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훈민정음》(1446) 어제(서문 및 예의) 및 정인지 서문
□ 원문 자료
[세종실록 113권 세종 28년(1446) 9월 29일 갑오 4번째 기사]
○是月, 訓民正音成。 御製曰:
國之語音, 異乎中國, 與文字不相流通, 故愚民有所欲言, 而終不得伸其情者多矣。 予爲此憫然, 新制二十八字, 欲使人(昜)〔易〕 習, 便於日用耳。 ㄱ牙音, 如君字初發聲, 竝書如蚪字初發聲。 ㅋ牙音, 如快字初發聲。 ㆁ牙音, 如業字初發聲。 ㄷ舌音, 如斗字初發聲, 竝書如覃字初發聲。 ㅌ舌音, 〔如〕 呑字初發聲。 ㄴ舌音, 如那字初發聲。 ㅂ唇音, 如彆字初發聲, 竝書如步字初發聲。 ㅍ唇音, 如漂字初發聲。 ㅁ唇音, 如彌字初發聲。 ㅈ齒音, 如卽字初發聲, 竝書如慈字初發聲。 ㅊ齒音, 如侵字初發聲。 ㅅ齒音, 如戍字初發聲, 竝書如邪字初發聲。 ㆆ喉音, 如挹字初發聲。 ㅎ喉音, 如虛字初發聲, 竝書如洪字初發聲。 ㅇ喉音, 如欲字初發聲。 ㄹ半舌音, 如閭字初發聲。 ㅿ半齒音, 如穰字初發聲。 ㆍ如呑字中聲, ㅡ如卽字中聲, ㅣ如侵字中聲, ㅗ如洪字中聲, ㅏ如覃字中聲, ㅜ如君字中聲, ㅓ如業字中聲, ㅛ如欲字中聲, ㅑ如穰字中聲, ㅠ如戌字中聲, ㅕ如彆字中聲。 終聲復用初聲。 ㅇ連書唇音之下, 則爲唇輕音, 初聲合用則竝書。 終聲同。 ㆍㅡㅗㅜㅛㅠ附書初聲之下, ㅣㅓㅏㅑㅕ附書於右。 凡字必合而成音, 左加一點則去聲, 二則上聲, 無則平聲。 入聲加點同而促急。
禮曹判書鄭麟趾序曰:
有天地自然之聲, 則必有天地自然之文, 所以古人因聲制字, 以通萬物之情, 以載三才之道, 而後世不能易也。 然四方風土區別, 聲氣亦隨而異焉。 蓋外國之語, 有其聲而無其字, 假中國之字, 以通其用, 是猶柄鑿之鉏鋙也, 豈能達而無礙乎? 要皆各隨所處而安, 不可强之使同也。 吾東方禮樂文物, 侔擬華夏, 但方言俚語, 不與之同, 學書者患其旨趣之難曉, 治獄者病其曲折之難通。 昔新羅 薛聰始作吏讀, 官府民間, 至今行之, 然皆假字而用, 或澁或窒, 非但鄙陋無稽而已, 至於言語之間, 則不能達其萬一焉。 癸亥冬, 我殿下創制正音二十八字, 略揭例義以示之, 名曰訓民正音。 象形而字倣古篆, 因聲而音叶七調, 三極之義、二氣之妙, 莫不該括。 以二十八字而轉換無窮, 簡而要, 精而通, 故智者不崇朝而會, 愚者可浹旬而學。 以是解書, 可以知其義; 以是聽訟, 可以得其情。 字韻則淸濁之能卞, 樂歌則律呂之克諧, 無所用而不備無所往而不達, 雖風聲鶴唳雞鳴狗吠, 皆可得而書矣。 遂命詳加解釋, 以喩諸人。 於是, 臣與集賢殿應敎崔恒、副校理朴彭年ㆍ申叔舟、修撰成三問、敦寧注簿姜希顔、行集賢殿副修撰李塏ㆍ李善老等謹作諸解及例, 以敍其梗槪, 庶使觀者不師而自悟。 若其淵源精義之妙則非臣等之所能發揮也。 恭惟我殿下天縱之聖, 制度施爲, 超越百王, 正音之作, 無所祖述, 而成於自然, 豈以其至理之無所不在而非人爲之私也? 夫東方有國, 不爲不久, 而開物成務之大智, 蓋有待於今日也歟!
世宗莊憲大王實錄卷第一百十三終
【태백산사고본】 36책 113권 36장 B면【국편영인본】 4책 702면
□ 해석
《훈민정음》이 이루어지다. 어제와 예조 판서 정인지의 서문
이달에 《훈민정음(訓民正音)》이 이루어졌다. 어제(御製)에,
"나랏말이 중국과 달라 문자와 서로 통하지 아니하므로, 우매한 백성들이 말하고 싶은 것이 있어도 마침내 제 뜻을 잘 표현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내 이를 딱하게 여기어 새로 28자(字)를 만들었으니, 사람들로 하여금 쉬 익히어 날마다 쓰는 데 편하게 할 뿐이다. ㄱ은 아음(牙音)이니 군(君)자의 첫 발성(發聲)과 같은데 가로 나란히 붙여 쓰면 규(虯)자의 첫 발성(發聲)과 같고, ㅋ은 아음(牙音)이니 쾌(快)자의 첫 발성과 같고,ㆁ은 아음(牙音)이니 업(業)자의 첫 발성과 같고, ㄷ은 설음(舌音)이니 두(斗)자의 첫 발성과 같은데 가로 나란히 붙여 쓰면 담(覃)자의 첫 발성과 같고, ㅌ은 설음(舌音)이니 탄(呑)자의 첫 발성과 같고, ㄴ은 설음(舌音)이니 나(那)자의 첫 발성과 같고, ㅂ은 순음(脣音)이니 별(彆)자의 첫 발성과 같은데 가로 나란히 붙여 쓰면 보(步)자의 첫 발성과 같고, ㅍ은 순음(脣音)이니 표(漂)자의 첫 발성과 같고, ㅁ은 순음(脣音)이니 미(彌)자의 첫 발성과 같고, ㅈ은 치음(齒音)이니 즉(卽)자의 첫 발성과 같은데 가로 나란히 붙여 쓰면 자(慈)자의 첫 발성과 같고, ㅊ은 치음(齒音)이니 침(侵)자의 첫 발성과 같고, ㅅ은 치음(齒音)이니 수(戍)자의 첫 발성과 같은데 가로 나란히 붙여 쓰면 사(邪)자의 첫 발성과 같고, ㆆ은 후음(喉音)이니 읍(挹)자의 첫 발성과 같고, ㅎ은 후음(喉音)이니 허(虛)자의 첫 발성과 같은데 가로 나란히 붙여 쓰면 홍(洪)자의 첫 발성과 같고, ㅇ은 후음(喉音)이니 욕(欲)자의 첫 발성과 같고, ㄹ은 반설음(半舌音)이니 려(閭)자의 첫 발성과 같고, ㅿ는 반치음(半齒音)이니 양(穰)자의 첫 발성과 같고, ㆍ은 탄(呑)자의 중성(中聲)과 같고, ㅡ는 즉(卽)자의 중성과 같고, ㅣ는 침(侵)자의 중성과 같고, ㅗ는 홍(洪)자의 중성과 같고, ㅏ는 담(覃)자의 중성과 같고, ㅜ는 군(君)자의 중성과 같고, ㅓ는 업(業)자의 중성과 같고, ㅛ는 욕(欲)자의 중성과 같고, ㅑ는 양(穰)자의 중성과 같고, ㅠ는 슐(戌)자의 중성과 같고, ㅕ는 별(彆)자의 중성과 같으며, 종성(終聲)은 다시 초성(初聲)으로 사용하며, ㅇ을 순음(脣音) 밑에 연달아 쓰면 순경음(脣輕音)이 되고, 초성(初聲)을 합해 사용하려면 가로 나란히 붙여 쓰고, 종성(終聲)도 같다. ㆍ, ㅡ, ㅗ, ㅜ, ㅛ, ㅠ는 초성의 밑에 붙여 쓰고, ㅣ, ㅓ, ㅏ, ㅑ, ㅕ는 오른쪽에 붙여 쓴다. 무릇 글자는 반드시 합하여 음을 이루게 되니, 왼쪽에 1점을 가하면 거성(去聲)이 되고, 2점을 가하면 상성(上聲)이 되고, 점이 없으면 평성(平聲)이 되고, 입성(入聲)은 점을 가하는 것은 같되 촉급(促急)하게 된다."
라고 하였다. 예조 판서 정인지(鄭麟趾)의 서문에,
"천지(天地) 자연의 소리가 있으면 반드시 천지 자연의 글이 있게 되니, 옛날 사람이 소리로 인하여 글자를 만들어 만물(萬物)의 정(情)을 통하여서, 삼재(三才)128) 의 도리를 기재하여 뒷세상에서 변경할 수 없게 한 까닭이다. 그러나, 사방의 풍토(風土)가 구별되매 성기(聲氣)도 또한 따라 다르게 된다. 대개 외국(外國)의 말은 그 소리는 있어도 그 글자는 없으므로, 중국의 글자를 빌려서 그 일용(日用)에 통하게 하니, 이것이 둥근 장부가 네모진 구멍에 들어가 서로 어긋남과 같은데, 어찌 능히 통하여 막힘이 없겠는가. 요는 모두 각기 처지(處地)에 따라 편안하게 해야만 되고, 억지로 같게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우리 동방의 예악 문물(禮樂文物)이 중국에 견주되었으나 다만 방언(方言)과 이어(俚語)만이 같지 않으므로, 글을 배우는 사람은 그 지취(旨趣)의 이해하기 어려움을 근심하고, 옥사(獄事)를 다스리는 사람은 그 곡절(曲折)의 통하기 어려움을 괴로워하였다. 옛날에 신라의 설총(薛聰)이 처음으로 이두(吏讀)를 만들어 관부(官府)와 민간에서 지금까지 이를 행하고 있지마는, 그러나 모두 글자를 빌려서 쓰기 때문에 혹은 간삽(艱澁)하고 혹은 질색(窒塞)하여, 다만 비루하여 근거가 없을 뿐만 아니라 언어의 사이에서도 그 만분의 일도 통할 수가 없었다.
계해년 겨울에 우리 전하(殿下)께서 정음(正音) 28자(字)를 처음으로 만들어 예의(例義)를 간략하게 들어 보이고 명칭을 《훈민정음(訓民正音)》이라 하였다. 물건의 형상을 본떠서 글자는 고전(古篆)을 모방하고, 소리에 인하여 음(音)은 칠조(七調)129) 에 합하여 삼극(三極)130) 의 뜻과 이기(二氣)131) 의 정묘함이 구비 포괄(包括)되지 않은 것이 없어서, 28자로써 전환(轉換)하여 다함이 없이 간략하면서도 요령이 있고 자세하면서도 통달하게 되었다. 그런 까닭으로 지혜로운 사람은 아침나절이 되기 전에 이를 이해하고, 어리석은 사람도 열흘 만에 배울 수 있게 된다. 이로써 글을 해석하면 그 뜻을 알 수가 있으며, 이로써 송사(訟事)를 청단(聽斷)하면 그 실정을 알아낼 수가 있게 된다. 자운(字韻)은 청탁(淸濁)을 능히 분별할 수가 있고, 악가(樂歌)는 율려(律呂)가 능히 화합할 수가 있으므로 사용하여 구비하지 않은 적이 없으며 어디를 가더라도 통하지 않는 곳이 없어서, 비록 바람소리와 학의 울음이든지, 닭울음소리나 개짖는 소리까지도 모두 표현해 쓸 수가 있게 되었다. 마침내 상세히 해석을 가하여 여러 사람들을 깨우치게 하라고 명하시니, 이에 신(臣)이 집현전 응교(集賢殿應敎) 최항(崔恒), 부교리(副校理) 박팽년(朴彭年)과 신숙주(申叔舟), 수찬(修撰) 성삼문(成三問), 돈녕부 주부(敦寧府注簿) 강희안(姜希顔), 행 집현전 부수찬(行集賢殿副修撰) 이개(李塏)·이선로(李善老) 등과 더불어 삼가 모든 해석과 범례(凡例)를 지어 그 경개(梗槪)를 서술하여, 이를 본 사람으로 하여금 스승이 없어도 스스로 깨닫게 되었다. 그러나 그 연원(淵源)의 정밀한 뜻의 오묘(奧妙)한 것은 신(臣) 등이 능히 발휘할 수 있는 바가 아니다. 삼가 생각하옵건대, 우리 전하(殿下)께서는 하늘에서 낳으신 성인(聖人)으로써 제도와 시설(施設)이 백대(百代)의 제왕보다 뛰어나시어, 정음(正音)의 제작은 전대의 것을 본받은 바도 없이 자연히 이루어졌으니, 그 지극한 이치가 있지 않은 곳이 없으므로 한 사람의 사적인 업적이 아니라고 하겠는가? 대체로 동방에 나라가 있은 지가 오래 되지 않은 것이 아니나, 만물의 뜻을 깨달아 모든 일을 이루는 큰 지혜는 대개 오늘날에 기다리고 있을 것인져."
