀히 진행되었음을 방증합니다.

3. 세종의 친국(親鞫) 답변 — 같은 상소 관련 기사

최만리 등의 상소에 대해 세종이 직접 신하들을 불러 반박하고 심문한 기록이 이어집니다. 문자 창제라는 사안에 대해 왕이 직접 나서서 논쟁하고 방어하는 모습은, 이 사업이 왕 개인의 주도적 관심사이자 성과였음을 시사합니다.

4. 정인지(鄭麟趾)의 훈민정음 해례본 후서 — 《세종실록》 28년(1446) 9월조

"전하께서 정음 스물여덟 자를 창제하셨다"는 서술과 함께, 정인지 자신을 포함한 집현전 학자 8인의 역할을 "해례(解例)를 지어 그 대강을 서술한 것"으로 명확히 구분합니다. 창제 실무의 최고 책임자가 직접 남긴 증언이라는 점에서 사료적 무게가 큽니다.

5. 《동국정운(東國正韻)》 서문(신숙주, 1447년경)

훈민정음을 가리켜 "어제(御製)"라는 표현을 씁니다. 御製는 임금이 직접 지은 저작물에만 붙는 존칭으로, 실무 책임자였던 신숙주 스스로 이 용어를 썼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6. 《홍무정운역훈(洪武正韻譯訓)》 서문(신숙주, 1455년)

"우리 세종장헌대왕께서... 훈민정음 몇 글자를 창제하셨다"고 서술하여, 세종 사후에도 창제의 주체를 세종 한 사람으로 일관되게 지목합니다. 앞의 5번과 시간차(8년 이상)를 두고도 같은 인물이 같은 인식을 유지했다는 점에서 신빙성을 더합니다.

7. 《직해동자습(直解童子習)》 서문(성삼문)

훈민정음을 한자음 학습의 도구로 소개하며, 그 문자의 유래를 세종의 사업으로 전제하고 서술합니다. 창제 실무에 직접 참여한 또 다른 핵심 인물(성삼문)의 독립적 증언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8. 후대 문헌의 방증 — 성현(成俔) 《용재총화(慵齋叢話)》, 이수광(李睟光) 《지봉유설(芝峰類說)》

15~17세기에 걸쳐 편찬된 이 문헌들도 훈민정음(언문)을 세종의 창제물로 서술하는 전통을 이어갑니다. 다만 이들은 창제 당대의 1차 사료가 아니라 후대의 필기ㆍ유서(類書)이므로, 앞의 1~7번에 비해 사료적 무게는 보조적 수준으로 보아야 합니다.


종합 정리

순번 문헌 연대 성격

1 세종실록 25년 12월조 1443 국가 공식 기록 (1차 창제 공표)
2 최만리 등 반대 상소 1444 반대파의 정황 증거
3 세종의 친국 답변 1444 왕의 직접 개입 정황
4 정인지 해례본 후서 1446 실무 최고 책임자의 증언
5 동국정운 서문(신숙주) 1447 御製 표현
6 홍무정운역훈 서문(신숙주) 1455 시간차를 둔 일관된 증언
7 직해동자습 서문(성삼문) 또 다른 실무자의 독립 증언
8 용재총화ㆍ지봉유설 등 15~17세기 후대의 방증(보조적)

 

1~7번은 창제 사업에 직접 관여했거나 그 직후 시대를 산 인물들의 1차 사료라는 공통점이 있고, 서로 다른 시점(1443~1455년, 약 12년에 걸쳐)과 서로 다른 인물(사관, 정인지, 신숙주, 성삼문)이 독립적으로 "세종이 지었다"는 취지를 반복하고 있다는 점이 이 학설의 핵심 논거입니다. 다만 학계에는 정인지 후서에 나열된 학자들의 관여 범위를 두고 "협찬(協贊)의 정도가 해례를 넘어섰을 가능성"을 조심스레 검토하는 소수 견해도 있으므로, 위 근거들은 통설(친제설)을 뒷받침하는 자료로 이해하시되 학계 내 논쟁 자체가 완전히 종결된 것은 아니라는 점도 함께 참고하시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