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만2천명 승려 중 단 4백명에게만 허락된 총무원장 자격
- 종헌을 유린한 하위 선거법과 사판 권승(權僧)들의 기만적인 기득권 장벽
대한불교조계종의 최고 권력기관이자 종무 행정을 총괄하는 총무원장 자리는 과연 누구에게 열려 있는가. 종단의 최고 헌법이라 불리는 ‘종헌’과 선거 실무를 규정하는 하위 ‘선거법’을 대조해 보면, 상위법과 하위법이 얼마나 기만적으로 충돌하며 12,000명 전체 구성원들의 참정권을 처참하게 제한하고 있는지 그 추악한 민낯이 고스란히 드러난다.종헌 제53조제1항은 총무원장의 자격을 규정하고 있다. “승납 30년, 연령(세납) 50세, 법계 종사급 이상의 비구.” 종단 공식 통계를 기준으로 삼는다면 현재 조계종 소속 비구·비구니 스님은 약 12,000명에 달하며, 이 중 '승랍 30년 이상, 세납 50세 이상'의 종헌 기준을 충족하는 중진 이상 스님들은 대략 4,200명 안팎으로 추산된다. 수행과 이판사판의 경계를 넘어 종단을 위해 수십 년간 헌신한 스님이라면 누구나 종단의 수장이 되어 자신의 원력을 펼칠 기회가 주어져야 마땅하다는 것이 종헌의 기본 정신이어야 한다.
하지만 여기에 종단이 당면한 ‘출가자 감소’와 ‘고령화’라는 잔인한 현실을 대입해 보면 상황은 훨씬 더 심각해진다. 종헌이 요구하는 ‘승납 30년, 세납 50세’를 동시에 채우려면 정확히 20세 이하에 출가해야만 한다. 그러나 지금 종단에 20세에 출가하는 행자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다. 만약 현실을 반영해 40세에 출가를 한 스님이 있다면, 그 스님은 무려 70세가 되어서야 비로소 총무원장에 입후보할 자격을 갖게 된다. 출가 연령이 갈수록 높아지는 현실을 방치한다면 앞으로 총무원장 후보가 될 수 있는 인력풀 자체가 가뭄에 콩 나듯 귀해져 구조적으로 지도자 후보군이 고갈될 위기에 처한 셈이다.
더 큰 비극은 이 좁은 문 아래에 도사린 하위 법령의 기만성이다. 가뜩이나 좁은 문에 하위 법령인 선거법 제13조(피선거권)가 무시무시한 독소 조항으로 대형 빗장까지 걸어 잠그고 있다. 선거법은 총무원장 피선거권의 자격을 중앙종회의장·호계원장 역임, 교구본사 주지 4년, 총무원 부·실장 3년, 중앙종회의원 6년 등 중앙 권력의 핵심 요직을 거친 자로만 못 박아 제한해 버렸다.12,000명의 교단 구성원 전체에 선거법의 필터를 들이대면, 종단에서 실제로 출마 가능한 현실적 인원은 역대 전·현직 요직 역임자를 모두 긁어모아도 겨우 400~500명으로 쪼그라든다. 이는 종헌이 인정한 최소 자격자(4,200명) 중 겨우 10% 남짓에 불과하며, 12,000명 조계종단 전체 구성원을 기준으로 보면 고작 3~4% 내외에 불과한 숫자다. 나머지 96%가 넘는 대다수 종도들은 원천적으로 피선거권을 박탈당한 배제된 존재들인 셈이다.
특히 이러한 처참한 수치가 도출되는 결정적인 이유는 종단 구성원의 절반인 약 6,000명에 달하는 비구니 스님들이 중요 직책을 맡을 확률이 구조적으로 매우 적기 때문이다. 중앙종회의장, 호계원장, 교구본사 주지, 총무원 주요 부·실장 등 선거법이 요구하는 핵심 정치적 스펙은 그동안 철저히 비구 중심의 권력 카르텔 안에서만 독점되어 왔다. 비구니 스님들에게는 애당초 진입 장벽 자체가 철벽처럼 가로막혀 있으니, 선거법이라는 체 자체를 통과할 수 있는 인력풀이 반 토막 날 수밖에 없는 구조다.결과적으로 수십 년간 제방 선원에서 화두를 쥐고 정진해 온 청정한 이판승(理判僧) 스님들도, 지역에서 묵묵히 포교와 가람 수호에 매진해 온 명망 높은 비구·비구니 스님들도 종단 중앙의 권력 울타리 안에서 정치적 야합을 하거나 주류 권력에 줄을 서지 못했다면 총무원장 선거에 출마할 기회조차 완전히 차단당하고 만다.
이 말도 안 되는 모순된 선거법을 만든 저의는 무엇인가. 결론은 하나다. 종단의 행정과 권력을 쥐고 흔드는 극소수의 주류 사판(事判) 권승들이 ‘자기들끼리만 총무원장 자리를 영구히 나누어 먹겠다’는 음흉한 음모에 지나지 않는다. 자신들이 짜놓은 권력의 그물망 안에서 검증된 소수의 이익 동맹들만이 총무원장 자리를 대물림할 수 있도록, 법이라는 이름의 장벽을 쳐놓고 자신들의 기득권을 철통방어하고 있는 것이다.조계종이 사판 권승들만의 닫힌 놀이터가 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출가자 감소라는 시대적 위기 속에서, 기득권의 독점을 정당화하고 비구니 스님들을 비롯한 12,000명 종도의 참정권을 가로막고 있는 이 거꾸로 된 선거법은 시급히 전면 개정되어야 마땅하다. 이 독소 조항이 개정되지 않는 한, 향후 직선제를 도입한다 해도 우리가 선출할 수 있는 총무원장 후보군은 극소수의 인물로 제한될 뿐이다. 12,000명 종도의 권리를 가로막은 이 장벽을 허물지 않는 한, 조계종의 미래는 기득권 사판들의 손에 완전히 고사하고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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