하였다.
[註 128] 삼재(三才) : 천(天)·지(地)·인(人).[註 129] 칠조(七調) : 칠음(七音). 곧 궁(宮)•상(商)•각(角)•치(緻)•우(羽)•변치(變緻)•변궁(變宮)의 일곱 음계(音階).[註 130] 삼극(三極) : 천(天)·지(地)·인(人).[註 131] 이기(二氣) : 음양(陰陽).
2. 《동국정운》(1448) 신숙주 서문
□ 원문 자료
[세종실록 117권 세종 29년(1447) 9월 29일(무오) 2번째 기사]
○是月, 《東國正韻》成, 凡六卷, 命刊行。 集賢殿應敎申叔舟奉敎序曰:
天地絪縕, 大化流行而人生焉; 陰陽相軋, 氣機交激而聲生焉。 聲旣生焉, 而七音自具, 七音具而四聲亦備, 七音四聲, 經緯相交, 而淸濁輕重深淺疾徐, 生於自然矣。 是故庖犧畫卦, 蒼頡制字, 亦皆因其自然之理, 以通萬物之情, 及至沈、陸, 諸子彙分類集, 諧聲協韻, 而聲韻之說始興。 作者相繼, 各出機杼; 論議旣衆, 舛誤亦多。 於是, 溫公著之於圖, 康節明之於數, 探賾鉤深, 以一諸說。 然其五方之音各異, 邪正之辨紛紜。 夫音非有異同, 人有異同; 人非有異同, 方有異同, 蓋以地勢別而風氣殊, 風氣殊而呼吸異, 東南之齒唇, 西北之頰喉是已。 遂使文軌雖通, 聲音不同焉。
吾東方表裏山河, 自爲一區, 風氣已殊於中國, 呼吸豈與華音相合歟! 然則語音之所以與中國異者, 理之然也。 至於文字之音則宜若與華音相合矣, 然其呼吸旋轉之間, 輕重翕闢之機, 亦必有自牽於語音者, 此其字音之所以亦隨而變也。 其音雖變, 淸濁四聲則猶古也, 而曾無著書以傳其正, 庸師俗儒不知切字之法, 昧於(紐躡)〔紐攝〕 之要, 或因字體相似而爲一音, 或因前代避諱而假他音, 或合二字爲一, 或分一音爲二, 或借用他字, 或加減點畫, 或依漢音, 或從俚語, 而字母七音淸濁四聲, 皆有變焉。
若以牙音言之, 溪母之字, 太半入於見母, 此字母之變也;溪母之字, 或入於曉母, 此七音之變也。 我國語音, 其淸濁之辨, 與中國無異, 而於字音獨無濁聲, 豈有此理! 此淸濁之變也。 語音則四聲甚明, 字音則上去無別。 質勿諸韻, 宜以端母爲終聲, 而俗用來母, 其聲徐緩, 不宜入聲, 此四聲之變也。 端之爲來, 不唯終聲, 如次第之第、牧丹之丹之類, 初聲之變者亦衆。 國語多用溪母, 而字音則獨夬之一音而已, 此尤可笑者也。 由是字畫訛而魚魯混眞, 聲音亂而涇渭同流, 橫失四聲之經, 縱亂七音之緯, 經緯不交, 輕重易序, 而聲韻之變極矣。 世之爲儒師者, 往往或知其失, 私自改之, 以敎子弟, 然重於擅改, 因循舊習者多矣。 若不大正之, 則兪久兪甚, 將有不可救之弊矣。 蓋古之爲詩也, 協其音而已。 自三百篇而降, 漢、魏、晋、唐諸家, 亦未嘗拘於一律, 如東之與冬、江之與陽之類, 豈可以韻別而不相通協哉! 且字母之作, 諧於聲耳。 如舌頭舌上、唇重唇輕、齒頭正齒之類, 於我國字音, 未可分辨, 亦當因其自然, 何必泥於三十六字乎?
恭惟我主上殿下崇儒重道, 右文興化, 無所不用其極, 萬機之暇, 慨念及此, 爰命臣叔舟及守集賢殿直提學臣崔恒、守直集賢殿臣成三問ㆍ臣朴彭年、守集賢殿校理臣李愷、守吏曹正郞臣姜希顔、守兵曹正郞臣李賢老、守承文院校理臣曺變安、承文院副校理臣金曾, 旁採俗習, 博考傳籍, 本諸廣用之音, 協之古韻之切, 字母七音、淸濁四聲, 靡不究其源委, 以復乎正。 臣等才識淺短, 學問孤陋, 奉承未達, 每煩指顧, 乃因古人編韻定母, 可倂者倂之, 可分者分之, 一倂一分、一聲一韻, 皆稟宸斷, 而亦各有考據。 於是調以四聲, 定爲九十一韻二十三母, 以御製《訓民正音》定其音。 又於質勿諸韻, 以影補來, 因俗歸正, 舊習譌謬, 至是而悉革矣。 書成, 賜名曰《東國正韻》, 仍命臣叔舟爲序。
臣叔舟竊惟人之生也, 莫不受天地之氣, 而聲音, 生於氣者也。 淸濁者, 陰陽之類, 而天地之道也; 四聲者, 造化之端, 而四時之運也。 天地之道亂, 而陰陽易其位; 四時之運紊, 而造化失其序, 至哉, 聲韻之妙也! 其陰陽之閫奧、造化之機緘乎! 況乎書契未作, 聖人之道, 寓於天地; 書契旣作, 聖人之道, 載諸方策! 欲究聖人之道, 當先文義; 欲知文義之要, 當自聲韻。 聲韻, 乃學道之權輿也, 而亦豈易能哉! 此我聖上所以留心聲韻, 斟酌古今, 作爲指南, 以開億載之群蒙者也。 古人著書作圖, 音和類隔, 正切回切, 其法甚詳, 而學者尙不免含糊囁嚅, 昧於調協。 自正音作而萬古一聲, 毫釐不差, 實傳音之樞紐也。 淸濁分而天地之道定; 四聲正而四時之運順, 苟非彌綸造化, 轇輵宇宙, 妙義契於玄關, 神幾通于天籟, 安能至此乎? 淸濁旋轉, 字母相推, 七均而十二律而八十四調, 可與聲樂之正同其大和矣。 吁! 審聲以知音, 審音以知樂, 審樂以知政, 後之觀者, 其必有所得矣。
世宗莊憲大王實錄卷第一百十七終
□ 해석 : 《동국정운》 완성에 따른 신숙주의 서문
이달에 《동국정운(東國正韻)》이 완성되니 모두 6권인데, 명하여 간행하였다. 집현전 응교(集賢殿應敎) 신숙주(申叔舟)가 교지를 받들어 서문(序文)을 지었는데, 이르기를,
“하늘과 땅이 화합하여 조화(造化)가 유통하매 사람이 생기고, 음(陰)과 양(陽)이 서로 만나 기운이 맞닿으매 소리가 생기나니, 소리가 생기매 칠음(七音)이 스스로 갖추이고, 칠음이 갖추이매 사성(四聲)이 또한 구비된지라, 칠음과 사성이 경위(經緯)로 서로 사귀면서 맑고 흐리고 가볍고 무거움과 깊고 얕고 빠르고 느림이 자연으로 생겨난 이러한 까닭으로, 포희(庖犧)가 괘(卦)를 그리고 창힐(蒼頡)이 글자를 만든 것이 역시 다 그 자연의 이치에 따라서 만물의 실정을 통한 것이고, 심약(沈約)ㆍ육법언(陸法言) 등 여러 선비에 이르러서, 무리에 따라 나누고 종류에 따라 모아서 성조(聲調)를 고르고 운율(韻律)을 맞추면서 성운(聲韻)의 학설이 일어나기 시작하매, 글 짓는 이가 서로 이어서 각각 기교(技巧)를 내보이고, 이론(理論)하는 이가 하도 많아서 역시 잘못됨이 많았는데, 이에 사마 온공(司馬溫公)이 그림으로 나타내고, 소강절(邵康節)이 수학(數學)으로 밝히어서 숨은 것을 찾아내고 깊은 것을 긁어내어 여러 학설을 통일하였으나, 오방(五方)의 음(音)이 각각 다르므로 그르니 옳으니 하는 분변이 여러가지로 시끄러웠다.
대저 음(音)이 다르고 같음이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다르고 같음이 있고, 사람이 다르고 같음이 있는 것이 아니라 지방이 다르고 같음이 있나니, 대개 지세(地勢)가 다름으로써 풍습과 기질이 다르며, 풍습과 기질이 다름으로써 호흡하는 것이 다르니, 동남(東南) 지방의 이[齒]와 입술의 움직임과 서북(西北) 지방의 볼과 목구멍의 움직임이 이런 것이어서, 드디어 글뜻으로는 비록 통할지라도 성음(聲音)으로는 같지 않게 된다. 우리 나라는 안팎 강산이 자작으로 한 구역이 되어 풍습과 기질이 이미 중국과 다르니, 호흡이 어찌 중국음과 서로 합치될 것이랴. 그러한즉, 말의 소리가 중국과 다른 까닭은 이치의 당연한 것이고, 글자의 음에 있어서는 마땅히 중국음과 서로 합치될 것 같으나, 호흡의 돌고 구르는 사이에 가볍고 무거움과 열리고 닫힘의 동작이 역시 반드시 말의 소리에 저절로 끌림이 있어서, 이것이 글자의 음이 또한 따라서 변하게 된 것이니, 그 음(音)은 비록 변하였더라도 청탁(淸濁)과 사성(四聲)은 옛날과 같은데, 일찍이 책으로 저술하여 그 바른 것을 전한 것이 없어서, 용렬한 스승과 속된 선비가 글자를 반절(反切)하는 법칙을 모르고 얽어 놓은 요점에 어두워서 혹은 글자 모양이 비슷함에 따라 같은 음(音)으로 하기도 하고, 혹은 전대(前代)의 임금이나 조상의 이름을 피하여 다른 음(音)으로 빌어서 하기도 하며, 혹은 두 글자로 합하여 하나로 만들거나, 혹은 한 음을 나누어 둘을 만들거나 하며, 혹은 다른 글자를 빌어 쓰거나, 혹은 점(點)이나 획(劃)을 더하기도 하고 감하기도 하며, 혹은 한음(漢音)을 따르거나, 혹은 속음[俚語]에 따르거나 하여서, 자모(字母) 칠음(七音)과 청탁(淸濁)ㆍ사성(四聲)이 모두 변한 것이 있으니, 아음(牙音)으로 말할 것 같으면 계모(溪母)의 글자가 태반(太半)이 견모(見母)에 들어갔으니, 이는 자모(字母)가 변한 것이고, 계모(溪母)의 글자가 혹 효모(曉母)에도 들었으니, 이는 칠음(七音)이 변한 것이라.
우리 나라의 말소리에 청탁(淸濁)의 분변이 중국과 다름이 없는데, 글자음[字音]에는 오직 탁성(濁聲)이 없으니 어찌 이러한 이치가 있을 것인가. 이는 청탁(淸濁)의 변한 것이고, 말하는 소리에는 사성(四聲)이 심히 분명한데, 글자 음에는 상성(上聲)ㆍ거성(去聲)이 구별이 없고, ‘질(質)’의 운(韻)과 ‘물(勿)’의 운(韻)들은 마땅히 단모(端母)로서 종성(終聲)을 삼아야 할 것인데, 세속에서 래모(來母)로 발음하여 그 소리가 느리게 되므로 입성(入聲)에 마땅하지 아니하니, 이는 사성(四聲)의 변한 것이라. ‘단(端)’을 ‘래(來)소리’로 하는 것이 종성(終聲)에만 아니고 차례[次第]의 ‘례’와 모란[牧丹]의 ‘란’같은 따위와 같이 초성(初聲)의 변한 것도 또한 많으며, 우리 나라의 말에서는 계모(溪母)를 많이 쓰면서 글자 음에는 오직 ‘쾌(快)’라는 한 글자의 음뿐이니, 이는 더욱 우스운 것이다. 이로 말미암아 글자의 획이 잘못되어 ‘어(魚)’와 ‘노(魯)’에 참것이 혼란되고, 성음(聲音)이 문란하여 경(涇)과 위(渭)가 함께 흐르는지라 가로[橫]로는 사성(四聲)의 세로줄[經]을 잃고 세로[縱]로는 칠음(七音)의 가로줄[緯]에 뒤얽혀서, 날[經]과 씨[緯]가 짜이지 못하고 가볍고 무거움이 차례가 뒤바뀌어, 성운(聲韻)의 변한 것이 극도에 이르렀는데, 세속에 선비로 스승된 사람이 이따금 혹 그 잘못된 것을 알고 사사로이 자작으로 고쳐서 자제(子弟)들을 가르치기도 하나, 마음대로 고치는 것을 중난하게 여겨 그대로 구습(舊習)을 따르는 이가 많으니, 만일 크게 바로잡지 아니하면 오래 될수록 더욱 심하여져서 장차 구해낼 수 없는 폐단이 있을 것이다.
