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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민정음과 범어

훈민정음(1446)정인지 서문-동국정운(1448) 신숙주 서문-홍무정운역훈(1455) 신숙주 서문

 

1. 훈민정음(1446) 어제(서문 및 예의) 및 정인지 서문

 

 원문 자료

[세종실록 113권 세종 28(1446) 9 29일 갑오 4번째 기사]

 

是月, 訓民正音成 御製曰:

 

國之語音, 異乎中國, 與文字不相流通, 故愚民有所欲言, 而終不得伸其情者多矣 予爲此憫然, 新制二十八字, 欲使人() , 便於日用耳 牙音, 如君字初發聲, 竝書如蚪字初發聲 牙音, 如快字初發聲 牙音, 如業字初發聲 舌音, 如斗字初發聲, 竝書如覃字初發聲 舌音,  呑字初發聲 舌音, 如那字初發聲 唇音, 如彆字初發聲, 竝書如步字初發聲 唇音, 如漂字初發聲 唇音, 如彌字初發聲 齒音, 如卽字初發聲, 竝書如慈字初發聲 齒音, 如侵字初發聲 齒音, 如戍字初發聲, 竝書如邪字初發聲 喉音, 如挹字初發聲 喉音, 如虛字初發聲, 竝書如洪字初發聲 喉音, 如欲字初發聲 半舌音, 如閭字初發聲 半齒音, 如穰字初發聲 如呑字中聲, 如卽字中聲, 如侵字中聲, 如洪字中聲, 如覃字中聲, 如君字中聲, 如業字中聲, 如欲字中聲, 如穰字中聲, 如戌字中聲, 如彆字中聲 終聲復用初聲 連書唇音之下, 則爲唇輕音, 初聲合用則竝書 終聲同 ㆍㅡㅗㅜㅛㅠ附書初聲之下, ㅣㅓㅏㅑㅕ附書於右 凡字必合而成音, 左加一點則去聲, 二則上聲, 無則平聲 入聲加點同而促急

 

禮曹判書鄭麟趾序曰:

 

有天地自然之聲, 則必有天地自然之文, 所以古人因聲制字, 以通萬物之情, 以載三才之道, 而後世不能易也 然四方風土區別, 聲氣亦隨而異焉 蓋外國之語, 有其聲而無其字, 假中國之字, 以通其用, 是猶柄鑿之鉏鋙也, 豈能達而無礙乎? 要皆各隨所處而安, 不可强之使同也 吾東方禮樂文物, 侔擬華夏, 但方言俚語, 不與之同, 學書者患其旨趣之難曉, 治獄者病其曲折之難通 昔新羅 薛聰始作吏讀, 官府民間, 至今行之, 然皆假字而用, 或澁或窒, 非但鄙陋無稽而已, 至於言語之間, 則不能達其萬一焉 癸亥冬, 我殿下創制正音二十八字, 略揭例義以示之, 名曰訓民正音 象形而字倣古篆, 因聲而音叶七調, 三極之義二氣之妙, 莫不該括 以二十八字而轉換無窮, 簡而要, 精而通, 故智者不崇朝而會, 愚者可浹旬而學 以是解書, 可以知其義; 以是聽訟, 可以得其情 字韻則淸濁之能卞, 樂歌則律呂之克諧, 無所用而不備無所往而不達, 雖風聲鶴唳雞鳴狗吠, 皆可得而書矣 遂命詳加解釋, 以喩諸人 於是, 臣與集賢殿應敎崔恒副校理朴彭年申叔舟修撰成三問敦寧注簿姜希顔行集賢殿副修撰李塏李善老等謹作諸解及例, 以敍其梗槪, 庶使觀者不師而自悟 若其淵源精義之妙則非臣等之所能發揮也 恭惟我殿下天縱之聖, 制度施爲, 超越百王, 正音之作, 無所祖述, 而成於自然, 豈以其至理之無所不在而非人爲之私也? 夫東方有國, 不爲不久, 而開物成務之大智, 蓋有待於今日也歟!

世宗莊憲大王實錄卷第一百十三終

태백산사고본 36 113 36 B국편영인본 4 702

 해석

 

훈민정음이 이루어지다. 어제와 예조 판서 정인지의 서문

 

이달에 훈민정음(訓民正音)이 이루어졌다. 어제(御製),

 

"나랏말이 중국과 달라 문자와 서로 통하지 아니하므로, 우매한 백성들이 말하고 싶은 것이 있어도 마침내 제 뜻을 잘 표현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내 이를 딱하게 여기어 새로 28()를 만들었으니, 사람들로 하여금 쉬 익히어 날마다 쓰는 데 편하게 할 뿐이다. ㄱ은 아음(牙音)이니 군()자의 첫 발성(發聲)과 같은데 가로 나란히 붙여 쓰면 규()자의 첫 발성(發聲)과 같고, ㅋ은 아음(牙音)이니 쾌()자의 첫 발성과 같고,ㆁ은 아음(牙音)이니 업()자의 첫 발성과 같고, ㄷ은 설음(舌音)이니 두()자의 첫 발성과 같은데 가로 나란히 붙여 쓰면 담()자의 첫 발성과 같고, ㅌ은 설음(舌音)이니 탄()자의 첫 발성과 같고, ㄴ은 설음(舌音)이니 나()자의 첫 발성과 같고, ㅂ은 순음(脣音)이니 별()자의 첫 발성과 같은데 가로 나란히 붙여 쓰면 보()자의 첫 발성과 같고, ㅍ은 순음(脣音)이니 표()자의 첫 발성과 같고, ㅁ은 순음(脣音)이니 미()자의 첫 발성과 같고, ㅈ은 치음(齒音)이니 즉()자의 첫 발성과 같은데 가로 나란히 붙여 쓰면 자()자의 첫 발성과 같고, ㅊ은 치음(齒音)이니 침()자의 첫 발성과 같고, ㅅ은 치음(齒音)이니 수()자의 첫 발성과 같은데 가로 나란히 붙여 쓰면 사()자의 첫 발성과 같고, ㆆ은 후음(喉音)이니 읍()자의 첫 발성과 같고, ㅎ은 후음(喉音)이니 허()자의 첫 발성과 같은데 가로 나란히 붙여 쓰면 홍()자의 첫 발성과 같고, ㅇ은 후음(喉音)이니 욕()자의 첫 발성과 같고, ㄹ은 반설음(半舌音)이니 려()자의 첫 발성과 같고, ㅿ는 반치음(半齒音)이니 양()자의 첫 발성과 같고, ㆍ은 탄()자의 중성(中聲)과 같고, ㅡ는 즉()자의 중성과 같고, ㅣ는 침()자의 중성과 같고, ㅗ는 홍()자의 중성과 같고, ㅏ는 담()자의 중성과 같고, ㅜ는 군()자의 중성과 같고, ㅓ는 업()자의 중성과 같고, ㅛ는 욕()자의 중성과 같고, ㅑ는 양()자의 중성과 같고, ㅠ는 슐()자의 중성과 같고, ㅕ는 별()자의 중성과 같으며, 종성(終聲)은 다시 초성(初聲)으로 사용하며, ㅇ을 순음(脣音) 밑에 연달아 쓰면 순경음(脣輕音)이 되고, 초성(初聲)을 합해 사용하려면 가로 나란히 붙여 쓰고, 종성(終聲)도 같다. , , , , , ㅠ는 초성의 밑에 붙여 쓰고, , , , , ㅕ는 오른쪽에 붙여 쓴다. 무릇 글자는 반드시 합하여 음을 이루게 되니, 왼쪽에 1점을 가하면 거성(去聲)이 되고, 2점을 가하면 상성(上聲)이 되고, 점이 없으면 평성(平聲)이 되고, 입성(入聲)은 점을 가하는 것은 같되 촉급(促急)하게 된다."

 

라고 하였다. 예조 판서 정인지(鄭麟趾)의 서문에,

 

"천지(天地) 자연의 소리가 있으면 반드시 천지 자연의 글이 있게 되니, 옛날 사람이 소리로 인하여 글자를 만들어 만물(萬物)의 정()을 통하여서, 삼재(三才)128) 의 도리를 기재하여 뒷세상에서 변경할 수 없게 한 까닭이다. 그러나, 사방의 풍토(風土)가 구별되매 성기(聲氣)도 또한 따라 다르게 된다. 대개 외국(外國)의 말은 그 소리는 있어도 그 글자는 없으므로, 중국의 글자를 빌려서 그 일용(日用)에 통하게 하니, 이것이 둥근 장부가 네모진 구멍에 들어가 서로 어긋남과 같은데, 어찌 능히 통하여 막힘이 없겠는가. 요는 모두 각기 처지(處地)에 따라 편안하게 해야만 되고, 억지로 같게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우리 동방의 예악 문물(禮樂文物)이 중국에 견주되었으나 다만 방언(方言)과 이어(俚語)만이 같지 않으므로, 글을 배우는 사람은 그 지취(旨趣)의 이해하기 어려움을 근심하고, 옥사(獄事)를 다스리는 사람은 그 곡절(曲折)의 통하기 어려움을 괴로워하였다. 옛날에 신라의 설총(薛聰)이 처음으로 이두(吏讀)를 만들어 관부(官府)와 민간에서 지금까지 이를 행하고 있지마는, 그러나 모두 글자를 빌려서 쓰기 때문에 혹은 간삽(艱澁)하고 혹은 질색(窒塞)하여, 다만 비루하여 근거가 없을 뿐만 아니라 언어의 사이에서도 그 만분의 일도 통할 수가 없었다.

 

계해년 겨울에 우리 전하(殿下)께서 정음(正音) 28()를 처음으로 만들어 예의(例義)를 간략하게 들어 보이고 명칭을 훈민정음(訓民正音)이라 하였다. 물건의 형상을 본떠서 글자는 고전(古篆)을 모방하고, 소리에 인하여 음()은 칠조(七調)129) 에 합하여 삼극(三極)130) 의 뜻과 이기(二氣)131) 의 정묘함이 구비 포괄(包括)되지 않은 것이 없어서, 28자로써 전환(轉換)하여 다함이 없이 간략하면서도 요령이 있고 자세하면서도 통달하게 되었다. 그런 까닭으로 지혜로운 사람은 아침나절이 되기 전에 이를 이해하고, 어리석은 사람도 열흘 만에 배울 수 있게 된다. 이로써 글을 해석하면 그 뜻을 알 수가 있으며, 이로써 송사(訟事)를 청단(聽斷)하면 그 실정을 알아낼 수가 있게 된다. 자운(字韻)은 청탁(淸濁)을 능히 분별할 수가 있고, 악가(樂歌)는 율려(律呂)가 능히 화합할 수가 있으므로 사용하여 구비하지 않은 적이 없으며 어디를 가더라도 통하지 않는 곳이 없어서, 비록 바람소리와 학의 울음이든지, 닭울음소리나 개짖는 소리까지도 모두 표현해 쓸 수가 있게 되었다. 마침내 상세히 해석을 가하여 여러 사람들을 깨우치게 하라고 명하시니, 이에 신()이 집현전 응교(集賢殿應敎) 최항(崔恒), 부교리(副校理) 박팽년(朴彭年)과 신숙주(申叔舟), 수찬(修撰) 성삼문(成三問), 돈녕부 주부(敦寧府注簿) 강희안(姜希顔), 행 집현전 부수찬(行集賢殿副修撰) 이개(李塏이선로(李善老) 등과 더불어 삼가 모든 해석과 범례(凡例)를 지어 그 경개(梗槪)를 서술하여, 이를 본 사람으로 하여금 스승이 없어도 스스로 깨닫게 되었다. 그러나 그 연원(淵源)의 정밀한 뜻의 오묘(奧妙)한 것은 신() 등이 능히 발휘할 수 있는 바가 아니다. 삼가 생각하옵건대, 우리 전하(殿下)께서는 하늘에서 낳으신 성인(聖人)으로써 제도와 시설(施設)이 백대(百代)의 제왕보다 뛰어나시어, 정음(正音)의 제작은 전대의 것을 본받은 바도 없이 자연히 이루어졌으니, 그 지극한 이치가 있지 않은 곳이 없으므로 한 사람의 사적인 업적이 아니라고 하겠는가? 대체로 동방에 나라가 있은 지가 오래 되지 않은 것이 아니나, 만물의 뜻을 깨달아 모든 일을 이루는 큰 지혜는 대개 오늘날에 기다리고 있을 것인져."

