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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민정음과 범어

왜 훈민정음은 ㄱ으로 시작하는가

왜 훈민정음은 ㄱ으로 시작하는가

문자는 소리를 만들지 않는다. 언제나 소리가 먼저 존재하고, 문자는 그 소리를 기록하기 위하여 만들어진다. 이것은 인류 문자사의 가장 기본적인 원리이다. 세종대왕 역시 새로운 소리를 만든 것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던 한국어의 말소리를 가장 정확하게 기록할 수 있는 새로운 문자를 창제하였다. 따라서 훈민정음을 이해하려면 먼저 글자의 모양보다 소리의 역사를 살펴보아야 한다.

지금까지 훈민정음 연구는 주로 글자의 모양과 제자 원리에 집중해 왔다. 그러나 그보다 먼저 던져야 할 질문이 있다. 훈민정음이 만들어지기 이전에 그 소리는 무엇으로 읽고 있었는가 하는 질문이다. 문자는 새로 만들어질 수 있지만, 문자가 나타내는 소리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질 수 없다. 새로운 문자가 만들어지기 전에도 사람들은 이미 그 소리를 알고 있었고, 다른 방법으로 그것을 읽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질문의 답은 브라흐미 문자에서 시작된다. 브라흐미 문자는 인간의 말소리를 어디에서 나는가(조음 위치)어떻게 나는가(조음 방법)라는 두 가지 기준으로 분석하여 체계화한 문자이다. 첫 번째 줄은 연구개에서 나는 소리인 ka, kha, ga, gha, ṅa이며, 두 번째 줄은 ca, cha, ja, jha, ña, 세 번째 줄은 ṭa, ṭha, ḍa, ḍha, ṇa, 네 번째 줄은 ta, tha, da, dha, na, 다섯 번째 줄은 pa, pha, ba, bha, ma이다. 먼저 어디에서 소리가 나는가를 기준으로 줄을 만들고, 같은 줄 안에서는 어떻게 소리가 나는가를 기준으로 무성음, 유기음, 유성음, 유성 유기음, 비음의 순서로 배열하였다. 이 자음표는 단순한 문자표가 아니라 인간의 발음기관을 분석한 음성학 지도이다.

이 음성학은 불교와 함께 아시아 전역으로 전파되었다. 인도에서는 브라흐미 문자가 싯담 문자와 데바나가리 문자로 발전하였고, 스리랑카에서는 싱할라 문자, 미얀마에서는 버마 문자, 태국에서는 태국 문자가 만들어졌다. 문자의 모양은 지역마다 크게 달라졌지만 자음을 배열하는 원리와 읽는 순서는 그대로 이어졌다.

오늘날 태국에서는 ก ข ค ฆ ง을 배우며 대표 음가는 ka, kha, ga, gha, ṅa이다. 미얀마에서는 က ခ ဂ ဃ င, 스리랑카에서는 ක ඛ ග ඝ ඞ을 같은 순서로 배우며 같은 음성학적 질서를 유지한다. 문자는 서로 전혀 닮지 않았지만, 자음을 읽는 순서와 대표 음가는 지금까지 공통적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사실이다. 나라마다 문자는 새롭게 만들어졌지만, 그 문자가 나타내는 대표 음가는 오랫동안 변하지 않고 전승되었음을 보여 주기 때문이다.

불교가 전파된 것은 단지 교리만이 아니었다. 경전을 정확하게 독송하기 위한 음성학도 함께 전파되었다. 조음 위치와 조음 방법에 따라 자음을 분류하는 방법도 함께 전해졌고, 그 자음을 읽는 대표 음가도 함께 이어졌다. 문자는 지역마다 달라질 수 있었지만, 소리의 체계는 쉽게 바뀌지 않았다.

중국도 마찬가지였다. 중국은 브라흐미 문자를 사용하지 않았지만, 그 음성학적 체계를 받아들여 『절운』, 『광운』, 『홍무정운』과 같은 운서를 편찬하였다. 여기에서는 연구개음을 見·溪·群·疑로 설명하고, 다른 자음들도 같은 원리로 배열하였다. 이는 브라흐미의 ka, kha, ga, gha, ṅa를 중국 성운학의 체계 속에서 정리한 것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중국은 새로운 문자를 만들지 않았고, 한자를 이용한 음차와 반절법으로 이미 존재하는 소리를 설명하였다. 음차법도 반절법도 목적은 하나였다. 새로운 소리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이미 알려져 있는 소리를 기록하고 전달하는 것이었다.

훈민정음도 바로 이러한 전통 위에서 창제되었다. 『훈민정음 해례』는 "ㄱ는 君字初發聲", "ㅋ는 快字初發聲", "ㄴ는 那字初發聲", "ㅁ는 彌字初發聲"이라고 설명한다. 여기에서 특히 주목해야 할 것은 자음마다 붙어 있는 조사 '는'이다.