대개 옛적에 시(詩)를 짓는 데에 그 음을 맞출 뿐이었는데, 3백편(三百篇)으로부터 내려와 한(漢)ㆍ위(魏)ㆍ진(晉)ㆍ당(唐)의 모든 작가(作家)도 또한 언제나 같은 운율에만 구애하지 아니하였으니, ‘동(東)’운을 ‘동(冬)’운에도 쓰고, ‘강(江)’운을 ‘양(陽)’운에도 씀과 같은 따위이니, 어찌 운(韻)이 구별된다 하여 서로 통하여 맞추지 못할 것이랴. 또 자모(字母)를 만든 것이 소리에 맞출 따름이니, 설두(舌頭)ㆍ설상(舌上)과 순중(脣重)ㆍ순경(脣輕)과 치두(齒頭)ㆍ정치(正齒)와 같은 따위는 우리 나라의 글자 음에는 분별할 수 없으니 또한 마땅히 자연에 따라 할 것이지, 어찌 꼭 36자(三十六字)에 구애할 것이랴. 공손히 생각하건대 우리 주상 전하(主上殿下)께옵서 유교를 숭상하시고 도(道)를 소중히 여기시며, 문학을 힘쓰고 교회를 일으킴에 그 지극함을 쓰지 않는 바가 없사온데, 만기(萬機)를 살피시는 여가에 이일에 생각을 두시와, 이에 신(臣) 신숙주(甲叔舟)와 수 집현전 직제학(守集賢殿直提學) 신(臣) 최항(崔恒), 수 직집현전(守直集賢殿) 신(臣) 성삼문(成三問)ㆍ신(臣) 박팽년(朴彭年), 수 집현전 교리(守集賢殿校理) 신(臣) 이개(李愷), 수 이조 정랑(守吏曹正郞) 신(臣) 강희안(姜希顔), 수 병조 정랑(守兵曹正郞) 신(臣) 이현로(李賢老), 수 승문원 교리(守承文院校理) 신(臣) 조변안(曹變安), 승문원 부교리(承文院副校理) 신(臣) 김증(金曾)에게 명하시와 세속의 습관을 두루 채집하고 전해 오는 문적을 널리 상고하여, 널리 쓰이는 음(音)에 기본을 두고 옛 음운의 반절법에 맞추어서 자모(字母)의 칠음(七音)과 청탁(淸濁)과 사성(四聲)을 근원의 위세(委細)한 것까지 연구하지 아니함이 없이 하여 옳은 길로 바로잡게 하셨사온데, 신들이 재주와 학식이 얕고 짧으며 학문 공부가 좁고 비루하매, 뜻을 받들기에 미달(未達)하와 매번 지시하심과 돌보심을 번거로이 하게 되겠삽기에, 이에 옛사람의 편성한 음운과 제정한 자모를 가지고 합쳐야 할 것은 합치고 나눠야 할 것은 나누되, 하나의 합침과 하나의 나눔이나 한 성음과 한 자운마다 모두 위에 결재를 받고, 또한 각각 고증과 빙거를 두어서, 이에 사성(四聲)으로써 조절하여 91운(韻)과 23자모(字母)를 정하여 가지고 어제(御製)하신 훈민정음으로 그 음을 정하고, 또 ‘질(質)’ㆍ‘물(勿)’ 둘의 운(韻)은 ‘영(影)’ 으로써 ‘래(來)’를 기워서 속음을 따르면서 바른 음에 맞게 하니, 옛 습관의 그릇됨이 이에 이르러 모두 고쳐진지라, 글이 완성되매 이름을 하사하시기를, ‘《동국정운(東國正韻)》’이라 하시고, 인하여 신(臣) 숙주(叔舟)에게 명하시어 서문(序文)을 지으라 하시니, 신 숙주(叔舟)가 그윽이 생각하옵건대 사람이 날 때에 천지의 가운을 받지 않은 자가 없는데 성음(聲音)은 기운에서 나는 것이니, 청탁(淸濁)이란 것은 음양(陰陽)의 분류(分類)로서 천지의 도(道)이요, 사성(四聲)이란 것은 조화(造化)의 단서(端緖)로서 사시(四時)의 운행이라, 천지의 도(道)가 어지러우면 음양이 그 자리를 뒤바꾸고, 사시(四時)의 운행이 문란하면 조화(造化)가 그 차례를 잃게 되나니, 지극하도다 성운(聲韻)의 묘함이여. 음양(陰陽)의 문턱은 심오(深奧)하고 조화(造化)의 기틀은 은밀한지고. 더구나 글자[書契]가 만들어지지 못했을 때는 성인의 도(道)가 천지에 의탁했고, 글자[書契]가 만들어진 뒤에는 성인의 도가 서책(書冊)에 실리었으니, 성인의 도를 연구하려면 마땅히 글의 뜻을 먼저 알아야 하고, 글의 뜻을 알기 위한 요령은 마땅히 성운(聲韻)부터 알아야 하니, 성운은 곧 도를 배우는 시작[權輿]인지라, 또한 어찌 쉽게 능통할 수 있으랴. 이것이 우리 성상(聖上)께서 성운(聲韻)에 마음을 두시고 고금(古今)을 참작하시어 지침(指針)을 만드셔서 억만대의 모든 후생들을 길 열어 주신 까닭이다.
옛사람이 글을 지어 내고 그림을 그려서 음(音)으로 고르고 종류로 가르며 정절(正切)로 함과 회절(回切)로 함에 그 법이 심히 자상한데, 배우는 이가 그래도 입을 어물거리고 더듬더듬하여 음(音)을 고르고 운(韻)을 맞추기에 어두었더니, 훈민정음(訓民正音)이 제작됨으로부터 만고(萬古)의 한 소리로 털끝만큼도 틀리지 아니하니, 실로 음(音)을 전하는 중심줄[樞紐]인지라. 청탁(淸濁)이 분별되매 천지의 도(道)가 정하여지고, 사성(四聲)이 바로잡히매 사시(四時)의 운행이 순하게 되니, 진실로 조화(造化)를 경륜(經綸)하고 우주(宇宙)를 주름잡으며, 오묘한 뜻이 현관(玄關)에 부합(符合)되고 신비한 기미(幾微)가 대자연의 소리에 통한 것이 아니면 어찌 능히 이에 이르리요. 청탁(淸濁)이 돌고 구르며 자모(字母)가 서로 밀어 칠음(七音)과 12운율(韻律)과 84성조(聲調)가 가히 성악(聲樂)의 정도(正道)로 더불어 한 가지로 크게 화합하게 되었도다. 아아, 소리를 살펴서 음(音)을 알고, 음(音)을 살펴서 음악을 알며, 음악을 살펴서 정치를 알게 되나니, 뒤에 보는 이들이 반드시 얻는 바가 있으리로다.”
하였다.
3. 《홍무정운역훈》(1455) 신숙주 서문
□ 원문(신숙주 보한재집)
保閑齋集卷第十五 / 序
洪武正韻譯訓序
聲韻之學。最爲難精。蓋四方風土不同。而氣亦從之。聲生於氣者也。故所謂四聲七音。隨方而異宜。自沈約著譜。雜以南音。有識病之。而歷代未有釐正之者。洪惟皇明太祖高皇帝。愍其乖舛失倫。命儒臣一以中原雅音。定爲洪武正韻。實是天下萬國所宗。我世宗莊憲大王。留意韻學。窮硏底蘊。創制訓民正音若干字。四方萬物之聲。無不可傳。吾東邦之士。始知四聲七音自無所不具。非特字韻而已也。於是。以吾東國世事中華。而語音不通。必賴傳譯。首命譯洪武正韻。令今禮曹參議臣成三問,典農少尹臣曹變安,知金山郡事臣金曾,前行通禮門奉禮郞臣孫壽山及臣叔舟等。稽古證閱。首陽大君臣 諱,桂陽君臣璔。監掌出納。而悉親臨課定。叶以七音。調以四聲。諧之以淸濁。縱衡經緯。始正罔缺。然語音旣異。傳訛亦甚。乃命臣等。就正中國之先生學士。往來至于七八。所與質之者若干人。燕都爲萬國會同之地。而其往返道途之遠。所嘗與周旋講明者。又爲不少。以至殊方 異域之使。釋老卒伍之微。莫不與之相接。以盡正俗異同之變。且天子之使至國。而儒者則又取正焉。凡謄十餘稿。辛勤反復。竟八載之久。而向之正罔缺者。似益無疑。文宗恭順大王。自在東邸。以聖輔聖。參定聲韻。及嗣寶位。命臣等及前判官臣魯參,今監察臣權引,副司直臣任元濬。重加讎校。夫洪武韻用韻倂析。悉就於正。而獨七音先後。不由其序。然不敢輕有變更。但因其舊。而分入字母於諸韻各字之首。用訓民正音。以代反切。其俗音及兩用之音。又不可以不知。則分注本字之下。若又有難通者。則略加注釋。以示其例。且以 世宗所定四聲通攷。別附之頭面。復著凡例。爲之指南。恭惟聖上卽位。亟命印頒。以廣其傳。以臣嘗受命於先王。命作序以識顚末。切惟音韻。衡有七音。縱有四聲。四聲肇於江左。七音起於西域。至于宋儒作譜。而經緯始合爲一。七音爲三十六字母。而舌上四母。唇輕次淸一母。世之不用已久。且先輩已有變之者。此不可強存而泥古也。四聲爲平,上,去,入。而全濁之字平聲。近於次淸。上,去,入。近於全淸。世之所用如此。然亦不知其所以至此也。且有始有終。以成一字之音。理之必然而獨於入聲。世俗率不用終聲。甚無謂也。蒙古韻與黃公紹韻會。入聲亦不用終聲。何耶。如是者不一。此又可疑者也。往復就正旣多。而竟未得一遇精通韻學者。以辨調諧紐攝之妙。特因其言語讀誦之餘。遡求淸濁開闔之源。而欲精夫所謂最難者。此所以辛勤歷久而僅得者也。臣等學淺識庸。曾不能鉤探至賾。顯揚聖謩。尙賴我世宗大王天縱之聖。高明博達。無所不至。悉究聲韻源委。而斟酌裁定之。使七音四聲。一經一緯。竟歸于正。吾東方千百載所未知者。可不浹旬而學。苟能沈潛反復。有得乎是。則聲韻之學。豈難精哉。古人謂梵音行於中國。而吾夫子之經。不能過跋提河者。以字不以聲也。夫有聲乃有字。寧有無聲之字耶。今以訓民正音譯之。聲與韻諧。不待音和,類隔,正切,回切之繁且勞。而擧口得音。不差毫釐。亦何患乎風土之不同哉。我列聖製作之妙。盡美盡善。超出古今。而殿下繼述之懿。又有光於前烈矣。景泰六年仲春旣望。輸忠協策靖難功臣。通政大夫。承政院都承旨,經筵參贊官兼尙瑞尹,修文殿直提學,知製敎。充春秋館,兼判奉常寺事,知吏曹事,內直司樽院事臣申叔舟。 拜手稽首敬序。(출처 : 한국고전번역원, 한국문집총간, 1988)
□ 원문 문구별 해석(출처 : https://blog.naver.com/kalsanja/221242954095)
《홍무정운역훈》(1455) 신숙주 서문
聲韻之學最爲難精
음운학(音韻學)은 가장 어렵고 세밀하다고 말한다.