 

하였다.

 

[ 128] 삼재(三才) : ((().[ 129] 칠조(七調) : 칠음(七音). 곧 궁()()()()()변치(變緻)변궁(變宮)의 일곱 음계(音階).[ 130] 삼극(三極) : ((().[ 131] 이기(二氣) : 음양(陰陽).

 

 

 

 

 

2. 동국정운(1448) 신숙주 서문

 

 원문 자료

[세종실록 117권 세종 29(1447) 9 29(무오) 2번째 기사]

 

是月, 東國正韻, 凡六卷, 命刊行 集賢殿應敎申叔舟奉敎序曰:

 

天地絪縕, 大化流行而人生焉; 陰陽相軋, 氣機交激而聲生焉 聲旣生焉, 而七音自具, 七音具而四聲亦備, 七音四聲, 經緯相交, 而淸濁輕重深淺疾徐, 生於自然矣 是故庖犧畫卦, 蒼頡制字, 亦皆因其自然之理, 以通萬物之情, 及至沈, 諸子彙分類集, 諧聲協韻, 而聲韻之說始興 作者相繼, 各出機杼; 論議旣衆, 舛誤亦多 於是, 溫公著之於圖, 康節明之於數, 探賾鉤深, 以一諸說 然其五方之音各異, 邪正之辨紛紜 夫音非有異同, 人有異同; 人非有異同, 方有異同, 蓋以地勢別而風氣殊, 風氣殊而呼吸異, 東南之齒唇, 西北之頰喉是已 遂使文軌雖通, 聲音不同焉

 

吾東方表裏山河, 自爲一區, 風氣已殊於中國, 呼吸豈與華音相合歟! 然則語音之所以與中國異者, 理之然也 至於文字之音則宜若與華音相合矣, 然其呼吸旋轉之間, 輕重翕闢之機, 亦必有自牽於語音者, 此其字音之所以亦隨而變也 其音雖變, 淸濁四聲則猶古也, 而曾無著書以傳其正, 庸師俗儒不知切字之法, 昧於(紐躡)紐攝 之要, 或因字體相似而爲一音, 或因前代避諱而假他音, 或合二字爲一, 或分一音爲二, 或借用他字, 或加減點畫, 或依漢音, 或從俚語, 而字母七音淸濁四聲, 皆有變焉

 

若以牙音言之, 溪母之字, 太半入於見母, 此字母之變也;溪母之字, 或入於曉母, 此七音之變也 我國語音, 其淸濁之辨, 與中國無異, 而於字音獨無濁聲, 豈有此理! 此淸濁之變也 語音則四聲甚明, 字音則上去無別 質勿諸韻, 宜以端母爲終聲, 而俗用來母, 其聲徐緩, 不宜入聲, 此四聲之變也 端之爲來, 不唯終聲, 如次第之第牧丹之丹之類, 初聲之變者亦衆 國語多用溪母, 而字音則獨夬之一音而已, 此尤可笑者也 由是字畫訛而魚魯混眞, 聲音亂而涇渭同流, 橫失四聲之經, 縱亂七音之緯, 經緯不交, 輕重易序, 而聲韻之變極矣 世之爲儒師者, 往往或知其失, 私自改之, 以敎子弟, 然重於擅改, 因循舊習者多矣 若不大正之, 則兪久兪甚, 將有不可救之弊矣 蓋古之爲詩也, 協其音而已 自三百篇而降, 唐諸家, 亦未嘗拘於一律, 如東之與冬江之與陽之類, 豈可以韻別而不相通協哉! 且字母之作, 諧於聲耳 如舌頭舌上唇重唇輕齒頭正齒之類, 於我國字音, 未可分辨, 亦當因其自然, 何必泥於三十六字乎?

 

恭惟我主上殿下崇儒重道, 右文興化, 無所不用其極, 萬機之暇, 慨念及此, 爰命臣叔舟及守集賢殿直提學臣崔恒守直集賢殿臣成三問臣朴彭年守集賢殿校理臣李愷守吏曹正郞臣姜希顔守兵曹正郞臣李賢老守承文院校理臣曺變安承文院副校理臣金曾, 旁採俗習, 博考傳籍, 本諸廣用之音, 協之古韻之切, 字母七音淸濁四聲, 靡不究其源委, 以復乎正 臣等才識淺短, 學問孤陋, 奉承未達, 每煩指顧, 乃因古人編韻定母, 可倂者倂之, 可分者分之, 一倂一分一聲一韻, 皆稟宸斷, 而亦各有考據 於是調以四聲, 定爲九十一韻二十三母, 以御製訓民正音定其音 又於質勿諸韻, 以影補來, 因俗歸正, 舊習譌謬, 至是而悉革矣 書成, 賜名曰東國正韻, 仍命臣叔舟爲序

 

臣叔舟竊惟人之生也, 莫不受天地之氣, 而聲音, 生於氣者也 淸濁者, 陰陽之類, 而天地之道也; 四聲者, 造化之端, 而四時之運也 天地之道亂, 而陰陽易其位; 四時之運紊, 而造化失其序, 至哉, 聲韻之妙也! 其陰陽之閫奧造化之機緘乎! 況乎書契未作, 聖人之道, 寓於天地; 書契旣作, 聖人之道, 載諸方策! 欲究聖人之道, 當先文義; 欲知文義之要, 當自聲韻 聲韻, 乃學道之權輿也, 而亦豈易能哉! 此我聖上所以留心聲韻, 斟酌古今, 作爲指南, 以開億載之群蒙者也 古人著書作圖, 音和類隔, 正切回切, 其法甚詳, 而學者尙不免含糊囁嚅, 昧於調協 自正音作而萬古一聲, 毫釐不差, 實傳音之樞紐也 淸濁分而天地之道定; 四聲正而四時之運順, 苟非彌綸造化, 轇輵宇宙, 妙義契於玄關, 神幾通于天籟, 安能至此乎? 淸濁旋轉, 字母相推, 七均而十二律而八十四調, 可與聲樂之正同其大和矣 ! 審聲以知音, 審音以知樂, 審樂以知政, 後之觀者, 其必有所得矣

世宗莊憲大王實錄卷第一百十七終

 

 해석 : 동국정운 완성에 따른 신숙주의 서문

 

이달에 동국정운(東國正韻)이 완성되니 모두 6권인데, 명하여 간행하였다. 집현전 응교(集賢殿應敎) 신숙주(申叔舟)가 교지를 받들어 서문(序文)을 지었는데, 이르기를,

하늘과 땅이 화합하여 조화(造化)가 유통하매 사람이 생기고, ()과 양()이 서로 만나 기운이 맞닿으매 소리가 생기나니, 소리가 생기매 칠음(七音)이 스스로 갖추이고, 칠음이 갖추이매 사성(四聲)이 또한 구비된지라, 칠음과 사성이 경위(經緯)로 서로 사귀면서 맑고 흐리고 가볍고 무거움과 깊고 얕고 빠르고 느림이 자연으로 생겨난 이러한 까닭으로, 포희(庖犧)가 괘()를 그리고 창힐(蒼頡)이 글자를 만든 것이 역시 다 그 자연의 이치에 따라서 만물의 실정을 통한 것이고, 심약(沈約)ㆍ육법언(陸法言) 등 여러 선비에 이르러서, 무리에 따라 나누고 종류에 따라 모아서 성조(聲調)를 고르고 운율(韻律)을 맞추면서 성운(聲韻)의 학설이 일어나기 시작하매, 글 짓는 이가 서로 이어서 각각 기교(技巧)를 내보이고, 이론(理論)하는 이가 하도 많아서 역시 잘못됨이 많았는데, 이에 사마 온공(司馬溫公)이 그림으로 나타내고, 소강절(邵康節)이 수학(數學)으로 밝히어서 숨은 것을 찾아내고 깊은 것을 긁어내어 여러 학설을 통일하였으나, 오방(五方)의 음()이 각각 다르므로 그르니 옳으니 하는 분변이 여러가지로 시끄러웠다.

대저 음()이 다르고 같음이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다르고 같음이 있고, 사람이 다르고 같음이 있는 것이 아니라 지방이 다르고 같음이 있나니, 대개 지세(地勢)가 다름으로써 풍습과 기질이 다르며, 풍습과 기질이 다름으로써 호흡하는 것이 다르니, 동남(東南) 지방의 이[]와 입술의 움직임과 서북(西北) 지방의 볼과 목구멍의 움직임이 이런 것이어서, 드디어 글뜻으로는 비록 통할지라도 성음(聲音)으로는 같지 않게 된다. 우리 나라는 안팎 강산이 자작으로 한 구역이 되어 풍습과 기질이 이미 중국과 다르니, 호흡이 어찌 중국음과 서로 합치될 것이랴. 그러한즉, 말의 소리가 중국과 다른 까닭은 이치의 당연한 것이고, 글자의 음에 있어서는 마땅히 중국음과 서로 합치될 것 같으나, 호흡의 돌고 구르는 사이에 가볍고 무거움과 열리고 닫힘의 동작이 역시 반드시 말의 소리에 저절로 끌림이 있어서, 이것이 글자의 음이 또한 따라서 변하게 된 것이니, 그 음()은 비록 변하였더라도 청탁(淸濁)과 사성(四聲)은 옛날과 같은데, 일찍이 책으로 저술하여 그 바른 것을 전한 것이 없어서, 용렬한 스승과 속된 선비가 글자를 반절(反切)하는 법칙을 모르고 얽어 놓은 요점에 어두워서 혹은 글자 모양이 비슷함에 따라 같은 음()으로 하기도 하고, 혹은 전대(前代)의 임금이나 조상의 이름을 피하여 다른 음()으로 빌어서 하기도 하며, 혹은 두 글자로 합하여 하나로 만들거나, 혹은 한 음을 나누어 둘을 만들거나 하며, 혹은 다른 글자를 빌어 쓰거나, 혹은 점()이나 획()을 더하기도 하고 감하기도 하며, 혹은 한음(漢音)을 따르거나, 혹은 속음[俚語]에 따르거나 하여서, 자모(字母) 칠음(七音)과 청탁(淸濁)ㆍ사성(四聲)이 모두 변한 것이 있으니, 아음(牙音)으로 말할 것 같으면 계모(溪母)의 글자가 태반(太半)이 견모(見母)에 들어갔으니, 이는 자모(字母)가 변한 것이고, 계모(溪母)의 글자가 혹 효모(曉母)에도 들었으니, 이는 칠음(七音)이 변한 것이라.