현대국어에서 보조사 은/는은 앞말에 받침이 있으면 , 받침이 없으면 을 사용한다. 그런데 『훈민정음 해례』에서는 모든 자음을 설명하면서 예외 없이 '는'만 사용하였다. 'ㄱ은', 'ㄷ은', 'ㅂ은'이라는 표현은 한 번도 나타나지 않는다. 이것은 매우 의미심장한 사실이다.

당시에는 아직 기역, 니은, 디귿, 리을, 미음과 같은 자모 이름이 존재하지 않았다. 따라서 세종은 글자의 이름을 설명한 것이 아니라 "君字의 첫소리", "快字의 첫소리"처럼 소리 자체를 설명하고 있었다. 다시 말하면 훈민정음은 새로운 발음을 만든 것이 아니라, 이미 사람들이 알고 있던 대표 음가를 새로운 기호에 대응시킨 문자였다는 것이다.

브라흐미에서는 ka, kha, ga, gha, ṅa라는 대표 음가를 읽었다. 중국에서는 그 음가를 見·溪·群·疑라는 성모 체계로 정리하고, 다시 君·快·虯·業과 같은 한자를 이용하여 그 첫소리를 설명하였다. 세종은 이러한 소리의 체계를 알고 있었으며, 한자를 빌려 설명하는 반절법 대신 누구나 보면 곧바로 소리를 이해할 수 있는 새로운 문자 기호를 만들었다.

그 계통은 하나의 흐름으로 정리할 수 있다.

ka, kha, ga, gha, ṅa → 見·溪·群·疑 → 君·快·虯·業 → ㄱ·ㅋ·ㄲ·ㆁ

이 계보에서 바뀐 것은 문자뿐이다. 브라흐미 문자는 브라흐미 문자로 기록되었고, 중국에서는 한자를 이용한 음차와 반절법으로 설명되었으며, 조선에서는 훈민정음이라는 새로운 기호로 표현되었다. 그러나 대표 음가와 음성학적 질서는 계속 이어졌다. 태국에서는 ก ข ค ฆ ง, 미얀마에서는 က ခ ဂ ဃ င, 스리랑카에서는 ක ඛ ග ඝ ඞ을 지금도 ka, kha, ga, gha, ṅa의 질서로 배우고 있다. 문자는 서로 전혀 다르지만, 소리의 계통은 놀라울 만큼 공통적으로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훈민정음 역시 이미 전승되어 오던 대표 음가를 바탕으로 새로운 문자 기호를 만들었다는 점을 이해하는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세종이 새롭게 만든 것은 소리가 아니라 기호였다. 이미 알려져 있던 대표 음가를 한국어를 가장 정확하게 적을 수 있는 문자로 새롭게 설계한 것이다.

세종의 뛰어난 점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그는 단순히 새로운 기호를 만든 것이 아니라, 어디에서 소리가 나는가어떻게 소리가 나는가를 직접 관찰하여 그것을 문자의 형태 속에 반영하였다. ㄱ은 혀뿌리가 연구개에 닿는 모습을 본떴고, ㅋ은 획을 더하여 거센소리를 나타냈으며, 같은 조음 위치에서 된소리까지 하나의 질서 속에 배열하였다. 설음, 순음, 치음, 후음도 모두 같은 원리로 설계되었다.

그래서 훈민정음은 소리와 문자가 서로 일치하는 문자 체계가 되었다. 자음표를 보면 어디에서 나는 소리인지 알 수 있고, 같은 줄에서는 어떻게 나는 소리인지도 알 수 있다. 문자의 배열 자체가 곧 음성학이며, 글자의 형태 자체가 발음기관의 원리를 설명한다. 훈민정음이 과학적인 이유는 단순히 글자의 모양이 독창적이기 때문이 아니라, 오랫동안 전승되어 온 과학적인 음성학과 대표 음가의 질서를 문자 속에 가장 체계적으로 구현하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훈민정음을 이해하려면 먼저 자음표를 보아야 한다. 왜 ㄱ이 첫 글자인가. 왜 ㄱ 다음이 ㅋ인가. 왜 아음·설음·순음이라는 이름을 사용하는가. 왜 자음을 행과 열의 격자로 배열하였는가. 왜 『홍무정운』의 성모표와 훈민정음의 자음표가 서로 닮았는가. 왜 태국과 미얀마, 스리랑카의 자음표도 같은 질서를 유지하는가. 이 모든 질문의 답은 하나이다. 훈민정음은 어디에서 나는가어떻게 나는가라는 음성학의 원리를 바탕으로 설계된 문자이며, 오랫동안 전승되어 온 대표 음가를 가장 직관적이고 체계적인 문자로 완성한 결과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