* 聲韻(성운) : 음운(音韻). 한자(漢字)의 음(音)과 운(韻). 언어(言語)의 외형(外形)을 구성(構成)하는 음(音)과 운(韻)의 배합(配合). 고저(高低). 억양(抑揚) 등(等)에서 나는 모든 목소리
蓋四方風土不同而氣亦從之 聲生於氣者也
모두 사방(四方)의 풍토가 같지 않고 기(氣)가 역시 따라가니, 소리는 기(氣)에서 나오는 것이다.
故所謂四聲七韻 隨方宜異
그러므로 이른 바 사성(四聲)과 칠운(七韻)은 지방에 따라 당연히 다르다.
自沈約著譜 雜以南音有識病之 而歷代未有釐正之者
심약(沈約)이 운보(韻譜)를 저술하면서부터 남방(南方)의 소리가 섞여 식자들을 괴롭혔으나 아직 바로잡아 고친 자가 없었다.
* 심약(沈約) : 중국(中國) 남북조(南北朝) 시대(時代)의 학자(學者). 자(字)는 휴문(休門). 송(宋) 제(齊) 양(梁)에 역임(歷任). 박학(博學)으로 시문(詩文)을 즐겼으며 또한 음운학(音韻學)에 있어 사성(四聲) 연구(硏究)의 개조(開祖)임. 저서(著書)로『진서(晉書)』송서(宋書)』『제기(齊紀)』 『사성운보(四聲韻譜)』 등이 있음.
* 未有(미유) : 아직 …이[가] 없다. 있은 적이 없다.
* 釐正(이정) : 문서나 글을 정리하여 바로잡음.
洪惟皇明太祖皇帝 愍其乖舛失倫 命儒臣一以中原雅音 定爲洪武正韻 實是天下萬國所宗
넓게 생각하건대 명나라 태조황제께서 그렇게 잘못되고 순서를 잃은 것을 걱정하여 유학에 조예가 깊은 신하에게 명하여 중원지역의 정음(正音)으로 통일하여『홍무정운(洪武正韻)』을 제정하니 실로 이는 천하만국의 근본이었다.
(크게 생각건대, 명나라 태조 황제께서는 세상의 말소리가 어긋나고 질서가 무너진 것을 불쌍히 여기시어, 유신(儒臣)들에게 명하여 중원의 바른 소리(中原雅音)로 통일하게 하시고, 그 결과를 《홍무정운(洪武正韻)》으로 정하게 하셨으니, 이는 참으로 천하 만국이 본받을 표준이 되었다.)
* 洪惟(홍유) : 넓게 생각건대
* 乖舛(괴천) : 1.틀리다. 잘못되다. 2.순조롭지 않다. 3.일치하지 않다. 맞지 않다. 모순되다.
* 倫(윤) : 차례, 순서
* 儒臣(유신) : 유학자인 신하. 또는 사신(詞臣)을 말함.
* 中原(중원) : 황하(黄河)의 중류·하류 지역을 가리키는 말로, 하남(河南)성 대부분과 산동(山东)성 서부 및 하북(河北)·산서(山西)성 남부 지역을 포함함.
* 雅音(아음) : 바른 소리. 정음(正音). 명청대 황하유역의 표준어음의 명칭.
我世宗莊憲大王 留意韻學 窮硏底蘊 創制訓民正音若干字 四方萬物之聲 無不可傳
우리 세종 장헌대왕께서 음운학(音韻學)에 관심을 갖고 내용을 깊이 연구하여 훈민정음(訓民正音) 몇 십자를 창제하시니, 사방 만물의 소리를 전할 수 없는 게 없었다...인용
* 留意(유의) : 주의를[관심을] 기울이다. 관심을 갖다. 주의하다.
* 窮硏(궁연) : 궁구(窮究). 속속들이 깊이 연구(硏究)함.
* 底蘊(저온) : ① 상세한 내용 ② 온축(蘊蓄) ③ 내막 ④ 오랜 연구로 깊이 쌓은 학식
吾東方之士 始知四聲七音 自無所不具 非特字韻而已也
우리 동방 선비가 비로소 사성(四聲)과 칠음(七音)을 알게 되어 저절로 갖추지 못한 게 없으니 특별한 글자의 음만 있는 게 아니었다.
於是以吾東國 世事中華 而語音不通 必賴傳譯 首命譯洪武正韻
이에 우리 동국이 대대로 중국을 섬겼으나, 말이 통하지 못해 반드시 통역에 의지해야 하니
먼저 『홍무정운(洪武正韻)』을 번역하라고 분부하셨다.
令今禮曹參議臣成三問 典農少尹臣曹變安 知金山郡事臣金曾 前行通禮門奉禮郞
臣孫壽山及臣叔舟等 稽古證閱 首陽大君臣諱 桂陽君臣璔 監掌出納 而悉親臨課定
叶以七音 調以四聲 諧之以淸濁 縱衡經緯始正罔缺
현 예조참의 신(臣) 성삼문, 전농소윤(典農少尹) 신 조변안(曹變安), 지금산군사(知金山郡事) 신 김증(金曾), 전(前) 행통례문봉례랑(行通禮門奉禮郞) 신 손수산(孫壽山) 및 신 숙주(叔舟) 등에게 옛 것을 조사하여 증거를 모으게 하고, 수양대군 신 휘(諱)와 계양군(桂陽君) 신 증(璔)이 출납을 하게 하고 모두 직접 참여하여 차례를 정하여 칠음(七音)에 맞추고 사성(四聲)을 조절하니, 청탁(淸濁)이 어울리고 가로와 세로선이 씨줄과 날줄로 비로소 바르게 되어 결함이 없었다.
* 典農少尹(전농소윤) : 조선시대 전농시(典農寺)의 종4품 벼슬. 태종(太宗) 14년(1414)에 부정(副正)을 고친 이름이다.
* 通禮門奉禮郞(통례문봉례랑) : 조선 초기 통례문(通禮門)의 종6품 벼슬. 세조 12년(1466) 1월의 관제 경정 때에 통례문 봉례랑을 인의(引儀)로 개칭함.
* 監掌(감장) : 보살피는 일을 맡음.
然語音旣異 傳訛亦甚 乃命臣等就正中國之先生學士 往來至于七八 所與質之者若干人
그러나 말이 원래 달라 잘못되게 전하는 게 또한 심하니 이에 신들에게 중국의 선생과 학자에게 가르침을 청하라고 분부하셔서, 7, 8회 오가니 실제 사실과 원리에 대답하는 분이 십여 명
되었다.
* 旣(기) : 원래, 처음부터, 벌써
* 就正(취정) : 가르침을 청하다. 질정(叱正)을 바라다.
* 所與(소여) : 주어진 바. 주어진 여건(與件). 부여(附與)된 바. 연구 따위의 출발점으로서 이의 없이 받아들여지는 사실이나 원리.
* 質(질) ; 대답하다(對答--)
燕都爲萬國會同之地 而其往返途道之遠 所甞與周旋講明者 又爲不小
연경(燕京)은 만국의 여러 사람이 모이는 땅으로 그곳에 가고 돌아오는 길은 먼데, 일찍이 함께 힘써 연구하고 밝힌 바가 또한 적지 않다고 했다.
* 燕都(연도) : 연경(燕京). 중국의 수도인 베이징의 옛 이름
* 周旋(주선) : 일이 잘되도록 중간에서 여러 가지 방법으로 두루 힘을 씀. ① 주위를 돌다 ② 몸을 돌리다 ③ 접대하다 ④ (적과) 상대하다
* 講明(강명) ; 연구하여 밝힘.
以至殊方異域之使 釋老卒伍之微 莫不與之相接 以盡正俗異同之變
다른 지방과 다른 지역의 사신에 이르기까지 석가(釋迦)와 노자(老子)의 아주 작은 부분도 모두 접하게 되어 못내 올바른 풍속이 서로 같지 않게 변했다.
* 以至(이지) : …까지. …에 이르기까지.
* 卒伍(졸오) : 병졸들의 대오. 예전에, 10명이 한 조로 ‘졸’을 이루고 5명이 한 조로 ‘오’를 이룬 것에서 유래 함.
* 莫不(막불) : …하지 않는 자가[것이] 없다. 모두 …하다
* 相接(상접) : 접하다. 연결되다. 연속되다. 연접되다. 이어지다. 서로 잇닿다. 맞닿다.
* 以盡(이진) : 못내
* 正俗(정속) : 올바른 풍속(風俗)
* 異同(이동) : ①다른 것과 같은 것 ②서로 같지 아니함
且天子之使至國而儒者 則又取正焉
또한 각 나라에서 온 천자의 사신이 유학자이면 모범이 될 만한 사람을 본 받았다.
* 取正(취정) : 바름을 취한다는 뜻에서 모범이 될만한 사람을 임용하여 본받음.
凡謄十餘藁辛勤反復 竟八載之久而向之正罔缺者 似益無疑
무릇 십여 벌의 원고를 베끼고 부지런히 반복하여 마침내 8년이나 오랫동안 추진하여 바르게 함으로써 결함이 없도록 한 것이 의심할 바 없이 유익해 졌다.
* 辛勤(신근) : 부지런하다. 근면하다.
文宗恭順大王 自在東邸 以聖輔聖 參定聲韻 及嗣寶位 命臣等及前判官臣魯參
今監察臣權引 副司直臣任元濬 重加讎校
문종(文宗) 공순대왕(恭順大王)께서 동궁의 관저에 계실 적부터 성인으로서 성인(세종)을 섬기며 음운학에 관계하며 결정하셨고, (세조가) 보위를 잇고서는 신들 및 전(前) 판관 신 노삼(魯參), 현(現) 감찰 신 권인(權引), 부사직 신 임원준(任元濬)에게 명하여 거듭 교정을 하도록 하였다.
* 讎校(수교) : 다른 것과 비교하여 교정(校正)함
夫洪武韻用韻倂拆 悉就於正 而獨七音先後 不由其序
무릇 『홍무정운』에 사용한 운이 합쳐서 갈라진 것을 모두 바로잡으셨는데, 유독 칠음(七音)의 선후가 그 순서를 따르지 않았다.
* 不由(불유) : 1.복종하지 않다. 따르지 않다. 2.허용하지 않다. …하지 않을 수 없다.
然不敢輕有變更 但仍其舊而分入字母於諸韻 各字之首
그러나 감히 경솔히 변경할 수 없어 다만 그 예전 것은 그대로 따르고, 모든 운과 각 글자의 머리에 글자의 초성을 나누어 넣었다.
* 仍(잉) : 그대로 따르다. 기대다. 따르다, 좇다
用訓民正音 以代反切 其俗音兩用之音 又不可以不知 則分注本字之下 若又有難通者
則略加註釋 以示其例
훈민정음을 사용해서 반절(反切)을 대신하고, 그것을 통속적으로 사용하는 두 가지 발음을 또한 몰라서는 안 되므로 나누어 본 글자 아래에 주(注)를 달고, 또 통하기 어려운 게 있으면 간략한 주석을 붙여 그 예를 보였다.
* 俗音(속음) : 한자(漢字)의 원음에서 변하여 대중이 통용하는 음(音).
* 注(주) : 주를 달다.
且以世宗所定四聲通攷別附之 頭面復著凡例 爲之指南
또한 세종께서 정하신 『사성통고(四聲通攷)』를 별도로 첨부하여 머리와 얼굴에 범례(凡例)를 다시 붙여 지침으로 삼았다.
* 四聲通攷(사성통고) : 조선 세종 때 신숙주(申叔舟) 등이 편찬한 책으로, 세종의 명에 따라 집현전 학자들이 편찬한 한자음 발음사전이다. 현전하지 않으며, 최세진의 《사성통해(四聲通解)》를 통해 그 편찬 이유와 내용을 짐작할 수 있다.
* 頭面(두면) : ①갓과 같은 머리를 꾸미거나 장식하는 물건. [유사어] 수식(首飾). ②어떤 상황이나 국면을 처음으로 당함. ③머리와 얼굴. 전(轉)하여 안면(顔面)이란 말로 쓰여 입장 혹은 얼굴색을 바꾸다 등으로도 쓰임.
* 復著(부착) : 다시 입어보다. 다시 붙이다.
* 指南(지남) : 1.지남침. 나침반. 2.지침. 지침서. 입문서. (때로 책 이름으로 쓰임)
恭惟聖上卽位 亟命印頒 以廣其傳
삼가 생각건대 성상께서 즉위하시고 긴급하게 명하여 책으로 간행하여 그것을 널리 전했다.
* 印頒(인반) : 책을 박아 내어 널리 폄.
以臣甞受命於先王 命作序以識顚末
신에게 일찍이 선왕(先王)께서 주신 분부로 전말을 기록하는 서문을 지으라고 분부하셨다.