우리 나라의 말소리에 청탁(淸濁)의 분변이 중국과 다름이 없는데, 글자음[字音]에는 오직 탁성(濁聲)이 없으니 어찌 이러한 이치가 있을 것인가. 이는 청탁(淸濁)의 변한 것이고, 말하는 소리에는 사성(四聲)이 심히 분명한데, 글자 음에는 상성(上聲)ㆍ거성(去聲)이 구별이 없고, ‘()’의 운() ()’의 운()들은 마땅히 단모(端母)로서 종성(終聲)을 삼아야 할 것인데, 세속에서 래모(來母)로 발음하여 그 소리가 느리게 되므로 입성(入聲)에 마땅하지 아니하니, 이는 사성(四聲)의 변한 것이라. ‘()’ ()소리로 하는 것이 종성(終聲)에만 아니고 차례[次第] 와 모란[牧丹] 같은 따위와 같이 초성(初聲)의 변한 것도 또한 많으며, 우리 나라의 말에서는 계모(溪母)를 많이 쓰면서 글자 음에는 오직 ()’라는 한 글자의 음뿐이니, 이는 더욱 우스운 것이다. 이로 말미암아 글자의 획이 잘못되어 ()’ ()’에 참것이 혼란되고, 성음(聲音)이 문란하여 경()과 위()가 함께 흐르는지라 가로[]로는 사성(四聲)의 세로줄[]을 잃고 세로[]로는 칠음(七音)의 가로줄[]에 뒤얽혀서, []과 씨[]가 짜이지 못하고 가볍고 무거움이 차례가 뒤바뀌어, 성운(聲韻)의 변한 것이 극도에 이르렀는데, 세속에 선비로 스승된 사람이 이따금 혹 그 잘못된 것을 알고 사사로이 자작으로 고쳐서 자제(子弟)들을 가르치기도 하나, 마음대로 고치는 것을 중난하게 여겨 그대로 구습(舊習)을 따르는 이가 많으니, 만일 크게 바로잡지 아니하면 오래 될수록 더욱 심하여져서 장차 구해낼 수 없는 폐단이 있을 것이다.

대개 옛적에 시()를 짓는 데에 그 음을 맞출 뿐이었는데, 3백편(三百篇)으로부터 내려와 한()ㆍ위()ㆍ진()ㆍ당()의 모든 작가(作家)도 또한 언제나 같은 운율에만 구애하지 아니하였으니, ‘()’운을 ()’운에도 쓰고, ‘()’운을 ()’운에도 씀과 같은 따위이니, 어찌 운()이 구별된다 하여 서로 통하여 맞추지 못할 것이랴. 또 자모(字母)를 만든 것이 소리에 맞출 따름이니, 설두(舌頭)ㆍ설상(舌上)과 순중(脣重)ㆍ순경(脣輕)과 치두(齒頭)ㆍ정치(正齒)와 같은 따위는 우리 나라의 글자 음에는 분별할 수 없으니 또한 마땅히 자연에 따라 할 것이지, 어찌 꼭 36(三十六字)에 구애할 것이랴. 공손히 생각하건대 우리 주상 전하(主上殿下)께옵서 유교를 숭상하시고 도()를 소중히 여기시며, 문학을 힘쓰고 교회를 일으킴에 그 지극함을 쓰지 않는 바가 없사온데, 만기(萬機)를 살피시는 여가에 이일에 생각을 두시와, 이에 신() 신숙주(甲叔舟)와 수 집현전 직제학(守集賢殿直提學) () 최항(崔恒), 수 직집현전(守直集賢殿) () 성삼문(成三問)ㆍ신() 박팽년(朴彭年), 수 집현전 교리(守集賢殿校理) () 이개(李愷), 수 이조 정랑(守吏曹正郞) () 강희안(姜希顔), 수 병조 정랑(守兵曹正郞) () 이현로(李賢老), 수 승문원 교리(守承文院校理) () 조변안(曹變安), 승문원 부교리(承文院副校理) () 김증(金曾)에게 명하시와 세속의 습관을 두루 채집하고 전해 오는 문적을 널리 상고하여, 널리 쓰이는 음()에 기본을 두고 옛 음운의 반절법에 맞추어서 자모(字母)의 칠음(七音)과 청탁(淸濁)과 사성(四聲)을 근원의 위세(委細)한 것까지 연구하지 아니함이 없이 하여 옳은 길로 바로잡게 하셨사온데, 신들이 재주와 학식이 얕고 짧으며 학문 공부가 좁고 비루하매, 뜻을 받들기에 미달(未達)하와 매번 지시하심과 돌보심을 번거로이 하게 되겠삽기에, 이에 옛사람의 편성한 음운과 제정한 자모를 가지고 합쳐야 할 것은 합치고 나눠야 할 것은 나누되, 하나의 합침과 하나의 나눔이나 한 성음과 한 자운마다 모두 위에 결재를 받고, 또한 각각 고증과 빙거를 두어서, 이에 사성(四聲)으로써 조절하여 91() 23자모(字母)를 정하여 가지고 어제(御製)하신 훈민정음으로 그 음을 정하고,  ()’()’ 둘의 운() ()’ 으로써 ()’를 기워서 속음을 따르면서 바른 음에 맞게 하니, 옛 습관의 그릇됨이 이에 이르러 모두 고쳐진지라, 글이 완성되매 이름을 하사하시기를, ‘동국정운(東國正韻)이라 하시고, 인하여 신() 숙주(叔舟)에게 명하시어 서문(序文)을 지으라 하시니, 신 숙주(叔舟)가 그윽이 생각하옵건대 사람이 날 때에 천지의 가운을 받지 않은 자가 없는데 성음(聲音)은 기운에서 나는 것이니, 청탁(淸濁)이란 것은 음양(陰陽)의 분류(分類)로서 천지의 도()이요, 사성(四聲)이란 것은 조화(造化)의 단서(端緖)로서 사시(四時)의 운행이라, 천지의 도()가 어지러우면 음양이 그 자리를 뒤바꾸고, 사시(四時)의 운행이 문란하면 조화(造化)가 그 차례를 잃게 되나니, 지극하도다 성운(聲韻)의 묘함이여. 음양(陰陽)의 문턱은 심오(深奧)하고 조화(造化)의 기틀은 은밀한지고. 더구나 글자[書契]가 만들어지지 못했을 때는 성인의 도()가 천지에 의탁했고, 글자[書契]가 만들어진 뒤에는 성인의 도가 서책(書冊)에 실리었으니, 성인의 도를 연구하려면 마땅히 글의 뜻을 먼저 알아야 하고, 글의 뜻을 알기 위한 요령은 마땅히 성운(聲韻)부터 알아야 하니, 성운은 곧 도를 배우는 시작[權輿]인지라, 또한 어찌 쉽게 능통할 수 있으랴. 이것이 우리 성상(聖上)께서 성운(聲韻)에 마음을 두시고 고금(古今)을 참작하시어 지침(指針)을 만드셔서 억만대의 모든 후생들을 길 열어 주신 까닭이다.

옛사람이 글을 지어 내고 그림을 그려서 음()으로 고르고 종류로 가르며 정절(正切)로 함과 회절(回切)로 함에 그 법이 심히 자상한데, 배우는 이가 그래도 입을 어물거리고 더듬더듬하여 음()을 고르고 운()을 맞추기에 어두었더니, 훈민정음(訓民正音)이 제작됨으로부터 만고(萬古)의 한 소리로 털끝만큼도 틀리지 아니하니, 실로 음()을 전하는 중심줄[樞紐]인지라. 청탁(淸濁)이 분별되매 천지의 도()가 정하여지고, 사성(四聲)이 바로잡히매 사시(四時)의 운행이 순하게 되니, 진실로 조화(造化)를 경륜(經綸)하고 우주(宇宙)를 주름잡으며, 오묘한 뜻이 현관(玄關)에 부합(符合)되고 신비한 기미(幾微)가 대자연의 소리에 통한 것이 아니면 어찌 능히 이에 이르리요. 청탁(淸濁)이 돌고 구르며 자모(字母)가 서로 밀어 칠음(七音) 12운율(韻律) 84성조(聲調)가 가히 성악(聲樂)의 정도(正道)로 더불어 한 가지로 크게 화합하게 되었도다. 아아, 소리를 살펴서 음()을 알고, ()을 살펴서 음악을 알며, 음악을 살펴서 정치를 알게 되나니, 뒤에 보는 이들이 반드시 얻는 바가 있으리로다.”

하였다.

 

 

 

 

 

 

 

 

 

 

3. 홍무정운역훈(1455) 신숙주 서문

 

 원문(신숙주 보한재집)

 

保閑齋集卷第十五 / 

洪武正韻譯訓序

 

聲韻之學最爲難精蓋四方風土不同而氣亦從之聲生於氣者也故所謂四聲七音隨方而異宜自沈約著譜雜以南音有識病之而歷代未有釐正之者洪惟皇明太祖高皇帝愍其乖舛失倫命儒臣一以中原雅音定爲洪武正韻實是天下萬國所宗我世宗莊憲大王留意韻學窮硏底蘊創制訓民正音若干字四方萬物之聲無不可傳吾東邦之士始知四聲七音自無所不具非特字韻而已也於是以吾東國世事中華而語音不通必賴傳譯首命譯洪武正韻令今禮曹參議臣成三問典農少尹臣曹變安知金山郡事臣金曾前行通禮門奉禮郞臣孫壽山及臣叔舟等稽古證閱首陽大君臣 諱桂陽君臣璔監掌出納而悉親臨課定叶以七音調以四聲諧之以淸濁縱衡經緯始正罔缺然語音旣異傳訛亦甚乃命臣等就正中國之先生學士往來至于七八所與質之者若干人燕都爲萬國會同之地而其往返道途之遠所嘗與周旋講明者又爲不少以至殊方 異域之使釋老卒伍之微莫不與之相接以盡正俗異同之變且天子之使至國而儒者則又取正焉凡謄十餘稿辛勤反復竟八載之久而向之正罔缺者似益無疑文宗恭順大王自在東邸以聖輔聖參定聲韻及嗣寶位命臣等及前判官臣魯參今監察臣權引副司直臣任元濬重加讎校夫洪武韻用韻倂析悉就於正而獨七音先後不由其序然不敢輕有變更但因其舊而分入字母於諸韻各字之首用訓民正音以代反切其俗音及兩用之音又不可以不知則分注本字之下若又有難通者則略加注釋以示其例且以 世宗所定四聲通攷別附之頭面復著凡例爲之指南恭惟聖上卽位亟命印頒以廣其傳以臣嘗受命於先王命作序以識顚末切惟音韻衡有七音縱有四聲四聲肇於江左七音起於西域至于宋儒作譜而經緯始合爲一七音爲三十六字母而舌上四母唇輕次淸一母世之不用已久且先輩已有變之者此不可強存而泥古也四聲爲平而全濁之字平聲近於次淸近於全淸世之所用如此然亦不知其所以至此也且有始有終以成一字之音理之必然而獨於入聲世俗率不用終聲甚無謂也蒙古韻與黃公紹韻會入聲亦不用終聲何耶如是者不一此又可疑者也往復就正旣多而竟未得一遇精通韻學者以辨調諧紐攝之妙特因其言語讀誦之餘遡求淸濁開闔之源而欲精夫所謂最難者此所以辛勤歷久而僅得者也臣等學淺識庸曾不能鉤探至賾顯揚聖謩尙賴我世宗大王天縱之聖高明博達無所不至悉究聲韻源委而斟酌裁定之使七音四聲一經一緯竟歸于正吾東方千百載所未知者可不浹旬而學苟能沈潛反復有得乎是則聲韻之學豈難精哉古人謂梵音行於中國而吾夫子之經不能過跋提河者以字不以聲也夫有聲乃有字寧有無聲之字耶今以訓民正音譯之聲與韻諧不待音和類隔正切回切之繁且勞而擧口得音不差毫釐亦何患乎風土之不同哉我列聖製作之妙盡美盡善超出古今而殿下繼述之懿又有光於前烈矣景泰六年仲春旣望輸忠協策靖難功臣通政大夫承政院都承旨經筵參贊官兼尙瑞尹修文殿直提學知製敎充春秋館兼判奉常寺事知吏曹事內直司樽院事臣申叔舟 拜手稽首敬序(출처 : 한국고전번역원, 한국문집총간, 1988)

 


 원문 문구별 해석(출처 : https://blog.naver.com/kalsanja/221242954095)

《홍무정운역훈》(1455) 신숙주 서문

 

聲韻之學最爲難精

음운학(音韻學)은 가장 어렵고 세밀하다고 말한다.