切惟音韻衡有七韻 縱有四聲 四聲肇於江左 七音起於西域 至于宋儒作譜 而經緯始合爲一
반절(反切)을 생각하면 횡으로 칠운(七韻)이 있고 종으로 사성(四聲)이 있는데, 사성은 양자강 하류 지역에서 비롯되었고 칠음은 서역(西域)에서 기원하였는데, 송대(宋代) 선비가 운보(韻譜)를 만들자 씨줄과 날줄이 비로소 하나가 되었다.
* 江左(강좌) : ① 양쯔장(揚子江) 하류의 동남 지역 ② 동진(東晉)·송(宋)·제(齊)·양(梁)·진(陳)의 왕조가 통치하던 지역 ③ 지금의 강소(江蘇)성 지역
* 西域(서역) ; 중국(中國)의 서쪽에 있는 여러 나라를 중국인(中國人)이 부른 일반적(一般的)인 명칭(名稱). 넓은 뜻으로는 페르시아, 소아시아, 시리아, 이집트 방면(方面)까지도 포함(包含)함. 좁은 뜻으로는 대개 지금의 신강성 천산남로(天山南路) 지방(地方)을 일컬음.
七音爲三十六字母 而舌上四母唇輕 次淸一母 世之不用已久 且先輩已有變之者
칠음은 원래 36자모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나 설상음의 네 자모와 순경음의 차청(次淸) 한 자모는 오래전부터 실제로 사용되지 않았으며, 선배 학자들도 이미 이를 다른 자모로 바꾸어 사용하였다.
此不可強存而泥古也 四聲爲平上去入 而全濁之字 平聲近於次淸 上去入近於全淸
世之所用如此
이를 억지로 두어서 옛것에 얽매여서는 안 되고 사성을 평성ㆍ상성ㆍ거성ㆍ입성이라 하는데, 된소리 글자는 평성이 차청(次淸)과 가깝고 상성ㆍ거성ㆍ입성은 전청(全淸)에 가까워 세상에 쓰이는 바가 이와 같다.
* 泥古(니고) : 옛 것에 얽매이다[구애되다·집착하다].
* 全濁(전탁) : 닿소리를 청탁(淸濁)으로 나눈 한 갈래. 된소리가 해당(該當). 『훈민정음』 제자해에서는 성음(聲音)을 청탁(淸濁)으로 가르되, ㄲ,ㄸ,ㅃ,ㅉ,ㅆ을 전탁(全濁)이라 하였음. 곧 전탁은 된소리[硬音]라 하겠음.
* 全淸(전청) ; 옛날 음운론(音韻論)에서 음(音)의 청탁(淸濁)을 가를 때에 'ㄱ, ㄷ, ㅂ, ㅈ, ㅅ, ㅇ, ㅎ'등(等)으로 표기(表記)되는 음(音)을 일컫는 말. 현대 음성학의 무성 자음에 해당한다.
然亦不知其所以至此也 且有始有終 以成一字之音 理之必然 而獨於入聲 世俗率不用終聲
甚無謂也
그러나 이렇게 된 이유를 역시 알지 못하며 또 시성(始聲)이 있고 종성(終聲)이 있어 한 글자의 음을 이루는 것은 이치의 필연인데, 유독 입성에만 세상에서 대략 종성(終聲)을 쓰지 않으니 무어라 말할 수 없다.
* 率(솔) : 대강(大綱), 대략(大略)
蒙古韻與黃公紹韻會 入聲亦不用終聲何耶 如是者不一 此又可疑者也
『몽고운략(蒙古韻略)』과 황공소(黃公紹)의 『고금운회(古今韻會)』도 입성에서 역시 종성을 쓰지 않으니 어찌 된 것일까? 이와 같은 것이 하나가 아니니 이것 또한 의심스러운 것이다.
* 蒙古韻(몽고운) : 원(元)나라 때에 편찬한 운서(韻書)인 몽고운략(蒙古韻略).
* 黃公紹(황공소) : 원나라 초기 음운학자
* 韻會(운회) : 『고금운회(古今韻會)』, 중국 송(宋)의 학자 황공소(黃公紹)가 편찬한 운서(韻書).
往復就正旣多 而竟未得一遇精通韻學者 以辨調諧紐攝之妙 特因其言語讀誦之餘
遡求淸濁開闔之源 而欲精夫所謂最難者 此所以辛勤歷久而僅得者也
오가며 바로잡은 게 이미 많았으나 끝내 음운(音韻)에 정통한 학자를 한번 만나 조화롭게 맺고 꾸며진 오묘함을 논쟁해 보지 못했고, 특히 그 언어를 읽고 외운 나머지 거슬러 올라가 맑고 탁함과 열리고 닫힘의 근원을 추구하여 대체로 보아 이른 바 가장 어려운 것을 세밀하게 하고자 하였으니 이는 오랜 세월을 겪으며 부지런하여 겨우 얻게 된 것이다.
* 調諧(조해) : ① 조화롭다 ② 동조(하다) ③ 어울리다
* 遡求(소구) : 거슬러 올라가서 추구(追求)·청구(請求)함.
* 夫(부) : 대저(大抵: 대체로 보아서), 발어사(發語辭)
* 歷久(역구) : 오랜 세월(歲月)을 겪어 옴
臣等學淺識庸 曾不能鉤探至賾顯揚聖謨
신 들은 학문이 얕고 지식이 용렬하여 일찍이 샅샅이 살피며 찾아 심오한 도리에 이른 통치의 방책을 높이 드러낼 수 없었다.
* 鉤探(구탐) : 샅샅이 살피어 찾음. 심오한 도리를 찾고 구함.
* 顯揚(현양) ; 이름, 지위 따위를 세상에 높이 드러냄.
* 聖謨(성모) : ①임금의 계획(計劃)과 방략 ②임금의 통치(統治)하는 방책(方策) ③임금의 정치적(政治的) 규모(規模)를 높여 이르는 말
尙賴我世宗大王 天縱之聖高明博達 無所不至 悉究聲韻源委 而斟酌裁定之 使七音四聲
一經一緯 竟歸于正
아직도 우리 세종대왕에 힘입어 하늘이 내린 성인의 높은 식견과 통달함이 이르지 않은 데가 없어 음운(音韻)의 처음과 끝을 모두 연구하셔서 심사숙고하여 결정하셔서, 칠음과 사성이 하나의 씨줄과 하나의 날줄로 마침내 바르게 되어 되돌아왔다.
* 尙(상) : 아직
* 賴(뇌) : 힘입다. 의지하다(依支--)
* 高明(고명) : (견해·기예 등이) 고명하다. 빼어나다. 출중하다. 특출나다. 뛰어나다. 굉장하다.
* 博達(박달) : 모든 것에 널리 통달하다.
* 無所不至(무소부지) : 이르지 아니한 데가 없음.
* 源委(원위) : 처음과 끝. 또는 근원과 위세(委細)함. [유사어]본말(本末).
* 斟酌(짐작) ; 헤아리다. 짐작하다. 고려하다. 심사숙고하다. 글이나 원고 내용을 다듬다, 정리하다.
* 裁定(재정) : 숙고하여 결정하다. 심의 결정하다. 2.(법원이) 재정하다. 시비를 가려 결정하다.
吾東方千百載所未知者 可不浹旬而學 苟能沉潛反復 有得乎是 則聲韻之學 豈難精哉
우리 동방에서 천백년에 알지 못했던 것을 열흘만 배우면 두루 미치게 되고 진실로 정신 집중을 반복하면 이에 깨닫는 바가 있으니, 곧 음운학에 어찌 정통하기 어렵겠는가?
* 可不(가불) : ① 물론이다 ② 어찌 …이 아니겠는가 ③ 그렇고 말고 ④ …으로 되지 않는가
* 苟能(구능) : 최소한 ~할 수 있다면
* 沉潛(침잠) : ① (물속에) 가라 앉아 잠기다 ② 덕화(德化)가 깊이 미치다 ③ 정신을 집중하다 ④ (상상·감정을) 가슴에 품고 나타내지 않다
* 精(정) ; 정통하다, 능통하다.
古人謂梵音行於中國 而吾夫子之經不能跋提河者 以字不以聲也
옛 사람이 말하기를 “범어(梵語)가 중국에 가고 우리 공자의 경전이 인도에 갈 수 없었던 것은 글자 때문이지 소리 때문이 아니었다“라고 하였다.
(수정:범음(梵音, 산스크리트 소리)은 중국에 전해졌으나,우리 공자(夫子)의 경전은 발제하(跋提河, 갠지스강)를 건너지 못하였다.” 하였다. 이는 글자(字)로만 전해지고, 소리(聲)로 전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 夫子(부자) : ①덕행(德行)이 높아 모든 사람의 스승이 될 만한 사람의 높임말 ②남편(男便)의 높임말 ③공자(孔子)의 높임말
* 跋提(발제) : 강 이름. 중인도(中印度)의 옛 구시나 게라국(拘尸那揭羅國)에 있는 아시다발제하(阿恃多跋提河)를 줄여서 이르는 말.(Aciravatī 阿尸羅跋提河 / 阿恃多跋提河 / 跋提河)
夫有聲乃有字 寧有無聲之字耶
무릇 소리가 있으면 이에 글자가 있으니 어찌 소리없는 글자가 있겠는가?
今以訓民正音譯之聲與韻諧 不待音和類隔正切回切之繁且勞 而擧口得音 不差毫釐
亦何患乎風土之不同哉
지금 훈민정음으로 번역하여 소리와 음이 잘 맞으니 음화(音和)ㆍ유격(類隔)ㆍ정절(正切)ㆍ회절(回切) 따위로 번거롭고 또 힘들일 필요가 없고, 입만 열면 소리를 얻어 조금도 차이가 없으니 또한 어찌 풍토가 같지 않다고 걱정하겠는가?
* 不待(부대) : ~할 필요가 없다, ~하지 마라.
* 毫釐(호리) ; ①자 또는 저울 눈의 호(毫)와 이(釐) ②매우 적은 분량(分量)
*① 音和 음을 조화시킴 -초성과 종성을 어울려 발음 추정 ② 類隔 유사음의 경계를 둠 -같은 음운계열과 다른 계열 구분 ③ 正切 올바른 반절 -표준 반절법 (초성과 운모의 결합) ④ 回切 되풀이 반절 -기존 반절을 재활용해 간략화
我列聖製作之妙盡美盡善 超出古今 而殿下繼述之懿 又有光於前烈矣
우리 역대 임금께서 창제하신 묘법이 모두 아름답고 다 훌륭해서 고금을 뛰어넘었고 전하께서 선왕의 정책을 계승하심이 아름다우며 또한 선왕의 업적에 빛이 난다.
* 列聖(열성) : 역대(歷代)의 임금. 여러 성인
* 超出(초출) : (일정한 범위나 수량을) 초과하다. 넘다. 벗어나다.
* 繼述(계술) : 선왕(先王)이나 조상이 남긴 뜻과 사업을 잘 받들어 계승함.
* 前烈(전열) ; 전대(前代)의 사람이 세운 공적과 업적.
4. 《용재총화》(성현, 1525)
(출처 : : http://www.davincimap.co.kr/davBase/Source/davSource.jsp?Job=Body&SourID=SOUR001367)
(원문)
1. 慵齋叢話卷之七
2
前朝科擧試官。只有知貢擧同知貢擧二人而已。預以文臣有名望者爲之。恩門視門生如子弟。門生視恩門如父母。贅郞不許入內室。而門生則特許相見。所以重也。一榜聚宴恩門之第。則捧觴獻壽。如親子弟。或留宿焉。安文成公家豪富。新恩三十人。皆給貂毛衾。亦各設萬縷銀盞。余之外家安氏。故得傳聞之也。國朝雖罷知貢擧之制。然猶有門主座主之名。或設酌看訪。死則或於其家。或於祖道。皆設奠祭之。今者門生座主。視如胡越。反相擠擊。此亦可以觀世變也。太宗少時習擧子業。於辛禑壬戌年擢進士第二名。又於翌年癸亥擢文科。金漢老爲壯元。沈孝生居二。太宗居十。李來成傅尹珪尹思修朴習玄孟仁皆同榜也。及登寶位。漢老之女爲世子禔之夫人。每於進退之際。常呼壯元而不名。
3
太宗嘗作扇詩曰。風榻依時思朗月。月軒吟處想淸風。自從削竹成團扇。朗月淸風在掌中。以文士而成大業者。古所未有。帝王文章亦未有如此之奇巧者。其引物譬喩。涵畜意趣。非聖人不能也。
4
襄陽南數里。有石立路旁。諺傳。昔一按廉酷愛州妓。臨遞別妓。作詩題于石曰。汝石何時石。吾人今世人。不知離別苦。獨立幾經春。或云咸傅霖所作。
5
讓寧君禔。雖失德廢嗣。晩年能隨時自▣。世祖嘗問禔曰。我之威武何如漢祖。對曰。殿下縱威武。必不溺儒冠矣。又問曰我之好佛何如梁武。對曰殿下縱好佛。必不以麪爲犧牲。又問曰我之拒諫何如唐宗。對曰殿下縱拒諫。必不殺張蘊古。禔每以談諧寓諷。世祖亦樂其誕而戱之。
6
玄先生孟仁嘗以司諫爲親幸祭大祝。手持祝文。茫然不措一辭。太宗怒曰。孟仁以文臣不能讀祝。將奚用爲。遂差萬戶。
7
僉知任淑爲健元陵香使。而大祝則李維翰。僉知李長孫爲顯陵香使。而大祝則姜參。同熟齋室。維翰不詳問於人。誤以長孫爲淑。書長孫名於祝版。淑奠爵俯伏少退跪。維翰讀長孫名。淑高聲告神座前曰。非長孫乃任淑也。祭畢出曰。姜維翰誤事大敗。彼李參何以讀之。蓋維翰誤認。而僉知亦誤換也。
8
孫判院聚古人三休四休之說。稱七休居士。爲人純謹無他。每事徑情直行。若關風俗綱常。必先致意。醉則發豪語無已。時嘗爲江原道監司。適時大旱。禱雨無效。公曰。不得求雨者無他。守令不盡誠也。如或誠心感天。則天必應之。遂齋戒親出祈雨。半夜聞雨聲。喜雨起曰。我常謝天。被朝服立庭中。無數拜天。雨勢漸急。有吏持傘倚後。公曰壓尊處安用傘爲。命去之。衣裳盡濕又爲慶尙監司。若過孝子烈女門閭。必下馬再拜。雖雨不避。都事李緝。擁蓑坐田間。公拜畢謂都事曰。足下何以爲之。緝曰我先令拜矣。左右無不掩口。又嘗至平壤。見箕子墓。下馬膜拜曰。東人至今囿於禮義之場者。專是太師之敎。又嘗陪獵于穿嶺。猛虎被圍。公乘醉抽木箭彎弓。馳馬欲入射之。衆人力持而止。凡事多類此。每於上前。書忠恕二字。懇懇陳啓。成宗以爲忠直。遂至大用。公位高而操心愈約。每對客設酌。只用黑豆苦菜松芽爲蔌。專惡繁華之事。
9
世宗創內佛堂。公卿大夫臺諫儒生三館諸生。皆上書極諫。判院事李順蒙亦詣政院論啓。傳曰。文士闢佛宜矣。宰臣何知佛之是非而駁之。順蒙對曰。人皆以爲非。故臣亦非之。人皆論諫。故臣亦論諫。擧國所非之事。殿下何獨爲之。成宗將祔德宗于太廟。聚政院六曹臺諫弘文館議之。論議紛紜不一。驪城君閔發。亦以功臣與焉。問諸左右曰德宗何人。宗廟誰氏之宅。左右曰。德宗是今上之考。宗廟今上祖宗祭享之所。發曰此甚易耳。以子祭父。合於事軆。有何他議。其後竟祔廟。夫順蒙與發皆無知武士。發言中於理。是由本然善性初未嘗泯也。
10
李參判子野嘗赴京。有書狀官。適遊街市。見美人在紗窓裡刺繡。書狀目注不轉。美人開窓以水揮之。衣盡濕。參判聞而作詩曰。河水橋頭柳絮飛。酷探春色却忘歸。多情忽有窓間雨。飛洒分司御史衣。其後再赴京師。行至通州。無疾暴卒。人皆惜之。
11
有李斯文者。爲殷山縣監。京友投刺於門。久立無影響。枵腹不耐勞苦。日已高。忽聞衙中有吹角聲。門吏曰供盥頮也。日幾中天。又聞角聲。門吏曰整鞍粧也。日正中。又聞角聲。縣監出。其友進謁。縣監立與一語。卽歸官廳。竟不招友。友大失望。未幾縣監居殿而遞。又有白斯文者。爲牛縣令。監司成公巡行過縣北界。顧謂都事曰。今日已晩。自然思食。都事曰。前未五里有晝停之處。縣當作例來辦矣。馳至其處。寂無人聲。有麥笠老吏。肩掛網囊。出跪路旁曰。支應而來。遂解囊呈一瓦壜及一小封。壜是酒而封是雞也。監司大怒曰。我雖飢困。安食此物。未幾斯文亦遞。時人作詩戱之曰。縣官出入三吹角。使道迎逢一瓦甁。
12
有慈悲僧者。性直無曲節。雖公卿大相皆以名呼之。人有施與。則雖重物不讓而受。人有丐之者。盡數與之。只著破笠破衣而已。日日糊口於京中里閭。與之食則食。不與之則不食。腆饋不以爲美。觕飯亦不以爲歉。凡言物必稱主。言石則云石主。言木則云木主。其他物亦皆類此。儒生見僧向晩悤悤去。問曰向那裏去。僧曰往尼舍覓烏主家。蓋言覓袴具也。人皆笑之。僧腮有傷痕。人問其故。僧言曾入山採薪。有虎與熊相鬪。僧就前謂之曰。何故相害。宜各和解。虎主聽戒而去。熊主不聽僧戒。來咬僧面。適被山人來救而得免矣。予嘗與諸宰樞會一處。僧亦來到。座中人問云。僧不曾入山修道。何苦每在人間修橋樑路井小事。僧曰。少時師僧戒云。入山苦行十年。則可以悟道。僧入金剛山五年。臺山五年。勤苦繕性。竟無其效。師僧又云。讀蓮華經百遍。則可以悟道。僧依敎誦遍。亦無其效。自是始知佛氏虛妄難信也。然僧無他輔國。但欲修橋梁道井以施功德於人。人皆樂其眞率也。
13
陳高兩天使。所留題詠裒集。名曰皇華集。芹館儒士聚坐。吟諷而讚之。柳上舍正孫在旁乃言曰。此詩如此美。故吾祖參判公好觀之。滿座太噱曰。今時天使所製之詩。汝祖何由觀之。儒士又論饌物。偶及大饅頭之味。崔上舍八俊曰。吾祖母每作此物而食之。座中大噱曰。大饅頭惟於接天使大饗之禮設之。汝祖母雖甚豪富。豈得常常而食之。當時皆笑二人之嗤妄也。
14
余爲弘文提學。有館員奉使南方。愛光州妓。落節而還。同僚誹笑之。余戱作詩云。僧於聲色本無情。娼妓齋中尙發情。若作湖南乘馹客。玉堂學士摠多情。昔者有一娼妓。喪親設齋於寺。羣妓皆往。有僧硏菜。忽持刀倚壁而立。菴主僧問其故。僧曰見紅粧撩亂。情動不能止耳。庵主僧曰。汝勿雜言。今日娼妓之齋。誰不動情。詩句借此爲喩也。
15
余與同年元壽翁偕赴京。壽翁鼻楂赤。行至平壤。適侍房之妓鼻亦楂赤。余作詩戱之曰。箕都城內朔風寒。春色如何上鼻端。醉後一雙金橘爛。樽前兩葉晩楓丹。帳中光影偏相照。客裡風情慘不懽。我是直言吳可立。爲傳聲譽滿長安。甑山有老官吳可立。若見行客昵妓之事。每說於人。故詩語及之也。
16
余於辛未年間。在坡州別墅。一日余伯氏陪大夫人。往登珍巖巖枕洛河。其高千仞。上可坐百許人。西接海門。北與松都相對。松嶽五冠聖居諸山。如在咫尺。風景勝於蠶嶺。是時日斜。忽飛雨驟集。有虹自巖頭小井。入于江中。光輝所照。人面皆黃。腥穢之氣。人不敢近。眞天地之淫氣。而古人之言不虛也。伯氏作詩曰江波渺渺水如空。泛泛漁舟箇箇同。日暮顚風吹雨過。晩虹時起斷岡東。是歲余年十三。少子世淳年十。伯氏朝夕勤勤敎誨。或讀書或作詩。每夜同宿一房。敍文論懷。仲氏戲曰兩童能文章。吾輩他日閉門自縮。不幸世淳早逝。余之成立得至今日。皆伯氏之力也。
17
潮水之往來有常。朝曰潮。而夕曰汐。所謂信者不失其期也。自越閩齊東遼瀋之境。及我西南海。潮皆一樣。惟東海無潮。中朝不知。故先儒無議之者。或云。南方體柔用强。故有潮。北方體强用柔。故無潮。或云。潮之源出自中國。我之西海近。故潮所及。東海遠。故潮不及。或云。自東女眞之域。沮洳連陸。達于東倭。潮源出自扶桑。過倭國而西。潮至連陸之地迤回而南。我之東海在其內。故潮不及。此三說未知孰是。
18
雉之美者。北方爲最。今平安道江邊之雉。進其大如鶩。凝膏如琥珀。當冬捕而供進。謂之膏雉。其味甚美。自北而南。雉漸瘠。至湖嶺南陲則肉臊不可食。人言北方多草樹。得飮啄得所。故肥也。
19
物有相類者甚繁。雞與雉相類。鴨與雁相類。鵝與鵠相類。馬與驢相類。犬與狼相類。羊與羚相類。猪與豕相類。鼠與竹鼠相類。猫與狸相類。鴒與鵠相類。虎與豹相類。獐與鹿相類。鷹與鶻鳶相類。鯽與鯉相類。鮧與鰻鱺相類。蟹與蛛相類。蠅與蝱相類。蛟與醢雞相類。蛙與蟾相類。蔥與蒜相類。薑與鬱金相類。鶯與啄木相類。香薷與荊芥相類。牧丹與芍藥相類。梨與林檎相類。榛與栗相類。李與奈相類。茄與苽相類。柑與橘柚相類。桃與杏相類。松與柏檜相類。荔支與龍眼相類。海棠花與木瓜花相類。玫瑰與四季相類。金錢與石竹相類。薇與蕨相類。桔梗與人蔘相類。蒲與菖蒲相類。朱砂與雄黃相類。消腦與龍腦相類。其餘物之大小長短雖殊。而形軆相類者無限也。
20
祈雨之禮。先令五部。修溝瀆淨阡陌。次祭宗廟社稷。次祭四大門。次設五方龍祭。東郊靑龍。南郊赤龍。西郊白龍。北郊黑龍。中央鍾樓街作黃龍。命官致祭。三日而止。又設龍祭於楮子島中。令道流誦龍王經。又投虎頭於朴淵楊津等處。又於昌德宮後苑慶會樓慕華館池邊三處。泛蜥蜴於水瓮中。靑衣童子數十。以楊枝擊瓮鳴鑼大呼曰。蜥蜴蜥蜴。興雲吐霧。俾雨滂沱。放汝歸去。獻官與監察。整冠笏而立。三日而止。又於城內萬落。貯水甁揷楊枝焚香。坊坊曲曲設棚。兒曹群聚呼雨。又徙市於南路。閉南門開北門。旱甚則上避殿減膳。不鳴鼓審冤獄。赦中外。
21
圓覺寺是古大寺之基。初有大殿及東西禪堂而已。慣習都監寓大殿西禪堂。禮葬都監寓東禪堂。大殿之北。爲中部儒生所會。世祖皆命毀撤。更創大伽藍。名曰圓覺。以銀川君玉山君爲提調。兼大司憲。常於路上用憲官之儀。所由二人呵辟。又令騎士吹簫角前導。士女坌集聚觀。寺成設慶讚會。上屢臨幸焉。有天雨四花舍利分枚之異。屢加百官級。其後中部移於架閣庫之基。禮葬都監。寓松峴行廓。屬歸厚署。慣習都監合於奉常寺之樂學。而名曰樂學都監。未幾改爲掌樂院。洪仁山爲提調。以其地狹人衆。移今之地而大創之。宏堂傑搆。甲於諸廨。爲百官習儀之所。又爲科場取士之處矣。
22