* 聲韻(성운) : 음운(音韻). 한자(漢字)의 음()과 운(). 언어(言語)의 외형(外形)을 구성(構成)하는 음()과 운()의 배합(配合). 고저(高低). 억양(抑揚) ()에서 나는 모든 목소리

 

蓋四方風土不同而氣亦從之 聲生於氣者也

모두 사방(四方)의 풍토가 같지 않고 기()가 역시 따라가니, 소리는 기()에서 나오는 것이다.

 

故所謂四聲七韻 隨方宜異

그러므로 이른 바 사성(四聲)과 칠운(七韻)은 지방에 따라 당연히 다르다.

 

自沈約著譜 雜以南音有識病之 而歷代未有釐正之者

심약(沈約)이 운보(韻譜)를 저술하면서부터 남방(南方)의 소리가 섞여 식자들을 괴롭혔으나 아직 바로잡아 고친 자가 없었다.

* 심약(沈約) : 중국(中國) 남북조(南北朝) 시대(時代)의 학자(學者). ()는 휴문(休門). () () ()에 역임(歷任). 박학(博學)으로 시문(詩文)을 즐겼으며 또한 음운학(音韻學)에 있어 사성(四聲) 연구(硏究)의 개조(開祖). 저서(著書)진서(晉書)송서(宋書)』『제기(齊紀)』 『사성운보(四聲韻譜) 등이 있음.

* 未有(미유) : 아직 [] 없다. 있은 적이 없다.

* 釐正(이정) : 문서나 글을 정리하여 바로잡음.

 

洪惟皇明太祖皇帝 愍其乖舛失倫 命儒臣一以中原雅音 定爲洪武正韻 實是天下萬國所宗

넓게 생각하건대 명나라 태조황제께서 그렇게 잘못되고 순서를 잃은 것을 걱정하여 유학에 조예가 깊은 신하에게 명하여 중원지역의 정음(正音)으로 통일하여홍무정운(洪武正韻)을 제정하니 실로 이는 천하만국의 근본이었다.

(크게 생각건대, 명나라 태조 황제께서는 세상의 말소리가 어긋나고 질서가 무너진 것을 불쌍히 여기시어, 유신(儒臣)들에게 명하여 중원의 바른 소리(中原雅音)로 통일하게 하시고, 그 결과를 《홍무정운(洪武正韻)》으로 정하게 하셨으니, 이는 참으로 천하 만국이 본받을 표준이 되었다.)

* 洪惟(홍유) : 넓게 생각건대

* 乖舛(괴천) : 1.틀리다. 잘못되다. 2.순조롭지 않다. 3.일치하지 않다. 맞지 않다. 모순되다.

* () : 차례, 순서

* 儒臣(유신) : 유학자인 신하. 또는 사신(詞臣)을 말함.

* 中原(중원) : 황하(黄河)의 중류·하류 지역을 가리키는 말로, 하남(河南)성 대부분과 산동(山东)성 서부 및 하북(河北산서(山西)성 남부 지역을 포함함.

* 雅音(아음) : 바른 소리. 정음(正音). 명청대 황하유역의 표준어음의 명칭.

 

我世宗莊憲大王 留意韻學 窮硏底蘊 創制訓民正音若干字 四方萬物之聲 無不可傳

우리 세종 장헌대왕께서 음운학(音韻學)에 관심을 갖고 내용을 깊이 연구하여 훈민정음(訓民正音) 몇 십자를 창제하시니, 사방 만물의 소리를 전할 수 없는 게 없었다...인용

* 留意(유의) : 주의를[관심을] 기울이다. 관심을 갖다. 주의하다.

* 窮硏(궁연) : 궁구(窮究). 속속들이 깊이 연구(硏究).

* 底蘊(저온) :  상세한 내용  온축(蘊蓄)  내막  오랜 연구로 깊이 쌓은 학식

 

吾東方之士 始知四聲七音 自無所不具 非特字韻而已也

우리 동방 선비가 비로소 사성(四聲)과 칠음(七音)을 알게 되어 저절로 갖추지 못한 게 없으니 특별한 글자의 음만 있는 게 아니었다.

 

於是以吾東國 世事中華 而語音不通 必賴傳譯 首命譯洪武正韻

이에 우리 동국이 대대로 중국을 섬겼으나, 말이 통하지 못해 반드시 통역에 의지해야 하니

먼저 홍무정운(洪武正韻)을 번역하라고 분부하셨다.

 

令今禮曹參議臣成三問 典農少尹臣曹變安 知金山郡事臣金曾 前行通禮門奉禮郞

臣孫壽山及臣叔舟等 稽古證閱 首陽大君臣諱 桂陽君臣璔 監掌出納 而悉親臨課定

叶以七音 調以四聲 諧之以淸濁 縱衡經緯始正罔缺

현 예조참의 신() 성삼문, 전농소윤(典農少尹) 신 조변안(曹變安), 지금산군사(知金山郡事) 신 김증(金曾), () 행통례문봉례랑(行通禮門奉禮郞) 신 손수산(孫壽山) 및 신 숙주(叔舟) 등에게 옛 것을 조사하여 증거를 모으게 하고, 수양대군 신 휘()와 계양군(桂陽君) 신 증()이 출납을 하게 하고 모두 직접 참여하여 차례를 정하여 칠음(七音)에 맞추고 사성(四聲)을 조절하니, 청탁(淸濁)이 어울리고 가로와 세로선이 씨줄과 날줄로 비로소 바르게 되어 결함이 없었다.

* 典農少尹(전농소윤) : 조선시대 전농시(典農寺)의 종4품 벼슬. 태종(太宗) 14(1414)에 부정(副正)을 고친 이름이다.

* 通禮門奉禮郞(통례문봉례랑) : 조선 초기 통례문(通禮門)의 종6품 벼슬. 세조 12(1466) 1월의 관제 경정 때에 통례문 봉례랑을 인의(引儀)로 개칭함.

* 監掌(감장) : 보살피는 일을 맡음.

 

然語音旣異 傳訛亦甚 乃命臣等就正中國之先生學士 往來至于七八 所與質之者若干人

그러나 말이 원래 달라 잘못되게 전하는 게 또한 심하니 이에 신들에게 중국의 선생과 학자에게 가르침을 청하라고 분부하셔서, 7, 8회 오가니 실제 사실과 원리에 대답하는 분이 십여 명

되었다.

* () : 원래, 처음부터, 벌써

* 就正(취정) : 가르침을 청하다. 질정(叱正)을 바라다.

* 所與(소여) : 주어진 바. 주어진 여건(與件). 부여(附與)된 바. 연구 따위의 출발점으로서 이의 없이 받아들여지는 사실이나 원리.

* () ; 대답하다(對答--)

 

燕都爲萬國會同之地 而其往返途道之遠 所甞與周旋講明者 又爲不小

연경(燕京)은 만국의 여러 사람이 모이는 땅으로 그곳에 가고 돌아오는 길은 먼데, 일찍이 함께 힘써 연구하고 밝힌 바가 또한 적지 않다고 했다.

* 燕都(연도) : 연경(燕京). 중국의 수도인 베이징의 옛 이름

* 周旋(주선) : 일이 잘되도록 중간에서 여러 가지 방법으로 두루 힘을 씀.  주위를 돌다  몸을 돌리다  접대하다  (적과) 상대하다

* 講明(강명) ; 연구하여 밝힘.

 

以至殊方異域之使 釋老卒伍之微 莫不與之相接 以盡正俗異同之變

다른 지방과 다른 지역의 사신에 이르기까지 석가(釋迦)와 노자(老子)의 아주 작은 부분도 모두 접하게 되어 못내 올바른 풍속이 서로 같지 않게 변했다.

* 以至(이지) : 까지. 에 이르기까지.

* 卒伍(졸오) : 병졸들의 대오. 예전에, 10명이 한 조로 을 이루고 5명이 한 조로 를 이룬 것에서 유래 함.

* 莫不(막불) : 하지 않는 자가[것이] 없다. 모두 하다

* 相接(상접) : 접하다. 연결되다. 연속되다. 연접되다. 이어지다. 서로 잇닿다. 맞닿다.

* 以盡(이진) : 못내

* 正俗(정속) : 올바른 풍속(風俗)

* 異同(이동) : 다른 것과 같은 것  ②서로 같지 아니함

 

且天子之使至國而儒者 則又取正焉

또한 각 나라에서 온 천자의 사신이 유학자이면 모범이 될 만한 사람을 본 받았다.

* 取正(취정) : 바름을 취한다는 뜻에서 모범이 될만한 사람을 임용하여 본받음.

 

凡謄十餘藁辛勤反復 竟八載之久而向之正罔缺者 似益無疑

무릇 십여 벌의 원고를 베끼고 부지런히 반복하여 마침내 8년이나 오랫동안 추진하여 바르게 함으로써 결함이 없도록 한 것이 의심할 바 없이 유익해 졌다.

* 辛勤(신근) : 부지런하다. 근면하다.

 

文宗恭順大王 自在東邸 以聖輔聖 參定聲韻 及嗣寶位 命臣等及前判官臣魯參

今監察臣權引 副司直臣任元濬 重加讎校

문종(文宗) 공순대왕(恭順大王)께서 동궁의 관저에 계실 적부터 성인으로서 성인(세종)을 섬기며 음운학에 관계하며 결정하셨고, (세조가) 보위를 잇고서는 신들 및 전() 판관 신 노삼(魯參), () 감찰 신 권인(權引), 부사직 신 임원준(任元濬)에게 명하여 거듭 교정을 하도록 하였다.

* 讎校(수교) : 다른 것과 비교하여 교정(校正)

 

夫洪武韻用韻倂拆 悉就於正 而獨七音先後 不由其序

무릇 홍무정운에 사용한 운이 합쳐서 갈라진 것을 모두 바로잡으셨는데, 유독 칠음(七音)의 선후가 그 순서를 따르지 않았다.

* 不由(불유) : 1.복종하지 않다. 따르지 않다. 2.허용하지 않다. 하지 않을 수 없다.

 

然不敢輕有變更 但仍其舊而分入字母於諸韻 各字之首

그러나 감히 경솔히 변경할 수 없어 다만 그 예전 것은 그대로 따르고, 모든 운과 각 글자의 머리에 글자의 초성을 나누어 넣었다.

* () : 그대로 따르다. 기대다. 따르다, 좇다

 

用訓民正音 以代反切 其俗音兩用之音 又不可以不知 則分注本字之下 若又有難通者

則略加註釋 以示其例

훈민정음을 사용해서 반절(反切)을 대신하고, 그것을 통속적으로 사용하는 두 가지 발음을 또한 몰라서는 안 되므로 나누어 본 글자 아래에 주()를 달고, 또 통하기 어려운 게 있으면 간략한 주석을 붙여 그 예를 보였다.

* 俗音(속음) : 한자(漢字)의 원음에서 변하여 대중이 통용하는 음().

* () : 주를 달다.

 

且以世宗所定四聲通攷別附之 頭面復著凡例 爲之指南

또한 세종께서 정하신 사성통고(四聲通攷)를 별도로 첨부하여 머리와 얼굴에 범례(凡例)를 다시 붙여 지침으로 삼았다.

* 四聲通攷(사성통고) : 조선 세종 때 신숙주(申叔舟) 등이 편찬한 책으로, 세종의 명에 따라 집현전 학자들이 편찬한 한자음 발음사전이다. 현전하지 않으며, 최세진의 사성통해(四聲通解)를 통해 그 편찬 이유와 내용을 짐작할 수 있다.

* 頭面(두면) : 갓과 같은 머리를 꾸미거나 장식하는 물건. [유사어] 수식(首飾). 어떤 상황이나 국면을 처음으로 당함. 머리와 얼굴. ()하여 안면(顔面)이란 말로 쓰여 입장 혹은 얼굴색을 바꾸다 등으로도 쓰임.

* 復著(부착) : 다시 입어보다. 다시 붙이다.