世宗設諺文廳。命申高靈成三問等製諺文。初終聲八字。初聲八字。中聲十二字。其字軆依梵字爲之。本國及諸國語音文字。所不能記者。悉通無礙。洪武正韻諸字。亦皆以諺文書之。遂分五音而別之。曰牙舌唇齒喉。唇音。有輕重之殊。舌音有正反之別。字亦有全淸次淸全濁不淸不濁之差。雖無知婦人。無不瞭然曉之。聖人創物之智。有非凡力之所及也。
23
丁酉年琉球國王使臣到國。成宗接見乎慶會樓下。使臣退館謂通事曰。我到貴國見三壯觀。通事問其故。使臣曰。慶會樓石柱縱橫刻畫。飛龍倒影隱現於碧波紅蕖之間。此一壯觀也。領議政鄭公風標俊逸。玉色鬚髥。下垂過腹。輝映朝著。此二壯觀也。禮賓正每參晝盃之宴。快瀉無限大鍾。不曾有難色。此三壯觀也。時李淑文爲禮賓副正。朋友聞之絶倒。
24
太宗於永樂元年。謂左右曰。凡爲治。必須博觀典籍。吾東方在海外。中國之書罕至。板刻易以剜缺。且難盡刻天下之書。予欲範銅爲字隨所得而印之。以廣其傳。誠爲無窮之利。遂用古註詩書左氏傳字鑄之。此鑄字所由設也。名曰丁亥字。世宗又於庚子年。以所鑄之字大而不整改鑄之。其樣小而得正。由是無書不印。名曰庚子字。甲寅年又用爲善陰騭字鑄之。比庚子字。差大而字軆甚好。又命。世祖書綱目大字。世祖時爲首陽大君。遂範銅爲字。以印綱目。卽今所謂訓義也。壬申年間文宗更鎔庚子字。命安平書之。名曰壬子字。乙亥年世祖改鎔壬申字。命姜希顏書之。名曰乙亥字。至今用之。其後乙酉年。欲印圓覺經命鄭蘭宗書之。字軆不整。名曰乙酉字。成宗於辛卯年。用王荊公歐陽公集字鑄之。其軆小於庚子。而尤精。名曰辛卯字。又得中朝新板綱目字鑄之。名曰癸丑字。大抵鑄字之法。先用黃楊木刻諸字。以海蒲軟泥。平鋪印板。印着木刻字於泥中則所印處。凹而成字於是合兩印板。鎔銅從一穴瀉下。流液分入凹處。一一成字。遂刻剔重複而整之。刻木者曰刻字鑄成者曰鑄匠。遂分諸字。貯於藏樻。其守字者曰守藏。年少公奴爲之。其書草唱准者曰唱准。皆解文者爲之。守藏列字於書草上。移之於板。曰上板。用竹木破紙塡空而堅緻之。使不搖動者。曰均字匠。受而印之者。曰印出匠。其監印官則校書館員爲之。監校官則別命文臣爲之。始者不知列字之法。融蠟於板。以字着之。以是庚子字。尾皆如錐。其後始用竹木塡空之術。而無融蠟之費。始知人之用巧無窮也。
25
斯文柳休復與其從弟柳允謙亨叟。精熟杜詩。一時無比。皆受業於泰齋先生。先生雖以文章著名。而緣父之罪。禁錮終身。斯文亦不得赴試。世宗嘗命集賢殿諸儒。撰註杜詩。而斯文亦以白衣往參。人皆榮之。其後皆通仕途。斯文登庚辰科。官至校理。亨叟與余同年進士。而登壬午科。官至右副承旨。亦以文學名。我仲氏眞逸先生學杜。斯文日夜忘倦。讀至百遍。由是大悟。文理觸處皆通。我伯氏文安公常與仲氏論杜而作詩。多得杜軆。余亦少時受杜於伯氏。拘於擧業。半途而廢。至今恨其不全也。
26
尹淡叟先生性拙直。又精於詩表。專用科場規範。謂人曰崔勢遠讀樊川。如以蒿草裹泥。盧子伴讀東坡。文辭倔强。如以鈍鉅斷木。此豈可用。不如陽村陶隱之軟美易呑也。嘗與李放翁論文。淡叟曰。足下之文如陽村。放翁曰。先生之詩過陶隱。相讓未已。其後淡叟爲宣慰使。下嶺南。路逢故人上京者。謂之曰京友若問余之行止。汝必曰。釋伽如來遊南方也。徐達城作詩云。文章陶隱右。福德釋伽南。淡叟少時以儒生殿講。不脫靴幕而入。勢遠作詩云欲識老厖眞㥘處。白靴黑幕拜君王。淡叟每誇於人曰。吾兒理學如朱子。吾壻文章似昌黎。勢遠大書門扉曰。厖叟莫誇兒與壻。一門非是盡英明。一日宣城達城就淡叟第。時宣城兼判吏曹。淡叟爲軍職司勇。淡叟占句云。副司勇宅三台集。達城應聲對曰。兼判書隣九品存。世祖設援英試。取金守溫等二十餘人。盧宣城徐達城李韓山洪益城梁南原任西河皆中選。其餘皆一時名儒。其日未及赴者亦多。更命宣城西河益城爲試官。又取姜晉山成夏山李陽城芮金世蕃尹淡叟等數人。是日設場於思政殿庭。借紙於香室。遂付承旨朴子啓曰。吾之名紙。子可使人裁割而來。遂坐場中苦吟。顧謂曰。吾紙已裁乎。子啓曰。安心做作。紙當來矣。日暮篇成索紙。子啓曰。我躬不閱。遑恤我後。我已用之矣。淡叟大慍。遂取裹肉小紙而書呈之。是時天熱。淡叟脫靴而坐。又布亂帙書冊於前。宣城潛令人奪靴與書冊而去。淡叟呼丐不得。赤脚步出宮門。見者無不絶倒。及榜出。則淡叟居末。欲不遊街。宣城晉山夏山俱詣其家。恐動之曰。君若不出。我當啓之。加㡤於頭。披袍於身。扶擁而出。淡叟不得已應榜。每於同年禮會。呼淡叟爲末坐。侵困萬端矣。
27
金斯文宗蓮性戇直。博覽書史。少時居淸溪山下。一日强盜數人。奄至其家。斯文開弓注矢。倚戶而立。盜疑畏不敢近。斯文發矢。盜雀躍曰。勇哉先輩之射矢。直不敢當也。遂入室盡偸財物而去。斯文僅以身免。世祖將祀山川。以犧牲瘦瘠。罷牲官之職。更命憲府。察視喂養。斯文爲監察。受任而往。日夜坐牛蚩傍。牛飽停食。斯文顧謂牛曰。牛乎牛乎。何不食草。旣食汝員。又欲食我乎。牛乎牛乎。黽勉食草。免我罪累。斯文以選與通鑑撰集廳。諸先生論食味。偶及河豚殺人之事。共坐廳中。晝飯案有新石首魚湯。同僚顧謂斯文曰。此魚甚美。試嘗之。斯文持湯鉢。置諸案下曰。先生誑我矣。欲殺人乎。滿堂大笑。
28
成廟升遐之日。城中士大夫巨族。多有婚媾者。或乘朝而往。或當午而往。或佯若不知而往。其後事覺皆抵罪。竹城君朴之蕃武人不解文字。前一日是醮子之夕。賓僚畢集。忽聞大內疾劇。乃曰。父不豫。臣子何忍私行婚禮。遂謝絶賓僚而返之。時有議者曰。儒林反不如武士。可嘆也已。
29
莫非山蔬而朮芽。名曰山菜。莫非水族而秀魚。謂之水魚。俗語然也。祁天使到國。食秀魚美之曰。此魚何名。通使答曰水魚也。天使笑曰鱗介萬族。而此魚何獨名水魚。魚在水中者皆名水乎。蓋秀與水。方音相似。而通使不能辨也。
30
昔有一守令。與邑戶長。相與占聯。守令皤腹。而戶長患眼。守令先唱曰。戶長之眼雖濕。能作渠而導之乎。衫袖之厄而蒼蠅之宴食。戶長但俯伏而已。守令曰上尊亦對之。戶長唱曰。大人之腹雖大。能載貢稅之米耶。馹騎之厄而猛虎之宴食。余與一庵陪伯氏。東遊關東。一庵每呼弟子。夜出遺矢。伯氏唱曰。一庵雖屢見馬。能給馬蒭乎。弟子之厄而厖狗之宴食。余又陪伯氏赴京。醫員金原謹嘗患獨脚。余唱曰。金判事之脚雖大。能作大葫蘆乎。房妓之厄而眞豆之宴食。眞豆蟲名。好黏狗脚者也。
31
凡菜菓。皆隨土宜而種之。以收其利。今東大門外往審坪。種蕪菁蘿葍白菜之類。靑坡蘆原兩驛。好種蹲鴟。南山之南李泰院村人。好種茶蓼作紅芽。京畿朔寧之人。好種蔥菜。忠淸右道之人。好種蒜。全羅之人。好種薑。如旌善之梨永春之棗密陽之粟順興海松子咸陽晉陽之柹。他處雖有。而不如此邑之多且美也。
32
學專上人號一庵。其爲人純謹無他。表裡如一。雖知作詩。而所占無警句。雖知內典。而不深究根本。雖不入山修道。而亦無浪跡。好與人棋。而常不勝。亦不爲慍。與人無貴賤。一與之語。卽成心交。至如申高靈李延城朴平陽成謹甫柳太初姜晉山徐達城洪益城李陽城成夏山昆弟任西河李平仲金福昌。皆其至交。而高靈尤愛護之。一日夏山設宴慰高靈。佳賓滿座。歌妓擁後。高靈愀然不樂曰。若有一庵。吾可罄歡。夏山伻人請邀。少焉一庵欣然入室。彎袖而舞。高靈與座客皆解頤。終日罄歡而散。及拜禪堂判事。入院之日。簪珥盈門。人皆榮之。雖無文名者。亦皆與之交。退老于文化具葉寺。使華往訪者不絶。至今年過九十而。身猶康强也。予嘗作句曰。棋無面象終難勝。詩失先聯不自由。高靈聞之曰。此正實錄也。謹甫嘗作一庵詩曰。上人學佛者。揭一名其庵。吾徒學孔子。還慚德二三。時人以爲善名狀也。一庵求詩於縉紳間。所藏詩卷。連床盈篋。而一時精抄之詩。皆萃於此矣。人之嗜好不同。性所然也。金宰樞淳好食實。一庵好食麵。徐后山好食大口湯。我伯氏好食蘆苔。此四物皆非至味。而篤好之。裴載之惡麵。見之則必置床下。人問其故。答曰。見人之食麵。滿口咄咄。則心神顫動矣。孫鷄城惡食西瓜。曰若一片入口。心先穢惡。崔提學惡大口魚。乃曰。若聞此魚之臭。頭痛如裂。申正郞惡蓴菜。曰。若去凝滑。可以下著。此四物皆至味。而惡之如此。人之嗜性本定。不可傳移也。
33
斯文丁子伋有子二人。奇斯文禶與其子壽崑。司仕承文院。禶曰子之嚴君有四昆弟是否。壽崑駭愕曰。獨一嚴君而已。何謂有四。禶曰子之嚴君居長。其次丁子舡其次丁子閣其次丁子藥也。丁子伋有子二人。曰壽崑壽崗。丁子舡無後。丁子閣有一子。曰丁紛。丁子藥有一子一女。子曰丁腫。女丁香。壽崑答曰。君有四男信否。人問其故。壽崑曰。君之長子特次異次凡次求。滿座大噱。
34
武官梁某。爲公州牧使。暑月多蠅。梁厭之。令州中吏胥。下至伶妓僕隷。每朝捕呈蠅一升。嚴設法而督之。上下爭務捕捉。皇皇不少休。至有抱布買蠅者。時人謂之蠅牧使。治邑如捕蠅。則令豈有不行者乎。
35
乙巳歲朴生隨我赴京。爲人純謹質直。容止麤俚。初到平壤。監司備萬隊紅粧。來迓舟中。生目眩不能仰視。潛於帽下窺之。奇態異常。有一妓坐船頭。生指之謂同伴成生曰。汝爲庶尹三寸。能成我事。則必厚報之。到館就房。未知某之來。凝神儼思。俄而捲帳而入。卽船頭坐者。生雀躍不已。私自語曰。若非成龍之力。何以至此。情意深篤。須臾不離側。雖於溷厠。亦必相隨。探囊中得小簡。乃妓私夫所送也。生不以爲嫌。反愈愛之。每晨脫妓短襖被之曰。亦是客中滋味。及行之日。欲與載歸。已備鞍馬。妓因隙逃走。至順安。惘然自失。又見湯酒女有色者。百計圖之。携入房中。因生之醉。其女逃去。生酒醒。有一女過房。以爲其人而執之。終夜講歡。到曉視之。則鼻大如盤。不類前見者。生遽呼曰。此非也。至肅寧館。邑中人物繁華。紅裳翠鬢羅擁酒樽者數十人。生以府使族弟。乘威得美者。昵愛尤甚。是日天陰。生撫女背曰。明日降雨。則一行當留。願天知我心。霈然注霖。仍歔欷太息。賓主朝飯于東軒。生持紙呈府使。願給女浣衣之暇。府使給數日。生曰四寸之間。何如是薄也。府使不得已給數朔。生借馬於人。載向安州。肅川人見之曰。朝天行次。一年三度往來。子弟軍官無數。吾輩閱人多矣。未見此人之淫急者。其奔馳正如狂犬耳。至安州留一日。愛之甚篤。臨發之際。還送女于肅川。女所率人失鞍子。女呼泣曰。所以隨汝而來者。欲蒙德蔭。今未蒙德蔭。反有此患。罵之不已。生茫然若無所措。至嘉平館。生見官婢有姿色者。謂館人曰。我是壬申年助戰軍官。嘗愛此婢。須喚率來。女信之至前熟視曰。壬申年從誰而來。我曾不識汝面也。拂袖而去。生得他人伴宿。至定州獺川橋。牧使來迓設酌。生見一妓。呼而進之曰。汝知李陸令公乎。曰否。汝知盧公弼令公乎。曰否。生遽前執手曰旣不識二公。則必來吾房。同伴誣之曰。有干於使。生遂放之。又聞妓碧洞仙有色。百計圖而得之。一行之人惡生淫慝。欲誑之。州有儒生明孝者。年少丰雋。塗粉靚粧。坐東軒群妓中。凝眸整襟。眞贗莫辨。生視之曰。天下無雙也。遽前執手。扶歸西室。明孝故拒。生或叱或誘。老妓執燭導前。謂生曰。此女未經人事。當徐徐馴之。毋遽侵辱也。生入室抱腰附耳語曰。汝若從我。汝之計活。我當遂之。成生來曰。牧使設酌。欲慰吾輩。君不可早休。不如携妓往參。生携手同歸。牧使叱明孝曰。汝以官物。不順於客。罪當大笞乎。吏取栲杖來。扶而下之。生出跪攢手哀乞曰。此兒無不順之事。傳之者誤也。若因我得罪。反咎我尤甚。牧使赦之。明孝奉觴而進歌曰。今日始相見。明日還相離。厥初若不逢。不知是阿誰。生撫背欣笑曰。何如是不遜而唱如是歌乎。我觀諸妓。無如汝之顏色。吾捨此何求。飮罷到房相持弄戲。區區狎昵。千態萬狀。碧洞仙在側。生謂成生曰。吾得美人。不顧此妓。汝速持去。生奴來窓外曰。此是妓乎。何迷而不悟。生叱之曰。汝何知吾事。俄而解衣同臥。始知男子。驚起無一言。翌日行至離亭。明孝男服隨生傳杯。生欲升馬。明孝攀衣止之曰。終夜團欒。欲成我計活。今何容易而去。大無情也。衆人皆笑。至義州。州素多人物。與箕城相甲乙。有一年少婢名末非者。生見而憐之。欲遂而未遂。謂裴官曰。君去此邑。能成我事。則當以死報之。裴官曰。此輩各有主。吾不能制之。不如告州官。生卽趨謁判官請之。判官呼末非敎之。末非猶未聽許。在上房前。生解玉葫蘆。繫末非衣。乃笑曰得我物。當從我言。是夜同宿。末非雖無愛生之志。欲獲後利。百態媚之。生心膽盡落。自以爲得佳偶。翌日末非謂生曰。官家繁擾。不如往吾家蔬糲共之。生携手同歸。早晨進粟飯葵羹。生甘食不遺。生離家已久。蓬頭垢面。末非煖水。親自洗面梳髮。生尤樂焉。來謂諸輩曰。其家殷富。其人慧黠。自吾平生未曾見也。至江上臨別。生抱末非。臥沙中涕泣。剖小石各書名而分之。生繫諸衣袖。如寶金玉未嘗失。留燕數月。言言每稱末非。不離於口。回至遼東。末非之娚末山。隨迎逢軍而去。末非送溫襖。生卽被於肩。謂諸輩曰。此吾兒所送物也。到義州。末非欲得唐物。務增媚態。生之憐愛。倍於多給▣▣遙末非家祀神。謂生曰。家無魚物。汝可乞來。生見判官得乾魚一束。親持而歸。跪受神賜酒快倒曰。我是大主翁。不可不飮也。至林畔館將別。生携末非手。來入上房索酒。各飮一盃。末非執生衣。生執末非手。相持痛哭。日已高。同伴力解之。生恐末非追來。踉蹡走出。誤得他人馬而倒騎。見者皆抵掌。馬上雙淚點滴如雨。至一溪曲朝飯。同伴勸飧專不顧。惟俯首向溪。同伴曰子無乃泣乎。生曰我非泣。乃翫水中魚耳。捲帽而視之。目盡腫。
36
慵齋叢話卷之七終
5. 《성호사설》 권16(이익, 1760)
언문(諺文)
我東諺字剏扵世宗朝丙寅凡有音者莫不有字人稱倉籕以来未始有也元世祖時巴思八者得佛氏遺敎制蒙古字平上去入四聲之韻分唇舌喉齒牙半唇半齒七音之母字苟有其音者一無所遺凡中國之字以形為主故人以手傳而目視也蒙字以聲為主故人以口傳而耳聼也然全無其形又何能傳而不泯今無以得見其詳若推例為文字可以通行扵天下後世與我之諺文同科意者明初必有其法也我國之始制也設局禁中命鄭麟趾成三問申叔舟䓁撰㝎時皇朝學士黃鑚罪謫遼東使三問䓁徃質凡徃返十三度云以意臆之今諺文與中國字絶異鑚何與焉是時元亾𦆵七十九年其事必有未泯者鑚之所傳扵我者抑恐外此更無其物也按髙麗忠烈王時公主妬寵作畏吾兒字達于元欲人之不暁也史云回鶻書于慎行云宋嘉㝎三年畏吾兒國降扵蒙古唐之髙昌也居甘州即西域國名而奉佛敎者也巴思八所傳既云佛敎而元世之通行則公主之所作字非此而何然則與今諺字不過形別而意同者歟凡中國書有音而無字者過半凡唇舌喉齒開合淸濁随口異聲何故或有或無今諺反㘦凡十四母有其母而無其㘦亦四條俗所謂入聲也其舌帖上齶一條我國亦無字侵覃塩咸四韻與真文䓁同㘦我所謂入聲中國無有只有兒二兩字其蕭爻尤三韻皆一字二音此不可暁也意者五胡以後歴元魏華音變盡北方之音有然者耶我俗西邉多濁聲都中泮村亦然北民移濟州故其音與北相類可以為驗西域之字無音不備則屋沃以下入聲十七韻外恐更別無其音而其得扵鑚者如此然則此為巴思八之餘意又可想可謂後出益工但其字形專沒意義惟以一㸃二㸃為別一㸃者皆出扵舌端為正音二㸃者皆出扵舌右旁偏音也其初凡例今無所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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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언문 글자는 세종 28년인 즉 병인년에 처음 지었는데, 온갖 소리를 글자로 형용하지 못할 것이 없었다. 사람들은 이를, “창힐(倉頡)과 태사(太史) 주(籒) 이후로 처음 있는 일이라.” 하였다.
원 세조(元世祖) 때에 파스파(巴思八)가 불씨(佛氏)의 유교(遺敎)를 얻어 몽고(蒙古)의 글자를 지었는데, 평ㆍ상ㆍ거ㆍ입(平上去入)의 네 가지 음운(音韻)으로써 순(唇)ㆍ설(舌)ㆍ후(喉)ㆍ치(齒)ㆍ아(牙)ㆍ반순(半唇)ㆍ반치(半齒) 등 칠음(七音)의 모자(母字)로 나누어 무릇 소리가 있는 것은 하나도 빠뜨림이 없었다.
무릇 중국의 글자는 형상을 주장하므로 사람들이 손으로 전하고 눈으로 볼 수 있는데, 몽고의 글자는 소리를 주장하므로 사람들이 입으로 전하고 귀로 듣게 되어 있다. 그러나 형상이 전혀 없으니 어떻게 유전하여 민멸되지 않겠는가? 이제 그 자세한 내용을 얻어 볼 길이 없는 것이다.
만약 규례를 미루어 문자를 만들었더라면 천하 후세에까지 통용되어 우리나라의 언문과 같은 공효가 있었을 것이니, 생각건대 명 나라 초엽에는 반드시 그 법규가 남아 있었을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언문을 처음 지을 때에는 궁중에 관서를 차리고 정인지ㆍ성삼문ㆍ신숙주 등에게 명하여 찬정(撰定)하게 하였다.
이때에 명 나라의 학사(學士) 황찬(黃鑽)이 죄를 짓고 요동으로 귀양왔었는데, 성삼문 등을 시켜 찾아가 질문하게 했으니 왕복이 무릇 13차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그러나 추측해 본다면 지금 언문이 중국의 문자와 판이하게 다른데 황찬과 무슨 관련이 있었겠는가?
이때에 원 나라가 멸망한 지 겨우 79년이었으니 몽고의 문자가 반드시 남아 있었을 것이며, 황찬이 우리에게 전한 바는 아마도 이 밖에 다른 것은 없었을 것이다.
〈고려사〉를 상고하건대, “충렬왕 때에 공주(公主 원 세조의 딸)가 총애를 투기하여 외오아(畏吾兒)의 문자로 편지를 써서 원 나라에 보냈으니, 이는 남들이 알까 두려워한 것이다.” 하였고, 〈사기〉에는, “외오아의 문자는 곧 위구르(回鶻)의 글이라.” 하였다.
우신행(于愼行)은, “송 나라 가정(嘉定 영종(寧宗)의 연호) 3년에 외오아국(畏吾兒國)이 몽고에 항복했으니, 곧 당(唐) 나라 때의 고창(高昌) 땅이라.” 하였다.
거감주(居甘州)는 곧 서역(西域)에 있는 나라로서 불교를 신앙하는데, 파스파(巴思八)의 전한 바에 이미, “불교에 의거하여 몽고의 글자를 지어 원 나라 시대에 통용했다.” 했으니, 공주가 사용한 문자는 이 글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렇다면 지금의 언문과 모습은 다르지만 뜻은 같았을 것이다.
무릇 중국의 문자는 소리는 있으나 문자로써 형용할 수 없는 것이 반이 넘는다. 입술과 혀와 목과 이를 여닫아 맑고 흐린 음성이 입에 따라 다른데, 무슨 까닭으로 이를 형용하는 문자가 혹은 있고 혹은 없는가?
이제 언문은 반ㆍ절(反切)이 무릇 열 네 모음이며, 모음만 있고 절(切)은 없는 것이 또한 네 가지이니, 세속에서 이른바 입성(入聲)이 이것이다. 그 혀를 윗잇몸에 붙이는 한 가지 소리는 우리나라에도 또한 문자가 없으며, 침(侵)ㆍ담(覃)ㆍ염(鹽)ㆍ함(咸) 4운은 진(眞)ㆍ문(文) 등과 절(切)이 동일하다.
우리나라의 이른바 입성이 중국에는 없는데 다만 아(兒)ㆍ가(二) 두 자가 있으며, 소(蕭)ㆍ효(肴)ㆍ우(尤) 세 운은 모두 한 자에 두 음이 되니, 이는 이해할 도리가 없다.
생각건대, 오호(五胡)의 난리 후에 원위(元魏)를 거쳐 중국의 음이 북방의 음으로 모두 변하여 그런 것이 아니겠는가? 우리나라의 습속이 서도(西道)에 흐린 음성이 많고 도성 가운데 반촌(泮村)이 또한 그러하며, 북도의 백성이 제주로 옮겼으므로, 그 음성이 북도와 비슷하니, 이로써 증험할 수 있다.
서역(西域)의 문자는 음성이 갖춰지지 않은 것이 없으나, 옥(屋)ㆍ옥(沃) 이하 입성(入聲) 17운 밖에는 아마 별다른 음성이 없을 것이니, 황찬에게서 얻은 것이 이와 같은 유이다. 그렇다면 이것이 파사팔(巴思八)의 끼친 뜻임을 또 알 수 있는데, 후일에 나온 것이 더욱 공교하다고 할 만하다.
다만 그 문자의 모습이 전혀 의의가 없고 오직 1점 2점으로써 분별하는데, 1점은 모두 혀끝에서 나와 정음(正音)이 되고, 2점은 모두 혀의 우편에서 나와 편음(偏音)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 처음의 범례는 이제 상고할 길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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