* 指南(지남) : 1.지남침. 나침반. 2.지침. 지침서. 입문서. (때로 책 이름으로 쓰임)

 

恭惟聖上卽位 亟命印頒 以廣其傳

삼가 생각건대 성상께서 즉위하시고 긴급하게 명하여 책으로 간행하여 그것을 널리 전했다.

* 印頒(인반) : 책을 박아 내어 널리 폄.

 

以臣甞受命於先王 命作序以識顚末

신에게 일찍이 선왕(先王)께서 주신 분부로 전말을 기록하는 서문을 지으라고 분부하셨다.

 

切惟音韻衡有七韻 縱有四聲 四聲肇於江左 七音起於西域 至于宋儒作譜 而經緯始合爲一

반절(反切)을 생각하면 횡으로 칠운(七韻)이 있고 종으로 사성(四聲)이 있는데, 사성은 양자강 하류 지역에서 비롯되었고 칠음은 서역(西域)에서 기원하였는데, 송대(宋代) 선비가 운보(韻譜)를 만들자 씨줄과 날줄이 비로소 하나가 되었다.

* 江左(강좌) :  양쯔장(揚子江) 하류의 동남 지역  동진(東晉(((()의 왕조가 통치하던 지역  지금의 강소(江蘇)성 지역

* 西域(서역) ; 중국(中國)의 서쪽에 있는 여러 나라를 중국인(中國人)이 부른 일반적(一般的)인 명칭(名稱). 넓은 뜻으로는 페르시아, 소아시아, 시리아, 이집트 방면(方面)까지도 포함(包含). 좁은 뜻으로는 대개 지금의 신강성 천산남로(天山南路) 지방(地方)을 일컬음.

 

七音爲三十六字母 而舌上四母唇輕 次淸一母 世之不用已久 且先輩已有變之者

칠음은 원래 36자모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나 설상음의 네 자모와 순경음의 차청(次淸) 한 자모는 오래전부터 실제로 사용되지 않았으며, 선배 학자들도 이미 이를 다른 자모로 바꾸어 사용하였다.

 

此不可強存而泥古也 四聲爲平上去入 而全濁之字 平聲近於次淸 上去入近於全淸

世之所用如此

이를 억지로 두어서 옛것에 얽매여서는 안 되고 사성을 평성ㆍ상성ㆍ거성ㆍ입성이라 하는데, 된소리 글자는 평성이 차청(次淸)과 가깝고 상성ㆍ거성ㆍ입성은 전청(全淸)에 가까워 세상에 쓰이는 바가 이와 같다.

* 泥古(니고) : 옛 것에 얽매이다[구애되다·집착하다].

* 全濁(전탁) : 닿소리를 청탁(淸濁)으로 나눈 한 갈래. 된소리가 해당(該當). 훈민정음 제자해에서는 성음(聲音)을 청탁(淸濁)으로 가르되, ,,,,ㅆ을 전탁(全濁)이라 하였음. 곧 전탁은 된소리[硬音]라 하겠음.

* 全淸(전청) ; 옛날 음운론(音韻論)에서 음()의 청탁(淸濁)을 가를 때에 , , , , , , ()으로 표기(表記)되는 음()을 일컫는 말. 현대 음성학의 무성 자음에 해당한다.

 

然亦不知其所以至此也 且有始有終 以成一字之音 理之必然 而獨於入聲 世俗率不用終聲

甚無謂也

그러나 이렇게 된 이유를 역시 알지 못하며 또 시성(始聲)이 있고 종성(終聲)이 있어 한 글자의 음을 이루는 것은 이치의 필연인데, 유독 입성에만 세상에서 대략 종성(終聲)을 쓰지 않으니 무어라 말할 수 없다.

* () : 대강(大綱), 대략(大略)

 

蒙古韻與黃公紹韻會 入聲亦不用終聲何耶 如是者不一 此又可疑者也

몽고운략(蒙古韻略)과 황공소(黃公紹) 고금운회(古今韻會)도 입성에서 역시 종성을 쓰지 않으니 어찌 된 것일까? 이와 같은 것이 하나가 아니니 이것 또한 의심스러운 것이다.

* 蒙古韻(몽고운) : ()나라 때에 편찬한 운서(韻書)인 몽고운략(蒙古韻略).

* 黃公紹(황공소) : 원나라 초기 음운학자

* 韻會(운회) : 고금운회(古今韻會), 중국 송()의 학자 황공소(黃公紹)가 편찬한 운서(韻書).

 

往復就正旣多 而竟未得一遇精通韻學者 以辨調諧紐攝之妙 特因其言語讀誦之餘

遡求淸濁開闔之源 而欲精夫所謂最難者 此所以辛勤歷久而僅得者也

오가며 바로잡은 게 이미 많았으나 끝내 음운(音韻)에 정통한 학자를 한번 만나 조화롭게 맺고 꾸며진 오묘함을 논쟁해 보지 못했고, 특히 그 언어를 읽고 외운 나머지 거슬러 올라가 맑고 탁함과 열리고 닫힘의 근원을 추구하여 대체로 보아 이른 바 가장 어려운 것을 세밀하게 하고자 하였으니 이는 오랜 세월을 겪으며 부지런하여 겨우 얻게 된 것이다.

* 調諧(조해) :  조화롭다  동조(하다)  어울리다

* 遡求(소구) : 거슬러 올라가서 추구(追求청구(請求).

* () : 대저(大抵: 대체로 보아서), 발어사(發語辭)

* 歷久(역구) : 오랜 세월(歲月)을 겪어 옴

 

臣等學淺識庸 曾不能鉤探至賾顯揚聖謨

신 들은 학문이 얕고 지식이 용렬하여 일찍이 샅샅이 살피며 찾아 심오한 도리에 이른 통치의 방책을 높이 드러낼 수 없었다.

* 鉤探(구탐) : 샅샅이 살피어 찾음. 심오한 도리를 찾고 구함.

* 顯揚(현양) ; 이름, 지위 따위를 세상에 높이 드러냄.

* 聖謨(성모) : 임금의 계획(計劃)과 방략 임금의 통치(統治)하는 방책(方策) 임금의 정치적(政治的) 규모(規模)를 높여 이르는 말

 

尙賴我世宗大王 天縱之聖高明博達 無所不至 悉究聲韻源委 而斟酌裁定之 使七音四聲

一經一緯 竟歸于正

아직도 우리 세종대왕에 힘입어 하늘이 내린 성인의 높은 식견과 통달함이 이르지 않은 데가 없어 음운(音韻)의 처음과 끝을 모두 연구하셔서 심사숙고하여 결정하셔서, 칠음과 사성이 하나의 씨줄과 하나의 날줄로 마침내 바르게 되어 되돌아왔다.

* () : 아직

* () : 힘입다. 의지하다(依支--)

* 高明(고명) : (견해·기예 등이) 고명하다. 빼어나다. 출중하다. 특출나다. 뛰어나다. 굉장하다.

* 博達(박달) : 모든 것에 널리 통달하다.

* 無所不至(무소부지) : 이르지 아니한 데가 없음.

* 源委(원위) : 처음과 끝. 또는 근원과 위세(委細). [유사어]본말(本末).

* 斟酌(짐작) ; 헤아리다. 짐작하다. 고려하다. 심사숙고하다. 글이나 원고 내용을 다듬다, 정리하다.

* 裁定(재정) : 숙고하여 결정하다. 심의 결정하다. 2.(법원이) 재정하다. 시비를 가려 결정하다.

 

吾東方千百載所未知者 可不浹旬而學 苟能沉潛反復 有得乎是 則聲韻之學 豈難精哉

우리 동방에서 천백년에 알지 못했던 것을 열흘만 배우면 두루 미치게 되고 진실로 정신 집중을 반복하면 이에 깨닫는 바가 있으니, 곧 음운학에 어찌 정통하기 어렵겠는가?

* 可不(가불) :  물론이다  어찌 이 아니겠는가  그렇고 말고 ④ …으로 되지 않는가

* 苟能(구능) : 최소한 ~할 수 있다면

* 沉潛(침잠) :  (물속에) 가라 앉아 잠기다  덕화(德化)가 깊이 미치다  정신을 집중하다  (상상·감정을) 가슴에 품고 나타내지 않다

* () ; 정통하다, 능통하다.

 

古人謂梵音行於中國 而吾夫子之經不能跋提河者 以字不以聲也

옛 사람이 말하기를 범어(梵語)가 중국에 가고 우리 공자의 경전이 인도에 갈 수 없었던 것은 글자 때문이지 소리 때문이 아니었다라고 하였다.

(수정:범음(梵音, 산스크리트 소리)은 중국에 전해졌으나,우리 공자(夫子)의 경전은 발제하(跋提河, 갠지스강)를 건너지 못하였다.” 하였다. 이는 글자(字)로만 전해지고, 소리(聲)로 전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 夫子(부자) : 덕행(德行)이 높아 모든 사람의 스승이 될 만한 사람의 높임말  ②남편(男便)의 높임말 공자(孔子)의 높임말

* 跋提(발제) : 강 이름. 중인도(中印度)의 옛 구시나 게라국(拘尸那揭羅國)에 있는 아시다발제하(阿恃多跋提河)를 줄여서 이르는 말.(Aciravatī 阿尸羅跋提河 / 阿恃多跋提河 / 跋提河)

 

夫有聲乃有字 寧有無聲之字耶

무릇 소리가 있으면 이에 글자가 있으니 어찌 소리없는 글자가 있겠는가?

 

今以訓民正音譯之聲與韻諧 不待音和類隔正切回切之繁且勞 而擧口得音 不差毫釐

亦何患乎風土之不同哉

지금 훈민정음으로 번역하여 소리와 음이 잘 맞으니 음화(音和)ㆍ유격(類隔)ㆍ정절(正切)ㆍ회절(回切) 따위로 번거롭고 또 힘들일 필요가 없고, 입만 열면 소리를 얻어 조금도 차이가 없으니 또한 어찌 풍토가 같지 않다고 걱정하겠는가?

* 不待(부대) : ~할 필요가 없다, ~하지 마라.

* 毫釐(호리) ; 자 또는 저울 눈의 호()와 이() ②매우 적은 분량(分量)

*① 音和 음을 조화시킴 -초성과 종성을 어울려 발음 추정 ② 類隔 유사음의 경계를 둠 -같은 음운계열과 다른 계열 구분 ③ 正切 올바른 반절 -표준 반절법 (초성과 운모의 결합) ④ 回切 되풀이 반절 -기존 반절을 재활용해 간략화

 

我列聖製作之妙盡美盡善 超出古今 而殿下繼述之懿 又有光於前烈矣

우리 역대 임금께서 창제하신 묘법이 모두 아름답고 다 훌륭해서 고금을 뛰어넘었고 전하께서 선왕의 정책을 계승하심이 아름다우며 또한 선왕의 업적에 빛이 난다.

* 列聖(열성) : 역대(歷代)의 임금. 여러 성인

* 超出(초출) : (일정한 범위나 수량을) 초과하다. 넘다. 벗어나다.

* 繼述(계술) : 선왕(先王)이나 조상이 남긴 뜻과 사업을 잘 받들어 계승함.

* 前烈(전열) ; 전대(前代)의 사람이 세운 공적과 업적.

 

 

 

 

 

 

 

 

 

 

 

 

 

 

 

 

 

 

4. 용재총화(성현, 1525)

(출처 : : http://www.davincimap.co.kr/davBase/Source/davSource.jsp?Job=Body&SourID=SOUR001367)

 

(원문)

1. 慵齋叢話卷之七

 

2

前朝科擧試官只有知貢擧同知貢擧二人而已預以文臣有名望者爲之恩門視門生如子弟門生視恩門如父母贅郞不許入內室而門生則特許相見所以重也一榜聚宴恩門之第則捧觴獻壽如親子弟或留宿焉安文成公家豪富新恩三十人皆給貂毛衾亦各設萬縷銀盞余之外家安氏故得傳聞之也國朝雖罷知貢擧之制然猶有門主座主之名或設酌看訪死則或於其家或於祖道皆設奠祭之今者門生座主視如胡越反相擠擊此亦可以觀世變也太宗少時習擧子業於辛禑壬戌年擢進士第二名又於翌年癸亥擢文科金漢老爲壯元沈孝生居二太宗居十李來成傅尹珪尹思修朴習玄孟仁皆同榜也及登寶位漢老之女爲世子禔之夫人每於進退之際常呼壯元而不名

 

3

太宗嘗作扇詩曰風榻依時思朗月月軒吟處想淸風自從削竹成團扇朗月淸風在掌中以文士而成大業者古所未有帝王文章亦未有如此之奇巧者其引物譬喩涵畜意趣非聖人不能也

 

4

襄陽南數里有石立路旁諺傳昔一按廉酷愛州妓臨遞別妓作詩題于石曰汝石何時石吾人今世人不知離別苦獨立幾經春或云咸傅霖所作

 

5

讓寧君禔雖失德廢嗣晩年能隨時自▣。世祖嘗問禔曰我之威武何如漢祖對曰殿下縱威武必不溺儒冠矣又問曰我之好佛何如梁武對曰殿下縱好佛必不以麪爲犧牲又問曰我之拒諫何如唐宗對曰殿下縱拒諫必不殺張蘊古禔每以談諧寓諷世祖亦樂其誕而戱之

 

6

玄先生孟仁嘗以司諫爲親幸祭大祝手持祝文茫然不措一辭太宗怒曰孟仁以文臣不能讀祝將奚用爲遂差萬戶

 

7

僉知任淑爲健元陵香使而大祝則李維翰僉知李長孫爲顯陵香使而大祝則姜參同熟齋室維翰不詳問於人誤以長孫爲淑書長孫名於祝版淑奠爵俯伏少退跪維翰讀長孫名淑高聲告神座前曰非長孫乃任淑也祭畢出曰姜維翰誤事大敗彼李參何以讀之蓋維翰誤認而僉知亦誤換也

 

8

孫判院聚古人三休四休之說稱七休居士爲人純謹無他每事徑情直行若關風俗綱常必先致意醉則發豪語無已時嘗爲江原道監司適時大旱禱雨無效公曰不得求雨者無他守令不盡誠也如或誠心感天則天必應之遂齋戒親出祈雨半夜聞雨聲喜雨起曰我常謝天被朝服立庭中無數拜天雨勢漸急有吏持傘倚後公曰壓尊處安用傘爲命去之衣裳盡濕又爲慶尙監司若過孝子烈女門閭必下馬再拜雖雨不避都事李緝擁蓑坐田間公拜畢謂都事曰足下何以爲之緝曰我先令拜矣左右無不掩口又嘗至平壤見箕子墓下馬膜拜曰東人至今囿於禮義之場者專是太師之敎又嘗陪獵于穿嶺猛虎被圍公乘醉抽木箭彎弓馳馬欲入射之衆人力持而止凡事多類此每於上前書忠恕二字懇懇陳啓成宗以爲忠直遂至大用公位高而操心愈約每對客設酌只用黑豆苦菜松芽爲蔌專惡繁華之事

 

9

世宗創內佛堂公卿大夫臺諫儒生三館諸生皆上書極諫判院事李順蒙亦詣政院論啓傳曰文士闢佛宜矣宰臣何知佛之是非而駁之順蒙對曰人皆以爲非故臣亦非之人皆論諫故臣亦論諫擧國所非之事殿下何獨爲之成宗將祔德宗于太廟聚政院六曹臺諫弘文館議之論議紛紜不一驪城君閔發亦以功臣與焉問諸左右曰德宗何人宗廟誰氏之宅左右曰德宗是今上之考宗廟今上祖宗祭享之所發曰此甚易耳以子祭父合於事軆有何他議其後竟祔廟夫順蒙與發皆無知武士發言中於理是由本然善性初未嘗泯也

 

10

李參判子野嘗赴京有書狀官適遊街市見美人在紗窓裡刺繡書狀目注不轉美人開窓以水揮之衣盡濕參判聞而作詩曰河水橋頭柳絮飛酷探春色却忘歸多情忽有窓間雨飛洒分司御史衣其後再赴京師行至通州無疾暴卒人皆惜之

 

11

有李斯文者爲殷山縣監京友投刺於門久立無影響枵腹不耐勞苦日已高忽聞衙中有吹角聲門吏曰供盥頮也日幾中天又聞角聲門吏曰整鞍粧也日正中又聞角聲縣監出其友進謁縣監立與一語卽歸官廳竟不招友友大失望未幾縣監居殿而遞又有白斯文者爲牛縣令監司成公巡行過縣北界顧謂都事曰今日已晩自然思食都事曰前未五里有晝停之處縣當作例來辦矣馳至其處寂無人聲有麥笠老吏肩掛網囊出跪路旁曰支應而來遂解囊呈一瓦壜及一小封壜是酒而封是雞也監司大怒曰我雖飢困安食此物未幾斯文亦遞時人作詩戱之曰縣官出入三吹角使道迎逢一瓦甁

 

12

有慈悲僧者性直無曲節雖公卿大相皆以名呼之人有施與則雖重物不讓而受人有丐之者盡數與之只著破笠破衣而已日日糊口於京中里閭與之食則食不與之則不食腆饋不以爲美觕飯亦不以爲歉凡言物必稱主言石則云石主言木則云木主其他物亦皆類此儒生見僧向晩悤悤去問曰向那裏去僧曰往尼舍覓烏主家蓋言覓袴具也人皆笑之僧腮有傷痕人問其故僧言曾入山採薪有虎與熊相鬪僧就前謂之曰何故相害宜各和解虎主聽戒而去熊主不聽僧戒來咬僧面適被山人來救而得免矣予嘗與諸宰樞會一處僧亦來到座中人問云僧不曾入山修道何苦每在人間修橋樑路井小事僧曰少時師僧戒云入山苦行十年則可以悟道僧入金剛山五年臺山五年勤苦繕性竟無其效師僧又云讀蓮華經百遍則可以悟道僧依敎誦遍亦無其效自是始知佛氏虛妄難信也然僧無他輔國但欲修橋梁道井以施功德於人人皆樂其眞率也

 

13

陳高兩天使所留題詠裒集名曰皇華集芹館儒士聚坐吟諷而讚之柳上舍正孫在旁乃言曰此詩如此美故吾祖參判公好觀之滿座太噱曰今時天使所製之詩汝祖何由觀之儒士又論饌物偶及大饅頭之味崔上舍八俊曰吾祖母每作此物而食之座中大噱曰大饅頭惟於接天使大饗之禮設之汝祖母雖甚豪富豈得常常而食之當時皆笑二人之嗤妄也

 

14

余爲弘文提學有館員奉使南方愛光州妓落節而還同僚誹笑之余戱作詩云僧於聲色本無情娼妓齋中尙發情若作湖南乘馹客玉堂學士摠多情昔者有一娼妓喪親設齋於寺羣妓皆往有僧硏菜忽持刀倚壁而立菴主僧問其故僧曰見紅粧撩亂情動不能止耳庵主僧曰汝勿雜言今日娼妓之齋誰不動情詩句借此爲喩也

 

15

余與同年元壽翁偕赴京壽翁鼻楂赤行至平壤適侍房之妓鼻亦楂赤余作詩戱之曰箕都城內朔風寒春色如何上鼻端醉後一雙金橘爛樽前兩葉晩楓丹帳中光影偏相照客裡風情慘不懽我是直言吳可立爲傳聲譽滿長安甑山有老官吳可立若見行客昵妓之事每說於人故詩語及之也

 

16

余於辛未年間在坡州別墅一日余伯氏陪大夫人往登珍巖巖枕洛河其高千仞上可坐百許人西接海門北與松都相對松嶽五冠聖居諸山如在咫尺風景勝於蠶嶺是時日斜忽飛雨驟集有虹自巖頭小井入于江中光輝所照人面皆黃腥穢之氣人不敢近眞天地之淫氣而古人之言不虛也伯氏作詩曰江波渺渺水如空泛泛漁舟箇箇同日暮顚風吹雨過晩虹時起斷岡東是歲余年十三少子世淳年十伯氏朝夕勤勤敎誨或讀書或作詩每夜同宿一房敍文論懷仲氏戲曰兩童能文章吾輩他日閉門自縮不幸世淳早逝余之成立得至今日皆伯氏之力也

 

17

潮水之往來有常朝曰潮而夕曰汐所謂信者不失其期也自越閩齊東遼瀋之境及我西南海潮皆一樣惟東海無潮中朝不知故先儒無議之者或云南方體柔用强故有潮北方體强用柔故無潮或云潮之源出自中國我之西海近故潮所及東海遠故潮不及或云自東女眞之域沮洳連陸達于東倭潮源出自扶桑過倭國而西潮至連陸之地迤回而南我之東海在其內故潮不及此三說未知孰是

 

18

雉之美者北方爲最今平安道江邊之雉進其大如鶩凝膏如琥珀當冬捕而供進謂之膏雉其味甚美自北而南雉漸瘠至湖嶺南陲則肉臊不可食人言北方多草樹得飮啄得所故肥也

 

19

物有相類者甚繁雞與雉相類鴨與雁相類鵝與鵠相類馬與驢相類犬與狼相類羊與羚相類猪與豕相類鼠與竹鼠相類猫與狸相類鴒與鵠相類虎與豹相類獐與鹿相類鷹與鶻鳶相類鯽與鯉相類鮧與鰻鱺相類蟹與蛛相類蠅與蝱相類蛟與醢雞相類蛙與蟾相類蔥與蒜相類薑與鬱金相類鶯與啄木相類香薷與荊芥相類牧丹與芍藥相類梨與林檎相類榛與栗相類李與奈相類茄與苽相類柑與橘柚相類桃與杏相類松與柏檜相類荔支與龍眼相類海棠花與木瓜花相類玫瑰與四季相類金錢與石竹相類薇與蕨相類桔梗與人蔘相類蒲與菖蒲相類朱砂與雄黃相類消腦與龍腦相類其餘物之大小長短雖殊而形軆相類者無限也

 

20

祈雨之禮先令五部修溝瀆淨阡陌次祭宗廟社稷次祭四大門次設五方龍祭東郊靑龍南郊赤龍西郊白龍北郊黑龍中央鍾樓街作黃龍命官致祭三日而止又設龍祭於楮子島中令道流誦龍王經又投虎頭於朴淵楊津等處又於昌德宮後苑慶會樓慕華館池邊三處泛蜥蜴於水瓮中靑衣童子數十以楊枝擊瓮鳴鑼大呼曰蜥蜴蜥蜴興雲吐霧俾雨滂沱放汝歸去獻官與監察整冠笏而立三日而止又於城內萬落貯水甁揷楊枝焚香坊坊曲曲設棚兒曹群聚呼雨又徙市於南路閉南門開北門旱甚則上避殿減膳不鳴鼓審冤獄赦中外

 

21

圓覺寺是古大寺之基初有大殿及東西禪堂而已慣習都監寓大殿西禪堂禮葬都監寓東禪堂大殿之北爲中部儒生所會世祖皆命毀撤更創大伽藍名曰圓覺以銀川君玉山君爲提調兼大司憲常於路上用憲官之儀所由二人呵辟又令騎士吹簫角前導士女坌集聚觀寺成設慶讚會上屢臨幸焉有天雨四花舍利分枚之異屢加百官級其後中部移於架閣庫之基禮葬都監寓松峴行廓屬歸厚署慣習都監合於奉常寺之樂學而名曰樂學都監未幾改爲掌樂院洪仁山爲提調以其地狹人衆移今之地而大創之宏堂傑搆甲於諸廨爲百官習儀之所又爲科場取士之處矣

 

22

世宗設諺文廳命申高靈成三問等製諺文初終聲八字初聲八字中聲十二字其字軆依梵字爲之本國及諸國語音文字所不能記者悉通無礙洪武正韻諸字亦皆以諺文書之遂分五音而別之曰牙舌唇齒喉唇音有輕重之殊舌音有正反之別字亦有全淸次淸全濁不淸不濁之差雖無知婦人無不瞭然曉之聖人創物之智有非凡力之所及也

 

23

丁酉年琉球國王使臣到國成宗接見乎慶會樓下使臣退館謂通事曰我到貴國見三壯觀通事問其故使臣曰慶會樓石柱縱橫刻畫飛龍倒影隱現於碧波紅蕖之間此一壯觀也領議政鄭公風標俊逸玉色鬚髥下垂過腹輝映朝著此二壯觀也禮賓正每參晝盃之宴快瀉無限大鍾不曾有難色此三壯觀也時李淑文爲禮賓副正朋友聞之絶倒

 

24

太宗於永樂元年謂左右曰凡爲治必須博觀典籍吾東方在海外中國之書罕至板刻易以剜缺且難盡刻天下之書予欲範銅爲字隨所得而印之以廣其傳誠爲無窮之利遂用古註詩書左氏傳字鑄之此鑄字所由設也名曰丁亥字世宗又於庚子年以所鑄之字大而不整改鑄之其樣小而得正由是無書不印名曰庚子字甲寅年又用爲善陰騭字鑄之比庚子字差大而字軆甚好又命世祖書綱目大字世祖時爲首陽大君遂範銅爲字以印綱目卽今所謂訓義也壬申年間文宗更鎔庚子字命安平書之名曰壬子字乙亥年世祖改鎔壬申字命姜希顏書之名曰乙亥字至今用之其後乙酉年欲印圓覺經命鄭蘭宗書之字軆不整名曰乙酉字成宗於辛卯年用王荊公歐陽公集字鑄之其軆小於庚子而尤精名曰辛卯字又得中朝新板綱目字鑄之名曰癸丑字大抵鑄字之法先用黃楊木刻諸字以海蒲軟泥平鋪印板印着木刻字於泥中則所印處凹而成字於是合兩印板鎔銅從一穴瀉下流液分入凹處一一成字遂刻剔重複而整之刻木者曰刻字鑄成者曰鑄匠遂分諸字貯於藏樻其守字者曰守藏年少公奴爲之其書草唱准者曰唱准皆解文者爲之守藏列字於書草上移之於板曰上板用竹木破紙塡空而堅緻之使不搖動者曰均字匠受而印之者曰印出匠其監印官則校書館員爲之監校官則別命文臣爲之始者不知列字之法融蠟於板以字着之以是庚子字尾皆如錐其後始用竹木塡空之術而無融蠟之費始知人之用巧無窮也

 

25

斯文柳休復與其從弟柳允謙亨叟精熟杜詩一時無比皆受業於泰齋先生先生雖以文章著名而緣父之罪禁錮終身斯文亦不得赴試世宗嘗命集賢殿諸儒撰註杜詩而斯文亦以白衣往參人皆榮之其後皆通仕途斯文登庚辰科官至校理亨叟與余同年進士而登壬午科官至右副承旨亦以文學名我仲氏眞逸先生學杜斯文日夜忘倦讀至百遍由是大悟文理觸處皆通我伯氏文安公常與仲氏論杜而作詩多得杜軆余亦少時受杜於伯氏拘於擧業半途而廢至今恨其不全也

 

26

尹淡叟先生性拙直又精於詩表專用科場規範謂人曰崔勢遠讀樊川如以蒿草裹泥盧子伴讀東坡文辭倔强如以鈍鉅斷木此豈可用不如陽村陶隱之軟美易呑也嘗與李放翁論文淡叟曰足下之文如陽村放翁曰先生之詩過陶隱相讓未已其後淡叟爲宣慰使下嶺南路逢故人上京者謂之曰京友若問余之行止汝必曰釋伽如來遊南方也徐達城作詩云文章陶隱右福德釋伽南淡叟少時以儒生殿講不脫靴幕而入勢遠作詩云欲識老厖眞㥘處白靴黑幕拜君王淡叟每誇於人曰吾兒理學如朱子吾壻文章似昌黎勢遠大書門扉曰厖叟莫誇兒與壻一門非是盡英明一日宣城達城就淡叟第時宣城兼判吏曹淡叟爲軍職司勇淡叟占句云副司勇宅三台集達城應聲對曰兼判書隣九品存世祖設援英試取金守溫等二十餘人盧宣城徐達城李韓山洪益城梁南原任西河皆中選其餘皆一時名儒其日未及赴者亦多更命宣城西河益城爲試官又取姜晉山成夏山李陽城芮金世蕃尹淡叟等數人是日設場於思政殿庭借紙於香室遂付承旨朴子啓曰吾之名紙子可使人裁割而來遂坐場中苦吟顧謂曰吾紙已裁乎子啓曰安心做作紙當來矣日暮篇成索紙子啓曰我躬不閱遑恤我後我已用之矣淡叟大慍遂取裹肉小紙而書呈之是時天熱淡叟脫靴而坐又布亂帙書冊於前宣城潛令人奪靴與書冊而去淡叟呼丐不得赤脚步出宮門見者無不絶倒及榜出則淡叟居末欲不遊街宣城晉山夏山俱詣其家恐動之曰君若不出我當啓之加㡤於頭披袍於身扶擁而出淡叟不得已應榜每於同年禮會呼淡叟爲末坐侵困萬端矣

 

27

金斯文宗蓮性戇直博覽書史少時居淸溪山下一日强盜數人奄至其家斯文開弓注矢倚戶而立盜疑畏不敢近斯文發矢盜雀躍曰勇哉先輩之射矢直不敢當也遂入室盡偸財物而去斯文僅以身免世祖將祀山川以犧牲瘦瘠罷牲官之職更命憲府察視喂養斯文爲監察受任而往日夜坐牛蚩傍牛飽停食斯文顧謂牛曰牛乎牛乎何不食草旣食汝員又欲食我乎牛乎牛乎黽勉食草免我罪累斯文以選與通鑑撰集廳諸先生論食味偶及河豚殺人之事共坐廳中晝飯案有新石首魚湯同僚顧謂斯文曰此魚甚美試嘗之斯文持湯鉢置諸案下曰先生誑我矣欲殺人乎滿堂大笑

 

28

成廟升遐之日城中士大夫巨族多有婚媾者或乘朝而往或當午而往或佯若不知而往其後事覺皆抵罪竹城君朴之蕃武人不解文字前一日是醮子之夕賓僚畢集忽聞大內疾劇乃曰父不豫臣子何忍私行婚禮遂謝絶賓僚而返之時有議者曰儒林反不如武士可嘆也已

 

29

莫非山蔬而朮芽名曰山菜莫非水族而秀魚謂之水魚俗語然也祁天使到國食秀魚美之曰此魚何名通使答曰水魚也天使笑曰鱗介萬族而此魚何獨名水魚魚在水中者皆名水乎蓋秀與水方音相似而通使不能辨也

 

30

昔有一守令與邑戶長相與占聯守令皤腹而戶長患眼守令先唱曰戶長之眼雖濕能作渠而導之乎衫袖之厄而蒼蠅之宴食戶長但俯伏而已守令曰上尊亦對之戶長唱曰大人之腹雖大能載貢稅之米耶馹騎之厄而猛虎之宴食余與一庵陪伯氏東遊關東一庵每呼弟子夜出遺矢伯氏唱曰一庵雖屢見馬能給馬蒭乎弟子之厄而厖狗之宴食余又陪伯氏赴京醫員金原謹嘗患獨脚余唱曰金判事之脚雖大能作大葫蘆乎房妓之厄而眞豆之宴食眞豆蟲名好黏狗脚者也

 

31

凡菜菓皆隨土宜而種之以收其利今東大門外往審坪種蕪菁蘿葍白菜之類靑坡蘆原兩驛好種蹲鴟南山之南李泰院村人好種茶蓼作紅芽京畿朔寧之人好種蔥菜忠淸右道之人好種蒜全羅之人好種薑如旌善之梨永春之棗密陽之粟順興海松子咸陽晉陽之柹他處雖有而不如此邑之多且美也

 

32

學專上人號一庵其爲人純謹無他表裡如一雖知作詩而所占無警句雖知內典而不深究根本雖不入山修道而亦無浪跡好與人棋而常不勝亦不爲慍與人無貴賤一與之語卽成心交至如申高靈李延城朴平陽成謹甫柳太初姜晉山徐達城洪益城李陽城成夏山昆弟任西河李平仲金福昌皆其至交而高靈尤愛護之一日夏山設宴慰高靈佳賓滿座歌妓擁後高靈愀然不樂曰若有一庵吾可罄歡夏山伻人請邀少焉一庵欣然入室彎袖而舞高靈與座客皆解頤終日罄歡而散及拜禪堂判事入院之日簪珥盈門人皆榮之雖無文名者亦皆與之交退老于文化具葉寺使華往訪者不絶至今年過九十而身猶康强也予嘗作句曰棋無面象終難勝詩失先聯不自由高靈聞之曰此正實錄也謹甫嘗作一庵詩曰上人學佛者揭一名其庵吾徒學孔子還慚德二三時人以爲善名狀也一庵求詩於縉紳間所藏詩卷連床盈篋而一時精抄之詩皆萃於此矣人之嗜好不同性所然也金宰樞淳好食實一庵好食麵徐后山好食大口湯我伯氏好食蘆苔此四物皆非至味而篤好之裴載之惡麵見之則必置床下人問其故答曰見人之食麵滿口咄咄則心神顫動矣孫鷄城惡食西瓜曰若一片入口心先穢惡崔提學惡大口魚乃曰若聞此魚之臭頭痛如裂申正郞惡蓴菜若去凝滑可以下著此四物皆至味而惡之如此人之嗜性本定不可傳移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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斯文丁子伋有子二人奇斯文禶與其子壽崑司仕承文院禶曰子之嚴君有四昆弟是否壽崑駭愕曰獨一嚴君而已何謂有四禶曰子之嚴君居長其次丁子舡其次丁子閣其次丁子藥也丁子伋有子二人曰壽崑壽崗丁子舡無後丁子閣有一子曰丁紛丁子藥有一子一女子曰丁腫女丁香壽崑答曰君有四男信否人問其故壽崑曰君之長子特次異次凡次求滿座大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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武官梁某爲公州牧使暑月多蠅梁厭之令州中吏胥下至伶妓僕隷每朝捕呈蠅一升嚴設法而督之上下爭務捕捉皇皇不少休至有抱布買蠅者時人謂之蠅牧使治邑如捕蠅則令豈有不行者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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乙巳歲朴生隨我赴京爲人純謹質直容止麤俚初到平壤監司備萬隊紅粧來迓舟中生目眩不能仰視潛於帽下窺之奇態異常有一妓坐船頭生指之謂同伴成生曰汝爲庶尹三寸能成我事則必厚報之到館就房未知某之來凝神儼思俄而捲帳而入卽船頭坐者生雀躍不已私自語曰若非成龍之力何以至此情意深篤須臾不離側雖於溷厠亦必相隨探囊中得小簡乃妓私夫所送也生不以爲嫌反愈愛之每晨脫妓短襖被之曰亦是客中滋味及行之日欲與載歸已備鞍馬妓因隙逃走至順安惘然自失又見湯酒女有色者百計圖之携入房中因生之醉其女逃去生酒醒有一女過房以爲其人而執之終夜講歡到曉視之則鼻大如盤不類前見者生遽呼曰此非也至肅寧館邑中人物繁華紅裳翠鬢羅擁酒樽者數十人生以府使族弟乘威得美者昵愛尤甚是日天陰生撫女背曰明日降雨則一行當留願天知我心霈然注霖仍歔欷太息賓主朝飯于東軒生持紙呈府使願給女浣衣之暇府使給數日生曰四寸之間何如是薄也府使不得已給數朔生借馬於人載向安州肅川人見之曰朝天行次一年三度往來子弟軍官無數吾輩閱人多矣未見此人之淫急者其奔馳正如狂犬耳至安州留一日愛之甚篤臨發之際還送女于肅川女所率人失鞍子女呼泣曰所以隨汝而來者欲蒙德蔭今未蒙德蔭反有此患罵之不已生茫然若無所措至嘉平館生見官婢有姿色者謂館人曰我是壬申年助戰軍官嘗愛此婢須喚率來女信之至前熟視曰壬申年從誰而來我曾不識汝面也拂袖而去生得他人伴宿至定州獺川橋牧使來迓設酌生見一妓呼而進之曰汝知李陸令公乎曰否汝知盧公弼令公乎曰否生遽前執手曰旣不識二公則必來吾房同伴誣之曰有干於使生遂放之又聞妓碧洞仙有色百計圖而得之一行之人惡生淫慝欲誑之州有儒生明孝者年少丰雋塗粉靚粧坐東軒群妓中凝眸整襟眞贗莫辨生視之曰天下無雙也遽前執手扶歸西室明孝故拒生或叱或誘老妓執燭導前謂生曰此女未經人事當徐徐馴之毋遽侵辱也生入室抱腰附耳語曰汝若從我汝之計活我當遂之成生來曰牧使設酌欲慰吾輩君不可早休不如携妓往參生携手同歸牧使叱明孝曰汝以官物不順於客罪當大笞乎吏取栲杖來扶而下之生出跪攢手哀乞曰此兒無不順之事傳之者誤也若因我得罪反咎我尤甚牧使赦之明孝奉觴而進歌曰今日始相見明日還相離厥初若不逢不知是阿誰生撫背欣笑曰何如是不遜而唱如是歌乎我觀諸妓無如汝之顏色吾捨此何求飮罷到房相持弄戲區區狎昵千態萬狀碧洞仙在側生謂成生曰吾得美人不顧此妓汝速持去生奴來窓外曰此是妓乎何迷而不悟生叱之曰汝何知吾事俄而解衣同臥始知男子驚起無一言翌日行至離亭明孝男服隨生傳杯生欲升馬明孝攀衣止之曰終夜團欒欲成我計活今何容易而去大無情也衆人皆笑至義州州素多人物與箕城相甲乙有一年少婢名末非者生見而憐之欲遂而未遂謂裴官曰君去此邑能成我事則當以死報之裴官曰此輩各有主吾不能制之不如告州官生卽趨謁判官請之判官呼末非敎之末非猶未聽許在上房前生解玉葫蘆繫末非衣乃笑曰得我物當從我言是夜同宿末非雖無愛生之志欲獲後利百態媚之生心膽盡落自以爲得佳偶翌日末非謂生曰官家繁擾不如往吾家蔬糲共之生携手同歸早晨進粟飯葵羹生甘食不遺生離家已久蓬頭垢面末非煖水親自洗面梳髮生尤樂焉來謂諸輩曰其家殷富其人慧黠自吾平生未曾見也至江上臨別生抱末非臥沙中涕泣剖小石各書名而分之生繫諸衣袖如寶金玉未嘗失留燕數月言言每稱末非不離於口回至遼東末非之娚末山隨迎逢軍而去末非送溫襖生卽被於肩謂諸輩曰此吾兒所送物也到義州末非欲得唐物務增媚態生之憐愛倍於多給▣▣遙末非家祀神謂生曰家無魚物汝可乞來生見判官得乾魚一束親持而歸跪受神賜酒快倒曰我是大主翁不可不飮也至林畔館將別生携末非手來入上房索酒各飮一盃末非執生衣生執末非手相持痛哭日已高同伴力解之生恐末非追來踉蹡走出誤得他人馬而倒騎見者皆抵掌馬上雙淚點滴如雨至一溪曲朝飯同伴勸飧專不顧惟俯首向溪同伴曰子無乃泣乎生曰我非泣乃翫水中魚耳捲帽而視之目盡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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慵齋叢話卷之七終

 

 

 

 

 

 

 

 

 

5. 성호사설 16(이익, 1760)

 

언문(諺文)

 

我東諺字剏扵世宗朝丙寅凡有音者莫不有字人稱倉籕以来未始有也元世祖時巴思八者得佛氏遺敎制蒙古字平上去入四聲之韻分唇舌喉齒牙半唇半齒七音之母字苟有其音者一無所遺凡中國之字以形為主故人以手傳而目視也蒙字以聲為主故人以口傳而耳聼也然全無其形又何能傳而不泯今無以得見其詳若推例為文字可以通行扵天下後世與我之諺文同科意者明初必有其法也我國之始制也設局禁中命鄭麟趾成三問申叔舟䓁撰㝎時皇朝學士黃鑚罪謫遼東使三問䓁徃質凡徃返十三度云以意臆之今諺文與中國字絶異鑚何與焉是時元亾𦆵七十九年其事必有未泯者鑚之所傳扵我者抑恐外此更無其物也按髙麗忠烈王時公主妬寵作畏吾兒字達于元欲人之不暁也史云回鶻書于慎行云宋嘉㝎三年畏吾兒國降扵蒙古唐之髙昌也居甘州即西域國名而奉佛敎者也巴思八所傳既云佛敎而元世之通行則公主之所作字非此而何然則與今諺字不過形別而意同者歟凡中國書有音而無字者過半凡唇舌喉齒開合淸濁随口異聲何故或有或無今諺反㘦凡十四母有其母而無其㘦亦四條俗所謂入聲也其舌帖上齶一條我國亦無字侵覃塩咸四韻與真文䓁同㘦我所謂入聲中國無有只有兒二兩字其蕭爻尤三韻皆一字二音此不可暁也意者五胡以後歴元魏華音變盡北方之音有然者耶我俗西邉多濁聲都中泮村亦然北民移濟州故其音與北相類可以為驗西域之字無音不備則屋沃以下入聲十七韻外恐更別無其音而其得扵鑚者如此然則此為巴思八之餘意又可想可謂後出益工但其字形專沒意義惟以一㸃二㸃為別一㸃者皆出扵舌端為正音二㸃者皆出扵舌右旁偏音也其初凡例今無所考

 성호기념관

 

우리나라의 언문 글자는 세종 28년인 즉 병인년에 처음 지었는데, 온갖 소리를 글자로 형용하지 못할 것이 없었다. 사람들은 이를, “창힐(倉頡)과 태사(太史) () 이후로 처음 있는 일이라.” 하였다.

원 세조(元世祖) 때에 파스파(巴思八)가 불씨(佛氏)의 유교(遺敎)를 얻어 몽고(蒙古)의 글자를 지었는데, 평ㆍ상ㆍ거ㆍ입(平上去入)의 네 가지 음운(音韻)으로써 순()ㆍ설()ㆍ후()ㆍ치()ㆍ아()ㆍ반순(半唇)ㆍ반치(半齒) 등 칠음(七音)의 모자(母字)로 나누어 무릇 소리가 있는 것은 하나도 빠뜨림이 없었다.

무릇 중국의 글자는 형상을 주장하므로 사람들이 손으로 전하고 눈으로 볼 수 있는데, 몽고의 글자는 소리를 주장하므로 사람들이 입으로 전하고 귀로 듣게 되어 있다. 그러나 형상이 전혀 없으니 어떻게 유전하여 민멸되지 않겠는가? 이제 그 자세한 내용을 얻어 볼 길이 없는 것이다.

만약 규례를 미루어 문자를 만들었더라면 천하 후세에까지 통용되어 우리나라의 언문과 같은 공효가 있었을 것이니, 생각건대 명 나라 초엽에는 반드시 그 법규가 남아 있었을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언문을 처음 지을 때에는 궁중에 관서를 차리고 정인지ㆍ성삼문ㆍ신숙주 등에게 명하여 찬정(撰定)하게 하였다.

이때에 명 나라의 학사(學士) 황찬(黃鑽)이 죄를 짓고 요동으로 귀양왔었는데, 성삼문 등을 시켜 찾아가 질문하게 했으니 왕복이 무릇 13차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그러나 추측해 본다면 지금 언문이 중국의 문자와 판이하게 다른데 황찬과 무슨 관련이 있었겠는가?

이때에 원 나라가 멸망한 지 겨우 79년이었으니 몽고의 문자가 반드시 남아 있었을 것이며, 황찬이 우리에게 전한 바는 아마도 이 밖에 다른 것은 없었을 것이다.

고려사를 상고하건대, “충렬왕 때에 공주(公主 원 세조의 딸)가 총애를 투기하여 외오아(畏吾兒)의 문자로 편지를 써서 원 나라에 보냈으니, 이는 남들이 알까 두려워한 것이다.” 하였고, 사기에는, “외오아의 문자는 곧 위구르(回鶻)의 글이라.” 하였다.

우신행(于愼行), “송 나라 가정(嘉定 영종(寧宗)의 연호) 3년에 외오아국(畏吾兒國)이 몽고에 항복했으니, 곧 당() 나라 때의 고창(高昌) 땅이라.” 하였다.

거감주(居甘州)는 곧 서역(西域)에 있는 나라로서 불교를 신앙하는데, 파스파(巴思八)의 전한 바에 이미, “불교에 의거하여 몽고의 글자를 지어 원 나라 시대에 통용했다.” 했으니, 공주가 사용한 문자는 이 글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렇다면 지금의 언문과 모습은 다르지만 뜻은 같았을 것이다.

무릇 중국의 문자는 소리는 있으나 문자로써 형용할 수 없는 것이 반이 넘는다. 입술과 혀와 목과 이를 여닫아 맑고 흐린 음성이 입에 따라 다른데, 무슨 까닭으로 이를 형용하는 문자가 혹은 있고 혹은 없는가?

이제 언문은 반ㆍ절(反切)이 무릇 열 네 모음이며, 모음만 있고 절()은 없는 것이 또한 네 가지이니, 세속에서 이른바 입성(入聲)이 이것이다. 그 혀를 윗잇몸에 붙이는 한 가지 소리는 우리나라에도 또한 문자가 없으며, ()ㆍ담()ㆍ염()ㆍ함() 4운은 진()ㆍ문() 등과 절()이 동일하다.

우리나라의 이른바 입성이 중국에는 없는데 다만 아()ㆍ가() 두 자가 있으며, ()ㆍ효()ㆍ우() 세 운은 모두 한 자에 두 음이 되니, 이는 이해할 도리가 없다.

생각건대, 오호(五胡)의 난리 후에 원위(元魏)를 거쳐 중국의 음이 북방의 음으로 모두 변하여 그런 것이 아니겠는가? 우리나라의 습속이 서도(西道)에 흐린 음성이 많고 도성 가운데 반촌(泮村)이 또한 그러하며, 북도의 백성이 제주로 옮겼으므로, 그 음성이 북도와 비슷하니, 이로써 증험할 수 있다.

서역(西域)의 문자는 음성이 갖춰지지 않은 것이 없으나, ()ㆍ옥() 이하 입성(入聲) 17운 밖에는 아마 별다른 음성이 없을 것이니, 황찬에게서 얻은 것이 이와 같은 유이다. 그렇다면 이것이 파사팔(巴思八)의 끼친 뜻임을 또 알 수 있는데, 후일에 나온 것이 더욱 공교하다고 할 만하다.

다만 그 문자의 모습이 전혀 의의가 없고 오직 1 2점으로써 분별하는데, 1점은 모두 혀끝에서 나와 정음(正音)이 되고, 2점은 모두 혀의 우편에서 나와 편음(偏音)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 처음의 범례는 이제 상고할 길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